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 Mythe de Phedre revisite par Robert Garnier

파이드라 신화에 대한 로베르 가르니에(Robert Garnier)의 재해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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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ABSTRACT

    Nous avons tenté de dégager de notre analyse l’influence des sources mythologiques et l’importance des éléments modificateurs dans l’oeuvre de Robert Garnier en nous posant les questions suivantes : comment le thème de l’amour de Phèdre a-t-il été remanié par l’auteur ? Quelle originalité a-t-il apporté ? Pour cela, nous avons commencé dans une première approche par établir la structure dramatique de son oeuvre à partir de l’étude de l’histoire des personnages centraux : Phèdre, Thésée et les dieux. Le caractéristique de Garnier se manifeste par le schéma original de l’intrigue. A travers cela, nous avons constaté que la situation dramatique façonne l’intrigue et surtout dans le drame de Phèdre l’action de Phèdre, en constitue la clef de voûte. Pourtant, même si le dramaturge s’appuit sur l’intrigue de l’amour de Phèdre, cette structure n’est cependant qu’une apparence de la réalité de Garnier. Garnier fait évoluer son oeuvre vers l’étude des comportements humains en s’appyant sur la dégradation de la passion de Phèdre. Mais en arrière-plan du drame de la passion de Phèdre, il élabore la présentation protatique d’Egée pour expliciter la cause du destin funeste de l’homme. Il y assimile sa propre expérience théologique, notamment catholique et protestante. De fait, Cette nouvelle approche de l’homme, maître de son destin, nous propose un thème original d’une fatalité liée à l’éthique. Le sujet de Phèdre lui permet de rapprocher la culture biblique de son époque et la sienne sans pour autant affaiblir l’intensité de la passion incestueuse de Phèdre. En effet, le mythe est devenu un autre signifiant disponible par la mise en oeuvre de Garnier. L’interprétation personnelle, mais non l’imitation du thème traditionnel, lui permet de faire évoluer sa pensée en donnant à son talent toute sa dimension.


  • KEYWORD

    Phedre , Mythe , Robert Garnier , transformation , tragedie

  • 1. 들어가는 말

    파이드라의 신화는 시대를 넘나들며 모방과 변형이라는 다양한 각색의 방법을 통해 수많은 작가들의 문학적 이야기로 거듭 재탄생되고 있다. 그리스의 에우리피데스(Euripide)는 파이드라의 신화를 연극 작품으로 재탄생시켜 무대에 올렸으며1), 로마 시대의 세네카(Sénèque)도 그의 작품을 답습, 변용하여 공연이 목적이 아닌 읽혀지기 위한 작품으로 「파이드라2):Phaedra」를 발표하였다. 그 후 프랑스 작가들에 의해 파이드라 신화의 다시쓰기 작업은 계속되어 왔다. 16세기에 로베르 가르니에(Robert Garnier)의 「히폴리토스 Hippolyte」와, 17세기의 라신(J Racine)의 「파이드라 Phèdre」가 그의 뒤를 잇는다. 그리고 라신과 동시대의 작가인 프라동(Pradon)은 「파이드라와 히폴리토스 Phèdre et Hippolyte」로 라신과 경쟁하게 되며 신구논쟁(Querelle des Anciens et des Modernes)의 중심에 떠오르기도 하였다. 또한 라모(Jean-Philippe Rameau)에 의해 파이드라의 신화는 「히폴리토스와 아리시 Hippolyte et Aricie (1733)」라는 이름으로 오페라 극으로까지 그 영역을 넓히게 된다. 그 외에도 19세기에서 20세기에는 소설의 소재가 되기도 한다. 1926년 앙리 드베를리3)는 「파이드라의 단죄 Le supplice de Phèdre」라는 소설을 발표하여 콩쿠르 상을 수상한다. 마그리트 유스나르는 라신의 작품에서 영감을 얻은 「파이드라 혹은 절망 Phèdre ou le désespoir(1936)」4)을 발표한다.

    이러한 신화의 지속적인 변용의 열기만큼이나 파이드라 신화를 다시 쓴 작가들의 작품들은 다양한 연구 방법들로 논의의 대상이 되고 있다. 특히 그리스의 에우리피데스를 포함하여 17세기 작가 라신에 대한 연구들은 그 수를 헤아릴 수가 없을 정도이며, 그들의 작품들은 파이드라의 이야기를 재구성한 작품들 중 최고의 걸작으로 꼽히며 아직도 대표적인 고전 작품으로 인정받고 있다.

    그러나 위에서 거론된 많은 작가들 중 우리의 시선을 끄는 작가가 있다. 의붓아들을 향한 파이드라의 사랑 이야기를 그린 첫 번째 프랑스 비극작가이지만, 그의 작품세계는 그리스, 로마 등 앞선 시대의 작가들과 그의 뒤를 잇게 될 17세기 후시대 작가들에 의해 가려진 16세기의 작가 로베르 가르니에(Robert Garnier)이다.

    가르니에는 당시의 철학자이자 모럴리스트였던 몽테뉴5)보다 한해 늦은 1544년 La Ferté-Bernard에서 태어난다. 그는 청년기엔 Toulouse에서 법을 공부하고 파리 의회의 변호사가 되지만 곧 문학에 대한 열정으로 직업을 버리고 작가로서의 길을 걷는다. 그 결과 22살에 Toulouse에서 개최한 콩쿠르의 시부분에 당선된다. 롱사르와 뒤벨레 등 당시의 문학계의 대가들은 가르니에의 재능을 발견하고 그들의 품안으로 기꺼이 그를 받아들인다.

    그러나 이러한 시적 재능에도 불구하고 가르니에 자신은 시인으로서의 삶이 아닌 극작가로서의 삶을 선택한다. 가르니에는 「Porcie(1568)」, 「Hippolyte(1573)」, 「Cornélie(1574)」, 「Marc Antoine(1578)」, 「La Troade(1579)」, 「Antigone ou la Piété(1580)」, 「Bradamante(1582), 「Les Juives(1583)」 등 다수의 비극작품을 발표하면서 16세기를 대표하는 비극작가로서 자리매김하게 된다.

