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 퐁텐 콩트의 회화적 수용에 관한 고찰: 「피에르의 암말」을 중심으로

La jument du compere Pierre, conte en vers de La Fontaine et son illustration picturale de Subleyra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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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ABSTRACT

    Cette étude consiste à confronter deux oeuvres qui appartiennent à deux domaines différents (la poésie et la peinture), à deux époques différentes (le XVIIe et le XVIIIe siècle), et sont singulières dans la carrière de deux artistes aux statuts fort différents : Jean de La Fontaine, l’auteur populaire des fameuses Fables, et Pierre Subleyras, peintre pour historiens d’art. Ce qui trace un trait d’union entre toutes ces différences, c’est un conte, écrit par l’un et illustré par une peinture de l’autre : La jument de compère Pierre. La confrontation entre ces deux oeuvres permettra de mettre en lumière certaines particularités de l’un et l’autre domaine et de jeter un oeil sur la manière dont ces particularités ont été pensées à l’époque de la création de ces oeuvres.

    L'époque classique possède en effet sa propre théorie en matière de comparaison de la peinture et de la poésie. Tant bien que mal basées sur une théorie d’Aristote développée dans le cadre de la tragédie (l’imitatio, l’imitation de la nature humaine par l’art, non de préférence telle qu’elle est mais telle qu’elle doit être) et sur une formule d’Horace décontextualisée (Ut pictura poesis : la poésie est comme la peinture), elle élève la peinture au même statut libéral que la poésie mais lui imposent à la fois d’imiter la nature en général mais en la corrigeant par la connaissance d’oeuvres parfaites et d’illustrer les sujets tirés des Écritures ou d’autres textes religieux, de l’histoire, de la grande poésie et de la mythologie. En illustrant ce conte léger de La Fontaine, le tableau de Subleyras détourne discrètement cette règle puisque le conte de La Fontaine n'appartient pas à la « grande poésie ».

    La trame du conte de La jument du compère Pierre de La Fontaine est en effet tiré de la Dixième Nouvelle de la Neuvième Journée du Décaméron de Boccace. La Fontaine en a cependant complètement altéré certains éléments, revendiquant une pratique de complète « recréation ». Il a donc purgé le récit de sa localisation géographique et de son appartenance chronologique, explicites dans la nouvelle italienne ; il a changé le protagonisme des personnages, diminuant le rôle de Madeleine (Gemmata dans le conte de Boccace), qu’il rend beaucoup plus passive, et augmentant celui de Pierre, qui joue de son autorité auprès de sa femme ; il a modifié le caractère du prêtre, moins machiavélique, plus visiblement entreprenant, plus enclin à la séduction, et il l’a débarassé de son statut de pauvre ; il a altéré la conclusion puisque le prêtre n’est pas complètement parvenu à ses fins et que l’on ne sait pas si Pierre a continué d’être dupe, tandis que la femme en redemande. Enfin, La Fontaine a procédé à un travail important sur le style, parsemant son texte de remarques spirituelles ou ironiques, usant de stratégies langagières lui permettant de jeter un voile sur les détails sexuels les plus crus, tout en les mettant en valeur.

    De même que La Fontaine s’est basé sur la nouvelle de Boccace pour écrire son conte, Subleyras s’est peut-être inspiré de la peinture que Nicolas Vleughels a réalisée sur le sujet en 1735 tout en résolvant d'une manière beaucoup plus inventive et audacieuse la difficulté principale liée à l'illustration du conte : rendre par l'image la promesse d'une métamorphose qui ne s'accomplit pas. On saisit alors toute l’originalité et tout le talent de Subleyras dans les domaines, empruntés à la rhétorique et tels que les définit Nicole Rouillé, de l’« invention » (c’est-à-dire du choix du moment clef), de la « disposition » (avec un cadrage serré qui privilégie très largement les personnages au détriment du décor pourtant soigneusement élaboré) et des « propriétés » (c’est-à-dire des décors, attributs, costumes et autres accessoires, qui semblent indiquer que le peintre avait aussi connaissance de la source de l'écrivain).

    Un dernier problème est à considérer à propos de ce conte et de cette peinture : l’érotisme, ou plutôt le problème de dire et celui de montrer des scènes érotiques tout en respectant certaines convenances. Comment le conteur et le peintre relèvent-ils ce véritable défi ? Hors contexte, quand on n'est pas informé du prétexte métaphorique d’évoquer sa promise métamorphose (que seule la connaissance du texte permet de comprendre), la peinture choque plus aujourd'hui par cette exhibition d'une femme dans une posture presque animale où l’on comprend bien qu’elle n’est que fort peu consentante. La fidélité au texte de La Fontaine, qui a rendu passive Madeleine alors que Gemmata l’était beaucoup moins, dessert ici Subleyras mais surtout le fait que la peinture ne peut évoquer qu'un moment du conte tandis que le poète a tout loisir de se rattraper dans sa chute en rendant à la femme une volonté et un désir qui la « réhumanisent ». Contrairement au précepte classique, la poésie n'est pas comme la peinture.

  • KEYWORD

    Jean de La Fontaine , Contes , La jument du compere Pierre , Boccace , Pierre Subleyras

  • 1. 들어가며

    본고의 출발점에는 호라티우스의 문구 ‘ut pictura poesis’가 있다. ‘시는 회화와 같다’라는 이 개념은 르네상스를 거쳐 18세기에 이르기까지 각 시대가 당면한 문학과 예술 간의 관계를 정의하는 데에 있어 중요한 화두가 되어왔다. 이 개념을 염두에 두고 필자는 영역, 시대, 저자의 대중적 위상이 서로 상이한 두 작품을 비교, 분석해 보려고 한다. 그 하나는 17세기의 운문작품으로, 익히 너무도 잘 알려진 『우화집』의 저자 장 드 라 퐁텐(Jean de La Fontaine, 1621-1695)의 콩트 중 하나인 「피에르의 암말 La jument du compère Pierre」(1674)이고, 다른 하나는 이 콩트를 소재로하여 피에르 쉬블레라스(Pierre Subleyras, 1699-1749)가 그린 동 제목의 회화 작품(1740년대 경)이다.

