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akespeare and Traditional Korean Astronomy

셰익스피어와 한국의 전통 천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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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ABSTRACT

    This paper discusses the two major Korean Shakespeares, Kim Myung-Gon’s King Uru and Oh Tae-Suk’s Romeo and Juliet, in answer to the request made by Stanley Wells at the 2006 Craiova Shakespeare Festival: theatre practitioners should have ‘something worthwhile to say’ before they put something of their own in Shakespeare’s place. Kim and Oh, who have won international acclaim for their adaptations, present ‘something worthwhile to say’ by bringing Shakespeare to the world in the light of traditional Korean astronomy. The star map named ‘Cheonsang yeolcha bunya jido,’ which was founded in 1395 and designated as the No. 228 National Treasure of Korea in 1985, is employed as a means by which to bring ‘something worthwhile to say’ to Shakespeare: it works as a symbol of the cosmic power to restore the divided kingdom and strengthen the kingly power in King Uru; its concept of Hyeonmu, the northern seven lodges of the twenty-eight constellations, is associated with the deaths of not only the lovers but also the whole members of their families in Romeo and Juliet. It is representative of the sunny, light and fiery force of yang in King Uru, whereas of the shady, dark and watery force of yin in Romeo and Juliet. Thus these two productions differ in their approaches, although they make the relevance of traditional Korean astronomy recognizable by redrawing the bounds of Shakespearean tragedy genre: King Uru reminds us of the human capacity for self-recovery, while Romeo and Juliet the human capacity for self-destruction.


  • KEYWORD

    traditional astronomy , Kim Myung-Gon , Oh Tae-Suk , King Uru , Romeo and Juliet

  • I

    한국의 셰익스피어 연구는 셰익스피어의 국제적 명성과 함께 발전해왔으며 셰익스피어 세계화 과정에 일익을 담당하고 있다고 자부할 수 있다. 한국 셰익스피어 공연계에서는 각색 공연 작품들을 세계무대에 진출시켜 호평을 받아 왔고, 한국 셰익스피어 학계에서는 이 작품들이 어떻게 한국을 대변하고 세계 관객과 소통하는가를 분석하는 리뷰, 논문, 저서 등을 산출함으로써 한국에서의 셰익스피어 동향을 알리는데 기여해오고 있다. 셰익스피어 원작의 각색과 제작을 극단의 예술 감독이 전적으로 담당하는 각색가-연출가 체제가 확립되면서 문화적으로 풍요로운 한국 사회 속에 잠재되어 있는 예술성과 셰익스피어를 연계하는 연출의 창조적 해석이 세계적 관심을 모았다. 세계화 과정 속에서 한국 셰익스피어 공연은 관례적으로 전통 연행 예술을 통해 셰익스피어를 체현함으로써 셰익스피어 본래 연극성과의 틈새를 소개하는 문화 교차적 산물로 평가된다. 한국 전통의 몸동작, 노랫가락, 춤 장단, 전통 무예 등의 연극적 형식 속에 민족적 전설과 풍습 등의 내용이 녹아들은 작품들은 한국 셰익스피어 공연을 한국 문화를 담는 그릇으로 인식한 각색가-연출가들의 제작 의도를 표방한다. 이런 특징적 요소 때문에 세계무대에서 한국의 셰익스피어 공연은 시각적 효과가 뛰어난 작품들로 각인되기도 한다. 2001년 독일의 브레머셰익스피어페스티벌(Bremer Shakespeare Festival)에 아시아 대표작으로 초청된 오태석의 <로미오와 줄리엣> 공연 리뷰를 썼던 평론가 슈낵켄부르크(Alexander Schnackenburg)의 견해가 그 예가 된다. 「비저쿠리에」(Wiser Curier) 신문에 실린 평에서 그는 “한국의 연극적 언어는 볼거리가 많아 관객들이 즐길게 많은 시각적인 언어들로 충만해있다. 마치 모든 장면들이 엽서에 담을 한 폭의 그림처럼 아름답다” 라고 찬사하면서도 “그래서 이번 연극에서 말의 역할은 어쩔 수없이 뒷전이 되고 말았다” 라며 아쉬움을 표현하기도 했다(목화레퍼터리컴퍼니).

    셰익스피어 언어의 부재를 대체하는 시각적 요소의 과부하 현상에 대한 우려는 2006년 루마니아의 크라이오바셰익스피어페스티벌(Craiova Shakespeare Festival) 학술대회에서 기조연설을 한 웰즈(Stanley Wells)에 의해서도 돌출되었다. 그는 페스티벌에 참가한 연극인들을 향해 셰익스피어 공연을 기획하기에 앞서 우선 셰익스피어 원작의 핵심을 잘 살렸다고 “이야기할 만한 가치가 있는 작품” 제작에 대한 확신이 필요하다는 점을 역설하였다(“Can You Hear Me at the Front?”). 웰즈가 뜻한 ‘이야기할 만한 가치가 있는 작품’ 은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 내용보다는 어떻게 전달하고자 하는 방법의 문제점을 지적하기 위한 표현이었다. 이국적이고 공상적이며 묘한 신비감이 묻어나는 시각적 효과 산출이 셰익스피어 공연 트렌드를 선도하고 있는 현상에 대한 경고성 문구로 인용되었다. 웰즈가 특정 공연물을 ‘이야기할 만한 가치가 있는 작품’ 이 아닌 경우로 지목한 것은 아니었지만 비영어권 또는 탈영국권을 대표하는 작품들이 대거 참가한 페스티벌에서의 연설이라는 점에서 그가 의도한 비난의 대상을 짐작하게 하였다. 이러한 추정은「공연기록」(Theatre Record)에 실린 페스티벌 리뷰의 평자가 “참가작 모두가 웰즈의 충고를 받아들인 것은 아니었다” (“Can You Hear Me At The Front?”)라고 종합적 평가를 내리면서 대표적 사례로 얼굴을 하얗게 칠하는 부토(butoh) 방식 분장, 판자(plank)를 활용한 즉흥극, 혼수상태(coma) 분위기를 창출하는 무언극, 펀치와 주디(Punch and Judy) 유형의 인형극 등을 차용한 비영어권 참가작들을 언급한 점에서도 시사되었다.

