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ude sur la notion et la fonction de la metaphore dans l’art therapy

예술치료를 위한 ‘은유’의 개념과 기능에 대한 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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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ABSTRACT

    Qu’est-ce que la métaphore? Elle est une figure de style par laquelle la signification naturelle d'un mot est changée en une autre qui correspond à une comparaison sous-entendue : mon coeur est un lac. La métaphore est une figure de style fondée sur l'analogie et/ou la substitution. C’est un type particulier d’image sans outil de comparaison qui associe un terme à un autre appartenant à un champ lexical différent. Aristote est le premier, dans sa Poétique, à évoquer la métaphore comme procédé majeur de la langue. Il explique ainsi l'origine de l’étymologie de la figure, qui renvoie à la notion de transport : “La métaphore consiste à transporter le sens d'un mot différent soit du genre à l’espèce, soit de l’espèce au genre, soit de l’espèce à l’espèce, soit par analogie.” Saussure propose, sous forme de métaphore, une remarque qui permet d’en expliquer le jeu : “Un terme donné est comme le centre d'une constellation” ; il en résulte que tous ses éléments ne sont pas présents en même temps dans une énonciation, et que l’énonciation métaphorique suspend ceux qui n’assurent pas l’analogie. La translation linguistique qu’opère la métaphore correspond à une structure fondamentale du discours. En effet, la métaphore intervient sur les deux axes du discours : l’axe paradigmatique et l’axe syntagmatique. Cette organisation est universelle à toute langue. Roman Jakobson a établi le rapport qui existe entre cette structure et les figures ou tropes. On peut reconnaître dans sa syntaxe des procédés stylistiques, des figures rhétoriques qui appartiennent aussi à la structure du discours : la métaphore et la métonymie. Les psychanalystes considèrent que le principe de la création de l’art se met un rapport avec le dynamisme de l’inconscient. Pour comprendre des arts du surréalisme influencé sur cette idée psychanalyste, il est besoin de saisir profondément le principe interne pour la production des oeuvres d’art. A ce moment-là, la métaphore s’active sur l’axe interne. L’art-thérapie est une méthode visant à utiliser le potentiel d’expression artistique et la créativité d’une personne à des fins psychothérapeutiques ou de développement personnel. A ce point de vue, la métaphore se considère comme l’élément important dans l’art-thérapie, parce qu’elle a une des chances de s’éloigner de soi-même habituel en recherchant une nouveauté créative. Satir insistent aussi sur la fonction remarquable de la métaphore pour des gens qui souffrent des problèmes avec leur famille. Dans le théâtre-thérapie, la métaphore est également essentel, dans la mesure où il l’utilse dans les techniques dramatiques intentionnées se servant dans le théâtre.


    은유란 무엇인가? 은유는 한 사물을 다른 사물의 관점에서 말하는 것으로 유사성의 특징이 있다. 은유란 한 대상이나 개념을 다른 대상이나 개념의 관점에서 이해하고 경험하는 비유법이다. 그러므로 원개념과 매개개념 사이에 일정한 거리감은 은유의 중요한 특징이며, 거리를 메우기 위해 상상력을 발휘해야 하는 은유는 창조행위의 도구가 된다. 은유는 개념의 거리감을 절묘하게 운용하면서 다른 사고 유형으로는 불가능한 방법으로 자기와 자기를 둘러싼 세계를 깊이 있게 이해하도록 해 준다. 일찍이 아리스토텔레스도 능숙한 시적 언어를 사용하기 위해서는 은유를 잘 구사할 줄 알아야 한다고 언급한 바 있다. 통찰을 위해서는 은유가 필요하며 새롭고 참신한 것도 은유에서 비롯된다는 것이다. 기호를 기의와 기표로 나눈 소쉬르는, 전혀 다른 두 관념을 유사한 것으로 간주하는 은유는 기의적이라고 말한다. 즉 두 관념에서 유사성에 근거하여 기의를 추출하여 연결시키는 것이 은유라는 것이다. 반면 인접성에 근거하여 일치시키는 환유는 기표적이다. 야콥슨은 이러한 성질의 은유와 환유를 문학 비평에 적용시킨다. 그에 따르면 유사성에 근거하며 계열적 관계를 지닌 것이 은유이고, 인접성에 근거하며 통합적 관계를 지닌 것이 환유가 된다. 따라서 은유가 선택과 유추라면 환유는 결합과 연상이고, 은유가 시에 해당한다면 환유는 소설에 해당하며, 연극이 은유적이라면 영화가 환유적이 된다. 정신분석학에서 예술 창조의 원리는 무의식의 준동에 있다고 본다. 정신분석학의 영향을 받아 무의식을 탐구하는데 주력한 초현실주의 예술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작품을 생성하는 내면원리에 대한 심층 이해가 선행되어야 하는데, 이 심층 이해를 위해 필요한 것도 은유이다. 이처럼 낯설음으로 새로운 관념의 세계로 인도하는 은유는 일상과 습관화된 자기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기 때문에 예술치료에서 매우 중요하게 다루어지고 있다. 이를테면 밀턴 에릭슨은 은유적인 의사소통 방식이 내담자로 하여금 스스로의 문제를 인식하고 행동에 변화를 가져오게 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상담자의 개입이 없더라도 내담자가 자발적으로 숙고하고 반성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것을 깨달아 스스로 문제의 해결책을 찾아낼 수 있다는 것이다. 가족치료 전문가인 사티어 역시 은유는 가장 도움이 되는 치료적 개입이라고 말한다. 그녀는 내담자가 은유를 통해 자신의 신념을 다른 방식으로 바라보기를 요구했으며, 새로운 이미지와 지각이 일어날 때 궁극적으로 변화가 뒤따를 것이라고 확신했다. 연극치료에서도 은유는 매우 유용하다. 연극치료작업에서 내담자와 은유 사이에서 발생하는 과정은 내담자가 주제를 풀어갈 수 있도록 도와주며, 현실의 본래 문제를 탐색하는 과정에서 얻어진 자각과 은유와의 연관은 치유적 효용성을 높여준다. 결국 연극치료란 연극을 은유적으로 활용한 치료인 것이다.

