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로티노스 미학을 통한『악의 꽃』미시독서(4)

Microlecture des Fleurs du Mal a travers l'Esthetique Plotinienne(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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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ABSTRACT

    Nos recherches précédentes fondées sur l'esthétique plotinienne nous ont montré deux constatations principales concernant la poésie baudelairienne. Premièrment, l'oeuvre peut se lire en parallèle avec l’esthétique plotinienne : l'Au-delà des Fleurs du Mal comme l'état de l'Un et de l'Intelligence, le Moi poétique baudelairien comme l'Ame plotinienne, et Ici-bas poétique des Fleurs du Mal comme le monde sensible manifesté dans Ennéades. De cela nous avons compris que l'esthétique plotinienne peut être beaucoup plus efficace à expliquer la poétique baudelairienne que celle platonienne. Deuxièmement, à partir de l’hypothèse concernant une certaine homgénéité entre l'univers poétique contradictoire et la forme de l'expression convenable à cette thématique complexe, nous avons expliqué que les expressions oxymoriques, pleines dans les poèmes dont la contradiction thématique concerne 'Ici-bas, sont maniféstées comme caractéristique du monde sensible plotinien.

    Nos recherches ainsi faites dont le point de vue basé sur l’ontologie plotinienne nous demandent maintenant de regarder son ephistémologie en parallèle avec la poétique baudelairienne. L’âme plotinienne et le Moi poète baudelairien sont le sujet éphistémologique, qui reconnâissent communément la Beauté de Là-bas cachée dans le monde sensible. De cela nous pouvons présenter une hyothèse: les structures éphistémologiques de deux sujets seront ressemblantes l’une à l’autre, étant donné que l’âme plotinienne s’apparente au Moi poète, et que ce Moi dans les Fleurs du Mal s’interprète comme des âmes, dont ses formes se présentent très variables selon le contexte poétique.

    L’omniprésence de l’âme, résultée de l’émanation chez Plotin et de la chute dans les Fleurs du Mal, devera se fonctionner certainement comme clef de voûte. Sa présence détaillée dans tous les poèmes des Fleurs du Mal est alors recensée, et cela nous donne ses quatre status: âme de Là-bas(+), de la chute(↓), de l’Ici(-) et enfin l’âme qui remonte Là-bas(↑). Chcune portant leurs spécificités, son identité structurale entre l’esthétique plotinienne et la poétique baudelairienne à chaque status se définira comme la plus importante: une topographie de l’âme baudelairienne.

    Il nous reste cependant à expliquer ‘l’âme qui remonte Là-bas’, car elle s’identifie comme la plus complexe; les trois précédentes se présentent presque tout le temps en contraste avec elle au nivaux du contexte non seulement dans un poème mais également dans le recueil tout entier. En plus elles impliquent très souvent certaines ambiguïté, confusion et même contradiction entre elles. Ce qui est claire sera pour le moins qu’au centre de cette complexité réside enfin l’âme qui remonte. Dessiner une topographie plus complète de l’âme baudelairienne sera notre prochain projet de la recherche.

  • KEYWORD

    ame , Baudelaire , Plotin , Les Fleurs du Mal , Enneades

  • 1. 들어가면서: 선행 연구와 추론

    플로티노스의 미학을 통하여 보들레르의 『악의 꽃』을 읽어가는 우리의 연구에서 이미 다음의 몇 가지 사실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첫 째, 보들레르의 시세계를 구성하고 있는 주요한 요소들인 ‘저기là-bas’, ‘나-시인 Moi-poète’, ‘여기Ici’ 감각세계le monde sensible를 플로티노스의 세 가지 자립체l’hypostase들인 ‘일자l’Un’와 ‘정신l’Intelligence’, 영혼l’âme’, 그리고 그 하위 구성체들인 자연la nature과 질료적인 것[le corps]과 비교하였다. 보들레르의 시학을 설명하는데 있어 플라톤의 전체적이고 개괄적인 관점보다 플로티노스의 미학이 보다 효과적이고 체계적임을 알 수 있었다. 둘 째, 플로티노스 미학의 핵심 개념인 유출émanation과 감각세계를 통하여 『악의 꽃』에 나타난 ‘여기’의 특성을 살펴보았다. 이를 통하여 보들레르 시학의 이원성이 함의하는 여기 감각세계의 모순이 어떻게 미학적 특성이 되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셋 째, 플로티노스 미학과 『악의 꽃』이 공통적으로 보여주는 감각세계의 모순적이며 대립적인 내용적 층위를 모순어법이라는 시의 표현적 층위에서 구체적으로 확인하였다. 내용형식과 표현형식의 절합이 보들레르 시학의 근본적인 요소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1)

    그런데 전체적으로 플로티노스 미학의 존재론적 관점에 기초한 이런 과정에서 우리가 새롭게 주목한 것은 『악의 꽃』에 나타난 시적 화자인 ‘나-시인’의 인식론적 관점이다. 인식의 주체인 플로티노스의 영혼과 ‘나-시인’은 여기 감각세계에 숨겨진 아름다움을 인식하는데, 이 인식이 일자와 정신세계의 근본적인 속성인 절대적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근본적인 출발 혹은 전제가 된다는 인식론적 유사성을 보여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악의 꽃』에 나타난 ‘나-시인’의 시학적 표현인 ‘영혼’ 또한 플로티노스의 영혼과 동일한 미학적 특성을 가질 것이라는 추론이 가능하다. 개괄적이긴 하지만 보들레르의 영혼과 플로티노스의 개념이 유사하다는 기존의 견해는 우리의 추론이 타당할 수 있음을 의미할 것이다.2)

    따라서 플로티노스 미학이 보여주는 영혼의 특성을 『악의 꽃』에 나타난 보들레르의 ‘영혼’을 해석하는 틀로 삼아 그 지형도를 구체적으로 그려보는 것이 이번 연구의 목적이다. 이를 위하여 우선 유출 혹은 추락에 의해 영혼이 모든 층위에 걸쳐 존재한다는 영혼의 편재성omniprésence을 살펴볼 것이다. 이어서 『악의 꽃』에 나타난 어휘 ‘영혼âme’을 모두 조사할 것이다. 그리고 플로티노스의 일자와 정신세계, 유출, 감각세계, 영혼의 전회에 해당하는 보들레르의 영혼을 저기, 추락, 여기 그리고 저기로 회귀하는 영혼으로 분류해 볼 것이다. 이를 바탕으로 각 단계에 나타나는 『악의 꽃』의 영혼을 플로티노스의 영혼과 비교하며 작품을 통하여 구체적으로 살펴볼 것이다. 단지 이 연구는 앞의 세 단계, 그러니까 저기, 추락, 여기의 영혼에 한정할 것이다. 연구의 진행 과정에서 영혼의 회귀는 결국 영혼의 복합적인 특성으로 인하여 관련된 또 다른 개념들과 함께 종합적으로 고찰할 필요성이 제기 되었기 때문이다.

