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study on ‘High school Movie’ in the 1970’s and the 1980’s of South Korea

1970년대와 1980년대 한국 고교생영화의 관계성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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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ABSTRACT

    This thesis is a study of the relationship between the <Yalkae-A Joker In High School>(1977) and <Happiness Does Not Come In Grades>(1989). These movies depicted High school life of the students. Therefore, these movies have similar peculiarity in characters, narratives, episodes, cameras and editing styles, etc. However, there are differences between these movies in themes and more precise and partial side. The differences were generated from the difference of a cinema production systems and social situation at the time of having been reflected in the movies.


  • KEYWORD

    South Korea , cinema , High school Movie , teenpics , Yalkae-A Joker In High School , Happiness Does Not Come In Grades , Never Never Forget Me

  • 1. 들어가는 말: 문제 제기와 연구의 목적

    특정한 시기 특정한 소재의 영화들이 제작되어 이전과는 다른 새로운 경향을 형성하고 시대를 풍미한 뒤 쇠퇴하거나 소멸하는 모습은 영화사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는 풍경이다. 한국영화사의 경우, 1970년대 후반 고등학교를 주요 공간으로 설정하여 고등학생 주인공(들)의 생활을 담은 영화들이 작품군을 이루게 되는데, 그 대표작이 바로 석래명 감독의 <고교 얄개>(1977)였다. <고교 얄개>는 대중 관객과 공식 평단 양쪽으로부터 동시에 좋은 반응을 얻으면서 ‘침체’와 ‘암울’과 ‘불황’으로 점철된 한국영화계에 “십대 영화 제작 선풍을 일으켰다.”1)

    그로부터 10여년 뒤에는 강우석 감독의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1989)를 필두로 1990년대 초반까지 다시 한 번 고등학생과 고등학교를 소재로 한 일련의 영화들이 만들어졌다.2)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는 “성적 지상주의적인 제도교육을 겨냥한 비판”을 통해 “(1970년대의 그것과는 차별화되는) 비판적인 청소년영화의 토대를” (괄호-인용자) 구축한 작품으로 평가받으며3) “개방화 시대를 향한 자유화의 물결”4) 속에 표류하던 한국영화에 자그마한 방향키를 제공하였다.

    이처럼, <고교 얄개>와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는 비슷한 영화적 소재로써 어려움에 처해 있던 한국영화의 제작 산업 환경을 타개하고자 하였다는 점부터가 닮아 있지만, 이상하리만큼 두 영화의 관계성에 주목한 연구와 언급은 거의 없었다.

    여기에는 두 영화를 포함하는 일련의 작품군에 대한 개념화 및 범주화의 문제가 결부되어 있다. 한국영화통사 연구의 경우를 예로 들면, <고교 얄개>가 속한 1970년대 영화들은 대체로 ‘하이틴영화’로 소개되거나5) 명명되고6) 있는 반면,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가 속한 1980년대 작품들은 별도의 호칭이 부여되지 않거나 다소 불명확한 ‘청춘/청소년영화’ 등으로 호명되고 있다.7) 가장 커다란 원인은 두 영화를 응시하는 시선의 초점이 각기 다르기 때문이다. 그렇다 보니 관련 작품이 언급되는 과정에서 <고교 얄개>의 경우 영화 제작경향의 측면에,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의 경우 영화 산업양상의 측면에 중심이 두어지고 있었던 것이다.8)

    최근에는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를 비롯한 1980년대 작품군에도 ‘하이틴영화’라는 용어를 덧붙이며 그 특징을 조합하려는 시도의 연구가 행해지기도 하였다. 정민아의 경우가 그러한데, 그는 “1980년대 새로이 등장한 하이틴영화는 1970년대 얄개 시리즈, 진짜진짜 시리즈와는 달리 사회문제를 적극적으로 반영, 십대들의 고민을 풀어내는 방식으로 십대 관객의 관심을 받으며 연속해서 제작된다.”9)면서 특히 이야기의 사실적 묘사, 다양한 인물군상의 표현과 코믹한 에피소드의 연결의 자연스러움 등에 기인하여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가 특별한 지위를 지닌다고 주장한다.

    일견 타당한 견해로 보이나, 1980년대 하이틴영화(청소년영화)를 지나치게 특성화하고 있다는 인상을 지우기 어렵다. 과연 1970년대 하이틴영화(청소년영화)에는 사회 문제의 반영, 십대 관객의 유치, 연속적 제작, 사실적 묘사, 인물군상의 다양성, 코믹한 에피소드 등의 요소가 부재하거나 미약하였던 것일까. 또는 하이틴영화(청소년영화)의 제작 및 유행에 있어 영화 산업적인 측면이 커다란 부분으로 자리하였던 것은 1980년대에만 해당되는 현상이었을까. 그게 아니라면 어떠한 이유로 1970년대 작품군과 1980년대 작품군이 ‘하이틴영화(청소년영화)’라는 동일한 용어로 범주화될 수 있는 것일까. 이러한 물음들에 대한 명확한 답을 구하기 위한 최적의 방법은 이들 영화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다각적이고 다층적으로 분석하여 그 관계성을 조명하는 일이라 할 수 있다.

    이에, 본고는 1970년대와 1980년대 제작된 고등학생 및 고등학교 소재 한국영화의 관계성을 조명함으로써 각각의 작품군의 효시작이자 대표작인 <고교 얄개>와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의 연결 고리를 밝히고자 한다. 그리하여 1970년대와 1980년대 한국영화사에서 일정부분 지류를 확보하고 있던 이른바 하이틴영화(청소년영화) 속의 ‘고교생영화’의 연원과 의미, 흐름과 특징 등을 도출하고자 한다. 이러한 작업은 1970년대 및 1980년대 한국영화 제작경향의 특수성을 이해하는 하나의 방식이 되기도 할 것이다.

    이를 위해 본론에서는 가장 근본적인 용어 문제에 대한 논의를 통해 1970년대와 1980년대 고교생영화의 유사성을 전반적으로 확인하고, 이들 작품군의 기원 및 장르화 경향에 대한 검토를 통해 영화 제작 상의 흐름을 종합적으로 알아보며, 두 작품(군) 사이에서의 전형의 구축 및 수용의 흔적을 발굴하는 동시에 그것의 토대로 작용한 동시기 영화계 상황 및 정치, 경제, 사회, 문화적 환경을 구체적으로 고찰한다.

    1)김종원ㆍ정중헌, 『우리영화 100년』, 현암사, 2001, 325쪽.  2)이러한 류의 영화들이 주로 제작된 것은 1990년대 초반이지만 그 효시작이자 대표작인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의 개봉년도가 1989년이라는 점을 감안하여, 본고에서는 이들 작품군을 ‘1980년대 하이틴영화’ 또는 ‘1980년대 고교생영화’로 통칭하고자 한다.  3)유지나 외, 한국영상자료원 편, 『한국영화사 공부: 1980∼1997』, 이채, 2005, 70쪽.  4)호현찬, 『한국영화 100년』, 문학사상사, 2000, 241쪽.  5)정중헌의 경우, “‘고교’라는 수식어가 붙은 십대 영화(일명 ‘하이틴영화’)”로 소개하고 있다. 김종원ㆍ정중헌, 앞의 책, 같은 쪽.  6)이효인 외, 한국영상자료원 편, 『한국영화사 공부: 1960∼1979』, 이채, 2004, 123쪽. / 김미현 외, 『한국영화사: 開化期에서 開花期까지』, 커뮤니케이션북스, 2006, 243쪽. / 정종화, 『한국영화사』, 한국영상자료원, 2008, 169쪽.  7)강소원은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를 ‘청춘/이상향’이라는 카테고리에 포함시키면서도 “청춘영화보다는 청소년영화라고 불러야” 한다고 언급하고 있는데,(유지나 외, 앞의 책, 같은 쪽.) 정종화의 경우 이에 따라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 등의 작품을 ‘청춘/청소년영화’에 포함시키고 있다. (정종화, 앞의 책, 195쪽.)  8)때문에, <고교 얄개>의 경우 ‘하이틴영화’라는 이름으로 관련 영화들이 정리되어 있는 반면,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의 경우 “기획이라는 개념을 처음 한국영화산업에 도입”(유지나 외, 앞의 책, 197쪽.)한 작품으로서 “신진 프로듀서의 기획영화”(김미현 외, 앞의 책, 323쪽.)의 부류로 소개되고 있다.  9)정민아, 「이유 있는 반항: 1980년대 후반 “학교문제”를 다룬 하이틴 영화」, 한국영화학회 춘계학술세미나 ‘한국영화와 권력형성’, 2011, 38쪽.

    2. 1970년대와 1980년대 고교생영화의 용어 문제 및 영화적 유사성

    <고교 얄개>와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가 포함된 일련의 작품들의 보편적인 명칭은 무엇이며 그것은 어떻게 붙여졌던 것일까. 1970년대 하이틴영화(청소년영화)에 관한 최초의 본격적인 연구를 시도한 박민정의 언급을 참고해보자.

    이 글에서 박민정은 관련 영화에 대한 다양한 용어가 사용되었는데, 그것에 대한 합의가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한국영화사를 정리한 단행본 등을 통해 ‘하이틴영화’로 정착되었으나, 그렇다고 그 의미가 명확해진 것은 아니라고 설명한다.

    그런데, 본고의 각주 6)번과 7)번을 눈여겨보면, 박민정의 논문이 발표되기 전에 나온 『우리영화 100년』에서는 이러한 작품군을 ‘십대 영화(일명 ‘하이틴영화’)’로 소개하고 있으며,11) 그것을 ‘하이틴영화’로 명명하고 있는 단행본은 정작 논문 발표 이후에 출간된 것들이라는 사실이 발견된다. 이후 학계에서 대개 ‘하이틴영화’라는 용어로 통용되어 왔고, 이는 최근 정민아의 연구로까지 이어지고 있다.12)

    그렇다면, 이전까지는 용어에 대한 일종의 ‘합의’가 전혀 없었던 것일까. 박민정의 연구 및 이후 한국영화사 연구들의 용어 선택에 영향을 미쳤을지 모를, 용어 사용에 대한 논리적 틀이 이전에도 존재하였을 가능성도 배재할 수는 없지 않을까. 확인을 위해 관련 영화에 대한 용어가 나타나기 시작한 당대 영화 포스터 및 신문 기사를 살펴보자.

    1970년대 중후반 하이틴영화 붐을 이끌었던, 일명 ‘진짜진짜 시리즈’ 작품들과 ‘얄개 시리즈’ 작품들의 포스터를 보면 이들 영화를 지칭하는 일관된 용어를 사용한 흔적은 찾기 어렵다. 그러나 당시 신문 기사를 검색하면,13) 두 시리즈를 포함하는 일련의 작품군을 가리키는 용어들이 빈번하게 등장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14) 그것들은 대개 ‘청소년영화’, ‘하이틴영화’, ‘고교생영화’ 등 세 가지로 나뉘는데, 특징적인 점은 이들 용어가 일관성이 결여된 채 쓰였던 것이 아니라 나름의 기준과 질서에 의해 사용되었다는 사실이다.