  • KEYWORD

    la metaphore , le theatre-therapie , l’art-therapie , Erikson , Satir , la psychanalyse

  • 1. 들어가며

    비유법 중 하나인 은유는 ‘내 마음은 호수요’처럼 ‘A(마음)는 B(호수)다’의 원리로 작용한다. A의 원관념 대신 B의 보조관념으로 대상을 드러내고 표현하고 설명하여 그 특징을 묘사하는 수사법인 것이다. 그런데 은유는 일상에 깊숙이 자리하고 있을 뿐 아니라 삶과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를 맺고 있다. 언어와 몸짓, 삶과 죽음의 궤적 속에는 은유가 가득 차 있지만, 매 순간 호흡을 의식하지 못하듯 은유를 의식하지 못한 채 살아간다.1) 일상에서 넘쳐나기 때문에 낯설지 않은 은유는 무엇보다도 언어에서 자주 만난다. 언어는 온통 은유(및 환유)2)로 짜여있기 때문에 인간은 은유(및 환유)로써 생각하고 판단하고 행동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3) 이를테면 일상적인 대화에서 성격을 표현할 때 차갑다거나 깨지기 쉽다거나 비뚤어졌다는 등의 표현은 흔한 은유이며, 문학 특히 시의 영역에서 은유는 빈번하다.

    한편 언어가 사고와 불가분의 관계라는 점에 착안하여 레이코프(George Lakoff)와 존슨(Mark Johnson)은 인간의 사고 구조가 본질적으로 은유적이라고 선언한다. 또 프로이트(Freud)가 언급한 내면세계의 무의식도 은유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으며, 정신분석학의 방어기제 가운데 하나인 동일시는, 하나의 관념이 동일한 의미 구조 안에서 다른 관념과 관련을 맺고 있다는 점에서 은유(및 환유)로 볼 수 있다.4) 이처럼 언어, 사고의 구조 및 방어기제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는 은유는 심리치료나 상담 또는 예술치료에서 주목하고 있다. 그 이유는 첫째 내담자의 언어나 무의식 속에 드러나는 은유를 파악하여 치유를 이끌어 내는 기능적인 측면에서 그 효과를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둘째 내담자의 사고체계에서 은유가 활성화될 때, 기존의 자기를 무너뜨리고 의미를 확장시키며 새로운 세상과 만날 수 있다는 점에서 치유의 유용한 도구가 되기때문이다. “은유는 의미의 확장을 위해 모호함을 내포하지만 무질서를 방치하지는 않는다. 은유는 다형적이지만 은유의 에너지는 역설적으로 자기가 무너뜨리고자 하는 장벽을 필요로 한다. 은유는 새로움을 발생하게 하며 동시에 이를 조정하는 수단이다. 은유는 ‘이미 알려진 것의 잔여(殘餘)’라는 점에서도 ‘깨닫는 힘’이라는 점에서도 우리가 인식하게 될 어떤 발견을 향한 수단을 제공한다.”5) 깨달음의 힘을 지닌 은유는 이야기를 통해 내담자의 속마음을 파악하고 이를 신체로 구체화하는 과정을 거치는 연극치료에서 결코 소홀히 할 수 없는 요소이다. 그렇다면 과연 연극치료와 같은 예술치료 분야에서 주목하는 은유의 기능은 무엇이며 어떤 방식으로 활용할 수 있을까? 이를 파악하기 위해 인문학 각 분야에서 언급하고 있는 은유의 개념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1)우리가 일상에서 늘 사용함으로 전혀 거부감이 없는 은유를 ‘죽은 은유’라고 한다.  2)“은유가 한 사물을 다른 사물의 관점에서 말하는 방법이라면, 환유는 한 개체를 그 개체와 관련 있는 다른 개체로써 말하는 방법이다. 은유의 기능이 주로 사물이나 개념을 이해하는 데 있다면 환유는 사물을 개념을 지칭하는데 그 기능이 있다.” 김욱동, 『은유와 환유』, 민음사, 1999, 194쪽.  3)위의 책, 8쪽 참조.  4)위의 책, 83쪽.  5)김용석, 『서사철학』, 휴머니스트, 2009, 261쪽.

