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전체 메뉴
PDF
맨 위로
OA 학술지
Deviant Sensibility and Normality in Sense and Sensibility and Pride and Prejudice 『지성과 감성』과『오만과 편견』에서 일탈적 감수성과 정상
  • 비영리 CC BY-NC
ABSTRACT
Deviant Sensibility and Normality in Sense and Sensibility and Pride and Prejudice
KEYWORD
The Novel of Sensibility , Bildungsroman , Sentimental , Deviance , Normality , Sense , Sensibility , Desire , Marriage
  • I. 들어가는 말

    감상소설, 혹은 감수성소설(The Sentimental Novel, The Novel of Sensibility)은1 18세기 중반부터 영국과 유럽 대륙에서 큰 인기를 끌었지만 프랑스 혁명의 정치적 소용돌이가 휘몰아친 18세기 말에는 값싼 감상의 과잉과 여성의 신경쇠약을 조장하고 혁명을 일으킨 정신이라는 비판에 직면했다.2 오스틴(Jane Austen)의 초기 소설은 감상소설을 패러디하는 목적으로 쓰였지만 궁극적으로는 여주인공이 감수성의 과잉이 초래하는 일탈을 극복하고 사회에 통합되는 성장소설로 탈바꿈한다. 프랑스혁명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성장소설은 18세기 말부터 19세기 초에 걸쳐서 신흥부르주와의 성장과 함께 발전했으며, 구지배층과 타협을 통한 부르주와의 상류계급으로의 신분상승의 열망을 담고 있다. 모레티는 성장소설의 시초를 괴테의『빌헬름 마이스터의 수업시대』(Wilhelm Meisters Lehrjahre, 1795-96)와 오스틴의『오만과 편견』(Pride and Prejudice,1813)으로 보고 있다(Moretti preface viii). 오스틴의 초기소설은 유럽의 감상소설에서 예찬되는 일탈적인 감정의 과잉을 억제해서 주인공을 사회적 틀 안으로 안착시키는 영국식 성장소설의 모델이다. 정치적 혁명의 근원지인 프랑스의 성장소설과는 달리 혁명의 과격성을 거부한 영국의 성장소설에서는 주인공이 사회적 규범에 벗어나는 일탈의 부정성을 떨치고 기존 체제에 순응하는 것을 성장으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강하다. 그러므로 성장은 사회화와 기존질서에의 적응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고 개성이 강한 주인공이 특징 없고 무미건조한 인물로 바뀌는 과정으로 보이는 경우가 많다.3

    오스틴의 첫 두 출판소설인『지성과 감성』(Sense and Sensibility, 1811)과 『오만과 편견』은 사이좋은 두 자매가 주인공이고 감수성이 강한 동생이 감수성의 과잉에 수반되는 위험한 열정과 성적 에너지를 통제하고 난 후 상류층 남성과 성공적으로 결혼하는 비슷한 구성을 갖고 있다. 언니인 엘리너(Elinor Dashwood)와 제인(Jane Bennet)은 처음부터 사회규범에 따라서 ‘현명한’판단을 하지만, 동생인 매리앤(Marianne)과 엘리자베스(Elizabeth)는 세상의 보편적 의견을 따르지 않기 때문에‘정상’에서 벗어나 있다. 감수성과 상상력의 소유자로서 개인주의적인 성향을 보이는 매리앤과 엘리자베스의 일탈에는 억제된 욕망이 감추어져있다. 윌러비(Willoughby)에 대한 매리앤의 이끌림과 위컴(Wickham)에게 보이는 엘리자베스의 이끌림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오스틴의 작품이 표면에 드러내지 않는 성적인 욕구를 담고 있다. 그러나 경제적으로 취약한 윌러비와 매리앤, 위컴과 엘리자베스가 결합한다면 이들은 젠트리 계층에서 배제될 것이다. 따라서 이들이 기득권을 유지하고 계급의 낙오자가 되지 않으려면 욕망을 표출하는 신체를 당대의 계급 사회의 규범에 종속시키고 감수성의 과잉을 전지해야 한다.4

    본 논문은 루소와 괴테의 감상소설과 오스틴의『지성과 감성』과『오만과 편견』을 비교하면서 오스틴의 소설에서 과잉 감수성이 낳는 일탈적인 욕망의 억압을 통해서 주인공의 사회화가 이루어지는 점을 보이고자 한다. 루소와 괴테와는 다르게 오스틴은 감수성이 강한 여주인공의 애인에 대한 열정과 욕망을 일탈로 여겨 처벌한다. 다른 감상소설처럼 합리적인 이성과 낭만적인 감수성을 대비시키는 오스틴의 소설에서 일탈을 구성하는 것은 제어되지 않은 상상력과 낭만적인 열정, 개인의 주체성을 중시하는 태도이다. 이것들은 주인공이 사회의 ‘정상적’인 구성원이 되는 것을 저해하는 것으로 여겨져서 징벌과 통제의 대상이 된다.

    1감성, 혹은 감수성(sensibility)은 오늘날은 “정서나 감정의 의미로 쓰이지만 그 당시에는 이성이나 논리에 반대되는 감상이나 열정을 의미”했기 때문에(한애경 143-44) 감상주의(sentimentalism)와 교환 가능한 용어로 사용되었다. 18세기 감수성소설에서 감수성은 자연이나 예술의 미와 숭고함에 대한 맹렬한 정서적 반응과 감정에 과잉 탐닉하는 성향을 가리키며 이성과 대비되는 용어였다.  2감수성소설은 리처드슨(Samuel Richardson)의『클래리서』(Clarissa, 1748), 루소(Jean-Jacques Rousseau)의『쥘리 또는 신엘로이츠』(Julie, ou la Nouvelle Heloise; Julie, or The New Heloise, 1761)와 괴테(Johann Wolfgang von Goethe)의『젊은 베르터의 슬픔』(Die Leiden des jungen Werthers; The Sorrows of Young Werther, 1774)에서 인기의 절정에 달했다.  3프로이드(Freud)에서 푸코(Foucault)에 이르는 20세기 사상가들은 정상성(normality)을 그것과 반대되는 것, 즉 병리성, 일탈과 대립시켜서 정의해왔다. 이들에게 정상성은 의미와 특징을 결여한 상태이며 자신이 내포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배제한 것인 병리성을 정의함으로써 정의될 수 있다. 현대의 관점에서 보면 성장의 과정은 병리성을 제거하는 것이기 때문에 성장소설의 주인공은 현대철학과 심리학이 관심을 갖는 병리적인 측면을 떨쳐버린, 특징이 없는 밋밋하고 재미없는 인물이다(Moretti 11).  4푸코는 17세기와 18세기를 거치면서 규율이 지배의 일반적인 양식이 되었고 훈련과 구속을 통해서 순종하는 신체를 만드는 것이 지대한 관심의 대상이 되었음을 지적한다(푸코 206-07, 234).

    II.『 신엘로이즈』와『젊은 베르터의 슬픔』―감수성의 이상화

    오스틴의 초기 소설에 영향을 준 유럽의 감상소설인 루소의『신엘로이즈』와 괴테의『젊은 베르터의 슬픔』은 다른 감수성소설처럼 서간체로 쓰여 있고, 여주인공이 자연과 예술에 대한 사랑을 공유하는 남자와 분별력 있고 존경할 만한사회적 지위를 가진 남편과 사이에서 갈등하는 삼각관계를 기본 플롯으로 하고있다. 이 삼각관계는 18세기 프랑스 귀족사회에서 흔히 발견되는 문인과 철학자들의 생활 방식에서 원형을 찾을 수 있다. 귀족의 후원을 받아야 생활을 유지할 수 있었던 문필가들은 귀족 부인의 연인으로서 삼각관계(Mènage à trois)를 맺고 후원을 받는 경우가 많았다. 이들은 정략 결혼한 배우자의 아이를 낳는 의무를 다한 귀족 부인과 연인 관계를 맺고 물질적 후원을 받으면서 남편의 묵인 하에 삼각관계를 유지했다. 당시 파리의 상류사회에서는 혼인서약은 아무런 공민적 계약의 효력을 갖지 못했고 사회적인 스캔들만 일으키지 않는다면 혼외 관계는 용인되었다(이봉지 16). 귀족 부인으로서는 자신이 속한 계급의 혜택을 누리면서 예술과 학문에 대한 관심을 애인과 함께 공유하고, 귀족 남편은 자유롭게 연애하면서 재산과 신분을 유지할 수 있는 타협책이었다.5 이 삼각관계는 루소, 괴테, 오스틴의 감수성소설에서 비슷한 틀을 유지하면서 반복된다. 『신엘로이즈』에서 쥘리의 아버지의 친구인 50세 가량의 볼마르(M. Wolmar)와 22세인 쥘리의 결혼 관계에 감수성이 강한 철학자 생 프뢰(St. Preux)가 연인이고, 『젊은베르터의 슬픔』에서 10살 이상 나이 차이가 나는 알베르트와 로테의 결혼에 예술가적 성향의 베르터가 연인이다. 『지성과 감성』에서 35세가 넘는 브랜든 대령(Colonel Brandon)과 17세의 매리앤의 관계에서 감수성이 강한 애인은 윌러비이고, 『오만과 편견』에서 엘리자베스와 다아시(Darcy)의 관계에 위컴은 연인과 같은 역할을 한다. 그러나 루소와 괴테의 소설의 삼각관계에서 애인이 정열적이고 일편단심인 것과는 달리 윌러비는 감수성을 가장한 부정직한 연인이며 부유한 여자와 정략결혼을 한다. 위컴은 윌러비가 가장하고 있던 감수성조차도 결핍하고 허위 사실을 유포하는 가장 타락한 애인이고, 이 삼각관계에서 애인이 지니는 낭만적 감수성과 지성은 다아시가 소유하고 있는 것으로 판명된다. 오스틴은 지적이며 열정적인 애인이 남자주인공인 유럽의 감수성소설의 구성을 전복하고 이 속성을 합법적인 남편에게 부여해서 그를 주인공으로 부각시킴으로써 루소와 괴테 소설에서 발견되는 삼각관계가 청교도적인 영국인들이 수용하기 어려운 것이라는 것을 암시한다.

