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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A 학술지
Le theatre de Moliere : le role de la raison comique et son changement theatral 몰리에르의 연극 : 희극적 이성의 역할과 극적 변화*
  • 비영리 CC BY-NC
ABSTRACT
Le theatre de Moliere : le role de la raison comique et son changement theatral
KEYWORD
Moliere , la comedie , laraison , Le Misanthrope , les comedies- ballets
  • 1. 서론

    프랑스가 낳은 위대한 고전작가 몰리에르는 작고한 지 오래되었으나, 그의 정신과 사상은 아직도 살아서 숨 쉬고 있다. 왜냐하면 전세계에서 매년 그와 그의 작품들에 대한 논문과 저서들이 끊임없이 그의 사상과 작품성을 논하면서 새로운 몰리에르를 만들어내고 있기 때문이다. 그의 작품들은 각 시대가 원하는 다양한 미학적 가치를 지니고 있어, 고전작품으로만이 아니라 유효한 현재성을 띤 작품으로서도 가치가 있다 하겠다.

    본 연구는 몰리에르의 희극이 주제비평학적 관점에서 극적 변화가 있는가를 파악하는 데 초점을 맞추었다. 그러나 본 연구에 앞서 이 주제에 대해서 이미 문학비평가 무어(Moore)가 자신의 저서 New Criticism에서 처음으로 그의 희극적 변화를 주장한 바 있으며1), 이어서 넬선(Nelson)이 무어의 주장을 보다 한층 강화시켰다2). 그 후 제라르 드포(G. Defaux)가 그들의 주장보다 더 체계적이고 더 구체적인 내용들을 바탕으로 몰리에르의 희극의 변화를 논리적으로 주장하였다3).

    따라서 본 논고는 매우 독창적인 연구라기보다는 몰리에르의 전체 작품의 흐름 가운데, 그의 희극이 무엇에 정초하고 있으며, 그 주된 목적이 무엇인지 밝히고, 나아가 주제비평학적 측면에서 극적 변화는 있는지를 점검해 보면서, 그의 연극을 이론적으로 지탱해 주는 미학적 판단기준인 희극적 이성에 대해 고찰코자 한 것에 그 의의가 있다 하겠다. 그러다 보니 본 논문의 진행상 그 분량이 다소 길어졌음을 사전에 밝힌다.

    그리고 본 연구를 위해 몰리에르의 전체적인 극 경력을 중심으로 그의 작품들을 단계별로 나누어서 연구에 적용했음을 밝혀 둔다. 이러한 방법이 관련 연구자들에게 여러 문제점을 불러일으킬 수 있지만, 논자의 편의상 주제 비평학적 분기점을 가르는 1666년 『인간 혐오자 Le Misanthrope』를 기준으로 삼아 그 전후의 변화를 살폈다4). 이 기준을 반영하여 그의 작품세계를 연도별로 (A)∼(D)단계로 분류하였는데 자세한 분류 방법과 내용은 아래와 같다5).

    1)Cf. Robert J., Nelson, 《L’Impromptu de Versailles reconsidered》, in French Studies, 1957, n˚ 11, pp.305∼314.  2)Cf. Will G., Moor, A New Criticism, Oxford, Clarendon, 1949. [2ème édition, Garden City, N. J., Doubleday and C˚, 1962.]; Will G., Moor, 《Molière’s Theory of Comedy》, in L’Esprit créateur, 1966, n˚ 6, pp.137∼144.  3)Gérard Defaux, Molière ou les métamorphoses du comique. De la comédie morale au triomphe de la folie, Lexington, French Forum, 1980. [Réédion Paris, Klincksieck, “Bibliothè d’Histoire du Théâtre”, 1992.]  4)1666년 이전의 희극들은 희극의 목적과 정당성, 그리고 도덕적 지향성의 초석이 되는 도덕적 희극들(les comédies morales)을 전반부로 인지했으며, 1666년 이후 희극들은 몇몇 작품들을 제외한 인간의 광기를 예찬하는 코메디 발레들(les comédies-ballets)을 후반부로 보았다.  5)(A)단계 – 예술 실습을 통한 경험 축적단계, (B)단계 – 희극의 이론화 단계 및 도덕성 추구, (C)단계 – 도덕성 추구의 좌절 단계, (D)단계 – 이성에서 광기로의 전환 단계… 그리고 morale 부분의 V 표시는 작품이 보다 도덕성을 추구하는 성격이 강하다고 판단되는 경우에 한해서만 V표시를 했음을 밝혀 둔다.

    2. 희극적 이성

    상기의 (A)단계는 몰리에르에게 있어서 위대한 희극 창작 및 공연을 하기 전 단계로서 일종의 준비단계라고 명명할 수 있다. 사실 그는 1658년 오를레앙 공(公) 필립의 도움으로 파리로 상경하여 정착하였으며, 1659년 『우스꽝스러운 프레시외즈들』을 공연하여 파리의 관객들로부터 호평을 받음으로써 대성공을 거두었고, 이어서 승패를 거듭하다가 1662년 5막 희극 『아내들의 학교』를 공연하여 획기적인 바람을 불러일으켰다. 그러나 그의 혜성과 같은 등장에 기존 연극인들과 작가들은 반대 진영에 모여서 자신들의 미학적 기준과 판단으로 그의 연극과 미학적 가치를 준엄하게 비판하였다. 그러나 그는 이에 굴하지 않고 반종교개혁에 선봉이었던 성체회(Compagnie du Saint-Sacrement)의 행태를 풍자한 『타르튀프』를 무대에 올림으로써 한층 더 논란의 소용돌이에 휘말리게 되었다.

    이렇게 『우스꽝스러운 프레시외즈들』로부터 『타르튀프』의 공연금지에 이르기까지6), 몰리에르와 당대 사이의 관계의 역사는 폭로의 역사이며, 조화를 위한 점진적인 강화의 역사라고 할 수 있다. 몰리에르는 그런 과정인 (B)단계에서 희극의 목적을 확립했으며, 그 정당성을 주장하였다. 이 시기에 자신의 희극에 미학적 가치를 부여했으며, 관객들은 그의 희극을 보기 위해 서둘러서 팔레 루아얄(Palais Royal)로 밀려들었고, 그것을 관람하며 웃고 환호하였다. 그는 관객들을 즐겁게 하기 위하여 그들의 생각을 이해하고 교감하는 데 심혈을 기울였다. 그로 인해 그는 관객들이 선호하고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고, 관객들은 그에게서 희극예술의 진수를 만끽할 수 있었다. 즉, 극작가와 관객들 사이의 교감은 풍속에 대한 사실주의적 묘사를 즐겼던 것이며, 예술의 공리주의적인 목적을 두둔한 것이고, 결국 인간과 사회에 대한 낙관주의적 시각을 공유했다는 차원에서는 일치한다:

    희극의 근본적인 메커니즘은 관객들을 웃기는 것이고, 이러한 메커니즘은 극작가에게는 피할 수 없는 지상명령이었다. 몰리에르는 관객들의 기호와 완벽한 조화를 이루기 위해 시대의 모형에 맞추어 희극예술을 창작했다. 그의 희극은 세기의 보편적인 사상을 충실하게 반영하는 거울의 역할을 감당코자 하였다8). 이러한 희극공연에서 자아내는 웃음이란 극작가와 관객들의 은밀한 합의를 전제했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서로 동일한 가치와 동일한 언어를 공감했으며, 악덕과 미덕, 진실과 과오, 적합함과 부적합함, 선과 악 등에 대해 유사한 견해를 가지고 있었음이 틀림없다. 다시 말하자면, 존재와 사물에 대해 동일한 시각을 가지고 있었다는 뜻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몰리에르적 희극은 본질적으로 매우 사회적인 사건이다. 『우스꽝스러운 프레시외즈들』에서 카토스와 마들롱이 웃기게 하기 위해서는, 극작가가 그녀들을 바라본 것처럼, 관객들도 그녀들을 동일한 문화적 코드로 바라봐야 한다. 그렇게 해야 진정한 의미의 희극이 무엇인지 드러나는 법이다:

    몰리에르에게 있어서 희극이란 즉자 희극(la comédie en soi), 다시 말해 의식과 자유의 표출 장소이다. 이러한 그의 생각은 『아내들의 학교 비판』과 『희극 위선자에 대한 서평 la Lettre sur la comédie de l’Imposteur』에 잘 나타나 있다. 이 서평은 『타르튀프』의 공연금지를 정당화했던 국무총리 라무아뇽(Lamoignon)10)과 같은 적대자들의 논증을 반증하기 위해, 필경 몰리에르의 동의 또는 협조 하에 도노 드 비제(Donneau de Visé)에 의해서 작성된 것으로 보인다. 이 서평은 1667년에 작성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몰리에르의 희극 개념이 정립되는 1663년∼1664년 사이의 시기와도 밀접한 관계가 있다. 이 시기는 그의 희극이 세기의 악덕들에 과감하게 맞서서 그것들을 고칠 수 있기를 갈급했던 가장 도덕적인 (B)단계에 속한다11).

    이미 잘 알려져 있듯이, 리슐리외(Richelieu)와 루이 14세 시대가 이전 세기와 어떻게 단절되고 구별되려고 애썼는지 역사적으로 입증되어 있고, 문학적 측면만 보더라도 기호의 변화를 쉽게 읽을 수 있다. 만약 말레르브(Malherbe)가 당시 없었다면, 시를 개혁한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찬반의 불일치가 첨예화되었는데, 그것은 특이성과 관례추종주의의 불일치이며, 자유와 질서의 불일치이고, 이성에 대한 부정과 긍정의 불일치였기 때문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바라볼 때, 고전문학이 전반적인 차원에서 당대 정치 질서의 직접적인 확립에 직·간접적으로 동참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고, 따라서 당시 작가들은 최고 권력에 전적으로 병합될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판단된다. 왜냐하면 그들 대부분은 궁정에서 주는 연금으로 삶을 영위했기 때문이다.

    그러한 맥락으로 볼 때, 17세기의 문학적 경향 혹은 사상은 이전 시기의 문학에 대해서 어느 정도 전복적인 의미를 띨 수밖에 없다. 그래서 몰리에르 역시 그의 적대자들과 문학적 규칙에 대해 한 판 승부를 벌일 수 밖에 없었다. 물론 작가란 선대의 영향을 직·간접적으로 받게 되는데, 몰리에르도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12). 만약 그가 자신의 희극에서 인간들의 지혜와 광기를 말한다고 한다면, 그가 호소하는 것은 이전 세기의 가치나 시각이 아니라 당대의 가치나 시각에 호소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의 희극은 어떤 방법으로 이를 다루었을까? 그것은 다름 아닌 인간의 이성에 호소하는 길이었다. 그의 희극의 미학적 판단도 역시 이성에 근거하고 있고, 그의 희극적 대변인들도 모두 이 이성에 근거하여 제 논리를 피력하였던 것을 보아 알 수 있다.

    그런데 이성은 그 당시 어떤 의미로 사용되었을까? 17세기 말엽 퓌르티에르(Furtière)는 이 이성의 개념을 여러 의미로 분류 및 정리하였다. 본 연구에서는 몰리에르의 희극적 이성과 유사한 네 개념들 중에서 첫 번째 언급된 개념만 주목하였다13). 여기서 이성이란 존재와 사물의 이치를 찾고 다스리는 성품으로서 다가오고 일어나는, 혹은 다가와서 일어난 어떤 현상에 대해 진위를 가리고 보다 더 바람직한 방향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능력이다. 즉, 진위, 선악, 미추를 사유해서 바르게 판단하는 능력이며, 또한 무분별한 정념과 욕망이나, 행위를 제어하는 능력으로써 매우 인간다운 성품을 일컫는다.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이성이란 차가운 게 아니라 따뜻하고 인간적인 것이다.

    몰리에르의 대변인들은 완벽한 존재들은 아니지만 바람직한 판단의 냉철한 사고력을 통해 나름대로 인간다운 행동이 무엇인지 보여주려고 애썼다는 점에서 공통적이다. 이성을 올바르게 사용하면 인간다운 행동이 되지만, 잘못 사용하면 부정적이며 비생산적인 파괴력을 지닌 무기가 된다. 그런데 모든 인간이 다 이성적인 것이 아니다. 저마다 이성의 발현되는 능력에 따라서 보다 이성적인가 하면 보다 감정적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즉, 저마다 이성을 얼마나 함양하고 발전시키느냐에 따라서 고전주의자들이 추구했던 ‘교양인’으로서의 자질을 갖추었는지 판단할 수 있는 것이다. 여기서 교양인이란 완벽한 이성으로 인간과 사물에 대해 올바른 분별과 정확한 판단을 내리는 세기의 지성인을 일컫는다. 당시 고전주의자들은 이성에 일치하지 않는 모든 것은 사람의 마음을 불쾌하게 하고, 인간은 이성에 의해서 존재할 따름이며, 이성의 견고함만이 인간을 만족시킬 뿐 이라고 믿었다:

    그런데 16세기 인본주의자들이 인간과 세상, 특히 이성을 포함하여 일체를 광기로서 인식했다면, 반종교개혁자 몰리에르는 세상과 인간의 이성을 따르는 것을 거부하는 자들을 우스꽝스러움(le ridicule)속에 빠뜨리는 것으로 차이를 보였다. 비제-몰리에르는 『희극 위선자에 대한 서평』에서 그 점을 명확하게 설명하였다. 거기서 규범은 더 이상 신의 지혜가 아니라 세상의 지혜, 즉 인간과 인간에게 합당한 세상의 일상적인 예법이다. 초기 르네상스 시대의 인간에게 있어서 가치란 신에게서 자신의 존재의 이유와 정당성을 정당화를 찾는 절대적인 것이었다. 그래서 세상은 인간의 마음속에 현존하며 빛나는 초월성에 따라서 조직되며 인지되었다. 모든 현세의 지혜는 그것과 비교하면 하찮고 불가능한 것으로 보였다. 그러나 그와 반대로 반종교개혁의 인간에게 있어서 가치란 세상과 일상생활에 깊이 뿌리를 박은 것이었다. 이런 가치가 예전에는 세상 주장의 무가치한 부분을 비난했는데, 이때에는 오히려 이런 가치가 세상의 질서와 인간에게서 그 정당성을 탐색하게 된 것이다. 여기서 규범이란 세상의 일상적인 관습이고 유행이며 기회로서 모체에서 찾아낸 신념이다. 여하튼 르네상스의 인간이 신과 세상 사이에서 선택을 권고 받았으며 어떠한 타협도 양자 사이에 불가능했다면, 반종교개혁의 인간은 종교적이든 이교도적이든 간에 세상이나 신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모든 지혜와 모든 미덕의 원칙과 목적을 성취할 수 있었다:

    반종교개혁의 인간은 파레(Faret)나 메레(Méré)처럼 교양(l’honnêteté)의 개념을 즐거움을 주며, 감동시키고, 장소와 상황에 걸맞게, 그리고 가능한 한 부드럽게 화합하는 예술로서 정의하였다. 그러나 예법(les bienséances)과 완벽(la perfection)이 그것을 수용할 수 있는 선에서였다. 게다가 그것이 때론 서로의 편견이라 할지라도. 심지어 프랑스와 드 살(saint François de Sales)과 같은 독신자도 신앙심의 실천을 각인의 능력과 용무와 의무에 조화를 이루려고 애썼다. 프토(Petau)나 보니(Bauny)와 같은 예수회(la Société de Jésus) 회원도 아무도 실망시키지 않으려고 신의 계율을 마치 인간들의 약점들과 광기에 순응해야 하는 것처럼 부드럽게 강요했다16). 그래서 이러한 예수회 인사들과 결의론자들17)의 주장이 비타협적인 파스칼(Pascal)을 격분케 했고, 그로 하여금 형언할 수 없는 공포감을 불러일으켰다. 오직 자연스러운 이성만이 인간의 모든 행동에 있어서 빛이 되며, 이러한 신성한 도덕은 항상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을 염두에 두며, 이성을 원리로 삼았고, 본성의 탐욕과 열정을 정화할 목적으로 삼은 매우 인간적인 도덕이었다. 비제-몰리에르도 『희극 위선자에 대한 서평』에서 그런 도덕을 주장하고 있다:

    종교가 그들의 시각에서 ‘이성의 완성’일 때, 희극은 그들에게 즐거움을 주는 예술이며, 반종교개혁 정신을 납득시켜야 하는 예술이고, 어느 때보다 인간과 이성을 만물의 척도와 근원으로 만들어야 하는 예술이다. 이제 희극예술은 신에 근거하여 판단할 것이 아니라 인간과 인간에게 적합한 이성으로서 판단해야 한다. 비평가 브레(Bray)는 이것을 고전주의시대의 정신상태의 본질적인 특징들 가운데 하나로 간주했다19).

    몰리에르는 대중-관객들이 자신의 희극 감상을 통해 자아교정을 함으로써 이성의 발현과 성장에 도움을 받기를 바라며, 더 나아가 이성과 양식의 판단력을 갖추어 자신들의 삶을 주도적으로 영위해 나가기를 바랐다. 그의 연극에서 ‘희극적 이성’이란 인간과 사물의 시비를 분별하게 하는 일종의 ‘비평의식’이며 미학적 판단으로서, 궁극적으로 ‘사회·비평적 이성’이라고 부를 수 있다. 이것은 대중-관객들이 공연관람을 통해 작가의 의식과 일치해야 되는 것을 전제로 한다. 달리 말하자면, 관객들-비평가는 극작가(연출자)의 의식을 공유 및 사유하고, 나아가 그 공동의식을 공연관람이란 매개체를 통해 공유하게 된다는 것이다. 사실 인간의 정신내에서는 이성, 지성, 감성과 같은 의식작용이 일어난다. 이성은 의식작용의 한 부분이므로 이성과 의식을 별도로 분리해서 생각하는 것은 조금 곤란하다. 왜냐하면 어떠한 변화는 의식 안에서 이성이 관여하여 일어나기 때문이다. 즉, 이성이 자아를 형성하고 있는 모체라고 한다면, 의식은 자신의 자아에 의해서 결정되고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래서 몰리에르의 희극적 이성을 사회·비평적 이성으로 규정할 수있는 근거는 다음과 같다. 첫째, 몰리에르의 주된 문제의식과 관계된 우스꽝스러움(les ridicules)은 실체로서 뿐만 아니라 주체로서 파악되어야 한다. 둘째, 인간의 결함들을 주체로서 파악해야 한다는 것은 이성이 내면적 도덕률이나 인식의 원리에 그쳐서는 안 되고 궁정과 사회라는 구체적인 사회적 공간에서 구현되어야 한다는 것을 말한다. 셋째, 몰리에르의 변증법은 첫째와 둘째에 언급된 우스꽝스러움들, 즉 결함들을 타파하는 계기로 존재 그 자체, 자연스러움, 본성, 진실, 미덕, 또는 사회적 규범의 모눈을 파악하는 것으로 인간·사회 현실을 이성적으로 포착하기 위한 방법론이다. 또한 이러한 희극적 이성이 성립하기 위한 요건으로 “희극의 인정”, “희극적 도덕성의 정립”, “사회적 정의 및 질서 구현”을 전제하였다. 이러한 주장은 (B)단계의 여러 작품들과 특히 『희극 위선자에 대한 서평』에서 일목요연하게 묘사되어 있다.

    6)성체회 소속 독신자 도당들은 강력한 후원자인 안 도트리쉬(Anne d’Autriche) 왕비를 부추기어 1664년부터 『타르튀프』 공연을 금지토록 하였다. 그러나 루이 14세는 모후가 죽은 후 1666년 이 성체회를 공식적으로 해체해 버렸다.  7)Molière, La Critique de l’Ecole des femmes, scène Ⅴ, vv. 50∼56.  8)“Ce sont miroirs publics…” Molière : La Critique de l’Ecole des femmes, scène Ⅵ, v. 103.  9)OEuvres complètes de Molière, texte établi, présenté et annoté par Georges Couton, Paris, Gallimard/nrf, tome Ⅰ, 1971. p.886.  10)라무아뇽은 다음과 같이 비판하였다 : “[…] l ne convient pas à des comédiens d’instruire les hommes sur les matières de la morale chrétienne, […] ce n’est pas au théâtre à se mêler de prêcher l’Evangile.” Cf. Georges Mongredien, Recueil des textes et des documents du ⅩⅦe siècle relatifs à Molière. Paris, C.N.R.S, 2ème édition, tome 1, 1973, pp. 290∼292.  11)“Si l’emploi de la comédie est de corriger les vices des hommes, et je ne vois pas pour quelle raison il y aura des privilégiés.” OEuvres complètes de Molière, édition de Georges Couton, op. cit., tome Ⅰ, p.885.  12)“…il(Molière) a suibi l’influence non seulement de la comédie et de la satire classiques, d’Aristote, de Térence et de Plaute, d’Horace et de Lucien, mais aussi de Rabelais, auquel il doit par exemple l’essentiel de L’Ecole des Femmes et du Mariage forcé de Montaigne et de son doute salutaire, ennemi de pédantisme et de présomption; d’Erasme, don’t il a très certainement utilisé les Apophtegmes, les Adages, les Colloques et, naturellemnt, l’Eloge de la folie.” Gérard Defaux, Molière ou les métamorphoses du comique, op. cit., p.76.  13)“RAISON. f. f. Entendement, premiere puissance de l’âme qui discerne le bien du mal, le vray d’avec le faux. Entre les corps sublunaires il n’y a que l’homme qui soit doué de raison. La raison est souvent un guide trompeur. On appelle fous, ceux qui n’ont point de raison, ou de qui la raison est perdue & égarée. La droite raison, c’est la lumiere naturelle. Un enfant au dessous de sept ans ne peche point, parce qu’il n’a pas l’âge de raison. Il n’y a point de raison de s’amuser à luy. C’est un homme de bien, qui vit selon Dieu & raison. […].” Antoine Furtière, DICTIONAIRE UNIVERSEL, A LA HAYE, ET A ROTTERDAM, Chez ARNOUT & REINIER LEERS, 1690, Ⅲ TOMES.  14)Nicolas Boileau, L’Art poètique, chant premier, vv. 37∼38, Paris, Bordas, 1966, p. 47.  15)“Les Amants magnifiques”, Troisième intermède, in OEuvres complètes de Molière, op. cit., tome Ⅱ, 1971, p. 672.  16)Cf. Jean de La Fontaine, Epistre à M… de Niert, Paris, 1677.  17)결의론자란 양심 문제, 즉 도덕 문제를 이성과 기독교의 교리에 따라 해결하려는 신학자를 일컫는다.  18)OEuvres complètes de Molière, édition de de Georges Couton, op. cit., tome Ⅰ, 1971. p.1170.  19)Cf. René Bray, La Formation de la doctrine classique en France, Paris, Nizet, 1951. 그러나 드포는 이것을 다음과 같이 요약하였다 : “[…] dans l’ombre de Descartes et d’Aristote, cette promenade dogmatique, qui conduit de Chapelain et de Jules de la Mesnardière, l’un “chantre du rationalisme,” l’autre “grand prêtre de l’Aristotélisme,” de Nicole et de Boileau, de Cotin, d’Aubignac et de Saint-Evremond, de Molière lui-même, baptisé pour l’occasion “champion de la raison et du bon sens,” au positivisme et à l’esprit scientifique du Siècle des Lumières.” Gérars Defaux, Molière ou les métamorphoses du comique, op. cit., p.82.

