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어가는 자의 고독’을 넘어서

Beyond the ‘Loneliness of the Dy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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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ABSTRACT

    This essay discusses Hong Sang-soo’s Nobody’s Daughter Haewon in terms of the essayistic elements presented and varied in his recent films. While using Timothy Corrigan’s categories of the essay film to illuminate how they have been coalesced in his latest films, I argue for their specificities in that they are driven by Hong’s moralist investigation of human characters and inner conditions, and that they are based on his lucid blending of the essayistic elements with those of Roberto Rossellini’s and Eric Rohmer’s spiritualist art cinema. In repositioning Hong’s work within this context, I also claim that Nobody’s Daughter Haewon should be seen as a culmination of Hong’s recent essayistic turn for its key components, including its main character Haewon as an self-investigative flâneuse who does not gives up asking who she is, its uses of diary and internal monologue, and its crystalline narration in which the boundaries between the actual and virtual are fundamentally blurred and thrown in the circuit of exchange. By examining those components, this essay aims at opening up different avenues of understanding of both Hong’s individual films and his work as a whole.

  • KEYWORD

    Hong-sang Soo , Nobody’s Daughter Haewon , essay film , essayistic elements , moralist , flaneuse , diary

  • 1. 모럴리스트에서 에세이스트로

    홍상수의 영화를 특정한 영화사적 전통 내에 위치시키는 것은 어려운 일이지만, 그의 영화는 다양한 측면에서 에릭 로메르의 영화들을 연상시키고, 감독 자신 또한 로메르의 세계관과 영화제작방식에 친밀감을 느끼고 감독으로서 부러움을 표현해 왔다는 점 3) 에서 두 감독의 작품세계를 비교하는 연구들 4) 이 홍상수 연구의 하나의 관점을 형성해 왔다. 5) 로메르 영화의 원형과도 같은 ‘도덕 이야기 Contes Moraux’연작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남녀 주인공 사이에서 벌어지는 행위나 사건에 대한 것이라기보다는 남성 내레이터들의 머릿속에서 벌어지는 ‘생각’들이고 그들이 여성들을 인지하고 설명하는 ‘방식’들이다. 김호영은두 감독의 비교연구에서 “정신적 사건들에 대한 묘사와 서술이야말로 로메르 영화와 홍상수 영화를 잇는 가장 큰 공통점” 6) 이라고 지적한다. 또한 그는 “프랑스어 ‘모럴’은 일상생활에서 도덕, 정서, 정신, 기분 등 다양한 의미로 사용되기 때문에 Contes Moraux는 ‘도덕이야기’ 보다 ‘정신이야기’ 정도의 표현으로 번역되었어야 한다” 7) 고 주장한다. 홍상수의 캐릭터들이 자신의 행위에 대해 모든 것을 정당화하려고 애쓰고 있다는 점에서 ‘모럴’은 가장 좁은 의미의 도덕으로 표현될 수도 있고, 그의 영화가 로메르의 연작들에서처럼 ‘도덕’과 ‘교훈’을 제시한다는 면에서 여전히 홍상수를 (좁은 의미의) 모럴리스트로 간주 8) 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한편 정한석은 홍상수의 영화는 도덕의 문제에서 시작했지만 윤리의 문제로 옮겨져 왔다고 하면서, 그의 영화가 도덕에서 윤리로 옮겨갈 때 그 양식이 비극에서 희극으로 바뀐다고 분석한다. 9)

    초기작부터 지금까지 홍상수의 모럴리스트적 탐구는 어떤 방식으로 발전 및 변주되어 왔는가? 내러티브의 구조와 반복성을 표면에 내세웠던 초기작들과 달리 <극장전> 이후의 작품들에서 홍상수의 캐릭터들은 자신의 행위에 대해 이유를 알고 싶어 하고 자신의 감정을 분석 한다는 점에서 내향적인 모럴리스트에 가깝다. 이러한 모럴리스트적 태도는 이제 로메르의 영향이나 유럽식 모더니즘 모델로 환원될 수 없는 다른 설명 방식을 요구한다. 홍상수 영화의 구조 혹은 형식이 상대적으로 자유로워지고 느슨해지는 동안 그의 세계관은 더욱 치열 해지고 인물들은 내적인 ‘발견’을 위해 끊임없이 질문하고 회의하기 때문이다. 즉 <극장전>을 기점으로 홍상수의 주인공은 “생각을 해야겠다”(<극장전>) 고 결심하고, “자신의 눈으로 보고 좋은 것만 보기 위해 시를 쓰고자” 하며 (<하하하>),“계속 부딪쳐서 자신을 발견하려 애쓰거나(<누구의 딸도 아닌 해원>)”, “끝까지 깊이 파서 자기 한계를 알고 스스로 누군지 발견”(<우리 선희>)하고자 한다.

