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beration of image and sound in Johan Van Der Keuken’s film

반 데르 퀘켄 영화 형식의 해방적 성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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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ABSTRACT

    Johan Van Der Keuken(JVDK), who is a Dutch documentary filmmaker, has filmed several impressive documentaries. The themes of his films are quite extensive, but he has always been interested in political and existential problems such as human alienation in the capitalistic societies, poverty of the Third World, diaspora of minority groups. In order to deal with these themes, he has always searched for a new form of film. And his experiment in film form aims at liberation of image and sound from meaning or reality. JVDK’s <Face Value(1991)> is a film which is about people who live in 5 countries of Europe. Each character in this film, who is from many different racial, religious, economic-social groups, are expressed in the form of face close-up, voice-over, and collage(polyphony). And in the end, the film finally makes a big collage-portrait of europe which is made of many small portraits. In this way the film becomes a kind of ‘Anthropology of Face’. In the film, JVDK breaks the conventional film grammar and try experimental forms of film such as polyphonous narratives, a dialectical collage of face close-up and voice-over, black screen, and free camera works etc. And by these new ways of filming, he liberates images and sounds. The liberation of image and sound makes the film a open space which can create various meanings endlessly. JVDK’s film form of liberation is an attempt to give film the autonomous power to create meanings endlessly by liberating image and sound.


  • KEYWORD

    liberation , image , sound , polyphony , collage , face , close-up , voice-over , collage , portrait , multi-culture , multi-class , multi-language

  • 1. 들어가는 글

    다큐멘터리와 픽션 사이에서 분류가 불가능한 작가, 프레임의 ‘조형 예술가’로 평가받는 네덜란드의 요한 반 데르 퀘켄(Johan Van Der Keuken) 감독은 자신의 모든 작품에서 스스로 카메라를 들고 촬영하며 제 3 세계 및 서구 자본주의 사회의 불평등과 모순 그리고 타자성에 대한 물음 등 다양한 테마를 영화 매체만이 표현할 수 있는 독창적인 형식으로 풀어내 작가이다. 그의 작품들은 정치적 영화의 전통들과 아방가르드의 경계에 위치한다고 볼 수 있다.

    전통적인 영화형식을 전복하고 이미지와 사운드의 실험을 통해, 영화 언어의 새로운 영토를 확장했다고 평가받는 반 데르 퀘켄 감독은 1938년 암스테르담에서 출생해 2001년 생애를 마감할 때까지 60여 편의 필름들을 세상에 남겨놓았다. 헐리우드 영화로 대변되는 전통적인 영화어법이 사건진행의 연속성과 ‘실제’라는 환상을 관객에게 제공하는 것을 그 원칙으로 삼는다면, 반 데르 퀘켄은 기존의 영화들이 지향해왔던 관습적 영화문법에서 이탈해, 다큐멘터리와 픽션의 경계를 가로지르며, 필름과 사진의 형식적 한계를 뛰어넘는 실험적인 작업들을 해왔다.1) 그의 이와 같은 영화적 실험들은 1960년부터 40여 년 동안 제작해온 그의 영화인 , <존재의 얼굴(Face Value)>, <암스테르담 지구촌(Amsterdam global village)>, <우물 위의 눈 (The eye above the well)>, <긴 휴가(The long holiday)> 등과 같은 그의 대표작들과 다수의 장, 단편들 속에 고스란히 담겨있다.

    반 데르 퀘켄 감독 영화의 가장 큰 특징은 그가 만드는 이미지와 사운드의 ‘해방’적 성격에 있다. 그는 전통적인 영화 제작 방식에서 벗어나 이미지와 사운드를 ‘해방’시키고자 했다. 여기서 ‘이미지와 사운드의 해방’이란 사전에 기획된 ‘의미’나 ‘리얼리티’에 이미지와 사운드를 종속시키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이미지와 사운드의 ‘자율성’을 보장해 주는 것을 의미한다. 이를 통해 영화는 고정되지 않은 다양한 의미작용을 일으킬 수 있게 된다. 즉 반 데르 퀘켄의 해방적 영화 형식은 영화의 타성적 의미작용을 극복하고 그것의 무한하고 자유로운 의미 생성 활동을 가능하게 해준다 할 수 있다.

    본 논문에서는 반 데르 퀘켄의 대표작 중 하나인 1991년도 작품 <존재의 얼굴(Face Value)>2)의 이미지와 사운드의 실험을 살펴볼 것이다. 영화 <존재의 얼굴(Face Value)>은 유럽 5개국에 사는 다인종, 다종교, 다계층의 수많은 인물들을 가로지르며 이들의 눈물, 사랑, 희망, 좌절, 공포, 분노 등을 얼굴 클로즈업과 보이스 오버의 콜라쥬로 구성해 현대 유럽의 자화상을 그려낸 작품이다. 따라서 이 영화는 수많은 미니 초상화들로 콜라쥬된 거대한 퍼즐이자 ‘얼굴의 인류학’ 그 자체라고 볼 수 있다. 본 논문에서는 <존재의 얼굴(Face Value)>에 대한 이미지와 사운드의 분석을 통해 반 데르 퀘켄 감독이 어떠한 형식적 장치를 통해 이미지와 사운드의 해방을 획득하는지 고찰해보고자 한다.

    1)1938년 암스테르담에서 태어난 반 데르 퀘켄은 12살 때 처음으로 자신의 할아버지로부터 사진을 배우기 시작해 17살에 첫 사진집을 내며 사진작가로서 주목을 받았다. 이후 그는 1956년 18살 때 파리의 ‘이덱’(IDHC)에 입학해 첫 영화인 를 파리에서 찍은 이래로 줄곧 사진작가와 씨네아스트로서의 활동을 병행해왔다. 국내에서는 그다지 알려지지 않은 작가이지만 유럽이나 구미 쪽에서는 요한 반 데르 퀘켄 감독의 작품에 대해 꾸준히 연구되어 왔다. 반 데르 퀘켄에 대해 프랑스의 영화비평가인 기고티에(Guy Gautier)는 분류가 불가능하고, 놀랍고도 비전형적인 시도를 하는 작가로, 세르쥬 다네(Serge Daney)는 장 뤽 고다르와 장 마리 스트로브와 함께 “모더니티의 극점”을 대표하는 씨네아스트로, 장 폴 파르지에(Jean-Paul Fargier)는 그를 이 시대의 가장 중요한 시네아스트 중 한명으로 꼽으며 다큐멘터리 형식주의자라고 칭하기도 했다.  2)영화 의 우리말 제목을 번역하는 데 있어, ‘Face Value’라는 용어의 사전적 정의에 의거해 직역할 경우 영화의 내용과 제대로 부합하지 않아, ‘Face Value’를 ‘존재의 얼굴’로 의역해 보았다. 여기서 ‘얼굴’이 의미하는 바는 육체적인 인간의 얼굴을 비롯하여 겉으로 보여지는 모든 존재하는 것들의 외관, 표면, 껍질, 즉 ‘보여지는 것’을 의미한다. 반 데르 퀘켄은 이 영화에서 ‘표면’을 통해 존재의 심층에 가닿으려는 시도를 보여준다.

    2. 다성(polyphony)적 형식

    다인종, 다언어, 다계층의 다양한 사람들의 얼굴들로 콜라쥬된 영화 <존재의 얼굴(Face Value)>에서 다양한 현실적 문제의식들과 주제들은 반 데르 퀘켄의 독창적인 영화형식과 만나 어떻게 사유되고 있을까? 이를 논의하기 위해서는 먼저 이 작품이 제기하는 질문들이 무엇인지를 살펴보고, 이것이 반 데르 퀘켄의 어떤 형식적 장치들을 통해 어떻게 보여지는지 논의해야 할 것이다. 우선 이 영화가 제작되던 1980년대 말에서 90년대 초의 유럽의 사회적, 정치적 상황을 간략하게나마 조망해 볼 필요가 있다.

    당시 유럽의 정세는 한마디로 ‘공산권의 몰락’이라고 할 수 있다. 1985년 소련에 고르바쵸프가 등장하면서 개혁개방 정책을 추진하게 되고, 그 과정에서 동유럽의 공산주의 국가들이 하나 둘씩 체제변화를 겪게 된다. 동유럽을 통제하고 있던 소련이 그 개혁개방 정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동유럽에 대한 통제력을 상실 내지는 포기했기 때문이다. 그 중 헝가리에서 처음으로 동독인의 서유럽으로의 여행을 허용하는 조치를 취한다. 그 이전에는 동독인의 서유럽으로의 탈출구는 없었다. 헝가리의 이 조치는 동독인이 헝가리와 오스트리아를 거쳐 서독으로 탈출하는 통로를 열어준 격이 되었고, 이는 동독 정부에게는 큰 위협이 되었다. 이에 동독 정부는 출국금지라는 강수를 두게 되고, 이는 결국 동독시민들의 대규모 시위로 이어져 1989년 11월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는 계기가 된다. 이어서 1990년 3월 동독공산당은 몰락의 길을 걷게 되고, 7개월 뒤 동독은 서독에 흡수 통일된다. 그리고 석 달 뒤 걸프전이 터지며 중동은 미국의 절대적인 영향권 하에 놓이게 된다.

