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ude sur les Nouveaux Ro?les du Parc Contemporain a Paris

파리시의 현대공원에 나타난 도심공원의 새로운 역할에 관한 고찰* 라 빌레뜨 공원을 중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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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ABSTRACT

    Comme un facteur dominant de l’environnement vert de la ville, l’importance du parc situé au centre-ville s’aggrandait sans cesse dans la ville moderne. Il est le terrain saine de jeu et de repos aux citoyens, et, en même temps, il apporte la beauté de la nature en neutralisant l’atmosphère morne de la cité sous le rapport visuel. De plus, des avantages du parc de centre-ville sont variés tels que la réduction de la pollution, la régulation locale de la température, la prévention et l’adoucissement des défis naturels, etc. En le reconnant, des villes partout dans le monde se sont renées comme un espace vert. De plus, le nombre et la fréquence d’utilisation du parc deviennent les critères indispensables de la compétitivité de la ville. Les grandes villes coréennes, qui ont été un symbole du développement insensé, changent l’orientation du développement en faisant la priorité le vie confortable dans la ville. Dans ce cadre, des parcs de centre-ville sont installés activement. Cependant, ces parcs coréens ne jouent que le rôle traditionnel tels qu’une place de repos pour les citoyens, et que le fournisseur de l’espace vert. Dans ce contexte, l’analyse des nouveaux rôles adaptés à la necessité de la ville, avec des cas des parcs de centre-ville situés aux pays avancés, serait la considération à trouver des valeurs importantes qu’on pourrait négliger dans le processus afin d’activer les parcs. Car ceux de Paris étaient considérés, à partir du milieu de 19ème siècle jusqu’à présent, qu’ils présentaient des nouveaux rôles appropriés à la grande villes, ilsseraient des bons examples pour notre considération. Ainsi, nous avons le projet à trouver des valeurs utiles et applicables à l’adoption politique et aux projets pratiques en matières du parc de centre-ville coréenen analysant des politiques et des cas du parc qui ont estimé qu’ils ont été influencés aux parcs de Paris.


  • KEYWORD

    Parc contemporain a Paris , Nouveau ro?le , Ro?le traditionnel , Nouveau ro?le adapte a la necessite de la ville , Espace vert , l'Adoption politique

  • 1. 서론

       1.1. 연구의 목적

    현대 도시에서 도심의 녹색환경을 좌우하는 중요한 요소로서 도심공원의 중요성은 점점 증대되어 왔다. 도심공원은 도시민에게 안전한 휴식과 놀이의 장소가 되고, 시각적으로 삭막한 도시공간을 중화시켜 주는 자연의 아름다움을 제공한다. 그 외에도 공해의 저감, 국지적 기후의 조절, 각종 재해의 방지 및 완화 등 도심공원이 제공하는 혜택은 다양하다. 이 같은 인식에 따라 도시를 자연중심의 새로운 공간으로 디자인하는 경향이 세계적인 흐름이다. 또한 공원의 풍부함과 이용도는 도시 경쟁력을 비교 할 때 빠지지 않고 거론되는 척도 중 하나가 되었다.

    우리나라의 대도시들도 과거 경제성장 기간의 무분별한 도시개발에서 벗어나 도시생활의 쾌적함을 우선시 하는 도시개발로 방향을 전환하였으며 이의 일환으로 적극적인 도심공원의 설치가 이루어지고 있다. 서울의 경우 1990년대 이후 용산가족공원(30만평), 난지한강공원과 연계한 월드컵공원(105만평), 선유도공원(3만5000평)이 들어섰으며, 용산공원조성특별법에 의해 용산미군기지 부지를 약 75만평 규모의 용산공원으로 지정하여 최초의 국가도시공원으로 활용하는 것을 추진 중에 있다.1) 부산의 경우도 미군기지 이전으로 인한 하야리아 부지에 역사와 문화가 어우러진 약 16만평 규모의 부산시민공원 공사를 2012년 7월부터 본격적으로 추진하여 2014년에 개장할 계획이다.2) 또한 2005년 제정된 ‘도시공원 및 녹지등에 관한 법률’에 의해 2030년까지 서부산권, 중부산권, 동부산권의 3개 권역에 상징공원 6개소를 조성하는 한편 1인당 도시공원면적을 5.3m2에서 21.3m2 으로 4배 증가시켜 나갈 계획을 제시하였다.3)

    한편 서울과 부산의 경우에서 보듯이 우리나라 대도시의 도심공원 설치 및 계획이 활발히 진행되고 있음에도 도심공원의 역할은 여전히 시민의 휴식과 녹지공간의 제공과 같은 전통적인 역할에 머물고 있는 실정이다. 이러한 시점에서 도심공원의 전통적 역할 외에 현대도시의 요구에 부응하는 새로운 역할을 선진국의 도심공원 사례를 통해 분석하는 것은 도심공원 활성화를 위한 지금까지의 과정에서 간과해왔던 새로운 가치들을 추출할 수 있는 고찰이 될 수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이미 ‘19세기 중반의 규획화를 통해 성공적으로 실현되어 동시대 유럽도시들의 모델로 기여’4)했으며 그 후 현대에 이르기까지 도시를 위한 새로운 역할을 제시했다고 평가받는 파리시의 도심공원들의 경우 본고의 고찰을 위한 좋은 사례가 될 수 있다. 따라서 본 연구는 파리시 도심공원에 큰 영향을 미쳤다고 판단되는 정책내용과 사례공원의 분석을 통해 우리나라 대도시의 도심공원의 정책적 입안과 실질적 계획의 과정에서 적용 가능한 효용적 가치들을 밝히고자 한다.