    그의 작품들 가운데 우리가 살펴보게 될 「히폴리토스 Hippolyte(1573)」는 1573년 쎙-맥스(Saint-Maixent)에서 상연 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물론 이 점에 대해선 이후 의견이 분분하다. 가르니에 연구자인 베르나쥬7) 는 가르니에가 세네카의 극을 모방했다는 이유로 그의 작품 역시 세네카처럼 공연을 위해서가 아닌 읽혀지기 위한 목적으로 씌어졌다는 의견이고, 그와 반대로 랑송8)은 이 작품이 쎙-맥스에서 공연되어졌다는 입장을 고수한다. 그러나 공연의 사실 여부를 떠나 이 작품은 “가족극”처럼 소개되어지고 있을 뿐 파이드라의 신화를 변용한 다른 작가들의 작품들에 비라면 작품에 대한 정보는 극히 미미할 뿐만 아니라 파이드라 연구자들의 충분한 관심도 받지 못하여 온 것 또한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르니에는 수많은 비극 작품을 발표하였으며, 그의 수사학적인 노력과 시구의 아름다움은 프랑스 문학사에 있어 위마니스트 humaniste 비극의 정수를 구현한다는 평을 받기도 하는 등 16세기를 대표하는 극작가로 인정받았다. 가르니에의 이러한 창작적 재능은 「히폴리토스 Hippolyte」의 작품에도 예외는 아니리라 짐작해 볼 수 있다.

    따라서 우리는 이러한 가설을 바탕으로 파이드라 신화의 다시쓰기를 통해 새로운 면모를 보여주었지만 다른 작가들의 유명세에 밀려 독자와 연구자들의 관심의 영역에서 벗어나야했던 로베르 가르니에를 재조명해 보고자 한다. 그리고 신화의 변용은 작가가 몸담은 시대와 문화적 취향 그리고 작가의 의도에 따라 변화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포함한다면 과연 가르니에는 파이드라의 신화를 어떤 의도를 가지고 어떻게 변용하여 재탄생시켰는지 밝히는 과정도 흥미 있는 작업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이를 통해 우리는 16세기 극작가의 고유한 독창성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이를 위해 첫 장에서는 극의 구조 즉 희곡의 특성인 막의 구성, 줄거리의 전개방식 그리고 인물의 특성과 행동 등을 분석할 것이다. 다음 장에선 가르니에가 인물들에게 남겨놓은 신화적 고유성은 무엇이며 또 변용을 시도하였다면 어떻게 그리고 무엇 때문인지에 대해 초점을 맞추고자 한다. 이 과정을 통해 우리는 이교도의 신들의 문제를 가르니에는 과연 어떻게 접근했으며, 어떤 방법으로 시대성을 극복하였는지 살펴보게 될 것이다.

    1)발터 벤야민, 『발터 벤야민의 문예이론』, 민음사, 1983 : 그리스 시대에는 예술적 수련을 위한 목적으로 도제들의 모방이 행해졌고, 작품의 보급을 위해 예술의 대가들에 의해 행해졌으며, 그리고 돈벌이 수단으로 행해지기도 했다.  2)등장인물들과 작품명은 그리스 식으로 표기함.  3)Henri Deberly, Le supplice de Phèdre, Les Editions de l’imprimerie nationale de Minaco, 1926  4)Marguerite Yourcenar, Feux, Paris, Gallimard, 1993  5)Michel Eyquem de Montaigne, 1533.2∼1592.9  6)Georges Sion, “Garnier ou les oubliés de la Renaissance”, Bruxelles, Académie royale de langue et de littérature françaises de Belgique, 1990  7)Simon Bernage, Etude sur Garnier, Genève, Slatkine Reprints, 1970  8)Gustave Lanson, “Etude sur les origines de la tragédie classique en France”, Revue d’histoire littéraire, 1903, p. 413

    2. 극 구조의 독창성

       2.1. 막의 분할

    가르니에가 「히폴리토스 Hippolyte」를 발표할 당시 프랑스 문학계는 그리스-라틴 문학을 모방, 변용하거나 아리스토텔레스의 이론의 접목에 대해 적극적이었다.9) 가르니에 역시 파이드라의 신화를 작품의 주제로 차용하고, 세네카에게서 작품의 전개 방식에 대한 영감을 얻어 「히폴리토스 Hippolyte」를 탄생 시킨다. 하지만 이러한 차용은 단순한 모방의 수준에서 머무는 것이 아니라 변용을 통한 재창작의 시도였음을 발견할 수 있다. 우선 가르니에는 극의 중심인물을 파이드라로 설정하고, 그녀의 정념을 극전개의 중요한 모티브로 삼고 있기는 하지만, 세네카와는 다른 자신만의 전개 방식을 통해 몇몇 신화적 변용을 시도하고 있다.

    다음 도표를 통해 극의 구성을 알아보도록 하자.

    위의 도표를 통해 우리는 극을 구성하는데 있어 가르니에는 세네카와는 달리 자신의 독창성을 보여주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첫째 등장인물의 구성을 통한 작가의 독창성이다. 세네카10)는 극의 행위와 줄거리 진행을 주도하는 중심인물로 파이드라, 히폴리토스, 테세우스 그리고 유모를 설정하여 각 장마다 적절하게 배치시키고 있다. 그리고 이들과 함께 합창단을 등장시켜 상황을 설명하거나 때로는 인물들과 대화를 나누는 모습을 보여 주고 있다. 반면에 가르니에는 「히폴리토스 Hippolyte」라는 극의 제목에도 불구하고 도입부에 잠시 모습을 드러나게 할 뿐 히폴리토스의 역할을 삭제시킨다. 이는 신화나 이전의 작가들의 작품에서는 반드시 등장했고 중심인물로서의 역할을 담당했을지라도 자신의 극의 전개나 극의 행위를 위해서는 불필요하다고 느낀 인물은 과감하게 삭제시킨 작가의 단호함을 보게 된다.

