샹탈 아케르만(Chantal Akerman)의 초기영화에 나타난 여성과 공간의 상관관계 연구

Rapport entre l'espace et la femme dans les premiers films de Chantal Akerm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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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ABSTRACT

    Cette recherche a pour but de prouver qu'il existe un rapport étroit entre l'espace et la femme dans les premiers films de Chantal Akerman. Cette dernière est souvent qualifiée de structuraliste, minimaliste ou encore hyper-réaliste ; or ses films s'inscrivent au-delà des paradigmes précédemment cités. On peut trouver quelques parallèles avec le structuralisme dans la chambre(1972), Hotel Monterey(1972) à cause de l'influence du film structural chez Michael Snow, des films underground américains et de ceux de Jean-luc Godard. Cependant, dans des films comme Saute ma ville(1968) Je,tu,il,elle(1975), Jeanne Dielman, 23 Quai du Commerce, 1080 Bruxelles(1975), Les Rendez-vous d'Anna(1978), se profile une singularité qui surpasse les idéologies et les idées de son temps. Dans ces films, les femmes, confinées dans des espaces étroits, clos et hermétiques, s'occupent de travaux ménagers. Afin de mieux souligner leur caractère répétitif, routinier et harassant, Akerman a recours à différentes techniques telles que la caméra fixe, le long plan et la répétition panoramique. Celles-ci produisent une vision contemplative qui reflète les sentiments désabusés, mélancoliques et expiables des héroïnes. Par le biais de ces techniques, Akerman intensifie les situations étouffantes dans des espaces sans issue, et y met fin abruptement avec un évenement tout à fait inattendu. La plupart de ses premiers films mettent aussi en scène une seule femme dans un espace domestique et dépeignent la monotonie d'un quotidien asphyxiant dans lequel les spectateurs sont inconsciemment absorbés.

  • KEYWORD

    샹탈 아케르만 , 공간과 여성 , 벨기에 영화 , <잔느 딜망> , <방>1,2 , <도시를 날려버려라> , <나,너,그,그녀> , <안나의 랑데부>

  • 1. 들어가며

    벨기에 출신 여성감독 샹탈 아케르만(Chantal Akerman)은 40여년 넘게 지금까지도 꾸준히 작품을 만들어오고 있고, 벨기에와 프랑스 외에도 유럽과 영미 등지의 영화계에 두루두루 영향을 끼치고 있는 여성감독이다. 여성감독이 흔치 않은 시절에 영화계에 입문해서 벨기에라는 영토에 제한되지 않고 프랑스와 미국을 오가며 폭넓은 활동을 펼쳤다.

    여러 글과 인터뷰를 통해 이야기했다시피 아케르만은 고다르(Jean-Luc Godard)의 <피에르 미치광이(Pierre, le fou)>에 많이 감명받았으며, 이 영화가 16살의 나이에 영화를 시작하게된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1) 또한 미국에 건너가 언더그라운드 영화를 접하고 나서는 마이클 스노우(Michael Snow)의 구조영화에 심취하면서 영화감독으로서의 자기 색깔을 찾아가게 되었다.

    그래서인지 흔히들 그녀의 성향을 페미니즘, 미니멀리즘, 극사실주의라는 이름으로 명명한다. 하지만 이렇게 그녀의 영화인생을 정리해 버리는 것은 그녀의 표현세계를 영화사조의 관점으로만 재단해버리는 것이 될 수 있다.

    이념의 문제나 영화사조의 문제를 떠나서 그녀의 영화세계를 이해하기 위해 본 논문은 공간의 문제로 접근해보고자 한다. 그녀의 영화들을 보자면 내부 공간에서만 줄곧 이루어지는 영화들이 있는가 하면, 유럽 전역이나 아메리카 전역이 등장하는 스케일이 큰 작품들도 있다. 이것은 그녀가 공간을 다루는데 있어서 제한을 두지 않으며, 좁은 공간에서나 탁트인 넓은 공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이 표현하고 싶은 바를 드러낼 수 있는 능력이 있음을 증명한다.

    외부공간은 아케르만이 전세계를 여행하면서 자신의 보고 들은 바를 스크린에 담아낸 여행삼부작에 잘 드러나 있다. 이 삼부작은 이 여성감독의 후기작에 속하는 <동쪽(D'est)>(1993), <남쪽(Sud)>(1999), <국경 저편에서(De l'autre côté)>(2002)는 10년 동안 간격을 두고 각각 다른 동유럽, 텍사스, 미국과멕시코 국경을 다니며 찍은 다큐멘터리로 ≪여행 3부작≫이라 불린다. 보스턴 현대미술관 관리자 캐시 할브레이치(Kathy Halbreich)의 제안으로 촬영했기 때문에 이 작품들은 영화관보다는 보스턴의 현대미술관이나 파리의 주 드 폼와 같은 전시공간에서 활용되었다.

    하지만 초기 영화에서는 아케르만의 작품 공간은 내부공간에 치중되어 있다. 아케르만은 내부공간을 묘사할 때 주로 좁은 내부 공간을 고집스럽게 고정샷과 롱테이크를 이용하여 갇혀있는 등장인물들의 꽉 막힌 심정을 관조적으로 표현한다. 이 꽉막힌 포화상태를 최대한 극대화시키다가 결론에는 내부 공간 안에서 혹은 밖에서 뜻하지 않는 욕망의 출구를 찾아내는 식으로 갑작스런 결말을 보여준다.