    1)김종기, 「플로티노스 미학을 통한 『악의 꽃』 미시독서 시론(試論)」, 『코기토』, 제71집, 부산대학교 인문학연구소, 2012(a), pp. 79~103. 김종기, 「플로티노스 미학을 통한 『악의 꽃』 미시독서(2): 감각 세계」, 『프랑스어문교육연구』, 제40집, 한국프랑스어문교육학회, 2012(b), pp. 241~263. 김종기, 「플로티노스 미학을 통한 『악의 꽃』 미시독서(3): ‘감각 세계’에 관한 모순어법」, 『한국프랑스문화학회』, 제27집, 한국프랑스문화학회, 2013, pp. 129~159.  2)M. Eigeldinger, Le Platonisme de Baudelaire, A la Baconnière, 1952, pp. 98-99: “Le problème de la destinée de l'âme, tel que l'envisage Baudelaire, s'apparente également aux conceptions de Plotin, au mythe des voyages métaphysiques de l'âme, de sa chute dans le monde sensible et de son ascension spirituelle.”

    2. 영혼의 속성: 편재성omnipresence

    플로티노스의 관점에서 영혼은 우선 ‘정신세계 le monde intelligible’에 존재한다. 이때 영혼은 ‘육체[le corps 질료적인 것] 없는 영혼’이며, ‘나뉘고 분리되지 않는’ 정신이라는 ‘진정한 존재’의 성질을 닮아 있다. 그러나 정신과 달리 영혼은 나뉠 수밖에 없는 성질을 지니고 있다. 그리고 나뉠 수밖에 없는 성질로 인하여 영혼이 존재하는 양태가 다수성multiplicité임은 필연적으로 보인다.

    그것은 플로티노스의 사유에서 일자 이후의 존재들은 모두 일자로부터 ‘유출’에 의해 생성된 존재들이기 때문인데, 그 과정이 일자와 ‘나뉘는 것’, 일자와 정신으로부터 ‘멀어지는 것’, 그리고 ‘영혼이 질료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이 유출의 개념은 플라톤의 이원론을 정교화 함으로써 플로티노스의 사유에 일원론의 성격을 부여하는 중요한 요소 중의 하나이다.4) 따라서 영혼은 유출을 통하여 질료적인 것 속에도 존재하는 보편적인 요소가 된다. 유출의 관점에서 보면 심지어는 질료적인 것은 영혼이 감각세계로 유출할 수 있는, 그리하여 감각세계에 존재할 수 있는 전제조건으로 설정되기도 한다.

    이처럼 저기 일자와 정신의 세계에서부터 유출을 통하여 여기 자연과 질료의 감각세계에까지 퍼져있는 영혼은 당연히 ‘우리들’ 속에도 존재한다.5) 『악의 꽃』의 시적 화자인 나-시인 속에도 영혼이 존재하며, 이 영혼은 흔히 객체화, 대상화, 의인화를 통해 특히 나-시인의 영혼이 ‘응시하고’ ‘명상하는’ 인식 형태와 동일화 되고 있다.6)

    그런데 영혼은 ‘정신적인 존재들의 맨 끝, 그리고 감각적 본성의 경계’를 오가는 존재이다.7) 정신보다는 열등하지만 그렇다고 질료는 아니며, 정신의 로고스보다는 순수하지 않지만 정신의 속성인 로고스와 질료가 뒤섞인 존재이다.8) 따라서 플로티노스의 존재론은 특히 영혼을 중심으로 정신세계와 자연, 질료의 감각세계가 연결되어 있는 유기론적 존재론, 이원적 일원론의 성격이 강하다. 그래서 유출의 성격에 따라 영혼의 ‘두 가지 기능’을 고려하기도 한다.9) 특히 인간의 영혼은 정신세계와 감각세계를 이어주는 ‘매개적인’ 존재이다.10) 따라서 인간은 ‘영혼의 중심부분’이라는 위상을 가지며,11) 영혼은 ‘필연적으로 이중적인 삶’을 가지고 있다.12) 보들레르 또한 예술가는 ‘이중적인 존재’, ‘이중적 성격’을 가질 때만 예술가라고 인식하였다면,13) 그의 비평적 관점에서 흔히 발견할 수 있는 ‘이중적 인간 Homo duplex’의 시학적 표현이 영혼이며,14) 이는 플로티노스의 영혼과 동일한 성격임을 이해할 수 있겠다.