    웰즈의 셰익스피어 언어와 텍스트 성역화 발언은 오히려 원작과 타언어로 번역된 각색 공연 사이의 메울 수 없는 간극을 부각시킴으로써 비영어권 연극인들에게 불편한 감정만 확산시킨 결과를 낳았다. 이는 정통 셰익스피어 연극의 전통을 고수하는 왕립셰익스피어극단(Royal Shakespeare Company)과 셰익스피어글로브극장(Shakespeare’s Globe)에서도 셰익스피어 텍스트를 수정하고 변형하는 각색 작업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사실에서 야기되었다. 더구나 웰즈가 오랜 기간 동안 두 극단의 자문위원으로 관여해오고 있다는 점에서 불편함은 더욱가중되었다. 두 정통파 극단은 비영어권에서의 셰익스피어 각색 공연이 본래 텍스트에 대항하는 도전이 아니라 텍스트를 기틀로 삼아 구축해가는 재창조 작업이라는 사실을 절대로 간과하지 않기 때문이다.

    왕립셰익스피어극단은 2012년 런던에서 개최되는 하계올림픽(London 2012 Olympic Games)을 기념하여 대규모적으로 펼쳐지는 문화올림피아드(London 2012 Cultural Olympiad)의 일환으로 월드셰익스피어페스티벌(World Shakespeare Festival)을 기획하고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셰익스피어 각색 작품들을 초청해 영국 전역의 주요 극장들에서 공연을 벌이도록 주관하고 있다. 셰익스피어 생일 주간을 기점으로 11월까지 지속되는 거국적 페스티벌의 선두 주자는 ‘세계를 글로브극장으로’ (Globe to Globe)라는 다국적 행사를 주최한 셰익스피어글로브극장이다. 4월 21일에 남아프리카공화국 극단이 <비너스와 아도니스>(Venus & Adonis)로 개막 공연을 한 후부터 6월 3일에 리투아니아공화국 극단이 <햄릿>(Hamlet)으로 폐막 공연을 하기까지 6주 동안 이어진 행사에는 37개 국가를 대표하는 극단들이 참여하여 셰익스피어의 37개 작품 각각이 37개의 각기 다른 언어로 공연되는 양상을 보여주었다. 초청된 작품들은 “글로브극장 방침” (the Globe way)에 따라 “말과 배우를 통해 전하는 이야기가 의상, 음악, 춤 등과 더불어 완벽해지고 2시간 15분 안에 이야기를 마칠 수 있는 공연물” 의 특성을 지닌다(Shakespeare’s Globe 3). 이 방침은 셰익스피어 이야기의 연극적 효과에 치중하는 비영어권 셰익스피어 각색 공연의 당위성과 시의성을 천명하는 결단의 표시로 볼 수 있다.

    이런 맥락에서 본 글은 차별화를 통해 세계 공연 문화 속에 자리매김 되고 있는 한국형 셰익스피어가 ‘이야기할 만한 가치가 있는 작품’ 의 완벽한 실례가 되기에 충분하다는 점에 주목하고 차별화된 전문성이 한국 민족 정신의 근원이 되는 우주와 천체에 대한 천문학적 믿음과 사상에서 드러난다는 점을 강조해보고자 한다. 하늘을 우주의 중심으로 보고 하늘에서 일어나는 해, 달, 별들의 천체현상이 인간과 자연 질서의 섭리로 작용된다고 확신하는 천문학적 사고가 한국형 셰익스피어의 존재를 글로벌 영역에 정착시킨 작품들에서 수렴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사례로는『리어 왕』(King Lear)을 각색한 김명곤의 <우루왕> (2000년 제작), 오태석의 <로미오와 줄리엣>(2001년 제작)이 대표적이다. 한국형 셰익스피어의 세계화 과정에서 선도적 역할을 한 두 작품은 한국의 전통 천문학을 이용하여 셰익스피어 원작의 본질적 요소에 접근함으로써 국내외 다른 셰익스피어 공연들과 차별화되는 독자적인 세계를 구현하고 있다. 본 논문은 이들 작품에서 셰익스피어와 천문 전통 간의 접목을 통해 그려내고자 했던 한국적 표현을 셰익스피어 텍스트와 비교적 관점에서 분석해보려 한다. 세계인과 소통할 수 있는 학술적 토대를 형성하기 위해서는 한국적 각색 공연의 근간을 이루는 전통 문화와 정신에 대한 연구가 우선되어야 한다는 전제하에 ‘이야기할 만한 가치가 있는 작품’ 에서의 주요 쟁점은 셰익스피어 언어를 얼마나 많이 사용했느냐보다는 셰익스피어 언어로 무엇을 했느냐에 있음을 부각해보고자 한다.

    II

    <우루왕>과 <로미오와 줄리엣>은 기획 단계부터 국내 무대를 넘어 해외로의 진출을 궁극적인 목표로 내세워 제작되었다. 셰익스피어 세계화 추세에 동참하려는 두 각색가-연출가 의지의 발현이라 하겠다. <우루왕>은 2000년 경주 세계문화엑스포의 특별 초청작으로 9미터가 넘는 망루와 옛 왕궁을 재현한 반월성터의 웅장한 야외무대에서 처음 모습을 드러낸 이래로 콜롬비아, 이스라엘, 일본, 네덜란드, 튀니스, 터키 등에서 공연하였다. <로미오와 줄리엣>은 2001년 독일의 브레머셰익스피어페스티벌의 초청작으로 처음 소개된 이후 영국, 일본, 중국, 인도 등에서 거듭 공연하였다. 두 작품은 세계무대에서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원동으로 한국 문화의 국가적 지역성을 부각시켰고, 국가적 지역성은 뿌리 깊고 확실한 존재양식이 되는 공동체적 정체성과 직결되었으며, 세계 관객에게 한국의 공동성과 정체성을 각인시키기 위한 소재로 2천년이 넘는 천체 관측 기록의 역사를 자랑하며 세계 천문학의 발전을 주도해온 한국의 천문 전통에 주목하였다.