       1.2. 연구의 방법

    본 연구는 문헌고찰과 파리시의 대표적인 현대적 도심공원의 자료분석을 통해 이미 언급한 연구목적에 관한 사실을 규명한다. 이를 위한 구체적 접근방법과 내용은 다음과 같다.

    첫째, 문헌고찰을 통해 파리시 도심공원의 전통적 역할과 새로운 역할을 파악한다. 이를 위해 파리시 도심공원의 추진배경과 성립과정에서 나타난 정책적, 사회적 의도들에 관한 내용들과 이 내용들에 의해 파리시도심공원의 역할이 어떻게 변모하게 되었는지를 규명한다. 이를 위해 근대이후 파리시 도시계획 및 녹색공간 정책의 방향을 크게 구분 지은 오스만의 파리시 대개조사업과 1977년의 파리시 신도시정책에 관한 기사들과 선행연구들, 서적들로 문헌자료의 범위를 정하였다.

    둘째, 파리시의 현대공원들 중 가장 규모가 크고 문헌적 자료와 도면 및 통계적 자료가 풍부하다 판단되는 라 빌레뜨 공원을 선택하여 분석함으로서 이 공원에 의도된 새로운 역할에 관한 내용들을 도출한다.

    셋째, 문헌고찰과 분석대상 도심공원에 대한 고찰의 내용을 종합하여 파리시의 현대공원에 나타난 도심공원의 새로운 역할을 규명하며 이를 통해 우리나라의 대도시의 도심공원 활성화의 과정에서 적용 가능한 효용적 가치들을 시사한다.

    1)고종환, 「용산공원 설계 국제공모로 역사와 미래가 공존하는 공원 조성」, 『인터내셔날즈니스타임즈』, http://kr.ibtimes.com/article/news, 2011  2)차호재, 「부산하야리아 시민공원 조성안, 시민보고회를 통해 최종안 확정한다」, 『어니스트뉴스』, http://www.honestnews.co.kr/xe/73391, 2012  3)강진솔, 「부산 1인당 공원면적 4배 늘린다」, 『Lafent 조경뉴스』, http://www.lafent.com/news/News/?ncode=ReadNews&news_id=105114, 2011  4)쇼애(Choay)의 견해에 따르면 18세기 유럽도시의 혼란과 무질서를 극복하기위한 도시계획의 제안은 크게 이상도시론(Pre Urbanism)과 이상도시의 실천(Urbanism) 그리고 규획화(Regulation)의 형태로 나타난다. 규획화는 ‘무질서한 도시의 도식적인 레이아웃에서 새로운 질서를 끌어내는 것’으로서 오스만의 파리시대개조사업은 규획화를 가장 체계적으로 실행한 예증으로 동시대 유럽도시들의 모델로 기여하였다. 프랑수아 쇼애, 『근대도시』, 이명규 역, 세진사, 1996, p.38

    2. 파리시 도심공원의 역할

    연구의 목적에서 밝힌 바와 같이 파리시의 도심공원에 대한 사실들을 고찰하여 도심공원의 전통적 역할 외에 현대도시의 요구에 부응하는 새로운 역할들을 추출하는 것이 본 논문의 핵심적 내용이 된다. 이를 위해 근대 이후 파리시의 도심공원 형성에 있어 중요한 단락을 지은 19세기 중반 오스만의 파리시 대개조사업과 1977년의 파리시 신도시정책에서 의도한 도심공원의 성격을 살펴 그 역할이 어떻게 변화해 왔는지를 파악하는 것은 연구의 전개를 위해 필요한 과정이라 할 수 있다.

       1) 오스만의 파리시 대개조사업

    중세 이후 파리의 공원은 대부분 왕실이나 귀족, 승려계급 등 특정신분의 사람들에게만 출입이 허용된 장소였다. 예를 들어 튈르리 공원(Jardin des Tuileries)은 저녁이 되어서 야 문을 열었고 그 곳은 왕실과 귀족들만의 사교와 대화, 회합의 장이었다.(그림 1) 이러한 파리시공원의 신분 배타적 성격은 19세기 초까지 이어졌다. 다시 말해 ‘19세기 이전 파리의 공원에 있어서 대중(public)이나 도심적(urbain)의 개념은 희박했다’5) 라고 할 수 있다. 이처럼 공원에 대한 귀족적 전통이 오래 지속된 파리시에 시민들을 위한 도심공원들을 기획한 사람은 나폴레옹 3세(Napoléon III)6)와 그의 명을 받은 오스만 남작(Baron Haussmann) 이었다.

    1852년 프랑스 제2제정의 황제로 즉위한 나폴레옹 3세는 오스만을 파리시의 경시청장으로 임명해 무질서하고 비위생적인 파리시를 근대적 작동성과 미려한 아름다움의 도시로 탈바꿈시키는 대대적인 도시 재개발에 착수하였다.7) 후일 오스만의 파리시대개조사업이라 불리는 이 재개발에서 오스만은 도시 전체에 대한 상세하고 정확한 현황분석에 기초해 도로의 순환시스템을 설계하고 도심녹지에 의한 통풍시스템을 조직하였다. 또한 이 둘을 결합하여 유기체로 기능하는 도시질서를 이끌어 내었다.8) 이같은 오스만의 파리시대개조사업으로 파리시가 새로운 모습의 근대도시로 재탄생한 것은 도시계획사에서 잘 알려진 사실이다.

