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lville’s Young Men: ‘Queer’ Marriage and the Narratives of Male Growth

멜빌의 청년들: ‘퀴어’한 결혼과 남성적 성장의 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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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ABSTRACT

    This study aims to theorize what I would like to name Melville’s ‘queer aesthetic’ which deploys a certain type of ‘queer’ male characters. These male characters are seemingly ordinary young men but destined for an extraordinary fate, which is largely defined by a failure to grow into so-called normal adulthood through marriage. Pierre in Pierre, or the Ambiguities marries his alleged half-sister Isabel so as to restitute the deprived family name to her and to cut ties with the corrupt past of his family. However, with this radical decision his life only spirals down to a complex set of failures. For him, marriage is an occasion for achieving an independent adulthood; yet he cannot succeed insofar as his performance of masculinity is predicated on his impossible desire for his sister and his inability to break away from the paternal heritage. For Billy in Billy Budd, Sailor, marriage figures only metaphorically as a “consummation” of his death sentence, caused by his failure to articulate himself in an existing order of masculine language that conflates heterosexual notions of justice and legitimate male desire. While marriage thus figures in Melville’s narratives as a threshold to a stunted adulthood and even death, Melville’s young male characters act out a ‘queer’ failure of the traditional Bildungsroman formulae of male growth and successful socialization. This peculiar failure is the gist of Melville’s uniquely anti-Bildungsroman narrative that textualizes his queer aesthetic, which in turn resists, disrupts and critiques the persistently hegemonic notions of heterosexual masculinity of the Andrew Jackson era and beyond.


  • KEYWORD

    Herman Melville , Pierre or the Ambiguities , Billy Budd , masculinity , failure , Bildungsroman , queer theory , homosexuality , queer aesthetic

  • 1. 멜빌의 ‘퀴어’한 청년들

    허먼 멜빌(Herman Melville)이 주로 남자들의 이야기를 작품 속에서 다루면서 이른바 ‘남성중심적’인 작품들을 썼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지만, 그 사실에 대한 독자와 평자들의 관심은 소진되지 않는 듯하다. 관건은 멜빌의 그 ‘남성중심적’ 성향에 대한 해석의 가능성인데, 우선 필요한 것은 남성성을 관심사로 하는 기존 멜빌 연구의 성과와 한계를 점검하는 일일 것이다.1)

    일찍이 이전의 미국문학 연구에서 리처드 체이스(Richard Chase), 레슬리 피들러(Leslie Fiedler) 같은 비평가들이 멜빌의 남성중심적 특성에 대해 언급한 바 있다. 미개척의 거대한 자연에 맞서는 남성인물의 모험, 그 가운데서 형성되는 남성들 사이의 유대관계 등에 주목하는 그들의 고전적인 미국문학비평에서 멜빌은 독보적인 위상을 지닌다. 하지만 그들의 연구는 정전화된 여러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남성성을 일종의 미국적 징후로 보고, 이러한 남성적 특성을 매개로 삼아 미국의 국민문학전통을 이론화하는 것이었다. 반면에, 남성성 자체를 하나의 특정한 젠더로 보고 그것이 미국의 역사적, 문화적 맥락 속에서 어떻게 구성되고 경험되고 변화되는지, 그리고 그러한 점들이 특히 멜빌의 문학작품에서 어떻게 재현되는지에 초점을 두는 연구는 20-30년 전까지도 그다지 많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멜빌과 남성성의 문제에 주목하였던 비평가들의 견해는 멜빌의 텍스트를 그의 전기적 자료와 병치하여, 멜빌이 불행한 결혼생활을 비롯한 개인적 문제들로 인해 남성적 우정/애정에 집착했다는 내용의 유사정신분석적 차원을 크게 넘어서지 않는 경향 또한 있었다. 그러나 20세기 후반 대두된 남성성 연구와 퀴어이론의 영향 하에서, 멜빌이 텍스트화하는 남성성 및 남성의 욕망은 더욱 중요한 의제로 부상하였고 그러한 점에 대한 비평적 시각도 점차 다양해졌다. 멜빌의 작품 속에서 젠더역할과 성 정체성 등의 이슈가 문제화된다는 점에 대한 심층적 고찰이 이루어지면서, 멜빌 특유의 모호함이 바로 성과 젠더에 관한 지배적 인식 및 실천방식에 대한 비판적 시각의 반영이라는 주장들도 나오게 된다. 그 중에서도 멜빌의 텍스트가 동성애적 에너지를 동력으로 삼아 작동한다는 점을 강조하는 몇몇 비평가들의 주장은 큰 비평적 반향을 불러일으켰다.2) 꼭 동성애에 초점을 두는 시각에서가 아니더라도, 멜빌의 작품 속에서 찾아볼 수 있는 남성성의 다양한 함의들은 최근 그 어느 때보다도 다각적인 조명을 받고 있다.

    멜빌이 작품 속에서 형상화한 남성성은 실로 그 스펙트럼이 넓다. 우선 『모비딕』(Moby-Dick, or the Whale)에 등장하는 남성 인물들만 보더라도, 카리스마와 야심, 권위를 지닌 선장 에이헙(Ahab)이 있는가 하면, 선실의 심부름을 하는 흑인 소년 핍(Pip)처럼 여러 층위에서 주변화되어 절대적 탈권력의 위치에 놓인 인물도 있다. 또 일등항해사 스타벅(Starbuck)처럼 기존의 남성적 위계질서의 경계는 벗어나지 않은 채로 남성적 권위의 발현 양식에 의문을 제기하면서 소극적 수정을 시도하는 인물도 있고, 인종적, 문화적 타자성을 체현하면서 전혀 다른 가치체계의 기호로 기능하는 퀴퀙(Queequeg) 같은 인물도 있다. 그런가 하면 서술자 이쉬미얼(Ishmael)은 작가의 목소리를 매개하는 수사적 장치인 동시에 서사 속 개별자로서의 구체적 육체성과 감성도 현신하는 독특한 인물이다. 멜빌의 다른 작품들을 함께 고려하면 이 스펙트럼은 더욱 증폭된다. 하지만 이처럼 다양한 인물군 가운데서 필자가 특히 관심을 가지고 살펴보고자 하는 인물들은, 그의 작품들에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평범한 것 같으면서도 통상 규범적이라고 여겨지는 남성성을 어딘지 빗겨가며 이른바 정상적인 사회화 및 성장의 과정을 거치지 못하는 일단의 젊은이들이다. 특별할 것 없어 보이지만 결코 평범하지 않은 이 청년들은 고아이거나 혹은 과거와 단절된 외로운 인물들이고, 대부분이 독특한 비극적 운명의 장본인들이다.