    이러한 모럴리스트적 태도가 홍상수의 중후기 영화들에 드러나는 형식적, 주제적 차원들에 미친 영향을 살펴보기 위해 에세이 영화 (essay film)이라는 범주를 고려해볼 수 있다. 마크 레이몬드 Marc Raymond는 홍상수가 필름으로 작업하면서 10여 년간(1996-2006) 7편의 작품을 만들었던 것과 달리, 2008년 이후 디지털로 전환하면서 작품 수가 거의 두 배로 증가한 것이 영화의 유형까지도 변화시켜 에세이 필름으로의 전환을 낳았다고 주장한다. 10) 즉 2008년 이후의 작품들에서는 이전 작품들에서의 내러티브 퍼즐이 덜 강조되는 반면, 영화 감독으로서의 홍상수의 입장이 반영된 에세이로서의 영화들이 시도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티모시 코리건 Timothy Corigan의 에세이 필름에 대한 최근 연구 11) 를 바탕으로 매체변화가 작업방식 뿐 아니라 영화의 형식에까지 영향을 주었다는 점, 홍상수의 변모하는 영화세계를 사적 자아와 공적 자아가 뒤섞인 ‘에세이 영화’로 접근한다는 점에서 흥미로운 시각이다. 그러나 홍상수 영화를 분석하는 데 있어 코리건의 에세이적인 방식들 Essayistic modes이 제기하는 다양한 관점들 12) 을 활용하는 대신 레이몬드는 <극장전>을 비롯해 <옥희의 영화>와 같이 영화에 대한 메타성이 직접적으로 드러나는 영화들의 분석에 집중(주로, 다섯 번째 범주인 ‘굴절 영화 Refractive Cinema’)해 에세이 영화로 규정함으로써 홍상수의 최근작들이 지니는 풍요로운 해석의 지점들을 놓치고 있다. 코리건이 말하는 ‘굴절 영화’란 라울 루이즈의 <도둑맞은 그림에 대한 가설>(1979)과 같이 문학과 회화 등 다른 예술적 실천들을 통해 영화적 과정들을 간접적으로 성찰하는 영화들이 거나 빔 벤더스의 <도쿄-가 > (1985), 압바스 키아로스타미의 <클로즈 업>(1993)등 이른바 ‘영화에 대한 영화’로 묶을 수 있는 작품들을 가리킨다. 이 두 계열의 작품들은 가시적인 반영적 장치들과 감독 자신의 직접적, 간접적 코멘터리들을 통해 영화제작 과정과 영화의 존재론에 대해 질문하고 논평하는 경향을 띤다. 반면 홍상수의 경우 <극장 전>이나 <옥희의 영화>같은 작품들은 물론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등의 영화들이 영화감독이나 비평가, 배우, 시나리오 작가, 영화학과 학생 등을 등장인물로 제시함에도 불구하고 영화제작 과정에 대한 고민이나 영화적 사유의 프로세스를 드러내는 것을 의식적으로 거부한다. 13) 홍상수의 영화들이 코리건이 말하는 에세이 영화의 범주들 중 그 어떤 것들(예를 들어 ‘굴절 영화’)로 단순히 규정될 수 없는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에세이 영화라는 범주가 홍상수의 영화들을 논의 하고 읽어낼 수 있는 다른 경로를 제시하는 까닭은 그것들이 갖고 있는 에세이적 요소들 때문이다. 초기작부터 여러 작품들에 걸쳐, 그리고 단일 작품 내에서도 반복되는 내러티브 행위로서의 여행은 가장 가시적인 특징이다. 이 이외에도 <극장전> 이후의 여러 작품에서 사용해 온독특한 내면 독백과 글쓰기 양식들(일기, 시나리오)의 전경화는 분명 에세이 영화의 요소들에 포함된다. 그렇다면 홍상수의 영화가 에세이 필름인가 아닌가라는 문제보다는, 이러한 에세이적인 요소들이 홍상수의 영화들에서 어떻게 사용되었으며 그 요소들을 통해 홍상수의 영화 들을 어떻게 재고할 수 있을 것인가를 묻는 것이 더욱 의미가 있다.

    이 질문들에 답하기 위해 프랑스 영화의 맥락에서 에세이 영화가 정의되어 온 방식을 참조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 프랑스 영화에서 에세이적 형식의 영화 filmes-en-forme-d’essay란 문인이 깊이 있고 내밀한 사유를 글로 쓰듯이 감독이 자신의 영화에 깊이 있고 내밀한 사유를 새겨넣는 형식의 영화를 가리켜 왔다. 여기서 에세이는 몽테뉴의 『수상록』,14) 파스칼의 『팡세』처럼 철학적인 무게와 깊이를 지닌 글을말한다. 물론 프랑스에서도 에세이 형식의 영화는 크리스 마르케나 고다르, 레네의 영화처럼 다큐멘터리의 외관을 가장 가시적으로 드러낸 다. 15) 하지만 몽테뉴와 파스칼이 글쓰기와 내면적 탐구로서의 에세이 라는 형식을 발전시켰다는 점을 감안해 보면, 홍상수의 가장 직접적인 참조 지점으로 평가되는 에릭 로메르의 영화 또한 에세이 영화적인 요소들(일기와 자막, 문학적 은유와 과정)의 포함과 변주라는 관점에서 논의될 수 있으며 이는 홍상수의 영화들에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말하자면 이들의 작품은 ‘에세이 영화적인 요소들을 포함한 예술영화’ 라고 규정할 수 있을 것이다. 즉 외적인 여행을 넘어선 내면의 성찰과 발견으로서의 여행, 그리고 자아를 드러내는 동시에 자아의 참모습을 질의하는 글쓰기의 과정들은 홍상수의 전기 작품들을 지배했던 견고한 예술영화적인 구조에 유연성을 부과하며, 예술영화적인 내레이션이 펼치는 차이와 반복의 유희를 더욱 풍부하고 혼종적인 양상으로 이끈다.

