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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A 학술지
Cure and Ethics Implied in Trauma Literature:Don DeLillo’s Falling Man and Joy Kogawa’s Obasan 외상문학에 함축된 치유와 윤리 ―돈 드릴로의『추락하는 남자』와 조이 코가와의『오바상』병치 연구**
  • 비영리 CC BY-NC
ABSTRACT
Cure and Ethics Implied in Trauma Literature:Don DeLillo’s Falling Man and Joy Kogawa’s Obasan
KEYWORD
Don DeLillo , Falling Man , trauma , cure , ethics , Joy Kogawa , Obasan
  • I. 드릴로, 폭력, 외상

    이태리계 이민 남성작가로 2008년에『뉴욕타임스』가 선정한 미국의 삼대 주요 작가 중 하나인 돈 드릴로(Don DeLillo)는, “문인의 참된 역할은 악을 조장하는 것이며 자신은 작품 활동을 통해서 그 믿음을 충실히 수행해 왔다”고 선언한 바 있다(De Pietro 142). 처녀작『선수들』(Players, 1977)을 비롯한 대부분의 소설에서 폭력과 테러를 세밀히 묘사하며, “무언가 끔찍한 일이 일어나리라는 집단적인 공포”로 문학지면에 긴장감을 조성하던 드릴로가(O’Hogan 2), 2001년 9월 11일에 자신의 고향인 뉴욕에서 삼천 명 가까운 민간인을 죽인 테러에 대해서도 악을 조장하는 글을 쓸지에 대한 기대는 고조되어 있었다. 2007년에 드릴로는 자신의 열네 번째 소설인『추락하는 남자』(Falling Man)에서 9-11 사태를 본격적인 소재로 다루었고, 다양한 서평을 배출했다.

    2007년 5월 9일『뉴욕타임스』(The New York Times) 서평에서 미찌꼬 가꾸단(Michiko Kakutan)은 거국적인 테러를 다루면서 한 개인에게 초점을 맞춘점은 부적절하고 실망스럽다고 비난했다.1 이에 반해 맬컴 존스(Malcom Jones)는 2007년 5월 14일『뉴스위크』(Newsweek) 서평에서, 지금까지 나온 9-11 사태를 소재로 한 수많은 책과 영화 가운데 드릴로의 소설이 가장 훌륭하다고 극찬했고, 2008년 4월『레디 스테디 북』(Ready Steady Book) 서평에서 다이 보간(Dai Vaughan)도 반복적이며 세밀한 글쓰기의 문학적인 가치를 부각시켰으며, 그 이후 발표된 대부분의 서평도 와해된 혼돈 상황을 문학 지면에 진솔하게 창조한 2007년 최고의 묵시록이며, 언어와 의식이 테러와 고통에 저항하는 긴장감을 직설화법으로 정확히 묘사했다고 호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비평계는 시간이 경과함에 따라 점차 작가의 저술 의도에 관심을 모았다. 예를 들면, 2008년 5월에 미국에서 개최된 미국문학학술대회(ALA) 중“외상: 돈 드릴로의『추락하는 남자』에 나타난 기억과 망각”세션에서 팀 고티어(Tim Gauthier)는 드릴로의 텍스트가 공포보다는 서로에 대한 이해를 강조한다고 논하고, 국내에서 2008년『비평과 이론』에 게재된 논문「9-11 테러와 외상적 사건: 드릴로의『추락하는 남자』」의 끝부분에서 정혜욱도 외상치유를 언급한다. 폭력과 예술의 상관관계에 관심을 보인 비평도 나와 있으나,2 드릴로가 9-11 사태 이후에도 악을 조장한다는 해석은 찾아볼 수 없다.

    필자는 고티어와 정해욱이 간단히 언급한“상호이해”와“외상치유”논리를 발전시켜, 상호이해를 바탕으로 외상치유와 외상윤리를 제안하기 위해 드릴로가『추락하는 남자』를 집필했다고 해석하고자 한다. 드릴로가『추락하는 남자』에서 뉴욕 무역센터 테러 생존자가 고통과 공포를 시간, 공간, 의식의 기존 개념을 전복하고 뒤섞는 해체적 구성과 파편적인 언어로 묘사하기 때문에, 치유와 윤리를 도모하는 저자의 긍정적인 저술 의도는 저변으로 억압되었다고 생각된다. 일본계 캐나다 여성작가 조이 코가와(Joy Kogawa)의『오바상』(Obasan, 1981)과 병치하면, 드릴로의 숨은 의도가 보다 선명히 드러난다. 일본계 캐나다인이 삼십여 년 전에 겪은 테러에 대해 진실을 이해할 때, 진정한 용서, 치유와 해방에 도달한다는 주제를 담은 코가와의 회상소설과 병치하면, 혼란스런 현재 시점에서 9-11에 대해 쓴 산만한 글쓰기에서 한 걸음 물러나 글의 저변에 흐르는 저자의 함의가 드러난다. 일본이 진주만을 폭격하자 단지 일본계라는 이유로 캐나다인이 포로수용소에 강제로 끌려가 당한 억울한 고통이나, 일본어도 모르는 일본인 이세로서 일본에 증조외할머니 병문안 갔다가 돌아오지 않는 어머니를 계속 기다리며 받은 버림받았다는 배신감이 오해임을 깨닫는 과정을 그린 코가와의 글은, 전쟁이나 부조리를 예방하고, 용서로 치유하자는 코가와의 주제를 담고 있다. 코가와의 소설과 병치하면, 드릴로는 뉴욕 시민을 비롯한 글로벌 독자가 받은 외상을 치유하고, 외상에 대한 윤리를 제시하여 더 이상의 테러가 발생하는 것을 막기 위해『추락하는 남자』를 집필한 것으로 규명된다.

