(흑인) 미국연극에서 미국여성문학으로

From (Black) American Drama to Women’s Literature

  • ABSTRACT

    This article aims to reveal the feminist Lorraine Hansberry “unidealized, unsimplified, in her fullest complexity” (Rich 22) by deconstructing the canonization of A Raisin in the Sun in anthologies and books, and then by excavating the hidden picture from the surface story of an American black family, a feminist picture that can be drawn from the housewife Ruth Younger’s management of home economics, her attitude towards money, and her wish to move to the house in Clybourne Park.

    The first part of this article looks both at the anthologies in which A Raisin in the Sun is included and at the books about Lorraine Hansberry and A Raisin in the Sun to reveal how the position of the play has changed in the pedagogical or academic institutions. The play has been read and taught, I argue, first as a black American drama or a representative of American drama, then as a black American feminist drama or an American feminist drama, recently as feminist philosophy, and then finally as American feminist literature. This critical survey of the anthologies and the books informs us that the play has conveyed “the changing interests and beliefs of those people whose place in the cultural hierarchy empowers them” (Tompkins 37) and thus opens the way for a discovery of the values and interests suppressed by their critical endeavors. The latter part of this article attempts to unmask the play by looking at the trifles to uncover the hidden values and interests.

    For this purpose, this article concentrates on the issues of money and house that the play raises and does so from the perspective of Ruth, who neither plays an important role in the plot development nor raises her own voice, and thus has been concealed even from the eyes of the feminist critics. This article argues that Ruth’s special economic attitude and practice can be an alternative to the capitalistic principle and practice, and that her concept of house as her own space of freedom redefines Lena Younger’s spiritual and Walter Lee Younger’s political concepts of house. Yet, this article does not ignore the fact that Ruth not only upholds the basic principles of the capitalistic system by willingly accepting the roles of a housewife and a maid, but also supports the patriarchal system by dreaming of happiness in an American middle-class nuclear family. By showing the complexities in both Ruth’s economic life and her wish to have her own space, this article shows a way of discovering Ruth, a woman “unidealized, unsimplified.”

  • KEYWORD

    A Raisin in the Sun , Canonization , American Feminist Drama , House , Housewife , Lorraine Hansberry , Money , Ruth

  • I. 서론

    『태양 속의 건포도』(A Raisin in the Sun, 1959)의 작가 로런 한스베리(Lorraine Hansberry, 1930-1965)는 망각되었다가 복원된 여성작가가 아니다. 1959년 첫 브로드웨이 공연 이후 지속되어온 『태양 속의 건포도』의 대중적 성공과 평론가들의 극찬은 페미니스트 비평가들에게 한스베리를 미국여성극작가로 굳이 적극 옹호하지 않아도 되는 환경을 조성했다. 『태양 속의 건포도』는 시카고 남부 빈민가에 살고 있는 흑인가족 영거네(the Youngers)가1) 고 영거 씨의 사망보험금으로 백인 거주지역인 클리본 파크(Clybourne Park)에 집을 마련하여 이사하는 이야기 틀 속에 흑백갈등, 미국의 꿈, 가족 간 갈등과 화해의 주제들을 조화롭게 녹여낸 극이다. 가장 미국적인 문제인 인종문제와 미국의 꿈을 가장 미국적인 가족극 형식으로 펼쳐내고 있는 탓인지 이 극은 한스베리에게 흑인여성 최초 브로드웨이 공연과 흑인극작가 최초 뉴욕드라마비평가상의 영광을 거머쥐게 했다. 이 극의 영광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이 극은 흑인과 백인 양쪽으로부터 지속적으로 대중적인 열광을 받게 되어, 백인동화주의에 편승한 “연속극”정도로 이 극을 폄하했던 크루즈(Harold Cruze)나 “중산층” 극으로 비판한 바라카(Amiri Baraka) 등의 초기 급진적 비평가들의 혹평을 물리치는데 성공했다.2) 이 극은 1961년에는 영화로 만들어져 칸 영화제 특별상을, 1974년에는 뮤지컬로 개작되어 토니상을 받았고, 25주기 기념 공연과 1988년 PBS 텔레비전 방송을 거쳐, 2004년 브로드웨이 리바이벌로 토니상을 다시 받았다.

    이 극은 권위 있는 평론가들 사이에서도 미국의 고전연극으로 평가받는 쾌거를 이루었다. 브로드웨이 초연 직후 아트킨슨(Brooks Atkinson)은 이 극이 환경에 지배받는 인물들을 유머와 페이소스로 담아낸 점에서 체홉(Anton Chehov)의 『벚꽃 동산』(The Cherry Orchard)을 상기시킨다고 칭송했다. 그러나 더 큰 칭송은 25주년 기념 공연 직후 쏟아 졌다. 바라카는 자신의 이전 평가를 취소하고 이 극을 “고전”으로 치켜세우고(Baraka 9), 『워싱턴 포스트』(The Washington Post)지의 비평가 리차즈(David Richards)는 아예 이 극을 『세일즈맨의 죽음』(Death of a Salesman), 『밤으로의 긴 여로』(Long Day's Journey into Night), 『유리 동물원』(The Glass Menagerie)과 함께 미국연극의 핵심이라고 선포했다(Carter 19 재인용). 이러한 경향이 지금까지도 지속되고 있는 바, 이는 2010년 노리스(Bruce Norris)가 이 극을 『클리본 파크』(Claybourne Park)로 다시 써 퓰리처상을 받았다는 점에서 입증된다.

    왜 특수한 흑인가족의 경험을 담은 한스베리의 『태양 속의 건포도』가 이와 같이 대중의 뜨거운 반응을 얻고 미국의 보편적 고전으로 자리 잡게 되었는가? 이에 대한 답을 윌커슨(Magaret B. Wilkerson)의 1986년 논문에서 찾을 수 있다. 이 글에서 윌커슨은 이 극의 발표 시점의 시의 적절성(역사적 맥락), 백인관객들도 동일시 할 수 있을 만큼 설득력 있는 인물 구현(인물), 물질주의를 거부하고 인간성 회복을 외치는 철학적 자세(주제)가 이 극을 고전으로 평가받게 하는 주요 요인들이라고 설명한다. 윌커슨은 “분리하지만 평등하다”는 흑백분리 짐 크로우 법령(the Jim Crow laws)이 위헌임이 밝혀진 지 5년, 로자 팍스(Rosa Parks)의 버스 거부운동이 벌어진 지 4년이 지난 시점에 발표된 이 극의 시의 적절성으로 촉발된 관심이 한스베리의 예술성과 철학적 관점으로 보강되었다고 평가했던 것이다.

    그러나 윌커슨의 이 주장은 이 극의 보편성이 이 극에 대한 오해와 상업적 검열에서 비롯되었다고 주장하는 후대 비평가들의 반격에 직면하게 된다. 1999년 번스타인(Robin Bernstein)은 『태양 속의 건포도』를 고전으로 칭송해온 기존 비평가들은 흑인가족극이라는 특수성에서 미국적 보편성을 찾건, 그 특수성을 타자화시켜 예외적 우수성을 발견하건, 이 극의 흑인 인물들을 어항 속에 집어넣고 오로지 어항 유리를 통해서만 바라보는 인종주의적 관점을 취했으며 그 과정에서 이 극을 오해해 왔다고 논의한다. 특수한 흑인연극이나 보편적 미국연극이라는 평가를 지양해야 된다는 번스타인의 이 주장은 다른 맥락에서 한스베리의 의도와 대중 반응 사이의 간극을 간파한 리파리(Lisbeth Lipari)에 의해 힘을 받는다. 2004년 리파리는 1961년 할리우드 제작의 『태양 속의 건포도』영화가 한스베리 원작 시나리오에서 백인관객에게 두려움을 줄 수 있는 장면들을 의도적으로 삭제함으로써 한스베리의 인종주의 비판 의도를 무화시키고 보편성을 강화했다고 주장한다. 한스베리를 타협주의자로 보는 남정섭도 이 극이 보편성을 띄게 된 것은 한스베리가 브로드웨이 및 할리우드 상업주의와 타협하고 연극과 영화 원작에 있었던 흑인차별과 백인사회의 위선을 고발하는 장면을 삭제했기 때문이라며 리파리와 비슷한 의견을 제안한다. 2013년 논문에서 라파리는 급진적인 한스베리의 면모를 부각시키려는 2004년 논의를 더욱 발전시킨다. 리파리는 억압적 사회에서 작가들은 지배 권력에 공모하는 것처럼 보이는 공적 서사 뒤에 기존 질서와 그 억압에 대항하는 서사를 숨겨놓고 있다는 스콧(James Scott)과 윌리엄스-위더스푼(Kimmika Williams-Witherspoon)의 입장을3) 받아들인 후 한스베리의 『태양 속의 건포도』를 그 대표적인 예로 제시한다. 그런 후 리파리는 연극과 영화 산업에 의해 형성된 공적 서사의 가면 뒤에 한스베리가 숨겨 놓은 인종주의에 대한 강력한 비판과 저항의 서사를 찾아낸다.