    21세기 초엽에 제작된 두 공연물은 20세기 후반부터 천체 연구의 역사적 가치와 위상에 대한 관심이 학계를 넘어 사회와 문화 전반으로 확대되어가던 시대흐름에 동참하려는 두 예술 감독의 시의적 안목을 반영해준다. 한국과학사 분야에서 천문학이 차지하는 비중에 대한 인식은 한국에서 현존하는 천문도 중 가장 오래된 석각 천문도인 천상열차분야지도가 국보 제228호로 지정되었던 1985년을 시점으로 더없이 커져 나갔다. 천상열차분야지도는 조선 왕조를 세운 태조의 왕명에 따라 건국 4년이 되는 1395년에 고구려 왕조의 천문 지식을 근간으로 삼아 새로운 관측에 따라 교정한 뒤 이를 검은 대리석 위에 새겨 놓은 별자리 지도이다. 세계적으로 천상열차분야지도는 중국 남송 시대 1241년에 만들어진 순우천문도에 이어 두 번째로 오래된 각석 천문도가 된다. 외관상 둥근 모습을 한천문도에는 북극이 표시된 작은 중심 원과 12국(방위)가 표시된 큰 바깥 원이 있고 두 원 사이에 적도와 황도의 길을 그린 두개의 원이 그려져 있으며 이 둘을 걸쳐서 은하수가 묘사되어 있다. 천상열차분야지도가 소장된 국립고궁박물관의 개관 도록에 실린 설명문에 의하면 “하늘의 형상을 12차(次)와 분야(分野)에 따라 그려 놓은 것” (123)이란 뜻에서 천상열차분야지도라는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명칭 자체는 적도를 따라 천구를 12차로 나누고 이에 대응하는 지상의 지역인 12국(방위) 분야에 따라 하늘의 영역을 분할하여 배열한 그림이라는 뜻을 지니지만 실제로는 천문도를 태양의 궤도인 황도에 따라 28개 성수로 나누고 천문도 외곽에 방향을 대표하는 12국(방위) 분야를 대응시켰다(박창범 114). 이는 둥근 모양을 한 천문도의 가장자리에 위치한 두 겹의 큰 원 사이에 하늘의 방향을 가리키는 12방위(자, 축, 인, 묘, 진, 사, 오, 미, 신, 유, 술, 해)를 표시한 점과 천문도 주위에 28수 명칭 및 설명이 기록되어 있는 점에서 분명해진다. 따라서 천상열차분야지도는 일월성신의 변화인 천문 현상을 뜻하는 ‘천상’, 적도를 따라 12등분하여 차례로 배열하였다는 의미의 ‘열차’, 황도에 따라 28개 영역으로 구분하여 28수에 배당한다는 뜻의 ‘분야’ 등 세 단어로 구성된다고 볼 수 있다(cf. 이은성 63-64; 박명순 5).

    천상열차분야지도가 국보로 지정될 수 있도록 길을 열어 놓은 촉매제는 1984년 한국과학사회에서 과학문화재에 대해 전면적인 조사를 실시하고 발표한「한국의 과학문화재 조사보고」였다(구만옥 90). 조사보고서는 문화재 중에서도 특히 천상열차분야지도에 주목하여 첫머리를 천상열차분야지도의 제작 과정, 구성과 내용, 보존 상태, 관련 기록물, 역사적 가치 등에 관한 상세한 설명으로 장식하였다. 1995년에는 천상열차분야지도의 각석 600주년을 기념하는 학술대회들이 개최되어 1984년 조사보고서 이후 더욱 치밀해진 논의들을 종합한 연구 성과물이 산출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였다. 1998년에는 일본 나라현 아스카의 기토라 고분에서 발견된 천장의 별자리 그림이 천상열차분야지도와 동일하게 서기 약 1세기인 고구려 왕조 초기에 수도 평양의 하늘 모습을 담은 것으로 밝혀져 세계 천문학계에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7세기 후반에 축조된 기토라 고분에 그려진 별들의 관측 위치와 연결 방식이 순우천문도 보다는 천상열차분야지도에 더 가깝다는 사실이 입증되면서 중국과 일본을 앞선 한국 천문과학의 유구한 역사에 대한 관심이 급속도로 증대하였다. 관측년도 측면에서 천상열차분야지도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천문도라는 공인을 받은 것이다(박창범 114). 천상열차분야지도는 2007년 1월에 새로이 발행된 1만원권 화폐 뒷면 바탕 도안으로 선택되었다. 이 배경 그림 위에는 조선 왕조 현종 10년인 1699년에 제작되어 천체의 운행과 위치를 측정하는 데 사용되었던 천문 시계인 국보 230호 혼천의와 1996년에 경북 영천 보현산 국립천문대에 설치된 지름 1.8m 크기의 한국에서 가장 큰 천체망원경이 함께 실렸다. 민족 정체성을 상징하는 화폐 도안으로의 자리매김은 우수한 천문학 유산에 대한 국가적 인식과 예우를 표상한다.

    세계적 자랑으로 한국을 대표하는 전통 천문학은 세계무대에서 한국형 셰익스피어 공연의 독자성을 알리는 문화수호자로 거듭났다. 김명곤과 오태석은 각기 다른 셰익스피어 작품을 통해 천문 전통이 표방하는 한국적 자기 이미지를 재현함으로써 세계 관객에게 유구한 한국 문화를 인지시켜 보려는 연극인의 소명감을 보여주었으며 이들이 제작한 <우루왕>과 <로미오와 줄리엣>은 전통 문화를 지지하고 표현하는 매개자 역할을 하였다. 두 공연물은 동일하게 비극 장르의 작품들을 각색하였지만 천문 사상과의 접목을 통해 비극성 표출에 차이를 보인다는 점에서 더욱 주목을 끈다.

    고대 왕조를 배경으로 삼은 <우루왕>의 첫 공연 장소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현존 천문대인 국보 제31호 신라첨성대가 있는 경주였다. 단군 시대부터 신라 멸망까지를 고대로 보는 역사 편찬을 고려한 선택으로 보겠다. 실제로 천문 현상을 관측하던 현장이었던 신라첨성대는 야외 공연 무대가 설치되었던 반월성터의 동북쪽에 위치한다. 632년에서 647년 사이에 돌을 쌓아 만든 신라첨성대는 당대 우주론이었던 ‘하늘은 둥글고 땅은 모나다’ 는 사상을 담아 몸통 부분은 원형으로 머리 부분은 직사각형으로 만들어졌다. 둥근 하늘 모습은 천상열차분야지도에서 둥근 원 안에 북극, 하늘의 적도와 황도, 푸른색의 은하수, 별자리들이 새겨져 있는 점에서도 투영되고 있다. 둥근 원의 천문도는 우루왕이 국가 통치권과 영토를 딸들에게 양위하는 의식을 거행하기 위해 제관의 주제로 천신제를 올리는 장면에서 무대 배경으로 사용되었다. 태양이 떠오르고 천신제가 시작되면 태양의 붉은 빛이 배경 그림인 천상열차분야지도를 찬란하게 비추면서 마치 일월성신의 천체 현상을 보는 것 같은 효과를 창출한다. 이로써 해와 달과 별의 세계인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의식은 고대 사회에서는 가장 중요하게 행한 의식의 하나인 동시에 천문 활동의 큰 활동 중 하나이기도 했다” (나일성 8)는 전통 천문 사상을 반영해 보인다. 하늘을 숭상하는 천신제는 태양의 절대적 위용을 상징하고 천자와 천손으로 지칭되는 국왕의 절대적 권력을 표상한다. <우루왕> 전반에 걸쳐 등장하는 “천신제,” “한울님,” “천신의 일족,” “만물의 근원이신 햇님,” “만물의 생명이신 햇님,” “일월성신,” “일월신장,” “오방신장,” “십이지신” 등의 어휘는 인간 사회의 질서의 근원을 태양 중심의 천체 질서에 두는 전통적 믿음을 표현한다.