    3)Plotin, Ennéades, texte établi et traduit par E. Bréhier, Paris, Les Belles Lettres, 1924, 2003, Ⅳ권 1장 1절(이후 ‘Ennéades Ⅳ권 1장 1절’을 각주에서는 ‘Enn. Ⅳ.1.1’, 본문에서는 ‘Ⅳ.1.1’과 같은 방식으로 표기).  4)플로티노스 사유의 유기론적 이원론, 이원적 일원론의 성격은 유출 개념에 근거한다. 이것이 그를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와 변별해주는 가장 근본적인 관점이다(E. Bréhier, La Philosophie de Plotin, Livrairie Philosophique J. Vrin, 1999, pp. 37-38). 보들레르와 관련하여서는 M. Eigeldinger(op. cit., pp. 72-73)의 견해를 참조할 수 있다. “La pensée platonicienne est fondée sur la séparation de l'intelligible et du sensible, sur le dualisme de l'esprit et de la matière, d'une façon beaucoup plus nette et absolue que ne l'est la théorie baudelairienne des correspondances. [⋯]. Dans le système de Platon, la participation est un moyen de remédier à la dissociation totale du réel et de l'idéal. Chez Baudelaire, la fusion du matériel et du spirituel est beaucoup plus étroite et la participation n'est pas réduite au rôle de simple instrument; elle vise une fin esthétique et prend une valeur proprement créatrice.” 또한 유출에 기초한 플로티노스의 미학은 계보학적인 차원에서 스베덴보리를 거쳐 보들레르에게 영향을 끼쳤음을 알 수 있는데, 특히 플라톤의 분유la participation 개념과 플로티노스의 유출 개념의 차이를 고려하면 보들레르의 경우 유출에 의한 존재론에 더 가까움을, 그리고 이 일원론적 존재론이 보들레르의 미학과 관련될 수 있음을 이해할 수 있다.(김종기, 「2012(a)」, 각주 12 참조). 유출의 기원이 되는 일자의 관점은 또한 그리스 전통의 ‘non creatio ex nihilo’를 오늘날 기독교 신학의 토대가 되는 ‘creatio ex nihilo’로 바꾸었다는 점이다. 이는 그리스의 ‘우주론적 모델 un modèle cosmologique을 존재론적 모델 un modèle ontologique로 전환시킨 것’이다(cf: J.-M. Narbonne, La Métaphysique de Plotin, Paris, Livrairie Philosophique J. Vrin, 2001. 「La conception plotinienne de l’Etre」, pp. 27-34). 이와 같은 ‘자기 유출에 관한 사유 l’idée d’un auto-engendrement’는 스피노자의 ‘자기원인 causa sui’, 육체와 정신의 일체를 주장하는 ‘코나투스conatus’ 개념으로 연결된다(R. Scruton, Spinoza, Oxford, 2002, pp. 41-45, ≪Substance, mode, and attribute≫). 이러한 관점에 관해서는 E. Bréhier(op. cit., p. 33) 참조: “La position de Plotin par rapport au rationalisme grec est analogue à celle de Spinoza par rapport au cartésianime: Spinoza, lui aussi, a cherché à résoudre le problème de la vie éternelle et de la béatitude dans un rationalime complet et sans réserve.”  5)Enn.Ⅴ.1.10: “Il y a d'abord l'Un, qui est au delà de l'Etre, [⋯] à sa suite, l'Etre et l'Intelligence, et, au troisième rang, la nature de l'âme. Comme ces trois réalités sont dans la nature des choses, il faut penser qu'elles sont aussi en nous.”  6)“tu contemples ton âme”(L'homme et la mer, 14), “Contemple-les, mon â me;”(Les aveugles, 92), “Recueille-toi, mon âme,”(Le crépuscule du soir, 95)(이탤릭체 필자 강조)  7)Enn. Ⅳ.8.7: “Elle[l'âme] occupe dans les êtres un rang intermédiaire; elle a une portion d'elle-même qui est divine; mais placée à l'extrémité des ê tres intelligibles et aux confins de la nature sensible, elle lui donne quelque chose d'elle-même.”  8)Enn. Ⅲ.2.2: “Le monde intelligible est pure raison, et il ne peut naître un autre monde qui soit pure raison. S'il naît autre chose, ce doit être une chose inférieure à lui et non pas une pure raison; ce ne doit pas être non plus la matière, puisque la matière n'est pas un monde; c'est donc une chose mélangée des deux. Elle se décompose donc en matière et en raison; son origine est l'âme qui préside à ce mélange.”  9)M. I. S. Cruz de Prunes, La Genèse du monde sensible dans la philosophie de Plotin, puf, 1979, p. 36: “L’âme possède deux ‘parties’: peut-être serait-il préférable de parler de deux fonctions, l’une supérieure et l’autre inférieure, cette dernière étant une image de la première et l’imitant afin de produire les étres vivants.”  10)관점에 따라서는 영혼뿐만 아니라 일자를 제외한 모든 존재들이 이런 매개적 성격을 띠고 있다. J. Laurent, Les Fondements de la Nature dans la Pensée de Plotin, Livrairie Philosiphique J. Vrin, 1992, p. 56: “Or, toute réalité pour Plotin, sauf l’absolu qu’est le Premier, est intermédiaire.”  11)Enn. IV.3.18: “Pour nous, nous sommes cette partie principale de l'âme, qui est intermédiaire entre deux puissances, l'une inférieure et l'autre supérieure, la sensation et l'intelligence.”  12)Enn. IV.8.4: “Les âmes ont nécessairment une double vie; elles vivent en partie de la vie de là-bas, et en partie de la vie d'ici, d'avantage de l'une, lorsqu'elles peuvent être en relation plus intime avec l'intelligence, et d'avantage de l'autre, dans le cas où elles y sont contraintes par leur nature ou par des circonstances accidentelles.”  13)Baudelaire, Oeuvre Complète, Ⅱ, De l’essence du rire, Ⅵ, p. 543: “L’artiste n’est l’artiste qu’à la condition d’être double et de n’ignorer aucun phénomène de sa double nature.”  14)Baudelaire, O.C.Ⅰ, Mon coeur mis à nu, Ⅰ, p. 676: “De la vaporisation et de la centralisation du Moi , Tout est là.”; Ⅺ, pp. 682-683: “Il y a dans tout homme, à tout heure, deux postulations simultanées, l'une vers Dieu, l'autre vers Satan. L'invocation à Dieu, ou spiritualité, est un désir de monter en grade; celle de Satan, ou animalité, est une joie de descendre.”

    3. 『악의 꽃』에 나타난 영혼의 지형도

    플로티노스의 유출에 의한 영혼이 정신세계와 감각세계의 중간자이며 매개자, 이중적인 성격을 가진다는 관점, 그리고 그것이 구체적으로 정신에 가까운 상위의 영혼과 감각세계에 가까운 하위의 영혼으로 나뉜다는 관점과 『악의 꽃』에 나타난 영혼을 비교해 설정해보면 다음과 같이 네 가지의 경우로 나누어 설정할 수 있을 것이다.

    『악의 꽃』의 시적 화자인 나-시인이 정신세계와 감각세계에 대한 인식주체라면, 『악의 꽃』에 나타난 영혼의 이런 양태 또한 이 두 세계에 대한 이중적이며 매개적인 인식의 양태를 의미할 것이다.

    시학으로서 『악의 꽃』의 나-시인의 갈등과 긴장과 고뇌라는 인식론적 특성이 미학으로서 플로티노스가 말하는 ‘여기’와 ‘저기’ 사이의 중개자 혹은 전달자로서 영혼이 가지는 양면적 특성과 닮아 있다면, 나-시인의 구체적인 표현인 ‘영혼’이라는 어휘는 『악의 꽃』에 매우 다양한 양태로 나타나고 있다. 우선 어휘수의 측면에서 『악의 꽃』 1861년 판본에서 57 경우, 전체 127편의 작품(서시 독자에게 Au lecteur 는 편의상 <우울과 이상>에 포함) 중에서 50개의 작품에 사용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15)

    우선 『악의 꽃』에 나타난 영혼에 관한 전체적인 현황을 도표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서시 「독자에게」는 작품 번호를 ‘0’로 부여 하였고, 작품은 이탤릭체 숫자로 『악의 꽃』의 각 하위 장에 따라 표기하였다.

    우선 제목에 포함된 ‘영혼’( 술의 영혼 L’âme du vin 과 같은 경우)과 대명사(‘Moi, mon âme est fêlée [⋯] / Elle veut [⋯]’에서 Elle[영혼]과 같은 경우)는 산입하지 않았다. 그리고 분류의 기준은 다음과 같다. 우선 영혼을 직접 수식하는 부가사épithète, 은유 등의 성격을 판단 기준으로 삼았다. 예를 들어 ‘기쁨에 찬 영혼 âme toujours ravie!’(Semper eadem, 40)과 같이 정신세계의 상태를 나타내는 경우 ‘저기의 영혼’으로, ‘쓰러진 영혼 âme vaincue’(Le flacon, 48)과 같이 하강의 의미를 가지면 ‘추락하는 영혼’으로, ‘이미 지쳐버린 내 영혼 mon âme déjà lasse’(Les sept vieillards, 90)처럼 여기의 불행감을 나타내는 경우 ‘여기의 영혼’으로, 그리고 ‘우리의 영혼은 이카리 섬을 찾아 떠나는 돛대 세 개의 배 Notre âme est un trois-mâts cherchant son Icarie;’(Le voyage –2, 126)와 같은 은유의 문맥에 의해 일자와 정신세계로 향하는 경우는 ‘저기로 회귀하는 영혼’으로 보았다.

