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ude du contact des langues en Gaule Narbonnaise

나르보네즈 골(Gaule Narbonnaise) 서판 어휘에서 보이는 이언어 교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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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ABSTRACT

    L’objectif principal de cette étude est de remettre en question le contact des langues à travers l’analyse de textes que l’on trouve en Gaule Narbonnaise. Pour ce faire, nous envisagerons la catégorisation de contact des cultures dans la perspective de sociolinguistique, en particulier la diglossie. C’est pourquoi le contact des langues nous permet de mieux comprendre la nature des processus de contact des cultures. Cette approche nous amènera à voir certaine spécificité méditerranéenne à laquelle les langues sont suceptibles d’être souvent confrontées dans le contact des cultures. Dans la perspective sociolinguistique, ce présent article est divisé en trois parties principales: la première partie est un rappel socio-historique et linguistique de Gaule; l’enchaînement des évènements historiques est essentiel pour la compréhension et la réflexion de ce phénomène de contacts des langues en Gaule narbonnaise. Dans la seconde partie, nous essayons de présenter la situation de contact des langues en Gaule narbonnaise comme la voie méditerranéenne. Pour arriver au phénomène de l’échange et le contact par l’invasion des peuples voisins, la situation sociale doit passer par le chemin historique. L’analyse des types de contacts des langues, qui est l’étape cruciale, se pose et s’interpréte dans la troisième partie. Ensuite, les questions que nous avons traitées portent sur l’importance de type de contact des langues dans les voies méditerranéennes, particulièrement le lieu entre la voie Domitienne et la voie Aquitania; ainsi que l’importance de leurs attitudes envers le contact des peuples en question. À l’examen des évènements historiques, concrètement l’invasion et le contact, il semble que les résultats du contact des peuples ont vu l’intégration interculturelle et interlangues en Gaule narbonnaise. Ces analyses nous montrent que le contact des peuples signifie la diversité géographique sans frontière, mais plutôt qu‘il pourrait être influencé linguistiquement dans le cadre du contact des langues. Pour finir, nous avons proposé une analyse historique et géographique pour la compréhension du contact des langues, qui veut faire la catégorisation des cultures en Méditerranée antique.


  • KEYWORD

    contact des langues , Gaule Narbonnaise , contact des cultures , mediterranee , voie Domitienne , voie Aquitania

  • 1. 서언

    다양한 문화가 공존하는 현대사회는 단일 언어만을 의사소통 수단으로 삼는 것에서 벗어나 여러 언어들의 접촉현상(contact des langues)1)이 필연적으로 전개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러한 언어사회현상은 이미 고대로부터 이어져 온 것으로 특히 다양한 문화권이 패권을 누렸고 여러 문화의 중첩과 통섭의 장이 되었던 지중해지역이 대표적인 곳일 것이다. 역사인류학자 잭 구디에 따르면 지중해 고대 문화는 의미 있는 하나의 전체로서 언어 기원과 선택에 있어 편의성에 따른 공통된 토대는 존재했을 것이지만 하나로 완전히 통일된 언어문화는 없을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2). 이렇듯 시대를 뛰어 넘는 공통된 사회현상인 언어교류는 언어내적인 변화뿐만 아니라 인류학, 선사학에서 다루는 언어 발생 개념과 언어의 지리적인 경계를 다루는 역사지리언어학을 이론적 배경으로 참조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본 연구의 목적은 고대 프랑스 지중해 지역인 나르보네즈 골(Gaule Narbonnaise)을 중심으로 토착 언어(들)과 이민족들의 침입과 전쟁의 결과인 이언어 접촉양상을 고찰하여 언어를 통한 문화 교류 유형화를 발견하는데 있다. 그 연구방법은 나르보네즈 골에서 발굴된 서판 기록 언어를 통해 당대 사회, 언어, 역사에 관한 충돌, 갈등, 융합의 교류과정을 짚어볼 것이다. 프랑스 남부의 나르보네즈 골은 로마가 스페인으로 가기위한 도미티아 가도와 로마가 전체 골을 장악하기 위해 교두보로 삼은 아키텐느가도의 교차점에 위치해 있어 이민족들의 이동과 교류가 다른 골 보다 더욱 활발했던 지역이므로 언어 접촉의 흔적이 많을 것이다.

    언어의 역사성을 문헌으로 고증하는 선사학에서는 프랑스 선사시대를 할슈타트(Hallstatt)문명이 보급된 기원전 850년경에서 700년으로 주목하고 있다. 이후 고대 그리스에 의해 프랑스 남부 마살리아(Massalia)3)가 건설된 기원전 600년경을 고대 프랑스지역 골(Gaule)의 초기 역사로 기록하고 있다. 구체적으로는 가론 지방까지 전파된 텐느(Tène)문명(기원전500년경), 카르타고에 대항하기 위해 결성된 마르세유와 이베리아 동맹(기원전 460년), 에트루리아인과의 전쟁에 맞선 마르세유와 고대그리스의 연합(기원전 455년)이 역사적으로 남아 있다. 이러한 침입과 전쟁의 역사를 통해 여러 이민족들 간의 언어접촉에 따른 문화교류는 필연적이었을 것이다.