    모텐슨은『신엘로이즈』의 감상적인 로맨스 형식과 자유연애 예찬이 헨리 매켄지(Henry Mackenzie)와 엘리자베스 인치볼드(Elizabeth Inchbald)를 거쳐 오스틴에 이르는 영국작가들에게 영향을 주지만 그 과정에서 점차 영국적 보수성이 강화된다고 주장한다.6 영국인의 관점에서『신엘로이즈』에서 가장 논란이 된 것은 아벨라르를 사랑한 엘로이즈처럼 정열적인 쥘리가 리차드슨(Richardson)의 클래리서와 같은 성적 희생자가 아니라 자발적으로 생 프뢰를 유혹했는데도 점잖은 상류사회에서 추방되지 않고 부유하고 헌신적인 남편과 행복하게 결혼한다는 점이었다. 여주인공의 정절의 상실을 강제로 또는 의식을 잃은 상태의 결과로 묘사하고, 그것마저도 용서받을 수 없는 행동이기 때문에 죽음으로 결말짓는 영국소설의 관습과는 달리 쥘리는 자발적으로 생 프뢰와 쾌락을 추구하고 혼전 임신까지 하지만 귀족인 볼마르와 행복하게 결혼하고 존경받는 것에서 영국과 프랑스 문학의 차이를 볼 수 있다.

    루소는 소설의 전반부에서 신분이 낮은 철학자 생 프뢰와 귀족인 쥘리의 연애와 결혼을 옹호하는 혁명적인 주장을 편다. 영국 출신의 에드워드경의 입을 빌어서 그는 귀족은 사기꾼의 자손이고 평민이 도덕적이며, 헛된 작위보다 재능이 사람의 가치를 판단하는 기준이 되어야한다면서 생 프뢰야말로“마음속에 지울 수 없는 흔적으로 새겨진 귀족 신분을 지니고”있다고 주장한다( 『신엘로이즈 1』227-28). 그러나 귀족의 신분과 명예에 집착하는 데탕쥐 남작은 쥘리와 볼마르의 결혼을 강요한다. 쥘리는 아버지의 결혼 허락을 받기 위해서 생 프뢰를 유혹해서 임신하지만 유산하고, 볼마르가 천연두로 얼굴이 손상된 자신과 여전히 결혼을 원하자 결국 아버지의 압력에 굴복한다. 쥘리는 결혼식 날 마치 자신이 의식을 더럽히는 부정 탄 제물인 것처럼 여기지만(465), 교회에 들어간 순간 전에 느껴본 적이 없었던 감동을 느끼고 남편에 대한 복종과 완전한 헌신을 맹세한다. 쥘리의 갑작스러운 개종 후 루소는 혁명적인 주장을 폈던 전반부와는 다르게 정열적인 연애는 결혼에 적합하지 않기 때문에 볼마르와 쥘리의 강요된 결혼이 생 프뢰와의 결혼보다 더 바람직하다면서 기존의 정략결혼제도를 옹호하고 귀족에 대한 비판을 중단한다.

    생 프뢰에게 보내는 이 편지에서 쥘리는 열정적인 사랑은 질투로 인해 늘 불안이 뒤따르기 때문에 의무를 수행하고, 집안을 신중하게 다스리며, 아이들을 잘 기르기 위한 목적을 지닌 결혼생활에는 적합하지 않으며 자신이 생 프뢰와 결혼했다면 권태와 증오만 남게 되었을 것이라고 말한다. 사랑이 아닌 애정의 대상인 남편과 충실히 가정의 의무를 수행하는 관계가 결혼제도에 적합하다는 쥘리의 결혼관은 로테와 알베르트의 관계와 매리앤과 브랜든 대령의 결혼관계에도 적용된다. 여성의 희생을 강조하는 쥘리의 변화된 결혼관은 가부장제를 존 속시키는 목적에 봉사하기 때문에 그녀는 결국 물에 빠진 아들을 살리기 위해서 자신의 목숨을 희생한다. 그러나 생 프뢰에 대한 사랑의 감정이 자신을 살게 했다는 쥘리의 마지막 편지는(『신엘로이즈 2』455) 이 결혼관에 충실한 10년간의 볼마르와의 결혼생활을 무위로 돌리고 그녀의 결혼관의 타당성에 의문을 제기하게 만든다. 쥘리에게 생 프뢰에 대한 사랑의 감정은 삶의 본질이기 때문에 이것을 억압하고 의무에 충실한 아내로서의 삶을 자신에게 강요한 것이 자살에 가까운 그녀의 죽음을 가져온 것으로 볼 수 있다(이봉지 14-15).

    과격한 감상주의의 성향을 보인 독일의 질풍노도(Strum und Drang) 운동의 주역이었던 괴테는 루소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다(노태한 86).『 젊은 베르터의 슬픔』은 로맨틱한 사랑과 극적인 죽음 때문에 출판 당시에 유럽 전역에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고 베르터는 감수성 숭배 종교의 우상과 같은 인물로서 남성들을 평가하는 잣대로 여겨졌다.7 콩거는『사랑과 우정』의 주인공인 로라처럼 베르터를 숭배하는 수많은 영국 여성들이 생겨났고『젊은 베르터의 슬픔』에 자극을 받은 여성 문인들이 많았음을 지적한다(Conger 21-22).

    생 프뢰처럼 예민한 감수성의 소유자인 베르터는 로테와 예술과 문학에 대한 의견이 일치하고, 그녀가 법과 이성을 중시하고 감수성을 결핍한 알베르트보다 자기와 결혼하는 쪽이 더 행복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128). 베르터는 로테를 처음 만나 춤을 추면서부터 사랑의 열병을 앓기 시작하고 그녀가 결혼하자 점점육체의 욕망을 억제하지 못하고 절망적인 상황에 빠진다. 사모하는 미망인 여주인 때문에 살인자가 된 하인을 베르터가 자기의 분신처럼 느끼는 것은 로테에 대한 열정이 알베르트에 대한 질투심과 살인 충동을 낳기 때문이다.

    베르터에 대한 사랑이 오누이와 같은 것이라고 주장했던 로테도 베르터가 마지막으로 찾아왔을 때 자기 친구들을 그와 맺어주기를 원하지 않는 자신을 발견하고 그에 대한 사랑이 “죄 많은 욕구를 느끼는”(183) 것이라고 마침내 인정한다.8 로테와 베르터의 억제할 수 없는 열정은 쥘리의 결혼관에 따르면 의무의 수행과 사회 질서의 지속적인 추구를 핵심으로 하는 결혼에는 부적합하다. 반면에 알베르트와 로테의 결혼은 의무를 충실히 수행하며 상호존중을 핵심으로 하는 시민계급의 결혼의 전형을 보여준다. 이들은 다정한 부부이지만 성적인 욕망이 들어설 자리가 없고 그 욕망은 바로 애인과의 관계에서 발견된다. 로테에 대한 베르터의 욕망은 18세기의 시민적 결혼에서 도외시되던 에로틱을 사랑의 중요한 요소로 부각시킨 관능적인 것으로서 도덕성과 의무를 미덕으로 여기는 당대의 시민계급의 결혼에서 금기시되던 것이다(박광자 29-45).

    『신엘로이즈』와『젊은 베르터의 슬픔』에서 쥘리와 생 프뢰, 로테와 베르터의 정열적인 사랑은 비극으로 끝나지만 감수성의 주인공들은 여전히 고귀한 품성의 낭만적 이상주의자로 남아있다. 여기서 살아남은 부부의 합법적인 결혼관계는 열정을 결여한 형식적인 것이라는 점에서 실현되지 않은 이상적인 애인들의 관계의 껍데기에 불과하다. 루소와 괴테의 소설에서 감수성은 길들여지고 억압되어야 할 일탈이 아니라 주인공들의 죽음을 통해서 더욱 더 숭고한 가치로 고양되는데 오스틴은 바로 이 구성을 전복시킨다.

    5『신엘로이즈』의 주인공 쥘리 데탕쥐(Julie d’Etange)의 모델로 여겨지는 두드토 부인(Mme d’Houdetet)은 한때 루소와도 삼각관계를 가졌다. 루소의 후원자였던 데피네 부인(Mme d’Epinay)도 작가인 그림(Baron de Grimm)과 동거했고, 볼테르(Voltaire)는 여성 수학자인 샤틀레 후작 부인(Marquise du Chatelet)과 동거생활을 했던 것은 유명하다. 괴테는 바이마르 고전주의의 융성에 도움을 준 아나 아말리아 공작부인(Duchess Anna Amalia)을 사랑했다는 주장이 최근에 제기되기도 했다(최민숙 297-98).  6모텐슨은 오스틴의 가장 보수적인 소설인『맨스필드 파크』(Mansfield Park, 1814)를 중심으로 분석하면서 그녀가 프랑스 감수성소설의 성적인 진보성을 포기하고 영국적 보수주의로 귀착했다고 한다(Mortensen 367-70). 반면에 코언(Cohen)은『노쌩거 사원』(Northanger Abbey)과『오만과 편견』을 중심으로 분석하면서 남녀의 역할에 관한 한 보수적인 루소의 전제를 오스틴이 거부하고 여성의 독립성을 인정했다는 점을 지적한다(Cohen 215-34). 쥘리가 신분이 낮은 가정교사 생 프뢰를 사랑하는 것에서 볼 수 있듯이 루소는 계급을 초월하는 남녀간의 사랑을 인정하지만, 『에밀』(Emile, or on Education, 1762)에서 여성은 남성에게 유용하고 그에게 위로를 주는 여성의 의무를 교육받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오스틴은 여성의 교육과 합리성의 개발을 옹호한 울스턴크래프트(Wollstonecraft 100-23)처럼 여성의 지적 능력과 자율권을 주장한다.  7오스틴의 습작소설인『사랑과 우정』(Love and Friendship, 1792)에서 극도의 감수성을 지닌 주인공 로라(Laura)와 소피아(Sophia)가 그래엄(Graham)이『젊은 베르터의 슬픔』도 읽어보지 못한 혼과 감수성이 결여된 남자라고 확신하는(304) 것에서 볼 수 있듯이 오스틴도 이 작품을 잘 알고 있었다.  8이 장면 전까지 로테는 일관되게 베르터의 사랑에 대한 성적인 반응을 보이지 않고 가족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성녀나 모성적인 존재로만 그려지기 때문에 욕망과는 무관한 모습을 보인다. 괴테는 여성을 “성적대상이 아니라 정신적, 도덕적인 존재로 이상화”(박광자, 「괴테의『타우리스의 이피게니에』에서 휴머니즘의 문제」20)하고 성욕과는 거리가 먼 성녀로 고양시키는데 이것은 그가 여성의 현실을 보지 못하고 남성 중심적인 관점에서 여성을 편리하게 이상화한다는 것을 알려준다.