    파리시대개조사업에서 오스만은 나폴레옹 3세가 런던 망명 시절 깊은 인상을 받았던 도심공원의 이미지를 구현하는 것을 녹지정책의 기본적인 내용으로 삼았다. 가르니에에 따르면 ‘1800년대 초 런던에는 이미 총 면적 4000 여 헥타르에 달하는 도심공원들이 도시 곳곳에 자리 잡고 있었다.’9)이 공원들은 런던시민들이 근교로 나가지 않고도 걸어서 만날 수 있는 도심 속 전원을 제공하였다.

    이러한 런던을 모델 삼아 파리시를 미려한 근대도시로 탈바꿈시킬 계획을 집권 전부터 세워왔던 나폴레옹 3세의 의도는 오스만에게 그대로 전해졌다. ‘오스만이 취한 도심공원의 정책은 도시의 곳곳에 전원적 분위기를 제공하는 녹색 오아시스들과 이들이 이루는 네트워크를 구현하는 것이었다.’10) 현재 파리시 도심공원의 네트워크에서도 주요한 자리를 차지하는 불로뉴 숲(Bois de Boulogne)과 뱅센느(Bois de Vincennes)숲, 뷰트 드 쇼몽 공원(Parc de Butte De Chaumont)공원, 몽수리 공원(Parc de Montsouris), 몽소 공원(Parc de Monceaux)은 위와같은 내용의 도심공원 정책에 의해 실현 되었다.(그림 2) 이 공원들은 4m 에서 8m에 달하는 높은 울타리와 무성한 나무들로 경계가 둘러쳐져 인근의 도시적 환경과 소음으로부터 완벽하게 격리되었다. 한편 내부공간은 자연그대로의 거칠고 소박한 영국 전통의 수법으로 구성되었다.(그림 3)

    나아가 오스만은 귀족과 극빈자에 이르기까지 일상에서 신선한 공기와 자연에 도달할 수 있는 도심공원을 개발의 주요 대상으로 삼았다. 이러한 정책으로 스쿠아(Square)라 불리는 24개의 도심 소공원들이 등장하였다. 도심 소공원들은 모든 계층의 도시민들이 집으로부터 걸어서 접근할 수 있도록 도로교통망과 긴밀한 연계를 맺으며 파리시 전역에 골고루 배치되었다. 결과적으로 도심소공원들은 시간을 내 파리시 외곽의 대규모 숲으로 이동해야 가능했던 파리 시민들의 산책과 전원 속의 휴식을 일상에서 누리도록 하려는 이 시대 도심공원정책의 특징을 잘 나타낸다.

    이상의 내용들을 정리하면 파리시대개조사업에서 오스만은 도시의 경관의 재창조와 평등한 도시민의 보건 및 휴식을 도심공원정책의 핵심적 내용으로 삼았으며 이에 따라 실현한 도심공원들의 역할을 과밀한 도심지속에서 시민들에게 휴식과 산책 그리고 상쾌한 공기를 제공하는 녹색 오아시스로 규정하였음을 파악 할 수 있다.

       2) 1977년 파리시 신도시정책

    이차세계대전 이후 수십 년 동안 파리시는 모더니즘에 기초한 도시정책에 의해 도시개발이 진행되었다. 이에 따라 1945년에서 1975년 사이 기간 합리성과 효율성이 강조된 지역개발이 파리시의 도처에서 이루어졌다. 몽파르나스 타워를 중심으로 하는 지역(Quartier de Montparnasse)의 개발과 파리 중심부에서 유일하게 볼 수 있는 현대식 고층 아파트 지구인 ‘프롱 드 라 센’(Front de la Seine) 은 이 시기 도시개발의 산물이라 할 수 있다.(그림 4) 한편 탈 개성, 탈 지역성, 탈 역사성을 지향하는 모더니즘적 도시개발 방식은 중세이후 유럽의 중심도시로서의 기억과 아름다움을 보존해온 파리시의 문화적이고 역사적인 가치들을 단절시키고 파괴하는 폐해를 낳았다. 이 같은 도시개발의 부작용을 극복하기 위해 1960년대 후반부터 보다 신중하고 소박한 도시개발 방식으로의 전환이 요구되었다. 1968년에 파리시내의 고층아파트 단지개발에 대한 반론이 제기되었으며 1973년에는 무분별한 부동산 개발을 규제하는 법안이 발표되었다. 이러한 분위기에서 ‘오일쇼크로 인한 1970년대 경제위기는 개발압력을 감소하고 보존과 질적 향상을 강조하는 방향으로 도시정책을 전환하는 계기가 되었다’.11)

    이와 같은 시대적 배경에서 1977년 민선시장으로 취임한 자크 시락(Jaques Chirac)12)은 파리시신도시정책의 구체적 지침인 SDAU(Schéma Directeur d'aménagement et urbanisme de la ville de Paris)13) 를 발표하였다. SDAU의 골자는 기존의 도시 환경적 특성을 존중하는 개발로서 이에 부합하는 도심공원 정책의 내용을 포함하였다. SDAU의 도심공원 정책에서 핵심적 내용은 오스만의 파리시대개조사업에서 형성한 도심 공원의 체계위에 몽소공원 이나 몽수리공원과 같은 규모의 도심공원의 증설과 개발계획지구(ZAC14)) 안에 근린 소공원 및 산책로를 집중적으로 설치하는 것이었다. 또한 도심공원에 다음과 같은 새로운 개념들을 적용 하였는바, 이 개념들은 이후 파리시 도심공원들의 역할이 변화하게 되는 근원적 배경으로 작용하였다.

