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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A 학술지
전 지구적 여성 노동과 상품-이미지의 연금술 -미카 로텐버그의 <스퀴즈>를 중심으로- An Alchemy between Global Female Labor and Commodity-image in Mika Rottenberg’s Squeeze
  • 비영리 CC BY-NC
ABSTRACT
전 지구적 여성 노동과 상품-이미지의 연금술 -미카 로텐버그의 <스퀴즈>를 중심으로-

This paper aims to discuss the relationship between commodity-image and labor with a female body as a node in Squeeze (2010) made by Mika Rottenberg. Rottenberg based in New York, has explored a female body creating the value in her previous videos. All of her videos including the latest work, Squeeze, shares common theme. It is the question how the value is produced in the capitalist system of the 21st century or more specifically how female image is created in the mode of production of the contemporary economic system. Squeeze recursively asks the same question to the visual art including her own works as well. In order to answer the question, Rottenberg has constructed several miniature factories exposing the process that the value of a product including visual image has been generated in every video work. Each factory in each work has different form, structure and movement. According to Rottenberg, the way capturing a movement and rhythm of each factory has an analogical relation with a cinematic ability that can externalize the internal perception. Cinema can uniquely visualize and articulate internal thoughts and affects on its surface, that is, screen.

In order to produce excess value and maximize profits, today’s capitalism prefers immaterial labor to material one, and attempts to transform the non-productive into the productive. We call this kind of capitalism as cognitive or mental capitalism. In this system, the economy of spectacle in the virtual might not be distinguished from a general economy in reality. The economy of image, of course, is related with the matter of desire. The more desirable the image becomes, the more values it can produce. Spectacle of female body on screen has been an articulation of desirability and image value. In the logic, she deals female body image and her labor as a crucial key to reach the core of the mode of capitalist production in the 21st century. This paper especially examines the matter of female body image and labor in Squeeze in terms of the concept of the fetish and the abject.

KEYWORD
Mika Rottenberg , Squeeze , female body , commodity-image , post-fordism , immaterial labor , fetishism , abject
  • 1. 들어가며

    이 글은 미카 로텐버그(Mika Rottenberg)의 비디오 설치 <스퀴즈Squeeze>(2010)의 분석을 통해 전 지구적 자본주의 경제에서 이미지 생산과 노동의 관계를 논하는데 목적이 있다. 아르헨티나 출신으로 이스라엘에서 성장해, 현재는 뉴욕에서 활동 중인 로텐버그는 여성의 신체를 노드(node)로 해서 이미지와 노동의 관계를 집중적으로 탐구해왔다. 최신작인 <스퀴즈>를 포함해 로텐버그의 모든 작품은 공통된 주제를 갖고 있다. 그것은 바로 ‘점점 더 비물질 노동에 집중되고 있는 동시대 자본주의 경제 체계 내에서 가치는 어떻게 생산되는가?’라는 질문이다. 그리고 이 주제를 탐색하기 위해 필수적인 질문인 ‘자본주의 생산 양식에서 여성의 이미지와 시각예술은 어떻게 가치를 창출해 왔는가?’를 덧붙인다. 전통적인 여성 노동의 양태와 시각 이미지야말로 비물질 노동과 생산의 핵심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20세기 대표적 시각예술인 영화는 그 탄생부터 자본주의의 발전과 긴밀한 관계를 맺어왔으며 이미지의 생산과 조작적 구성을 통해 상당한 가치를 생산해온 상품이다.

    로텐버그는 이 커다란 질문에 답하기 위해 모든 비디오 작품에서 가치를 생산하는 과정을 노출시키는 미니어처 공장을 창조적으로 설계해왔다. 각 비디오 작품의 공장은 생산해내는 각기 다른 상품에 맞게 서로 다른 형식과 운동을 갖고 있다. 한편 체리, 밀가루 반죽, 화장지, 치즈, 예술 작품 등을 생산하는 공장은 모두 그 자체로 영화 기계가 된다. 로텐버그에 따르면 상품을 생산하는 과정을 기록하고 공장의 운동과 리듬을 포착하는 작업은 내적인 것을 외화하는 영화의 보편적 능력과 유비적 관계를 맺는다.1) 영화는 내적 사유와 감정, 신체의 지각을 표면으로 끌어올려 절합하고 시각화하는 고유한 능력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성장이 둔화된 시점에 자본주의가 잉여가치의 생산을 위해 물질 노동보다 비물질 노동에 집중하고, 비생산적인 것을 생산적인 것으로 전치시키는 인지 자본주의 혹은 포스트-포디즘(postfordism) 체제에서, ‘어떤 이미지가 가치를 생산하고, 그 이미지의 가치 창출 방식은 어떻게 되는가?’라는 이미지 경제학은 더 이상 현실의 일반 생산 양식과 구분되지 않는다. 오히려 이미지 경제학은 일반 경제의 핵심이 된다. 또한 이미지 경제는 욕망과 분리될 수 없다. 더 많은 관심과 욕망의 대상이 될수록 그 이미지는 더 많은 가치를 생산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로텐버그는 여성의 (몸) 이미지와 여성의 노동 양태를 자본주의 생산 양식의 핵심에 다가갈 수 있는 열쇠로 다룬다. 대중영화는 고전 할리우드 영화 시기부터 여성 이미지를 오랫동안 (이성애적) 욕망의 대상으로 그려온 역사가 있으며, 여성의 성적 이미지는 어떤 다른 이미지보다도 큰 경제적 가치를 생산해왔기 때문이다. 따라서 여성의 신체 이미지와 노동의 양태에 대한 연구는 오늘날 자본주의 메커 니즘을 파악하는 핵심이 된다. 다시 말하면, 로텐버그는 여성 노동의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동시대 자본주의 체제를 연구하는 것이 아니라, 변화된 자본주의 양식을 이해하기 위해 여성 노동을 연구한다.

    이것이 바로 로텐버그가 현재의 자본주의 공장을 시뮬레이션 하면서 여성의 몸과 노동에 초점을 둔 이유이다. 여성의 몸을 통해 이미지를 둘러싼 욕망과 노동의 문제를 절합하는 방식(즉 경제학과 정신분석학의 절합)은 비물질 생산에 물질 생산이 필수적이고, 더 나아가서 이 둘이 구분되지 않는다는 로텐버그의 주장을 이해할 수 있게 해준다. 본고는 로텐버그의 작품에 드러난 이와 같은 질문과 주장을 이론적으로 확장하기 위해 물신(fetish)과 비체(abject)의 개념을 통해 <스퀴즈>가 그리고 있는 여성 이미지와 노동의 문제를 분석하고자 한다.

    1)Mika Rottenberg, “Mika Rottenberg” interviewed by Judith Hudson, BOMB, Issue 113, Fall, 2010. http://bombmagazine.org/article/3617/

    2. 가치를 창조하는 여성 신체: <메리의 체리>에서 <치즈>까지

    로텐버그의 최신작인 <스퀴즈>는 주제, 형식, 운동, 건축구조 등 모든 측면에서 전작의 종합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에, 전작의 공통된 주제와 변화의 추이를 파악하는 것은 <스퀴즈>를 이해하는데 큰 도움을 준다.2) 로텐버그의 모든 작품은 초현실적이고 비뚤어진 동화의 형식을 갖고 있지만 대부분 실제 인물이나 이야기에 근거한다. 더 나아가 출연 배우들은 모두 현실에서 그들이 실제로 갖고 있는 재능과 직업 때문에 기용되었다. 그들이 갖고 있는 신체적 특징과 직업은 작품속 캐릭터로 연장되며, 각 비디오의 형식과 내용을 결정한다.3) 그래서 로텐버그의 비디오 작품은 초현실적이고 허구적인 공간에 기괴하고 환상적인 요소로 가득 차 있지만, 동시에 매우 사실적이며 스크린 안과 밖이 연장되는 다큐멘터리적 성격을 갖는다. 자기 자신의 역할을 수행하는 로텐버그의 배우들은 빌 니콜스가 다큐멘터리에 출연한 사람들을 ‘사회적 배우’라고 부른 것의 특징을 갖고 있다.4) 그러나 환상적이고 허구적 공간 내에서 수행하기 때문에 다큐멘터리의 사회적 배우와 동일하지는 않다. 차라리 그녀들의 신체는 스크린 안과 밖에 원격현존(telepresence)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5) 이렇게 로텐버그의 비디오는 환상성과 사실성, 초현실과 현실을 구분되지 않게 섞는다. 이런 설정은 프로이트의 개념 ‘두려운 낯선(uncanny)’ 상태를 연상시킨다.6) 이 익숙하지만 기이하고 낯선 감정은 자본주의 특유의 것으로 다뤄진다. 로텐버그의 작품을 연대기 순서로 살펴보면서 이러한 특징들을 포착해보자.