    III.『 지성과 감성』―감수성의 과잉과 일탈

    프랑스혁명이 일어나기 약 10년 전에 헨리 매켄지가 쓴 감수성소설인『쥴리아 드 루비네』(Julia de Roubigné, 1777)에서 삼각관계의 중심에 서 있는 여주인공인 쥴리아의 열정은 미덕으로 그려지지만, 혁명 후 감상주의 작가들은 루소와 괴테, 코체부(August von Kotzebue)처럼 억압적 관습에 저항하는 동맹으로서 성적 자유를 이용한 급진주의자로 여겨져서 비판의 대상이 되었다.9 그러나 버틀러가 지적하듯이 1790년대 영국에서 감상주의적인 열정은 히스테리를 낳고 일탈적인 열정과 성적 방종을 초래하는 반사회적인 것으로 보수와 급진주의 진영 모두로부터 비판받았다.10 서간체로 쓰인『엘리너와 매리앤』(Elinor and Marianne, 1795-96)을 수정한『지성과 감성』도 감수성을 비판하고 풍자하는 당대의 조류를 반영하고 있다. 『지성과 감성』에서 오스틴의 비판의 날은 속물적이고 탐욕적인 기성세대만큼이나 감수성의 주인공들에게 향해있다. 윌러비와 매리앤은 교양과 감수성을 결핍한 미들턴 경 부부(Sir John and Lady Middleton)와 제닝스 부인(Mrs. Jennings)을 경멸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에드워드 페라스(Edward Ferras), 브랜든 대령과 엘리너조차도 깊은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열등한 부류로 취급한다. 매리앤은 윌러비와 결혼하면 엘리너보다 두 배정도의 수입이 있어야 생활이 유지될 것이라고 말하는 속물성을 보이는데 자연을 사랑한다고 자처하는 매리앤과 같은 감상주의자들이 사실은 호사스럽고 안락한 삶을 기대하는 특권의식을 가지고 있고, 자연에 감수성을 덧입혀 과도하게 예찬하거나 정형화된 낭만적 표현을 사용하기를 거부하는 에드워드가 오히려 소박한 자연주의자이다. 또 다른 감수성의 소유자인 대쉬우드 부인(Mrs. Dashwood)은 경제적 관념이 결핍된 미성숙한 성인으로서 낭만적이고 충동적인 매리앤과 자매처럼 보인다. 감상에 탐닉하는 매리앤과 대쉬우드 부인을 보호하는 것은 분별력과 절제의 미덕을 지니고 부재하는 아버지와 남편의 역할을 하는 엘리너이다.11

    많은 비평가들은 지성과 감성을 엘리너와 매리앤과 등치시키는 이분법은 지나친 단순화이고 오히려 참된 감수성의 주인공은 엘리너라고 말한다. 브로디는 관습에 맹종하는 루시(Lucy Steele)와 독선적으로 자기만 숭고하다고 여기는 매리앤 사이에서 엘리너는 균형을 유지한 진정한 감수성의 소유자이고 매리앤의 감수성이 무절제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하나의 틀로 기능한다고 말한다(Brodey 114, 130). 녹스 쇼는 오스틴이 사회적 미덕과 당대에 유행하던 감수성 숭배를 구별하고 있으며 엘리너와 에드워드 커플과 매리앤과 윌러비 커플이 각각 전자와 후자에 해당된다고 말한다(Knox-Shaw 148). 대쉬우드 부인은 에드워드가 루시와 결혼했다는 잘못된 소식을 듣고 엘리너가 충격을 받는 것을 보고서 매리앤이 윌러비의 배신으로 받은 상처만큼이나 엘리너도 큰 상처를 입는 감수성의 소유자라는 것을 뒤늦게 깨닫는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에 엘리너는 감정을 통제하고 언어를 구사하는 능력을 발휘하기 때문에 루시가 에드워드와 약 혼했다고 알려준 후에도 충격을 숨기고 일상적인 삶을 꾸려나가는 외양을 꾸민다. 매리앤의 행복과 비참함이 얼굴과 몸짓을 통해서 그대로 드러나는 것과는 달리 엘리너의 감정은 자유간접화법이나 등장인물에 대한 서술을 통해서만 드러날 뿐이다. 사회적 요구와 감정을 분리하고 평상시의 활기와 예절바른 태도를 유지하는 엘리너는 이중성이 사회생활에 필수적이라고 여긴다. 반면에 매리앤은 가식을 거부하기 때문에 가족을 난처한 지경에 빠뜨리는 경우가 많은데, 아첨에 능한 루시가 레이디 미들턴을 칭찬하자 거짓말을 못하는 매리앤이 침묵을 지키고 엘리너가 거짓말을 해야 하는 모든 짐을 지게 되었다고 서술자가 진술하는 장면에서 이것이 잘 드러난다.

    이 인용문은 사회적인 예절로서 용인되는 거짓말을 거부하는 매리앤을 옹호하거나 비난하고, 또 거짓말하는 엘리너를 옹호하거나 비난하는 입장을 취하는 비평가들에 의해서 다양하게 인용되어져 왔다. 비평가들은 엘리너를 매리앤의 무례를 뒷처리하는 책임 있는 인물로 여기거나 아니면 현실 타협적인 인물로 간주하는 대립되는 반응을 보인다. 브로디는 엘리너가 “거짓말”을 한다는 점이 독자에게 나쁜 인상을 주고 매리앤을 더 순수해 보이게 하는 효과가 있지만 매리앤이 도달할 수 없는 진실성이라는 이상을 위해서 엘리너를 희생시키기 때문에 그녀의 침묵을 영웅적으로 받아들일 수 없다고 말한다(Brodey 120). 오스틴도 정직한 충동에 의해서만 행동을 하고 진정한 감정만을 표현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매리앤의 감수성을 비사회적인 것으로 보고 현명하게 타협적인 엘리너를 편애하는 태도를 보인다. 사실 덕워스의 주장처럼 사회의 관습을 지나치게 무시하는 매리앤의 극단적인 반사회적인 몇몇 행동은 리디아(Lydia Bennet)의 철없는행동을 연상시키고 그녀와 윌러비 커플은 리디아와 위컴을 연상시킨다(Duckworth 26-37).

    그러나 솔직함을 중시하는 현대 독자에게는 사회적인 관계에 거짓 예절의 윤활유를 뿌리고 진심을 감추는 엘리너가 위선적으로 보이고, 교양 없고 천박한 이웃들을 솔직하게 경멸하는 매리앤은 매력적으로 보인다. 지성을 결핍한 미들턴 경, 소문을 퍼뜨리고 미혼남녀를 결혼시키는 것을 사명처럼 여기는 제닝스 부인, 전리품인 남편을 이미 얻었기 때문에 그가 무슨 모욕을 해도 무시하는 파머 부인(Mrs. Palmer) 등으로 구성된 상류사회는 월터 스콧(Walter Scott)과 윌리엄 쿠퍼(William Cowper)의 시에 열광하는 매리앤이 참기 어려운 곳임이 분명하다. 이 상류사회의 노골적인 배금주의도 매리앤의 경멸을 정당화시켜준다. 에드워드와 루시의 약혼이 들통 난 후에 패니(Fanny Dashwood)와 페라스 부인(Mrs. Ferras)이 로버트와 모튼 양(Miss Morton)의 결혼을 추진하는 것에서 볼 수 있듯이 이들에게 결혼은 당사자의 감정이나 의사와는 무관한 돈과 돈의 결합이다. 결혼시장에 나온 여성에게 미모는 부족한 재산의 보충물이라고 여 기는 죤(John Dashwood)은 윌러비의 배신의 충격으로 미모가 심각하게 훼손된 매리앤의 결혼의 전망을 암울하게 여긴다(174). 그러나 오스틴은 대쉬우드 부부와 페라스 부인을 희화하면서도 타협을 불허하는 매리앤의 비판적 감수성이 엘리너의 분별력과 이성에 의해 제어되어야 하는 것으로 제시한다. 그러므로 배금주의자들에 대한 오스틴의 날카로운 풍자는 현실에서는 엘리너처럼 현명하게 타협하도록 권하는 서술자의 음성과 불협화하고 충돌한다.

    엘리너는 상류사회의 이기심과 탐욕을 꿰뚫어보지만 이곳을 부정하거나 변혁하고자 하지 않고 다만 이들로부터 자신과 가족을 방어하기만을 원한다. 그녀의 자기방어적인 분별력은 기존체제에의 순응을 핵심으로 하기 때문에 수동적이고 현실안주적이다. 따라서 그녀의 이성과 분별력은 냉혹하게 탐욕적인 대쉬우드 부부와 루시의 계산 앞에서는 무기력하다. 수동적인 제인이 빙리에 대한 애정표현을 하지 않아서 이들을 떼놓으려는 빙리 양과 다아시의 계획의 희생자가 되는 것처럼 엘리너가 에드워드에게 거의 어떤 감정도 표현하지 않고 수동적이기 때문에 이들의 관계는 전적으로 루시의 타산적인 계산에 지배된다. 제인과 빙리의 결혼은 엘리자베스가 다아시의 오만한 행동을 질타하지 않았다면 불가능했던 것처럼 엘리너와 에드워드의 결혼도 루시의 이기적인 변심이 아니었으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그러므로 엘리너와 제인의 분별력은 그 수동성 때문에 자신들의 운명을 적극적으로 헤쳐 나가는데 도움이 되지 못하며 아이러니하게도 루시의 간계와 제인의 행복을 파멸했다가 다시 보장하는 다아시의 영향력에 의해서만 구원받을 수 있다.

    작가가 매리앤의 낭만적인 욕망의 사회적 원천이나 함축을 진지하게 다루지 않음으로써 그 매력을 통제한다는 푸비의 지적처럼(Poovey 188) 오스틴은 감수성이 제기하는 사회 비판을 간과하고 그 대신 매리앤의 감수성의 자기 탐닉적인 성향에 중점을 둔다. 오스틴은 여성의 성적 순결이 중요한 자산이 되는 남성 중심사회에서 감수성의 탐닉은 여성의 희생을 초래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함으로써 매리앤의 감수성이 통제되어야 하는 것으로 제시한다. 매리앤은 윌러비를 만난 직후부터 마치 자신들만 존재하는 것처럼 그에 대한 사랑을 무절제하게 드러내고, 그가 바튼(Barton)을 떠난 후, 그리고 그에게 버림받은 후에는 자제력을 잃고 슬픔에 탐닉한다. 타인을 배려하지 않고 기쁨과 슬픔의 감정에 극단적으로 탐닉하는 매리앤의 태도는 감정적·신체적 쾌락을 즉각적으로 충족시키려는 충동의 표현이다. 여성의 순결을 중시하는 사회에서 매리앤의 무절제한 감정의 탐닉은 즉각적인 욕망의 충족의 추구와 성적인 타락을 초래할 수 있기 때문에 여성에게는 치명적인 결과를 가져온다.