    *이 논문은 2010년도 교육과학기술부의 재원으로 한국연구재단의 지원을 받아 연구되었음(NRF-2010-327-A00464).   1Bob Minzesheimer도 USA TODAY (2007. 5. 15)에 유사한 비난을 게재했다.   2테러 예술가 David Janiak과 소설의 제목에 주목하며, 비평가 John N. Duvall은『추락하는 남자』에서 드릴로가 예술과 정치를 연합하여 승화시킨다고 해석하고(9-10), 인도 비평가 Adrene Freeda Dcruz도『추락하는 남자』는 테러를 예술로 승화시킨 포스트모던 서사라고 해석한다(42). 2008년 영어영문학회 연찬회에서 황은주도 지젝의 이론을 토대로 분석한“드릴로의『추락하는 남자』에 나타난 예술과 테러”를 발표했다.

    II. 드릴로의 테러 묘사와 외상 치유

    “트라우마”혹은 정신적인“외상”은 정신의학계에 국한되어 사용되던 전문 용어로, 최근에 인간 복지에 대한 관심이 증가하면서, 문화연구 지평에 주요 개념으로 부상했다.3 외상은, “기근, 홍수, 화재 등 자연적 재앙과 전쟁, 테러, 고문, 집단수용, 아동학대, 납치, 가정폭력, 성폭력 등 사회적 재앙으로 인한 극심한 충격이 무의식에 남아 심리적인 상흔을 반복해서 경험하는 증상”으로서 (김정선 118), “강렬한 두려움, 무력감, 통제 상실, 붕괴의 위협”등을 내포한다 (Herman 8). 외상이 인류의 건강을 위해 해결해야 할 과제로 부각되면서, 많은 외상문학이 등장했다. 문화 비평가 로리 빅로이(Laurie Vickroy)는, 많은 외상문학 작가들이 외상의 혼돈스런 상태를 묘사하기 위해“다양한 관점과 다면적인 인간관계를 전개하면서 단면적이며 단순한 틀에 박힌 글쓰기를 배척”한다고 설명한다(Vicroy 222). 『추락하는 남자』나『오바상』도 외상소설로서 파편적인 또 회상적인 글쓰기로 단순한 틀을 배척한다.

    우선 드릴로의『추락하는 남자』가 사용하는 파편적인 글쓰기를 살펴보자. 드릴로는 9-11 사태 이후에 21세기가 행복과 번영의 황금기인 밀레니엄이 되리라는 기대는 깨어지고, “테러의 시대,”“공포와 불확실성의 시대”가 시작되었다고 진단했다(Conte 2).4『추락하는 남자』는 14장을 크게 세 부분(Part)으로 나누고, 각 장마다 중심 시점을 다르게 잡아, “다양한 관점과 다면적인 인간관계”를 무작위로 섞으며 복합적인 글쓰기를 전개한다. 1장과 2장을 꼼꼼히 검토하면 드릴로가 단순한 글쓰기를 배척하는 양상과 의의를 살펴볼 수 있다.

    1장은 삼십구 세의 백인남성변호사 주인공 키쓰 뉴데커(Keith Neudecker)가 테러 현장 체험을 상세히 묘사하며 다음과 같이 시작된다.

    뉴욕 무역센터 건물이 비행기의 공격을 받아 붕괴하자, 직장에서 황급히 빠져 나온 뉴데커는 눈앞에 펼쳐진 연기와 재로 덮인 혼란스런 상황을 사진처럼 생생하게 묘사한다. 뉴데커의 시선으로 전개되는 이 지문을 대하면서 독자는 마치 자신이 테러 현장에 있는 듯이 느끼며, 테러를 추상적인 개념으로 이해하는 것 이 아니라, 혼돈과 상처, 충격, 유혈이 낭자한 파괴적인 현실로 실감하게 된다. 남의 서류가방이 자기 것인 줄 착각할 정도로 분별력을 잃은 채, 어디로 가야할지를 계속 자문하다가, 트럭에 몸을 싣고서야 자신이 팔 년 째 별거중인 아내와 아들을 찾아가고 있음을 깨달았다는 뉴데커의 진술은(6), 정신과 상담을 받는 외상환자가 자신을 괴롭히는 외상의 원인을 자세히 설명하는 인상을 준다. “치유 과정은 개인 뿐 아니라 집단이나 사회전체의 노력이 필요하다”는 문화비평가 로리 빅로이의 외상서사 치유이론을 적용하면(8), 드릴로는 이러한 글쓰기로 독자도 뉴데커와 함께 치유 과정에 동참하도록 유도한다고 볼 수 있다.

    법조계에 종사해 온 전문가답게 혼란스럽던 테러현장을 법적인 사건을 다루듯이 세밀히 서술한 1장과는 달리, 2장은 뉴데커의 아내 리엔(Lianne)의 감각적이며 사색적인 의식의 흐름으로 전개된다. 부부 간의 쓸쓸했던 성관계를 기억하며 시작되는 리엔의 서술은, 그 날 아침에 받은 셸리(Shelley)의 시“이슬람 폭동(Revolt of Islam)”이 찍힌 그림엽서에 대한 언급으로 이어진다. 시 제목 가운데“폭동”이란 단어는 9-11 사태와 같은 공개적인 정치 폭동과, 결혼 제도를 거부한 자신의 사적인 폭동 등 다양한 차원에서 독자의 상상력을 자극한다. 프리랜스 잡지 편집자라는 직업에 맞게 리엔의 글은 9-11 테러 이면의 상징적이며 은유적인 복잡한 함의로 독자의 관심을 끈다. 팔 년 동안 거의 소식이 없던 남편이 갑자기 재를 뒤집어 쓴 채 방문한 데 대한 의문과, 사건이 있었던 삼일후에 은퇴한 미술사 교수인 어머니 니나(Nina)에게 뉴데커의 속물적인 면이 정말 참기 힘들었다고 비난하는 리엔의 심경 묘사는, 피해자의 아내와 같은 테러의 간접 피해자에게까지 독자의 관심을 확대한다. 리엔의 자유연상적인 서술은 남편과의 과거를 소급해서 소개하며, 뉴데커를 단지 머리수에 불과한 테러 피해자가 아니라, 가치관과 성격, 아내, 아들, 장모 등 복잡한 사연과 인간관계를 지닌 복합적인 인격체로 부각시킨다.