    가) 열린 공원

    ‘영국과 네덜란드에서 도심 혹은 부도심의 건설되지 않은 일단의 빈 땅을 지칭하는 ‘open field’ 또는 ‘open space’ 을 번역한 용어인 열린 공간(espace ouvert)이 SDAU의 도심공원 정책에 처음 등장하였다’.15) 영국과 네덜란드는 이미 도시 내 녹지공간이 도시화의 증대에 따른 불리한 점들을 메워주는 사실을 경험한 나라들로서 두 나라의 용어를 차용한 사실은 SDAU의 녹지정책이 파리시 개발과정에서 발생한 폐해를 치유하는 도심공원을 꾀한 것을 시사한다. 여기에서 열린 공간의 개념은 ‘전원으로 열린 도시’ 인 동시에 ‘도시에 포함된 전원’을 의미한다. 이 같은 열린 공간의 개념에 따라 도심공원의 역할은 산업화에 의해 집중적으로 성장한 ‘도시환경의 사이사이에 존재하는 공간들을 전원의 환경으로 유지하고, 개발의 흐름이 끊어져 자연환경으로 남아있는 부분들을 보존해 인근 지역의 도시환경을 향해 개방함’으로서 도시로 부터의 녹색 요구를 담아내는 역할로 그 성격이 규정되었다.16)

    나) 도시기능의 일부

    도심공원에 대한 ‘도심기능의 일부’의 개념은 도시에서 주거 밀집지역이 증가하면 동시에 자연환경이 축소되는 도시개발의 결과에 따라 나타나게 되었다. 도시화 지역이 확장되면서 도시 내 공터는 점점 고갈되었으며 도시민들의 스포츠 및 각종 행사, 축제를 위한 공간들이 함께 사라지게 되었다. 이 같은 현상에 따라 개발 비용을 지불한 사람들만이 개발구역내에 조성된 자연의 쾌적한 여가 공간을 갖게 되는 환경 수혜의 불평등이 생겨났다.

    이 같은 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해 SDAU는 ‘도시 내 각 지역의 거주민들에게 균등한 녹색 환경을 제공해 도시화로 인해 설 자리를 잃게 된 소시민들의 다양한 야외활동들을 도심공원으로 담아내는 것’을 의도하였다.17) 이는 기능적 측면에서 도심공원의 개념을 전통적인 녹색 공간에서 도시화의 부작용을 개선하는 도시기능의 일부로서의 공익적 시설로 확대한 것을 의미한다. 이 같은 ‘도시기능의 일부개념의 적용으로 이후 파리시 도심공원들은 ‘녹색환경 속의 산책과 휴식, 사색의 공간에 머물지 않고 시민들의 활동적인 레저와 문화, 교육, 행사가 이루어지는 장’ 으로서 그 역할이 진화하게 되었다.’18)

    다) 소결

    2장에서 근대이후 파리시 도시개발 방향의 주요 기점이 된 오스만의 파리시대개조사업과 1977년 파리시신도시정책에 나타난 도심공원의 정책적 내용을 살펴보았다. 이에 따르면 각 시대의 도심공원정책의 영향으로 파리시 도심공원은 지향하는 바와 역할이 진화되었다 판단되는 바 그 내용을 정리하면 아래의 표 1과 같다.

    5)오스만은 저서 회상록(Mémoires)에서 대중을 위해 고려된 숲, 공원, 스퀘어의 창조는 제 2제정시대 이전에는 거의 없었다고 쓰고 있다. Haussmann, G. E., Mémoires Tome III, Victor-Havard, 1893, p.257  6)루이 나폴레옹(Napoléon, C. Louis, 1808~1873), 나폴레옹1세의 조카로 제 1제 정의 붕괴로 어린 시절부터 스위스, 이태리, 영국 등에서 망명하였다.  7)피에르 르브당(Pierre Levedan)은이 그의 저서 ‘파리의 새로운 역사’에서 산업혁명 이후 국가경제의 집중과 근로자 인구의 급속한 유입으로 인해 19세기 초의 파리시는 위생과 순환에 있어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는 중병을 앓고 있었다라고 기술하였다. Levedan, P., Nouvelle histoire de paris: Hisoitre de l'urbanism à Paris, Hachette, 1975, p.97  8)견진현, 「오스만의 파리시 도심녹지시스템: 그 효용성과 녹지정책의 논리」, 『한국조경학회지』, 한국조경학회, 2003, pp.38~49  9)런던에서는 일찍이 대중을 위한 도심공원이 발달하였다. 런던의 중심부의 하이드파크(Hyde Park)는 1635년에 이미 일반인들에게 개방되었으며 세인트 제임스파크(Saint-James Park)와 리젼트파크(Regent Park)의 일부가 1841년 개방되었다. 1847년에 팩스턴(Paxton)의 설계로 문을 연 버켄헤드파크(Birkenhead Park)는 런던시민들에게 양궁, 크리켓, 야외놀이와 함께 전원적 풍경을 제공하였다. Garnier Beaujeu, Nouvelle histoire de paris: Hasard ou Prédestination?, Association pour la Publication d'une histoire de Paris, 1975, p.243  10)Racine Gilles, Créateur de Jardins et de Paysage en France du 19ème siècle au 20ème siècle, Acte Sud, 2002, p.109  11)Chadych Danielle, Atelas de Paris: Evolution d'un Paysage Urbain, Parigramme, 2000, p.182  12)1995년에서 2007년 까지 12년 간 22대, 23대 프랑스 대통령을 역임함.  13)‘파리시 도시계획 및 개발 정책’으로 번역할 수 있으나 원문의 의미를 정확하기 전달하기 위해 이후 SDAU로 명기한다.  14)ZAC: Zone d'aménagement concerté 의 약자로 도시개발을 위한 심도 높은 사전 협의를 통해 계획된 지역을 의미한다.  15)VILMORIN Catherine, La politique des espaces verts, Centre de Recherche d'urbanism, 1978, p.77  16)Joffroy Marly, Colloque: Espaces ouverts, Institut national d'éducation populaire, 1975, p.24-27  17)VILMORIN Catherine, 상게서 p.82  18)SOIGNON Jaques, Fréquentation et attitudes dans deux squares parisiens, Mémoire de fin d'étude à ENSH, 1983, p.78

