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규직-비정규직의 연대정치

Solidarity Politics between Regular and Non-regular Workers Uni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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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ABSTRACT

    이 연구는 현대차 울산공장에서 지난 10여 년 동안 정규직 노조와 비정규직 노조의 상호관계가 연대와 배제 그리고 갈등으로 복잡하게 전개되어온 변화과정을 분석하고 있다. 2003년 사내하청 노동자의 조직화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정규직 노조와 비정규직 활동가들이 통합적인 노조체계를 구축한다는 기본 방향에 대해 공감대를 보여주었으나, 조직화의 일정과 절차를 둘러싼 입장 차이를 극복하지 못하고 비정규직 노조가 독자적으로 결성됨으로써 정규직-비정규직의 연대정치는 초기 단계부터 균열의 조짐을 드러냈다. 그 이후 1차 불법파견투쟁, 1사1조직 규약개정, 그리고 2차 불법파견투쟁을 거치면서 정규직-비정규직 노조는 시간이 지날수록 상호 거리감(inter-group distancing)이 확대됨으로써 탈연대(de-solidarity)의 궤적을 보여주고 있다. 이번 연구를 통해 정규직-비정규직 노조의 지도부 및 활동가들이 자신의 노조 조직이 처한 상황논리에 사로잡혀 상호 연대를 위한 상황인식 공유와 공동의 실천적 대응을 도모하기 보다는 자기중심의 활동전략에 입각하여 서로 배제하는 어긋남의 탈구적 관계(disarticulated relationship)를 확대시켜온 연대정치의 실패과정을 보여주고 있다. 정규직-비정규직 노조의 지도부들은 노동자연대의 대의명분을 공유-천명해오고 있지만, 각자 조직의 처한 상황과 운동적 경험 차이 등에서 비롯되는 상이한 위치적 활동프레임의 덫(trap of positional activism framing)에 갇혀 당면한 과제들에 대해 공통 진단·해석과 공동대응의 전략적 연대를 도모하기보다 각개적 또는 배타적인 실천전략을 구사하며 상호 각축과 불신의 악순환을 심화시켜 온 것으로 분석된다. 따라서 분절적 고용관계의 확산을 통해 이질적 노동자집단들이 혼재하는 생산현장이 날로 늘어나는 작금의 노동시장 현실속에서 노동자연대의 성사를 위해서는 노동자집단들의 실재적 차이를 넘어서 계급적 동류의식을 구현하려는 노조 지도부 및 활동가들의 공통 운동비전과 상호 소통-조율기제가 확보-실천되는것이 관건적인 조건이라 강조케 된다.


    This study examines how regular and non-regular workers unions at Hyundai Motors Ulsan plants have interacted over the past 10 years. In 2003, the regular workers union and non-regular activists agreed upon the building of an integrated union, embracing regular and non-regular workers, but took differing positions concerning the timing and procedure of the integrated unionization. As a result, non-regular activists disregarded the regular union’s stance and organized their independent union, which created a significant schism in the early stage of solidarity politics evolving at the auto plants. The regular and non-regular workers unions have since shown the widening of inter-group distancing in the processes of the 1st illegal dispatched labor struggle (2004∼2006), the union bylaw revision for organizational integration (2007∼2008), and the 2nd illegal dispatched labor struggle (2010∼present), thereby resulting in the de-solidarity, rather than solidarity, between the two unions. This case study observes that leaders and activists of the regular and non-regular unions were dominated by situational logics of each organization and have undertaken self-centered strategies mutually excluding each other and intensifying the disarticulated inter-relationship, rather than building common situational awareness and strategic plans. In other words, leaders and activists of the two unions have been entrapped by distinct positional activism framing, derived from different organizational situation and background, so that they failed to develop common interpretation of confronted issues and mobilize joint reactions against management’s divide-and-rule strategies. An implication, drawn from our case study is that it is the very success factor to formulate and develop the common movement vision and situational awareness as well as mutual coordination mechanisms between leaders and activists of regular and non-regular unions, in order to overcome workers differentiations and advance workers solidarity under the growing presence of blended workplaces and segmented employment relations.

  • KEYWORD

    노동자연대 , 자동차산업 , 사내하청 , 노동조합 , 고용관계 분절성

  • Ⅰ. 머리말

    1998년 외환위기 이후 정부와 기업들이 고용구조 유연화를 본격적으로 추진함에 따라 비정규직 고용이 크게 증가했다. 많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고용불안과 차별 그리고 비인간적 처우에 시달리면서 자신의 열악한 처지를 시정-개선하기 위해 노동조합을 조직함과 동시에 치열한 단체행동을 전개하였다. 하지만, 비정규직 노동자들 의 투쟁은 그들의 불안정한 고용지위와 취약한 운동자원 등으로 인해 바라던 성과를 이뤄내기가 매우 어렵다. 실제, 지난 10여 년 동안 적잖은 사업장에서 비정규직 투쟁이 벌어졌으나, 일부 사례에서만 노조 조직화와 고용조건 개선의 의미 있는 성과를 이뤄냈을 뿐 많은 경우 사용자의 계약해지와 노조탄압으로 실패하였거나 제한된 성과를 거두는데 그치고 말았다.1) 비정규직 투쟁의 성패 차이는 다양한 주·객관적인 요인들에 의해 영향 받은 결과이지만, 그들 요인 중에서도 같은 사업장에 소속되어 있는 정규직-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상호관계, 특히 정규직 노조의 연대지원 여부에 의해 크게 좌우되는 것으로 여러 선행연구에서 밝히고 있다(윤영삼, 2010; 정이환, 2003; 조돈문, 2010). 다시 말해, 비정규직 투쟁의 성과를 쟁취하는 데에 정규직 노조의 견실한 연대지원이 결정적인 성공요인으로 작용한다는 점을 뜻하기도 하지만, 많은 실패 사례에서 드러나듯이 비정규직 노조가 정규직 노조 및 조합원의 강건한 연대를 이끌어내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이 아니라는 점을 잘 보여주는 것이다. 한편, 정규직-비정규직 노동자의 계급적 연대는 침체상황에 놓여 있는 노동조합운동의 혁신과 부흥을 위해 반드시 추구되어야 할 지향목표로서 강조되고 있다. 사실 노조운동은 외환위기를 배경으로 전개된 대대적인 고용조정을 겪으면서 정규직 권익대변위주의 실리주의활동에 몰두하여 비정규직과 같은 외부자의 노동문제를 방관한 채내부자(정규직 조합원)의 일자리를 지키고 불리는 데 주력하여 노동시장 양극화를 심화시켜온 주범으로 비판받고 있다(강현아, 2004). 그 결과, 우리 노조운동은 조직율의 하락과 사회영향력의 퇴락, 내부 분열과 도덕성 훼손 등과 같이 다양한 위기징후를 드러내며 한계적 상황에 봉착하고 있는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이병훈, 2004a). 결국, 노조운동의 재활성화(revitalization)을 위해서는 내부자(정규직) 중심의 활성관행에서 벗어나 외부자인 비정규직들을 적극 포괄하고 조직화하려는 운동혁신이 절실히 요구되는 것이다. 따라서 정규직-비정규직 노동자연대는 비정규직의 조직화와 권익보호를 효과적으로 성취하기 위한 전략적 운동토대이자 필요조건이 될 뿐 아니라 정규직 노조운동의 부활을 위해 지향해야 할 전략적 운동목표이자 혁신과제로 자리매김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동안 정규직-비정규직 노동자의 계급적 연대가 갖는 운동적 의의에 주목하여 이에 대한 적잖은 선행연구가 축적되어 왔다. 구체적으로 기존 문헌에서는 정규직-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상호관계를 여러 유형으로 판별하거나, 정규직-비정규직 연대의 성공 또는 실패에 영향 미치는 다양한 요인들을 규명하는 데에 상당한 연구 진전을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기존 연구에서는 연대대상의 비정규직과 연대주체의 정규직이라는 이분법적 구도에 따라 이들 노동자집단 간의 상호관계를 논의하고 있어 비정규직의 주체적 역할이 간과되는 문제를 보이거나, 정규직-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연대관계에 대한 영향요인들의 정태적인 분석에 치중하여 동태적인 변화흐름을 놓치는 한계를 드러내기도 하였다.2)

    이 글에서는 현대자동차 울산공장에 사내하청 노동자의 노동조합이 결성된 2003년 이후 최근(2013년 말)까지 정규직-비정규직 두 노조 사이에 전개되어온 상호관계의 역동적인 변화흐름을 검토하고 있다. 구체적으로 이번 연구에서는 왜 현대차 울산공장의 원청 노조와 사내하청 노조가 지난 10여 년 동안 서로의 연대적 관계를 진전-강화하기 보다는 후퇴-약화시켜 왔는지를 분석하고자 한다. 특히, 현대자동차 울산공장의 사례는 정규직-비정규직의 연대정치가 여러 사건 또는 에피소드들의 연이은 발생을 경험하면서 전반적으로 탈연대의 상호관계를 심화-확대시켜온 궤적을 잘 드러내고 있다. 그런 만큼 이 사례연구는 연대정치의 순차적 인과성(sequential causality)에 착안하여 여러 당면 이슈들에 상호 대응하는 과정에서 현대자동차 정규직-비정규직 노조가 왜 그들의 계급적 연대를 발전-강화하지 못하고 좌절-실패하게 되었는지에 대해 동태적 분석을 시도함으로써 연대정치에의 이론적-실천적 함의를 찾아보려 한다. 다음의 2절에서는 정규직-비정규직 노동자연대에 관한 선행연구 검토와 더불어 연대정치의 이론적 논의를 제시한다. 3절에서는 현대자동차 울산공장에서 정규직 노조와 비정규직 노조가 어떻게 연대적 관계를 형성하고 변화시켜 왔는지에 대해 사내하청 조직화·불법파견투쟁·1사1조직 규약개정과 같은 주요 국면을 중심으로 차례로 살펴보고, 4절에서 현대차 울산공장 정규직-비정규직 노조의 연대정치에 중요하게 영향 미친 제약요인들을 검토-논의한다. 5절의 결론에서는 이번 사례연구의 내용요약과 이론적 시사점을 정리-제시한다. 이 연구는 정규직-비정규직 노조의 간부 및 활동가에 대한 구술면접조사 기록과 1-2차 문헌자료를 활용하여 작성된 것임을 밝혀둔다.3)

    1)1998년 이후 2011년까지 전개되어온 비정규직 투쟁 사례들에 대한 종합적인 평가에 대해서는 조돈문(2011)을 참조할 것.  2)정규직-비정규직 노동자의 연대활동에 관한 선행연구 중에서 홍석범(2011)이 사내하청 노조의 주체적 전략에 초점을 맞추어 분석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리고 조돈문(2009)에서 그 연대의 단계적 변화에 대해 동태적인 인과분석을 시도하고 있다는 점에서 특기할 만한 연구로 평가된다.  3)이 글에서 참조-활용되는 구술자료는 총 13명의 정규직-비정규직 노조 및 금속노조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해온 간부 및 활동가를 대상으로 2-3시간 정도의 인터뷰를 진행하여 수집한 것이다. 인터뷰는 1차로 2010년 2-10월에 걸쳐 10명을 대상으로 실시되었으며, 그 이후의 연대정치 변화를 확인하기 위해 2차로 2014년 2-3월에 정규직·비정규직 및 금속노조에 각각 소속되어 있는 3인 활동가를 추가 섭외하여 수행되었다.