    우선 『피에르, 혹은 모호한 것들』(Pierre, or the Ambiguities)의 피에르 글렌디닝(Pierre Glendinning)은 낭만적인 품성, 정의감, 빼어난 용모를 두루 갖춘 청년이다. 그러나 어쩐 일인지 그의 삶은 근친상간적 관계와 실패로 점철되어 있다. 또 『수병 빌리 버드』(Billy Budd, Sailor)의 주인공 빌리의 아름다운 외모는 가히 전설적이다. 그는 출신도 신분도 별다를 것 없는 평범한 청년이지만, 그의 아름다움을 묘사하고 강조하는 데 멜빌의 서술이 할애하는 관심은 이미 그를 범상치 않은 인물로 만든다. 피에르와 빌리는 정상이라 여겨지는 이성애적 관계를 유지하지 않으며, 그들을 사회적 주체로 만드는 욕망의 경제는 전통적인 이성애의 구도와는 사뭇 다른 양상들을 포함한다. 동성사회적(homosocial) 관계와 동성애적(homosexual) 관계들 사이의 불분명한 경계 위에 주로 위치해 있는 이 청년들은 외형이나 내면에서 그야말로 어딘지 ‘퀴어’하다고 할 수 있는데, 실상 이렇게 퀴어한 청년들은 피에르와 빌리 이외에도 멜빌 작품의 이곳저곳에서 심심치 않게 발견할 수 있다.3) 넓게는 『모비딕』의 이쉬미얼도 이 인물군에 포함된다고 볼 수 있고, 「필경사 바틀비」(“Bartleby, the Scrivener”)의 주인공 바틀비(Bartleby) 역시 마찬가지다. 필자가 이러한 인물들이 성장하고 사회화되고 타인과 관계를 형성하는 양상에 주목하는 이유는, 멜빌의 이 청년들이 당대의 규범적 남성성의 모순적 면모를 흥미롭게 체현하면서, 이상화된 남성성의 문제점을 드러내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멜빌의 남성 인물들이 맺는 동성사회적 관계 또한 이상화된 우정에서부터 좌절된 성적 에너지가 빚어내는 증오에 이르기까지 여러 가지 양상을 보인다. 그들은 남성간의 관계망 속에서, 흔히 규범으로 여겨지는 이성애중심적 방식과는 다른 양태로 자의식과 욕망, 성적 에너지를 표출한다. 가령 『타이피』(Typee: A Peep at Polynesian Life)에서 서술자 토모(Tommo)는 포경선 돌리 호(the Dolly)의 선원들이 누쿠히바의 원주민 여인들과 벌이는 난교에 비판적 시선을 보내고 권위와 폭력으로 유지되는 포경선의 남성적 위계질서에 반발하면서, 동료 선원 토비(Toby)의 공감과 우정에 의존하여 섬으로의 탈출을 감행한다. 토모가 타이피 섬에서 누리는 즐거움에도 한편으로는 원주민 아가씨 페이어웨이(Fayaway), 다른 한편으로는 원주민 청년 코리코리(Kory-Kory)와의 양성애적(bisexual) 유착관계가 큰 몫을 한다. 그리고 『모비딕』의 그 유명한 94장, 즉 피쿼드 호(the Pequod)의 선원들이 나란히 서서 큰 통 안에 함께 손을 넣고 향유고래(sperm whale)의 향유 덩어리를 짜 녹이는 장면에서 이쉬미얼(Ishmael)은 집단노동으로 표출되는 남성들 사이의 동성사회적 친화성을 이상화하는 동시에, 우유빛 향유(sperm)로써 매개되는 남성들 간의 신체적 접촉과 그것이 야기하는 감각적 쾌락을 적극적으로 낭만화한다. 이 청년들은 그런 점에서 일종의 퀴어한 주체들에 다름 아니며, 이 퀴어한 청년들은 멜빌이 재현하는 남성성의 의미에 대한 다층적 해석을 요청하고 있다. 멜빌의 작품에서 발견되는 이 퀴어한 인물들과 퀴어한 관계들은 당대의 헤게모니적 남성성에 대한 멜빌의 통찰을 새롭게 사유하는 데 흥미로운 단초를 제공한다.

    물론 이러한 인물들이 그간 비평적 주목을 전혀 받지 않은 것은 아니다. 이는 멜빌 개인의 성적 지향성 혹은 기벽에 관한 무수한 추측과 가설, 그리고 그에 근거한 평가에서도 알 수 있다.

    위와 같은 평가는 멜빌의 퀴어한 인물들을 그의 개인적 성향의 발현으로 여기는 대표적 경우라 할 수 있다. 리처드 체이스의 이 진술은 여성성과 남성성의 본질론적 특성에 대한 매우 보수적인 이분법에 근거하고 있으며, “소녀적”(girlish)이라는 표현에서 드러나다시피 헤게모니적 남성성의 코드에서 이탈하는 인물을 여성적이라고 규정하고 폄하하는 입장이다. 체이스는 멜빌이 제도화·규범화된 이성애중심적 젠더 역학의 궤도에서 벗어나는 인물들을 그려냈다는 것을 감지하였으나 그러한 남성성의 문학적 재현이 지니는 비판적 역량을 가늠하지 않고, 그것을 멜빌 개인의 심리적, 성적 지향의 증상으로 읽고 있다. 이런 식으로 멜빌의 퀴어한 주인공들을 ‘여성적’이라고 정의하고 그러한 인물들을 멜빌 자신의 성적 지향성과 결부시키는 입장은, 동성애를 전도된 이성애로 규정하는 구시대적 병리학이 동성애자에게 부여했던 도착적 성정체성(‘invert’) 안에 암묵적으로 멜빌과 그의 인물들을 가두는 결과를 낳는다. 작가 멜빌의 개인사와 그의 작품을 손쉽게 동일시하는 경향 역시 지양할 필요가 있다. 멜빌의 작품이 보이는 양성애적 특성을 멜빌 개인의 내적 양성성에 기인하는 것으로 보고 그의 불행했던 결혼생활과 결부시켜 평가하였던 전기 평자 뉴튼 아빈(Newton Arvin) 역시 비슷한 입장이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4)

    한편 멜빌의 이 퀴어한 인물들이 과연 오늘날 우리가 ‘동성애자’로 일컫는 특정한 정체성을 소유하는지, 혹은 그러한 규정적 틀과 용어들을 사용하여 이 인물들을 논하는 것이 얼마나 적절한지에 대해서도 숙고할 필요가 있다. 리오 버사니(Leo Bersani)는 특히 『모비딕』의 배경인 선상 공간은 육지 사회에서의 관계 특히 가정의 구도를 전적으로 대체하는 심리적 공간으로 설정되었기 때문에 작품 속 인물들이 동성애적 에너지를 수월하게 경험할 수 있다고 보고, 그들에게 “전혀 성적인 주체성이 없다”고 말한다(146).5) 이 입장을 수용한다면 피쿼드 호 선원들 간의 관계와 그 함의에 대한 전반적 재고가 필요하겠지만, 그러한 입장이 가령 이쉬미얼과 퀴퀙의 관계에 내재하는 동성사회적․동성애적 유대의 의미를 전적으로 무효화할 수는 없다. 그런가 하면 데이빗 핼퍼린(David Halperin)의 경우, ‘동성애’라는 개념 자체가 문화역사적 구성물이라는 사실을 강조하면서, (특히 19세기말 이전에 생산된) 텍스트의 역사적 맥락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은 채 동성애의 정체성 담론을 적용하는 것이 얼마나 부적절하고 부정확할 수 있는지를 역설한다(26-27). 반면 제임스 크리치(James Creech)는 이미 19세기 중반에 이르면 영미문화권에서 각종 성 억압의 담론들이 유통되는 가운데 동성애가 금기로 널리 인지되었고, 동성애와 관련된 약호들이 동성애적 욕망을 인지하는 이들 사이에서 비밀스럽게 소통되는 의미체계로 기능하기 시작한다고 주장한다. 크리치에 따르면 동성애의 담론적 기제에 대한 인식을 공유하는 작가와 독자들 사이에서 동성애는 기표 없는 기의로서 은밀한 의미작용을 한다는 것이다.6) 또 로버트 마틴(Robert K. Martin)은 19세기에 ‘동성애자’라는 개념이 정체성을 규정하는 유효한 현실적 범주로 작동하고 있었는지에 대해 이견이 있을 수 있음을 조심스럽게 인정하면서, “멜빌은 그의 초기작에서부터 남성들 사이에 동성애적 관계가 있을 수 있음을 알고 있었고, 동성애적 행위를 우리가 동성애적 존재 혹은 정체성이라 부르는 것과는 적절하게 구분하였다”고 말한다(7).7)