    내부공간을 주공간으로 사용하는 초기영화들에서 아케르만은 주로 여성들을 영화의 중심에 놓는다. 내부 공간에서 빈곤한 일상의 반복이나 단조로운 개인사를 숨막히듯 보여주는 것은 처녀작 <도시를 날려버려라(Saute ma ville)>(1968)에서부터 최근작인 <알마이에르의 광기(La folle Almayer)>(2011)에서까지 그녀의 대부분의 영화에서 일관되게 나타난다. 좁은 내부 공간안에서만 이루어지는 여성들의 반복적이고 건조한 삶을 보여주면서 아케르만은 그 공간 속으로 관객들을 몰입시킨다. 카메라는 막힌 공간들을 고정샷, 롱테이크, 혹은 지루하도록 같은 높이에서 반복되는 파노라마를 실행함으로써 공간속으로 빨려들어간다. 이런 식의 카메라 운동은 외화면(hors-champ)에 대한 상상력을 무기력하게 만들면서 관객을 내부공간속 현실에 집중하게 하는 것이다.

    본 논문에서는 내부공간묘사가 두드러지는 아케르만의 초기작품들을 주된 대상으로 하여 그녀만의 공간묘사의 특징이 여성의 정체성을 어떻게 드러내고 있는지 밝히고자 한다. 무엇보다도 공간을 다루는 아케르만의 촬영방식이 그녀가 생각하는 여성의 이미지와 어떻게 연관되어 있는지에 대해 집중적으로 연구하고자 한다.

    1)Laurent Devanne, Entretien réalisé pour l'émission de cinéma Désaxés et diffusée sur Radio Libertaire le juin 2003.

    2. 구조영화, 극사실주의, 미니멀리즘을 넘어서

    내부공간과 여성인물들의 상관관계를 연구하기에 앞서 왜 아케르만의 영화들은 흔히 구조영화(film structural), 극사실주의(hyper-réalisme), 미니멀리즘(minimalisme)이라는 수식어가 붙는지 잠깐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이런 수식어 역시 아케르만의 공간묘사와 여성인물들의 상관관계를 보여주는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먼저, 구조영화(structural film)2)라고 하는 이유는 화면의 구성에 있어서 화면 정중앙에 포커스를 맞춰 롱테이크를 보여줌으로써 마치 원근법 회화를 보고 있는 듯한 느낌을 들게 하는 장면이 많고, 루핑(looping)효과를 내기 위해 반복되는 장면을 보여주기 때문에 60년대 실험영화의 한 쟝르인 구조영화라고 하는 것이다. 다음으로 사실성을 바탕으로 하되, 주관적 감정을 배제한 채 어디까지나 중립적으로 극명한 화면을 구성하고 있기 때문에 극사실주의(hyper-réalisme)라고 한다. 아케르만의 초기영화들에서는 일반적으로는 스쳐지나가 버릴 장면, 육안으로는 식별할 수 없었던 장면들까지도 눈에 띄게 드러나기 때문에 오히려 사실성이 지나치게 강조되고 관객으로 하여금 날 것 그대로의 사실성에 대해 거부감이 들게한다. 마지막으로 미니멀리즘(minimalisme)이라고 하는 이유는 아케르만이 단순함과 간결함을 추구하는 흐름을 따르는 데다가 플롯이 아예 없거나 제한적으로 있으며, 인물과 대사가 최대한 단순화되고, 카메라는 늘 정적으로 머물러 있고, 편집과 색채 역시 절제된 흔적이 농후하기 때문이다.3)

    이러한 특징이 드러나는 대표적인 아케르만의 초기 영화는 <방1(chambre1)>(1972), <방2(chambre2)>(1972)을 들 수 있다. 아케르만은 좁은 방을 파노라마방식으로만 촬영한다. 방 한쪽 모퉁이에 있는 침대에는 여주인공이 누워서 마냥 카메라를 바라보고 있다. 한 공간을 계속 파노라마기법으로만 보여줌으로써 빈곤한 반복이 오히려 관객을 공간과 카메라의 움직임에 집중하게 해준다. 방1은 음향이 없는 작품이고, <방2>는 <방1>에다가 음향만 추가한 작품이다. 방 전체를 보여줄 수 있는 곳에 카메라가 고정되어 카메라는 파노라마로 방 전체를 비춘다. 개수대, 가스레인지를 지나 테이블과 침대, 다른 테이블, 책상을 비추고 나면 파노라마는 다시 처음위치에서 다시 반복해서 시작한다. 아케르만이 직접 등장한 이 영화에서 아케르만은 처음 파노라마에는 침대에 누워 가벼운 고개짓만 반복하다가 두번째 파노라마에서는 옆 테이블의 사과를 집는다. 세번째 파노라마는 두번째 파노라마가 끝난 지점에서 반대방향으로 거슬러 시작한다. 모든 사물들은 그대로이지만, 침대에 있는 주인공은 이번에는 사과를 씹어먹는다. 파노라마가 왕복을 계속하면서 주인공은 사과를 점점 게걸스럽게 먹고, 이 왕복운동이 4번 반복되면서 마지막 파노라마에서는 사과 먹기가 끝나고 주인공은 다시 침대에 머리를 대고 눕는다. 단순반복적인 파노라마로 작은 방을 보여준다는 것은 자칫 단조롭고 지루하겠지만, 이 반복적인 운동 덕에 그 공간에 대한 내면의 성찰, 주인공 여자의 심리파악이 가능해진다.