    첫 작품 <메리의 체리Mary’s Cherries>(2004)는 자신이 희귀한 혈액형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한 후 직장을 그만두고 매혈로 생계를 유지하고 있는 여자의 실제 이야기에서 영감을 받아 만든 작품이다. 이 비디오는 중력을 이용하는 수직적 구조를 가진 공장에서 붉은 색 손톱을 잘라 컨베이어 벨트 위에서 체리로 공정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체리와 붉은 색이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지만 전혀 다른 사물인 손톱이 디지털의 모핑 기술처럼 마술적으로 체리로 변형되는 과정을 보여준다. 이는 신체의 일부인 피가 유통되고 화폐화될 수 있는 놀라운 과정을 암시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조금 더 복잡한 공정을 다루는 <열대 바람Tropical Breeze>(2004)은 실제 보디빌더로 활동하고 있는 헤더 포스터(Heater Foster)를 기용해 자본과 상품으로서의 신체를 본격적으로 파헤친다. 이 작품은 몸이 상품을 ‘창조’하고 유통시키는 과정을 담고 있다. 상품을 배달하기 위해 근육질의 헤더는 땀을 흘리며 트럭을 운전한다. 그러나 그녀는 상품을 배달하는 유통업자일뿐만 아니라 배달되는 상품을 만드는 질료이자, 그 상품의 생산자이기도 하다. 트럭은 그녀가 닦아낸 땀을 흡수한 휴지를 포장해 ‘열대 바람’이라는 상품으로 만드는 이동 공장이다. 역시 실제 무용수로 활동 중이어서 비현실적으로 유연한 몸을 가진 배우가 뒤 자석에 앉아 헤더가 땀을 닦은 휴지를 발가락으로 집어 포장한다. 보디빌더인 헤더의 상품가치는 그녀가 흘린 땀으로 측정된다. 땀을 흘릴수록 그녀는 ‘이상적인,’ 즉 ‘더 잘 팔릴 수 있는’ 근육질의 몸매에 가까워진다. 이동공장은 실시간적 신속함으로 상품 가치를 높이고자 창안되었다. 그녀가 흘린 땀은 배달되는 동안 생산되고, 공정을 거치고, 포장되는, 신선한 상품이다. 생산과 유통이 거의 실시간으로 이루어지는 마술적인 시간의 압축 혹은 실시간 정보의 유통은 상품의 가치를 더해준다. 이 생산과 유통의 압축적 수평 운동은 오늘날의 소비욕망을 감각적인 동시에 은유적인 방식으로 보여준다.

    세 번째 작품 <밀가루 반죽Dough>(2005)에서는 비대한 체형의 여자가 흘러내리는 밀가루를 늘이고 잘라내어 가치를 측정할 수 있는 일정한 단위로 포장하는 장면을 보여준다. 이 밀가루 반죽은 여러 방의 관을 지나면서 눈물로 만든 수증기에 부풀어 오르고, 더해진다. 이 비디오의 주인공인 라퀴(Raquee)는 플러스 사이즈 여성 단체의 설립자이며, 자신의 신체 이미지를 전시한 웹사이트를 갖고 있다. 그녀는 이 웹사이트를 통해 비대한 체형의 여자를 선호하는 남자를 위한 성적 서비스를 제공한다. 이 비디오에서 밀가루 반죽은 문자 그대로 여자의 살을 의미한다. 많은 여자들에게 살은 항상 칼로리 단위로 신경 써야 하는 것이다. 대부분의 여성들은 살을 덜어내기를 원한다. 살은 ‘나’의 일부이지만 또한 측정가능하고 조절 가능한 것이 된다. 살의 무게에 따라 여성의 가치가 달라지기기 때문에 살은 관리해야하는 어떤 대상, 즉 오브제가 된다. 이 공장은 밀가루 반죽 혹은 살을 가치 측정이 가능한 별개의 상품처럼 포장 한다. 살과 관련해 라퀴는 대부분의 여자와 반대의 벡터를 갖는다. 그녀는 살을 더는 것이 아니라 더해야 가치를 발생시킬 수 있다. 많은 여자들처럼 라퀴도 자신의 살과 섭취하는 칼로리를 관리하고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신체 이미지에 맞추기 위해 노력한다. <밀가루 반죽>에서 이러한 과정은 무게를 달아 단위별로 나눠 포장되는 밀가루 반죽으로 은유화된다. 더 나아가 밀가루 반죽의 이동은 입력과 출력을 반복하는 신체 내부의 운동과 동형의 구조를 갖는다. 이것을 인식하는 순간 관람객은 신체 내부에 들어온 것처럼 느끼게 된다. 이 지점에서 내부와 외부는 구분 불가능해진다.

    로텐버그는 바로 다음 작품 <치즈Cheese>(2008)에서 내부와 외부, 주체와 객체의 구분불가능이라는 주제를 확장한다. 이 작품은 1880년대에 머리를 길러 대머리 남자에게 판매했던 서덜랜드(the Surtherlands) 자매의 실제 이야기에 근거한다. 이 비디오는 땅까지 닿는 긴 머리를 가진 여자들이 울타리가 설치된 원형의 농장에서 치즈를 만드는 과정을 보여준다. 이 울타리는 나무를 자르고 남은 톱밥으로 만들어졌다. 머리카락, 치즈의 원재료인 우유, 톱밥은 모두 신체의 부산물로 가공을 거쳐 새로운 가치를 창출한다. 신체의 일부였던 것들이 독립된 오브제가 되어 상품이 된다. 거추장스럽고 쓸모없는 긴 머리는 치즈처럼 가치 있는 것으로 창조될 잠재성을 갖고 있다. 이 비디오에 등장한 여성들은 긴 머리카락 모델로 긴 머리카락을 기르는 것이 하나의 직업이 된 이들이다. 머리카락은 우리의 몸에서 분리가능한 객체가 될 수 있는 잠재성을 갖고 있는, 전환적 물질이다. 머리카락은 신체의 내부에 연결되어 있으면서도 대부분이 외부로 나와 있고, 심지어 잘라서 분리할 수 있다. 여기서 만든 상품들은 치즈가 되거나 가발이 되어 다시 주체의 일부가 된다. 주체가 객체로 분리해 버린 것이 회귀한다. 식욕이나 멋지게 보이고자 하는 욕망이 이 회귀를 가능하게 한다. 이 현상은 주체가 억압한 것이 회귀한다는 정신분석학적 개념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다. 정신분석학적 욕망과 함께 경제적 운동이 이것을 가능하게 한다. 회귀하는 것들은 억압된 ‘괴물’의 형태로 돌아오지 않는다. 그것들은 혐오스러운 것을 말끔하게 제거하고, 공정을 거쳐 욕망할 만한 것이 되어 돌아온다. 쓸모없다고 여긴 것들, 더럽고 혐오스러운 신체의 분비물과 부산물이 공정을 통해 생산적인 것으로 변모해 잉여가치를 만들어 낸다. 로텐버그는 이와 같은 운동을 원형 울타리를 통해 획득한다.

    위에 언급한 모든 작품은 자연에서 추출한 자원, 특히 여성 신체에서 얻어진 것을 갖고 가치를 창조하는 방식을 다루고 있다. 그러나이 여성들은 단순히 상품의 재료를 제공하는 자연이나 매트릭스가 아니다. 그녀들은 또한 자신의 몸을 수단으로 스스로 상품을 가공하고 가치를 창조하는 노동자이기도 하다.7) 더 주목할 만한 공통점은 비디오의 주인공들이 모두 평범한 여자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그녀들은 근육질이거나 엄청나게 비대한 몸을 갖고 있거나, 엄청나게 긴 머리카락과 손톱을 갖고 있다. 이들은 소위 ‘정상성’ 혹은 ‘표준적 여성성’의 범주를 넘어선다. 하지만 이들의 ‘표준적으로 여성적이지 않다’고 여겨지는 몸의 특징은 그녀들의 자본이 되는 성적 매력을 발산하는 자원이다. 로텐버그의 작품에 출연한 대부분의 여성들은 성적 이미지를 만들어 자신의 몸을 판매하는 일을 하고 있다. 그들은 일반적으로는 성적이라고 여겨지지 않는 ‘비정상성’과 ‘과잉’ 덕택에 희귀하고 특별한 가치를 만들어 낸다. 사회적으로 가치가 없다고 여기는 것을 가치 있게 만드는 것이다. 이들의 가치생산양식은 비디오의 생산과정과 동형을 이룬다.

    그들이 가치를 창조하는 질료는 땀, 눈물, 살, 손톱, 머리카락 같은 신체의 부산물, 가치 없고 심지어는 비위생적이라고 여겨지는 것, 주체도 객체도 아닌 것들, 즉 줄리아 크리스테바가 비체(abject)라고 명명한 것이다.8) 몸에서 분리된 비체는 생산과정의 맥락과 분리되어 자율적 가치를 만드는 물신(fetish)과 유사한 특징을 갖는다. 물신과 비체는 모두 본래 하나이거나 인과적 관계로 연결되어 있던 것에서 분리 되었지만 여전히 분리된 흔적을 담고 있으며, 여성의 신체 이미지와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다는 점, 눈을 붙잡아두는 매혹의 능력이 있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갖고 있다. 물론 물신은 화려하고 번쩍이는 스펙터클의 외양을 갖고 있다면, 비체는 지저분하고 혐오스럽다는 면에서 큰 차이가 있다. 그러나 물신의 취약한 포장막에 금이 가면 비체가 등장하게 된다.9) 흥미롭게도 오늘날 비생산적인 비체는 자본주의의 탐욕스러운 확장으로 더 이상 비생산적인 것으로 남아있지 않게 되었다. 이런 면에서 물신과 비체는 점점 더 가까워지고 있다.