    동일한 맥락에서 본 논문은 골(Gaule)지역에서 토착민과 여러 이민족들 간 문화 접촉 형성 과정이 전쟁과 침입을 통해 공통적으로 있었으며 특히 중요한 문화 교차로인 나르보네즈 골의 사회언어현상으로 여러 언어들 간 교차와 혼종의 결과를 이 언어 교류에 대한 연구가설로 세워 역사문헌을 통해 고찰해 보고자 한다.

    1)사회언어학의 주요 연구주제가 되어 왔음.  2)잭 구디, 『역사인류학 강의』, 김지혜 역, 산책자, 2010, p.282  3)마살리아는 기원전 479년에 마르세유로 개칭되었으며 새로운 해상 제국의 기틀을 다지게 되었음.

    2. 골(Gaule)의 사회와 언어상황

       2.1. 골 사회배경

    골의 토착문화와 이문화인 로마 문화가 융합된 갈로-로마 골은 로마의 시각에서 볼 때 알프스 이편 골(Gaule cisalpine), 로마가 스페인으로 넘어가기 위해 거쳐야 하는 길이자 북부 골을 향한 통로인 나르보네즈 골(Gaule narbonnaise), 알프스 저편 골(Gaule transalpine)로 나뉘며 이는 지역적인 경계를 기준으로 아키텐느 골(Gaule aquitaine), 벨기에 골(Gaule belgique), 리오네즈 골(Gaule lyonnaise)로 다시 구분하고 있다. 기원전 27년 로마의 오귀스트에 의해 아키텐느 골이 명명되었고 벨기에 골은 토착세력인 켈트족과 게르마니아 족의 혼합문화로 구성되었으며 리오네즈 골은 지정학적으로 골의 중심부에 위치해 있었으므로 로마에 대항하는 골 족 장들의 만남 장소이자 경제와 상업의 교류 역할을 했다. 갈로-로마 골 사회를 이루는 배경이 되는 토착문화는 골 족이 정주하던 시기 이전에 이미 또 다른 토착민들이 존재했었다. 그들은 켈트족, 리귀리아족, 에트루리아족, 고대 그리스인 등으로 독립된 고유 언어와 문화를 바탕으로 이 문화, 이 언어와의 접촉을 가졌으며 수용과 교류를 통해 발전해 나갔다.

    골 지역의 문화 접촉 형성과정을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알프스 이편 골에 거주하던 켈트족5)은 기원전 3세기에 로마를 침략하였으나 직접적인 문화 교류 없이 자신들의 지역으로 되돌아감으로써 오히려 로마화(romanisation)되었다. 이렇듯 골의 토착민은 일정한 지역에 정착하는 민족이 아니라 지역적 경계를 넘나드는 유목민이었으므로 로마를 지배하고자 하는 계획은 없었고 단순한 침략으로 인한 문화 약탈이 이루어졌다. 이후 로마에서 지리적으로 멀리 떨어진 알프스 저편 골은 숲이 우거진 지형 때문에 토착민과 이민족들 간의 문화 접촉이 쉽지 않아 고유한 언어를 비롯한 토박이 문화가 전승되어 오던 곳이었기 때문에 로마의 침입에 대해 이 문화에 대한 갈등과 충돌이 부각되었다.

    따라서 갈로-로마시대 골은 침입과 전쟁으로 점철되는 이민족과의 만남이 잦은 지역으로서 선순환적인 교류만 있었던 것이 아니라 첨예한 혹은 격렬한 갈등과 토착민의 저항이 존재한 역사였다. 그 형태는 로마에 항거하는 양상과 골의 여러 종족들 간의 내전6)으로 이어졌으며 발전된 하나의 국가 형태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많은 난제들이 있었다. 골에는 오래전부터 거주한 여러 토착민뿐만 아니라 게르만에서 이동한 여러 종족들이 있었고 브리타니아와 로마로 가기 위한 통로로서의 역할이 강했으므로 어느 한 종족의 절대적인 권력 하에 총체적으로 집결되는 문화가 아니라 이민족들의 문화가 중첩되는 지역이었기 때문이다.

    행정적인 측면에서 골 사회배경을 살펴보면 세 골은 제국 골(Gaule imperiale)로서 로마제국의 국경과 멀리 떨어져 있는 이유로 로마에서 파견된 군대와 관료에 의해 행정이 이루어진 반면, 나르보네즈 골은 로마시민이 거주하는 원로원 골(Gaule senatoriale)로서 문화적으로 로마화된 지역이었다. 이는 지방 총독에 의해 직접적인 통치를 받고 행정에 관여하는 로마 속주를 의미하는 것으로 알프스 산맥 주변 속주들이 지방 세금 징세관리인으로서 행정에 가담하고 자신의 영토를 황제의 사유지로 취급받던 경우와는 다른 사회배경이었다. 이로써 골의 사회는 서로 다른 정치·행정체제가 일부분 존재했음을 알 수 있다.

