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ris Lessing’s Views on Evolution in The Sirian Experiments

『시리우스 제국의 실험』에 나타난 도리스 레싱의 진화에 관한 시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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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ABSTRACT

    Doris Lessing, who considers science and technology as instruments of capitalism, deals with the theme of ‘biological evolution’ in The Sirian Experiments, the third book in the Canopus in Argos: Archives series. One of her themes that repeats throughout is that of ‘spiritual evolution,’ and in The Four-Gated City she even used ‘biological evolution’ as its metaphor. This paper analyzes The Sirian Experiments using scientific knowledge such as the concept of ‘biological evolution’ from Charles Darwin’s evolution theory and Edward O. Wilson’s sociobiology. Lessing concludes that while ‘biological evolution’ not accompanied with ‘spiritual evolution’ puts humans in existential problems and mental breakdown, the one in equilibrium with the other can bring social and political revolution. Lessing’s concept of ‘spiritual evolution’ is basically a product of her holistic view and her own philosophical view that human evolution is a necessary process following the Universal Order, which shows that she is influenced by Sufism. The basic tenet in Sufi philosophy is to achieve equilibrium between the rational and non-rational modes of consciousness. Lessing incorporates her rational and irrational ideas into The Sirian Experiments to make a field for confluence where the biological, the sociological, and the spiritual thinking converge.


  • KEYWORD

    Doris Lessing , sociobiology , biological evolution , spiritual evolution , Sufism

  • I. 들어가기

    『시리우스 제국의 실험』(The Sirian Experiments, 1981)은 도리스 레싱(Doris Lessing)이 1979년부터 쓰기 시작한 과학소설 5부작『아르고스의 카노푸스 제국: 고문서』(Canopus in Argos: Archives)의 세 번째 작품이다. 레싱은 5부작의 첫 작품이자 모태인『시카스타: 식민화된 제5행성에 관하여』(Re: Colonized Planet 5, Shikasta 1979)와 두 번째 작품『제3, 4, 5지대간의 결혼』(The Marriages Between Zones Three, Four and Five, 1980)을 발표한 뒤 애독자 존 레너드(John Leonard)로부터 “무엇 때문에 이런 소설을 쓰는가?” 그리고 수잔 라드너(Susan Lardner)로부터는 “무슨 이야기를 하는 것인지 이해하기가 너무 어렵다” (Klein 231-32) 등 대체로 찬사보다는 비판적인 평을 들었다. 게다가 과학소설이 과학과 과학적 논리에 근거를 두어야 하는가의 문제와 더불어 이 5부작을 ‘과학소설’로 부를 수 있는가의 문제도 제기되었다.1 이에 대해 레싱은 자신의 과학소설들이 과학적 논리에 근거하여 쓰인 작품이 아니므로 ‘우주소설’로 불러주길 바라면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레싱은 자신의 소설들이 ‘과학소설’ 이기보다는 “오늘날 일어나고 있는 일들에서 끌어낸 우화” 라고 표현하고 있는데, “오늘날 일어나고 있는 일들” 중에는 현대의 정치·사회 분야에서 일어나는 일들뿐 아니라 현대 과학에서 일어나는 일들도 포함되어 있는 듯이 보인다. 곧 이어 제3권『시리우스 제국의 실험』에 대해 설명하면서, “오늘날 과학자들이 ‘복제’(cloning)라고 부르는 것을 무색하게 만들면서 유전학 실험에 대해 묘사하려는” 시도라고 표현하였는데, 여기에서 레싱이 말하는 “복제”는 장기이식 같은 생명연장기술을 지칭하는 것으로 사료된다. 레싱은 이렇듯 자신의 작품 속에 현대 과학에 대한 비판도 담고자 하였으나, 그동안 레싱의 이런 의도를 간파한 비평가는 없었다.

    『시리우스 제국의 실험』의 모태라고 할 수 있는 첫 작품『시카스타: 식민화된 제5행성에 관하여』는 우주에 인류 외의 다른 생명체가 살고 있고, 세 제국들이 대립해 있는데, 이 제국들의 권력 투쟁으로 인해 식민행성들과 그 주민들의 운명이 좌우된다는 노범(novum) 혹은 ‘새로운 세계’를 제시한다. 그 식민행성 중 하나가 제5행성으로‘로핸다’(Rohanda) 혹은 ‘시카스타’(Shikasta)로 불리며 지구를 대표한다. 따라서 이 행성의 주민, 즉 인간이라는 종(種)은 우주 전체에서 볼 때 우주질서의 변화에 종속되는 미미한 존재에 불과하다. 이런 새로운 우주질서 속에서 제1권『시카스타』는 지구의 대안 역사를 제시한다.

    제2권『제3, 4, 5지대간의 결혼』(The Marriages Between Zones Three, Four and Five, 1980)은 판타지 소설로, 같은 행성, 즉 시카스타를 둘러싸고 있는 동심원 지대에서 일어나는 사건을 다루고 있지만, 이 작품에서 이런 배경은 내용상 큰 의미가 없다. 역사적·사회적 현실은 배제한 채 신화적 시·공간속에서 남녀 간의 사랑을 연구하고 있기 때문이다.2 따라서 세 제국의 권력관계로 되돌아가 인간 종에 대해 연구한『시리우스 제국의 실험』이『시카스타: 식민화된 제5행성에 관하여』의 적자(嫡子)인 셈이다.

    레싱은 청소년기에 반항심으로 정규 교육을 마치지 못했고 과학소설 연작『아르고스의 카노푸스 제국: 고문서』를 쓸 때에는 60대로 접어든 고령의 나이였다. 자신의 과학지식에 부족함을 느꼈던 레싱은 이 5부작을 과학소설보다는 ‘우주소설’로 불러주도록 요청하곤 하였고, 비평가들도 굳이 과학과 연결시켜 분석하려 들지 않았다. 그러나 제4권『제8행성의 대표 만들기』(The Making of the Representative for Planet 8, 1982)는 레싱이 입자물리학을 기반으로 하여 썼음을 명확하게 보여주고 있기 때문에 저명한 레싱 연구가 캐서린 피시번(Katherine Fishburn)은『도리스 레싱의 예상 밖의 우주』(The Unexpected Universe of Doris Lessing, 1985)에서 그 작품이 현대물리학을 기반으로 쓰였음을 주장하였다. 레싱의 과학소설들이 레싱의 과학탐구의 결과물임을 인정하기 시작한 것이다.3 따라서 제3권『시리우스 제국의 실험』역시 진화론과 사회생물학을 참조하여 쓰였음을 유추해볼 수 있다. 더욱이, 레싱이 과학소설 연작을 쓰기 시작한 때는 1970년대 후반부로 1975년 저명한 곤충학자이자 진화이론가 에드워드 오스본 윌슨(E. O. Wilson)이『사회생물학: 새로운 종합』(Sociobiology: The New Synthesis)을 발표하고 세상의 주목을 끌게 되는 시기와 일치한다. 영국의『타임』(The Times)지는 “사회생물학을 1977년 8월1일자 커버스토리로 실으면서 ‘당신이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 설명할 수 있는 새로운 행동과학” (케이 156 재인용)이라고 소개하여 대중의 이목을 끌었다. 사회생물학의 부각은 곧 사회생물학 논쟁을 낳게 되어 지식인들의 촉각을 세우게 하였는데, 논쟁의 가장 큰 핵심은 ‘민중을 위한 과학’ 연구회가 주장한 사회생물학의 ‘유전자 결정론’ 과 ‘생물학 환원주의’ 였다.

    레싱이 에드워드 윌슨, 스티븐 제이 굴드(Stephen Jay Gould), 리처드 르원틴(Richard Lewontin) 같은 생물학자들과 이들의 논쟁에 대해 알고 있었는지에 관해 확인해주는 자료는 없다. 이 사회생물학 논쟁이 곧 페미니스트들의 주요 논쟁으로 비화되었다는 점과 이 당시만 해도 생소한 ‘사회생물학’이란 단어를 직접 사용했음을 고려할 때4 레싱이 이들에 대해 알고 있었을 가능성이 크며, 설령 모르고 있었다 하더라도『시리우스 제국의 실험』을 이런 관점에서 읽는 것은 의미가 있어 보인다. 제목인 “시리우스 제국의 실험” 은 보다 정확히 말해서“시리우스 제국의 사회생물학 실험”이기 때문이다.