    3. 희극의 전환점

    17세기 초반에 들어서, 신흥부르주아 귀족계급이 서서히 상류사회로 편성되면서, 그동안 궁정에서만 열렸던 살롱문화는 귀족들의 저택으로 옮겨졌다20). 당시 귀부인들은 정해진 날짜에 문화계 명사들을 자신들의 거실(salon)로 초대하여 식음료를 제공하면서, 주로 인간의 본성에 관계되는 사랑, 정념, 재능, 도덕, 명예와 야심에 관한 자유토론, 작품낭독과 비평을 일삼으며 사상을 고취시키고 언어를 향유했다. 이러한 문학적 동향은 1620년∼1648년 살롱문화의 대표적인 발원지인 랑부이예 관사에서 주로 이뤄졌으며, 이어서 1650년∼1680년 스퀴데리의 토요회를 중심으로 이뤄졌다. 이러한 흐름 가운데서 꽃을 피운 살롱문화는 도덕주의 문학의 근간이 되어 잠언이나 인물의 묘사(le portrait)와 같이 독특한 문학적 장르를 형성하였다. 특히 프랑스어를 명료하면서도, 귀족적 언어로 만드는 등 프랑스 고전문학의 기틀을 확립하는데 크게 기여하였다21).

    그러나 태양왕 루이 14세의 친정 시작이 고전주의로 넘어가는 문학사의 시점과 그 시작을 같이 하면서 사교계의 중심이 살롱에서 다시 궁정으로 옮겨갔고, 이에 따라 살롱 사교계 및 프레시오지테(la préciosité)는 문화의 주도권을 상실해 갔다. 특히 문학 살롱은 때론 그 도가 지나쳐 폐단이 생겨났다. 예를 들자면, 프레시외즈들(les précieuses)은 사실적 묘사가 아니라 지나친 기교와 꾸밈을 추구하고, 서민들과 스스로를 차별화하기에 일상생활에 관련된 것들을 상스럽다고 여겼으며, 오직 즐겁게 해주는 것만을 추구하려고 하였다. 그녀들은 한 걸음 더 나아가 문학의 도덕적 목적을 배제하기에 이르렀으며, 여기에 필요한 지식이나 교양은 사교계에서 대화를 통해 구하였고, 전문지식은 현학주의로 간주하여 배척하였다. 이에 몰리에르는 당시 겉멋만 들어 그러한 화려함을 추구하는 여성들의 지적 허영심과 자기 과시 욕구를 조롱하였다.

    그런 흐름을 직접 목격했던, 세기의 관찰자 몰리에르는 『우스꽝스러운 프레시외즈들』에서 그러한 행태 습성을 모방하는 시골출신 재녀들인 카토스와 마들롱, 그리고 귀족으로 가장한 하인 마스카리유(Mascarille)를 풍자하였다22). 그는 특히 도가 지나친 프레시외즈들의 허장성세를 신랄하게 풍자함으로써 당시 사회에 팽배했던 프레시오지테의 부정적인 측면을 조롱하였다23). 사실 이 풍자의 심연에는 가짜 프레시외즈들이나 가짜 귀족들의 결함을 담고 있는 게 아니라 그들의 행태를 통해 투영되는 진짜 프레시외즈들과 진짜 귀족들의 결함들이 담겨져 있다. 그런 까닭에 이 희극 공연은 진짜 프레시외들과 일부 진짜 귀족들의 격렬한 항의로 잠시 중단되는 해프닝도 벌어졌다. 사실 몰리에르는 당시 문단의 신출내기로서 자신의 온전한 비평의 목소리를 내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왜냐하면 기득권을 고수하려는 정치적·종교적·문학적 정적들이 도처에 널려 있었기 때문이었다. 몰리에르가 (B)단계에서 자주 사용했던 수식어 가짜(faux)는 자신의 작가적 입지의 불확실성을 염려한 자기방어기제로서 사용했던 일종의 의식적인 가면이었다24).

    이어서 그는 1661년 『남편들의 학교』에서 결혼문제를 다루었는데, 구체적으로 말하면 여성들의 교육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사회생활에서 훈육되도록 둘 것인가, 아니면 구습적 교양에 따르도록 할 것인가 등 혼전 여성들에 대한 교육과 처신에 대한 문제였다. 다시 말해 신구세대의 풍속 사이에서 선택과 포기의 우선권을 어디에 둘 것인가에 대한 선택적 갈등을 그린 것이다. 이에 몰리에르는 이성의 대변인 아리스트(Ariste)를 내세워 신중한 관례추종주의, 관습 존중, 중용을 부르짖으면서도, 젊은이들에게 ‘새로운 경향’의 자유를 허락해줄 것을 촉구했다. 반면 전통 고수주의 자들은 그런 경향을 리베르티나주(libertinage)25)라고 부르며 경계 및 타도의 대상으로 삼았다:

    몰리에르가 주장하는 가치들은 당대가 공유했던 가치였다. 왜냐하면 극작가와 관객들의 공모 아니 공감이 없이는 희극의 적합성이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물론 몰리에르는 이념의 대가가 아니다. 그는 대중-관객들의 기호에 따라 내용 또는 주제를 선택했고, 그가 속한 사회계층의 신념과 가치, 선호와 혐오를 본받았다. 그의 희극적 임무는 먼저 모든 우스꽝스러움(les ridicules)의 거부로 이뤄졌으며, 웃음의 언어를 통해 그의 대중-관객들이 이미 가지고 있는 판단을 해석하는 것이었다. 그렇다고 몰리에르가 당대의 규범과 희극의 적합성만을 따랐던 사상의 노예라는 것은 아니다27).

    몰리에르적 희극은 대중-관객들의 행태 습성을 모방하는 순간적인 시간예술이다. 이 예술은 희극배우들이 자신들 또는 타인들의 체험을 실제로 존재하는 것처럼 생생하게 모방하기 때문에 강력한 메시지를 전달하는 힘을 갖게 된다. 희극은 과거사를 공연한다 할지라도 ’현재’ 시간에서 진행되며, 관객들은 과거를 현재에서 체험하므로 그 어떤 예술보다도 강력한 매력을 지니고 있다. ‘Hic et nunc’ 하나의 생명체가 다른 생명체의 행태를 모방하여 말하고 행동하는 것처럼 직접적이고 감동적인 것은 없을것이다. 키케로(Cicéron)가 말하는 것처럼, “연극은 인생의 모사요, 관습의 거울이며, 진리의 반영이다.” 몰리에르도 자신의 연극이 대중의 거울이기를 바랐다:

    몰리에르가 주장하는 모방은 진실임직함(la vraisemblance)을 모방하는 것이다. 그는 희극이 있는 그대로의 인간의 결함들을 그럴듯하게 무대위로 옮겨놓는 전사 작업이기를 바랐다. 그의 희극은 추상적인 사유의 산물이 아니라 인간의 구체적인 실제 활동, 즉 일상생활의 산물인 것이다. 이 작업은 대중-관객들의 몇몇 결함들을 소재로 삼아서 묘사하는 것이다. 이 결함들은 이성의 결여인 우스꽝스러움들로서 인간 행동의 습성을 뜻한다. 이것은 당대의 사회적 규범이나 질서와 부합되지 않는 인간의 행태를 희극의 소재들로 선택해서 극화한 것이다. 여기서 소재의 선택이란 기계적인 선택이 아니라 예술적 창조력을 통해 그 선택에 상상력을 불어넣어 그것을 현실로 재현하는 것이다. 즉, 이런 선택은 ‘극작가로서의 예술’과 ‘기교로서의 예술’이 융합되어 무대공간에서 멋지게 펼쳐진다.