    2. 은유란 무엇인가

    은유를 뜻하는 메타포(metaphor)는 의미의 전이를 뜻한다. 메타포의 어원은 그리스어 메타페레인(metapherein)과 라틴어 메타포라(metapora)에서 찾을 수 있다. 메타페레인에서 메타는 ‘너머’ 혹은 ‘위로’를 뜻하며 페레인은 ‘옮기다’, ‘나르다’의 뜻을 지니고 있다. 즉 은유란 본질적으로 한 대상이나 개념을 다른 대상이나 개념의 관점에서 이해하고 경험하는 비유법인 것이다. 그러므로 원개념과 매개개념 사이에 일정한 거리감이 있다는 것은 은유의 중요한 특징이며, 거리를 메우기 위해 상상력을 발휘해야 하는 은유는 창조행위의 도구가 된다. 만일 어떤 거리감의 개념(은유)을 수용하지 않고 오로지 논리적으로 합당하게 연관되어 있는 개념(환유)만을 인정한다면 인간의 삶은 삭막한 사막에 다름 아닐 것이다. 은유는 개념의 거리감을 절묘하게 운용하면서 다른 사고 유형으로는 불가능한 방법으로 자기와 자기를 둘러싼 세계를 깊이 있게 이해하도록 해 준다. 인간의 삶은 은유라는 조미료 덕택에 더욱 풍성하고 윤택해지는 것이다.6)

    아리스토텔레스는 “은유는 한 사실에서 다른 사실로, 즉 유(類)에서 종(種)으로, 종에서 유로, 종에서 종으로 또는 유추에 의하여 한 낱말을 옮겨서 쓰는 것이다”7)고 정의하고 있다. 이 중 중요한 것은 유추로써, 거리감이 있는 개념을 연합시켜 새로운 의미를 창출한다는 뜻을 내포하고 있다. 이를테면 “‘인생의 황혼’은 ‘인생의 끝 무렵’과 ‘하루의 황혼’을 유추 관계에 두고 꾸민 은유이다.”8) 따라서 능숙한 시적 언어를 사용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은유를 능숙하게 구사하는 일”이며 “성공적인 은유의 사용은 사물들의 유사성을 파악하는 능력에 의존한다.”9) 이 유사성은 앞으로 보게 될 연극치료학자 존스(Jones)가 언급한 ‘은유적 연관’과 비슷한 개념이다. 결국 새로운 통찰을 위해서는 은유가 필요하고 새롭고 참신한 것은 은유로부터 비롯된다는 것이 아리스토텔레스의 생각이다. 그가 『수사학』에서 다음과 같이 언급한 은유의 기능을 살펴보면 은유가 예술치료 나아가 연극치료에서 얼마나 중요한지 파악할 수 있다.10)

    첫째, 은유의 기능 중 하나는 문자 그대로는 표현할 수 없는 것을 의사소통이 가능하도록 하는 것이다. 둘째, 은유는 문자 그대로의 사실적 언어보다 더 생생하고 인상적인 방식으로 의미를 파악하도록 한다. 은유가 깊은 인상을 남기는 것은 낯설음이 결합된 의외의 요소 덕택일 것이다. 셋째, 은유는 간결할 뿐더러 압축된 방식으로 생각을 표현한다. 넷째, 은유를 만들기 위해서는 단어를 새로운 방식으로 사용해야 한다. 다섯째, 은유는 서로 판이하게 다르지만 어떤 면에서는 서로 비슷한 요소들을 연결시킨다. 여섯째, 은유는 문자 그대로의 언어 사용과 규범에서 벗어난 언어 사용, 이 양자 사이의 연속선 위 어딘가에 위치할 수 있다. 이상에서 은유의 첫째와 둘째의 특징은 주로 언어를 통하여 치료의 효과를 이끌어내는 심리치료사나 상담사가 관심을 가질만하다. 내담자와의 빈약한 대화 속에서 결코 무너지지 않을 두꺼운 벽을 체험한 치료사라면 더욱 그럴 것이다. 심리치료학이나 상담학에 입문하면서 배우는 것은 내담자의 문제를 대화만을 통해 섣불리 판단하거나 해석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언어 자체가 가지고 있는 소통의 한계성과 인간이라면 기왕의 자기 세계관으로 세상을 바라보려는 속성이 있기 때문에 그 위험성을 언급한 것이라고 하겠다. 그러므로 치료사는 언어의 의미 자체에 함몰되기보다는 언어 속에 들어있는 은유 파악에 주력하는 것이 바람직한데, 이러한 은유의 장점을 십분 활용한 상담학자가 은유와 최면을 중시한 밀턴 에릭슨(Milton Erickson)이다. 그는 은유가 원활한 소통 뿐 아니라 나아가 좀 더 생생하고 충격적이라는 소통방식이라는 것을 파악하였으며, 이 점을 활용할 때 내담자의 무의식의 심연을 한꺼번에 전복시킬 가능성이 더욱 커진다는 것을 깨달았다.

    6)김욱동, 앞의 책, 91-111쪽 참조.  7)Aristoteles, 이상섭 옮김, 『시학』, 문학과 지성사, 2005, 70-71쪽.  8)위의 책, 157쪽.  9)위의 책, 76쪽.  10)Ellen Winner, 이모영 외 옮김, 『예술심리학』, 학지사, 2004, 359-361쪽 참조.