    비체는 종종 물신처럼 매혹적이고 욕망 가능한 것으로 극적으로 변형된다. 잉여는 자본주의 경제에서 이윤을 내기 위해 필수적이다. 그래서 이들의 과잉은 합리적이고 선형적인 공장의 움직임에서 비합리적이고 마술적인 창조성으로 가치를 만들어 내는, 모순적인 자본주의 논리를 보여주는 지점이 된다. 특히 시각 문화에서 여성 신체가 수행하는 노동의 양태와 여성 이미지의 가치화는 언제나 이 같은 성격의 자본주의의 최첨단에 서 있었다. 여성 노동자는 비물질 경제가 부상하기 오래 전부터 비물질 경제를 수행해 온 주체이다. 비체화와 물신화를 통해 과잉된 여성의 신체 이미지는 오늘날 자본주의 가치생산양식의 배아였다고 할 수 있다. 한편, 최첨단은 경계에 놓여 있으며 전환(transitional)의 특징을 지닌다. 따라서 여성의 신체 이미지는 비물질 가치생산에 집중하는 자본주의 체계의 핵심을 보여주는 동시에 그것을 폭로하는 역할을 한다. 로텐버그의 여성 노동자들은 수동적 질료나 착취당하는 희생자로만 존재하지 않는다. 그녀들은 자신의 신체(이미지)를 통해 자기 수단을 갖고 가치를 만들어 내는 자본주의 경제 내의 적극적 노동자이기도 하다. 그들은 구조에 속해 있지만 언제나 그것을 초과한다.

    본고에서 논하고자 하는 <스퀴즈>는 이와 같은 작업을 이어받고 종합하는 동시에 시공간적으로 확장한다. 수직, 수평, 가감, 원형 등의 물리적 운동이 이 비디오에서 모두 한꺼번에 발생한다. 이 작품에서 로텐버그는 미니어처 공장 내에 전 지구의 흐름을 압축해 시뮬레이션 하며 전 지구적 경제에서의 여성 노동자들 간의 관계, 사물들 간의 관계, 이미지들 간의 관계를 비디오 설치의 건축적 구성과 영화적 조립라인(편집)을 통해 탐구한다. 또한 여성 신체의 노동과 가치 생산이 오늘날 부상한 포스트-포디즘적인 비물질/인지 노동을 선취해왔음을 여성의 신체 이미지를 통해 반복해 주장한다.

    2)<메리의 치즈>에서 <치즈>까지 미카 로텐버그의 작품 세계를 더 자세히 살펴보기 위해서는 다음 논문을 참조하시오. Hsuan L. Hsu, “Mika Rottenberg’s Productive Bodies”, Camera Obscura, Volume 25, Number 2, 2010, pp.41-73.  3)비디오에 출연한 배우들의 신체적 특징과 재능은 타고난 것도 있지만 대부분 훈련과 연습을 통해 길러진 것이라는 것을 강조하는 것은 중요하다. 자신들이 갈고 닦아 만들 어낸 그녀들의 몸은 자신들의 생계를 책임지는 자본이다. 그들이 길러낸 신체적이고 물질적 자본은 이미지의 전시라는 비물질적 방식을 통해 교환되고 가치화된다.  4)빌 니콜스는 논픽션 혹은 다큐멘터리에 출연한 ‘사람들’은 사회적 배우(social actor)’로 다뤄지게 된다고 말한 바 있다. 즉, 그들은 “연극적 의미에서의 연기자(performer)라기보다는 문화적 맥락에서의 역할 수행자(player)라는 점을 유지한다.... 그들의 가치는 일상 생활의 행동과 인성을 다르게 꾸미고 바꾸는 방식이 아닌, 자신의 일상 행동과 인성이 제작자의 욕구를 충족시키는 방식에 자리하는 것이다.” 빌 니콜스, 『다큐멘터리 입문』, 이선화 옮김, 한울아카데미, 2005, 33-34쪽.  5)이처럼 여성이 실제 자신과 관련된 정체성을 수행적으로(performative) 역할 놀이하며 신체를 현실과 가상을 잇는 질료로 활용하는 방식은 1960-70년대에 시작된 페미니스트 사진 및 비디오 아트의 영향을 받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사적인 것이 정치적인 것이 다’라는 주장을 내세웠던 제 2 세대 페미니즘 운동의 영향을 받은 여성 작가들은 자신의 신체를 예술적 질료로 활용해 주체와 객체, 작가와 오브제의 이분법을 흐리고, 자신 에게 할당된 여러 정체성을 수행적으로 표현하고, 반복하고, 가지고 놀면서 기존의 고정된 여성성을 비판하고 무너트리려고 시도했다. <스퀴즈>에서 로텐버그는 배우들이 자신들의 현실의 직업과 정체성을 수행하고 육체성을 표현하게 함으로써 페미니스트 비디오 아트의 퍼포먼스와 수행성 전통을 잇는다. 또한 작가 자신이 직접 비디오에 등장하지는 않지만 작품의 전체 건축적 구조를 통해 결과적으로 배우들의 노동생산 방식과 작가의 그것이 유비적 관계를 갖는다는 사실을 드러냄으로써 작가성을 작품 내에 기입하는 방식을 취한다. 이와 같은 수행적 작가성의 기입 또한 페미니스트 비디오 아트의 특징 중 하나이기도 하다. 이와 관련해 『페미니즘, 비디오, 미술』(김홍희, 재원, 1998)과 『여성영화: 경계를 가로지르는 스크린』(앨리슨 버틀러 지음, 김선아, 조혜영 옮김, 커뮤니케이션 북스, 2011)의 “2장 작가성의 수행”을 참고하시오.  6)프로이트는 집에서 집에 있는 것 같지 않는 느낌(unheimrich)을 받는 것을 ‘두려운 낯섦’(uncanny) 이라고 정의한 바 있다. 이는 익숙한 것에서 불확실한 낯섦이 느껴지며 기괴하고 두려운 감정을 갖게 되는 현상을 일컫는다. 프로이트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두려운 낯설음이라는 감정은 [...]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던 것, 오래전부터 친숙했던 것에서 출발하는 감정이다. 어떻게 이러한 것이 가능할 것인가. 어떤 조건들이 주어졌을때 친숙한 것이 이상하게 불안감을 주고, 공포감을 주는 것으로 변할 수 있는 것일까” 지그문트 프로이트, 『예술, 문학, 정신분석 - 프로이트 전집 14권』, 정장진 옮김, 열린 책들, 1997, 405-406쪽.  7)물론 이것이 체계에서 벗어나 완벽한 자유의지에 의해 행해진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이들의 노동과 수행, 끊임없는 관리가 필요한 신체, 그리고 감옥처럼 구속하고 있는 협소한 인공적 건축물은 어느 누구도 체계를 벗어나 완벽한 자유의지를 가질 수없다는 것을 인식하게 만든다.  8)바바라 크리드, 『여성괴물–억압과 위반 사이』, 손희정 옮김, 여이연, 2007, 34-36쪽.  9)로라 멀비는 공포 영화에서 “아름다운 여자 뱀파이어가 햇빛에 재로 변하는” 이미지가 이분법의 구도를 깨는 순간을 만들어 준다고 말한다. Laura Mulvey, Fetishism and Curiosity, BFI, 1996, p.13.

    3. 잉여가치를 짜내기: <스퀴즈>

    <스퀴즈>는 단일 채널 비디오와 실제 사람 크기의 스틸 사진으로 구성되어 있다. <스퀴즈>의 설치 구조와 관람 순서는 이 작품을 이해 하는데 매우 중요하다. 관람객은 비디오가 설치되어 있는 박스형 극장 입구에 들어가기 전 정체를 알 수 없는 재료들이 압축된 정육면체의 오브제를 들고 있는 한 여자의 전신사진을 보게 된다. 정장 차림의 전문직으로 보이는 이 여성은 이 미스터리한 정육면체의 오브제를 과시하듯 들고 관람객을 바라보고 있다. 이 사진을 관람한 후 복도를 지나 영화관처럼 밀폐되어 있는 공간에 들어서면 비디오를 감상하게 된다. 밀폐된 공간에서 루프 형식으로 상영되는 20분의 비디오는 연속적 시공간이 파괴하는 가운데 사진 속 여자가 들고 있던 오브제가 생산되는 복잡한 과정을 보여준다. 기이하고 불가사의한 오브제의 비밀스러움을 비디오가 노출시키는 것이다. 문제는 동영상 비디오를 보고 나서도 이 오브제가 무엇인지, 어떤 사용 가치가 있는지, 그리고 교환 가치는 어떻게 생산되는 것인지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방식으로는 이해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모든 것이 노출되어 더 이상 숨겨져 있는 것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오브제는 여전히 신비롭고 마술적인 특징을 유지한다.