    여하튼 문단의 풋내기 몰리에르는 부상하는 새로운 시대의 새로운 질서에 부응하면서 가면(le masque)이라는 자기방어기제를 활용하여 정적들의 비난의 눈초리를 다른 곳으로 유도코자 하였다. 그는 『우스꽝스러운 프레씨외즈들』, 『남편들의 학교』, 『훼방꾼들』, 『아내들의 학교』, 『아내들의 학교 비판』, 『베르사유의 즉흥극』, 『타르튀프』에 이르기까지 자신의 희극의 목적과 정당성을 조심스럽게 피력하면서 자신의 사상을 정립해 나갔다. 그러나 그는 『아내들의 학교』의 공연으로 도덕성을 의심받았고, 『타르튀프』의 공연으로 무신론자 및 불경건한 자로 취급당하면서 공연금지를 당하는 수모를 겪었다. 그때까지는 여전히 앙시엥 레짐(Ancien Régime) 하의 반봉건적 요소들과 기존의 가치들이 산재해 있어서 여명을 드러낸 근대적 사상과 문화의 가치가 곳곳에서 충돌하는 양상이었고, 따라서 이러한 시점의 중심에 있었던 신출내기 희극작가가 자신을 비판하는 독신자 도당(la cabale des dévots)29)과 기존작가들을 감당하기란 매우 힘든 일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몰리에르는 루이 14세의 후원을 이끌어냄으로써 자신의 작가적 입지를 보다 견고히 할 초석을 마련하였다. 당시 루이 14세는 친정을 시작하면서 자신의 왕권을 보다 굳건히 확립하기 위해 섭정의 잔여세력을 제거해야 할 필요성을 자각했고, 이전에 마음껏 누렸던 막강한 권력을 회복하려고 꿈꾸는 구귀족 세력과 일부 가톨릭 세력을 통제할 필요성에 직면했기 때문에, 몰리에르와 같은 신진 문화세력에 힘을 실어주면서 자신의 왕권을 미화 및 공고화하는 작업에 직·간접적으로 동참을 유도하였다. 이러한 유대는 주종관계를 넘어서 상호협력의 필요성과 당위성에 근거하였다.

    그리하여 극작가 몰리에르는 의사 표현을 보다 구체화하면서, 루이 14세의 왕권 확립에 직접적으로 기여하게 되었다30). 이런 맥락에서, 극작가의 대변인들은 이성과 규범의 이름으로 우스꽝스러운 대중-관객들의 행태 습성을 고발하면서 새로운 사회질서를 확립코자 부르짖었다. 특히 (B)단계에 속하는 몰리에르적 이성의 사도들인 아리스트(Ariste)와 크리살드(Chrysalde)는 희극적 도덕성의 파워를 신뢰하였으며, 위라니(Uranie)와 도랑트(Dorante)는 희극적 지혜를 옹호했고, 클레앙트(Cléante)는 세기의 가치를 잘 대변해 주었다. 이들은 (B)단계의 희극들에서 사회·비평적 이성의 역할을 감당했던 대변자들로서 극작가에 의해 제안된 극적 규범과 일치되면서 필연적으로 진리와 진실과 정의와 선의 편에 서서 올바른 이성과 정확한 척도와 중용을 요청하며 유토피아 사회를 구현코자 애썼다. 이러한 극작가의 도덕적 지향성은 『아내들의 학교 비판』에서 브레쿠르(Brécourt)를 입을 빌어 보다 분명하게 제시되었다31). 이렇게 몰리에르는 희극이 도덕적인 역량과 보편성을 얻을 수 있기를 원하였으며, 그의 희극의 의무가 인간의 악덕을 웃음을 통해 고치는 데 있다고 주장하기에 이르렀다:

    이리하여 희극은 웃음을 통해 인간의 결함을 고친다(castigat ridendo mores)는 윤리적 행위의 목적으로 사회의 안녕에 기여하는 공리주의적 예술임을 전제하였다. 여기서 몰리에르의 사회·비평적 이성은 인간의 모든 행태 습성의 시비를 진단 및 판단하는 척도로 사회근간을 형성하는 에토스(ethos)의 역할을 하게 되었다. 이것은 개인 및 사회집단, 사회계급에 속하는 구성원의 행태 습성에 대한 주관적인 동기나 내적인 척도로 작용되는 도덕적 규범 혹은 도덕적 이상을 말한다. 이는 옛 가치를 가늠해 보는 사회·비평적 이성의 판단의 잣대로서 사회 변화를 이끄는 행위에서 지속되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몰리에르의 희극은 과거사를 취급하는 역사가 아니라 현재 상태의 당위성을 묘사하는 예술로서 인간들의 타락한 본성을 고쳐야 된다는 ‘인간 의지’를 내포하고 있다. 그래서 그는 그의 희극의 목적을 다음과 같이 공표했다:

    여기서 몰리에르는 당위성을 이룩하려고 노력하는 미학적 의지를 피력하면서 자신의 희극의 본질적인 목표가 도덕적 교화임을 말하고 있으나, 동시에 자신의 희극에 가장 위협적인 것이 바로 루이 14세의 집정에도 가장 위협적이라는 것 또한 은연중에 부각시키고 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왕정이 확립되는 과정에서 절대왕권에 도전하는 구 귀족세력들과 시대착오적인 세계관에 빠져 구식의 가치들을 고수하려는 수구세력들과 중세적 종교관에 근거하여 기득권을 빼앗기지 않으려는 정치적 성향의 가톨릭교 세력들이었다. 태양왕 루이 14세는 새로운 왕권의 안정과 권력의 집중화를 위하여 정치와 종교는 물론 문예에 이르기까지 새로운 신념과 가치를 추구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왕권의 안정에 위협적인 존재이며 그 걸림돌로 작용했던 종교인들은 가공할만한 세력집단이기에 그의 의도가 쉽게 수용되지 않았다. 이 집단은 당시 전통적인 가톨릭 교육을 통해 민중의 의식을 지배하고 민중의 일상생활을 철저하게 통제하고자 꾀했는데, 이런 집단세력의 일탈은 근대문명과 문화의 태동에 걸맞지 않는 시대착오적인 야망에서 비롯된 것이었다고 볼 수 있다. 이 세력 가운데 가장 두드러진 집단이 1630년 보로도(Bordeaux)에서 앙리 드 레비스(Henri de Levis)에 의해 창설된 성체회(Compagnie du Saint-Sacrement)였다34). 이 집단은 특히 신성 모독자들, 결투 애호자들, 리베르탱들, 가톨릭 사순절(le carême)을 믿지 않는 푸줏간 상인들과 선술집 주인들에 대해 집요하게 비판했으며, 게다가 담배 풍습, 행상인들의 노래들, 가슴과 어깨를 드러낸 치장에 대해서도 준엄하게 꾸짖었다.