    위의 두 작가와 작품을 선정한 것은 다음과 같은 특성에 기인한다. 우선 장르 내적 특수성으로 보자면, 라 퐁텐의 콩트는 내용상 전통적인 서술문학을 계승하고 있지만 시의 형식을 취하며,1) 쉬블레라스는 종교화를 주로 작업한 프랑스 화가이지만 콩트 소재를 다루면서 회화의 주변적 장르에 속하던 풍속화 장르를 선택하였다. 또한 라 퐁텐의 「피에르의 암말」은 보카치오 『데카메론』에 나오는 누벨을 모델로 하며, 쉬블레라스의 회화는 그의 스승 블뢰걸스의 판화를 계승한다. 따라서 원전작품을 대하는 작가들의 입장과 원전을 해석하는 고유한 방식을 본고에서 분석해 볼 수 있다. 장르 외적인 측면에서 보자면, 라 퐁텐과 쉬블레라스의 작품에서는 시와 회화라는 두 표현 형태 간의 연관성, 상호적 수용에 관한 문제를 제기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이야기의 서술(narration)과 관련하여 수사학적 개념들이 어떻게 각 시대적 요구에 부합하면서 시와 회화의 특성으로 표출되는지 그 양상에 대해 성찰해 볼 수 있다. 이러한 문제점들을 검토하기에 앞서 라 퐁텐과 특히 일반 대중에게 생소한 작가인 쉬블레라스의 작품에 관련된 사항들을 간략히 소개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그리고 본고의 시발점이 되었던 17-18세기 시와 회화의 연관성, 다시 말해 17-18세기인들이 어떻게 시의 내용을 회화로 재해석하는지 살펴본 후에 각 작품을 분석하려고 한다. 이를 통해 라 퐁텐의 콩트와 쉬블레라스 회화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 중의 하나인 에로티즘의 문제를 지적하고, ‘말하지 않으면서 말하기’를 지향하는 두 작가의 암묵의 수사학을 비교해볼 것이다. 또한 이 두 작품의 비교를 출발점으로 하여서, 수 세기를 거치며 예술가들에게 영감을 준 라 퐁텐 작품의 예술적 재해석에 대한 연구가 이어지기를 바란다.

    1)『운문 콩트와 누벨』의 서문(1664, 1665, 1666)에서 라 퐁텐은 전통적 서사문학 장르에 속하는 콩트와 누벨을 자신이 운문 형식으로 바꾸는 이유를 밝히고 그 정당성을 변호하면서, 운문콩트가 지니는 특성을 설명한다. 이에 대해서는 필자의 논문 「17세기 콩트의 개념과 형태 연구 : 라 퐁텐의 『콩트집』을 중심으로」, 『한국프랑스학논집』, 78집, 2012, pp.343-362 참조.)

    2. 라 퐁텐과 쉬블레라스

    라 퐁텐의 대중성에 관한 한 『우화집 Fables』(1668-1694)의 공헌과 후광이 얼마나 큰지는 새삼 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그보다 앞서 라 퐁텐은 1664년 『보카치오와 아리오스토에게서 가져온 운문 누벨 Nouvelles en vers tirées de Boccace et de l'Arioste』이라는 제목으로 「조콩드 Joconde」와 「매 맞고도 좋아하는 오쟁이 남편 Le Cocu, battu et content」두 편의 콩트를 발표한다. 다음해 『운문 콩트와 누벨 Contes et nouvelles en vers』 제 1부(1665)에서 앞서의 두 콩트를 포함하여 총 13편의 콩트를 발표하고, 다시 이듬해 16편을 보태어 제 2부(1666)를 출간한다. 『우화집』의 출간이 시작된 이후에도 콩트집 작업과 출간은 중단되지 않는데, 1671년 다시 15편을 추가하여 『운문 콩트와 누벨』 제 3부를 발표한다. 1674년의 『신작 콩트 Nouveaux contes』에는 콩트 17편이 포함되고, 1685년의 『산문과 운문 작품집 OEuvres de prose et de poésie』에는 또 다시 5편의 새로운 콩트가 추가된다.2) 「피에르의 암말」 은 1674년 『신작 콩트』에 실린 작품으로, 라 퐁텐이 자기의 취향에 가장 잘 맞는 작가라고 공공연히 인정한 보카치오의 『데카메론』 제 9일의 열 번째 누벨에서 차용한 콩트이다.3) 이야기를 서술하는 인물은 이미 『운문 콩트와 누벨』 제 2부 「노인들의 달력 Calendrier des vieillards」의 서술자이기도 한 디오네(Dionée)이다. 전체적인 이야기의 흐름은 보카치오의 그것과 차이가 없지만, 다른 차용 작품에서보다 훨씬 자유로운 ‘다시 쓰기’를 보인다는 점이 특징이다. 라 퐁텐의 차용이 보카치오의 원전과 어떠한 점에서 다르며, 어떤 서술방식을 운문에 적용하는지는 이후에 자세히 살펴보기로 한다.

    라 퐁텐의 우화를 소재로 한 삽화, 판화, 회화 작품들은 현대에 이르기까지 셀 수 없이 많은 반면, 콩트를 소재로 한 미술작품은 드물지 않으나 그보다 덜 알려진 것이 사실이다. 게다가 『우화집』은 이미 초판이 출판되었을 때부터 삽화가 텍스트에 포함되어 있었지만, 『콩트집』의 경우 애초에는 삽화가 전혀 포함되어 있지 않았다. 하지만 특히 18세기는 라 퐁텐의 콩트가 가장 활발하게 예술의 소재로 다루어진 시기인데, 그 중에서도 콩트 작품집의 삽화를 목적으로 제작된 판화의 경우가 대다수라는 점에서, 본고에서 다루는 쉬블레라스는 그것만으로도 변별성을 지닌다. 쉬블레라스는 삽화가 아니라 독립적이고 개별적인 회화작품, 그것도 역사화가, 종교화가로 알려진 그의 경력과 거리가 있어 보이는 풍속화 장르로 콩트를 그렸기 때문이다. 일반대중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작가임을 고려하여, 쉬블레라스의 삶과 작품 활동을 간략히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피에르 쉬블레라스는 1699년 샤르댕(Chardin)과 같은 해에 태어났다. 인물의 감정표현이나 절제된 동작에서 유사한 취향을 발견할 수 있지만, 샤르댕이 정물화 분야에서 대중적이라면 쉬블레라스는 역사화의 분야에서 알려진 인물이었고 그나마 미술사가들에 국한되어 있기 때문에 광범위한 대중성과는 거리가 있다. 그리고 샤르댕과 달리 경력의 주요한 시기를 로마에서 보냈다. 그의 아버지는 위제스의 평범한 화가였고, 당시 지역 학파로서 가장 인지도가 있었던 툴루즈의 앙투안 리발(Antoine Rivalz)의 아틀리에에서 수학하였다. 1726년에 파리에 정착하고 이듬해 「모세와 청동뱀」으로 아카데미 그랑프리를 수상하며, 이를 계기로 로마의 프랑스 아카데미에 초대받는다. 푸생(Poussin)이 로마에서 대부분의 주요 예술 활동을 했던 것처럼 쉬블레라스도 로마에 남아 이탈리아 귀족들, 프랑스 대사의 후원을 받으며 작업하게 된다. 라 퐁텐 콩트를 소재로 하는 작품을 남기는 것도 이 도시에서이다. 그는 무엇보다 로마에서 인정받는 종교화 작가이다. 로마 카톨릭 종파의 중재를 통해 쉬블레라스는 로마, 이탈리아 전역, 심지어 프랑스의 툴루즈와 그라스 등지의 성당에서 주문을 받는다. 1741년 교황 브누아 14세의 공식 초상화를 그리는 것을 계기로 생피에르 성당에 「미사를 집도하는 생 바질 Saint Basile célébrant la messe」을 제작하는데, 이는 푸생이나 부에(Vouet), 발랑탱(Valentin) 이후 프랑스 화가로는 유일하다. 50세의 나이로 로마에서 병사하기 전, 생피에르 성당대형작품을 완성하기 전에, 그는 18세기 회화사의 걸작 중의 하나인 「홍수에 환자를 구하는 생 카미유 드 레리스 Saint Camille de Lellis sauvant les malades lors d'une inondation」를 sauvant les malades lors d'une inondation 를 남긴다. 당대 모든 예술가들의 관심이 역사화 장르에 집중되어 있었다면, 쉬블레라스 작업의 폭은 정물, 풍속, 초상, 신화 등 다양한 주제와 장르에까지 미친다.4)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감스럽게도 쉬블레라스는 1700년대 예술관의 혁신을 이끈 화가들 가운데에서 충분히 제 가치를 인정받지 못한 예술가로 기억된다. 「피에르의 암말」 은 비교적 작은 규모의 (30,5 x 24,5 cm) 캔버스 유화로 에르미타주 미술관 (Saint-Pétersbourg)에 소장되어 있으며, 당시의 풍속화 작업에서 흔히 보이던 식으로 라 퐁텐의 다른 콩트 Le Bât와 한 쌍을 이룬다.5)