    전체 골은 지정학적 중심지이자 전략적 요충지인 리옹에 주둔했던 세골을 총괄하는 교황특사의 영향력 하에 일반 행정이 진행되었다. 이후 도시의 성장으로 로마 골(Gaule romaine)의 수도가 된 리옹7)은 로마 동전을 주조할 수 있었다. 로마제국으로서는 다른 해외의 속주들에 비해 골지역이 가장 인구가 많은 속주로서 세금을 많이 거두어들일 수 있는 중요한 곳이 되었다. 로마는 경제적 부를 이루기 위해 필요했던 거대한 속주를 활용한 팽창정책을 펼쳤는데 인구가 밀집되어 있고 상업의 영향력이 막강했던 골에 점진적으로 보상책이자 유인책으로 로마의 시민권을 부여하기 시작했다. 이는 골 사회의 변화를 야기 시켰으며 시민권 획득의 기본 자질이 구어 라틴어의 사용이었으므로 로마의 언어팽창주의와 맞물려 골 지역 언어들의 변화를 촉진시켰다.

       2.2. 골 지역의 언어들

    한 지역에서 통용되었던 여러 고대토착어들은 문자의 형태로 표기된 것이 아니라 의사소통을 위한 구술의 문화였다8). 구술 문화는 좀 더 세력있는 이민족들의 침입을 받으며 이 언어들의 영향을 주고받을 수밖에 없었다. 언어는 정확하게 규정되는 경계가 없으며 이동이 자유로운 문화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므로 이민족들의 교류가 많았던 곳일수록 여러 언어들이 존재하는 것이고, 그 언어들이 하나의 언어로 통일 되거나 발전되어 다른 형태의 언어로 진화되어 가는 이 언어 접촉 양상을 살펴보는데 중요한 사례연구가 될 수 있다. 이를 위해 역사‧지리언어학은 주요 연구방법이 되고 특히 고대와 중세 초기를 거슬러 올라가기 위해서는 인류학과 선사학의 도움이 필요하다. 골 지역의 언어들은 고대와 중세 초기에 활용되었던 문화유산으로 역사적 틀을 중심으로 사회상을 살펴봐야 될 것이다.

    갈로-로마시대 이전 골에 거주했던 여러 토착민들은 하나로 통일된 언어를 구사한 것이 아니라 골 어, 고대 그리스어, 이베리아어, 리귀아어, 게르만어 등을 사용하였다. 이는 골 지역의 언어들로서 여러 언어가 존재하였고 발견된 서판을 근거로 이웃 종족과의 의사소통을 위해 2∼3개 언어를 구사했다고 알려져 있다. 이는 사회언어학에서 정의내리고 있는 이중 언어 구사자의 사회적 환경인 양층 언어현상(diglossie)이 골 지역에 이미 존재했으며 이 언어와의 접촉에 따른 양상의 특징으로 삼을 수 있을 것이다.

    골 지역의 언어들 중 오래 생존한 골 어는 지식을 전달하는 데 있어 문자가 아니라 구어의 특징을 갖고 있는 언어 체계였으며 표기방식은 사라졌으나 하나의 언어가 완전히 사장되기는 어렵듯이 골 어도 유럽에서 사용되는 여러 언어들 속에 지명9)으로 존재하고 있다.

    이후 로마의 언어 팽창주의하의 골 사회인 갈로-로마시대 언어문화 교류의 특징을 살펴보면 첫째, 골 족이 정착하기 이전 고대 종족들은 골 문화와의 접촉으로 부분적으로는 중첩되었으나 다양한 고유 언어, 종교, 관례, 등 토착문화를 유지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둘째, 로마는 사회계층을 구분하여 소수 지배계층 골 족을 대상으로 문화를 전시(exposition)하여 직접적으로 이 문화를 강요했다고는 볼 수 없으나 종국에는 로마 문화가 더 우월한 것으로 인식시켜 그들의 언어인 라틴어를 골에 전파했다.

    여러 언어들이 동시대에 골에 공존했다는 역사적인 근거를 현대 언어학자들은 오늘날 프랑스 전역에 남아 있는 지명과 지역어, 차용된 것으로 추정되는 어휘들을 연구함으로써 발견했다. 이 분야 전문가인 H. Walter는 구체적으로 어휘 목록을 제시하고 있다10).