    3. 구조주의와 은유

    구조주의 언어학자 소쉬르(Saussure)는 기호(signe)를 기표(시니피앙, signifiant)와 기의(시니피에, signifié)로 나눈다. ‘의미화 하는 것’의 기표는 청각, 시각 및 촉각의 이미지로써 ‘의미의 운반체’의 뜻을 지니는 반면 기의는 ‘의미화 되는 것’으로 기호 내부의 추상적 내용이나 의미를 뜻한다. 이에 준거할 때 전혀 다른 두 관념을 유사한 것으로 간주하는 은유는 기의적이다. 즉 두 관념에서 유사성에 근거하여 기의(의미)를 추출하여 하나로 연결시키는 것이 은유인 것이다. 반면 인접성에 근거하여 일치시키는 환유는 기표적이다. 야콥슨(Jakobson)은 이러한 성질의 은유와 환유를 문학 비평에 적용시킨다. 그에 따르면 유사성에 근거하며 소쉬르의 계열적(수직적, 통시적) 관계를 지닌 것이 은유이고, 인접성에 근거하며 통합적(수평적, 공시적) 관계를 지닌 것이 환유가 된다. 이렇게 볼때 은유가 선택과 유추라면 환유는 결합과 연상이고, 은유가 시에 해당한다면 환유는 소설에 해당하며, 연극이 은유적이라면 영화가 환유적이 되는 것이다.

    야콥슨이 연극을 은유적, 영화를 환유적으로 표현한 것은 매우 흥미롭다. 연극이 인생을 표현하되 유사성에 근거한 시적 표현에 가깝다는 뜻인데, 연극이 삶을 표현하되 아무리 리얼하다고 하더라도 시공간의 비사실성과 재현성의 축조라는 극적 특징을 염두에 본 것으로 보인다. 야콥슨이 정리한 은유와 환유의 비교는 다음과 같다.

    위 도표에서, 인접성과 연관된 환유와의 비교를 통해 유사성의 은유의 개념을 확연하게 파악할 수 있다. 이를테면 계열적인 은유는 깊은 사유를 통해 원관념과 보조관념의 의미를 선택하거나 유추해야 하는 시 혹은 연극의 특성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11)김욱동, 앞의 책, 259쪽.

    4. 정신분석학과 은유

    정신분석학에서 예술 창조의 원리는 무의식의 준동에 있다고 본다. 따라서 정신분석학의 지대한 영향을 받아 무의식을 탐구하는데 주력한 초현실주의 예술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작품을 생성하는 내면원리에 대한 심층 이해가 선행되어야 하는데, 이 심층 이해를 위해 필요한 것이 바로 은유와 꿈 작업이다. 은유는 새로운 의미들을 생성시키는 원리로, 꿈 작업은 꿈을 생성하는 원리로 작용하기 때문에 이들과 기법이 동일한 초현실주의 예술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꼭 건너야 할 영역이다. 은유와 예술 창조기법 사이의 연관성은 다음의 그림으로 표현된다.12)

    이 그림은 은유의 원리 ‘A는 B다’를 충실하게 보여준다. 삼각형 A와 타원형 B는 형태가 다르지만 두 기호는 마치 밀접한 연관을 지닌 것처럼 논리성이 배제된 채 유사성, 포착, 초점화, 카텍시스(cathexis)13) 그리고 무의식적인 정신작용을 거쳐 은유적 동일시가 이루어진다. 이 은유적 동일시 작용 덕택에 A와 B는 제 3의 새로운 의미를 끊임없이 만들어낸다. 말하자면 다른 두 기호가 ‘은유 형식의 힘’에 의해 동일시되는 과정에서 의미 충돌 및 심리적 저항과 기존관점에 충격과 균열과 붕괴가 일어나며, 제 3의 관점과 새로운 의미결합이 생겨나는 것이다. 은유작용은 하나의 특정 의미와 해석 관점에 구속되지 않으며 개인마다 시대마다 끊임없이 새로운 해석들이 가능하고 그로부터 새로운 의미들이 생성된다.14) 정신분석학에서 은유는 누군가의 삶 자체 혹은 이야기에 충격을 가하거나 해체시켜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고 예상치 못했던 방식으로 해석할 수 있는 여지를 제시한다. 논리적으로나 직접적인 방법으로는 절대 드러나지 않는 무의식은 대체 표현되거나 재구성될 뿐으로, 그 속에서 작동하는 기제가 바로 은유인 것이다.

    12)이창재, 『예술작품과 정신분석』, 학지사, 2010, 389쪽 참조.  13)일정한 관념이나 인간 또는 경험 등에 자기의 감정이나 정신적 에너지(리비도)를 집중시키는 일, 또는 그 상태. 「네이버 백과사전」  14)이창재, 위의 책, 391-393쪽 참조.  15)위의 책, 410쪽.

    5. 은유와 치료

    은유는 소통에 장애가 되는 단단한 벽을 허물고 오해의 소지를 줄여 원활한 소통이 가능하도록 하는 비유법이다. 은유적 표현은 무의식을 효과적으로 파악할 수 있고, 충격적인 인상을 전하며, 내면의 소리를 커다란 두려움 없이 외현화시키는 창구다. 아리스토델레스가 “은유가 새로운 관념을 얻게 해 주고, 낯선 말은 단순히 우리를 당혹하게 만들며, 일상어는 오직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것만을 전달하기 때문에 새로운 것을 얻게 되는 것은 바로 은유를 통해서이다”16)고 말한 것도 동일한 맥락이다. 낯설음으로 새로운 관념의 세계로 인도하는 은유는 일상과 습관화된 자기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기 때문에 상담이나 치유에서 없어서는 안 될 필수적 요소인 것이다.