    다음은 극의 분할 구성에 있어서도 가르니에가 변형을 시도했음을 발견할 수 있다. 극의 구성에 있어 가르니에는 전적으로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 이론을 준수하는 당시 극작의 경향을 따르고 있다. 16∼17세기는 극창작이 그 어느 때보다도 활발하게 번성하던 시대로 꼽힌다. 작시법의 성서처럼 여겨졌던 로마시인 호라티우스11)의 「시론 De L’Art poétique」이 번역, 출판 된 이후, 프랑스 극작가들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 Poétique」과 함께 그가 제시한 극작법에 관심을 갖게 되며, 이들의 이론을 창작에 적극적으로 수용한다. 가르니에의 작품에서도 우리는 몇 가지 아리스토텔레스와 호라티우스의 극작법의 이론 요소들을 발견할 수 있다. 우선 극의 구성을 살펴보자. 극의 줄거리 전개는 위의 도표에서 볼 수 있듯이 세네카 극의 전개와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러나 가르니에는 작품을 총 5막으로 새롭게 구성한다. 5막으로 분할되는 막의 구성은 호라티우스가 「시론」에서 주장했으며, 이에 영향을 받은 르네상스의 많은 극작가들도 이를 따르게 되었다. 가르니에도 마찬가지로 자신의 극을 5막 극으로 구성하였고 각 막의 끝 부분은 합창단의 출현으로 장식하였다. 이 합장단도 이야기의 전개가 다음 막으로 자연스럽게 진행되는 것을 도와주는 역할이 아니라 오히려 막과 막사의의 이야기의 연결을 차단한다. 그들은 바로 앞선 주인공들의 행동이나 전개 내용에 대한 상황을 노래할 뿐 그 외의 극의 행위나 줄거리의 진행에는 전혀 개입을 하지 않는다. 가능한 한 불필요한 부차적 인물들의 역할을 최소화 시키고 파이드라라는 중심인물의 역할에 초점을 맞추고자 한 작가의 의도를 엿볼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다음은 아이게우스라는 혼령의 등장이라는 프롤로그 부분의 설정이다. 가르니에는 이 혼령에게 앞으로 전개되어질 사건에 대한 정보를 관객에게 제공하는 도입부의 역할을 맡긴다. 이 또한 「시학 Poétique」에서 아리스토텔레스가 제시한 도입부의 역할을 준수하고 있음이 드러나는 부분이다. 그러나 가르니에의 진정한 의도는 이러한 프롤로그의 설정과 극의 마지막 부분에 테세우스의 독백 형식을 빌려 만들어지는 에필로그와의 대립 구도에서 드러난다. 가르니에는 프롤로그를 통한 인물들이 겪게 될 운명에 대한 원인의 정보제공이 에필로그 부분에서 그 결과가 확인되도록 극을 구성한다. 도입부의 단순한 정보제공의 역할을 넘어 “원인과 결과”의 극이라는 새로운 구조를 형성하기 위해 프롤로그와 에필로그를 설정한 가르니에의 의도를 짐작하게 해준다. 이는 다음 부분에서 도식과 함께 더 자세히 다루도록 할 것이다.

       2-2. 진실다움과 예절 (Vraisemblance et Bienseance)

    극의 구성에서 드러나는 특성 이외에도 가르니에는 시학이 제시하는 진실다움과 예절(Vraisemblance et Bienséance)의 규칙이론을 염두에 두었음을 발견할 수 있다. 먼저 작가는 세네카의 파이드라의 모습을 새롭게 각색한다. 세네카 극에서 파이드라는 아마존 여인12)의 복장으로 무대 위에 등장한다. 히폴리토스의 사랑을 갈망하는 그녀는 히폴리토스가 유일하게 존경했던 여성인 그의 어머니가 돼서라도 히폴리토스의 관심을 받고 싶어 한다. 이러한 바램이 그녀로 하여금 히폴리토스의 어머니의 모습이었던 아마존의 여인으로 변장을 하게 만든다. 그러나 파이드라의 변장 모습은 그녀의 사랑에 대한 동정심을 유발하기는커녕 오히려 여왕의 품위를 격하시키는 우스꽝스러운 장면으로 전락하고, 이는 작품이 비극성을 띄는데 오히려 불필요한 장면이라는 오점을 남긴다. 이러한 장면을 가르니에는 과감히 삭제하였다.

    다음은 테세우스의 모습이다. 세네카의 테세우스는 갈기갈기 찢기고 조각난 아들의 시신 앞에서 뼈를 다시 짜 맞추라고 명령한다. 그러나 이 장면도 앞선 파이드라의 장면처럼 비통함과 애절함의 표현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참혹하고 끔직스러운 모습으로 관객에게 공포감만을 더해 줄 뿐이다. 가르니에는 이렇듯 혐오감을 불러일으킬 소지가 있는 장면을 테세우스의 회한의 독백으로 대신한다. 아들을 잃은 아버지의 애통한 심정과 조금이라도 아들의 시신에 예의를 갖추고 싶어 하는 모습이 오히려 더 비극적이고 관객의 동정을 유발할 수 있을 것이라는 판단에서 재구성된 장면이었으리라.

    이러한 장면들은 가르니에가 “잔인하거나 공포 분위기의 삭제를 통해 관객으로 하여금 보는 것을 믿도록 해야 하며, 그것의 실체를 의심해서는 안 된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극작법 이론의 하나인 “진실다움(vraisemblance)”의 법칙을 따르고자 했음을 보여준다. 또한 신화적인 불필요한 요소의 최소화를 통해 사실적 힘을 부여하면서 자신의 철학과 개성을 전달할 수 있는 방법을 선택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다음은 극의 전개방식을 통해 보여주는 가르니에의 “예절(bienséance)”의 극작법이다. 극은 아이게우스(Égée)의 인영(人影)과 히폴리토스의 등장으로 시작된다. 신화에 의하면 아이게우스는 테세우스의 아버지이다. 미노타우로스를 처치하러 크레타 섬에 간 아들 테세우스가 살아서 돌아오며 미처 바꾸지 못한 검은 돛을 보고 아들이 죽었다고 믿고 자신도 스스로 바다에 몸을 던진다. 그가 몸을 던진 바다는 그의 이름을 따 아이게우스해海로 불리게 된다. 그런 아이게우스가 혼령이 되어 극의 프롤로그 부분에 등장하여 테세우스와 그의 가족들에게 불어 닥칠 불운을 예견하는 것이다. 그리고 1막에는 히폴리토스가 등장하여 지난밤의 흉몽을 떠올리며 불길한 징조임을 강조하는 장면으로 이어진다. 그러나 그도 잠시뿐 그들의 불길한 예견과 암시는 관객은 물론 극중 인물들의 기억 속에서 곧바로 사라진다. 극은 다만 정열적으로 사랑에 빠진 격정적인 파이드라의 행동에 초점이 맞추어진 채 진행된다. 모두가 잠시 신화적인 신탁을 잊게 되는 것이다. 이점에서는 마치 도입부와 결말부의 아이게우스와 테세우스의 독백은 비극성과 두려움, 공포, 그리고 연민을 불러일으키는 것 이외에는 극의 진행과 극적 상황이 변화에도 그 어떠한 영향도 행사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여기서 우리는 “믿기는 어려우나 가능한 일 쪽보다는 있음직하기는 하나 실제로는 불가능한 일 쪽을 선택하는 것이 좋다. 그러나 줄거리는 불합리한 일들을 부분으로 구성해서는 안 된다. 불합리한 요소는 가능한 한 포함시켜서는 안 되지만 불가피한 경우에는 그것을 이야기밖에 두지 않으면 안 된다.”라고 한 아리스토텔레스의 “진실다움과 예절”의 극작법13)을 떠올리게 된다.