    2)이 68편의 콩트에 다시 세 편을 덧붙일 수 있다. Le Poème du Quinquina et autres ouvrages en vers, OEuvres posthumes에 각 1편과, 발표되지는 않았지만 자필원고에 남아 있던 1편이 이에 해당한다.(La Fontaine, OEuvres complètes I, Fables, Contes et nouvelles, édition établie, présentée et annotée par Jean-Pierre Collinet, Paris, Gallimard, « Bibliothèque de la Pléiade », 1991 참조. 이하 작품 인용은 이 판본에 따름을 밝힌다.)  3)“Ceux [contes] de Boccace qui sont le plus à mon goût.” (Préface, Contes et nouvelles, I, édition citée, p.555.) 또한 『운문 콩트와 누벨』 만을 보아도 전체 3부에 걸쳐 실린 44편의 콩트와 누벨 가운데 13편이 보카치오에게서 차용한 것이다.  4)작품의 구성 면에서 보면, 엄격하고, 안정적이며 힘이 있다. 고전적인 단순함도 눈에 띤다. 터치는 면밀하고 섬세하며, 색채는 주로 흰색, 검은색, 분홍색의 삼색을 위주로 하는 것이 특징이다. (이상 Dictionnaire de la Peinture, Larousse 참조.)  5)“La coutume de présenter les tableaux par paires, que ce soit des pendants d’un même artiste, d’artistes différents ou d’un artiste vivant et d’un maître ancien, était si répandue qu’il ne faut guère s’étonner que tant de peintures de genres aient été produites par deux ou par quatre.” (Colin B. Bailey, « La peinture de genre en France au XVIIIesiècle », in Colin B. Bailey (dir.), Au temps de Watteau, Chardin et Fragonard, chefs-d’oeuvres de la peinture de genre en France, Paris, La Renaissance du Livre, 2003, p.21.

    3. 시와 회화의 관계

    시와 회화 간의 관계는 고전주의 시대 문학과 예술론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비아로스토카(Jolanta Bialostocka)는 독일학자 레싱(Lessing)의 『라오콘 Laocoon』에 붙인 서문에서 이 문제를 다음과 같이 매우 명확하게 요약해준다.

    바로 첫 문장만으로 보아도, 우리는 18세기에 시인으로서 라 퐁텐의 위용이 어느 정도에까지 미치는지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우화집』에 비교할 바는 아니지만, 특히 18세기 라 퐁텐 콩트의 삽화작가로는 대표적으로 랑크레(Nicolas Lancret), 코생(Charles-Nicolas Cochin), 에장(Charles Eisen), 그리고 프라고나르(Jean-Honoré Fragonard)를 꼽을 수 있다. 이들의 작품은 보통 『콩트집』의 삽화로 쓰일 목적으로 준비한 판화가 대부분이다.7) 위의 인용문에서 강조된 일종의 편견은 사실 르네상스 이후 점차 구체적으로 이론화된 일명 ‘ut pictura poesis’에서 비롯된다. ‘시는 회화와 같다(La poésie est comme la peinture)로 풀이되는 이 개념은 르네상스기에 시와 회화의 차이점을 성찰하는 가운데 대두되었다. 평면의 회화에서 공간을 표현하는 방법을 개발해낸 르네상스의 화가들은 공간에서의 동시성(同時性)과 시간의 연속성이 그다지 쉽게 양립할 수 없음을 깨닫고, 이를 시와 회화의 변별적인 특징으로 간주하기 시작한다. 가령 회화는 한 순간에 포착된 일군의 형태들로 이루어진 것이며, 시는 연속적으로 (시간적으로) 낭송되거나 읽혀진 일련의 단어들로 이루어진 것이라는 점이다. 바로 이 개념을 근거로 하여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회화의 우월성을 강조하는데, 회화를 육체적 활동의 범주에, 반대로 시를 고차원적인 지적 활동의 범주에 포함시키는 이 시대의 관행을 상기한다면 다빈치의 주장은 대담하기 이를 데 없다. 예를 들어 전투장면을 재현한다고 가정하자. 시는 길고 장황한 서술을 통해서 전투를 묘사하지만 회화는 다양하고도 활기 넘치는 갖가지 행동들을 한 눈에 펼쳐 보인다. 인간 육체의 아름다운 모습을 환기시킬 때에도 마찬가지이다.8) 이어서 16세기 이탈리아의 예술 이론가들은 두 장르 간의 차이를 설명하거나 종합하기에 이르는데, 이에 따르면 화가는 선과 색채를 쉽게 이용하여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을 모사할 수 있는 장점이 있는 반면에 단어를 사용해야 하는 시인은 정신의 영역에 속하는 것을 이야기하는 데에 더욱 뛰어나다. 그래서 화가는 외부세계를 보여주고, 시인은 내면세계를 보여주는 데에 적합하다고 말한다.9)