    당대 대중의 용어 사용 실태를 가장 직접적으로 반영하는 신문 지상(紙上)만을 놓고 보았을 때, 한국에서 ‘하이틴(highteen)’이라는 단어가 실리기 시작한 것은 1950년대 후반이며15) ‘틴에이저(teenager)’처럼 청소년 (대상의) 스타나 문화를 지칭하는 말과 더불어 사용되었다. 그러나 ‘하이틴영화(또는 하이틴물)’라는 용어가 처음 등장한 것은 <진짜 진짜 잊지마>가 개봉된 1976년이 이르러서였다.16) ‘청소년영화(또는 청소년물)’의 경우 제2공화국 시기 영화의 윤리 문제가 대두되면서 잠깐 보였다가17) 이 또한 <진짜 진짜 잊지마>가 개봉된 1976년부터 본격적으로 쓰이게 되었다.18) 이후 ‘하이틴영화’ 및 ‘청소년영화’는 지속적으로 사용되었다. 한편, ‘고교생영화(또는 고교물)’라는 용어는 <고교 얄개>가 개봉된 1977년 이후부터 주로 ‘얄개 시리즈’ 영화를 지칭하게 되었다.19) 이밖에도 <십대의 반항>의 명보극장 상영 신문광고용 포스터에서 ‘십대영화’라는 용어가 발견되기도 하지만20) 이후 신문 지상에서는 거의 찾아볼 수 없으며, ‘고교생영화’를 가리켜 ‘학생영화’로 지칭하는 경우가 포착되기도 하나 이 역시 일시적인 현상에 불과하다.21)

    요컨대, 이러한 작품군이 본격적으로 제작되기 이전인 1970년대 중반까지는 ‘십대영화’, ‘청소년영화’ 등으로 외국영화까지를 아우르는 용어로 쓰이다가, <진짜 진짜 잊지마>가 개봉된 1976년부터 ‘청소년영화’ 또는 ‘하이틴영화’로 정착되어 사용되었다. 특히 <고교 얄개>가 개봉된 1977년부터는 ‘얄개 시리즈’ 영화들에 한해 ‘고교생영화’라는 용어가 붙기도 하였다.22) ‘얄개 시리즈’ 영화들은 하이틴영화의 범주에 포함되어 있으면서 고교생영화로서의 독립성도 어느 정도 확보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관행은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를 필두로 1980년대 후반부터 1990년대 초반까지 제작되는 일련의 영화들로까지 이어지는데, 특기한 점은 ‘하이틴영화’23)와 ‘청소년영화’24)는 계속해서 쓰인 반면 ‘고교생영화’라는 용어는 자취를 감추었다는 사실이다. 1980년대 이후 하이틴영화 전체의 위상이 약화되고 시간이 지나면서 (하이틴영화 내에서의) 고교생영화만의 특징이 (기억 속에서) 희석되어 결국 ‘고교생영화’라는 용어가 ‘하이틴영화(청소년영화)’로 포섭되어 갔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사실 1980년대 후반부터 1990년대 초반까지 만들어진 하이틴영화의 전반적인 성격은, 굳이 나누자면 ‘진짜 진짜 시리즈’ 영화들보다는 ‘얄개 시리즈’ 영화들에 더욱 근접하다. ‘진짜 진짜 시리즈’의 대표작인 <진짜 진짜 잊지마>, ‘얄개 시리즈’의 대표작인 <고교 얄개>, 그리고 1980년대 후반의 대표작인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요>의 전체적인 영화적 특징을 간략히 살펴보자.

    문여송 감독의 <진짜 진짜 잊지마>는 여고생들과 남학생들의 집단적 학교생활을 인서트로 보여주며 시작되는데 거기에는 영화의 여주인공 정아(임예진 분)의 모습도 있다. 타이틀 자막이 사라지면 기차 안에서 영수(이덕화 분)가 같은 칸에 있던 여학생들을 웃음소리를 듣고 고교시절을 회상하는 장면이 이어진다. 이후 카메라는 영수의 기억을 따라 과거 영수와 정아의 목포 고교시절로 플래시백한다. 통학 열차 안에서 우연한 기회에 영수와 정아는 우정을 맺는다. 그리고 학교에서는 이성교제에 대해 엄격한 태도를 보이지만, 결국 그들 사이에는 자연스레 사랑이 싹트고 그들은 장래를 약속하는 사이로까지 발전한다. 그러다가 영수는 서울로 전학을 가고 3년 만에 정아의 집을 방문한다. 그러나 그때는 정아가 악성폐렴으로 세상을 떠난 뒤였다. 이에 영수는 정아의 영정 앞에서 눈물을 흘리고 정아와 함께 거닐던 철길을 보며 그녀를 그리워한다.

    석래명 감독의 <고교 얄개>는 공부에는 관심 없는 유명한 말썽꾸러기 낙제생 두수(이승현 분)가 자신의 장난으로 안경을 잃은 같은 반 학우 호철(김정훈 분)이 우유 배달을 하다가 다리를 다쳤다는 사실을 나중에 알고 죄책감과 책임감에 개과천선하여 부모님, 선생님, 여자친구 등 주변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게 된다는 것을 메인플롯으로 삼고 있다. 여기에 학교, 집, 하숙집, 거리, 빵집, 야외 등 두수의 생활공간을 중심으로 그의 장난어린 행동, 이성에 대한 관심, 의식의 변화, 강인한 의지 등이 서브플롯으로 배치한다.

    강우석 감독의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에는 고등학교 2학년 학생들의 다양한 군상이 펼쳐진다. 주인공은 봉구(허석 분)와 은주(이미연 분)이다. 봉구는 공부에는 관심이 없지만 언제나 얌전하고 차분하고 공부밖에 모르는 같은 반 여학생 은주를 짝사랑한다. 은주는 집안의 환경과 부모의 압력 때문에 우등생임에도 불구하고 늘 성적에 대한 강박을 느끼며 지낸다. 그러던 어느 날 봉구와 은주는 밖에서 만나 시장 등을 돌아다니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지만 다음 시험에서 은주의 성적은 크게 떨어진다. 이로 인해 부모의 차가운 시선을 받은 은주는 결국 아파트 옥상에서 투신자살한다. 며칠 후 은주를 태운 영구차가 학교 안으로 들어오고, 학생들은 그 모습을 애처롭게 바라본다. 이때 봉구는 은주의 장의차로 가서 그녀에게 준비한 미니카세트를 선물로 전달하고 텅 빈 운동장에서 은주를 떠나보낸다.

    이와 같이, 위의 세 작품은 모두 고등학생을 주요 인물(들)로 설정하여 그(들)의 생활을 주요 소재로 다루고 있다. 그러나 영화가 주목하는 대상과 그것에 접근하는 방식은 작품(군)에 따라 다소 차이가 있다.

    <진짜 진짜 잊지마>는 고등학생 남녀의 우정과 사랑에 초점을 두고 있으며, 그들을 둘러싼 주변 인물이나 시ㆍ공간적 배경은 그들의 관계를 지켜주거나 방해하거나 혹은 그 범위를 규정하는 역할로 기능한다.25) 반면 <고교 얄개>와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의 경우 비슷하게 고등학생 주인공의 이야기를 다루면서도 그들의 모든 가치와 모순과 고민과 희망은 ‘학교’라는 상징적인 공간 안에서 의미가 부여된다. 그러니까, <진짜 진짜 잊지마>에서 학교는 주로 공간적 배경으로 존재하는 데 반해 <고교 얄개>와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에서는 단순한 배경 공간을 넘어 주요 인물의 생각의 영역과 행동의 반경을 결정하는 보다 특별한 공간으로 자리하는 것이다.

    이에 따라 <진짜 진짜 잊지마>는 이야기 전개가 영수와 정아의 관계를 중심으로 단선적으로 진행되는 반면, <고교 얄개>와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는 각각 두수와 봉구가 중앙에 위치하면서도 시퀀스나 신에 따라 때로는 주변의 여타 인물들에 의해 에피소드 형식으로 내러티브가 구조화된다. 이때 주변 인물들은 모두 두수와 봉구의 주요 공적 활동 영역인 학교라는 공간에서 관계하는 학생 또는 교사(들)이다.

    영화의 소재와 공간과 인물뿐만 아니라 시간 구성 및 주제화 과정에 있어서도 구분점이 발견된다. <진짜 진짜 잊지마>에서의 남녀 주인공의 만남과 사랑과 이별은 이미 지나간 과거의 일들이지만, <고교 얄개>와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에서의 사건들은 모두 현재 시점에서 발생하는 일들이다. 그렇다 보니, 영화의 주제성 역시 <진짜 진짜 잊지마>의 경우 영수의 기억과 회상을 통해 소환되는 반면, <고교 얄개>와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의 경우 두수와 봉구의 현실 자각에 의해 정제된다. 물론 이들의 자각이 호철의 사고나 은주의 자살을 계기로 발생한 것들이라 할지라도, 두수와 봉구에 있어 호철과 은주가 같은 반 학우라는 점은 두 영화의 성격을 대변한다.

    <진짜 진짜 잊지마>와 <고교 얄개>,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에서 보이는 서사 및 인물, 배경 및 주제에 있어서의 이러한 차이는 이들 작품을 보다 논리적으로 유형화할만한 근거를 제공한다. 그리고 유형화의 범주를 협소화한다면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는 하이틴영화 내의 ‘고교생영화’로 편입된다. 전술한 바처럼, 고교생영화는 하이틴영화의 부류에 속하면서도 별도의 명칭을 부여받은 특별한 경우의 작품군이다. 따라서 여기에는 여타의 하이틴영화와는 구별되는 특징들이 존재하고 그것들은 대개 고교생영화에 공유되어 있다.

    박민정은, 용어의 문제를 감안할 때 ‘하이틴영화’는 크게 첫째 ‘연령’을 기준으로 ‘청소년 영화’ 또는 ‘10대 영화’로, 둘째 ‘신분’을 기준으로 ‘학생 영화’, ‘고등학생 영화’로, 셋째 기타 ‘변주 혹은 하위 하이틴 영화’로 구분된다고 주장한다.26) 그러나 용어 그 자체의 의미를 고려한다면 (청소년의 나이를 어떻게 규정하느냐에 따라 조금 달라질 수 있겠지만) 하이틴영화와 청소년영화는 10대 후반이라는 특정한 연령대를 다룬다는 점에서는 동질성을 지니며 범위가 가장 넓다고 볼 수 있다. 고교생영화의 경우 고등학생과 고등학교를 중점화한다는 점에서 특징을 지니지만, 용어 사용의 관습에 의거하여 영화사 서술에 있어서는 1970년대 일련의 작품들에만 적용시켜 고유한 용어로서 상정해 왔던 측면도 있다.

    그렇지만, <고교 얄개>와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에서 포착되는 것과 같이, <고교 얄개> 류의 1970년대 후반 개봉된 일련의 작품들과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 류의 1980년대 후반 및 1990년대 초반 개봉된 일련의 작품들은 개봉 시점의 시간적인 간격과 이에 따른 영화적 하위 요소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기본적으로는 고교생영화라는 하나의 용어로 충분히 범주화될 수 있다. 부가적으로는 첫째, 1970∼80년대 고교생영화에는 다른 시기의 작품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유사성이 존재하며 둘째, 이들 영화에는 동시기 하이틴영화 중에서도 여타의 작품들과는 구별되는 유사성도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에, 본고에서는 <고교 얄개>와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의 용어를 ‘고교생영화’로 통칭하고자 한다. 후술하겠지만, 여기에는 <고교 얄개>를 위시하여 1970년대 후반 제작된 ‘얄개 시리즈’ 영화들과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 및 주로 1990년까지 만들어진 하이틴영화 작품군이 포함될 것이다. 그리고 다음 장에서는 1970∼80년대 한국 고교생영화의 기원 및 장르화 경향을 살펴보고 제작의 흐름을 파악함으로써, 두 영화가 어떠한 관련성을 지니고 있는지를 고찰해보겠다.

