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cel Proust et l’imaginaire philosophique

마르셀 프루스트와 철학적 상상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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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ABSTRACT

    Pour apprendre l’imaginaire philosophique chez Proust, on a approché La Recherche à la base de quatre éléments de Bachelard et yin et yang et des cinq éléments. Yin et yang et des cinq éléments comprend non seulement la vie présente mais aussi la vie passée et future. En reliant l’eau, le bois, la terre et le feu à l’imaginaire mythique, on appréciait le trajet en dehors du temps. C’est-à-dire, par une conception de la vie et la mort dans Véda, on peut aussi découvrir une similarité entre Véda et des cinq éléments. Si on peut dire, quand un homme meurt, sa vue se confond avec le soleil, son odorat avec la terre, son goût avec l’eau, son ouïe avec l’air, sa parole avec le feu et par une cérémonie le mourant lègue à son fils ses sens et toutes ses facultés; le tout doit revivre dans ce fils. La philosophie doit être une exposition, une représentation complète de l’essence du monde en des notions générales. Alors il est possible qu’on trouve l’essence du monde dans l’imaginaire mythique aussi. Par le moyen recherche à la base dequatre élémente et cinq éléments du traité Ohhaeng, on pouvait approcher la théorie de l’art de Proust au point de vue d’une pensée panthéiste. Dans cette perspective, on pouvait trouver l’universalité et la pluralité culturelle dans La Recherche.


  • KEYWORD

    Proust , yin et yang et des cinq elements , universalite culturelle , pluralisme

  • 1. 들어가는 글

    19세기와 현대에 이르러 경험론이나 합리론에서 사물의 정수를 파악하는 가장 적절한 방법은 그 사물을 만져보고 관찰하며, 그 사물에 관한 지각을 믿는 것이며 이성의 관념들이란 그것들이 관찰된 사실에 의하여 확정되기 이전에는 상상에서 온 허구라고 생각되어 왔다. 따라서 존재에 관한 진리를 파악하는 수단으로서 이성을 중시하며, 이러한 이성 중시 풍토는 문학 평론에도 이어졌다. 생트 뵈브의 전기적․자연사적 방식의 비평이 그러하다. 그러나 프루스트는 이런 식의 접근으로는 작가의 일상생활과 그 주변세계를 아무리 세세히 파고들어도 작가의 내면세계를 이해할 수는 없다고 본다.

    프루스트는 그의 『생트뵈브 논박』의 서문1) 에서 우연적인 계기로 물질적인 것이 유발하는 감각작용을 통하여 과거를 되살린다고 주장한다. 그는 이성의 질서가 부여하는 시간체계로서의 과거는 우리의 진정한 과거가 아니라고 말한다. 그는 반주지주의적이고 생명력이 깃든 직관으로서만 진정한 실체를 찾을 수 있음을 주장한 베르그송처럼 과거 역시 생명력의 한 덩어리로서 파악한다. 이처럼 프루스트는 그동안 로고스 중심주의적 전통에 의해 왜곡된 직관․생․그리고 무의식에 주목한다.

    대외적으로 1990년 이후 에라노스 회합2)을 중심으로 서구의 학자들이 동양의 고전 특히 『역경』연구에 관심을 보인 것은 결코 우연의 산물이 아니며, 이미지 파괴주의(=성상 파괴주의)에 억눌렸던 이미지 옹호주의(=성상 옹호주의)의 분출과도 그 맥락을 같이한다고 할 수 있다. 『역경』은 그 근본이 음양오행론에 있고, 바슐라르의 사원소론과도 대비된다. 바슐라르는 물․불․공기․흙의 사원소에 대한 상상력과 몽상의 저술을 써나가는 동안, 이미지들이 일정한 몇 개의 축 위로 일종의 별자리를 형성한다고 본다. 일견 잡다해 보이고 자유로워 보이는 상상력에 일정한 논리가 있고, 분류화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서양 사원소가 그 질료적 특성에 치중하는 반면 동양의 오행론은 이를 인간 생활에 까지 보다 거시적으로 적용한다는 점에서 상상력의 폭을 더 넓히고 있다.

