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Reconsideration of Feminist Gender Theory and Politics, Focusing on the Controversies Surrounding Female/Trans Masculinities

페미니스트 젠더 이론과 정치학에 대한 재고: 여자/트랜스(female/trans) 남성성 논쟁을 중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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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ABSTRACT

    This article critically overviews the polemics between feminism and female/trans masculinities, examining the intersections of gender, race, class, sexuality, and generation inherent in the rifts. In doing so, this article illuminates various contradictions and dilemmas of feminist sex/gender theory recurring in butch/transphobia. Under the imperative of androgyny as a feminist ideal, butchness was regarded as a denial of one’s true lesbian self and “woman” identity and as unnatural role-playing. However, this accusation stemmed primarily from issues of class and generation; mainstream lesbian feminists were largely white and middle-class, and many of them viewed butchness as a working-class endeavor, and a practice of the previous generation. When radical feminism reclaimed female values and celebrated women’s culture, femaleness and femininity tended to be equated with feminist subjectivity. However, this article argues that all radical feminisms should not be reduced to gender essentialism. Many feminists understood a male/female role as a social construct, and the concept of “the woman-identified woman” also originally implied a feminist political position (women’s solidarity), not solely the display of a feminine gender. Nonetheless, in the condemnation of “male-identification,” the assumption that female/trans masculinities are antithetical to feminism was maintained. Transphobic feminists criticize that transmen seek male privilege and internalize their own misogyny. Thus, they have worked long and hard to purge the existence of butch/trans feminists from feminist history. Transphobic feminists obscure their own cisgender (non-transgender) privileges and ignore transmen’s oppressions and disadvantages as a gender minority. This article offers that the challenges of female/trans masculinities need to be significantly reconsidered within feminism in order to reconfigure gender theory and move beyond gender essentialism predicated on the binary gender.


  • KEYWORD

    female/trans masculinities , butch , radical feminism , femaleness , transphobia , feminist gender theory

  • 1. 들어가며

    주디스 할버스탐(Judith Halberstam)은 남성의 생물학성(maleness)과 남성성 사이의 자연화된(naturalized) 연계를 균열시키고 여성 육체에 체현되는 다양한 남성성을 분석하기 위해 “여자 남성성”(female masculinity)이라는 용어를 고안했다. 할버스탐에 따르면, 여성성은 인위적인 것으로 사고되는 반면 남성성은 생물학적 남성만이 발현할 수 있는 “진짜(real)의, 자연스러운” 속성으로 가정된다(Female Masculinity 234). 그러나 여자 남성성은 여성 육체와 남성성 사이의 탈구를 통해 남성성의 구성적인 성격을 효과적으로 노출시킴으로써 남성성에 대한 본질주의적인 관념을 해체한다. 여자 남성성에 대한 이론화는 여성들의 다양한 젠더 변이(variance)와 남성적 젠더 표현에 대한 분석을 본격화시켰다. 그러나 다수의 페미니스트들은 1970년대 급진주의 페미니즘의 지속적인 유산으로서 남성성과 남성문화에 대한 비판을 내세우며 여자/트랜스(trans) 남성성을1) 우려하고 배격해왔다. 따라서 페미니즘과 여자/트랜스 남성성의 관계는 생산적인 대화로 이어지지 못하고 시스젠더(cisgender)2) 페미니스트의 혐오 발화나 무관심으로 대립되어 왔다. 또한, 여자/트랜스 남성성에 대한 페미니스트 논의가 진척되어 왔음에도 불구하고, 이원 젠더에 기반한 전통적인 프레임은 여전히 페미니즘의 규범적인 패러다임으로 남아 있다.

    여자/트랜스 남성성 토론은 단순히 ‘제 3의 젠더’로서 여성 젠더퀴어(genderqueer)나 트랜스남성을 페미니스트 입장에서 어떻게 해석하고 수용할 것인가의 문제로 한정되어서는 안된다. 이러한 시각은 페미니즘과 퀴어/트랜스 정치학을 별개의 역사와 담론으로 분리하면서 외부인 ‘타자’(부치3)나 트랜스남성)를 관용하거나 비난하는 구도로 귀결된다. 그러나 여자/트랜스 남성성 이슈는 페미니스트 젠더 사회구성론의 한계와 딜레마를 숙고함으로써 페미니스트 섹스/젠더 이론을 전면적으로 재검토할 수 있는 핵심 의제이다. 여자/트랜스 남성성은 “섹스(생물학적 성)의 진정성과 젠더 정체성에 관한 중요한 질문을 제기”하면서(Hines 60), “제 2 물결 페미니즘의 한계”를 넘어설 수 있는 가능성을 제공한다(Hines 76).4) 한편, 여자/트랜스 남성성은 페미니즘과 레즈비언/퀴어 이론, 트랜스젠더리즘의 영역 분쟁이 응축되는 구심점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여자/트랜스 남성성 논쟁은 페미니즘과 다른 젠더 담론들 사이의 상호교차성이나 페미니즘의 내부적 차이가 어떻게 축약되고 삭제되어왔는지를 규명할 수 있는 역사 텍스트이기도 하다.

    본 연구는 1970년대 미국의 급진주의 페미니즘부터 최근에 이르기까지 여자/트랜스 남성성과 페미니즘 사이의 긴장과 갈등의 역사를 비평적으로 개괄함으로써, 페미니스트 섹스/젠더 이론의 교착 지점들을 문제화한다. 페미니즘과 여자/트랜스남성의 주요 논쟁들―남성 동일시(male-identification), 여성혐오, 남성 특권, 반(anti) 페미니즘 혐의 등―을 재고찰하는 것은 제휴와 중첩의 역사에 대한 재발굴을 수반한다. 페트리샤 엘리엇(Patricia Elliot)은 페미니즘, 퀴어 이론, 트랜스젠더리즘 사이에 이견과 분열(rift)을 해결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복합성, 이질성, 정치적 다양성”을 심층적으로 이해하기 위해 “분열 그 자체를 탐구”하는 것이라고 말한다(4). 엘리엇의 제안처럼, 필자는 분열에 내재하는 젠더, 인종, 계급, 세대의 상호교차에 주목하면서 갈등이 발생하는 지점들을 면밀하게 분석하고자 한다. 먼저 1970년대 레즈비언-페미니즘의 부치혐오를 살펴보고, 양성성(androgyny) 추구의 계급적, 인종적 기반을 조사한다. 이어서 급진주의 페미니즘의 다양성을 고려하면서, 남성성과 남성 동일시 비판에 연루되는 젠더 본질주의의 한계와 모순을 논증한다. 마지막으로, 트랜스남성에 대한 남성 특권 논쟁을 중심으로 트랜스혐오 페미니스트들의 문제적 가정들을 비판할 것이다. 궁극적으로, 부치/ftm트랜스 페미니즘의 실존과 의미를 가시화함으로써 페미니즘과 여자/트랜스 남성성의 관계에 대한 지배담론을 교정하고 페미니스트 젠더 정치학의 새로운 방향성을 모색하고자 한다.

    1)이 글에서 트랜스남성은 female to male(ftm) 성전환남성을 의미한다. 트랜스남성은 수술 혹은 몸의 변형 여부, 호르몬 투여에 상관없이 ‘남성’으로 정체화하는 트랜스젠더와 트랜스섹슈얼(transsexual)을 포괄한다.  2)시스젠더는 비성전환자(non-trans)를 지칭하는 용어이다.  3)부치(butch)는 남성적인 레즈비언을 뜻한다.  4)여기에서 제 2 물결 페미니즘은 여성의 동일성에 근간한 정치학, 한 개의 섹스(female)에 한 개의 젠더(woman)를 대응시키는 젠더 이론을 의미한다. 페미니즘 역사에 대한 일반적인 서술에서 제 2 물결 페미니즘은 백인 중산층이 주도한 급진주의 페미니즘으로 대표되어 왔다. 그러나 일군의 페미니스트들은 유색인 페미니즘이 60년대 말부터 조직, 전개되어 왔다는 역사적 사실을 환기시키며, 제 2 물결이 급진주의 페미니즘으로 재현되는 양상을 비판한다(Roth 8; Thomson 338).