    10)박민정, 「1970년대 하이틴 영화에 대한 장르적 접근과 대중성 연구」, 동국대 석사논문, 2002, 21-22쪽.  11)『한국영화 100년』(2000)의 경우, ‘고교생영화’로 칭하고 있다. 호현찬, 앞의 책, 219쪽.  12)이에 따라, 본고에서는 1970년대와 1980년대 한국 하이틴영화(청소년영화)의 명칭을 단일화하여 ‘하이틴영화’로 통칭하고자 한다.  13)본고에서는 네이버 뉴스라이브러리(http://newslibrary.naver.com)를 통해 주로 ≪동아일보≫, ≪경향신문≫, ≪매일경제≫ 기사를 일련의 작품군을 가리키는 ‘하이틴영화’, ‘청소년영화’, ‘고교생영화’, ‘십대영화’, ‘학교영화’, ‘학원영화’ 등의 검색어를 통해 조사하였다.  14)박민정은 ‘하이틴영화’를 다르게 부르던 기존의 용어로서 연령을 기준으로 ‘청소년영화’, ‘십대(10대)영화’ 및 신분을 기준으로 ‘학생영화’, ‘고등학생영화’ 등이 있었다고 설명한다. 박민정, 앞의 논문, 22-23쪽.  15)≪경향신문≫의 경우 <라디오를 듣고>, ≪경향신문≫1958.9.2, 4면에, ≪동아일보≫의 경우 <앙상블 이룬 영화미 『지지』>, ≪동아일보≫1959.12.2, 4면에 처음으로 등장한다.  16)시기적으로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잇단 「진짜진짜…」시리즈 제작>, ≪동아일보≫1976.9.11, 5면에 실린 기사 내용이다. 첫 부분은 “하이틴영화 「진짜진짜 잊지마」가 지난 봄 7만명 이상의 관객을 동원, 흥행에 성공한 데 힘을 입어 「진짜진짜…」시리즈가 동아수출에 의해 잇달아 제작될 모양이다.”로 시작된다.  17)<청소년영화의 추천제>, ≪경향신문≫1960.11.16, 4면. / <즈와니강의 추억 청소년권장영화로 선정>, ≪경향신문≫1960.12.9, 4면.  18)시기적으로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 「청소년영화」부움 이대로 좋은가?>, ≪동아일보≫1976.7.5, 5면의 기사 제목이다.  19)1977년 한 해에만 <고교깡돌이>(<곧 영화로 될 「깡돌이의 서울」>, ≪동아일보≫1977.3.12, 5면), <꺼꾸리군 장다리군>(<꺼꾸리군 장다리군 영화 촬영 모두 마쳐>, ≪경향신문≫1977.5.11, 8면), <얄개행진곡>(<새영화 <얄개행진곡>>, ≪경향신문≫1977.8.20, 7면), <여고얄개>(<새영화 <여고얄개>>, ≪경향신문≫1977.12.5, 6면)에 관한 기사에 ‘고교생영화’라는 용어가 쓰였다.  20)≪동아일보≫1959.7.17, 4면.  21)<자성 없는 「학생영화」 부움>, ≪동아일보≫1977.5.9, 5면.  22)물론, ‘얄개 시리즈’ 영화들에도 ‘고교생영화’라는 용어와 더불어 ‘하이틴영화(청소년영화)’라는 수식어가 가끔씩이나마 할당되고 있었다. 이는 ‘얄개 시리즈’가 한창 제작되던 시기 주로 감독 등의 인터뷰나 영화 포스터 등에서 찾아볼 수 있다. 예를 들면, 1977년의 경우 ‘청소년영화’라는 용어는 <관객 10만 동원된 「얄개행진곡」>, ≪동아일보≫1977.9.3, 5면 기사의 석래명 감독 인터뷰 중에, ‘하이틴영화’라는 용어는 ≪경향신문≫1977.12.8, 6면 피카디리 상영 신문광고용 포스터 가운데 삽입되어 있다.  23)시기적으로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공감 부른 진실한 영상 「행복은…」>, ≪경향신문≫1989.8.11, 15면에 실린 기사 내용이다.  24)시기적으로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신나는 여름방학 청소년영화 “밀물”>, ≪매일경제≫1989.7.3, 13면에 실린 기사 내용이다.  25)<고교 얄개>와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에서도 주인공 남학생이 같은 또래 여학생을 (짝)사랑하는 내용이 중요하게 다루어지고 있다. 그러나 <고교 얄개>의 경우 그것이 학교생활보다 우선시되지 못하며,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의 경우 애정의 대상이 같은 반 여학생으로 설정되어 있다. 즉, 두 영화에서는 남녀 간의 사랑조차 철저하게 ‘학교’를 떠나서는 시작되기도, (<고교 얄개>에서 두수가 인숙(강주희 분)을 처음 만나는 곳은 다름 아닌 담임교사의 하숙집이다.) 진척되기도, 성취되기도(<고교 얄개>에서 두수가 인숙에 대한 애정을 공인받는 것은 학생의 본분인 공부와 선행의 결과에 의해서이다.) 어려운 것이다.  26)박민정, 앞의 논문, 21-25쪽.

    3. 1970년대와 1980년대 고교생영화의 장르화 경향

       1) 한국 하이틴영화의 기원의 문제와 장르화 경향

    고교생영화 <고교 얄개>와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에 유사한 영화적 특징이 존재하는 것은, 영화 제작 및 개봉 시기의 시간 순서를 고려할 때 <고교 얄개>가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에 영향을 주었기 때문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물론, 이는 비단 고교생영화에 국한된 경우는 아닐 것이다. 다만, 메인플롯, 주요인물, 장면전환, 에피소드, 영상기법 등에서의 1970∼80년대 ‘대학생영화’의 공통점을 <바보들의 행진>(1975)과 <미미와 철수의 청춘스케치>(1987)를 통해 고찰한 연구의 내용을 떠올려보건대,27) 이러한 현상은 특히 특정 연령층과 학생층을 대상으로 하는 작품에서 보다 두드러지게 나타나던 현상이었음이 추측 가능하다. 이에 대한 보다 근본적인 답을 얻기 위해 한국 하이틴영화의 기원 및 장르화 경향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자.

    정민아는 안병섭과 정중헌의 내용을 토대로28) “한국영화에서 하이틴영화가 처음 만들어진 것은 1958년 김기영 감독의 <십대의 반항>으로 본다.”라고 주장한다. 또한 “그 후 꽤 오랜 시간이 흘러 1975년 김응천 감독의 <여고졸업반>이 만들어지고, 1976년 문여송 감독의 <진짜 진짜 잊지마>가 고교생들로부 폭발적인 인기를 모았다. 그해 석래명 감독의 <고교 얄개>가 25만 8천명을 동원하는 대흥행을 기록하면서 하이틴영화 제작 선풍이 이어진다.”라고 소개한다. 아울러 1980년대 들어 이러한 경향이 TV드라마로 옮겨진 후, 1989년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를 통해 “돌출적인 하이틴영화가” 출현하게 되었다고 서술한다.29) 한국에서 하이틴영화는 이미 1950년대에 제작되기 시작하여, 최근까지도 간헐적이나마 꾸준히 만들어지고 있다는 것이다.30)

    한편, 박민정은 하이틴영화의 기원을 강대선 감독의 <여고시절>(1972)로 삼는다. 이유는 “70년대와 같이 지속적이고 대량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닌 산발적으로 만들어진 개별 작품을 장르로서 분류하기에는 무리가 따른다”(강조-인용자)고 보기 때문이다. 그에 의하면, 김기영 감독의 <십대의 반항>(1959)이나 정승문 감독의 <얄개전>(1965) 등의 영화는 ‘산발적으로 만들어진 개별작품’이므로 “‘하이틴’영화로 단정지을 수 있는가에 대한 문제”가 발생한다.31)

    여기서 주목해야 보아야할 단어가 있는데, 그것은 바로 ‘장르’이다. ‘유형(type)’ 또는 ‘범주(category)’를 뜻하는 프랑스어로 문학 연구에서 사용되기 시작된 장르(genre)는 1960년대 후반 영화 연구에서 이론화되기 시작하였다. 장르 이론은 당시 대중적인 인기를 모으고 있던 할리우드영화들을 주로 다루었으며 특히 서부영화와 갱스터영화가 주요 연구 대상이었다.32) 그렇기에, 이것을 한국영화에 그대로 적용하는 데에는 무리가 따를 수밖에 없다. 더구나 최미애의 언급대로, 영화 장르는 어떤 경우에도 명확하게 분류되지 않으며 시간이 갈수록 장르 사이의 경계가 불명확해지고 그것들이 서로 혼합, 중복되는 경향은 강화되어 간다.33) 이는 1970년대 하이틴영화의 유행 현상을 일종의 한국식 장르화 경향으로 대비해볼 수는 있으나, 그러한 작품군을 할리우드 영화들의 경우와 같이 하나의 장르로 치환하기는 어렵다는 점을 시사한다.

    따라서, 한국 ‘하이틴(십대)영화’를 티모시 새리(Timothy Shary)에 따라 호러영화, SF영화, 섹스코미디, 로맨틱멜로드라마, 비행청소년드라마, 학교영화 등 여섯 가지로 구별 짓고 여기에 액션영화, 노스텔지어영화, 스포츠영화 등을 덧붙어 모두 아홉 가지 장르로 나눈 정민아의 구분법은, 자신이 토로한 바와 같이 “서로 겹쳐지는 지점이 많으므로 다소 불분명”34)한 것처럼 보인다. 이는 1970년대 한국 하이틴영화의 특징을 1950년대 중반 미국에서 유행하던 <위험한 질주(The Wild One)>(1953), <폭력 교실(Blackboard Jungle)>(1955), <이유 없는 반항(Rebel Without A Cause)>(1955) 등 소위 ‘teenpics(십대영화)’와 비슷한 기준으로 범주화하는 오류의 근본적인 원인으로 작용한다. 그렇기에, 한국 하이틴영화의 원류를 <십대의 반항>으로 상정하는 견해 역시 타당성이 미약하다고밖에 볼 수 없다. 그것은 전적으로 한국 하이틴영화가 할리우드의 그것과 유사한 장르적 특징을 지닌다는 가정 하에 성립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박민정에 따르면 미국의 teenpics는 “기본적으로 제임스 딘으로 대표되는 청춘의 반항을 그리는 영화가 중심”을 이루는 것으로, 1970년대 하이틴영화와는 그 성격이 다르다.35) 즉, 1970년대 한국 하이틴영화에는 미국의 그것과는 구별되는 특징이 존재한다. 그렇다고 이러한 특징을 공통적으로 담고 있는 영화들을 장르라는 틀로 묶는 것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한국에서 하이틴영화의 제작 및 유행은 결국 산업적인 차원에서 생성되고 기획된 측면이 크기 때문이다. 여기서 고려해볼 수 있는 것이 바로 한국적 장르화의 경향이다. 특정 영화군의 장르적 특징(의 유무)을, 동시기 제작 기획 및 전략의 특성 및 그것들을 둘러싸고 있던 영화 산업 환경을 통해 뽑아내는 것이 가능하지 않을까.

    이러한 관점을 <십대의 반항>과 <얄개전>에 적용한다면, 이들 영화는 개봉 시기에 있어 하이틴영화의 ‘붐’이 일기 시작하던 1970년대 중반과는 시간적으로 차이를 보이고, 따라서 그것의 제작 환경도 다르며, 때문에 (박민정의 언급대로) 산발적인 개별 작품으로밖에 볼 수 없다. 이들 작품의 신문광고용 포스터를 확인하더라도 <십대의 반항>에는 별다른 문구가 붙어 있지 않으며, <얄개전>의 경우 “온 가족 동반의 명화”36)라는 수식어가 눈에 띈다. “단종애사에서 처음으로 “데뷔-”하여 5년만에 대결하는 엄앵란ㆍ황해의 박진의 연기력!”37)이라는 문구(<십대의 반항>)와 가장 크게 실린 김승호,38) 조미령39)의 사진(<얄개전>)을 통해 드러나듯, 배우에 있어서도 두 영화의 소년 주인공 안성기 등이 아닌 기존의 배우들이 더욱 조명을 받고 있다는 점도 특기할만하다.

    한편, 한국영화사에서 1970년대 하이틴영화의 최초의 작품으로 종종 언급되는 <여고시절>에는 “새로운 영상 언어의 창조”라는 문구와 함께 “매혹의 신성 청춘콤비” 김미영, 박지훈의 사진이 들어가 있다.40) 또 다른 영화 <여고졸업반>의 경우, 광고 문구에 ‘하이틴’이라는 단어를 포함시키는 동시에41) 향후 하이틴영화의 아이콘으로 등극하는 임예진을 주연으로 내세우고 있다.42) 이러한 특징은 1970년대 중후반 하이틴영화의 붐을 선도하였던 <진짜 진짜 잊지마>에 이르러 더욱 선명해진다. 임예진과 이덕화의 사진을 중심으로 “낙엽처럼 흩어져간 추억의 시절…” 이라든가 “벅찬 감동 하이틴 드라머!”와 같은 문구가 장식되어 있는데, ‘추억’, ‘시절’ 등의 언어로 (여성적) 감성을 자극하는 모습은 <여고시절>의 경우를, ‘하이틴’ 스타를 전면에 등장시켜 ‘하이틴’ 세대의 공감을 호소하는 모습은 <여고졸업반>의 경우를 연상시킨다.