    오스틴은 매리앤과 나이가 같고 외모와 성격도 “똑같이”닮은(159) 일라이저(Eliza)와 그 딸이 금지된 성욕에 유혹당하고 몰락하는 과정을 보여줌으로써 동일한 유혹에 직면한 매리앤의 과잉 감수성에 내포된 성적 욕망의 제어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일라이저는 영지의 빚을 지고 있던 브랜든의 아버지에 의해 브랜든의 형과 강제로 결혼한 후 재산을 빼앗기고 남편의 학대를 견디지 못해서 불륜을 저지르고 사생아를 낳는다. 일라이저의 비극의 직접적 원인은 브랜든의 아버지와 형의 탐욕이었지만 브랜든은 매리앤과 일라이저를 연관시켜서 무절제한 감수성의 탐닉에 수반된 성적인 타락이 그 원인이라고 엘리너에게 암시한다. 윌러비가 그레이 양과 결혼을 앞두고 있다는 것이 밝혀진 후 일라이저 윌리엄스(Eliza Williams)를 임신시키고 버렸던 그의 악행을 엘리너에게 비로소 밝히는 브랜든의 이야기는 일라이저 윌리엄스에 집중되어야 옳다. 그러나 브랜든이 감수성이 강했던 일라이저와 자신의 관계에 집중하는 것은 매리앤의 낭만적 감수성에 잠재된 성적인 힘에 대해 그가 느끼는 두려움을 암묵적으로 드러낸다. 그러므로 브랜든은 일라이저가 결혼 후 형으로부터 당했던 착취와 학대보다는 불륜을 저지르고 사생아를 낳은 것에 더 충격을 받은 것처럼 보인다. 그는 일라이저가 자신과 사랑이 이루어지지 못했을 때 차라리 죽는 것이 더 나았을 것이라고 말하고, 그녀가 폐병으로 때 이른 죽음을 맞은 것에 안도를 느낀다(159-60).

    영국의 감수성소설의 일반적인 문학적 관습은『클래리서』에서 볼 수 있듯이 매력적이지만 방탕한 남성에 의해 유혹당한 여주인공이 자신의 여성적 감수성에 희생되어 죽음을 맞는 것이다. 이 여주인공의 문학적 죽음에는 여성의 순결이 이미 훼손되었기 때문에 다른 남성과의 사랑은 허용될 수 없다는 남성중심적 의식이 깔려있다. 브랜든이 자기와 사랑에 실패한 일라이저가 차라리 죽는 것이 나았다고 말하는 것과 같은 태도는 윌러비에게 버림받은 매리앤에 대해서 주변사람들이 보이는 반응에서도 발견된다. 열병으로 사경을 헤매는 매리앤을 보고 제닝스 부인과 미들턴 경은 성급하게 그녀의 요절을 점치고, 지금까지 그녀를 줄곧 피했던 윌러비가 런던에서 급하게 찾아 온 것도 그녀의 죽음을 기정사실로 여겼기 때문이다.12

    푸비는 남성은 여성이 열정적이기를 바라면서도 열정의 결과를 두려워하기 때문에 성욕을 통제하려고 하고, 일라이저 모녀에 대한 이야기는 바로 여성의 성욕에 대한 브랜든의 두려움을 보여준다고 지적한다(Poovey 192). 브랜든은 매리앤이 열정적이기를 바라지만 일라이저의 열정이 성적타락을 낳았다는 점에서 그녀의 열정을 통제하려고 한다. 일라이저 모녀가 남성 보호자가 없기 때문에 열정적 감수성의 성적 희생자가 된 것과는 달리 매리앤은 아버지의 역할을 하는 엘리너의 보호로 윌러비의 희생자로 전락하는 운명을 피한다. 그러나 두명의 일라이저와 매리앤의 유사성이 강조되고 매리앤이 다른 사람들 앞에서 윌러비와 약혼한 것처럼 행동했다는 점에서 그녀는 희생되고 죽은 것이나 다름없지만(Harris 59), 오스틴은 매리앤을 열병에 걸리게 한 후 감수성을 통제하고 사회 속으로 통합한다. 엘리너에게 청혼하러 온 에드워드는 무의식적으로 가위를 들고서 가위집을 자르는데 이것은 그가 재산을 쥐고 있는 어머니의 의지에 지배되어서 젊음을 무의미하게 허비하는 것을 견디지 못해서 내는 파열음이라고 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매리앤의 열병은 그녀의 감수성이 배금주의적이고 천박한 상류사회의 틀(가위집)에 갇히게 되면서 겪는 고통이 극적으로 표출되는 양상이다.13

    쥘리의 죽음과 베르터의 자살의 등가물인 매리앤의 열병은 감수성이 수반하는 위험한 열정을 길들이고 성욕의 근원인 육체의 통제를 통해서 의무에 충실한 순종하는 몸을 생산한다. 그러나 열병에서 회복되고 난 후에 매리앤은 비로소 이성적이고 ‘정상적’으로 사고를 하게 되었지만(252) 활력을 잃고 무기력해 보인다. 브랜든이 젊은 시절에는 일라이저만큼이나 감수성의 소유자였다 해도 현재의 그는 매리앤에게 근엄하고 따분해 보이듯이, 열병을 앓고 난 후 감수성이 제어되고 순종하는 신체를 갖게 된 매리앤도 활력과 개성을 상실하고 더 이상 매 력적이지 않다. 열정적 감수성을 억제하고 의무를 수행하는 절제된 신체를 갖게된 매리앤은 비로소 아버지뻘이라고 여겼던 부유한 브랜든과 결혼한다. 그러나 분별력을 갖추게 된 매리앤은 윌러비에 대한 기억은 상황이나 인생관이 변해도 지울수가 없을 것이고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은 여전히 윌러비일 것이라고 암시한다.

    쥘리와 베르터가 자신의 관능성과 열정을 간직한 채 낭만적인 죽음에 이르는 것과는 달리 매리앤은 신체적인 처벌을 받은 후에 일탈적인 감수성이 제어된 여성으로 ‘성장’하고 타락한 애인 윌러비가 아닌 도덕적인 남편 브랜든과 ‘행복한’결혼을 한다. 그러나 아내와 지주의 안주인으로서 의무를 수행하는 매리앤과 브랜든의 결혼은 볼마르와 쥘리, 알베르트와 로테의 결혼처럼 서로에 대한 성적인 끌림이 결핍되어 있는 형식적인 것으로서 이 결혼에서 욕망의 충족은 사실상 불가능하다.14 쥘리가 생 프뢰에 대한 사랑을 간직하고 죽듯이 윌러비는 여전히 매리앤의 열정의 대상이고 시민적 도덕성은 브랜든의 속성으로 분리되어 있다는 점에서『지성과 감성』은 루소와 괴테의 감수성소설의 삼각관계의 기본틀을 유지하고 있다. 또한 델라포드(Delaford)의 영지가 일라이저의 희생과 착취를 토대로 해서 번성하고 있다는 점에서 매리앤과 브랜든 대령이 엘리너와 에드워드 부부와 교류하는 행복한 결혼생활에는 젠트리계층의 부도덕의 그늘이 드리워져 있고, 매력과 활력이 현저히 감소된 매리앤의 ‘성장’은 ‘반성장’으로보이는 것을 피할 수 없다.

    9『맨스필드 파크』에서 등장인물들이 공연하는 엘리자베스 인치볼드의『연인들의 맹세』(Lovers’Vows)는 원래 코체부의『사생아』(Das Kind der Liebe, 1790)를 영어로 번역한 것이었다. 혼외관계가 담긴 이 연극에 대한 거부 여부가 등장인물의 도덕성의 잣대로 여겨 진다는 점에서『맨스필드 파크』는 오스틴의 보수성을 보여주는 작품으로 여겨진다.  10버틀러는 급진주의자들이 감수성을 경계한 것은 이들이 대체로 청교도적인 전통을 갖고 있는 중하층계급 출신의 비국교도로서 성적 자유를 혁명의 한 부분으로 보는 것을 거부했기 때문이라고 본다(Butler 43).  11퍼킨스는 지적인 분석능력을 지닌 철학자의 면모를 보이는 엘리너는 오스틴이 존경하던 새뮤얼 존슨(Samuel Johnson)과 같은 남성 학자의 모습을 보인다는 점을 지적한다(Perkins 15-35).  12오스틴은 상대 남성은 아무런 피해를 입지 않고 여성의 죽음만을 요구하는 감수성 소설의 결말의 구성에 저항하기 때문에 매리앤과 일라이저 모녀는 첫 번째 사랑의 실패에도 불구하고 죽지 않고 살아난다고 죤슨은 지적한다(Johnson 68-69).  13윌트셔는 직관과 인간의 영혼의 타고난 선량함을 믿는 낭만주의자인 매리앤의 시와 음악에 대한 열정과, 겉치레 예절과 외교적 언사에 대한 경멸은 단순히 관념이 아닌 생리적으로 조건화된다는 점을 지적한다(Wiltshire, Jane Austen and the Body 30-31).  14태너는 매리앤을『플로스강의 물방앗간』(The Mill on the Floss)과『폭풍의 언덕』(Wuthering Heights)의 여주인공과 비교하면서 열병에 걸린 매리앤이 사실상 죽었다는 점을 알면서도 오스틴은 그녀를 억지로 다시 사회에 적응하도록 함으로써 열정 때문에 빚어지는 사회와 불화 관계를 철저히 탐색하지 못했다고 말한다(Tanner 100-01).머드릭도 매리앤의 활력과 열정은 윌러비에게 배신당한 것이 아니라 감정에 대한 헌신을 사회관습에 대한 무미건조한 순종으로 대체한 오스틴의 인습성에 의해 배신당했다고 말한다(Mudrick 91-93).

    IV.『 오만과 편견』―성장과 정상의 역설

    오스틴의 모든 소설은 외적으로는 구애와 결혼이라는 낭만적인 소재를 다루고 있지만 심층적으로는 결혼이 철저히 물질적인 조건에 좌우된다는 것을 밝히는 반낭만적인 것이라는 점은 잘 알려져 있다. 윌러비가 돈 많은 그레이 양과 결혼하기로 하자 제닝스 부인은 그가 신의는 저버려도 물질적인 쾌락은 저버릴 수 없는 남자라고 비난하지만 사실 윌러비가 오스틴의 소설 세계에서 특별히 부도덕하다고 할 수 없다. 이 세계에서는 대부분의 남성들이 가계규모를 줄여서 사랑하는 여자와 결혼하기보다는 정략결혼을 선택하기 때문이다. 고결한 성품의 소유자인 에드워드 페라스조차도 엘리너와 결혼하기로 한 후에 연 수입 350파운드로 편안한 삶을 살 수 없다고 여기고 상속을 받기위해서 어머니와 굴욕적으로 화해한다(269). 그러므로 에드워드와 다르게 사교적이고 방탕해서 늘 경제적으로 쪼들리는 윌러비와 위컴에게 안락한 삶을 유지하기 위한 정략적인 결혼은 선택이 아닌 필수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오스틴은『오만과 편견』에서 이 남성들보다 더 절박한, 지참금이 적은 여성들의 경제적 박탈상태를 집요하게 파헤친다. 제인이 감기에 걸려서 빙리와 만날 수 있도록 말을 태워 보내는 ‘목숨을 건’모험을 하도록 하고, 베넷 씨 앞에서 콜린즈(Collins)와 결혼하라고 엘리자베스를 다그치는 베넷 부인의 행동은 희극적이지만 역설적으로 바람직한 결혼이 토지 상속을 받을 수 없는 젠트리 계층 여성의 생존에 얼마나 필요한지를 강조한다. 그러므로 롱본(Longbourn)의 저택과 영지를 상속받게 되고 목사라는 안정된 직업을 얻은 콜린즈의 청혼을 엘리자베스가 거절하는 것은 그녀가 보편적이고 이성적인 기준에 따라 판단을 하지 않는 일탈적인 여성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제인을 보기 위해서 비 온 후 더러운 길을 혼자서 걸어온 엘리자베스는 빙리 양(Caroline Bingley)이 조롱하듯이 신경이 예민하고 연약한 척하는 당대 숙녀의 기준을 따르지 않고 “오만해 보일 만큼 독립심”(36)을 과시하는 일탈적인 여성이다.