    에세이 영화를 “다큐멘터리와 예술영화, 아방가르드적 충동들이 만나는 지점” 16) 으로 정의했던 폴 아서 Paul Arthur의 언급을 참조하자면, 홍상수의 후기작들에서 점점 분명해지는 에세이적 요소들이 무엇을 의미하는가를 좀 더 분명히 말할 수 있다. 즉 홍상수의 전기 작품들 (<강원도의 힘>, <오, 수정!>)이 차이와 반복의 구조가 드러내는 기능 으로서 인물들의 행위와 충동을 배치했다면, 후기작들은 장르적으로는 예술영화라는 틀에 여전히 분류되면서도 에세이 영화가 갖고 있는 불균질성과 형식적 다층성, 경계들의 와해(공적 자아와 사적 자아, 허구와 현실, 꿈과 현실)를 여러 방식으로 도입한다. 이러한 실험의 이유는 에세이 영화의 특징들이 인물들의 내면 탐구를 심화시키고 그 내면의 모호성과 불안정성을 드러내는데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앞으로 본문에서 밝히듯 <누구의 딸도 아닌 해원>은 이러한 실험이 여성 자아의 내면 탐구를 위해 효과적으로 사용되어 홍상수식 ‘에세이적 예술영화’의 한 정점을 성취한 작품이다.

    1)<누구의 딸도 아닌 해원>에서 김의성 대사 중  2)Petrie Graham, Eric Rohmer: An Interview, Film Quarterly, Summer 1971, 제임스 모나코 지음, 『뉴 웨이브』1, 한나래, 1996, 227쪽.  3)“전 그 사람이 감독으로서 참 부러워요. (…) 그의 영화를 봤을 때 그가 영화를 어떻게 만들었을까 상상하게 돼요. 방식이 굉장히 마음에 들었어요. 소재와 작가 사이의 관계도 마음에 들고요. 그의 앵글과 이야기를 만드는 격조. 전 그런 이야기가 좋거든요.(…) 제가 부러워하는 사람이 별로 없는데, 에릭 로메르는 보고 있으면 부러워요. 참 잘사는구나 이런 생각이 들고요. 너무 예쁘지 않습니까. 두말할 필요 없이 너무 아름다운 영화를 만든 사람이예요.”; ≪씨네 21≫ 752호, 홍상수-정성일 대담, 2010.5.4., 48쪽; 또다른 인터뷰에서 홍상수는 로메르 감독의 영화를 무척 좋아한다면서“<녹색광선>은 로메르 자신도 왜 위대한 영화인지 모를 만큼 기적적으로 만들어진 영화”라고 평가한다.≪씨네 21≫146호 1998.4.14.  4)김인식, ‘상호텍스트적 영향: 영화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과 <녹색광선>의 경우’, 성균관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 ≪인문과학≫29호, 1999; 김호영, ‘에릭 로메르의 <녹색 광선>과 홍상수의 <생활의 발견> 비교 연구 –비가시적 이미지의 서사기능을 중심으로’, ≪프랑스문화예술연구≫제28집, 2009; 김경현, ‘질 들뢰즈의 『영화』와 시간-이미지’ ≪KINO≫, 2001년 11월호; 이선주, ‘두 명의 감독, 두 개의 작가주의’, ≪영화언어≫2004년 여름/가을호  5)장병원에 따르면 홍상수에 대한 연구는 ① 초기에 행해졌던 일상성 혹은 표면의 미학에 대한 탐구, ② ‘뒤늦게 도착한 모더니즘’의 징후로 읽는 견해, ③ 반反서사 혹은 비非서사의 관점에서 스토리텔링과 내레이션 방식 조명 등으로 분류된다.; 장병원, ‘홍상수 내러티브의 비조화 패턴연구’, 중앙대 첨단영상대학원 박사논문, 2012.  6)김호영, ‘에릭 로메르의 <녹색 광선>과 홍상수의 <생활의 발견> 비교 연구 –비가시적 이미지의 서사기능을 중심으로’, ≪프랑스문화예술연구≫제28집, 2009, 7쪽.  7)위의 논문, 2쪽.  8)신형철, [신형철의 스토리텔링] 안느, 이것은 당신을 위한 노래입니다, ≪씨네 21≫ 2012.7.6  9)정한석, 홍상수의 윤리, ≪씨네 21≫ 751호, 2010.5.4.,10쪽.  10)Marc Raymond, “Hong Sang-soo and the Film Essay,” New Review of Film and Television Sudies, Vol. 12, No. 1 (2014), pp. 22-36.  11)Timothy Corrigan, The Essay Film: From Montaigne to Marker, New York: Oxford University Press, 2011.  12)코리건은 위의 저서에서 에세이적 양식의 영화들을 다음의 다섯 가지로 범주화해서 고찰하고 있다. ①영화감독의 사적인 인터뷰로서의 에세이 필름 ②에세이적 여행으로서의 영화적 탐험 ③에세이적 일기 ④에디토리얼 Editorial로서의 에세이 필름 ⑤영화에 대해 질문하는 굴절 영화 ; pp.79-204  13)“영화가 무엇인가, 나는 왜 영화를 만드나, 나의 영화 만드는 원칙은 무엇인가, 이런 생각이 차례대로 세 가지 있다치면 전 앞의 두 개에 대해서는 생각을 안 하거든요. 제나름대로 저에게 맞는 방법론 같은 게 있는 것 같아요”; ‘홍상수-정성일 대담’, <씨네 21> 751호, 45쪽.  14)홍상수는 몽테뉴의 『수상록』을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책으로 꼽는데, “마음을 어떻게 움직이는지 생각하게 하고, 그러면서도 그 사람이 짚어낸 생각들이 참 좋고, 그 사람이 생각하는 방식을 자꾸 접하는 게 되게 좋다”고 말한다. - ‘시네 마테크 KOFA가 주목한 2011 한국영화’ GV 중에서 발췌  15)노엘 버치, 『영화의 실천』, 아카넷, 2003, 242쪽.  16)Paul Arthur, “Essay Questions: From Alain Resnais to Michael Moore,” Film Comment 39, no. 1 (2003), p. 62.