    이 같은 정치적인 격변과 역사적 특수성이 창궐시킨 변화와 혼돈들이 유럽을 휩쓸던 바로 그 시점에서 영화 <존재의 얼굴(Face Value)>은 시작된다. 반 데르 퀘켄은 자신의 모든 영화에서 그래왔듯이 직접 카메라를 들고 프랑스, 네덜란드, 영국, 독일, 체코슬로바키아의 도시들을 돌며 영화 <존재의 얼굴(Face Value)>을 촬영한다. 베를린 장벽의 붕괴, 극심한 경기침체, 파시스트 극우정당들의 득세, 이주노동자 문제, 걸프전의 후유증 등이 중첩된 베를린과 마르세이유, 런던, 프라하, 암스테르담이 영화 속 주요 공간들이다.

    반 데르 퀘켄은 이 다섯 개 도시들의 변두리를 도시의 만보자처럼 거닐며 우연히 마주친 다민족, 다언어, 다계층의 수많은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고 그들의 얼굴들을 카메라에 담는다. 따라서 이 영화에는 다양한 인물들과 장소들이 등장하고, 이들은 저마다 고유한 자신들의 개인적 이야기를 들려준다. 이들의 이야기들 속엔 앞서 살펴본 유럽의 정치적, 사회적 변화와 혼돈들이 그대로 스며있다.

    영화 <존재의 얼굴(Face Value)>에서 가장 먼저 언급할 부분은 이 작품의 구조이다. 반 데르 퀘켄 감독은 인과율에 토대를 둔 선형적인 내러티브를 거부하고, 다수의 파편적인 내러티브들을 수평적으로 배치해 영화를 구성해내고 있다.

    우선 여기서 영화 <존재의 얼굴(Face Value)>의 전체 씬 구성도를 통해 영화의 전체적 구조와 흐름을 살펴보도록 하자.

    위의 표에서도 보여지듯이 영화 <존재의 얼굴(Face Value)>은 유럽 5개국의 다채로운 인물들과 이들의 다양한 이야기 파편들로 구성되어 있다. 반 데르 퀘퀜은 결혼식장, 장례식장, 공원, 댄스홀, 복싱경기장, 극우파 정당모임 등 다양한 장소로 우리를 이끌어 이곳에서 벌어지는 구체적인 상황들, 사람들과 마주치게 한다. 이 영화에서 주로 볼 수 있는 장소들은 대개가 변두리의 골목 모퉁이와 같은 일상적인 삶의 공간이다. 그리고 반 데르 퀘켄은 이러한 일상적 공간들 속에서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삶을 살고 있는 익명의 개인들의 미시적 초상화를 그리고 있다. 각 초상화의 주인공들은 각자 자신의 삶에 대해 이야기 하지만, 이들의 이야기들은 단지 개인의 이야기로만 멈추지 않는다. 이들의 초상화들 속엔 홀로코스트,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이나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전쟁 등 국제적인 사건들과 정치적 이슈들의 반향이 담겨있고, 소수민족들의 디아스포라, 인종차별, 젠더 등의 탈근대적 문제들과 정체성, 이별, 죽음, 사랑 등과 같은 실존적 문제들이 얽혀있다. 그리고 이런 다수의 개별적인 초상화들은 모자이크되어 하나의 거대한 유럽의 자화상으로 거듭난다.

    그리고 이러한 개별적 초상화와 그것들이 모여 이룬 거대한 모자이크라는 영화적 형식은 ‘다성성’(多聲性, polyphony)이라는 용어로 표현될 수 있다. 이렇게 다수의 파편적 내러티브들로 구성된 이 영화의 ‘다성적 구조’는’ <존재의 얼굴(Face Value)>의 중요한 특징 중 하나라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다성성’이란 무엇인가? 원래 ‘다성성’이란 음악 이론에서 비롯된 말로서, 대위법에 의해 하나 이상의 독립된 멜로디가 화성적으로 결합된 음악형식을 말하며, 오직 한 멜로디에 지배되는 단성적 악곡과 반대되는 의미로 사용되어 왔다.3) 따라서 ‘다성적 음악’은 다양한 선율이 자신의 자율성, 고유성을 유지하며 각자가 자신이 가진 고유한 특질을 훼손하지 않는 상태로 여러 성부가 일정한 규칙에 따라 결합되고, 전체적인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이것은 푸가의 기법으로서 음악에 도입된 공간구조라고도 할 수 있다.

    그리고 ‘다성성’은 문학에서도 사용되는 개념이다. 특히 바흐친은 ‘다성성’의 개념을 자신의 문학이론의 가장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대화 이론의 핵심으로 제시하는데, 그에 따르면 문학에서의 ‘다성성’이란 하나 이상의 다양한 목소리들이나 의식들이 작가에 의해 종속되지 않은채 완전히 독립된 실체로서 존재하는 문학적 형식을 말한다.4) 바흐친은 이 ‘다성성’이 작품의 어느 한 요소에만 국한되지 않고 거의 모든 요소에서 다 같이 적용된다고 말한다. 즉, 작품의 플롯과 구성 그리고 주제나 이데올로기와도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으며, 작품의 언어와 스타일의 문제에 있어서도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고 강조한다.5)

    그렇다면 이제 음악과 문학에서 살펴본 ‘다성성’의 개념을 영화에도 적용시켜 보자. ‘다성적 영화형식’이란 ‘다양한 등장인물과 내러티브들이 각자의 독자성을 간직한 채 함께 어우러져 다양한 의미작용을 가능케 하는 영화 형식’이라고 정리해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이미지와 사운드의 해방을 추구하는 반 데르 퀘켄의 핵심적인 형식 장치라고 볼 수 있다.

    영화 <존재의 얼굴(Face Value)>에서 ‘다성성’은 바흐친이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내러티브에서 뿐만 아니라 등장인물, 내용, 이데올로기, 구조 등 영화를 구성하는 거의 모든 요소들에서 발견된다. 우선 영화 <존재의 얼굴(Face Value)>은 앞의 씬 구성표를 통해 볼 수 있듯이 등장인물과 관련해 매우 다성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다. 이 영화엔 프라하, 암스테르담, 런던, 마르세이유, 베를린의 변두리에 사는 이질적인 언어, 종교, 이데올로기를 지닌 온갖 사람들이 지리적 공간과 시간의 경계를 가로지르며 등장하고 있다.

    제3세계에서 이민 와 유럽의 곳곳에 뿌리를 내리고 사는 소수민족 이방인들, 이제 막 프라하 감옥에서 출소한 사내들, 프랑스 장애인 가수, 25세 연하남과 결혼하는 중년여성, 아랍 복싱선수, 라틴 춤을 추는 댄스홀의 할머니들, 프랑스의 극우파 장 마리 르펜과 파시스트들, 죽음을 앞둔 네덜란드인 카메라맨과 그의 아내, 프라하의 집시들, 암스테르담의 흑인 미용사, 거리의 악사, 청각 장애 꼬마들, 유태인묘지 관리인, 출산중인 산모 등이 바로 그들이다. 관객은 매번 예측할 수 없는 장소에서 예측할 수 없는 다양한 인물들과 마주친다. 이들은 저마다 고유한 방식으로 카메라 앞에 존재하며 자신들의 삶의 파편들을 생생하게 드러내 보여준다. 반 데르 쿠켄은 이들의 이야기와 얼굴과 시선을 재료로 수십 개의 작은 초상화들을 구성해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앞의 씬 구성표에서도 볼 수 있듯이 매번 새로운 상황에서 새로운 인물이 등장할 때 마다 영화의 방향과 주제는 인물이 이끄는 대로 유동적으로 변화한다. 따라서 이 영화엔 감독에 의해 부여받은 선형적인 하나의 내러티브나 하나의 방향이 존재하지 않는다. 각각의 인물들은 자신의 차례가 되면 등장해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퇴장하지만, 매번 다른 초상화들과의 공명 속에서 동시에 상호작용하며 새로운 의미를 생성해내고 있다.