    흥미롭게도 불가사의한 오브제의 정지 사진은 개방된 공간에 전시 되어 있고, 생산과정을 노출시키는 움직이는 영상은 밀폐된 공간에 설치되어 아이러니한 대비를 이룬다. 관객들은 내부, 즉 생산과정을 보기 위해 한정된 공간에 갇힌 것 같은 느낌을 받게 된다. 관람객을 가두는 것은 그들의 신체(이미지)일수도, 아니면 사회의 체계일 수도 있다. 조금 더 이 대비를 자세히 살펴보면, 동결된 이미지의 오브제는 완결된 생산품이자 누군가의 사적 소유물이다. 반면 움직이는 영상은 상대적으로 역동적이고 확장된 복잡한 생산과정과 노동 행위를 보여 준다. 그러나 사진 속 오브제뿐만 아니라 사진 이미지와 움직이는 영상까지 포함한 것이 하나의 예술 작품이며, 그 자체가 한 개인의 소유라는 것은 이러한 이분법을 전복시킨다. 즉 생산과정은 결과물과 분리되지 않으며, 오히려 생산과정과 노동행위 그 자체는 판매가능한 생산품이 된다. 그런데 이 소유는 다시 신체의 특징 때문에 불완전해진다. 비디오 속 여성들의 신체는 그 물질성과 예측불가능한 역동성으로 인해 구획된 공간이나 표준적 체계에 갇히지 않고 자꾸 넘치고 과잉되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이중성이 어떻게 발생하는지를 보기 위해서 여성들의 다양한 역할과 전 지구적 공장의 기이한 구조를 자세하게 검토할 필요가 있다.

    미니어처 공장의 세트에는 컨베이어 벨트가 돌아가고 여러 다양한 여성들이 자신의 자리에서 반복된 일을 한다. 이 작품은 전작과 달리 현장에서 촬영한 다큐멘터리 푸티지를 포함하고 있다. 현실과 초현실의 하이브리드를 전 지구적으로 확장한 만큼 <스퀴즈>의 비디오 공장은 훨씬 더 입체적이고 복잡하다. 세트장에 세워진 미니어처 공장과 다큐멘터리 속 농장들은 여성 노동자들의 신체를 통해 바로 연결된다. 다큐멘터리 푸티지는 실제 캘리포니아의 양상추 농장과 인도의 고무농장에서 일하고 있는 여성 노동자들이 일하고 있는 모습을 기록한다. 이 다큐멘터리 푸티지에는 환상적이거나 초현실적 요소가 포함되어 있지 않다. 다만 이들이 손 마사지를 받는 미니어처 공장의 조립라인과 연결될 때 원격현존이 가능한 포탈을 통해 환상성이 추가된다. 세트의 초현실적이고 허구적인 미장센과 로케이션 촬영의 사실성을 신체로 연결하는 장면은 그 대비 때문에 더 기이하게 된다.10) 이들이 연결되는 방식을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인도에 있는 고무 농장에서 인도 여성들이 고무나무에 상처를 내피처럼 흐르는 수액을 받아 라텍스를 만든다. 캘리포니아의 한 농장에서는 멕시코 출신 여성들이 양상추를 수확하고 있다. 한편 중국 전통 의상, 차파오를 모방한 유니폼을 입은 아시아계 여성들은 미니어처 공장의 조립라인에서 작은 구멍을 통해 들이 밀어진 손을 마사지 한다. 이들이 마사지 하는 손은 인도와 캘리포니아의 플랜테이션 농장에 있는 여성 노동자들의 손이다. 인도와 캘리포니아에 있는 여성 노동자들이 땅에 난 구멍에 손을 넣으면 이 미니어처 공장에 난 구멍으로 손이 나오게 된다. 상품이 전 지구적으로 이동할 때 지워진 여성 노동자들이 마술적 연결을 통해 가시화된다. 여성 노동자의 신체는 시공간을 파괴한다. 공간의 물리적 연장은 철저히 무시된다. 여성 노동자들의 신체를 통해 전 지구가 연결되고 작은 공장 안에 시뮬레이션 된다. 입구는 또 다른 공간을 여는 출구가 되어, 입구와 출구, 입력과 출력, 내부와 외부의 구분이 흐려진다. 구멍은 다른 공간을 여는 문(portal) 이나 인터페이스 장치가 된다. 물론 이것은 영화적 편집을 통해 가능해진다.

    한편, 이 미니어처 공장에는 또 다른 유형의 여성들이 있다. 풍만한 가슴과 큰 볼을 가진 한 백인 여자는 양쪽 벽이 움직이면서 문자 그대로 압축된다. 몸이 눌리면서 이 백인 여성은 얼굴에서 반짝이는 분가루를 떨어트린다. 이 반짝이는 분은 작은 캔에 압축된 메이크업 블러셔가 된다. 전 세계 각지에서 생산된 라텍스, 양상추, 블러셔는 공장에서 잘게 부셔지고 섞여 압축된다. 벽은 날름거리는 혀, 엉덩이와 같은, 신체 전체의 맥락에서 잘려 나온 신체의 부분들이 장식되어 있다. 그리고 혀와 엉덩이에는 식물에게 물을 주듯 주기적으로 물이 뿌려진다. 이 혀와 엉덩이로 인해 벽은 살아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한편 전체 공정을 관리하는 매니저인 백인 여자는 손톱을 다듬으면서 감시중이고, 다른 한 쪽에서는 돌아가는 원판에 앉아 온 몸에 힘을 주며 에너지를 발산하고 있는 거대한 체형의 흑인 여자가 앉아 있다. 이 체계에서 그녀는 마치 발전기와 같은 역할을 한다. 이 여자가 몸에 힘을 주면 공장의 조립라인들이 움직인다. 로텐버그는 이 여성을 일종의 염력(telekinetic)의 능력을 가진 역할로 설정했다고 말한 바 있다.11)

    블러셔를 만드는 백인 여성, 매니저, 조립라인을 움직이는 에너지를 생산하는 흑인 여성, 이 세 배우는 모두 그들의 실제 삶에서 성적인 환상을 만족시켜주는 역할 모델로 일하고 있다. 블러셔를 만드는 락로즈(Rock Rose)와 매니저 역할의 버니 글래머존(Bunny Glamazon)은 페티쉬 노동자로 고객이 원하는 방식대로 경기를 수행하는 레슬러이다. 커다란 몸집의 흑인 여성 미셸(a.k.a. Trixxter Bombshell)은 <밀가루 반죽>에 등장했던 라퀴의 동료다. 미셸은 자신의 몸을 모델로 빌려주는 직업을 갖고 있다. 그녀는 자신의 몸으로 고객의 몸을 짓눌러 주는 스쿼싱(squashing)이라는 서비스를 한다. 공연자로서 세 여자는 모두 자신의 신체 이미지를 공들여 만들고, 그것을 판매해 살고 있다.

       1) 비물질 노동과 주목 경제

    <스퀴즈>는 말 그대로 노동자들의 노동력을 짜내고 채굴한다. 여러 차원에서 이윤을 극대화하기 위해 누르고 짜는 ‘스퀴즈’의 운동이 발생한다. 일차적으로 자연으로부터의 자원의 채굴과 전통적인 노동의 착취를 볼 수 있다. 수액을 짜내기 위해 노동자들은 고무나무에 상처를 입힌다. 마찬가지로 이윤을 극대화하기 위해 인도 고무 농장에서의 여성 노동자들의 땀도 짜내진다. 제 삼 세계의 노동시장은 제 일 세계의 노동조건과 큰 간극이 있다. 제 삼 세계의 노동자들은 절대적으로 긴 노동시간과 낮은 인건비의 조건 하에 일하고 있다. 일세계와 삼 세계의 차이, 노동자들의 몸에서 짜낸 차이는 잉여가치가 된다. 이들의 작업장은 말 그대로 땀을 짜내는 ‘스웨트숍(sweatshop)’이다. 거시적으로 말하면 제 일 세계와 제 삼 세계 간의 간극을 짜내서, 즉 시공간을 가능한 압축시켜 최대 이윤을 얻어낸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최근에 주목받고 있는 또 다른 층위의 ‘스퀴즈’가 있다. <스퀴즈>는 포스트-포디즘 체제에서 비물질 노동이 부상하고 있는 현상에 대한 탁월한 성찰을 보여준다. 이 비디오에서 내부와 외부가 구분 되지 않는 방식은 오늘날의 비물질 노동이 물질 노동을 압도하는 것처럼 보이는 현상과 무관하지 않다. 시각적 주목은 오늘날 그 자체로 이윤을 창출한다. 온라인 네트워크와 영화 제작사를 포함한 수많은 미디어 회사들은 끊임없이 주목을 받기를 원한다. 심지어 아주 사적으로 보이는 이메일 확인도 가치를 생산한다. 개인끼리 이메일을 주고받을수 있게 인터넷 회사가 무료로 저장 공간과 네트워크를 제공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사적 이메일은 회사의 이윤을 위한 중요한 자원이 된다. 예를 들면, ‘구글(Google)’의 ‘애드센스’는 이메일에 포함된 단어와 연동된 광고를 자동으로 포스트하고 광고를 요청한 회사로부터 돈을 받는다. 미개척 분야였던 우리의 눈은 잠식당하고 착취당하고 있다. 시각 예술과 미디어는 우리의 눈을 ‘쥐어짠다(squeeze).’ 조나단 벨러는 이를 ‘주목 경제(attention economy)’라고 칭한 바 있다. 벨러에 따르면 주목은 이미 상품이 되었으며, 현재의 자본주의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주목 그 자체가 만들어내는 가치에 주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더 나아가 “자본주의 미디어에서 팔리는 상품은 생산력 그 자체”(인용자 강조)라고 역설한다.12) 이제 예술 작품이나 유명인들은 객체로 구분되는 사물이나 개체가 아니라 “주목이 축적되는 사회적 관계”이며, 유명 예술 작품은 자신에게 떨어지는 “모든 응시의 가치들을 축적”한다. 다시 강조하면, “응시의 생산 가치는 사회적 존재의 조직,” 즉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발생한다.13)