    2. 산책자로서의 여성주체: ‘죽어가는 자의 고독’을 넘어서

    <누구의 딸도 아닌 해원>(2012, 이하 <해원>)이 평단의 지지와 상찬을 받으며‘2013년 최고의 한국영화’로 평가 17) 받은 데는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해원이라는 젊은 여성 캐릭터가 보여주는 두려움과 소망, 삶에 대한 태도가 기존의 홍상수 영화에서 보여졌던 여성 주체들과 구별되는 새로운 모습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백은하는 <다른 나라 에서>(2011)를 “홍상수 최초의 페미니즘 영화”라고 평한 바 있지만, 이 영화에서 안느는 정유미의 시나리오 속 가상인물로 존재하는 것이 고, 어떤 의미에서 영화자체가 이자벨 위페르를 위해 헌정된 것이므로 이는 예외적 필모그래피로 볼 수 있다.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2004) 는 홍상수 영화중 여성비평가들의 가장 큰 비판을 받았던 작품이다. 김경욱은 이 영화의 개봉 직후 (당시 페미니즘 진영의 지속적 비판의 대상이었던 김기덕 못지않게) ‘홍상수도 나쁜 남자다’ 18) 라는 혹평을 했는데, 이전까지 비평담론에서 우호적인 평가를 받아왔던 홍상수의 영화를 페미니즘 관점에서 뿐 아니라 윤리적 차원에서 문제제기 한것이었다. 문영희는 홍상수 영화의 남성들이 21세기 산책자들인 것과 달리, 여성은 항상 타자이며 수컷들의 경쟁 대상으로 존재한다고 비판 하며, 홍상수의 영화가 새로운 출구를 찾기 위해서는 여성상에 대해 재고해야 할 것이고 이런 의미에서‘여자는 홍상수의 미래’라고 전망한 다. 19) 이후 홍상수 영화에서 여성캐릭터는 고현정이 출연했던 <해변의 여인>(2006)과 <잘 알지도 못하면서>(2008)를 거치면서 진화했고, 최근작으로 올수록 여성주체를 전면에 내세우는 경향이 짙어지고 있다. 홍상수의 최근 작업들이 단단한 짜임새 없이 ‘뭐가 될지 모르는 상태에서’ 20) 간단한 하나의 상황이나 틀에서 시작된다고 할 때, <해원> 은 ‘20대 여학생을 주인공으로 하는 인물 중심의 영화’라는 착상에서 출발한다.

    ‘일기’나 은밀한 ‘고백들’, 여행으로서의 ‘산책’이라는 에세이적인 요소가 두드러지는 <해원>은 여성 산책자 캐릭터의 아름다움이 빛을 발하는 영화다. 해원(정은채)은 영화감독이자 교수인 유부남 성준(이선균)과 비밀스러운 관계를 정리하지 못한 영화과 대학생이다. 캐나다로 이민을 가는 엄마(김자옥)와 작별한 후 그녀는 슬픈 마음을 주체할 수없어 성준을 다시 만난다. ‘시대를 잘못 타고났다’고 스스로 생각하고 지인들로부터 ‘특별하다(“귀족적”이라거나 “다른 애들과 다르게 덜 머리 굴리는”, 혹은“한국과 잘 맞지 않는”)’고 평가되는 그녀는 학교생 활에 의미를 느끼지 못하고 혼자 돌아다니는 것을 좋아한다. 해원은 특정한 목적 없이 서촌을 배회하거나 남한산성을 산책한다. 그녀는 늘누군가를 ‘기다리는’ 쪽이다. 약속시간 보다 빨리 나가 엄마를 기다리 고, 유부남인 성준을 언제나 기다리며, 꿈속에서조차 친한 언니(예지 원)를 기다린다. 이 점은 기다림의 주체가 남자였던 초기작(<강원도의 힘>, <오, 수정>,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 등)들과 대비된다. 누군가를 기다리는 무위의 시간 동안 조우하는 우연한 마주침들 속에서 그녀는 행위의 주체가 아니라 무기력한 ‘견자(見者)’가 된다. 해원이 보는 것은 물리적 현실만이 아니다. 그녀는 꿈과 현실, 과거와 현재를 넘나들며 정신적 모험의 여정을 지속한다.