    재산과 신분을 중요한 조건으로 여기는 결혼에 대한 당대의 보편적인 진리에 저항하는 엘리자베스는 매리앤처럼 감정적인 요소를 판단의 기준으로 삼는 감수성의 주인공이다. 그러므로 그녀는 좋은 인상과 능란한 화술을 지니고 있지만 영지도 없는 가난뱅이 위컴에게 연정을 보이고 일 년에 만 파운드의 수입을 지닌 다아시의 청혼을 거절한다. 다아시의 질투 때문에 성직을 빼앗겼다는 위컴의 거짓말을 엘리자베스가 무비판적으로 수용하는 것은 메리턴(Meryton)의 무도회에서 처음 만났을 때 자신을 유혹할 정도로 예쁘지 않다는 다아시의 말에 적대감을 갖고 있던 차에 잘생긴 위컴이 자신을 편애하기 때문이다. 엘리자베스의 감수성이 이미 위컴을 편애하는 상황에서 제인과 빙리 양의 반박은 그녀의 이성적 판단에 아무런 효력을 발휘하지 못한다. 오히려 죠지아나(Georgiana Darcy)를 보호하려고 다아시가 위컴과의 관계를 비밀에 부쳤기 때문에 이들의 관계를 정확히 알지 못하는 빙리 양이 집사 신분의 아버지를 둔 위컴은 명예롭게 행동 하기 어렵다는 점을 강조하자(93) 엘리자베스는 신분에 집착하는 다아시와 빙리양에게 ‘무시당하는’위컴에게 더욱 더 연정을 느낀다.

    감수성의 지배를 받는 엘리자베스와는 대조적으로 샬럿(Charlotte Lucas)은 유리한 결혼이라는 목표를 위해서 감정을 과장하거나 조작할 수 있어야 한다고주장한다. 샬럿은 제인이 빙리에 대한 애정을 감추려 한다면 그를 놓치게 될 것이므로 실제로 느끼는 것보다 감정을 더 적극적으로 드러내서 그의 구애를 도와야 한다고 충고한다(22-23). 샬럿의 관점에서 보았을 때 제인의 태도는 남편을 구해야 하는 여성의 목적의 달성에 도움이 되지 못하는 소극적인 행동이다. 부유한 남편을 얻는 목적을 위해서는 여성이 감정을 실제보다 과장해서 적극적으로 표현해야 한다는 샬럿의 말은 여성이 남성을 조종할 수 있어야 한다는 암시를 담고 있다. 실제로 그녀는 콜린즈가 엘리자베스에게 퇴짜 맞자마자 그의 비위를 맞추어서 곧 청혼을 이끌어내는데 성공한다. 행복의 가망성이 불확실해도 결혼은 교육을 잘 받았지만 재산이 별로 없는 처녀를 궁핍에서 벗어나게 해주는 유일한 대책(120)이라는 샬럿의 책략적인 결혼관은 대부분의 젠트리 계층의 여 성들이 갖고 있는 정상적인 관념이었다.

    이 결혼에 대해서 엘리자베스가 분노하는 겉으로 드러난 이유는 분별력이 있다고 여겼던 샬럿이 순전히 결혼이라는 안식처를 얻기 위해서 낭만적인 감정을 무시하고 존경할 수 없는 남자를 선택한 것에 대한 충격이다. 그러나 샬럿이 콜린즈의 아내가 되어서 롱본을 접수할 것이라는 미래의 전망에 대한 베넷 부인의 비이성적인 공포(127-28)를 무의식적으로 공유하는 것 같은 엘리자베스의 분노에 대해서 제인은 그녀의 언어가 너무 과격하다는 점을 지적한다(133). 오스틴도 경제적 안정을 위해 킹 양(Miss King)에게 관심을 돌린 위컴에 대해서는 잘생긴 남자도 먹고 살아야 한다면서 관대하게 봐주면서 동일한 행동을 한 샬럿에게 분노하는 엘리자베스의 행동을 두고 위컴에 대한 그녀의 판단이 명석하지 못했다고 지적함으로써 그녀의 감수성의 비이성적인 측면을 문제 삼는다(147). 감수성에 좌우되는 엘리자베스의 판단이 오류를 가져올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중요한 경우는 확고함과 주체적인 판단력을 결여하고 친구에게 쉽게 설득당하는 빙리를 그녀가 정이 많고 우정을 중시하는 좋은 성격의 소유자라고 칭찬하는 대목이다.

    제인을 만나러 온 베넷 부인에게 마음만 먹으면 5분 만에 네더필드 파크(Netherfield Park)를 떠날 수 있다고 한 빙리의 말에 대해 다아시는 만약 친구가 가지 말라고 하면 그가 마음을 바꾸어서 가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빙리가 친구의 말 한마디에 곧 결심을 바꾸는 주관이 확고하지 않은 성격이라는 점을 비판하는 다아시에 반발해서 엘리자베스는 빙리가 친구와 우정을 소중히 여기는 따뜻한 성품의 소유자라고 주장한다. 다아시는 그 친구가 합당한 이유도 대지 않고 가지 말라고 했는데도 빙리가 쉽게 받아들인다면 그것이 올바른 행동인지 의문을 제기한다. 그러나 엘리자베스는 친구의 설득에 쉽게 넘어가서 의견을 바꾸는 빙리가 우정을 중시하고 정이 많다는 감정적인 관점에서 그를 칭찬하면서도 빙리의 행동이 현명했는지를 논할 만한 적절한 상황이 발생할 때까지 기다려서 판단을 내리자고 한다.

    런던에 간 빙리 양이 빙리를 죠지아나와 결혼시키려 한다는 편지를 보내자 엘리자베스는 누이와 다아시의 계략에 줏대 없이 휘둘리는 빙리에 대해 분노한다. 다아시는 빙리가 자신의 판단에 크게 의지하기 때문에 하트퍼드셔로 돌아가지 못하게 그를 설득하는 것은 너무 쉬웠다고 말한다(192-93). 엘리자베스는 빙리가 단호하지 못해서 자신의 행복을 희생시키고 있다고 제인에게 말하는데(131),이것은 쉽게 설득당하는 빙리의 성품이 친구에 대한 우정을 보여주는 장점이라고 한 앞선 자신의 칭찬과 모순되는 것이다. 엘리자베스는 자신의 근친인 제인의 행복이 걸린 중대한 문제가 발생하자 비로소 친구의 의견에 휘둘리지 않고 확고해야 한다는 다아시의 지적이 옳았다는 것을 스스로 인정하는 셈이다. 그러므로 앞서 엘리자베스가 빙리를 옹호한 것은 그가 제인에게 호의를 보이고 있다는 것과 엘리자베스 자신이 다아시를 미워한다는 두 가지 사실에 영향을 받은 감상적인 의견으로서 오류가 있다.

    감정을 중시하는 엘리자베스의 감수성은 오류를 초래하기도 있지만 직관력과 상황을 적극적으로 변화시키는 힘을 갖고 있다. 빙리의 우유부단함에 대해서 분노하는 엘리자베스에게 제인은 빙리 양이 자기와 빙리를 때어놓지 않았을 것이라며 빙리 양을 옹호한다. 그러나 빙리는 누이와 다아시의 조종을 받고 네더필드에 돌아오지 않았다는 것이 나중에 밝혀진다. 엘리자베스의 감상성의 극단적인 측면을 거부하는 제인은 모든 사람들이 선량한 동기를 갖고 행동한다고 여기며 온건한 판단을 내린다. 그러나 마코비츠가 지적하듯이 수동적인 제인의 행복은 운의 산물이고(Markovits 783-84), 적극적인 행동을 통해서 행복을 쟁취하는 엘리자베스의 노력 덕택에 얻어진다.

    엘리자베스에게 보낸 편지에서 다아시는 제인의 표정과 태도가 평온해서 빙리에게 무관심한 것으로 판단하고 제인과 결혼하지 말도록 설득했다는 것을 인정한다. 다아시는 남자가 애정을 보이면 여자도 그에 상응하는 애정 표현을 해야 한다고 여기므로 제인이 빙리의 애정에 반응을 보이지 않은 것이 자신의 잘못된 판단을 유도했다고 주장한다. 구애 대상인 여성의 솔직한 감정 표현을 상대 남성의 확신을 불러일으키는 데 중요한 요소로 여기는 점에서 다아시는 샬럿과 동일한 관점을 보여주지만 다아시는 샬럿과는 다른 이유 때문에 감정의 표현을 옹호한다. 샬럿은 결혼시장에서 불리한 처지에 놓인 여성이 부유한 남성을 사로잡기 위한 책략으로서 감정의 적극적인 표현을 권유한다. 반면에 다아시는 여성은 수동적이고 허약하며 정숙하게 애정을 감추고, 지성의 계발은 도외시한채 다만 결혼을 잘하기 위해 자질구레한 교양을 쌓아야 한다는 전통적이고 보편적인 여성관에 도전한다. 그러므로 다아시는 그의 비위를 맞추려고 애쓰는 빙리 양이나, 온실의 화초처럼 창백하고 기운 없는 앤 드 버그(Anne de Bourgh) 양에게 매력을 느끼지 못하고 자기 의견이 확고하고 독립적이어서 보편적인 여성상에서 벗어난 엘리자베스에게 매력을 느낀다. 진흙탕길을 걸어와서 치맛단이 더러워진 엘리자베스를 보고 빙리 양은 충격을 받지만 다아시는 그녀에게서 운동으로 생기 넘치는 모습을 발견하고, 자신의 말에 건방져 보일 정도로 대꾸하는 그녀에게 눈을 떼지 못한다.15 다아시가 인습적인 틀을 벗어나는 일탈적인 여성을 처음부터 선호하는 것은 아니다. 메리턴의 무도회에 처음 등장했을 때 다아시는 이미 알고 있던 빙리 자매와만 춤을 추고 다른 여성과 교류하기를 거부하는데 이것은 그가 전통적인 여성관을 고수하려 한다는 것을 시사한다. 그러나 건강하고 활기 넘치는 엘리자베스에게 끌리면서 다아시의 여성관도 인습성을 벗어나게 된다. 루소와 괴테의 감상소설에서 남편이 도덕적이지만 관습의 틀을 벗어나지 못하고, 브랜든 대령도 과거에 감수성의 남성이었다는 주장을 무색해 보이게 할 정도로 따분해 보이는 것과는 다르게 다아시는 삼각관계에서 남편이지만 낭만적인 애인처럼 기존 질서에 도전적이고 매력적인 모습을 보여주기 시작한다.