    동성애를 역사화하면서 작품과 연결시키고자 하는 이 퀴어 이론가들의 다양한 견해 차이만큼이나 중요한 또 한 가지 사실은, 멜빌의 작품들이 상당히 긴 기간에 걸쳐 분포되어 있다는 점이다. 『모비딕』(1851), 『피에르』(1852)와 『빌리 버드』(1891) 사이에는 무려 40년의 시간차가 있고, 퀴어이론이 그간 열심히 밝혀내었듯 그 40년 동안에 영미문화권에서 동성애를 인식하고 훈육하고 통제하는 방식에는 상당히 많은 변화들이 생겨났다. 『타이피』나 『모비딕』, 『피에르』에 동성애적 요소들이 있지만 ‘동성애자’라고 할 만한 인물이 없는 반면, 『빌리 버드』에는 ‘동성애자’로 여길 수도 있는 인물이 등장하는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멜빌에 대한 퀴어한 독서는 로버트 마틴의 신중한 진술을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다.

    작가의 개인사나 특정 인물의 성 정체성에 관한 논의와는 다소 거리를 두고, 이 글에서 필자는 멜빌의 퀴어한 청년들이 남성적 주체로서의 성장 과정을 어떻게 형식화하는지에 주목하고자 한다. 특히 중요한 것은 남성인물들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멜빌의 서사가 대개 그 인물들의 실패를 다루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들은 주류사회의 문화적 요구들에 부응하는 데 실패하는 남성들이고, 또 그 요구들을 효과적으로 거스르거나 그에 적절한 대안을 발견하는 데 실패한다. 군함의 질서에 적응하는 데 실패하고, 마르케사스 제도의 원주민들과의 삶에 동화되는 데 실패하고, 흰 고래를 잡는 데 실패하고, 결혼하여 안정된 가정을 이루는 데 실패하고, 인정받는 문학작품을 집필하는 데 실패하고, 마침내 저지르지 않은 반란죄의 혐의를 뒤집어쓰고 사형을 선고받아도 자신의 무죄를 항변하는 데 실패한다. 이 실패의 서사들이 의미하는 바는 과연 무엇인가?

    필자는 멜빌의 퀴어한 청년들이 그리는 실패의 궤적이 일종의 저항적 담론을 생산한다는 점을 강조하고자 한다. 멜빌은 19세기 중후반 미국사회의 헤게모니적 남성성에 비판적이었으며, 그의 소설에 등장하는 퀴어한 남성인물들은 이 실패의 서사 속에서 남성 주체의 성장과정을 이성애중심적 가부장사회의 제도화된 규범으로써 정형화하는 전통에 균열을 일으킨다. 즉 일종의 급진적인 반(反) 빌둥스로만(Bildungsroman)의 서사가 멜빌의 퀴어한 청년들을 통해 만들어지는 것이다. 그리고 실패를 향해 치닫는 이 급진적인 반 빌둥스로만의 서사는 특히 결혼이라는 수사적 장치를 사용하고 있다. 이 글에서는 멜빌의 여러 작품들을 배경에 두고, 특히 이 퀴어한 청년들의 실패를 주제화하는 두 작품 『피에르』와 『빌리 버드』를 중심으로 논의를 전개하도록 하겠다.

    1)이 점에 대한 더욱 상세한 논의는 졸고 「실패한 서사인가, 실패의 서사인가?: 『피에르』와 남성성의 수행」, 특히 56-59면을 참조.  2)이브 세지윅(Eve Kosofsky Sedgwick), 주디스 버틀러(Judith Butler) 등의 논저에 힘입은 퀴어이론의 성장은 남성성, 남성적 욕망, 남성들 간의 관계가 지니는 문화적, 정치적 의미들을 이성애중심적 젠더 이분법에서 탈구시켜 비평함으로써, 남성성 연구의 새로운 도약을 가능하게 하였다. 특히 『빌리 버드』에 대한 세지윅의 퀴어한 읽기는 멜빌을 퀴어 비평의 총아로 일약 부각시킨 예라 할 수 있다.  3)이처럼 서술의 중심이 되는 주인공들뿐 아니라 상대적으로 주변적인 인물들 가운데서도 유사한 특성을 발견할 수 있다. 가령 『레드번』(Redburn)의 주인공 웰링버로우 레드번(Wellingborough Redburn)이 리버풀에서 만나는 미소년 해리 볼튼(Harry Bolton)은 가난한 고아 청년으로 러블리 경(Lord Lovely)이라는 퇴폐적인 인물과의 예사롭지 않은 ‘친구’ 관계를 청산하고 바닷길에 오른다. 같은 작품에 등장하는 이탈리아인 손풍금 악사 카를로(Carlo)는 성매매와 관련된 공갈범으로, 그 역시 여성스러울 정도의 아름다움을 뽐내는 청년이다.  4)체이스나 아빈 등의 견해에서 발견되는 문제점들은 어느 정도는 1940-50년대의 비평적 시야가 지니는 시대적 한계와 맞물려 있다고 볼 수 있다.  5)다른 한편으로 버사니는 ‘동성애적 정체성’을 개념적으로 정의하거나 단일 의제로 주제화하기를 상당히 꺼리는 이론가이다. 동성애자라는 정체성을 “감상적으로 그리고 환원적으로 주제화하는 것”이 “세계의 현상적 다양성”을 설명하는 데 큰 소용이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 그 이유이다(419).  6)나중에 다시 언급하겠지만, 크리치 식의 주장은 텍스트가 품고 있는 퀴어한 의미의 여러 층위들을 적극적으로 발굴해낸다는 장점을 지니지만, 이미 동성애 담론을 공유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동성애 담론이 공유된다는 반복 어법을 기반으로 하기 때문에 텍스트의 의미체계를 퀴어의 차원에 한정하는 문제를 지닌다.  7)“Melville was aware, from his earliest writings, of the possibility of homosexual relations between men; he quite rightly distinguished between homosexual practices and what we might call homosexual being, or identity.”

    2. 『피에르』: 성장의 막다른 길, 결혼

    멜빌은 일견 매우 ‘남성적’인 작품들을 쓴 것으로 보이지만, 멜빌의 남성인물들은 이상하게도 언제나 당대 미국사회가 인정할법한 성공적인 남성의 입지에 놓여 있거나 규범화된 남성의 역할을 하고 있지 않다. 무엇보다도, 멜빌의 작품 속 젊은이들은 대다수가 미혼이다. 그들의 사회적 성장은 남성들 간의 유대 속에서 진행되며, 성적 주체로서의 성장 역시 결혼이라는 이성애중심적 제도와는 별개로 전개되는 경우가 많다. 『타이피』의 서술자 토모, 『레드번』의 웰링버로우, 『모비딕』의 이쉬미얼, 『빌리 버드』의 빌리, 「필경사 바틀비」의 바틀비 등이 바로 제도화된 이성애중심적 관계의 그물망에서 벗어난 채 동성 간의 관계 속에서 사회화와 남성적 성장의 경험에 노출되는 대표적인 멜빌의 젊은이들이다. 그리고 멜빌의 작품 속 남성들이 (흔치 않게) 경험하는 결혼과 가족구도는 이성애중심적 가부장제의 전통에서 흔히 이상화되곤 하는 형태와는 상당한 거리가 있다.8)