    그렇기 때문에, 하이틴영화의 붐은 <진짜 진짜 잊지마>를 기점으로 일었으며 대중언론계에서 ‘하이틴영화(청소년영화)’라는 이름과 개념도 그것을 계기로 정착되었다는 점은 별도로 인정하더라도, 1970년대 한국 하이틴영화의 시작은 <여고시절>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이는 영화 산업적 측면과 이에 따른 장르화 경향을 통해서도 발견되는 사실인데, ‘비슷한 내용과 형식에 비슷한 배우가 출연하는 동일 회사의 연작 시리즈’라는 1970년대 중후반 하이틴영화 제작 상의 특징이 이미 그 작품에도 존재하기 때문이다.

    1972년 10월 19일 을지극장에서 개봉된 <여고시절>은 삼영필림 제작으로 이형우가 각본을 강대선이 감독을 김미영, 박지훈, 이순재, 최남현 등이 주요 배역을 담당하였는데,43) 이러한 구성은 삼영필림 제작의 후속작인 <지나간 여고시절>(1973)로 이어진다. 이 영화는 제작사, 각본, 감독이 <여고시절>과 동일하고 주요 배우도 김미영, 배한성, 신원균, 박지훈 등으로 유사하며 시놉시스 역시 그것과 비슷하다. 삼영필름은 <이름 모를 소녀>(김수형 감독, 1974)라는 다소 변형된 형태의 하이틴영화 제작을 시도하고, 이듬해 <여고졸업반>을 내놓는다. 1975년 8월 23일 허리우드에서 개봉된 이 작품은 김응천 감독에 임예진 주연이라는 보다 확고한 하이틴영화 코드를 마련하며44) 향후 하이틴영화 제작의 흥행 시대를 예고한다.45)

    이러한 조짐은 <진짜 진짜 잊지마>로 현실화되는데, 1976년 2월 14일 허리우드에서 개봉된 이 작품은 한국영화의 경우 손익분기점이 약 3만 명이던 시절 7만 명에 육박하는 흥행 기록을 세우면서 일약 하이틴영화의 선봉작으로 부상하였다.46) 이를 계기로 하이틴영화의 제작은 매우 활발해졌으며 특히 청소년 세대가 주요 관객층으로 자리 잡게 된다. 이에, 제작사인 동아수출공사는 문여송 감독, 임예진 주연의 조합을 유지한 채 <진짜 진짜 미안해>(1976), <진짜 진짜 좋아해>(1977) 등으로 ‘진짜 진짜 시리즈’를 이어간다.

       2) <고교 얄개>와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의 장르화 경향과 제작의 흐름

    하이틴영화의 최고 전성기는 1977년 1월 29일 국도극장에서 개봉되어 258,978명의 관객을 동원한 고교생영화 <고교 얄개>에 의해 포문이 열렸다. 연방영화 제작, 석래명 감독, 이승현 주연의 이 작품의 성공으로 인해 고교생영화의 대명사가 된 ‘얄개 시리즈’는 이후 연방영화에서만 <고교얄개>의 속편 격인 <고교 우량아>(김응천 감독, 1977)를 비롯하여 <고교결전 자! 지금부터야>(정인엽 감독, 1977), <고교 유단자>(김인수 감독, 1977), <고교 고단자>(김인수 감독, 1978) 등 수많은 아류작으로 이어진다. 뿐만 아니라 삼영필림으로 자리를 옮긴 석래명 감독이 이승현, 김정훈, 진유영, 강주희 등을 캐스팅하여 <고교 꺼꾸리군 장다리군>(1977), <얄개 행진곡>(1977) 등의 시리즈물을 내놓고 김보연, 고아라, 김인숙 등을 발탁하여 여성 버전인 <여고 얄개>를 만드는 진풍경이 연출되기도 한다.

    <고교 얄개>가 이렇게 커다란 성공을 거둔 데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1965년부터 영화 제작을 시작하여 문예영화, 액션영화, 멜로드라마, 특히 1970년대 들어 전기사극, 호스티스 소재의 영화들까지 다양한 작품을 만들었던 연방영화는 1970년대 중반 하이틴영화의 유행에 편승하여 보다 다양한 볼거리와 유머와 감동을 버무린 색다른 고교생영화를 기획하였는데, 그래서 나온 것이 바로 <고교 얄개>였다. 이 영화의 원작은 1950년대 학생잡지 『학원』에 연재되어 인기를 얻게 된 조흔파의 소설 『얄개전』(1954)이었고, 그것은 이미 1965년 정승문 감독에 의해 동명으로 영화화된 바 있었다. 따라서 연출을 맡은 석래명에게는47) 원작(들)의 장점을 살리면서도 차별성을 확보함으로써, 연령층 및 성별에 따라 (전략 상) 다소 편향되어 있던 기존 하이틴영화의 관객층을 남녀노소로 확대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문제로 인식되었을 것이다.

    이는 개봉 당시 <고교 얄개>의 신문광고용 포스터를 통해 확인 가능하다. 거기에는 “노인들도 즐겨볼 10대의 영화!”48)라며 연령층을 확대하고 “첫사랑에 가슴 조이던 젊은날의 추억을…”, “<얄개>는 여학생에게도 대 인기!”49)라며 여성층까지도 공략하고자 하던 의도가 묻어 있다. 한편, 영화의 원작이 조흔파의 소설이라는 점은 부각시키면서도 1965년에 제작된 바 있는, 당시에는 중학생을 주인공으로 삼았던 영화 <얄개전>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하지 않음으로써 주요 대상층은 고등학교 남학생으로 설정하며 흥행의 중심을 잡는다. 그러면서 이 작품을 고교생영화의 효시작이자, 나아가 하이틴영화의 대표작으로 끌어올린다.50)

    이러한 전략은 적중되어 <고교 얄개>는 커다란 성공을 거두었고, 이후 고교생영화는 짧은 기간이나마 대세로 자리한다. 이승현, 김정훈, 진유영, 강주희 등 기존의 주연 배우진에 김보연(<여고 얄개> 등), 김보미(<고교 유단자> 등) 등이 가세하고 ‘진짜 진짜 시리즈’의 헤로인 임예진(<고교 명랑교실>(김응천 감독, 1978) 등)이 합류한다. 김응천, 정인엽, 김인수, 박태원(<소문난 고교생>(동아흥행 제작, 1977)), 심우섭(<고교 깡돌이>(우성사 제작, 1977)) 등이 메가폰을 잡음으로써 연출의 영역도 확대된다. 이에 따라 전학생을 다루거나(<고교우량아>, <고교깡돌이>) 나이 많은 입학생을 다루거나(<소문난 고교생>) 공간적 배경을 지방으로 삼거나(<고교 명랑교실>) 운동을 주요 소재로 삼는(<고교 유단자>, <고교 고단자>-태권도, <고교 결전 자! 지금부터야>-야구) 등 작품의 내용 또한 다양화된다.

    특기한 점은, 당시 하이틴영화 제작의 전반적인 흐름이 고교생영화로 모아지는 통합 현상이 나타나기도 한다는 사실이다. 일례로 한진흥업의 경우를 살펴보자. 1976년 김응천 감독, 임예진 주연으로 <푸른 교실>이라는 ‘진짜 진짜 시리즈’ 유형의 작품을 내놓은 바 있던 한진흥업은 1978년에는 김응천 감독, 이승현, 임예진 주연의 ‘얄개 시리즈’ 영화 <고교 명랑교실>을 만들고, 이어서 하이틴영화의 감독 3인방 김응천, 문여송, 석래명을 모두 모아 <우리들의 고교시대>를 제작한다.51) 이 작품에는 김응천, 문여송, 석래명 식의 하이틴영화의 색깔이 모두 포함되어 있기는 하나,52) 영화의 제목과 배우진(이승현, 김정훈, 진유영, 감주희 주연) 등을 고려할 때 고교생영화의 양식이 기본 틀로 배치되어 있다.

    이렇게 1970년대 후반 한국영화의 대표적인 작품군으로서 장르화된 고교생영화는, 그러나 점차 관객들의 관심에서 멀어지다가 1980년대 들어서면서 쇠퇴하게 되었다. 연령 증가 등 스타들의 신상 변화나 우수영화 대상 조정 등 영화 정책의 변화에도 이유가 있었겠지만, “한결같이 비슷한 유형에다 정형화된 묘사에 빠져 매력을 잃어갔”53)던 것과 이로 인해 “<제3교실>이나 <우리들의 세계> 같은 TV 드라마”54)에 자리를 내어준 것이 가장 직접적인 원인이었다. 그리고 당시 신문 기사가 지적하는 바대로, 1980년대 들어와 의복 및 두발 자율화가 실시되기는 하였으나 “계속되는 대학입시 공부의 압력 때문에 청소년들의 세계가 단조로워져 소재 선택이 어려워진 것”55)이 근본적인 이유였다.

    이러한 세태 변화에 부흥하기 위해 만들어진 영화가 있었으니, 그것이 바로 젊은 영화인들이 주축이 된 황기성 및 박용빈 제작, 이춘연 및 신철 기획, 김성홍 각본, 강우석 감독의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였다. 1989년 7월 29일 아세아극장과 동아극장에서 개봉되어 관객 155,301명을 동원한 이 영화는 “기획이라는 개념을 처음 한국영화산업에 도입”56)한 작품으로 언급될 만큼 이전의 영화들에 비해 상업적인 전략에 의해 계획되고 제작되었다.

    영화의 소재는, 신문광고용 포스터에 삽입된 문구의 내용처럼 사건 당시 중학교 3학년 여학생의 “1986년 1월 22일 학부모, 선생님께 드리는 어느 입시생의 마지막 편지”57)를 모티브로 하는데, 이러한 움직임은 무용계58)와 민중가요계59)에서 이미 있었던 일이었고 영화 개봉 즈음해서는 현직 교사와 신예 소설가에 의해 각각 시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다』(정영상, 실천문학사)와 소설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임정진, 고려원)이 발간되기도 하였다.60) 특히 소설의 경우 출판사인 고려원은 영화 개봉일이 다가오는 것에 맞추어 책 광고 횟수를 늘리며 콘텐츠의 시너지 효과를 창출하였고,61) 반대로 영화 역시 연필이 두 동강으로 부러진 소설의 광고포스터 그림을 그대로 인용하여 신문광고용 포스터에 삽입하기도 하였다.62)