    한편, 다성적 문학의 등장인물들이 능동적인 주체들6)인 것처럼, <존재의 얼굴(Face Value)>의 내러티브를 이끌어가는 힘도 바로 각각의 초상화의 주인공들에게서 나온다. 아무리 사회에서 불평등한 위치에 있는 보잘 것 없는 존재여도 이 영화에서 만큼은 각자 자신의 초상화의 주인공으로서 ‘능동적 주체’가 된다. 이 작품 안에서 등장인물들은 배역이 아니라 ‘사람’으로 머문다. 이들은 주제의 볼모가 되지 않고 스스로 주제 자체가 된다.

    이 영화에서 반 데르 퀘켄은 내레이션을 사용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의 주된 목적은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각각의 장면들 간의 상호 관계를 제시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마치 큐비스트들이 세계를 인식하는 데 있어서 현상들의 ‘관계’를 통해 현상들의 본질을 파악하고자 했듯이 말이다. 이 작품에도 수십 개의 독립된 초상화들은 자신의 고유성을 간직한 채, 병치, 교차, 충돌, 공명을 거듭하며 다민족, 다언어, 다종교로 혼종 교배된 유럽의 거대한 자화상을 그리고 있다. 즉 반 데르 퀘켄은 <존재의 얼굴(Face Value)>에서 다성적 구성을 통해 모든 인종, 언어, 문화 그리고 계층을 가로지르며 전 유럽을 묶어내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반 데르 퀘켄은 <존재의 얼굴(Face Value)>에서 뿐만 아니라 자신의 다른 작품들에서도 다성성에 대한 의지를 보여준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단순히 다성적 영화 형식이 전체를 표상하는 유용한 방법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오히려 이것은 이미지와 사운드를 해방시켜 영화의 다원적이고 개방적인 의미작용을 가능하게 해주기 때문이다. 즉 ‘다성적 형식’은 영화를 늘 미완성인 채 열려있는 역동적 실체가 되게 하여 그것이 끊임없이 재해석 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놓는다. 이와 같은 다성적 형식의 해방적 성격은 정태적인 카테고리를 벗어나 영화매체의 가능성을 끝없이 탐구하려는 반 데르 퀘켄의 실험 정신과도 부합해 보인다.

    이러한 다성적 영화형식의 해방적 성격은 영화로 하여금 정치적 함의를 지니게 한다. 바흐친은 다음과 같이 언급한다.

    이처럼 바흐친에 따르면, 단성적 형식이 주류의 목소리를 강조하여 하나의 이데올로기만을 강요하는데 반해, 다성적 형식은 다양한 목소리를 수평적으로 배치시켜 ‘다원적 대화주의’를 가능케 한다.

    이러한 다성적 형식의 정치적 성격은 반 데르 퀘켄의 영화에서도 발견된다. 반 데르 퀘켄에게 영화는 ‘정치적 공간’이기도 하다. 그는 영화를 서로 다른 다양한 목소리가 공존하는 하나의 “새로운 민주적 공간”처럼 만들고자 했다. 그리고 이것은 영화 <존재의 얼굴(Face Value)>에서 ‘다성적 형식’을 통해 구현되고 있다.

    바흐친은 자신의 폴리포니 이론에서 텍스트와 독자의 관계에 대해 언급하며 독자는 결코 수동적인 존재가 아니라 저자에 못지않게 문학 작품의 창조행위에 능동적으로 참여하도록 기대되는 존재라고 했다. 반 데르 퀘켄은 그의 모든 영화들에서와 마찬가지로 <존재의 얼굴(Face Value)>에서도 관객이 영화를 쉽게 이해하도록 친절하게 설명해주지 않고 관객의 눈에 ‘자율성’이라는 과제를 부과한다. 그에겐 노엘 버치(Noël Burch)의 언급처럼 관객에게 방향을 가리켜주는 것만큼이나 관객에게 ‘방향을 잃게 만드는 것’도 중요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영화의 관객은 하나의 선형적인 내러티브를 따르는 것이 아니라 각각의 인물들이 빚어내는 수 십 여개의 다성적 내러티브의 복잡한 상호 관계망 속으로 걸어 들어가야 한다. 그리고 수동적 관람의 태도를 버리고 영화 속에 공존하는 서로 다른 다양한 목소리들과 끊임없이 대화하며 능동적으로 참여해야 한다. 다성성은 곧 ‘대화성’과 동의어이다.9)

    3)김창근, 「현대시와 대화적 상상력, 바흐친의 다성성 이론을 중심으로」, 『새얼 어문논집』 제12집, 1999, 25쪽.  4)김욱동, 『대화적 상상력 』,문학과 지성사, 1994, 307쪽. 바흐친은 1929년 러시아가 스탈린주의와 사회주의 리얼리즘이라는 하나의 목소리로 획일화되면서 단성화 되고 있을 때, 『도스토예프스키 시학의 제 문제(Problems of Dostoevsky’s Poetics.1929)』라는 저서를 통해 자신의 ‘다성성’과 ‘대화주의’라는 혁명적 이론을 선보인다. 그는 작가중심의 독백적인 소설에 반대되는 개념으로 음악용어를 빌려 쓴 ‘다성’적 소설의 창시자로 도스토예프스키를 소개한다. 바흐친은 도스토예프스키는 그 시대의 대화를 들을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위대한 대화를 통해서 그 시대를 들을 수 있었고, 그 시대 속에서 개별적인 목소리 뿐만 아니라 무엇보다도 먼저 목소리들 사이에 있는 대화관계들과 그 목소리들의 상호작용을 포착하는데 천재적인 재능을 소유하고 있었다고 평가한다. 도스토예프스키에 대한 이러한 바흐친의 평가는 그의 대화 이론으로 승화된다. 바흐친의 이론은 도스토예프스키라는 소설작가와 문학비평 및 소설 창작론이라는 형식을 통해 전개되었지만, 그의 방법론인 다성성과 다성적 대화이론은 철학, 언어학, 미학, 문학, 심리학, 사회학, 해석학, 페미니즘, 정치학에 이르기까지 학문의 경계를 초월하여 세계를 해석하고 문제를 해결하는 하나의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발전되었다. 특히 그의 다성적 대화법은 작가와 주인공의 관계에 있어 종속적이지 않은 다양한 목소리를 내는 가운데 대화관계를 통해 경쟁과 공생을 추구한다. 따라서 이러한 점에서 바흐친의 다성적 대화법은 현실세계와 인간의 삶을 속단과 편견 및 예단 없이 풍부하고 역동성 있게 이해하면서 살아가기 위한 경험적인 인식론이자 규범적인 방법론으로 이해할 수 있다. 채진원, 「대화형 정치모델의 이론적 탐색: 아렌트의 공공화법과 바흐친의 다성악적 대화법」, 『사회과학연구』제 18집 2호, 2010, 237-238쪽 참조.  5)김욱동, 위의 책, 166쪽.  6)김욱동, 앞의 책, 307쪽. 바흐친은 다성적 문학의 경우 작중인물은 작가의 의도에 의해서 수동적으로 움직이는 꼭두각시와 같은 존재라기 보다는 오히려 작가와 대등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능동적 존재들이라고 이야기한다.  7)김화선, 「바흐친의 언어이론 」, 『문예시학』7권, 1966, 191쪽.  8)Reynaud Bérénice, Johan van der keuken: ‘Fragments for a Reflection’, Cornell University, Ithaca, NY, 2001.  9)바흐친은 “산다는 것은 대화에 참여하는 것이다.”라고 언급할 정도로, 타자와의 소통을 전제로 하지 않는 모든 실존적, 윤리적, 인식적, 문학적, 미학적, 정치적 행위의 무익함을 깊이 성찰하고 있다. 바흐친의 다성적 대화이론의 핵심은 작가와 주인공간의 대화관계의 연장선상에 있는 나와 타자 간 관계가 단성적인 독백적 대화가 아니라 깊고 풍부한 다성적 대화를 추구한다는 것이다(...). 채진원, 앞의 글, 328-329쪽 참조.