    2. 페미니즘과 부치혐오(butchphobia)

    페미니즘과 여자 남성성 사이의 갈등은 부치성(butchness)을 어떻게 이해하고 해석할 것인가로 촉발되었다. 그러나 1970년대 당시에는 부치를 부치-펨5) ‘역할수행’(role-playing)이라는 섹슈얼리티 영역으로 파악했기 때문에 젠더 표현으로서의 부치성은 전면적으로 다루어 지지 못했다. 70년대 많은 레즈비언-페미니스트들은 부치-펨이 이성애를 모방하는 성적 분화(differentiation)라고 비난했다(Abbott and Love 94; Johnston 155). 따라서 부치-펨은 레즈비언-페미니즘이 추구하는 성적 평등주의(sexual egalitarianism)에 위배되는 퇴행적 실천으로 여겨졌다. 성적인 선호와 정체성의 차이를 실제적 불평등과 등치시키면서, 부치-펨을 (이성애자)남성과 여성의 권력관계와 동일시한 것이다. 그러나 “정치적 올바름”(political correctness)에 대한 강력한 캠페인은 이 담론의 주체가 누구였는가? 그 화자의 인종적, 계급적 기반이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을 덮어버렸다. 스타일상으로 모든 여성을 비슷하거나 똑같이 보이게 하는 양성성(androgyny)의 지향 또한 여성 간의 계급과 인종의 차이를 지우는 결과를 초래했다(Loulan 71, 73). 따라서 페미니즘과 부치성의 대립은 레즈비언-페미니즘의 계급적, 인종적 기반과 역사적 재현의 문제로 재조명되어야 한다. 백인 중산계급 레즈비언들이 70년대에 부치 비판을 단행본으로 출간했던 것과 대조적으로, 부치성을 옹호했던 노동계급 레즈비언-페미니스트들은 당대에 출판된 저서를 남기지 않았다(Smith 399). 이러한 사실은 누구의 목소리가 페미니즘의 역사로 공인되었는가에 대한 의문을 불러일으킨다. 페미니스트였던 부치-펨 유색인 레즈비언이나 노동계급 레즈비언의 목소리가 페미니즘의 역사에서 사라지고 누락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일부 백인 중산계급 여성의 정치적 입장이 페미니즘과 레즈비어니즘의 대표성을 갖게 되면서, 페미니즘의 부치 남성성 비판이 더욱 공고해졌다.

    구체적으로, 주요 백인 레즈비언 페미니스트들의 부치 비판 양상은 다음과 같다. 델 마틴(Del Martin)과 필리스 리온(Phyllis Lyon)은 부치-펨 관계가 “진실하고 동등한” 관계가 아니라 작위적인 연기라고 지적하면서 부치들이 ‘여성’으로서 진정한 정체성으로 거듭나야 한다고 강조한다(65). 이어 부치-펨 문화는 이성애 관계의 남성 우월주의(male chauvinism)가 레즈비언 섹슈얼리티로 전이된 것이라고 단언한다(69). 질 존스톤(Jill Johnston)도 페미니스트가 되지 못한 채, 남성 동일시에 머물러 있는 레즈비언은 “레즈비언 지배주의자(chauvinist)”가 된다고 경고한다(154). 그리고 부치-펨을 근절하기 위해 중성적인(androgynous) 본성을 되찾아야 한다고 주장한다(155). 레즈비언 페미니스트들은 부치성을 진정한 ‘여성’정체성을 부정하는 부자연스러운 행위이자, 양성성을 초과하는 과잉 남성성으로 간주했다. ‘여성’ 정체성과 양성성을 원형적인 본성이나 혹은 페미니스트 이상(ideal)으로 설정함에 따라, 부치성과 페미니즘은 양립 불가능한 것이 된다. 시드니 애보트(Sidney Abbot)와 바바라 러브(Barbara Love)도 부치들이 동성애에 대한 죄책감을 상쇄하기 위해 여성임을 부인하고 남성이나 남성적인 젠더로 동일시하는 것이라고 해석한다(97). 따라서 부치성은 “진정한 레즈비언 자아”를 위장하는 부자연스러운 가면으로 개념화된다(95). 레즈비언-페미니즘은 진정한 레즈비언 자아 혹은 진실한 ‘여성’ 정체성의 모델을 규범적인 젠더 구조 안에서 확립함으로써 부치의 젠더 위반을 가식적인 남성 동일시로 규정했다. 젠더 감찰(policing)을 통해 여성 젠더의 다중성과 차이의 문제를 섹슈얼리티의 문제로 함몰시켰다는 점에서 젠더와 섹슈얼리티 정치학은 긴밀하게 연동한다.

    부치에 대한 레즈비언-페미니즘의 반감은 페미니즘의 정치적 이념 차원에 그치지 않고, 계급주의 이데올로기로 표출되었다. 애보트와 러브는 노동계급이 역할 분화가 심하고 그런 가정에서 유년기를 보낸 노동계급 여성들이 게이 바에서 역할 분화 성향을 심화시킨다고 추론했다(94). 그들은 부치-펨이 바(bar)에 자주 드나드는 사람이나 노동계급(Martin and Lyon 68), 구세대 일수록 더 현저하게 나타난다고 기술한다(Abott and Love 98). 이러한 관점은 노동계급의 미몽이나 교양 부재와 구세대의 시대착오성을 부치-펨과 연관시킴으로써, 부치-펨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가중시켰다. 부치-펨을 조악한 노동계급 문화로 격하시키면서(Faderman 175), 부치-펨을 노동계급 레즈비언의 “후진성(backwardness), 보수주의, 혼란(confusion)”의 증거로(Walker 875) 제시했던 것이다.6) 60년대 대학 교육을 받고 페미니즘과 시민권 운동의 영향을 받은 레즈비언들은 노동계급 출신 구세대 레즈비언들의 부치-펨 “이성젠더성”(heterogenderality)을 수용할 수 없었다(Faderman 186). 따라서 부치-펨에 대한 반대는 성적 쾌락에 무관심했던 급진주의 페미니즘의 중산계급 백인중심성의 영향과 무관하지 않다(Crawley 183).7)

    부치-펨 문화의 시대적 환경과 역사적 맥락을 탐문한다면, 부치-펨을 노동계급의 바 문화로 일축할 수 없는 여러 가지 사회적 의미들을 발견할 수 있다. 1940~50년대 미국의 부치 하위문화 연구에 따르면, 그 당시 부치성은 레즈비언 정체성을 공공연하게 표현하는 저항적 실천이었다(Kennedy and Davis 64; Morgan, “Butch-Femme” 39).8) 위의 레즈비언 페미니스트 저자들의 논점과 달리, 부치들은 ‘진정한’ 레즈비언 자아를 가장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것을 인정하고 선언하기 위해서 부치성을 체화했다. 남성적인 매너를 취하는 것은 동성애혐오가 매우 심각했던 당대에 자신과 펨을 보호하기 위해 필요했고, 거리에서도 남자처럼 보이는 것이 오히려 안전했다(Kennedy and Davis 70, 71). 또한, 레즈비언들을 쉽게 만날 수 없는 상황에서 게이 바는 노동계급 레즈비언들이 서로 친교할 수 있는 유일한 장소였기 때문에 소속감을 느끼기 위해서는 그 공동체의 관습을 따라야 했다. 노동계급 레즈비언 하위문화에서 부치-펨은 일종의 성원권(membership)을 인정해주는 “의례적 실천”이자, 소수자 집단에서 작동하는 “전통과 규칙”이었던 것이다(Faderman 168, 169). 이와 달리, 경제적으로 여유로운 중상계급 여성들은 집에서 사교 모임이나 파티를 열어 다른 여성들을 만날 수 있었기 때문에 굳이 자신의 존재를 공적으로 노출하면서 바에 출입할 필요가 없었다(Faderman 182; Smith 400). 또한 부치들이 위반적인 젠더를 교정하지 않고 일할 수 있는 직종이 남성적인 육체노동이었기 때문에, 부치 대다수가 노동계급인 것은 당연한 결과이기도 했다(Morgan, “Butch- Femme” 44; Faderman 184). 반면, 에스터 뉴튼(Esther Newton)에 따르면, 중산계급 여성들은 자신의 가족으로부터 레즈비언 낙인을 받지 않기 위해 부치-펨적인 젠더 현시(gender display)를 의도적으로 회피했다(Crawley 183). 이렇듯, 부치-펨 문화의 계급적 분화는 물질적 조건의 차이에서 파생된 것이었다. 그러나 백인 중산계급 레즈비언-페미니스트들은 부치-펨 비판을 다루면서 자신들의 계급적 특권과 물질적 기반의 차이를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 나아가, 부치가 가지는 젠더 위반의 잠재성을 경시하고, 부치-펨 문화의 사회적 맥락도 주의 깊게 천착하지 않았다.