    2장은 리엔이 아파트로 찾아 온 어머니의 애인 마틴(Martin)을 맞으면서 마무리되는데, 이 마무리는 열린 텍스트를 조성한다. 마틴이 독일에서 테러집단에 가담했던 경험이 있었다는 사실이 소설이 전개되는 과정에서 점차 밝혀지는 예에서 볼 수 있듯이, 드릴로의 텍스트는 다층적인 암시를 함축한다. 뉴데커의 시각이 테러 체험자의 입장에서 표면적인 현실과 자신의 심경 묘사에 주목하는데 반해, 2장에 펼쳐지는 리엔의 서술은, 과거와 미래, 내면과 이면, 주변 또 상징적인 함의 등 감각과 상상력의 영역으로 탈주하며 독자의 시야를 확장한다. 리엔의 서술은 문화 비평가 앤 캐플란(E. Ann Kaplan)이 주장한 바 즉, 역사가 남긴“아픈 잔재”인 사회적 재앙은 개개인에게 영향을 미친다는 주장을 예증한다(20). 테러는 직접 체험자 뿐 아니라 주변인에게까지 외상을 입힌다는 사실이 2장에서 부각되는 것이다.

    뉴데커가 리엔과 함께 병원에 가서 겪는 상황을 기술한 3장부터는 뉴데커와 리엔이 주변 사람들과 무작위로 섞이며 발생하는 상호 작용을 기술한다. 다양한 인물이 보고, 듣고, 느끼고, 생각하고, 말하는 내용이 대화, 각 인물의 서술, 뉴데커의 외적인 시선과 리엔의 내적인 관심과 섞여 아무 설명 없이 산만하게 나열된다. 특히 뉴데커와 밤을 지새우며 포거를 즐기던 절친한 동료인 럼지(Rumsey)에 대한 기억이 불쑥불쑥 파편처럼 삽입된다(41. 123, 243). 그렇다면 뉴데커와 리엔처럼 사고방식과 가치기준, 직업이 전혀 다른 지닌 두 인물을 비롯하여 다양한 직종, 배경, 성향을 지닌 사람들이 테러와 관련해서 보이는 다채로운 반응을 상세히 기록한 작가의 저의는 무엇일까? 우선 작품 세 부분에 붙인제목을 검토하며 실마리가 풀어보자.

    첫 부분(Part I) “빌 로튼(Bill Lawton)”은 1장부터 5장 그리고 짧은 부록인 “마리엔 가에서(On Marienstrasse)”로 구성되며, 빌 로튼은 뉴데커의 어린 아들 저스틴(Justin)이 테러리스트를 신화화하며 붙인 이름이다. 창가에서 빌 로튼의 비행기가 다시 나타나기를 기다리며 저스틴이 친구들과 나누는 다음 이야기에서 볼 수 있듯이, 빌 로튼은 테러에 대한 유아적인 망상을 상징한다.

    리엔은, 테러의 진상을 모르기 때문에 일곱 살짜리 저스틴이 테러리스트인 빌로튼을 초능력자로 신화화한다고 진단한다(72). 건물이 붕괴하고 수많은 사람들이 죽거나 다치는 끔찍한 테러장면을, 아이들을 보호하겠다는 명분으로, TV에서도 보지 못하게 막아서 저스틴과 같은 아이들은 무역센터가 여전히 건재하다고 믿으며 망상을 키운다는 것이다. 리엔의 진단은 드릴로가 테러현장체험을 생생하게 묘사한 함의를 새롭게 조명한다. 목격자의 증언은 불의가 만연한“세상을 변화시키려는 욕구에서 발생”한다는 캐플란의 이론을 적용하면(122), 테러로 인해 상상할 수도 없을 정도로 넓고 깊은, 복잡한 영역에서 피해가 속출했다는 사실을 정확히 알려서, 테러에 대한 잘못된 망상을 깨고 세상을 변화시키겠다는 욕구에서 드릴로가『추락하는 남자』지면에 테러장면을 세밀히 묘사한다고 해석된다.

    6장부터 9장까지 그리고 짧은 부록“노코미스에서(In Nokomis)”로 구성된 둘째 부분은 제목이 언스트 헤칭거(Ernst Hechinger)”이다. 언스트는 [리엔의 어머니인 니나의 애인] 마틴이, 1960년대에 독일에서 급진적인 테러 집단에 소속 되어 활동하던 당시의 이름이다. 미국으로 건너와 이름을 바꾼 마틴에게, 테러는 과거의 기억 속에 존재한다. 마틴이 언스트 헤칭거로 이름을 바꾸었다는 사실에는, 테러는 테러리스트가 생존하기 위해 기억마저 가려야 하는 끔찍한 것이 라는 고발이 함축되어 있다. 뉴데커나 마틴과 같은 테러 관련 외상환자를 보면서 리엔은“외상이 너무나 사적이고 깊고, 너무도 개인적”이라고 진술한다 (163). 리엔이 알츠하이머(Alzheimer)를 앓다가 자살한 아버지를 생각하면서, 기억을 잃은 알츠하이머 환자들을 위해 글쓰기 모임을 운영하는 점도 빅로이의 외상 문화 이론으로 조명하면 그 의미가 선명해진다. 빅로이는 외상을 망각하려고 노력하기보다, 그 원인과 상황을 정확히 기억하고 직시하며, 유사한 상황을 다시 만들지 않겠다는 의지를 품게 하는 것이 최선의 외상치유책이라고 설명한다(8). 캐시 캐루스(Cathy Caruth)도 외상은 사건을 왜곡해서 잘못 기억한 결과생긴다고 설명한다(Unclaimed, 4-5). 빅로이나 캐루스의 이론으로 조명하면, “언스트 헤칭거”라는 제목을 달고 알츠하이머병을 거론하는 드릴로의 의도는 새롭게 밝혀진다. 외상은 그 원인을 정확히 기억해야 치유할 수 있으며, 유사한 상황을 만들지 않겠다고 의지를 품는 것이 최선의 치유라는 신념을 드릴로는 기억과 관련지어 형상화하는 것이다.