    시대적으로 갈로-로마 골 이후인 로마제국 말에는 골 어를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토착 언어들이 골 지역에서 사라졌으며 이 언어 접촉현상으로 인해 로마화되어 버린 언어는 게르만어들의 영향을 받게 된다. 특히 리귀아어는 5세기 초기부터 골 어와 중첩되어 사용되었으며 이후는 더 이상골 어와 구별되지 않았을 정도로 수용이 되어 버렸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골 지역의 언어들 간 접촉 결과를 살펴보면 첫째, 전체 골이 하나의 민족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여러 이민족의 결합이었으므로 실리적인 의사소통 차원에서 이웃의 언어들을 배우는 것이 급선무였을 것이다. 둘째, 골 지역의 넓은 영토는 대부분 숲으로 덮여있었으므로 교통이 불편하여 이동이 자유롭지 못하였고 사용되던 언어들은 지역에 따라 각기 다르게 변형되는 경향이 있었을 것이다. 셋째, 이민족들이 사용한 이 언어들의 어휘 차용과 통사를 포함한 언어적 특성은 골 지역에서도 서로 공유되는 부분이 많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에 대한 근거로 세자르가 기록한 『골 전쟁기』를 보면 골 지역은 민족이 상이한 영토이자 다른 언어와 제도가 존재한다고 기록되어 있으므로 이 언어 접촉현상이 있음을 추정할 수 있다11). 주변 언어교류를 포함한 프랑스어 역사를 전하는 저서들을 보면12) 북부 골 지역은 골 어, 고대그리스어, 이베리아어, 리귀아어, 게르만어들이 주로 사용되었고 남부 골에는 고대그리스어, 라틴어, 골 어가 통용되었다. 특히 지중해 해안가에서는 마르세유와 이탈리아 제노바(Gènes)까지 통용된 리귀아어가 있었는데 이는 언어교류의 지중해성을 뒷받침해 주고 그 중심에 남부 골인 나르보네즈 골이 있음을 알 수 있게 한다.

    4)그림출처 좌측 http://www.tlfq.ulaval.ca/axl/francophonie; 우측 http://fr.wikipedia.org/wiki/Fichier:REmpire-Gallia.png  5)로마는 골에 거주하는 켈트족을 골 족이라고 불렀음.  6)69년부터 70년까지 골의 세 수장들(Julius Sabinus, Julius Classinus, Julius Tutor)이 이끄는 전쟁이 지속되었음.  7)당시 Lugdunum으로 불림.  8)월터 J. 옹, 『구술문화와 문자문화』, 이기우‧임명진 역, 문예출판사, 2009. pp.24-25  9)도시 이름으로 -euil, -jouls의 형태를 골 어의 잔재로 보고 있음.  10)H. Walter, L’aventure des mots français venus d’ailleurs, Paris, Robert Laffont, 1994. Walte, H., et Walter, H., Dictionnaire des Mots d’origine étrangère, Paris, Larousse, 2009. 상기 두 권을 참조할 것.  11)장 이브 보리오, 『로마의 역사』, 박명숙 역, 궁리, 2007, p.20  12)C. Hagège, Combat pour le français : au nom de la diversité des langues et des cultures, Paris, Éditions Odile Jacob, 2006. Le Français et les siècles, Paris, Éditions Odile Jacob, 1987. Walter H., L’Aventure des langues en Occident, Paris, Robert Laffont, 1997. 상기 책을 참조 할 것.

    3. 나르보네즈 골(Gaule Narbonnaise)의 언어 환경 변화

       3.1. 이민족들의 침입과 전쟁

    전제 골 중에서 이민족 문화가 일찍 공존한 지중해의 중요 교차로인 나르보네즈 골과 그 주변을 중점적으로 살펴보면 로마가 골을 침입하게 된 배경을 알 수 있다.

    기원전 125년 고대 그리스문화의 영향으로 독자적인 노선을 취하던 마르세유가 주변 이민족들의 침입에 대항하기 위해 로마에게 병력을 요청했기 때문이다. 기원전 124년 로마인들은 엑상프로방스를 시작으로 이 지역에 침입한 게르만 일파인 여러 민족들을 몰아내며 협정을 맺는다는 명분으로 골을 향한 침입을 가속화하였고 기원전 118년에는 나르보네즈 골의 나르본13)이 로마의 식민지가 되기에 이른다. 이후 지중해지역은 급속도로 로마화 되어 갔으며 침입과 전쟁으로 여러 토착민들과 이민족들 간의 문화접촉이 이루어지게 된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문화 접촉이 순조롭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문화교류의 충돌과 거부는 로마가 이 지역에 집정관을 파견하면서 가속화되었는데 결국 전쟁으로 확대되기에 이른다. 기원전 107년 툴루즈지역에서 발생된 저항을 시작으로 기원전 104년 나르보네즈의 중심지 나르본은 지중해와 론강 간의 운하 건설에 강제 동원되어 불만이 고조되었다. 기원전 101년 킴브리족(Cimbres)은 로마와의 전쟁에서 패배한 뒤 엄청난 희생15)을 감행하여 로마에 항거한 것으로 역사는 말해주고 있다. 이후로도 로마에 맞선 여러 골 족들의 저항은 지속적이었으며 골에 거주하는 이민족들 간에 동맹을 통해 로마와 전쟁을 준비하기도 했다. 이후 기원전 58년 세자르가 전체 골의 총독으로 부임한 후 골 전쟁은 발발되었고 기원전 50년까지 이어지게 되었다. 긴 전쟁기간동안 로마의 부분 승리와 토착민들의 치열한 저항은 계속 전개되었고 기원전 52년 나르본은 로마에 점령된다.