    다아시가 감수성을 수용하면서 인습적이고 경직된 모습을 점차 탈피하듯이 다아시의 편지를 받고 난 후 엘리자베스도 빙리를 판단하는 기준이었던 우정이나 위컴을 판단하는 기준이었던 외모와 사교적인 태도와 같은 감상적이고 주관적인 요소는 잘못된 판단을 초래할 수 있다는 것을 인식한다. 엘리자베스는 샬럿과 다아시와 같은 제 삼자의 객관적인 입장에서 보면 제인이 빙리에게 충분히 감정을 드러내지 않았고, 위컴의 도덕성을 뒷받침하는 어떤 검증된 사실도 없는데도 외모와 화술 때문에 그를 도덕적이라고 믿게 되었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녀는 위컴이 보이는 편애에 만족하고, 다아시가 자신을 무시하는 것에 불쾌해져서 스스로 선입관과 무지를 초래했고 이성을 쫓아냈다는 것을 인정한다(202). 사실 엘리자베스는 불안한 미래를 어머니로부터 끊임없이 상기 받기 때문에 매리앤처럼 감수성에 탐닉할 여유가 없고, 그녀의 감수성은 기꺼이 이성에 의해 제어되어질 준비가 되어 있다. 그러므로 위컴이 다아시를 피하려고 네더필드의 무도회에 불참석했다는 말을 듣고 불쾌감은 커지지만 위컴에 대한 연정 때문에 그보다 열배나 더 중요한 다아시의 기분을 상하게 하지 말라는 샬럿의 현실적인 충고를 무시하지 못하고 춤을 추자는 청을 무의식적으로 받아들인다(89). 특히 가드너 부인(Mrs. Gardiner)이 위컴을 편애하는 것이 경솔하고 한사상속으로 불안정한 베넷씨도 엘리자베스가 가난뱅이와 결혼하기를 원치 않을 것이라는것을 암시하자(142) 엘리자베스는 지금까지 위컴에 대해 가졌던 연애감정이 종식되어야 하고 자신의 감수성이 검열되어야 한다는 것을 직감한다. 따라서 윌러비의 배신에 매리앤이 죽음의 문턱에까지 가는 것과는 다르게 엘리자베스는 상속녀인 킹 양에게 위컴이 관심을 돌렸을 때 자신이 돈이 많았으면 그가 자기를 선택했을 것이라면서 관대한 반응을 보인다. 피쯔윌리엄 대령(Colonel Fitzwilliam)이 차남은 결혼을 통해서 재정적 안정을 추구해야한다는 것을 암시하는 시점에 이르러서 엘리자베스는 낭만적인 감수성만을 추구하는 이상적인 결혼이 현실에서 불가능하다는 것을 분명히 인정하게 된다. 샬럿과 달리 결혼에서 경제적 안정과 낭만을 동시에 추구하는 엘리자베스는 위컴과 피쯔윌리엄 대령처럼 자산이 없는 남자와 결혼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확인하고 난 후에 다아시가 감수성과 열정을 갖춘다면 그의 청혼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다.

    다아시는 애인인 위컴으로부터 성적인 매력을 탈취하기 시작하면서 다른 감수성소설에서 볼 수 없었던 매력적인 남편으로 변화한다. 녹스 쇼가 지적하듯이『오만과 편견』에서 성적인 매혹은 애매한 만큼이나 웅변적으로 표현되어 있고 이것은 겉으로는 싫어하는 것처럼 행동하지만 무의식적으로는 서로에게 강하게 이끌리는 다아시와 엘리자베스에게 가장 잘 드러나 있다(Knox-Shaw 88). 그러나 성욕을 드러내는 것이 허용되지 않던 당대의 관습에 따라 오스틴은 성에 대한 언급을 거의 하지 않고 성적 욕망을 다른 상징적인 행동으로 치환한다. 앨런은 당대의 점잖은 예법에 따라서 오스틴의 주인공들의 상호 이끌림은 사회적으로 용인되는 욕망의 배출구인 춤과 응시와 같은 행위로 치환되어 있다는 점을 지적한다(Allen 426). 메리턴의 무도회에서 다아시는 엘리자베스가 자신을 유혹할 만큼 충분히 아름답지 않다면서 춤추기를 거절하지만 그 후에 그는 계속 춤을 청하는데 다아시의 끈질긴 청은 점차 그녀에게 끌리는 것을 의미한다. 위컴을 완전히 자신에게 반하게 만들려고 네더필드의 무도회에 보통 때보다 더 신경써서 예쁘게 치장하고 가는 엘리자베스에게도 춤은 욕망을 간접적으로 표현하는 방식이다. 다아시는 오스틴의 다른 어떤 주인공보다 언어를 통해 표현이 금기시된 욕망을 응시를 통해서 간접적으로 표현한다. 끊임없이 자신을 응시하는 다아시의 시선을 의식하고 있는 엘리자베스는 그가 자기를 흠잡으려고 한다고 오해하지만 사실 그의 응시는 아름다운 눈에 매혹된 그의 욕망의 배출구의 역할을 한다. 엘리자베스와 춤추기를 거절한 직후부터 다아시는 끊임없이 그녀에게 욕망의 시선을 보내고, 그녀가 네더필드로 제인을 간호하러 오자 그녀가 계속 머무르면 완전히 매혹당할까 두려워한다. 헌스퍼드(Hunsford)에서 엘리자베스를 다시 만난 다아시는 더욱 그녀에게 열정적으로 이끌린다. 로징스 파크(Rosings Park)에서 피쯔윌리엄 대령의 청으로 피아노를 치는 엘리자베스에게 가까이 와서 감상하고, 다음날 그녀가 혼자 있을 때 방문해서 이번에도 의자를 끌어당겨서 그녀 가까이 가는 것은 그가 욕망을 점점 억제하기 어려워진다는 것을 나타낸다(170, 175). 우튼은 오스틴이 바이런적인 낭만적 주인공을 창조하고 난 후 바이런의 시와는 달리 그를 사회적 규범에 적응하도록 했는데 그 대표적인 경우가 다아시라고 말한다.16 다아시는 자신의 의식적인 통제를 벗어나려는 욕망의 존재에 초조해하며 낭만적 열정에 찬 바이런 시의 주인공처럼 억제된 열정을 분출하며 청혼한다. 그러나 신분의 열등이 정신의 열등을 수반하지 않는다고 여기는 엘리자베스는 자신의 가족의 열등한 신분을 지적하는 그의 청혼을 거절한다. 그러므로 엘리자베스가 받아들일 수 있는 합당한 배우자가 되기 위해서 다아시는 계급적 우월감을 버리고 부르주와 계급과의 융합을 받아들여야한다.

    스태시오와 던컨은 여성은 남성에게 종속되어야 한다는 기독교 교리에 기반한 결혼관이 18세기부터 진화심리학(evolutionary psychology)에 바탕한 더 세속적인 동반자적 결혼관의 선호로 바뀌기 시작했고 이것은『오만과 편견』에서 가장 잘 드러난다고 말한다(Stasio and Duncan 134-39). 진화심리학의 관점에서 여성은 결혼 상대자가 경제적 능력을 갖추고 가족을 보호할 수 있는지, 또 좋은 매너를 보이고 관대하며 지성적인지의 여부를 중시한다. 다아시는 메리턴의 무도회에서 엘리자베스와 춤추기를 거절한 때부터 매너가 좋지 않은 남자로 여겨지기 때문에 그가 바람직한 배우자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좋은 매너와 관대함을 증명해 보여야한다. 그는 런던의 뒷골목을 뒤져서 위컴의 빚을 갚아주고 리디아와 결혼을 성사시키고, 죠지아나에게는 헌신적인 오빠로서의 모습을 보임으로서 베넷씨보다 더 책임 있는 가장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엘리자베스에게 보여준다. 로징스 파크에서 엘리자베스는 피아노에 능숙하지 않은 자신이 연습이 필요한 것처럼 다아시도 계급적 배타성을 버리고 자신과 같은 부르주와 계급을 받아들이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암시한다(171). 다아시는 그녀의 말에 따라서 가드너 부부를 펨벌리에 초대함으로써 부르주와 계급과 융합을 수용하려는 의지를 보여준다. 그러므로 펨벌리를 보고 다아시를 사랑하기 시작했다는 엘리자베스의 농담은 계급적 타협을 수용한 다아시를 자신이 선택할 수 있는 가장 이상적인 배우자로 확신하게 되었다는 것을 내포하고 있다.

    제인이 감정을 절제하며, 빙리는 다아시의 판단에 의지하는 소극적인 인물이라는 점에서 이들은 엘리너와 에드워드의 관계와 흡사하다. 그러나 매리앤과 브랜든 커플과 유사한 엘리자베스와 다아시의 관계는 많은 변화를 보인다. 매리앤과 달리 엘리자베스는 감수성을 자기검열해서 통제할 수 있고, 중년의 브랜든이 매리앤의 열정을 불러일으키지 못하는 감수성의 잔해에 불과하다면 다아시는 젊고 열정적인(a man violently in love 346) 연인이다. 윌러비는 감수성을 가장한 방탕아이고 경제적 안락을 위해 낭만적 사랑을 희생하지만 타인에 대한 중상모략을 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엘리너는 사경을 헤매는 매리앤에게 사죄하기 위해서 런던에서 달려온 윌러비의 진심을 확인한 후 면죄부를 부여하고, 매리앤은 자신을 버린 그를 여전히 열정적인 애인으로 기억한다. 반면에 위컴은 다아시와 관계에 대해서 거짓말을 한다는 점에서 윌러비보다 더 타락한 유형의 애인이고, 오직 천박한 본능만을 소유한 그의 악행에는 어떤 변명도 허용되지 않으 며 끝까지 그는 펨벌리라는 유토피아로부터 배제된다.