    구조영화적 형식이 이 영화의 내용에 잘 부합된다. 같은 각도에서의 파노라마의 반복적 구조는 파노라마가 반복적으로 지속되면서 공간에 대해 더 잘 파악하게 만들고, 침대에 있는 주인공이 고개를 끄덕이고 사과를 먹는 장면들에 퍼포먼스예술의 몸짓을 읽게 해준다. 아케르만의 구조주의 형식은 마이클 스노우(Michael Snow)의 <중부지방(La Région centrale)>(1971)에 영향받았다. 이는 아케르만과 이 영화를 함께 본 바베트 맨골트(Babette Mangolte)가 증언한 바 있다.4) 이 둘은 밤새 같이 이 영화를 보았고, 아케르만이 <방>을 제안했을때, 흔쾌히 동의하여 아케르만의 촬영을 도와준 바 있다.

    <호텔 몽트레이(Hotel Monterey)>(1972)에서 호텔 내부의 광경을 찍는 아케르만의 방식역시 구조영화적 형식을 따르고 있다. 이 영화는 뉴욕 한가운데에 있는 이 호텔의 방안, 복도, 로비 그리고 호텔 바깥을 촬영했다. 호텔 내부를 촬영할 때 파노라마 방식을 사용해 공간을 수평으로 횡단하는 방식은 <방>시리즈를 연상되게 한다. 또한 이 공간들을 고집스럽게 고정된 샷으로 길게 촬영하거나 같은 트레블링을 반복하는 것은 마이클 스노우의 촬영방식에서 영향받았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촬영방식은 좁든 넓든 간에 한 공간안으로 관객을 깊이 끌어들이는 효과가 있다.

    내부공간을 촬영할때 아케르만의 영화는 카메라가 화면 한 가운데에 정중앙으로 위치해 있어서 구조적으로 치밀하게 짜여진 듯 한데, 이는 극도의 사실성을 보여주는 듯 하다. 반-사실주의, 반-자연주의를 넘어서서 극도의 구조적 치밀성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에 흔히들 아케르만의 영화를 극사실주의라고 구분하는 것에는 설득력이 있다.5)

    지금까지 살펴본 바에 의하면 구조영화, 미니멀리즘, 극사실주의와 같은 영화예술사조를 아케르만의 영화로 설명하는 데에는 무리가 없어보인다. 허나 아케르만은 구조영화감독도, 미니멀리스트도, 극사실주의자도 아니다. 이 세가지 사조를 복합적으로 사용해서 그녀만의 독특한 성향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아케르만은 그녀를 사로잡았던 영화 사조의 흐름에 올라타기는 하지만, 이를 넘어서서 자신만의 독특한 색깔로 소화시키는 영화를 만들고 있다. 실제로 <24images>라는 잡지에서는 “이 작품(잔느딜망)은 현대 영화라는 거대한 풍경에서 눈에 띄게 두드러지는 한 점을 찍은 작품이다. 자서전, 미니멀리즘, 우스꽝스러움(burlesque), 개념주의, 참여주의 이 모두가 들어있으면서도 그 독창성 역시 매우 넘치므로 이 영화를 그 무엇이다 라고 윤곽을 잡기는 너무 힘들다. 또한 미국 언더그라운드 영화나 유럽 작가주의 영화와도 또한 거리가 있어서 그 무엇으로 정의하기는 더더욱 힘들다”라고 평하고 있다.6)

    다음은 사조를 넘어서는 그녀만의 독창적인 영화형식이 무엇인지 여성과 공간의 상관관계를 밝혀봄으로써 구체화해보기로 한다.

    2)구조영화(film structural)은 마이클 스노우(Michael Snow), 조지 랜도우(George Landow), 폴 샤리츠(Paul Sharits) 토니 콘래드(Tony Conrad), 어니 기어(Ernie Gehr) 등에 의해 주창된 실험영화의 한 장르이다. 이들은 영화 전체의 형태가 미리 결정되어 있고 단순화되어 있는 영화를 제작하였다. 구조 영화는 고정된 카메라 위치, 플리커 효과(Flicker effet)(깜빡임 효과), 루프 프린팅(loop printing)(필름을 찍은 뒤 이를 복사하여 다시 사용하는 것), 그리고 화면의 재촬영과 같은 네가지 큰 특징이 있다.  3)구조영화의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는 마이클 스노우의 <파장(Wavelength)>(1967)은 고정된 프레임이 45분간 줌-인 하는 영화이다. 평방 80피트 스튜디오의 한쪽 끝에 놓여진 카메라는 맞은 편 벽에 걸려 있는 사진 속 바다로 서서히 빨려들어가는데, 이 때 음향은 40분 동안 가장 낮은 음에서 가장 높은 음으로 진행된다. 즉, 음악은 점점 작아지는 반면 이미지는 점점 더 강해지는 것이다. 이 영화는 스크린 안에서 일어나는 사건의 본질을 추적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공간을 장시간 응시하면서 그 안에서 일어나는 움직임에 대해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미니멀리즘적 성격을 가지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윤성은, 「영화와 미니멀리즘 -시간광 공간을 중심으로」, 『현대영화연구』, Vol.1, 2005, 창간호 p.79~80.  4)Chantal Akerman, Autoportrait en cinéaste:Chantal Akerman, Paris, Cahiers du cinéma Livres, 2004, p.174.  5)Benoît Peeters, «Jeanne Dielman»:le manque et le supplément, Chantal Akerman, Ateliers des Arts n°1, Bruxelles, J.Van Keerberghen&Fils, 1981, p.79.  6)이 내용은 잡지<24images>의 130호에 실린 <잔느 딜망(Jeanne Dielman, 23 Quai du Commerce, 1080 Bruxelles)(1976)>에 대한 인터뷰내용이다. 이 인터뷰를 더 살펴보면 이 작품이 기존의 영화사조를 뛰어넘는 획기적인 영화였음를 확인할 수 있다. “이 영화는 초기 아케르만 영화의 정수로서, 아케르만이라는 영화감독을 전세계에 알려주었던 작품입니다...... 르 몽드(Le Monde)는 ‘영화사에서 여성에 대한 최초의 걸작’ 이라고 평하기도 했습니다.”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영화는 기존의 영화사조에 대한 답습이 아닌 새로운 스타일을 던져주는 영화이다. Marcel Jean et Réal La Rochelle, “Entretien : Chantal Akerman, propos recueillis par marcel Jean et Réal La Rochelle,” 24 Images n° 130 2006-2007, p.32.