    『피에르』는 결혼과 남성주체의 성장이라는 문제를 핵심적으로 다루는 작품이다. 멜빌은 피에르와 주변 여성인물들 사이의 관계에 근친상간이라는 금기적 요소를 개입시킴으로써, 부르주아 계급의 규범화된 이성애중심적 관계와 가족구도를 매우 비판적으로 조명하고 있다. 어머니, 약혼녀와 함께 살아가는 피에르의 새들 메도우즈에서의 삶은, 감상주의와 가정 이데올로기가 이상화하는 문화적 약호들을 철저히 활용하는 언어에 의해 “완벽한” 텍스트로 묘사된다(7).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피에르의 그 “완벽한” 삶은 도리어 피에르를 낭만적 감상과 스타일의 과잉을 특징으로 하는 퀴어한 청년으로 만든다. 어머니 메리 글렌디닝(Mrs. Mary Glendinning)을 누이로 칭하면서 은밀한 연인처럼 구는 피에르는 반대로 약혼녀 루시(Lucy Tartan)와는 남매처럼 닮은 모습이다. 이렇게 약혼녀와의 관계가 어머니와의 관계와 전치되면서, 피에르와 메리 글렌디닝의 모자관계에는 성적인 에너지가 투사되지만 역으로 피에르와 루시의 연인관계는 비(非)성적인 것으로 묘사된다. 즉 그가 체현하는 이상적 남성성은 의아하게도 (어머니와의 관계에서는) 근친상간의 틀로써 형식화되며 (루시와의 관계에서는) 성적 에너지의 부재를 통해 낭만화된다. 이러한 점은 공적⋅사적 영역의 이데올로기적 분리 하에 “가정을 여성적 공간으로 규정하는 사회문화적 질서 속에서 형성된 남성주체가 근친상간적 모자관계의 유아적 환상에 고착되어”(윤조원 64), 일반적으로 정상이라 간주되는 성장과정을 겪는 대신에 일종의 도착 상태에 머무를 수 있음을 보여준다.

    더욱이 피에르의 남성주체로서의 성장은 이자벨(Isabel Banford)의 등장과 더불어 또다른 문제에 봉착한다. 이자벨이 아버지의 혼외정사에서 태어난 이복누이라는 확신을 갖게 되면서 피에르는 아버지의 과오를 바로잡고자 하는 사명감으로 루시와의 혼약을 깨고 이자벨과 결혼하여 함께 뉴욕으로 떠나게 된다. 이는 피에르로 하여금 역사의 부조리와 인간사의 비극성, 윤리적 주체로서의 책임을 성찰하게 하는 사건이지만, 피에르는 여느 교양소설의 주인공처럼 시련을 딛고 이른바 정상적인 성장의 궤도로 들어서지 않는다. 그가 이복누이라고 믿는 이자벨과의 결혼부터가 정상이라 할 수 있는 선택과는 전혀 다른 것이며, 이 선택이 초래하는 결과 또한 정상적인, 혹은 전통적인 성장의 서사와는 다른 방향으로 전개된다.

    피에르의 선택은 이자벨에게 글렌디닝이라는 가문의 이름을 적법하게 돌려줌으로써 아버지 대신 속죄한다는 취지에서 이루어지는데, 이 혼인으로 피에르는 어머니와의 근친상간적 유착관계에서 벗어나 비로소 성년이 되는 듯하다. 그러나 결혼을 통해 과연 피에르가 얼마나 어떻게 성장하는지는 의심스럽다. 그의 결혼이 또 다른 형태의 근친상간적 관계, 즉 누이와의 결합이라는 점에서 그의 성장은 오이디푸스적 가족구도와의 단절을 이루지 못하는 불완전한 것이다.9) 더욱이 그의 결혼은 아버지가 상징하는 부도덕한 과거와의 단절인 동시에 이자벨에게 아버지의 이름을 돌려주고 아버지의 이름을 복권시키기 위한 필사의 선택이기에, 피에르는 부권적 질서를 극단적으로 거부하기 위해서 부권적 질서를 극단적으로 수용한다는 역설에 처하게 된다. 게다가 파혼당한 루시가 피에르를 잊지 못하고 누이의 역할을 자처하며 뉴욕으로 찾아와 ‘글렌디닝 남매-부부’와 함께 살게 됨으로써 피에르의 결혼생활은 더욱 혼란스러워진다. 피에르는 이처럼 비정상적으로 구성된 일종의 대안적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몸부림치지만 사회적 규범이 요청하는 가장의 역할을 성공적으로 수행하는 과제는 그에게 요원한 목표일뿐이다.

    피에르의 결혼이 퀴어한 것은 무엇보다도 그것이 가부장적 전통 내에서 규범화된 결혼의 구도를 여러 면에서 파괴하고 있기 때문이며, 그의 결혼의 기반이 되는 욕망이 이성애중심주의의 헤게모니적 명령에 복종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이자벨을 향한 그의 욕망은 죽은 아버지에 대한 양가적 감정을 바탕으로 삼는다. 피에르가 이자벨에게서 발견하는 가장 큰 매혹은 무엇보다도 이자벨이 작은 초상화 속에 그려진 젊은 날의 아버지를 빼닮았다는 사실인데, 제임스 크리치는 이것이야말로 동성의 부모를 향한 전오이디푸스적(pre-Oedipal) 욕망의 발현이라는 주장을 바탕으로 『피에르』를 실질적인 퀴어 텍스트로 간주한다.10)

    크리치는 멜빌 부자에 관한 전기적 자료들을 활용하면서 멜빌의 텍스트 구석구석에서 ‘숨은’ 동성애적 코드를 발굴하여, 『피에르』를 퀴어 텍스트로 해석하는 새로운 창구를 적극적으로 모색한다. 하지만 근친상간이 “멜빌의 당대에 다소간 언급이 가능했던 부도덕함”이었다는 점을 들어서(Creech 162) 바로 그 때문에 멜빌이 동성애적 욕망보다 덜 금기시되던 근친상간적 욕망으로써 동성애적 역학을 대체하는 “절충적 대형”(compromise formation)으로 플롯을 전개한다는 크리치의 주장이 갖는 문제점은 자명하다(122). 피에르의 욕망의 원 대상은 아버지이지만 그 대상이 이자벨로 바뀌어 나타난다면 그것은 크리치 자신의 표현처럼 대상의 젠더에 “동기 없는 비약적 전환”(unmotivated gender leap)이 일어난 것이고(117), 그 동기를 설명하기는 어려운 만큼 크리치 자신도 그 비약을 “동기 없는” 것으로 규정하는 이상의 설명을 제시하지는 못한다. 현존하는 멜빌의 아버지의 초상화를 근거로 작중인물 피에르가 아버지의 초상화를 보며 느끼는 감정에 작가 멜빌의 심리를 상상적으로 투사하여 분석하는 크리치의 주장이 얼마나 설득력을 가질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이자벨을 아버지로 치환함으로써 『피에르』를 “성전환 소설”(transgender fiction)로 규정하는 독서는(120) 명백히 다층적인 문제의 본질을 동성애적 역학의 차원에 고착시킴으로써 텍스트의 의미작용을 제한하는 것이다. 다만 이자벨을 향한 피에르의 욕망에 아버지에 대한 피에르의 양가적 감정이 포함되어 있는 것만은 사실이므로, 그 점을 염두에 두고 『피에르』의 퀴어한 내용을 정리할 필요는 있을 것이다.