    3. 이미지와 사운드의 변증법적 콜라쥬10) : 검은 화면, 얼굴 클로즈업, 보이스 오버

    반 데르 퀘켄은 평소 자신에게 하나의 영화는 하나의 ‘표피’(épiderme)의 문제이고, 표면(fleur de peau)으로 느끼는 문제라고 말하며 사물들의 외피를 통해 현실을 창조하고 싶다는 의지를 표명해왔는데11), 그는 이것을 <존재의 얼굴(Face Value)>에서 다양한 민족, 종교, 계급을 가진 사람들의 얼굴 클로즈업을 통해 표현하고 있다. 여기서 ‘표면’으로서의 얼굴은 들뢰즈가 그의 공저 <천개의 고원>에서 강조했듯이, 바로 ‘사건과 의미’의 장소가 된다. 반 데르 퀘켄은 사건과 의미의 장소인 이 표면을 줄곧 클로즈업으로 응시하며 영화의 미학적, 윤리적 문제들에 대해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고 있는 듯하다.12)

    <존재의 얼굴(Face Value)>에서 매우 흥미로운 점은 이 영화에 등장하는 대략 오십여 개가 넘는 각각의 작은 초상화들이 모두 다른 방식으로 촬영되었다는 점이다. 즉 반 데르 퀘켄은 매 초상화의 인물을 촬영할 때 마다 매번 그와 새로운 대화를 나누듯이 새로운 미장센을 연출해 보여준다. 마치 인상파 화가가 대상으로 부터 받은 순간적인 인상과 느낌을 화폭에 담아내듯, 반 데르 퀘켄도 처음 등장인물을 대면해, 그 인물이 주어진 공간 속에 어떤 방식으로 존재하는지를 직관적으로 포착해 그만의 고유한 존재감을 초상화에 담아낸 듯하다. 그래서 각각의 초상화는 하나의 고유한 파편처럼 저마다 독자성을 발산하고 있고, 이 초상화들이 모여 일종의 초상화의 인류학을 제시하는 듯하다.

    <존재의 얼굴(Face Value)>에서 수십 개의 초상화는 이처럼 각기 다른 스타일로 구성되었지만 이 초상화들을 일관되게 관통하는 중요한 형식적 특징은 ‘얼굴 클로즈업(close up)’과 ‘보이스 오버(voice over)’이다. 초상화의 주인공들은 영화가 지속되는 두 시간 동안, 대개 그저 말없이 고요히 카메라 렌즈를 응시하거나 혹은 저마다의 고유한 방식으로 존재한다.

    그리고 침묵하는 얼굴 클로즈업 이미지 위로 얼굴 주인의 음성이 보이스 오버로 흐른다. 촬영 전에 녹음되었을 수도 있고, 후에 녹음되었을 수도 있는 이 음성은 내면적 고백처럼 담담하게 자기들의 과거와 현재를 이야기 한다. 그리고 얼굴 클로즈업과 보이스 오버로 결합된 이와 같은 영화 형식은, 직접 말을 하고 있는 인물을 화면에서 제시하는 것과는 확연히 다른 느낌을 불러일으키며 매우 흥미로운 결과를 보여준다. 왜냐하면 이미지와 사운드의 관계에 있어 그 둘은 어느 한쪽이 다른 한쪽에 종속되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층위에서 그 나름의 고유한 의미를 갖는 자율적인 시공간이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와 같이 서로에게서 해방된 이미지와 사운드는 불연속적으로 만나 변증법적으로 콜라쥬13) 되어 대상의 새로운 진실, 즉 그들의 영혼과 존재의 깊이에 가닿을 수 있게 해준다. 관객은 얼굴과 말, 이 두 층위가 생성하는 것들을 직접 직조하며 상상의 공간을 창조해야 한다. 즉 얼굴 표면이 들려주는 소리와 말이 보여주는 이미지, 그리고 이 두 층위 사이에 존재하는 여백과 충돌 그리고 공명 속에 참여해 대상의 진실에 다가가야 한다.

    그러면 여기서 <존재의 얼굴(Face Value)>의 구체적인 한 장면을 살펴보자. 이 장면은 앞의 씬 구성표 8번에 배치된, 프랑스로 이민 온한 아랍 출신 청년의 초상화이다.

    S#8. 프랑스의 아랍이민자 청년의 초상화

    이 장면은 이미지가 부재하는 검은 화면에서 시작된다. 이 검은 화면 위로 아랍어 악센트가 섞인 프랑스어로 이야기하는 한 남성의 보이스 오버가 흐른다. 이 남자의 음성은 내면적 독백을 읊조리듯 조용히 자신의 어린 시절에 대해 이야기 한다. 하지만 처음 보이스 오버가 들리는 10여초 동안 관객은 음성의 주인공인 이 남성의 얼굴을 볼 수가 없다. 왜냐하면 화면엔 이미지가 부재하는 듯한 검은 화면이 지속되기 때문이다. 이윽고 이 어두운 화면 속에서 마치 유령이 등장하듯, 서서히 하나의 얼굴이 파편적으로 드러나다 또렷해진다. 얼굴의 주인공은 한 이슬람 청년이다. 우울함을 강렬하게 뿜어내는 청년의 시선은 아무 말 없이 단지 카메라를 정면으로 강렬하게 응시할 뿐이고, 그의 얼굴은 클로즈업으로 제시된다. 그리고 이 이미지 위로 청년의 보이스 오버는 계속 흐른다. 고향을 떠나 프랑스로 열 살 때 이민 온 이 아랍 출신의 청년은 아홉 명의 형제들이 있었지만 가난한 집안환경 때문에 제대로 보호받지 못하고, 열 살에 학교를 그만두게 된다. 그리고 그 이후엔 거리를 방황하며 떠돌이처럼 살아왔다는 불행한 이민사이다. 보이스 오버가 흐르는 2분여 동안 청년의 얼굴은 시종일관 아무 말 없이 계속 카메라를 묵묵히 응시한다. 반 데르 퀘켄의 핸드 헬드 카메라는 매우 조심스레 청년의 얼굴 가까이 다가가 그의 얼굴을 빅 클로즈업으로 제시한다. 독백이 끝날 때 쯤 청년의 얼굴은 이 장면의 처음과 같은 방식으로 서서히 유령처럼 캄캄한 암흑 속으로 사라져버린다. 그리고 약 8 초 정도의 검은 화면이 고요함 속에 지속된다.

    이와 같은 미장센(mis en scène)은 전통적인 다큐멘터리에서는 보기 힘든 매우 실험적이고 픽션적인 미장센이다. 이 장면의 맨 처음과 뒤에 제시된 ‘Ä검은 화면’Ä은 일반적인 편집과정의 숏 연결 방식인 페이드 인 (fade in)/페이드 아웃(fade out)기법에 의한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화면의 좌측 후경에 작은 창문에서 들어오는 빛이 보이기 때문이다. 즉 이 장면은 촬영 과정에서 청년의 얼굴에 투사되는 빛의 양과 각도를 인위적으로 조절하고 통제하는 미장센을 통해 구축되었다. 반 데르 퀘켄은 빅 클로즈업으로 확대시킨 청년의 얼굴 표면을 하나의 공간으로 무대화시켜 보여준다. 그의 얼굴은 빛의 상태에 따라서 어둠속에서 유령처럼 떠오르기도 하고 어둠 속으로 사라지기도 한다. 관객은 이 장면을 보는 동안 앞에서 언급했듯이, 청년의 얼굴 클로즈업 이미지가 들려주는 소리와 그의 보이스 오버가 들려주는 이미지, 이 두 층위 사이에 존재하는 간극 속에서 상상의 공간을 창조하며 인물의 진실에 다가가야 한다. 이 ‘검은 화면’의 미장센이 상징하는 바는 이 아랍 청년이 뿜어내는 우울한 분위기와 이 청년의 모놀로그의 내용으로 추측해 볼 떄, 불확실하고 암울한 현재를 살고 있는 청년의 유령 같은 존재감에 대한 은유적 표현이라고 여겨진다. 즉, 반 데르 퀘켄은 어린 시절 뿐 아니라 현재도 민족적, 계급적, 종교적 층위에서 가해지는 불평등과 모순을 겪으며 사회의 낯선 타자로 살아가야만 하는 이 청년의 존재를 이와 같은 미장센을 통해 ‘…얼굴의 부재’ ‘…얼굴의 상실’…로 영화적으로 물질화시켜 표현하고 있다고 보여진다.

    이 장면에서 아랍청년의 얼굴은 자끄 오몽(Jacques Amount)도 언급했듯 ‘시선의 장소’이자 관객과 관계를 맺게 해주는 ‘통로’와도 같다. 청년의 시선은 줄곧 아무 말 없이 카메라 렌즈를 정면으로 바라보고 있다. 즉 관객을 정면으로 응시하고 있다. 관객은 이 청년과 마주보며, 여러 감정과 회한이 담긴 이 ‘시선’의 주체인 아랍 청년의 삶에 대해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다. 이 장면에서 클로즈업은 벨라 발라즈(Béla Balázs)가 언급했듯이 단순한 확대가 아니라, 의미생성에 있어서 질적 도약을 가능케 해준다.14) 왜냐하면 빅 클로즈업된 청년의 얼굴은 단순히 확대된 개인의 얼굴로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아랍민족이라는 ‘종의 얼굴’, 즉 유럽사회에서 거부당하는 ‘타자의 얼굴’에 대해 생각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즉 클로즈업으로 확대되어 보여지는 이 아랍 청년의 얼굴은 한 개인의 얼굴이자 동시에 ‘아랍’ 이민자라는 하나의 집단과 사회적 카테고리를 대표하는 얼굴이기도 한 것이다. 따라서 이 청년의 얼굴은 단순히 생물학적인 차원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이데올로기, 타자성, 정체성을 둘러싼 정치적인 담론들이 중첩되는 문화적, 역사적인 지형이 되고 있다.