       5.1. 밀턴 에릭슨과 은유

    은유적인 의사소통 방식이 내담자로 하여금 스스로의 문제를 인식하고 행동에 변화를 가져오게 할 수 있다는 신념을 지닌 학자가 바로 밀턴 에릭슨이다. 그는 상담자의 개입이 없더라도 내담자가 자발적으로 숙고하고 반성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것을 깨달아 스스로 문제의 해결책을 찾아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가 제안한 것 가운데 스토리텔링은 은유가 적용된 대표적인 치료 기법이다. 에릭슨은 “습관화된 무의식적인 패턴에 영향을 주는 간접적인 입력에 초점을 맞출 때 변화가 가장 효율적으로 일어나고 영속화된다고 생각한다.”17) 문제의 내담자가 고착화된 무의식으로 인해 부정적인 신념에 빠져 있을 때, 단단한 고착 덩어리를 준동시켜 이를 해체시키기 위해서는 ‘간접적 입력’이 가장 효율적인데, 이 ‘간접적 입력’을 위해 활용할 수 있는 것이 상징이다. 융(Jung)이 언급한 바, “상징은 그 본성이 아직 알려져 있지 않기 때문에 다만 짐작될 수밖에 없는 무의식의 내용을 표현하는 가장 좋은 수단”18)이다. 그런데 이 상징에 접근할 수 있는 언어적 도구가 바로 은유인 것이다.

    여기에는 인간의 활동은 본질적으로 은유를 바탕으로 하고 있으며 은유는 언제 어디서든 인간의 현실을 구성하고 있다는 기본 전제가 깔려있다.

    에릭슨의 은유를 종합하면 다음과 같다.20) 첫째 내담자의 독특한 은유로부터 그의 언어세계와 주관적 경험을 이해할 수 있다. 말하자면 내담자의 언어 속에 들어있는 은유를 고찰함으로써 내담자의 내면세계와 현재 몰두하고 있는 문제를 탐색할 수 있다. 나아가 내담자가 즐겨 사용하는 은유의 분석을 통하여 부정적인 은유를 긍정적인 은유로 바뀔 수 있다면, 그는 변화된 사람으로 거듭날 수 있을 것이다. 긍정적인 은유를 통해 부정적 행동에서 탈피하고 대상을 새롭게 바라보며 타인과의 대응방식을 달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둘째 은유는 변화를 원하는 마음과 변화를 원치 않는 마음 사이에서 안전한 다리 역할을 한다. 이 다리를 통해, 생각의 바꿈에 있어 어떠한 준비도 되어 있지 않은 내담자에게 변화의 욕구가 잠재하고 있는 무의식의 영역에 접근하도록 한다. 이 경우 은유는 내담자가 자신과 세상에 대해 오랫동안 갖고 있는 묵시적인 믿음을 밝혀내는 유용한 도구가 될 것이다. 셋째 은유의 간접 표현은 내담자의 복잡한 양가감정이나 변화에 대한 두려움을 효과적으로 다룰 수 있게 한다. 인간은 누구나 직면에 대한 두려움을 갖고 있으며, 은유는 이 두려움에서 벗어날 수 있는 안전망 역할을 한다. 은유는 직접적 직면이 아닌 비유적인 표현이므로 내담자의 저항을 줄일 수 있지만 그렇다고 강한 인상이 축소되지도 않는다. 넷째 내담자가 새로운 은유를 진심으로 받아들이게 되면 내담자의 준거 및 이 준거에 영향을 미치는 지각과 행동에 변화를 일으키게 된다. 내담자가 새로운 은유를 수용했다는 것은 기존의 것을 버리고 새로운 자각의 세계에 들어섰음을 의미한다. 새로운 은유는 내담자로 하여금 자신의 경험을 새롭게 깨닫도록 하므로 그의 과거나 현재의 일상에 있어 새로운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자신의 과거를 결코 바꿀 수 없는 비합리적 신념으로 결정해 버리고 그 무게에 신음하던 내담자는 예상치 않았던 낯선 관점을 획득하게 됨으로써 기존의 경험을 오히려 긍정적 시선으로 바라보게 된다. 다섯째 내담자가 자신의 경험을 은유적 관점에서 이해하면 새로운 실재를 창조하는 힘이 생긴다. 이는 은유의 수용이 자각의 수준에 머물지 않고 실제적 행동의 변화마저 촉구한다는 뜻이다. 즉 생각만으로 그칠 때 자칫 어둠 속으로 회귀할 위험이 있지만 행동이 실제화 되어 지속적으로 유지된다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은유는 새롭고 창의적인 준거 틀을 마련하는 수단이며, 내담자의 경직된 정체감을 변화시키는 치료적 수단이다. 에릭슨의 상담 방식을 한 마디로 정의하면 창조적인 은유를 제공함으로써 내담자의 내면에 있는 참된 정체감을 자극하고, 그들이 자기 효능감에 대한 확신을 갖게 하여 자연스럽게 변화를 추구하도록 돕는 것이다.22)