    이를 철저히 이론화하기 위해서 르네상스 지식인들에게는 고대인들이 정립한 이론적 토대가 절실히 요구된다. 하지만 고대의 시는 연극과 서사장르에 한정되었기 때문에, 이곳저곳에서 시와 회화에 관한 언급이나 비교의 내용들을 수집함으로써 문학이론을 예술분야에 적용하는 데 힘을 기울인다. 그렇게 이론적 토대를 제공한 고대인은 바로 호라티우스와 아리스토텔레스였다. 사실 ‘ut pictura poesis’는 호라티우스의 『시학 L'art poétique』에서 인용해온 문구인데10), 시학의 문맥에서 잘려 나온 이 문구는 얼핏 시와 회화가 동일하다는 의미로 파악됨으로써 화가들의 육체적 작업을 지적인 시 창작의 위상으로까지 끌어올리는 데에 일조한다. 한편 아리스토텔레스는 『시학 La poétique』에서 비극을 논하면서 ‘imitatio’ 이론, 즉 예술(혹은 기교)을 통해 인간의 본성(혹은 인간 본연의 모습)을 모방해야 한다는 이론을 전개한다. 이러한 생각은 회화 분야에까지 적용되어 화가가 자연의 전반적인 것을 모방해야 한다는 의미로 확대되기에 이른다. 그렇기에 ‘시는 회화와 같다’라고 했을 때, 회화는 당연히 성서나 그 이외의 종교, 역사, 시, 신화 등에서 다루는 것과 동일한 주제를 담아야 했고, 이런 부류의 회화는 일반적으로 ‘역사화’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이어 18세기 이론가인 앙드레 페리비앙(André Félibien 1619-1695)은 역사화가 아닌 다른 장르의 회화, 즉 정물화, 풍경화, 풍속화들 간에 서열을 매겨야 할 필요성을 느끼고, 역사화를 제일 상위에 놓아 시를 모방하기 위해 기울인 문화적 소양과 상상력의 동원을 높이 평가한 반면, 다른 장르는 그저 현실을 그대로 모방한 하위차원으로 분류한다.11)

    그렇다고 해서 이러한 회화의 장르별 서열화가 18세기 전체에 걸쳐 나타나는 풍속화의 인기를 부정할 수는 없어 보인다. 훗날 그뢰즈(Jean-Baptiste Greuze)의 후원자가 되는 루이 구주노 신부(Louis Gougenot)의 다음 글은 본고의 화가 쉬블레라스와 관련하여 시사하는 바가 크다.

    대규모의 종교화 분야에서 명성을 쌓은 쉬블레라스에게 문학콩트, 그것도 에로틱한 콩트를 소재로 한 그림을 그린다는 것은 실제로 하나의 ‘유익한 유희’에 해당한다. 그렇다면, 쉬블레라스가 종교 역사 등의 진지한 주제를 다루는 데 익숙하다는 사실, 그리고 라 퐁텐의 콩트를 그렸을 때 그것이 풍속화의 장르로 그리기는 했으나 엄밀히 말하면 그것은 시의 내용을 그린 것이고, 그 시가 위엄 있는 전통적 시가 아니라 에로틱한 내용을 담고 있다는 사실에 기대어 본다면, 당대의 관념으로 볼 때 쉬블레라스의 선택과 수용을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가 하는 질문을 던질 수 있다. 여기에 간단히 답하자면, 그것이 시이건 회화이건 하나의 작품을 읽어나갈 때 전제가 되는 모델, 당대의 모델은 바로 고전적인 설득의 수사학에서 정의하는 invention, disposition, propriété의 원칙이다. 니콜 루이에(Nicole Rouillé)에 따르면, invention은 주제 선택의 영역, disposition은 장면의 구성, 인물의 동작, 양식의 선택, propriété는 장식, 상징, 의상 등의 부속물의 지정과 관련된다.13) 본고에서는 그러므로 시와 회화를 연결해주는 하나의 도구로서 이 설득의 수사적 기교들을 바탕으로 하여 라 퐁텐의 운문 콩트와 쉬블레라스의 회화를 살펴보기로 한다.

    6)“Il n’était pas rare, au dix-huitième siècle, de juger de la qualité d’un poète d’après le nombre de tableaux que l’on pouvait tirer de son oeuvre. La valeur d’un bon tableau dépendait à son tour du sujet, et les seuls admissibles étaient tirés de la Bible, de la littérature antique ou de l’histoire et de la fable de la Renaissance ; de plus il fallait suivre le texte avec une fidélité absolue.”(Introduction au Laocoon par Jolanta Bialostocka, in Lessing, Laocoon, Paris, Hermann, 1990, pp.12-13. 이하 Lessing, Laocoon으로 약칭함.)  7)Jean-Pierre Collinet, La Fontaine et ses illustrateurs, in OEuvres complètes I, Fables, Contes et nouvelles, édition citée, pp.CXXVIII-CXLVII.  8)Lessing, Laocoon, pp.14-15.  9)Ludovico Dolce와 Benedetto Varchi의 이론을 말한다. (Ibid., p.15.)  10)“La poésie est comme la peinture ; certaines plaisent mieux regardées de près, et d'autres vues de loin ; l'une aime l'obscurité, l'autre veut être vue à la lumière et ne craint pas le jugement pénétrant du connaisseur ; celle-ci plaît une seule fois, cette autre plaira dix fois répétée.” (Horace, L'art poétique, v. 361-365)  11)Lessing, Laocoon, p.17.  12)“Un peintre d’histoire peut, sans déshonorer son génie, s’amuser quelquefois à ces sortes d’ouvrages : comme l’esprit ne peut être toujours tendu et occupé d’idées grandes et élevées, ces petites compositions sont pour lui autant d’amusements utiles, qui, en procurant à l’imagination un repos nécessaire, sont de nouvelles preuves de son étendue et de sa fécondité.” (Cité dans Colin B. Bailey, “La peinture de genre en France au XVIIIesiècle”, in Colin B. Bailey (dir.), Au temps de Watteau, Chardin et Fragonard, chefs-d’oeuvres de la peinture de genre en France, Paris, La Renaissance du Livre, 2003, p.12.)  13)Nicole Rouillé, Peindre et dire les passions, la gestuelle baroque aux XVIIe et XVIIIe siècles, l’exemple du musée Fesh d’Ajaccio, Ajaccio, Éditions Alain Piazzola, 2006 참조.

    4. 「피에르의 암말」 : 라 퐁텐의 모델 보카치오

    라 퐁텐 콩트의 길이는 184행으로 다른 콩트에 비해 긴 편이다. 내용은 다음과 같다. 파렴치한 신부 장(Jean)은 사람 말을 쉽게 믿는 피에르라는 가난한 농부에게 아내 마들렌을 암말로 변신시키면 낮에는 일을 시키고 밤에는 여인의 역할을 하게 하면 된다고 설득하고 그의 동의를 얻어낸다. 하지만 남편은 성공적으로 시술을 하기 위해서 기꺼이 그녀의 알몸을 요구하고, 심지어 암말의 꼬리를 붙인다는 명목으로 마들렌의 몸에 손을 대는 신부의 술책을 알아차리지 못한다. 마침내 신부가 자기 아내의 몸에 꼬리를 다는 순간 피에르가 개입한다. 그러자 그에게 돌아오는 것은 신부와 아내의 질책뿐이다.