    태양 속의 건포도』에 숨겨진 서사에는 리파리가 발견한 인종주의에 대한 비판 서사만 있을까? 스콧과 윌리엄스-위더스푼의 가설이 인종문제에만 국한될까? 여성작가로서 한스베리는 이 극에 가부장적 질서에 저항하는 서사를 숨겨놓은 것은 아닐까? 이 질문에 대해 페미니스트 시인이자 비평가인 리치(Adrienne Rich)는 분명히 숨겨 놓았으며 그것을 찾아내는 것이 페미니스트의 임무라고 피력한다. 리치는 번스타인이 이 극을 둘러싼 보편성 논란의 문제들을 들춰내기 이전, 리파리가 한스베리의 숨겨진 서사 찾기를 논하기 이전인 1979년, 여러 경로의 장애로 인해 이 극이 한스베리의 의도를 표면화시키지 못했다고 주장한다. 리치는 한스베리의 전남편이자 유작 관리자인 로버트 네미로프(Robert Nemiroff, 1929-1991)의 이 극 편집과 출판 과정 개입, 브로드웨이 상업주의와의 결탁, 한스베리 자신의 내면화된 검열로 이 작품의 페미니스트 이슈들이 잘 드러나지 않게 된 것이 바로 한스베리의 문제라고 지적하고, 이 문제는 후대 페미니스트들, 특히 후대의 흑인 페미니스트들이 “한스베리의 복잡성과 한스베리가 처한 정치적 상황을 완전히 이해한 상태에서 이상화되지 않고, 단순화되지 않은 한스베리”를 찾아낼 때(22) 해결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페미니스트들이 리치의 요청에 답하는 일은 쉽지 않았던 것 같다. 리치와 같은 해와 그 이후 다양한 글을 통해 윌커슨은 한스베리와 이 극을 페미니스트적 입장에서 접근하는 글을 지속적으로 써 왔지만, 리치의 요청에는 답하지 못한 듯하다. 윌커슨은 보편적인 한스베리를 강조하는 가운데, 스테레오타입의 흑인 여성상을 타파하고 포용력이 있는 여성인물들을 창조한 한스베리를 칭송함으로써 한스베리를 이상화하고 단순화시키는 데 일조했다. 이러한 윌커슨의 논의는 후대 페미니스트 비평가들에 의해서도 반복되어 왔다.4) 아이로니컬하게도 이러한 이상화와 단순화의 극단적인 경우가 리치가 기다렸던 후대 흑인 페미니스트인 벨 훅스(bell hooks)에게서 발견된다. 훅스에게 한스베리는 훅스 자신이 닮고 싶은 “새로운 여성”이요, 비판적이고 예언적이고, 급진적이며 낙관적이며 열정적인 작가요, 그렇기에 언제나 황홀감과 존경심을 불러일으키는 “문학적 멘토”(211)였다.

    리치의 요청에 응해 페미니스트적 관점에서 “이상화되지 않고, 단순화되지 않은” 한스베리 발굴의 첫 삽질은 30년이 지나서야 쇼왈터(Elaine Showalter)에 의해 시도되었다. 2009년 쇼왈터는 문학시장과 문학평론의 영향력과 타협하면서 공적 영역에서 작품 활동을 한 여성작가들을 중심으로 미국 최초의 여성문학사 『그녀의 동료 배심원들』(A Jury of Her Peers)을 출간하는데, 여기서 쇼왈터는 ‘1950년대 레즈비언 문학’ 항목에 한스베리를 배치시켰다. 그러나 이 500여 쪽의 문학사에서 한스베리에게 할애된 쪽수는 겨우 1쪽 반에 불과하고, 이 짧은 지면에 쇼왈터가 리치가 원하는 방식으로 페미니스트 한스베리를 부각시키는 일을 기대할 수는 없다. 그러나 쇼왈터가 여기서 한스베리를 “젊고, 능력 있고, 양성적인, 흑인- 로런 한스베리”(419)라는 부제를 단 후 보부아르(Simone de Beouvoir)의 영향을 받은 양성적 페미니스트로 자리 매긴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쇼왈터는 네미로프가 개작한 한스베리 자서전 『젊고, 재능 있는, 흑인이 되는 것』(To Be Young, Talented, Black)의 제목을 “젊고, 재능 있고, 양성적인, 흑인”(“Young, Talented, Bisexual, Black”)으로 전환시키며 ‘양성성’을 강조하는데, 이것은 리치가 지적했던 네미로프 개입으로 인한 한스베리 문제를 해결하는 한 가지 방식일 수 있다. 즉 네미로프가 간과한 ‘양성적’ 관점을 추가함으로써, 숨겨진 한스베리의 양성적 면모를 드러낸다고 볼 수 있다.

    또한 한스베리를 미국여성문학사에 한 자리를 차지하도록 배치한 것 자체가 쇼왈터가 리치가 요청했던 임무를 일부 수행한 것이다. 쇼왈터는 이 책을 통해 리치가 요청했던 감춰진 페미니스트 한스베리 발굴 작업이 가능한 환경을 제공하고 있기 때문이다. 쇼왈터가 책의 제목으로 글라스펠(Susan Glaspell)의 단편소설「그녀의 동료 배심원들」(“A Jury of Her Peers," 1917)을 그대로 차용한 것이 그 근거이다. 글라스펠의 소설은 남성의 법적 시각으로는 찾을 수 없었던 미니(Minnie)의 남편 살해 동기와 증거들을 발견함으로써 미니를 가부장적 법으로부터 보호하는 그녀의 동료 배심원들을 다루고 있는데, 쇼왈터는 이 제목의 은유를 통해 독자들과 비평가들에게 한스베리에게 동감하는 동료배심원들이 되어 남성적 시각이 놓쳤던 한스베리의 페미니스트적 측면들을 찾아내야 한다고 부탁한다고 볼 수 있다. 이 점에서 쇼왈터는 리치의 후계자이다. 리치가 한스베리가 처한 문제를 지적함으로써 후대 페미니스트 비평가들을 일깨웠다면, 쇼왈터는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한 것이다. 이리하여 쇼왈터는 리치의 요청에 응하면서 동시에 후대 페미니스트들에게 더 구체적인 요청을 추가한 셈이다.

    한국의 여성 학자로서 많은 한계를 지닌 필자가 리치가 명하고 그 명에 응하여 쇼왈터가 마련해준 터에서 페미니스트 한스베리를 정립할 만한 적절한 위치에 서 있지는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글은 리치의 뜻에 따라 쇼왈터가 마련해 준 터에 집을 지을 기반을 닦고 기둥을 세워 보고자 한다. 먼저 리치가 제안한 “이상화되지 않고, 단순화되지 않은” 한스베리 발굴 작업의 기반을 닦고자 한다. 그러나 그 방법으로 리치 식의 “한스베리의 복잡성과 한스베리가 처한 정치적 환경에 대한 완전한 이해”나 쇼왈터 식으로 여성문학사에 한스베리를 양성적 페미니스트로 위치시키는 방식을 선택하지 않는다. 대신 이 글은 『태양 속의 건포도』가 교육과 학문 제도권에서 미국연극을 대표하는 정전이 되었다가 미국여성문학으로 재구성되는 일련의 변화 과정을 출판된 저서들을 중심으로 추적하는 방식을 택한다. 이 글은 『태양 속의 건포도』 정전화 과정에서도 이 극의 비평사와 대중화에서 보였던 한스베리 오해과정이 반복되었으며 페미니스트 비평이 시작되면서야 비로소 페미니스트 재해석이 가능해진 사실을 발견한다. 이후 그 기반 위에 한스베리의 동료여성 배심원의 시각으로 『태양 속의 건포도』의 사소한 것들 중 한 가지--이 극의 플롯과 인물 설정에서 거의 드러나지 않으며 영거네 식구들 중 가장 힘이 없는 가정주부 루스의 관점에서 ‘돈’과 ‘집’의 제 문제들--를 주의 깊게 살펴보면서 페미니스트 한스베리 집의 기둥을 세우고 “이상적이지 않고, 단순화되지 않은” 한스베리를 찾는 일에 기여하고자 한다.

    1)영거 가족은 마마(Mama)로 불리는 르나(Lena), 그녀의 아들 월터 리(Walter Lee), 그의 아내 루스(Ruth), 이들 부부의 아들 트라비스(Travis), 르나의 딸 베니사(Beneatha)로 구성된 확대 가족이다.  2)크루즈의 의견은 Lipari, “Fearful of the Written Word" 10에서 재인용. 크루즈 의견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Saber 464-65. Baraka 19 참조. 그 외 초기 비평은 Abramson 254, Carter 20-21, Saber 465-66 참조.  3)스콧은 억압받은 자들이 언어, 제의식, 전통 속에 숨긴 서사를 통해 지배 권력을 뒤에서 비판한다는 이론을 제안했고, 윌리엄스-위더스푼은 이 이론에 따라 아프리카계 미국연극의 각종 제 의식에 숨겨진 서사를 찾았다.  4)1984년 프리드먼(Sharon Friedman), 1990년 고메즈(Jewelle L. Gomez), 2011년 가니(Hana' Khalief. Khani)가 대표적 후대 페미니스트 비평가들이다. 여기서 워드(Bernadette Waterman Ward)와 마페(Diana Adesola Mafe)는 제외시킨다. 워드는 루스의 낙태문제를 생명존중 윤리학적 측면에서 바라보고, 마피는 니코자케 샹게(Ntozake Shange)의 극과 함께 이 극에 드러난 낙태, 성, 힘의 문제를 평면적으로 언급하는 수준에 머물기 때문이다.

    II. 『태양 속의 건포도』정전화 과정

    옥스퍼드 사전에 의하면 문학 분야에서 정전이란 “최고의 작품이라는 확고한 평가를 영속적으로 유지하고 있는 일련의 작품들”을 지칭한다.5) 김양선의 언어를 빌어 쉽게 다시 풀어 쓰면, 정전이란 지배 이데올로기의 가치를 생산 또는 재생산하고자 하는 학교나 출판사와 같은 제도권이 “해석 혹은 모방할 만한 가치가 있다”(243)고 인정한 일련의 작품들이다. 그리고톰킨스(Jane Tompkins)가 지적하듯이, 특정 문학작품은 그 고유의 우수성보다는 편집자, 비평가, 출판업자, 교사, 교수, 전기 작가, 정치가와 같은 정치적, 제도적 권력자들에 의해서 정전으로 만들어지며(xii), 특히 문학교육 전문가들의 읽기와 다시 읽기, 출판과 재출판, 가르치고 추천하기, 책 쓰기 등을 통해 정전으로 영속화된다(37).