    이로써 나르보네즈 골 지역은 지중해를 통해 이문화의 유입과 생성, 전파가 용이했던 문화교류 교차로였으므로 여러 민족의 각축전이 되어 언어 환경변화에도 큰 영향을 끼쳤다. 첫째, 고대 그리스인은 기원전 650년경 마살리아를 통해 이곳에서부터 지중해 연안까지 고대 그리스문화가 수용되고 전파되는데 큰 역할을 하였으며 더 나아가 전체 골에서 통용되었던 고대 여러 언어들 중 고대 그리스어 표기가 서판에 존재한 것으로 보아북부까지 진출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둘째, 고대 민족인 리귀아인은 로마가 나르보네즈 골로 진출하기 이전에 이미 프로방스 전역과 알프스, 이제르 지방, 이탈리아 일부에까지 거주했다고 전해오고 있다. 이들도 고유 언어를 사용하고 있었으며 여러 골에서 그 언어흔적을 찾아 볼 수 있다. 셋째, 이곳은 켈트족인 골 족만이 지배적으로 거주했던 곳이라기보다는 지중해라는 특수성으로 인해 상권이 형성되었던 곳으로 여러 이민족들이 왕래하고 거주했던 문화 교류의 장소였다. 넷째, 나르보네즈 서쪽인 스페인에 주로 살았던 이베리아인 역시 갈등과 융합 속에 상호 교류하였다.

    나르보네즈 골의 언어 환경 변화를 촉진한 것은 이민족들의 침입과 전쟁이었음이 분명하다. 이 지역에 거주한 이민족들은 각 종족 고유한 언어를 사용하였고 로마의 침입 후에는 급속도로 로마화 되었으며 토착어인골 어를 제외하고는 점차적으로 사라진 것은 사실이다. 통용되던 여러 언어들의 특성은 로마가 사용한 문자성과 달리 구술성으로 인해 한 언어를 이해할 수 있는 문법통사적인 부분이 뚜렷하게 남아 있지 않지만 언어적으로 볼 때는 지역명, 인명 등의 어휘가 서판에 기록되어 남겨져 있으므로 이 지역에서 언어 환경변화가 있었다고 추정할 수 있을 것이다. 여러 세기를 거쳐 오며 사용된 언어들은 이민족들의 침입과 전쟁으로 인해 서로 수용되고 차용되어 언어의 발달을 가져오게 되며 이는 나르보네즈 골의 문화교류 교차로로서의 지정학적 위치를 간과할 수 없을 것이다.

       3.2. 문화교류 교차로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나르보네즈 골은 지중해를 중심으로 문화 이동의 교차점인 지정학적 이유로 이민족과의 만남이 다른 골보다도 더욱 빈번했을 것으로 추정되며 다양한 문화교류가 가장 활발했던 곳이다. 골 전체에서 가장 먼저 로마 속주가 된 곳으로 로마문화의 영향이 많았고 지중해 연안 무역의 관문으로 상업이 발달하여 당대 여러 민족들의 문화가 집결되고 이동되는 곳이었기 때문이다. 기원전 118년 지중해 오드(Aude) 해안가를 중심으로 로마인들이 진출하게 되고 나르보네즈 골의 나르본은 가장 큰 두 교류 로드의 교차로였다. 기원전 120년 로마와 스페인을 연결하는 도미티아 가도(voie Domitienne)와 툴루즈와 보르도를 연결하는 아키텐느 가도(voie Aquitania)는 문화교류의 교차로였고 그 중심에 나르보네즈 골이 있었던 것이다. 나르본은 당대 지중해 거대 무역항 중의 하나로 인식되었으며 두 가도의 지리적 요충지로서 기원후 1세기에서 2세기까지 문화교류 명성을 유지했던 지역이었다.