    이 과학소설 시리즈를 쓸 당시 레싱은 이미 30년간 집필활동을 해온 중견작가의 위치에 있었고 그녀가 다루었던 중요 주제 중 하나가 ‘영적 진화’였다. 많은 레싱 학자들은 레싱이 1960년대부터 인류의 ‘영적 진화’에 헌신하도록 가르치는 수피즘의 영향을 받기 시작했다고 말하고 있으며, 특히『아르고스의 카노푸스 제국: 고문서』가 그 영향을 가장 많이 보여주는 작품이라는데 동의한다. 1969년 발표된 『사대문의 도시』(The Four-Gated City)에서는 지구의 종말 이후 새로운 기관이 진화된 새로운 인간 변종을 탄생시킴으로써 ‘생물학적 진화’로 ‘영적 진화’를 대신 하였다. 즉 ‘생물학적 진화’를 ‘영적 진화’의 전의(轉義trope)로 사용한 것이다.

    『아르고스의 카노푸스 제국』에 이르러서는 개인보다 종으로서의 인간에 더 관심을 기울이게 된 레싱이 ‘생물학적 진화’에 초점을 맞추면서 보다 과학적인 접근방법을 사용한다. 찰스 다윈(Charles Darwin)의 진화론과 당시에 선풍을 일으킨 윌슨의 사회생물학 개념이 엿보이는 레싱의 진화에 대한 관점들은5 그녀의 기본적인 세계관과 어울려 레싱 고유의 진화론을 구축하고 있다. 레싱의 세계관은 기본적으로 전체론적인 것이어서 진화가 우주 전체의 질서와의 조화 속에서 궁극적인 목표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진화에는 정해진 방향이 없고 진보와 무관하다고 주장하는 다윈의 진화론과 이 점에서 가장 큰 차이를 보인다.

    레싱은 영적인과 물질적인 것의 상호작용으로 평형(equilibrium)을 이루도록 가르치는 수피즘을 따르고 있으므로 그녀에게 ‘생물학적 진화’는 ‘영적 진화’가 수반된 것이어야 한다. ‘영적 진화’가 수반되지 않은 ‘생물학적 진화’는, 예를들어, 정신적 만족이 없는 상태에서 생명 연장을 하는 것과 같이 아무런 의미가 없다. 따라서 레싱은 생물학적 사고를 인간의 사회행동까지 확장하여 지식대통합을 이루려는 사회생물학적 접근방법에는 관심을 기울이지만, 인간의 사회행동을 생물학적 해석으로 환원시키는 생물학 환원주의에는 반기를 든다. 레싱은 또한 인간의 차이점이 특정한 유전자로 기인한 것이기보다는 문화나 사회적 환경에 의해 더 큰 영향을 받는다고 믿기 때문에 유전자 결정론자들에게도 반대한다. 유전자 결정론자들은 계급, 인종, 성에 따른 지위, 부, 권력의 불평등이 자연에 의해 주어진 생물학적 특성 탓이라고 주장하였고, 바로 이 점 때문에 페미니스트들과 포스트콜로니얼리스트들로부터 각각 성차별과 인종차별을 옹호한다는 공격을, 그리고 진보주의자들로부터는 보수적 이데올로기를 유포한다는 비난을 받았다.

    윌슨은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사회적 동물을 조사하러 다른 행성에서 동물학자가 온다면 인문학이나 사회과학은 모두 인간이라는 영장류에 관해 연구하는 사회생물학에 불과할 것이라고 말한다. 그는 또한 “사회학과 기타의 사회과학들은 여러 가지 인문과학들과 마찬가지로 머지않아 현대적 종합에 포함됨으로써 생물학에서 파생되는 분과들 중 마지막 분과가 될 것” (22)이고, “사회생물학이 할 일 가운데 하나는 사회과학들의 기초를 다시 체계화하여 이들의 주제를 현대적 종합에 끌어들이는 것” (22)이라고 주장하였는데, 그가 사용하는 ‘통섭’ (consilience) 혹은 ‘지식대통합’이라는 용어는 레싱이 장기적인 안목에서 그리고 보다 큰 시각으로 세계와 인간을 바라보도록 제안하는 ‘융합’(confluence)과 차이가 있어 보인다.

    따라서 본 논문은 이 작품 속에 나타나 있는 레싱의 진화에 관한 시각들을 다윈의 진화론과 윌슨의 사회생물학과 비교하면서 관찰한 다음, 레싱이 주장해온 영적 진화와 어떻게 관련되는지 연구할 것이다.

    1이에 대한 논쟁에 대해서는 졸고「『시카스타: 식민화된 제5행성에 관하여』: 도리스레싱의 ‘실낙원’ 과 ‘복낙원’」을 참조하시오.   2이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졸고「『제3, 4, 5지대간의 결혼』: 레싱이 제안하는 여성적 비전」을 참조하시오.   3이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졸고「도리스 레싱의『제8행성의 대표 만들기』: 현대 과학을 이용한‘죽음’과‘멸종’에 관한 해석」을 참조하시오,   4레싱은 이 작품에서 ‘biosociology’ (33쪽, 245쪽, 253쪽, 271쪽)와 ‘sociobiology’ (181쪽)의 두 개의 용어를 이용하여 ‘사회생물학’을 표현하고 있다.   5진화론에 관한 논의를 보다 명확히 구별하기 위해 사회생물학, 다윈의 진화론, 사회적 다윈주의 간의 차이점에 대해 설명하자면, 다윈의 진화론의 요지는 1) 생물은 필요 이상으로 자손을 낳는다 2) 개체간에는 변이가 일어난다 3) 이들은 경쟁한다 4) 환경에 보다 잘 적응하는 개체가 확률적으로 생존하게 된다 5) 자연은 이런 방식으로 생존력이 강한 개체를 선택한다 등이고 여기에 진화가 장기간에 걸쳐 일어나며 서서히 점진적으로 일어난다는 조건이 첨가된다. 사회적 다윈주의는 다윈의 진화론을 인간사회에 적용하여 가장 강한 자나 적합한 자가 사회 속에서 번성할 것이고 약한 자나 부적합한 자는 도태될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사회적 다윈주의는 경쟁을 강조하고 식민주의나 제국주의를 옹호하는 이론으로 자주 악용되었으며 특히 문학에서는 자연주의 사조와 함께 사회결정론으로 해석되었다. 사회생물학은 다윈의 이론에 입각하여 인간을 포함한 모든 동물의 사회적 행동을 체계적으로 연구하는 학문으로, 넓은 의미의 사회적 다윈주의의 한 지류로 간주될 수 있다. 다만, 사회적 다윈주의가 ‘경쟁’ ‘적자생존’ ‘도태’ 의 개념들을 강조한다면 사회생물학은 ‘이타주의’ ‘유전자 결정주의’ 등의 개념을 강조한다.

    II. 세 제국의 사회생물학 실험

    『시리우스 제국의 실험』의 배경인 은하수에는 도덕적으로 완벽한 존재를 상징하는 카노푸스 제국(Canopus), 과학기술을 신봉하는 시리우스 제국(Sirius), 그리고 이 제국들의 적이자 범죄자 행성 샤맷(Shammat)을 갖고 있는 푸티오라 제국(Puttiora)이 서로 대립해 있다. 이 세 제국은 은하수에서의 패권 장악을 위해 행성들을 식민지화하고 있고, 이들 식민행성들의 주민을 자신들의 목적에 맞게 이용하기 위해 사회생물학 실험을 단행하고 있다. 카노푸스 제국은 제1권『시카스타』에서 밝혔듯이 “영원히 진화하는, 목적의식이 있는 자손의 창조” (35)를 목표로 사회생물학 실험을 하고 있고, 시리우스 제국은 자국 국민들에 봉사 할 저급한 노동력 확보를 위해, 샤맷은 자신의 세력, 즉 악의 세력을 퍼뜨리기 위해 실험을 하고 있다.