    한편, 부치 남성성에 대한 거부감이 레즈비언 가시성(visibility)에 대한 불편함에서 비롯되었다는 점에서 섹슈얼리티와 젠더의 상관성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1955년에 창설된 전미 레즈비언 조직 DOB (Daughters of Bilitis)는 부치들에게 사회적 수용과 적응을 위해 여성적인 옷차림을 할 것을 종용했다(Smith 402). 일탈적 성애에 대한 낙인을 제거하는 전략으로서 규범적인 젠더 실천을 권장했던 것이다. 부치 남성성이나 부치-펨 커플은 과잉 섹슈얼리티를 드러내기 때문에 DOB의 노선과 배치될 수밖에 없었다(Smith 407). 즉, 부치 남성성을 독립적인 젠더 정체성으로 사고하기 보다는 레즈비언 정체성과 욕망의 명백한 표지(signal)로 이해했던 것이다. 그러나 60년대 말부터 페미니즘 운동이 확산되면서, 부치 남성성에 대한 비판 양상이 DOB와 다른 방향으로 전개된다. DOB 출신 레즈비언들이 부치-펨이 표상하는 노골적인 성적 이미지를 염려했던 것과 달리, 레즈비언-페미니스트들은 부치성이 “평등, 동일성(sameness), 양성성의 철학”(Loulan 69)에 어긋나기 때문에 거부하게 된다. 즉, DOB가 동성애의 사회적 수용이라는 측면에서 부치-펨의 위험성을 지적했다면, 70년대 레즈비언-페미니즘은 비판적 젠더 분석의 차원에서 정치적 결함(incorrectness) 혹은 반(anti)-페미니즘으로서 부치성을 정의한다. 급진적 페미니즘의 극단적 평등주의는 여성 사이의 차이를 불평등으로 환원함으로써, 여성들의 성적/젠더 차이를 삭제하는 기제가 되었다. 그러나 차이가 곧 불평등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이성애 커플이든, 부치-펨이든 관계가 실제적으로 얼마만큼, 어떻게 불평등한가를 평가해야한다(Laporte 212).

    급진적 페미니즘의 평등주의는 스타일과 젠더 표현에서 양성성을 이상적 모델로 채택했다. 중성적인 스타일은 “비 성별화된(non-gendered), 비-가부장적인, ‘자연스런’ 스타일”(Case 44)로 명명되었다. 젠더 이분법과 젠더 규범에 도전하기 위해, 지나친 여성성이나 남성성에 편중되지 않는 중도로서의 양성성을 추구했던 것이다. 그러나 과연 양성성은 사회적인 젠더 문법으로부터 자유롭게 비-성별화되어 있는가? 무엇을 기준으로, 누구의 시선에 의해 자연스럽다고 판단할 수 있는가? 양성성은 누구의 경험을 기준으로 적절한 젠더 중용인가? 양성성 모델은 “젠더 역할과 상업화된 겉치레”, “여성의 성적 대상화에 대한 거부”로써 “반(anti)-패션, 반(anti)-스타일”(Stein, “All Dressed Up” 432)을 표방했다. 그러나 중성적인 스타일이 가장 자연스럽다는 가정은 양성성에 부합하지 않는 젠더 표현들을 부자연스러운 것, 비정상적인 것으로 치부하는 독단을 저지른다. 긍정적인 취지에서 추구된 양성성의 가치는 여성의 다양성과 차이를 부인하는 교조주의로 변질될 수 있는 위험을 내포하고 있었다. 조앤 룰란(Joan Loulan)은 모든 차이들을 평준화해서 단일한 주체/정체성을 강요하고 “실제 권력의 불균형을 무시”한다면, 양성성의 정치적 의미는 퇴색된다고 충고한다(78).

    페미니즘과 부치성의 갈등은 레즈비언-페미니즘 역사에서 부치 페미니스트들의 존재와 목소리를 탈각시키는 담론적 효과를 발생시켰다. 부치성을 반(anti) 페미니즘으로 사고함으로써 레즈비언-페미니즘과 부치성을 단절시키는 지배적 언설을 형성해 왔던 것이다. 그러나 부치성을 거부하는 페미니스트 대(vs.) 페미니스트가 아닌 바(bar) 부치라는 이원법은 백인 중산계급 레즈비언-페미니스트들이 만들어 낸 허구이다. 부치 페미니스트 진 코르도바(Jeanne Cordova)는 페미니즘이 “젠더로부터의 자유”를 부르짖으며 가부장적인 “진정한 여성”의 범주를 깨뜨렸지만, 부치 여성을 제외시킴으로써 스스로의 정치적 지향을 배반했다고 논평한다(Cordova 290). 페미니스트들은 부치 본연의 모습을 허용하지 않고, 그들이 원하는 모델이 되도록 부치 페미니스트들에게 젠더 순응을 강요했다(Bender and Due 107). 레즈비어니즘이 페미니즘과 결합하면서 레즈비언 섹슈얼리티를 정치화할 수 있는 길을 열었지만, 그것은 부치 페미니스트들에게 또 다른 젠더 벽장(closet)이 되었다. 조안 네슬(Joan Nestle)은 게이 인권운동이 형성되기 이전의 레즈비언들도 성적, 경제적 자율성과 독립을 성취했다는 점에서 이미 페미니스트였고, 단지 그들의 페미니즘이 이론으로 정식화되지 않고 일상적인 삶으로 구현된 것이었을 뿐이라고 평가한다(105). 그렇다면, 부치의 젠더 위반은 페미니스트 실천이 아닌가? 양성성은 젠더 규범에 대한 도전이지만 부치성은 남성 지배와의 공모인가? 이러한 가정은 남성성은 생물학적 남성에게만 귀속된 것이기 때문에 여자 남성성이 부자연스럽고 비정상적이며 남성 모방적인 것이라는 생물학적 본질주의를 재확인한다.

    5)펨(femme)은 여성적인 레즈비언을 뜻한다.  6)샐리 문트(Sally Munt)는 중산계급이 주도했던 레즈비언-페미니즘이 양성성을 이상화하면서 추구했던 스타일은 사실 상, 노동계급 부치의 일상복―면바지, 체크무늬 셔츠, 작업복(donkey jacket), 작업용 부츠(work boots)―이었다는 점을 상기시킨다(71). 그에 따르면, 중산계급 레즈비언들은 노동계급의 남성적인 스타일만을 차용하면서 부치의 남성 동일시는 금기시하는 이중성을 드러냈다(ibid). 즉, 노동계급의 의복을 새로운 페미니스트 스타일로 전유했을 뿐, 노동계급 문화에 대한 편견과 비하는 그대로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7)엘리자베스 스미스(Elizabeth Smith)는 백인 중산계급이 주도했던 1950년대 레즈비언 운동단체 DOB와 70년대 레즈비언-페미니즘의 연속성에 주목하면서 백인 중산층의 반성적인(anti-sex) 문화가 레즈비언-페미니즘으로 연장되었다고 설명한다(409).  8)1950년대 게이 바를 습격했던 경찰들은 부치 레즈비언들을 검문해서 2~3개 이상의 남성 품목을 입고 있다면 체포했다고 한다(Kennedy and Davis 69). 체포의 위험에도 불구하고, 부치들이 남성적인 옷차림과 태도를 유지했다는 것은 자신의 안위보다 자신의 정체성과 욕망을 긍정하는 것에 우선했음을 말해준다. 부치들은 비순응적인(nonconforming) 젠더 실천을 통해서, 여성의 몸에 부과되는 “나약함, 수동성, 무력함(powerlessness)”의 이미지를 거부하고자 했다(Faderman 172).