       2-2. 극의 도식 (Shema de la sturcture)

    그러나 진정한 가르니에의 독창성은 앞서 살펴본 극의 구성에 내재되어 있는 또 하나의 구조가 설정되어 있다는 점이다. 결말 부분에서 가르니에는 히폴리토스의 싸늘한 주검 앞에서 쏟아내는 파이드라의 독백과 테세우스의 독백을 통해 도입부의 상황을 상기시키는 방법을 사용한다. 이로서 관객은 두 인물들에 의해 앞서 도입부에서 예시되었던 일들이 실현되었음을 알게 되는 것이다. 결국 가르니에는 운명예정설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도입하기 위해 아이게우스의 혼령이라는 새로운 인물을 설정하지만, 이를 진실다움에 크게 거슬리지 않도록 극의 줄거리, 사건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 범위에서 등장시키는 극작 기술을 발휘한 것이다.

    가르니에는 프롤로그의 테세우스와 그의 가족의 운명에 대해 예견하는 아이게우스와 악몽을 빌어 불운을 감지하는 히폴리토스를 극 초반에 위치시키고, 이러한 예견이 현실이 되는 상황을 극의 결말 부분으로 설정한다. 이는 테세우스의 “원죄”에 의해 그의 가족들이 불운들 맞이한다는 사실과 신탁의 예언의 결과로 보이는 인물들의 운명의 비극적인 결말을 통해 “원인과 결과”의 극적 구조를 만들어내려는 작가의 의도였음이리라. 이러한 가르니에의 독창적인 극 구조는 다음과 같은 도식으로 나타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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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게우스와 테세우스의 독백은 각각 프롤로그와 에필로그에 설정되지만 도식이 보여주는 것처럼 극은 정념에 휩싸인 파이드라에 의해 진행되어진다. 사랑의 쟁취에 대한 희망에 그녀는 용기를 내어 고백하지만 이는 거절로 되돌아온다. 절망과 수치스러움으로 파이드라는 다시 한 번 정념의 노예가 되고 이성을 상실한 채 자신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까지 악의 구렁텅이로 몰아넣게 된다.

    도식에서도 볼 수 있듯이 가르니에는 극의 절정 부분에 파이드라의 고백을 위치시킨다. 총 2384행 중 정확히 극의 중간 부분인 1192행에서 파이드라의 고백이 이루어진다. 고백의 전 후로 그녀의 심리는 희망과 절망이라는 대조적인 상태를 보이며, 거절이 되어 돌아온 고백의 결과는 치명적 수치심을 불러일으키며 비극으로 치닫게 되는 시점이 된다. 이러한 극의 구조를 통해 가르니에는 정념에 이끌려 가는 파이드라의 행동을 부각시킬 뿐만 아니라, 이를 빌려 인간의 행동과 이성에 관한 도덕적이고 교훈적인 내용들을 전달하고자 한것이다.

    그러나 진정한 가르니에의 독창성이 드러나는 곳은 바로 그 안에서 보이지 않게 작용하고 있는 신에 의해 만들어진 인간의 숙명의 문제를 “원인에서 결과”로의 극의 구조로 접근했다는 것이다.

    극 초반에 등장한 아이게우스의 인영(人影)은 앞으로 일어날 일에 대해 예견하며 신의 절대 권력과 이를 거스르는 인간이 맞이할 불운의 최후에 대해 강조한다. 결말부의 히폴리토스의 시신 앞에서의 파이드라의 고백과 테세우스의 회환의 독백은 도입부의 아이게우스의 예견과 히폴리토스의 악몽이 실현되었음을 구체화 시킨다. 또한 인물들이 토해내는 독백들은 비극적 감동을 자아내며 서정성으로 연민과 공포를 일깨우는 역할을 하게 된다. 16세기 작가들이 작품 속에 격언, 잠언들을 자주 사용하던 방법을 가르니에도 도덕성을 강조하기 위해 자신의 극에 사용하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아이게우스의 혼령이 한 예언은 부도덕한 인간은 신의 복수를 야기한다는 점을 강조하는 동시에 인간의 행동에 대한 도덕적인 훈계이기도 하다. 결말은 그에 대한 인간의 무지와 비이성적인 행동이 잔인한 운명을 초래했음을 보여준다. 극 후반 페드르와 테세우스처럼 그들의 잘못을 알아차렸을 때의 상황은 이런 교훈에 대한 확인의 모습인 셈이다. 결국 인간의 자만심이 빚어내는 결과를 보여주는 인과관계의 극의 구조를 이루고 있다.

    9)이는 당시 문학계의 중심역할을 담당한 플레이아드파의 영향 때문이기도 하다.  10)이해를 돕기 위해 세네카 극의 구성 도표를 뒷면에 첨부하였다.  11)Quintus Horatius Flacus, BC 65-BC 8  12)여자를 추악한 존재이며 인류의 모든 악의 근원이자 책임자라고까지 여길 정도로 여성을 혐오하고 사랑 따위엔 관심조차 없는 히폴리토스가 유일하게 존경하는 여성은 전쟁을 할 줄 아는 자신의 어머니이다.  13)Carla Federici, Réalisme et dramaturgie, Paris, Nizet, 1974