    따라서 레싱은 카노푸스 제국의 실험에 대해서는 성공 사례로 제시하는 반면 카노푸스 제국을 시기하는 시리우스 제국의 실험에 대해서는 실패 사례로 제시한다. 우선 카노푸스 제국은 진화 환경이 완벽한 제5행성을 종의 ‘강제 진화’ 실험장소로 택하여 제10행성의 주민들 중 자원자들을 제5행성 즉, 이름이 ‘결실있는’ ‘번영하는’의 뜻이었던 로핸다로 이주시켜 원숭이로부터 진화 중인 원주민종과 공생관계(symbiosis)를 형성하였다. 다시 말해 식민자들인 제10행성의 거인족(the Giants)들을 아직은 동물 상태인 원주민들 곁에 살게 하면서 기술이나 지식을 전수해주며 원주민들과 이상적인 멘토/멘티의 관계를 맺어주는 등 상호간에 이득을 보도록 조성한 것이다. 이 두 종은 진화하면서 모두 신장이 커지고 수명이 길어지며 거의 비슷한 수준의 기술을 습득하는 등 이 실험은 두 종 사이에 차이가 거의 없어지는 성공적인 실험으로 판명된다. 한 종이 다른 종을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상생의 조화로운 관계를 이룬 것이다. 무엇보다도 카노푸스는 로핸다의 원주민들을 “근본적으로” (70) 바꿔놓았다고 레싱은 쓰고 있는데, 이것은 원주민들을 동물 수준에서 인간의 수준으로 진화시켰음을 말한다. 카노푸스 제국이 이룩한 공생관계는 레싱이 유토피아를 상징하곤 했던 아름다운 수학적도시를 건설하는 것으로 결실을 맺는다. 이것은 레싱이 그리는 식민자와 피식민자간의 이상적 관계의 체현이기도 하다.

    그후 예기치 못했던 우주질서 배열의 이상으로 로핸다가 악에 물들게 되자 카노푸스 제국은 로핸다에서 철수하게 되고, 이때 거인족들을 로핸다에서 제11행 성으로 이주시킨다. 거인족들은 그곳에서도 곤충족(the insects)들과 “서로 보완” (126)하면서 함께 “전체” (128)를 만들어가는 균형적인 관계를 이룬다. 제10행성의 거인들은 로핸다에서 발휘했던 자신들의 ‘이타적인 행동’6이 궁극적으로 그들의 안녕에 도움이 되었으므로 다른 환경으로 이전되었을 때에도 그런 ‘이타적인 행동’을 다시 실행하고 있다. 사회생물학적 관점에서 볼 때 이타적인 행동이 유전되고 있는 것이다. 이 행성에서는 텔레파시로 의사소통을 하는 곤충족이 거인족 그리고 심지어 시리우스인들보다도 더 우위의 진화단계에 있는 것으로 설정되어 있다. 자신보다 열등했던 로핸다 원주민과의 공생관계에 성공한 제10행성의 거인족들이 이번에는 더 우월한 곤충족과의 공생관계에서도 성공을 이룬 것인데, 이것은『제3, 4, 5지대간의 결혼』의 제3, 4, 5 지대간의 변증법적 결합을 연상시킨다.7 제10행성의 거인족들이 카노푸스가 지향하는, 다시 말해 레싱이 상정한 이상적인 진화를 거듭하고 있는 것이다. 거인족의 ‘생물학적 진화’는 ‘영적 진화’가 수반된 진화이다.

    다윈은 “진화에는 아무 목적도 정해진 방향도 없다” (굴드 13 재인용)는 유물론적 진화론을 주장하나 레싱은 이에 동조하고 있는 듯이 보이지 않는다. 반면 곤충족을 거인족보다 진화 면에서 더 우위에 있다고 설정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다윈에게 가까이 다가가고 있는데, 다윈은 ‘고등’동물, ‘하등’동물 등의 분류를 쓰지 않을 것을 주장하였다. 구조적인 복잡성이나 이질성의 증가를 진보로 규정하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이지만, 다윈은 진화의 정도를 생물과 환경 사이의 적응성이 증가되는 정도로 판단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다윈은 진화는 곧 진보라는 사상에 반대한 셈이다. 반면 사회생물학자 윌슨은 제자 최재천과의 최근 인터뷰에서 “진화를 거치면서 우리가 진보라고 일컬을 만한 변화가 일어난다고 주장”「( 다윈은 미래다」3부)하였는데, 바로 이런 차이점 때문에 다윈의 진화론과 달리 사회생물학은 진보지향적 진화론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그렇다면 여기에서 레싱이 말하는 ‘진보’와 생물학에서 말하는 ‘진보’가 같은 것인지 차이가 있는지 의문이 생긴다.

    53개의 식민행성을 거느린 거대한 제국 시리우스는 자신들의 실험이 연이어실패하자 카노푸스 제국의 성공 비결을 알고 싶어한다. 카노푸스 제국은 시리우스 제국에게 모든 정보를 제공함에도 불구하고 카노푸스 제국의 언어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시기심과 의심으로 왜곡되어 있어 오판을 거듭한다.

    카노푸스 제국이 ‘강제 진화’ 실험으로 얻고자 하는 것은 다양한 종들이 여러 진화 단계를 거치면서 초월적 존재의 마스터 플랜(Master Plan)을 이해하고 그것과 조화를 이루는 가운데 서로 어울리고 소통하며 살아가는 공생관계이다. 이것이 바로 레싱이 말하는 ‘진화’이고 ‘진보’이다. 그러므로 생물학자들의 자본주의적 ‘진화’와 ‘진보’ 개념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반면, 시리우스 제국에게 카노푸스의 사회생물학 실험 계획은 “비경제적이고 반생산적이며 행정력의 낭비” (19)이고 “감성적” (19)인 행동이다. 그들에게 ‘강제 진화’ 실험은 보다 “즉각적이고 실용적인” (19) 것으로 식민행성의 하등동물들을 자신들의 필요에 맞게 진화시켜 어느 행성에서나 즉각적으로 노예나 하인으로 부릴 수 있게 만드는 제국주의적 계획이기 때문이다. 시리우스는 인간이 진화의 최고 정점이자 진보를 나타내는 증거라고 생각하며, 따라서 인간보다 열등한 동물들을 이용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또한 인종들 간에도 유전적 차이가 있어 고급 인력과 단순 노동력 등으로 구별하고 있다. 이것은 사회생물학이 더욱 극단적이 되어 나타난 우생학적 사고를 반영한다. 이처럼 레싱은 인간 및 문화 집단에 등급을 부여하였고 유럽인들을 진화의 맨 위 수준에 놓았던 유럽의 식민주의자들에 빗대어 시리우스 제국을 비난하고 있는 것이다. 유럽인들은 결국 나치즘과 파시즘을 낳는 과오를 저질렀는데, 시리우스 제국도 마치 과거 제국주의자들이 소위 ‘열등’인종에게 생체실험을 했듯이, 자신의 목적에 맞는 수준의 개체군을 만들기 위해 식민행성의 주민들에게 ‘사회생물학적’ 실험이나 ‘우생학적’ 실험을 단행한다.