    들뢰즈는 2차 대전 이후 행동-이미지의 위기와 이로 인해 나타나는 새로운 이미지들의 특성을 다섯 가지 21) 로 설명하는데, 그중 세 번째 항목이 ‘산책’, ‘방랑’이다. <강원도의 힘>(1998)에서부터 시작해 <생 활의 발견>, <극장전>, <하하하> 등 수많은 홍상수 영화의‘여행-산책’ 모티프들이 모던 시네마의 소요하는 남성 산책자를 주체로 등장시켰 다면, 여성 산책자 해원의 등장은 에세이적 형식의 선구적 작품이자 ‘견자의 영화 cinema de voyant’ 22) 로서 등장인물의 행위가 아닌 시각을 통해 여주인공의 정신적 고뇌와 비전을 보여주었던 로셀리니의 <이탈리아 여행>(1953)을 떠올리게 한다. 자크 리베트는 “<이탈리아 여행>이 출현함으로 인해 모든 영화들은 갑자기 10년이나 늙어 버렸다” 23) 고 평하며 이 영화를 ‘현대영화의 시작’을 알리는 작품으로 극찬한 바 있는데, 이는 네오리얼리즘 영화를 통해 정립한 들뢰즈의 ‘현대 영화’논의에도 중요한 영향을 준다.

    그러나 <해원>이 홍상수의 영화세계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 건 단순히 이러한 에세이적 양식에 기반한 모던 시네마적 성취나 남성을 대신한 여성 산책자의 등장에 있지 않다. 홍상수의 남성 산책자들이 남근적 논리 내에서 기다리고, 욕망하고, 나르시시즘적으로 존재해 왔다 면, <해원>에서의 여성 산책자는 이러한 상징계의 질서를 벗어나 ‘실재 the Real’에 가까워지려고 한다는 점이다. 영화제목‘누구의 딸도 아닌 해원’과 연관지어 생각할 때 해원은 “아버지로부터 독립해 나와 사는 게 소원”이고 어머니의 이민을 상징적 죽음으로 받아들이는, 즉 상징계의 법으로부터 자유로워지기를 갈망하는 ‘보편적 단독성 singularité universelle’의 여성적 주체 24) 인 것이다. 그녀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으며 죽음들 ‘속에’ 혹은 죽음들과 ‘함께’ 산다. 이 영화에 나타난 무수한 죽음에 대한 언급과 이미지들 -“사는 건 하루하루 조금씩 죽음을 향해가는 거야”, “외국 호텔에서 평생 살면서 죽었으면 좋겠다”, 해원이 도서관에서 읽다가 잠드는 책 엘리아스의 『죽어가는 자의 고독』, ‘그 가게’에서 살까말까 망설였던 “고전(古典)” 에밀 졸라의 『쟁 탈전』, 옛 조상들이 남긴 ‘남한산성’과 그곳의 수호신 같은 존재로 보이는 등산객(기주봉), (현세 사람들의) 풍요로운 농사를 위해 제사를 지냈던 ‘사직단(현재, 사직공원)’, 유관순 동상 등 - 은 모두 삶과 연속 선상에 있거나 현재의 살아있는 사람들을 ‘위로’하고 우리에게 삶의 ‘용기’를 주기 위해 현존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외롭고 슬프고 무서워 지더라도’자신의 감정에 솔직하려고 애쓰면서 ‘절대적인 진실을 향해 계속 부닥치는’ 애처로운 존재, 이러한 존재의 본원적 ‘심연’과 ‘비결 정성’에 대한 긍정(즉, 죽음과 더불어 체재하는 것)이야말로 <해원>이 빛나는 지점이다. 바로 여기에서 홍상수 영화의 가장 ‘귀엽고 예쁜’ 25)(여성) 캐릭터가 탄생한다.

    17)‘Best of 2013 올해의 영화, 올해의 영화인’, 한국영화부문 1위, ≪씨네 21≫ 935호, 2013.12.24., 58쪽.  18)“홍상수와 김기덕의 관심은 결국 동일한 것이다. 그러므로 여기에서 페미니즘의 딜레마가 생겨난다. 홍상수는 도덕적으로 자기를 방어하지만 윤리적 차원에서는 자아의 자포 자기가 있다. 그러나 김기덕은 도덕적으로 자포자기하지만 윤리적 차원에서는 자아를 종교적인 속죄에 던져버린다”; 김경욱, ‘홍상수도 나쁜 남자다: 페미니즘 비평의 딜레마를 응시하기’, ≪씨네 21≫ 451호, 2004.5.11  19)문영희, ‘산책자가 여자를 만났을 때: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 깊이읽기’, 계간 ≪영화 언어≫ 2004 여름/가을호, pp.90-105.  20)‘뭐가 될지 알면서 찍으려고 하면 안된다는 것’ 즉, 논리적으로 정하지 않고 ‘직관’에 따라 영화작업을 하는 것은 원칙을 거부하는 홍상수식 영화만들기의 유일한 원칙이다.  21)①분산적 상황, ②의도적으로 약한 관계들, ③방랑-형식, ④상투성들에 대한 의식화, ⑤ 음모의 고발 질 들뢰즈 지음, 『시네마 Ⅰ: 운동-이미지』, 유진상 옮김, 시각과 어어, 2002, 377쪽.  22)질 들뢰즈 지음, 『시네마Ⅱ: 시간-이미지』, 이정하 옮김, 시각과 언어, 2005, 13쪽.  23)자크 리베트, ‘로셀리니에 대한 편지’, ≪필름컬처≫ 3, 한나래, 1999, 72-91쪽.  24)알레카 주판치치, ‘구멍 뚫린 시트의 사례’, 슬라보예 지젝 외 지음, 『성관계는 없다: 성적 차이에 관한 라캉주의적 탐구』, 도서출판 b, 2005, pp. 211-235  25)‘귀엽다’와 ‘예쁘다’는 홍상수 영화 속 인물들과 감독 자신이 즐겨 쓰는 형용사로, 사람 들에게서 귀여운 면을 발견하는 것을 좋아하는 홍상수의 인간관을 반영한 단어다. 필자는 여기서 해원 캐릭터에 대한 최고의 찬사의 의미로 이 단어들을 함께 사용했다.