    한편, 검은 화면의 미장센을 통한 이미지의 부재는 이 작품에서 몇 차례 더 등장한다.15) 매번 연출 방식에 있어 약간씩 차이가 있고, 다른 문맥 속에 연출되어 다른 의미를 생성시키지만 관객은 매번 뜻하지 않은 갑작스러운 이미지의 부재에서 오는 ‘실명’16) 의 상태를 경험하게 된다. 이와 같은 낯선 형식은 파스칼 보니체(Pascal Bonitzer)도 언급했듯, 관객으로 하여금 무감각적으로 습관 되어 진 어떤 것이 결핍되고 빠진 것처럼 느껴지도록 해 관객의 당혹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17) 또한 관객으로 하여금 이미지 부재에서 오는 결핍감과 욕구불만을 느끼게 하여 관객 각자가 자신의 시각적인 강렬한 욕망에 대해 다시금 되돌아보도록 만들기도 한다. 관객은 어두운 극장에 앉아 이미지가 자취를 감춰버린 캄캄한 검은 화면을 응시하며 수동성에서 깨어나 스크린을 가득 채운 검은 심연의 의미에 대해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가 없다. 즉 관객들은 기대했던 것들의 부재를 겪으며, 이 부재를 통해 자기의 욕망과 대면하며 스스로를 성찰하게 되는 것이다.

    이미지의 부재이자 텅 빈 프레임으로서 ‘검은 화면’의 미장센은 한편으로는 시각적인 것을 차단하고 이미지 운동의 연속성을 단절시키는 역할을 수행하면서 이와 동시에 관객을 무한한 자유가 허락되는 상상의 공간으로 이끌기도 한다. 이와 같은 ‘검은 화면’은 연속성을 중시하는 전통적 영화들이 감히 사용할 엄두를 내지 못하는 과감한 연출로서, 연속성이라는 전통적 영화형식의 이데올로기로부터 이미지와 사운드를 해방시키는 반 데르 퀘켄의 핵심적인 영화장치 중 하나라고 볼 수 있다.

    10)반 데르 퀘켄의 모든 영화에서 발견되는 핵심적인 미학의 하나는, 그가 이미지와 사운드 사이의 연속성을 파괴하고, 이 둘의 고유성과 자율성을 살리면서 변증법적인 콜라쥬를 구현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와 같은 이미지와 사운드의 변증법적 콜라쥬는 그의 영화들 속에서 매번 새롭게 실험되고 있는데, 이 영화 <존재의 얼굴(Face Value)>에서는 얼굴 클로즈업과 보이스 오버, 그리고 이미지가 부재하는 검은 화면으로 표현되고 있다. 관객은 이와 같은 이미지와 사운드의 변증법적 충돌과 공명 속에서, 그리고 이미지가 부재하는 검은 화면 앞에서 일종의 ‘실명’을 직접 체험하며 이 영화적 표현이 함의하는 바를 질문해야 한다.  11)Johan Van der Keuken , Aventure d’un regard, Cahiers du Cinéma,1998, pp.58-59 참조. 반 데르 퀘켄은 자신의 아티클에서 그가 정말 하고 싶었던 것은 하나의 표면에 ‘지속’을 창조하는 것이라고 적고있다. 그는 “표면에서 시간은 탄생하고, 시간에서 표면은 탄생한다. 표면에 주목하라, 이것은 장전된 침묵이다.” 라고 말하며 표면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12)자끄오몽, 『얼굴의 미학, 김호영 역, 마음산책, 2006, 144-145 쪽 참조. 자끄 오몽(Jacques Amount)은 벨라 발라즈(Béla Balázs)의 상(相, physionomie)의 개념에 대해 고찰하며 다음과 같이 언급한다. “相은(...) 사물들, 존재들, 장소들의 외양이자 얼굴이며, 동시에 그것들의 영혼의 창이다. 그리고 이 증식하는 相들 중에서 절대적 특권을 받은 것은 바로 인간의 ‘얼굴’이다. 따라서 한 사람의 얼굴을 촬영한다는 것은 영화의 모든 문제들, 특히 영화의 미학적, 윤리적 문제들에 대해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는 것이다” -자끄 오몽  13)반 데르 퀘퀜에게 ‘콜라쥬’는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반 데르 퀘퀜은 콜라쥬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영화에 대한 나의 태도, 몽타쥬에 대한 나의 생각에는 콜라쥬가 늘 중요하게 자리잡고 있다. 이것은 이미지에 부여하는 일종의 자유이다.”-요한 반 데르 퀘퀜. Johan van der keuken, 앞의 책, “Du montage chez Henry Moore”, pp. 15-16 참조.  14)엠마뉴엘 시에티, 『쇼트, 영화의 시작 』,심은진 역, 이화여자대학교 출판부, 2006, 97쪽.  15)씬 35번 에서는 카프카의 얼굴이 새겨진 조각상을 통해 이미지가 부재하는 검은 화면의 미장센을 볼 수 있고, 씬 54번에서는 거대한 해군함대가 화면의 전경을 지나가며 배의 몸체가 화면 전체를 가려, 그것이 횡단하는 수십 초 동안 화면은 암흑 상태가 된다. 즉 배가 횡단하는 내내 화면에는 이미지가 부재하고 검은 화면이 지속된다. 배가 프레임을 벗어나기 시작하며 비로소 배의 몸체에 가려졌던 노을빛에 반짝이는 바다의 모습이 드러나기 시작한다.  16)반 데르 퀘켄은 “이미지가 모든 것의 중심이 된 시대에서 ‘실명’은 오늘날의 중대한 관건이다”라고 강조할 만큼, ‘실명’에 대해, 맹인들이 세상을 지각하는 방식에 대해 깊은 관심을 보여 왔다. 반 데르 퀘켄은 <맹인 아이(Blind Child, 1964)>와 <헤르만 슬롭, 맹인 아이 2(Blind Child2, 1966)>, <아름다움 (Beauty,1970)> 등 그의 여러 작품에서 실명이나 감각의 차단에 대한 테마를 다루며 관객으로 하여금 실명의 상태를 경험하도록 만든다. 이 영화 <존재의 얼굴(face value)>의 도입 장면에서도 반 데르 퀘켄 감독은 직접 출연해 자신이 쓰고 있던 안경을 벗는 행위를 통해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사색으로 관객을 이끈다.  17)파스칼 보니체, 『비가시적 영역, 영화적 리얼리즘에 관하여』, 김건, 홍영주 역, 2001, 123쪽.

    4. 충돌과 공명의 몽타쥬

    영화 에서 반 데르 퀘켄은 선형적 내러티브를 거부하고 거의 추상의 단계까지 몽타쥬를 실험하고 있는 듯하다. 이 영화 속엔 다양한 인물들의 서로 다른 내러티브들이 독립된 파편들로 존재하는데, 반 데르 퀘켄은 오십여 개가 넘는 이 독립된 파편들을 그 고유성과 자율성을 존중하면서 다성적 구성으로 엮어내고 있다. 그리고 이 파편들은 서로 맞물리며 충돌과 공명 속에 정교한 의미작용을 일으킨다.

    그럼 여기서 구체적인 장면들을 살펴보자. 이번에는 연속적으로 이어진 두 장면을 살펴보겠다. 우선 첫 번 째 장면은 프랑스의 극우정당 ‘국민전선’(Front National)의 정당모임에서 찍은 극우 인종차별주의자들인 파시스트들의 초상화이고( 위의 도표에서 씬 34번 ), 두 번 째 장면은 홀로코스트의 트라우마를 안고 사는 한 유태인 묘지 관리인의 초상화이다. 우선 첫 번째 장면부터 살펴보자.