    언스트 헤칭거에게 테러가 기억 속에 억압된 상태를 의미한다면, 10장부터 마지막 장인 14장과 부록“허드슨화랑에서(In the Hudson Corridor)”로 구성된 셋째 부분의 제목인 데이빗 재니액(David Janiak)”에게 테러는 예술의 소재를 의미한다. 사진작가 리챠드 드류(Richard Drew)가 쌍둥이 건물을 배경으로 찍은 사진 <추락하는 남자(Falling Man>에 고정되어 있는 영상으로 인식되던 테러 공연자 재니액은 9-11 사태 발생 삼 년 후에 자살하는 것으로 묘사된다. 늘 착용하던 안전띠를 풀고 뛰어내리는 재니액을 가까이에서 지켜보면서, 리엔은 “자유”를 느낀다(221). 재니액의 자살은 테러가 예술적인 영감을 주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공연하던 예술가가 자살하면서까지 해방되고 싶을 정도로 파괴적이라는 경고를 함축한다. 재니액이 죽자 리엔은 비로소 뉴데커의 침대 쪽으로 누워 잘 수 있게 된다. 리엔의 이러한 변화는, “너무도 명백해서 말 할 필요도 없는 게 결국 하나 있었다. [리엔] 자신은 세상에서 안전하고 싶었지만 그[뉴데커]는 그렇지 않았다”고 남편의 안전 불감증을 답답해하던 리엔이(216), 뉴데커의 테러로 인한 외상 즉, 안전 불감증이 얼마나 심각한지를 제대로 이해하고 그 에 대한 연민을 품으면서, 분노에서 해방되고 치유되었음을 예증한다.

    지금까지 논의했듯이, 드릴로는 테러의 허상을 연상시키는 인물이름을 제목으로 세워 테러에 대한 오해를 문제로 제기하고, 작품 지면은 테러의 파괴적인 실상을 현실감 있는 생생한 묘사로 채운다. 제목과 내용 간의 이러한 대조로 긴  장감이 조성되며 작품의 심미적인 가치도 향상한다. 세 부분의 큰 제목은 세 부록의 제목과도 대조를 이룬다. 큰 제목이 추상적이며 테러에 대한 망상을 고발하는 데 반해, 짧은 부록의 제목인“마리엔 가에서,”“노코미스에서,”“허드슨 화랑에서”는 이슬람 테러 비행사 하마드(Hammad)와 관련된 구체적인 장소를 지칭한다. 드릴로의 지면에서 테러리스트는 신화화된 망상이나 기억 혹은 예술이 아니라, 현실에 거주하는 인격체로 부각된다. 세 부록에서 하마드는 아프카니스탄에서 함부르그로 또 플로리다로 옮겨 다니며 훈련을 받았고, “어떤 죽음이 이 죽음보다 훌륭할 수 있겠냐?”고 자문하고, “네가 살면서 지은 모든 죄는 몇 초 안에 다 용서받는다”고 자폭 테러의 가치를 확신하면서도 불안과 공포로 “심하게 몸을 떠는”인간적인 모습으로 묘사된다(239). 테러리스트도 잘못된 자기 최면과 훈련의 피해자로 묘사되며, 독자의 연민을 자극한다.

    소설의 마지막인 14장 끝의 부록「허드슨화랑에서」에서 드릴로는 하마드로 인해 죽음을 맞은 럼지를 다음과 같이 상세히 묘사한다.

    이 장면은 럼지의 죽음 즉, 뉴데커의 외상의 가장 직접적인 원인을 보여준다. 뉴데커가 거리로 나서기 전에 이미 친구를 구하지 못한 무력감, 패배감, 죄책감, 공포와 혼란에 빠졌다는 사실을 사진처럼 명료히 보여준다. “외상의 경험은 궁극적으로 죽음을 대면하는 것”이며(224), “자신의 책임도 아니고 또 자신도 희생자인데도 불구하고, 좌절, 포기, 수치스런 비밀이 외상으로 남아 목격자를 계속 괴롭히기 때문에”폭력 목격자는“외면하고 억압하려 한다”고 빅로이는 설명한다(124). 빅로이의 설명에 따르면, 럼지의 죽음을 상세하게 묘사한 이 지문은, 뉴데커가 외면하며 감추려던 수치스런 비밀을 드러내는 상담 치료의 마무리 단계로 볼 수 있으며, 뉴데커가 치유되리란 희망을 상정한다. 『추락하는 남자』가 외상을 정확히 묘사하여 외상 치유를 도모하는 의미는, 코가와의『오바상』분석과 병치하면 더 선명히 드러난다.