    마티유 베르만(Mathieu Bermann)이 적절하게 지적하였듯이 라 퐁텐에게 있어 글쓰기는 ‘다시 쓰기’를 의미한다.14) 사실 라 퐁텐은 이 콩트를 보카치오의 『데카메론』 제 9일 열 번째 누벨에서 차용한다. 그러나 콩트의 상당부분을 완전히 바꾸어서 고대의 테렌티우스, 소포클레스, 에우리피데스가 그들의 작품에서 보여 주었던 것처럼 완전한 ‘재창작’을 시도한다. 이점에 대해 라 퐁텐은 1666년 『운문 콩트와 누벨』 제 2부의 서문에서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라 퐁텐은 이처럼 독자로 하여금 자신의 텍스트를 원전 텍스트와 비교하도록 처음부터 권한다. 심지어 작품에 부제목을 달아 그 출처를 과감하게 밝히기까지 한다. 라 퐁텐에게 문제가 되는 것은 ‘콩트(conte)’ 그 자체가 아니라 ‘어떻게 이야기하는가(conter)’이다. 그가 일러준 바대로 두 개의 콩트, 원전의 텍스트와 다시 쓰기 한 텍스트를 비교해보자.

    라 퐁텐이 스무 행에 걸쳐 신부 장을 소개할 때 그 어조에는 빈정거림과 풍자가 가득하다. 그를 신부(curé)라고 칭하고는 곧장 ‘강론은 거의 하지 않고 수확 때에나 한다’고 덧붙이는데, 이는 그에게 음주 성향이 있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또한 콩트의 서두에서 “요즘 아이들은 다 알 테지만”이라는 수수께끼 같은 구절을 삽입함으로써 그것이 에로틱한 콩트임을 암시하고 들어간다. 인물의 소개 방식도 보카치오와 상이하다. 라 퐁텐은 등장인물들이 어느 나라 사람인지, 어느 시대에, 어디에 사는 사람인지 하나도 명시하지 않는다. 반면에 보카치오는 이들 사항에 대해 보다 중립적이고 보다 자세한 정보를 제공한다. 우선 신부의 성(姓)은 바롤로(Barolo)이며 이름은 지아니(Gianni)이다. 프랑스 식 이름의 장(Jean)에 해당한다. 그에게는 성당이 있지만 너무도 가난해서 푸글리아(Puglia) 지방 장터를 떠돌며 물건을 판다. 푸글리아는 이탈리아 남부에 실존하는 지방이름이다. 신부는 바를레타(Barletta)의 관저에 살고 피에트로(Pietro)는 트레산티(Tresanti)의 작은 오두막집에 산다. 또한 이 일이 ‘지난 해’에 일어났다고 밝힌다. 이들이 제공하는 것은 신분, 지리, 연대에 관한 정보이며, 모두 프랑스어 라 퐁텐 버전에는 나타나지 않는 것들이다. 게다가 이들 모든 정보들이 단 한 문장으로 처리되어 있다.16) 바로 이 점에서 라 퐁텐의 의도적인 선택이 드러나며, 이 점과 관련해 그는 『운문 콩트와 누벨』 서문에서 운문 콩트의 문체적 특성을 언급한다.

    또한 보카치오는 신부와 피에트로가 서로 만나게 되는 상황을 환기시킬 뿐만 아니라 서로의 집을 오갈 때 맺어지는 친밀감 역시 잊지 않고 언급한다. 라 퐁텐은 이러한 세부사항을 배제하고 피에르에게 초점을 맞추어, 신부가 자주 만나는 인물이며, 7행에 걸쳐 피에르의 가족과 가난한 환경에 대해 설명한다. 이어서 또 7행에 걸쳐 그의 아내 마들렌을 전적으로 성적인 대상을 다루듯이 길게 묘사하고, 그녀가 신부에게 불러일으키는 욕정에 대해서는 그보다 더 많은 13행을 소비한다.18)

    이번에는 사건의 정황 측면을 보자. 보카치오의 콩트에서 피에트로의 아내를 등장시키고 문제의 암말 변신이야기를 유도하는 것은 피에트로의 집에 신부를 재울 장소가 마땅치 않은 이유에서이다. 피에트로가 신부의 관저에서 묵을 적에는 아무 문제가 없었지만, 신부가 가난한 농부의 집에서 밤을 보내게 되자 신부는 자처하여 마구간에 잠자리를 마련한다. 피에트로의 아내 젬마타(Gemmata)가 이웃집으로 잠을 자러 갈 테니 남편과 한 침대에서 잘 것을 권해도 막무가내이다. 신부의 이러한 고집은 상대방체스 말의 위치를 한참 앞서 예견하는 흉계의 다름 아니다. 신부는 젬마타를 안심시키기 위해, 자신은 마구간에서 제 암말과 밤을 보낼 수 있다, 자신에게는 암말을 여자로 변신시킬 능력이 있으며 언제고 원하는 때에 짐승을 본래의 모습으로 돌려놓을 수 있다고 말한다. 신부의 말을 들은 아내는 머릿속으로 재빠른 계산을 하고는 남편에게 자신의 계획을 이야기한다. 신부가 자신을 암말로 변하게만 해준다면, 낮에는 남편이 장으로 물건을 나를 때 일손이 되어 줄 것이며, 밤에는 다시 여인으로서의 일을 할 것이라는 논리가 그것이다. 이처럼 보카치오의 이야기에서 아내는 매우 적극적이면서도 잔인한 역할을 맡는다. 이제 신부에게 남은 것은 피에트로의 간절한 부탁을 여러 차례 물리치다가 결국 못이기는 척 자신이 목적한 바를 이루는 것뿐이다.

    각 인물의 설정에 있어서도 두 작가의 선택이 상이하다. 보카치오 작품에서 신부의 마키아벨리적 성격은 라 퐁텐 콩트에서 정반대의 양상을 취한다. 마들렌에게 욕정을 가득 품은 라 퐁텐의 신부는 드러내놓고 농부의 아내에게 아첨의 시선을 보내고 선물을 선사한다. 하지만 순진한 아내는 아무 것도 눈치 채지 못한다. 신부로 하여금 “재미있는 술책 (un plaisant stratagème)”을 꾸미게 하는 발단에는 여인의 순진함이 있지만, 결국 그 술책이 실행에 옮겨지는 데에는 “보다 만족스럽게 낮 시간을 보내고, 밤에도 왕처럼 대접받을 수 있다(le moyen d’être un jour plus content / Qu'un petit roi)”는 신부의 감언이설에 넘어간 남편의 어리석음이 큰 몫을 한다. 다시 말하면, 라 퐁텐의 콩트에서 마들렌이 암말로 변함으로써 얻는 이익을 이야기하는 사람은 바로 신부 자신이다. 또한 남편은 신부의 제안에 동조하고 기꺼이 제 아내에게 옷 벗기를 명한다. 보카치오와의 극명한 대비는 그러므로 아내의 지극히 수동적이고 축소된 성격과 역할에서 비롯된다. 보카치오 콩트에서 적극적으로 스스로 암말이 되길 자청하여 남편과 가정에 이로움을 주고자 했던 이가 아내였다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이들 부부는 끝까지 서로 단결되고 위하는 모습을 보여주며, 심지어 다음날 함께 신부를 직접 찾아가기까지 한다. 그렇기 때문에 보카치오의 신부는 오로지 부부의 의지에 따라서만 변신을 시술한다는 제 나름의 정당성을 표명할 수 있다.