    S#34 마르세이유 ‘국민전선’ 정당모임

    프랑스 마르세이유의 한 숲 속 땡볕 아래서 수백 명의 인파들이 몰려 가톨릭 미사에 참여하고 있다. 바로 프랑스 파시스트의 수장 장 마리 르펜(Jean-Marie Le pen)이 이끄는 극우정당 ‘국민전선’(Front National)의 정당모임이다. 반 데르 퀘켄의 핸드 헬드 카메라는 가톨릭 성가를 합창하는 남녀노소의 얼굴들을 클로즈업으로 보여준다. ‘국민전선’의 깃발들이 여기저기 나부끼고 그중 거대한 국민전선의 깃발을 배경으로 교단의 십자가와 촛불, 가톨릭 사제의 얼굴이 연이어 클로즈업으로 제시된다. 연로한 백발의 사제는 ‘혈통’과 ‘애국’에 대한 강론을 하는 중이고, ‘국민전선’의 마크가 새겨진 동일한 모자를 쓴 다양한 연령층과 성별의 당원들이 신부님 강론을 진지하게 경청하는 중이다.

    미사가 끝나고 참여자들은 잔디밭에 모여앉아 점심을 먹는다. 고기를 써는 뚱보 아저씨, 카메라를 보며 미소 짓는 꼬마들, 축배를 드는 사람들, 강아지를 안은 평온한 표정의 중년 여성 등 다양한 극우파 당원들의 얼굴들이 클로즈업으로 연이어 제시된다. 중년 남자들은 즐거이 담소를 나누며 장 마리 르펜의 얼굴 그림이 크게 박힌 와인병에서 와인을 따라 축배를 든다. 국민전선의 플랜카드 앞에 삼삼오오로 앉아 반 데르 퀘켄의 카메라를 보고 미소 짓는 중년남녀들의 모습도 반복적인 빠른 줌인/줌아웃으로 보여진다. 당원들은 반 데르 퀘켄의 카메라를 향해 유쾌한 모습으로 “프랑스의 미래를 위해!”, “장 마리 르펜의 건강을 위해!”라고 저마다 한마디씩 외치며 건배를 한다. 이때 한 할머니가 르펜의 사인이 적힌 편지를 받았다며 흥분된 모습으로 카메라 앞에 편지를 펼쳐 보이며 자랑한다. 그녀는 “르펜은 정말 훌륭해. 난 그가 너무 좋아!”라고 외친다. 이윽고 장 마리 르펜의 연설이 시작되고, 이십대 청년들이 정당 깃발을 들고 “프랑스, 르펜, 자유!”라고 우렁찬 목소리로 반복해서 복창한다. 스킨헤드 청년들도 보인다. 카메라는 이들의 얼굴과 머리모양을 클로즈업과 빠른 리듬의 줌인-줌아웃으로 반복적으로 제시한다. 가슴에 정당마크를 붙이고 멋진 선글라스를 쓴 흑인여성, 정당 깃발을 들고 제복을 입고 서있는 중년 남성들의 제복 등이 클로즈업으로 제시된다. 장 마리 르펜은 연설 중에 이슬람 이민자들이 프랑스를 위협하고 오염시키고 있다며 격렬한 톤으로 규탄하고 군중들은 열렬히 르펜에게 환호를 보낸다. 이때 반 데르 퀘켄의 카메라는 환호하고 박수치는 손들의 움직임을 느린 카메라 스피드로 촬영한 여러 숏을 클로즈업으로 보여준다. 환호하는 군중들의 손들 사이로 만세하는 르펜의 모습이 보여지고, 그 곁을 수호하는 제복을 입은 중년남성들의 바스트 숏과 클로즈업 숏이 연이어 보여진다. 이제 카메라는 거칠고 공격적인 음성으로 악을 쓰듯 “반 이슬람”, “반 유대”를 외치며 이민자의 추방을 주장하는 르펜의 광기어린 이미지를 바스트 숏으로 잡는다.

    이때 주목할 점은 르펜의 입에서 매번 어휘가 발음될 때마다 여기에 맞춰 마치 경련을 일으키듯 반 데르 퀘켄의 카메라가 상하로 심하게 떨린다는 점이다. 이는 전기고문을 당할 때 신체가 경련하는 것과도 같다. 르펜의 이미지는 이처럼 경련하는 듯한 떨림과 멈춤의 반복 속에 일그러진 상으로 구축된다. 이 같은 이미지는 르펜의 연설이 끝날 때까지 지속된다.

    반 데르 퀘켄은 이 장면에서 가톨릭 근본주의, 반유대주의, 반이슬람, 반이민주의 등을 근본가치로 걸며 타자를 오염된 존재로 여겨 극단적으로 거부하는 파시스트들의 폭력성을 표현하고 있다. 특히 르펜의 얼굴 그림이 박힌 포도주병, 르펜의 사인 등에서 드러나는 유럽 파시스트들의 르펜에 대한 열렬한 숭배는 마치 히틀러와 그의 지지자들을 떠올리게 만든다. 르펜은 1987년 2차 대전 때 나치정권이 저지른 홀로코스트를 “역사에서 사소한 일”이라고 말해 논란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는데, 반 데르 퀘켄은 앞서 살펴 본 다양한 파시스트들의 얼굴 클로즈업 이미지들과 실험적인 카메라 워킹18)(극단적인 카메라의 경련 및 자유로운 탈프레이밍, 리프레이밍의 반복 등)을 통한 이미지 구성을 통해 제2의 히틀러의 등장과 파시스트 창궐의 위험성을 보여주는 듯하다.

    여기서 우리는 반 데르 퀘켄이 실험적인 영화형식으로 재구성한 장 마리 르펜과 파시스트들의 초상화를 보면서, 영화의 형식은 결코 중립적이지 않고 만드는 자의 정치적 태도가 개입될 수 밖에 없다는 점을 다시 한 번 확인하게 된다. 즉 영화의 정치성은 바로 영화의 “형식”을 통해 작동되는 것이다.

    나치의 이데올로기가 히틀러의 미장센을 연출하듯이, 이 장면에서 파시스트들의 이데올로기는 카메라 앞에서 자신만의 미장센을 스스로 연출하고 있다. 이들의 표정, 몸짓, 복장, 구호, 르펜 포도주병, 정당 깃발, 배지, 제복, 스킨헤드, 예수의 십자가 등이 모두 파시스트들의 미장센의 도구가 된다. 이 모든 것들은 파시스트들의 얼굴이기도 하다. 얼굴은 단지 사람의 얼굴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파시스트들이 모여 있는 공간과 사물, 그리고 사운드도 하나의 얼굴처럼 제시된다. 즉 여기서 얼굴은 단순히 신체의 한 부분만을 일컫는 것이 아니라 파시스트 이데올로기와 공명하는 모든 기호들을 포함한다.

    그리고 이어지는 장면은 프라하의 유태인 묘지(위의 도표의 씬 35번)에서 만난 유태인 묘지 관리인의 초상화이다.

    S#35 프라하의 유태인 묘지

    장면이 시작되면 침묵 속에서 남녀노소의 슬퍼 보이는 얼굴들이 클로즈업으로 제시된다. 주름진 한 노인의 얼굴과 텅 빈 눈빛, 울음을 참는 사람들의 얼굴들, 숙연하고 슬픈 표정으로 고개 숙인 사람들, 눈물을 흘리며 서로 포옹하는 사람들의 얼굴들이 클로즈업으로 연이어 보인다. 우리는 이곳이 유태인 묘지라는 사실을 꽃을 헌정하는 사람들이 머리에 쓴 키파(kippah)를 통해 뒤늦게 알게 된다.

    이어지는 장면에서 60대 중반 가량으로 보이는 한 유태인 노인이 묘지 관리소 문에 기대서서 카메라를 응시하는 얼굴이 정면 클로즈업으로 제시된다. 그는 이 유태인 묘지의 관리인이다. 노인은 아무 말 없이 그저 카메라를 응시하며 서 있을 뿐이다. 반 데르 퀘켄의 핸드 헬드 카메라는 그의 얼굴을 클로즈업으로 제시하면서도 얼굴 표면을 마치 손으로 더듬는 듯 카메라를 조심스럽게 상하, 좌우로 짧게 패닝시키며 탈프레이밍, 리프레이밍을 반복한다. 이 과정에서 노인의 얼굴이 프레임에 의해 잘려지기도 하고 중심에서 이탈되기도 한다. 그리고 노인의 얼굴 이미지 위로 내면의 독백과도 같은 그의 음성이 보이스 오버로 흐른다.

    노인의 음성이 보이스 오버로 들리는 동안, 이 노인은 앞서 살펴본 장면들에서처럼 아무 말 없이 줄곧 카메라 렌즈를 조용히 바라보고만 있다. 여기서 특히 주목할 점은, 컷이 바뀌며 다음 장면에서 카메라는 그의 얼굴이 아닌 그의 뒷머리와 등만을 줄곧 클로즈업으로 제시한다는 점이다. 이때 보이스 오버로 흐르는 독백은 다음과 같다.