    이 글은 먼저 이러한 관점에서 『태양 속의 건포도』의 정전화 과정을 문학교육 전문가들이 쓴 저서들, 즉 작품 앤솔로지, 비평 앤솔로지, 미국연극문학사, 한스베리 입문서와 해설서를 기초로 살펴보고자 한다. 이렇게 책을 중심으로 살펴보는 이유는 무엇보다 이 극 비평사 연구를 연극평론, 전문학술지나 대중매체를 중심으로 시도했던 번스타인과 리파리를 비롯한 여러 비평가들의 연구를 반복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그 두 번째 이유는 학교 제도권에서 공인된 책을 매개로 『태양 속의 건포도』 정전화 과정을 살펴볼 때, 교육과 연구 분야에서 『태양 속의 건포도』가 수용되고 전파되었던 과정이 해체되면서 톰킨스의 지적대로 그 동안 문화적으로 억압되었던 새로운 가치들과 관심사들이 드러나고(37), 숨겨진 측면들의 발굴 가능성이 열리기 때문이다.

    한스베리의 『태양 속의 건포도』를 후대에 전달해준 첫 전달자들은 1967년 앰브람슨(Dorris E. Ambramson)이 집필한 미국흑인연극사와 1970년대 흑인드라마 앤솔로지들이었다. 특히 1971년 올리버(Clinton F. Oliver)와 스테파니우(Sills Stephaniw)가 편집한 한스베리부터 1970년까지의 흑인연극 선집과 1974년 해치(James V. Hatch)와 샤인(Ted Shine) 이 편집한 1935년부터 1970년 초까지의 미국흑인연극 선집은 한스베리를 미국의 흑인극작가로 분류하고 한정시켰다. 특히 해치와 샤인이 편집한 앤솔로지가 케네디(Adrienne Kennedy)와 칠드레스(Alice Childress)를 포함한 흑인여성극작가들의 작품들을 ‘여성에 관한 현대 여성의 글’ 장에 묶어 소개하면서도, 『태양 속의 건포도』를 ‘가족의 삶’ 장에 배치시킴으로써 이 극이 제기하는 여성문제에 대한 관심을 아예 차단시켰다.

    이 시기 한스베리를 흑인극작가 또는 흑인작가로 규정한 이 특별한 관점은 1974년 설리번(Victoria Sullivan)과 해치가 편집한 여성희곡 선집에 한스베리의 작품을 포함시키지 않았을 때 분명하게 드러난다. 20세기 여성 작가가 쓴 여성과 제 문제들에 관한 희곡들을 선별했던 이 앤솔로지에는 칠드레스의 『황야의 포도주』(Wine in the Wilderness, 1969)는 포함되지만, 『태양 속의 건포도』는 흑인연극이라는 확고부동한 공식적 라벨때문인지 수록되지 못했다. 이런 경향은 25년 후인 2001년에 발로우(Judith E. Barlow)가 편집한 1930년부터 1960년까지의 미국여성희곡 앤솔로지에서도 여전히 지속된다. 발로우는 백인동화주의적일 뿐만 아니라 남성인물 월터 리를 부각시키고 있다고 판단 하에 『태양 속의 건포도』를 앤솔로지에 의도적으로 수록하지 않았다(xxxiv-xxxv).

    『태양 속의 건포도』는 백인동화주의적이라는 평가 때문인지 1970년대 후반부터는 아예 흑인연극이라는 딱지를 떼고 서양고전 혹은 미국연극으로 분류되기에 이르렀다. 말하자면, 고대부터 르네상스에 이르는 여러 작품들과 함께 권위 있는 서양연극 앤솔로지에, 또 오닐(Eugene O'Neill), 밀러(Arthur Miller), 윌리엄스(Tennessee Williams)와 함께 미국연극 앤솔로지에 수록되기 시작했다. 1976년 『히스 드라마 입문서』(The Heath Introduction to Drama)는 『오이디푸스 왕』과 『햄릿』을 비롯한 서양고전과 함께 미국 연극 4편을 수록했는데, 이 중 『태양 속의 건포도』를 포함시켰다. 1982년 『롱먼 미국 드라마 앤솔로지』(The Longman Anthology of American Drama)도 『태양 속의 건포도』를 미국을 대표하는 22편의 드라마 중 한 편으로 수록했다. 이렇게 미국연극 앤솔로지에 포함되면서 『태양 속의 건포도』는 미국의 정전의 자리에 안착하게 되었다. 『태양 속의 건포도』의 ‘미국성’에 대한 강조는 현대미국연극사를 기술한 비교적 최근의 저서들에서도 찾을 수 있다. 2002년 스턴리히트(Sanford Sternlicht)는 한스베리를 다른 여러 미국의 대표적 극작가들처럼 미국의 꿈을 극화한 작가로 파악했다면, 2006년 크라스너(David Krasner)는 밀러, 윌리엄스, 오닐과 마찬가지로 한스베리도 미국 가족극 전통을 따르며 자본주의 사회내의 사회적 불평등을 극화했다고 평가했다. 한편 카터(Steven A. Carter)의 1991년 저서는 참여정신 속에 보편적 가치를 예술적으로 전달한 작가로 한스베리를 칭송함으로써 『태양 속의 건포도』의 학문적 정전화에 기여했다. 도미나(Lynn Domina) 집필의 『태양 속의 건포도』학생자료집, 아동작가 쉐아더(Sheader)가 쓴 한스베리 자서전, 시노트(Sinnott)의 청소년용 한스베리 소개서, 영어 교사 루스(Loos)기 쓴 『태양 속의 건포도』 입문서 등 한스베리의 『태양 속의 건포도』학생용 기초 도서들도 이 극이 미국의 정전으로 굳건한 자리를 차지하는 데 일정 역할을 수행했다.

    『태양 속의 건포도』가 겪은 이와 같은 정전화 과정은 흑인에 대한 인종적 편견을 벗어난 미국연극 교육자들과 연구자들의 균형 잡힌 시각을 반영하는 것이 결코 아니다. 월터 리 역할을 맡았던 배우 데이비스(Ossie Davis)는 이 극은 관객들에게 배신당함으로써 오히려 성공하게 되었다고 말 한 바 있는데, 이 오해와 성공의 역사가 이 정전화 과정에 그대로 반복된 것이라 할 수 있다(Nemiroff, “Notes” xix 재인용). 번스타인의 글이 알려주듯, 비평가들이 이 극을 오해하고 칭송해 온 것과 유사한 방식으로 앤솔로지 편집자들과 저자들도 이 흑인가족의 드라마에서 보편성을 찾으며 이 극을 미국을 대표하는 극으로 평가해 왔던 것이다. 리파리와 남정섭이 적절히 지적한 바와 같이 한스베리가 자의적이건 타의적이건 백인 중산층의 기호를 만족시키기 위해 브로드웨이 및 할리우드와 타협한 것, 스턴리히트나 크라스너가 분석한 대로 한스베리가 지극히 미국적인 미국의 꿈의 주제를 미국 가족극 전통에 기대 극화하고, 또 카터의 분석처럼 리얼리즘이라는 서양의 극작술을 계승한 것이 이 극이 보편적인 극으로 평가되고 정전으로 정착하는 데 주요한 요인으로 작용한 것은 분명하다(Carter 16).

    그런데 『태양 속의 건포도』가 정전화되는 과정에서 고려해야 할 더 중요한 것이 있다. 리치가 지적한 바 있는 네미로프의 개입이 그것이다. 네미로프는 한스베리가 생전에 발표했던 『태양 속의 건포도』와 『시드니 브러스타인네 창문의 신호』(The Sign in Sidney Brustein's Window, 1964)가 보여주는 것보다 훨씬 더 깊고 넓은 예술 세계를 지녔다는 것을 입증하기 위해 한스베리 작품들과 각종 자료들을 편집하고 개작하고 무대화하고 출판하는 일에 몰두했다(Jewel Nemiroff ix). 그 첫 번째 작업은 한스베리가 남긴 원고들 중 선별한 글들을 모아 연극 무대에까지 올린 『젊고, 재능 있는, 흑인이 되는 것』(1969)이다.6) 1970년에는 한스베리의 미완성작 『하얀 사람들』(Les Blancs)을 직접 완성하여 연극 무대에 올렸고, 이를 미발표 TV 드라마 대본 두 편과 배경 설명, 주석, 후기를 덧붙여 『하얀 사람들: 마지막 희곡 모음집』(Les Blancs: The Collected Last Plays)이라는 제목으로 출간했다. 그는 『태양 속의 건포도』 25주년 기념 공연 시 브로드웨이 초연 때 삭제된 부분을 포함시킨 대본을 제공했다. 이 무삭제 판은 1987년 출간되었는데, 이는 윌커슨의 지적대로 『태양 속의 건포도』와 한스베리 이해의 새로운 장을 열고 “이 극의 주요 문제들을 선명하게 보여주는” 데 기여했다 (“A Raisin in the Sun" 120).