    3외상 연구의 역사는,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을 잉태한 19세기 말 여성 히스테리아 연구, 1차 세계대전이 야기한 탄환 충격(shell shock) 혹은 전쟁 신경증(combat neurosis) 연구, 그리고 최근 20여 년 간 급격하게 대두된 가정 폭력 중 특히 성폭력 문제 등 세 단계로 정리된다(Herman 2). 미국에서는 1970년대에는 월남전 참전용사들의 분노와 외상 스트레스가 미국 사회에 표면화되었으며, 1980년에는 PTSD (posttraumatic stress disorder)에 대한 공식적인 진단이 Diagnostic and Statistical Manual III에 등장했고(Vickroy 13), 1990년대 초 걸프전과 2001년의 9-11사태, 그리고 이어진 이라크 전쟁 등은 기존 외상 연구에 새로운 방법론을 제공하며 발전했다(Vickroy 20). 미국은 의학계를 중심으로 한 외상센터를 30년 전에 설립했고 벨기에 Ghent University는 2007년에 문학과 철학을 중심으로 LITRA(Center for Literature and Trauma)를 창립했다. 외상에 대한 연구서로는 외상연구에 대한 기본 지식을 제공하는 Judith Lewis Herman의 Trauma and Recovery(1997), 문학텍스트 분석의 기틀을 제공하는 Kali Tal의 Worlds of Hurt: Reading the Literature of Trauma(1996)와 Laurie Vickroy의 Trauma and Survival in Contemporary Fiction(2002), 매체시대의 외상연구 및 9-11테러사건 이후 외상 접근법을 논의한 E. Ann Kaplan의 Trauma Culture: ThePolitics of Terror and Loss in Media and Literature(2005)가 대표적이다. 2009년 3월 26일부터 28일에 미국 Pennsylvania에서 개최된 College English Association(CEA) 학술대회의 대주제는“Trauma and Literature”였다. 2009년 5월에 Boston에서 개최된 ALA(American Literature Association) 학술연찬회에서 Children’s Literature Society는“Trauma in Children’s Literature”세션을 구성하여 이틀에 걸쳐 여섯 편의 논문을 발표했고, American Theatre and Drama Society가 주관한“Adaptations:Dramatizing Trauma, Performing the Grotesque”세션에서도 Lourdes Arciniega의 “Developing Identity through Historical Trauma in Contemporary Drama”를 비롯한 세 개의 논문이 발표되었다. 국내에도 철학, 심리학, 사회학, 미학, 목회학, 문학 등 분야에서 다양한 연구서가 나와 있으며, 외상의 개념과 역사를 정리한 김정선의『외상, 심리치료 그리고 목회신학』과 프로이드, 프루스트, 들뢰즈, 라깡, 레비나스를 비롯한 유럽의 외상관련 철학자들을 총망라한 서동욱의『차이와 타자』가 본 연구에 적용하기에 적당하다. 해외 영문학계에서는 주로 1, 2차 세계대전과 베트남 전쟁을 중심으로, 특히 2차 세계대전 중 유태인 홀로코스트에 대한 연구와, 베트남 참전 경험이 주로 연구되었다. 국내 영문학계에서는 윌리엄 포크너, 토니 모리슨, 쟌 리스 등 주요 작가와 노라 옥자 켈러, 이창래 등의 아시아계 작가, 전쟁문학 텍스트가 주로 연구되었지만, 다른 주제에 비해 연구가 빈약한 편이고, 영문학 관련 학술전문지에 최근 10년 간 발표된 외상 관련 논문은 10편도 안된다. 조성란은『종군위안부』( 『미국학논집』2003)를, 황보경은『드넓은 싸가소 바다』( 『영어영문학연구』2007)를, 이소희는『제스처 인생』( 『현대영미소설』2006)을, 이승복은 베트남전 참전 작가인 팀 오브라이언의『칠월, 칠월』(『미국학논집』2007)을, 박정미와 박귀숙은 각각 The Croquette (『근대영미소설』2008)과 『빌러비드』(『영미어문학』2009)를, 신영헌은 포크너의『성소』(『미국학논집』2009)를 외상에 초점을 맞춰 연구 발표하였다.   42009년 3월 CEA 연찬회에서 Don DeLillo Society가 구성한“Don DeLillo and Play”와“Roundtable on Don DeLillo and Religion”세션은 드릴로에 대한 최근 연구 동향을 보여준다.

    III. 코가와의 침묵 깨기와 외상 치유

    『오바상』은 조이 코가와의 처녀작으로, 제2차 세계대전 때 일본계 캐나다인이 부당하게 수용소에 감금된 사태를 문학 지면에서 처음으로 취급한 소설로 2005년 12월에 캐나다에서 가장 중요한 책으로 선정되었다.5 코가와는 자신이 여섯 살이던 1941년 12월 7일에 일본이 미국의 진주만을 폭격하자, 1942년에 일본인 삼세라는 이유로 브리티시 콜롬비아(British Columbia)와 알버타(Alberta)의 폐광촌에 강제 수용된 이만 천 명의 일본계 캐나다인 중 하나였다. 그 중 만 칠천 명이 캐나다에서 태어난 캐나다 시민이었는데, “물도, 난로도, 화장실도, 전기도 없이 죽만 먹으며”온 식구가 신문지를 바른 방 하나에 모여 살았다고 코가와는 진술한다(Goellnicht 289). 재산은 몰수당하고, 가족은 분산되고, 전쟁이 끝나고도 1949년까지 4년 동안 전에 살던 밴쿠버(Vancouver)로 돌아가지 못한 억류의 실질적인 배경을 비평가 도날드 겔나이트(Donald C. Goellnicht)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코가와는 부조리하고 억울하게 학대당한 체험을, 일본계 캐나다인 미혼여성 1972년에 삼십 육 세가 된 주인공이 여교사의 위치에서 과거를 회상하는 서술 가운데, 코가와는“침묵”을 외상의 원인으로 상정한다.