    천상을 대표하는 태양이 떠오를 때 천신제를 거행하는 것은 지상 국가의 위상과 국왕의 위력이 하늘에 투영되기를 소원하고 천심과 인심의 합일을 통해 절대적 안위와 번영을 누리기 위함이다. 이는 제관이 “위대하신 한울님” 을 칭송하는 노래로 시작해서 “위대한 대왕” 인 우루왕의 양위 계획을 하늘에 고하는 노래로 이어가는 제의 순서에서 반영된다.

    태양은 통치자인 국왕을 상징하며 이 장면의 배경으로 사용된 천상열차분야지도는 왕권의 신성함을 형상화한다. 따라서 천신제 의식 중에 갑자기 태양이 가려지고 어두워지는 일식 현상은 향후 전개될 우루왕과 왕조의 비극적 운명을 예고해준다. 일식은 천신 한울님이 점지해준 임금의 자리를 우루왕이 자의로 물려주는 순간에 일어난다.

    우루왕의 양위 이유는 죽은 왕비에 대한 그리움으로 인한 통치력 상실이다. 셰익스피어의 리어 왕이 세 공주와 부마들 간에 미리 영토를 분할해주고 혼인 지참금을 확정함으로써 자신이 죽은 후에 유산 문제로 인해 일어날지 모르는 “후일의 분쟁을 지금 막으려한다” (future strife / May be prevented now.)(1.1.44-45)는 정치적 명분을 내세우는 반면에 우루왕은 사적인 감정에 호소한다. 이미 왕이기를 포기한 우루왕의 심신이 일식 현상을 통해 투영되고 있다.

    이런 점은 태양의 궤도 운행과 왕도의 올바른 길을 비교한 천문학적 사고에서 분명해진다. 태양이 운행 중에 궤도에서 벗어나 길을 잃고 북으로 올라가면 날이 길어도 항상 추워지게 되고 또는 남으로 내려가면 날이 짧아도 항상 더워지는 것과 마찬가지로 도리와 임무에 충실한 군주의 통치로 올바른 길에 들어선 나라는 빛나고 창성하며 백성은 편안하게 된다는 믿음이 그것이다(이은성 70). 우루왕은 자신의 상징인 태양을 가리는 일식이 앞으로 닥칠 재이의 징조일 수 있다는 사실을 부정함으로써 왕도의 길에서 벗어난다. 가장 사랑하는 셋째 딸 바리의 상속권을 박탈하고 거침없이 왕궁에서 추방하는 이유도 그녀가 일식을 동족상잔 전쟁의 불길한 전조로 보고 왕권 양여를 막으려했기 때문이다.

    셰익스피어의『리어 왕』에서는 양위 의식이 딸들의 효성을 시험해보는 자리가 되고 있지만 <우루왕>의 천신제에서는 뭔가 나쁜 일이 일어날 것 같은 예감을 주는 천체 이변 현상이 지배적이다. 코딜리어(Cordelia)가 자식의 부모에 대한 사랑은 말로 표현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며 “Nothing” 이라는 단어를 통해 리어 왕에게 거부의 자세를 취하는 반면에 바리는 우루왕의 잘못된 결정을 지적하며 애타하는 청원자의 적극적 태도를 보여준다. 코딜리어는 국왕인 아버지에게 효심을 말해야 하는 공적인 자리에서 단순하게 은혜에 대한 보답과 자식의 의무에 불과하다는 개인적 견해를 내세우다 아버지의 사랑을 잃게 된다. 이에 반해 바리는 최근에 나타난 불길한 징조들을 하늘의 계시라고 주장하며 공적인 자리에서 주제넘게 국왕인 아버지의 소관인 국사에 관여하려다가 “해괴한 헛소리” 를 하는 “해괴한 병” (1막 2장)에 걸린 사람으로 취급받는다. 리어 왕의 양위선포식은 코딜리어의 혼사를 매듭짓기 위한 자리이기도 하지만 우루왕의 경우에는 바리의 혼처에 대한 언급이 없다. 프랑스 왕과 결혼해서 영국을 떠나는 코딜리어와는 달리 바리는 깊은 산골에 있는 수릿골 무녀에게 가서 병을 고치라는 우루왕의 명에 따라 홀로 왕궁을 떠나게 되고 여전히 국가의 안위에 대해 걱정한다.

    셰익스피어『리어 왕』에서 일식과 월식의 상서롭지 못한 징조에 대한 표현은 글로스터(Gloucester)가 집에 돌아온 후 에드먼드(Edmond)의 모함에 빠져 에드거(Edgar)의 음모 소식을 들을 때가 되서야 언급된다. 글로스터는 자연계에 일식과 월식의 변고가 생기면 인간계도 재앙을 입는다는 전통 사상을 토대로 아들의 배반을 확신한다. 그러면서 리어 왕이 공식 행사 중에 화를 내며 코딜리어를 추방하고 부녀의 인연을 끊어버리는 엄청난 결정을 내린 것도 자연계에 일어난 괴이한 현상의 영향 탓으로 추론한다. 하지만 앞서 리어 왕이 이같이 갑작스러운 행동을 할 때 정작 글로스터는 아무런 조언도 하지 않고 침묵으로 일관하는 모습을 보인다. 셰익스피어가 통치권 분할 장면에서 글로스터에게 대사를 할당하지 않은 이유는 리어 왕의 왕권 양여 결정과 천체 현상 변화 간의 상관성을 전혀 고려하지 않았기 때문으로 해석된다.