    그러나 네미로프의 한스베리 작품에 대한 개입은 한스베리 열풍을 불러왔던 만큼 한스베리에 대한 다양한 해석의 길을 차단했다. 그는 한스베리 편집자, 개작자, 해설가로서 한스베리 작품에 자신의 시각과 생각을 덧붙였고, 이로써 한스베리 수요자들이 한스베리를 오해하도록 이끄는 데 일정 역할을 수행했다. 특히 네미로프는 스스로 “일부 사실이며, 일부 픽션이며 창조와 재창조 행위”(“Foreward" xxvi)라 인정한 『젊고, 재능 있는, 흑인이 되는 것』의 서문에서 한스베리를 개혁적이며 동시에 보편적인 작가로 규정하는 자신의 시각을 명확히 표명한다(“Forward" xxiv-xxv). 이 ‘양면적 한스베리’라는 네미로프의 시각은 그가 볼드윈(James Baldwin)에게 서론을 부탁했을 때 더욱 부각된다. 볼드윈은 한스베리를 개혁적 참여 정신을 드러낸 작가이자 “인류 전체에 헌신한” 작가로 칭송하며 네미로프의 시각을 그대로 따른다(xix). 무삭제 『태양 속의 건포도』편집 본 서문에서도 네미로프는 자신의 한스베리 평가의 틀인 개혁성과 보편성의 양면적 공존을 재차 언급한다. 그는 삭제된 부분 때문에 『태양 속의 건포도』가 원래의 개혁성을 잃고 보편성을 얻었다는 점을 안타깝게 생각하면서도 이 극이 시대를 초월하는 고전임을 강조한다. 네미로프가 이 극을 미국의 고전으로 칭송하는 평론가 리치(Frank Rich)의 글과 이 극을 흑인의 투쟁에 관한 위대한 극으로 재평가하는 바라카의 평론을 이 책의 서두에 병렬시킨 것은 개혁적이며 보편적인 한스베리를 드러내기 위한 그의 의도적 장치라 볼 수 있다.

    1980년-90년대 정전 논의가 무르익고 다문화주의가 확산됨에 따라, 일종의 “문학적 차별 철폐 조처”(Pressman 61)로 1990년 미국문학계는 다양성을 강조한 『히스 미국문학 앤솔로지』(The Heath Anthology of American Literature)를 발간하게 되었고 이 앤솔로지에 『태양 속의 건포도』가 수록되기에 이르렀다.7) 이것은 네미로프의 한스베리 알리기 작업이 시대정신과 맞물려 일궈낼 수 있었던 소득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글라스펠 소설 속 남성 법조인들이 미니의 살해 동기와 증거들을 찾을 수 없었던 것처럼, 그 또한 페미니스트로서의 한스베리의 동기와 증거들을 발견할 수 없었다. 편집장 라우터(Paul Lauter)를 비롯한『히스 미국문학 앤솔로지』 여러 편집자들도 네미로프와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이 작품을 흑인작가가 쓴 미국문학으로 수록했다.

    『태양 속의 건포도』는 페미니스트 비평이 막 연극에 적용되기 시작하자 곧 여성극으로 분류되기 시작했다. 1981년 올라우슨(Judith Olauson)과 1984년 케이사(Helene Keyssar)가 쓴 여성 희곡사들은 충분한 논의는 아니었어도 『태양 속의 건포도』를 페미니스트 연극의 기반을 마련한 작품들 중 하나로 위치시켰다. 1986년에 이르면 『태양 속의 건포도』는 영국 메튜엔(Methuen) 출판사 편 『여성이 쓴 희곡』(Plays by Women) 제 5권에 수록된다. 이 앤솔로지의 편집자 렘난트(Mary Remnant)는 여성극으로서의 『태양 속의 건포도』가 아니라 남성중심적인 브로드웨이에서 살아남은 여성극작가 한스베리에 대한 관심 때문에 이 극을 앤솔로지에 수록했다. 그러나 이 앤솔로지가 페미니스트 드라마 교육과 연구의 필독서였다는 점을 고려하면,8) 작품이 아닌 작가에 대한 관심이었어도 이 수록은 이 극이 여성극으로 평가받는 데 큰 역할을 했음이 틀림없다.

    이로부터 2년 후 미국에서도 한스베리는 본격적으로 여성극작가로 평가받기 시작했다. 그러나 미국에서 한스베리는 백인여성극작가와 구별되는 흑인여성극작가로 분류되는 경우가 더 많았다. 1988년 브라운-길로리(Elizabeth Brown-Guillory), 1989년 케이사, 1990년 애슐리(Leonard R. N. Ashley), 1999년 윌커슨은 한스베리를 흑인여성극작가로 확고하게 자리 매겼다. 1998년 윌리엄즈(Dana A. Williams)의 참고문헌목록집도 미국흑인여성극작가로서 한스베리의 학문적 입지를 강화했다. 1996년 버크(Sally Burke)가 한스베리를 흑인여성극작가가 아닌 제2의 페미니즘 물결을 예고한 여성극작가로 평가한 바 있지만, 10년 후인 2009년에도 배리오스(Olga Barrios)는 한스베리를 흑인여성극작가로 바라보았다.9) 이와 같은 맥락에서 2011년 위너(Gary Wiener)가 남녀 구분을 넘어선 젠더 입장에서 편집한 『태양속의 건포도』논문 비평집은 “남성성과 여성성에 대한 관점에 있어서 자신의 시대를 앞섰던”(12) 한스베리를 보여준 면에서, 한스베리를 평가하는 흑인여성극작가라는 한정된 잣대에서 벗어난 예외적인 경우이다.

    1990년대 이후 한스베리의 극작품 이외에 산문과 에세이가 주목을 받게 되면서 한스베리는 연극 장르보다 큰 분류인 흑인여성작가 군 혹은 여성사상가 군으로 배치되기도 했다. 1990년 고메즈(Jewelle L. Gomez)와 2001년 해리스(Trudier Harris)는 한스베리를 허스턴(Zora Neal Hurston), 네일러(Gloria Naylor), 워커(Alice Walker), 버틀러(Octavia Butler), 모리슨(Tony Morrison) 등의 미국흑인여성작가들과 같은 선상에 위치시켰다. 한편 1995년 가이-쉐프탈(Beverly Guy-Sheftall)이 한스베리의 보부아르에 관한 글을 수록하며 사상가로서의 한스베리 입지를 세우자, 2011년 히가시쉬다(Cheryl Higashida)와 2012년 맥도날드(Kathlene McDonald)가 한스베리를 국제주의 페미니스트 혹은 급진주의 사상가로 평가하기에 이르렀다.10)

    페미니스트 시각을 견지하긴 했지만 한스베리의 흑인성 혹은 급진성을 강조하며 한스베리를 흑인여성극작가, 흑인문학가, 급진적 페미니스트 사상가로 분류했던 이러한 경향에서 벗어나 온전히 ‘페미니스트 여성문학가’로 인정받는 것은 앞서 언급한 대로 쇼왈터를 통해서였다. 쇼왈터에 의해 비로소 한스베리는 ‘흑인’ ‘극작가’라는 라벨을 떼고 또 ‘사상가’의 분류에서 벗어나 미국여성문학가의 권위를 획득한 것이다. 쇼왈터는 한스베리가 흑인인권운동가 폴 로베슨(Paul Robeson)이 창간한 『프리덤』잡지에 기고한 글들, 보부아르에 대한 관심, 특히 레즈비언 잡지 『사다리』(The Ladder)와의 연관관계를 설명한 후 『태양 속의 건포도』를 논의함으로써 젠더 의식화 된 미국여성작가로 한스베리를 부각시켰다. 그러나 쇼왈터는 문학사 기술이라는 한계 때문에 자리만 만들어주고 더 이상 나아가지 못했다. 더 나아가는 일은 필자와 같은 후학의 몫이다. 다음 부분에서 필자는 쇼왈터가 마련해 준 터에서 『태양 속의 건포도』의 숨은 그림 한 조각을 찾아보면서 페미니스트 문학으로서 『태양 속의 건포도』의 가능성을 타진해 보고자 한다. 그러나 지면 관계상 숨겨진 페미니스트 조각들을 모두 찾아 하나의 그림으로 그려내는 일은 다음 기회로 미루고 이 글은 작은 조각을 찾아 페미니스트 읽기의 한 가지 예를 보여주고자 한다.

    5)http://www.oxforddictionaries.com/definition/english/canon  6)이 극은 1969년 스탠포드 대학교 여름 연극제에 참가하여 대중의 관심을 받은 후 1970년부터 1972년까지 41개의 주, 국회를 포함한 270개 대학 및 기관에서 공연을 했고 영화와 TV에도 진출했다.  7)『노튼 흑인미국문학 앤솔로지』에도 『태양 속의 건포도』가 수록되었다. 흑인미국문학 앤솔로지의 등장은 미국흑인문학이 분리된 과목으로 만들어질 만큼 정전화 되었음을 의미한다. 그러나 이 앤솔로지가 미국흑인문학을 거의 다 싣고 있기 때문에 이극 수록이 갖는 특별한 의미가 없다.  8)메튜엔 출판사는 학계에서 영향력 있는 영미드라마 텍스트 분야 전문 출판사이다.  9)마쉬-로켓(Marsh-Lockett)은 흑인여성극작가 앤솔로지에 클락(Clark)의 『태양 속의 건포도』 논문을 수록하지만, 클락의 논문은 남성 월터 리에 주목하므로 클락은 여기서 제외시킨다.  10)2014년 자렛(Jarrett) 편집의 아프리카 미국 문학 새 앤솔로지는 『세일즈맨의 죽음』의 윌리 와 『태양 속의 건포도』의 월터를 비교한 한스베리의 에세이를 수록한다. 그러나 이 앤솔로지는 『태양 속의 건포도』를 포함시키지 않으므로 고려 대상으로 삼지 않는다.