    이처럼 이 영화는 동시기 사회 문제로서 화제가 되고 이미 다른 분야에서 창작의 모티브로 삼았던 사건을 소재화하여 “1,000만 학부모와 500만 청소년”63)의 관심에 호소하려는 의도로 마련되었으며, 여기에 다양한 인물형과 에피소드를 가미하여 재미와 감동을 확보하기 위한 전략이 곁들어지기도 하였다. 세태의 흐름에 편승하여 보다 폭넓은 관객층을 대상으로 더 많은 영화적 요소를 준비함으로써 흥행 성공을 담보하려는 이러한 모습은 10여년 개봉된 <고교 얄개>를 비롯한 고교생영화의 그것과 흡사한 것이었다. 아울러,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를 “코미디 영화”,64) “교육 코미디”,65) “입시 비극을 고발하며 재치 있게 학창시절을 그린”66) 작품 등으로 소개하는 신문 기사는, “다 같이 <얄개> 행진곡에 발맞추어 마음껏 웃어봅시다!”67)라며 ‘웃음’을 표방하였던 <고교 얄개>의 장르적 성격이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로까지 연결되고 있었음을 암시한다.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는 작품의 흥행 성공에 따라 몇 년간 고교생영화의 제2의 전성기를 이끌며 수많은 아류작을 양산한다는 점에서도 <고교 얄개>와 유사한 면이 있다. 일례로, 1990년 여름의 경우 속편 <그래 가끔 하늘을 보자>(김성홍 감독, 이미연, 허석 주연)를 비롯하여 <있잖아요 비밀이에요>(조금환 감독, 하희라, 최수종 주연), <꼴찌부터 일등까지 우리반을 찾습니다>(황규덕 감독) 등의 연작이 쏟아져 나왔다. 내용에 있어서도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에 이어 대입 준비생들의 사회 문제를” 다루거나(<그래 가끔 하늘을 보자>) “실습 나온 교생과 시한부 삶을 사는 문제 여학생과의 청순한 사랑을” 그리거나(<있잖아요 비밀이에요>) 다양한 학생이 공존하는 “고교 2학년 학급 생활을 잔잔하게” 묘사하는(<꼴찌부터 일등까지 우리반을 찾습니다>) 등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68) 특히, 주요 인물들이 존재하고 중심 사건들이 벌어지는 공간으로 학교가 설정되어 있다는 점이 공통적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특징은 1991년 이후 변화되기 시작한다. 영화 제작의 붐은 지속성을 띠지만69) 영화의 공간적 배경이 학교가 아니게 되면서 인물형 및 서사구조 등에 있어서도 이전의 작품들과는 차이를 보이게 된 것이다. 황기성 사단 제작의 <열일곱 살의 쿠데타>(김성홍 감독)의 경우만 보더라도, 영화는 집을 나온 상미(이주희 분)와 자동차 정비공 민구(이종원 분)의 애틋한 사랑에 초점을 맞춘다. 비슷한 시기 개봉된 <열아홉 절망 끝에 부르는 하나의 사랑노래>(강우석 감독)에는 학교에 적응하지 못한 채 문제만을 일으키는 불량학생들이 주요 인물로 등장하고, <지금 우리는 사랑하고 싶다>(황규덕 감독)에는 정상적으로 학교생활을 하며 독서실에 다니는 남학생 정현(안정훈 분)과 여학생 선영(신윤정 분)이 나오지만 영화의 중심은 이들의 이성 관계에 쏠려 있다.

    1980∼90년대만을 놓고 보면 고교생영화의 변형이라 볼 수 있지만, 1970년대의 경우를 상기하면 하이틴영화 안에서의 ‘장르화의 회기’라 할만하다. 영화의 핵심적인 부분이 고등학교를 주요 공간으로 하고 고등학생의 생활을 다루는 것에서 ‘진짜 진짜 시리즈’의 전유물로 여겨지는 남녀 간의 우정과 사랑 또는 ‘변형된’ 하이틴영화70)에 자주 나오는 반항적인 청소년의 모습 등으로 전이되는 이러한 현상은 분명1970년대의 그것과는 정반대의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비록 장르화 경향의 흐름은 달랐지만 1970년대의 폐막과 함께 고교생영화 제작의 붐이 급격히 쇠퇴하였던 것과 같이, 위의 세 작품은 차례로 3,622명, 6,792명, 7,593명의 관객을 동원하는 데 그쳤으며 결국 1990년대 초반 하이틴영화 또한 <스무 살까지만 살고 싶어요>(강우석 감독, 1992)의 예와 같이 난치병인 골수암을 앓는 소녀의 이야기를 다루는 등 이전의 고교생영화 제작 궤도에서 이탈하여 장르화의 경향이 해체되고 소멸되기에 이른다.

    27)오진곤, 「1970년대와 1980년대 한국 대학생 영화의 비교분석 연구」, 『현대영화연구』10호, 2010, 316∼324쪽 참조.  28)그가 참고한 것은 안병섭, 『영화적 현실 상상적 현실』, 정음사, 1989, 122쪽 및 김종원ㆍ정중헌, 앞의 책, 251쪽이다.  29)정민아, 앞의 글, 37쪽.  30)정민아는 1980년대 후반부터 유행한 ‘하이틴영화’의 선봉작인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가 이후에도 “다양한 방식으로 변주되”어 가며 제작 경향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본다. 정민아, 앞의 글, 40쪽.  31)위의 논문, 24-25쪽.  32)정은용, 「한국 액션영화 장르연구: 1990년대 액션영화의 서사 관습과 사회 문화적 함의」, 이화여대 석사논문, 2001, 6쪽.  33)최미애, 「장르 비평 Genre Criticism에 관한 연구」, 동국대 석사논문, 1995.  34)정민아, 앞의 글, 40쪽.  35)그는, “건전하고 깨끗한 고등학생들의 사랑, 우정 이야기가 중심이 되고 있”는 1970년대 한국 하이틴영화는 1930년대 후반부터 1940년대 초반까지 미국에서 만들어진 “백인 중산층 어른의 가치들속에 십대들의 관심과 인물을 위치”하도록 하여 “이전 세대의 최고의 희망으로 가득찬” teenpics의 하위 장르로서의 ‘clean teenpics(깨끗한 십대 영화)’로 범주화된다고 주장한다. 박민정, 앞의 논문, 25쪽. / 그렇지만, 이 역시도 그 내용에 논리적 비약이 개입되어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내러티브나 캐릭터 설정에 있어 1970년대 하이틴영화와 대개 “전통적으로 잘생긴 젊은 무리의 ‘착한 아이’들로 마약을 하거나 범죄를 저지르기 보다는 데이트를 선화하는 모습을” 그린 할리우드의 clean teenpics의 공통분모나 교집합지점 등이 눈에 띄지 않기 때문이다.  36)≪경향신문≫1965.8.30, 8면 아카데미 상영 포스터.  37)≪경향신문≫1959.7.25, 4면 명보극장 상영 포스터.  38)≪경향신문≫1965.8.25, 8면 아카데미 상영 포스터.  39)≪경향신문≫1965.8.30, 8면 아카데미 상영 포스터.  40)≪동아일보≫1972.10.18, 8면 을지극장 상영 포스터. 이 신문광고용 포스터는 8면 하단에 광고되어 있다. / 이 영화는 가수 이수미의 동명의 가요를 모티브로 해서 기획되었는데, 당시 포스터를 보면 극장 측에서 영화 상영에 맞추어 이수미가 특별출연하여 쇼를 동시에 관람할 수 있게 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41)“혼자만이 애태우는 하이틴의 러브ㆍ로망!”.  42)≪동아일보≫1975.8.25, 5면 허리우드 상영 포스터.  43)한국영상자료원 한국영화데이터베이스(http://www.kmdb.or.kr/SearchSF1/totalsearch.asp)에 기록되어 있는 줄거리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여름방학을 맞아 시골에서 합숙을 하며 봉사활동을 하던 여고생 미례는 남자고등학교의 생물반 학생으로 고산식물을 채집하다 하산하던 태호와 산속을 헤매다 만나게 된다. 둘은 짙은 안개속을 헤매다 어느 산장안에서 날이 새기를 기다리던 중 그들을 찾아 나선 인솔교사들에게 발견된다. 기성세대와 학교선생들은 이들의 순결함을 믿지 못하고 퇴학처분을 내린다. 세월이 흐른 후 미례는 태호와의 사랑을 이루지 못하고 다른 청년과 결혼식을 올린다.”  44)한국영상자료원 한국영화데이터베이스(http://www.kmdb.or.kr/SearchSF1/totalsearch.asp)에 기록되어 있는 줄거리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여고 2년생인 유시내는 어머니를 간호하기 위해 흰샘고교에 전학온다. 그녀는 어머니의 생일선물로 가발을 해드리기 위해 머리를 자른다. 어느날 사복으로 거리를 걷던 시내는 지도부 선생에게 적발되어 머리를 깎이고, 담임 현기목 선생님은 이일로 사표를 쓰나 학생들의 사과로 무마된다. 겨울방학 대관령에서 스키를 즐기던 시내는 현선생님이 보고싶어 집으로 돌아온다. 시내를 동경하던 훈은 멀리서 시내를 지켜본다. 현선생님의 생일날 시내는 그와의 약속을 기다리나 그가 오지 않자 거리를 달리다가 교통사고를 당한다. 혼수상태에서 그녀가 깨어날 무렵 현선생은 훈으로 하여금 시내곁에 있게 한다.”  45)이후 삼영필림은 김응천 감독과 임예진, 전영록 주연의 <소녀의 기도>(1976), 강대선 감독과 정희, 송재민 주연의 <야간학교>(1976), 박태원 감독과 임예진 주연의 <선생님 안녕>(1977) 등으로 하이틴영화 제작을 이어가다가 석래명 감독을 영입하여 ‘얄개 시리즈’의 고교생영화로까지 영역을 확장한다.  46)박민정, 앞의 논문, 26쪽 참조.  47)김종원은 <고교 얄개> 제작 당시 석래명 감독의 상황을 다음과 같이 소개한다. “석래명은 <꿈은 사라지고>(1959)로 널리 알려진 노필 감독과 <아빠 안녕>(1963)의 최훈 감독 밑에서 기초를 쌓고 1971년 <미워도 안녕>으로 영화계에 데뷔했다. 남편이 죽자 생활을 꾸려 나가기 위해 유흥가에 뛰어든 한 여성(문희)의 죄와 벌을 그린 멜로드라마였다. 오랜 현장경험에도 불구하고 후속작까지 거의 5년이 걸렸을 정도로 그의 출발은 기대에 못 미쳤다.” 김종원, 「1970년대 청소년영화의 기수-<고교 얄개>와 석래명」, 『<고교 얄개> DVD』(설명자료), 한국영상자료원, 2009, 4-5쪽.  48)≪동아일보≫1977.1.28, 7면 국도극장 상영 포스터.  49)≪동아일보≫1977.1.31, 5면 국도극장 상영 포스터.  50)“15만 관객 돌파!”를 자축하는 ≪경향신문≫1977.2.17, 5면 국도극장 상영 포스터에는 “건강한 웃음! 건강한 마음씨 이것이 진짜 「하이ㆍ틴」영화다!”라는 문구가 새롭게 삽입되어 있다.  51)김종원은 “옴니버스 영화 <우리들의 고교시대>(1978)”를 “청소년영화 붐을 일으킨 그들이 스스로의 미래를 예견한 폐막선언이나 다름없”는 “사실상 청소년영화시대를 마무리”한 작품으로 평가한다. 김종원, 앞의 글, 6쪽.  52)한국영상자료원 한국영화데이터베이스(http://www.kmdb.or.kr/SearchSF1/totalsearch.asp)에 기록되어 있는 줄거리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제1화: 사관학교 지망생 남고생과 음악을 전공하는 여고생의 청순한 사랑 이야기. 제2화: 가정교사가 지체장애 소녀를 도와 의욕과 의지를 불러일으킨 다는 휴먼 스토리. 제3화: 학교의 말썽꾸러기를 사랑과 계도를 통해 정상적인 학생으로 되돌려 놓는다는 이야기.”  53)박민정, 앞의 논문, 28쪽.  54)정민아, 앞의 글, 37쪽.  55)이 기사는 여기에 앞서 보충수업이 실시되고 비디오가 보급되어 청소년의 발길이 줄어들었다는 점 또한 하이틴영화 제작 침제의 원인으로 지목한다. <하이틴영화 ‘침체’>, ≪동아일보≫1986.7.23, 12면.  56)유지나 외, 앞의 책, 197쪽.  57)≪동아일보≫1989.7.27, 13면 아세아극장, 동아극장 상영 포스터.  58)무용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는 이전에 청주 우리춤연구회가 대구 및 서울 연세대 강당에서 공연한 바 있었고, 1988년 2월 24일부터 26일까지 문예회관 소극장에서 정식 공연하기도 하였으며, 이후에도 공연이 이어졌다. <무용계 “봄마중 무대” 활기>, ≪동아일보≫1988.2.23, 7면.  59)< 「노래를 찾는 사람들」 공연>, ≪매일경제≫1989.4.15, 13면. 공연 일시와 장소는 1989년 4월 28일부터 30일까지 연세대 100주년 기념관 콘서트홀에서였다.  60)<교육 현장 체험을 시ㆍ소설로 「행복은…」>, ≪경향신문≫1989.6.12, 9면.  61)당시 시나리오를 소설로 각색하거나 시나리오와 소설을 동시에 작성하여 영화 개봉과 함께 출간하던 이른바 ‘영상소설’이 유행하기도 하였는데, 그 신호탄이 된 영화가 바로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였다. 이후 영상소설화 된 작품은 임정진의 <있잖아요 비밀이에요>, 송정연의 <그래 가끔 하늘을 보자>, <열아홉 살의 쿠데타> 등으로, 여기에는 하이틴영화가 많이 포함되었다. <영상소설 독자 인기 높다>, ≪동아일보≫1991.1.31, 19면. / 황기성 사단의 경우 ‘도서출판 황기성 사단’을 설립하여 소설 <열아홉 살의 쿠데타>를 직접 발간하기도 하였다. < 「황기성 사단」 영상소설 「열아홉 살…」 출간>, ≪동아일보≫1991.1.14, 20면.  62)≪동아일보≫1989.7.19, 5면 고려원 발간 포스터 및 ≪동아일보≫1989.7.25, 11면 아세아극장, 동아극장 상영 포스터 참조.  63)≪동아일보≫1989.7.27, 13면 아세아극장, 동아극장 상영 포스터.  64)<여름방학 맞는 중고생 겨냥 코미디 영화 2편 제작>, ≪동아일보≫1989.6.27, 20면.  65)<극장가 여름 관객 유치 경쟁>, ≪동아일보≫1989.7.4, 19면.  66)<호황기 맞은 삼복 극장가 한국영화ㆍ외화 흥행 대결>, ≪경향신문≫1989.7.18, 16면.  67)≪동아일보≫1977.1.28, 7면 국도극장 상영 포스터.  68)<10대들의 고민과 사랑이야기 청소년 영화 4편 곧 개봉>, ≪동아일보≫1990.7.7, 9면.  69)<여름방학 겨냥 하이틴영화 “봇물”>, ≪경향신문≫1991.6.29, 21면.  70)박민정은 1970년대 “‘변형된 하이틴’영화”로서 <청춘을 이야기합시다>처럼 “성문제를 부각시”킨 작품, <제7 교실>처럼 “재수생으로서의 고민에 초점을 맞”춘 작품, <친구 사이야>와 같이 “가족 갈등을 다”룬 작품, <광화문통 아이>와 같이 “성인으로의 정신적 성장이 중심을 이룬” 작품 등을 언급한다. 그리고 “그 중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영화는 바로 재수생을 다룬 영화들이”라고 주장한다. 박민정, 앞의 논문, 24쪽.