    오늘날 프루스트에 대한 철학적 연구는 셸링과 쇼펜하우어를 중심으로 서술한 안 앙리의 『마르셀 프루스트- 미학을 위한 이론』과 여기에 같은 계열의 프랑스 계승자들을 중심으로 정리해서 연구한 “프루스트의 철학”이란 논고가 실린 크리스테바의 『감성적 시간』이 있다. 또한 소설의 주제는 기호해독을 통한 진리탐구이며, 프루스트에 대한 전복적 해석으로 나타내는 들뢰즈의 『프루스트와 기호들』이 있다. 전자가 전통적 방법론에 의한 것이라면 후자는 상상력에 근거한 탐색이라고 할 수 있다.3)

    『잃어버린 시간』은 철학 소설이면서 그 내면에 신화적 상상력을 내포하고 있다. 그간 프루스트의 신화연구는 고대 그리스 로마신화와 중세 서구신화를 넘어서, 이성복은 「프루스트와 유식」에서 불교적 시각으로 『잃어버린 시간』을 탐색하고 있다.

    프루스트에 대한 철학적 연구는 그 시각에 따라 다원성이나 보편성의 폭을 넓혀갈 수 있다는 점에 착안하여, 본고에서는 바슐라르의 사원소론과 음양오행론을 방법론으로 『잃어버린 시간』을 탐색해볼 것이다.

    1)M. Proust, Construe Sainte-Beuve, N.R.F, 1971, p.211.  2)상징, 신화, 상상력을 연구하는 국제 학술회의  3)김희영, 「프루스트 소설의 철학적 독서」, 『프루스트와 현대프랑스 소설』, 민음사, 1998, p.12.

    2. 본론

       2.1. 음양오행의 근원과 그 상징적 상상력

    음양오행론의 근원을 『역경』의 ‘하도’(河圖)와 ‘낙서’(洛書)에서 찾아볼 수 있다. 하도는 복희가 용마(龍馬)등에 나타난 수를 보고 오행상생의 원리를 그려내었는데, 수로써 상을 만들고 상으로써 만물의 위치를 나타낸 것으로 「계사전」에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가 생성 된다. 이를 유비적으로 인체에 설명하면, 임신 일개월의 태아는 액체 상태이며, 이개월이면 기혈이 흐르고, 삼개월에는 모발이 생기고, 사개월에 골격이 형성되며, 오개월이 되서야 형체가 생겨난다는 것이다.

    낙서는 우왕이 홍수를 다스릴 때 등에 무늬가 있는 신령스런 거북이 나왔는데 등에 나열된 수가 9가지여서 이것으로 홍범구주(洪範九疇)를 이루었다. 홍범구주란 『서경』중 기자설이라고 전하는 홍범구주에서 온 말로, 중국 땅을 구주로 나누고 백성을 다스리는 법도로서 오행 상극의 원리를 나타낸다. 이 구주의 첫 번째가 오행론으로 水․火․木․金․土로 되어있다.

    엠페도클레스는 물, 불, 공기, 흙의 입자들을 뿌리rhizomata 라고 불렀다. 그는 이 네 가지 뿌리에서 무한히 다양한 혼합물들이 생겨나고 그 작용인으로서 사랑과 미움을 제시하고, 사랑에 의한 원소의 결합은 조화와 평화를, 미움에 의한 분리는 싸움과 불화를 야기하고 그리하여 질서와 혼돈이 주기적으로 순환한다고 하였다.

    이 사원소론을 플라톤은 『티마이오스』에서 수적이고 기하학적인 구조에 의해 설명함으로써 인식론적인 설명의 틀을 마련했다. 바슐라르의 사원소론도 플라톤의 이러한 인식론을 토대로 ‘상상력’으로 발전시켜나간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들이 주장한 사원소론이 모두 과거의 신화적 관점에서 벗어나 하나의 현상을 ‘물자체’에서 그 근원을 찾으려한 반면 동양의 오행론은 하나의 원리로서 천도와 인사의 필연적 관계성을 설명하는 상징체계로 이용되고 있다. 또한 동양의 음양오행론은 수 철학에 근거한다는 점에서 하느님의 언어4)로 그 상징체계를 나타내었다고 할 수 있다. 음양오행론은 연금술, 의술, 점성술등에서 활용되어 왔는데, 이런 맥락에서 음양오행론과 바슐라르 사원소론의 일치점을 찾아 볼 수 있다.