    영혼에 관한 직접적인 부가사, 은유 등이 나타나지 않는 경우는 행, 연, 시 전체 그리고 제목으로 그 문맥을 확대해 영혼의 성격을 이해하였다. 예를 들어 「썩은 짐승 시체 La charonge」(29)에서 이 시를 열고 있는 첫행의 ‘내 영혼 mon âme’은 연인에 대한 단순한 호칭이다. 그러나 작품의 마지막 연에서 이 영혼은 ‘나의 미녀 ô ma beauté’[아름다움]로 바뀌며, 이는 ‘해체된 내 사랑의 / 형상과 거룩한 본질 la forme et l’essence divine / De mes amours décomposés’로 드러나기에 ‘저기로 회귀하는 영혼’으로 보았다. 또 다른 경우를 보면, 예를 들어 ‘격노한 그의 영혼 son âme exaspérée’(Une martyre, 110)에서 수식하는 부가사는 ‘여기의 영혼’에 해당할 수 있지만, 시 전체의 문맥과 「순교한 여자」라는 제목을 함께 고려했을 때 ‘저기로 회귀하는 영혼’으로 분류하였다.16)

    전체 127편의 작품 수 대비 영혼의 빈도수 비율은 평균 44.2%를 나타낸다. 그러나 현재로서는 이 빈도수에 어떤 특정한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앞으로 영혼 이외의 다른 어휘, 예를 들어 ‘하늘Ciel, ciel, cieux’, ‘신Dieu, dieu, dieux’ 등에 관한 연구가 이루어진다면 그 상대적인 의미를 도출할 수 있을 것이다.

    단지 영혼의 양태와 관련하여 드러나는 특징은 ‘여기의 영혼(-)’과 ‘저기로 회귀하는 영혼(↑)’이 각각 38.6%, 33.3%로서 그 비율이 비슷하며, 합하면 70%를 상회하여 지배적이라는 점이다. 전체적으로는 저기의 행복한 영혼이나 질료의 세계로 추락하는 플라톤적 영혼의 상태도 나타내지만, 세부적으로는 ‘악의 세계인 여기에서 아름다움의 세계인 저기를 끊임없이 추구하는 플로티노스의 영혼, 그 과정에서 영혼이 겪는 긴장과 대립과 갈등과 투쟁으로 점철된 드라마가 『악의 꽃』’이라는 기존의 연구를 영혼의 관점에서 구체적으로 확인해 준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17)

    이와 같은 영혼의 전체적인 지형도를 따라 이제 작품을 통하여 그 양태를 구체적으로 확인할 차례이다.

       3.1. ‘저기’의 영혼

    플로티노스의 미학이 설명하는 일자와 정신, 그 세계는 언뜻 보면 비논리적인 모순과 역설,18) 동의반복19) 등으로 일관된 것처럼 보인다. 이런 표현은 플로티노스의 일자의 존재론적인 특성과 관련이 있을 것이다. 일자가 ‘정신적인 것의 저 너머에 있는 원리 principe qui est au delà de l’intelligible(Ⅲ.7.2.); ‘존재 저 너머에 있는 존재 il est donc au delà de l’être.’(Ⅴ.5.6.), ‘본질 저 너머에 있는 것, 그래서 사유 저 너머에 있는 것 Ce qui est au delà de l’essence est aussi au delà de la pensee’(Ⅴ.6.6.)과 같은 초월적 존재, ‘절대적인 일자 l’Un absolu’(Ⅲ.8.10.)라면, “어떤 말도 그[일자]에게는 적합하지 않다.”20) 그래서 “우리는 일자가 어떤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그러나 어떤 것이라고 말하지는 않는다.”21)와 같은 부정신학적 논리(theologie negative)가 사용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일자와 정신세계가 인식의 대상이 되면 그 속성은 아름다움22), 선,23) 신성하고 정의로운 질서,24) 움직임이 없는 상태[고요]25)로 표현되며, 이들은 자주 빛, 태양으로 은유되어 있다.26) 결국 일자와 정신세계가 영혼의 인식과 관련될 때, 그것은 그리스 미학의 근본 요소인 ‘진 선 미 la beaute, la justice et la vertu’로 드러나며, 이것이 영혼의 모든 것, 그러니까 ‘시작이며 끝[완성]’인 ‘저기’이다.

    플로티노스의 영혼의 ‘시작과 완성’이 저기 일자와 정신세계, ‘우리가 떠나온 장소인 그곳, 우리의 고향, 우리의 아버지가 있는 저기’로 ‘여행’하는 것이라면,27) 보들레르의 「여행에의 초대 L'invitation au voyage」(53)에 나타난 영혼 또한 ‘저기에 가서 살기 aller là-bas vivre’위해 여행을 꿈꾼다.

    이 시를 지탱하며 뼈대 역할을 하는 후렴구의 ‘질서와 아름다움, 호화, 고요’는 앞서 살핀 플로티노스의 저기 일자와 정신세계를 그대로 나타내는 속성들이다. 피슈아의 해설에 따르면, 앙드레 지드는 이 후렴구를 ‘예술 작품에 관한 완벽한 정의’라고 보았고, 또한 ‘쾌락’을 포함한 다섯 어휘를 ‘미학 교과서의 연속적인 장의 제목으로 기꺼이 취할 것’이라고 평가하였다. 단지 쾌락에 대한 지드의 ‘관능, 질료의 찬탄할만한 매혹, 매력’이라는 견해는 우리와 달리 ‘여기의 영혼’의 속성으로 보인다.28) 그러나 보들레르의 ‘쾌락’이 ‘성스러운 쾌락 saintes voluptés’(Bénédiction, 3), ‘고요한 쾌락 les voluptés calmes’(La vie antérieure, 12), ‘순수한 쾌락 la volupté pure’(Moesta et errabunda, 62), ‘신성한 쾌락 volupté divine’(Madrigale triste)이라면, 그 속성은 플로티노스의 정신세계의 속성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저기의 이런 영혼의 양태가 조건법으로 표현되었다면, 이는 현실이 아닌 시적 화자인 나-시인의 상상임이 분명하다. 저기를 보는 보들레르의 전형적인 방법으로서, ‘두 눈을 감고, 행복한 해안 펼쳐지는 것을 보는 les yeux fermés, Je vois se dérouler des rivages heureux’(Parfum exotique, 22)것과 동일하다. 이는 플로티노스의 영혼이 ‘저기’로 향하는 한 방법, 그러니까 ‘눈을 감고, 보는 방법을 다른 것으로 바꾸는 것’과 또한 다르지 않다.29) 또한 나-시인이 그리워하는 어린 시절 하녀의 ‘경건한 영혼 cette âme pieuse’ (La servante au grand coeur ⋯, 100), ‘너[사랑하는 여신 chère Déesse]의 환영이 불멸의 태양을 닮은, 찬란한 영혼 Ame resplendissante’ (L'aube spirituelle, 46) 등, 나-시인이 아닌 타자의 영혼도 저기, 정신의 세계를 드러내고 있다. 이때의 영혼 또한 과거나 추억과 연관된, 현실이 아닌 상상 속에서의 영혼이다.