    3. 급진주의 페미니즘과 남성성 비판에 대한 재고

    페미니즘과 여자 남성성 사이의 긴장과 불화는 70년대 급진주의 페미니즘을 단일한 정치 운동으로 전체화(totalize)하는 역사 기술에 의해 더욱 증폭되어 왔다. 레즈비언-페미니즘, 분리주의, 문화적 페미니즘을 포괄하는 광범위한 범주로서 급진주의 페미니즘은 여성의 생물학성(femaleness), 여성성, 여성 문화에 대한 긍정적 가치 평가로 압축된다. 이러한 동향 속에서 남성 생물학(maleness)이 남성성과 등치되면서 남성성은 남성 지배나 성차별주의의 상징으로 공격되었고, 여자 남성성은 내면화된 여성혐오나 가부장제와의 공모로 금기시되었다. 그러나 급진주의 페미니즘에 대한 지배적인 관념과 도식화를 그대로 수용하는 것은 페미니즘과 남성성과의 갈등을 공식적이고 유일한 역사로 재생산하는 위험이 있다. 따라서 당대의 시대적 맥락과 정치적 전략을 고려하면서 원전을 면밀하게 독해하고, 내부적인 다양성에 천착하면서 급진주의 페미니즘의 한계와 모순을 지적하는 것이 필요하다.

    70년대 급진주의 페미니즘은 여성의 정치적 이해의 공통 기반을 확립하기 위해 동질적 집단으로서 여성 ‘계급’을 상정했다.9) 남성과 여성의 차이를 부각하고 여성의 동일성을 강조하는 것은 남성중심 이데올로기를 문제화하고 페미니스트 주체성을 동기화하기 위한 전략이었다. 특히, 남성성과 남성적인 가치만을 긍정적으로 인식하는 사회풍토에 대한 대응으로 여성의 경험과 문화를 중시하고 “무의식과 직관, 자연친화성, 생명을 긍정하는(life-affirming) 에너지”와 여성성을 연관시키게 된다(Kimbell 4). 그러나 여성의 공통 기반을 어디에서, 무엇으로 찾을 것인가에서 문제가 야기된다. 즉, 정치적 계급으로서의 공통성(성차별주의의 억압과 피해)에 대한 설명이 자칫 여성 생물학(femaleness)으로 환원되면, 젠더 본질주의로 수렴될 수 있기 때문이다. 가부장적 산물로서 젠더를 비판하기 위해, 젠더 본질주의에 기대게 되는 딜레마에 직면하는 것이다. 페미니즘은 여성들의 정치적 결속과 응집을 위해 여성 육체에 대한 공통적인 경험을 가정함으로써, ‘여성’으로서의 젠더 정체성이나 여성성을 체현하지 않은 레즈비언을 배제하거나 가치 절하하는 부작용을 노출했다(Rubin, Self-Made Man 75). 여성의 동일성에 기초한 페미니스트 정체성 정치학(identity politics)은 여성의 ‘젠더’ 동일성을 여성 육체의 공통성에 기반함으로써 여성의 젠더 다중성이나 차이를 간과했던 것이다. ‘여성’의 사회적 지위에서 파생하는 억압의 공통 경험이 “생물학적/해부학적 동일성”으로 와전되면서 생물학과 젠더의 연관이 고착되었다(Nataf 37). 그러나 여성들이 여성의 생물학성(femaleness)을 동일하게 경험하고 의미화할 것이라는 선험적 가정은 ‘해부학(anatomy)이 운명’이라는 본질주의적 이원 젠더 체계를 재강화한다.

    반면에, 모든 급진주의 페미니스트들이 여성적 가치를 숭배하고 젠더 본질주의에 경도되어 있었다고 평가하는 것은 교정되어야 한다. 티 그레이스 아트킨슨(Ti-Grace Atkinson)에 따르면, 페미니즘이 근절해야 하는 것은 “우연히 음경, 질, 혹은 두 개 모두 있거나 두 개 모두 없게 된 개인이 아니라 ‘남자’와 ‘여자’라는 성 역할(sex role)”이다(55). 아트킨슨은 성기와 남자/여자의 성 범주와 역할의 관련성을 절연시키며, 간성자(intersex)나 확실한 성별을 규정할 수 없는 젠더 주체의 가능성까지 포함시킨다. 또한 그는 남성들이 본성적으로 억압적이고 폭력적인 것이 아니라, 그럴 수 있는 기회를 부여 받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Douglas 59). 아트킨슨은 자신이 적으로 삼는 것은 남성 생물학이 아니라 “남자의 행동”(male behavior)이라고 분명하게 밝힌다(Atkinson xxii). 이러한 관점은 남성성을 남성 지배와 상응하는 것으로 보고, 남성 생물학 자체를 문제 삼았던 대표적 급진주의 페미니스트들의 입장과 대조된다. 페미니즘의 계보와 역사 서술에서 급진주의 페미니즘은 문화적 페미니즘과 혼동되면서 여성성과 여성 생물학의 우월성을 내세우는 담론으로 곡해되어 왔다. 문화적 페미니즘에 대한 비판은 분리주의와 본질주의에 대한 혐의와 함께 레즈비언-페미니즘에 대한 공격으로 치환되곤 한다(Taylor and Rupp 33). 그러나 많은 급진주의 페미니스트들이 비판했던 것은 남성 생물학이나 생물학적 남성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강요되는 ‘남자’/‘여자’의 성 역할이었다.

    그러나 부치/트랜스혐오 페미니스트들의 저작에서는 ‘남자임’(maleness)을 근원적인 병폐로 여기는 젠더 본질주의가 지배적으로 나타난다. 레즈비언-페미니스트 존스톤에 의하면, “모든 불평등의 체계들과 문화적 통치는 남자(male)의 생물학적 명령”에서 파생한다(187). 앞 절에서 논의했듯이, 존스톤이 부치성을 강력하게 비판했던 저자였다는 것을 떠올린다면 젠더 본질주의와 (여자)남성성 혐오 사이에 긴밀한 상관성을 간파할 수 있다. 로빈 모건(Robin Morgan)은 이성애자/게이 남성은 물론 mtf(male to female)트랜스여성까지 ‘남성’ 육체를 가진(가졌던) 모든 이들을 적대 세력으로 배척하며, 레즈비언 운동이 게이 운동과 단절하고 이성애자 여성과 연대해야 한다고 설득한다.10) 모건은 게이들도 남성우월주의자이자 여성혐오주의자이기 때문에 레즈비언/여성 운동에 게이들의 영향이 유입되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고 권고했다(“Lesbianism”).11) 나아가, 부치의 남성적인 행동과 스타일은 가부장제로부터 강요된 여성성을 회피하기 위해 “가부장의 스타일”을 차용하는 것이라고 비웃는다(ibid). 모건의 부치성 비판과 트랜스혐오는 ‘여성’ 집단을 과잉 이상화화면서 생물학적 차이를 토대로 여성과 남성의 특성을 근본적으로 구분하는 이원론에서 발동한다.