    3. 접힘과 펼쳐짐: 꿈과 일기, 보이스오버의 ‘결정체 이미지’

    홍상수 영화의 지지자인 여성감독 클레르 드니가 그의 영화를 “우주 공간에 역들이 있고 여자들은 그 안에 있다. 남자들은 우주조종사 처럼 산소통을 메고 떠다닌다. 그들은 역에 들어가기 위해 문을 두드린다”라고 논평 26) 했을 때, 그것은 ‘시간의 축’으로서의 여성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남다은은 <해원>에 대한 비평에서 이 영화의 새로움이 홍상수가 단지 20대 여자 이야기를 전면에 다루었기 때문이 아니라, “이 여인에게 시간의 ‘흐름’과 ‘반복’의 자리를 모두 주었다는 데 있다” 27) 고 지적한다. 일기와 꿈 그리고 보이스 오버 양식 등을 넘나들며 영화에 형식적 자유를 부여하는 <해원>의 구성방식은 꿈을 통한 초현실주의적 실험영화의 요소와 모던 시네마의 내레이션, 거기에다 홍상수 영화 특유의 현장성이 가미된 매우 독특한 영화로서 장르와 화자가 모호하고 경계가 불안정한 에세이 필름의 요소를 고스란히 드러낸다.

    문관규는 홍상수의 독창성을 초현실주의가 삼투한 꿈 시퀀스를 통한 서사적 변형과 미학적 성취로 보면서, 홍상수의 꿈 영화를 ‘소망충 족의 영화’와 현실장면으로 보여주기 어려운 왜곡되고 불가해한 세계를 보여주는 ‘미장아빔 구조의 영화 속 영화’로 분류한다. 28) <해원>에 서는 두 번의 꿈 장면이 모두 해원의 소망충족(즉, 첫 번째는 어머니 와의 관계에 대한 소망이 제인 버킨이 등장하는 꿈을 통해 나타난 것이고 두 번째는 성준과의 관계에 대한 소망)과 관련된 것이면서 셋째날 일기에서의 꿈은 ‘꿈 속의 꿈’ 형태를 띠면서 자아의 이중화를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이 영화의 꿈 시퀀스 활용의 풍요로운 지점을알 수 있다. 홍상수는 꿈 장면을 선호하는 이유에 대해서“상투적인 것들에 대해 다시 바라보기” 29) 라고 이야기하는데, 우리가 교조적으로 따르고 있는 전체 혹은 일관성에 대한 믿음, 이상, 진리라고 당연시 여기는 것들에 대한 ‘깨어나기’의 각성장치로서 오히려 꿈이 활용되고 있는 것이고, 겹쳐지고 접히는 꿈들은 불확실한 삶 속에서 존재의 심연으로 나아가는 반복적인 모험의 여정이다.

    해원의 둘째 날 일기에 등장했던 남한산성에서 마주친 등산객(기주 봉)은 이 영화에서 매우 독특한 신비로운 존재다. 그는 셋째 날 일기꿈 속 시퀀스에서 성준과 해원이 헤어져 홀로 있을 때 그들에게 각각 위로의 말을 건네거나, 술을 마시고 싶어하던 해원에게 술을 권해주며 “남한산성 산책하는 것 좋았습니까?”라고 묻는다. 그런 점에서 그는 마치 이 성을 쌓다가 죽어갔던 옛 조상의 현현이거나, 혹은 베리만의<제 7의 봉인>의 저승사자, 홍상수 영화 속 인물로 말하자면 <하하하>의 이순신 같은 존재로도 보인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해원이 “꿈에 본 아저씨는 전에 본 착한 아저씨인 것 같았다”라고 내레이션할 때 그 ‘아저씨’는 마틴 스콜세지와도 친분이 있고 대통령상을 받았 으며 마인드 컨트롤 능력이 있는 미국의 대학교수(김의성)가 아니라, ‘용기’와 ‘위로’의 사신이자 후세의 사람들을 위해 남한산성을 쌓았던 이름 모를 그 노동자를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홍상수 영화에 대한 가장 지속적인 글쓰기를 해온 비평가 중 한 사람인 허문영은 “홍상수가 피해온 것이 있다면 그것은 노동과 역사의 시간, 그리고 타인의 시간” 30) 이라고 지적한 바 있는데, 이는 반복성, 폐쇄성과 함께 홍상수 영화가 주로 비판받아왔던 지점이기도 하다. <해원>에서 남한산성 장면이 울림을 주는 건 ‘자신들이 하는 일이 무엇인지도 모르면서’그 높은 곳까지 돌을 쌓아올리며 주어진 일을 수행했던 과거 사람들의 노동의 결과가 미래의 어떤 사람들에게는 큰 위로가 된다는 점을 보여 주기 때문이다. 사직단과 남한산성으로 이어지는 <해원>의 ‘열린’ 영화적 공간은 과거(죽음)와 현재의 ‘평범한 사람들’이 조우하는 장소이자, 후세에 ‘무엇을 남기겠다(남기지 않겠다)’는 자의식도 없이 훌륭한 유산을 남긴 옛날 사람들에 대한 존중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 뭉클하다.