    3. 라 빌레뜨 공원(Le Parc de la Villette) 분석

    1867년 나폴레옹 3세에 의해 세워진 도축장이 1974년 폐쇄되면서 파리 동북부 포르트 드 라 빌레뜨(Porte de la Villette)와 포르트 드 펑땡(Porte de Pantin) 사이 1km를 잇는 파리시에서 가장 넓은 도심공원을 건립하려는 계획이 추진되었다. 1979년 설립된 ‘라 빌레뜨 공원 및 그랑드 알 개발 공사’(l'Etablissment Public du Parc et de la Grande Halle de la Villette: EPPGHV)19)는 55 헥타르에 달하는 폐부지의 개발에 ‘음악 전용 대규모 건축물의 신축’, ‘과학 산업 국립박물관의 실현’, ‘모든 사람들에게 개방된 도심문화 공원의 창조’를 기본적인 개발 목적으로 설정하였다. 이 같은 공원 개발 목적의 실현을 위해 1982년 라 빌레뜨 공원의 국제현상설계가 발표되었으며 460개의 제출안들 중에서 베르나르 츄미(Bernard Tschumi)의 설계안이 당선되었다. 당선안에 따라 공원의 서북쪽 끝단과 남쪽 끝단은 각각 과학산업의 전당(Cité des Sciences et de l'Industrie, A)과 음악의 전당(Cité de la Musique, C)을 위해 할애 되었으며 둘 사이 35 헥타르의 면적은 넓은 잔디와 산책로, 각각의 주제를 가진 10개의 테마공원, 31개의 폴리(folie) 시스템으로 구성된 공원으로 실현되었다.(그림 5) 특히 20m 그리드로 공원 내에 산포된 폴리는 10m 높이의 선명한 붉은색 야외 구조물로서 도살되던 소의 핏방울을 상징해 이전의 장소에 대한 기억을 추상적으로 나타내는 한편 공원 내 공간을 역동적으로 연출한다.

    폴리는 점(点)의 공간개념이며 공원 내에서의 보행을 위한 산책로들은 선(線)의 요소가 되고 공원 내 광장이나 스포츠 그라운드 등이 면(面)의 요소로 다양한 ‘시각적 사건’을 만드는 라 빌레뜨공원의 구성시스템을 이룬다. 준공 후 연간 400만 명이 넘는 관광객이 방문하는 라 빌레뜨 공원은 녹색환경 속의 여가와 다양한 페스티발, 음악과 과학의 공간에서 경험하는 공연과 체험이 현대적인 조경과 건축미로 어우러진 새로운 개념의 도심문화공원 모델로 평가 받고 있다.

    라 빌레뜨 공원을 SDAU가 도심공원에 적용한 새로운 개념인 ‘열린 공원’과 ‘도시적 기능’을 기준으로 분석한 내용은 다음과 같다.

       1) 열린 공원의 역할

    1993년 개장된 이후 라 빌레뜨 공원은 24시간 개방을 원칙으로 운영되고 있다. 이 같은 운영원칙에 기초해 공원의 경계에는 어떠한 울타리도 설치되어 있지 않다. 2장에서 서술했듯이 이전의 도심공원들이 도시속의 녹색 오아시스를 지향해 높은 울타리로 경계를 둘러싼 ‘닫힌 공원’이었음을 비교할 때 라 빌레뜨 공원이 도시를 향해 완전히 열려 있는 사실은 공원계획과 운영의 방향이 1977년 SDAU의 ‘열린 공원’ 개념에 기초해 성립된 것을 보여준다.