    바슐라르는 『불의 정신분석』에서 유년시절의 신비를 회상을 통해 사원 소 속에 아름답게 채색한다.

    바슐라르의 사원소론이 삶의 신비, 인간이 그 환경 속에 살면서 찾아낸 삶의 비밀을 엿보게 해주는 행복철학이라는 점에서 우리는 프루스트와도 자연스럽게 소통함을 발견할 수 있다.

       2.2 사원소론과 오행론을 통해본 철학적 상상력

    프루스트와 같은 시대, 이른바 주제 비평의 선구자라고 불리는 바슐라르는 근대과학 정신을 정신과 대상이 통합되는 몽상의 코기토로 발전시킨다. 그의 방법론은 어떤 주체의 활동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것을 실체인 주체적 원리 안에서 파악하는데서 출발한다.

    바슐라르는 사원소를 상상력의 호르몬이라고 규정한다. “사원소는 이미지군 들을 활동하게 만든다. 사원소를 통해서, 상상적인 것에 어느 정도 규칙적인 특성을 부여할 수 있는 위대한 종합이 이루어지는 것이다.”7)

    이런 사원소의 이미지군 들에 대한 활동성을 오행론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오행론에서 물은 여성을 상징하며 시간적으로는 밤이고 계절로는 겨울이다. 또한 물은 속이 잘 들여다보이지 않는다는 점에서 지혜를 나타내기도 하지만 때로는 의뭉스러운 속성도 갖고 있다. 그리고 “시냇물과 강물은 말없는 풍경을 기묘할 정도로 충실하게 유성화 한다는 점과, 졸졸소리를 내는 물은 노래하고 말하고, 다시 말하는 것을 새와 인간에게 가르쳐준다는 것, 요컨대 물의 언어와 인간언어 사이에는 연속성이 있다.”8)는 점에서 음악을 상징하기도 한다.

    가리비 조개껍질과 같은 가느다란 홈이 파인 판에, 찍어 낸 듯 관능적인 마들렌은 여자의 은밀한 부분을 상징한다는 점에서 또 ‘마들렌’과자와 함께 마시는 ‘홍차’역시 자궁내의 양수로 해석될 수 있다. 이는 모태회귀를 통한 재생에 대한 염원을 상징적으로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차 맛에서 느끼는 그 희열과 레미니상스는 죽음도 초극하며, 바슐라르적 표현을 빌린다면 신적 현현phaino 의 경지이기도 하다. 또 <뱅퇴유 소악절>에서 나타난 음악 역시 오행론에서 물의 상징으로 풀이할 수 있다.

    플라톤은 『국가론』(10권, 614b-621c)에서 신화를 인용해 인식을 상기anamnēsis로 설명한다. 에르라는 한 용사가 전선에서 전사한지 열이틀 만에 화장 직전의 장작더미에서 되살아나 저세상 이야기를 들려주는 내용이다. 그러나 에르가 저 세상의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었던 것은 ‘망각의 강물’을 마시지 않았기 때문이다. 프루스트는 플라톤의 ‘상기설’과 쇼펜하우어의 ‘음악 형이상학’을 차용하여 이세계의 본질을 찾으려 한다. 쇼펜하우어는

    라고 한다. 음악의 운율, 화음의 유동성은 단번에 자연의 의지를 재현한다는 점과, 음악이 세계의 본질과 함께 직접적 관념Idée이고, 시간의 고통을 벗어나는 존재의 완벽한 언어라는 점에서 볼 때, <뱅퇴유 소악절>은 프루스트 예술론의 본질적 요소이다. <뱅퇴유 소악절>을 육화된 원리로 간주하는 메를로-퐁티의 주장도 오행론과 견주어 볼 때 한결 설득력을 지닌다.

    생퇴베르트 부인댁 연회장면에서 보듯 프루스트도 오행의 요소인 <사랑의 빗줄기> <국화꽃> <인두냄새> <귀로>등을 통하여 바슐라르가 그의 사원소론을 통하여 유년시절의 신비를 채색한 것과 동일한 행복철학을 그리고 있다.