    홍상수 영화의 중기 이후(<생활의 발견>, <하하하>, <옥희의 영화>, <해원> 등)에 빈번히 등장하는 보이스오버 내레이션은 인물의 머릿속에서 벌어지는 생각과 감정을 이중으로 보여주는 장치이자 현재의 감정과 과거의 회상이 뒤섞이는 시간의 중첩작용을 한다는 점에서 중요 하다. <해원>의 특이한 지점은 보이스 오버 내레이션 31) 으로 해원이 쓰고 있는 일기의 날짜가 말해지고, 일기의 내용이 이어질 때 그 시제가 ‘어제’라는 점이다. 일기는 보통 그 날의 일을 기록하는 에세이 양식인데, 해원은 어제의 일기를 쓰고 있고 어제의 사건이 재현되는그 장소가 아닌 다른 공간에서 일기를 쓰고 있는 장면이 영화에서 제시된다. 홍상수는 보이스 오버의 장점으로 ‘일어나는 일과 주체가 되는 사람 사이의 보이스 오버가 운율을 만든다는 점, 한 신 안에 다른 앵글로 조직해 보여줄 수 있다는 점, 불필요한 씬 작업을 줄일 수 있다는 점과 즉흥성이 있다는 점, 살아있는 사람의 목소리도 영화의 중요한 요소라는 점’ 32) 등을 언급한다.

    <해원>의 셋째 날 일기에는 꿈과 보이스 오버, 일기, 자신의 전작 (<하하하>의 예지원, 유준상, <북촌방향>의 김의성)과의 네트워킹 양식들이 혼합되면서 꿈과 현실, 주관적인 것과 객관적인 것, 상상적인 것과 실재적인 것, 과거와 현재, 미래가 정교하게 뒤섞이게 된다. 이러한 식별불가능의 국면은 들뢰즈가 “지나가는 현재의 현실태적 이미 지와 보존되는 과거의 잠재태적 이미지를 끊임없이 교환” 33) 함으로써 비연대기적인 시간의 분출을 표현하는 것으로 간주했던 결정체-이미지 crystal-image의 국면이다. 결정체-이미지에서 어느 것이 현실태이고 어느 것이 잠재태인지는 식별 불가능하게 된다. 해원이 여러 단계의 꿈들을 꾸면서 겪게 되는 것, 그리고 관객이 현실과 거의 이음매 없이 제시되는 꿈들을 목격하면서 접어들게 되는 것이 바로 이 식별 불가능의 단계다. 이러한 식별 불가능성은 비연대기적인 시간의 본질이 다. 이러한 시간성은 주체를 구성하는 유일하고도 본원적인 것이지만 주체의 분열로서만 경험할 수 있다. 영화에서 일기와 잠을 반복하는 해원은 끊임없이 분열로서의 시간을 경험한다. 그러면서, 이러한 시간의 담지자인 해원은 ‘외롭고 슬프고 무섭지만’ 계속해서 부딪침을 경험하면서 자기를 서서히 발견해 나갈 것이다. 유일한 평면으로서의 시간 속에서 규정되고 존재해 온, 그리고 존재해 나갈 자신을. 이것이 그녀가 죽음의 기호들에 둘러싸이면서도 그것들을 긍정하면서 삶을 이어나가는 방식이다.

    26)클레르 드니, ‘홍상수는 우리를 덜 멍청하게 만든다: <생활의 발견>과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의 특정 국면들’, ≪씨네 21≫ 752호, 27쪽.  27)남다은, [신전영객잔] 또 한번, 이렇게 생이 깨어나다, 따옴표 속 강조는 필자, ≪씨네 21≫ 2013. 3.14  28)문관규, 홍상수 영화에 재현된 초현실주의 기법과 꿈 시퀀스분석, ≪영화연구≫51호, 한국영화학회, 2012  29)“굉장히 상투적이고 개인적인 것들이 있잖아요. 제 영화는 그걸 다시 바라보는 방식이 고요, 다시 바라보기 자체가 사람들을 직접적으로 쪼거나 긁는 것이라고 한다면 꿈은 같은 목적을 지녔는데도 훨씬 부드럽게 그 목적을 수행해내요. 그렇게 제 영화에서는 다시 바라보기와 꿈이 같은 목적을 수행하는 것 같아요. 꿈은 덩어리로 있다가 툭 깨어나서 편하게 느껴지는 것이고요.”;<씨네 21> 752호, ‘홍상수-정성일 대담’, 47쪽.  30)허문영, ‘홍상수2 무의미의 형식’, 『세속적 영화, 세속적 비평』, 강, 2010, 107쪽.  31)①“2012년 3월 21일, 어제 아침 11시에 5년 만에 엄마를 만났다. 너무 일찍 나가 한참을 기다리다 식당 방에서 잠이 들었다”, ②“2012년 3월 27일, 어제 그 사람이 보자고 해서 나갔다 … 신사역에서 만나 그 사람 차로 남한산성에 갔다”, ③ “2012년 4월 3일, 어제 오랜만에 학교에 갔다. 수업시간에 너무 늦게 도착해 그냥 도서관에 들어갔다” (* 강조는 필자)  32)홍상수-정성일 앞의 대담, 50쪽.  33)들뢰즈, 『시네마Ⅱ』, p. 165.