    Ⅱ. 정규직-비정규직의 연대정치에 관한 선행연구 검토

    자본주의 경제체제하에서 노동자들은 사용자를 상대할 때 경쟁과 연대4)라는 상충된 행동원리에 따라 행동하기 마련이다(Erd and Scherrer, 1985). 한편으로 자신의 노동력을 팔아 생계를 해결해야 하는 노동자들은 노동시장에서 사용자에게 선택받기 위해 상호 경쟁을 피할 수 없다.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는 사용자와의 협상에서 약자 지위를 극복하기 위해, 그리고 노동시장의 위험을 공동 대처하기 위해 집단적으로 결속하려는 연대활동을 벌이는데 노동조합은 바로 노동자연대의 제도화된 활동조직이라 볼 수 있다. 노동조합을 통해 노동자들은 단체교섭과 집단행동으로 공동의 이익을 추구하기도 하고, 상호부조와 친밀성의 연대공동체를 형성-유지하기도 한다. 그런데 노동조합은 통상 사업장이나 직종 그리고 고용지위 등과 같은 동질적인 조건을 갖는 노동자들이 가입-참여하는 결사체가 되므로, 이런 조건을 보유치 못한 다른 지위의 노동자들이 배제되는 경우가 많다. 다시 말해, 노동자연대를 구현하는 대중적인 조직인 노동조합은 그 이면에 배제와 차별이라는 원리를 동반하는 것이다.5) 따라서, 노동자집단들의 상호관계가 연대와 경쟁, 또는 연대와 차별-배제의 상반된 원리에 의해 규정되며 거시적으로는 노동시장 분절구조로, 미시적인 작업장 수준에서는 중층적 고용구조로 귀착되는 것이다. 물론 고용관계 분절화의 전개과정에는 노동자집단들을 분열시켜 통제하려는 자본의 지배전략이 집요하게 개입-작용한다 는 점을 유념할 필요 있다.

    노동시장 유연화와 더불어 비정규직 인력활용이 늘어나면서 사업장차원의 고용구조가 분절-중층화의 복합적인 형태로 바뀌고 있다. 정규직과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상이한 고용지위를 갖고 있는 만큼 같은 사업장에서 근무하더라도 동질적 노동자집단이라기 보다는 이질적 집단으로 상호간의 관계를 맺기 마련이다. 정규직 노동자들 이 비정규직에 비해 좋은 고용조건이나 안정된 신분을 보장받는 것에서 드러나듯이, 사용자와의 교섭력에 있어 노조의 보호에 의해서든 개별적 숙련에 의해서든 정규직은 비정규직 보다 유리한 지위를 갖는다. 이같이 작업장에서 우월한 지위를 차지하고 있는 정규직 노동자들이나 그들의 노동조합은 취약한 위치에 놓여 있는 비정규직에 대해 자연히 비대칭적 권력관계를 연출-행사하기 쉽다. 그 결과, 기존 연구에서는 혼합적 인력구성의 사업장에서 정규직-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상호관계에 대해 주도권을 쥔 정규직의 태도성향에 따라 여러 유형으로 구분하고 있다. 정이환(2003; 2006) 은 정규직 노조가 비정규직에 대해 보이는 태도 유형을 배제와 보호적 관여, 그리고 연대로 구분하고, 다시 정규직-비정규직의 상호관계유형을 노조의 적극성과 조합원의 참여정도에 따라 실패된 연대(배제), 수동-제한적 연대, 그리고 주도-전면적 연대로 부연하여 규정하기도 한다. 윤영삼(2010)조돈문(2010)은 정규직 노조가 비정규직 고용에 대한 대응태도로서 방임-철폐-규제로, 비정규직 조직화의 입장으로서 배제-통합-지원으로 각각 세분화하여 조합하는 유형화를 제시한다.6)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단순히 정규직 노조의 연대 또는 배제 대상이기 보다는 사용자와 정규직 노조에 다양하게 대응하는 주체적인 집단이라는 점을 간과해서는 곤란하다(홍석범, 2011). 더욱이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생산현장에 상당한 규모나 비중을 차지하는 경우 그들의 노조를 꾸려 독자적으로 단체교섭이나 집합행동을 벌이기도 한다. 이럴 경우 사업장 내 고용구조 유연화와 분절화의 산물로 정규직과 비정규직을 각각 조직-대변하는 복수의 노조가 등장하게 된다. 비정규직 노조는 정규직 노 조에 비해 대처해야 할 노동문제(예: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불안정한 고용관계와 열악한 노동조건 그리고 차별적인 보상처우 등)의 해결부담이 큰 반면, 그들이 보유한 운동자원이나 기회구조에 있어 매우 취약한 상태에 놓여 있다. 따라서 비정규직 노조는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나 그 조직의 명맥을 유지하기 위해 정규직 노조의 지원과 지지가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다. 그런데 정규직 노조와 비정규직 노조는 임노동의 공통된 처지에 터하는 계급적 단결을 표방할 수도 있지만, 현실적으로 상이한 고용지위에서 비롯되는 이해관계·집단정서·인식프레임 등의 차이를 드러내며 갈등적인 상호관계를 표출할 수 있다. 이같이 정규직 노조와 비정규직 노조는 사업장의 비정규직 노동문제를 둘러싸고 연대 또는 각축의 상호작용, 즉 연대정치(solidarity politics)를 연출하는 것이다.

    〈표 1〉은 주요 선행연구에서 정규직-비정규직의 노동자연대가 형성하거나 작동하는 데에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파악되는 다양한 요인들을 예시하고 있다. 이들 연구에서는 공통적으로 사업장 노사관계를 둘러싼 거시적-미시적 기회구조로서의 맥락조건(예: 사용자태도, 작업조직과 생산과정, 정부정책과 법률제도, 시민사회 여론 등)을 거론함과 더불어 정규직 노조의 주도적 역할에 초점을 맞추어 노조 지도부·활동가의 이념성향이나 리더십 그리고 조합원의 태도성향 등이 미치는 영향을 분석하고 있다.7) 다만 홍석범(2011)은 정규직-비정규직의 연대정치에서 비정규직 노조의 주체적인 대응이 갖는 의의를 강조하며 이 노조의 간부·활동가들이 보여주는 전략적인 대응능력과 태도성향을 중요 영향변수로 다루고 있다.

    그런데, 이상의 요인들에 의해 영향을 받는 연대정치는 고정적인 성격을 갖고 머물러 있기 보다는 여러 주체들의 상호작용과 당면한 이슈 또는 사건을 겪으면서 그 성격이 시간 흐름이나 상황전개에 따라 변동될 수 있다는 점에 유의할 필요 있다. 코스터와 샌더스(Koster and Sanders, 2007)는 과거에 경험한 사건의 충격이나 연대적 관계의 기억, 그리고 미래의 집단 간 상호관계에 대한 기대감이 현재 집단사이의 연대행동에 중요하게 영향 미친다는 점을 밝히면서 연대의 시간적 배태성(temporal embeddedness), 또는 순차적 연대성(serial solidarity)을 이론화하고 있다. 허쉬(Hirsch, 1986) 역시 정치적 연대의 경험적 분석을 통해 집합적 연대활동의 동원이 단계적으로 발전 또는 퇴보하는 방식으로 변화된다는 의미에서 발생적 연대(emergent solidarity)라는 이론적 개념으로 설명한다.8) 특히 정규직-비정규직과 같이 이질적인 집단이 공존-혼재하며 상호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생산공간에서는 그들 이 특정한 사안이나 상황을 두고 각개적으로 또는 상호 연계되어 벌인 행동이나 의사표시가 사후적으로 그들의 상호 관계와 교호작용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쉽게 추론해볼 수 있다. 예를 들어, 특정 현안에 대해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활동주체들이 상호 연대에 입각한 집합행동을 성사시켰다면, 이러한 선례는 두 노동자집단 사이의 신뢰와 동지애를 강화시켜 이후 연대활동을 더욱 강화시킬 것이다. 물론 이와는 상반된 악순환의 연대정치를 생각해 볼 수 있으며, 사업장 안팎의 변수와 상황적 계기에 의해 연대정치의 흐름에 큰 변화가 발생할 수 있을 것이다. 이처럼 노동자집단들의 연대정치는 단발적인 사건으로 묘사되거나 고정화된 성격으로 규정되기보다는 그 집단들 간의 상호작용을 통해, 그리고 선후 사건들의 인과적 연쇄작용을 통해 활동 주체들이 과거 경험-개별적이거나 상호 관계적인 차원에서-과 현재의 행위동기 그리고 당면한 기회구조 상황 등에 의해 영향 받으며 불확실성의 변화 동학을 만들어가는 것으로 이해될 수 있는 것이다.9) 그런 가운데 노동자의 연대정치는 선행사건 또는 에피소드에 참여한 활동주체들의 상호작용 경험이 이후 전개되는 그들의 관계적 상황 연출에 중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순차적인 인과성의 동학을 배태하고 있다는 사실을 유의해야 할 것이다.

    〈그림 1〉에서 예시하듯이 원청-사내하청의 연대정치에는 다양한 주체들이 개입-관여한다. 우선, 정규직(원청)-비정규직(사내하청) 노동자들은 개별적 이해관계와 대중적 정서 그리고 관계적 거리감에 입각하여 서로에 대한 연대 또는 배제의 태도를 보이며, 각 집단의 노조가 실행하는 연대정책에 대해 집합적인 협조규범 또는 거부행동을 나타낸다. 정규직-비정규직 노조의 수준에서는 집행부를 맡고 있는 지도부와 활동간부들이 어떠한 이념적 지향이나 운동목표를 보이는가에 따라 연대정치의 향방이 상당히 달라질 수 있다.10) 또한, 양 노조의 지도부가 작업장내 비정규직 문제를 어떻게 정의-진단하고 그 문제 해결의 방향을 설정하는지에 대한 인식틀, 즉 프레임이 일치 또는 상충하는가에 따라 그들 간의 연대정치가 크게 좌우되기도 할 것이다. 특히 맥아담·태로우·틸리(McAdam, Tarrow and Tilly, 2001)가 지적하듯이, 사회운동의 성패 또는 진전 양상이 그것을 둘러싼 외부환경의 기회와 위협이라는 구조적 조건들에 의해 단순히 결정되기 보다는 운동주체들의 상황인식과 전략적 해석에 의해 매우 상이하게 펼쳐질 수 있다. 그런 만큼 이질적인 노동자집단의 연대활동이 발전-좌절되는가의 여부는 이들 집단을 각각 이끌어가는 지도부와 활동가들이 운동비전의 설정, 활동목표와 전략접근, 당면이슈의 진단과 해법 찾기 등에서 각자의 상이한 위치적 인식틀을 넘어서 공통의 운동프레임을 확보-실천하는가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아울러, 정규직-비정규직 노조의 연대정치에 개입하는 중요한 주체로 원청회사 및 사내하청업체를 고려치 않을 수 없다. 원청회사는 사내 하청의 간접고용을 적극 활용함으로써 분절된 고용구조와 분할통제체제를 구축한 장본인일 뿐 아니라 정규직-비정규직 노조들의 연대행동으로 인해 받을 위협을 최소화하기 위해 그 연대정치에 다양한 방식으로 개입-약화시키려 한다. (선행연구에서도 지적하듯이) 최근 비정규직 문제가 심각한 사회이슈로 대두됨에 따라 사업장 내부에서 벌어지는 연대정치에 대해 노조 상급조직과 시민사회단체 등이 사업장 외부로부터 상당한 영향을 행사하기도 하고, 정부의 대책이나 법률 제정 및 판정을 통해 그 연대정치의 거시적 기회구조로서 중요변수로 작용하기도 한다. 이처럼 정규직-비정규직의 연대정치는 다양한 주체들의 참여와 개입 그리고 외부 변수들의 작용으로 인해 복합적인 동학을 보이기 마련이다. 또한 이 연대정치는 때때로 우연적 상황(ad hoc situation)이 발생하고 압박하여 노조 주체들의 전략적 자율-합리성을 크게 제약함으로써 의도치 않은 방향으로 흘러갈 수 있다는 점에 유의할 필요 있다.