    시리우스 제국은 은하수 내에서 필적할 대상이 없을 정도로 자신들의 과학기술이 최고조에 달하였다고 자부한다. 그러나 과학기술의 발전은 수십억 인구의 실업을 낳았고 이들에게서 삶의 목적을 앗아갔다. 소위 “시리우스 제국의 어둠의 시대” (27)를 가져왔고 국민들에게 “실존주의적 문제” (82)를 안긴 것이다. 많은 국민들이 무차별적인 폭력을 휘두르고, 이유를 알 수 없는 역병이 돌며, 신경증 증세가 유포되는 등 집단 정신병 증세를 보인다. 시리우스는 과학과 과학기술 덕분에 물질은 풍요로워진 반면 정신세계는 빈곤해진 현대 문명 세계를 대표하고 있다. 레싱은 과학기술이 인간 문제의 장기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으며 단기적인 안락만을 가져올 것이고, 그로 인한 폐해는 과학기술이 발전하기 이전보다 오히려 더 심각할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반면 시리우스가 고안해낸 해결책은 단기적인 정책으로 인구를 급격히 감소시키는 것, 우주로 세력을 팽창시키는 것, 그리고 이에 필요한 사회생물학적 실험을 단행하는 것 등 근본적인 대책이 되지 못한다. 따라서 이 작품에서 레싱의 사회생물학에 대한 평가는 “자본주의를 재생산하는 학문” (Haraway 44)이라고 주장한 해러웨이의 견해와 일치하는 듯이 보인다.

    시리우스 제국은 자국의 특권층 시민들을 위해 힘든 일을 해줄 개체군들이 필요하므로 새로 발견한 제24행성의 토착종(발견할 당시에는 유인원 상태) 즉, 적응력이 우수한 롬비족(the Lombis)을 이용하기로 한다. 이들을 훈련시키고 감시할 인원들로는 체격이 비슷한 제22식민행성 출신의 기술자들을 선발하여 롬비족들에게 어떤 차이나 우월성을 보이는 행동을 하지 않도록 교육시킨다. 이전의 다른 실험에서 열등한 종들이 급속한 사회적 진화과정을 겪으면서 사회적 불평등에 저항하는 폭동을 일으킨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롬비족은 철저한 감시와 감독 아래 제23식민행성에서의 힘든 작업을 마친 뒤 같은 종류의 육체노동을 하도록 로핸다 남반부의 제1대륙으로 보내진다. 그런데 고향인 제24식민행성과 물리적 환경이 유사한 로핸다에 처음 도착했을 때 유인원인 롬비족은 고향에 온 것으로 착각하여 감사의 눈물을 흘렸고 부족이 함께 모여 하늘을 쳐다보면서 춤을 추고 축하를 하였다. 이들은 자신들보다 더 진화된 종들의 진화된 행동을 본적이 없다. 그러니까 이들의 문화적 행동과 의식은 학습된 것이 아니라 이들의 자연적·사회적 환경의 변화로 생긴 자연적인 집단행동과 집단심리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후 이들을 관찰하기 위해 남반부의 제2대륙의 평원에 감시자들 없이 정착시킨 후 얼마 시간이 흐른 뒤 그동안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 관찰하는데, 개체로서의 롬비족은 자신들이 제24행성에서 잡혀왔고 힘든 육체노동을 했음을 잊었지만 하나의 인종으로서는 그 기억을 간직하고 있었음이 밝혀진다. 그동안 그들의 언어가 진화하였고 노래와 설화 속에 그들의 모든 역사가 담겨 있었으며 이런 노래와 설화들을 서로 교화할 수 있는 잔치와 축제를 정규적으로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제23행성에서의 나쁜 기억 때문에 익힌 음식과 의복을 금지하는 문화도 갖고 있었고 이들을 이주시킬 때 남녀 성비를 2:1로 했기 때문에 여성들이 입법자가 되었고 구애의식(求愛儀式)도 발달하였다. 그들만의 역사가 담긴 문화를 만들어낸 것이다. 그리고 시리우스 제국은 롬비족에게도 “보다 높은 것” (50)을 갈구하는 본능, 즉 ‘영적 진화’의 본능이 내재해있음을 알게 된다 “우리는 이런 통제할 수 없는 내재된 욕구가 어떻게 이런 식으로 발전할 수 있는지 예견하지 못했었다.” (50) 시리우스 제국의 관리들이 이해할 수 없었듯이 이런 내재된 욕구, ‘영적 진화’에 대한 요구는 생물학적 진화론으로는 설명 불가능하다. 오랜 노예생활에 젖어 노예의 모든 속성을 갖추게 된 롬비족은 잔치에 취해있는 동안 우주선에 태워져 다음 일터인 제25행성으로 옮겨진다. 진화 환경이 좋지 않은 제25행성으로 이주된 롬비족은 일천 년 이상 제22행성 출신의 기술자없이 홀로 정착하게 되자 빨리 진행되던 진화를 멈추고 그들의 고향인 제24행성의 원주민 수준의 진화를 하고 있었다. 인적·물리적 환경이 달라지자 이들에게서 “보다 높은 것”을 향한 본능이 발견되지 않았고, 게다가 더 진화된 인종으로부터의 학습이나 모방 기회가 사라지자 진화를 멈추었다. 결국 이들의 실험은 실패인 것으로 결론이 내려진다. 레싱은 거인족 실험과 롬비족 실험을 대조시킴으로써 이들의 성패를 가른 원인이 ‘생물학적 진화’에 걸맞는 ‘영적 진화’요구를 충족시켰는가에 있다고 암시한다.

    시리우스 제국의 최고관리 앰비언II(Ambien II)는 카노푸스 제국의 제10행성 출신의 거인족들과 로핸다 원주민들의 실험이 성공하여 원주민들이 상당한 진화를 이루어냈음을 확인하고, 로핸다의 북반구에 진화를 촉진시키는 무엇인가가 있고, 자신들이 실험 소재로 롬비족과 제22행성 출신의 기술자들을 선택한 것이 잘못이었다고 결론짓는다. 그리하여 다음 실험으로 로핸다의 북반부에 있는 작은 원주민 부락을 통째로 남반부로 옮겨 정착시키는 실험을 단행한다. 시리우스 제국은 이번에는 카노푸스 제국처럼 이들을 하인이나 노예로 부리지 않고 자유로이 살게 내버려둔다. 그러나 “비간섭” (63) 정책에 따라 학습 기회를 갖지 못한 원주민들은 더 진화하지 못하고 오히려 배운 것을 잊고 있었다. 그후 이들에게 학습 기회를 제공하는 실험도 단행했으나 결과는 실패로 밝혀진다. 이들의 실패 원인은 무엇인가?

    레싱은 다양한 사회생물학적 실험의 예를 들면서 인간의 진화는 생물학적 유전만으로 설명될 수 없으며, 후천적 학습으로 유전적 한계를 어느 정도 극복할 수 있으나 이때 멘토와 멘티의 관계 또한 큰 변수로 작용한다는 등 생물학적 결정론을 부인하고 있다. 거인족은 원주민들과 공생관계를 이루며 학습 기회를 가졌고 롬비족은 노예처럼 부려졌다. 멘토였던 거인족이 사라진 뒤의 원주민 종은 자유와 학습 기회가 주어져도 그것들을 이용하지 못했다. 따라서 자연적 환경의 차이보다는 사회적·심리적 환경의 차이가 실험의 성패를 가른 것으로 보인다.

    시리우스 제국은 과학기술의 발달로 생긴 국민들의 ‘실존주의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여러 일자리를 만들지만 문제 해결에 실패하는데 이때 앰비언II는 다음과 같은 결론을 얻는다

    다시 말하자면 이 작품에서 실험대상이 되고 있는 유인원 이상의 고등동물에게는 육체 외에 정신이 존재하며, 정신이 안정을 얻을 때 즉, 삶의 목적을 찾았을 때 생물학적 진화가 발생하고 적응도가 높아지며, 정신이 불안정해지면 진화가 둔화되고 적응도가 떨어져 도태될 수 있다는 것이다. 레싱은 인간은 복잡한 정신세계를 갖고 있어 동물실험 결과로 해석하는데 무리가 있다는 학자들과 동조하고 있다.