    로마는 전체 골에 의존해야 되는 상황 하에 직접 로마의 귀족들을 파견하고 싶었으나 로마 귀족들은 가족을 로마에 남겨두고 거주지를 옮기는 것에 대해 부정적이었으므로 골에 거주하는 다양한 토착민들과 로마 군인으로 참여했던 이민족들에게 로마 시민권을 주며 골에 정착시켜 점차적으로 하나의 통일된 문화를 전파하기 위한 정책을 펼쳤다16). 그러나 역사인류학자의 설명에 따르면17) 문화 전파는 지배적인 것과 종속적인 것 사이의 위계적인 차원을 동반하는 상호작용이 존재한다. 이에 대해 한 지역에서의 두 위계 사이의 충돌과 대립은 자연스러운 일이었을 것이다. 필자는 로마가 지리적으로 가까웠던 나르보네즈 골을 우선적으로 로마 지역으로 만들고자 하는 야망으로 인해 가장 먼저 속주화 했고 지중해를 통과하는 중요 가도로서 나르보네즈 골을 문화교류 교차로로서 활용했던 것으로 생각된다.

    이 지역 문화 교류의 경제적 배경에서 중요한 점은 나르본을 중심으로 골의 다른 중요 지역인 툴루즈, 보르도를 연결하는 지리적 위치로 인해 여러 문화가 유입되고 다시 전파되었다는 점이다. 대표적인 지중해 생산물인 포도재배와 장인들의 여러 민속공예품은 이곳에서 자체 제작되어 전체 골과 멀리 브리타니아, 이탈리아, 게르마니아까지 전해졌다. 이러한 상업 유통은 이곳을 부유하게 만들었고 주변의 이민족들을 불러들이게 되었으며 일시적인 체류뿐만 아니라 영구적인 거주를 위해 침입과 충돌이 있게 된 것이다. 이로써 문화교류의 교차로인 나르보네즈 골에 여러 언어들이 집합을 이루게 되고 언어들 간 교류 흔적이 남게 된 것이다.

    13)당시 명칭으로는 Narbo Martius임.  14)그림출처 http://fr.wikipedia.org/wiki/Fichier:Narbonensis_SPQR.png  15)로마에 패배한 후 100,000명의 성인 남자, 여자와 아이들이 자살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음.  16)이경윤(편저), 『로마제국의 역사』, 삼양미디어, 2010, pp.48-50  17)op.cit. 잭 구디 p.297

    4. 서판을 통해 본 이언어 교류

       4.1. 서판의 분석

    골 지역은 공통적으로 여러 언어를 사용했고 고대 언어들의 특징인 구술성으로 인해 표기할 언어가 필요했으므로 고대 그리스어와 라틴어를 차용했던 사회언어배경이 있었다. 그들은 일상생활 속에서 당대 사회와 문화를 알 수 있는 글들을 서판에 기록하여 남겼으며 이는 골 어휘의 이 언어 표기방식으로 이 언어 교류의 근거가 되고 있다. 서판은 골 전체에서 발견되었으나 특히 나르보네즈 골 지역의 서판이 많았으며 여러 언어의 교류를 살펴볼 수 있는 중요 자료가 되었다.

    골 어 전문가인 Dottin에 의하면 발굴된 서판18)은 표기 방식, 서판의 재질, 발굴 장소와 날짜, 보존 장소를 기록하였으며 그 내용은 골 문예를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언어사회를 볼 수 있는 구어체라는 특징이 있었다. 서판의 기록자가 주로 골 지역의 종교인 드루이드 종파, 음유시인19), 예언자들의 말이었던 것이다. 드루이드 종파에게 죽음이란 영혼이 이동하여 불멸한다는 사상이었으며 이러한 교리를 외워서 기록하고 있다. 서판의 표기는 주로 두 가지 언어를 교차로 적는 방식으로 특히 동사를 표현할 때 고대그리스어 표기와 라틴어 표기를 차용했다.

    위 서판은 골 어휘의 라틴어표기 서판으로 고문헌 학자들의 해석을 거쳤는데 Deloye는 IVBRON 어휘를 찾아내고 Stokes는 라틴어 jubar를, Belloguet는 아일랜드어 ibar를 추정했다. 이후 Pictet는 ‘나무로 된 그릇’의 아일랜드어 inbhrach와 유사하다고 밝혔다.

    언어학자 H.d’Arbois는 골 어 Petionia와 일치하는 리귀아어 형태로 KOYAΔPONIA를 해석하고 이 표기는 켈트-리귀아어 표기임을 밝혔다.

    J. Loth에 의하면 묘비명의 서판으로 ‘Mitiesos의 딸 Mitis, Magutios 의 딸 Onna 여기에’ 라는 의미이며 χovi 는 오감문자 koi로 이중 언어 표기로 되었다고 해석했다.

    위 서판은 Todi의 이중 언어로 표기된 서판으로 유명하다.

    나르보네즈 골 지역인 몽펠리에 고고학사 협회 박물관에 보존된 1840년 발굴된 성의 머리 판에 새겨진 서판에서 IΛ(한 면), INOYCIΔ(다른 한면)은 부분적으로 남겨져 있으나 그리스어 표기를 차용한 흔적이다.