    III. 『태양 속의 건포도』 페미니스트 읽기의 예 - 가정주부 루스, 돈,집

    한스베리는「윌리 로먼, 월터 영거, 그리고 반드시 살아야 하는 자」(“Willie Loman, Walter Younger, and He Who Must Live”)에서 이 극을 보편적인 극, 즉 흑인 판 『세일즈맨의 죽음』으로 공식화하고 월터 리를 『세일즈맨의 죽음』의 윌리와 비교한 바 있다. 한스베리에 따르면, 『세일즈맨의 죽음』의 윌리처럼 월터는 자신에게 주어진 세계를 바꾸기 보다는 그 세계를 받아들이고 그곳에서 자신이 차지한 위치를 높은 곳으로 이동시키기 위해 애쓰는 보통 미국인의 표상이다. 그러나 곧 한스베리는 저항의 목소리를 내는 흑인 월터를 절망하는 백인 윌리와 차별화시킨다. 즉 백인 구역으로 이사하기로 결정함으로써 흑백분리에 저항하는 월터가 오이디푸스 왕이나 안네 프랑크(Anne Frank)와 같은 영웅이 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윌리와 월터의 이 비교는 이 극을 읽는 두 가지 중요한 관점을 제공한다. 먼저 이 비교를 통해 한스베리는 『세일즈맨의 죽음』처럼 이 극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미국의 꿈을 실현하는 문제를 다루기 때문에, 이 극의 경제적 측면을 살펴보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는 점을 환기시킨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한스베리는 윌리처럼 절망하지 않고 작은 행동으로 변화의 첫 발을 내딛는 월터를 칭송함으로써 이 극이 취한 진보주의적 관점을 강조한다. 이렇게 한스베리는 윌리와 월터를 비교함으로써 경제적인 측면을 살펴보되 진보적 관점을 유지하는 이 극의 독해 방식을 알기 쉽게 예시한다. 그런데 이 이중적 작업이 월터의 시각을 통해서만 가능할까? 자본주의사회에서 월터보다 더 낮은 위치를 점유하고 있는 이 극의 흑인인물들의 시각을 통해서는 가능하지 않을까? 또 그럴 경우 월터를 통해 볼 때 드러날 수 없었던 페미니스트 관점이 드러나는 것은 아닐까? 윌리와 월터의 비교가 이 극을 쉽게 이해시키기 위한 한스베리의 전략이라고 본다면, 한스베리가 주문한 이 극을 읽는 이 두 가지 관점이 여성인물들을 통해서 가능할 수 있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그리고 필자는 여성인물들 중에서도 가장 낮은 위치에 서 있지만 실질적으로 가정 살림을 도맡은 주부 루스의 관점에서 돈과 집의 제 문제들을 살펴 볼 때 이 두 시각이 드러나고 이로써 “이상화되지 않고, 단순화되지 않은” 한스베리의 페미니스트 시각이 비교적 선명하게 나타날 수 있다는 입장을 취한다.

    윌리와 월터의 비교 글에서 비평가들의 이해를 위해 보편성의 전략을 차용했듯이, 한스베리가 공연을 목적으로 쓴 이 극에서 아주 세심하지 않으면 알아볼 수 없는 보편의 가면을 쓰고 있었다는 것을 다시 상기해보면, 루스의 돈과 집을 통과해 드러나는 제 문제들이 일반 비평가들뿐만 아니라 페미니스트 비평가들의 눈에도 잘 띄지 못했던 것은 이해할 만하다. 윌커슨과 해리스와 같이 인물에 관심을 갖는 페미니스트 비평가들은 르나에게만 주목해 왔고, 흑백차별과 제국주의적 식민통치 사이의 연계를 주창한 한스베리의 급진성을 평가하는 맥도날드와 같은 페미니스트 비평가는 베니사의 진보사상에 관심을 가져 왔다. 케이사가 루스의 낙태 문제에 주목한 후(“Rites and Responsibilities” 230-31), 마페, 콜로즈(Jeff J. Koloze), 와드와 같은 최근 페미니스트 비평가들이 루스의 낙태를 둘러싼 논의를 전개해 왔다. 그러나 케이사는 루스의 낙태를 둘러싼 경제문제에 대해 운을 띄우지만 그 이상의 논의로 전진시키지 못했고, 마페 역시 낙태가 이 극의 중요한 지점임을 인지하는 수준에서 머물렀다. 콜로즈와 와더의 논의는 루스의 낙태에 초점을 맞추지만 작품 외적 요소인 생명윤리학적 관점에 더 경도되었다. 집의 정치학을 논하는 매튜스(Kristin L. Mattews)는 케이사의 뒤를 이어 루스가 처한 경제적 상황과 낙태의 관계를 다루지만 루스 관련 논의가 다른 논의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짧고 페미니스트 관점의 논의를 전개하지 않았다.

    이 글은 그간 비평가들의 눈에 띄지 않았던 루스와 그녀를 둘러싼 돈과 집이라는 미시적 문제들에 현미경을 대고 숨겨진 페미니스트 서사 하나를 찾아보고자 한다. 얼핏 보기에 이 작업은 쇼왈터가 언급한 ‘양성성’ 논의나 젠더와 셱슈얼리티 논의에서 벗어나 보인다. 그러나 한스베리의 페미니스트 시선이 한스베리의 양성적 시각이나 흑인, 레즈비언, 식민통치하의 아프리카 주민 사이의 연계성을 찾는 포용적 태도에서만 드러나는 것만은 아니다.11) 루스가 노동으로 자본주의 체제 유지에 일조하는 동시에 지배 자본주의 이데올로기와는 확연히 구별되는 경제적 태도를 보여준다는 점, 그리고 그녀에게 집은 다른 인물들에게와 달리 개인적인 자유를 부여하는 공간이라는 점을 밝히는 것도 한스베리의 “이상화되지 않고, 단순화되지 않은” 페미니스트 사상의 일면을 드러내는 일이라 할 수 있다.

    『사다리』에 기고한 글에서 한스베리는 대부분의 여성들은 사회의 기대에 순응하기 위해 또 “경제적 안정을 취할 수 있는 유일한 선택”이기 때문에 결혼의 족쇄를 찬다(McDonald 88 재인용)고 논의한 바 있다. 『태양 속의 건포도』의 루스가 바로 이 결혼의 족쇄를 찬 여성이다. 게다가 그녀는 흑인이며, 결혼을 통해 “경제적 안정을 취할 수 없는” 가난한 하층민 가정주부이다. 이렇게 그녀는 젠더, 인종, 계급 삼중의 억압을 받으며 미국 사회의 맨 가장자리에 위치한다. 가정 내에서도 그녀는 가장 낮은 곳에 서 있다. 남편 월터의 가부장적 편견과 학대를 견뎌내고, 가정의 정신적 지주인 시어머니 르나를 극진히 모실 뿐 아니라 잘난 대학생 시누이 베니사 앞에서 늘 주눅 들어 있다. 이 극은 루스가 처한 이러한 주변적 위치를 그녀가 현재 살고 있는 집, 즉 시카고 남부의 좁고 누추한 아파트 거실 모퉁이 부엌으로 형상화하면서 시작된다. 이 극의 첫 장면은 졸음을 참고 먼저 일어나 아들과 남편을 깨우고 부엌에서 차와 계란으로 아침식사를 준비하는 가정주부 루스를 소개한다. 이후 내내 이 극은 부엌일과 다림질로 분주한 루스를 무대화한다. 헌 가구들이 아무 장식도 없이 놓여 있는 거실 구석 부엌에서 루스는 쉬지 않고 일 한다. 닳아빠졌어도 윤기가 나고 잘 정돈되어 있는 가구들은 루스가 부지런하다는 점을 알려주는 무대장치이다.

    무대 위 루스의 주 액션은 가사노동이다. 그러나 루스의 노동은 자신의 부엌에서만 이뤄지지 않는다. 루스는 생계를 위해 백인의 부엌에서 가사 도우미로 일하고 있는데, 이는 그녀가 현재 처한 상황에서 노동만이 그녀의 흑인 하층민으로서의 삶을 지탱시킬 수 있음을 인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해야 살 수 있다.’ 이것이 그녀의 유일한 신념이다. 그러나 이것은 신념이라기보다 그녀가 처한 현실에 적응하는 가운데 터득한 직관에 가깝다. 루스는 영거네 가족들 중 가장 현실을 직시하는 인물이다. 월터는 하층민이면서도 중산층 백인처럼 사업을 해 부자가 되겠다는 꿈을 꾼다는 점에서 『세일즈맨의 죽음』의 월리만큼이나 망상에 빠져 있다. 르나는 루스처럼 집 안과 밖에서 열심히 일하고 월터와 달리 헛된 꿈을 꾸고 있지는 않지만 루스와 달리 정신적 가치를 추종한다. 르나의 정신적 추구가 삶을 지혜롭게 노정해 가는 데 일정 부분 도움이 된다는 점을 부정할 수는 없다. 그러나 르나가 강조하는 흑인으로서의 자부심과 기독교정신은 자칫 상대의 자율성을 유린하는 구속적 이데올로기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 이 점은 르나가 신의 존재를 받아들이지 않는 베니사에게 이 집에 자신과 함께 사는 한 반드시 기독교를 믿어야 한다고 강요할 때, 또 아침부터 돈 문제를 이야기하는 것은 기독교인답지 않다고 루스에게 핀잔을 줄 때 명확히 드러난다. 의사의 꿈을 품은 베니사는 나이지리아 청년 아사가이(Asagai)의 영향으로 아프리카에 가서 식민주의의 상처를 치유하겠다는 이상적 꿈을 꾸게 된다. 이 점에서 베니사는 어머니 르나의 딸이다. 어머니가 흑인전통과 기독교정신을 신봉한다면, 그녀는 세상을 변화시키고 싶은 혁명적 이념의 추종자가 된다. 그러나 베니사의 이상주의는 가정 안과 밖에서 노동하는 르나와 루스, 그리고 백인의 운전사로 일하는 오빠 월터가 준 경제적 도움 덕분에 가능할 수 있다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루스는 망상과 꿈에 빠지지 않으며 또 신봉할 이념이나 가치관도 가지고 있지 않다. 그녀는 그저 현실에 적응하며 쉼 없이 일할 뿐이다. 그러나 그녀가 임신한 몸으로 또 졸음을 참아가며 열심히 일해도 그녀의 가정은 여전히 가난하다. 이러한 현실을 알기에 그녀는 성공의 꿈을 꾸지 않으며, 이상주의에 빠지지도 흑인전통 및 기독교적 가치관에 의지해 희망을 품지도 않는다. 그러나 그렇기에 그녀는 꿈이나 이상을 지닌 다른 식구들과 달리 지쳐있고 절망에 빠져 있다. 이 극의 지문은 끊임없이 루스가 얼마나 지쳤고 힘들어하는지를 말해준다. 루스에 대한 첫 지문은 서른 살에 이미 지치고 실망한 루스를 소개한다. 이후 지문도 루스가 미소 짓고 웃고 부드러운 말투를 쓰는 경우보다는 찡그리고, 지겨워하고, 기진맥진하고, 고개 숙이고, 격분하고, 울고, 낙담하고, 체념하는 모습을 더 자주 보여준다. 월터는 루스에게 “당신 지쳤어 그렇지? 나, 아들 놈, 이 누추한 집에서- 우리가 살아가는 방식, 이 모든 것들에 지친거지”12)라고 공격할 때 루스는 직답을 피하지만 속으로는 ‘그렇다’고 말하고 있음에 틀림없다. 그녀는 직접 “인생은 실망 투성이”(62)라고 말하기도 한다.