    4. 1970년대 ‘얄개’와 1980년대 ‘행복’의 기준: 전형의 생성과 답습 및 변형, 그리고 시대적 배경과 영화적 상황의 투영 또는 반영

    그렇다면, 1970년대와 1980년대 고교생영화의 제작 붐을 선도하며 장르화 경향을 형성시킨 <고교 얄개>와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의 영화적 특징은 무엇이며 그것들은 어떠한 측면에서 연관성을 지닐까. 이에 대한 보다 명확하고 구체적인 답을 얻기 위해 이들 작품의 전체적인 이야기 구조를 도표화해보자. 그리고 두 영화의 이야기 구조를 이루는 인물, 배경, 사건에 있어서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중심으로 관련성을 탐구해보자.

    첫째, 인물 배치에 있어 공통점과 차이점이 발견된다.

    두 작품 모두 고교생영화로서 고등학교 학생과 교사, 그리고 학생의 가족이 주요 인물로서 등장한다. 그리고 등장인물의 캐릭터는 그들의 학습성적, 가정환경, 생활수준, 성격 또는 기질 등에 따라 적절하게 배치된다. <고교 얄개>에 장난꾸러기 낙제생 두수와 용호가 있다면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에는 봉구와 천재가 있다. 물론 호철이나 은주 같은 모범생도 존재한다. <고교 얄개>의 백상도 교사와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의 박길호 교사는 젊고 바르면서도 유머러스하고 학생들을 이해하는 선생님의 모범으로 비추어진다. 그 외에도 다양한 모습과 방식으로 교사로서의 직무를 담당하는 교사들과 교장선생님이 등장한다. <고교 얄개>의 두수와 인숙,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의 봉구와 은주는 사춘기 시절 이성에 관심을 갖고 관심을 받는 인물로 그려지고, 전자의 호철과 후자의 창수는 가정형편이 어려운 학생으로 묘사된다.

    두 영화에서의 이러한 공통점은 이들 작품이 1970년대와 1980년대 고교생영화의 대표작이라는 사실에 기인한다. 고교생영화는 작품의 특성 상 여러 유형의 고등학생과 그(들)를 둘러싼 주변 인물들이 필요하다. 또한 고교생영화는 기존의 관객층을 포섭하면서도 청소년(하이틴)이라는 특수 관객층을 가상적인 소구집단으로 삼기 때문에,71) 이들에게 호소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캐릭터가 필수적이다. 그럼에도 하이틴영화라는 특수성으로 인해 “일부 개런티를 제외하곤 제작비를 절감할 수 있었다.”72)는 점은 다양한 인물들의 구축을 가능하게 하는 요인으로 작용하였다.

    한편, <고교 얄개>에서는 두수가 주인공의 독점적 지위를 점유하는 반면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의 경우 봉구, 은주, 천재, 창수뿐만 아니라 박교사에 이르기까지 여러 인물들이 시퀀스나 신에 따라 역할과 비중을 분담한다. 즉, <고교 얄개>의 경우 거의 모든 장면에 두수를 중심인물로서 등장시키는 데 반해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의 각 시퀀스와 신은 봉구를 중앙에 두면서도 천재, 창수, 은주 등을 차례로 돌며 화면의 주도권을 양도한다. 이러한 특징은 영화에 등장하는 여타 인물들의 구성에도 영향을 미치는데, 학생의 가족 구성원을 예로 들면 <고교 얄개>에는 두수의 가족(아버지, 어머니, 할머니, 누나)과 호철의 가족(누나) 정도만이 나오지만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에는 이야기 흐름에 따라 봉구의 가족, 은주의 가족, 천재의 가족, 창수의 가족이 등장한다.

    이러한 데에는 영화 산업적인 측면에서 한국영화사에서 “기획이라는 개념을 처음 한국영화산업에 도입”한 예로 일컬어지는73)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의 경우가 “한정된 장소에서 서사를 전개”함에 있어 “다양한 인물 군상, 즉 다수의 주인공과 다양한 에피소드”에 주안점을 두었기 때문이겠지만,74) 그 이면에는 이들 작품의 문화적 토양이 되는 시대적 배경 또한 자리함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1979년 박정희 시해 사건인 ‘10.26사태’를 수습하던 도중 정권 탈취를 위한 하극상의 군사정변인 ‘12.12사태’를 일으켜 실질적으로 권력을 장악하기 시작한 전두환은, 얼마 지나지 않아 중고생의 교복자유화 방침을 시사하고75) ‘체육관 선거’로 대통령 자리에 오른 후인 1982년 1월 2일 두발은 1982년 1학기부터, 의상은 1983년 1학기부터 자율화 하도록 ‘특별지시’하였다.76) 비록 이는, “학원에 상주하던 경찰병력이 철수하는 가시적인 변화를 주는 동시에 100명 가까운 해직교수와 1천 3백여명의 시국관련 제적생을 복직, 복학시켜” 주는 것을 골자로 1983년 12월 21일 발표된 ‘학원자율화 조치’와 같이 전두환 정권의 이른바 ‘유화정책’의 하나이기는 하였으나,77) 외형상으로나마 1980년대 중고생의 문화를 바꾸어 놓는 계기로 작용하기도 하였다.

    이를 참고하여 <고교 얄개>와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에 등장하는 학생들의 두발과 의상만을 놓고 보면, 전자의 경우 단정한 두발과 교복 착용에 의한 집단성이 두드러지는 반면 후자의 경우 여기에 보다 다양한 개(인)성이 상존한다는 차이가 발견된다. 이러한 지점에서 <고교 얄개>는 통일된 두발과 의상을 하고 있는 두수라는 인물에 당시 고등학생들의 낭만과 일탈과 반성과 성장과 모범의 모습을 덧입혔던 반면,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의 경우 다수의 인물을 통해 각기 다른 학생들의 모습을 제시하였다고 볼 수 있다.

    둘째, 시공간적 배경 설정에 있어 공통점과 차이점이 발견된다.

    두 영화는 동일하게 고등학교 2학년 학생(또는 주변 인물)을 다루고 있다. 아마도 1∼3학년 가운데 중간에 위치함으로써 고등학교 생활의 활기와 고충이 동시에 포착될만한 시기라는 점이 반영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계절과 요일의 구성에 있어서는 다소 차이가 발생한다. <고교 얄개>에서는 가을에서 겨울에 이르는 시기가,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에서는 봄에서 여름에 이르는 시기가 화면에 나타난다. 전자가 겨울방학 시즌인 1월 말에, 후자가 여름방학 시즌인 7월 말에 개봉되었다는 사실을 차치하더라도, 이러한 계절 설정은 (적어도 결과적으로는) 각 영화의 전체적인 주제와도 연결된다는 점에서 주목을 요한다. 대학입시일을 기준으로 그것이 끝났을 시점에 개봉된 <고교 얄개>와 그것이 다가오는 시점에 개봉된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의 학교생활 및 학창시절에 대한 표현의 태도와 방식은 다를 수 있으며, 이는 전자가 ‘차가움’을 불식시킬 ‘낭만과 추억의 코미디’로, 후자가 ‘과열’된 경쟁체제의 ‘사회 반영적인 드라마’로 인식되는 데 적지 않은 영향을 주었을지 모르기 때문이다. 이러한 차이는 요일에서도 찾을 수 있다. <고교 얄개>의 경우 두수의 학생들의 방과 후 활동의 모습이 주말뿐만 아니라 주중에도 자주 비추어지는 데 반해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에서는 주요 인물들의 수업이나 공부 이외의 활동이 주로 주말에 편중되어 있는 것이다.

    한편, 두 영화는 고교생영화의 특성에 맞게 주요 공간적 배경을 학교로 둔다. 그 안에서도 교실, 복도, 강당, 운동장, 교무실, 회의실, 교장실, 양호실 등으로 세부 공간을 구획하여 인물과 사건을 부각시킨다. 그렇다고 학교만이 나오는 것은 아니다. 이들 작품에는 주요 인물의 거주 공간을 제외하고라도 빵집, 공원, 거리, 교외는 물론 극장, 패스트푸드점, 성당, 시장, 한강 등 다양한 장소가 등장한다. 동시기 청소년(하이틴)들의 또래 문화와 집단 욕망이 반영된 것으로 해석될만하다.

    그러나 여기에 공통점만 있는 것은 아니며 두 영화 사이에는 공간 배치에 있어 커다란 차이점이 존재한다. 즉, <고교 얄개>와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에서의 학교 이외의 공간의 성격이 전혀 다르다. 전자의 경우 빵집은 학우와의 교제와 소통의 장소로 그려지고 자전거 하이킹과 노래를 하는 교외 역시 건전하고 공개적인 단체의 공간으로 묘사된다. 두수와 인숙은 ‘근대화 연쇄점’이라는 이름의 인숙이네 식료품점에서 자주 만나며 두수는 백교사의 하숙집에서 과외를 받는다. 두수의 집에 백교사가 오고가는 일은 말할 것도 없으려니와, 심지어는 허름한 호철의 집조차 근대화의 산물인 고층빌딩을 한 눈에 보이면서 호철의 대사처럼 “열심히 공부해서 저 빌딩 속으로 들어”가야 함을 암시한다. 학교에서 벗어나 있지만 학교의 연장선에 있는 연결된 공간이라 할 수 있다. 반면, 후자의 경우 학교 내에서의 장소 분절은 보다 다양하게 이루어져 있지만, 일단 학교와 물리적으로 떨어진 공간은 상징적으로 그것으로부터 일탈된 공간으로 비추어진다. 봉구와 은주의 유일한 데이트 장소였던 시장은 학교(제도)로부터 분리된 도피의 공간이며, 극장과 한강과 체육관은 학생과 교사의 경계를 허무는 학생(신분)으로부터 해방된 평등의 공간이다. 때문에 그곳에서 만나는 학생과 교사는 체육관에서의 박교사의 대사대로 교사와 제자 사이가 아닌 “남자 대 남자일 뿐”일 수 있는 것이다.