    반면에 김명곤은 셰익스피어가 미처 인지하지 못한 연결점인 천문학적 사고에 주목함으로써 그의 각색 작업이 추구하던 “얼마나 자유롭고 창의적으로 한국적 변형을 이루어낼 수 있을까?” (국립극장 5)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았다고 보겠다. 따라서 <우루왕>의 고흘은 바리의 청원을 지지하며 서슴없이 충고의 간언을 올린다. 그의 진정성 담긴 발언은 이미 우루왕에게서 영토와 통치권을 물려받은 가화와 연화의 심기를 건드리게 된다.

    일식 현상에 관한 해석의 양분화가 양측 간의 반목을 조장한다. 이후 가화와 연화가 고흘을 반역자로 몰아세우고 가차 없이 눈을 뽑아 장님으로 만드는 잔혹 행위를 자행하게 되는 원인이 여기에서 유래하고 있는 것이다.

    군주라면 반드시 유념해야할 천체 운행 원리에 무관심함으로써 우루왕은 천하 백성들이 우러러 볼 수 있도록 왕권을 보존하는데 실패한다. 천신제의 배경으로 등장한 천상열차분야지도는 우루왕의 처신이 조선 왕조 초기에 이 천문도를 제작했던 본래 의도와는 정반대로 거스르고 있음을 시사해준다. 고려 왕조를 무너뜨리고 조선 왕조를 세운 태조는 개국과 개창의 정통성을 공고히 하는 일이 급선무였고 정통성은 하늘로부터 받아야 했기 때문에 하늘의 뜻에 의해서 세워진 나라의 임금으로서의 위상을 상징하는 천문도를 필요로 하였다(이은성 110; 이용복 100). 도읍을 개성에서 한양으로 천도하고 국시를 불교에서 유교로 바꾸어 새로운 국가 이념을 정립한 태조는 “하늘의 뜻을 백성 앞에 펴는 권위를 가진 천자의 체통에 꼭 맞는 천문도” (나일성 82)를 통해 통치 질서의 확립을 과시 해보려 하였다. 천상열차분야지도 제작은 하늘을 공경하는 유교 정치사상의 천명이기도 했다. 천상열차분야지도의 하단에 새겨진 발문에는 태조가 천심을 받들며 덕치주의로 천하를 다스려 태평시대를 이루었던 요순시절의 치세를 본받고자 했으며 따라서 천문을 관찰하며 백성을 다스리는 일에 힘쓰기 위해 천문도를 돌에 새겨 영원히 자손만대의 보물로 삼고자 하였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이은성 111; 이용복 102). 발문의 첫 부분에 기록된 제작 경위에 의하면 천문도의 석각본은 고구려 왕조 평양성에 있었으나 병란 중에 강물에 빠져 인본조차 남아있지 않았는데 태조가 즉위한 초기에 인본을 바친 자가 있어 태조가 이를 보물처럼 귀하게 여기고 돌에 다시 새기게 하였다고 한다(나일성 76; 이은성 111; 이용복 102; 한영호 11). 태조는 조선 왕조를 세운 직후 국가 위신을 드높일 만한 천문도를 갖기를 소원하였는데 마치 그의 마음을 하늘이 받들기나 하듯이 그때까지 존재하리라고 생각도 못했던 고구려 왕조 석각 천문도의 인본이 적시에 나타난 것이다. 따라서 천문도 제작은 새 왕조가 하늘의 대리자에 의해 다스려지는 천인합일의 세상을 구현하고 있음을 천하에 알리는 효과를 발휘하였다.

    천상열차분야지도의 건립 내력에 견주어 볼 때 자의적으로 양위를 단행한 우루왕의 처사는 하늘의 현상을 공경해야 하는 소임을 소홀히 여김으로써 태평성대를 누리고 있는 왕조를 분열시켜 내란의 혼돈 속에 빠지게 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점은 우루왕이 죽으면서 남기는 마지막 대사에서 분명해진다. 셰익스피어의 리어 왕이 코딜리어 죽음의 충격으로 숨을 멈추는 반면에 우루왕은 “바리야! 이 못난 아비를 용서해다오. 백성들이여! 어리석은 이 왕을 용서해주오!” (2막 7장)라는 말과 함께 하늘로부터 부여받은 왕권을 지키지 못한 부덕함을 인정하면서 숨을 거둔다.

    김명곤이 “원작에서는 코딜리어가 죽음을 맞이하게 되지만 이 작품에서는 바리를 살려 그녀의 생명굿을 통해 죽은 자와 산자 모든 고통 받는 원혼들을 진무하고 그들의 영혼을 저승으로 인도하는 무속의 원초적 기능을 재현해 보고자 했습니다” (국립극장 5)라고 각색 의도를 밝힌 바대로 우루왕이 잃어버린 하늘과의 유대는 살아남은 바리에 의해 회복된다. 바리는 스스로 공주의 신분을 버리고 천상과 지상을 연결하는 영매인 무당이 되어 우루왕이 초래한 난국의 혼란을 극복하고 새로운 세상의 도래를 기원하는 의식을 거행한다.

    바리가 거행하는 “생명굿” 은 “햇님” 을 향한 기원으로 충만하다. “햇님” 은 하늘의 뜻을 존중하며 하늘 아래 세상을 통치하는 덕성을 갖춘 왕권과 강성한 왕조의 부활을 상징한다. 우주 질서 속에서 하늘과 인간은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받기 때문에 군주가 국정에 소홀히 하는 경우 하늘이 재앙을 내려 경고함으로써 향후 덕스럽고 인자한 인물에게 왕좌를 승계하도록 한다는 절대적 천명의 사고가 반영되어 있다.

    <우루왕>의 결말과 셰익스피어『리어 왕』의 결말 간의 차이는 왕위계승과 세대교체 개념 간의 차이에 근거한다. 『리어 왕』의 마지막 장면은 계승과 교체의 평화로운 미래보다는 슬픔과 애도에 휩싸인 현재를 강조한다. 인생의 뒤안길에서 음모와 배신으로 점철된 시대의 잔혹함을 인고해야만 했던 리어 왕을 기리면서 살아남은 자들 또한 전쟁으로 피폐해진 현실의 고통을 인내하자는 에드거의 대사로 끝난다. 반면에 <우루왕>은 등장인물 모두가 함께 부르는 희망 찬 합창으로 끝난다. 과거의 상처와 현재의 참담함은 바리의“생명굿”에 의해 회생과 상생으로 승화되어간다.