    3. 막힌 공간 안에 자리한 여성

    아케르만의 초기영화에서는 등장인물이 여성 혼자이거나 여성을 주인공으로 설정해서 그 주변의 조연급 인물 몇몇으로 설정된 경우가 많다. 극히 제한적인 등장인물을 설정함으로써 여성주인공들에게 시선을 집중 시킨다. 또한 이 여성 주인공은 대부분 집안에서나 방안에서 머물러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등장인물 또한 이 여주인공을 중심으로 극히 몇몇으로 제한되어 있다. 아케르만의 초기작품 중에서 <도시를 날려버려라(Saute ma ville)>(1968), <나,너,그,그녀(Je,tu,il,elle)>(1974)는 여자 한명외에 다른 배우는 전혀 등장하지 않는다. <잔느 딜망(Jeanne Dielman, 23 Quai du Commerce, 1080 Bruxelles)(1976), <안나의 랑데부(Les Rendez-vous d'Anna)>(1978)에는 한 여주인공을 중심으로 두고 그 외 인물들은 제한적으로 -뒷모습이나 말소리만 들리는 정도로- 잠시 등장할 뿐이다. 이 네 작품을 좀더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그녀의 처녀작 <도시를 날려버려라(Saute ma ville)>(1968)는 싱크대와 간이식탁이 전부인 조그마한 부엌에서 작품 처음부터 끝까지 이루어진 영화이다. 이 좁은 공간에 주인공 여자 한명만이 등장한다. 여주인공은 이 공간안에서 요리, 식사, 청소의 모습들을 보여준다. 영화초반에 꽃과 와인을 사들고 같은 멜로디를 계속 흥얼거리며 집에 들어오는 주인공의 모습은 마치 설레는 일이라도 있는 듯 혹은 초대한 손님이라도 있는 듯해 보인다. 하지만 혼자서 스파게티를 해먹고 와인을 따라마시고, 씽크대 안의 내용물들을 모조리 꺼내 정리를 하며, 수건과 걸레 등으로 부엌바닥을 물청소하는 주인공의 모습은 의외로 다가오게 된다. 청소마저 끝나자 물끄러미 앉아 무언가를 생각하는듯 하더니 여주인공은 창틈과 문틈을 막고 돌연 가스렌지의 가스를 새게 한다. 이어 화면은 바로 어둠속으로 사라지고 폭발음만 세번 들린다.

    어떤 이유로 여주인공이 가스 폭발 자살을 선택했는지는 모르지만, 가스 폭발을 시도하기 전까지 부엌 안의 좁은 공간에서 행했던 행동들은 자살을 예고하고 있었다는 느낌을 준다. 처음에는 노래를 흥얼거리고 있기 때문에 일상적인 모습이라는 생각만 들다가 점점 씽크대 안을 정리하고 부엌바닥을 물청소하는 장면들이 연속됨으로써 관객은 결말에 가까워질수록 일탈적인 행동을 예감하게 된다.

    <나,너,그,그녀(Je,tu,il,elle)>(1974)에서 모든 가구가 없어지고 매트리스 하나만 남겨진 어두운 방안에서 옷을 벗어버리고 맨바닥에 누워있는 한 여자를 보여준다. 이 여자는 설탕만을 먹으며 누군가에게 편지를 쓰는 것이 전부인 삶을 보여준다. 샹탈 아케르만이 직접 출현하였던 이 영화는 마치 퍼포먼스 예술을 보는 듯 하고, 매트리스와 얇은 이불, 그리고 편지지와 설탕이라는 최소화된 장치들이 미니멀리즘을 보여주고 있다. 옷을 던져버리고, 방안의 빛을 차단하여 온통 어둡게 만들고 설탕만 먹으며 누군가에게 편지만을 쓰는 개연성 없는 행동들은 관객에게 편안함 대신 불편한 성찰을 강요하는 듯하다. 제목에서 예시했었던 나, 너, 그, 그녀라는 인물들은 전혀 찾아볼 수 없고 오히려 철저히 고립된 채 할 것이 하나도 없을 것 같은 텅 빈 어두운 공간 안에서 혼자서 할 수 있는 것을 찾아내고 있는 듯하다.