    이러한 극보수주의적 경향을 띤 성체회는 몰리에르의 『타르튀프』를 집중적으로 공격하면서 세간에 널리 알려졌다. 사실 몰리에르는 가짜 종교적 미덕을 덧입고 정신 약한 사람들을 이용하는 타르튀프라는 중심인물을 통해 가짜 독신자들과 종교적 위선을 고발하는 것을 목적으로 삼았다. 그래서 그의 이성의 대변자 클레앙트는 자칭 구 귀족출신이라고 자칭하며 독신자인 체하는 사악하며 파렴치한 타르튀프들을 만천하에 고발하였다. 그는 사회·비평적 이성의 이름으로 진짜 독신자와 가짜 독신자의 엄격한 구별을 부르짖으며, 한 인간의 존재와 외관, 진실과 거짓, 본질과 형상 사이의 큰 간격이 있음을 알렸으며, 결국 타르튀프의 가면을 완전히 벗김으로써 대중-관객들에게 웃음을 자아내며 공중보건의 의무를 완성하였다. 희극 미학은 권력과 은밀한 합의 하에 정의와 사회적 질서의 승리로 이끌었다. 클레옹트(Cléonte)와 도린느(Dorine)의 웃음은 오르공(Orgon)과 페르넬 부인(Mme Pernelle)의 광기에 대한 당연한 벌로 이뤄졌고, 타르튀프(Tartuffe)의 좌절은 잠정적으로 위협 받았던 가정이 회복되면서 기쁨으로 종결됐다. 이렇게 몰리에르는 자신의 희극의 우월성을 증명하며, 영혼 깊숙이 도달하려는 희극의 판단의 권리를 재확인하였다. 아울러 그는 희극 미학에 의한 인간성 회복과 새로운 질서 확립을 도모하였다.

    그런데 『타르튀프』를 세밀하게 들여다보면, 몰리에르가 가짜 독신자들을 비판하는 것을 넘어서 사회를 제멋대로 재단하려는 진짜 독신자들의 과도를 고발했다는 것을 간파할 수 있다. 덧붙여 말하면, 오르공의 가정에서 기식하며 신앙의 지도자로써 숭배를 받던 파렴치범 타르튀프야말로 성체회 소속의 진짜 독신자 도당의 일원이었으며, 여전히 왕국 전역에 산재해 있던 그 잔당들 가운데 하나일 뿐이었다. 당시 루이 14세가 극작가 몰리에르를 쾌히 후원해준 것은 경계의 대상이요 타도의 대상인 그런 공동의 적들을 물리쳐야 하는 필연성, 즉 상호 이해관계의 맞물림에 따른 것이었다.

    여하튼 『타르튀프』의 해피엔딩은 희극 미학의 승리이자 이성의 승리였다. 가장인 오르공의 맹목적인 영적 눈멂으로 희생될 뻔했던 세계는 국왕-구원자의 중재로서 회복되었다. 여기서 국왕의 역할은 대중-관객들에게 사회 정의를 보여주는 것이고, 맹목적 영성에서 깨어난 오르공의 역할은 그들에게 심적인 위로와 평화를 주는 것이었다. 이러한 종결은 이성과 자연의 쾌승이며, 이로써 인간 본성의 타락을 극복하는 질서의 승리가 복원되었다. 이러한 관점에서 희극적 규범은 악의 세계를 철저히 응징함으로써 타르튀프들의 세계가 사상누각임을 부각시키는 일이다. 그러나 국가적 정의와 사회적 규범을 위해서 세기의 타르튀프들이 징계를 받은 것은 단지 희극의 미학적 측면에서일 뿐이다.

    몰리에르는 『타르튀프』의 공연을 통해 자신의 정당성을 완전히 확보하지는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그는 진짜 타락자이며 진짜 풍습의 파괴자이고 성적·도덕적 방종이 무엇인지 확실하게 보여주고자 1665년 『동 주앙』을 공연하였다. 그러자 그는 정적들로부터 타락한 리베르탱(libertin)이며 풍습의 파괴자로 취급받는 동시에 무신론자라고까지 낙인찍히게 되었는데, 이로 인해 『동 주앙』의 공연금지는 물론 그의 예술인생에 최대의 위기를 맞이하게 되었다35). 그의 동 주앙은 자유와 의무를 잘못 이해하고 만용을 앞세워 자신의 방종한 생활을 정당화하는 방편으로 리베르티나주를 남용하는 것 같다. 당시 긍정적인 의미의 리베르티나주는 16세기 르네상스의 인본주의 맥을 이어 17세기 전반에 세 가지 모터(moteur)인 ‘개인의 자유’, ‘표현의 자유’ ‘사상의 자유’에 대한 생기를 불어넣어 이성의 세기이며 철학의 세기인 18세기로의 지적 전통을 이어주는 교차로에서 놓여 있던 사상적 경향이다. 몰리에르는 동 주앙과 같은 인물이 진짜 타락하고 거짓과 위선을 물 마시듯이 하는 리베르탱의 전형임을 보여주고자 하였다. 그러나 그는 오히려 독신자 도당으로부터 희극의 정당성뿐만 아니라 도덕성과 신앙심조차도 의심받는 처지에 몰렸다:

    사실 몰리에르는 육욕에 사로잡혀 본능적인 삶만을 추구하는 동 주앙의 정신을 부정적으로 인식했으며 배척의 대상으로 전제했다. 그의 인생을 오직 즉자적인 삶의 추구로서 인류에게 해악을 끼치는 모순덩어리이며 부조리 그 자체로 인식한 것이었다. 몰리에르는 동 주앙의 감각세계가 모든 방종과 모든 광기에 결합된 물질주의 세계로서 오직 감각에 의해서만 감동될 뿐이기에 어떠한 이성도 지성도 종교도 그를 감동이나 감화시킬수는 없고, 사랑하는 대상의 정복을 유일한 목적으로 삼으며 타인의 희생을 대가로 쾌락만을 추구하는 짐승 같은 존재로 그를 바라보았다. 이러한 극작가의 시작으로 보면 결국 동 주앙이 사회적 규범으로 접근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그의 비인간적인 욕망과의 단절이고, 이것이 곧 도덕적 의식의 완성으로 통할 수도 있는 것이다. 극작가가 그리는 동 주앙의 본성은 욕망의 존재와 도덕적 의식으로 내부에 감춰진 생성과 존재 사이의 갈등과 일체가 되지 못한다. 다시 말해 그는 자기 본능에 대해서 절제하지 못하며 내적 조화를 모색하지도 못하는 것이다. 따라서 그는 도덕적인 현실의 거부나 우회로 욕구를 분출하여 나타나며, 인간 집단을 위협하는 공격적인 성향을 외부로 방향 전환하는 것으로 자족한다. 그래서 대중-관객들은 사회가 고민하는 그의 사악한 행태 습성에 대해 분노하는 것이다. 몰리에르는 동 주앙을 통해 제한 없는 자유의 위험성을 경고하며, 세상 질서에 우선권을 부여함으로써 사회질서의 존중에 동의하고 있다.

    몰리에르의 동 주앙은 모든 인간적 가치를 뒤집을 수 있는 인물이며, 우선권을 욕구 충족에 부여하는 타락한 리베르티나주의 논리에 근거하여 인류의 보편적인 가치들을 제멋대로 해석하고 제 욕구에 맞추어 실행하면서 악용하고 있는 존재이다. 보편적인 인간이 질서와 조화를 추구한다면, 동 주앙은 언제나 균형과 단절된 삶을 추구한다. 그에게 종교란 약한 존재들이나 믿는 것이다. 종교의 수호자 스갸나렐의 시각에, 동 주앙은 완전히 무감각하고 위선적이며 타락한 존재이다. 하인은 윤리신학의 본질적인 믿음들 중에서 하나에 충실한 그의 소박한 도덕에도 불구하고 신의 존재에 관해 절대적인 확신을 필요로 한다. 그는 동 주앙을 사회적·도덕적·종교적 규범의 존중과 가톨릭교로 개종시키려고 하지만 불가능하다. 이점에 있어서, 몰리에르는 당시 민중의 보통 수준으로서의 스갸나렐을 제시했으며, 위험으로서의 도에 지나친 풍속의 자유사상을 문제 삼았다. 또한 그는 진짜 위선자의 입을 빌어 종교의 이름으로 존엄한 의상을 입고 권세를 남용하는 독신자 도당들을 비난했다37).