    구세대의 고통과 비통함의 여운이 남는『리어 왕』과는 달리 <우루왕>은 전쟁으로 분열된 구세대를 통합하고 구원해나갈 새로운 세대의 힘을 찬양함으로써 비극 장르의 범위를 초월하고 있다.

    반면에 오태석의 <로미오와 줄리엣>에서는 전통 천문학이 원작보다 더욱 강도 높은 비극성을 표출하는 극적 방안이 된다. <우루왕>에서는 천상열차분야지도에 함축된 상징적 의미를 “불” 과 “햇님” 과 “광채” 등의 단어들을 통해 태양과 연계시키면서 원작의 비극성을 완화시키고 화해와 재생의 가능성을 제시하는 극적 수단으로 사용한다. 우주의 근원을 이루는 상반되는 두 가지 기운에 관한 음양론에 의하면 <우루왕>에서 천상열차분야지도는 양의 가장 으뜸이 되는 태양을 표상한다. 따라서 밝고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양의 기운이 주도하는 작품의 결말에서 비극적 효과는 약화될 수밖에 없다. 이와는 달리 <로미오와 줄리엣>에서는 천상열차분야지도가 차갑고 소극적이며 수동적인 기운인 음의 가장 으뜸이 되는 달과 상관됨으로써 모든 인물에게 닥칠 비참한 최후를 예견하게 한다. 두 작품 간의 상이점은 양의 기운에 의한 생성의 삶과 음의 기운에 의한 소멸의 죽음 간의 극단적 대조 관계로 볼 수 있다.

    <로미오와 줄리엣>에서는 천상열차분야지도의 핵심 요소인 12국(방위)과 함께 특히 28수를 부각시키고 있다. 하늘에 속한 별들이 모두 28개 분야로 구획되어 있어 28수라고 하며 달이 매일 옮겨 머무는 자리가 된다. 28수의 첫 별자리는 북서쪽에서 시작하고 시계 반대 방향으로 진행한다. 천상열차분야지도에 새겨진 해설에 의거하면 28수는 7개씩 묶여 시계 반대 방향으로 북방, 서방, 남방, 동방 하늘에서 현무, 백호, 주작, 청룡의 모습을 이룬다(박창범 116). 북방칠사, 서방칠사, 남방칠사, 동방칠사로 일컬어지는 사방의 칠사가 신비로운 네 가지 동물로 형상화된다. 백호를 제외한 나머지 세 동물은 상상의 신화적 존재들이다. 28수 별자리를 사방을 수호하는 신성한 사신 동물로 표현하는 개념은 4세기 후반부터 고구려 시대 고분벽화에 등장하기 시작한 사신도 천문우주론을 따른다. 28수와 고구려 고분벽화 신화 도상과의 관계는 천상열차분야지도가 고구려 성수 관념에 기초하고 있는 점과 같은 맥락에 있다.

    사방 칠사의 사신 개념은 동양 철학의 오행 사상과 밀접한 관련을 가진다. 만물을 생성하고 변화시키고 소멸시킨다는 다섯 원소 중에서 흙(토)을 제외한 네 원소인 쇠(금), 나무(목), 물(수), 불(화) 등과 연관된다. 각 원소는 각 방위를 나타내는 색으로도 연계되어 동, 서, 남, 북, 중앙의 방위에 파랑, 하양, 빨강, 검정, 노랑의 색이 대응함으로써 쇠는 서쪽과 하양, 나무는 동쪽과 파랑, 물은 북쪽과 검정, 불은 남쪽과 빨강, 흙은 중앙과 노랑을 표상한다. 음양과 오행의 상호관련설 측면에서 보면 나무와 불은 양의 성질이 되고 쇠와 물은 음의 성질이 된다. 음양오행설을 사방 사신 천문우주론과 결합해보면 <로미오와 줄리엣>의 배경 소재로 다루어지는 북방칠사 현무는 음의 가장 극치가 되는 달의 자리 중에서도 물과 검정의 음 성질을 지닌 별자리가 된다. 현무와 음의 이미지 결합은 “우주자연, 천지만물의 운행 원리로 널리 받아들여지는 음양오행론이 사신 인식에 적용되고, 사신 신앙의 이론적 기초로 자리 잡게 된 것” (전호태 183)이라는 전통 천문 사상을 반영해준다. 이로써 <로미오와 줄리엣> 공연에 도입된 현무의 형상은 극의 전개가 몬태규(Montague)와 캐퓰릿(Capulet) 두 집안의 몰락으로 치닫고 있음을 암시해주는 기능을 한다.

    현무는 사방 칠사의 사신 중에서도 “뱀과 거북의 결합이라는 불가사의한 형태를 지녀 그 신비로움을 배가시킨다” (김일권 251-52)라는 표현과 함께 가장 신기한 동물로 묘사된다. 북방의 수호신으로 뱀과 거북이 얽혀 있는 기이한 모양새는 <로미오와 줄리엣>의 공연 포스터와 프로그램에서 글자 문양으로 차용되고 있다. 작품의 제목을 영문 Romeo & Juliet으로 표기하면서 ‘&’ 를 현무로 형상화한 것이다. 현무는 ‘&’ 의 곡선 모양을 따라 서로 엉켜 서있는 자세를 취한다. ‘&’ 를 활용한 획기적 도안의 예견치 않은 등장과 Romeo와 Juliet 두 단어를 압도하는 도안의 크기 비율이 두각을 나타내기 때문에 현무 이미지는 포스터와 프로그램을 보는 관객의 시선과 호기심을 제일 먼저 사로잡는다. 왼쪽 아래에 위치한 거북이의 머리와 오른쪽 위에 위치한 뱀의 머리가 마주하고 쳐다보는 모습은 현무 도상에 대한 서로 상반되는 두 가지 해석 전통과 연계된다. 수컷 역할을 하는 뱀과 암컷 역할을 하는 거북의 결합 측면에서 보면 남녀, 자웅, 음양의 자연스런 융합과 조화를 뜻한다. 이는 원수 집안 사이인줄 알면서도 비밀리에 당대 관례에 따라 교회에서 신부의 주례로 혼인식을 올리고 정식 부부가 되는 로미오와 줄리엣의 사랑을 표상한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혀를 날름거리며 서로를 응시하는 뱀과 거북의 표정은 두 동물 사이를 적의와 갈등의 관계로 보는 해석 방식과 같은 맥락에 있다.