    이와 달리, 동시대 급진주의 페미니스트였던 바바라 버리스(Barbara Burris)의 성 역할(sex role)에 대한 통찰은 대표적인 급진주의 페미니스트들의 남성성 반대와 다른 해석을 제공한다. 버리스는 남자/여자(male/female)의 성 역할이 온전한 인간성(humanity)을 저해하는 인위적 구성물이기 때문에, 성 역할은 “생물학적 남성과 여성의 내재적인 본성이나 잠재성과 아무런 상관성이 없다”고 강조한다(355). 그는 자신의 의도가 “여성적(female) 원칙과 문화를 찬미”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명확히 하고(ibid), 여성 생물학에 근거한 여성성의 미화를 경계한다. 그리고 여성성에 대한 긍정적 평가가 남성성에 대한 무조건적인 거부와 병행되는 것을 우려하면서, “남성 동일시 반대”라는 명목 하에 여성의 종속적 역할을 대안적인 가치로 승화시키는 위험성을 지적한다(356-57). 여성성의 찬미와 남성성에 대한 비판이 급진주의 페미니즘의 모든 입장을 대변하는 것은 아니다. 급진주의 페미니즘이 여성성과 여성 문화를 긍정적으로 의미화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종속적이고 순응적인 젠더 실천으로서 여성성도 강력하게 비판했었다는 사실은 희석되어 왔다.12)

    버리스가 ‘남성 동일시’ 반대의 함정을 언급했듯이, 페미니즘과 여자/트랜스 남성성 논쟁에서 남성 동일시는 핵심적이고 첨예한 이슈이다. 무엇보다, 70년대에 정식화된 남성 동일시라는 개념이 본래의 맥락과 다르게 전치되면서 페미니즘과 남성성의 충돌이 더욱 심화되었다. 래디컬레즈비언즈(Radicalesbians) 그룹은 1970년 “여성으로 동일시하는 여성”(The Woman Identified Woman)이라는 선언문을 작성하며 레즈비어니즘을 페미니스트 정치학으로 재정의했다.13) 래디컬레즈비언들은 버리스와 같이, 여자 역할(female role)이 여성을 비인간화시킨다고 보고, 가부장적 여성성을 “자기 증오”(self-hate)로 파악한다(17, 20). 여기서 주목할 만한 것은 많은 페미니스트들이 부치성이나 트랜스 남성성을 내면화된 여성 혐오, 자기 증오로 규정했던 것과 달리, 래디컬레즈비언들은 여자 역할을 자유로운 자아의 억압으로 인식했다는 점이다. 래디컬레즈비언들이 개념화한 ‘남성 동일시’는 자율성을 결여한 채, 남성중심주의적인 시각을 내면화하고 억압자(남성)의 이해와 동일시하면서 “남성의 자아, 권력, 성취로부터 정체성과 지위를 획득”하고자 하는 것이다(20-1). 따라서 남성 동일시를 버리고 여성 동일시를 실천하기 위해서는 자아와 다른 여성에 대한 사랑을 회복하고 여성의 에너지를 여성 연대에 헌신해야 한다고 촉구한다(17).

    1970년대 페미니즘에서 ‘남성-동일시’라는 개념은 젠더 정체성을 지시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정치적 입장을 명명하던 개념이었다(Rubin, “Of Catamites” 468). 그러나 본래 의도와는 달리, 남성 동일시는 부치와 트랜스남성의 페미니즘을 의심하고 그들의 내면화된 가부장성을 추정하는 수단으로 오용되었다. 정치적 입장과 젠더 정체성에 대한 용어를 혼용함으로써 부치들은 남성의 이해에 공모하지 않아도 남성적인 스타일과 젠더 표현 때문에 남성 동일시의 혐의를 받게 되었다(ibid). 이러한 혼란 속에서 젠더순응적인(gender-conforming) 여성성이 여성 동일시의 표본이 되는 모순이 성립한다. 그러나 정작 “여성으로 동일시하는 여성”에서 강력하게 비판하고자 했던 것은 여자 남성성이 아니라 규범적인 여성성이라는 사실을 분명하게 되새길 필요가 있다. ‘여성으로 동일시하는 여성’으로 페미니즘을 판단한다면, ‘여성’으로 젠더 정체화하지 않지만 성차별주의와 젠더 불평등에 반대하는 젠더퀴어는 페미니스트 주체성을 인정받을 수 없게 된다.

    포용적인(inclusive) 레즈비언 정치학을 전개했던 레즈비언 페미니즘은 이성애자 여성을 정치적 동지로 환영한 반면, 계급과 젠더 배제를 통해서 부치 노동계급 레즈비언을 제외시켰다(Rubin, Self-Made Man 81). 생물학적 남성(bio-male) 혹은 시스젠더 남성들을 페미니즘의 구성원으로 초대하면서, 정작 레즈비언/페미니즘 운동을 함께 해온 부치나 트랜스남성의 페미니스트 자격을 박탈했던 것이다. 성애화된 레즈비언 관념을 대체하기 위해 레즈비어니즘을 확대했지만, 이러한 정의는 내부적으로 점점 더 “규정적이고(prescriptive) 편협한” 범주로 변질되어갔다(Stein, “Sisters” 47). 이러한 궤적은 ‘타고난’ 몸이 젠더를 결정짓고, ‘몸이 같으면 젠더도 같다’는 젠더 본질주의를 탈피하지 못한 페미니즘의 교착점을 보여준다. 페미니즘은 젠더가 사회적 구성물이라고 주장했지만, 부치/트랜스혐오를 언급할 때는 젠더를 바꿀 수 없는 태생적 자산으로 고정시킨다. 메리 데일리(Mary Daly)나 재니스 레이몬드(Janice Raymond)같은 트랜스혐오 급진주의 페미니스트들이 성전환을 반대하면서 인종의 수사학을 차용하는 것은 ‘남성’과 ‘여성’을 타고난 피부, 인종적 개념으로 본질화하기 위한 것이다(Chapman and Plessis 174).

    섹스와 젠더를 이원 젠더 체계 안에서 개념화하면서 빚어지는 혼란과 오류는 페미니스트 젠더 이론에 대한 재검토로 나아가지 못하고 ‘여성’ 범주와 ‘페미니스트’ 성원권을 배제적으로 유지하는 쪽으로 귀착되었다. 그러나 바바라 라이언(Barbara Ryan)은 정체성 정치학이 “이데올로기적 순수성”(purity)에 집착하게 되면, “억압적인 사고방식”(mind-sets)을 조장하고, 교조적인 입장에 갇히게 된다고 경고한다(61). 페미니스트들의 공통 기반을 여성 동일시(female-identification)나 여성의 생물학성(femaleness)으로 한정시키게 되면, ‘진정한’ 페미니스트와 ‘순수한’ 여성 범주를 보존하기 위해 ‘타자’들을 희생시키게 된다. 일부 레즈비언 페미니스트들은 자신의 진정성과 순수성을 옹호하기 위해 누가 가짜이고 불순한지 가려내는데 열중했고, 부치혐오도 이러한 역사적 과정의 산물로 등장했다. 특정한 집단만이 진정성과 올바름의 권위를 가지게 될 때, 페미니즘 안에서 여자/트랜스 남성성은 적대적인 ‘외부’에 위치될 수밖에 없으며 부치/트랜스혐오 또한 가치 있는 영역 수호 행위로 정당화될 수 있다.

    9)남성과 여성의 상반된 이해를 양극적인(bi-polar) 계급적 개념에 의지해서 정치화하는 것은 근본적으로 “다중적인 젠더들”(multiple genders)을 상상할 수 없게 만든다(Nataf 38).  10)모건은 mtf트랜스 페미니스트 베스 엘리엇(Beth Elliot)의 레즈비언/여성 운동 활동 반대를 주도했던 인물로, 대표적인 급진주의 페미니스트이다.  11)흥미롭게도 1973년에 했던 모건의 이 발언은 또 다른 트랜스혐오 페미니스트, 쉴리아 제프리스(Shelia Jeffreys)의 2003년 저작과 정확하게 공명한다. 모건은 70년대의 게이 운동과 단절하기 위해, 제프리스는 퀴어 이론을 공격하기 위해 동일한 젠더 수사학을 동원한다. 30 여년의 시간 경과가 무색할 정도로, 남성성에 대한 비판이 ‘남자임’에 대한 근원적인 적대감으로 회귀되는 경향은 반복되고 있다.  12)급진주의 페미니스트 그룹, 셀 16(Cell 16)에 따르면, “여성의 섹스, 패션, 화장, 아이에 대한 관심은 여성이 얼마나 손상되어 있으며 어떻게 지배 체계에 협력하고 있는지를” 방증한다(Echols 160).  13)이 선언문은 ‘여성단결을 위한 2차 회의’(the Second Congress to Unite Women)에서 벌어진 레즈비언 페미니스트들의 기습 시위, 라벤더 위협(Lavender Menace)에서 배포되었다(Echols 214-15).