    그러면, 이상 관련 연구문헌의 검토를 통해 도출되는 주요 이론적 자원을 활용하여 현대차 울산공장에서 지난 2000년 이후 전개되어온 정규직-비정규직의 연대정치 동학을 살펴보기로 한다.

    4)여기서 연대는 성격을 달리하는 집단들이 서로에 대해 결속감이나 일체감을 갖고 호혜적인 태도나 행동을 보이는 상호관계의 상태를 뜻한다(D’Art and Turner, 2002).  5)하이만(Hyman, 1999)은 노동조합이 포용과 배제의 집단동학(group dynamics of inclusion and exclusion) 또는 편견의 동원(mobilization of bias)을 통해 구획된 노동자연대(compartmentalized worker solidarity)를 낳게 된다고 지적한다.  6)비슷하게, 장귀연(2009)은 비정규직에 대한 정규직노조의 조직적 포괄 여부와 교섭의 권익대변 여부에 따라 통합(포괄, 대변), 임의적 대리(비포괄, 대변), 수용(포괄, 비대변), 그리고 배제(비포괄, 비대변)라는 4개 관계 유형으로 구분하고 있다. 해외연구로서는 체르비노(Cervino, 2000)가 비정규직에 대한 정규직 노조의 대응태도를 완전포괄(total inclusion), 부분통합(partial inclusion) 그리고 배제(exclusion)로 비슷하게 구분하기도 한다.  7)아울러, 유형근(2012)과 윤영삼(2010)은 비정규 노동을 위한 연대활동을 제약하는 요인들로 노조 상급단체의 책임 회피와 관료주의, 정규직 노조의 선거정치와 계파분열, 정규직의 고용조정 경험등을 지적하고 있다.  8)허쉬(Hirsch, 1986)는 정치적 연대가 초기에 경제적 이익추구를 위해 형성되었다가, 이후 상호 호혜의 경험과 공동의 이념목표 지향을 통해 더욱 강력한 수준으로 진전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9)맥아담 등(McAdam et al., 2001)이 사회운동의 발생-전개에 대해 특정 변수이나 조건을 중심으로 분석하는 정태적인 이론접근(예: 자원동원이론)의 한계를 지적하며 운동적 상황들이 다양한 메커니즘과 프로세스로 구성-전개되는 변화 궤적을 규명해야 한다는 투쟁동학(dynamics of contention)의 분석모델이 제안하고 있는 점을 비슷한 논지로서 특기할 만하다.  10)페리스·프링크·바우크·쩌우·길모어(Ferris, Frink, Bhawuk, Zhou, and Gilmore, 1996)는 작업장에서 신분상의 여러 혜택을 받고 있는 노동자집단과 그렇지 못한 집단 사이에 사업장 노사협상을 풀어감에 있어 정보자원이나 사회연결망 등을 활용할 수 없는 후자집단의 노동자들이 정치력 결핍(political skills deficiency)을 드러낸다는 이론적 가설을 제시하고 있는데, 이를 연대정치의 전개과정에서 비정규직 노조가 겪는 제약상황의 하나로 생각해볼 수 있을 것이다.

    Ⅲ. 현대차 울산공장 정규직-비정규직 연대정치의 역사적 전개과정

    현대차 울산공장에서 사내하청 문제가 노사관계의 현안으로 처음 등장한 것은 2000년이었다. 사실 그 이전 시기에도 울산공장에는 사내하청의 비정규인력이 상당한 규모로 활용되었으나, 노조의 관심대상 밖에 위치하고 있었다.11) 1998년에 정리해고와 무급휴직 그리고 명예퇴직 등으로 대규모 고용조정을 단행하였던 현대차는 1999년 하반기에 급속한 경기회복에 대응하여 사내하청 인력을 생산라인에 대거 투입하였다. 그 결과, 1998년 외환위기 이전에는 생산부서의 서브라인이나 생산지원업무를 담당하던 사내하청인력이 의장부서의 생산공정에 상당수 배치되어 정규직과 혼재된 형태로 근무하게 되었다. 당시 현대차 노조의 정갑득 집행부는 무급휴직 중이거나 정리해고 된 조합원들이 복귀되지 않은 상태에서 대규모의 사내하청 인력이 생산라인에 투입되는 것을 우려하여 2000년의 단체교섭에서 사내하청에 관한 단체협약 및 추가 노사합의문을 체결하였다. 이 노사합의는 완전고용보장협정의 일부로 서 사내하청 인력의 투입규모를 1997년 8월 이전을 기준 삼아 정규직 생산인원의 16.9% 수준으로 제한하는 규정을 포함하였다.12) 또한 노조 집행부는 2000년부터 하청인력의 열악한 처우와 근로조건을 향상시키기 위해 회사와의 대리교섭을 통해 비정규직을 위한 임금인상 및 상여금 지급 그리고 작업환경 개선을 이루어 주었다.13)

    이처럼 정규직 노조의 개입을 통해 사내하청 노동자에 대한 처우개선이 상당히 이뤄지는 가운데, 비정규직 노동자들도 자신의 권익 향상을 위한 노조 조직화의 움직임을 활발하게 보이더니 결국 2003년 7월에 그들의 노조를 결성하기에 이른다. 비정규 노조의 결성에 참여하는 사내하청 노동자들은 정규직 노조의 수혜 또는 보호 대상에서 벗어나 독자적인 노조활동을 펼치며 사용자에 대한 치열한 투쟁의 주체로서 부상되었을 뿐 아니라 정규직 노조와의 연대정치에 한 당사자로서 참여하게 되었다. 그러면 현대차 울산공장에서 지난 20여 년 동안 정규직-비정규직의 연대정치가 어떠한 변화궤적을 보여주었는지에 대해 크게 4개의 중요 국면-노조 조직화, 1차 불법파견 투쟁, 1사1조직 규약 개정, 2차 불법파견 투쟁-을 중심으로 살펴보기로 한다.

       1. 비정규직 노조의 조직화(2003년)

    2003년 이전에도 현대차 울산공장의 사내하청업체에 노조를 결성하려는 시도가 몇 차례 있었다. 열악한 처우에 대한 사내하청 노동자들의 강한 불만이 존재하는 가운데, 현대차 울산공장의 비정규 노동자들을 조직하려는 상당수의 활동가들이 하청 업체들에 취업하여 노조의 결성을 추진하였다.14) 하지만 원청인 현대차 경영진은 사내하청업체의 노조 조직화를 전연 허용치 않고 노조가 결성된 하청업체들을 폐업 처리함으로써 비정규직의 노조활동을 아예 봉쇄하였다.(이병훈, 2004b) 이같이 원청의 강한 노조탄압이 지속되는 분위기 속에서 비정규직 노조의 결성이 이뤄진 것은 돌발적인 사건을 통해서였다. 2003년 3월에 아산공장에서 사내하청업체의 관리자가 그 업체의 노동자를 흉기로 폭행하는 사건이 벌어지자 이를 계기로 비정규직 노조가 결성되었다.15)

    아산공장 비정규노조의 결성과 뒤이은 파업 소식에 자극받아 울산공장의 비정규직 활동가들도 노조 조직화에 적극적인 움직임을 보이기 시작하여 그해 5월 초에 「비정규직투쟁위원회(약칭 비투위)」를 출범시켰다.16) 한편, 울산공장 정규직 노조(이헌구 집행부)의 현장 활동가 그룹들은 대표자회의를 거쳐 사내하청 노동자들의 조직화를 추진키로 하며, 그 추진방법으로는 정규직 노조의 규약 개정을 통해 사내하청 노동자들을 직가입시키는 것으로 의견을 모았다. 당시 정규직 노조 집행부가 금속산별 노조로의 전환을 추진하고 있었던 만큼, 산별전환이 성사될 경우 사내하청 노동자들을 지역지부로 가입시키고 실패할 경우에는 정규직 노조의 지부조직으로 소속시키는 방안을 제시하기도 하였다.17) 비투위는 정규직 노조에 대한 사내하청 노동자들의 직가입을 추진한다는 계획을 수용하면서 이를 위한 규약 개정을 조기에 처리할 것을 요구하였다. 그런데 산별전환 추진계획이 조합원 총투표에서 부결됨에 따라, 정규직 노조 집행부는 사내하청 직가입의 규약개정을 2004년 정기 대의원대회에서 처리할 것으로 결정하였다. 이같이 정규직 노조가 사내하청의 노조 조직화를 상당 기간 미루는 결정을 내린 것은 사내하청의 직가입을 추진할 경우 특별위원회와 같은 별도 조직체계로 편성할지, 통합된 선거구의 조직체계로 구성할지에 대해 내부적으로 상당한 이견과 논란이 제기되어 일정 시간을 두어 의견조율이 필요하였던 것이다.

    정규직 노조가 일방적으로 사내하청 직가입의 시기를 연기하는 결정을 내리자, 비투위는 2003년 7월에 독자적으로 노조 결성을 단행하였다.18) 비투위가 비정규직 노조를 서둘러 조직한 배경에는 정규직 노조에의 직가입 여부와 그 실행시기가 불확실 하였으며, 비투위의 주요 활동가들의 신분이 노출되어 해고될 우려가 있었고 울산공장의 일부 사업부(5공장)에서 사내하청 인력감축을 단행하는 것을 저지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비투위의 독자적인 노조 결성은 정규직 노조의 강한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정규직 노조는 정규직-비정규직의 연대원칙에 따라 사내하청 노동자의 조직화에 대해 공동보조로 접근해야 한다는 입장을 강조하면서, 자신이 주도하는 일정에 맞추어 비정규직을 기존 조직의 일부로 직가입시켜 편제하는 것으로 접근하고 있었다. 그런 만큼 정규직 노조는 비정규직 노조의 독자 결성이 마땅치 않게 받아들여졌던 것이다. 실제 정규직 노조는 비정규직의 독자 노조 결성에 대해 공개적으로 “비정규직 철폐의 투쟁전선에서 정규직과 비정규직을 분리시키는” 부적절한 조치로 재고되어야 한다고 강력히 요구하는 상무집행위원회 명의의 입장을 밝히기도 하였다(홍석범, 2011: 43). 이처럼 비정규직 노조의 결성이 정규직 노조와의 사전입장 조율을 거쳐 합의된 방식으로 이뤄지지 못하고 비투위의 일방적인 결정으로 추진됨으로써 정규직-비정규직의 연대적 관계에 균열의 앙금을 초래하였다. 또한 정규직 노조의 지원 중단으로 인해 비정규직 노조는 신규 조직화에 상당한 타격을 받기도 하였다.19)

    요컨대, 비정규직 노조의 조직화단계에서 정규직 노조와 비투위는 당초 사내하청의 직가입을 통한 정규직-비정규직의 통합된 조직체계 구축을 공동의 목표로 설정하였다. 하지만 정규직 노조와 비투위는 비정규 노조결성 추진의 시간프레임(temporal frame)에 대한 인식차이로 인해 정규직-비정규직 연대의 조직화에 실패하였다. 비투위가 비정규 노조의 독자결성을 강행한 배경에는 그들의 불안정한 주체적 운동여건이 주되게 작용하였으며, 이에 더하여 사업부(5공장)의 사내하청 인력감축이라는 우발적 상황의 발생이 그 움직임을 더욱 촉발시켰던 것이다. 반면, 정규직 노조의 경우에는 비투위와 같은 절박한 상황으로 몰리지 않았을 뿐 아니라 사내하청 직가입 문제를 둘러싼 조직내부의 논란을 충분히 해소하는 절차를 거치기 위해 자신의 주도하는 일정계획에 맞추어 비정규직의 조직화를 이끌어가려 하였던 것이다. 이처럼 비투위와 정규직 노조는 울산 공장의 정규직-비정규직 노동자 모두를 포괄하는 통합 조직체계에 대한 운동대의와 지향목표를 공유하였지만, 실제 추진과정에서 각 집단의 상황인식(situational awareness) 차이로 인해 서로 어긋한 행보를 보임으로써 정규직-비정규직의 연대정치가 그 시발점에서 착종되는(disarticulated) 난맥상을 드러냈다.