    따라서 공연 포스터와 프로그램에 묘사된 현무 이미지는 로미오와 줄리엣의 죽음으로도 결코 치유될 수 없는 몬태규와 캐퓰릿 양 집안 간의 뿌리 깊은 원한을 상징한다. 셰익스피어 원작의 결말에서는 두 집안의 가장들이 로미오와 줄리엣의 결혼을 인정하고 화해를 약속하지만 오태석의 각색 공연에서는 줄리엣 아버지가“ 칼을 받아라. 모두 죽여 씨를 말려라”라고 외치는 마지막 대사와 함께 양가 패거리들이 서로를 죽이는 참혹한 칼싸움으로 끝난다. 현무로 대변되는 전통 천문학이 구세대의 앙숙 속에 묻혀 버린 신세대의 절망적 사랑을 표현하는 극적 소재로 제시되고 있다(Kim 206).

    관객이 객석에 앉아 공연이 시작되기 전에 제일 먼저 보는 무대 배경 또한 현무 도상이 그려진 휘장이다. 그러나 휘장에 그려진 뱀과 거북은 포스터와 프로그램의 문자 문양과는 달리 혀를 날름거리지 않고 입만 벌린 채 절실히 무언가를 갈망하는 표정으로 머리를 위로 향하고 있다. 함께 위를 쳐다보고 있는 모습은 앞으로 연분이 닿아 부부의 인연을 맺게 될 로미오와 줄리엣의 숙명을 암시한다. 때문에 현무 휘장은 몬태규와 캐퓰릿 두 집안 소속 젊은이들이 서로 얽혀 힘겨루기 싸움을 하는 장면으로 공연이 시작될 때 무대에서 치워진다. 이후 전통 천문학은 머큐쇼와 로미오패들이 줄리엣의 생일잔치에 참석하기 위해 가면을 필요로 할 때 천상열차분야지도의 12국(방위) 개념과 결부되면서 12지와 12지를 상징하는 동물들의 이름으로 사람이 태어난 해를 일컫는 12개의 띠 개념으로 전개된다.

    각자의 띠를 나타내는 동물 형상을 한 가면은 인간의 삶과 행동이 타고난 운수와 섭리의 영향 하에 놓여 있다는 천문 사상을 시사해준다. 태어난 해의 천문학적 의미는 로미오와 줄리엣의 운명적 만남이 줄리엣이 태어난 날에 이루어진다는 점에서 분명해진다. 줄리엣의 생일잔치에 가기 전에 로미오가 사나운 꿈자리를 언급하자 머큐쇼는 “꿈이란 손바닥 같아서 뒤집는데 명수렸다” (거리 장면) 라는 말로 무시하며 변덕스러운 꿈을 이기는 방법 중의 하나로 천자문 읽기를 제안한다. 로미오 패거리들 모두 큰소리로 천자문을 암송하는데 이때 강조되는 글자들이 우주 천체의 중심인 하늘과 땅, 그리고 북방칠사 현무이다.

    암송되는 글자들의 뜻은 하늘이 점지하여 지상에 태어난 줄리엣이 로미오를 만나 겪게 될 비극적 사랑을 예고해준다.

    공연이 시작되면서 무대에서 치워졌던 현무 휘장은 로미오와 줄리엣이 신혼 첫날밤을 함께 보낸 뒤 헤어져야만 하는 장면에서 다시 등장하며 로미오가 떠난 즉시 치워진 다음 다시는 등장하지 않는다. 현무 휘장의 재등장과 퇴장은 살아서는 다시 만나지 못할 두 부부의 운명을 암시적으로 표현하는 극적 장치가 된다. 재등장한 휘장 위에는 로미오가 줄리엣을 만나기 위해 남몰래 담을 넘을 때 사용하는 줄사다리가 걸쳐져 있어 절박감을 더해준다. 휘장 앞에서 헤어지기 싫어하는 두 연인이 주고받는 짧은 대사들은 긴박감마저 감도는 이별의 순간을 잘 재현해낸다.

    줄리엣이 로미오를 보호하기 위해 자청하는 “갑옷” 역할은 현무에서 암컷 역할을 하는 거북이의 딱딱한 등을 상징한다. “갑옷” 이미지는 어떠한 일이 있어도 결혼 서약을 지키겠다는 줄리엣의 약속이기도 하다. 이 장면의 특이함은 담을 넘은 로미오가 휘장 뒤에 서있고 줄리엣은 휘장 아래에 앉아 있도록 구도를 연출한 점이다. 줄리엣이 관객을 바라보며 대사를 하지만 실제로는 위에 있는 로미오를 올려다보는 효과를 창출한다. 셰익스피어 원작에서 사다리를 타고 내려간 로미오가 줄리엣을 올려다보며 대사를 하도록 설정한 장면 구성과는 완전히 정반대되는 구도를 선보인 것이다. 따라서 휘장에 그려진 현무가 위를 향해 쳐다보고 있는 형상은 이별에 애태우는 줄리엣의 애처로운 모습과 닮아있다. 이들의 표정은 결코 이루어질 수 없는 백년해로의 기원을 담고 있는 듯하다. 로미오가 남기고 간 사다리를 목에 걸고 있는 줄리엣이 배경 속 뱀과 거북의 도상과 혼연일체를 이루는 장면은 여성과 현무로 상징되는 음의 성질을 강하게 부각시킨다.

    이후 줄리엣의 고통을 감내하는 결단적 행동을 중심으로 극의 흐름이 숨가쁘게 돌아가면서 음의 성질은 죽음의 기운으로 확대되어간다. 패리스와의 결혼을 거부하는 줄리엣에게 무자비하게 언어 및 신체 폭력을 가하는 줄리엣 아버지, 사랑을 지키기 위해 서슴없이 신부가 주는 약을 마시고 가사상태에 빠져 무덤에 안치되는 줄리엣, 이 사실을 모른 채 독약을 마시며 자살하는 로미오, 가사상태에서 깨어나자마자 곧바로 로미오를 따라 자살을 감행하는 줄리엣의 모습들로 전개되는 과정에서 “무대 위는 이미 무덤 속” (노이정 71)이라는 평론가의 말에 실감을 느낄 만큼 죽음과 무덤의 어두운 음기가 완연해진다. 음 기운의 강세는 묘지 장면에서 자살하기 전 로미오의 대사 분량이 원작에서보다 훨씬 감축되어 자살하기 전 줄리엣 대사 분량의 절반인 5줄 밖에 안 되는 점에서도 나타난다. 셰익스피어 원작의 같은 장면에서 로미오의 대사가 36줄의 길이로 이어지고 줄리엣의 대사가 10줄에 불과한 것과는 완전히 반대되는 상황이다.