    4. 페미니즘과 트랜스남성성

    페미니즘과 트랜스 남성성 사이의 논쟁에 대한 지배적 서사는 트랜스 남성들을 최근에 등장한 소수자이자 페미니즘의 ‘외부인’으로 밀어내고, 페미니즘과 트랜스 남성성과의 근본적인 대립을 설정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역사 서술은 많은 페미니스트 트랜스 남성들이 이미 오래전부터 레즈비언 공동체와 여성 운동에서 활동한 내부인 이었다는 사실을 왜곡하고 페미니즘과 ftm 트랜스젠더리즘의 접합과 제휴 가능성을 폐절한다. 레즈비언-페미니스트 분리주의자에서 SM(sado-masochism)실천가로, 다시 트랜스남성으로 변모해온 팻 칼리피아(Pat Califia)는 레즈비언 공동체가 부치, 남성 복장을 하는 크로스드레서 등 남성으로 “통하는 여성”(passing women)을 오랫동안 관용해 왔음에도 불구하고, 트랜스혐오 페미니스트들은 이러한 역사를 부정한다고 비판한다(100). 칼리피아의 경험과 지적은 여러 가지 측면에서 페미니즘과 트랜스 남성성 논란의 문제적인 함의들을 시사한다. 첫 번째로, 레즈비언/페미니즘 운동과 역사 속에 포함되어 있었던 트랜스남성의 실존을 무시하고, 트랜스남성의 등장을 90년대 말 이후 최근의 현상으로 이해하는 것이다. 둘째, ‘남성’이라는 (트랜스)젠더 정체성을 페미니스트 정치성과 의식의 자동적인 폐기와 포기로 가정한다. 셋째, 페미니즘과 트랜스젠더리즘 사이의 상호연관성을 간과하며, 양자를 무관하고 적대적인 젠더 담론으로 위치시키는 것이다.

    노동계급 레즈비언/페미니스트 운동가 출신의 트랜스젠더 이론가 진 바비 노블(Jean Bobby Noble)은 자신을 페미니즘의 ‘아들’로 명명하면서, 페미니즘과 트랜스 남성성의 대립적 구도를 수정한다. 노블은 자신이 레즈비언과 여성 운동에 헌신하고 기여해 왔음에도 불구하고, 트랜스남성이 되면서 페미니즘의 이방인으로 취급받는 현실을 개탄한다. 그는 자신이 페미니즘의 문을 두드리는 외부인 트랜스남성이 아니라, “페미니스트 운동 안에 있어 왔고, 그 일부였으며 페미니스트 운동 그 자체”인 사람이라고 설명한다(Sons of 21). 또한, 부치 페미니스트로서의 30여 년의 삶이 성전환과 함께 일순간 사라질 수 없으며, 페미니즘은 지나간 과거가 아니라 여전히 자신의 삶을 지탱하는 ‘현재’라고 주장한다("Trans?" 152-53). 보다 중요하게, 노블은 트랜스 남성성에 대한 연구와 활동이 그의 페미니즘을 지속하는 작업임을 강조한다(Sons of 21). 노블의 진술은 남성성이나 남성 동일시를 반(anti) 페미니즘으로 동일시하게 될 때, 트랜스남성과 페미니스트 정체성의 공존과 중첩이 부인된다는 사실을 예증한다.

    트랜스남성의 남성 동일시를 반 페미니즘으로 공격하는 논리는 여성의 생물학성(femaleness)이나 여성다움(womanhood)을 페미니스트의 보증 수표로 인가하는 모순을 초래한다. ftm트랜스젠더/페미니스트 이론가 헨리 루빈(Henry Rubin)은 자신의 트랜스젠더 정체성과 페미니즘의 관계를 다음과 같이 요약한다.

    트랜스혐오 페미니스트들은 트랜스남성이 남성 특권을 누리기 위해 여성성을 포기한 것이라고 가정함으로써 여성 육체에 대한 거부를 내면화된 여성혐오와 연결시킨다. 따라서 트랜스남성은 페미니즘의 배반자이며 여성에 대한 긍정적 인식을 결여한 사람들로 낙인찍힌다. 여성의 생물학성에 대한 긍정과 수용을 페미니즘의 실천으로 확증하게 되면, ‘페미니즘’이라는 정치적 신념의 여부를 섹스(생물학적 성)로 결정짓는 오류를 범하게 된다. 그러나 생물학적 성이 페미니스트 주체를 자동적으로 생성하는 것이라면 생물학적으로 ‘여성’이지만 페미니스트가 아닌 수많은 여성들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는가? 에미 코야마(Emi Koyama)가 지적하듯이, 누군가를 여성혐오주의자 혹은 반 페미니스트로 판단하기 위한 기준은 그들의 섹스나 젠더가 아니라 “그들이 하는 행동(여성에게 억압적인 행위들)”과 “그들이 하는 말(여성혐오적인 발언들)”이어야 한다(“Open Letter”).

    페미니즘의 트랜스남성에 대한 혐오는 트랜스 남성성을 정당한 젠더 표현으로 인정하지 않고, ‘올바른’ 정치의식의 결핍이나 실패로 이해하는 태도에 근간한다. 그리고 트랜스남성에 대한 우려와 비판에는 ‘여성임’(femaleness)을 변하지 않는 성역, 보존해야할 ‘순리’로 사유하는 입장이 견고하게 유지된다.14) 제프리스는 여성을 증오하는 문화 속에서 여성 육체를 혐오하게 되어 ftm 성전환을 하는 것이라고 논증한다(“Transgender” 68). 또한 그는 ftm 성전환이 동성애자 자긍심(gay pride)을 갖지 못하고 호모포비아를 내면화한 결과라고 진단한다(Unpacking 137). 제프리스는 트랜스남성의 증가를 “레즈비언 육체/공동체”의 파괴로 해석하면서(Unpacking 122), 아동 성학대를 받고 여성성에 대한 굴욕감을 느낀 사람들이 성전환을 하게 된다는 위험천만한 비약마저 서슴지 않는다(Unpacking 139). 이러한 주장의 근저에는 ‘여성임’을 수용하는 부치 남성성은 (바람직하진 않으나)허용 가능하지만, 몸(femaleness)을 변형시키거나 남성 동일시하는 트랜스 남성성은 페미니즘과 근본적으로 상충한다는 논리가 작동한다.15) 그러나 여기서 중요한 것은, ‘여성임’을 유지하는 것이 페미니즘의 가치를 가늠하는 절대적 요소가 된다는 것이다.

    앨릭스 돕킨(Alix Dobkin)도 ‘여성’에 대한 자긍심을 고취한다는 취지 아래, 트랜스혐오를 공공연히 드러낸다.16) 그는 부치 레즈비언들이 “여성들의 미래에 대한 신념”이 부족하고 사회적으로 만연된 “남성 권력과 특권”을 견디지 못해 여성성(womanhood)으로부터 탈출하기 위해 트랜스젠더로 전환한다고 고발한다(“The Emperor's”). 여성에 대한 “부정의” (injustice)를 여성으로 사는 “불편함”(inconvenience)과 혼동함으로써, 남자로 사는 것이 편안하고 멋지다고 착각한다는 것이다(ibid). 돕킨은 트랜스젠더리즘이 ‘여성 억압’이라는 사회적 문제를 ‘성전환’이라는 개인적인 선택으로 해결하려는 어리석은 결정이라고 비방한다. 그는 “왜 무한한 여자의 잠재성(infinite female potential)을 가진 레즈비언들이 남성이 되려고 하는가?”라고 회의하면서, 트랜스남성의 여성 육체에 대한 거부는 페미니스트들을 비통하게 한다고 표현한다(ibid). 제프리스와 마찬가지로, 돕킨도 성전환을 자발적인 젠더 정체성의 모색과 탐구 과정이 아니라 남성 중심적인 사회에 대한 도피와 페미니스트 의식의 결핍으로 간주한다. 또한, 그는 여자(female)-여성다움(womanhood)-여성(woman) 용어를 혼용하면서 ‘여성임’과 여성 육체에 대한 긍정을 페미니스트 가치의 중심에 놓는다.