    나아가 라 빌레뜨 공원은 단순히 개방되어 있는 것을 넘어 인근 도시조직과 유기적으로 연결되도록 계획되었다. 그림 6을 분석하면 A로 표시된 루흐크 운하(Canal de l'Ourq)20)가 공원의 중앙부를 관통해 흐르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이는 라 빌레트 공원이 부지를 가로지르는 운하를 그대로 공원계획의 요소로 삼아 도시의 주요 흐름을 보존했음을 나타낸다. 이 같은 사실은 파리시가 도축장의 폐부지를 녹색환경으로 변모시키는 과정에서 운하의 흐름이 관통하도록 라 빌레뜨 공원을 열어 ‘도시속의 전원’과 ‘전원속의 도시’를 지향한 SDAU의 ‘열린 공원’의 개념을 구현하였음을 나타낸다.

    또한 공원 내부에는 운하의 방향에 평행하거나 직교하는 내부 산책로들로 형성된 그리드가 형성되어 있다. 이 그리드의 왼쪽 끝 부분들을 잘 살펴보면 B, C, D, E 로 표시된 인접 도시조직의 길들과 의도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이는 인접한 지역의 주민들이 자신의 구역에서 길을 따라 공원까지 나아오고 그리드 끝 부분을 통해 공원 내부의 산책로 체계에 연결되도록 계획되었음을 나타낸다. 이 같은 사실은 라 빌레뜨 공원의 경우 단순히 개방된 상태에 머물지 않고 인접한 도시지역과 세심하게 연결된 체계를 고안함으로서 이용객을 향해 적극적으로 열린공원을 실현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2) 도시적 기능의 역할

    EPPGHV 는 1996년 발간한 홍보서에서 “라 빌레뜨 공원의 개발이 ‘열림’(ouverture) 과 ‘실험’(Expérimentation)의 두 가지 기본방침 위에 파리시 동북부의 중산층 이하의 시민들을 주 대상으로 삼아 문화와 여가의 공익시설로서 계획되었다”라고 서술한 바 있다.21) 2장에서 밝힌 SDAU가 지향한 도심공원의 도시적 기능이 시민들의 레저와 문화, 교육을 제공하는 공익시설임을 비추어 볼 때 EPPGHV의 서술은 라 빌레뜨 공원이 SDAU의 도시적 기능의 개념에 따라 건립되었고 기능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따라서 라 빌레뜨 공원의 도시적 기능과 그 역할은 이 공원에 내포된 ‘열림’ 과 ‘실험’에 관한 분석을 통해 파악될 수 있다.

    ‘열림’에 관해서는 앞 절에서 ‘열린 공원 개념’의 측면에서의 고찰이 이미 이루어졌다. 따라서 본 절에서는 SDAU의 ‘도시기능의 일부’ 개념으로 구현된 ‘열림’의 내용을 분석하고자 한다. 또한 ‘실험’은 구체적으로 ‘실험적 공원’을 의미하는바, 라 빌레뜨 공원에서 실험적으로 시도된 사실들과 그 시도의 결과를 분석해 SDAU의 ‘도시기능의 일부’ 개념과 어떠한 관계를 갖는지를 도출한다.

    가) 열림: 광대한 면적의 개방된 잔디밭

    2장에서 서술했듯이 이전의 도심 공원들이 수목과 자연물이 이루는 자연미의 영국식 조경을 지향한 반면 라 빌레뜨 공원은 조경 수법 중 두드러진 특징은 광대하게 비워진 잔디밭이라 할 수 있다. 몽소공원과 조경을 비교한 그림 7을 살펴보면 라 빌레뜨 공원의 경우 ‘과학산업의 전당’과 ‘음악의 전당’ 사이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80,000m2의 면적이 잔디밭으로 조성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광대한 잔디밭은 거의 식재 없이 비워진 상태로 이용자의 출입에 완전히 개방되어 있다.

    이처럼 개방된 잔디밭은 야외에서의 여가활동을 원하지만 ‘유료의 시설을 이용할 수 없는 사회 계층을 포함한 모든 이용객들을 위한 열린 여가활동과 문화 공간’22) 으로 계획되었다. 잔디위에서는 휴식, 독서 및 일광욕 등의 전통적 여가활동에 더해 적극적인 공놀이와 소규모 공연, 힙합, 랩댄스 등 이용자들이 자신의 취미를 연습하고 다른 사람들과 공유하는 활동들이 이루어진다.(그림 8) 또한 광대한 면적은 잔디위의 낮잠이 공놀이로 인해 방해받는 경우처럼 서로 다른 성격의 여가가 부딪혀 생길 수 있는 갈등을 근본적으로 해결해 다양하고 적극적인 여가활동을 가능하게 한다.

    나아가 잔디밭은 라 빌레뜨 공원의 ‘연중 박람회 및 야외 페스티발이 열리는 장소로 이용되어 이용객들에게 여러 가지 공연과 체험의 마당’23)이 된다. 재즈 페스티발(La Villette Jazz Festival)과 영화 페스티발(Le Festival de Cinéma en plein air)은 잔디위에서 벌어지는 문화의 향연을 만끽하기 위해 매년 수만 명의 사람들이 찾는 파리시의 대표적인 페스티발로 성장하였다.(그림 9)

    이와 같은 사실들을 종합하면 라 빌레뜨 공원은 물리적 환경의 열린 공원에서 한발 나아가 시민들의 폭 넓은 여가 활동과 여러 가지 문화적 수혜를 담아내는 도시기능의 일부로서 계획되었으며 그 결과 라 완전히 비워져 다양한 가능성을 갖는 열린 공간으로서 이용객을 향해 개방된 잔디밭이 조경의 지배적 요소로 나타나고 있음을 파악할 수 있다.