    『아르고스의 카노푸스 제국: 고문서』의 제1권『시카스타: 식민화된 제5행성에 관하여』에서 그랬듯이 로핸다의 북반부를 점유한 카노푸스는 로핸다에 카노푸스와의 소통을 돕는 ‘로크장치’를 설치하여 카노푸스의 정기가 충만한 풍성하고 아름다운 유토피아로 만들지만, 일만 년 가량이 흐른 뒤 예기치 못했던 우주 질서의 변화로 로크장치는 고장이 나고 카노푸스 제국과의 소통이 어려워져 ‘퇴행성 질병’을 앓기 시작한다. 레싱은 생물들의 진화를 소재로 이 작품을 쓰고 있지만 궁극적으로는 우주의 질서가 모든 것을 지배하며, 이 질서가 깨지면 그 구성원인 모든 생물과 무생물이 변화를 겪게 된다는‘전체론’적 세계관을 이 작품에서도 되풀이하여 주장하고 있다.

    은하수에는 로핸다를 식민지화한 카노푸스와 시리우스 외에 세 번째 제국 푸티오라가 있는데, 그 제국에는 감옥으로 사용되었던 샤맷이라는 행성이 있었고 이 행성의 범죄자들이 푸티오라 제국을 장악하여 마치 해적들처럼 카노푸스와 시리우스의 영토를 침범하고 있었다. 로크장치가 제 구실을 못하게 되어 푸티오라 제국과 그의 샤맷인들이 세력을 펼치게 되자 카노푸스와 시리우스는 오랫동안 로핸다에서 철수하게 된다. 시리우스는 재앙 이후에도 제5행성을 계속 ‘로핸다’로 부르지만, 카노푸스는 재앙 이후의 로핸다를 ‘깨어진, 망가진’을 뜻하는 ‘시카스타’로 부른다. 시카스타는 푸티오라의 지배 아래에서 진화 혹은 퇴행을 계속하는데, 다윈의 진화론을 따르자면, 시카스타는 로핸다에 적응하여 계속 번식하는 푸티오라의 입장에서는 진화 중이고 기세가 줄어드는 카노푸스와 시리우스의 입장에서는 퇴행 중이다. 반면 레싱은 이것을 ‘퇴행’이라고 부름으로써 진화에 어떤 방향성 혹은 목표가 있음을 상정하고 있다.

    우주정책이 바뀌어 로핸다에서 다시 유전공학 실험을 재개하게 된 시리우스는 실험동물 중 일부가 샤맷인들에 의해 납치되자 그들을 찾아오도록 최고관리인 앰비언II를 신권정치의 국가 그락콘크란파틀(Grakconkranpatl)로 보낸다. 그곳에 잡혀있는 노예들의 감옥을 보며 실험동물들을 가두어 놓은 시리우스의 막사들을 떠올린 앰비언II는 자신들의 실험과 실험동물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능력 즉, 시리우스 제국을 객관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을 갖기 시작한다. 게다가 카노푸스 제국을 대표하는 클로라시(Klorathy)는 앰비언II에게 시리우스의 실험대상이었던 동물들이 도망쳐서 다를 종들과 교배하였고, 그 결과 로핸다의 지배 인종(master race)에게 주위 동물들을 자신의 목적에 맞게 순응시키는 유전자가 흐르고 있다고 말한다. 앰비언II는 “시리우스 제국의 토대이자 선량한 정부의 기초” (252)였던 이런 실험이 실은 쓸모없고 악한 것이었고 게다가 샤맷의 나쁜 기 때문에 더욱 악화되고 있음을 발견한다. 샤맷의 실험실에서는 실험대상들의 지구력을 시험하기 위해 죽을 때까지 헤엄을 시키는 실험, 뜨거운 물에 반응하는 정도를 측정하기 위해 솥에 넣고 불을 지피는 실험, 장기(臟器)를 실험하기 위해 여성의 유선을 등이나 대퇴부에 이식해놓은 실험 등이 이루어지고 있었고, 앰비언II는 이런 실험을 보면서 혐오와 죄의식을 동시에 느낀다. 앰비언II는 그런 실험을 자행하고 있는 실험자들이 실험동물의 육체적·심리적 고통에 무심함에 놀라면서 자신 또한 그동안 위선자였음을 자각한다. 그리고 실험대상 중 저항하는 동물을 보면서 ‘고등’동물이 ‘하등’동물을 자기 목적에 따라 실험하고 있으나 ‘하등’동물이 정직성이나 솔직함에서 즉, 도덕성에 있어서는 ‘고등’동물보다 더 우월할 수 있음을 느낀다. 생물학적 등급과 정신적 등급이 다름을 깨닫고 있는 것이다.

    앰비언II는 시리우스로 돌아오자 실험동물의 사용을 제한하는 법을 제정하여 통과시킨다. 그리고 다음과 같은 의문을 갖는다.

    앰비언II는 종(種)이나 속(屬)이 무계획·무목적으로 번식하고 생존하며 진화하는 것이 아니라, 전체 혹은 우주 속에서 한 부분을 차지하면서 특정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으며, 순리나 필연을 따르고 있음을 깨닫는다. ‘더 높은 타자성으로의 확장’ 그리고 ‘우주의 순리에 대한 깨달음’이것이 레싱이 말하는 ‘영적 진화’이다.

    시리우스 제국의 기반이었던 과학기술의 폐해를 깨달은 앰비언II는 심경의 변화를 겪게 되었고 이것은 곧 시리우스 제국의 정치적 변화로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앰비언II의 변화가 시리우스 제국의 진화를 낳을 것이고 이것은 처음부터 카노푸스의 의도였고 치밀한 계획이었다. 이것을 달리 해석하자면, 레싱은 시리우스의 정치제도, 즉 앰비언II를 포함한 다섯 사람으로 구성된 과두체제를 하나의 유기체로 보고 그 중 하나의 구성원인 앰비언II의 변화를 돌연변이로 해석하면서, 결국 시리우스 제국이 카노푸스의 목적에 맞게 진화하는 것으로 그리고 있다. 이때의 시리우스의 진화는 ‘생물학적 진화’와 ‘영적 진화’가 어울어진 진화이다.

    레싱은 이 작품에 동물에서 인간으로 진화하는 과정, 생물들이 다양해지는 과정, 지구의 지축이 기울어져 계절이 생기게 되는 사건 등 풍부한 생물학적 사고와 사건들을 담고 있으나 그것으로 복잡한 인간 본능과 인간 사회를 모두 설명 할 수 있다고 보고 있지는 않다. 특히 이 작품 속의 여러 사회생물학 실험은 ‘자연선택’ ‘적자생존’ 등의 진화론을 따르고 있으나, 유사한 실험도 다른 결과를 낳게 함으로써 사회생물학으로 인간의 복잡하고 특이한 성질을 모두 설명할 수 없다는 주장에 동의하고 있다. 오히려 인간이 점점 더 악해지는 것을 생물학적으로 설명하기보다는 샤맷의 나쁜 기가 퍼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주장함으로써 사회생물학의 근간을 부정하고 있다. 바로 이런 결론 때문에 대표적인 레싱 연구가인 벳시 드레인(Betsy Draine), 낸시 탑핀 베이진(Nancy Toppin Bazin), 뮈게 갤린(Müge Galin) 등은 “레싱의 우주소설은 기본적으로 의도상 종교적이고 도덕적이며, 과학이론은 그녀의 도덕적 비전을 강화할 수 있는 정도에서만 과학적이다” (Galin 177)라고 결론짓는다. 그러나 이런 해석이 어느 정도로 레싱의 작품에 대한 올바른 글읽기인지 의심스럽다. 레싱은 이 작품에서 과학적 지식만으로는 인간과 세계에 대한 통찰이 불충분하므로 인문·사회학적 통찰까지 함께 이루어져야함을 주장하고 있으며, 더 나아가 생물학 환원주의로 치닫고 있던 사회생물학에 대한 비판까지 시도하고 있기 때문이다.