    물론 이러한 ‘주목 경제’는 디지털이나 뉴미디어의 시대에 처음 등장한 것은 아니다. 20세기 영화는 인간의 ‘감각 노동’이 가치를 생산하는 방식에 몰두해왔다. 할리우드를 중심으로 한 상업 영화가 관객들의 눈을 통해 엄청난 이윤을 창출하면서도 그것이 생산되는 과정을 가능한 숨기려고 했다면, 1920년대의 러시아 몽타주 주창자들, 특히 지가 베르토프(Dziga Vertov)는 영화기계와 인간의 눈이 가치를 생산하는 방식을 노출시켜 영화의 생산과정에서 지각 노동자들(제작자들 뿐만 아니라 관객)이 소외되는 현상을 막으려 했다.

    <카메라를 든 사람A Man with A Camera>(1928)에서 베르토프는 기계와 인간의 눈이 인터페이스 된 ‘키노 아이Kino-Eye’, 즉 영화 카메라가 세계에 대한 감각을 급진적으로 변형하고 재구성하게 되었음을 표현한다. 베르토프는 기계를 통한 생산력의 향상이 가져온 이익이 노동자들에게 돌아 가야하는 것처럼, 카메라를 통해 지각 능력이 향상된 ‘눈의 산업혁명’14)에서 관객-노동자들이 소외되는 것을 막아야 한다고 생각했다.15) 그래서 그는 모스크바 등의 혁명도시에서 노동자의 하루(출근부터 노동시간, 퇴근, 여가시간까지), 인간의 일생(탄생부터 죽음 까지), 영화가 생산되는 과정(제작부터 편집, 상영까지)을 교차편집으로 담아냈다. 여기서 자신들의 몸을 영화 이미지의 질료로 제공한 노동자들은 또한 그 영화의 관객이기도 했다. 그들은 자신들의 이미지가 영화화 되는 과정을 보게 된다. 그리고 자신들의 ‘관람 행위’ 자체가 눈의 ‘노동’이며 가치를 생산하는 잠재력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게 된다. 그러나 감각의 소외를 막고자 했던 베르토프의 노력과 ‘키노-아이’의 지각능력 향상에 대한 유토피아적 전망은 할리우드 영화 산업의 전 세계적 지배로 거의 무산된다.

    역설적이게도 현재 자본이 베르토프가 노출시켰던 ‘눈의 노동과 가치생산’을 적극적으로 개척 중이다. 자본의 요구하는 시장은 단순히 외양에만 머물지 않는다. 모든 것은 분자의 층위에서 감시되고, 또한 주목을 요청하고 있다. 정신적인 상상력과 창조, 세밀하게 분석되는 감정과 그에 따른 신체적 반응, 유전자 정보 등은 “신 자연경제”16)의 근간이다. 그 때문에 최근 비물질 노동과 가치생산은 ‘정신 자본주의’ 혹은 ‘인지 자본주의’라는 명칭으로 불리고 있기도 하다.17)

    로텐버그는 비물질 노동과 가치 생산의 중심에 시각 예술이 자리하고 있음을 인지한다. <스퀴즈>는 실제로 자신의 신체 이미지와 퍼포 먼스를 통해 가치를 생산하는 여성들을 배우로 기용해서 (비)물질 노동과 이미지의 가치생산을 탐구한다.18) 여기서 중요한 것은 <스퀴즈>라는 작품 자체가 바로 주목을 필요로 하는 ‘상품-이미지’라는 것이다. 따라서 이 작품이 비물질 경제에서 가치가 생산되는 양식을 노출시키는 과정은 바로 <스퀴즈>의 생산과정 그 자체에 대한 것이 된다. 이 폭로는 재귀적일 수밖에 없다. 정육면체의 오브제를 만드는 과정을 담은 동영상을 보고 나오면 관람자들은 전 지구적 노동을 거쳐 생산된 오브제를 들고 있는 여자의 전신사진을 다시 만나게 된다. 그러나 <카메라를 든 사람>이 보여주었던 공산주의 혁명의 유토피아적 전망은 여기서 전혀 찾아볼 수 없다. 이 오브제를 들고 있는 여자는 작품‘<스퀴즈>’를 소유하고 있는 ‘매리 분 갤러리’의 매리 분(Mary Boone)이기 때문이다. 매리 분은 1970년대 후반부터 동시대 유망한 스타 작가들을 발굴해온 갤러리 관장이자 수많은 현대 예술의 소유주로서 <뉴욕 타임스>로부터 “뉴욕 예술계의 새로운 여왕”19)이라는 칭호를 얻은 바 있다. 매리 분이 오브제를 들고 있는 사진은 로텐버그 같은 예술가조차 주목을 받기 위해 현재의 자본주의 체제를 벗어나서 작업 할 수 없음을 시인하게 만든다.

    그러나 로텐버그는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로텐버그는 자신은 물론이고 갤러리 소유주인 매리 분조차 실제 오브제, 이미지의 지시대상에 접근할 수 없도록 설계했다. 로텐버그는 이 모든 공정의 결과물인 오브제를 마치 엄청난 가치를 갖고 있는 것처럼 케이먼 제도의 은행금고에 넣어두고 누구도 접근하지 못하도록 만들었다. 사실 오브제는 쓸모없고 바보 같은 네모난 고체 덩어리에 불과하다. 양상추, 라텍스, 블러셔는 각자 사용가치를 잃고 잘게 쪼개져서 완전히 새로운 가치를 갖게 된다. 그 가치는 원래 상품이 갖고 있지 않은 것으로 철저하게 과잉 각인된 기호에 의해 가능해진다. 로텐버그는 인터뷰에서 자신의 비물질적인 오브제 이미지가 갖게 되는 가치는 주식 사기와 다를 바가 없다고 말한바 있다.20) 자본주의 체제는 합리적인 논리를 갖고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 미니어처 공장에서 그 체제의 논리와 운동을 시뮬레이션했을 때 그것은 합리적 이해를 넘어선다. 자본이 가치를 생산하는 방식은 마술이나 연금술과 다름없다. 사용가능한 생산품들을 쓰레기로 만들어 예술 작품으로 만드는 것은 실제 이윤 없이 투자자들만의 투자금을 돌려 이윤이 난 것처럼 보이게 만드는 폰지 사기(Ponzi scheme)와 다를 바가 없는 것이다.

    지시대상인 오브제의 상실은 다른 한편으로 과정과 결과가 구분되지 않는 디지털 시대 예술작품의 특징을 보여준다. 언제나 수정과 추가가 가능한 디지털의 존재 방식은 완결된 작품이 불가능한 상황을 보여준다. 그래서 생산품이 생산되는 과정의 퍼포먼스 자체가 작품이 되는 것은 당연한 결과다.21) 작가로서의 로텐버그 자신은 한편으로는 존재하지 않는 것에서 가치를 만드는 주식 사기꾼에, 다른 한편으로는(농장에서의 노동이든, 서비스 노동이든, 혹은 페티시 워커든지 상관없이) 신체라는 자원을 갖고 가치를 생산하는 여성 노동자들에게 동일시한다. 하지만 로텐버그의 동일시는 다분히 뒤쪽에 무게가 실려 있다.

       2) 물신과 비체의 이미지

    로텐버그가 오늘날의 자본주의 체제를 시뮬레이션하기 위해 다양한 위치에 있는 여성 공연자들을 노동자로 기용한 것은 여성이야말로 비물질 가치 생산이 부상하기 이전부터 오랫동안 ‘주목 경제’를 실천해 온 주체이기 때문이다. 여성의 이미지는 특히 영화에서 성적 대상화 되면서 온갖 시선이 모이는 장소가 되어왔다. 이런 면에서 여성은 자신의 몸을 자원으로 가치를 생산해온 이미지 노동자였다. 이때 여성의 이미지는 실제 여성과 분리되어 종종 물신화되었다.