    이번에는 이 콩트의 절정 부분에 해당하는 변신 시술 장면을 비교해보자. 젬마타는 일단 옷을 모두 벗고 손과 발을 땅에 짚는 자세를 취한다. 그리고 신부는 차례차례 여인의 몸 여기저기를 더듬으며 그것이 암말의 어느 부위에 해당하는지 알려준다. 마침내 말에 ‘꼬리’를 삽입하는 순간, 사실은 신부가 은밀히 계획했던 성행위가 (매우 적나라하게 묘사되면서) 이루어지는 순간, 남편이 개입을 하지만 이미 늦었다. 신부는 제 목적을 달성했고, 오히려 결정적 순간에 침묵을 지키지 못하고 아내의 암말 변신을 그르쳐버린 남편을 나무란다. 그러는 사이 아내는 일을 망쳐버린 남편을 질책하고 옷을 챙겨 입지만 실망스러움을 감추지 못한다. 또한 순진한 남편은 실제로 제 잘못 때문에 일이 성사되지 못한 것을 깨닫고 신부에게 간청하지만 그가 바라는 답을 얻지 못한다. 그리고 아내를 암말로 변하게 하는 방법을 신부에게 더 이상 전수받지 못할 것을 인정한다.

    라 퐁텐의 콩트에서 보카치오와 다른 중요한 변화는 바로 아내가 옷을 벗는 과정에 일어난다. 이 과정이 보카치오에서는 전혀 묘사되지 않았을 뿐더러, 라 퐁텐의 여인은 신부가 시키는 대로 하나하나 옷을 벗다가 어느 순간 수치심을 느끼고는 웃옷을 벗지 못한다. 남편이 아닌 다른 사람에게 제 몸을 보이느니 한 명의 여인으로 남고 싶기를 희망하기 때문이다.19) 피에르는 즉시 아내를 질책하고 기어이 그녀가 걸친 마지막 옷을 벗긴다. 그리고 이 시점에서 라 퐁텐은 조금 엉뚱해 보이는 사항을 한 가지 삽입한다. 피에르가 아내의 변신장면을 자세히 보기 위해서 안경을 쓴다는 점인데, 사실 피에르처럼 가난한 농부에게 안경은 전혀 걸맞지 않는 물건이다. 이어서 신부가 마들렌의 몸을 구석구석 탐색하는 과정에는, 단지 라 퐁텐이 덜 노골적으로 표현할 뿐, 두 작가의 서술에 큰 차이가 없다. 하지만 차이는 그 다음에 나온다. 피에르는 그러한 과정에 마음이 상해 다음 절차는 보지도 않고 신에게 기도를 올린다. 그리고 남편의 두 번째 개입으로 꼬리 다는 부분에서 일이 그릇되자 이번에는 화가 난 아내가 남편을 크게 질책한다. 남편은 평생 동안 가난하게 살 것이라고 악담을 퍼붓는 한편, 신부에게는 남편이 들에 나가 있을 동안 매일 아침 제 집으로 와서 “남편에게 알리지 말고 자기를 얌전한 암말로 변신시켜 달라”고 청한다.20)

    라 퐁텐은 이처럼 보카치오 원전에서 표면적으로 제시되었던 지리적, 연대기적, 신분적 정보에서 불필요한 부분을 삭제하였고, 마들렌의 역할을 축소시켜 수동성을 강조하는 반면, 아내에게 권위를 행사하는 피에르의 역할을 확대하고, 마키아벨리적이라기보다는 훨씬 더 대담하고 쉽게 욕정에 집착하는 신부의 역할을 부각시킴으로써 전체적으로 등장인물의 성격에 변화를 주었다. 또한 결말에서도 신부가 제 의도했던 목적을 달성했는지 밝히지 않는 상태로 두면서, 이번에는 아내가 신부에게 변신을 요구하는 일종의 ‘반전’으로 결말을 짓는다. 이상으로 이야기의 전체적인 서술 차원에서 보카치오와 라 퐁텐의 콩트를 비교하였지만, 라 퐁텐의 문체, 특히 성행위 장면에서 보자면, 그 장면의 의미를 충분히 부각시키면서도 적나라하지 않은 방식으로 전달하는 언어적 차원의 세밀한 작업에 대하여서는 이후 보다 심층적인 연구가 이루어질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14)Mathieu Bermann, “Les Contes de La Fontaine ou l’écriture voilée”, in Caroline Jacot-Grapa et Guyonne Leduc (éd.), Dire sans dire, Stratégies obliques, Actes de la Journée Jeunes chercheurs, organisée à l’Université Lille 3, p.3.  15)Préface, Contes et nouvelles en vers, II, édition citée, p.604.  16)“Il y a quelques années vivait à Barletta un prêtre appelé dom Gianni di Barolo, lequel, n'ayant qu'une pauvre paroisse pour gagner sa vie, se mit à transporter des marchandises avec une jument, de côté et d'autre dans les foires de la Pouille, et à commercer.” (Boccace, Décaméron, traduction nouvelle, introduction et notes sous la direction de Christian Bec, Paris, Le Livre de Poche, 1994, p.750.)  17)“D’ailleurs, comme les narrations en vers sont très malaisées, il se faut charger de circonstances le moins qu’on peut : par ce moyen vous vous soulagez vous-même, et vous soulagez aussi le lecteur, à qui l’on ne saurait manquer d’apprêter des plaisirs sans peines.” (Préface, Contes et nouvelles en vers, II, édition citée, p.605.)  18)“Messire Jean la regardait toujours / Du coin de l'oeil, toujours tournait la tête / De son côté; comme un chien qui fait fête / Aux os qu'il voit n’être par trop chétifs; / Que s'il en voit un de belle apparence, / Non décharné, plein encor de substance, / Il tient dessus ses regards attentifs: / Il s’inquiète, il trépigne, il remue / Oreille et queue; il a toujours la vue / Dessus cet os, et le ronge des yeux / Vingt fois devant que son palais s'en sente . / Messire Jean tout ainsi se tourmente / A cet objet pour lui délicieux.” (v. 35-47)  19)“La pauvre épouse eut en quelque façon / De la pudeur. Etre nue ainsi mise / Aux yeux des gens ! Magdeleine aimait mieux / Demeurer femme, et jurait ses grands dieux / De ne souffrir une telle vergogne.” (v. 114-118)  20)“Sans l'avertir venez à la maison; / Vous me rendrez une jument polie.” (v. 181-182)