    『오바상』의 서문은“나는 고요(stillness)를 증오한다. 난 돌(stone)을 증오한다”는 주인공 나오미의 절규로 시작된다(x). 전쟁 직전에 외증조할머니가 중환이라는 연락을 받고 외할머니와 일본에 간 어머니는 소식이 끊어지고, 아버지도 강제 노동 수용소로 끌려간 후, 백부모와 함께 살게 된 나오미는, “백부와 백모에게서 폭풍우에 숨어드는 짐승처럼 말이 종종 숨는 걸 배운다”(3). 두 아이를 사산하고 더 이상 아이를 낳지 못하게 된 슬픈 아야(Aya) 백모의“언어는 침묵이며, 침묵을 또 침묵의 어투와 뉘앙스를 잘 배우고”(17), 오바상에게 배운“침묵이 그림자의 모습으로 자라나 나를 감싸서,”“시간이 경과함에 따라 고체화되고 화석화되어 돌이 될”것 같다고 나오미는 오열한다(63). 조국에서는 위협적인 적군으로 몰리고, 학교에서는“모든 일본인 학생들은 나쁜 사람이라서 다 학교에서 쫓아내야 되요”라는 말을 들으면서도 침묵하던 나오미는(83-84), 다섯  살 때 이웃집 백인 노인 가우어씨(Old Man Gower)에게 성폭력을 당하고서도 침묵한다. 코가와는 정치적인 문제와 개인적인 문제를 교묘하게 섞어, 외상의 원인을 침묵이라고 상정하는 것이다.6“엄마한테 말하면 안된다”는 가우어씨의 협박이 두려워서 어머니에게 [성폭행당한] 사실을 말하지 않았기 때문에 어머니가 떠났고, “정직하지 않았기 때문에 암흑이 왔다”는 나오미의 잘못된 믿음은 침묵이 초래할 수 있는 상처의 심각성을 예증한다(64).

    코가와는 침묵을 가르친 아야 백모를 또 다른 오바상인 에밀리(Emily Kato)이모와 다음과 같이 대조시킨다.7

    이야기꾼이 되어 세상을 돌아다니는 에밀리 이모는 나오미에게 다음과 같이 가르친다.

    에밀리 이모는 과거를 기억하고 인정할 때 부패를 방지하고“정의를 추구할 수 있다”고 믿으며(116), 나오미의 어머니가 일본에 투하된 원자폭탄에 희생되어서 못 돌아왔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세계대전, 진주만 폭격, 원자폭탄과 관련된 편지와 신문기사, 캐나다정부 기록물 등 다양한 자료를 나오미에게 제공한다.9 아야 백모가 다락방에 감춰 두었던 외할머니의 편지도 보내주는데, 그 편지에 나오미의 어머니는 다음과 같이 묘사되어 있다.

    아야 백모는, 겨우 목숨은 건진 나오미 어머니가 흉한 몰골을 가리기 위해 마스크를 하고 다니다가, “아이들에게는 말하지 말아줘요. 아이들이 끝까지 모르도록 기도하고 있어요”(290)라고 당부하고 일본에서 죽자, 그 뜻을 기리기 위해 편지를 감춰두었던 것으로 드러난다.

    나오미 남매를“잘 보살피기 위해서”(68), 다시 말해 나오미 남매가 원자폭탄을 투하한 미국에 대한 적개심을 품지 않게 보호하려고 지킨 침묵으로 인해, 나오미는 어머니를 오해하고 자책하게 된다. 나오미가 침묵으로 인해 겪는 불필요한 고통은, 지나친 보호로 인해 테러리스트를 숭배하는 저스틴의 터무니없는 망상과 유사하다. 드릴로가 설정한 테러리스트 하마드처럼 헛된 보복심의 노예가 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어린 마음을 보호하려는 아야 백모와 같은 노력이 필요하다는 점은 논의의 여지가 없다. 하지만 에밀리 이모가 어머니의 죽음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줄 때, 나오미가 비로서 어머니에게 버림받았다는 외상에서 해방된 사실과 병치하면, 『추락하는 남자』에서 저스틴과 같은 아이에게도 테러의 의미를 가르쳐야 한다는 리엔의 진단이 드릴로의 진정한 목소리로 밝혀진다. 드릴로는 뉴데커와 같은 테러의 직접적인 피해자 뿐 아니라 뉴데커나 럼지의 자식들과 같은 간접적인 피해자를 포함한 독자가, 테러와 그로 인한 피해를 정확히 알고, 망상이나 외상에서 해방되어, 테러 방지를 책임지게 할 목적으로 침묵을 깨고『추락하는 남자』를 집필한 것으로 해석된다.

    5Obasan은 Canada First Novel Award, the Before Columbus Foundation American Book Award, the Canadian Authors Association Book of the Year Award 등을 수상했다. 코가와의 주요작품으로는, 일본계 캐나다인으로서 정치적인 권리와 정체성의 문제를 다룬 Itsuka (1992)와 The Rain Ascends (1995)가 있으며, Obasan에 대한 선행연구 논문으로는, 문체 분석에 집중한 Anthony Dykema-VanderArk의“Obasan: The Importance of Ambiguity, Irony, and Paradox”(1998), 침묵에 대해 문화적으로 다양한 해석에 주목한 King-Kok Cheung의“Attentive Silence in Joy Kogawa’s Obasan”(1994), Erika Gottlieb의“Silence into Sound: The Riddle of Concentric Worlds in Obasan”(1986), Gayle K. Fujita의“To Attend the Sound of Stone: The Sensibility of Silence in Obasan”(1985)이 대표적이다. 국내에는 우은주의「‘어머니, 제가 듣고 있어요’-조이 코가와의『오바상』에 나타난 모녀의 갈등과 화해」『영미문학페미니즘』(2002), 민태운의「역사와 침묵: 코가와의 소설을 한국인의 시각에서 읽기」『현대영미소설』(2003), 신유미의 석사학위논문“Joy Kogawa의 Obasan 연구: 침묵, 글쓰기, 그리고 상처의 치유”(2004) 등 논문이 나와 있는데, 침묵과 정치적인 정체성 검토에 주목한다.   6비평가 Apollo O. Amoko도 코가와가 다문화 국가로서의 캐나다의 위상에 의문을 던지고, 캐나다가“백인 중심의 나라”임을 고발한다고 해석한다(Amoko 54, 황경희 재인용 152).   7작품 중에서 코가와는“오바상”이 일본어로 모르는 여자도 포함하는 [영어로 aunt에 해당하는] “아줌마”라고 설명한다(112).   8에밀리 이모는, “We are hammers and chisels in the hands of would-be sculptors, battering the spirit of the sleeping mountain. We are the chips and sand, the fragments of fragments that fly like arrows from the heart of the rock”라고 적극적인 태도를 표현한다(119).   9Linda Hutcheon이 Obasan을 historiographic metafiction의 좋을 예로 제시한다 (Hutcheon 346, 김애주 재인용 27).