    돕킨의 글은 1970년대 급진주의 페미니즘의 젠더 정치학 모델을 재고나 성찰 없이 변화된 사회현실과 젊은 세대에 적용할 때, 노골적인 트랜스혐오로 돌변할 수 있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2000년에 쓴 이 글은 최근의 현상을 문제제기 하고 있지만, 그 현상을 읽는 시각은 70년대 초, 급진주의 페미니즘의 언어와 이데올로기에 그대로 정박되어 있다. 자칫 트랜스혐오로만 읽힐 수 있는 이러한 간극은 페미니즘의 세대 정치학의 문제로 재조명되어야 한다. 70년대에는 페미니스트 의식을 고양하기 위해 여성의 단일한 정체성과 남성과 여성의 차이를 강조하는 것이 시대적으로 요청되었지만, 제 3 물결(the third wave)의 페미니스트는 섹스로 고정되지 않는 다중적인 젠더 정체성을 추구하는(Hines 61) 페미니즘의 성과 위에서 성장한 세대이다. ftm 트랜스젠더리즘은 페미니즘에 대한 위협이 아니라, 젠더는 섹스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며 섹스/젠더를 재구성할 수 있다는 페미니즘의 유산이자 성취가 아닌가? 여전히 남성 지배와 성차별이 온존하지만, 70년대 여성이 살았던 사회적 현실과 고민은 페미니즘의 진보만큼 2000년대 여성의 것과 동일할 수 없다. 제 3 물결 페미니스트에게 여성적 가치(female value)를 강조하고 고정된 ‘여성’ 정체성을 강요하는 것은 시대착오적인 전략이자, 현재의 세대성을 몰이해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페미니즘의 트랜스 남성성 비판의 핵심적인 이슈는 트랜스 남성성을 남성 특권(male privilege)의 혐의로 매도하는 것이다. 남성 특권에 대한 논쟁은 트랜스 남성성과 생물학적 남성(bio-male)의 지배적 남성성을 어떻게 차별화할 것인가에 집중된다. 남성중심사회에서 일반적으로 남성성이 가치 평가를 받고 남성이 우대받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남성 특권은 생물학적 남성만이 전유할 수 있는 남성성을 인가하고, 생물학적 남성의 남성성(male masculinity)에 특권을 주는 것이다. 남성성도 내부적으로 다양하고 위계적인 것이기 때문에, 트랜스 남성성을 바로 남성 특권과 직결시키기 보다는 어떤 남성성에 특권이 주어지는가로 논점을 구체화해야 한다(simpkins 82). 트랜스남성들이 남성 정체성을 갖는다고 해서 사회적으로 항상, 반드시 생물학적 남성과 동등한 ‘남성’으로 인정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트랜스남성들이 모두 성전환 수술을 하는 것도 아니며 호르몬 투여나 상반신(가슴제거) 수술을 한다고 해도 언제나 완벽하게 ‘남성’으로 통과될 수 있다는 보장도 없다. 남성으로 통과된다고 해도 그들은 남성성의 진정성을 의심받으며 언제든지 ‘가짜’ 남자로 격하될 수 있다.17) 오히려 여성 육체의 흔적과 남성성의 불일치는 트랜스남성을 가시화시킬 수 있기 때문에 트랜스젠더에 대한 혐오와 반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트랜스남성들은 일상적인 폭력과 위협에 노출될 수 있으며 사회생활과 대인관계에서도 자신의 정체(젠더)를 기만하는 사람으로 범죄화된다. 트랜스남성이 남성 특권을 누린다는 비판은 시스젠더중심주의 사회에서 젠더 소수자로서 트랜스남성이 겪어야 하는 무수한 억압과 차별, 불이익을 무시한다. 남성 특권 논쟁은 일원화된 정체성 모델에 근간하기 때문에, 권력이 젠더 뿐 아니라, 인종, 계급, 세대 등 다양한 사회적 요인의 상호교차 속에서 배분된다는 것을 간과한다. 노블에 따르면, 트랜스남성에 대한 남성 특권 비판은 젠더만을 권력의 유일한 결정 요소로 파악하고 남성성 자체를 “페미니즘에 상반되고 유해한 것”으로 상정하기 때문이다(Sons of 26-7). 이어서 그는 유색인 트랜스남성이 여성으로 ‘태어난’ 백인 이성애자 페미니스트보다 더 많은 권력을 누리는 것은 아니라고 예시한다(Sons of 27). 남성으로 성전환하거나 트랜스남성으로 정체화한다고 해서 그의 계급적, 사회적 지위가 향상되는 것은 아니다. 만약 가족 안에서의 입지나 노동시장에서의 고용을 생각한다면, 성전환이나 트랜스젠더 정체성으로 그의 경제적/사회적 지위가 더 위태롭고 불안해질 수 있다.

    카일 스캔론(Kyle Scanlon)은 트랜스남성들의 공통분모는 남성 특권이 아니라 오히려 “트랜스 억압”이라고 밝히면서 페미니스트들이 트랜스남성의 남성 특권을 비난하기 전에 자신의 당연시되는 젠더 특권―출생 시 부과된 섹스와 젠더 정체성이 일치하는―을 성찰해야 한다고 충고한다(93). 즉, 이원 젠더 체계에서 ‘여성’으로 태어나, ‘여성’으로 정체화하는 페미니스트로서 그들이 누리는 규범성과 정상성의 특권을 의문해야 한다는 것이다(94). 리사 하니(Lisa Harney)는 시스젠더 주체가 “트랜스젠더의 도덕성, 역사, 감정과 경험을 정의”할 수 있는 권력과 트랜스젠더의 경험을 “묵살하고, 경시하고, 무시하고, 지울 수 있는” 특권을 갖는다고 지적한다(“Belated Response"). 그러나 시스젠더의 근본적인 특권은 트랜스젠더를 임의로 재단하는 것이 아니라, 시스젠더의 권력과 구성성(constructedness)을 의식하지 않고 자신의 젠더를 당연시하는 것이다. 젠더와 관련해서는 성차별주의(sexism)만이 억압과 특권을 생산한다는 시각은 시스젠더중심주의나 젠더차별주의(genderism)에 의한 권력의 불평등을 묵과하는 한계가 있다.

    트랜스남성의 남성 특권에 대한 혐의는 트랜스남성들이 지배적인 남성성을 추구하고 체현할 것이라는 암묵적인 가정을 동반한다. 그러나 트랜스남성들에 대한 경험 연구들은 트랜스남성들이 남성으로 살아가고 남성으로 인정받길 원하지만, “규범적인 남성 모델”에서 벗어나서(Hines 67) “다른” 남성이 되고자 한다고 증명한다(Johnson 116). 루빈은 페미니즘의 이상을 유지하면서 지배적인 남성성과 거리 두기하는 트랜스남성들의 노력과 협상을 “삐딱한 정체성”(perverse identity) 개념으로 설명한다(「(성전환자)남성」 393). 노블 역시 지배적인 남성성의 헤게모니에 “생산적인 실패”(productive failure)를 모색한다면, “남성적이 될 수 있는(being masculine) 다른 많은 방식들”이 존재하고 트랜스남성이 될 수 있는 다양한 “주체 설정”(subject positions)이 가능하다고 피력한다(Sons of 29). 모든 트랜스남성들이 ‘다른’ 남성성을 모색하고, ‘삐딱한 정체성’을 작동시키며 남성성의 규범에 ‘생산적인 실패’를 지향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가능성만큼 모든 트랜스남성들이 지배적 남성성을 모방한다는 것도 근거 없는 과잉 일반화이다. 왜냐하면 생물학적 여성/남성과 마찬가지로 트랜스남성들의 페미니스트 정체성 역시 성기나 젠더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정치적 입장과 실천으로 검증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14)제프리스는 트랜스남성을 여성 명사로 지칭하는 무례함을 고집하면서, “원래[‘태어난’] 성 계급”(sex classes of origin)을 표식하기 위한 것이라고 정당화한다(Unpacking 123). 이러한 명명법은 ‘한번 여성은 영원히 여성’이며 섹스가 젠더를 결정짓고, 섹스는 바뀌지 않는다는 입장을 천명한다.  15)즉, 젠더는 ‘사회화’로 구성되는 것이지, 호르몬이나 수술 등 의학기술의 개입으로 변형시켜서는 안 되는 것이기 때문에 시스젠더의 구성은 자연스럽지만 트랜스젠더의 구성은 부자연스러운 것이라는 이중적인 잣대가 적용된다.  16)돕킨은 급진주의 레즈비언-페미니스트로서 1970년대 여성주의 음악 운동을 주도했던 가수이다. “황제의 새로운 젠더”는 젊은 부치 레즈비언들의 성전환 증가를 비판하는 내용의 글로, 급진주의 레즈비언-페미니스트 잡지 『우리 등에 짐을 벗고』(Off Our Backs, 2000)에 게재되었다.  17)루빈에 따르면, 트랜스남성은 성전환자로 커밍아웃하는 순간, 진짜 ‘남성’으로서의 자격을 의심받게 된다(「(성전환자)남성」 409).