    이 영화를 통해 아케르만이 공간에 대해 얼마나 깊이 성찰하고 있는지 알 수 있다. 한 공간 안에서 할 수 있는 모든 활동을 실행하여 그 공간 속에서 가능한 것이 더 이상 없도록 소진(épuiser)시키는 것, 이것은 마치 베케트의 TV드라마 를 연상시킨다. 모든 가능성을 실행시켜서 어떤 가능성도 없는 상태가 될 때까지 공간을 연출해보는 것은 마치 들뢰즈의 ‘소진(l'épuisé)’7)이 이 작은 방에서 실천되었다고 봐도 무방하다.

    <잔느 딜망(Jeanne Dielman, 23 Quai du Commerce, 1080 Bruxelles)(1976)8)에서는 집안의 모든 물건들을 제자리에 정리하고 장성한 아들에게 요리를 해주며 사는 여인의 3일간의 삶을 보여준다. 200분이라는 긴 영화속에서 관객은 장면 대부분을 잔느 딜망의 집안에서의 공간만을 접하게 된다. 모든 것들이 제자리에 있게 하기 위해 집 안 곳곳을 오가며 정리하고, 문을 열고 닫고, 테이블을 닦고 테이블보를 깔고, 침대를 정리하고 스프를 끓이고 야채와 고기들을 다듬는 지리한 여인의 일상이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장을 보러갈 때만 빼고 이 모든 장면들은 식당과 부엌을 주무대로 하여 가사일에 전념하는 잔느를 보여준다.

    영화 대부분은 잔느 딜망의 아파트라는 막힌 공간에서 이루어져 있다. 외부공간에는 매우 인색하다. 단지 매우 짧게 카페, 길, 가게가 잠시 등장할 뿐이다. 그것이 전부이다. 몇몇 장면에서 잔느가 사는 도시가 소개되어 있지만, 브뤼셀 코메르스가 23번지 작은 아파트밖으로는 어떤 도피도 불가능해보일 뿐이다. 작은 아파트에 갇힌 ‘죄수로서의 삶’9)이라고 봐도 무리가 아니다. 이 작은 아파트에서 먹고 살기 위해 벌이는 오후의 매춘은 쟌느의 삶이 죄수의 삶과 다르지 않다는 증거가 된다.

    폐쇄된 공간 속에서 꽉 막힌 삶을 살고 있는 듯 공간은 잔느를 죄이고 있지만, 그 탈출구를 찾기 위해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고 무던하게 현실을 받아들이는 듯하다. <잔느 딜망>은 집안일과 요리에 평범한 일상을 보내지만 생계를 위해 받아들여야 하는 오후의 남자들을 견뎌내기 힘들어 한다. 이는 모든 물건이 제자리에 있어야 하고 반듯하게 외모를 가다듬은 여주인공의 일상을 3일간 보여주다가 마지막 날에 약간 흐트러진 모습을 통해 잔느의 심경변화를 암시하듯 보여준다. 반듯하게 정돈된 집에서 유일하게 식탁테이블 한 가운데에 있는 돈보관용 도자기의 뚜껑이 덮여지지 않은채 도자기 옆에 놓여 있던 점, 우아하게 빗질되어 있던 헤어스타일이 마지막날에는 머리카락에 화풀이라도 하듯이 강하게 빗질하다가 흐트러지고 급기야 마지막 장면에는 그 흐트러짐이 더 심해진 점을 보면 이를 잘 알 수 있다. 자신의 몸을 탐하고 있는 남자의 뒷덜미를 뾰족한 칼로 찔러버린 사건은 작은 집에서 살림과 매춘에 구속된 자신의 삶에 대한 출구를 찾다가 그러지 못해 생긴 갑작스런 사건이다.

    <안나의 랑데부(Les Rendez-vous d'Anna)>(1978)에 나오는 내부공간은 모두 다른 나라, 다른 도시이지만, 각자 다른 사람을 만나는 장면이 네 개가 등장한다. 먼저 안나가 여성감독으로서의 초청회를 위해 하룻밤 다른 도시의 호텔에 머물게 되면서 처음 만나는 남자를 호텔방에 데려오게 되어서 대화를 나누게 되는 장면이다. 다른 하나는 쾰른에 들려서 어린 시절 동네아주머니이자 옛남자친구의 어머니인 여자와 역의 카페에서 잠깐 대화를 나누게 되는 장면이다. 다시 브뤼셀에 온 안나는 엄마를 오랜만에 만나서 호텔에서 하룻밤을 보내며 자신의 감독으로서의 일상, 아버지의 안부, 동성연애에 대한 경험 등을 이야기하면서 하룻밤을 보낸다. 파리로 돌아와 연인과 재회하여 다시 한 호텔에 가게 된다. 서로를 그리워했고 애틋한 감정이 솟았지만, 돌연 열이 오른 남자를 위해 밤거리를 헤매며 약을 구해오고 겨우 몸살을 진정시켜준다. 감독으로서 상영장소를 찾아 늘 여행을 할 수 밖에 없고 늘 낯선 곳에서 잠을 청하는 수밖에 없는 안나는 수많은 만남을 갖지만 늘 겉도는 인간관계 속에 외롭기만 하다.

