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ill Realism

정적 리얼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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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ABSTRACT

    Lynne Ramsay’s works are linked to the social realism the Free Cinema, British New Wave, and Scottish films of the 1990s mounded. They belong to the British social realism in that Ramsay’s use of landscape is related to the concept of surface and moral realism as which Andrew Higson defined the British realism; Scottish realism because Ramsay’s interests in young people’s lives, especially their brutality and kindness, associate with the tradition of children realism of the 1990s Scottish films. In the strict sense of the British and Scottish realism, however, Ramsay’s work is not social realism. Going beyond the two cinematic tradition, Ramsay’s films move towards a certain kind of realism. This essay defines this realism as ‘still’ realism. The aim of this essay is to show how Ramsay moulds the still realism by analysing her use of sound, close-up, and slow-motion in her shot films and first feature film: <Small Deaths>, <Kill the Day> and <Gasman>, and <Ratcatcher>.


  • KEYWORD

    Lynne Ramsay , Free Cinema , British New Wave , New Scottish Cinema , Landscape , Social Realism , Still Realism

  • 1. 서론

    사실적이면서도 매우 초현실적인 색채의 리얼리즘 영화를 만드는 린 램지(Lynne Ramsay) 그녀의 이름은 우리에게 낯설다. 우리에게 익숙한 빌 더글러스(Bill Douglas), 켄 로치(Ken Loach), 마이크 리(Mike Leigh)그리고 이들을 이어 90년대 영국 영화를 이끈 대니 보일(Danny Boyle)그리고 피터 뮬란(Peter Mullan)과 함께 린 램지는 영국이 현재 가장 기대하는 영화감독이다.1) 그녀는 <스몰 데스 Small Deaths>(1995), <킬 더 데이 Kill the Day>(1997) 그리고 <개스맨 Gasman>(1997) 이상 세편의 단편영화와 두 편의 장편영화 <쥐잡이 Ratcatcher>(1999) 그리고 <모번 켈러의 여행 Morvern Callar>(2002)를 만들었다. 끊임없이 스코틀랜드 글래스고우 지역을 배경으로 사회 하층민의 삶을 다루는 그녀는 특히 아이들 세계에 담긴 폭력성과 잔인함을 그리고 동시에 아직 아름답고 순수한 어린이들의 시선을 통해 가난과 절망으로 채색된 노동자 계급의 일상 그리고 탈출이라는 이상을 그려 왔다.

    사회적 문제들을 다루는 그녀의 영화적 화법은 지극히 영국적이고 스코트랜드적이면서도 동시에 이 두 범주를 이탈한다. 노동자 계급,사회 소외 계층의 일상의 문제들과 그들이 살아가는 사회적 그리고 개인적 공간에 던지는 그녀의 비판적 시선은 그녀의 영화가 50년대 후반의 프리 시네마(Free Cinema) 그리고 60년대 영국 뉴 웨이브(the British New Wave) 영화들과 만나고 있음을 보여준다. 첫 번째 단편영화 <스몰 데스>에서 시작해 그녀의 첫 장편 영화 <쥐잡이>에서 완성된 램지의 어린아이 세계에 대한 탐구는 특히 스코틀랜드 청년들의 일그러진 삶과 산업화의 폐허를 통해서 스코틀랜드 민족의 정체성에대해 이야기하며 90년대 영국 영화를 장식했던 흔히 새로운 스코틀랜드 영화(the New Scottish Cinema)라 불리는 영화들과 맞닿아 있다.

    이러한 지역적이고 전통적인 범주들은 하지만 그녀의 영화에 접근하기 위한 하나의 통행로일 뿐이다. 지극히 사실적인 장면들과 환영 혹은 몽환적인 장면들을 마치 하나의 일관된 공간처럼 엮어내는 그녀의 실험적인 화법은 램지가 영국 그리고 스코틀랜드 영화의 유산을 계승함과 동시에 이탈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 이탈은 그녀가 만들어가는 어떤 새로운 형태의 리얼리즘으로 가는 통로인 듯 보인다. 아네트 쿤(Annette Kuhn)은 램지만의 이 몽환적인 장면들을“시적”이라는 표현을 빌려 정의하는데, 이 표현이 담고 있는 의미는 다음과 같다. 램지의 몽환적인 장면은“현실의 세계와 구분되고 다르지만, 여전히 일상에서 발견될 수 있는 등장인물의 내면세계로 들어가는 출입구”이며 주인공과의 어떠한 동일시과정을 초월하지만 관객들을“육체적으로”영화 속 세상으로 초대하는 힘을 가지고 있다.2)

    이 글은 린 램지 감독의 전작들의 분석을 통해 그녀가 스코틀랜드, 영국의 과거 영화들과 만나고 있는 지점들을 탐구하고, 그녀가 이 유산들을 바탕으로 새롭게 주조해가는 영화적 시선을 정적(Still) 리얼리즘이라는 이름으로 설명한다. 램지는 항상 자신의 영화가 영국 그리고 스코틀랜드가 아닌 유럽이라는 커다란 역사에 속하기를 원했다. 전통적이고 실험적인 색채를 지닌 램지 리얼리즘은 지난 반세기 동안 작가 영화(Auteur Cinema) 혹은 예술 영화(Art Cinema), 뉴 웨이브 그리고 민족 영화(National Cinema)라는 틀로써 지속적으로 할리우드 영화(Hollywood Cinema)에 대응하여 자신의 정체성을 구축해온 유럽영화가 현재 만들어가는 어떤 새로운 틀의 한 부분이 아닐까? 하는 의문이 그녀의 작품들을 보는 이 글의 주된 시선이다.3) 아래 이어지는 글은 모두 두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첫 번째는 램지의 영화가 영국뉴 웨이브 영화, 90년대 스코틀랜드 영화들과 만나는 측면에 대한 분석이다. 두 번째는 현재 램지가 만드는 새로운 리얼리즘이 어떠한 형태를 가지고 있는지에 대한 분석이다. 시적이고 정적인 순간들을 만들고자 어떠한 방식으로 다음의 영화 기법, 사운드, 클로즈업, 느린 화면을 인물 그리고 풍경들을 포착하는 데 사용하고 있는가에 대해 이야기할 것이다.