    발굴된 지역을 살펴보니 님, 몽펠리에 등 나르보네즈 지역에서 이중 언어 서판이 많이 발견되었다. 재질로는 석판, 동판, 대리석에 새겨진 경우가 주였는데 위의 서판처럼 흰 대리석에 새겨진 서판은 많지 않았다.

    Dottin의 연구 코퍼스 중 발굴된 텍스트로 Coligny 달력26)이 대표적인 역사문헌인데 로마 숫자, 골 어휘 라틴어-그리스어 표기 방식을 나타내고 있어 필자의 생각으로는 이 언어 교류의 상징처럼 보인다. 위와 같이 몇 개의 어휘로 구성된 서판은 골 어휘 학자들에 의해 연구되어 해석 되어지고 어휘 분석을 중심으로 골 지역의 언어상황을 유추할 수 있었다.

       4.2. 서판의 특징

    앞에서 분석해보았듯이 Dottin의 저서에 기록된 서판의 코퍼스를 살펴보면 주로 무덤, 기둥, 피라미드형 소 제단, 석판에 새겨져 보존이 되었으며 글자가 부분적으로 사라진 경우도 있었다. 그 내용은 지명에 대한 부분과 인명 등 고유명사가 많았다. 특히 콜리니 달력, 롬의 주술 상판 발견을 시작으로 골 어에 대한 연구가 진행되었으며 골 어는 구어였으므로 표기문자로서 라틴어와 고대그리스어를 차용했다는 점이다27). 위의 서판 특징을 통해 언어는 언어들 간 접촉, 교류에 힘입어 언어적 영향과 기여를 통해 발전했음을 알 수 있다. 특히, 서판의 표기방식이 하나의 언어가 아니라 여러 언어로 기록되었다는 점은 골 사회가 여러 언어를 사용하던 양층 언어사회였고 이 언어 교류가 있었다는 점을 고찰할 수 있을 것이다.

    서판 속의 골 어휘 특징은 세 범주28)를 포함하고 있다. 첫째, 선조들에 의해 골 어휘로 인식된 단어와 골 표기 방식에 포함된 어휘다. 둘째, 서판에 기록된 골 이름들은 명확하게 역사적으로도 기록되어 있다는 점이다. César, Tite Live, Florus, Velleius, Paterculus, Tacite, Polybe 와 같은 역사가들의 기록에 의해 밝혀진 사실로 골 이름의 대부분은 시인들의 글속에서 남아있었다는 점에서 서판의 특징이 문학적인 글이 아니라 실제 생활의 보고였음을 추정할 수 있다. 셋째, 인명, 지명의 고유명사로 추정되는 골 어휘는 갈로-로망어로 전승되어 골 지역 어원을 밝혀주기도 했다.

    위와 같이 서판에 새겨진 골 어휘는 현존하는 여러 언어에 그 흔적을 남김으로써 언어의 생명력이 지속되는 근거를 나타내 준다. 언어의 내적인 특징으로 볼 때 기록된 골 어는 운문의 형태로 몇 편 남겨져 있기에 골 어의 형태를 재구성하기에는 어려움이 있다. 그러나 어휘를 통해서 여러 언어에 그 흔적을 남기고 있는데30) 첫째, 골 어의 -o와 -a로 마치는 어미변화가 고대그리스어와 라틴어의 형태임을 파악할 수 있다. 둘째, 골어의 -i/-ia는 산스크리트어에 남아 있고 셋째, 반모음의 형태인 i/u는 라틴어와 유사하다고 알려져 있다. 골 어의 동사 변화도 어휘만큼이나 코퍼스가 많이 남겨져 있지는 않지만 고대그리스어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고대그리스어와 같이 직설법, 접속법, 희구법, 명령법, 동사원형의 양태를 갖고 현재, 미래, 과거형이 존재했다. 현대 프랑스의 지역어들 중 브르타뉴어(le breton)가 켈트어 계열이므로 골 어와의 유사한 통사를 발견할 수 있는 것이다.

    나르보네즈 골 서판 어휘에서 보이는 골 어는 이 언어들과의 접촉을 통해 고유의 알파벳이 아니라 고대 그리스인, 에트루리아인, 로마인들의 알파벳을 차용하여 표기했다는 점에서 필자는 당대 이 언어 교류현상을 추정할 수 있다.

    당시 언어사회배경을 역사적 근거로 살펴보면 갈로-로마 시대에는 구어 라틴어가 점차적으로 보급되어 라틴어와 다른 토착어들이 이중으로 통용되었다. 문자가 없었던 토착 언어인 골 어를 문자로 표기하기 위해 고대 그리스어와 라틴어를 차용했던 것이다. 이로써 갈로-로마 시대의 이언어 접촉 양상은 문자로 표기하기 위한 이언어의 차용 강화로 대변된다.