    나) 실험: 건축적 공원

    앞에서 기술했듯이 라 빌레뜨 공원 개발의 기본 목적은 음악 전용 대규모 건축물의 건립, 과학산업 국립박물관의 실현, 모든 사람들에게 개방된 도심문화 공원의 창조였다. 이러한 개발 목적으로 인해 라 빌레뜨 공원의 경우 필연적으로 건축물과 공원과의 관계에서 새로운 시도가 요구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 같은 추정의 확인을 위해 공원 내 건축물들에 대한 파악과 함께 이 건축물들이 공원의 구성적 측면과 역할적 측면에서 어떠한 의미를 갖는지 고찰하였다.

    우선 공원 구성적 측면에서 건축물의 역할을 파악하기 위해 그림 10과 같이 라 빌레뜨 공원의 경계와 건축물들로만 배치도를 재구성해 보았다. 그 결과 대 부분의 공원에서 건축물이 미미한 위상을 갖는 반면, 라 빌레뜨 공원의 경우 건축물들이 공원의 면적과 구성의 측면에서 지배적인 요소로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었다. 이 같은 사실은 건축물을 통한 공원 구성이라는 매우 실험적인 시도가 라 빌레뜨 공원에 적용되었음을 나타낸다. 공원 내의 건축물들은 독립적 또는 상호적으로 작용해 일반적인 공원에서 보지 못하는 건축적 경관을 창출하고 있다.(그림 11)

    역할 적 측면에서 건축적 공원이 갖는 의미를 추출하기 위해서는 공원 내에 건립된 주요 건축물들의 기능을 파악할 필요가 있다. 그림 10의 a는 공원 개발의 목적 중 ‘과학산업 박물관’의 실현을 위해 건립된 ‘과학산업의 전당’이다. ‘과학산업의 전당’은 어린이와 청소년을 주 대상으로 직접 만지고 느끼는 과정에서 생활 속 과학과 기술을 받아들이고 이해하는 공간들로 이루어져 과학과 산업기술의 지식을 전파하고 흥미를 불러일으키는 전시 및 체험의 장소라 할 수 있다. b로 표기된 ‘제오드’(la Géode)는 ‘과학산업의 전당’의 부속시설로서 36m 직경의 커다란 반구형 스크린에 자연과 우주를 주제로 생생한 영상이 펼쳐져 관람을 통한 생생한 교육이 이루어진다. 공원의 남쪽 끝단에는 c 와 d로 표기된 ‘파리고등국립음악 - 무용원’(le Conservatoire national supérieur de musique et de danse de Paris)과 ‘음악의 전당’이 건축되었다. 세계적 음악가와 무용가의 양성소로 잘 알려진 ‘파리고등 국립음악-무용원’은 프랑스에서 가장 권위 있는 국립음악교육기관으로 평가받고 있다. d는 ‘음악 전용의 대규모 건물 건립’ 이라는 또 하나의 공원개발 목적에 따라 실현된 ‘음악의 전당’ 으로서 대규모 콘서트홀과 음악박물관 으로 구성되어 있어 클래식 음악의 공연과 전시를 통한 문화의 장을 제공한다. e는 1867년 건립된 ‘그랑드 알’(la Grande Halle) 로서 도축장의 폐기와 함께 철거되지 않고 리노베이션을 통해 새롭게 탄생해 라 빌레뜨 공원의 역사를 상징한다. ‘그랑드 알’은 연중 각종 박람회와 벼룩시장과 같은 행사가 개최되는 상업적 교류의 장소라 할 수 있다. f로 표기된 ‘제니스’(le Zénith)는 대중음악과 록큰롤을 위한 각종 공연이 펼쳐지는 젊은 세대의 축제의 장으로 기능하고 있다. 이상과 같은 내용을 정리하면 다음의 표 2와 같다.

    표 2에서 주목할 점은 라 빌레뜨 공원의 주요 건축물들이 모두 1984년에서 1995년 사이에 지어진 사실이다. 이는 건축물들이 필요에 따라 그때 그때 건립된 것이 아니라 이미 공원계획 시점부터 공원의 주요소들로서 그 규모와 성격들이 규정되어 있었음을 의미한다. 또한 이 표의 기능항목에서 나타난 단어들을 세면 교육이 3회, 전시와 공연이 각 2회, 상영, 체험과 교류가 각1회로 나타난다. 이 같은 사실은 라 빌레뜨 공원의 경우 건축물들을 공원구성의 주요소로 삼은 실험적 시도를 통해 교육, 전시, 공연의 공공기능들이 녹색환경과 어우러진 복합문화체로서 도시가 제공할 수 있는 하나의 공익적 시설로 역할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19)‘파리시 라 빌레뜨 공원 및 그랑드 알 개발 공사’ 로 번역할 수 있으나 원문의 의미를 정확하기 위해 이후 EPPGHV 로 명기한다.  20)파리시의 식수공급을 위해 1860년에 건설된 총 130km 의 운하.  21)“Le Parc de la Villette: la culture partagé”, EPPGHV, 1996, p.9  22)“55 hectares d'espaces verts d'qrchitecture et de culture”, EPPGHV, 1996, p.4  23)“Le Parc de la Villette: la culture partagé”, EPPGHV, 1996, p.11

    4. 결 론

    본 연구는 우리나라 대도시의 도심공원 개발이 활성화 되고 있는 시점에서 적용 가능한 가치를 찾기 위해 도심공원의 새로운 역할을 제시했다고 판단되는 파리시 도심공원 정책의 내용과 이를 통해 현대에 실현된 도심공원 중 가장 규모가 큰 라빌레뜨 공원을 분석대상으로 삼아 고찰하였다. 이 과정에서 도출된 파리시의 현대공원에 구현된 새로운 역할과 그 시사점들은 다음과 같다.