    1)린 램지에 대한 이러한 평가에 대해서는 다음 자료를 볼 것. Catherine Cullen,“Details Are Acoustical: the Films of Lynne Ramsay,”Afterimage, July/August, 2001, pp.12-13; Harlan Kennedy,“Ratcatcher,”Film Comment, January/February, 2000, pp.6-9.  2)Annette Kuhn, Ratcatcher, BFI, 2008, pp. 9-13.  3)작가영화, 예술영화, 그리고 민족영화로서의 유럽영화의 현재라는 측면에 대해서는 토마스 앨새서의 책을 참조할 것. Thomas Elsaesser, European Cinema: Face to Face with Hollywood, Amsterdam University Press, 2005, pp.485-514.

    2. 전통: 풍경

    영국 영화의 역사에서 리얼리즘이라는 용어가 포괄하는 시간의 폭은 반세기를 넘는다. 오랜 전통을 가진 영국 영화의 리얼리즘에서 풍경이라는 단어는 핵심적인 키워드였다. 1930년대 존 그리어슨(John Grierson)을 중심으로 제작된 다큐멘터리 영화들에서 시작된 이 경향은 키친 싱크 영화(the kitchen sink film)로 불리는 프리 시네마와 영국 뉴 웨이브 영화들에서 완성되었다.4) 영국 영화 역사가 앤드류 히그선(Andrew Higson)은 영국영화 전통이 완성한 리얼리즘을 표면적리얼리즘(surface realism)과 도덕적 리얼리즘(moral realism)으로 구분하여, 이 두 측면의 결합이라는 도식으로 설명한다. 그의 설명을 따르면, 표면적 리얼리즘은 고전 영화의 관습을 거부하고, 로케이션 촬영, 인공적인 풍경과 공간이 아닌 실제 공간을 보여주는 영화 창작 기법상의 전환을 통해 실제 대상에 담긴 진정성과 역사성을 영화에 부여함으로써, 영화라는 허구적 공간을 실제 역사적 장소로 탈바꿈시킨 프리시네마와 영국 뉴 웨이브 영화들의 사실주의적인 접근 방법을 의미한다.5) 특히, 표면적 리얼리즘은 단지 실제 공간과 대상에게 카메라의 시선을 돌리는 방식으로 영화 속에서의 리얼리즘을 실천했던 1920년대 프랑스와 독일의 영화들과는 확실하게 구분되는 지점을 가지고 있다. 재현된 실제 공간과 대상을 단지 배경으로 보여주거나 등장인물의 심리상태를 은유하기 위해 사용했던 이들 영화와는 달리, 영국 뉴 웨이브와 프리 시네마 영화감독들이 실천했던 표면적 리얼리즘은 이러한 이야기 전개(narrative)와의 종속 관계에서 현실의 공간을 독립시킨다. 히그선은 이 점을 가리켜 표면적 리얼리즘은 실제 공간과 대상에 독립적인 시선을 부여하여 결국 이들을 물신화(Fetishization)했다고 강조한다. 요약하자면, 표면적 리얼리즘이 추구했던 것은 단지 이야기의시대적, 사회적 배경으로 혹은 주인공의 심리 상태를 은유하는 것으로서의 실제 풍경과 공간을 사용하는 것이라기보다는 실제 관심을 두고 탐구해야 할 대상으로 바라보는 것이었다. 도덕적 리얼리즘은 키친 싱크 영화감독들이 노동자 계급과 그들의 일상 공간, 다시 말해 자본주의로 변형된 도시 공간 그리고 동시대 사회적 문제들에 대해 던졌던사회적 관심을 의미한다. 히그선은 1930년대 영국 다큐멘터리 영화가노동자의 위엄을 보여주어야 한다는 목적 아래 만들어진 것과 같이60년대 영국 리얼리즘 영화는 사회적 문제와 해결에 대한 관심을 잃지 않고 평범한 사람들을 통해 삶에 담긴 보편성을 이야기하는 것을 목표로 했다는 점을 강조한다.

    하지만, 히그선이 지적하듯 키친 싱크 영화의 가장 핵심적인 부분은 두 시선의 결합으로 만들어지는 흔히 시적인 순간이라고 표현되는 지점이다. 키친 싱크 영화들이 포착한 현실의 풍경들은 단지 사회적역사적 의미만을 지닌 채 영화 속으로 들어온 것이 아니라, 당시 감독들이 이 풍경들에 대해 던졌던 도덕적 시선이 투영되어 표면 아래 숨겨진 또 따른 진실까지 포착했다고 강조한다. 히그선은 이를 가리켜 키친 싱크 영화는 영화 속 풍경의 역사화에만 머물지 않고 심리화로까지 나아갔다고 설명하며, 이것을 통해 당시 영국 영화는 현실의 풍경을 관객의 마음에 깊이 새기는 결과를 낳을 수 있었다고 설명한다. 대부분의 키친 싱크 영화들이 영화의 이야기 전개와 구조적으로 연결되지 않았음에도 60년대 영국의 경제적 위기와 불안의 상징으로 떠오른 잉글랜드 중부와 북쪽 지역의 공업지대를 주요 로케이션 장소로 택했던 것, 그리고 노동자들의 일상생활 공간들, 산업화를 통해 변화된 도시의 풍경들, 거리의 모습들을 비판적 시선으로 담아내면서도 그 차가운 시선에 “미적, 시각적 가치를 불어 넣었던 것은”모두 표면적 그리고 도덕적 시선이라는 새로운 형태의 리얼리즘을 향한 그들의 열정의 결과였다.6)