    6사회생물학에서 말하는 ‘이타적인 행동’(altruism)은 좁게는 ‘타자의 이익을 위해 수행된 자기 파괴적 행동’이라고 정의되지만, 넓게는 ‘한 실재의 유전자가 다른 실재의 복지를 증진시키는 영향을 가질 때 그 실재의 행동’도 이타주의에 속한다고 말한다. 이 작품에서 레싱은 ‘자신들 목전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공동의 선(善)을 위해 결합하는 상호 호혜적인 행동’이라는 뜻으로 사용하고 있다.   7이 점에 대해서는 졸고「『제3, 4, 5지대간의 결혼』: 레싱이 제안하는 여성적 비전」에서 자세히 논하였다.

    III. 시리우스 제국의 영적 진화

    『아르고스의 카노푸스 제국』의 제1권과 제3권의 공통점은 앞의 상당부분이 우주질서와 로핸다의 자연적·사회적 배경에 관한 설명이고 소위 ‘주인공’들의 활동은 중간부분이 되어서야 시작된다는 것이다. 레싱의 과학소설은 이념소설이자 알레고리이기 때문에 줄거리나 등장인물들간의 인간적인 관계는 부차적인 문제이다. 이 두 작품 모두 표면상으로는 제국들을 대표하는 관리들이나 식민행성들의 주민들이 주인공인 것처럼 보이나, 실제 주인공은 어떤 방향성을 갖고 진행하는 우주 그리고 그에 맞춰 진화하는 지구와 인간 종이다. 그리고 줄거리는 이 방향성을 이해하고 있는 카노푸스가 그렇지 못한 다른 제국들과 식민행성들을 깨우치는 과정이다. 제1권에서는 지구를 대신하고 있는 시카스타의 주민들을 깨우치려 했고 제3권에서는 경쟁국인 시리우스 제국을 깨우치려고 한다.

    『시리우스 제국의 실험』은 일인칭 화자이자 시리우스 제국의 다섯 명의 최고관리 중 한 사람이며 중년의 여성인 앰비언II가 “사건의 역사보다는 마음의 역사를 기록”(329)한 것으로, “우리[시리우스]와 카노푸스 제국간의 관계라는 특정한 관점을 강조”(26)하면서 앰비언II의 심리적 변화 과정을 기록한 것이다. 그러나 이 작품의 등장인물들은 개인이기보다는 자기가 속한 제국을 대표하고 있는데, 앰비언II는 시리우스를, 클로라시와 나자르(Nasaar)는 카노푸스를, 그리고 타프타(Tafta)는 푸티오라를 대표하는 최고관리들로, 이 작품은 결국 이 네인물을 통해 세 제국간의 관계를 다루고 있다. 환언하자면, 패전국인 시리우스 제국이 승전국인 카노푸스 제국에게 복종하면서 열등감, 시기심, 의심 등을 느껴 반쪽의 복종을 하지만, 푸티오라의 위협 속에서 종국에는 카노푸스에게 완벽하게 굴복하게 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그런데 이때 굴복은 물리적 굴복이 아니라 우주의 조화를 깨닫게 되면서 얻게 되는 일종의 ‘영적 진화’이다.

    시리우스 제국은 과학기술의 강국으로서 물질적인 진보를 상징하고, 카노푸스 제국은 영적·도덕적 평형상태를 향한 정신적 진화를 상징한다. 이 작품의 첫 장부터 시리우스는 경쟁국인 카노푸스에게서 진실과 사실들에 대한 정보를 얻지만 열등감 때문에 판단력이 흐려져 이를 신뢰하지도 이해하지도 못한다. 더욱이 이 두 제국 사이에는 언어 이해의 수준 차이가 있어 의사소통도 어렵다.

    위의 인용은 두 제국 모두 ‘발전’ ‘안정’ ‘진화’ ‘진보’의 같은 단어들을 사용하고 있으나 진정 의미하는 바가 다름을 보여준다. 시리우스 제국은 자신들의 과학기술이 은하수에서 최고라고 자부하지만 실상 이것은 카노푸스의 과학기술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데서 오는 오판이다. 카노푸스의 과학기술은 “미묘하고 무한히 다양하며 눈에 잘 보이지 않는다.”(81) 예를 들어 시리우스가 로핸다를 방문할 때에는 첨단 과학기술의 우주선을 타고 나타나지만 카노푸스는 로핸다에 살고 있는 생물의 몸으로 환생한다. 시리우스나 카노푸스는 둘다 영원히 생명을 연장하며 살 수 있지만, 시리우스가 몸의 장기를 대체함으로써 생명을 연장하고 있는 반면 카노푸스인들은 죽음을 거치면서 마치 의복처럼 헌 몸을 버리고 새로운 몸으로 갈아입는다. 그리고 남녀의 젠더를 마음대로 선택하여 태어난다. 덕분에 카노푸스는 타자의 입장에서 세상을 볼 수 있고 상대방을 잘 이해 할 수 있는 이점을 갖고 있다. 따라서 카노푸스가 식민행성의 주민들과 만날 때에는 시리우스와 달리 그들과 더 잘 어울리고 그들의 문화도 더 잘 이해한다. 자연히 카노푸스는 상대방을 이용하거나 착취하기보다는 상생의 원리를 따른다. 섀론 디그로(Sharon DeGraw)는 레싱이 과학소설 시리즈에서 “환생을 이용하여 주관적 경계와 위계질서를 허물고 있다”(42)고 쓰고 있다.

    타자의 입장이나 전체의 입장에서 생각하지 못하고 이기적이고 단편적인 사고에 얽매여 있는 시리우스 제국에게 과학기술은 심각한 ‘실존주의적 문제’를 낳는 반면, 시리우스 제국보다 작지만 비슷한 정도의 인구를 갖고 있는 카노푸스에서는 ‘실존주의적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다. 시리우스가 카노푸스에게 적정한 인구를 어떻게 유지하느냐고 묻자 카노푸스는 “ ‘요구에 따라’ 혹은 ‘필요에 따라’” (84)라고 대답한다. 후에 시리우스는 이것이 자신들이 이해하는 소문자의 ‘요구’(need)나 ‘필요’(necessity)가 아니라 대문자의 ‘요구’(Need), 대문자의 ‘필요’(Necessity)임을 깨닫는다. 대문자의 요구와 필요는 일시적인 요구나 필요가 아니라 장기적으로 기능하는 ‘순리’이자 ‘필연’이다. 앰비언II는 카노푸스의 대표인 클로라시와의 우정을 통해 서서히 “더 높은 타자성”(86)으로의 문이 열림을 느낀다.

    앰비언II는 로핸다에서 만나자는 클로라시의 요청에 따라 코시(Koshi)라는 도시에서 클로라시 대신 카노푸스의 또 다른 대표인 나자르를 만난다. 나자르는 도덕성의 상징인 카노푸스인임에도 불구하고 엘릴레(Elylé)라는 여성의 유혹에 굴복하여 타락한 상태이고 앰비언II는 그가 유혹에서 벗어나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돕는다. 이때 나자르는 앰비언II에게 “각각의 완전함은 곧 정반대의 것이 되며, 그 정반대의 것이 바로 샤맷” (173)이라고 말한다. 이것은, 한편으로는, 마치 달의 모양처럼 무엇이든지 완벽해지면 그 다음에는 일그러지기 마련임을 뜻하는 것이며, 또 다른 한편으로는, 선한 존재도 악을 거친 다음에야 비로소 진정한 선으로 재탄생된다는 변증법적 진화를 뜻하는 것이다. 따라서 악도어떤 기능을 하고 있다. 앰비언II는 나자르와의 만남을 “시리우스의 관리로서의 그녀의 모든 것에 대한 도전” (185)이었다고 말하면서, 앰비언II라는 실체와 시리우스의 관리라는 실체 간의 분리가 일어나기 시작함을 느낀다. 그리고 그후부터 앰비언II가 유혹에 빠지거나 퇴행하려 할 때마다 마음 속에서 ‘시리우스’를 속삭이는 카노푸스의 소리가 들린다. 이것은 앰비언II가 시리우스의 관점에서 벗어나 카노푸스의 시각으로 보기 시작했음을 의미한다.