    또한 영혼이 상상하는 저기는 지금까지 영혼이 몰랐던 저기가 아니라, 이미 영혼이 존재했던 저기임을 암시하고 있다. 저기에서 영혼이 듣는 언어가 처음 듣는 새로운 언어가 아니라 ‘고향의 달콤한 언어’이기 때문이다. 이는 영혼이 애초에는 ‘달콤한’ 저기에 있었으나 저기가 아닌 다른 곳, 저기처럼 ‘달콤하지’ 않은 곳으로 이동했다는 것을 전제하여야 가능할 것이다.30)

    이 전제가 바로 나-시인의 탄생, 여기에로의 이동이다. 플로티노스의 유출이 ‘저항할 수 없는 인력의 마술적인 권능’에 의한 것처럼,31) 애초 『악의 꽃』의 ‘시인도 전능하신 하느님의 명령에 의해 / 이 지겨운 세상에 태어난다. par un décret des puissances suprêmes, / Le Poète apparaît en ce monde ennuyé.’ 그리고 이 세상은 시인을 ‘[하느님] 당신의 심술로 저주받은 연장 l’instrument maudit de tes méchancetés’이라 여긴다.(Bénédiction, 1) 저기로부터 바로 이 땅, 질료의 세계를 향한 영혼의 유출, 혹은 추락이 시작된 것이다.32)

       3.2. 추락하는 영혼

    플로티노스에 있어 영혼의 유출은 두 단계로 나누어 생각할 수 있다. 먼저 일자와 정신으로부터 영혼은 유출 된다. ‘납빛의 기이한 저 하늘로부터’ ‘어떤 생각이 너의 텅 빈 영혼으로 / 내려’오기 때문이다.33) 또한 유출은 나-시인의 영혼뿐만 아니라 술과 같은 질료에 까지 닿는다.

    태양이 플로티노스가 보편적으로 상징하는 저기 일자와 정신일 때, ‘불타오르는 언덕에서’ ‘태양’이 ‘나[술]의 생명’을 낳는다는 것, 이 생명에게 영혼을 부여한다는 것은 바로 유출일 것이다. 더구나 술이 ‘영원한 「씨 뿌리는 자」가 던져준 귀중한 씨앗’이라면, 이 시행들은 유출된 일자와 정신의 흔적이 감각세계에 까지 남아있다는 플로티노스의 미학과 동일한 존재론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하나 그리고 여럿’인 영혼은 자신을 나누어 유출한 것이 자연과 질료이기 때문이다.34) 또한 감각세계인 자연과 질료속에는 영혼을 따라 유출한 일자와 정신의 흔적이 남아 있기에 그것은 일자와 정신의 흔적, ‘귀중한 씨앗’이 된다.35)

    그러나 플로티노스의 유출은 『악의 꽃』에서는 여기 인간으로의 추락으로 나타난다.

    ‘현기증’은 영혼이 높은 곳, 저기에 있음을 의미할 것이다. 그런 존재의 상태가 영혼을 여기 ‘인간의 악취로 어두워진 심연 쪽으로 밀어 낸다’면, 그것은 영혼이 저기로부터 여기로 추락했다는 의미가 된다. 만약 플로티노스의 유출이 ‘저항할 수 없는 인력’ 혹은 ‘비의지적인’ ‘영원한 법칙’과 같은 것이라면,36) 보들레르의 영혼의 추락 또한 ‘가여운 기념비 우리의 영혼을 / 저주의 이빨로 쏠아먹는 「돌이킬 수 없는 일 L’Irréparable」(54) [qui] ronge avec sa dent maudite / Notre âme, pieux monument’이다.

    저기에서 여기 인간의 영혼으로 추락한데 이어 여기에서 이제 또 다른 ‘심연’, ‘지옥’에까지 추락은 계속된다. 유출의 결과로 ‘하나의 「관념」, 하나의 「형상」, 하나의 「존재」’가 ‘하늘에서 쫓겨나 「천국」의 어떤 눈도 / 미치지 않는 진흙의 납빛 / 「지옥」에 떨어지기’ 때문이다.37) 이처럼 ‘납빛의 기이한 저’ ‘하늘이 / 닫히고, 초조한 인간이 야수로 바뀌는’ 필연적인 추락의 ‘심각한 순간’을 나-시인의 영혼은 뚜렷이 인식하고 있다.38) 여기, 「안개와 비」가득한 <파리 풍경 Tableaux Parisiens>으로 내려오는 영혼, ‘까마귀의 날개를 활짝 펼치는 영혼’이다.39) 플로티노스의 영혼이 진흙 구덩이로 비유된 감각세계의 질료에까지 유출되는 것처럼, 보들레르의 영혼 또한 여기의 ‘차가운 바람 노닐고’ 일자와 정신의 상징인 태양이 사라진 ‘긴긴 밤 동안 / 바람개비 목이 쉬는 이 허허벌판’까지 추락한 것이다.40)

    플로티노스에 있어 영혼이 이 지상의 ‘질료와 가까워지면’, 이 추락은 저기 ‘정신적인 것에 대한 망각’으로 이어진다.41) 보들레르의 영혼도 마찬 가지이다. 나-시인인 ‘내 영혼을 후회도 없이 망각 속으로 잠기게 하는 것’은 ‘독약’과 같은 여기, ‘질료적인 것’인 ‘너[여자]의 침’이며, 이 침이 또한 ‘쇠잔한 내 영혼을 죽음의 강가로 굴리어 가기’ 때문이다.42)

    이처럼 ‘저기를 망각하는 것’이 영혼을 추락시킨다. 『악의 꽃』에서 이 망각과 영혼의 추락은 다양하게 드러난다. 보들레르에 있어 여자는 흔히 저기의 아름다움을 여기에 숨기고 있는 이중적인 존재였다. 그런데 이 아름다움을 망각하면 여자는 ‘더러운 계집’이 되고, ‘죄악의 여왕 reine des péchés’ ‘천한 짐승 vil animal’ ‘잔혹하기 그지없는 en cruauté féconde’ 존재가 된다. 저기 일자와 정신이 자신에게 부여한, 그러니까 유출에 의해 여기에 남겨진 ‘빌려온 권능’인 ‘아름다움의 법칙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저기 일자와 정신세계에 대한 망각이 ‘영혼을 잔인하게 만든다.’43) 이 또한 질료의 세계에까지, 여기 ‘감옥과 무덤’에 까지 ‘완전히’ 추락하는, ‘아픔과 고통’, ‘슬픔, 욕망, 두려움, 그 모든 악들’을 겪는 플로티노스의 영혼과 다르지 않다.44) “이처럼 영혼은, 저기의 세계에서 유래하는 신성한 존재는, 질료적인 것 내부로 간다. Ainsi l’âme, l’être divin, issu des régions supérieures, vient à l’intérieur d’un corps.”(Enn. Ⅳ.8.5)

       3.3. ‘여기’의 영혼

    플로티노스의 일자와 정신의 세계에 있는 영혼이 한 마디로 ‘육체[질료적인 것]가 없는 영혼’이었다면, 이와 극단적으로 대립되는 여기의 세계에 추락한 『악의 꽃』의 영혼의 모습은 ‘영혼이 없는 이 늙은 육체’, 영혼 아닌 영혼이다. 이제 영혼이 없는 나-시인이기에 ‘물속의 상어처럼 망각 속에서 잠든 dommir dans l’oubli comme un requin dans l’onde’ 영혼이다. 그가 추락한 여기는 ‘달팽이 우글거리는 기름진 땅 une terre grasse et pleine d’escargots’, ‘방탕의 철학자, 부패의 아들들 Philosophes viveurs, fils de la pourriture’인 ‘구더기vers’의 땅, ‘깊은 구덩이 une fosse profonde’, 그러니까 악과 추의 땅, 여기 질료의 세계이다.45)