    이런 안나의 심정은 그녀가 위치해 있는 공간을 통해서 알게 된다. 안나는 많은 여행을 함에도 불구하고 아케르만은 그녀를 외부공간이 아닌 실내 공간에 있는 장면만으로 일관되게 묘사한다는 것이다. 아케르만은 막혀있는 내부 공간에서 -호텔방이든, 술집이든, 기차간이든 간에- 안나의 행동과 말투를 통해 안나의 정서상태를 드러낸다. 호텔에서 남자들과 있을 때에는 늘 창밖 야경을 바라보고 있는 장면으로 처리되고 있다는 점, 오래 알고 지내는 친구 어머니에게 애를 낳고 가정을 꾸리라는 듣고도 안나는 멍한 채 아무런 답이 없는 점, 브뤼셀에서 아버지를 만나려 하지 않고 엄마를 만나서도 집으로 가지 않고 호텔로 엄마를 데려간 점 등을 볼 때 안나는 인간관계에 있어서 많은 사람들을 만나지만 깊이있는 만남을 갖지 못한채 자신만의 세상속에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여행을 끝내고 자신의 파리 아파트에 돌아와서 혼자 침대에 누워있는 안나의 표정에서 그녀는 고독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고 동시에 그 고독을 싫어하지 않으며 오히려 즐기고 있다는 생각까지 든다. 자동응답기에 남겨진 여러 지인들의 메시지를 들으면 안나에게는 또 새로운 만남과 여행 스케줄들이 잡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고 이것들이 그녀의 고독을 씻겨주는 것은 절대 아니며, 그렇다고 해서 그녀가 그런 일정들을 마다하지 않을 것이며, 만남들을 통해 자신의 내면세계를 풀어헤칠 것은 아니다.

    안나에게 인간관계는 늘 유지되는 일상 이상도 이하도 아니며, 그 관계들을 통해 즐거움을 얻기도 하지만 오히려 그녀의 예술세계가 그녀의 유일한 내면세계에 대한 진정한 만남임을 알 수 있다. 여러 여행을 했음에도 절대 찾아보지 못했던 표정, 즉 내면의 고독과 허탈함이 파리 아파트에서는 가장 극대화되어 드러난다. 방 침대에 있는 반쯤 누워있을 때 보이는 안나의 멍한 시선은 자기내면에 대한 가장 적극적인 표현이다.

    막힌 공간과 여주인공이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는 것은 아케르만의 초기작품 뿐만 아니라 후에 나온 작품들 <카우치 인 뉴욕(Un divan à New York)>(1996), <갇힌 여인(La captive)>(1999) <이사소동(Demain, on déménage)> (2004), <알마이에르가의 광기(La folle Amalyer)>(2011)에 영향을 끼친다. 다소 실험적인 성격보다는 영상미에 신경쓰고 대중성에 협력하는 듯 보이는 이 작품들에서 공통적으로 보이는 성격은 모두 내부 공간을 통해 여주인공들이 숨막히는 삶을 살고 있고 그에 대해 순응적으로 대처하는 듯 보인다는 것이다. 이 인물에게서는 공간이 죄어 오는 폐쇄성에 대해 갑작스런 순간에 거세게 저항하는 모습 또한 일관된다.

    이상을 볼 때 아케르만이 좋아하는 여주인공들과 공간의 특징을 알 수 있다. 우선 좁은 공간안에 여주인공을 중심으로 하여 인물과 소품들이 극도로 절제된다. 여주인공에게 몰입하게 하려고 다른 인물들을 배제시키고, 소품들 또한 최소한으로 배치한다.10) 여주인공들은 예쁘고 아름답지만 시선에서 무엇인지 결핍과 우울 그리고 비밀이 숨겨져 있는 여성들이다.11) 노래하라고 하면 노래하고 놀자고 하면 놀고 헤어지자고 하면 헤어지는 수동적인 여인상인 듯 하나 자기 내면은 노출하지 않는다. 아케르만의 여성인물들은 수다스럽든 수다스럽지 않든간에 자신을 속속들이 보여주지 않는다. 이런 여성들에게서 느껴지는 두려움과 긴장감은 좁고 막힌 공간속에 펼쳐진다. 아케르만은 여주인공들을 이 좁고 막힌 공간 속에 자리잡게 한다. 여주인공들이 머물러 있는 공간들은 창살 없는 감옥이다. 밖으로 나온듯 그들의 상황은 나아질 수 없고 더 비극적인 상황이 될 뿐이기 때문이다. 몇몇 여주인공들이 일상을 살아내다가 갑작스런 죽음으로 끝을 맺는 것은 이 창살 없는 감옥에서 해방될 유일한 방법은 죽음밖에 없음을 깨닫게 해준다.