       2. 1차 불법파견 투쟁(2004∼2006년)

    출범이후 공장 내 2-3차 하청업체의 처우개선20)에 주력하던 비정규직 노조는 2004년에 들어 불법파견을 문제 삼아 정규직화를 요구하는 투쟁에 집중하기 시작하였다. 비정규직 노조의 이 같은 투쟁활동은 당시 상급단체의 협상방침에 따른 것이기도 하였지만, 당시 노정관계의 기회구조를 고려한 전략적 판단에서 전개된 것이었다. 상급단체인 금속연맹은 그해 3월 ‘불법파견 정규직화’를 핵심과제로 내세운 비정규 임단협 10대 요구안을 확정하여 교섭방침으로 공표하였다. 또한 참여정부는 사내하도급의 불법파견에 대한 문제제기가 노동-시민단체들로부터 빗발치자 불법파견에 대한 특별근로감독 실시와 더불어 위법사업장에 대한 시정조치를 단행하였다.21) 우선, 비정규직 노조는 울산 공장의 정규직-비정규직 혼재공정실태를 불법파견으로 진정하기 위해 실태조사를 실시하였다. 〈그림 2〉에서 예시하듯이 1999년부터 의장부서에 사내하청 노동자들이 대거 투입되면서 컨베이어 생산라인에 이들이 정규직 노동자들과 뒤섞여 작업하는 이른바 ‘혼재공정(mixed production processes)’이 다수 만들어졌다. 이러한 혼재공정에 배치된 사내하청 노동자들은 실제 현대차 관리자들의 지휘감독에 따라 업무를 수행하고 있어 현행 파견법을 위반하는 것으로 판정될 소지가 다분히 높았다. 그런데, 사내하청의 불법파견문제에 대한 집단 진정을 둘러싸고 다시금 비정규직 노조와 정규직 노조는 상이한 전략적 입장을 드러내며 각각 독자적인 행보를 보여주었다. 비정규직 노조는 불법파견 투쟁의 정당성을 조기에 확보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판단하여 현대차를 비롯한 일부의 하청업체를 상징적인 제소 대상으로 선정하여 조속히 진정하자는 입장을 보였던 반면, 정규직 노조는 하청업체 전반에 대한 위법여부를 파악하여 법위반 하청업체들 모두를 대상으로 행정처분을 신청하자는 입장을 견지하였다. 결국 이 같은 입장 차이로 인해 비정규직 노조는 정규직 노조를 배제한 채 2004년 5월 금속연맹 및 아산 비정규지회의 공동명의로 현대차·현대모비스와 울산·아산공장의 20개 하청업체를 상대로 불법파견으로 노동부에 집단 진정을 제소하였다. 한편 정규직 노조는 3개월여의 별도 준비절차를 거쳐 같은 해 8월에 113개 하청업체(울산공장 101개와 전주공장 12개)를 상대로 불법파견의 집단진정을 신청하였다. 노동부는 비정규직 노조와 정규직 노조가 제소한 진정사건에 대해 그해 9월과 12월에 각각 불법파견으로 판정한 결과를 발표하였고 원청업체인 현대차에게 고용안정에 관한 개선계획서를 제출토록 명령하였다.22) 현대차가 적법 도급 전환, 즉 불법파견의 완전도급화를 주된 내용으로 담은 고용안정 개선계획서를 제출하였으나, 노동부는 그 개선계획서의 타당성과 실현가능성이 없다고 판단하여 원청업체에 대한 고발조치를 취하였다.

    비정규직 노조는 2004년 7월에 두 차례의 파업을 전개하여 기본급과 성과급 인상을 비롯해 적잖은 임단협 성과를 거두었다. 이 같은 성과는 당시 비정규직 노조의 파업투쟁으로 상당한 생산중단 차질이 빚어지고 여성 하청조합원이 철탑농성에 돌입하자 정규직 노조가 나서서 현대차와 하청업체 대표가 참여하는 4자 교섭을 꾸려 진행함으로써 성취한 것이었다. 노동부의 불법파견 판정에 힘입어 비정규 노조는 2005년 1월에 불법파견 정규직화 투쟁을 선언하며 5공장에 2일간의 전면파업을 전개하였고 이어 다른 사업부로 잔업거부투쟁을 확산시켰다. 정규직 노조는 비정규직 노조의 파업에 대해 대체인력 투입을 금지하는 긴급지침을 하달한 것 이외에 더 이상의 연대활동 없이 방관하는 태도를 보여주었다. 비정규직 노조의 파업과정 초기에는 회사의 대체인력 투입을 저지하는 5공장 일부 대의원의 지원도 있기는 하였지만, 이틀째에는 대체인력이 별 저항 없이 투입되고 사측의 구사대에 의해 파업 중인 비정규직 조합원들이 폭행당하고 노조 위원장이 납치되는 상황이 벌어졌다.23) 결국 비정규직 노조의 파업은 정규직 노조의 적극적인 연대지원을 받지 못한 가운데 별 성 과를 거두지 못하고 오히려 100여명 조합원들이 징계해고되는 실패를 맛보았다.

    한편 정규직 노조는 불법파견의 노동부 판정과 상급단체의 정규직화방침 그리고 조직내부의 비정규직 지원 여론24) 등을 의식하여 비정규직 노조의 파업 직후에 열린 대의원대회에서 불법파견문제를 다룰 원하청 연대회의의 구성을 결의하였다. 정규직 노조 대표 8명과 비정규직 노조 대표 3인으로 구성된 원하청 연대회의에서는 “공동결정, 공동투쟁, 공동책임”의 3대 원칙을 결정하였으며, 그해 1월 비정규 파업을 탄압하였던 회사 구사대에 대해 향후 공동 대응하기로 합의하였다. 아울러 정규직 노조가 개최한 5월의 대의원대회에서 불법파견 9,234명의 즉각 정규직화와 비정규직 노조의 활동 보장 등을 포함하는 2005년의 특별교섭 요구안을 확정-결의하기도 하였다.

    비정규직 노조의 1월 파업 이후 정규직-비정규직 노조 사이에 형성되었던 우호적인 연대의 분위기는 임단협 교섭이 진행되면서 곧 불신과 갈등으로 바뀌었다. 이렇게 된 사정의 발단으로는 정규직 노조 집행부가 불법파견 정규직화의 특별교섭에 대해 그리 노력을 경주하지 않은 채 회사와의 교섭에서 정규직 조합원을 위한 임단협만을 분리하여 타결하려는 태도를 보였기 때문이다. 정규직 노조 집행부의 이중적인 태도에 불만을 품은 비정규직 노조는 원하청 연대회의의 공동투쟁 합의에도 불구하고 독자적인 파업을 결의하여 8월 25일부터 9월 8일까지 부분파업을 감행하였다. 이에 더하여 정규직 노조의 태도에 분노한 비정규직 활동가 한 사람이 자결하였으며 일부 비정규직 활동가들은 철탑농성에 돌입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정규직 노조는 비정규직 노조의 독자 파업을 문제 삼으며 불법파견 특별교섭을 분리한 임단협 교섭을 일방적으로 합의-처리하였다. 이같이 정규직 노조(이상욱 집행부)는 비정규직 노조의 반발을 무시한 채 정규직만을 위한 임단협 교섭으로 진행하였을 뿐 아니라 이에 반대하여 자결한 비정규직 활동가의 열사 인정을 거부하여 비정규직 노조의 적대감을 크게 조장하였다. 임단협 교섭이 마무리된 이후 특별교섭은 두 차례 열리긴 하였으나 회사측의 무성의한 대응으로 별 성과 없이 끝나고 말았다.

    2006년에는 비정규직 노조에 우호적인 정규직 노조 지도부(박유기 위원장)가 등장함에 따라 이전보다 정규직-비정규직 연대가 원활하게 전개되었다. 우선, 비정규직노조는 그동안 단체교섭에서 정규직 노조에 의존하였던 관행에서 벗어나 독자적으로 임단협 교섭을 추진하기로 결정하였다. 비정규직 노조의 이러한 교섭방침에 대해 정규직 노조 집행부는 존중하고 처우개선에 대해 적극 협조할 것임을 밝혔다. 특히 박유기 집행부는 이전 집행부와 달리 임단협 교섭과 불법파견 특별교섭을 분리하지 않고 통합시켜 진행함으로써 비정규직 노조의 교섭력을 강화시켜 주기도 하였다. 정규직 노조의 강력한 지원을 받으며 비정규직 노조는 8월 한 달 동안 격일제 부분파업을 전개하였다. 이 파업은 현대차 뿐 아니라 지엠대우·기아차·현대중공업 등 6개 비정규직 노조가 불법파견 정규직화를 요구하는 공동투쟁으로 감행된 것이었다. 정규직-비정규직 노조의 확고한 연대활동은 현대차 경영진으로 하여금 불법파견 특별교섭에 참여토록 강제하여 처음으로 3자 교섭의 성과를 이뤄낼 수 있었다. 다섯차례 진행된 특별교섭은 사내하청의 임금인상과 (하청업체 변동과 관계없이) 고용안정을 보장 등을 담은 상당한 성과의 노사합의에 도달하였다. 그런데 특별교섭의 합의결과를 둘러싸고 비정규직 노조 내부의 정파갈등이 빚어져 집행부의 사퇴와 3개월여 공백기를 거친 다음 신임 집행부 선출 후 가까스로 가결-조인되는 진통을 겪었다.25) 그런데 2006년 말에 노동부가 고발조치한 현대차의 불법파견 사건에 대해 검찰이 무혐의 처분을 내리고, 불법파견 문제해결에 적극적이었던 정규직 노조의 박유기 집행부 역시 2007년 초에 조합간부 비리사건으로 사퇴함에 따라 비정규직 노조가 주도해온 불법파견 투쟁과 특별교섭은 한동안 자취를 감추게 되었다.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2004∼2006년의 기간에 비정규직 노조의 주도하에 추진된 불법파견 투쟁은 당시 참여정부의 우호적인 정책입장에 따른 유리한 기회구조를 활용하여 전개되었으며, 주요 성과로는 원하청 연대회의의 구성과 공동투쟁 원칙 확립, 그리고 박유기 집행부와의 공동 특별교섭에 의한 고용보장합의 등을 열거할 수 있다. 하지만 불법파견투쟁은 비정규직 노조의 독자적인 운동방식과 정규직노조의 탈연대적 태도로 인해 소기의 정규직화 성과를 거두지 못하였을 뿐 아니라 정규직-비정규직의 계급적 연대를 발전시키기보다 불신의 균열을 심화시키는 문제를 드러내기도 하였다.