    ‘영혼이 없는 육체’는 ‘나의 파멸 ma ruine’[죽음 혹은 주검]이며, 이 파멸은 영혼의 파멸, 그러니까 추락이다. 그래서 ‘나의 영혼은 무덤 mon â me est un tombeau’(Le mauvais moine, 9)이 되고, ‘북도 음악도 없는 긴 영구차 행렬이 / 내 영혼 속에서 천천히 줄지어 간다. Et de longs corbillards, sans tambours ni musique, / Défilent lentement dans mon âme.’(Spleen, 78) 또한 ‘거칠고 무거운 육체[질료적인 것]의 무게에 짓눌린 영혼은 l’âme, sous le poids du corps revêche et lourd’(Le crépuscule du matin, 103) ‘이미 지쳐버린 영혼 mon âme déjà lasse’(Les sept vieillards, 90)이다. 그래서 지금, 여기의 ‘[나-]시인은 오늘 [⋯] 그의 영혼이 음산한 오한에 휩싸이는 것을 느끼며, Le Poète aujourd’hui, [⋯] Sent un froid ténébreux envelopper son âme.’(J'aime le souvenir⋯, 5) ‘가련하고 외로운 영혼 pauvre âme solitaire’(Que diras-tu ce soir⋯, 42)이 된다. 플로티노스의 영혼도 보들레르의 이런 영혼과 다르지 않아 보인다.

    플로티노스는 영혼이 저기의 ‘모든 것으로부터 분리되고 멀어져’ 여기에 머무는 근본적인 이유를 ‘정신적인 것으로 시선을 향하지 않음’으로 보았다. 이처럼 ‘오랫동안’ ‘여기’ 남아 있어 저기를 망각한 보들레르의 영혼은 어떤 모습일까? 우선 이런 영혼이 바로 ‘아름다움의 법칙을 알지 못하는’ ‘눈멀고 귀먹은 기계 Machine aveugle et sourde’의 ‘잔인한 영혼’(Tu mettras l’univers entier⋯, 25)이었다.46) 그리고 ‘밤처럼 컴컴한 괴상한 여신’, ‘흑단의 옆구리를 가진 마녀, 캄캄한 밤의 아이’의 ‘검은 커다란 두눈’은 여기의 ‘잔인한 악마’인 ‘네 영혼의 창’과 같이, 여기 보다 더 깊은 곳, 일자의 상징인 태양과 빛이 사라진 스틱스와 같은 지하 혹은 지옥, 밤과 어둠의 이미지를 띠고 있다.

    그런데 이 ‘영혼의 창’은 ‘내 영혼의 어두운 밑바닥 le fond ténébreux de mon âme’(Confession, 45)과 같은 심연[gouffre 혹은 abîme]의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이 ‘창’은 다름 아닌 ‘지하로 통하는 영혼의 창 soupiraux’이기 때문이다.47) 이런 영혼을 향해 나-시인의 ‘욕망은 떼를 지어 달려가지만’ 「그러나 만족하지 못한」(Sed non satiata, 26) 영혼, ‘늙은 시인의 영혼은 헤맨다. L’âme d’un vieux poète erre.’(Spleen, 75) 영혼이 헤매는 장소는 심연, 더 넓은 바다, ‘괴물 같고 끝이 없는’ 여기, <파리 풍경>이다.