    오스틴은 감수성이 강한 여주인공과 애인의 관능적인 열정이 비극으로 끝나고, 시민적인 도덕성을 갖춘 남편과 아내의 성적인 이끌림이 배제된 의무적인 결혼을 현실에서의 이상으로 제시하는 루소와 괴테의 감상소설의 구도를『오만과 편견』에서 전복시킨다. 샬럿과 콜린즈의 결합은 성격과 기질이 얼마쯤 일치하며 열정을 결핍한 남녀가 사회적인 의무 수행을 위해 결혼하는 부르주와 계급의 결혼의 전형을 보여주는데 이것은 볼마르와 결혼한 쥘리가 생 프뢰에게 보낸 편지에서 옹호한 결혼관과 일치한다. 그러나 엘리자베스는 샬럿의 결혼을 속물적으로 여기고 비판한다는 점에서 사회적인 책임과 의무를 강조하는 쥘리의 결혼관에 저항한다. 루소와 괴테의 소설에서 애인과 여주인공의 이루어지지 못한 결합은 여주인공과 남편의 이루어진 결합보다 더 낭만적인 가능성으로 남아있기 때문에 비극적인 결말은 필연적이다. 그러나『오만과 편견』은 시민적 의무의 수행과 도덕성과 열정을 모두 다아시의 속성으로 인정하기 때문에 행복한 결말이 가능해진다. 다아시와 엘리자베스의 결합으로 일탈적인 욕망은 순화되어 가정의 영역으로 수렴되면서 가정은 낭만적이면서 이성에 의해 절제된 이상적인 공간이 된다.

    그러나 엘리자베스의 행복한 결혼은 역설적으로 완전한 행복의 포기와 욕망의 억제를 통해서 가능하고, 기대된 욕망의 충족은 불완전하기 때문에 완전한 욕망의 충족은 기약 없이 미래로 지연될 것이라는 점이 암시된다.

    군인들이 메리턴을 떠나면 만족스러울 줄 알았지만 어머니와 키티(Kitty)가 낙이 없어졌다고 불평하고 브라이튼(Brighton)에 간 리디아는 군인들과 어울리면서 더 어리석어질 것이라는 우울한 생각을 하는 엘리자베스는 기대했던 만족이 오지않는다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엘리자베스는 호반 지방으로 여행을 가자는 가드너 부부의 제안이 행복을 가져올 것이라고 기대를 한다. 그러나 완벽하게 행복할 것이라는 기대는 큰 실망을 가져오기 때문에 제인이 같이 가지 않는다는 불완전함이 있으면 기대도 크지 않아서 적당히 만족할 수 있고 실망을 막아줄 것이라고 스스 로를 위로한다. 완벽한 행복을 기대하지만 그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경험의 법칙으로 알게 되어서 이제 그녀는 완벽한 행복을 기대하기 보다는 욕망을 억제함으로써 실망하지 않게 될 것이다. 욕망의 완전하고 즉각적인 충족을 추구하면 가난과 불행이 주어지고, 욕망의 완전한 충족을 포기했을 때 행복은 주어지지만 그 행복은 불완전하기 때문에 끊임없이 새로운 욕망에 대한 기대를 일으키고 완전한 욕망의 충족은 기약 없이 미래로 지연된다는 법칙은 작품 전체에서 발견된다.

    욕망 없이 조건만 보고 결혼한 샬럿과 콜린즈의 결혼이 진부한 반면에 엘리자베스와 다아시의 관계가 매력적인 것은 이들의 사랑에서 욕망이 중요한 요소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계급적인 특권을 유지하기 위해서 욕망은 길들여지고 절제되어야 한다. 특히 도덕적 평판에 여성의 교환가치가 좌우되는 남성중심사회에서 젠트리계층 여성의 성적 욕망은 일순간에 가족에게 불명예를 가져오고 그녀자신은 안락하고 보호받는 중상계급에서 추방될 수 있기 때문에 이들은 감수성과 욕망을 통제하도록 요구받는다. 일탈을 제어하는 분별력과 지성을 갖추고 있는 엘리자베스와는 달리 리디아는 분별력이 없는 미숙한 정신과 동물적인 본능만을 소유하고(She had high animal spirits 45) 있다는 점에서 위컴과 같은 종류의 인물이다.17 욕망을 절제하지 않기 때문에 위컴은 가는 곳마다 빚을 지고,리디아는 빚쟁이로부터 도망치는 위컴이 자기를 좋아하는 줄 알고 사랑의 도피행을 한다. 리디아가 위컴과 도망갔을 때 공포에 질린 엘리자베스는 위컴과 결혼하지 못한 리디아가 처할 수 있는 두 가지 상황을 가정하는데 첫째는 매춘부가 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사교계를 떠나 시골에 은둔해서 잊혀지는 것이다(293). 물론 전자가 가문에 더 치욕적이겠지만 두 가지 모두 아버지의 사후에 집에서 쫓겨나야 하는 남은 4명의 딸들의 유망한 결혼의 전망을 암울하게 만들 것이다. 엘리자베스는 리디아와 위컴이 미덕보다 열정이 강해서 도망쳤기 때문에 영속적인 행복이 가능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하는데(296) 이것은 그녀가 욕망의 억제를 행복의 전제 조건으로 인정하게 되었다는 것을 알려준다. 욕망을 부인해야 그것이 충족된다는 것을 인식하지 못하기 때문에 리디아는 사랑과 재정모든 면에서 결핍을 겪게 된다는 앨런의 지적처럼(Allen 437) 결말에서 위컴과 리디아는 수입은 불충분하고 결혼생활은 만족스럽지 않은 부부로 남게 된다. 반면에 욕망의 즉각적인 충족을 억제하고 빙리와 다아시와 결혼의 전망을 단념한 제인과 엘리자베스에게는 행복하고 풍족한 결혼이 보상으로 주어진다.

    리디아가 도망간 후 유리한 결혼의 전망이 위협받자 엘리자베스는 아버지에게 가장으로서 책임 있게 가족을 통제할 것을 요구하고 그녀 자신도 이전에는 자유롭게 구사했던 위트와 감수성을 제어하려고 한다. 엘리자베스의 감수성과 위트가 지닌 잠재적인 다층성과 전복의 힘이 다아시의 판단력 아래에 포섭되는 과정은 그녀가 일탈을 떨치고 성장하는 과정으로 제시된다.18 감수성의 과잉을 억제하고 달성된 엘리자베스의 성장은 펨벌리가 상징하는 상류층과 베넷 부인의 아버지와 필립스 씨(Mr. Philips), 가드너 씨가 각각 상징하는 변호사와 상인으로 이루어진 전문직업을 가진 신흥부르주와 계급의 타협과 병행된다. 작품에서 상류층은 다아시와 캐서린 영부인처럼 오만하고 권위적이고 경직되어 있거나, 앤 드 버그처럼 생기 없고 허약하다. 캐서린 영부인은 앤을 다아시와 정략결혼시키려고 하지만 이들의 결혼은 이미 지나친 순혈주의와 동종교배로 화석화된 상류층의 생존을 위협하는 것이 될 것이다. 따라서 계급으로서 생존을 유지하기 위해서 상류층은 부르주와 계급으로부터 활력을 공급받아야 할 필요성에 직면하고 있다. 다아시가 앤 드 버그에게 매력을 느끼지 못하고 활력이 넘치는 부르즈와 계급 출신의 엘리자베스를 선택하는 것은 프레이먼의 주장처럼 상류층의 허약함을 인식하기 때문이다(Fraiman 186). 엘리자베스와 다아시의 결혼을 반대하는 캐서린 영부인은 베넷 부인과 그녀의 형제들의 신분을 문제삼는데 이것은 그녀가 신흥 부르주와가 상류층에 침투하는 것에 대해서 극도로 경계하기 때문이다(337). 엘리자베스의 외숙이 런던의 치프사이드(Cheapside)19에서 장사를 한다는 소식에 다아시도 그녀가 전망 좋은 결혼의 가능성이 줄어들 것이라고 말한다(37). 그러나 다아시는 엘리자베스와 결혼에 걸림돌이라고 여겼던 장사하는 가드너 부부를 그녀의 친척 중에서 가장 분별력 있고 대화가 가능한 상대로 인정하게 되는데, 이들의 분별력의 단면은 가드너 부인의 결혼관에서 엿볼 수 있다. 엘리자베스가 가난한 위컴과 결혼하는 것이 신중하지 못하다고 경고했던 가드너 부인은 부유해진 킹 양에게 구애하는 위컴에 대해서 결혼에서 돈이 가장 중요한 요소이지만 구애할 때 돈이 목적이 아닌 것처럼 보이도록 예절이라는 포장을 요구한다(151). 분별력 있는 부르주와 계급을 대변하는 가드너 부인의 결혼관은 영지의 확장과 기득권 수호를 위해 정략결혼을 추진하는 캐서린 영부인의 결혼관과 다를 바 없이 물질적이고 가식적이다.

    다아시 부부가 가드너 부부를 사랑하고 감사한다는 구절로 마무리되는『오만과 편견』의 결말은 엘리자베스와 다아시의 결혼이 신성한 펨벌리의 숲을 상인과 변호사 그리고 위컴의 아버지의 직업이었던 집사와 같은 낮은 계층에 의해 오염시킬 것이라는 캐서린 영부인의 주장을 보기 좋게 반박하고 펨벌리는 부르주와와 상류층의 행복한 융합의 장소로 보인다. 또 엘리자베스의 활기로 다아시의 딱딱함이 누그러지고 태도가 개선될 것이고, 다아시의 판단과 세상에 대한 지식을 통해서 엘리자베스는 이익을 얻게 될 것이라는 전망은 이들의 결혼이 권위주의와 순혈주의로 활력을 잃어가는 상류층과 권위를 필요로 하는 부르주와 계급의 상호이해를 충족시키는 것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그러나 계급간의 융합은 상류층이 자신들처럼 물질적인 가치관을 갖고 있는 부르주와계급 일부에게 문호를 개방한 것에 불과하고, 다른 하위 계층이 배제된 폐쇄적인 이 연합에는 사회의 공동선과 같은 대의명분은 존재하지 않는다.20 일탈적인 감수성과 욕망을 억제함으로써 획득된 엘리자베스의 성장은 본질적으로 젠트리 계층의 안락을 보장받기 위한 사회화에 다름 아니다. 그러므로 펨벌리에서 엘리자베스의 행복은 불완전하고 욕망의 충족은 기약 없이 미래로 지연될 것이며, 그녀의 부르주와적 감수성은 제어되고 활기를 상실할 것이라는 전망을 낳는다.21