    IV. 외상 윤리와 문학의 사명

    프랑스 철학자 엠마누엘 레비나스(Emmanuel Levinas)의 외상기억 윤리이론을 적용하면 드릴로와 코가와가 책임의식을 고취하려는 윤리적인 입장이 더 선명히 드러난다. 가족 모두 나치 폭력에 희생되었으며, “자신은 평생 나치 공포의 기억에 지배되었다”고 고백하면서(Critchley, Ethics 281), 레비나스는“다른 사람이 부당하게 받는 고통에 대해 내가 고뇌할 때 인간 상호 간의 윤리적인 시선이 열린다”고 주장한다(Levinas, Entre 94). 레비나스의 윤리 이론으로 조명하면, 드릴로가 다양한 인물이 각기 다른 형태로 받는 고통을 세밀하게 묘사한 의미가 새롭게 드러난다. 뉴데커가 럼지를 잃고 빠진 죄책감과 혼란, 리엔이 이웃에서 크게 틀어 놓은 중동 음악에 시달리며, 자살한 아버지와 기억을 잃어가는 어머니를 향한 안타까움, 뉴데커와 서류 가방을 바꿔 든 또 다른 생존자인 흑인 여인 플로랜스 기벤즈(Florence Givens)가“백 살이 되어도, 난 여전히 그 계단 위에 있을 거야”라고(57) 죽음의 현장에 묶인 강박증 등의 묘사는, 레비나스의 이론으로 조명하면 다음과 같이 해석된다. 드릴로는 독자에게 테러로 인해 다른 사람이 부당하게 받는 고통을 직면하고 고뇌할 기회를 제공해서, 인간 상호 간의 윤리적인 시선으로 이끄는 것이다.

    『오바상』에서 나오미가 변하는 과정도 유사하게 해석할 수 있다. 아야 백모의 영향 하에서“말로 할 수 없는 침묵이 있다. 말해서는 안 되는 침묵이 있다”고 말하기를 거부하던 나오미는(1), “우리도 캐나다 사람이다. 이 나라에도 다른 나라들처럼 현명한 사람, 두려운 사람, 따뜻한 사람과 부패한 사람이 가득하다” 라는 말로 입을 열다가(126), “말해 지기를 기다리며, 아직 말하지 못한 이야기도 있다”고 에밀리 이모처럼 당당한 표현력을 행사한다(226). 이러한 변화는 “외상을 수용할 수 있는 언어로 표기하여 상처를 열고, 진실을 폭로하면, 목격자는 애도하고 연대책임을 의식하고 앞으로 나아가기를 학습”하게 된다는 캐플란의 외상 윤리 이론에 부합한다. 코가와는 나오미를 본보기로 제시하며 독자가 연대책임을 느끼도록 학습시키는 것이다(Kapalan 147).10

    드릴로는 소설 지면상에 윤리적인 관심을 노골적으로 개진하기도 하는데, 테러리스트 하마드가‘다른 사람’이 당할 피해에 대해 보인 관심이 좋은 예가 된다.

    이 지문은“다른 사람”을 인격체가 아니라, 죽는 기능을 담당하는 수단으로 본다는 테러의 무자비한 기본 원리를 폭로한다. 또한 테러리스트 하마드가“자신을 평생 괴롭힌 불의에 저항하며”(83) “무장한 순교자”가 되겠다고 결심하면서도(178), 막상 죽음 앞에서는 온 몸을 떨며 두려워하고 또 동시에 무고한 피해자가 입을 피해를 염려하는 복합적인 심경을 세심하게 묘사한다. “외상목격서술은 읽는 이에게 책임을 느끼게 한다”는 앤 캐플란의 이론을 드릴로는 테러리스트가 입는 외상에까지 확대해서 적용한다(124). 테러의 가해자와 피해자 모두가 지닌 외상을 연민으로 바라보고 테러의 발생에 대해 책임을 느끼도록 독자를 자극하는 것이다.

    드릴로의 주인공 뉴데커가 법조계를 떠나 라스베가스에서 직업 도박꾼으로 밤을 지새우는 상황 설정에도 외상문학과 관련된 중요한 메시지가 함축되어 있다. 뉴데커의 행각은 함께 도박을 즐기던 럼지에 대한 죄책감이나 그리움을 떨  치지 못하는 외상 증후군으로(정혜욱 227, 230), 또 건물 폭파로 직장이 사라져 버린 현실 도피 방안으로 볼 수 있다. 『문화저널 21』(2009. 6. 9)에서 최재원은 무용의 외상치유효과를, 2008년 의학 잡지「외상치유에 여가와 오락 개입시키기」는 오락으로 외상치유하기를 논의한다(Arai 3). 그렇다면 뉴데커에게 있어서 카지노는 오락과 일이 융합된 이탈을 제공하며 외상에서 해방시키는 새로운 영역으로도 볼 수 있다. 『오바상』에서도 나오미의 오빠 스티븐(Stephen)이 음악가로서 유럽에서 명성을 날린다. 이러한 설정도 예술 활동이 외상치유에 기여 하는 바를 제시하려는 작가의 의도를 반영한다고 볼 수 있다.11