    피에르가 이자벨에게 갖는 감정은 아버지를 향한 욕망, 그가 살아온 삶의 규범성으로부터 도피하는 동시에 거기에 충실하려는 모순적 의지, 그리고 일종의 팜므파탈인 이자벨이 체현하는 여성적 성의 위험과 매혹을 향한 충동을 모두 포함한다. 아버지를 향한 욕망 역시 단순하지 않다. 거기엔 동성의 부모를 향한 원초적 욕망의 흔적도 있고 이성애중심적 가정 이데올로기의 헤게모니적 통제에서 빗나간 듯한 젊은 시절 댄디한 아버지의 모습과 자신을 동일시하려는 욕구도 있다. 동시에 아버지로써 상징되는 역사로 회귀하여 그 역사의 적법한 기록자이자 상속자로 인정받고자 하는 충동도 있다. 이러한 여러 가지 욕망의 혼란스러운 충돌은 이자벨을 원하는 동시에 원하지 못하는 피에르의 딜레마로 표면화된다. 결혼 생활 속에서 이자벨을 향한 성적 욕망이 구체화되면 될수록, 아버지를 향한 동성애의 욕망은 근친상간적 이성애의 현실적 실천이라는 형식 속에서 변질되고 좌절될 수밖에 없다. 자기를 대신하여 가문의 정통성과 재산을 상속받고 루시를 찾으러 뉴욕에 온 사촌 스탠리 글렌디닝(Stanly Glendinning)을 향해 피에르가 동성애적 애증을 경험하는 것은 그와 같이 다중적인 자신의 욕망이 초래하는 자기분열적 증상이다. 피에르는 결국 스탠리를 살해함으로써 파멸을 맞이한다. 피에르에게 결혼은 오이디푸스적 성장의 기회인 동시에 그것을 전복하는 계기이고, 전오이디푸스적 욕망을 충족하는 동시에 그 욕망의 영원한 현실적 좌절을 의미하는 역설적 수행의 지점이다. 결혼은 이성애적 주체로서의 피에르의 성장의 증표로 기능하는 대신, 퀴어한 주체로서의 일탈을 가속화한다. 부모 어느 쪽의 명령도 규범화된 사회의 틀 안에서 그를 성공적인 성인 남성주체로 만들어주지 못하는 가운데, 피에르는 결혼을 매개로 삼아 분열적 욕망을 봉합하는 시도를 하지만 거듭되는 실패에 지쳐 자멸에 이르는 것이다.

    8)『모비딕』의 132장에서 에이헙이 베개 위 머리 자국만 남긴 채 뭍에 두고 온 어린 아내(“girl-wife”)와 아이를 떠올리는 장면은 결혼이 언급되는 몇 안 되는 대목 중 하나이다. 여기서 에이헙에게 아내를 향한 애틋한 연정이 있음이 느껴지기도 하지만, 스타벅의 눈동자에서 아내를 본다(“‘I see my wife and child in thine eye.’”)는 그의 말로 인해 제도화된 이성애적 결합의 의미는 충직한 일등항해사와의 동성사회적 소통, 동성애적 욕망과 중첩·환치되고 있다(544). 또 단편 「나와 우리 집 굴뚝」(“Me and My Chimney”)의 주인공은 오랜 결혼생활에 익숙한 자신과 윗부분이 잘린 자기 집의 굴뚝을 병치시킴으로써 제도화된 이성애적 결합 및 가정 구도에서 훼손된 남성성의 이미지를 환기한다.  9)“한편으로 피에르는 아버지의 이름을 온전히 영광스러운 것으로 회복시키고 자신이 믿어온 청교도적 윤리를 철저히 실천하기 위해 ‘누이’와 근친결혼을 하므로, 상징계의 명령을 수행하기 위하여 상징계적 질서가 요구하는 성장과정을 겪지 못하는 딜레마에 처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그는 아버지와 윤리적 절대가치의 이름을 빌어 ‘누이’를 향한 욕망, 근친결혼을 정당화하는 것이기도 하므로, 역설적으로 상징계의 명령을 차용하여 상징계적 질서가 요구하는 헤게모니적 남성성의 수행을 거부하고 교란하는 것이기도 하다”(윤조원 68).  10)여기서 크리치는 주디스 버틀러(Judith Butler)가 여성 동성애를 이론화하는 논리를 남성 동성애에 적용하고 있다. 여아가 최초의 욕망의 대상으로서의 어머니와 형성하는 관계로부터 여성 동성애의 역학을 도출하는 버틀러의 논의를 남아와 아버지의 관계에 똑같이 적용하는 것에는 물론 의문의 여지가 있으며, 이 점은 크리치의 주장에 전격 동의하기 어려운 큰 이유이다.

    3. 『빌리 버드』: “미남 수병”의 죽음

    『모비딕』이 피쿼드 호의 다양한 인물군과 그들 사이의 관계를 통해, 남성중심적 사회의 위계질서와 지배원리를 비판적으로 그리는 동시에 남성적 권력의 문제점들을 상쇄할 만한 유토피아적 가능성을 함께 탐색하고 있다는 것은 이미 여러 비평가들에 의해 지적된 바이다. 피쿼드 호 위에서 형성되는 남성간 유대의 긍정적 가치는 『모비딕』의 인물들이 결혼 제도로 요약되는 이성애중심적 규범으로부터 물리적으로 거리를 유지하고 있기 때문에 더욱 부각되는 듯하다. 『모비딕』에서 결혼은 이쉬미얼과 퀴퀙의 결합이라는 매우 퀴어한 형태로 나타나며, 이쉬미얼의 이 퀴어한 결혼 상대는 작품의 말미에서 이쉬미얼의 생존을 가능하게 하는 인물이 된다. 그런데 이후 멜빌의 작품에서는 남성 주체의 이른바 정상적인 성장, 그리고 남성들 간의 동성사회적 관계가 지니는 가치에 대한 낙관을 찾아보기가 어려워진다. 『모비딕』이 출판된 이듬해 출판된 『피에르』에서 볼 수 있듯, 멜빌의 청년들이 결혼을 통해 (적어도 표면적으로는) 완성되는 이성애적 주체로서의 성장 궤도를 밟지 않는다는 것은 분명하다.

    피에르가 일종의 원초적 욕망이 명령하는 절대적 선의 가치에 투신하면서도 아이러니한 실패의 길로 들어선다면, 수병 빌리 버드는 피에르와 계급적 위치는 다르지만 그와 유사한 절대적 정의의 명령에 복종하여 아이러니한 죽음을 맞이한다. 하지만 피에르가 이성애중심적 부르주아 문화를 배경으로 낭만화된 결혼이라는 이성애적 명령을 퀴어하게 수행하는 인물이라면, 빌리 버드는 남성중심적인 군사문화를 배경으로 남성들 사이의 동성사회적 관계에 내재하는 욕망의 함의들을 뚜렷이 가시화하는 인물이다. 천사 같은 금발을 휘날리며 볼에는 홍조를 띤 채 맑은 눈망울로 동료들을 매혹하는 건장한 순수청년 빌리는 작가 멜빌이 실제로 이러한 유형의 남성성에 일종의 성적 매혹을 느끼고 있었을 것이라는 식의 독서를 유발한 장본인이기도 하다. 그런 점에서 빌리는 필자가 주목하는 ‘멜빌의 청년들’을 대표한다고도 할 수 있다.