    3. 인물의 독창성

       3-1. 파이드라

    파이드라가 의붓아들 히폴리토스를 사랑하게 된 동기는 신화속의 내용과 같다. 미노스(Minos)와 파시파에(Pasiphae)의 딸 파이드라가 의붓아들 히폴리토스를 사랑하게 된 것은 우연이 아니다. 그녀의 어머니 파시파에는 가문 대대로 내려진 신의 저주에 의해 소와 사랑에 빠져 미노타우로스를 낳게 되며, 그녀의 언니 아리아드네도 테세우스에 의해 낙소스 섬에 버려지는 운명을 맞이한다. 파이드라 또한 히폴리토스를 향한 그녀의 사랑의 원천 역시 가문대대로 내려온 비너스의 저주에서 비롯된 숙명이다. 그러나 고귀하고 순수한 신화 속의 인물 파이드라는 가르니에에 의해 사랑으로 눈이 어두워져 사랑의 노예가 되는 여인으로 재탄생된다. 가르니에는 파이드라를 자신의 운명 앞에서 무기력한 모습이 아니라 이를 극복하고자 노력하는 모습으로 그린다. 파이드라는 비록 본인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숙명에 의해 자신에게 찾아온 사랑이지만 그 사랑을 쟁취하기 위한 강한 의지를 보이는 적극적인 인물로 그려진다. 그녀의 열정적인 모습은 초반부터 절정에 달한다. 자신의 사랑이 비합법적이라는 것을 인식하고 있지만, 이를 숨기지 않고 당당하게 밝히는 모습은 분명 새로운 파이드라의 모습이다. 먼저 그녀는 유모에게 테세우스에게 향했던 자신의 사랑은 그의 아들에게로 향하고 있으며, 지금 그녀가 사랑하는 이는 바로 그의 아들인 히폴리토스라고 당당히 고백한다.

    이렇게 유모에게 모든 사실을 털어놓고 쏟아내는 애원의 독백은 자신은 이미 강렬한 충동에 저항 할 수 없이 무기력해져 있음을 암시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제부터 그녀는 금지된 사랑에 자신을 맡기게 된다. 그녀의 이성은 정념에 무너지고 패배 당한다. 더 이상 아무것도 그녀의 사랑을 멈추게 할 수 없다. 자신의 욕망에 의한 수치심에서 벗어나고자 죽음을 선택하려했지만 이 또한 오히려 유모의 마음을 움직여 자신의 사랑의 성취를 위한 음모자로 만들뿐이다. 왕비를 죽음에서 끌어내고자 유모는 그녀를 대신해서 히폴리토스의 감수성에 호소를 한다. 그러나 파이드라는 유모가 협상의 결과를 가져오기만을 앉아서 기다리는 수동적인 여인의 모습이길 거부한다. 이번엔 자신이 직접 히폴리토스 앞에 나선다. 하지만 왕자를 보는 순간 정신을 잃고 만다. 이 장면은 그녀의 욕망이 더 이상 제어 할 수 없이 커져 있음을 보여주는 순간이기도 하다. 다시 정신을 차린 파이드라는 자신의 의지가 실현될 수 있도록 무엇이든 할 준비가 된다. 그리고 정숙, 공포, 죄의식 따위에 더 이상 얽매이지 않고 수치스러움도 잊은 채 히폴리토스에게 사랑 고백을 한다. 하지만 그녀의 애절한 감정은 강렬한 대사와 격한 행동으로 표현되어지고, 그녀의 고백에 불쾌감을 느낀 히폴리토스는 칼을 뽑아든다. 이런 히폴리토스의 거절의 몸짓은 파이드라에게 광기의 복수심만을 불어넣을 뿐이다.

    이러한 파이드라의 과감한 행동은 마지막 장면에서도 나타난다. 세네카의 파이드라는 스스로 목숨을 끊기 전 히폴리토스의 시신위에 자신의 머리를 자르는 모습으로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비통함을 표현하였다. 그러나 가르니에의 파이드라는 자신이 그토록 사랑했던 히폴리토스의 시신에 마지막 입맞춤을 한다. 이는 역대 파이드라가 보여주었던 사랑의 표현 중 가장 과감한 행동임이 분명하지만 이제껏 그녀가 보여주었던 열정적이고 과감한 행동에 비하면 극히 소탈한 사랑의 슬픈 몸짓에 불과할 뿐이다.

    또한 가르니에는 자신의 사랑을 성취하기 위해 열정적인 모습이었던 만큼 자신의 행동에 대해서도 후회를 하지 않는 파이드라로 그리고 있다. 비참한 비극적인 결과를 빚어낸 마지막 순간까지도 그녀는 자신의 불같은 사랑에 대해 후회 하지는 않는다. 다만 히폴리토스의 사랑을 얻지 못한 것에 대한 한탄만 있을 뿐이다.

    이처럼 가르니에는 파이드라를 죽음을 맞이하는 순간까지도 정열적인 마음의 움직임에 자신을 맡기는 여인으로 그리고 있다. 그녀가 죽음을 선택한 것도 회한과 참회와 속죄를 위해서도 아니고 실추된 자신의 명예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더더욱 아니다. 자신의 삶의 유일한 존재였던 히폴리토스가 죽자 그녀에게는 더 이상의 존재 이유가 없으며 죽음으로서나마 그와 운명을 같이 하고자 했기 때문이다. 그녀의 죽음은 결국 자신이 원하는 것의 실현을 제지하는 세상의 구속에서 자유로워지고 싶음과 그것의 실현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것이야 말로 영혼의 움직임에 모든 것을 맡기는 인간의 순수한 열정을 보여주고자 한 가르니에의 진정한 의도가 아닐까?

    이렇게 가르니에는 그 어떤 두려움도 없이 그리고 양심의 가책도 없이 자신의 욕망을 위해 모든 것을 바치는 파이드라를 통해 정열적으로 사랑에 빠진 여성에 초점을 맞추면서 지극히 인간적인 감정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그녀의 사랑에는 분명 때로 이기적이고 때로 광적인 정욕의 위협이 떠돌고 있다14). 그녀의 온전히 인간적인 정념은 감동과 연민을 자아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우리에게 덕과 지혜로움을 망각한 인간의 교만과 광기의 승리에 대해 돌아보고 반성하게 만든다. 결국 가르니에는 도덕성에 대한 교훈을 남김과 동시에 관객의 연민과 공포를 자아내는 비극의 목표를 실현시키고자 한 것이다. 그리고 그 속에서 신화적인 분위기는 점점 퇴색되어진다.