    이는 동시기 교육 정책 및 제도와 연결된다. 1977년 2월 4일 박정희는 “문교부 연두순시에서 ‘충효사상’을 교육하라는 지시를 내렸”는데, 이에 따라 문교부는 동년 4월 “충효 교육을 중심으로 한 ‘도의 교육의 강화 방안’을 마련하고 전 학교에서 실시하도록 지시를 내렸다.”78) 유신정권이 과거 군국주의 일본의 경우를 연상시키는 가부장제 모형의 가족주의 국가 이데올로기를 체제 유지 및 안정의 기제로 활용하였다는 점을 감안할 때, 부모와 스승과 군주가 하나라는 것의 강조가 영화 제작에도 적용되고 있었음은 충분히 짐작 가능하다. 한편, 전두환 정권 초기인 1982학년도부터 대학입시가 종래의 예비고사 및 본고사 제도에서 일제 학력고사 제도로 전환되어 “커트라인이 없어”지는 대신 수험생 간의 경쟁구도는 강화되었으며,79) 특히 1988학년도부터는 기존의 선시험 후지원 제도가 선지원 후시험 제도로 바뀜으로써 수험생의 눈치싸움이 보다 치열해졌다.80) 그리하여 입시 지옥 현상은 더욱 심화되었고, 이로 인해 성적을 비관하거나 학업에 대한 심리적 압박을 견디지 못하고 자살 또는 방황하는 학생들이 늘어났고 이는 사회 문제화 되어 영화에도 반영되었던 것이다.

    셋째, 분위기 형성, 사건 전개, 주제 제시에 있어 공통점과 차이점이 발견된다.

    [표1]과 [표2]의 구성 및 내용을 비교해보면, 두 영화 모두 웃음과 눈물이 교훈 또는 비판과 감동이 섞여 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이러한 다양한 생각과 감정을 유발하기 위해 다양한 에피소드를 배치하고 있다는 점도 유사하다. 전자의 빵집과 후자의 패스트푸드점은 각각 두수와 봉구가 인숙과 은주에 대한 정보를 구하는 장소로 활용된다. 전자에서 두수가 백교사에게 공부를 배우는 것은 후자에서 창수가 박교사의 관심 하에 권투를 하는 것과 매치된다. 학생 처벌을 위한 교사회의 개최 및 여기서의 백교사와 박교사의 선처 호소, 두수에 대한 백교사와 창수에 대한 박교사의 ‘사랑의 폭력’ 행사 또한 양자에서 동일하게 보여지는 풍경이다. 가해자와 피해자의 위치 및 인물의 사정은 다르지만, 일련의 사건 이후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에서 문도가 창수에게 사과하는 장면은 <고교 얄개>에서 두수가 호철에게 사과하는 장면을 연상시키며, 두수의 우유 배달 모습과 창수의 쓰레기 정리 모습 역시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제작 및 개봉 시기의 순서를 감안할 때, <고교 얄개>의 원형이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에서 복원되었다는 점을 부인하기 어려울 듯하다.

    여기에는 1970년대 후반과 1980년대 후반의 영화계 상황이 개입된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한국영화의 흥행 여건이 척박하고 전망이 어두웠다는 점에서는 일치하나 그 내용 및 타개책에서는 차이가 있었다는 부분도 고려해볼 사항이다. 1970년대 후반 영화업 허가제, 제작 및 수입 쿼터제, 검열의 강화를 골자로 하는 제4차 영화법 개정(1973) 및 텔레비전의 약진에 의해 한국영화 제작 및 상영 활동이 전반적으로 위축되었는데, 이러한 불황을 극복할 방안으로 모색된 것이 바로 관객층의 확대였다. 특히 주로 10대 관객층을 겨냥하고 있던 고교생영화의 경우, 그들의 감각과 유행에 부흥하는 여러 가지 볼거리 및 속도감 있는 전개를 무기로 장착하였을 것이다. 그러다가 1980년대 들어 새로운 환경이 조성되었다. 제5차 영화법 개정(1984)으로 제작과 수입의 자유화 및 분리, 검열에서 심의로의 변경 등 국가 통제의 끈은 헐거워졌지만, 제6차 영화법 개정(1986) 및 제2차 한미영화협상 타결(1988)로 인해 미국영화의 직배가 허용되면서 한국의 영화 시장은 개방되기에 이른다. 이에 한국영화는 타격을 입었지만, 한편으로 그 영향으로 보다 체계적인 제작 시스템이 도입되어 당시 라디오와 텔레비전, 소설 등의 주요 소비계층이던 청소년(하이틴)을 겨냥한 작품이 기획되었고 콘텐츠 확보에 대한 시간적 여유가 충분하지 못한 상태에서 제작 경향의 여러 가지 요소가 1970년대 고교생영화에서 차용되었을 것이다.

    한편, 그 과정에서 1980년대만의 특수성이 돌출되기도 하였다.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가 개봉된 1989년 한국영화의 제작편수는 11년 만에 100편을 넘어서지만 외국영화의 수입편수는 10년 전에 비해 10배 이상 증가하였다.81) 총 영화 관객수에 있어서도 제5차 영화법이 실시된 1985년 이후 꾸준히 증가하였으나 한국영화의 관객수 및 점유율은 지속적으로 하락하였다. 1980년대 후반 한국영화계는 국산 영화의 불황 심화와 수입영화의 규제 완화로 점철되는 그야말로 ‘사면초가’에 직면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당시 젊은 영화 기획자들은 영화의 주요 관객층인 청소년(하이틴)을 타깃으로 하되, 외국영화 및 기존의 한국영화와는 차별화된 무엇인가를 첨가하고자 하였고 그래서 눈을 돌린 곳이 바로 ‘한국적 현실’을 대변하는 교육계의 현장이었다.

    이러한 배경 하에 제작된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은 다양한 방식으로 한국의 교육 현실을 영화에 기입한다. 이를 <고교 얄개>와 비교하여 검토해보도록 하자. 두 작품 모두에서 공부는 학교생활의 핵심 요소이자 학생의 가장 중요한 임무로 자리한다. 입시 문제를 표제화한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은 말할 것도 없고 <고교 얄개>에서조차 공부는 학생 평가의 기준이자 행위 제약의 근거로 제시된다. 두수의 낙제는 그의 아버지의 가장 커다란 골칫거리이며 또한 그가 좋아하는 인숙과의 관계를 서먹하게 만드는 방해물이다.

    그러나 두 작품 사이에는 공부에 관한 커다란 차이가 존재하기도 한다. <고교 얄개>에서 학업의 문제는 누구나 언제든지 극복할만한 것이며 심지어는 가난한 개인이 당당한 사회인으로 성장하게 하는 것으로 묘사되는 데 반해,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에서 그것은 아무리 노력해도 최상에 다다르기 힘든 것으로, 정도가 지나치면 그리스신화에 나오는 ‘이카로스의 날개’와도 같이 해가 될 수도 있는 것으로 그려진다. <고교 얄개>에서 두수의 아버지와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에서 은주의 아버지는 각각 교수와 법조인으로서 사회 지도층에 속하지만, 두수의 아버지는 학창시절 “낙지국을 두 사발이나 먹은”82) 인물로 등장하는 반면 은주의 아버지는 은주와 소통하지 않으면서도 그 존재감만으로도 은주에게 부담을 안겨 주는 인물로 등장한다. 한편, 두 영화에 나오는 호철과 창수는 모두 빈민층 학생이라는 점에서는 동일하나, 호철의 경우 최상위권 성적의 학생으로 밝고 명랑하고 긍정적인 모습을 보이는 반면 창수의 경우 학업 대신 운동을 하는 어둡고 불만적이고 반항적인 모습을 보인다.

    이처럼 <고교 얄개>에서 공부는 학생의 본분이자 학생다움을 견지하는 수단으로 정해져 있는 데 반해,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에서 공부는 시험으로 다시 입시로 변모하며 학생들을 짓누르는 공포의 대상이 되어 버린다. 이로 인해 갈등의 해소에 있어 두 작품 사이의 간극은 더욱 벌어지게 되는데, 이러한 현상은 특히 결말에 이르러 두드러진다. 두 영화의 결말 부분에서 두수와 은주는 동일하게 공부의 압력으로부터 벗어나게 된다. 그러나 그 방식에 있어서는 커다란 차이를 보이는데, 전자는 그것보다 더욱 가치 있는 선행으로써, 후자는 자살을 통해 그것을 포기함으로써 자유를 얻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로써 두 작품은 서로 다른 영화적 주제를 발산한다. 또한 당연히 여기에도 시대적 배경 및 영화계 환경이 관계하고 있다.

    <고교 얄개>가 개봉된 1970년대 후반은 박정희 유신체제가 모순을 드러내면서도 국민에 대한 억압의 기제를 가장 강력하게 작동시키던 시기였다. 이는 영화계에도 적용되었고 제작 분야에서는 ‘우수영화보상제도’라는 형식으로 명문화되었다. 이 제도는 1970년대를 통과하며 여러 모양새로 변모하였으나, 그것이 영화사에 가장 커다란 강박으로 작용하여 제작 경향에 커다란 영향력을 행사하였다는 점만은 달라지지 않았다. 일례로 ≪경향신문≫1975년 12월 19일자 기사를 살펴보면, 연간 2편 이상의 우수영화 작품을 내놓지 못하는 영화사에 대해서는 외화수입 쿼터 할당을 중심으로 문공부가 일체의 행정 지원을 중지한다는 규정이 있었는데 연말임에도 불구하고 14개 영화사 중에 4개 회사만이 그것을 충족하고 있었다.83) 당시 이 제도가 영화사에 얼마나 커다란 부담이었을지를 짐작하게 한다. 특히 1975년 2/4분기 우수영화로서 <여고졸업반>이 선정된 이후 하이틴영화는 우수영화의 강력한 후보군으로 부상하였으며, 1976년 하반기에는 전체 우수영화 12편 가운데 절반인 6편이 하이틴영화일 정도로 그 비중이 최고조에 달하였다. 그리고 이때 <진짜 진짜 미안해> 등과 함께 선정된 영화가 다름 아닌 <고교 얄개>였다.84)

    이러한 환경에서 영화의 주제는 특정한 방향으로 모아질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85) 당시 유신정권은 국민을 집단화하고 그것을 다시 소집단화하여 각자의 역할과 책임을 다하도록 요구하였다. 이때 ‘국민총화’는 가장 중요한 슬로건이자 사명이고, 이를 위해 국민은 국가의 선도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이를 <고교 얄개>에 적용시켜 보면, 국민총화라는 이름으로 계층 간의 갈등 요소는 철저히 가려지고 봉합되며, 기성세대와 청소년층은 각기 특정한 의무와 책임을 지니고 이들은 고정된 위계질서에 위치한다. 상류층인 두수네의 양옥과 용호네의 병원, 중산층인 인숙이네의 한옥과 식료품점, 빈민층인 호철이네의 옥탑방은 커다란 차이를 보이지만 화면에서 이들 장소는 전혀 갈등이나 충돌을 일으키지 않는다. 교육을 위해서라면 교사의 손찌검은 용인될 수 있으며, 아버지와 선생님의 모습에는 또 다른 ‘얄개’의 모습도 있지만 이들은 어디까지나 학생들이 순응하고 본받아야 할 대상으로 존재한다.

    한편,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에서는 전혀 다른 광경이 펼쳐진다. 담임교사는 성적 및 빈부의 차이에 따라 학생들을 차별대우하고, 부모는 성적이나(천재의 어머니가 봉구에게) 가정환경(은주의 어머니가 소연에게)으로 자녀 친구를 판단한다. 이러한 모습은 창수에 대한 문도의 태도에서 전형적으로 나타나는데, 빈부의 격차에 의해 학생 사회에서도 계급적 대립이 발생하고 있다는 점에서 문제적이다.