       3. 1사1조직 규약개정(2007∼2008년)

    현대차의 정규직 노조는 2006년 6월에 실시된 조합원투표에서 71.5%의 찬성을 얻어 금속노조로의 산별전환을 이뤄낸다. 같은 해 12월에 개최된 금속산별 통합대의원대회에서 1사1조직의 방침을 결의하여 정규직과 비정규직을 포괄하는 사업장 조직체계로 재편할 것을 확정하였다.26) 산별노조의 방침에 따라 현대차의 정규직 노조는 2007년 1월에 임시 대의원대회를 열어 비정규직 노조들을 포괄하는 통합적인 조직체계로 재편하기 위한 규약개정을 시도하였다. 그런데 대의원 표결에 부쳐진 1사1조직의 규약개정안은 참석 대의원 293명 중 192명이 찬성하여 의결에 필요한 참석대의원 3분의 2(195명)에 단 3표가 부족하여 부결되었다. 이는 당시 전연 예상치 못한 결과이었다. 2003년 비정규직 노조의 설립 시기부터 정규직 노조 내부에서 1사1조직 원칙에 부합하는 사내하청의 직가입이 기정사실로 받아들여져 폭넓게 논의되어 왔을 뿐 아니라, 산별전환이 성공적으로 이뤄진 직후에 열린 대의원대회였던 만큼 1사1조직의 산별방침에 대해 대의원들이 큰 반대 없이 통과시켜줄 것으로 기대되었던 것이다. 이런 분위기를 반영하듯, 현대차의 3개 비정규직 노조(울산·아산·전주27))는 대의원대회 직전에 공동수련회를 열어 1사1조직 원칙을 견지해줄 것을 당부하였고, 울산공장 비정규직 노조는 심지어 비정규직을 위한 독자적인 부문위원회의 설치를 주문하기도 하였다.

    1사1조직 원칙의 규약개정을 당연시하였던 주위 기대와는 달리 정규직 노조 대의원대회에 정식 안건으로 채택되자, 조합원 가입범위 등의 세부 규정내용을 둘러싸고 상당한 논란이 일어나며 정규직 대의원들 사이에 심상치 않은 분위기가 연출되었다. 특히 규약개정안에 조합원범위를 “현대자동차와 현대모비스, 현대자동차와 현대모비스에 종사하는 노동자”로 명시하여 1-2-3차 하청업체 뿐 아니라 판매딜러와 정비업체 소속 노동자들을 망라할 경우 정규직 조합원 규모를 초과하는 규모로 가입대상을 확대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졌다.28) 또한 비정규직 부문위원회의 설치와 비정규직 위원장의 노조 운영회의 참석 등과 같이 규정개정안에 비정규직 노조들의 요구를 그대로 반영한 것도 너무 비정규직에 끌려간다는 인상을 안겨주어 대의원들의 적잖은 반발을 사기도 하였다. 결국 손쉽게 통과될 것으로 기대되던 1사1조직 규약개정안은 예상 밖의 논란을 빚으며 부결되었던 것이다. 정규직 노조는 1사1조직 규약개정에 대한 우려사항들을 반영한 수정안29)을 2007년 6월에 다시 제출하였으나 50.1% 찬성표를 얻는 데 그쳐 부결되었다. 2008년 10월에 재차 수정 개정안이 대의원대회에 상정되었으나, 이때는 반대표가 오히려 찬성표 보다 많은 51.6%를 얻어 부결되었다. 특히 2차 규정개정을 앞두고 3개 비정규직 노조들이 1사1조직 편제방식 및 전환절차를 둘러싼 현격한 입장 차이를 드러내어 정규직 대의원 표결에 결정적인 악영향을 미쳤다.30) 이에 더하여 금속노조에 대한 실망감과 불신이 확대됨에 따라 산별방침에 대한 정규직 노조 대의원들의 거부심리가 늘어난 것도 규정개정안의 처리에 상당히 부정적으로 작용하였다.

    1사1조직의 규약개정은 정규직-비정규직의 계급적 연대를 노조 조직체계로 구현하는 중요한 제도화의 기회이었다. 그러나 두 당사자인 정규직 노조와 비정규직 노조(들)은 당시 산별전환 분위기에 도취되어 안이하게 접근하였을 뿐 아니라 오히려 그 규정개정 방향을 둘러싸고 내부 분열과 이견(특히 비정규직 노조들의)을 제대로 조율하지 못하였으며, 그 결과 사내하청의 직가입에 따른 유연한 고용관리에 지장을 줄 것으로 우려하던 회사측의 영향력 행사로 인해 좌절되고 말았던 것이다.31)

       4. 2차 불법파견 투쟁(2010년∼)

    1사1조직 규칙개정 실패와 비정규직노조 독자교섭 실패 및 원하청 집단교섭 후퇴등을 겪으면서 침체기에 빠져들었던 비정규직 노조는 2010년 대법원의 불법파견 판결을 계기로 재활성화의 전환점을 맞게 된다. 2010년 7월 대법원은 2005년 3월 제기된 현대차 사내하청의 부당해고 구제신청 건에 대해 현대차의 불법파견을 인정하는 판결을 내렸다.32) 판결 직후 비정규직지회는 금속노조과 정규직 활동가들과 함께 신규조직화 사업을 적극적으로 벌였다. 그 결과 대법원 판결 직전인 2010년 6월 600여명에 불과했던 울산공장 비정규직 노조 조합원 수는 1,850명 수준으로 크게 증가했다. 비정규직 노조는 그 여세를 몰아 같은 해 11월에 25일 동안의 공장점거파업에 들어갔으나 정규직노조의 암묵적 방해와 회사의 불성실한 교섭태도로 인해 이렇다 할 성과를 거두지 못한 채 그 투쟁을 마무리했다.

    대법원의 판결을 통해 사내하청 정규직화투쟁의 정당성을 확보한 비정규직 노조에 대해 상당수의 정규직 활동가들이 신규조직화와 점거농성의 추진 과정에서 활발한 연대지지를 보냈던 것과 대조적으로 현대차 정규직노조는 대법원 판결 이후에도 연대활동에 소극적이거나 아예 비정규직노조를 방해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정규직노조는 3주체(금속노조, 정규직·비정규직 노조)의 공동교섭단을 구성하자는 비정규직 노조와 금속노조의 요청을 거부하였으며, 비정규직 노조의 점거농성 기간에 정규직 조합원들을 대상으로 부결될 것이 확실시되는 쟁의행위 찬반투표를 실시함으로 써 비정규직 노조로 하여금 농성투쟁을 종결토록 압력을 가하기도 하였던 것이다. 한편 회사는 점거농성 종료 후 노조들이 요청한 불법파견 특별교섭을 거부하면서 비정규직 노조의 파업참가자들을 대상으로 징계했다. 이에 반발하여 비정규직 노조는 2011년 2월 2차 파업을 추진했으나 그 파업을 앞두고 노조임원의 조합비 유용 문제가 터지면서 곧바로 집행부가 사퇴하는 돌발 상황을 맞게 되었고 별 성과 없이 정규직화투쟁을 마무리하게 되었다.33) 집행부의 선임을 둘러싸고 비정규직 노조 내부의 정파갈등이 불거지면서 지도부 공백상태가 2012년 4월 새 집행부의 출범 때까지 14개월 동안 지속됐고, 그 결과 비정규직노조의 조합원 규모 역시 크게 줄어들었다.

    한편 비정규직 집행부의 공백상태가 지속되던 2011년 말에 비정규직 노조에의 연대활동에 우호적인 정규직 집행부가 출범하였으며, 2012년 2월에는 현대차의 불법파견 사용을 확인하는 대법원의 확정판결이 나왔다. 이 같은 외적 여건 변화와 더불어 감소추세에 있던 비정규직 노조 조합원수가 소폭 반등하는 등 정규직과의 연대 및 비정규직노조 부활의 새로운 계기가 마련됐다. 비정규직 노조의 집행부가 재구성 된 직후 원하청 연대회의를 복원한 정규직 노조와 비정규직 노조는 2012년 4월 통합대의원대회를 개최해 불법파견 특별교섭 6대 요구안34)을 확정하고 5월 중순부터 원하청노사 4자로 구성된 교섭에 돌입하게 된다. 통상 3월에 교섭요구안을 확정하는 정규직노조는 비정규직노조의 새 집행부가 들어서기 전에 이미 2012년의 단체교섭의제로 비정규직 정규직화를 포함시켜 불법파견문제의 해결에 적극적 의지를 보여주었다. 따라서 현대차 사내하청 문제 해결을 위한 교섭체계는 정규직노사의 단체교섭(본교섭)과 원하청노사의 4자간 특별교섭으로 나누어 진행되었다. 특별교섭에서 가장 큰 쟁점은 사내하청의 정규직화 방식에 대한 것이었다. 교섭초기 정규직-비정규직노조가 모든 사내하청을 일괄적으로 정규직화 할 것을 요구했던 데에 반해 원청회사는 △우선적 처우개선 및 단계적 정규직화, △공정재배치를 통한 진성도급화, △2년 미만 사내하청 노동자의 직영계약직 전환을 제시했다.35) 신규채용 시기나 규모에서 다소 변화를 보이기는 하였으나 기본적으로 사측의 정규직화 방안은 근속기간을 인정하지 않은 상태에서 기존 사내하청을 선별해서 채용한다는 입장이었다. 또한 사측은 당시 사내하청의 5분의 1에 달하는 2년 미만 사내하청 노동자 1,500여명을 직영계약직으로 채용함으로써 2012년 8월 개정파견법 시행에 따른 불법파견 소지를 차단하려 하였다.

    특별교섭이 개시된 지 한 달여 만인 2012년 6월 중순 정규직-비정규직 노조가 2년 미만 사내하청의 직영계약직 전환에 반대하며 교섭중단을 선언하자, 이에 맞서 회사는 2년 미만 사내하청 1,500여 명 중 1,300여 명에 대한 직영계약직 전환을 강행했다. 8월 중순 특별교섭이 재개됐지만 논의가 진전되지 않던 상황에서 회사는 특별교섭이 아닌, 정규직노조와 진행하고 있던 본교섭에서 3,000명 신규채용안을 제시했고, 정규직노조가 비정규직노조의 동의 없이 회사의 신규채용안에 합의할 것을 우려한 비정규직노조는 본교섭을 봉쇄하기 위해 연좌농성에 돌입하였다. 또한 비정규직노조는 불법파견 문제를 다루는 특별교섭이 진행되고 있는 만큼 정규직노조에게 본교섭과 분리해 처리할 것을 요청하기도 하였다. 당초 사내하청의 정규직화를 본교섭의 핵심요구로 삼았던 정규직 노조는 이 의제의 해결 없이 교섭타결이 어려울 뿐 아니라, 비정규직 노조의 요청을 이유로 불법파견 이슈를 특별교섭의제로 분리하는 방식으로 교섭방식의 조정을 거쳐 자신의 본교섭을 마무리하였다.36) 정규직 노조 집행부는 상대적으로 비정규직 노조와의 연대에 적극적임에도 불구하고 대법원 판결에 근거해 사내하청 전원을 일시에 정규직화 해야 한다는 비정규직 노조의 주장에 대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판단하며 회사측과의 절충안을 마련해보자는 주장을 막후협의과정에서 제시하시도 하였다. 이를 계기로 정규직-비정규직 노조의 관계는 멀어졌으며, 본교섭 종결 후 정규직 노조가 대의원 선거일정 등을 이유로 특별교섭에 불참함으로써 불법파견문제의 노사협상이 별 진척 없이 계속 미뤄지게 되었다.