       3-2. 영웅 신화, 테세우스

    신화 속 테세우스는 아이게우스와 포세이돈의 아들로서 신적인 존재임과 동시에 한 나라의 왕, 용사로서 리더십을 발휘하는 영웅으로 인식되어지는 인물이다. 그러나 가르니에는 테세우스 영웅 신화의 특성에 몇 가지 변형을 시도한다. 신화 속에서 그려진 신의 혈통을 이어받은 왕이라는 신분은 그대로 유지되었지만, 테세우스는 더 이상 영웅적이 존재의 모습이 아니다. 그는 반신적인 존재로서의 왕이 보여줄 수 있는 리더십을 상실한 채 질투에 눈이 멀어 잘못된 판단을 저지르고 마는, 그저 아내에 대한 애정이 넘치는 남편으로 그려진다. 그에게 남아있는 신화 속의 모습은 단지 바람기 있는 여성편력의 모습이며, 이러한 테세우스의 특징은 파이드라로 하여금 자신의 부정한 사랑에 대한 죄의식을 경감시키고, 자신의 사랑을 정당화시킬 수 있는 변명거리가 될 뿐이다15).

    이러한 부정적인 특징들과 함께 테세우스는 처음부터 아내와의 재회에 대한 기쁨을 감추지 못하는 모습으로 등장한다. 그리고 자신의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아내의 반갑지 않은 마중 모습을 보고 걱정과 실망스러운 자신의 속내를 거침없이 표현한다. 그 어디에도 왕으로서의 위엄성은 찾아 볼 수 없다.

    이렇듯 가르니에는 파이드라 앞에서는 항상 애정이 넘치고 자상한 남편의 모습을 보이는 테세우스의 모습을 강조한다. 특히 그는 아내가 그토록 침울한 이유를 알기위해 아내를 향한 자신의 믿음과 애정을 강조하며 끈질기게 이유를 밝히기를 요구하는 지극히 평범한 남편일 뿐이다16).

    그의 이러한 집착에 파이드라는 결국 히폴리토스를 중상모략하며 테세우스는 단 한순간도 아내의 말에 의심을 품지 않는다. 게다가 도망간 아들과 그가 남긴 칼은 이미 아들의 부정함을 증명하기에 충분한 증거가 되었다. 그의 분노는 극에 달하며 신들에게 복수를 청하게 이른다.

    아버지로서의 테세우스의 모습에서도 신화 속 영웅의 강인함은 사라진다. 배반과 치욕으로 아들을 죽음으로 단죄하지만 아들을 잃는다는 사실에 슬픔의 눈물을 흘리는 아버지이며, 여전히 그의 내면에 살아 숨 쉬는 부정(父情)으로 인해 아들과의 연을 매정하게 끊지 못하는 나약한 아버지이다17). 이렇게 가르니에의 테세우스는 더 이상 신에 가까운 영웅 신화의 주인공이 아닌 아버지와 남편이라는 위치 사이에서 혼란스러워하는 지극히 인간적인 모습으로 탈바꿈한다. 그러나 결국 아내를 향한 사랑이 자식에 대한 사랑을 이기고, 아들을 죽음으로 이끈다. 테세우스의 사랑도 파이드라의 히폴리토스를 향한 사랑처럼 분별력을 잃게 만드는 맹목적인 사랑인 것이다.

    모든 진실이 밝혀지고 아들의 시신과 마주한 그는 자신의 잘못과 그로 인한 결과에 순응하며 다시 한 번 눈물을 흘린다. 그러나 그것은 신의 절대권력 앞에서 자신의 나약함에 대해 흘리는 고대 테세우스의 눈물이 아니라 바로 자신의 잘못이 비극적 결과를 초래했다는 사실 앞에서 흘리는 가르니에의 테세우스의 후회와 한탄의 눈물이다. 가르니에는 이 마지막 장면을 테세우스의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회한의 긴 독백으로 마무리한다.

    이로서 작가는 관객에게 자신의 잘못을 타인에게 전가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행동에 대해 책임을 질 준비가 되어 있는 인간 테세우스를 만나게 해준다. 스스로 책임을 통감하는 비장한 독백을 통해 “스스로의 힘으로 자기 극복의 기술을 완성한 인간”18)으로 영웅 신화의 주인공 테세우스의 모습을 되찾게 해준다. 아들의 덕스러움이 이생에서는 존경받고 인정받을 수 있기를 기원하며 자신은 마치 오이디푸스19)가 그랬던 것처럼 속죄를 위해 참회의 길을 떠나겠노라며 긴 독백을 마친다. 잘못을 저지른 가르니에의 테세우스 역시 훗날 라신 극의 테세우스처럼 최후엔 정도와 진리를 발견하게 되는 인물로 그려지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우리는 테세우스의 모습에서도 가르니에의 독창성을 발견할 수 있다. 단순히 왕이자 아버지 그리고 남편으로서의 자격으로 그의 존재감이 극의 긴장감을 극대화 시키는데 그친 것이 아니라 그가 보여준 인간적인 모습과 나약함, 그리고 마지막 참회의 모습과 방법은 인간의 본질과 인간의 행동에 대한 도덕성에 대해 다시 한 번 성찰하도록 한다. 이러한 테세우스의 모습은 훗날 라신에게 영감을 주었으리라.

       3-3. 신(Dieu ou Dieux)

    신과 인간이 공존하는 사회인 그리스시대에는 신화 속 주인공인 신들이 극 무대에 자연스럽게 모습을 드러내었다. 그러나 16세기는 구교와 신교의 대립이 진행 중이던 프랑스의 지배적 종교성에 비추어 볼 때 이런 이교도 신들의 무대 등장은 분명 이성적으로나 논리적으로 부적합한 소재이다. 또한 내용을 설득력 있게 전달하기 위한 필수 불가결의 요소인 진실다움의 효과를 떨어뜨릴 수도 있는 선택이 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르니에는 작품의 도입부에 아이게우스(Egée)의 혼령을 등장시킴으로써 이미 라틴 작가 세네카도 자신의 작품 속에 삭제시켰던 신의 모습을 다시 부활시키는 과감함을 보이고 있다.