       5.2. 사티어와 은유

    가족치료 전문가인 사티어는 은유야말로 인간이 소유한 가장 윤택한 힘이라고 생각한다. 사티어가 언급한 은유의 특징은 다음과 같다.23) 첫째 은유는 의미와 실제 대상 사이에 공간을 만들어 낸다. 이 공간은 내담자가 나름대로 해석할 수 있는 여유를 제공하며 간접적 치료를 유도하는 보조 치료자의 역할을 한다. 은유를 통해 내담자는 객관적 거리를 유지하게 될 터인데, 이 거리두기 덕택에 내담자는 좀 더 냉정하게 자신과 가족 간의 관계를 직시하게 될 것이다. 내담자와 부모 사이 혹은 내담자의 강력한 감정을 분리시키고자 할 때 은유는 큰 도움이 된다. 또한 은유를 사용함으로써 내담자와 치료사 사이에도 일정한 거리를 두어 내담자의 두려움을 감소시킬 수도 있다. 둘째 사티어 역시 이야기의 은유적 성격에 주목한다. 이야기는 내담자에 대한 정보, 내담자가 자신의 문제를 포함하며 치료사와 라포 형성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는 요인이기도 하다. 이야기 및 이야기 창조는 에릭슨에게나 사티어가 관심을 가졌던 것으로 연극치료에서도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요소다. 셋째 은유는 우뇌와 연결되어 감각을 활성화시키기 때문에 우뇌를 자극하고 발달시킨다. 은유는 두뇌에 ‘이미지’를 제공하는 시각, 청각, 촉각 등의 감각을 활성화시키며, 이것은 다시 지각의 변화 과정으로 이어진다. 사티어는 치료과정에서 은유의 사용이 우뇌를 활성화시키는 효과적인 방법이며, 이것이 결정적인 단계에서 내담자를 변화시킨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고백한다. 좌뇌와 비교된 우뇌의 기능은 다음의 도표와 같다.

    다음의 도표를 보면 언어를 담당하는 좌뇌는 분석적이고 논리적인 반면, 비언어적인 부분을 담당하는 우뇌는 은유적 직관적이고 예술적이다. 따라서 은유를 강조하는 사티어의 치료 목적 중 하나가 우뇌를 자극시키는 것으로, 이로부터 내담자가 감정을 발산하고 창조적 인간형이 되도록 하는데 있다. 한편 우뇌는 비언어적․신체적이며, 시공간의 학습에 익숙하고, 환상과 상상을 선호한다는 점에서 이들을 한꺼번에 아우르는 연극치료야말로 우뇌의 활성화에 매우 유리한 조건을 지니고 있다.

    사티어가 정리한 은유의 필요성은 다음과 같다. 첫째 내담자를 깨우치기 위해 은유를 사용한다. 둘째 내담자의 두려움을 완화시키기 위해 은유를 사용한다. 셋째 새로운 수준의 사고를 이끌어내기 위해 은유를 사용한다. 넷째 친숙하지 않은 것을 친숙한 것으로 만들고자 할 때 은유를 사용한다. 다섯째 대안을 확장시키기 위하여(두 가지 대안을 갖고 있을 때 세 번째 대안을 가질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은유를 사용한다. 즉 은유를 통해 내담자의 저항을 줄이고 스스로 깨우침을 얻도록 하며 해결책도 찾을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이처럼 “은유는 인간의 감정을 다루는 방법으로 새로운 소리, 모습, 촉감, 느낌, 사고를 하도록 해 주며, 새로운 것과의 연결 고리로써 장애를 뛰어넘어 변화가 일어날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도구다.”24) 사티어는 은유야 말로 자신이 아는 가장 도움이 되는 치료적 개입이라고 생각한다. 그녀는 은유를 통해 내담자에게 자신의 신념을 다른 방식으로 바라보기를 요구했으며, 그에게 새로운 이미지와 지각이 일어나도록 한다면 궁극적으로 변화가 뒤따를 것이라고 확신했다.

    16)Aristoteles, 이종모 옮김, 『수사학』, 리젤, 2008, 1406b.  17)이윤주·양정국, 『은유와 최면』, 학지사. 2009, 100쪽.  18)위의 책, 103쪽.  19)위의 책, 103쪽.  20)위의 책, 104-106쪽 참조.  21)위의 책, 151쪽.  22)에릭슨의 은유적 상담기법에 있어 여기서는 은유의 특징적 쓰임새만을 간단히 언급할 것이며 실체 치료에의 적용은 차후의 연구에서 밝히고자 한다.  23)Virginia Satir 외 지음, 『사티어 모델(가족치료의 지평을 넘어서)』, 한국버지니아사티어연구회 옮김, 김영애가족치료연구소, 2004, 293-297쪽 참조.  24)Virginia Satir, 위의 책, 309쪽.

    6. 연극치료와 은유

    지금까지 살펴 본 은유의 특징과 치료적 기능은 연극치료에 거의 그대로 적용시킬 수 있다. 필 존스(Phil Jones) 역시 연극치료에서 은유를 주목한다. 그는 은유의 원관념(대상)과 보조관념(대상)이 무관한 것 같지만 연결 끈이 있음을 간파하고 이를 “은유적 연관”25)이라고 언급한다. 즉 공통되는 특성을 통해 두 관념(대상)을 서로 연결시키는 것이다. 이를테면 가만히 있지 못하는 딸을 지칭하여 “내 딸은 하는 짓마다 나비다”라는 했을 때 딸과 나비는 한 곳에 머물지 않는다는 은유적 연관이 있는 것이다.