    특별교섭이 지연되고 있던 10월 중순에는 비정규직노조 활동가 2명이 공장 근처 송전철탑에 올라가 이듬해 8월까지 고공 노숙농성을 진행하게 된다. 정규직노조는 10월 말 회사에 교섭재개를 요청하면서 연내타결을 위해 당초의 6대 요구안이 아닌, 3대 요구안37)을 제시했으나 그 내용이 6대 요구안에서 크게 후퇴한 데다 비정규직노조와 사전에 합의된 내용이 아니었기 때문에 오히려 비정규직노조와의 갈등이 더욱 심화됐다. 게다가 2012년 12월 회사가 기존보다 다소 진전된 안(3,500명 신규채용, 비정규직 해고자 100명 재입사)을 제시하자 정규직노조는 채용규모를 4,000명으로 늘리고 사내하청업체 근무기간을 인정하는 내용으로 잠정합의안 도출을 시도했다. 정규직 노조와 회사 측의 절충협의을 받아들이지 않았던 비정규직노조는 12월말 특별교섭을 앞두고 교섭장을 봉쇄하여 교섭을 중단시키는 독자행동을 결행하였다. 이에 따라 정규직노조와 비정규직노조가 서로를 비난하는 성명서를 발표하면서 불법파견 특별교섭을 둘러싼 정규직-비정규직 연대는 심각한 냉각국면에 들어서게 되었다.38) 결국 정규직 노조의 철수로 2013년 2월 들어 원하청공동교섭이 종결되면서 비정규직노조가 독자교섭을 추진했지만 원청은 일체 응하지 않는 가운데 자신들이 제시했던 방안대로 사내하청 인력에 대한 정규직 신규채용을 강행했다. 이에 반발하여 비정규직 노조는 4월부터 8월까지 현대차 본사 노숙농성 및 전면파업과 부분파업 등의 독자적인 투쟁활동을 전개하였다.39) 2013년 6월 불법파견 특별교섭이 재개되어 실무교섭이 진행됐으나 회사의 입장에 변화가 없어 별 진척을 보이지 못하는 가운데, 정규직-비정규직 노조 선거가 실시됨에 따라 2013년 9월에 그 교섭이 다시 중단되기에 이른다. 새로운 집행부를 선출한 후 정규직-비정규직 노조는 2014년 2월 회사와 교섭재개의 진정성 확인을 위한 간담회를 실시했으나 회사측이 기존 입장을 고수함에 따라 교착상태가 지속되고 있다.

    11)현대차 생산공장에서 사내하청 인력이 활용되기 시작한 것은 1980년대 중반부터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 이후 1998년의 외환위기를 거쳐 2000년대 초반에 이르는 기간 동안 현대차의 사내하청 인력 활용 동향에 대해서는 이병훈(2004b)을 참조할 것.  12)당시 현대차 노조집행부는 외환위기를 배경으로 회사가 무분별하게 사내하청 인력투입을 확대하는 것에 제동을 걸어 규제하려는 취지에서 16.9% 규정을 노사합의로 도입한 것이었다. 그러나 그 이후 이 단협규정은 정규직 노조가 정규직의 고용 안전판으로 회사의 비정규직 인력활용을 상당 규모 허용한 것으로 간주되어 비정규 노조들 뿐 아니라 많은 노동단체 및 진보적 사회단체들로부터 거센 비판의 대상이 되었다.  13)아울러 정갑득 집행부는 당시 하청업체의 경영진 비리와 탈법적인 노무관리를 시정하기 위해 3회 문제 적발시 해당 업체를 퇴출시키는 삼진 아웃제를 노사합의로 도입하는 한편, 작업현장에 비정규직에 대한 정규직 조합원들의 비인격적인 횡포가 자주 발생하자 대의원대회의 자정 결의를 거쳐 조합원의 행동규범을 제정하기도 하였다(이병훈, 2004b).  14)회사 관리자에 따르면, 2000년대 초반에 현대차 생산공장에는 사내하청 노동자들을 조직하기 위해 노조운동 경력 또는 학생운동출신의 활동가들이 다수 취업해 비공개적인 노조 조직화활동을 준비하고 있었다고 한다(이병훈, 2004b).  15)아산공장의 비정규노조는 정규직 활동가들의 지원을 받아 결성되었으며, 현재 금속노조 충남지부의 지회로 편재되어 있다.  16)아산공장 비정규직 노조의 설립에 자극받아, 울산공장의 한 비정규직 활동가가 “비정규직 인간선언”을 공개적으로 발표한 것이 비투위의 출범을 촉발하기도 하였다. 인간선언을 한 비정규직 활동가는 이후 비정규 노조의 초대 위원장으로 선출되기도 하였다.  17)아울러 정규직 노조 집행부는 공장 내 비정규직의 조직화를 전담하는 미조직 특별위원회를 구성하였으며, 사업부별로 원하청 공동투쟁위원회를 설치하여 정규직 활동가들이 하청 노동자들의 조직화활동에 적극 연대토록 격려하는 현장지원체계를 갖추기도 하였다.  18)울산공장 비정규노조는 금속연맹의 직가입 형태로 결성되었으며, 그 조직대상으로 1-2-3차 하청업체에 종사하는 모든 비정규직을 포괄하고 있다. 비정규노조의 창립규약에서는 정규직-비정규직 노동자들이 하나의 노조로 통합하는 것을 적극 추진하며, 이를 위해 정규직 노조와 지속적으로 협의해 나간다는 조항을 포함하고 있다.  19)비정규직 노조는 127명의 발기인으로 출범하였으며, 결성 초기에 정규직 활동가의 지원에 힘입어 약 600명 수준으로 조합원의 가입규모가 급속하게 증가하였다. 그런데 비정규직의 독자 노조결성에 대해 정규직 노조가 반대 입장을 천명하고 공식적인 지원을 중단하자, 비정규 노조의 조합원규모는 더 이상 증가세를 이어가지 못하고 오히려 감소하기 시작하였다. 다만, 정규직 노조의 공식입장과는 무관하게 일부 사업부(예: 1공장)에서 구성된 원하청노동자 공동투쟁위원회가 주축 되어 비정규 노조의 조직활동에 대한 정규직 활동가들의 지원이 활발하게 이뤄지기도 하였다.  20)비정규노조는 1차 하청업체의 근무조건이 정규직 노조의 대리교섭에 의해 상당히 향상되었던것에 비해 2-3차 업체의 처우여건이 상대적으로 열악한 것에 착안하여 출범 이후 후자 업체들을 대상으로 단체교섭과 파업투쟁을 집중하여 처우 개선의 상당한 성과를 거두었다(이병훈, 2004b).  21)2001년부터 대우캐리어·기아자동차 등에서 불법파견을 문제 삼는 사내하청 노동자들의 진정이 받아들여져 직접고용 등의 정부 조치가 취해지기 시작하였다. 참여정부는 불법파견문제의 심각성을 받아들여 2004년 5월 「간접고용 근로자 보호를 위한 사내하도급 점검확대 기본계획」을 마련하여 조선업과 자동차산업을 비롯한 8개 산업부문에 대한 특별근로감독을 강도 있게 실시하였다(노동부, 2007). 또한 참여정부는 2003년 말과 2004년 초에 현대미포조선과 금호타이어에 대한 불법파견 판정을 내려 직접고용 또는 고용의제의 시정조치를 단행하였다.  22)울산 지방노동사무소는 2004년 9월에 비정규노조가 진정한 현대차와 12개 하청업체에 대해, 그리고 같은 해 12월에 정규직 노조가 제소한 101개 하청업체에 대해 모두 불법파견으로 판정하였다.  23)조돈문(2014)에 따르면, 이같이 회사의 폭력적인 탄압이 자행된 것은 비정규직 노조의 파업 장기화를 우려한 정규직 노조 집행부 및 사업부 대표가 암묵적으로 용인해줌으로써 가능하였던 것으로, 정규직 노조의 연대 기피로 비정규직 투쟁이 사측의 탄압에 그대로 노출되었음을 보여주는 뼈아픈 사례이다  24)2005년 1월 비정규직 노조의 파업 과정에 정규직 노조의 전직 위원장들이 기자회견을 열어 불법파견을 묵인-방조해온 기존 노조 활동을 반성하는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하였다.  25)그 진통의 발단은 특별교섭에서 분규행위에 대한 면책권을 확보하지 못한 채 합의하였다는 이유로 비정규직 노조 집행부의 직권조인으로 몰아붙인 내부 비판에서 비롯된 것인데, 그 이면에서는 비정규직 노조 내부에 존재하는 활동가 정파조직들 간에 과도한 경쟁이 벌어져서 발생한 사태로 볼 수 있다.  26)금속노조의 신설된 규약 제44조 2항에는 “비정규직, 사무직에 대한 조직편제는 1사1조직을 원칙으로 한다. 단, 해당단위의 결정에 따른다”고 명시하고 있다. 이때, 1사1조직 원칙은 실제적으로 한 사업장내에 종사하는 정규직과 비정규직을 하나의 조직으로 통합함으로써 미조직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조직화하려는 전략적 방침이라 말할 수 있다(홍석범, 2011).  27)현대차 전주공장의 비정규직 노조는 2005년 3월에 설립되었으며, 금속노조 전북지부에 소속되어 있다.  28)당시 대의원대회에 참가하였던 대의원들 사이에서는 1사1조직의 규약개정이 이뤄질 경우 “비정규직에게 정규직 노동조합이 먹힌다”라는 얘기가 널리 유포되어 표결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던 것으로 알려졌다(홍석범, 2011).  29)2-3차의 수정 규약개정안에는 현대자동차와 현대모비스의 사업장 안에 종사하는 노동자들로 그 가입대상을 제한하였다.  30)울산 비정규직 노조는 규약개정에서 사내하청 노동자들을 바로 정규직 노조의 선거구로 통합 편제할 것을 주장하는 반면, 아산·전주공장의 비정규직 노조는 정규직 노조가 지역지부로 재편될 때까지 한시적으로 독자적인 비정규직 지회의 조직체계를 인정해줄 것을 요구하였다. 비정규직 노조들 간의 이 같은 입장 차이는 그 이후에도 지속되어 2012∼2013년에 정규직 노조의 문용문집행부가 다시금 1사1조직 규약개정을 시도하는 과정에도 표출되어 결국 그 시도를 무산시키는 결과를 낳기도 하였다.  31)당시 울산공장과 전주공장의 비정규직 노조 간부였던 활동가들에 따르면, 당시 정규직 노조의 박유기위원장이 1사1조직 규약개정안을 찬반표결이 아닌 만장일치로 처리하였다면 무난하게 통과하였을 것이라는 점과 소위 회사측의 대의원들이 강력하게 반대의견을 주장하여 대의원대회의 분위기를 부정적으로 유도하였다는 점이 증언되고 있다.  32)대법원은 “현대차 울산공장의 사내하청이 도급관계가 아니라 원청이 작업지시권을 행사하는 파견관계에 있고, 구 파견법에 따라 2년을 초과해 근무한 경우에는 2년이 초과한 시점부터 사용사업주인 현대차가 파견노동자를 직접 고용한 것으로 간주한다”고 판시했다.  33)2차 파업 돌입 직전에 비정규직노조 임원의 조합비 유용사건이 전직 지회간부에 의해 폭로된것을 둘러싸고 의혹이 제기되기도 하였다. 실제 비리를 폭로한 전 사무장이 회사관리자와 통화하였거나 자신의 계좌번호를 보낸 흔적들이 포착되면서 비정규직 노조의 2차 파업을 저지하기 위한 사측 개입설이 비정규직 활동가들 사이에 유포되었던 것이다.  34)6대 요구안은 다음과 같다: △모든 사내하청 정규직 전환, △손배, 가압류, 징계, 고소고발 등 철회, △대국민 공개사과, △이후 비정규직 사용금지, △비정규직 대상 구조조정 중단, △비정규직 노조에 대한 근기법 준수 및 노조활동 보장.  35)정규직 전환대상이 되는 사내하청을 산정하는 방식에서도 노사 간의 입장이 첨예하게 대립했다. 비정규직노조는 생산부문 사내하청 전체(전 공장 기준 8,500여명)를 전환대상으로 요구하였던 것에 비해, 정규직노조는 생산부문의 1차 사내하청 중 직영계약직으로 전환된 1,300명을 제외한 6,800여명(전 공장 기준)만을 전환대상으로 간주하였다. 반면 회사는 생산부문 1차 사내하청 중정규직/비정규직 공정분리가 이미 완료됐거나 예정된 공정을 제외한 3,000-3,500여명만을 전환 대상으로 봐야한다는 입장을 내세우고 있다. 게다가 현대차는 이미 2016년까지 2,800여명의 정년퇴직자를 예정하고 있었기 때문에 사내하청의 정규직 전환과 관계없이 대규모 신규충원이 필요한 상황이었다.  36)교섭 중에 요구안을 변경하기 위해 대의원대회를 여는 것은 흔치 않은 일임에도 불구하고 실제로 정규직노조는 교섭장이 봉쇄된 지 일주일 후 비정규직노조의 요구대로 비정규직 정규직화를 본교섭의 다른 안건들과 분리하기 위해 대의원대회를 소집했다. 그러나 의결정족수 미달로 안건이 보류됐고, 8월말 정규직노사의 임금인상 잠정합의안을 도출하되 비정규직 정규직화는 별도 협의를 지속하는 것으로 정리됐다.  37)3대 요구안은 “① 대법원 판결 당사자에 한해 정규직 고용, ② 비정규직 전환 시 비정규직노조조합원 우선 대상자 선정, ③ 비정규직노조 해고자 복직”을 꼽을 수 있다.  38)정규직과 비정규직의 노조가 특별교섭과정에서 갈등을 겪게 된 결정적인 이유의 하나는 후자에 의한 두 차례 교섭장 봉쇄 때문이었다. 그런데 불법파견 특별교섭 공동교섭단이 정규직 노조 23명, 비정규직 노조 6명, 금속노조 2명으로 구성되어 있어 다수결주의로 운영되는 교섭에서 비정규직 노조의 소수 입장이 반영될 여지가 거의 없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비정규직 노조의 강경한 행동을 수긍할 수 있다. 이 같은 이유로 비정규직 노조는 2012년 8월, 2012년 12월 두 차례에 걸쳐 교섭장 봉쇄를 위한 물리력을 행사하였던 것이다.  39)회사의 일방적인 신규채용에 따른 조합원의 이탈, 지속되는 오랜 투쟁으로 인해 비정규직 노조의 조합원 수는 2013년 12월 현재 900명 수준으로 급감하였다.