    아이게우스의 혼령은 프롤로그 부분에 등장하여 테세우스와 그의 가족에게 불어 닥칠 불행을 예견한다. 그리고 테세우스가 첫째 미노스Minos의 딸들인 아리아드네와 파이드라를 유혹하여 함께 데리고 떠났기 때문에 미노스의 분노를 샀으며, 둘째 페르세포네의 구출에 나선 친구 피리튀오스를 돕는 과정에서 플뤼톤의 노여움을 사게 되었다는 사실을 환기시킨다. 분노한 신들은 결국 테세우스의 아들 히폴리토스를 복수의 희생양으로 삼아 그를 죽음으로 이끌게 될 것이라 예고한다.

    또한 인간들의 운명은 그들의 절대 권력을 확인하려는 신들의 의지에 의해 예정된 것임을 분명히 밝힌다.

    이렇듯 가르니에는 주인공들의 불행한 운명을 위해 서슴지 않고 신화를 재 취급했다는 점엔 반론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여기서 우리가 주목 할 점은 가르니에는 인간의 운명을 더 이상 신들과 연결된 운명성의 문제로 발전시키지 않는다는 것이다. 가르니에는 프롤로그에서 아이게우스의 등장을 빌어 신들의 분노로부터 야기된 인간의 운명에 대한 문제제기를 하였을 뿐, 그 후 극은 마치 모든 것이 잊혀진 채 인물들의 행위에 의해 진행되어지도록 한다. 그렇다면 아이게우스가 등장해서 운명에 대해 예견하는 장면을 연출한 작가의 의도는 무엇이었을까? 그리스극이 보여주었던 이교도 사회의 모습이 단지 프랑스 기독교 사회로 넘어오면서 단순한 우화적 요소로 변형된 것인가 아니면 작가 자신이나 동시대의 종교적 성향을 표현하는 기회로 삼기 위함이었을까?

    16세기 프랑스는 분명 다양한 사건들로 인해 소란스러웠던 시기로 각인되고 있다. 구교와 신교사이의 이념 분쟁은 더욱 심각해졌으며 이로서 종교 전쟁(1562-1598)이라는 격동의 시기를 겪기도 한다. 다른 한편으로는 이탈리아의 영향을 받은 문화생활의 도약은 지성인들로 하여금 교회의 세속권 앞에서 맞선 세상 속에서 자신들의 거취에 대해 생각하게 만드는 기회를 제공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사회 상황 속에서 많은 작가들은 그들의 정치적이고 종교적인 성향들을 작품을 통해 표현하기도 하였다. 예를 들어 롱사르는 「서설 Discours(1532-1563)」속에 가톨릭교도로서의 자신의 입장을 표현하였다.

    그 외에도 도비녜는 「비극시집 Les tragiques(1577-1616)」을 통해서, 그리고 라블레는 「팡타그뤼엘 Pantagruel(1532)」와 「가르강튀아Gargantua(1534)」 등의 작품들 속에 각각 개인의 종교적 성향을 밝히기도 하였다. 이점에선 로베르 가르니에도 예외는 아니었다. 도덕주의자(Moraliste)이자 신교도(Protestant)20)로 알려진 그의 작품 「유대인들 Les Juives(1583)」은 제목부터 종교적인 색체를 드러내고 있을 뿐만 아니라 내용 또한 시대의 종교문제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표현하고 있는 성서극이라는 점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이점에서 우리는 「유대인들」보다 앞선 시기에 발표되었기는 하지만 우리가 다루고자 하는 「히폴리토스」에도 작가 자신의 철학적이고 종교적인 경향이 내포되어 있을 것이라고 추측해 볼 수 있다.

    먼저 프롤로그 부분의 아이게우스의 혼령이 제기하는 인간의 운명과는 별개로 느껴지게끔 전개되는 인물들의 행위를 통해 우리는 기독교적인 의미의 운명 예정설과 인간의 자유의지에 의한 구원의 문제에 대해 접근해 볼 수 있다. 프랑스의 종교개혁자 칼빈21)에 의해 제시된 운명예정설은 인간의 운명과 역사는 신에 의한 지배를 받는다는 데서 출발한다. 신은 구제될 사람과 구제받지 못한 사람을 미리 결정해 놓았으며 이것이 곧 신의 섭리이다. 그러나 신은 본성적 자유와 함께 인간에게 “자유 의지(libre arbitre)”를 부여한다. 이점은 인간은 누구에 의해서 강요를 당하거나 본성의 절대적 필연성에 의해서 선이나 악을 행하도록 결정되어 있지 않다고 말하는 기독교의 “인간의 자유의지”와도 일맥상통한다. 비록 은총이 결여된 인간이라 할지라도 은총에 대한 믿음과 확신을 갖고 선과 도덕적 생활을 실천한다면 신이 은총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 인간 자유의지에 대한 프로테스탄트의 가르침이다22). 이러한 논리에서 볼 때 도입부의 아이게우스의 예언으로 신들의 분노를 산 인물들은 은총이 결여된 인간의 모습인 셈이다.

    동시에 스스로 정념의 노예가 되어 이성을 상실한 채 자신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까지 악의 구렁텅이로 몰고 가는 파이드라와 테세우스 등 극중 인물들의 모습은 바로 자유의지가 결여된 인간의 불행한 모습 그 자체인 것이다.

    물론 신화 속에서 그려지고 있는 이교 신들의 질투와, 분노에 의해 야기된 인간들의 불행은 기독교 교리와 일치하지 않는다. 이러한 이유로 가르니에는 인간의 처참한 운명의 원인을 그들의 비이성적인 행동의 탓으로 돌린 것이다. 공포와 연민을 불러일으키게 되는 예견이라는 형태로서 신화의 내용을 빌려 온 것이다. 그를 통해 이성과 자신의 절제가 부족하고 자신에 대한 이기심이 클 경우 인간은 죄를 짓게 되며, 이는 결국 불행한 운명을 초래하는 돌이킬 수 없는 재앙이 되어 되돌아온다는 점을 경고하고자 한 것이다. 결국 그리스 비극이 보여주었던 신들의 잔인한 복수의 희생양으로서의 인간의 운명에 초점을 맞춘 것이 아니고 인간의 만용(hybris)이 가득한 행동에 대한 경각심을 일으키는 교훈과 교화의 수단으로 변용한 것이다.

    이로서 관객들에게 인간의 책임성 문제나 윤리도덕성에 대한 성찰의 기회를 제공한다. 이는 바로 그리스도교가 제시하는 인간의 본질과 운명의 문제에 대한 성찰이기도 하다.