    휘장이 더 이상 무대 배경으로 등장하지 않게 되면서 현무 이미지는 포스터와 프로그램에 묘사된 반목과 대립의 형상으로 바뀌어간다. 뱀과 거북이 상대방을 노려보며 뿜어내는 상서롭지 않은 기운은 모든 인물들이 차가운 죽음의 무덤 속으로 빠져 들어가는 운명에 처해있음을 암시한다. 이런 이유 때문에 셰익스피어의 원작과 오태석의 각색 사이에 가장 차이가 나는 부분은 결말이 된다. 원작에서는 부모들이 “자기들 증오심의 안타까운 희생자” (Poor sacrifices of our enmity)(5.3.303)가 된 자식들의 이름이 기억되고 회자될 수 있도록 “순금 동상” (statue in pure gold)(5.3.298)을 세우기로 약속하지만 각색에서는 명분을 앞세우는 부모들의 복수심 속에 자식들의 이름은 잊혀져간다.

    마지막 무대 지시는 “양가 패거리들이 칼 휘두르니 하나 둘 쓰러진다” 이다. 현무의 음산한 기운이 자욱하게 시야를 가리는 연기 형태로 솟구치며 무대를 휘감고 있는 동안 무대 위는 점차 시체로 채워진다. 자식들의 사랑보다 죽음에 광분하는 부모들과 문중 사람들은 한 떼의 저승사자로 돌변해간다. 가문의 명예를 위해 싸우는 이들의 행동은 아이러니하게도 멸족의 결과를 자청한다. 셰익스피어 원작의 마지막은 “줄리엣과 로미오의 이야기보다 더 슬픈 이야기는 없다” (For never was a story of more woe / Than this of Juliet and her Romeo) (5.3.308-09)라는 추모의 대사로 여운을 남기지만 오태석 각색의 결말에서는 이들의 이야기를 전해줄 사람들조차 남아있지 않다.

    III

    김명곤의 <우루왕>과 오태석의 <로미오와 줄리엣>은 한국의 국보인 천상열차분야지도를 셰익스피어 공연에 접목하고 한국 고유의 음악, 연극, 춤이 어우러지는 새로운 개념의 공연 형태로 산출되었다. 이들 각색 공연에서 전통 천문학을 소재로 활용한 이유는 세계무대에 천상열차분야지도로 대변되는 문화유산의 고유성과 독창성을 소개함으로써 세계 속에 한국 공연의 위상과 경쟁력을 제고 시키기 위함이었다. 천상열차분야지도는 동양의 별자리 체계를 따른 천문도 중에서도 가장 많은 별자리를 그린 것으로서 “북극을 중심으로 1,467개의 별이 283개 별자리” (국립고궁박물관 123)로 새겨져 있으며 서양의 88개 별자리와 비교하면 3배가 넘는다. 제작 시기는 중국의 순우천문도보다 늦지만 천상열차분야지도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서기 1세기경 하늘의 형상을 보여준다. 순우천문도에는 모든 별이 같은 크기의 작은 점으로 새겨진 반면에 천상열차분야지도에는 모든 별이 밝기에 따라 다른 크기로 새겨져 있는 특징을 보인다.

    이와 같이 세계적 문화유산의 독자성이 돋보이는 천상열차분야지도와 셰익스피어의 결합은 아시아를 동일한 문화권으로 획일화하고 한국형 셰익스피어를 아시아 셰익스피어라는 용어 속에 잠식시키는 비평적 경향에 대해 차별화된 한국적인 논제를 각인시키기 위한 방안이 된다. <우루왕>과 <로미오와 줄리엣>은 단순히 셰익스피어 세계화 트렌드를 추종하면서 외국인들의 관심을 끌기 위한 방편으로 한국적 요소를 첨부하는 하이브리드 형태의 산물이 아니다. 두 작품에서 부각된 한국 고유의 천문학은 세계인으로 하여금 한국 문화를 깊이 이해할 수 있도록 하는 개방적인 전문성을 내포하고 있다. 세계무대에 진출하여 각광받은 이들 작품에서 시도된 셰익스피어 재구성 및 재창조 작업은 셰익스피어 본래의 창작방식과 연계된다는 점에서 더욱 주목을 받을만하다. 셰익스피어는 작품을 쓸 때 이전부터 전해오는 전통적 신앙, 철학, 전설, 설화 등에서 소재를 빌려와 이를 당대 영국의 르네상스 가치관 속에 녹여내면서 시공간의 한계를 넘어 지속적으로 공감대를 형성하는 보편적 세계관을 창출해냈다. 김명곤과 오태석 역시 한국 전통의 천문학적 사상과 설화적 요소를 빌려와 이러한 요소들이 창조해내는 한국적 정서의 세계로 국내외 관객을 몰입시키고 인본주의 가치관과 인간적 주제들을 환기시킨다. 한국 천문도의 우주관을 셰익스피어의 세계관과 연결함으로써 우주의 중심인 인간 생활의 단면과 근원적 관심사를 재현해낸다.

    김명곤과 오태석의 독창성은 동일하게 비극 장르의 셰익스피어 작품을 택하고 동일하게 천상열차지도를 연극적 요소로 활용하면서도 비극적 행위의 결말에 대해 각기 다른 해석을 제시한 점이다. 천상열차분야지도의 제작 동기와 역사적 의미에 치중한 김명곤은 우주 질서의 회복으로 인간 사회에 평화가 도래하였음을 상징하는 굿 의례를 통해 초월적 비극성을 그려낸다. 천상열차분야지도에 새겨진 28수 별자리 중에서 북방칠사 현무의 음 성질에 주목한 오태석은 성찰과 수용의 여지가 전혀 없는 자기 파멸적 비극성을 묘사한다. 세계무대에서 관심과 찬사를 받은 두 각색가-연출가는 한국 셰익스피어 공연의 정체성과 위상을 전통적 천문지식과 별자리 체계 측면에서 새롭게 재조명하고 독자적 안목으로 천문 문화의 근간을 셰익스피어 원작의 핵심적 요소와 접합함으로써 웰즈가 비영어권 연출가들에게 호소하던 ‘이야기할 만한 가치가 있는 작품’ 제작의 성과를 거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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