    프리 시네마 그리고 영국 뉴 웨이브의 대표작인 <꼭대기 방 Room at the Top>(1958), <토요일 밤, 일요일 아침 Saturday Night and Sunday Morning>(1960), <장거리 주자의 외로움 The Loneliness of the Long Distance Runner>(1962), <꿀맛 A Taste of Honey>(1961), 그리고, <욕망의 끝 This Sporting Life>(1963)에서 도시 혹은 마을 전체를 보여주는 풍경 장면들, 노동자 계급의 일상과 집안, 그리고 거리를 보여주는 장면들은 이야기 전개와 독립적으로 또 다른 이야기를 관객에게 전달한다. 모두 로케이션으로 촬영되었던 <꿀맛>은 더러운 하천을 따라 늘어서 있는 폐허가 된 건물과 그 사이로 펼쳐진 맨체스터(Manchester)지역의 빈민가를 절망적이고 암울하게 포착하면서도 한편으로 그 공간에 대한 애정을 버리지 않는다. 이러한 저널리즘적 그리고 미학적인시선은 이 도시의 풍경을 하나의 “아름다운 비극”으로 만들어 관객들에게 전달한다.7)

    60년대 영국 영화가 보여준 노동자 계급의 일상과 사회 문제에 대한 관심 그리고 도시 풍경과 일상공간에 대한 비극적이면서도 아름다운 묘사는 램지의 영화가 가진 가장 직접적인 형태의 영국 영화의 유산이다. 1996년 칸 영화제(the Cannes Film Festival)에서 단편영화 부문 심사위원 상을 받았던 작품, 그녀의 첫 번째 단편영화인 <스몰 데스>는 죽음과 고통에 대한 인식이 인간에게, 특히 어린아이에게 가져다주는 단절과 근원적인 외로움에 대해 이야기한다. 이 단편영화는 모두 3개의 짧은 에피소드 <엄마 아빠 Ma and Da>, <이런! Holy Cow>그리고 <농담 Joke>으로 이루어져 있다. 하층민 집의 거실, 부엌, 빈민가 주변의 하천과 들판, 하층민의 거주지를 대표하는 정부 임대 주택의 출입구 등, 지극히 사적이며, 소외된 공간을 배경으로 그곳에서유년 시절을 보내는 어린이들의 시선과 행동을 통해 이후 어른 세계에서 더욱 철저하게 만나게 될 소통의 부재, 경제적 사회적으로 구분된 삶 그리고 도덕의 부제에 대해 말한다. 램지의 두 번째 단편 영화<킬 더 데이>는 사회적으로 경제적으로 철저하게 구분되고 단절된 글래스고우의 빈민가 지역을 배경으로 펼쳐진다. 자신의 친구를 살해했다는 거부할 수 없는 유년 시절의 외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좀도둑 그리고 보호관찰 대상자로 살아가는 한 청년의 삶을 이야기하는 이 영화는 지저분하고 가난한 모습으로 덮인 빈민가 거리와 정부 임대주택을 매우 사실적으로 포착한다.

    1998년 칸 영화제에서 단편 영화 부문 심사위원 대상을 받은 램지의 세 번째 단편영화 <개스맨> 역시 영화의 공간적 배경으로서 글래스고우의 빈민가를 찾는다. 특히, <개스맨>에 등장하는 철길 풍경은 특히 히그선이 정의하는 영국 영화의 표면적이고 도덕적 시선을 담고 있다. 오랜 세월 동안 버려진 것으로 보이는 철길은 이중생활을 하는 아버지가 그의 또 다른 부인이 데리고 나온 자녀를 만나는 일종의 접견 장소로 사용된다. 서로 다른 어머니와 동일한 아버지를 둔 아이들에게 철길은 서로 닮아있음과 다름을 확인하는 장소이다. 아이들은 한 줄로 쭉 이어진 철길을 따라 걸어가면서(그림 1), 지금은 이해할 수없는 어른들의 개인적인 욕심과 관계로 서로 연결되어 있고, 서로 닮았음을 자연스럽게 발견해간다. 크리스마스 파티가 끝나고 집에 돌아오는 길 철길은 정반대로 아버지를 소유하려는 아이들의 마음이 욕심과 질투심으로 표출되는 공간이 된다. 결합과 분리, 혹은 만남과 이별이라는 의미를 하나이기도 하고 여러 갈래로 나누어진 영화 속 철길을 통해 읽을 수 있다. 하지만, 버려진 철길은 단지 이러한 상징을 담은 배경으로만 등장하지 않는다. 도시 이미지를 아름다운 비극으로 담았던 키친 싱크 영화가 그랬던 것처럼, <개스맨>에서 철길은 내러티브에 종속되지 않고 독립되어 스스로 무엇인가를 이야기한다. 그것은70년대 80년대 스코트랜드 경제 부흥시기 이곳을 달렸던 기차와 그속 력이 가져다준 지역 경제의 성장과 그 이후 90년대에 찾아온 경제적 사회적 어려움을 말하고 있다.8)

    그녀의 첫 번째 장편영화 <쥐잡이>는 70년대 후반 이후 스코틀랜드지역의 쓰레기 파업이라는 시대적 배경, 영국 내에서 가장 가난한 지역이라는 불명예를 가진 메리힐(Maryhill) 지역의 빈민가의 주택단지라는 공간적 배경 속에서 펼쳐진다. 이 역사적 사건과 사회적 공간은 램지의 리얼리즘이 영국 영화가 지금까지 만들어온 리얼리즘과 만나는 부분을 보여주기에 충분하다. 물론 동시대의 문제와 공간으로 찾아갔던 영국 뉴 웨이브 영화들과는 다르게 90년대 후반에서 70년대 후반으로 거슬러 올라갔기 때문에, 영화에 등장하는 소품들과 배경들이가지는 진정성은 동시대성과 비교되어 인공적이라 할 수 있지만, 빈민가의 전형적인 낙후 되고, 깨지고, 버려진 모습들로 가득한 풍경을 포착하는 시선은 분명히 그녀가 영국 뉴 웨이브 영화의 전통의 연장선에 있음을 보여준다.