    이런 루스에게 필요한 것은 돈이다. 그녀가 백인의 집에서 도우미로 일하는 것도 온 가족에게 먹을 것과 입을 것, 그리고 교육을 제공하기 위해서 “돈이 필요”하기 때문이다(58). 그녀는 “돈이 없기 때문에” 돈을 아주 절약해서 쓴다. 아들 트라비스에게 학교에 가져가야할 50센트를 주지 않으며, 차비와 유유 값만 주고 한 푼도 다른 데 돈을 허비해서는 안 된다고 경고한다. 그러나 루스는 돈을 써야 할 때는 쓸 수 있는 융통성을 보인다. 베니사와 다툰 월터를 진정시키려는 듯 택시비로 50센트를 주는가하면, 베니사의 대학 학비와 용돈을 댄다. 무엇보다 루스의 돈에 대한 관심은 자본주의 가 부추기는 물질적 욕망과는 거리가 멀다. 루스에게 돈은 월터에게처럼 물질적 성공과 사회적 신분상승을 위한 수단이 아니다. 그렇다고 루스에게 돈은 베니사에게처럼 기타와 승마를 배우고 사진을 찍는 등 자신을 표현하기 위해 쓰이는 경비도 아니다. 또 루스는 가족을 위해 집을 사고 자식을 교육시키기 위해서만 오로지 돈이 필요한 르나처럼 돈 중심적인 이 시대를 이해할 수 없는 것도 아니다. 또 베니사처럼 부자를 경멸하지도 않는다. 돈만 생각하는 이 시대에 “아무 것도 가진 적이 없”기에(108) 더욱 더 루스는 돈은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수단이라고 생각한다. 돈이 필요한 루스를 세상에서 가장 행복하게 해주는 것은 만 달러짜리 보험금 수표다. 지쳐있던 루스는 수표 봉투가 도착하자 처음으로 “은혜로우신 하느님”(108)이라 외치며 감사의 마음을 표현한다. 그러나 루스에게 돈은 살기 위한 수단일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그녀는 월터처럼 투자하여 단번에 큰돈을 버는 “뜬 구름 잡는”(36) 꿈을 꾸거나 자신의 노력으로 벌지 않은 시어머니의 보험금을 탐하지 않는다. 시어머니가 보험금으로 큰돈이 들어오니 돈 걱정을 하지 말라고 할 때 그녀는 ”그건 어머님 돈이에요. 저와는 아무 관계가 없어요”(58)라고 담담하게 말한다.

    루스는 돈의 중요성을 인지하는 점에서 목적은 달라도 월터와 생각을 같이 하며, 돈의 중요성을 인정하지 못하는 베니사나 르나와는 다른 곳에서 있다. 그러나 집에 대한 생각에서는 루스는 시어머니 르나와 노선을 같이 한다. 르나는 보험금 일부와 앞으로 온 가족이 열심히 일해 번 돈으로 트라비스가 여름에 뛰어 놀 수 있는 뜰이 있는 집을 사고 싶어 한다. 르나와 비슷한 집에 대한 꿈을 루스도 가지고 있다는 것은 르나가 보험금으로 집을 살 계획을 말할 때 루스가 보여준 반응에서 드러난다. 루스는 자신의 속마음을 들키지 않으려고 다림질에 몰입하는 척하지만 시어머니가 집을 사도록 부추기며 “쥐덫”(60) 같은 이곳에 너무 오래 집세를 내왔다고 불평한다. 이때 “쥐덫”같은 아파트 셋방살이를 청산하고 내 집에서 살고 싶은 루스의 강렬한 의지를 읽을 수 있다. 이는 얼마 후 루스가 남편에게 “트라비스가 태어났을 때 우리가 나눴던 대화, 기억나시죠? 우리가 앞으로 어떻게 살까 . . . 어떤 집에 살까에 대해 나눴던 대화 말이에요 . . . ”(152) 라고 더듬거릴 때 더 분명하게 감지된다. 이런 루스가 르나가 집을 샀다고 발표하자 식구들 중 가장 기뻐하는 것은 당연하다. 루스는 감격에 젖어 “집 . . . 집”(156)이라며 말을 잇지 못할 정도이다.

    루스에게 집은 르나에게처럼 가족 공간이다. 그러나 루스에게 집은 르나에게처럼 트라비스를 안전하게 키울 수 있는 공간, 뒤뜰에서 여유를 찾을 수 있는 공간이자 후손들에게 흑인가족의 자긍심을 느끼게 할 공간만은 아니다. 루스에게 집은 삶의 안락과 여유를 누리고 자부심을 부여하는 정신적 공간이기 이전에 개인의 기본적 자율성을 보장해 줄 수 있는 사적인 공간을 의미한다. 루스가 집을 원하는 이유는 이 빈민가 아파트에서는 자신의 뜻대로 아무 것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루스에게 필요한 것은 생존을 가능하게 하는 돈 뿐만이 아니다. 그녀에겐 개인의 자유와 행복을 가능하게 하는 사적인 공간도 절실하다. 비좁은 아파트에서 루스는 지속적으로 다른 사람들의 간섭을 받는다. 루스는 트라비스에게 경제관념 없이 50센트에 50센트를 더 주며 자신만의 경제교육을 훼방하는 남편 월터를 저지시킬 힘이 없다. 그저 그에게 분노의 눈길을 보내고 찡그리며 퉁명스럽게 말할 뿐이다. 그런데 루스를 진짜 괴롭히는 사람은 철없는 남편이 아니라 시어머니다. 평생 가족을 위해 헌신해 온 시어머니 르나가 기독교 신앙과 사랑의 이름으로 루스의 삶에 사사건건 개입하며 은밀히 압력을 행사하자, 루스는 남편에게서 느꼈던 것보다 더 큰 억압을 느끼고 강하게 분노를 표출한다. 일례로, 루스는 트라비스의 침대를 대신 정리해 주는 시어머니에게 그 일은 트라비스 교육에 전혀 도움이 안 된다고 항의하고, 트라비스에게 찬 음식 대신 따뜻한 음식을 먹어야 한다고 훈수하는 시어머니의 말에 “제 자식은 제가 알아서 먹여요, 어머니!”(52) “따뜻한 오트밀을 먹였다니까요”(54)라고 대든다.

    르나는 루스의 낙태문제에도 관여하는데, 이는 며느리에 대한 사랑의 표시로 이해할 만하다. 그러나 이 문제를 며느리가 직접 남편에게 직접 말하지 않게 하고 자신이 대신 말함으로써 르나는 루스-월터 부부관계의 독립성을 침해하고 루스의 자발적 언술행위를 훼방한다. 루스가 거의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협소한 아파트 공간에서 사적인 부부관계는 보장될 수 없다. 좁은 집 부엌과 거실은 붙어 있고 이 좁은 공간 어디 쯤 루스가 자리 한 곳 옆엔 언제나 르나가 앉아 루스의 일에 간섭한다. 게다가 그 공간엔 트라비스, 베니사, 그녀의 남자 친구들과 월터의 친구들로 늘 북적인다. 루스에겐 누구의 침범도 받지 않을 수 있는 나만의 방, 그리고 트라비스를 자신의 뜻대로 교육시킬 수 있는 방, 월터와 오붓이 사랑을 나눌 수 있는 방이 있는 집이 필요하다. 루스에게 강한 자유와 행복에 대한 갈망이 있다는 것을 고려하면 집으로의 이사는 루스에게 돈 만큼이나 절실하다.

    루스가 주부 역할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자유를 즐기고 싶은 욕망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루스가 시어머니에게 보험금을 받으면 여행을 떠나라고 설득하며, “가족은 잊고 일생에 단 한 번만이라도 실컷 즐겨 보세요”(58)라고 말할 때 드러난다. 여기서 정말 가족을 잊고 멀리 떠나 마음껏 즐기고 싶은 사람은 루스이다. 루스는 경제적 사정 때문에 또 살림과 자녀양육을 책임진 주부라는 처지 때문에 자신에겐 실현 불가능한 이 욕망을 시어머니께 전가하여 돌려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루스에게 돈도 벌지 않으면서 55달러짜리 승마 장비나 더 비쌀 수 있는 카메라 장비를 구입하여 자신을 마음껏 표현하는 베니사가 곱게 보일 리 없다. 베니사와 르나가 듣지 못하게 루스는 작은 소리로 그러나 강하게 “자신을 표현한다고!”(68)라고 내뱉는데, 여기에는 미혼녀 베니사에 대한 부러움 반, 비난 반의 복합적 심정뿐만 아니라, 가난한 흑인가정주부에겐 허용되지 않기에 감출 수밖에 없었던 루스의 자유에 대한 욕망이 묻어있다.