    드릴로와 코가와가 소설 발치에 가서야 주인공을 괴롭힌 외상의 직접적인 원인을 명확히 밝히는 추리소설과 같은 구성을 사용하고 또 드릴로가 포커 장면을 상세히 묘사하는 이유도, 문학의 역할을 참신하게 드러낸다.12 흥미를 돋우며 독자의 즐거운 여가선용에 기여하려 노력하는 것이다. 추상적인 제목과 구체적인 내용을 대조시킨 드릴로나 두 오바상을 대조시킨 코가와의 저의도, 긴장감과 반전적인 흥미를 고조시키기 위한 노력으로 해석된다. 『추락하는 남자』라는 또 『오바상』이라는 제목으로 호기심을 자극하고, 마치 퍼즐을 풀듯이 발치에 있는 해답 찾기에 몰두하도록 유도하여, 독자가 작품에 심취해서 정화되고 또 유사한 외상에서 치유되도록 도모하며 문학의 사명을 완수하는 것이다. 폭력의 가해자와 피해자를 이분법적으로 구분하는 것은 무의미하다는 사실 즉, 모두 폭력으로 피해를 받을 뿐이라는 사실을 인식시켜, 폭력 근절의 필요성을 절감하도록 도모하는 노력은, “적대감”(hostility)과“친절함”(hospitality)은 상호 의존적인 개념이라는 데리다의 이론에도 부합한다. 친절함으로 지구촌을 감싸 안자는 데리다의 비전을 두 작가가 외상문학을 통해 형상화했다고 할 수 있다(Vardalos 195;Derrida 13).

    드릴로와 코가와의 작품을 병치하면, 두 작품 모두에서 가해자와 피해자, 일과 여가활동 간의 이분법적인 경계가 해체되는 공통점이 부각된다. 현재의 혼란스런 시점에서 저술된『추락하는 남자』를 과거를 회상하고 반성하면서 윤리철학을 도출한『오바상』과 병치하는 상호텍스트적인 분석은 두 작가가 의도하지만 충분히 부각시키지 못한 함의를 명확히 드러낸다. 드릴로의 리엔이 알츠하이머 환자를 돌보는 설정을 통해 외상치유와 기억을 조심스럽게 연결한 이유는, 코가와의 나오미가 삼 십여 년 전에 겪은 상처를 정확한 기억을 통해 치유하는 점과 병치될 때 확실히 드러난다. 두 작품을 비교하며 읽으면, 테러 외상에서 해방되는 방법과 의의가 분명해질 뿐 아니라, 문학의 기능도 새롭게 부각된다. 9-11 사태 직후 부시대통령은 미국이 초강국임을 과시하며 자본과 군사력을 동원해 테러를 말소하겠다고 선포했다. 권력과 경쟁에 치중한 정치적인 발상과 달리, 문학적인 상상력과 감성에 호소하는 소설 지면에서는 뉴데커가 죽은 럼지와 맺는 유대감이나 나오미가 원폭에 희생된 엄마와 맺는 유대감으로, 현실적인 또 정치 사회적인 범주나 경계로 인한 억압이나 외상을 극복하고 치유와 윤리를 향해 나아갈 이정표를 제시한다. 드릴로는 2001년 12월『하퍼지』(Harper’s Magazine)에 기고한 수필「미래의 폐허 속에서」(“In the Ruins of the Future”)를 다음과 같이 마무리한다.

    죽은 사람끼리 또 죽은 사람을 매개로 살아있는 사람들이 맺는 영혼의 결합으로, 종교, 정치, 계급, 민족, 인종 등의 범주를 초월하는 유대감을 조성하자는 신념을, 드릴로와 코가와는 외상소설로 형상화한다. 목격서술은 세상을 보는 눈과 정의를 생각하는 방식을 변화시켜 윤리관을 조성한다는 캐플란의 이론으로 조명하면(Kaplan 123), 드릴로와 코가와의 소설의 실체는, 국가 차원의 외상을 치유하고 세계 차원의 윤리관을 조성하여 폭력을 근절하기를 갈망하는 문학적  인 사명감의 열매로 드러난다.

    10Herbert Muschamp도 유사한 진술을 한다. “We have begun to translate the trauma into a language of acceptance while deliberately keeping the wound open; we are learning to mourn what happened, bear witness to it, and yet move forward”(147). 뉴데커와 리엔이 치유되는 과정도 치유를 유도하려는 본보기로 볼 수 있다.   11Curwen Best는 문화산업이 지식 창출의 새로운 길을 열 것이며 지구촌 시대에 희박해진 self/nation의 개념을 건강하게 복구하는 것이 문화적인 과제라고 주창한다(1, 235). Best의 영감은 체코슬로바키아의 중세 교육자 Johann A. Comenius가 Labyrinth of the World and Paradise of the Heart (1623)에 개진한 건강 담론을 계승한다. 미로와 같은 혼돈의 세상에서 심리 치유만이 건강한 쾌락을 이끈다는 중세 사상은, David Harris가 From Class Struggle to the Politics of Pleasure(1992)에서 여가, 스포츠, 관광, 쾌락이 인류의 새로운 관심사이며 (148, 154, 158), 소수 지배 권력에 초점을 맞추었던 A. Gramsci의 투쟁 담론은 이제 대중 연구로 방향을 전환해야 할 때가 되었다는 Harris의 결론과도 상통한다(205).   12드릴로는 포커 장면은 작품의 흥미를 더하기 위해 가미했다고 인터뷰에서 밝힌 바 있다(Binelli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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