    이 부분에서 굳이 페미니즘을 들먹일 필요는 없겠지만 아케르만은 닫힌 공간 속에 갇혀 있는 수동적 여성들을 카메라를 통해 고발하고 있다는 느낌은 부인할 수 없다. 이 여성들이 아무런 반성적 사고가 없어서 막힌 공간 안에서 의미 없는 일상을 반복하고 있는 것이 아니며, 단지 그 공간밖에서도 출구를 찾는다는 것은 당시의 여성으로써 많은 것들을 감내하게 하기 때문이라는 이해하게 된다. 아케르만은 수많은 여성들이 이럴수도 저럴수도 없는 상황에 처해 닫힌 공간속에서 반복된 삶을 살아가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7)Gilles Deleuze, « L’Épuisé », postface à Quad, de Samuel Beckett. Paris, Éd. de Minuit, 1992.  8)프랑스 일간지 ‘르몽드’에서는 이 영화를 아케르만 초기영화에서 가장 뛰어난 작품으로 평하면서 ‘영화사에서 여성에 대한 최초의 걸작’이라고 높이 평했다. Gérard Courant, «Jeanne Dielman, 23 quai du commerce, 1080 Bruxelles de Chantal Akerman», Cinéma différant, n°1, février 1976에서 재인용.  9)Gérard Courant, «Jeanne Dielman, 23 quai du commerce, 1080 Bruxelles de Chantal Akerman», Cinéma différant, n°1, février 1976.  10)Jean Decock, «Analyse du système filmique des “Rendez-vous d'Anna”», Ateliers des Arts Chantal Akerman, Séminaire 14-15 février 1981, n°1, Bruxelles, J.Van Keerberghen&Fils, 1982. p.43.  11)Gwendolyn Audrey Foster, Identity and Memory - The Films of Chantal Akerman, Illinoy, Southern Illinois University Press, 2003. p.37.

    4. 감시와 관음으로서의 카메라

    아케르만의 초기 영화에서 카메라는 고정된 위치에서 긴 시간을 롱 테이크로 촬영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인간의 시선으로 보자면 등장인물들의 몸짓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듯하다. 아케르만 영화는 클로즈업도 아니고 롱샷도 아닌 중간거리의 줌으로 고정된 위치를 고집하는 경우가 많다. 주인공의 움직임이나 표정과 옷매무새를 감시하거나 엿보고 있는 듯한 감시카메라의 기능을 한다는 느낌을 받는다. 더군다나 카메라가 고정되어 있기 때문에 등장인물들의 움직임을 따라가지 않고 카메라의 시야 안에 등장인물들이 들어오기를 기다리게 된다. 이는 화면 밖의 외화면에 대한 궁금증을 자아내면서 남을 엿보고자 하는 욕망을 불러일으킨다. 고정된 카메라는 감시으로서의 카메라, 혹은 관음으로서의 카메라의 기능들을 수행하고 있는 것이다.

    <도시를 날려버려라(Saute ma ville)>(1968) 역시 카메라는 엿보기의 시선으로 처리되어 있다. 카메라는 좁은 부엌 속 주인공의 행동을 보여주기 위해 바닥에서 위로 향하는 각도의 고정된 카메라, 천정에서 아래로 향하는 각도의 고정된 카메라를 보여주고 있다. 좁은 공간 안의 주인공의 행동을 가감없이 보여주기 위해 아케르만은 카메라의 시야가 최대한 확보되게끔 카메라를 배치한다. 주인공이 청소를 하고 부엌의 공기가 새나가지 않게 문틈과 창틈을 막을 때에는 카메라가 위에서 아래로 부엌 전체를 비추어주는데, 이때는 부엌 전체가 화면 안에 들어옴에도 불구하고 주인공의 행동에 대해 의구심을 갖게 된다. 현대의 감시카메라의 높이와 비슷한 높이에서 촬영된 이 장면들은 주인공을 엿보는 것을 절정에 이르게 하면서 갑자기 화면이 어두워진다. 이 잠깐 동안의 어두음은 이전까지의 화면들에 대한 반성과 궁금증을 더 가속시키고 주인공을 엿보고자 하는 관음증에 더 불을 지른다. 그리고 나서 들리는 세 번의 폭발음은 카메라로는 확인할 수 없는 그러나 너무나도 자명한 주인공의 죽음을 알려준다.

    <잔느 딜망(Jeanne Dielman, 23 Quai du Commerce, 1080 Bruxelles)(1976)에서는 카메라가 주로 중간높이로 고정되어 있어서 주인공 잔느의 움직임을 따라잡지 않고 대신 프레임 안팎으로 잔느의 들고나감을 그대로 실어내고 있다. 그래서 잔느 딜망의 모습은 마치 다른 집을 엿보는 것처럼 극도로 사실적으로 느껴진다. 커튼이 열린 남의 집 일을 들여다보는 것과 같은 느낌을 받는 것이다. 더군다나 각 공간별로 카메라의 위치는 늘 정해져 있다. 식당에서의 카메라의 위치는 탁자 앞, 부엌에서의 카메라 위치는 가스렌지가 뒤로 보이는 조리대 겸용의 식탁 앞, 복도에서의 카메라 위치는 현관문과 부엌문이 보이는 곳이다. 시퀀스가 바뀌었어도 다시 같은 공간을 보여줄 때의 카메라의 위치는 늘 같다.

    이런 고집스런 카메라의 위치, 언제나 그곳에 못박혀 있는 듯한 느낌이 드는 위치로 인해 카메라는 더 이상 영화감독의 것이 아닌 관객의 시선의 것으로 옮겨간다.12)

    더 나아가 아케르만의 카메라는 관객의 뇌에까지도 침투해서 관객의 지각을 흔들어놓는다. 들뢰즈는 인간의 뇌가 어떻게 사물을 지각하는지, 또는 인간이 지각한 사물이 자기 자신에게 어떤 상태로 주어지는지 잘 설명해 주는데, 사물에 대한 인간의 지각은 언제나 ‘나’라는 신체를 중심으로 이루어진다. 이는 신체의 중심화된 시각일 뿐이다. 하지만 카메라의 지각은 다르다. 들뢰즈에 의하면 카메라의 지각 혹은 카메라를 통해 포착된 사물은 인간의 중심화된 지각에 비해 우월한 지각이다. 카메라는 우리의 ‘뇌’라는 스크린을 거치지 않기 때문에 사물을 있는 그대로 지각하는 “탈중심화된 지각”13)을 보여준다. 아케르만의 고정된 카메라는 관객의 뇌가 중심이 되지 못하게 방해하고, 자꾸만 관객에게 카메라의 시선에 굴복하도록 함으로써 관객 각자의 사고나 지각에서 벗어나 주인공 여자와 그 여자가 있는 공간 속으로 끌려가게 한다.