    아이로니컬하게도 루스의 자유를 억압한 시어머니가 루스에게 자유를 부여할 집을 제공한다. 그런데 그 집이 인종차별적 백인들의 “폭탄”(136)위협에 직면할 수도 있는 백인 거주 지역 클리본 파크에 위치한다는 사실을 알고 루스는 충격에 빠진다. 그러나 루스의 집에 대한 강한 열망은 이 충격을 곧 진정시킨다. 그녀는 클리본 파크의 집에 사는 것의 “좋은 점들과 문제들”(160)에 대해 생각해 본 후 이사하기로 결정한다. 이때 루스는 생동감 넘치게 빛나는 표정으로, 행복에 겨워 눈물을 흘린다. 지치고 절망한 루스를 묘사했던 첫 장면의 지문과 정반대로 이 부분의 지문은 즐겁게 웃으며 행복에 젖어 “처음으로 삶이 절망이 아닌 행복으로 고동치고 있음”(161)을 깨닫는 루스를 담아낸다. 더 나아가 이 행복은 루스로 하여금 월터와의 낭만적 관계를 회복시킨다. 루스는 남편과 함께 영화구경을 갔다오고 춤까지 춘다.

    클리본 파크 주민 대표인 린드너 씨(Mr. Lindner)가 영거 가족의 클리본 파크 이주를 돈으로 교묘하게 막으려 하자 르나는 생각보다 높은 흑백차별의 장벽을 인지하고 이사 포기를 고려한다. 이때 루스는 시어머니께 강력하게 반발한다. 흑백차별의 위험과 집에 대한 열망 사이에서 후자를 선택한 루스는 아래와 같이 절박하게 외친다.

    이것은 이 극에 나타난 루스의 유일한 자기표현이다. 이 극 내내 수동적이었던 루스의 태도를 고려해 볼 때, 이 적극적인 항변은 루스의 심경에 큰 변화가 일어났음을 의미한다. 돈에 민감하면서도 낙태를 위해 5달러의 돈을 선뜻 지불했던 루스가 이제 아이를 들쳐 업고 갖은 굳은 일을 해서라도 돈을 더 벌어 이사하겠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이 루스의 항변은 우리에게 여러 가지 사실들을 알려주고 생각할 거리를 제공한다. 첫째 이 말은 이사에 대한 루스의 강한 의지를 드러낸다. 클리본 파크가 아닌 다른 지역이라도, 그런 지역의 주택 가격이 훨씬 비싸더라도 루스는 악착같이 돈을 벌어서 집을 사 이사를 가겠다는 것이다. 여기서 르나의 이사 포기가 흑백차별 문제에 기인하는데도 루스가 이 문제를경제적인 문제로 전환시키는 점도 주의 깊게 볼 필요가 있는데, 이는 가정주부로서 루스가 당면한 문제가 가정 밖 흑백문제가 아니라 가정 내 억압과 경제문제라는 점을 시사한다. 또 이 말은 루스의 낙태는 마페, 클로즈, 메튜스가 논의하는 것처럼 새로 태어날 아이를 부양할 생계비 부족에서만 기인했던 것이 아님을 알려준다. 루스가 낙태를 결심했던 데에는 자신의 뜻대로 아이를 키울 수 없고 아이에게 사적인 공간을 제공할 수 없을 경우 아이를 키우지 않겠다는 루스의 강한 의지도 한 몫 했다고 볼 수 있다. 마지막으로 이 루스의 항변은 루스가 가사노동이외로 추가 노동을 할 만큼 강한 체력과 의지를 지닌 여성일 뿐만 아니라 자신이 원하는 것을 위해서는 어떤 어려운 일도 마다하지 않는 강인한 여성이라는 점을 드러낸다. 몇 몇 비평가들은 낙태를 단독으로 결정할 때 루스의 강인함이 드러난다고 주장하지만(Lester 248, Mafe), 낙태 결정을 취소할 때 루스가 더 강인해 보인다. 희망과 목표를 지녔기에 그 어떤 어려움도 극복할 수 있는 힘이 그녀를 이끌어주고 있기 때문이다. 루스는 집이 생기게 되자 그 집이 보장해 줄 것만 같은 핵가족의 행복―시어머니의 간섭에서 벗어난 공간에서 자신만의 방식으로 자식을 키우고 남편과 사랑을 나누는 중산층 핵가족의 행복―을 절대로 놓치고 싶어 하지 않는다.

    이 사실들을 종합해 볼 때 루스는 흑백문제에 둔감하고, 자본주의 사회에서 하층민 노동자로 착취당하며 사는 것에 전혀 의문을 표하지 않으며, 흑인전통의 확대가정 구조보다는 서구 가부장적 자본주의 체제 하의 핵가족 구조를 선망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 루스는 매우 체제 순응적이다. 인종차별적, 핵가족 중심의 서구 기부장제와 자본주의 체제의 흑인가정주부로서 가정에서 억압받고 밖에서도 청소부와 가정부의 삶을 살아야 하는데도 그녀는 그 체제에 기꺼이 협조하는 듯 보인다. 루스는 이 세상이 “빼앗는 자와 ‘빼앗긴 자’”(248)로 구성되어 있고 자신이 ‘빼앗긴 자’에 속했다는 것에 분노하는 월터가 아니다. 자신을 억압하는 체제의 변화를 위한 노력은 커녕 관심조차 보이지 않는 루스에게서 한스베리가 월터를 통해 강조하고 싶었던 진보주의적 태도를 발견하기는 어렵다. 게다가 이사 후의 집이 루스에게 그녀가 원하던 대로의 삶을 보장해 줄 수 있는지도 미지수다. 왜냐하면 케이사가 정확하게 지적했듯이 이사 후 영거네 가족의 생계를 책임질 사람은 늙은 르나도 해고될 월터도 의대에 진학할 베니사도 아니며, 생활력 강한 루스일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Rites and Responsibilities" 230-31).

    그러나 이러한 우려들에도 불구하고, 루스가 집 마련의 기회를 통해 자신을 강하게 표현할 수 있게 되었다는 점, 억눌려 있던 욕망을 꺼내고 행복한 꿈을 꿀 수 있게 된 점은 인정할 필요가 있다. 집 마련이 루스의 삶을 묘사하는 단어를 절망에서 행복으로 바꾸어 놓은 것이다. 루스의 입장에서 다시 이 극을 읽어보면, 월터가 우여곡절을 겪은 후 흑인의 자부심을 지켜내고 백인구역으로 이사하겠다고 선언하는 이 극의 주 플롯과는 전혀 다른 이야기를 마주하게 된다. 즉 억압받았던 여성 루스의 해방이라는 페미니스트 플롯과 대면하게 된다. 물론 그 해방이 루스의 노력과 투쟁에 의거하지 않았다는 점에 문제를 제기할 수 있다. 그러나 루스가 그 어떤 이념도 신봉하지 않기에 추구할 그 어떤 바람직한 기준이나 지향점도 지니지 않았다는 점을 기억해 낸다면, 그녀가 노력하지 않은 것은 이해할 만하다. 이념에서 자유롭기 때문에 그 어떤 기준이나 지향점을 지니지 않았고, 그렇기에 그녀에게는 노력할 목표나 대상이 없었던 것이다. 인종주의, 가부장제, 자본주의는 각각 종류는 다르지만 어느 한쪽의 입장에서 다른 한쪽을 억압하는 이념에 기반 한 체제이다. 이 억압적인 인종주의, 가부장제, 자본주의 체제에 작은 변화를 꾀하고 그 억압에서 벗어나기 위해 베니사는 범아프리카주의를 추종하고, 월터는 인종주의에 항거하여 위험한 백인 거주 지역으로 이사하려는 용감한 행동을 하고, 르나는 베니사를 의사로 만들고 트라비스를 안전한 곳에 살게 하기 위해 희생을 마다하지 않는 강인한 “로자 팍스”(Carter 52-53, McDonald 85 재인용)가 된다. 이념이나 가치관을 가지고 체제에 저항했던 베니사, 월터, 르나와 달리 루스는 체제 변화를 위해 아무 일도 하지 않은 채 억압에서 벗어난다. 이렇게 체제에 순응하면서 해방되는 것을 페미니스트적이라 부르기는 어려울 수도 있다.

    그러나 여기서 필자가 강조하고 싶은 것은 루스가 그 어떤 이념이나 체제가 요청하는 기준에 따라 산 것이 아니라 삶 그 자체의 요청에 따라 산 것이라는 점이다. 사는 데 돈이 필요하기 때문에 열심히 일 했고, 인간의 기본적 욕구인 자유와 행복을 찾기 위해 집을 열망했다. 베니사나 월터처럼 신념을 가지고 체제에 작은 저항을 시도하는 것만큼 루스처럼 신앙이나 이념의 ‘기준’과 그에 따른 ‘구분’과 ‘배제’로부터 철저하게 자유로울 수 있는 것도 ‘구분’과 ‘배제’의 체제에 항거하는 소박한 한 가지 방식일 수 있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또한 필자는 루스가 무비판적으로 자본주의 사회가 흑인하층여성에게 강요하는 힘든 노동을 감수하고 있지만, 물질적 성공만을 부추기는 미국의 자본주의와는 아주 다른 방식의 경제활동으로 이 자본주의에 한 가지 대안을 제안하고 있다고 본다. 루스의 경제관념은 돈을 인생의 목표로 삼고 물질적 성공을 남성성 획득과 동일시하는 월터의 경제적 태도와는 물론, 베니사를 의사로 성공시키기 위해 세제를 빌려 쓰는 쪼들리는 살림에도 교육비에 투자하는 르나의 경제행위와도 구별된다. 르나의 경제행위는 베니사가 사회에서 억압받지 않고 자신을 표현하고 살수 있게 해준다는 점에서 페미니스트적 경제행위라 볼 수도 있지만, 성공을 위한 투자라는 점에서는 월터의 경제관과 비슷한 면도 있다. 여성의 해방을 위한 르나의 미래 투자가 자본주의 원리에 근간을 둔 페미니스트적 경제활동이라면, 기본적 의식주와 영화관람 정도의 여유를 위해서만 돈을 필요로 하는 루스의 경제행위는 이념적으로 페미니스트적이지는 않지만 돈을 목표로 삼는 자본주의 작동 원리에 의문을 품게 하는 여성적 경제행위일 수 있다.