    반 데르 퀘켄의 카메라는 유태인 노인의 보이스 오버가 끝날 때까지 줄곧 그의 얼굴이 아닌 뒷머리와 등만을 약 40 여 초 동안 클로즈업으로 보여준다. 반 데르 퀘켄은 시각화하기 힘든 한 존재의 내적 움직임과 존재의 상태를 뒷모습을 통해 담아내고자 하는 듯하다.

    반 데르 퀘켄의 카메라는 그의 등 가까이 조심스레 다가가기도 하고, 등 뒤에서 미세하게 좌우로 패닝하며 리프레이밍을 지속한다. 이와 같은 뒷모습 클로즈업은 다큐멘터리에서는 보기 드문 매우 이례적인 표현이라고 할 수 있고, 정면 얼굴 클로즈업이 중심이 된 이 영화 속에서도 매우 눈에 띄는 클로즈업 형태라고 할 수 있다. 고다르는 <자기만의 인생(vivre sa vie, 1962)>의 첫 장면에서 주인공 나나의 뒷모습 클로즈업을 제시19)하지만, 이것은 브레히트의 ‘거리두기’ 효과를 적용해 클로즈업이 일으키는 감정이입을 차단하기 위한 목적으로 사용되었다. 하지만 이 유태인 묘지 관리인 노인의 뒷모습 클로즈업은 오히려 이 유태인 노인의 감정에 동참하기 위한 장치로 보인다. 여기서 관객들은 거의 움직임 없는 유태인 노인의 뒷모습 클로즈업을 40여초라는 짧지 않은 지속시간 동안 바라보게 된다.

    이와 같은 이미지 구성은 관객들로 하여금 이 유태인 관리인의 눈을 통해 유태인 희생자의 묘지를 보게 함으로써 그렇지 않았다면 느끼지 못했을 생생한 감정들에 동참하게 만든다. 이 유태인 노인이 매일 같이 바라보는 것은 바로 수많은 유태인들의 묘지, 즉 ‘죽음’이다. 즉 반 데르 퀘켄은 평생 아우슈비츠의 트라우마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오히려 트라우마를 정면으로 바라보며 사는 것을 마지막 삶으로 선택한 이 유태인 노인의 등 뒤에서 이 노인이 바라보는 것을 함께 바라보는 것으로 노인의 초상화에 참여한다. 반 데르 퀘켄은 이 노인의 초상화를 통해, 뼈에 새겨진 아픈 기억은 시간의 흐름 속에서도 망각될 수 없음을 보여주는 듯하다.

    그리고 이어지는 장면에서 반 데르 퀘켄의 카메라는 유태인 묘지에서 16번이라는 숫자가 적힌 소박한 카프카의 묘 주변을 거닌다. 나뭇가지들이 늘어진 사이로 여러 유태인 묘지들과 번호판들이 보인다. 이때 카프카의 <심판>의 한 대목을 낭송하는 한 남성의 보이스 오버가 흐른다. 그리고 카메라는 어두운 돌 판의 표면에 거칠게 조각된, 앙상한 한 남성의 얼굴을 클로즈업으로 잡는다. 정면을 쏘아보는 부릅뜬 눈과 강한 음영이 얼굴에 드리워진 날카로운 인상의 이 조각상은 카프카의 얼굴 부조이다. 카메라는 카프카의 얼굴을 클로즈업으로 오랫동안 보여준다. 잠시 후 이 얼굴 위에 드리워진 빛이 점점 사라지고 앞의 아랍 이민자 청년의 장면에서 보았듯이 얼굴은 어둠 속으로 자취를 감춘다. 그리고 화면은 거의 10여 초간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암흑 상태로 변한다. 잠시 후 빛이 서서히 드리워지면서 카프카 조각상의 얼굴윤곽이 드러난다. 빛의 조절에 따라 카프카의 얼굴 조각은 마치 생명을 얻은 듯 시시각각 감정을 표현하는 것처럼 보인다. 특히 카메라 렌즈를 정면으로 응시하는 조각상의 강렬한 시선은 마치 카프카가 살아 돌아와 인간 세상의 부조리를 뚫어지게 응시하는 듯하다. 하지만 서서히 이 얼굴은 다시 어둠 속으로 사라진다. 그리고 이 검은 화면은 약 30초간 지속되고 여전히 이 위로 카프카의 소설을 낭송하는 보이스 오버만이 흐른다. 낭송이 끝나고 다음 장면에서 카메라는 카프카의 이 얼굴 부조가 프라하 거리의 한 벽에 높이 부착되어 있는 모습을 보여준다.

    앞에서 살펴본 장면들에서 인상적인 부분은 장면들 간의 연결이다. 여기서는 프랑스 극우파 파시스트들의 정당모임 장면과 유태인 묘지의 노인관리인 장면, 그리고 카프카의 소설을 낭송하는 장면이 연속적으로 이어져 있다. 파시스트 장면과 유태인 장면은 강렬한 대비를 일으키며 결합되어 있다. 즉 파시스트 당원들의 열렬한 환호 속에 연설을 마친 르펜의 클로즈업 숏은, 곧 이어지는 유태인 묘지 장면에서 유태인들의 고통스런 표정의 얼굴 클로즈업 숏과 대비되어 병치되어 있다. 이와 같은 장면의 대비는 홀로코스트라는 역사적 사건이 그 형태는 다를지라도 현재에도 계속 진행 중이라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는 듯하고, 그렇기 때문에라도 우리는 고통스런 역사적 사건과 그것의 지속인 현실을 똑바로 응시해야 한다고 말하는 듯하다.

    또한 반 데르 퀘켄이 유태인 묘지 관리인의 장면과 카프카의 장면을 연결해 제시한 것은

    구체적인 죄목도 없이 끌려가 아무런 재판도 없이, 영문도 모르고 죽음을 맞이하는 <심판>의 요제프 K가, 아무런 죄도 없이 단지 유태인이라는 이유만으로 끌려가 아우슈비츠의 강제 집단수용소에서 참혹한 죽음을 당해야 했던 수많은 유태인들에 대한 알레고리임을 보여주는 듯하다. 유태인과 K의 공통된 죄는 살고 있는 사회에 소속되어 정착하는 것이 이방인이자 타자에게는 곧 위법이라는 것을 몰랐다는 점이다. 이 같은 이해할 수 없는 부조리 앞에서 홀로코스트에서 혼자 살아남은 유태인 노인이나 평생을 어디에도 소속되지 못한 채 떠돌았던 이방인 카프카나 그의 소설 <심판>의 요제프 K는 결국 동일한 하나의 운명의 축 위에 놓여 져 있음을 이와 같은 장면연결을 통해 보여주는 듯하다.

    이상에서 반 데르 퀘켄의 독창적인 영화 형식이 내용을 만나 다양한 의미생성이 이루어지는 과정을 영화 <존재의 얼굴(Face Value)>의 구체적인 장면분석을 통해 알아보았다. 그리고 이를 통해 반 데르 퀘켄의 영화 형식은 영화의 의미 생성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 핵심적인 역할이란 이미지와 사운드의 해방을 통해 영화를 늘 열려있는 역동적 실체가 되게 하여 끊임없이 그것이 재해석되고 자유로운 의미생성을 할 수 있도록 가능성을 열어놓는 것이다. 그리고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반 데르 퀘켄은 <존재의 얼굴(Face Value)>에서 다성적 영화형식, 이미지와 사운드의 변증법적 콜라쥬(검은 화면, 얼굴 클로즈업, 보이스 오버), 자유로운 카메라 워킹 등 영화의 형식적 장치들을 통해 이를 구현하고 있다. 이와 같은 형식적 장치들은 개체들의 서로 다른 목소리를 다성적으로 살림으로써 민주성을 이룰 수 있게 하고, 관객으로 하여금 수동적 영화 관람의 관습을 버리고 능동적으로 참여해 관객 각자가 주체가 되어 영화를 새로이 재구성할 수 있도록 해주며, 전통적인 방식으로는 가능하지 않았을 대상의 새로운 진실에 다가갈 수 있도록 해준다.