    <안나의 랑데부(Les Rendez-vous d'Anna)>(1978)에서는 영화의 중심이 되는 가장 긴 네 개의 시퀀스에서 카메라가 고정되어 있다. 이 네 개의 시퀀스는 주인공이 대화하고 있는 장면 혹은 혼자서 이야기하는 장면이다. 아케르만은 카메라를 고정시킬 뿐만 아니라 인물들마저도 거의 움직이지 못하게 한다. 강렬한 밀도로 이야기에 경청하게 하려고 공간과 인물을 정지시킨 것이다. 아케르만은 들뢰즈와 가타리가 “먹는다는 것은 말하는 것을 방해한다”14)고 했던 것을 확대해서 “움직인다는 것은 말하는 것을 방해한다”라고 말하는 듯 하다.15) 아케르만은 관객의 시각을 청각으로까지 집중시킨다. 관객을 감시의 눈에서 감시의 귀로까지, 즉 엿보기에서 엿듣기에까지 초대하고 있는 것이다.

    12)Michèle Fabien, «Regards...» Ateliers des Arts Chantal Akerman, Séminaire 14-15 février 1981, n°1, Bruxelles, J.Van Keerberghen&Fils, 1982. p.109.  13)질 들뢰즈, 『시간-이미지 -시네마2』, 이정하 옮김, 시각과 언어, 2005. p.413.  14)Interview d'ECRAN 75 (1978 décembre)avec Michèle Levieux à propos du livre de Deleuze et Guattari “Kafka, pour une littérature mineure” sur la déterritorialisation.  15)Jean Decock, «Analyse du système filmique des "Rendez-vous d'Anna"», Ateliers des Arts Chantal Akerman, Séminaire 14-15 février 1981, n°1, Bruxelles, J.Van Keerberghen&Fils, 1982. p.34-35.

    5. 나오며

    이제까지 샹탈 아케르만의 초기영화들에서 공간과 여성들과의 밀접합 관계를 살펴보았다. 아케르만은 내부공간을 묘사할 때 주로 좁은 내부 공간을 고집스럽게 고정샷과 롱테이크, 반복된 파노라마를 사용하여 여성 등장인물들의 꽉 막힌 심정을 보여주었다. 이 꽉막힌 포화상태를 최대한 극대화시키다가 결론에는 내부 공간 안에서 혹은 밖에서 뜻밖의 일로 사건을 종말에 치닫게 하면서 갑작스런 결말을 보여준다.

    구조주의, 극사실주의, 미니멀리즘이라는 사조적 관점이 초기작품들에서 드러나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하지만 이 작품들을 보다보면 이 세가지 사조보다는 여주인공과 공간에 더 시선을 주게 된다. 아케르만은 사조의 흐름들을 받아들이되 그녀만의 방식으로 소화시켜서 사조적 성격보다는 여성과 공간과의 밀접성을 더 부각시키고 있는 것이다. 한단계 더 깊이 생각해보면 여성과 공간과의 밀접성을 통해서 아케르만은 자전적 요소나 페미니즘적 요소를 복합적으로 드러내고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자전적 성격이나 페미니즘적 성격은 그녀의 글에서도 뒷받침될 수 있다. 아케르만은 자신의 글16)에서 그녀의 어릴 적 가족사에 대한 이야기나, 어렸을 적에 살았던 집에 대한 이야기, 어머니에 대한 기억과 추억, 어머니의 희생적 이미지, 청소년기를 거치면서 알게 된 여성으로서의 정체성과 같은 자전적인 이야기를 늘 소개해왔었다. 영화라는 장르에 대한 자신의 취향을 구조주의, 극사실주의, 미니멀리즘이라는 영화사조적 요소들로 표현했다면, 평소 자신이 지닌 사유와 철학적 취향을 여성과 공간과의 밀접한 상관관계를 통해 자전적이고 페미니즘적인 요소들로 표현한 것이다.

    16)샹탈 아케르만은 영화감독이기도 하지만 글을 쓰는 작가이기도 하다. 그녀는 여러 짧은 글을 통해 서평과 영화비평을 하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야간의 홀(Hall de nuit)』(1992), 『브뤼셀의 어느 가족(Une famille à Bruxelles)』(1998) 『영화가의 자화상 : 샹탈 아케르만(Autoportrait en cinéaste:Chantal Akerman)』(2004), 『우리 엄마가 웃는다(Ma mère rit)』(2013)와 같은 책을 통해서도 자신의 내면을 보여주고 있다.

  • 1. Akerman (Chantal) 2013 Ma mere rit google
  • 2. Akerman (Chantal) 2004 Autoportrait en cineaste:Chantal Akerman P.174 google
  • 3. Akerman (Chantal) 1999 Retrospective goog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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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5. Akerman (Chantal) 1992 Hall de nuit goog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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