    <스퀴즈>에서 물신주의적 이미지는 곳곳에서 발생한다. 로즈 락, 글래머존, 미셸은 현실에서 자신의 몸을 물신주의자들에게 빌려주는 페티시 워커다. 그리고 벽에는 물신화되고 파편화된 신체의 부분들이 장식되어 있다. 거세 불안을 잠재우기 위해 물신주의자들은 성적 차이를 인식시키는 여성의 신체를 파편화한다. 때문에 씨네페미니즘은 실제 여성을 지우고 여성을 성적으로 대상화하는 영화의 물신 이미지를 비판해왔다. 디지털화가 시작된 1990년대에 들어오면서 이미지가 지표성을 상실해감에 따라 물신 이미지에 대한 비판을 확장하면서, 로라멀비는 이데올로기적으로 부정적인 함의를 갖고 있던 물신을 역으로 이용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물신주의는 “도착(perversion)의 기호학”이다. 물신이 “그 자체를 전시하면 할수록 트라우마적인 과거 사건의 현존이 더 많이 기호화”된다. 물신은 “그 지시대상을 부인하면서도 그 지시대상에 대한 질문을 놓지 않는” 징후이다.22) 점차 지시대상과의 연결고리가 약해지는 디지털 시대에 물신은 그 흔적을 추적할 수 있는 실마리가 된다. 게다가 물신은 마르크스주의의 경제적 관점과 프로이트주의의 정신분석학적 관점을 동시에 견지할 수 있도록 해준다. 영화 이미지는 성적 이미지와 상품 이미지를 절합하기 때문에 물신주의에 대한 두 가지 관점이 동시에 요청된다. 상품 이미지로서의 여성의 영화적 이미지는 이 두 가지가 분리되지 않은 채 혼재되어 있기 때문에 물신 개념은 매우 유용하다. 두 관점은 비록 차이가 있지만 여성적 이미지를 성적으로 스펙터클화하는 것은 결국 상품의 매력을 강화 하는 것이기 때문에 영화적 이미지에서 서로를 강화해왔다.

    물신은 스펙터클과 의미작용으로 구성되는 이미지 기호다. 그러나이 의미작용은 끊임없이 지시대상과 멀어지며 전치(displacement)를 발생시킨다. 지표를 지우는 전치는 두 가지 차원에서 일어난다. 경제적 층위에서 물신은 노동력을 부인한다. 성적 층위에서 기호로서의 물신은 욕망할만한 매력을 투사하며, 성적 차이를 부인한다. 그리고 이 두가지 전치는 스크린 위의 여성 이미지에서 병합된다.

    마르크스주의자들에게 물신은 각인의 문제와 연관된다. ‘어떻게 가치의 기호가 상품에 표식되는가?’ 노동력은 자기가 생산하는 상품에 그 자체를 지표적으로 각인하는데 실패한다. 더 복잡하고 더 넓은 단위의 생산, 교환, 유통의 경제 체제는 등가를 표현하는 수단으로서 기호 체제를 요구한다. 그것이 바로 돈이다. 노동력이라는 가치의 기원을 지우고 자율적인 자기-발생적 가치가 출현하게 되면 “총노동에 대한 생산자들의 사회적 관계는 그들의 외부에 존재하는 관계[즉 사물들의 사회적 관계]로 보이게” 된다. “이와 같은 치환(substitution)에 의하여 노동생산물은 상품으로 되며, 감각적임과 동시에 초감각적 사물로 된다. ... 우리는 몽롱한 종교세계로 들어가 보지 않으면 안 된다. 거기에서는 인간두뇌의 산물들이 스스로의 생명을 가진 자립적인 인물로 등장하여 그들 자신의 사이 그리고 인간과의 사이에서 일정한 관계를 맺고 있다. 마찬가지로 상품세계에서는 인간 손의 산물들이 등장한다. 이것을 나는 물신숭배라고 부르는데, 이것은 노동생산물이 상품으로 생산되자마자 거기에 부착되며, 따라서 상품생산과 분리될 수없다.”23)

    반면 프로이트의 물신은 ‘환상적 각인’으로 넘쳐난다. 그것은 사회적 합의에 의해서는 가치 없는, 실제로는 부재한 것의 대체물로 여겨지는 대상에 과잉된 성적 가치를 새긴다. 부재를 부인하고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던 것의 대체물을 과도하게 평가된다. 마르크스주의 물신의 경우에 가치의 기호는 가치의 기원을 실제 대상에 각인하는데 실패한다. 프로이트주의 물신의 경우에 가치는 대체 대상을 통해 상상된 결핍의 장소에 과잉되게 각인된다. 두 관점의 물신은 분명 중요한 차이가 있지만 그럼에도 둘 모두 모두 과잉되게 각인된 기호에 의존하며 지속적인 유혹과 반짝이는 스펙터클한 재현을 통해 “물신주의자의 눈을 믿음의 유혹에 고정”24)시키려 한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물신은 부인과 소외가 발생하는 사회적 고통의 장소이기도 하다. 따라서 멀비가 역설 했던 것처럼, 과도하게 각인된 기표이자 자본주의 체제의 정치적 징후로서의 물신은 정치적 독해를 위한 우리의 시작점이기도 하다.

    <스퀴즈>는 이 두 가지 관점의 물신이 병합된 여성의 물신적 이미지를 적극적으로 끌어들인다. 하지만 로텐버그는 물신적 기표의 과잉적 각인을 끝까지 밀어붙인다. 물신은 사회 특정적이고 문화 특정적인 믿음에 근거한다. <스퀴즈>는 일반적으로 기대하는 성애화된 여성의 물신적 이미지를 초과한 여성들을 등장시켜 물신의 과잉된 각인과 과잉반복된 교환의 흐름을 폭로한다. 우선 실제 페티시 워커인 배우들을 살펴보자. 이들은 특정 고객들을 대상으로 자신의 신체 이미지를 성애화한다. 비대한 몸, 근육질의 몸, 짓눌려진 살은 소수의 특정 고객들의 눈을 사로잡고 성적 환상을 불러일으킨다. 그러나 이러한 성애적 물신의 기호는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스테레오타입에 맞지 않는다. 이들의 개성은 표준을 뛰어 넘는다. 일반적 상상력을 뛰어넘는 이들의 신체 이미지는 한편으로 예측을 넘어서기 때문에 시선을 사로잡고 압도한다. 이와 같은 독특한 물신은 일반적으로 유통되고 있는 성애화된 여성의 물신 이미지가 얼마나 특정적 믿음(환상적이고 종교적인 믿음)에 기초하고 있는지 보여준다. 더 나아가 예측을 넘어서는 이들의 신체 이미지는 과잉되게 각인된 기호인 물신에 그 신체가 가진 물질성을 되돌려준다. 이런 과정에서 로텐버그가 자신의 상상력과 분석력을 통해 예술 작품을 만들고 가치를 부여하듯이, 이 여성들 또한 자신의 신체를 갖고 스스로 자기-발생적 가치를 생산하고 있는 노동자임이 강조된다. 성적 이미지로서의 여성들은 본격적으로 비물질 가치생산에 대한 담론이 부상하기 이전부터 비물질 노동자였다고 할 수 있다. 조금 과장하자면 그녀들은 비물질 경제의 ‘스웨트숍’ 노동자였다고도 말 할 수 있을 것이다.

    로텐버그는 페티시 워커인 여성들을 다른 종류의 여성 노동자들과 별개로 놓지 않는다. 그들은 모두 자신의 신체를 이용해 가치를 생산하고 있다. 농장에서 양상추를 수확하는 노동자, 고무 농장에서 수액을 채취하고 라텍스를 만드는 노동자, 마사지를 하는 서비스 노동자, 관리직 여성 노동자, 자신의 신체 이미지를 판매하는 노동자 모두 신체를 이용해 가치를 발생시킨다. 전 세계는 실질적으로 여성 노동자들에 의해 네트워크 된다. 상품-이미지와 물질 상품 모두에서 여성 노동자들은 지워져왔다. 마치 상품과 상품, 이미지와 이미지가 스스로 교환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지만 거기에는 지워진 여성 신체가 존재한다. 세계 각지의 다양한 여성 노동자들이야말로 전지구화의 현상을 가능 하게 만든 주체이다. 이들 간의 관계야말로 로텐버그의 오브제 같은 압축된 사물이 부인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들은 한편으로는 자율적이고 충족적인 방식으로 자신에게서 자원을 채취하고 스스로 가공해 가치를 발생시키고 있지만, 또 다른 한편으로는 자본주의와 성적 위계질서가 만들어 놓은 가부장제적 자본주의 구조의 논리에 속박되어 있음을 부인하지 않는다. 신체 사이즈에 거의 꼭 맞게 만들어진 전지구적 미니어처 공장은 그러한 구속을 표명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자기이미지의 가치를 설정하고 판매하는 것이 그것이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언제나 여성 노동의 일부였다는 사실이다. 노동과 성적 이미지는 분리되어 있지 않고 연결되어 있다. 오래된 역사를 가진 성적인 물신 이미지의 (특히 영화에서의) 판매는 오늘날 부상 중인 비물질 경제의 핵심이다. 따라서 젠더와 섹슈얼리티에 대한 관점 없이 비물질 경제를 논하는 것은 그것의 역사와 본질을 무시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 다양한 여성 노동자들이 모두 같은 위치에 있는 것은 아니다. 전 지구적 노동의 시뮬레이션에서 인종과 노동의 종류의 다양성은 마술적으로 연결되지만 동시에 마찰을 발생시키는 요인이기도 하다. 마르크스와 프로이트 모두 물신의 기원을 아프리카의 종교적 믿음에 두면서 ‘합리적 서구’와 ‘비합리적 비서구’를 재빠르게 구분시켰던 것을 상기해보라. 마르크스에 따르면 물신의 비합리적 믿음은 비서구에서 기원한다. 따라서 ‘서구의 합리성’으로 물신의 비합리적 믿음을 폭로시켜야 한다. 자본주의 물신을 논하면서도 서구와 비서구를 위계화하는 이런 분리는 여전히 존재한다. 때문에 전 지구적 차원에서의 여성 노동자들의 매끈하게 보이는 마술적 연결은 마찰을 빚을 수밖에 없다. <스퀴즈>에서는 영화적 편집을 통한 공간과 공간의 마술적 연결로 인해 사물들 사이의 관계를 노동자들 간의 사회적 관계로 바꾸어 놓으면서 인종적, 지리적 마찰을 인지 가능하게 만든다.