    18)G. Dottin, La langue gauloise: grammaire, textes et glossaire, Paris, Librairie C. Klinvksieck, 1918, pp.145-213  19)켈트족의 음유시인인 barde(s).  20)Dottin, op. cit., pp.147-148  21)Ibid. p.149  22)Ibid. p.152  23)Ibid. pp.153-154  24)Ibid. p.155  25)첫해 첫 달의 일부 Ibid. p.176  26)Ibid. pp.174-208  27)Ibid. pp.6-9  28)Ibid. pp.217-218  29)Ibid. pp.223-302에서 발췌.  30)H. Walter, L’aventure des mots français venus d’ailleurs, Paris, Robert Laffont, 1997. 전체 장 참고.

    5. 결언

    지금까지 살펴본 바와 같이 이 언어 접촉양상은 지리적 다양성이 중요한 변수고 고유한 언어를 사용하던 이민족들의 이동으로 인해 서로 다른 언어가 교류하여 영향을 주고받는다고 해석할 수 있다. 이는 지리언어학에서 보는 새로운 주민의 언어가 토착민의 언어에 중첩되는 경우로서 대체로 보다 더 힘센 민족의 침입과 전쟁에 의해 야기 된다31).

    따라서 더 힘센 민족의 침입이었던 로마와의 전쟁이 끝나고 전체 골이로마의 속주화된 기원전 50년부터 시작된 갈로-로마 시대에 나르보네즈 골은 언어 팽창주의를 내세운 로마의 구어 라틴어가 토착어들과 중첩하고 응집하는 언어사회적 상황에 직면했던 것이다. 이는 당대 이민족들의 특징인 일정한 지역에 정착하는 농경성이 아니라 이동이 흔한 유목민의 특징으로 인해 그들이 사용하던 언어 역시도 경계를 넘어서는 교류가 이 언어 접촉의 원인이 됨을 살펴보았다.

    결국, 로마의 골 정복은 언어 현상에 막대한 영향을 끼친 역사적 사실로 하나의 고유 언어가 여러 지역에 전파되고 여러 지역의 토착 언어들과의 중첩 현상을 일으켜 이중 표기로 발전되는 접촉양상의 실현인 것이다. 또한 갈로-로마 시대가 끝난 후 프랑크 왕국이 건설되고 나르보네즈 골은 새로운 이민족들의 침입을 받게 되어 이 언어들의 접촉상황에 다시 놓이게 된다. 그것은 단순한 언어의 중첩이 아니라 새로운 언어로의 탄생을 실현하게 된다는 점에 주목해야 하며 이는 후속 연구의 주제가 될 것이다. 언어는 어느 시기의 단절성이 아니라 계속 이어지는 역사이자 문화유산으로서 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이상과 같이 지중해 연안지역은 고대로부터 이민족들의 침입이 빈번하였으므로 단일 언어만 사용된 시기는 없었다. 특히 고대 프랑스 지중해지역인 나르보네즈 골 역시도 여러 민족들이 정주하던 곳으로 이 언어들의 접촉이 있었고 그러한 양상의 특징은 언어 중첩 이언어의 수용으로 판단된다. 본 연구를 통해 첫째, 언어 중첩의 요인은 한 지역의 경계 구분 없는 이민족들의 교류로 인한 요인이라는 점이다. 둘째, 이 언어 교류 양상을 다루기 위해 언어의 외적인 요소들을 참조하여32) 언어의 역사와 종족, 문화사에 존재할 수 있는 모든 상호관계를 고려하는 연구는 사회언어학이 민속학과 만나는 지점으로 풍부한 연구 자료가 된다. 본 논문에서는 언어교류를 연구함에 토착민족을 염두에 두고 언어의 지리적 확장과 이동이 외적 언어학의 분야인 외부 언어 현상을 중요 요인으로 삼아 살펴볼 수 있었다.

    끝으로, 지중해 문화 교류 유형화는 지중해를 배경으로 존재하는 개별언어, 사회를 하나의 전체로 보는 시각의 한계를 벗어나 개별 문화들 안에서의 특질들을 유추하여 개별적으로 보는 시각을 종합화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복합문명의 산실이자 갈등과 교류가 공존한 지역이므로 하나의 단일한 사고로 집결되기 보다는 다양한 시각에서 유형화를 추구하면 어떨까 생각한다. 이는 언어가 단순한 의사소통의 기능만 있는 것이 아니라 한 민족의 문화와 가치체계를 포괄적으로 담고 있는 현상이기 때문이다.

    31)샤를 바이.알베르 세슈에 엮음, 『페르디낭 드 소쉬르 일반 언어학 강의』, 최승언 역, 민음사, 2009(신장판 3쇄), pp.271-273  32)Ibid. pp.2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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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표 1] <표1. 골 (Gaule)의 지도>4)
    <표1. 골 (Gaule)의 지도>4)
  • [표 2] <표 2. 나르보네즈 골의 지도>14)
    <표 2. 나르보네즈 골의 지도>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