    오염된 하천은 램지의 영화가 사회 소외층과 버려진 공간들에 던지는 시선이 만나는 장소이다. 램지의 하천은 언제나 죽음과 관계되면서 그녀의 영화들을 하나로 묶는다. <스몰 데스>의 두 번째 에피소드<이런!>에서 램지는 남자 아이들의 돌팔매에 맞아 죽어가는 소의 모습을(그림 2) 하천 배경으로 보여줌으로써 하천과 죽음을 연결한다.<킬 더 데이>에서 수로는 살인의 도구가 된다. 주인공은 자신의 친구를 의도적으로 밀어 하천에 빠뜨린다. 이와 비슷하게 <쥐잡이>에서도하천은 죽음과 관련된다. 주인공인 12살의 제임스(James)와 친구 라이언(Ryan)은 동네 하천가에서 어린 아이들 특유의 다소 이유 없는 폭력성이 묻어나는 모습으로 서로 밀치며 장난을 치고 있다. 그러던 중제임스는 얼떨결에 라이언을 하천 깊은 곳까지 밀어 빠뜨린다. 제임스는 그런 자신의 행동에 놀란다. 그리고 멀리 도망친다. 하천에 빠진 라이언은 그대로 죽는다. 이후 하천은 끊임없이 죽음과 그것이 가져오는 두려움이라는 감정을 영화 속에 새기면서 영화 마지막에 이르러 결국 죄책감에서 벗어나지 못한 제임스가 스스로 목숨을 던지는 장소가 된다.

    하지만, 친구의 죽음에서 주인공 자신의 죽음의 장소로 등장하는 하천은 항상 죽음의 의미 속에만 머무르는 것만은 아니다. 하천은 제임스에게 구원과 희망으로 다가오기도 하며, 이 모든 다양한 의미와 감정들이 공존하는 곳이자 서로 만나 충돌하고 그 과정에서 숨겨진 진실과 감정들을 표면 밖으로 표출시키는 하나의 등장인물이 된다. 제임스는 하천 주변을 배회하다가 앤(Anne)이라는 이름의 여자 친구를 만난다. 앤은 이후 라이언의 죽음에 대한 죄책감을 지워줄 수 있는 존재이자 상실감을 채워주는 존재로 제임스에게 다가온다. 영화 중반이후 앤과의 만남은 제임스에게 있어 일종의 구원 의미로 발전한다. 하지만, 그녀와의 만남은 동시에 제임스 스스로 죄책감을 극복해야 한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는 작은 숙제를 가지고 온다. 제임스가 앤을 처음으로 만나기 전, 앤은 동네 불량 청소년들의 놀림을 받고 있었다. 그들은 그녀의 두꺼운 안경을 벗겨 하천 어디론가 던져버렸다. 그들이 사라지고 난 후, 앤은 하천 주변을 거닐던 제임스를 만난다. 그녀는 제임스에게 그들이 던진 안경이 어디에 있는지 혹시 아느냐고 묻는다. 제임스는 하천의 얕은 곳에 빠진 그녀의 안경을 보고 있지만, 라이언의 죽음에서 오는 두려움과 죄책감 때문에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는다. 아무도 알지 못하는 제임스의 죄책감은 영화 중반 제임스의아버지가 하천에 빠진 제임스의 친구 케니(Kenny)를 구출하는 사건을 통해 구원되는 듯하고, 관객은 그의 삶에서 하나의 희망을 기대할 수 있게 된다. 그러나 이 희망은 곧 사라진다. 앤에게서 따듯한 사랑을 느낀 그는 그녀의 안경을 찾으러 하천을 다시 찾아간다. 하지만, 그 죄책감과 두려움에 제임스는 하천에 들어가 앤의 안경을 꺼내지 못하고, 단지 나뭇가지로 건져 내려 하다가 포기하고 만다. 지금까지 하천과 철길의 묘사에서 엿볼 수 있듯 램지는 풍경을 등장인물의 심리상태를 은유하는 방식으로 사용하기보다는 영화 이야기 전개를 직접 구성하고 만들어가는 한 명의 등장인물처럼 사용한다. 램지는 실제 역사적인 공간에서 영화를 찍고 하나의 공간과 사물에 다양한 의미를 부여함으로써 풍경을 등장인물로 만든다. 이러한 방법론은 램지의 영화가 소외된 계급과 공간에 사회적 시선을 잃지 않으며 영국 영화가 만들어온 표면적 그리고 도덕적 리얼리즘을 이어가게 만든 원칙이었다.