    위에서 인용한 것처럼 마르크스는 노동력의 지표가 생산된 물건에서 지워지면서 사람들의 사회적 관계는 그들의 외부에 존재하는 사물들의 사회적 관계로 바뀌게 되고, 이 사물들은 ‘스펙터클 사회’에서 감각적으로 물질화된다고 말했다. 로텐버그는 영화적 편집을 이용해 사물들 간의 관계를 다시 사람들 간의 관계로 치환한다. 땅과 벽에 난 구멍과 조립라인(영화적 편집)은 그들의 관계를 다시 복원한다. 그러나 그 관계는 합리적으로 설명되지도 매끈하게 복원되지도 않는다. 그 관계들은 이미 전 지구적으로 개인의 지각을 넘어선 크기로 확장되었으며, 연결과정도 실제로는 너무나 복잡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여성 생산자들 간의 갑작스럽고 명확하게 이해되지 않는 연결은 오히려 그들 간의 차이와 마찰을 각인한다. 외부 공간과 내부 공간, 현실과 초현실, 다큐멘터리 기록 푸티지와 환상적이고 동화적인 세트 촬영의 직접적인 연결 덕택에 그 간극과 마찰이 더 강조된다. 동시에 이것은 쇼트와 쇼트, 이미지와 이미지, 개념과 개념 간의 간극(interval)을 물질화한다.

    물신은 단단하고 공고한 기표가 아니다. 물신은 화려하고 번쩍번쩍 빛나는 표면으로 대중의 눈을 붙잡아 두지만 그 취약한 표면이 찢어지면 물질 생산과 비물질 생산, 육체노동과 인지노동, 지표기호와 상징기호, 내부와 외부, 현실과 초현실, 자연과 인공, 지시대상과 이미지, 실재와 환상, 입력과 출력, 주체와 객체 그리고 신체와 비체 등의 이분법이 무너지게 된다. 전작에서 표현된 만큼은 아니지만 이 작품에서도 ‘두려운 낯선(uncanny)’ 비체의 표현이 포함되어 있다. 멀비는 물신의 취약한 껍질이 찢어지는 순간은 두 가지로 해석될 수 있다고 한다. 하나는 어머니의 자궁과 같은 익숙하지만 낯선 공간이다. 이 공간은 기억의 흔적을 품고 있다. 다른 하나는 줄리아 크리스테바의 개념인 비체이다.25) 비체는 배변, 응고된 우유, 구토물, 시체물과 같은 혐오스럽고 불편한 것들이다. 비체는 한때 주체의 일부였지만, 나를 새롭게 형성하고 나의 경계를 만들기 위해 나에게 낯선 것을 거부하고 밀어 내고 추방한 것이다. 이러한 주체 형성 과정을 크리스테바는 아브젝시 옹(abjection)이라 명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아이의 발달 과정에서 엄마의 신체는 아이가 낯설고 혐오스러운 것으로 밀어내는 것 중의 하나라는 것이다. 비체는 주체와 객체의 구분을 모호하게 하기 때문에 혐오스러운 것이 된다. 엄마와 한 몸으로 인식했던 아이는 ‘나’의 경계를 만들기 위해 모성적 신체에 혐오를 투사한다. 비체는 추방되거나 제의를 통해 순화되지만 그것은 떠나지 않고 흔적을 남기며 언제든 돌아올 수 있다. 왜냐하면 비체는 한 때 주체와 하나였던 것이고, 특히 어머니의 몸은 반려로서 주체의 깊은 상실을 각인하기 때문에 모성적 코라(cora) 혹은 크리스 테바가 기호계(상상계와 상징계, 주체와 객체가 구분되지 않고, 재현 불가능한 공간)라고 명명한 것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욕망을 늘 품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비체는 혐오와 동시에 매혹을 불러일으킨다.26)

    <스퀴즈>에서 무언가를 누르고 짜내서 부산물을 얻어내는 과정은 아브젝시옹과 유사하다. 락 로즈가 뺨에서 떨어트리는 분가루 혹은 각질, 우유 같은 고무나무의 수액, 미셸의 넘쳐흐르는 살과 에너지, 날름거리는 혀와 엉덩이, 캘리포니아 농장 노동자들의 땀 등. 로텐버그는 실제로 그녀의 조립라인을 원초적 어머니의 공간으로 묘사한다. 로텐버그에 따르면 그곳은 모든 것이 주체의 신체로부터 해체되어 파편 화되는 동시에 모든 것이 연결되는 다소 퇴행적 공간이다.27) 또한 페티시 워커들은 사회에서 낙인찍히거나 추방되기 쉬운 비체와 같은 존재들이다. 로텐버그 비디오의 과잉은 물신을 비체화한다. 그러나 로텐 버그의 비체가 크리스테바가 개념화한 비체와 다른 점은 잉여가치의 창출을 위해 미개척 분야의 개척에 혈안이 되어 있는 자본주의 체제가 비생산적인 비체에서도 가치를 만들어 내고 있다는 점이다. 비체인 시체도 가치를 생산하는 것이 오늘날의 현실이다. ‘유튜브’ 같은 온라인 동영상 사이트에서 실제로 사람이 죽는 장면은 엄청난 수의 클릭 수를 유도한다. 이 클릭 수는 자연스럽게 광고로 이어진다. 그렇다고 비체가 완벽하게 체계의 논리에 봉합되지는 않는다.28) 특히 페티시워커들은 자기 생산의 수단을 소유하고 있기 때문에, 이들은 자신의 몸에 갇혀있지만 그것이 해방의 도구가 될 수도 있다. 이 여성들의 자원은 자기 자신의 신체 이미지와 퍼포먼스 능력이다. 여기서 자연과 인공은 구분되지 않는다. 그녀들은 익숙하면서도 낯선 모성적이고 비체적인 공간을 열어 놓으면서 동시에 인위적인 퍼포먼스를 통해 자연적 질료로 머무는 것을 거부한다.

    가치를 생산하는 여성 신체는 이중적이고 복잡하다. 여성의 신체는 언제나 물질적이면서도 비물질적이다. 여성의 신체는 영화 이미지와 같은 시각적 이미지에 너무나 깊게 오염되어 있기 때문이다. 여성의 몸은 때로는 감옥이면서 때로는 해방이 되기도 한다. 전통적인 노동자의 몸이면서 동시에 비물질 경제의 노동양식을 오래 전부터 수행해왔다. 그녀들의 신체는 서로 마찰을 일으키면서 우연적이고, 신비로운 방식으로 연결되어 있다. 영화적 이미지가 내적 사유와 외적 표현 사이에 분리가 없는 것처럼, 여성의 신체도 외부와 내부, 물질과 비물질의 경계를 무너트린다.