    앰비언II는 그락콘크란파틀 왕국의 감옥에 갇혀 있다가 사형당하기 직전 로디아(Rhodia)라는 여자로 환생해있던 나자르에게 구원되어, 그녀와 함께 로디아의 왕국이자 민주주의의 국가인 릴라노스(Lelanos)로 떠난다. 릴라노스는 카노푸스의 정기를 받아 태어난 완벽한 왕국으로 로디아가 여왕으로 통치하고 있으나, “돈이 그 자체로 상품이 될 수 있도록 허용하자”(223) 즉, 자본주의가 번성하자 붕괴하기 시작했다. 앰비언II가 이곳에 도착한 시기는 마침 여왕 로디아가 군중에게 살해당하면서 릴라노스가 완전히 몰락하는 때이다. 악의 화신이자 푸티오라의 대표인 타프타가 새로운 통치자로 등장하고 앰비언II에게 함께 릴라노스를 재건하자고 제의한다. 앰비언II는 이 유혹에 빠지지만 타프타와 함께 군중앞을 행진하여 정부 건물로 들어 선 순간 갑자기 환상에서 깨어나 도망친다. 나자르가 샤맷의 유혹에 빠지는 것을 목격했던 앰비언II가 이제는 자신의 타락(242)을 경험한 것이다. 앰비언II는 악에 물드는 일이 매우 사소한 일에서 시작됨을 깨닫는다(245). 이 깨달음은 진화가 작은 돌연변이에서 시작된다는 다윈의 말을 상기시킨다. 앰비언II는 진화를 시작한 것이다. 레싱은 제2권『제3, 4, 5지대간의 결혼』에서도 한 단계 진화하기 위해서는 그 전에 하강을 겪어야 함을 보여주었는데, 이제 하강을 경험한 앰비언II 역시 상승할 준비를 갖추었다.

    앞에서 보았듯이 실험동물의 고통을 깨달은 앰비언II가 실험동물의 사용에 관한 법을 제정하여 통과시킨 후, 클로라시의 부름으로 나자르와 함께 로핸다의 위기를 막기 위해 로핸다로 가는데, 앰비언II는 이번에는 카노푸스의 기술을 빌려 샤즈빈(Sha’zvin) 여왕으로 환생한다. 그리고 자신의 생각과 다르게 행동하는 즉, 시리우스식 판단과 어긋나는 행동을 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시리우스식 판단으로는 이미 위기에 처한 자신의 왕국이 더욱 위태로워질 것이므로 더이상 피난민을 받아들여서는 안 되지만, 샤즈빈 여왕의 입을 통해 나온 말은 “그들을 들어오게 하라” (288)는 명령이었다. 세 사람은 지혜를 동원하여 막강한 몽고인들의 침입으로부터 국민들을 구해내고, 그 와중에 클로라시와 앰비언II는 죽음을 경험한다. 이들 세 사람은 협동하여 이와 비슷한 일들을 반복하고, 그러는 사이에 시리우스에서의 앰비언II의 평판은 나날이 나빠진다. 앞에서도 볼 수 있었듯이 이 작품에는 수많은 일화들이 등장하는데 이들은 시간상으로나 지리상으로나 단절된 단편적 이야기로, 이 작품의 주된 줄거리를 구성하고 있다기보다는 카노푸스가 앰비언II를 교육시키는 단편적 교육 프로그램들이다.

    과두정치를 하고 있는 시리우스 제국은 앰비언II를 포함한 다섯 명의 최고관리가 통치하고 있는데, 이들은 매우 친밀하여 함께 “전체이자 하나의 유기체인 시리우스라는 몸의 한 개의 기관을 구성하는” (296) 듯하다. 레싱은 시리우스 제국을 마치 하나의 유기체인 양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이들 최고관리들은 대화없이도 상대방의 생각이나 감정을 알 수 있었으나, 최근 그 중 가장 진보주의자인 앰비언II가 카노푸스와 오랜 친교를 맺으면서 이들로부터 멀어졌다. 앰비언II를 제외한 네 명의 최고관리들은 위태로워지는 시리우스 제국을 보면서 앰비언II에게 “그룹이나 전체를 생성한 다음, 체제에 반대하는 구성원을 키우는, 다시 말해 전체 구성원들과 다른 사고를 발전시키는 메커니즘 혹은 기계장치가 무엇이냐?”(315)고 묻고, 앰비언II는 이에 “사회 변화를 불러오는 메커니즘”(315)이라고 대답한다. 앰비언II는 이미 시리우스 제국의 문제점을 보았고 사회 변화의 당위성도 깨달았다. 그리고 “시리우스 제국에서 변화가 일어나도록 야기시키는 것이 카노푸스 제국의 장기적 목표이었음”(311)도 깨닫는다. 카노푸스는 시리우스라는 하나의 유기체 내의 한 개의 기관에 돌연변이를 일으켜 더 이상 적응할수 없게 된 이 유기체를 더 잘 적응할 수 있도록 진화시키고 있었다. 엠비언II는 시리우스 제국이라는 유기체에서 돌연변이를 일으킨 하나의 기관(organ)이다. 그런데 엠비언II의 진화는 ‘더 높은 타자성으로의 확장’이라는 ‘영적 진화’이므로, 이제 시리우스는 ‘생물학적 진화’와 ‘영적 진화’의 평형을 이루게 된 것이다. 카노푸스의 의도를 깨달은 앰비언II는 로핸다로 가던 중 카노푸스의 크리스탈을 본다. 그것은 “나[앰비언II]에게 노래를 불러주었고, 모든 것이 재생된다는 희망의 메시지를 보냈다”(320). 이 크리스탈은 레싱이 즐겨 쓰는 이미지로『어느 생존자의 비망록』(The Memoirs of a Survivor, 1974)에서는 ‘검은 알’로 형상화되었고8, 『제3, 4, 5지대간의 결혼』에서는 ‘제2지대’로 형상화되었다.9 앰비언II는 이 희망의 메시지 때문에 “마음의 평형”(320)을 찾는다. 마지막으로 로핸다를 둘러보는 앰비언II는 제2차 세계대전을 향해 치닫고 있는 로핸다에서 점점 더 강력해지는 타프타도 만나고 훌륭한 건물을 짓고 있는 나자르도 만난다. 나자르는 앰비언II에게 “아직도 우리[카노푸스]가 실패를 다룬다고 믿을 수 있는가?”(327) 묻고 앰비언II는 “그렇지 않다”(327)고 대답한다. 카노푸스는 단기적으로는 실패를 하고 있는 듯이 보일 수 있으나 궁극적 진리를 향해 서서히 성공적으로 나아가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레싱이 진화에 대해 갖고 있는 관점이기도 하다.

    앰비언II와 나머지 네 명 동료들과의 관계는 마치 도입부분의 앰비언II와 카노푸스의 관계와 비슷한 상태가 되어, 앰비언II가 동료들에게 모든 정보를 제공함에도 불구하고 불안에 휩싸인 동료들은 자신들에게 아무 말도 해주지 않는다고 비난한다. 앰비언II는 일 년간 책을 써서 이에 대한 답을 하기로 하고 동료들은 앰비언II를 요양소인 식민화된 제13행성으로 보낸다. 여기에서 화자 앰비언II의 서술은 끝나는데, 결국 이 작품의 대부분은 앰비언II가 요양소에서 정신과 치료를 받으며 쓴 비망록이고, 그 다음 내용은 앰비언II의 네 명의 동료들이 시리우스 제국 전체에 보내는 경고장과 앰비언II가 동료 중 한 사람인 스태그룩(Stagruk)에게 보내는 답장편지이다. 경고장의 내용은 앰비언II의 비망록이 허가도 받지 않은 채 유통되고 있음을 경고하는 것이고, 편지의 내용은 시리우스 도처에서 혁명이 일어날 조짐을 보이고 있으며, 항상 한 마음이던 네 명의 동료들이 따로따로 앰비언II를 면회하고 있고, 앰비언II가 자신의 비망록이 널리 유포되도록 여러 조치를 취했음을 말하고 있다. 앰비언II의 영적 진화가 시리우스의 정치·사회적 진화로 변모하고 있는 것이다. 앰비언II의 생물학적 진화에 관한 사고의 전환이 영적 진화를 낳았고, 그 결과 시리우스 제국의 정치·사회적 변혁이 가능해졌다.