    “창문을 통하듯 그의 하늘빛 눈동자를 통해 드러나는 내면에 자리한 기질” 그리고 “발그레한 뺨에 보조개가 패이고 관절이 유연하며” “금빛으로 춤추는 곱슬머리”로 인해 “발군의 ‘미남 수병’이 된” 빌리 버드는(459) 멜빌이 분명 남성적 육체의 아름다움에 상당한 관심을 가지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멜빌은 또 이런 빌리를 선임위병하사관(master-at-arms) 존 클래거트(John Claggart)의 눈을 통해서 조명함으로써, 그의 아름다움을 더욱 강조하며 그 아름다움이 클래거트라는 인물 속에서 자아내는 욕망을 함께 부각시킨다. “열기에 달뜨기 시작한 눈물에 이상하게 얼룩진” 눈으로 빌리를 바라보는 클래거트는 “마치 운명과 금지가 아니었던들 빌리를 사랑할 수 있었을 것 같은” 마음으로 “보드라운 간절함”을 느낀다(467). 클래거트의 이 “보드라운 간절함”(soft yearning)은 “운명과 금지”(fate and ban)로 인해 “사랑”으로 발전할 수 없는 그 어떤 욕망이다. 빌리를 향한 클래거트의 이 금지된 욕망은 또 클래거트의 “은밀한 본성”(hidden nature)에 기인하는 것으로 기술되고 있다(458). 『빌리 버드』가 뭇 퀴어 이론가들을 흥분시키는 뜨거운 퀴어 텍스트가 된 것은, 서술자의 말처럼 바로 클래거트의 이 “은밀한 본성”이야말로 “이야기를 좌우하는” “핵심”이기 때문이다(458). “운명과 금지”에 가로막힌 클래거트의 “보드라운 간절함”은 결국 빌리를 유혹하는 데 실패하자 끝없는 증오로 변하여, 아름다운 청년 빌리를 파국으로 몰아넣게 된다.

    서술자는 독자에게 묻는다. “그 선임위병하사관의 문제는 도대체 무엇이었을까?”(455). 클래거트는 그 은밀한 본성으로 인해 빌리에게 뜨거운 시선을 보낼 수밖에 없지만, 서술자의 이 질문은 이미 클래거트의 본성이 “문제”임을 암시한다. 서술자는 그의 문제, 그의 은밀한 본성이 무엇인지를 직접적으로 설명하는 대신에, “정상적인 본성을 지닌 사람”과 클래거트 사이에 “치명적인 간극”(deadly space)이 있다는 간접적 언술로써 클래거트를 비정상적 본성, 일종의 병적 도착성향의 소유자로 규정하고 있다(456).11)

    빌리를 향한 클래거트의 “애틋한 간절함”은 그를 명백히 다른 인물들과 다른 별종으로 낙인찍는 동시에, 동성을 향한 욕망을 느끼는 인물 즉 ‘동성애자’를 매우 특정하게 체현된 정체성의 위치에 고정시킨다.12) 즉 이 텍스트 안에서 서술자가 클래거트를 형상화하는 방식은, 동성을 향한 남성의 욕망과 그것의 성적 실천(가능성)을 특정한 정체성의 기반으로 못박기 시작한 19세기말 서구의 문화적 변화의 반영이자 동성애를 ‘질병’의 일환으로 규정하던 19세기말의 성의학 담론의 반향이다.

    하지만 클래거트가 빌리를 향해 느끼는 욕망은 실상 전함 벨리포턴트 호(the Bellipotent)에 타고 있는 다른 모든 수병들, 심지어 객관화된 정의의 입장을 대변하는 비어 선장(Captain Vere)에게서도 발견되는 보편적인 것이기도 하다. 『빌리 버드』의 놀라운 점은 동성애적 욕망을 일탈과 퇴폐, 비정상성, 부패의 증상으로 규정하는 문화적 충동을 클래거트를 통해 가시화하는 동시에 그 동성애적 욕망을 생산하는 빌리라는 인물의 초월적인 가치와 보편적 매혹을 함께 강조한다는 데 있다. 그럼으로써 그를 향한 욕망의 비정상성·병리성을 무효화하고, 동성을 향한 남성의 욕망을 ‘동성애자’들만의 특수한 경험으로 한정하는 데서 벗어나 매우 보편적으로 경험될 수 있는 것으로 재현하는 것이다. 또 빌리가 동성애적 욕망을 불러일으키는 매혹적 존재라면, 서술자는 그의 매력 역시 내면의 어떤 “기질”에 기인하는 것임을 암시함으로써(459) 빌리의 동성애적 영향력 역시 일종의 본질적 요소로 묘사한다. 그 어떤 악의도 없는 빌리의 “기질”(보편적 호소력을 지니는 절대적인 순수함과 아름다움)과 클래거트의 욕망(특정 주체의 병리적 증상)은 그러므로 동성애의 본질을 기술하는 전혀 다른 두 가지 틀을 동시에 작동시키고 있다. 이브 세지윅을 차용하자면, 이 작품은 우리가 흔히 동성애를 이해하는 틀거리로 사용하게 된 보편-소수의 이분법적 논리를 보여주는 동시에 그것을 해체하는 작업을 수행한다(92).

    빌리의 운명의 아이러니는 그가 뭇 수병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정도의 아름다운 외모와 순수한 심성을 지니고 있으면서도 정작 그는 자신의 매혹이 어떤 것인지를 알지 못하며, 스스로는 욕망을 경험하거나 표현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즉 동성애적 욕망의 유인이자 핵심적 대상으로 존재하는 빌리는 일종의 텅 빈 기호와도 같다. 그는 동성애자와 이성애자를, 그리고 남성적 특질과 여성적 특질을 구분하는 이원적 논리에 의해 어느 한 쪽으로 규정될 수 없는 존재이다. 이에 비해 클래거트는 기호화되지 못하는 기의, 표현될 수 없는 욕망의 현신이다. 빌리는 클래거트의 욕망을 자극하면서도 충족시키지 않음으로써 그의 증오를 사고 그로 인해 항명, 선상반란(mutiny)을 모의하는 데 가담했다는 누명을 쓴다. 말을 더듬는 습관이 있는 빌리는, 혐의를 부정하고 자신을 변호하라는 비어 선장의 명령 앞에서 압박을 이기지 못하고 클래거트를 가격하여 뜻하지 않은 살인을 저지르게 된다. 클래거트가 씌운 누명에 대한 부정 혹은 긍정을 “발화”하도록 강요받자(476),13) 그와 같이 선택을 강요당하는 위치에 자신을 끌어다 놓은 클래거트를 향해 충동적 폭력을 행사하는 것이다. 빌리는 결국 주어진 기표들로써 자신의 존재를 재현하기를 강요받는 순간 그 명령에 순응하는 대신 ‘몸으로’ 말한다. 빌리는 그의 누명, 즉 선상모의의 죄 때문이 아니라 존재하는 기표들이 가능하게 하는 이분법적 의미체계 안으로 흡수되기를 거부하는 행위로 인해 처벌의 대상이 된다. 이 행위는 어쨌든 상급자를 살인한 행위이므로 클래거트가 그에게 뒤집어씌운 하극상, 항명의 혐의를 기정사실화하는 공교로운 결과를 초래하고, 빌리는 비어 선장의 임시 군법회의에서 사형을 선고받는다.