    15)‘영혼’은 우리가 『악의 꽃』을 구성하는 주요 어휘라고 판단한 어휘들 중 64번 사용된 ‘하늘 ciel, Ciel, cieux’ 다음으로 많은 경우이다. 플로티노스 사유에서 ‘하늘’이 ‘시작이며 끝[완성]’인 일자와 정신세계에 대한 은유로 흔히 사용된다는 점에서 이 또한 『악의 꽃』과 유사한 점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16)작품에 따라서는 네 가지 양태 중 어느 하나에만 속하지 않고 아주 복합적인 경우도 있다. 한 작품 안에서 여러 번 사용된 영혼이 각기 다른 양태에 속하기도 하고, 또한 문맥과 관점에 따라서 중의적인 해석이 가능한 몇몇 경우를 분석의 과정에서 발견하였기 때문이다. 이런 까닭에 영혼에 관한 이 분류가 다소 작위적이며 도식적이라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영혼의 근본적인 양태에 관한 실증적인 차원의 전제 가능성을 확보하기 위하여 이와 같은 전체적인 관점의 형식성은 불가피한 과정이라고 판단된다. 다양하고 복합적인 영혼의 양태에 관한 자세한 이해는 다음 연구에서 계속될 것이며, 이번 연구는 영혼의 전체적인 지형도에 한정하기로 한다.  17)H. Friedrich, Structure de la Poésie Moderne, Paris: Le Livre de Poche, 1999, pp. 61-64. M. Blanchot, La Part du Feu, Paris: Gallimard, 1949, pp. 137-156. D. Rincé, Baudelaire et La Modernité Poétique, Paris, PUF, Que sais-je?, 1984, pp. 34-35. Enn. Ⅱ.3.9: “Au milieu de tous les maux qui nous sont infligés par le corps,[⋯]. A une autre âme, étrangère à cette vie, appartient le mouvement qui nous porte vers la région supérieure, vers la beauté et vers l’être divin.” Enn. Ⅵ.9.9: “Ici même, l’âme se repose du mal en se retirant dans une région purifiée du mal;[⋯]. Le véritable objet de notre amour est là-bas, et nous pouvons nous unir à lui, [⋯], en cessant de nous dissiper dans la chair.” 특히 『엔네아데스』전 6권의 마지막 문장을 보면, 비록 영혼이라는 어휘는 사용되지 않았지만, 플로티노스의 이 저작이 전체적으로 여기에서 저기로 향하는 영혼의 대서사시임을 상징적으로 말해주고 있다고 보인다. “s’affranchir des choses d’ici-bas, s’y déplaire, fuir seul vers lui[l’intelligence] seul.” (Enn. Ⅵ.9.11)  18)Enn. Ⅲ.9.4: “Il[l’Un] n’est nulle part, toutes choses viennent grâce à lui, parce qu’il est partout, et sont différentes de lui, parce qu’il n’est nulle part.” Enn. V.2.1: “L'Un est toutes les choses et il n'est pas aucune entre elles; principe de toutes choses, il n'est pas toutes choses; mais il est toute chose ... L'Un est parfait parce qu'il ne cherche rien et n'a besoin de rien;”  19)Enn. V.5.8: “Il[l’Un] n’est pas fini; par quoi serait-il limité? Il n’est pas infini, du moins en grandeur.” Enn. V.5.10: “C’est l’intelligence qui est forcé d’aller et de venir, parce qu’elle ne sait pas où elle doit rester et où réside le Premier[l’Un], qui n’est en rien. [⋯] voilà une grande merveille, certe! Il n’est pas venu, et il est là! Il n’est nulle part, et il n’y a rien où il ne soit!”  20)Enn. Ⅵ.9.5: “La merveille qui est avant elle[l’Intelligence], c’est l’Un; ne disons pas: c’est ce qui est un, afin d’éviter d’énoncer l’un comme attribut d’un sujet autre que lui. En réalité aucun nom ne lui convient.”  21)Enn. Ⅴ.3.14: “Nous disons ce qu’il[l’Un] n’est pas; nous ne disons pas ce qu’il est.” 일자에 대한 플로티노스의 부정신학적 논리는 위디오니시우스, 쿠자누스를 거쳐 교부철학, 마이스터 에크하르트의 신비주의 등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난다(한국 철학사상연구회, 『철학대사전』, 동녘, 1989). E. Bréhier도 플로티노스 텍스트의 이런 특징을 지적하면서 신비주의적 요소인 ‘환영’과 ‘직접적인 영성일치’와 같은 체험의 중요성을 언급하고 있다. “Les textes abondant, qui mettent en garde contre tout essai de communiquer avec l’Un autrement que par une vision et une communion directe.”(op. cit., p. 161)  22)Enn. V.5.8: “L’intelligence, alors, reste immobile dans sa comtemplation; elle ne regarde que le Beau [⋯ ] parce qu’elle est près du Premier.”  23)Enn. II.9.1: “Qu’on dise l’Un ou le Bien, il faut penser à une même nature;”  24)Enn. Ⅳ.3.16: “Il ne faut pas croire que cet ordre universel ne soit ni divin ni juste.”  25)Enn. Ⅴ.2.1: “L'Intelligence reste immobile; de même l'Un qui est avant l'Intelligence, reste immobile.”  26)Enn. V.3.12: “Il est raisonnable d'admettre que l'acte qui émane en quelque sorte de l'Un est comme la lumière qui émane du soleil; toute la nature intelligible est une lumière.”  27)Enn. I.6.8: “Mais qu’est cette fuite? Comment remonter? [⋯]. Notre patrie est le lieu d'où nous venons, et notre père est là-bas. Que sont donc ce voyage et cette fuite? [⋯] mais il faut cesser de regarder et, fermant les yeux, échanger cette manière de voir pour une autre.”(이탤릭체 필자 강조)  28)Baudelaire, O.C. I, p. 930: “-Volupté (Sensualité, charme adorable de la matière, attarit)”  29)J.-D. Hubert, L'Esthétique des Fleurs du Mal, Genève: Pierre Cailler, 1953, p. 70: “Ce là indique bien moins la Hollande que le pays idéal des rêves plastiques.” 플라톤주의의 전체적인 관점에서 보들레르의 저기에 관한 영혼의 상상을 M. Eigeldinger 또한 잘 지적하고 있다. “Les Fleurs du mal tendent à prouver que, [⋯], l’âme ne s’affranchit pas véritablement de la prison du corps. Une telle évasion n’est qu’une illusion passagère de l’imagination et de la mémoire qui aiment à se représenter des fictions de l’au-delà ou des tableaux de la pureté édénique.”(op., cit, p. 88)  30)B. Johnson, Défigurations du laguage poétique, Flammarion, 1979, p. 112: “Cette évocation d’une langue première, d’une parole originaire, fait du voyage non pas un éloignement mais un retour, [⋯], une élimination de l’intervalle temporel qui sépare ‘l’âme’ de son origine.”  31)Enn. Ⅳ.3.13: “Elle[âme] descend, comme à l'appel d'un héraut, dans le corps qui lui est conforme; c'est à croire qu'elle est alors mue et emportée par une puissance magique d'une attraction irrésistible.”  32)보들레르 또한 유출의 기독교적 개념이라 할 수 있는 신의 창조를 추락 혹은 신의 타락이라고 보았다. Baudelaire, O.C.Ⅰ, Mon coeur mis à nu, ⅩⅩ, pp. 688-689: “Qu'est-ce que la chute? Si c'est l'unité devenue dualité, c'est Dieu qui a chuté. [⋯] En d'autres termes, la création ne serait-elle pas la chute de Dieu?”  33)“De ce ciel bizarre et livide, /[⋯] / Quels pensers dans ton âme vide / Descendent?’(Horreur sympathique, 82)”, 김종기, 「2012(b)」, pp. 252-253 참조.  34)플로티노스의 ‘하나 l’Un’, ‘하나-여럿 un-multiple’, ‘하나 그리고 여럿 Un et plusieurs’은 세 가지 실체들 각각이 유출과 관련하여 가지는 존재론적 특성이다. M. I. S. Cruz de Prunes, op. cit., p. 41: “L’âme ne peut pas saisir l’unité essentielle entre le sujet et objet, l’unité essentielle entre un et multiple, mais elle contemple l’unité de l’intelligence sur un plan qui est inférieure à celui de l’intelligence elle-même. C’est pourquoi l’âme [⋯] est ≪Un et plusieures≫(hen kai polla) et non ≪Un-plusieures≫(hen-polla) comme sa source.  35)Enn. I.1.7: “Quand à la puissance sensitive de l'âme, elle doit percevoir non pas les choses sensibles, mais les emprintes qui se produisent dans l'animal à la suite de la sensation; et ces emprintes sont intelligibles.” Enn. Ⅵ.7.7: “Les êtres intelligibles peuvent être nommés sensibles, bien qu'ils soient incorporels, [⋯] ainsi les sensations sont des pensées obscures, et les pensées intelligibles sont des sensations claires.”  36)Enn. Ⅳ. 8. 5: “C’est toujours involontairement qu’on va au pire; [⋯] on peut dire [⋯] qu’une loi éternelle de la nature nécessite ces actions et ces passions, puisque l’être qui se joint au corps en descendant de la région supérieure vient [⋯] c'est Dieu qui l'a envoyé.  37)“Une Idée, une Forme, un Etre / Parti de l'azur et tombé / Dans un Styx bourbeux et plombé / Où nul oeil du Ciel ne pénètre;”(L'Irrémédiable, 84)이 구절에 대한 M. Eigeldinger(op. cit., p. 113)의 설명과 평가는 보들레르와 플로티노스의 유출 혹은 추락에 관한 사유가 공통적임을 확인하고 있다. “La forme est un modèle qui émane de l’idée, mais qui lui est intérieur, elle est pour la matière un modèle idéal et transcendant, elle se sépare du sensible et n’est pas déterminée par une substance matérielle. Sur ce point la pensée de Baudelaire est en quelque sorte définie par cette affirmation du philosophe des Ennéades.” 일자의 상징으로서 태양, 그 은유인 ‘하늘의 눈’과 관련된 사항은 김종기, 「2012(a)」, pp. 86-87, 각주 15 참조.  38)“[⋯] ; le ciel / Se ferme lentement comme une grande alcôve, / Et l’homme impatient se change en bête fauve. [⋯] Recueille-toi, mon âme, en ce grave moment,”(Le crépuscule du soir, 95)  39)까마귀의 날개 펼침으로 비유된 영혼은 다른 시편과 상호텍스트성의 관점에서 비교해 볼 때 그 추락의 특성을 선명하게 이해할 수 있다. 비록 ‘영혼’이라는 어휘는 등장하지 않지만, 플로티노스의 관점에서 볼 때 영혼보다 상위 개념인 생각과 정신의 비상이 『악의 꽃』에서 가장 잘 나타나 있는 <우울과 이상 Spleen et Idéal>의 「상승 Elévation」(3)에서 ‘내 정신 Mon esprit’과 ‘생각’의 비상이 ‘종달새’의 비상으로 은유된 것과 선명한 대조를 이루기 때문이다. “Heureux [⋯]// Celui dont les pensers, comme des alouettes, / Vers les cieux le matin prennent un libre essor,”  40)“Dans cette grande plaine où l’autan froid se joue, / Où par les longues nuits la girouette s’enroue, / Mon âme mieux qu’au temps du tiède renouveau / Ouvrira largement ses ailes de corbeau.(101. Brumes et pluies)  41)Enn. II.9.5: “L'âme s'incline vers la matière, [⋯] s'incliner, c'est évidemment oublier les intelligibles.”  42)“[⋯] ta salive [⋯]/ Qui plonge dans l’oubli mon âme sans remord, /[⋯]/ La[mon âme] roule défaillante aux rives de la mort!”(Le poison, 49)  43)“Femme impure! L’ennui rend ton âme cruelle. /[⋯]/ Tes yeux [⋯]/ Usent insolemment d’un pouvoir emprunté, / Sans connaître la loi de leur beauté”(Tu mettrais l'univers ⋯, 25). 영혼과 분리된, 그러니까 영혼이 없는 여자의 이러한 측면은 보들레르의 직접적인 평가에서 또한 확인할 수 있다. “La femme ne sait pas séparer l'âme du corps. Elle est simpliste, comme les animaux. - Un satirique dirait que c'est parce qu'elle n'a que le corps.”(Baudelaire, O.C., Ⅱ, Journeaux intimes, Mon Coeur mis à nu, XXVII , p. 694).  44)Enn. IV.8.3: “Mais l'âme humaine qui est, dit-on, entièrement dans le corps où elle subit le mal et la souffrance, où elle vit dans le chagrin, le désir, la crainte et dans tous les maux.”  45)아름다움을 잃어버린 플로티노스의 여기 질료의 세계에 자리한 인간의 영혼도 보들레르의 은유와 유사한 은유를 통해 나타나고 있다. Enn. I.6.5: “C'est comme si un homme plongé dans la boue d'un bourbier ne montrait plus la beauté qu'il possédait, [⋯]; la laideur est survenue en lui par l'addition d'un élément étranger, [⋯] la laideur de l'âme vient de ce mélange, de cette fusion, de cette inclinaison vers le corps et vers la matière.” Enn. I.8.13: “Et en descandant au-dessous du vice, on trouve le mal en soi,[⋯] on se trouve alors complètement dans la région de la dissemblance; se plongeant en elle, on fait une chute dans un bourbier obscur;”  46)『악의 꽃』에서 저기의 흔적인 ‘아름다움’이나 ‘진정한 사랑을 모르는’ 존재는 흔히 ‘기계’로 묘사된다. “Cette crapule invulnérable / Comme les machines de fer / Jamais, ni l’été ni l’hiver, / N’a connu l’amour véritable.”(Le vin de l’assassin, 106)  47)“Bizarre déité, /[⋯] Sorcière au flanc d’ébène, enfant des noirs minuits, //[⋯]/ Quand vers toi mes désirs partent en caravane, / Tes yeux sont la citerne où boivent mes ennuis. // Par ces deux grands yeux noirs, soupiraux de ton âme, // Ô démon sans pitié!”(Sed non satiata, 26)