    메를로-퐁티의 ‘살’이론으로 볼 때 우리는 <뱅퇴유 소악절>은 음들 뒤또는 음들 사이에 원소가 육화된 원리로 간주할 수 있고, 이 원소를 통해 어떤 대상 속에 숨겨진 영혼과 교감할 수 있다는 점에서 <뱅퇴유 소악절>을 『잃어버린 시간』의 주요 주제인 켈트적 상상 속에서 이해할 수 있다.

    음양오행론이 10干 12支를 통해서 그 상상의 저변을 우리주변 일상의 상징에서부터 상상의 동물까지 원용하며 인간의 고락을 상징적으로 암시하며, 신화와 논픽션의 세계를 자유로이 오간다는 점과, 악절의 운명 또한 우리들 영혼의 현실에 연결된다는 점에서 <뱅퇴유 소악절>과 오행론은 서로 교통한다고 할 수 있다.

    뒤랑은 바슐라르의 사원소를 자민족 중심적이라고 비판하고 동양의 홍범(洪範)에 나오는 水․火․木․金․土의 오행론을 소개한다.

    바슐라르도 『공기와 꿈』에서 제5의 질료로서의 오행론의 木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사원소중 공기에 木을 포함시킨다. 하늘을 향해 솟은 나무의 수직적 이미지와 감자 덩굴의 마른 잎을 태울 때 나는 연기의 이미지에서 공기나무l'arbre aérien라는 표현을 가져와 물질적 상상력을 이야기하고 있다. 바슐라르는 나무의 성장에 절대적 영향을 미치는 물의 힘에 주목하면서 나무가 불의 아버지임을 강조한다.14) 이점에서 오행론의 水生木, 木生火의 상생론적 관계를 발견할 수 있으며, 이를 통해 바슐라르적 상상세계와 오행론적 상상세계가 일치함을 알 수 있다. 프루스트도 공기와 나무에 대한 상상력을 이야기한다.

    동양의 오행론은 그 영역을 현존의 삶뿐만 아니라 과거와 미래의 삶까지도 포괄한다. 이미지의 경우도 현재, 과거, 미래에 따라 지각 이미지, 기억 이미지, 예견 이미지로 나눌 수 있다.16) 『잃어버린 시간』에서처럼 과거를 재현한다는 것은, 과거의 경험내용과 현재의 경험내용을 일치시키는 것으로, 과거와 현재를 동일화시킴으로서 시간의 유한성에서 벗어나며, 실제로 시간을 극복하는 체험을 하게 된다.

    이러한 현재와 과거사이의 동일성은 『잃어버린 시간』의 중요한 구성요소인 켈트신앙에서 찾아볼 수 있으며, 켈트신앙에서 나무는 주요한 구성성분이다.

    이를 프루스트가 묘사하고 있는 켈트신앙과 연결지어볼 수 있다.

    『생트뵈브 논박』에서 민간전설이라고 표명한 전설이 『잃어버린 시간』에서는 켈트신앙으로 구체화 된다.

    이런 켈트적 특성을 <위디메스닐의 세 그루 나무>에서 찾아 볼 수 있다.

    성 아우구스티노는 나무의 상징성에 대하여 『신국론』에서 “나무들은 우리들 눈에 보이는 세계를 장식하는 여러 가지 모습들을 우리들 감각에 나타내 보이고, 그들 자신은 인식할 수 없기 때문에, 말하자면 인식되는 것을 원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고 한다.

    쇼펜하우어는 이를 “식물이 맹목적인 의지의 세계에서 표상의 세계로 들어가기 위해서 지성을 부여받은 낮선 사람을 동경하고, 직접 자신이 할수 없는 것을 적어도 간접적으로 달성해 보려고 한다.”고 하며, “만약 그가 의지에게는 두려운 이 대상을 차분히 순수한 인식 주관으로 관조하고 그 대상의 이데아를 파악하는데 한정하게 되면 그를 채우는 것은 숭고한 감정이며, 그것은 황홀경의 상태에서이다. 그 때문에 우리는 그러한 상태를 유발하는 대상도 숭고한 것”이라고 한다.