    존스가 언급한 은유적 연관을 지닌 은유의 기능은 다음과 같다.26) 첫째, 치료에서 은유는 막힌 상황에서 돌파구 역할을 한다. 내담자가 어떤 상황이나 문제를 생각하다가 막혔을 경우 흔히 은유의 도움을 받는다. 폐쇄된 혹은 경직된 사고로 인해 소통의 통로가 막혔을 때 은유의 개입은 사고를 유연하게 하여 통로의 장애물을 제거한다. 둘째 직설적으로 말하기 힘든 것이 있다면 은유를 빌어 이야기할 수 있다. 이는 앞서 언급한 은유의 소통 기능 및 거리두기 특징과 부합한다. 결국 은유는 일반적 상황에서는 접근이 어려운 내담자의 내적 세계에 다가설 수 있는 하나의 통로로 작용하는 것이다.

    존스가 제시한 사례, ‘탑 속의 왕자’는 은유를 통해 어떻게 내담자의 문제에 접근하는가를 잘 보여준다.27) 그는 자폐성인집단을 대상으로 이야기 작업의 은유적 가치를 검증하겠다는 목표를 세운 뒤, 내담자인 토머스의 내적 체험과 이야기의 외적 표현 사이에 은유적 관계가 성립될 수 있는지 탐색한다. 그는 먼저 내담자가 은유적 언어(인물, 이야기의 사건)로써 자신에 대해 직접 말하지 않으면서도 개인적인 내용을 다룰 수 있도록 한다. 앞서 보았듯이 치료나 상담에서 이야기는 자체적으로 은유로 기능한다.28) 내담자의 자전적 이야기든, 타인의 이야기든, 창작된 이야기든 상관없다. 내담자는 개인적인 사건과 관련이 있는 이야기를 말(창작)하는 중에 미처 깨닫지 못했던 자신의 문제를 인지하게 된다는 점에서 이야기 담화는 일종의 은유적 방식이다. 설화나 전설이나 신화, 동화 혹은 이웃집 누군가의 이야기로 시작된 이야기는 어느 덧 나의 이야기가 된다. 타인의 이야기가 A라면 나의 이야기는 B인 셈이다. 존스의 사례에서 토마스가 제시한 ‘탑 속의 왕자’ 이야기는 지속되었고 그 이미지들이 은유적이라는 사실이 분명해졌다. 말하자면 토마스가 만들어 낸 이야기가 말로는 표현하지 않았지만 그 자신의 삶과 분명하게 연관되어 있었던 것이다. 토마스가 꾸며낸 이야기는 평소에 감히 입 밖으로 꺼낼 수 없었던 것으로, 그가 품고 있던 억눌린 욕망 혹은 무의식이었다. 이 사례에서 알 수 있듯 연극치료 첫 단계는 내담자가 사용하는 극적이고 구어적인 이미지의 세계가 무엇인지를 알아내는 것이다. 또한 연극치료의 목적을 위해 내담자가 자신과 이미지를 연관 지을 수 있는지 또 개인적 은유를 만들어 낼 수 있는지 확인하는 것도 중요하다. 다음단계는 은유에서 만들어진 연관을 활용하여 상황을 탐색하는 것이다. 은유의 치료적 효과는, 일상의 소통에서 억압되고 검열 당했던 감정을 표출할 수 있도록 스스로가 허용하는 순간부터 발현된다. 경험을 표현하고 연관 짓는 대안적 양식으로서 극적 은유는 무의식의 방출과 변화를 가능케 한다. 극적 은유란 이야기에 몸을 입혀 자신의 내부에 쌓여있는 악성 찌꺼기를 방출하도록 돕는 것이다. 이런 방식으로 극적 은유 혹은 은유적 체현은 내담자로 하여금 도저히 건널 수 없었던 두텁고 단단한 경계선, 폐쇄와 고착의 미로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길잡이 역할을 한다. 마지막 단계는 은유적 탐험을 실제 삶과 연관시키는 것, 즉 작업을 현실에 동화시키는 것으로 이루어진다.

    존스는 연극치료에서 극적 은유의 치료적 가능성을 다음과 같이 정리하고 있다. 첫째 극적 은유는 문제가 실제 삶에서 지니는 정체성으로부터 일정한 거리를 창조한다. 둘째 그 거리는 새로운 관점을 창조함으로써 내담자가 문제를 다른 각도에서 바라볼 수 있게 해 준다. 셋째 은유를 창조하면서 내담자는 문제와 변화된 관계를 맺게 된다. 은유를 통해 극적 형식과 문제를 연관 지음으로써 애초에 문제를 바라보고 경험하던 방식을 확장하는 것이다. 넷째 은유의 창조는 문제를 상상적이고 극적인 탐험에 노출시켜 연극치료의 치료적 잠재력과 대면하도록 한다. 연극치료 작업에서 내담자와 은유 사이에서 발생하는 과정은 내담자가 주제를 풀어갈 수 있도록 도와주며, 현실의 본래 문제를 탐색하는 과정에서 얻어진 자각과 은유의 연관은 은유의 효능 면에서 매우 중요하다.29)

    연극치료에서 소중한 보석으로 간주되는 은유는 기존의 은유 개념에 비해 획기적이거나 전혀 새로운 것은 아니다. 다만 은유 본래의 속성을 십분 활용하여 그 치료적 기능을 연극적 방식에 적극적으로 활용한다면, 그 폭이 예상을 뛰어넘어 큰 도움이 될 것은 분명하다.