    결국 로베르 가르니에는 「히폴리토스」속에 신화적인 요소를 도입하고 있기는 하지만 이교도적인 색체는 배제하고 동시대의 종교적인 색채를23) 띠는 극으로 탈바꿈 시킨 것이다.

    14)Alain Niderst, Raicine et la tragédie classique, Paris, PUF, 1986  15)v. 431-440  16)v. 1677-1678  17)v. 2151-2152  18)조셉 캠벨, 『천의 얼굴을 가진 영웅』, 이윤기 역, 민음사, 2004, p.29.  19)참회의 길을 떠난 오이디푸스가 곤경에 처해있을 때 테세우스의 도움으로 오이디푸스는 아테나에 은신처를 마련하게 된다. 그리고 훗날 정의와 인간성 넘치는 테세우스는 오이디푸스의 축복을 받게 된다.  20)Georges Sion, Ibid.  21)Jean Calvin(1509∼1564), 장로교를 창시한 프랑스의 개신교 신학자이자 종교개혁자이다.(출처, 네이버 백과사전)  22)Madeleine Lazard, Le théâtre en France au XVIème siècle, Paris, P.U.F,1980, p.114 : «Ce n’est pas encore une pécheresse à qui la grâce a manqué, mais l’infortunée victime du destin. Le christianisme de l’auteur l’empêche de rendre les dieux responsables du malheur de Phèdre. Mais la pitié qu’elle inspire suggère l’enseignement moral que Garnier s’est toujours soucié de donner. Elle met en garde contre les dangers de la passion.»  23)R. Lebègue, Robert Garnier et les problème de Phèdre, Munich, Funk, 1977, p.144 : «Quand Garnier parle des qualités des Dieux païens, c’est au Dieu des chrétiens qu’il pense.»

    4. 마치는 말

    이상으로 우리는 16세기를 대표하는 프랑스 비극작가로서의 가르니에의 면모는 「히폴리토스」를 통해서도 입증되고 있음을 확인하였다.

    가르니에는 정념의 격렬함 속에 점점 빠져 이성을 잃고 과오를 저지르는 인물들을 통해 인간의 정도를 벗어난 정념이 어떻게 최후의 폭발점을 향해 치닫게 되는 지를 보여 주었다. 이러한 사랑에 의한 인물들의 감정 변화와 행동에 의해 이루어지는 극의 구조는 관객과 독자의 시선을 사로잡았으며, 동시에 그들이 빚어내는 비극적 결말은 당대의 인문주의에 입각한 도덕관을 담아내고 있는 것이다. 또 다른 한편으로 파이드라를 중심으로 주변 인물들이 부딪치는 현실의 난관과 그들이 직면한 운명을 통해 작가 자신의 철학과 종교관을 반영하는 내적 구조를 이루어 극을 진행시켜 나가는 독창성을 발휘하고 있다.

    진실 자체와 유사한 허구를 만들기 위해서는 그만큼의 도구들이 동원되어야 한다면 가르니에는 신화를 그 도구로 선택한 것이다. 신의 모습의 재현이라는 신화적 요소의 차용을 통해 가르니에는 자신의 종교성을 은닉시켜 전파하는 독창성을 보였다. 그러한 측면에서 볼 때 가르니에의 극 「히폴리토스 Hippolyte」는 종교적이고 도덕적인 면에서 일종의 “참여극”24)으로 해석되어질 수도 있을 것이다.

    결국 가르니에에게 있어 모방은 새로운 상상력을 유발시켜 창조로까지 이어졌으며25) 그가 보여준 파이드라 신화의 변용은 같은 주제의 작품일지라도 작가의 고유한 창작력이라든지 작가와 그 시대가 공유하고 있는 현실에 의해 유일한 작품으로 독자들에게 다가갈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시켜 주었다.

    이점에서 가르니에 또 다른 새로운 신화 창조의 역할을 담당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이 작품에 등장한 신은 가르니에 이전이나 이후 파이드라의 신화를 주제로 한 그 어느 작품에도 등장하지 않는 유일무이한 인물이기 때문이다. 신과 종교, 인간에 대한 작가의 세계관이 신화가 제공하는 자유로운 공간속에서 자유로이 펼쳐진 것이다.

    이렇듯 충분한 관심을 받을 만한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가르니에의 「히폴리토스Hippolyte」가 여전히 17세기의 극작가 라신의 명성에 가려져 그 의미가 빛을 발하지 못한다는 것이 아쉬운 점으로 남는다.

    지금껏 파이드라의 신화를 다루고 있는 대부분이 작가들은 작품을 극의 중심인물의 이름으로 명명하였지만 가르니에는 제목에 있어서도 다른 방법을 택하였다. 분명 가르니에 극의 중심인물은 파이드라이며 히폴리토스는 비극의 희생양으로 극에서 그 존재감마저 상실되는 인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가가 히폴리토스의 이름을 작품의 제목으로 정한 이유는 무엇인지, 그에 따른 작가의 숨은 의도를 다루어 보는 것도 흥미로운 작업이 될 것이다.

    또한 자신의 바로 앞선 작가임에도 불구하고 라신은 자신의 작품에서 가르니에에 대한 언급이 없었을 뿐만 아니라 작품의 서문을 통해 고대 그리스 작가 에우리피데스에게서 영감을 받았다고26) 밝히고 있다. 그러나 가르니에의 연구를 통해 우리는 라신의 파이드라의 줄거리 전개나 작가의 종교성을 표현하는 극의 구성 방법은 오히려 가르니에의 작품과 더 가깝다는 사실이다. 정녕 라신은 이 감춰진 가르니에를 몰랐던 것인지 아니면 자신의 작품의 독창성을 강조하기 위해 이 작가를 애써 외면한 것인지 두 작품을 비교 연구하는 것 또한 의미 있는 일이라 생각하며 다음 과제로 넘기도록 하겠다.

    24)Jean-Jacque Roubine, Introduction aux grandes théories du théâtre, Armand Colin, 2004. 『연극 이론의 역사』, 김애련 역  25)H. Weber, La Création poétique au XVI sècle en France, Nizet, Paris, 2001  26)Préface de Phèdre de Racine : “Voici, encore une tragédie don’t le sujet est pris d’Euripide. Quoique j’ai suivi une route un peu différente de celle de cet auteur pour la conduite de l’ac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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