    이 작품이 개봉된 1989년은 국민의 과반수 이상은 자신이 중산층에 속한다고 생각하고 있었으며,86) 학생들의 교육 기회 또한 제도적으로는 평등하게 제공되던 편이었다.87)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에 사회 구조적인 부분이 문제제기되고 있는 것은 어떠한 연유에서일까. 아마도 “1987년 6월 항쟁과 7ㆍ8월 노동자대투쟁”88) 등의 영향으로 정치 분야에 불어 닥친 변화의 바람이 교육계로도 일었기 때문일 것이다. 1987년 9월 27일 민주교육추진전국교사협의회(전교협)가 조직되고 그것이 1989년 5월 28일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결정으로 이어졌다. 전교조는 교육의 자주성 및 전문성 확립과 교육민주화 실현을 첫 번째 강령으로 제시하였다는 사실에서 드러나듯,89) 한국 사회의 문제와 교육 현장의 모순을 동일한 틀에서 바라보고 해결하려 하였다.

    이러한 측면에서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에 삽입된 학생들의 다양한 시험 부정행위 미장센 장면은 학부모들의 입 모양 클로즈업 몽타주 장면과 디졸브되면서, 부동산 투기 등이 아니고서야 부를 축적할 수 없던 당시 사회 현실을 친구와의 경쟁에서 이기지 못하고서야 명문대학에 들어갈 수 없다던 교육 현실에 접합시킨다고 볼 수 있다. 그렇기에 창수의 집에서 보이는 도시의 풍경은 <고교 얄개>의 호철의 집에서 보이는 그것보다 훨씬 더 낯설고 멀게 느껴지는 것이다.

    71)박민정은 1970년대 하이틴영화의 제작 배경에 ‘새로운 관객층 확보’라는 제작자 측의 위기 대처 방안이 자리하였음을 지적한다. 박민정, 앞의 논문, 66∼67쪽. / 한편, 정민아는 “1980년대 새로이 등장한 하이틴영화”가 “사회문제를 적극적으로 반영, 십대들의 고민을 풀어내는 방식으로 십대 관객의 관심을 받으며 연속해서 제작된다.”라고 설명한다. 정민아, 앞의 글, 38쪽.  72)박민정, 앞의 논문, 68쪽.  73)유지나 외, 앞의 책, 197쪽.  74)정민아, 앞의 글, 41쪽.  75)<중고 교복ㆍ교모 자유화>, ≪경향신문≫1979.12.21, 7면.  76)<중고생 교복ㆍ머리형 자율로>, ≪동아일보≫1982.1.3, 2면.  77)강준만, 『한국 현대사 산책-1980년대편 2권-』, 인물과사상사, 2003, 171쪽.  78)강준만, 『한국 현대사 산책-1970년대편 3권-』, 인물과사상사, 2006, 79쪽.  79)<문교부 대입 학력고사 12월 10일 실시>, ≪매일경제≫1981.2.5, 11면.  80)<대입고사 내년부터 선지원ㆍ후시험>, ≪경향신문≫1986.11.25, 1면.  81)1978년 제작편수 117편에 수입편수 30편, 1979년 제작편수 96편에 수입편수 26편이던 것이 1988년 제작편수 87편에 수입편수 175편, 1989년 제작편수 110편, 수입편수 264편으로 변하였다. 유지나 외, 앞의 책, 156쪽.  82)<고교 얄개>의 극중에서 두수의 할머니의 대사이다. 이 장면에서 ‘낙제’는 낙지국이라는 말로 희화되어 사용되고 있다.  83)<업자들 사활 걸린 우수영화 선정>, ≪경향신문≫1975.12.19, 8면.  84)< 「우수영화」 확정>, ≪동아일보≫1977.3.30, 5면.  85)기존의 연구들은 1970년대 하이틴영화가 “검열에서 자유로웠다는 점”(이효인 외, 앞의 책, 123쪽.)을 유행의 원인 중에 하나로 지목하는데, 우수영화보상제도를 고려한다면 1970년대 하이틴영화가 진정한 의미에서의 표현의 자유, 창작의 자유를 획득한 것은 아니었다고 볼 수 있다.  86)<국민 60% 이상 “나는 중산층”>, ≪동아일보≫1989.1.23, 7면.  87)<대학생 과외 내년부터 허용>, ≪동아일보≫1988.9.1, 1면.  88)강준만, 『한국 현대사 산책-1980년대편 4권-』, 인물과사상사, 2003, 109쪽.  89)위의 책, 111쪽.

    5. 나오는 말

    지금까지 1970년대와 1980년대 고교생영화의 관계성에 대해 이들 작품군의 효시작이자 대표작인 <고교 얄개>와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를 중심으로 분석하고 고찰해보았다. 그 결과 다음과 같이 크게 세 가지 정도의 결론이 도출되었다.

    우선, <고교 얄개>를 위시한 1970년대 소위 ‘얄개 시리즈’ 작품들과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를 비롯한 1980년대 영화들은 대체로 ‘하이틴영화(청소년영화)’라는 용어로 일컬어져 왔다. 이 용어는 1970년대 중반 소위 ‘진짜 진짜 시리즈’의 효시작인 <진짜 진짜 잊지마>의 대중적 호응을 계기로 언론 지상에서 공신력을 얻으며 사용되기 시작한 것이었다. 그러다가 <고교 얄개>가 크게 히트하고 비슷한 영화들이 연이어 제작, 개봉되면서 이러한 종류의 작품들에 ‘고교생영화’라는 명칭이 부여되기 시작하였고 이는 하이틴영화의 커다란 범주 속에 서사 및 인물, 배경 및 주제 등에 있어 보다 특징적인 요소를 공유하는 작품들에 붙여지게 되었다. 그런데,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 류의 작품군은 여러 가지 측면에서 하이틴영화 중에서도 <고교 얄개> 류의 작품군과 유사성을 지니므로 영화사적 관점에서는 <고교 얄개>와 같은 고교생영화로 통칭할만하다.

    다음으로, 이러한 유사성에도 불구하고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를 비롯한 1980년대 하이틴영화가 ‘고교생영화’로 불리지 않았던 것은, 이들 영화의 장르화 경향이 1970년대 고교생영화의 그것과는 다른 흐름으로 전개되었기 때문이다. 1970년대 하이틴영화의 시초작은 <여고시절>로 보아야겠지만, 그것의 장르화 경향을 생성시킨 작품은 <진짜 진짜 잊지마>였다. 하지만 곧이어 <고교 얄개>를 기점으로 이후 하이틴영화 제작의 관행이 고교생영화로 수렴되었다. 그런데, 세태와 유행을 반영하고 여기에 코믹의 요소를 결합시켜 보다 폭넓은 관객층을 소구함으로써 흥행 성공을 담보하려 하였고 이러한 기획 전략에 따른 흥행 성공에 따라 아류작이 양산되었다는 점에서 1970년대 <고교 얄개>와 1980년대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에는 유사성이 존재한다. 그러나 오랜만에 등장한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류의 작품군이 기댄 호칭은 보다 포괄적인 범위의 ‘하이틴영화’였고, 1990년대 이후 제작의 흐름 또한 남녀 간의 우정과 사랑 및 반항적인 청소년의 모습 등으로 집중화되면서 그 흐름과 명칭에 있어 1970년대 고교생영화와는 차이를 보이게 되었다.

    마지막으로, <고교 얄개>와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의 전체적인 이야기 구조를 살펴보건대, 이들 영화에서는 인물의 배치, 시공간적 배경의 설정, 분위기의 형성과 사건의 전개와 주제의 제시 등에 있어 공통점과 차이점이 발견된다. 즉, 두 작품 모두 등장인물의 캐릭터를 적절하게 배치하며 고등학교 2학년 학생(또는 주변 인물)을 다루면서 주요 공간적 배경을 학교로 설정하고 다양한 에피소드를 사건화한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지니지만, 주인공을 비롯한 등장인물들의 역할과 비중이 다르고 계절과 요일의 구성 및 학교 이외의 공간의 성격이 상이하며 갈등의 배치와 결말의 내용, 주제화의 양상이 이질적이라는 점에서 차이점을 가지기도 한다.

    주목할 점은 이러한 특징이 촬영 및 편집 기법으로도 이어진다는 사실이다. 두 영화 모두 쇼트의 사이즈나 앵글, 카메라의 움직임, 장면 전환, 사운드의 배합 등이 일반적인 상업 극영화의 관습을 견지하며 주요 인물의 비중과 사건의 흐름에 따라 자연스럽게 이루어진다는 공통점이 있지만, 여러 가지 차이점도 발견된다. 이는 비교적 <고교 얄개>에서는 익스트림 롱쇼트에 의한 설정 쇼트의 구축, 줌 인-아웃의 사용 등이,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에서는 구축 쇼트의 간소화, 트래킹 쇼트의 활용 등이 자주 보이는 점에 있어서는 1970년대와 1980년대 한국영화의 영화언어의 차이에서 비롯된 것이라 하겠으나, 영화의 기획 의도나 주제와 연결되기도 한다. 예를 들면, 두 영화 모두 다큐멘터리식의 촬영 기법으로 찍은 화면을 하나의 신으로 구성하고 있지만 <고교 얄개>의 경우 중간 부분에서 두수를 중심으로 그의 학교생활을 활기차게 묘사하는 반면,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의 경우 서두 부분에서 등장인물이 전혀 나오지 않는 대학입학학력고사 당일의 여러 풍경들을 삽입하며 시사성을 드러낸다. 이는 영화의 절정과 결말 부분에서도 발견되는데, <고교 얄개>에서는 백교사와 두수 누나의 결혼식 장면을 정지화면으로 처리하고 두수의 내레이션을 첨가하여 유쾌하고 낭만적으로 그리는 데 반해,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에서는 은주가 자신의 성적을 확인하고 돌아서는 장면을 슬로우 모션과 무음으로 표현한다.

    이상의 내용은 <고교 얄개>가 고교생영화의 전형으로서 동시기의 여타 작품들뿐만 아니라 1980년대 고교생영화에도 일정부분 영향을 미쳤으며, 동시에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는 이러한 영화적 요소를 받아들이면서도 나름대로 그것을 변형하였다는 사실을 확인 또는 추측하게 한다. 또한 이러한 모습은 이들 작품을 감싸고 있던 시대적 배경과 영화적 상황의 투영 또는 반영의 결과 새롭게 형성된 영상 매체, 영상 예술인 영화만의 특징이라는 점에서 주목을 요한다.90)

    이와 같이, 1970년대 고교생영화와 1980년대 고교생영화 사이에는 매우 밀접한 관계성이 존재한다. 여기서의 관계성은 작품 상에서의 공통점과 차이점 양자를 포괄하는 것으로, 이는 1970년대 고교생영화의 효시작인 <고교 얄개>와 1980년대 고교생영화의 대표작인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에서도 포착된다. 그리고 거기에는 당대 영화 산업, 인력, 정책 나아가 동시기 정치, 경제, 교육, 사상, 문화 등 한국영화(계) 내외에 둘러 있던 현실적인 환경이 토양으로 자리한다.

    이후 한국 영화의 기획, 제작, 배급, 상영, 흥행 시스템이 변화하고 한국 사회가 보다 개방화, 다원화, 민주화, 개인화되면서 고교생영화, 하이틴영화 또한 다양한 모양으로 변형되고 분화되고 있다. 하지만, 비록 그 이름과 성격과 범위가 달라질 지라도, 1970년대와 1980년대 한국 고교생영화는 한국에서 영화가 그것의 바탕을 이루는 영화적, 사회적 현실을 어떻게 끌어오고 해석하고 (재)조합하고 표현해내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는 점에서 최근 한국영화와도 관계성이 유지되고 있다. 마치 <고교 얄개>와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 사이에 그것이 존재하는 것처럼 말이다.

    90)이들 작품은 그것의 원작 소설( 『얄개전』) 또는 기획 소설(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과 맥을 같이 하면서도 캐릭터의 배치, 내러티브 구조, 시공간적 배경 설정 등에 있어 다소의 차이를 보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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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표1>] <고교 얄개>의 이야기 구조
    <고교 얄개>의 이야기 구조
  • [<표2>]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의 이야기 구조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의 이야기 구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