    예술이 순수 관조에 의해 파악된 영원한 이데아, 즉 이 세계의 현상에서 본질적인 것과 영속적인 것을 재현하는 것일진대, 프루스트는 <세 그루 나무>가 촉발시키는 이미지의 육화를 켈트적 원시성속에서 드러내고 있다.

    프루스트에게서 망각이란 곧 죽음을 의미하며, 망각된 시간의 부활은 생명을 의미한다. 쇼펜하우어는 죽음이란 “개체성이 잊혀지는 수면세계” La mort, c'est un sommeil, où l'individualité s'oublie25)라고 하고, 『베다』에서는 죽음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죽음에 대한 이러한 설명은 음양오행론적 사생관 에서 그 유사성을 발견할 수 있는데, 음양오행론적 사생관이란 공자 「문언전」의 선악관 즉 “선을 쌓은 집안은 경사가 있고, 불선을 쌓은 집안은 재앙이 있으니, 자식이 아비를 죽이는 것도 아침저녁의 일이 아니고, 그 악이 점진한 것이니, 서리가 얼음에 이르고 작은 악이 큰 악에 이름은 대개 순리를 말한 것이다.”라는 것에서처럼 망자와 후손과의 교감이다.

    『베다』의 사생관을 『잃어버린 시간』의 부활 현상에 적용시켜 볼 때, 어떤 대상이 우리에게 보내는 애절한 신호와 또 그 실체를 알 수 없는 수수께끼 같은 현상이 우리에게 친근하게 다가오는 이유를 이런 맥락 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결국 프루스트에게서 부활의 중요한 단초인 감각기능 즉 시각․후각․미각․청각 등의 근원을 우리는 『베다』에서 찾아볼 수 있다. 『잃어버린 시간』의 주요한 사상적 구성을 이루는 켈트신화는 여러 문화적 요소의 혼합체로, 여기에는 인도신화도 포함된다. 『베다』에 나타난 고대 인도인들의 죽음에 대한 인식은 이 시대 이들의 문화권에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생각되는 음양오행론에서 그 근원을 찾을 수 있다. 이를 『잃어버린 시간』의 부활 현상에 적용시켜 볼 때, 결국 프루스트에게서 부활의 중요한 단초인 감각기능은 그 근원이 켈트 신화 속에 있으며, 인도와 중국문명에 깊은 관심을 보였던 쇼펜하우어의 영향권 안에 있었던 프루스트가 이를 차용하여 켈트 신앙 속에서 재현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마르탱빌과 비에비크의 종탑>29)이라든지 <게르망트쪽으로의 산책>에서, 오행론의 대지․광물과 연관하여 그 상징성을 살펴보자.

    <게르망트쪽으로의 산책>에서 우리는 프루스트의 범신론적 신관을 엿볼 수 있다. 범신론적 신관에 대한 뒤랑의 다음과 같은 설명에 주목해보자.

    뒤랑이 말하는 작은 신들이란 결국 자연을 신으로 간주하는 음양오행론적 신관을 말하며, 이는 음양오행론의 상징성의 통합이라고 할 수 있는 『역경』의 괘를 통해서 인간의 열망과 윤리적 지표를 음미할 수 있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잃어버린 시간』에서 화자는 어느 한 지붕이나, 돌멩이, 길의 냄새를 통해 까마득한 망각의 세계에서 되살려 줄 것을 간절하게 애원하는 미지의 신호를 읽는다. 또한 거기에서 화자가 느끼는 희열은 뚜렷한 향기, 소리, 형상을 유지하며, 시공을 초월한다. 이는 그것들이 과거의 지평에서 같은 깊음에 놓여있기 때문이며, 스스로와 교감하기 때문이다.

    자연 숭배의 오행론적 신관은 범신론적이며, 프루스트 사상의 근원도 이런 관점에서 이해할 수 있다.

    크리스테바는 이데아에 이르기 위한 초월적인 의식으로 직관을 피력한다.