    4. 나가면서: 영혼의 복합성과 과제

    유출에 의해 특징지어지는 플로티노스의 사유는 존재의 모든 단계, 그러니까 일자와 정신세계, 인간(영혼), 그리고 자연과 질료의 세계에 영혼이 존재할 수 있는 존재론이었다. 이에 기인하는 영혼의 편재성을 우리는『악의 꽃』에서도 관찰할 수 있었다. 그리고 유출 개념이 플로티노스의 존재론을 인식론으로 전환하게 해주는 근본적인 요소였다면, 『악의 꽃』의 영혼은 시적 화자인 나-시인이라는 인식 주체의 다른 이름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또한 플로티노스의 영혼과 『악의 꽃』에 나타난 영혼의 속성을 비교해 보았을 때, 저기 정신세계와 여기 자연과 질료의 감각세계를 매개하는 중간자적 속성 또한 유사함을 알 수 있었다.

    이러한 관점에서 조사한 『악의 꽃』의 영혼을 우리는 네 가지 양태로 분류하였다. 전체적으로 ‘여기’의 영혼과 ‘저기’로 회귀하는 영혼의 비율이 특히 높다는 사실에서 일단 『악의 꽃』이 여기와 저기 사이의 긴장과 갈등과 투쟁의 대서사시라는 기존 비평을 영혼의 관점에서 실증적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분류된 각 단계의 영혼을 분석해 가는 과정에서 드러난 몇몇 특성들이 있었다. 저기 영혼의 양태는 실재하는 영혼의 양태가 아니라 나-시인이 상상하는 영혼이며, 애초 거기에 존재했던 것이 아니라 여기에서 되돌아 간 영혼이라는 점, 일자와 정신세계에 대한 망각이 영혼이 추락하는 근본적인 원인이라는 점, 그리고 여기의 영혼은 이 망각에 의해 질료의 세계, 나아가 지하와 지옥에까지 추락한다는 점 등이다. 이러한 사실은 전체적으로 『악의 꽃』의 영혼이 플로티노스의 영혼의 시적 표현과도 같음을 의미할 것이다.

    그런데 이번 연구에서 『악의 꽃』에 나타난 영혼과 관련하여 아직 설명하지 못한 복합적인 양태들이 남아있다. 여기의 영혼이 흔히 저기의 상태와 대비되는가 하면, 우리가 여기 혹은 지옥의 상징이라고 본 영혼의 심연 속에도 일자와 정신세계에 대한 추억 혹은 기억이 은밀하게 존재한다. 이 심연은 또한 저기를 함의하기도 하고, 영혼은 심연뿐만 아니라 흔히 바다, 자연으로 은유되면서 여기와 저기가 중첩되기도 한다. 단지 지금 우리가 전제할 수 있는 것은 전체적으로 이 모든 중의성과 모호함과 모순적인 영혼의 이처럼 복합적인 양태가 모두 일자와 정신의 세계와 관련될 것이라는 점이다.

    우리 연구는 근본적으로 플로티노스의 사유에 뿌리를 두고 있고, 특히 그의『엔네아데스』와 비교하며 『악의 꽃』을 읽어가는 과정이다. 그렇다면 영혼에 관하여 ‘변증법적 동일성과 차이성을 지니고 있는 자기의식의 문제’에 주목한 다음과 같은 플로티노스에 대한 철학의 평가가 앞으로 진행될 연구에 유익할 것으로 보인다.

    ‘저기로 회귀하는 영혼’과 더불어 영혼의 복합성, 이에 따른 보들레르의 미학에 관한 고찰이 다음 연구의 과제가 될 것이다.

    48)이부현, 「일자에 대한 경험과 인간의 자기인식 Ⅰ -플로티노스의 영혼과 정신-」, 『중세철학』7, 2001, p. 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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