    Ⅳ. 현대차 울산공장 정규직-비정규직 연대정치의 제약요인

    〈그림 3〉의 조합원 규모 추이에서 단적으로 드러나듯이, 현대차 울산공장 비정규직 노조의 활동은 2003년 설립 이후 최근까지 고양과 쇠퇴의 국면전환을 되풀이하여 왔다. 비정규직 노조는 2005년 중반과 2010년 중반에 조합원의 신규 가입이 급격하게 늘어나는 고양국면을 맞이하기도 하였지만, 그 밖의 기간에는 조합원 수의 감소세에서 나타나듯이 전반적으로 침체상황에 놓여 있었다. 더욱이 비정규직 노조에 조합원 증가세가 주체적인 요인에 의해서라기보다는 노동부의 불법파견 판정(2004년 하반기)과 대법원의 불법파견 판결(2010년 7월)과 같은 외부의 우호적인 기회구조가 조성됨으로써 촉발된 것이라는 점에 유의할 필요 있다.

    현대차 울산공장에 국내에서 가장 강력한 정규직 노조가 존재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할 때, 비정규직 노조의 부진한 활동 상황은 이들 노조 간의 연대정치가 그리 원활치 않았음을 여실히 보여주는 것이라 하겠다. 사실 (3절에서 살펴봤듯이) 비정규직 노조의 독자 결성으로부터 1-2차 불법파업투쟁에 대한 원하청연대활동의 미흡, 그리고 1사1조직 규약개정의 실패에 이르는 여러 에피소드에서 드러나듯이 지난 10여 년 동안 현대차 울산공장에서 정규직 노조와 비정규직 노조는 연대적 결속을 강화해오기 보다 탈연대(de-solidarity)의 균열을 심화시켜온 것으로 평가될 수 있다.40)

    그러면 어떠한 요인들이 현대차 울산공장에서 정규직-비정규직의 연대가 발전하는 것을 제약하였는가? 우선, 선행연구에서 공통적으로 지적되었던 여러 요인들이 현대차 정규직-비정규직의 연대정치에 크게 영향 미치고 있음을 확인케 된다. 정규직 노조 집행부의 이념적 성향과 연대의지(윤영삼, 2010; 정이환, 2003; 조돈문, 2008; 홍석범, 2011), 정규직-비정규직 노조의 상호 신뢰와 이해조절능력(윤영삼, 2010; 정이환, 2003), 자본의 통제 전략(윤영삼, 2010; 정이환, 2003), 노조내부의 분파경쟁(윤영삼, 2010), 그리고 정규직 조합원들의 구조조정경험과 연대태도(정이환, 2003; 조돈문, 2008) 등이 현대차 정규직-비정규직의 연대정치를 제약하고 있는 주된 요인이었음을 손쉽게 파악할 수 있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정규직 노조 집행부는 정규직-비정규직의 계급적 연대를 공개적으로 천명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1사1조직의 규정개정 처리 실패와 1-2차 불법파견 투쟁에의 지원거부 등에서 나타나듯이 탈연대적 태도를 보임으로써 비정규직의 조직화와 집합행동에 결정적인 제동요인으로 작용하였다. 물론 일부 정규직 노조 집행부(예: 박유기 위원장과 문용문 지부장의 집행시기)의 경우에는 비정규직 노조와의 연대에 적극적거나 우호적인 태도를 보이기는 하였지만, 그 외의 집행부에서는 표방하는 이념적 성향-실리주의 또는 강경전투주의-에 관계없이 비정규직 노조활동에 대해 배제적이거나 소극적 관여의 입장을 견지하였던 것을 확인케 된다. 또한 정규직 노조와 비정규직 노조(또는 활동가집단)가 비정규직 노조의 출범과정과 1사1조직 규정개정에서 효과적인 입장 조율을 해내지 못하였거나 안이한 낙관론 속에서 소기의 목표를 제대로 성취하지 못하는 등 상호불신과 미숙한 집행력의 문제점을 드러냈다. 정규직 노조와 비정규직 노조의 활동가집단 내부에 존재하는 정파적 경합구조는 이들 노조 간의 원활한 소통과 연대활동 전개에 상당한 지장을 안겨주었다. 아울러 정규직 노조 집행부와 활동가들은 1998년 구조조정의 뼈아픈 경험을 트라우마로 내면화하고 있는 정규직 조합원들의 불안심리를 의식하여 사내하청 노동자들에 대해 연대적 관계로 뿐 아니라 고용안정을 위한 완충으로 간주하는 이중적인 태도를 보여줌으로써 지난 10여 년 동안 연대정치의 진전을 가로막기도 하였다. 마지막으로, 현대차 경영진은 비정규직 노조의 출범을 막지 못했지만 그 이후 1사1조직 규약개정의 추진국면에서 대의원대회에서 정규직-비정규직의 조직적 통합을 저지하는 데에 성공하였고, 1-2차 불법파견 투쟁국면에서는 장기적인 법정 투쟁을 유도하면서 사내하청의 정규직화를 둘러싼 원하청연대를 분열시키는 대응전략을 효과적으로 구사해옴으로써 정규직-비정규직의 연대정치를 무기력하게 만들었다.

    이같이 기존 연구에서 검토해온 영향요인들을 중심으로 현대차 울산공장의 정규직-비정규직 연대정치가 약화되어온 과정을 설명해볼 수 있다. 그런데 자본의 분열통제전략이나 조합원들의 구조조정경험과 고용불안심리 그리고 노조내부의 정파경쟁은 정규직-비정규직 연대정치에 주어진 외적 제약조건이라고 간주할 수 있다. 이러한 제약조건 속에서 정규직-비정규직의 연대를 강화하느냐 또는 약화시키는가는 여전히 정규직 노조와 비정규직 노조라는 두 주체의 몫으로 남겨져 있는 것이다. 그런데 현대차 울산공장의 정규직 노조와 비정규직 노조가 서로 연대하지 못하고 배타적인 행위전략을 선택하는 것에 대해 노조 지도부의 이념적 성향이나 연대의지 부족만으로 설명하기에는 충분치 않다. 비정규직 노조의 결성 단계에서부터 2차 불법파견 투쟁의 국면에 이르기까지 정규직 노조와 비정규직 노조가 서로 연대하기보다(비정규직 노조의 경우) 독자적 행동으로 나서거나 (정규직 노조의 경우) 소극적 또는 배제적 태도를 보이면서 탈연대적 상호관계를 갈수록 강화시켜온 배경 사정에 대해 좀 더 깊이 있는 논의가 필요하다.

    이질적인 지위나 조건에 놓여 있는 노동자집단들이 그 차이를 넘어서 하나 되는 결속감을 형성하여 공동행동을 실천할 수 있을 때 노동자연대는 진정하게 실현되는것이라 할 수 있다.41) 특히 노조들이 연대적 관계를 형성-발전시키기 위해서는 그 노조들을 이끌어가는 지도부가 서로의 운동 목표와 행동전략을 공유-일치시키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42) 이때 운동목표와 행위전략의 공유는 노조 주체들이 당면한 상황과 현실문제에 대한 공통의 인식을 가질 때 가능할 것이다. 그런데 현대차 울산공장 정규직 노조와 비정규직 노조(또는 비투위)는 불법파견 정규직화를 목표로 내세운 계급적 연대를 공언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당면한 상황에 대한 인식을 달리하며 독자적이거나 상호 배타적인 행동을 되풀이 하는 것을 확인케 된다. 비정규직 노조는 취약한 운동자원과 불안정한 활동기반으로 인해 사측으로부터의 탄압으로 조직이 와해되는 것을, 그리고 정규직 노조의 보호에 의존-예속되어 조직적 정체성을 상실하는 것을 우려하는 위기의식을 갖고 있었으며, 또한 불법파견의 당사자인 만큼 그 문제의 해결에 마땅히 주도적인 역할을 담당하기를 바랐다. 그런 만큼 노조 출범이나 불법파견 투쟁에서 보여주듯이 비정규직 노조는 정규직 노조의 준비여부나 협조태도에 관계없이 자신의 주도하에 조속한 문제 해결을 위한 독자적인 행동이나 투쟁을 감행하였던 것이다. 1사1조직 규약개정의 협의과정에서도 비정규직 노조(들)은 선거구 편제 또는 부문특별위원회 구성 등과 같이 자신의 입장에서 바라는 바를 요구하였을 뿐 정규직 대의원들의 부정적인 분위기를 사전 파악-개선하려는 노력을 기울이지 못하였다. 한편 정규직 노조는 민주노조운동의 선봉이라는 위상을 갖고 있다는 점에서 그리고 비정규직 문제해결을 요구하는 사회적 여론이 크게 압박하는 여건하에서 집행부의 성향과 무관하게 공장 내 불법파견의 문제해결과 비정규직과의 연대를 소홀히 할 수 없었다. 하지만 정규직 노조는 4.7만 명에 달하는 조합원(울산공장의 경우 24,300명)을 대표하는 거대한 조직으로서 복잡한 집행체계와 절차에 따라 운영되고 있을 뿐 아니라, 2000년대에 들어 현대차와의 안정적인 노사관계를 유지하면서 조합원들의 실리확보에 상당한 성과를 거두는 등 사업장 내 확고한 권력기반을 유지-행사해오고 있다. 이같이 정규직 노조는 사업장 내 안정적 권력지위를 확보하고 막대한 조직 자원을 활용할 수 있는 주체적 상황여건 하에서 사업장 내 비정규직의 조직화와 불법파견협상에 대해 자신의 주도하에 그 진행을 통제하려 함과 동시에 자신의 절박한 문제가 아닌 만큼 사내하청의 조속한 문제해결에 적극적으로 책임지려 하지 않는 이중적인 태도를 보여주었다. 실제 정규직 노조는 비정규직 노조의 설립에 대해 자신의 산별전환계획과 연계시켜 추진코자 하였으며, 불법파견의 노동부 진정과 원하청 특별교섭의 전개에 대해 자신의 사업일정에 따라 진행하여 결과적으로 비정규직 노조와 분리된 대응을 초래하였다. 또한 1사1조직의 규약개정에 대해 정규직 노조는 산별방침에 따라 추진하기는 하였으나, 그 파급효과에 대한 조직내부의 논란과 비정규직 노조들의 입장 차이를 적극적으로 해소하여 통과시키려는 노력을 경주하지도 않았다.43)