    18)반 데르 퀘켄은 자신의 에세이에서 프레임을 만든다는 것은 ‘현실에 대해 관점을 구축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자신의 촬영행위에 대해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내게 카메라는 세 가지 특성을 지니고 있다. 첫째로 카메라는 부분을 연주하고 즉흥적으로 소리를 낼 수도 있고 직접 개입할 수도 있는 악기와 같다. 두 번째로 카메라는 복싱과 같다. 카메라로 힘껏 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카메라는 애무와 같다. 왜냐하면 내가 좋아하는 존재들과 사물들의 표면을 스쳐가는 작은 움직임들이기 때문이다. 최근 몇 년 동안 나는 카메라에 대해 많은 것을 알게 된 것 같다. 이전에 나는 프레임을 벗어나는 작업을 자주 했기 때문에, 새로운 프레임을 만들어내진 않았지만 동일한 쇼트의 또 다른 변화를 만들어냈다. 여기서 나는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다. 항상 외화면은 존재하고, 프레임의 옆에는 탐색을 하게 될 무엇인가가 있다는 것을... 그래서 나는 프레임을 항상 대략적으로만 구성했다. 이제는 내가 프레임을 구성하는 것이 아니라, 나는 단지 카메라를 따라다닐 뿐이라는 생각이 든다. 카메라는 날아가고, 나는 그 뒤를 따라 난다. 어렸을 적에 내겐 끈으로 단단하게 신발에 묶어서 신는 나무 스케이트가 있었다. 내가 스케이트를 잘 타게 되었을 때, 스케이트를 타는 것은 스케이트가 발아래서 거의 둥둥 떠 있는 것처럼 되어야 한다는 것을 비로소 알게 되었다. 카메라도 마찬가지이다. 요즘 나는 카메라를 그저 내버려 둔다. 초점을 맞추는데도 전보다 아주 많이 편안해져서, 한순간 이미지를 흐릿하게 내버려두고, 다음에 아주 부드럽게 다시 잡는다. 그러면 마치 카메라가 가벼워진 것처럼 느껴지게 되고, 이러한 움직임 속에서 카메라 위로 사물들의 리듬이 다가오게 된다.” -요한 반 데르 퀘켄. Johan Van der keuken , 앞의 책, pp.184-185. 참조.  19)이 영화의 첫 번째 장면에서 고다르는 카페에 앉아있는 나나의 뒷모습을 클로즈업으로 보여준다. 나나의 얼굴은 그녀 맞은편에 부착된 거울을 통해 보여진다. 나나의 뒷모습과 맞은편 거울 속에 투영된 분명치 않은 정면 얼굴은 카페에서 들리는 여러 소음들과 웨이터의 분주한 움직임 등과 뒤섞여 있어 관객은 나나의 감정에 동참하기가 쉽지 않다. 이와 같은 화면구성은 관객이 주인공 나나에게 감정이입 하는 것을 차단하고자 하는 고다르의 의도적인 ‘거리두기’의 미장센이라고 볼 수 있다.

    5. 나가는 글

    반 데르 퀘켄은 자신의 에세이에서 “영화는 언어가 아니다”라고 말한다.20) 그래서 영화언어란 표현도 영화문법이란 표현도 받아들일 수 없다고 한다. 반 데르 퀘켄의 이 말이 의미하는 바는 영화란 단순한 기호, 즉 고정된 기의를 갖는 기표가 아니라는 것이다. 물론 이미지와 사운드는 의미를 만들어내지만 이것만으로는 영화 그 자체를 설명할 수 없다는 것이다. 즉, 영화는 그 자체로 하나의 “존재”이고, 또 그렇기에 무수히 많은 의미를 생산할 수 있으며, 반 데르 퀘퀜도 언급했듯이 이미지에는 그 끝에 가서는 아무것도 의미하지 않는 영역도 있다는 것이다.21) 반 데르 퀘켄에게 있어 영화는 의미 표현을 위한 도구로서의(기호로서의) 언어가 아닌 것이다.

    또한 반 데르 퀘켄은 영화가 실제를 있는 그대로 보여줄 수 있다는 리얼리즘의 이데올로기에 동의하지 않는다. 그는 영화란 어차피 인공적(artificial)일 수 밖에 없고, 실제란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이미지들 사이에서 제시되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의 말을 들어보자.

    그렇다면 반 데르 퀘퀜에게 있어 영화란 무엇인가? 그에게 있어 영화는 언어도, 실제 세계도 아니다. 그는 영화를 작가 자신(의미, 주제)에도 속하지 않고, 대상 세계(실제 세계)에도 속하지 않는 하나의 “독립된 존재”로 여기고 있는 것이다. 말하자면 그에게 있어 영화란 “제3의 존재”인 것이다.

    이상과 같은 반 데르 퀘퀜의 영화철학이 그의 영화형식을 만들어낸다. 그의 해방적인 영화 형식은 이미지와 사운드를 사전에 기획된 의미나 주제 또는 리얼리티라는 틀에 가두지 않고 해방시켜 영화의 자율성을 회복시켜 준다. 즉 그의 영화 형식은 영화의 자유로운 의미생성을 가능케 하기 위한 반 데르 퀘퀜만의 창조적인 실험인 것이다. 그리고 영화 <존재의 얼굴(Face Value)>에서 사용된 다성적 형식(폴리포니), 변증법적 콜라쥬(얼굴 클로즈업, 보이스 오버, 검은 화면), 실험적인 카메라 워킹 등의 영화적 형식은 반 데르 퀘퀜의 이와 같은 실험의 한 결실이라고 볼 수 있다. 위의 실험적 영화형식은 결국 영화의 이미지와 사운드에게 주권(主權)을 돌려주고, 그 결과 영화가 “제3의 존재”가 되어 열려진 의미작용을 할 수 있도록 해 준다.

    그리고 한가지 덧붙이자면 반 데르 퀘켄 영화형식의 이러한 해방적 성격은 타성화된 이데올로기에 균열을 일으킨다는 점에서 그의 영화로 하여금 정치적 효과를 창출할 수 있도록 해준다. 반 데르 퀘켄의 영화가 정치적인 것은 고다르의 언급처럼 영화 속에 정치를 담았기 때문이 아니라 바로 영화를 ‘정치적’으로 찍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반 데르 퀘켄은 주제의 정치성을 통해서가 아니라, 주제를 다루는 방식, 곧 영화 이미지와 사운드의 “해방적 형식”을 통해 정치적 효과를 창출하고 있다. 반 데르 퀘켄의 실험적 영화형식과 정치성에 관한 문제는 본 논문에서 제대로 논의하지 못해 아쉬움이 남지만 다른 기회를 통해 심도 있게 논의해보도록 하겠다.

    반 데르 퀘켄의 작품들은 1976년 이래 꾸준히 극장과 페스티벌에서 상영되어 왔고, 그의 작품을 재발견하고자 하는 노력은 프랑스 및 유럽, 구미, 제3세계의 영화비평가들을 통해 현재까지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국내에서 반 데르 퀘켄에 대한 연구 현황은 전무하다. 요한 반 데르 퀘켄은 영화 만들기에 있어 스펙터클을 창출하는 획일적인 자본주의적 제작 시스템과 헐리우드 영화의 관습적 영화언어에 도전해 이미지와 사운드의 새로운 가능성들을 지속적으로 실험하고, 관객에게 새로운 ‘보기’의 형식을 상상할 수 있게 해주기에 그의 작품들은 이 시대에 지속적으로 발견되고, 제대로 연구되고 평가되어야 할 작품들이다. 본 논문이 국내에서 반 데르 퀘켄 영화들에 대한 연구가 활성화되는데 작은 계기가 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20)“영화는 흔히들 생각하는 것처럼 기호의 조합들이 문법에 의해 배치되어 일정한 의미를 표현하게 되는 ‘언어’가 아니다. 영화에는 기호도 의미도 없다. “John은 개자식이다.”라는 문장은 영화적 기호들의 조합으로 변환될 수 없다.(...)” Johan Van der Keuken, 앞의 책, “Le cinéma n’est pas un langage”, p. 39. 참조.  21)반 데르 퀘퀜은 이미지의 의미작용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당신은 모든 이미지의 모든 가능성을 알아야할 필요는 없다. 많든 적든 이미지가 아무 것도 의미하지 않는 외딴 영역이 있기 마련이다.”-요한 반 데르 퀘퀜. Johan van der keuken, 앞의 책. “Du montage chez Henry Moore”. pp.15-16. 참조.  22)‘in border crossing(1990)’ 페스티발 중 Bérénice Reynaud 와 반 데르 퀘켄의 인터뷰, Reynaud Bérénice, Johan van der keuken: ‘Fragments for a Reflection’, Cornell University, Ithaca, NY, 2001. p.2. 에서 재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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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5. Van der keuken Johan 1998 Aventure d’un regard google
  • 6. 김 창근 1999 [새얼 어문논집] Vol.12
  • 7. 김 화선 1966 [『문예시학』] Vol.7
  • 8. 채 진원 2010 [『사회과학연구』] Vol.18
  • 9. Reynaud Berenice 2001 ‘Johan van der keuken: Fragments for a Reflection’ google
  • [표1] 영화 <존재의 얼굴(Face Value)>의 전체 씬 구성
    영화 <존재의 얼굴(Face Value)>의 전체 씬 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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