    형 집행을 기다리는 새벽, 명복을 빌어주는 군목(chaplain)의 방문 후 빌리는 “최후의 준비”를 한다. 그에게 주어진 운명의 “완결”(the consummation)이 임박했기 때문이다(497). 여기서 처형을 가리키는 “완결”이라는 말은 성적 결합을 통한 성혼(成婚)의 의례를 죽음과 결부시키는 아이러니한 울림을 촉발한다. 아닌 게 아니라 두 동료 선원의 도움으로 이루어지는 빌리의 “최후의 준비”는 혼례를 앞둔 새신랑의 몸단장을 연상시키고, 서술자는 형대에 선 빌리의 아름다운 모습을 강조한다(497). 빌리의 최후발언-“‘비어 선장에게 신의 가호를!’”(“‘God bless Captain Vere!’”)-이 동료들에게 불러일으키는 반향은 그의 “보기 드물게 아름다운 자태”(the rare personal beauty)와 무관하지 않다(497). 동료들이 숙연히 지켜보는 가운데 “짙은 새벽의 장밋빛”(full rose of the dawn)을 배경으로 빌리의 몸은 마치 승천하듯 교수대에서 들려 “올라간다”(ascended)(497).

    피에르가 이자벨을 선택하면서 스스로 그리스도와 같은 희생을 감수한다는 결심을 했던 반면, 빌리는 실제로 교수대에 매달려 그리스도와 같은 속죄양이 된다. 실정법적 정의의 개념에 충실하여 사형을 결정한 비어 선장에 대한 그의 축원은 그의 죽음이 지니는 그리스도적 희생의 측면을 전경화한다. 빌리가 속죄양이 되는 것은 표면적으로는 자신이 저지르지 않은 항명의 죄를 부정하지 못한 결과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그가 생산하는 욕망이 비정상적인 것으로 여겨지기 때문이고, 그 욕망을 문제 삼는 기존의 범주들에 의거하여 자신의 존재와 그 욕망의 의미를 한정하기를 거부함으로써 기존 질서에 근원적 위협을 가하기 때문이다. 기존질서가 요구하는 정의의 개념에 희생되는 “미남 수병” 빌리의 퀴어한 영향력은, 지켜보는 모든 수병들이 그의 최후발언을 “저도 모르게”([w]ithout volition) 메아리처럼 따라하는 장면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497).

    암암리에 수병들 사이에 확산된 선상반란의 기류를 효과적으로 통제해야 하는 입장에서 비어 선장의 윤리적 의무는 어쩔 수 없이 빌리를 처형하는 일이다. 빌리를 통해 표면화되는 선상반란의 위협은 빌리가 촉발하는 동성애적 에너지의 확산이 초래할 헤게모니적 이성애의 질서에 대한 위협과 절묘하게 중첩된다.14) 비어 선장은 정의와 질서라는 대의의 수호자로서, 개인적 욕망의 함정에 갇힌 인물로 묘사되는 클래거트와는 대척점에 서 있는 듯하지만, 작품의 말미에서는 클래거트와 어쩌면 크게 다르지 않은 인물일 수 있음이 암시된다. 그는 처음 빌리를 보았을 때부터 그의 아름다움에 주목하였고, 빌리를 자신의 전함에서 복무하도록 징집한 사람이기도 하다. 비어 선장이 빌리의 “벗은” 몸을 상상하며 “원죄 이전의 젊은 아담”(young Adam before the Fall)의 조각상의 모델이 될 수 있을 만큼 “매우 훌륭한 인간 종의 표본”이라고 칭찬한 바 있다는 사실은(473), 비어 선장에게도 빌리를 향한 일종의 동성애적 욕망이 내재하였을 가능성을 시사한다. 그는 클래거트가 환기하는 병리학적 욕망의 의미체계 안에서 빌리에게 입장을 밝히라고 강요함으로써, 실상 클래거트와 짝을 이루어 동성애를 비정상적인 것으로 정의하는 의미체계의 작동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다. 다만 클래거트가 동성애적 욕망을 개별적 병리현상으로 가시화하는 인물이라면, 비어 선장은 보편/정상의 명목으로 그 욕망을 통제하고 훈육하여 특수/비정상의 지점에 묶어두는 인물이다. 결국 비어 선장은 그와 같은 의미체계에 의해 유지되는 이성애적 남성성의 권위를 상징한다. 이 때문에 그는 빌리의 존재가 유발하는 전복의 가능성을 제거해야 하고, “원죄 이전의 젊은 아담”을 “신의 어린 양”(the Lamb of God)으로 바치는 사제의 역할을 한다(473, 497).

    마침내 빌리의 최후발언을 듣고 “기립한 채 경직해”(erectly rigid) 있는 그의 모습에서(497), 비어 선장이 상징하는 이른바 ‘정상적’ 남성성에도 빌리를 향한 욕망이 내재한다는 것이 더욱 명백해진다.15) 빌리의 처형은 이러한 기묘한 역학관계를 밝히는 서사의 “완결”이다. 이 “완결”이야말로 정상-비정상의 이분법적 논리를 교란하는 ‘퀴어’한 빌리의 역할이라 할 수 있겠지만, 이 ‘퀴어’한 청년의 성혼 의례는 비극적 희생제의의 형식을 취하여 전통적인 성장의 길을 밟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빌리의 운명이 단순히 그 개인의 비극적 실패가 아니라는 점은 그의 죽음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 결국 비어 선장이 맞이하는 우울한 최후에서도 알 수 있다. 빌리를 향한 비어 선장의 애도는 사라진 욕망의 대상에 대한 애도이다. 대상을 제거한 뒤에도 욕망은 사라지지 않고, 그 욕망을 표현하는 기호의 부재, 그리고 그 욕망이 빚어내는 의미의 혼란은 서로 다른 종류의 역사 기술을 만들어낸다. 멜빌이 미완성의 유작으로 남긴 『빌리 버드』의 다중적 결말, 네 겹의 서술적 결말은,16) 바로 대상이 제거된 후에도 제거되지 않는 욕망이 자아내는 애도의 의미작용이며 동시에 그것이 초래하는 역사기술의 혼란이다.

    11)“to pass from a normal nature to him one must cross the ‘deadly space between’.”  12)19세기 말 서구사회 특히 영미권에서 동성애가 이해되던 방식, 특히 그것이 특정한 정체성의 기반으로 이론화되기 시작하는 과정과 클래거트에 대한 논의로는 이브 세지윅을 참조할 것(92-127). 세지윅은 클래거트가 “남성 동성애자(homosexual man)라는 새로운 종(species)의 본보기”라고 말한다(92).  13)비어 선장은 경직된 채 말문이 막힌 빌리에게 말할 것을 거듭 명령한다. (“‘Speak, man!’ [...] ‘Speak! Defend yourself!’”)  14)동성애와 그 통제 및 처벌의 역사를 논하는 한 비평가는 실제로 수병들 사이의 “동성애적 성행위(buggery)가 17세기 이래로 군법에 명시되어 있는바 탈영, 선상반란, 혹은 살인만큼이나 심각하게 취급되었다”고 기록하고 있다(Weeks 100).  15)세지윅은 비어 선장에게서 남성의 몸을 향한 시각적 욕망, 즉 일종의 물신적 동성애의 욕망을 발견하지만(108, 113) 필자는 세지윅과는 달리 비어 선장의 욕망을 더욱 포괄적인 것, 즉 동성애의 억압과 부정을 통해 유지되는 이성애적 남성성으로 해석한다.  16)『빌리 버드』의 결말은 빌리의 처형으로 끝나지 않고 의미심장한 세 가지의 다른 이야기를 포함하고 있다. 즉 그의 처형을 둘러싼 뒷이야기 및 비어 선장의 죽음, 빌리를 악인으로 클래거트를 희생자로 규정하는 비공식 해군기록, 그리고 빌리를 신화화하는 동료 수병들의 창작 발라드의 수록이 바로 그것들이다. 이 네 겹의 결말에 대한 상세한 독해로는 바바라 존슨(Barbara Johnson), 특히 568-69면 참조.