    4. 끝까지 부딪혀서 자신을 ‘발견’하기: 에세이적 양식과 구조적 양식 사이

    관객의 참여를 유도하는 퍼즐 내러티브라는 인지주의의 시각에서 홍상수의 영화를 지속적으로 연구해온 데이비드 보드웰은 최근작 <우리 선희(이하 ‘선희’)>(2013)가 보여주고 있는 테이블 장면들에서의‘투숏 two shot (두 명의 인물이 하나의 프레임에 롱 테이크로 포착된 쇼트)’의 활용에 주목한다. 34) 꿈과 일기, 보이스오버 등의 에세이적인 요소들을 다층적으로 드러내면서 시간의 겹들을 보여주었던 <해원>과는또 다른 지점에서 여성 캐릭터를 전면에 부각시킨 <선희>는 홍상수식 구조 영화의 미니멀리즘을 극단적으로 밀어붙인 것으로 보인다. 홍상 수의 초기 영화들이 내러티브 전체의 차원에서 구조를 형성하고 복수의 내러티브 혹은 다중 화자/시점 등을 활용하는 식이었다면 <선희> 는 이러한 인위적인 내레이션 장치들을 쓰지 않고 대신 투 숏이라는 미니멀한 최소 단위를 사용한다. 이 영화에서 투 숏들은 표면적으로는 선희가 처음에 던진 “끝까지 부딪쳐서 자신을 발견하라”라는 말이 다른 세 남자들의 입을 통해 다른 상황에서 반복되는 과정을 묘사하지 만, 심층적으로는 이러한 반복과 변주를 구축하는 시각적, 인지적 프레임으로 기능한다. 즉 <선희>는 고정 카메라와 롱 테이크, 두 인물의 평행적 배치라는 몇 가지 규칙들만을 이러한 최소 구조의 작동방식으로 설정해놓고, 이를 다른 인물들과 다른 배경들에 적용하는 방식을 취한 알고리즘적인 작품이다. 이러한 알고리즘적인 방식을 통해 <선 희>는 홍상수가 자신의 후기 작품들에서 취했던 인간의 내면성에 대한 탐구를 <해원>과는 반대 방향으로 진행시키고 있는 것으로 보인 다. <해원>이 일기와 내면 독백, 꿈과 현실의 식별불가능성, 꿈들의 중첩을 통해 인간의 주체성을 구성하는 불가해한 심연으로의 모험을 펼쳐낸다면, <선희>는 자의식의 규정을 벗어나 상투적인 언어들에 의해 지배되는 주체들 사이의 상호작용을 외적으로 드러내는 것이다. 즉, <해원>이 제시하는 주체의 모습이 내면의 복잡성이라면 <선희>가 보여주는 주체의 모습은 자신의 의식을 초월하여 작동하는(그래서 주체를 일종의 자동인형으로 만드는) 외부적 단순성이다. 그 어떤 것이든 홍상수의 답은 주체의 참모습이 코기토의 확실성에 근거한 근대적 자아를 벗어나는 범주들로 형성된다는 것이고, 이러한 답은 홍상수가 초기작에서부터 충동과 취기에 빠진 자아들을 통해 줄기차게 제시하고 변주해 온 바다. 그러기에 <해원>과 <선희>는 홍상수가 제시하는 주체성의 두 가지 계열들(갈라지는 동시에 수렴하는)을 심화시킨다.

    <씨네 21>이 선정한 2013년 베스트 국내영화에서 각각 1위와 3위 35)를 기록한 <해원>과 <선희>는 여성캐릭터의 성장이라는 측면에서 대구를 이루며 홍상수 영화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보여주고 있지만, 홍상수 영화의 형식이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 것인가를 예견할 수 있는 두개의 원형으로도 볼 수 있을 것이다. 즉 한편에는 사적 자아와 공적 자아가 서로를 질의하는 에세이적인 요소들을 이질적으로 배치한 예술영화의 모델(<해원>)이 있고, 다른 한편에는 실험영화적인 미니멀리 즘이 지배하는 예술영화의 모델(<선희>)이 있다. 이 두 가지 모두는 예술영화적인 전통의 인물과 상황, 내레이션을 취하면서도 이러한 전통의 단순한 계승을 넘어서는 홍상수식 예술영화 양식의 진화를 보여 준다. 이 두 모델들을 넘나드는 내적 탐구의 여정 속에서 홍상수의 우주는 더욱 풍요로워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34)David Bordwell, “Where Did the Two-shot Go? Here”, Observations on Film Art (David Bordwell’s blog), October 7 2013, http://www.davidbordwell.net/blog/2013/10/07/where-didthe-two-shot-go-here/ (2014년 2월 15일 접근)  35)‘Best of 2013 올해의 영화, 올해의 영화인’, ≪씨네 21≫ 935호, 2013.12.24., 58-5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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