    5. 쉬블레라스의 「피에르의 암말」

    라 퐁텐이 보카치오의 누벨에 기초하였다면, 쉬블레라스는 자신의 스승 니콜라 블뢰걸스(Nicolas Vleughels)가 제작한 동일 소재의 판화(1735년)를 계승한다.21) 라 퐁텐의 「피에르의 암말」 을 회화로 작업하는 데에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바로 ‘변신(métamorphose)’이다. 블뢰걸스는 「피에르의 암말」과 마들렌을 중앙에 놓는다. 피에르가 신부의 시술을 보기 위해 말 위로 몸을 기대고 있기 때문에 당나귀의 머리는 보이지 않고 귀, 엉덩이, 다리만 보인다. 마들렌은 말 옆에, 거의 나체로 서있다. 그녀는 말 혹은 남편 쪽으로 시선을 두었으며, 반대편에 있는 신부 쪽으로 몸을 돌린다. 검은 옷을 입고, 피에르처럼 모자를 쓰고 있는 신부는 마들렌의 어깨에 한손을 대고 다른 손으로는 뭔가 동작을 하기라도 하는 듯하다. 이 판화에서 블뢰걸스가 마들렌과 당나귀를 나란히 놓은 것은 바로 ‘변신’을 환기시키기 위함일 것이다. 마치 마들렌이 장차 무엇으로 변신하게 되는지 미리 제시하여는 듯하다.

    스승의 판화에 비해 쉬블레라스가 그린 마들렌은 한층 놀라운 자세를 취한다. 그의 그림에는 동물이 등장하지 않는다. 동물을 대신하는 것은 바로 마들렌 자신이다. 그녀는 반쯤 바닥에 엎드린 자세를 취한다. 피에르는 아내의 등위에 한쪽 팔을 기대고 있다. 마들렌의 하체는 완전히 벗겨져 살이 드러나 있다. 단지 속옷처럼 보이는 흰색 상의만을 걸친 채 낮은 침대 매트에 한손을 짚고, 다른 한손으로 자신의 옷가슴을 쥐고 있다. 여인의 엎드린 자세, 엉덩이가 관객 쪽으로 비스듬히 향한 각도는 응당 암말의 그것을 떠올린다. 이처럼 상당히 에로틱한 장면을 연출하면서 쉬블레라스는 동물로의 ‘변신’을 표현한다. 그러면서 마들렌은 얼굴을 돌려 정면을 바라보는데 이 때의 모습이 라 퐁텐이 묘사한 여인과 매우 흡사하다.

    그림에서 주목할 것은 또한 마들렌이 걸치고 있는 옷이다. 흰색 드레스 잠옷을 연상케 하는 이 옷은 하체를 완전히 드러내고 허리까지 들어 올려 있어 그녀가 취한 자세만큼이나 에로틱한 성격을 부여한다. 하지만 보카치오에서도 라 퐁텐에서도 적어도 신부가 변신술을 진행하고 있는 동안 피에르의 아내는 옷을 하나도 걸치고 있지 않다. 속옷을 걸치고 있는 여인을 그린다는 것은 아마도 화가가 그녀의 주저, 라 퐁텐이 삽입하였던 마들렌의 수치심, 나아가 마들렌의 순진성을 조금이라도 반영하기라도 하는 것 같다. 다른 등장인물들의 모습을 보면, 아내의 등에 팔을 기대고 있는 피에르는 검지를 들어 신부 쪽을 향한다. 이미 신부의 시술에 문제를 제기하려는 듯하다. 보카치오와 라 퐁텐의 서술에서 마지막 순간, 신부가 여인의 몸에 꼬리를 삽입하는 부분에서 피에르가 개입함을 상기할 때, 그림 속 피에르의 손짓은 분명히 시간상으로 한참을 앞서 있다. 마찬가지로 신부가 꼬리를 삽입해 암말로 변신하게 하는 최후의 주술 시점을 나타내기 위해 쉬블레라스는 자기 바지 트임새로 손을 집어넣고 있는 신부의 모습을 그린다. 이렇게 한 화면에서 세 개의 서로 다른 시간대를 읽을 수 있다.

    이 모든 요소들이 바로 쉬블레라스의 독창성을 부각시킨다. 니콜 루이에가 언급하였던 기준에 따라 보자면, 첫째, 쉬블레라스의 ‘창의력(invention)’은 이야기 서술 상 가장 중요한 순간의 선택과 관련된다. 이 그림의 서술시점은 피에르가 신부에게 막 이의제기를 하는 시각, 그로 인해 서술 상의 행위들이 중단되는 시각, 하지만 그 이후 전개되는 여러 행위들이 동시적으로 묘사되어 한 장면 안에 녹아 있는 시각이다. 둘째, ‘배치(disposition)’의 특징은 주변 장식이나 배경에 치중하기 보다는 인물이 중심이 된 구도에서 드러난다. 그보다 더 독창적인 것은 인물들의 자세이다. 화가는 자신이 분석한 ‘변신’의 과정을 표현하기에 가장 적절한 시각을 선택한다. 그런 점에서 여인의 뒷모습과 신부의 정면 연출은 두 사람 사이에 일어날 행위를 예고하기에 충분하다. 셋째, ‘속성(propriété)’에 해당하는 배경, 의상, 액세서리 등으로 보자면, 라 퐁텐 텍스트와의 면밀한 비교가 불가피하다. 우선 라 퐁텐의 피에르는 안경을 쓰는 반면 쉬블레라스의 피에르는 안경이 없다. 보카치오의 피에르가 촛불로 신부의 작업을 밝힌다면 그림에는 그것도 없다. 다만 피에르 등 뒤 왼편으로 단지 옆에 불이 꺼진 양초가 있긴 하다. 그림에서 마들렌이 엎드려 한쪽 손과 무릎을 얹고 있는 것은 낮은 침대와 헝클어진 담요처럼 보인다. 이것 역시 라퐁텐의 콩트에서는 전혀 묘사되지 않은 물건이지만, 보카치오는 마구간의 짚더미를 언급한다. 또 다른 물건으로, 쉬블레라스의 그림 하단 우측에는 두 권의 책이 있다. 한권은 펼쳐진 채로, 한권은 덮여 있는데, 책의 두께로 보아 신부가 가져온 기도서인 듯하다. 그 옆에는 여인의 신발이 아무렇게나 바닥에 뒹구는데, 드러낸 하체, 맨발과 더불어 일면 기발하고도 코믹한 연출을 해낸다. 이러한 점들을 생각해 볼 때, 쉬블레라스가 보카치오나 라퐁텐 어느 한 작품만을 전적으로 참고했다고는 보이지 않는다. 화가가 라퐁텐의 콩트를 그리기로 결심하고 보카치오의 이야기를 떠올렸는지, 아니면 제3의 작품으로 자기의 스승 블뢰걸스의 그림을 참고하였는지 알 수 없는 일이다.23)

    21)Jean-Jacques Lévêque, Jean de La Fontaine, Paris, ACR Édition Internationale, 1995, p.82에서 블뢰걸스의 판화 참조.  22)“Il avait femme et belle et jeune encor, / Ferme surtout ; le hâle avait fait tort / À son visage, et non à sa personne.” (v. 28-30)  23)실제로 블뢰걸스의 판화에는 정확하게 확인할 수는 없지만 매트 비슷한 것이 보이기는 한다.