    『역경』에서의 관(觀)도 단순한 시각적 관찰이 아니라 통각(統覺)이다. “움직이지 않고 고요하게 느껴서 온 세상의 이치를 통한다.”34)는 그런 의미이다. 그것은 분별의식이나 개념으로 다가오지 않지만, 순간적으로 인식능력이 한꺼번에 작용하여 대상의 본질에 도달한다는 뜻이다.

    자기 마음의 생각이 그대로 괘(koua, 음과 양의 결합)를 뽑는 점괘로 드러나듯 이는 분석이 아닌 관조를 중시하는 ‘동시성의 원리’ synchronicité와 부합한다. 융은 시간적으로 앞서 파악되는 사건을 ‘동시성적’이라고 표현한다. 그는 “점복술을 끌어들이지 않으면, 초시간적 경험분야에 대한 조망은 불완전할 것이라고 한다.”35)

    『역경』의 점괘는 과거․현재․미래를 자유로이 오간다. 이를 우리는 『잃어버린 시간』의 주요 주제인 동성애에 적용시켜 본 바 있다.

    괘와 『잃어버린 시간』의 동성애의 연결은 과거 속에서의 현재와 미래를 관조해본 것이다. 음양이론으로 볼 때 불은 양의 불과 음의 불로 나눌 수 있다. 예를 들어 촛불은 분명 火의 속성을 갖지만 밤의 촛불이 그 강도가 센 양의 불이라면, 낮의 촛불은 그 강도가 약한 음의 불이 될 것이다. 지화명이(地火明夷)괘는 불이 땅 아래에 있으니 음의 속성을 가진 불로, 산화비(山火賁)괘는 불이 산허리를 밝게 비추는 상이니 양의 속성을 가진 불로 이해할 수 있고, 금기시되던 동성애 즉 음의 속성을 지니던 동성애가, 현대에 이르러 양의 속성을 지닌 동성애로 부활하고 있음은 다원론적 사유의 대표적 표징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이런 면에서 우리는 동성애를 오행의 불의 범주 속에서 생각해 볼 수 있다.

    물․불․공기․흙의 넷으로 상상력의 유형을 나눈 뒤, 바슐라르가 『불의 정신분석』에서 유년시절을 채색함은 프루스트식의 시간 재생 형태와 비슷하다. 『역경』에서 天․地․水․火는 만물의 근간을 이룬다. 프루스트의 자연관도 그러하다.

    오행론의 水․火․木․金․土는 서로 상생․상극의 관계로 자연과 인간 현상을 설명하며, 그 내면에 시공간을 초월하는 상징적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이는 사원소론을 발전시킨 서양 점성술과도 통한다. 그 단초된 엠페도클레스의 사원소를 통해서 그 사유의 본질이 서로 닿아 있음을 살펴보았다.

    철학이 세계의 본질을 보편적 개념으로 재현하는 것이라면, 우리는 신화적 상상력 속에서도 세계의 본질을 발견할 수 있다. 또 오행론의 오원소론 역시 그 출발은 신화적 상상력에서 비롯되었다는 점에서 철학적 상상력이라는 용어로서 이들을 연결지어볼 수 있다. 또한 오행론이나 사원소론에 근거한 연구가 범신론적 자연관의 관점에서 프루스트의 예술론을 이해할 수 있는 접근방법이 될 수 있음을 살펴보았다.