    80년대 그리고 90년대 영국 영화는 매우 비슷하면서도 태생이 다른 두 종류의 영국 영화로 구분되었다. 영화 역사가 존 힐(John Hill)의 설명에 따르면, 그 한 종류는 1924년 올림픽에 출전했던 두 명의 영국 육상선수에 관한 영화인 휴 허드슨(Hugh Hudson)감독의 <불의 전차 Chariots of Fire>(1981)로 대표되는 60년대 영국 뉴 웨이브의 전통을 계승하는 잉글랜드 영화들이고, 다른 한 종류는 빌 포시스(Bill Forsyth) 감독의<그레고리의 소녀 Gregory’s Girl>(1981)로 대표되는 스코틀랜드에서 제작된 스코틀랜드의 민족과 사회에 관한 영화들이다. 당시 스코틀랜드에서 제작된 영화들이 영국 영화 역사의 20년이라는 시간의 절반을 설명할 수 있었던 것은 이들 영화가 60년대 영국 뉴 웨이브 영화의연장선에 있으면서도 그 전통을 탈피하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평가됐다.9) 새로운 변화를 가져왔던 80년대 그리고 90년대 스코틀랜드 영화의 시작은 무엇보다도 1980년대 시작된 공중파 방송 채널 4(Channel 4)와 스코틀랜드 BBC(Scotland BBC)의 극영화 지원 정책과 스코틀랜드지역의 영화와 비디오 산업을 육성하기 위해 설립된 스코틀랜드 영화제작 펀드 (the Scottish Film Production Fund), 글래스고우 영화 펀드(the Glasgow Film Fund)등과 같은 지원 정책의 결과였다.10) 이 시기를 대표하는 이안 셀러(Ian Sellar)의 <비너스 피터 Venus Peter> (1989)와<프라하 Prague>(1992), 빌 포시스의 <그레고리의 소녀>, 대니 보일의<쉘로우 그레이브 Shallow Grave>(1995)와 <트레인스포팅 Trainspotting>(1996),켄 로치 감독의 <카라의 노래 Carla’s>(1996)와 <내 이름은 조 My Name is Joe>(1998), 데이비드 헤이먼(David Hayman)의 <소리없는 비명 Silent Scream>(1990), 피터 뮬란의 <고아 Orphans>(1997), 그리고 램지의 <쥐잡이> 모두 이 지원정책의 결과였다. 하지만 “영국 영화가 움직이고 있다”라는 희망적인 평가를 불러일으킬 수 있었던 데는 당시 스코틀랜드 영화가 영국이라는 하나의 국가 속에서 스코틀랜드 민족의 정체성과 사회에 대해 지속적으로 던졌던 문제의식 때문이었다.11) 이들 영화는 스코틀랜드 지역의 산업화, 주택문제, 환경문제, 그리고 마약, 술, 폭력이라는 당시 중요한 사회 문제들을 다루었고, 이를 통해 스코틀랜드 민족의 정체성에 대해 이야기했다. 이러한 이미지들은 이후 많은 영화 속에서 당시 사회를 보여주는 전형적인 이미지들로 자리잡았다. 무엇보다도 특히, 앞에 언급했던 영화들이 대부분 어린아이와 청소년의 시선을 통해 이러한 사회 문제를 다루고 있다는 점은 당시 스코틀랜드 영화가 만들었던 가장 핵심적인 전통이었다.12) 80년대 후반 그리고 90년대 초반 스코틀랜드 영화가 만든 어린아이와 청소년의 시선을 통한 사회비판이라는 전통적 원칙은 그녀의 전작들이 어린아이와 청소년들을 주인공으로 그들의 폭력성과 그로 말미암은 외상에 대해이야기하고 있다는 점에 비추어볼 때, 스코틀랜드 출신인 램지의 영화에 일종의 태생적인 영향이 되었다. 다음 그녀의 인터뷰에서 이 태성적 영향을 어느 정도 찾아볼 수 있다.

    사회 소외 계층의 삶, 빈민가, 청소부 파업, 어린아이들의 세계로 향했던 그녀의 시선은 그녀의 영화들을 과거 키친 싱크 영화와 90년대 뉴 스코틀랜드 영화들의 연장선상에서 바라보게 하는 요소였다. 하지만, 램지는 그 어디에도 속하지 않고 싶어 했다. 유럽이라는 커다란 대륙적 자장 속에서 할리우드 풍이 아닌 영화로 읽히기를 원했다. 과거로부터 이탈하는 그녀의 영화적 시선은 가장 현실적인 공간에 가장실험적인 영화적 화법을 결합시키는 형태를 보여왔다. 다음에 이어지는 글은 램지의 새로운 리얼리즘을 구성하는 정적인 영화적 화법에 대한 부분이다.

    4)존 그리어슨과 리얼리즘에 관한 논의는 다음 자료를 참조할 것. Ian Aitken,“John Grierson, Idealism and the Inter-War Period,”Historical Journal of Film, Radio and Television, vol. 3, No. 3, 1989; Ian Aitken, Film and Reform: John Grierson and Dosumentary Film Movement, Routledge, 1990; John Grierson, Grierson on Documentary, Faber and Faber, 1946.  5)Andrew Higson,“Space, Place, Spectacle: Landscpae and Townscape in the Kitchen Sink Film,”in Andre higson (ed.), Dissolving Views: Key Writings on British Cinema, Cassell, 1996, p.136.  6)같은 책, 137-142쪽.  7)앞에 언급한 주요 작품 속 풍경장면에 대한 좀더 구체적인 설명을 위해서는 다음 부분을 참조할 것. 같은 책, 138-154쪽. 영국 뉴 웨이브 리얼리즘의 특성에 대한 좀 더 구체적인 분석을 위해서는 다음 책을 참조 할 것. Ferry Lovell,“Landscape and Stories in 19960s British Realism,”in Andrew Higson (ed.), Dissolving Views: Key Writings on British Cinema, Cassell, 1996, pp.155-177.  8)2차 세계대전 이후 경제 붐과 90년대 경제 후퇴에 관한 전반적인 사항에 대해서는 다음 책을 참조할 것. David McCrone, Understanding Scotland, Routledge, 2005, pp.52-77.  9)John Hill, British Cinema in the 1980s: Issues and Themes, Claredon Press, 1990, pp. 242-244.  10)Duncan Patrie, Screening Scotland, BFI, 2000, pp.173-174.  11)British Cinema in the 1980s: Issues and Themes, p.244  12)Screening Scotland, p.151.  13)Ratcatcher, p.84.