    5. 나오며

    페미니즘과 여자/트랜스 남성성 사이의 논쟁은 섹스와 젠더를 어떻게 개념화하고 분석할 것인가, 그리고 페미니스트 주체성을 상정하는데 섹스/젠더 관념을 어떻게 적용할 것인가에 대한 충돌로 집약된다. 급진주의 페미니즘은 여성 연대를 모색하고 페미니스트 의식을 고취하기 위해 여성적 가치와 여성 문화를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 이상적인 젠더 실천으로 양성성을 추구했다. 그러나 이러한 전략은 섹스를 ‘생물학’의 영역으로, 젠더를 ‘사회화’의 영역으로 이분하고 섹스가 젠더를 확정한다는 “생물학중심주의”(biocentrism)에 정초한다(Scanlon 93). 또한 여성의 ‘같음’을 표방하던 페미니스트들은 내부적인 불화에 적극적으로 개입하기 보다는 ‘바람직하지 않은’ 젠더 주체나 페미니즘을 지탄하는 방식으로 차이를 소거해 왔다. ‘여성’의 공통성(젠더 동일성)이 페미니즘의 존립 근거가 됨에 따라, 비규범적인(non-normative) 젠더 주체들은 페미니즘의 영역에서 추방되었다. 라이언은 정체성 정치학의 부작용을 논의하면서 어떤 노선의 우월성을 증명하려는 시도가 “누가 더 진정한 페미니스트인가, 누가 더 올바른 페미니스트인가”를 다투는 소모적 논쟁을 야기했다고 비판한다(61). 부치/트랜스혐오는 정체성 정치학의 어두운 이면이기도 하다. ‘여성’ 범주와 페미니즘의 ‘순수’ 영역을 방어하는 것이 특정 페미니즘(일부 급진주의 페미니즘이나 레즈비언-페미니즘의 분파)의 이데올로기적 정당성을 입증하는 수단으로 이용되었기 때문이다.

    부치와 트랜스남성은 남성성을 수행하고 ‘여자임’을 거부한다는 이유로 여성혐오주의자로 규정되었고, 남성 특권을 누리기 위해 남성을 모방하는 반(anti) 페미니스트로 매도되었다. 이 과정에서 페미니스트와 여자/트랜스 남성성이 상호 배치되는 정체성으로 간주되는 한편, ‘여자임’과 여성성은 페미니즘의 징표로 승인되었다. 여성의 동일성을 강조하는 페미니즘은 젠더(혹은 남성 지배)를 모든 억압과 차별의 근본적인 원인으로 사유한다. 젠더 우선주의는 페미니즘과 여자/트랜스 남성성 논쟁에 작용하는 계급, 인종, 세대 정치학의 교차를 은폐하고 부치/트랜스 페미니즘의 역사를 증발시켰다. 이러한 맥락에서 린다 가버(Linda Garber)는 젠더 본질주의를 “특수한―인종주의적이고 계급주의적인―젠더의 구성(construction)”으로 보아야 한다고 주장한다(25). 젠더 자체만 사회적 구성물인 것이 아니라 젠더 우선주의 혹은 젠더 본질주의 자체를 ‘어떤’ 페미니즘이 구축한 하나의 담론으로 상대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페미니즘이 “남성성과 여성성의 관계성에 도전한다고 해도 남성성을 ‘남성들’(men)과 ‘남자임’(maleness)으로, 여성성을 ‘여성들’(women)과 ‘여자임’(femaleness)으로 동일시”하는 한, 페미니즘은 지배적인 섹스/젠더 담론을 근본적으로 변형시킬 수 없다(simpkins 85). 성전환자들만 그들의 몸과 정체성을 바꾸는 것은 아니다. 할버스탐이 지적하듯이, “우리[모두]는 이미 외과적으로(surgically), 기술적으로(technologically), 이데올로기적으로 우리의 몸과 정체성, 자신을 개조(alter)해왔다”(“F2M” 215). 여자/트랜스 남성성 이슈는 섹스/젠더/육체/체현(embodiment)/정체성에 대한 페미니스트 이론이 복잡하고 다기한 변형들을 포괄할 수 있도록 혁신되어야 한다는 것을 일깨워준다.

    부치/퀴어/트랜스 페미니즘은 기존의 섹스/젠더 이론에 대한 전면적인 재검토와 보완을 추동할 뿐 아니라, 페미니즘 안에서 차이를 어떻게 의미화할 것인가에 대한 토론을 재점화한다. 트랜스혐오/급진주의 페미니스트 모건은 “성차별주의, 인종차별주의, 계급주의, 연령차별주의” 모두가 가부장제의 산물이고, “여성은 그러한 구조를 만들 수 있는 힘이 없기 때문에” 이러한 권력 구조에 대해서 어떤 여성도 비난받을 책임이 없다고 말한다(“Lesbianism”). 모건의 발언은 여성 내부의 권력 차이 뿐 아니라, 여성들 역시 다양한 권력 위계 속에서 지배 이데올로기와 공모한다는 사실을 위장한다. 또한, 차이 논쟁을 상호 비방이나 내적 분열로 재현함으로써, 마치 여성들의 합일(unity)만이 페미니즘의 유일한 가치 실현인 것처럼 호도한다. 그러나 페미니즘 이론과 정치학의 역사에서 여성 간의 차이 논쟁은 인종주의나 이성애중심주의 등 다양한 권력 구조 비판에 중요한 자양분이 되어 왔다. 이와 같이, 여자/트랜스 남성성 논쟁은 여성의 젠더 동일성을 균열시키며 시스젠더중심주의 혹은 젠더차별주의(genderism)를 또 다른 젠더 권력 장치로 분석할 수 있는 통찰을 제공한다.

    엘리엇은 차이가 발화되는 “이론적 격론장(battlefield)을 다양한 이론과 시각들이 경청되는 포럼으로 변형시키고, 의미 생산이 선험적으로 미리 결정되거나 즉각적으로 묵살되지 않는” 토론이 필요하다고 제안한다(5). 여자/트랜스 남성성의 도전은 페미니스트 젠더 이론을 심화시킬 수 있는 포럼의 자원으로 활용될 수 있다. 페미니즘이 젠더 억압을 종식시키기 위한 이론과 정치학이라면 ‘여성’의 불평등과 젠더퀴어/트랜스젠더에 대한 차별 모두 페미니즘의 의제로 통합되어야 한다. “젠더 억압을 종식시키기 위한” 페미니즘의 토론에서 “젠더 비순응자들(nonconformist)의 젠더 억압”에 대한 경험과 분석은 배제되어 왔다(Chapman and Plessis 172). 누구의 젠더 억압만이 ‘억압’으로 인정될 수 있는가? 여성으로 ‘태어난’ (이성애자)여성의 경험과 목소리만이 모든 젠더 억압의 양상을 대변한다면, 페미니스트 젠더 이론은 또 다른 젠더 억압을 묵과하고 양산하는 담론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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