    8이에 대해서는 졸고「도리스 레싱의『어느 생존자의 비망록』: 차이, 변화, 해방의 모색」에서 자세히 논의하였다.   9이에 대해서는 졸고「『제3, 4, 5지대간의 결혼』: 레싱이 제안하는 여성적 비전」에서 자세히 논의하였다.

    IV. 나가기

    레싱이『사대문의 도시』에서 ‘생물학적 진화’를 이룬 아이들을 그려냈을 때에는 ‘구 세계’가 멸망하고 ‘새 세계’가 도래했으며 새 세계에 맞는 ‘영적 진화’를 이룬 새 인종이 탄생했음을 알리는 전의로 사용한 것이다. 그러나 과학소설 연작에서는 인간 종의 ‘생물학적 진화’자체를 다루면서 ‘영적 진화’와 대비시키고 있다. 앞에서 보았듯이 레싱에 따르면 ‘영적 진화’는 ‘보다 높은 것에 대한 갈망,’ ‘우주의 목적과 질서를 이해하는 것,’ ‘타자로의 확장’등의 정신적 성장을 상징하고, ‘생물학적 진화’는 ‘육체적·지능적 진보’를 나타낸다. 이 작품에서는 열등한 유기체의 ‘생물학적 진화’실험이 실험자들의 물질적 진보나 생명연장 등의 도구로 사용됨으로써 ‘생물학적 진화’가 ‘물리적인 부의 추구’로 확장되고 있다. 그러나 ‘영적 진화’를 도외시한 채 ‘생물학적 진화’만 추구할 경우 피실험자들의 진화가 멈추거나 인간들이 ‘실존주의적 문제’나 ‘정신적 붕괴’에 빠지는 한계를 드러낸다. 레싱은 결국 ‘생물학적 진화’와 ‘영적 진화’간의 평형상태를 이룰 것을 주장하고 있다.

    샤디아 S. 파임(Shadia S. Fahim)은 그의 저서『도리스 레싱: 수피즘의 평형과 소설 형식』(Doris Lessing: Sufi Equilibrium and the Form of the Novel, 1994)에서 “수피즘 철학의 기본 신조는 의식의 합리적 양태와 비합리적 양태 사이의 평형을 달성하는 것이며, 다시 말하자면 합리적 양태와 균형을 이룰 의식의 ‘직관적’ 양태를 개발함으로써 이해의 균형을 회복하는 것이다”(13)고 설명하고 있다. 따라서 파임에 따르면 레싱의 신비주의는 순전히 종교적인 것이 아니라 여러 인식 수준을 서로 보완하고 풍요롭게 만들어 실재를 지각하는 범위를 더욱 넓혀주는 것이다. 레싱은『시리우스 제국의 실험』에서 진화에 대해 숙고하면서 생물학적 측면과 영적인 측면, 즉 물질적 측면과 정신적 측면을 모두 종합하여 사고하고자 노력하는데 이런 사고를 다음과 같이 시각화하고 있다.

    레싱은 서로 무관해보이던 여러 개의 사건이나 인간, 말들이 실은 서로 연관되어 있고, 그리고 과거의 것들이 실은 미래를 예견하는 것이었고 현재의 어떤것이 과거의 어떤 것을 이해시키는 등등의 일이 발생한다고 말하고 있다. 결국 모든 것이 마치 거미줄처럼 얽혀 있으며 따라서 한 부분만을 보고 판단하면 오판에 이르기 쉽다. 부분을 모두 종합한다고 해서 전체가 될 수 없다고 흔히 말하듯이 전체 속에서 부분을 생각하는 것이 더 진실에 가깝다는 것이다. 앰비언II는 비망록을 쓰면서 자신이 좀더 일찍 카노푸스의 말을 신뢰하고 신중히 생각했더라면 이라는 표현과 ‘뒤늦게 깨달았다’라는 ‘hindsight’라는 단어를 자주 쓰고 있다. 이렇든 레싱이 말하는 “융합”에는 시간적·공간적 개념이 모두 포함되어 있으며, 개인적인 것과 집단적인 것, 과학적인 것과 영적인 것을 모두 망라하여, 전체 속에서 부분을 생각할 것을 주장하고 있다.

    그런데 윌슨이 ‘consilience’의 개념을 설명할 때도 “강에 비유하면서 여러 작은 냇물이 모여 큰 강을 이루듯이 서로 다른 학문분야에서 밝혀진 진리들이 한데 모여 하나의 강령을 만들 수 있다”(김동광 외 2명 17 재인용)고 표현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윌슨의 ‘통섭’이 생물학의 관점 속에 인문학과 사회과학을 포함시켜 사고하고자 하는 수직적 지식대통합이었다면, 레싱의 ‘융합’은 그동안 익숙해있던 인문학적이고 사회학적 사고에 자연과학적 시각을 덧붙여 진리를 탐구하려는 시도로 보인다. 따라서 윌슨이 ‘생물학적 환원주의’라고 비판받았듯이, 레싱도 ‘수피즘 환원주의’ 나 ‘인문학적 환원주의’ 혹은 ‘정신적 환원주의’(psychic reductionism)로 비판받을 소지가 있다.

    레싱의 과학소설 5부작『아르고스의 카노푸스 제국: 고문서』의 다섯 작품 중에서 제1권『시카스타: 식민화된 제5행성에 관하여』와 제2권『제3, 4, 5지대간의 결혼』에 관한 연구는 많은 반면『시리우스 제국의 실험』에 관한 연구는 적다. 그나마 그 연구들도 화자 앰비언II를 중심으로 하여 서사 기법에 초점을 맞춘 것이 대부분이다(벳시 드레인; 진 피커링 Jean Pickering; 로렐라이 세더스트롬 Lorelei Cederstrom; 캐서린 피시번 Katherine Fishburn; 데이비드 워터맨 David Waterman). 그러나 작품 제목이 증명하듯이 사회생물학적 실험의 의미에 대한 해석을 생략한 채 글읽기를 하는 것은 레싱이 의도하는 융합적인 사고를 외면하는 일이다. 물론 레싱이 사회생물학에 관한 깊은 과학지식이 있었다고 생각하기 어렵고 이 작품에 나타나 있는 실험과 실험 결과가 생물학적으로 얼마나 정확한가를 평가하기는 더욱 어렵다. 레싱은 제1권『시카스타: 식민화된 제5행성에 관하여』에서 설정한 지구 주위를 둘러싼 동심원 지대들이 물리학 법칙에 위반된다는 비판을 받기도 하였다. 레싱은『시리우스 제국의 실험』의「머리말」에서 “빨간 난쟁이, 하얀 난쟁이, 그들의 기억 거울, 동력이 반(反)중력인 그들의 우주로켓, 그들의 수행원인 해드론, 글루온, 피온, 렙톤, 뮤온, 그리고 맵시있는 참 쿼크들과 다채로운 색깔 쿼크들에 관한 이야기를 쓰고 싶다”고 말하면서 “그러나 우리가 모두 물리학자일 수는 없다”(12)고 덧붙인다. 이 작품도 사회생물학 원리나 이 원리의 오류를 정확히 밝히려는 것이기보다는 한 가지 전문지식의 눈으로 볼 때 인류에게 끼칠 수 있는 해악을 경고하려는 것이다. 레싱은 과학적인 것, 사회적인 것, 영적인 것을 모두 통합하여 세상을 볼 것을 주장하고 있고, 본 논문의 가장 큰 의의는 레싱의 이런 의도를 간파하였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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