    4)B. 매기, 『철학의 역사』, 박은미 옮김, 시공사, 2007, p.8.  5)G. Bachelard, La psychanalyse du feu, folio, 2002. p.146  6)G. Poulet, La Conscience critique, Rocher, 1989. p.209.  7)G. 바슐라르, 『공기와 꿈』, 정영란 옮김, 이학사, 2000, p.39-40.  8)G. 바슐라르, 『물과 꿈』, 이가림 옮김, 문예, 1998, p.27.  9)Du côté de chez Swann, RL, 1987, p.292.  10)A. Schopenhauer, Le monde comme volonté et comme représentation, Traduit par Burdeau, Puf, 2009, p.337-338.  11)M. 메를로-퐁티,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남수인 옮김, 동문선, 2004, p.200.  12)ibid, p.213.  13)Du côté de chez Swann, RL, 1987, p.288.  14)G. 바슐라르, 『공기와 꿈』, 정영란 옮김, 이학사, 2000, p.361-362.  15)Le Temps retrouvé, RL, 1987, p.706.  16)유평근, 『이미지』, 살림, 2002, p.39.  17)Le Temps retrouvé, RL, 1987, p.706.  18)Jean Markale, Le Drudisme, Histoire Payot, 1989, p.26.  19)M. Proust, Contre Sainte-Beuve, N.R.F, 1971, p.211.  20)Du côté de chez Swann, RL, 1987, p.56-57.  21)À l'ombre des jeunes filles en fleurs, RL, 1987, p.592.  22)De civ. Dei, ⅩⅠ, 27. Schopenhauer, Traduit par Burdeau, Puf, p.259. 에서 재인용.  23)ibid, p.259.  24)ibid, p.260.  25)ibid, p.353.  26)Oupnek'hat, Ⅰ, p. 249 et suiv, Schopenhauer, Traduit par Burdeau, Puf, p. 360 에서 재인용.  27)Oupnek'hat, Ⅱ, p. 82 et suiv, Schopenhauer, ibid.  28)La Prisonnière, RL, 1987, p.75.  29)Du côté de chez Swann, RL, 1987, p.161.  30)ibid, p.160.  31)진형준, 『상상력』, 살림, 2009, p.104-105.  32)Du côté de chez Swann, RL, 1987, p.349.  33)J.Kristeva, Le temps sensible, Gallimard, 1994. p.319.  34)「계사전」.  35)C. G. Jung, 「동시성에 관하여」, 『융 기본 저작집 2』, 솔, 이유경 옮김, 2006, p.376.  36)졸고,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 나타난 동성애의 역(易)학적 연구」, 『프랑스문화연구』 13집, 한국프랑스문화학회, 2006, p.274.  37)Le Temps retrouvé, RL, 1987, p.720-721.

    3. 나오는 글

    음과 양 사이에는 대립과 배제의 원칙보다 조화와 균형의 원칙이 더 강하며, 일원론적 사유의 특성을 이룬다. 음양의 대립은 일시적인 것이고, 그 사이에는 이미 공통요소가 있으며, 이것이 진정한 의미의 다원주의이기도 하다. 이를 우리는 『잃어버린 시간』의 주요 주제인 동성애에서 살펴 볼 수 있었다.

    한편 죽음에 대한 고대 인도인들의 설명을 『잃어버린 시간』의 부활 현상에 적용시켜 볼 때, 어떤 대상이 우리에게 보내는 애절한 신호와 또 그 실체를 알 수 없는 수수께끼 같은 현상이 우리에게 친근하게 다가오는 이유를 우리는 『베다』에 나타난 사생관 에서 찾을 수 있었고 또한 우리는 이 시대 이들의 문화권에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생각되는 음양오행론적 상징성에서 그 근원을 찾을 수 있었다. 또한 차 맛에서 느끼는 희열과 레미니상스는 죽음도 초극하며, 이는 신적 현현 의 경지이기도 하다는 점에서 플로티누스적인 일원론, 곧 신플라톤주의적인 특성도 보여주고 있다.

    콩브레의 페르스피에 의사의 마차에서 <마르탱빌 성당의 종탑>이 석양에 채색되어짐을 보면서, 어느 날 발벡의 빌르파리지 부인의 마차에서 마치 화자에게 수수께끼처럼 다가온 <수목길>이, 또한 <게르망트쪽으로의 산책>에서 목격했던 지붕, 돌멩이가 반사한 빛, 길의 냄새가 부여한 희열감이나 <뱅퇴유 소악절> 등을 통해서 우리는 프루스트가 그의 예술혼으로서 나타내려한 진정한 다원주의적 표징과 인류문화의 보편적 표징들을 읽어낼 수 있으며, 삶과 죽음 그리고 죽음에 대해서 늘 초연한 태도를 견지한 프루스트에게서 우리는 이 세계의 본질이 무엇인가라는 물음을 다시 한 번 떠올릴 수 있을 것 같다.

    38)G. Durand, Les structures anthropologiques de l'imaginaire, Bordas, 1969. p.3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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