    6. 마무리하며

    콩트 혹은 회화의 수용에서 마지막으로 고려할 점은 에로티즘의 문제, 관례적인 기준을 모두 존중하면서 에로틱한 장면을 어떻게 묘사하는지, 어떻게 이를 독자나 관객에게 전달하는지, 그 방식에 대한 문제이다. 시인이나 화가에게 있어서는 하나의 큰 도전이 아닐 수 없다. 라 퐁텐은 『신작 콩트』에서 다음과 같이 이 문제를 환기한다.

    「피에르의 암말」 에서 라 퐁텐이 강조하는 새로운 성격은 그다지 많은 부분에서 나타나지 않는다.25) 오히려 관심을 끄는 것은 인물들이 처한 어처구니없는 상황이나 각 인물들의 반응이 애초에 독자가 기대한 바를 벗어나 지극히 우스꽝스럽게 보인다는 점이다. 반대로, 쉬블레라스 회화의 에로티즘에서 보이는 지극히 직접적인 면모, 거의 적나라한 면모는 프라고나르의 버전에서보다 훨씬 더 육감적이다. 쉬블레라스의 자유로운 수용은 필경 ‘커튼’을 필요로 할지도 모른다. 여주인공에게 예정된 변신이 무슨 의미가 있으며, 그 이면에 숨겨진 신부의 술책에 대해 전혀 아는 바가 없는 오늘날의 관객을 가정한다면, 그를 가장 놀라게 하는 것은 아마도 거의 동물적인 자세를 취하고 있는, 하지만 그런 자세를 취하는 것이 달가워 보이지 않는 여인의 노출 자세일 것이다. 상당히 수동적인 라 퐁텐의 마들렌과 그 보다 적극적인 보카치오의 젬마타의 상반된 성격을 비교할 때, 적어도 쉬블레라스의 여인의 자세는 상당 부분 라 퐁텐의 텍스트에 충실하다. 라 퐁텐의 다음 글은 텍스트 자체의 의미는 다를지언정, 그 문맥은 우리의 주제에 아주 적합해 보인다. “내 책이 여성을 경시한다고 질책하는 반대 의견에 대해 보자면, 만일 내가 이런 주제들을 심각하게 다룬다면 사람들이 하는 말이 맞을지 모른다. 하지만 나에게 그것은 단지 유희이며, 따라서 아무런 영향을 끼칠 수 없음을 누가 모르겠는가.”26)

    「피에르의 암말」 마지막 부분에서 실상 수동적이었던 마들렌은 남편의 어리석음을 꾸짖으며, 오히려 신부에게 다시 자기를 암말로 변신하는 시술을 매일 해달라고 청할 정도로 적극성을 피력한다. 라 퐁텐은 이처럼 여인의 성격에 반전을 줌으로써 대중의 여성폄하에 대한 질책에 용서를 구하려 했는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쉬블레라스에게는 이러한 반전의 기회, 용서의 기회가 없다. 18세기 회화는 이성적으로 간격이 너무 많이 벌어진 두 시간대를 병립하여 한 화면에 표현할 수 없기 때문이다. 적어도 ‘시는 회화와 같다’라고 하는 전제는 인간의 욕정, 에로티즘을 전반부에 노출시키는 작품들에서 작가, 즉 시인과 화가 각자의 입장과 새로운 관점을 반영하고 수용할 수밖에 없어 보인다.

    24)“On m'engage à conter d'une manière honnête / Le sujet d'un de ces tableaux / Sur lesquels on met des rideaux. / Il me faut tirer de ma tête / Nombre de traits nouveaux, piquants et délicats, / Qui disent et ne disent pas, / Et qui soient entendus sans notes / Des Agnès même les plus sottes” (« Le Tableau », Nouveaux contes, édition citée, p.887, v. 1-3.)  25)가령 다음의 행 정도이다. (v. 139-140, 154, 156-157, 159-161)  26)“Quant à [l’]objection, par laquelle on me reproche que ce livre fait tort aux femmes, on aurait raison si je parlais sérieusement ; mais qui ne voit que ceci est jeu, et par conséquent ne peut porter coup ?” (Préface, Contes et nouvelles, I, édition citée, p.557.)

    참고도판

  • 1. Fontaine La 1991 OEuvres completes I, Fables, Contes et nouvelles, edition etablie, presentee et annotee par Jean-Pierre Collinet google
  • 2. Fontaine La 1996 Contes, preface de Emmanuel Bury google
  • 3. 1994 Decameron, traduction nouvelle, introduction et notes sous la direction de Christian Bec google
  • 4. Bailey Colin B. 2003 ≪ La peinture de genre en France au XVIIIesiecle ≫, in Colin B. Bailey (dir.), Au temps de Watteau, Chardin et Fragonard, chefs-d’oeuvres de la peinture de genre en France P.2-39 google
  • 5. Bermann Mathieu “Les Contes de La Fontaine ou l’ecriture voilee”, in Caroline Jacot-Grapa et Guyonne Leduc (ed.), Dire sans dire, Strategies obliques, actes de la Journee Jeunes chercheurs, organisee a l’Universite Lille 3. goog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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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 1990 Laocoon, introduction par Jolanta Bialostocka google
  • 9. Leveque Jean-Jacques 1995 Jean de La Fontaine google
  • 10. Rouille Nicole 2006 Peindre et dire les passions, la gestuelle baroque aux XVIIe et XVIIIe siecles, l’exemple du musee Fesh d’Ajaccio google
  • 11. 이 선희 2012 「17세기 콩트의 개념과 형태 연구 : 라 퐁텐의 『콩트집』을 중심으로」 [『한국프랑스학논집』] google
  • [] Pierre Subleyras (1699-1749), La jument de compere Pierre, vers 1740, huile sur toile, 30,5 x 24,5 cm, Saint-Petersbourg, Musee de l'Hermitage.
    Pierre Subleyras (1699-1749), La jument de compere Pierre, vers 1740, huile sur toile, 30,5 x 24,5 cm, Saint-Petersbourg, Musee de l'Hermit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