    15스태시오와 던컨은 다아시가 당시 이상적인 여성인 창백하고 기운 없는 미인도 아니고, 경제적으로 궁핍하고 신분도 열등한 엘리자베스를 선택한 것은 그가 당대의 유행보다는 여성의 신체적, 유전적 우월성을 배우자의 조건으로 여기는 진화심리학의 원칙을 무의식적으로 따르고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이들에 따르면 다아시가 사회적 기준으로는 그의 적합한 짝인 앤 드 버그 양을 선택하지 않고 엘리자베스를 선택하는 것은 그녀가 운동으로 혈색이 좋아져서 건강해 보이고 다산의 가능성이 있어서이다(Stasio and Duncan 138).  16우튼은 다아시가 바이런의 동양에 대한 시인 The Corsair나 The Giaour에 등장하는 오만하고 고고한 낭만적 주인공에 비견될 수 있고, 다아시의 바이런적인 특성이 그를 영문학에서 가장 매력적이고 상상력을 자극하는 인물로 만들고 있다고 말한다(Wootton 35).  17이젤은 리디아의 동물적인 활기와 매력적인 태도는 다아시를 사로잡는 엘리자베스의 활발함과 매력적인 희롱조의 말투와 유사하다는 것을 지적한다(Yeazell 132-33). 윌트셔도 베넷 부인과 그녀가 가장 사랑하는 딸인 리디아가 공유하는 힘, 특히 성적인 힘을 지적하며 엘리자베스도 완화된 형태로 이들의 활력과 건방진 태도를 공유한다고 지적한다(Wiltshire, “Mrs. Bennet's Least Favorite Daughter”179-87). 신흥 부르주와계급 출신인 베넷 부인이 보여주는 건방진 태도와 활기를 리디아와 공유하는 엘리자베스는 그녀처럼 위컴과 사랑에 빠진다. 그러므로 윌러비에 의해 타락하는 일라이저 윌리엄스가 매리앤의 대리자아인 것처럼 리디아의 타락은 엘리자베스의 감수성의 위험을 경고하는 대리타락이라고 할 수 있다.  18스튜어트는 엘리자베스의 위트와 대립되는 다아시의 판단력은 자신의 비밀은 감추고 타인의 비밀을 독점적으로 알고 있기 때문에 행사할 수 있는 권위적인 권력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고 말한다(Stewart 60).  19“cheap”는 고대영어에서는 시장(market), 거래(trade, bargain)를 의미했다.  20허드슨은 오스틴의 소설에서 인척이나 사촌간의 결혼, 자매와 남자 형제끼리의 결혼으로 끝나는 결말이 반복되는 것은 부패한 외부의 영향력으로부터 가정을 보호하고 전통적인 가치를 보존하려는 작가의 보수성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지적한다(Hudson 7). 엘리너가 오빠의 처남인 에드워드와 결혼하고, 매리앤은 브랜든의 사촌인 일라이저를 대체한다는 점에서 이들의 결혼도 사촌간의 결혼의 함축을 담고 있다. 『오만과 편견』에서는 콜린즈의 어리석음이 조롱거리가 되고, 앤 드 버그의 허약함이 지적되며 은연중에 사촌간의 결혼은 우생학적으로 불리할 수 있다고 암시된다. 그러나 제인과 빙리, 엘리자베스와 다아시의 이중결혼과 이들이 펨벌리에서 고립된 생활을 하는 결말은 가까운 근친만을 유토피아에 합류시키는 폐쇄성의 일단을 보여준다.  21오스틴을 보수적인 반자코뱅(Anti-Jacobin)으로 규정하는 버틀러에 반대해서 그녀를 18세기 후반의 영국과 스코틀랜드의 회의주의적 계몽주의 전통을 잇는 낭만주의적 진보주의 작가로 자리매김하는 녹스 쇼는 엘리자베스는 정신의 독립성을 포기하거나 기존 질서에 순응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Knox-Shaw 1-72, 95, 139).

    IV. 나가는 말

    루소와 괴테의 감상소설은 열정적인 사랑을 이상화하고 여주인공의 혼외관계를 문학적으로 처벌하지 않는 성적으로 자유로운 측면을 보인다. 오스틴은 이들과 달리 여성의 성욕을 금기시하는 영국의 청교도적 문학관습을 받아들이지만 젠트리계층 여성이 직면하는 경제적 박탈상태를 보여줌으로써 여성적인 관점을 도입한다. 감수성 소설을 패러디하는『지성과 감성』에서 매리앤은 죽음에 이를 수 있는 열병에 걸리는 처벌을 받지만 쾌락의 충족을 지향하는 감수성에 자부심을 보여준다. 그러나 엘리자베스의 감수성이 자기검열 되고 통제되는『오만과 편견』에는 감상의 잉여와 즉각적인 쾌락의 추구를 통제하도록 요구하던 프랑스 혁명 후의 정치적 반동이 반영되어 있고, 낭만주의의 내면으로의 침잠의 성향이 두드러진다. 엘리자베스가 일탈적인 감수성을 억압하고 성장한 후 도덕성과 열정을 겸비한 다아시와 결혼하는『오만과 편견』은 영국식 성장소설의 모형이 된다.

    부르주아 계급이 귀족계급과 맺는 타협이 결혼이라는 환유법을 통해서 제시되어 있는 오스틴의 영국식 성장소설에서 주인공은 감수성이 초래하는 일탈을 떨치고 난 후 행복한 결혼을 보상으로 받는다. 지참금이 거의 없는 젠트리 계층 출신의 매리앤이 지주인 브랜든 대령과 결혼하고, 변호사와 상인 친척이 있는 엘리자베스가 대지주 다아시와 결혼하는 것은 성장소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부르주아와 상류층의 결합의 한 예를 보여준다. 오스틴은 다아시에게 도덕성과 열정을 겸비하게 함으로써 상류층과 부르주아의 결합에 낭만의 옷을 덧입혀서 계급적 화합과 여주인공의 성장의 환상을 모두 충족시키려고 한다. 그러나 상류층이 되려는 부르주아의 꿈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감수성이 담고 있는 일탈적인 성적욕망은 억제되어야 하고 욕망의 충족은 끝없이 지연된다. 또 개성이 강하고 매력적인 인물들이 감수성과 욕망을 억제함으로써 달성된‘성장’은 특징 없고 무미건조한 ‘정상적’인 사회인을 낳는다. 그러므로 주인공의 성장은 일탈만큼 매력적이지 않고, 욕망의 억압을 통해 이루어진 매리앤과 브랜든, 엘리자베스와 다아시 커플의 결혼은 더 이상 열정적이지 않고 권태로워 보이기 때문에 독자는 역설적으로 이전의 매리앤과 엘리자베스의 감수성이 보여주었던 일탈의 활기와 생명력에 이끌리게 된다.

참고문헌
  • 1. 노 태한. 2007
  • 2. 미셸 푸코. 1998
  • 3. 박 광자 2004
  • 4. 박 광자. (2008) [『독일문학』] Vol.49 P.5-23
  • 5. 박 희경 (2004) [『독일문학』] Vol.45 P.25-44
  • 6. 요한 볼프강 괴테. 2010
  • 7. 이 봉지 (2004) [『불어불문학연구』] Vol.58 P.221-63
  • 8. 쟝 자끄 루소. 2008
  • 9. 최 민숙 2005 P.297-320
  • 10. 한 애경. (2002) [『 근대영미소설』] Vol.9 P.141-64
  • 11. Allen Dennis W. (1985) “No Love for Lydia: The Fate of Desire in Pride and Prejudice.” [Texas Studies in Literature and Language] Vol.27 P.425-43 google
  • 12. Austen Jane. 1972 Pride and Prejudice. Ed. Tony Tanner. google
  • 13. Austen Jane. 2002 Sense and Sensibility. google
  • 14. Austen Jane. 2002 Love and Friendship. google
  • 15. (1999) “Adventures of a Female Werther: Jane Austen’s Revision of Sensibility.” [Philosophy and Literature] Vol.23 P.110-26 google
  • 16. Butler Marilyn. 1987 Jane Austen and the War of Ideas. google
  • 17. Cohen Paula Marantz. (1994) “Jane Austen’s Rejection of Rousseau: A Novelistic and Feminist Initiation.” [Papers on Language & Literature] Vol.30 P.215-34 google
  • 18. Conger Syndy McMillen. (1986) “The Sorrows of Young Charlotte: Werther’s English Sisters, 1785-1805.” [Goethe Yearbook] Vol.3 P.21-50 google
  • 19. Duckworth Alastair. 1994 “Improving on Sensibility.” Sense and Sensibility and Pride and Prejudice. Ed. Robert Clark. P.26-37 google
  • 20. Fraiman Susan. 2003 “The Humiliation of Elizabeth Bennet.” Bloom’s Major Literary Characters: Elizabeth Bennet. Ed. Harold Bloom. P.181-95 google
  • 21. Harris Jocelyn. 1989 Jane Austen’s Art of Memory. google
  • 22. Hudson Glenda A. 1992 Sibling Love and Incest in Jane Austen’s Fiction. google
  • 23. Johnson Claudia. 1988 Jane Austen: Women, Politics and the Novel. google
  • 24. Knox-Shaw Peter. 2004 Jane Austen and the Enlightenment. google
  • 25. Markovits Stefanie. (Autumn 2007) “Jane Austen and the Happy Fall.” [SEL] Vol.47 P.779-97 google
  • 26. Moretti Franco. 1987 The Way of the World: The Bildungsroman in European Culture. google
  • 27. Mortensen Peter. (2002) “Rousseau’s English Daughters: Female Desire and Male Guardianship in British Romantic Fiction.” [English Studies: A Journal of English Language and Literature] Vol.83 P.356-70 google
  • 28. Mudrick Marvin. 1952 Jane Austen: Irony as Defense and Discovery. google
  • 29. Perkins Moreland. 1998 Reshaping the Sexes in Sense and Sensibility. google
  • 30. Poovey Mary. 1984 The Proper Lady and the Woman Writer. google
  • 31. Stasio Michael J, Kathryn Duncan. (Summer 2007) “An Evolutionary Approach To Jane Austen: Prehistoric Preferences In Pride and Prejudice.” [Studies In The Novel] Vol.39 P.133-46 google
  • 32. Stewart Maaja A. 1993 Domestic Realities and Imperial Fictions: Jane Austen’s Novels in Eighteenth-Century Contexts. google
  • 33. 1986 Jane Austen. google
  • 34. Wiltshire John. 1992 Jane Austen and the Body: ‘The Picture of Health’. google
  • 35. Wiltshire John. (2001) “Mrs. Bennet’s Least Favorite Daughter.” [The Jane Austen Journal] Vol.23 P.179-87 google
  • 36. Wollstonecraft Mary. 1992 A Vindication of the Rights of Woman. google
  • 37. Wootton Sarah. (2007) “The Byronic in Jane Austen’s Persuasion and Pride and Prejudice.” [The Modern Language Review] Vol.102 P.26-39 google
  • 38. Yeazell Ruth Bernard. (2001) “Sexuality, Shame and Privacy in the English Novel.” [Social Research] Vol.68 P.119-44 google
이미지 / 테이블
(우)06579 서울시 서초구 반포대로 201(반포동)
Tel. 02-537-6389 | Fax. 02-590-0571 | 문의 : oak2014@korea.kr
Copyright(c) National Library of Korea.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