    3. 시적 리얼리즘 그리고 정적인 순간

    시적(Poetic)이라는 표현은 명확하게 정의되지는 않았지만, 영화의 객관적 재현의 한계 너머에 있는 현실의 내면을 포착하는 영화들 혹은 그 방법론을 의미하고자 유럽 영화의 역사 속에서 사용되었다. 1920년대 프랑스의 영화 비평가 루이 델뤽(Louis Delluc)과 장 엡스텡(Jean Epstein)은 다른 예술과 차별되는 방식으로 영화만의 독특한 미학적 경험을 만드는 영화를, 삶의 흐름을 포착하는 영화를 가리켜 시적 영화 혹은 순수 영화(pure cinema)라고 불렀으며, 영화의 본질을 여기서 찾으려고 시도했다.14) 사회적 문제들을 직접적으로 언급하기보다는 의도적으로 피하면서 영화의 미학적인 형식에 몰두했던 1930년대 프랑스 영화들을 가리켜 더들리 앤드류(Dudley Andrew)는 시적 리얼리즘이라고 했다.15) 현실의 근원적인 힘, 물과 흙과 바람 그리고 현실 속에 숨겨진 진실을 포착할 수 있는 영화의 힘을 보여준, 자신을 영화감독이 아닌 시인으로 불렀던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의 영화들에서 시적이라는 표현은 그 자리를 찾은 듯했다.16) 영국 뉴 웨이브 영화들은 표면적 리얼리즘과 도덕적 리얼리즘이 완벽한 형태로 결합하였다는 의미에서 시적 리얼리즘이라는 수식어를 얻었다.17)

    램지는 또 다른 의미에서 시적이라는 수식어와 어울리는 리얼리즘영화를 만들어왔다. 그녀의 리얼리즘은 인공적인 무대장치와 공간에서현실의 공간과 대상을 향해 카메라의 시선을 이동시켰다는 점에서 30년대 프랑스 영화의 시적 리얼리즘, 그리고 풍경과 대상을 하나의 인물처럼 포착하고 그것을 통해 사회적 메시지를 전했다는 의미에서 영국 뉴 웨이브 영화들 그리고 90년대 스코틀랜드 영화들과 같은 의미에서 시적이라는 평가를 받을 수 있다. 하지만, 풍경과 대상들을 포착하는 램지의 렌즈는 앞의 전통들이 근본적으로 바탕을 두었던 거리두기라는 정치적 사회적 목적이 담긴 필터를 가지고 있지 않다. 대신, 램지는 여러 층으로 덧칠된 그림의 다양한 색들을 조사하는 예술품복원사의 날카로운 시선 혹은 “환자를 수술하는 외과의사의 손놀림”과 같은 능숙함을 렌즈에 더해, 더는 관찰자와 대상 사이의 거리감이존재하지 않는 리얼리즘을 만든다. 대상의 내면으로 깊숙이 들어가는 램지만의 이 시선은 정적(Still)인 형태로 영화 속에 나타난다.18)

    램지의 영화는 정적이다. 바로 이 점이 그녀의 영화가 과거의 전통들에서 이탈하는 부분이 된다. 영화는 원칙적으로 운동하는 이미지를 그 본질로 하고 있음을 상기하자면, 정적 상태의 이미지는 영화의 원칙에 어긋나지만, 램지의 영화는 오히려 정적인 상태의 이미지를 통해 가장 영화적인 순간들, 그 이상으로 현실적인 경험들을 만들어 낸다. 램지의 영화는 영화 속 세상으로 관객들을 초대하는 통로로서, 현실과 몽상 혹은 현실이 아닌 공간 사이의 경계로서, 등장인물 혹은 배경이라는 외부에서 그 내면으로 들어가는 문턱으로서, 그리고 이 모든 것을 초월해 대상 그 자체를 물신화하는 마법으로서 정적 이미지들을 사용한다.

    정적인 순간들을 만드는 과정에서 램지는 사운드, 클로즈업 그리고 느린 화면 기법을 절묘하게 사용한다. 스틸 사진처럼 보이도록 인물을 한 곳에 고정하고 클로즈업으로 크게 확대하여 정적인 순간을 만들어내는가 하면, 정적이라는 표현과 모순적으로 들리지만, 움직이는 대상을 느린 화면으로 포착함으로써 정적인 느낌을 만들어 낸다. 이렇게 정적인 순간에는 늘 풍경 혹은 인물과 결합한 소리 대신 화면 밖의 공간과 관련된 소리 그리고 주제 음악을 결합한다. 그녀의 이러한 이중적인 사운드는 정적 순간이 완벽하게 몽상적이지 않은 늘 현실과 연결된 곳임을 강조하기 위함이다.