    돈을 삶에 필요한 수단으로 삼고 인간의 기본권(생명, 행복, 자유에 대한 권리)을 지키기 위하여 집을 원했던 루스가 체제 순응적인 태도로 비판받는다면, 돈을 삶의 신조로 삼았던 월터, 없는 살림에도 가족이 번 돈으로 개인적 생활을 즐기는 베니사, 비판 없이 사회의 문제들을 포용하고 교육에 투자하는 르나 모두 체제 순응적인 태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한스베리는 그 어떤 인물들도 ‘이상적이고 단순하게’ 그려내지 않았으며, 루스의 경우도 예외는 아니다. 루스는 관념적으로는 (의사가 되려는) 베니사나 (의사가 되라고 후원하는) 르나처럼 페미니스트적 태도를 견지하지는 않지만 그녀의 삶 자체가 페미니스트적 그래서 진보적인 셈이다. 어쩌면 영거 가족 중 루스가 생명과 자유와 행복의 기본권을 지키려는 점에서 미국 독립선언문의 진보정신을 가장 잘 계승한 인물일 수도 있다.

    한스베리가 보부아르의 『제 2의 성』(The Second Sex, 1949)을 재 해석하는 글,「시몬느 드 보부아르와 『제 2의 성』: 미국적 논평」(“Simone de Beauvoir and The Second Sex: An American Commentary")에서 언급한 체제 순응적 가정주부에 대한 논의는 필자의 이 주장을 뒷받침한다. 이 글에서 한스베리는 가정, 국가, 세계 유지의 핵심이라고 생각되는 가정주부 역할과 살림을 “고역”(137)이라고 진단하며 여성의 살림에 대해 비판적 관점을 견지한다. 그러나 한스베리는 이 비판이 가정주부인 여성에 대한 비판으로 이어져서는 안 된다는 점을 강조한다. 한스베리에 따르면, 가정주부 역할은 가부장사회가 여성에게 강요한 역할이고, 여성들은 이 사실에 대해 무지하기 때문이다(137-41). 루스가 바로 한스베리가 논의한 억압적 체제에 대해 무지한 가정주부일 수 있다. 그러나 한스베리는 같은 글에서 이념적으로는 여성을 포함한 억압받은 자들 편에 서는 공산주의 체제 소련이 자녀양육과 피임과 같은 일상적 여성문제들을 전혀 언급하지 않으며, 여성의 존엄성을 자유롭게 표출할 수 있는 여성의 치장을 폄하하는 현상에 대해 강력하게 비판한다(130-31). 이념국가의 한계에 대한 이러한 한스베리의 비판은 베니사의 범아프리카주의나 르나의 흑인전통과 기독교 신앙이 갖는 위험성에 대한 인식과 연결되면서, 이념이 없는 루스, 개인적 자유를 찾는 루스에 대한 페미니스트적 평가의 문을 열어 놓는다. 자유를 찾고자 하는 루스에 대한 한스베리의 지지는 한스베리가 이 에세이에서 가정 살림이란 인간이 생존하기 위해 꼭 필요한 것이자 또 그 이상을 할 수 있게 하는 것이라고 힘주어 말하며(138), 여성이 원하는 것은 바로 그 이상을 할 수 있는 “자유”라고 주장할 때(139) 암시되기도 한다.

    숨겨진 루스의 해방 이야기 틀을 발굴하는 데 장애가 되는 걸림돌이 또 하나 있다. 루스가 원하던 집을 마련해 준 것이 루스의 시아버지 빅 월터(Big Walter)가 시어머니께 남겨준 사망 보험금이라는 사실이 그것이다.13) 영거스 씨가 어떻게 사망하게 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이 극에 언급되고 있지 않지만 르나의 회고에 따르면 그의 사망이 그의 고된 노동에 기인한 것이 틀림없다. 그렇다면 이 보험금은 빅 월터의 노동의 대가인 셈이다. 루스의 입장에서 정리하면, 루스가 집으로 이사 갈 수 있고 그곳에서 행복할 수 있다면, 그것은 시아버지의 희생적 노동덕분이다. 자식을 위해 꿈을 꾸고 그 꿈을 위해 고된 노동을 한 결과 빅 월터는 자신의 세대에서는 이루지 못한 꿈을 그 다음 세대에는 이루게 한 것이다. 여기서 비록 더디기는 하지만 열심히 일하면 이루어진다는 미국의 꿈 한 가닥이 발견되고, 이 미국의 꿈이 결국 루스를 비롯한 영거 가족을 행복으로 이끄는 원천임이 드러나면서, 미국 자본주의 체제와 미국의 꿈을 지지하는 한스베리의 면모가 발견된다. 자본주의와 미국의 꿈에 대한 한스베리의 이와 같은 보수적 태도는 이 극 전반에서 발견되는 것으로서 급진적인 한스베리 평가에 문제를 제기하는 부분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이 글은 돈과 집의 시각에서 “이상적이지 않고, 단순하지 않은” 루스를 세심하게 살펴보며 그 복합성에 얽혀 있는 페미니스트 조각을 찾는데 만족하고자 한다.

    11)한스베리가 동성애자들, 흑인들, 여성들 사이의 연대에 주목했던 점에 대해 많은 비평가들이 언급하고 있다. 특히 맥도널드(McDonald)와 히가쉬다(Higashida)의 글이 이 문제를 상세히 논한다.  12)이 글이 참조한 『태양 속의 건포도』 영문 텍스트는 브로드웨이 초연 대본에 근거한 영한대역 본이다. 인용문의 출처는 이 책의 36쪽이며, 번역은 필자의 번역이다. 앞으로 인용문의 출처는 쪽수만 표기한다.  13)이 극에서 이 보험금은 빅스비(C. W. E. Bigsby)가 주장하는 것처럼(61) 나쁜 결말 해결의 방식인 데우스 엑스 마키나(deus ex machina)가 아니라 이 극의 플롯에 매우 중요한 요소이다.

    IV. 결론

    이 글은 ‘정전화 과정 탐색’과 ‘숨은 그림 찾기’라는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두 가지 다른 방식을 통해 리치가 제안한 “이상적이지 않고, 단순화되지 않은” 페미니스트 로런 한스베리를 찾아내는 일을 그 목적으로 삼았다. 먼저 이 글은 『태양 속의 건포도』가 흑인미국연극에서 미국연극으로 정전화된 이후 흑인여성연극, 여성사상, 여성문학으로 재평가되는 일련의 과정을 비판적으로 살펴봄으로써, 각 시대가 요청하는 사회적 맥락 속에서 이 극이 오해되어 왔으며 그 과정에서 이 극 표면 밑에 숨어 있는 그림들이 아직 발견되지 못했다는 점을 밝혀냈다. 이 글의 후반부는 바로 이 발견되지 못한 숨은 그림들 중 하나를 찾기 위해, 이 극에서 가장 미미한 존재인 가정주부 루스의 입장에서 이 극의 주요한 관심사인 돈과 집의 제 문제들을 살펴보았다. 여기서 필자는 가정주부 루스가 보여주는 생활밀착형 경제활동이 돈을 유일한 가치 척도로 삼는 자본주의 경제 활동에 대한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으며, 루스가 생각하는 개인의 사적 공간으로서의 집 개념이 르나의 정신적인 집 개념이나 월터의 정치적인 집 개념을 수정할 수 있는 여지가 있다고 논의했다. 그러나 이 글은 동시에 루스가 고통스러운 가정주부와 가정부 역할을 기꺼이 수행함으로써 자본주의 체계의 작동 원리를 무비판적으로 따르고 있으며, 미국 중산층 핵가족의 행복을 꿈꿈으로써 가부장제를 지지한다는 문제점을 놓치지 않았다. 루스의 경제적 행위와 집 개념에 얽힌 이와 같은 복잡성을 직시함으로써 이 글은 “이상적이지 않고, 단순화되지 않은” 루스를 드러내고, 이로써 리치가 요청했던 “이상적이지 않고, 단순화되지 않은” 페미니스트 한스베리 찾기 과업의 단초를 마련하고자 했다.

    돈과 집에 대한 루스의 태도에서 발견된 복잡한 양상들은 앞장에서 잠시 언급한 대로 르나나 베니사에게서도 얼마든지 발견될 수 있다. 가난한 새언니와 오빠가 어렵게 번 돈으로 개인 취미 활동을 하는 베니사와 범아 프리카주의를 신봉하며 의사가 되려는 베니사 사이의 괴리나 강한 자기 목소리를 내고 여성 교육에 투자하는 르나와 남편 빅 월터를 존경하고 아들 월터와 며느리 루스 일에 끼어드는 르나 사이의 간극은 한스베리의 복잡성이 루스에게서만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려준다. 또한 한스베리가 여성 인물들뿐만 아니라 남성 인물들도 이상적이고 단순하게 그려내지 않았다는 것은 돈을 추종했지만 흑인으로서의 목소리를 내게 되는 월터나 아프리카 식민지 문제에서는 진보적이지만 베니사에게는 가부장적인 아사가 이에게서도 드러난다. 루스뿐만 아니라 다른 인물들에게도 숨겨져 있는 이와 같은 복잡성의 조각들을 발견하여 상호 연결시킬 때 “이상적이지 않고, 단순화되지 않은” 페미니스트 한스베리라는 한 장의 큰 그림이 완성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루스를 돈과 집의 관점에서 분석한 이 글은 앞으로 이루어질 큰 그림의 작은 조각인 셈이다. 이 글은 이 큰 그림 그리기의 첫 번째 조각을 찾았다는 데 그 의의를 두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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