    4. ‘퀴어’의 미학과 새로운 서사의 함의

    피에르의 결혼이 전통적인 부계 중심의 가족 구도를 파괴하는 동시에 답습함으로써 피에르의 ‘정상적’ 성장을 불가능하게 만들었다면, 빌리에게 결혼은 죽음의 표상으로서만, 즉 정의의 명분하에 동성애의 가능성을 말소하는 처형으로서만 가능하다. 이처럼 멜빌에게 결혼이란 이른바 정상적인 남성적 성장의 계기나 기반이 아닌, 다양한 남성적 경험과 욕망의 양태들을 이성애적 결합이라는 명령으로 수렴해 들임으로써 남성성의 다양한 수행 가능성들을 지워버리는 부정의 기제로 재현된다. 멜빌의 서사에서 결혼이 긍정과 성장, 상호교감, 갱생의 통로로 작용하는 유일한 경우는, 이쉬미얼과 퀴퀙의 퀴어한 결혼뿐이다.17) 앤드류 델반코(Andrew Delbanco)가 지적하듯, “이쉬미얼은 퀴퀙과의 친밀함을 통해서 스스로를 재형성하게 된다”(134). 그리고 피쿼드 호의 파국적 침몰 후 유일하게 살아남는 이쉬미얼은 고아가 되어 망망대해롤 부유하지만, 결국 그를 수면 위로 떠올려 살아남게 만들고 『모비딕』을 서술할 수 있게 한 것은 퀴퀙이 공들여 만들어 두었던 관이다.18) 인종, 언어, 신분, 문화적 배경이 다른 이 두 남성의 퀴어한 결혼은 죽음의 표상으로 남겨지지만 한 남성의 삶을 지속가능하게 하는 유일한 계기로 작용한다.

    그렇다고 해서 멜빌이 제도화된 이성애적 결합의 구도에서 벗어나 있는 독신남성의 삶을 무조건적으로 낭만화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가령 그의 단편 「총각들의 낙원, 처녀들의 지옥」(“The Paradise of Bachelors and the Tartarus of Maids”)은 법률사무소들이 밀집한 도심지역에서 물질적 풍요와 지위에 대한 자만에 젖은 독신남 변호사들의 공허한 일상과 제지공장에서 지독하게 착취당하는 젊은 여공들의 삶을 대비시켜, 두 영역 모두에 삶이 부재한다는 점을 보여준다. 멜빌이 “19세기 미국과 영국의 문학에서 빈번히 볼 수 있던, 독신남성의 삶을 찬미하는 감상적 로맨스는 초월”한 작가라는 것은 명백하다(Arsic 82).

    앤드류 잭슨(Andrew Jackson) 시대를 거쳐 남북전쟁 이후에 이르기까지 미국에서는 경쟁적 자본주의 사회가 요청하는 종류의 금전적 성공을 공격적으로 추구하며 가부장적 권위를 공고히 하는 강인한 남성상이 점점 더 이상화되고 규범화되고 있었다. 이와 같은 맥락을 염두에 두고 이 글에서 필자가 강조하고자 한 점은 멜빌의 청년들이 19세기 중반 이후 미국사회에서 문화적 헤게모니를 지니게 된 종류의 남성적 정체성에 도달하는 데 대개 실패하고 있다는 점, 그리고 더욱 중요하게는 이 실패를 텍스트가 수행하는 일종의 성취로 해석할 수 있다는 점이다. 멜빌의 서사는 결혼 제도나 이성애적 결합의 가치를 전적으로 부정하는 대신에 퀴어한 인물들의 남성성 수행을 형상화함으로써, 빌둥스로만 전통이 전형화하는 남성적 성장과 성공적 사회화 과정에 대한 일종의 비판적 수정 혹은 대안 제시를 시도하고 있다. 즉 멜빌은 특유의 남성 인물들과 남성친화적 관계들을 통하여, 지배적 가치들과의 충돌, 협상, 수용과 인정을 통해 헤게모니적 문화에 편입되는 성장의 궤도를 골격으로 삼는 빌둥스로만 전통에 역행하는 일종의 반(反) 빌둥스로만 서사를 전개시키는 것이다.

    규범적 성장의 궤도를 완주하는 데 실패하는 청년들을 그리는 이 대안서사의 구도를 멜빌 특유의 ‘퀴어 미학’이라고도 칭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청년들의 ‘퀴어함’은 물론 동성애적 특성만을 가리키는 것은 아니다. 멜빌의 퀴어한 남성 인물들은 정상성과 규범성에 질문을 던지고, 남성성의 이해와 수행과 관련하여 당연시되는 당대의 문화적 명제들에 균열을 일으킨다. 이들은 성 정체성 및 성 역할, 욕망 등에 대하여 규제적으로 기능하는 여러 규범에 순종하는 남성들이 헤게모니적 남성주체로 성장하는 데 실패한다는 사실을 수행적으로 가리키고, 다양한 남성적 정체성과 욕망의 재현을 통해 기존의 남성성 이념을 비판하고 전복하는 시도를 하고 있는 것이다. 실패를 형상화하는 멜빌의 퀴어 미학이야말로 그 어떤 비판의 서사보다도 더욱 신랄하게 헤게모니적 남성성의 신화를 공격한다고 하겠다.

    버틀러는 근원적으로 과잉으로서 존재하는 성, 섹슈얼리티를 서술이 담아낼 수는 없다고 말한다(Butler 315). 하지만 언어가 명시적으로 지시할 수 있는 것 너머의 지평을 가리키는 것이야말로 문학이 하는 일이 아니겠는가. 멜빌의 ‘퀴어 미학’이 보여주는 균열 속에서 우리가 읽을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찾는 것 역시 비평의 책무일 것이다. 미국문학 분야에서 퀴어이론의 성장은 정전화된 19세기 미국문학의 남성적 전통에 대한 기존의 시각을 재평가하는 작업에 크게 영향을 미쳤다. 하지만 퀴어이론의 논점들을 이해하는 것보다 더욱 중요한 과제는, 구체적 텍스트를 둘러싼 해석의 전통과 퀴어한 독서의 가능성들을 병치하여 그 논점들의 유효성을 비판적으로 시험해 보는 시도를 지속하는 일, 그리고 그러한 시험을 실제 문화와 사회에 대한 이해와 접목시키는 일일 것이다. 이 글에서 필자가 시도하는 ‘퀴어’한 독서 역시 동성애적 에너지를 인간관계와 사회의 유의미하고 유효한 요소로 파악하는 노력에 상대적으로 인색하고 덜 익숙한 우리 문화의 시야를 확장하고자 하는 바람과 맞닿아 있다.

    17)여관방에서 함께 담배를 나눠 피운 뒤 퀴퀙은 이쉬미얼과 “이마를 맞대고” 그의 “허리를 감싸 안은 채로 우린 이제부터 결혼한 사이”라고 말한다(51). 그들 사이의 친밀한 교감을 혼인관계에 비유하는 표현들은 『모비딕』의 4장(“The Counterpane”), 10장(“A Bosom Friend”)에서 여러 군데 등장한다.  18)태라 펜리(Tara Penry)는 나아가 이 관이 상징하는 퀴퀙과 이쉬미얼 사이의 애정이 “에이헙의 나르시즘적 영향력으로부터 이쉬미얼을 구해내고 레이첼 호(the Rachel) 선상에서 그리고 육지에서 다시 인간사회에서 살아갈 수 있도록 구원한다”고 주장한다(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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