    파리의 도스토옙스키로 불리는 로베르 브레송(Robert Bresson)의 영화 <소매치기 Pickpocket>(1959)의 한 단면을 그대로 옮겨온 듯한 <킬더 데이>, 이 단편영화에서 램지는 주인공에게는 단지 무의미하게 다가오는 일상의 순간에 정적인 시선을 던진다. 좀도둑으로 살아가는 주인공에게 아침을 알리는 밝은 햇빛과 창밖에서 들려오는 일상의 소리는 무의미하다. 이들은 단지 그에게 있어 삶은 단지 견디는 것이라는 점을 말하려는 듯 마치 끄기 싫은 자명종 소리처럼 희미하지만, 끊임없이 그의 좁은 방 작은 창문으로 흘러들어온다. 램지는 침대에 눈을 뜬 채로 누워있는 주인공의 얼굴을(그림 3) 아무런 움직임 없이 클로즈업에 담아 보여준다. 그의 얼굴은 마치 죽은 사람의 얼굴처럼 창백하고, 눈동자는 허공을 향해 미동도 없이 정지해 있으며, 숨을 쉬지 않는 듯 표정은 굳어 있다. 그의 얼굴은 아침 햇살에 더욱 창백해 보이는 듯하고, 일상의 소리는 끝없이 들려온다. <킬 더 데이>는 이렇게 시작한다. 관객의 시선을 압도할 정도로 세련된 화면은 아니지만 무서울 정도로 주인공의 내면으로 관객을 이끌고 간다. 이 장면은 영화후반 마약에 취한 주인공의 모습을 담아내기 위해 같은 형태로 다시 사용된다. 주인공은 그날 훔친 돈으로 마리화나를 산다. 약에 취한 그는 어린 시절 추억으로 돌아가는 몽상에 빠진다. 그 추억의 장소에서 그는 친구들과 동네 언덕과 하천 주변을 서성인다. 불현듯 그의 몽상에 끼어드는 죽음이라는 순간. 하천 둑에 않은 친구를 뒤에서 밀어 빠뜨리고 도망가는 어릴 적 자신의 모습을 보게 되는 주인공. 그리고 그는 그 죄로 자신이 청소년 시절을 보냈던 지금 자신의 방보다 더 좁은 감옥에 있는 자신을 본다. 이 몽상 장면들은 영화 중반에 시작되는데, 그 시작점이 되는 몇몇 짧은 쇼트들은 약에 점점 취해가는 듯 보이는 그의 표정과 몸짓을 정적인 상태로 담아 몽상으로 들어가는 문턱이 된다. <킬 더 데이>에서의 이 정적인 쇼트들은 주인공의존재감이 만져질 듯 화면 위로 펼쳐진다.

    그녀가 말하는 경제적인 표현은 앞의 <킬 더 데이>의 예에서처럼 풍경과 대상을 정적인 이미지로 담아내는 표현방식으로 실천되었다. 영화 <쥐잡이> 곳곳에는 <킬 더 데이>에서 보였던 정적인 이미지들이 들어가 있다. 영화 초반, 하천에 빠진 라이언을 뒤로하고 도망치던 제임스는 불길한 예감에 뒤를 돌아본다. 램지는 이 모습을 마치 정사진처럼 담아낸다. 라이언의 죽음을 암시하는 듯 보이는 그의 표정을 보여주는 이 장면은(그림 4) 짧은 순간이지만 제임스의 내면세계를 만지고 느낄 수 있듯이 다가온다.

    한편, 램지의 정적인 이미지는 움직임을 통해 가장 효과적으로 완성되는 듯 보인다. 특히, <쥐잡이>에서 이러한 운동하는 정적인 순간들은 마치 현실 세계의 일부분인 것처럼 일상공간과 아무런 경계 없이 등장한다. 제임스가 사는 동네는 청소부 파업 때문에 쓰레기 더미로 가득하다. 텔레비전 뉴스는 쓰레기 더미가 일으키는 위생 문제와 쓰레기 더미를 파헤쳐 쥐를 잡는 어린아이들을 연결하며 장기화한 청소부 파업을 비난한다. 이 뉴스를 보는 제임스, 그는 TV 속에서 자신의 동네에서 일어나는 일들과 똑같은 풍경을 본다(그림 5). 하지만, 이 동네에는 제임스를 제외하고 아무도 뉴스가 전하는 위생과 어린이 문제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는 듯 보인다. 아이들은 긴 나뭇가지로 쓰레기봉투를 힘차게 내리치며 쥐 잡는 일에 신이나 있으며, 쥐는 그들의 장난감이 되어 있다.

    램지는 이러한 장면들을 통해 어린아이 세계에 담긴 폭력성과 소외감을 이야기한다. 쥐 사냥을 통해 드러나는 아이들의 폭력성을 포착하는 램지의 영화적 시선은 아무런 변형 없이 주로 사실적인 형태로 담긴다. 하지만, 내러티브와 결합하면서 축적되는 이 폭력성은 영화 중반 제임스의 쥐 사냥을 통해 극대화된 형태로 표출되는데, 램지는 이 순간을 정적인 이미지들로 포착한다. 쓰레기봉투 사이로 피해 다니는 쥐, 기다란 나뭇가지를 휘두르는 제임스의 팔 그리고 쥐를 향해 쏟아지는 폭력성이 담긴 제임스의 얼굴이 아무런 배경 음악과 소리 없이 느린 화면으로 포착된다. 이러한 형태의 정적 이미지는 영화 후반 제임스의 친구 케니를 통해 다시 한 번 등장한다. 케니는 쥐 사냥과는 거리가 먼, 어쩌면 쥐잡이를 하는 평범한 아이들과는 비교해 다소 모자라 보이는 아이다. 케니는 오히려 하얀 생쥐를 애완용으로 키우는 쥐를 좋아하는 소년이다. 하지만, 영화의 마지막 부분, 쥐로 가득하고 오염된 하천이 흐르는 그리고 아무런 희망도 보이지 않는 이곳에 제임스가 환멸을 느껴갈 때쯤, 케니는 쥐 사냥에 아무런 죄의식을 느끼지 못하는 평범한 동네 아이들처럼 변해있다. 청소부 파업의 장기화가 지속되자, 정부가 보낸 군인들이 쓰레기 청소를 위해 동네에 들어온다. 영화는 쓰레기를 치우는 군인들과 그 사이에서 쥐를 사냥하고 다니는 어린이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제임스는 이들을 그냥 스쳐 지나간다. 케니는 제임스를 향해 그의 이름을 부르며 자랑하듯 그가 잡은 쥐를 흔든다(그림 6). 램지는 케니의 모습을 분간할 수 없는 잡음에 섞어 느린 화면에 담아 보여주는데, 이는 마치 케니의 내면에서 생성되고 있는 폭력성을 보여주는 듯하다.