    정규직-비정규직의 노동연대가 이뤄지려면 각 집단이 처한 상황논리에서 벗어나공통의 인식틀과 상황해석 그리고 전략적 접근이 요구되는 것인데, 현대차 울산공장의 정규직 노조와 비정규직 노조는 상대가 처한 상황이나 입장을 고려치 은 채 각자의 주체적 상황에 사로잡혀 자신의 입장에서 당면한 문제를 판단하고 서로 어긋나는 활동전략을 구사하여 왔다. 비정규직 조직화와 1-2차 불법파견투쟁 및 1사1조직의 규약개정 등에서 정규직 노조와 비정규직 노조는 상호 배타적인 활동을 벌여 서로의 불신을 키우고, 그 불신에 근거하여 다시 자신의 입장을 강화하여 상대를 배제하는 활동을 전개하게 되는 탈연대의 악순환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원하청연대회의에서 공동결정·공동투쟁·공동책임의 연대원칙을 훌륭하게 마련하였지만, 전연정규직-비정규직의 연대정치에는 관철되지 못한 채 공허한 구호로만 존재케 되었던 것이다. 이에 더하여 우연적 상황이 현대차 정규직-비정규직 노조의 연대정치를 착종하게 만들고 있다는 점이 특기할 만하다. 구체적으로, 2003년 비정규직 노조의 준비과정에서 5공장 사내하청 인력감축의 돌발 상황이 비투위 활동가들로 하여금 독자적인 노조의 설립을 서두르게 만들었던 점이나, 2006년의 임단협교섭과 특별교섭에서 원하청연대의 좋은 본보기를 보여주었던 정규직 노조의 박유기 집행부가 내부비리의 예상치 못한 사건으로 조기 사퇴함으로써 그 이후의 정규직-비정규직 연대관계에 찬물을 끼얹는 상황을 연출하였다는 점 등을 살펴볼 수 있다. 비정규직 노조에게 우호적인 기회구조를 안겨주었던 2004년 노동부의 불법파견 판정과 특히 2010년 대법원의 불법파견 판결 역시 비정규직 노조의 선도적인 투쟁을 부추기는 갑작스런 상황 전개로서 정규직-비정규직 노조의 연대정치에는 상당한 부담요인으로 작용하기도 하였다. 이같이 상황인식의 공유를 하지 못하는 정규직-비정규직 노조들에게 돌발적인 사건 발생이나 상황 연출이 연대정치의 진전을 저해하고 탈연대의 배타적 행보를 더욱 강화하는 방향으로 작용하였던 것이다.

    40)물론 1공장과 같이 일부 사업부에서 원-하청 연대활동이 활발하게 전개되어온 경우도 있다. 그러나 이 글에서는 울산 공장의 정규직과 비정규직을 각각 대표하는 노조 차원의 연대정치에 대해 검토-평가하고 있는 만큼, 사업부 수준의 연대활동에 대해 다루지 않고 있음을 밝혀둔다.  41)촐(Zoll, 2000)에 따르면, 산업사회에서의 노동연대는 노동자들의 동질적인 조건이나 이해관계에 기반하는 기계적인 연대(mechanistic solidarity)가 지배적이었으나, 탈산업화 사회에 들어서는 고용구조의 다원화를 통해 이질적인 조건이나 이해관계를 갖는 노동자들 사이의 유기적 연대(organic solidarity)를 형성하는 것이 노동운동의 핵심적 과제로 지적되고 있다. 참고로, 강수택(2012)은 연대에 대해 다양한 사회구성원들이 상상의 공동체를 형성하는 것으로 정의하고 있다.  42)물론 노조가 조합원들의 자발적 결사체라는 점에서 노조 연대에는 상이한 조합원 집단들 사이에 공통된 이해관계와 정서적 공감대 그리고 사회적 친밀감 등이 중요하게 작용한다는 점을 유의할 필요 있다.  43)2008년 10월에 개최된 대의원대회에서 비정규직에 대한 1사1조직 편제의 규약개정은 부결되었으나, 일반관리직 사원의 조합원 가입 및 일반직 지회 설치에 대해 의결 처리하여 정규직 노조의 대조적인 대응태도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Ⅴ. 맺음말: 요약과 시사점

    〈표 2〉는 현대차 울산공장에서 지난 10여 년 동안 정규직 노조와 비정규직 노조의 상호관계가 연대와 배제 그리고 갈등으로 복잡하게 전개되어온 변화궤적을 요약-제시하고 있다.

    2003년 사내하청 노동자의 조직화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정규직 노조와 비정규직 활동가들(비투위)은 직가입 방식으로 통합적인 노조체계를 구축한다는 기본 방향에 대해 공감대를 보여주어 계급적 연대의 실현가능성이 어느 정도 존재하였다. 하지만 조직화의 일정과 절차를 둘러싼 입장 차이를 극복하지 못하고 비정규직 노조가 독자적으로 결성됨으로써 정규직-비정규직의 연대정치는 초기 단계부터 균열의 조짐을 드러냈다. 그 이후 1차 불법파견투쟁, 1사1조직 규약개정, 그리고 2차 불법파견투쟁을 거치면서 정규직-비정규직 노조는 시간이 지날수록 상호 거리감(inter-distancing)이 확대됨으로써 탈연대(de-solidarity)의 궤적을 보여온 것으로 요약해볼 수 있다. 물론 2005년 노동부의 불법파견 판정과 2010년 대법원의 불법파견 판결과 같이 외부에서 주어진 기회구조에 의해 한때 비정규직 노조의 조직규모가 급반등하였으나, 이 역시 정규직-비정규직 노조의 상호관계를 호전시키는 방향으로 작용하기보다 이들 노조의 각개적 행동과 우연적 상황변수들로 인해 기존의 균열을 확대재생산하는 것으로 귀착하였다. 이 사례연구를 통해 정규직-비정규직 노조의 연대정치가 조직화방식을 둘러싼 초기균열로부터 불법파견투쟁과 1사1조직 규약개정 등과 같은 좌절된 에피소드들을 연이어 경험하면서 상호불신과 거리두기의 탈연대로 귀착되어가는 순차적 인과과정(sequential causal processes)을 이론적 함의로 주목케 된다.

    현대차 울산공장 정규직-비정규직 노조의 연대정치를 살펴본 사례연구를 통해 도출되는 또 다른 이론적 시사점으로 연대정치의 성패여부가 노조 지도부 및 활동가의 운동적 프레임 공유 여부, 즉 각 집단의 상호배타적 활동프레임을 벗어나 공통의 운동비전과 전략적 인식틀을 마련할 수 있는가에 달려 있다는 점을 강조케 된다. 이질적인 고용지위에 놓여 있는 정규직-비정규직 노동자집단 간에 연대적 결속을 구현하기 위해서는 선행 연구에서 지적하듯이 각 집단을 이끌어가는 노조 지도부 및 활동가의 입장과 태도성향이 중요 결정요인으로 작용하고 있음을 현대차 사례연구에서도 재확인되고 있다. 다시 말해, 상이한 고용지위 또는 작업장 신분을 갖고 있는 노동자집단 사이의 연대를 형성-발전시키는 데에는 각 노동자집단을 대표하는 노조의 지도부 및 활동가들이 이들 노동자집단의 이해관계·정서 차이를 극복하고 계급적 결속을 구현하려는 목적의식적인 노력이 필수적으로 요구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번 연구를 통해서는 정규직-비정규직 노조의 지도부 및 활동가들이 자신의 노조 조직이 처한 상황논리에 사로잡혀 상호 연대를 위한 상황인식 공유와 공동의 실천적 대응을 도모하기 보다는 자기중심의 활동전략에 입각하여 서로 배제하는 어긋남의 탈구적관계(disarticulated relationship)를 확대시켜온 연대정치의 실패과정을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정규직-비정규직 노조의 지도부들은 노동자연대의 대의명분을 공유-천명해오고 있지만, 각자 조직의 처한 상황과 운동적 경험 차이 등에서 비롯되는 상이한 상황적-위치적 활동프레임의 덫(trap of situational-positional activism framing)에 갇혀 당면한 과제들에 대해 공통 진단·해석과 공동대응의 계급적 연대를 도모하기 보다 각개적 또는 배타적인 상황인식과 실천전략에 사로잡혀 상호 각축과 불신의 악순환을 심화시켜 온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분절적 고용관계의 확산을 통해 이질적 노동자집단들이 혼재하는 생산현장이 날로 늘어나는 작금의 노동시장 속에서, 그리고 노조운동의 조직적 결집력이 상대적으로 취약해지는 상황을 맞이하여 노동자연 대의 실패와 좌절은 이 같은 위협조건들의 객관적 구조에서 비롯되는 것이라기보다는 그 객관조건들에 대해 서로 다른 노동자집단의 운동주체들이 상이한 주관적 인식-판단-전략화를 고집-추구하여 탈연대적 관계를 확대-생산함으로써 초래되고 있음을 확인케 되는 것이다.

    이번 사례연구는 정규직-비정규직 노조들의 연대정치에 분석의 초점을 맞추다보니 혼재인력의 생산현장에서 간여-개입하는 다양한 주체들(예: 원청-하청 사용자의 대응전략과 정규직-비정규직 조합원들의 정서와 상호관계, 그리고 국가기관의 규제역할 등) 및 외부 제도적 환경이 미치는 영향을 폭넓게 고려-규명하지 못하였다는점과 정규직-비정규직 연대에 대해 각 노조의 내부정치와 계파갈등이 어떻게 작용하였는지를 충분히 논의하지 못하였다. 이 같은 연구 한계에 대해서는 노동자연대의 성공조건을 밝혀내기 위한 추후의 연구과제로 삼아 심층적 분석이 수행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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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표 1?] 정규직-비정규직 노동자 연대에 대한 영향요인
    정규직-비정규직 노동자 연대에 대한 영향요인
  • [?그림 1?] 원청-사내하청 노동자집단의 연대정치를 둘러싼 사업장 내 상호관계 망
    원청-사내하청 노동자집단의 연대정치를 둘러싼 사업장 내 상호관계 망
  • [?그림 2?] 현대차 생산공장 의장라인 정규직-비정규직의 혼재공정 예시
    현대차 생산공장 의장라인 정규직-비정규직의 혼재공정 예시
  • [?그림 3?] 현대차 울산공장 비정규노조의 조합원규모 추이
    현대차 울산공장 비정규노조의 조합원규모 추이
  • [?표 2?] 현대차 울산공장 정규직-비정규직 연대정치의 전개과정
    현대차 울산공장 정규직-비정규직 연대정치의 전개과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