    10)전작과 달리 실제 농장의 노동자들을 현장에서 기록한 영상을 포함한 것은 최근 갤러리의 비디오 설치 작품에서 다큐멘터리 영상이 증가하고 있는 경향과 맞닿아 있다고 할 수 있다. <스퀴즈>에서 실제 노동 현장의 다큐멘터리적 기록을 포함한 것은 한편으로는 이 기이하고 환상적인 비디오 설치 작품이 실제 삶을 진지하고 진정성있게 다루고 있음을 증명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다큐멘터리 영상에 인공적이고 허구적인 세트 공간을 이어붙임으로써 우리가 익숙하게 생각하는 현실의 일상이 실제로는 얼마나 기이하고 환상적으로 구성되고 있는지를 자연스럽게 드러냄으로써 ‘실제 삶(real life)’을 창조 한다, 이와 관련된 최근의 경향을 살펴보기 위해선 Hito Steyerl의 “Art or Life? Documentary Jargons of Autheticity”(Truth, Dare or Promise: Art and Documentary Revisited, ed. Jill Daniels, Cahal McLaughlin and Gail Pearce, Cambridge Scholars Publishing, 2013, pp.1-9)  11)Mika Rottenberg, Ibid.  12)Jonathan Beller, “Paying Attention”, Cabinet, Issue 24, Winter: 2006/07. http://www.cabinetmagazine.org/issues/24/beller.php  13)Jonathan Beller, Ibid.  14)<카메라를 든 사람>은 전화, 철도, 기계 등의 도움으로 사회가 연결되고 생산성이 높아지는 것과 기계와 인간 눈의 인터페이스 효과를 유비관계로 묘사한다. 영화가 진행될수록 키노-아이의 감각능력의 향상으로 영화의 리듬은 점점 더 빨라지고 디졸브 등의 특수효과도 점점 더 스펙터클해진다.  15)아넷 마이클슨(Annette Michelson)은 이 영화를 마르크스와 엥겔스(Friedrich Engels)의 『독일 이데올로기』의 영화적 독해 혹은 재창조로 해석하며 다음과 같이 말한 바 있다. “만일 영화-노동이 직물공의 노동과 계열체적 지위를 공유한다면 그것은 베르토프에게는 사유재산의 폐기로 인해 눈은 진정한 ‘인간의 눈이 되었’고, ‘인간의 눈에 비친 대상이 인간의 의해 창조되고, 그리고 인간을 위해 예정된 인간적이고 사회적인 대상이 되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감각이 ‘사실상, 곧바로 이론’이 될 때, 눈은 진정한 키노-아 이가 되는 것이다.” 아넷 마이클슨, 「서문(1983)」, 지가 베르토프, 『키노아이 : 영화의 혁명가 지가 베르토프』, 김영란 옮김, 이매진, 2006, 38쪽.  16)Jonathan Beller, Ibid.  17)사실 이러한 자본주의의 생산양식을 가장 먼저 정교하게 이론화한 이는 기 드보르다. 기 드보르는 ‘스펙터클’이 자본주의 가치 생산의 핵심이 되고 있다는 사실을 정확하게 지적한 바 있다. 한편 수잔 벅모스 또한 윈도우 숍의 등장 이후 상품은 영화화되고(스펙터클이 되고), 영화는 상품이 되었음을 지적한 바 있다. 기 드보르의 『스펙타클의 사회』(이경숙 옮김, 현실문화연구, 1996)와 수잔 벅모스의 『발터 벤야민과 아케이드 프로 젝트』(김정아 옮김, 문학동네, 2004)를 참조하시오.  18)그러나 <스퀴즈>가 비물질 경제에만 주목하는 것은 아니다. 이 영상에는 다양한 종류의 상품 생산 방식이 포함되어 있다. 특별한 공정을 거치지 않은 채 자연에서 직접 채취하는 양상추, 나무의 수액을 받아 공정 과정을 거쳐야 하는 라텍스, 보다 더 복잡한 공정 과정을 필요로 하는 블러셔, 그리고 서비스 노동. 여성들은 이 모든 종류의 노동에 포진해 있다. 따라서 <스퀴즈>는 비물질 가치 생산을 탐구하고 있기는 하지만 물질 노동을 배제하지 않는다. 오히려 오늘날에도 물질 노동과 비물질 노동이 공존하고 있고, 비물질 경제가 실제로는 물질 경제에 얼마나 의존하고 있고 연계되어 있는지를 강조한다. 이것은 당연하게도 제 일 세계와 제 삼 세계의 관계에서도 적용된다. 제 일 세계의 예술작품을 만들기 위해 전 지구의 여성 노동자들이 동원된다. 예술 상품은 이들의 노동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19)Anthony Haden-Guest, “The New Queen of the Art Scene,” New York, Vol.15, No.26, New York Media. LLC, 19th April, 1982, pp.24-30.  20)Mika Rottenberg, Ibid.  21)빠울로 비르노의 퍼포먼스로서의 생산품에 대한 사유는 오늘날 과정과 결과의 관계에 대한 논의에 도움을 준다. 비르노는 포스트포디즘 생산양식이 지닌 정치적 성격을 깊이 파고들며 생산(품)은 탁월한 기예(virtuosity), 노동자는 명인(virtuso), 일반지성은 악보 (score)의 유비관계를 제시한다. 정치적 행위는 탁월한 기예처럼 타인의 눈에 노출을 필요로 하며 고정된 결과물을 갖지 않는다. 소통능력과 사회적 협력이 필수적인 포스트포 디즘 생산과정 또한 이와 같은 정치적 행위의 특징을 갖는다. 따라서 포스트포디즘 생산과정에서 노동(poiesis), 정치적 행위(praxis), 지성(정신생활)이 구분되지 않는다. 이에 가장 적합한 예시는 청중을 앞에 두고 공연하는 연주예술가이다. 연주자는 청중이라는 타인의 현존과의 즉각적이고 회피할 수 없는 관계를 공유하며 동일한 악보로 매번 다른 연주를 선사하며 최종 작품을 갖지 않는다. 탁월한 기예에서는 과정이 중요할 뿐만 아니라 최종 결과물과 과정이 구분되지 않는다. 빠올로 비르노, 『다중- 현대의 삶 형태에 관한 분석을 위하여』, 김상운 옮김, 갈무리, 2004, 79-115쪽.  22)Laura Mulvey, Ibid. pp.1-6.  23)칼 맑스, 『자본론 제1권』, 김수행 옮김, 비봉출판사, 2005, 93쪽.  24)Laura Mulvey, Ibid. p.6.  25)Laura Mulvey, Ibid. pp.13-14.  26)노엘 맥아피, 『경계에선 줄리아 크리스테바』, 이부순 옮김, 앨피, 2007, 91-99쪽.  27)Mika Rottenberg, Ibid.  28)죽음의 순간을 기록한 선정적인 유튜브의 동영상은 클릭수를 유도하며 자본에 이익을 가져다준다. 그러나 이러한 상황이 완벽하게 자본의 시스템에 포섭되지 않는다. 2009년 이란에서 친정부 민병대가 쏜 총에 맞아 사망한 네다 아그하-솔탄의 동영상이 그 예가될 수 있을 것이다. 네다의 사망 장면은 유튜브에 업로드 되어 대대적인 반정부 시위를 촉발시키며 이란 시민들의 민주주의를 향한 열망과 정의로운 분노에 불을 지피는 역할을 했다. 즉 네다의 사망 장면이 담긴 동영상은 어느 쪽에도 완벽하게 포섭되지 않는 양가성을 갖는다.

    4. 나가며

    미카 로텐버그의 <스퀴즈>는 오늘날의 자본주의 체제에서 ‘상품-이미지’에 어떻게 가치가 표식 되고, 어떻게 노동이 이루어지고 있는지를 탐색하고 있다. 여기서 <스퀴즈>가 돋보이는 것은 무엇보다 젠더와 섹슈얼리티의 관점을 놓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노동과 생산양식에 대한 고찰은 늘 젠더 및 섹슈얼리티의 고찰과 늘 함께 가야 한다. 그것이 관심 자체가 상품이 되는 ‘주목 경제’의 체제 하에 있다면 더욱 그렇다. 자기 신체의 부산물 혹은 이미지를 수단으로 가치를 생산 하는 방식은 오래 된 여성 노동 중의 하나였다. 여성 노동과 여성 이미지에 대한 복잡하지만 끈질긴 추적은 비물질 경제를 논할 때 흔히 범하게 되는 오류인 신체와 물질 경제의 탈각을 막아준다. 두 번째 주목할 만 한 점은 주체로부터 밀어내고 추방한 비체가 버려지거나 상실감으로만 남아있는 것이 아니라, 이윤을 남기는 가치 생산 체계로 편입되고 있다는 사실의 포착이다. 자본은 기존에 비생산적인 영역이었던 장소를 끊임없이 개척하고 있다. 만약 주체 형성 과정에서 ‘나’의 경계를 만들기 위해 추방한 낯선 것들이 가치를 측정할 수 있는 단위로 포장되어 돌아온다면 어떻게 될까? ‘나’의 경계는 점점 더 모호해지고, ‘나’는 파편화되고, 분리가 불가능하며, 모든 곳에 연결되어 멀티태스킹 하는 주체로 바뀌게 될 것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로텐버그는 우리의 익숙하지만 낯선, 우연성과 미스터리에 기대어 있는, 자기만의 마술적인 논리를 갖고 있는 자본주의의 감각을 시각적으로 번역해 낸다.

    로텐버그의 작품을 단순히 자본주의 체제의 시뮬레이션이나 알레고리로 보아서는 이 작품이 포착하고자 하는 것을 목격하지 못할 것이다. 오늘날 자본주의 체제의 핵심이면서 동시에 노동의 과정에서 그 구조의 논리를 초과하는 여성 신체의 시각적 번역이야말로 이 작품의 가장 큰 성과라고 할 수 있다. 여기서 가치를 창조하는 여성 신체는 자본주의의 이중성과 모순을 여는 장소이자 행위자가 된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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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 테이블
  • [ <그림 1> ]  <밀가루 반죽>(2005)(左)과 <치즈>(2008)(右)
    <밀가루 반죽>(2005)(左)과 <치즈>(2008)(右)
  • [ <그림 2> ]  내부와 외부, 현실과 초현실의 마술적 연결, 그리고 인종적 마찰 혹은 마사지
    내부와 외부, 현실과 초현실의 마술적 연결, 그리고 인종적 마찰 혹은 마사지
  • [ <그림 3> ]  정육면체의 오브제를 들고 있는 매리 분(左), 벽에서 나온 (혹은 땅 속으로 넣은) 손에 마사지중인 아시아 서비스 노동자(中), 몸을 눌러 분가루를 만들고 있는 락 로즈(右)
    정육면체의 오브제를 들고 있는 매리 분(左), 벽에서 나온 (혹은 땅 속으로 넣은) 손에 마사지중인 아시아 서비스 노동자(中), 몸을 눌러 분가루를 만들고 있는 락 로즈(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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