    첫째, 1977년의 SDAU를 기점으로 파리시 도심공원의 역할은 ‘닫힌 공원’에서 ‘열린 공원’으로 전환되었다. SDAU는 ‘도시속의 녹색 오아시스’로서의 역할을 폐기하였으며 ‘도시환경을 향해 개방된 녹색환경’으로 도심공원의 역할을 새롭게 규정하였다. 이러한 ‘열린 공원’의 역할을 위해라 빌레뜨 공원의 경우 24시간 개방을 운영원칙으로 삼은 울타리 없는 공원이 되었다. 나아가 단순히 물리적 환경에서 개방된 상태로 머물지 않고 인근 도시지역으로부터의 접근이 공원 내의 산책로 체계와 유기적으로 연결되도록 계획되었음을 알 수 있었다. 도심공원 정책과 라 빌레뜨 공원의 분석에서 나온 이 같은 결과들은 파리시가 의도한 현대 도심공원의 역할이 도시조직 내의 녹색 섬에서 인근 도시지역과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이용객들을 향해 적극적으로 열린 ‘도시속의 전원’인 동시에 ‘전원속의 도시’로 나아갔음을 나타낸다.

    둘째, SDAU가 도심공원을 도시기능의 일부로서 그 개념을 확대함에 따라 도심공원의 역할은 산책과 휴식, 사색을 위한 녹색환경에서 다양한 여가와 문화, 교육, 행사를 담아내는 도시의 공익시설로 발전하였다. 분석결과 라 빌레뜨 공원의 경우 개방된 광대한 면적의 잔디밭과 건축물들을 공원구성의 주요소로 삼는 실험적인 시도를 통해 잔디위의 다양한 가능성과 건축물들의 공연, 전시, 교육, 상업 활동이 함께 일어나는 도시적 기능의 공익시설로서 계획된 것으로 밝혀졌다. 라 빌레뜨 공원이 새로운 개념의 복합문화공원으로서 도심공원의 이정표로 평가받고 있는 사실은 현대도심공원의 역할이 도시지역에서 일어나는 문화와 교육과 같은 공공적 서비스를 공원 본연의 녹색환경과 함께 제공하는 새로운 형태의 공익시설로 진화되었음을 의미한다.

    셋째, 앞의 내용들은 라 빌레뜨 공원의 성공이 SDAU가 적용하고자 한 ‘열린공원’ 과 ‘도시적 기능의 일부’ 개념에 따라 건립된 결과임을 나타낸다. 이는 파리시의 경우 1977년의 SDAU를 통해 도심공원의 개발방향과 이에 따른 새로운 역할들을 상정하였으며 이후 건립된 도심공원들에 적용하였음을 의미한다. 이 같은 사실은 도심공원의 개발 이전에 도시의 새로운 요구들에 부응하는 도심공원의 성격과 역할을 정책수준에서 파악하고 개발 규범으로 삼아 적용하는 것이 필요함을 나타낸다. 우리나라의 경우 도심공원 개발 자체에만 그 관심이 머물러 있는 실정임을 주지할 때, 파리시 현대도심공원의 새로운 역할의 규명을 위해 본고에서 밝힌 파리시 SDAU의 정책적 내용과 라 빌레뜨 공원의 분석결과는 대도시 도심공원 개발을 위한 정책적 입안과 실제적 계획에서 적용 가능한 가치들을 제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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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림 1.] 1680년 튈르리 공원의 궁정적 모습
    1680년 튈르리 공원의 궁정적 모습
  • [그림 2.] 오스만에 의한 파리시의 숲과 도심공원
    오스만에 의한 파리시의 숲과 도심공원
  • [그림 3.] 몽소공원의 울타리와 영국식 조경
    몽소공원의 울타리와 영국식 조경
  • [그림 4.] 프롱 드 라 센
    프롱 드 라 센
  • [표 1.] <근대이후 주요 파리시 도시정책의 영향>
    <근대이후 주요 파리시 도시정책의 영향>
  • [그림 5.] 라 빌레뜨 공원의 구성
    라 빌레뜨 공원의 구성
  • [그림 6.] 루흐크 운하와 산책로 그리드
    루흐크 운하와 산책로 그리드
  • [그림 7.] 몽소공원과 라 빌레뜨 공원의 조경의 비교
    몽소공원과 라 빌레뜨 공원의 조경의 비교
  • [그림 8.] 잔디위의 취미 연습
    잔디위의 취미 연습
  • [그림 9.] 영화 페스티발
    영화 페스티발
  • [그림 10.] 라 빌레뜨 공원의 건축적 구성
    라 빌레뜨 공원의 건축적 구성
  • [그림 11.] 라 빌레뜨 공원의 건축적 경관
    라 빌레뜨 공원의 건축적 경관
  • [표 2.] <라 빌레뜨 공원내 주요 건축물의 기능>
    <라 빌레뜨 공원내 주요 건축물의 기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