    느린 화면을 통해 만들어지는 정적인 이미지는 특히 영화 마지막 부분에서 가장 명확하게 제임스의 내면을 보여준다. 영화 후반, 케니를 구출한 일로 제임스의 아버지는 명예 시민상을 받는다. 가족 모두 저녁 파티를 준비하며 아버지의 귀가를 기다리고 있다. 하지만, 아버지는 만취한 모습으로 늦게 들어와 부인에게 폭력을 휘두르고, 파티는 그대로 끝난다. 집을 뛰쳐나온 제임스는 무작정 앤의 집으로 향한다. 달빛아래에서 하천 둑을 따라 뛰어가는 제임스를 램지는 약 30초가 넘게 카메라에 담는다(그림 7). <400번의 구타>의 마지막 장면을 연상시키는 이 달리기 장면은 처음 약 20초 동안 하천 둑을 따라 뛰어가는 제임스를 그대로 풀 샷으로 측면에서 따라가며 보여주다가, 나머지 13초 동안은 좀 더 가까이 다가가 느린 화면으로 담아낸다. 느린 화면으로 전환되는 순간, 이 장면은 초 현실의 공간이 된다. 밤의 정적만이 미세하게 흘러나오는 이 순간은 외로움을 벗어나고자 하는 제임스의 내면을 더 이상의 영화적 꾸밈없이 효과적으로 포착하고 있으며, 그동안 벗어나고자 했던 하천은 이 순간을 통해 제임스가 탈출하고 싶은 곳이면서도 앤의 집으로 향하는 하나의 길이라는 이중적인 의미를 가진다.

    14)Richard Abel, French Film Theory and Criticism: A History/Anthology Volume II: 1929-1939, Princeton University Press, 1988, pp.14-15.  15)Dudley Andrew, Mists of Regret: Culture and Sensibility in Classical French Film, Princeton University Press, 1995. 시적 리얼리즘에 대한 논의는 첫 번째 장“Introduction: A Compass in the Mist of Poetic Realism”에 자세하게 기술되어있다.  16)Robert Bird, Andrei Tarkovsky: Elements of Cinema, Reaktion Books, 2008, p.12.  17)“Space, Place, Spectacle: Landscape and Townscape in the Kitchen Sink Film,”p.134; Stephen Lacey, British Realist Theatre: the New Wave in its Context 1956-1965, Routledge, 1995, p.170-173  18)Walter Benjamin,“The Work of Art in the Age of Its Reproducibility in Howard Eiland and Michael W. Jennings (eds), Walter Benjamin: Selected Writings Volume 3, 1935-1938, The Belknap Press of Harvard University Press, 2002, p.115-116.  19)Liese Spencer,“What are you looking at?”Sight and Sound, October 1999, p.18.

    4. 결론

    램지는 가장 영국적이고 스코틀랜드적인 리얼리즘 영화로 분석될 수 있는 영화들을 만들어 왔다. 하지만, 동시에 전혀 다른 색채를 더하면서 전통을 확장했다. 그녀가 전작을 통해 보여준 노동자 계급의 일상, 도시 문제, 주택 문제, 환경 문제, 청소년의 폭력성에 대한 도덕적 관심은 50년대 프리 시네마와 60년대 영국 뉴 웨이브 영화들 그리고 90년대 스코틀랜드 영화들과 그녀의 영화가 연결되는 요소들이었다. 하지만, 이러한 사회적 소제들을 향한 그녀의 영화적 시선은 엄격한 의미에서 두 전통을 이탈했다. 램지는 죽음, 폭력성, 소외, 탈출이라는 그녀의 주제의식이 표출되는 순간을 그녀만의 사운드, 클로즈업, 느린 화면의 사용을 통해 정적인 형태로 담았다. 이렇게 만들어진 실험적인화법은 사실적인 장면들과 아무런 경계선 없이 엮여 사실적인 측면들이 더 강해지는 결과를 가져왔다. 초현실적인 장면을 통해 가장 사실적으로 영화 속 풍경과 인물의 내면으로 관객들을 초대하는 그녀의 화법은 현재 새로운 리얼리즘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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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림 1] 영국 영화의 표면적 그리고 도덕적 리얼리즘 시선이 담긴 <개스맨>에서의 철길 풍경
    영국 영화의 표면적 그리고 도덕적 리얼리즘 시선이 담긴 <개스맨>에서의 철길 풍경
  • [그림 2] <스몰 데스>의 두 번째 에피소드 <이런!>에서 하천과 죽어가는 소, 이 두 이미지의 결함
    <스몰 데스>의 두 번째 에피소드 <이런!>에서 하천과 죽어가는 소, 이 두 이미지의 결함
  • [그림 3] 램지는 아무런 미동도 없는 그의 얼굴을 오랫동안 클로즈업으로 담아낸다.
    램지는 아무런 미동도 없는 그의 얼굴을 오랫동안 클로즈업으로 담아낸다.
  • [그림 4] 라이언이 빠진 강가를 뒤돌아보는 제임스
    라이언이 빠진 강가를 뒤돌아보는 제임스
  • [그림 5] 영화 <쥐잡이>에 삽입된 70년대 후반 쓰레기 파업과 빈민가 어린아이들의 쥐잡이 관련 뉴스 화면
    영화 <쥐잡이>에 삽입된 70년대 후반 쓰레기 파업과 빈민가 어린아이들의 쥐잡이 관련 뉴스 화면
  • [그림 6] 제임스를 향해 쥐를 흔들고 있는 케니. 램지는 이 장면을 정적인 화면을 통해 케니의 내면에서 생성되는 폭력성을 보여준다.
    제임스를 향해 쥐를 흔들고 있는 케니. 램지는 이 장면을 정적인 화면을 통해 케니의 내면에서 생성되는 폭력성을 보여준다.
  • [그림 7] 앤의 집으로 달려가는 제임스. 하천은 앤과 자신의 공간을 이어주는 통로이자 제임스가 극복해야하는 대상이다.
    앤의 집으로 달려가는 제임스. 하천은 앤과 자신의 공간을 이어주는 통로이자 제임스가 극복해야하는 대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