    25)Phil Jones, 이효원 옮김, 『드라마와 치료』, 울력, 2005, 352쪽.  26)위의 책, 352-353쪽 참조.  27)위의 책, 353-364쪽 참조.  28)모든 이야기는 자체적으로 은유이며 동시에 은유로 기능한다. 또한 이야기를 몸을 표현하는 연기는 은유들의 집합체이다.  29)위의 책, 381-382쪽 참조.

    7. 나오며

    동작중심 표현예술치료사인 다리아 할프린(Daria Halprin) 역시 예술치료에서 은유의 효용성을 깊이 믿고 있다. 그녀는 스스로를 인식할 수 있는 모든 방법과 변화할 수 있는 모든 가능성을 포함하는 치료란 우리의 깊은 내부로 들어가 그곳의 파토스를 탐구하거나 잃어버렸던 부분을 되찾는 것이라고 말한다.30) 그런데 습관적이고 길들어 있는 방식에 도전하고 낯선 것을 향하기 위해서는 창조적인 힘과의 연결 도구가 필요한데, 그 도구가 바로 은유인 것이다. 이는 우리를 비추어볼 수 있고 전환시켜주는 은유법이 필수적이라는 의미로써 창조적 예술 과정은 빛과 같은 힘을 발산시켜 우리가 어두운 곳을 여행할 때 새로운 현실적 경험과 존재방식으로 도약할 수 있게 해 준다31)는 의미다. 예술은 치료의 은유적 행위다. “즉 예술이 치료적 만남의 매개가 되어 정서와 인생의 주제에 대한 은유로 작동하는 것이다. 이러한 은유적 역할에 있어 예술은 무언가를 담아두고 있거나 대신 말해주기도 하는 일종의 거리두기를 제공하고 따라서 우리는 그 주제들과 대화할 수 있게 된다.”32)

    빼어난 이야기꾼이었던 성인들은 하나같이 은유의 달인이었고 그들의 은유는 후대에까지 엄청난 영향력을 행사했다. 그것은 은유가 지니고 있는 수수께끼 같은 충격적이고 거대한 흡입력 덕택일 것이다. 은유를 통한 전언은 한 사람에게만 와 닿는 것이 아니라 모두에게 각각 자신과 관련된 것이라고 생각하게 하는 형언할 수 없는 마술적 힘을 지니고 있다. 그 이유는 아마도 삶 자체 역시 은유의 날실과 올실로 짜여 있으며 그 삶을 풍요롭게 하는 예술도 은유의 일종이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논리적 언어로는 절대로 표현될 수 없는 예술가의 복잡한 정서와 사상이 예술품이라는 아름다운 오브제로 승화될 수 있다는 것은 기적에 가깝다. 연극이나 영화 또는 예술품에서 느낄 수 있는 진한 감동이나 가슴 에이는 슬픔은 직설적인 어떤 말로도 표현될 수 없는 것으로 은유가 조합된 결과다.

    인생과 연극은 은유적 관계다. 다시 말해 인생과 연극은 ‘은유적 연관’이 자리하고 있다. 배우가 만들어 내는 무대에는 ‘컷’이나 ‘편집’이 없다는 점에서 인생과 닮았다. 무대에서 ‘옥의 티’는 수 없이 발견된다. 한번 지나가면 되돌릴 수 없는 무대는 삶의 은유인 것이다. 내담자가 은유적인 언어나 행동을 통해 자신의 상처를 드러내는 것은, 배우가 예술 창작을 위해 몰입하고 있는 정신상태와 매우 흡사하다. 몸으로 구현되는 이름 모를 사람의 이야기가 어느 순간부턴가 나의 이야기가 되어 내 가슴을 울리는 연극치료는 다분히 자체적으로 은유적 성질을 지니고 있다. 복잡하고 두렵기도 하여 입으로 말하기 힘든 감정을 몸의 은유로 풀어내는 것이 연극치료이기 때문이다. 물론 은유가 연극치료의 전유물은 아니다. 다만 집단적이며 종합예술인 연극을 도구로 사용하는 연극치료에는 이야기의 전개와 신체의 움직임뿐 아니라 모든 예술이 광범위하게 포함되어 있으므로 어느 예술치료보다 더욱 은유적이라는 사실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30)Daria Halprin, 김용량 외 옮김, 『동작중심 표현예술치료』, 시그마프레스, 2006., 94쪽.  31)위의 책, 94쪽 참조.  32)위의 책, 107쪽.

  • 1. 김 용석 2009
  • 2. 김 욱동 1999
  • 3. 이 윤주, 양 정국 2009
  • 4. 이 창재 2010
  • 5. 이 종모 2008
  • 6. 이 상섭 2005
  • 7. Halprin Daria, 김 용량 2006
  • 8. Jones Phil, 이 효원 2005
  • 9. Lakoff George, Johnson Mark, 노 양진, 나 익주 2006
  • 10. Satir Virginia 2004
  • 11. Winner Ellen, 이 모영 2004
  • 12. http://www.myq.co.kr/brain/brain_structure_04.html goog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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