    동 주앙은 독신자 도당들이 행한 것처럼 처신하고, 그들의 말하는 언어를 사용하며, 그들이 극작가에 대해서 사용했던 것과 같은 책략으로 극작가의 적대자들을 비난했다. 이렇게 몰리에르는 동 주앙을 진짜인 척하는 독신자로 간주함으로써, 그를 통해 진실을 교묘히 거짓으로 가리는 위선으로 가득한 세력집단보다 빤히 거짓인 게 드러나는 거짓(가면)을 연기하는 희극배우가 세기의 교양인에 더 합당하다고 주장했다. 극작가의 시각에도, 동 주앙은 완전히 위선적인 도덕가의 전형이다38):

    동 주앙은 극 말미에 신에 대해 헛된 도전에 나선다. 왜냐하면 도덕과 종교는 그의 완전한 자유의지와 삶의 쾌락에 장애물로 작동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극작가는 동 주앙을 리베르탱의 오만의 대표자로 제시했다. 그런데 동 주앙에게도 신이 존재할까? 그렇다고 주장할 수도 있다40). 만약 동 주앙이 존재하고 신이 존재하는 한, 그들 사이의 영원한 투쟁은 끝나지 않았다. 극작가는 그 점을 통해 신의 섭리를 밝히고자 하였다. 따라서 대중-관객들은 빈약하지만 희극의 대변자 스갸나렐의 곁에서 인류를 향한 도덕과, 훌륭한 인품을 지닌 동 카르로스와 동 루이, 정숙한 여인의 대표자 동 엘비르의 곁에서 희극적 이성의 승리를 맛볼 수도 있다. 비록 스갸나렐보다 이 등장인물들이 더 훌륭하다 손치더라도, 본 연구는 스갸나렐이 나름대로 의식이 있고 종교에 대해서 조심성을 지녔다고 본다.동 주앙과 스갸나렐은 작품 내내 진실과 거짓, 정의와 부정의, 질서와 무질서, 규범과 상궤를 벗어남, 삶과 죽음 사이에서 끊임없이 대립되었다. 결국 동 주앙은 죽음으로 최후를 맞이하고, 스갸나렐은 생명의 보존으로 살아 남는다. 동 주앙은 도덕적·사회적·종교적 전통주의의 원리에 대항한 리베르티나주를 변론했던 반면, 스갸나렐은 가톨릭의 정통주의를 옹호 및 변론하였다. 극작가의 결론은 왕국 차원에서 단순한 리베르탱의 위험성보다 교활한 타르튀프가 더 위험스런 존재임을 부각시켰으며, 동 주앙의 변질된 에피큐리즘의 실천과 이지주의의 모든 과도함이 결국 그 자신을 파멸로 이끈다는 결론을 내렸다.

    이렇게 몰리에르는 신실한 독신자들 곁에서 자신의 참된 믿음을 변론하면서, 자신의 희극의 정당성을 확보하고자 심혈을 기울였다. 그러나 그의 희극 예술이 다다른 곳은 막다른 종착역으로 보인다. 그의 연극에서 웃음은 (B)단계에서는 본질적으로 이성과 도덕적 건강의 표현이었으며, 당당한 정의와 선의 무기였다. 그 기능은 인간적인 악습들의 광기를 고발하는 것으로서, 인간들로 하여금 일시적인 비정상성(즉, 생각이나 행동이 양식에서 벗어남)을 스스로 고치도록 유도하기 위해서 무대 위에 모든 진실임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어 놓는 것이었다. 결국 인간과 사회에 대한 낙관적인 시각을 전제로 하는 희극의 도덕관념은 몰리에르를 예술적 우월감에 사로잡히게 했으며, 지혜와 규범을 만들어내는 심판자이며 비평가이고 훈육자로 만들었다.

    그러나 그러한 도덕적인 추구는 1666년 『인간혐오자』와 더불어 자취를 감추었다. 이제 더 이상 웃을 때가 아니다. 알세스트(Alceste)는 자신의 무죄를 변론하기 위해 소송을 진행하지만 결국 패소하게 된다. 이것은 그동안의 극작가의 비관적이고 사실적인 경험을 대변하는 사건이며, 이 객관적인 사실은 도덕적 희극의 실패이며 결말로서 웃음과 선의 결별이라고 볼 수 있다. 몰리에르는 알세스트처럼 인간의 타락한 본성을 고쳐서 교양과 중용과 진리의 덕목을 갖춘 교양인들과 진실한 사람들로 구성된 유토피아적 사회창조를 주장한데 반해, 필랭트(Philinte)는 그렇게 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며 미친 짓이라고 강변했다. 르네상스의 인본주의자들은 절대자의 지혜의 기준으로 세상을 바라보았기 때문에 세상의 질서는 광기 그 자체였다. 여기서 인간이 광인(狂人)인 까닭은 타락한 본성으로 원죄의 상태로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몰리에르는 당대의 고전작가들처럼 (C)단계에 이르기까지 인간은 광인이 아니라 이성적인 존재로서 인지함에 따라서 인간의 타락한 본성을 고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는 희극이 그러한 가능성이 있을 때, 비로소 예술의 진정한 목적에 도달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런데 만약 인간이 자신의 결함이나 악덕, 즉 광기로부터 치유될 수 없다고 가정한다면, 몰리에르적 희극예술은 인간의 이성의 무능력을 스스로 자인하는 꼴이다. 따라서 인간은 인간적인 노력에도 불구하고 존재 이유를 상실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몰리에르는 소리친다:

    몰리에르는 특히 (B)단계에서 인간의 타락한 본성, 즉 결함이 치유될 수 있다고 믿었다42). 그런데 도대체 결함이란 무엇인가? 그는 이것을 le défaut, le vice, le travers, l’extravagance 등으로 표현했는데, 요약하자면 비정상(la difformité)으로 규정할 수 있다43). 사람은 몸이 아프면 의사를 찾는다. 그 이유는 어디가 문제인지 몰라서 찾아가는 것이다. 이 때 의사가 해줄 수 있는 것은 무슨 병이 있는지 진단하고, 관련치료를 해주는 일이다. 몰리에르는 자신의 희극도 그런 치료를 해주기를 갈급하게 원했다. 즉, 대중-관객들이 그의 희극들을 관람한 후 등장인물(들)을 통해 자신들에게 무슨 결함이 있는지 자가진단 해본 뒤 고치라는 것이다. 그런데 몰리에르-알세스트는 어떤 방식으로도 치유될 수 없는 인간들은 “고약하고 악의적이며”, “사악하고 퇴폐적”44)이라고 외친다. 왜냐하면 그들은 인간들에게서 부정과 불의와 악의와 거짓말과 위선만을 발견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몰리에르-알세스트는 인간들을 혐오한다:

    몰리에르의 희극 세계에서 인간들은 전부 실수투성이의 존재들이다. 이는 존재론적 측면에서 모두가 유죄라는 뜻이다. 다시 말하자면, 모든 사람은 다소간 책망을 받아 마땅하며, 그 유죄성은 정도에 따라 다를 뿐이다. 극작가는 그러한 현실에서 자신의 희극이 일종의 사회적 소우주로서 풍자적·사실적인 화풍임을 강조하였다. 그런데 브레(Bray)에 따르자면, 몰리에르의 희극은 “현실의 세계가 아니다… 그것은 제 원리를 따르는 시학적인 기교”46)일뿐이며, “몰리에르가 희극 시인의 눈으로 인간적인 현실을 바라보았다”47)라고 비평한다. 만약 희극이 어떤 세계관에 머문다고 가정한다면, 이 세계는 브레가 주장하는 것처럼 단순히 상상적인 것이 아니라 사실적이며 관찰할 수 있는 것이다. 비평가 드포(Defaux)는 그의 견해와 상반되게 주장한다:

    드포는 오히려 몰리에르가 실제로 “사회를 무대 위에 문자 그대로” 옮겨놓았다고 주장한다. 이것은 몰리에르가 (B)단계에서 궁정의 요청에 따를 수밖에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자기 세기와 연관된 극작가의 실제 관계를 보여 준다고 할 수 있다. 그의 희극의 목적은 실제적으론 악덕과 결함의 세계를 거부하는 데 있으며, 무엇보다도 뒤틀려진 진실의 세계를 밝히 드러내는데 있다. 그는 자신의 극 우주에 대립된 두 세계의 공존을 허용함으로써, 그의 등장인물들은 선과 악, 질서와 무질서, 진실과 거짓, 자연과 반(反)자연, 자유와 억압 등 상반된 두 개념 사이에서 끊임없이 갈등한다. 사랑스런 젊은이들과 품위 있는 교양인들은 악덕과 무질서와 거짓과 반자연과 억압에 직면하여 선과 질서와 진실과 자연과 자유를 부르짖으며 도덕적·사회적 규범을 따르고자 한다. 이들은 자신들의 진실을 인정받기 위해 진정성과 격에 맞는 자연스러움의 윤리에 호소한다. 그렇지만 아녜스(Agnès), 엘미르(Elmire), 알멘느(Alcmène), 앙젤리크(Angélique)는 그녀들의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하여 간특한 짓(la fourbe)을 할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그녀들이 처한 불행한 상황은 억압으로 강요된 관계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필랭트는 『인간 혐오자』에서 영원히 화합할 수 없는 두 대립 사이에 극적 합의를 도모하기 위해서 “일종의 역교정쇄를 통하여 사회생활이란 기만과 속임수가 없이는, 그리고 자존심을 건드리지 않는 기술이 없이는 불가능하다”49)고 주장한다. 요컨대 몰리에르에 의해 제기된 도덕적·사회적 문제는 인간들 사이에 불일치에서 유래된다. 달리 말하자면, 이는 수구주의자들과 진보주의자들, 기존질서와 자유의 추구, 이성의 부정과 긍정 사이의 불일치를 의미한다. 그러나 아리스토텔레스학파의 인본주의로부터 탄생한 몰리에르-필랭트는 있는 그대로의 세상과 인간조건을 수용할 채비가 되어 있다:

    아르나봉(Arnavon)에 따르면, 몰리에르는 감정적·도덕적·미학적 문제들을 취급할 때에, 그는 “실존의 물질적인 조건들에 대해서 정신의 완전한 평온”51)을 목표로 삼았다. 그런데 그러한 심적 평온을 가지기 위해서, 그의 희극은 당대인들의 모든 악덕과 모든 과오를 심판하는데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희극의 이성은 거기서 모든 미학적 판단을 내리는 데 가장 효과적인 역할자인 것이다. 이것은 이지력, 즉 이성과 지혜로서 판단하는 힘이며 정신에 의해서 그 정당성을 확보한다. 인간은 그러한 기능을 통해서 미학적인 측면에서 진실 또는 미를 지각하거나 느낄 수가 있다. 이렇게 이성은 이러저러한 판단에 대한 모든 규칙의 원천이다. 몰리에르는 몽테뉴와 가상디(Gassendi)의 자연철학을 수용했음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이성의 능력을 더 신뢰했으며, 인간과 사회의 개선 가능성에 무게를 두었다:

    몰리에르는 이성을 진위, 선악을 올바르게 분별하여 바르게 판단하는 능력으로 인식하였다. 이것은 합리적인 사고능력을 의미한다. 인간은 이러한 이성을 통해서 보고 들은 것만으로 대상을 인식하지 않고, 의문과 사고를 하며 대상을 객관적으로 인식하려고 애쓴다. 그럼으로써 인간은 대상의 종속으로부터 벗어나게 되며 자율성을 가지게 된다. 그런데 그의 희극세계에서 악은 패배와 소멸로서 이미 전제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이성이 진리와 정의와 선의 이름으로 모든 문제를 언제나 해결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이성은 몰리에르적 희극세계에서 이상적인 질서를 바로 세우려고 끊임없이 노력한다. 그의 희극세계는 뒤틀려진 인간과 현실에 대해 묵인하지 않음으로써 이를 조금이라도 바로잡아 나가려는 인간적인 의지에 대한 표출이다. 몰리에르는 자신의 안락한 삶에 안주하기보다 인간과 사회의 모순과 부조리에 분노하고 뭔가 개선을 위해 노력했던 모럴리스트였다. 그렇기에 그는 뭔가 가치 있는 결실을 맺으려면 이성과 합리성의 안내를 받아야 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그는 인간과 사회에 대한 관찰자이며 분석가이고 비평가로서 등장인물들을 통해 올바른 도덕적·사회적 규범과 윤리를 제시하려고 애썼다. 그는 이해관계에 구애됨이 없이 동시대인들의 삶을 관찰하고, 그들과 자신의 마음을 탐색하였다. 그는 실제로 섬세하고 예민한 비평정신을 가지고 인간생활의 실상을 관찰하며, 인간들의 성격들을 꿰뚫어보고 결점들을 파고들며, 희극을 통해 그 어리석음들을 풍자하고 조소하였다. 그는 라 로슈푸코와 라 브뤼예르처럼 비평정신을 유감없이 발휘한 모럴리스트 작가였다. 그에게 이성이란 인간과 사회를 평가하는 판단의 도구이며 보편적인 규범이었다. 그는 희극의 존재를 정당화하기 위해서 특히 이성의 능력을 주장했는데, 이것은 진실과 정의와 선을 보호하기 위한 가장 강력하고 효과적인 무기였다.

    그러한 이성은 몰리에르의 작품들에서 정신의 전후가 어긋남을 흔쾌히 비난하며, 게다가 우스꽝스러운 열정을 고치려고까지 든다. 이렇게 이성은 그의 연극을 지배하는 인간의 소중한 가치이며, 선악과 진위를 식별하는 데카르트적인 양식과 정확한 척도와 바른 판단의 기준이다. 이에 대해 『희극 위선자에 대한 서평』를 쓴 비제는 이성에 따른 미학적인 판단을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여기서 의미하는 판단은 일종의 관계미학으로서 극작가와 대중-관객들, 또는 희극과 다수의 영역이 화합해 전체를 이루는 것이다. 이러한 희극적 판단은 도구주의 이성 체제로서 예술의 목적이 ‘수단-목적’전략의 원리에 따라서 작동하는 것이다. 이러한 미학은 자유주의 합의적 의견수렴의 핵심가치를 반영한다고 하겠다. 몰리에르는 인간과 사회를 개선하려는 미학적 판단을 통해 예술적 합의를 이끌어내고자 하였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는 그의 희극이 사회적 질서에 통합되고 조정될 수 있다고 보았다. 설령 인간이 자신의 고유한 판단과 자신의 고유한 진리의 노예라고 할지라도, 이성이란 우리의 과오나 실수를 밝혀 줄 수 있는 가장 확실하고 유일한 무기이다. 데스포트(Desports)의 견해를 주목해 보자:

    인간의 판단은 필연적으로 자신의 본성에 나름대로 협력하기 마련이다. 이제 몰리에르의 희극에서 이성의 노력은 더 이상 지혜의 표적들이 아니다. 이것들은 제 탐구들 중에서 하나를 이용하여 다른 것들과 비교될 수 있는 수단일 따름이다55). 여기에서 이성은 개인을 위하며, 비평과 자유의 원리를 위한 일종의 희망의 빛일 뿐이다. 우리는 드포가 몰리에르의 희극의 토대로서 이성의 능력을 다소 과신했다고 본다:

    물론 몰리에르의 희극 세계가 대부분 이성에 기초하고 있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는 없다. 그렇지만 그가 이성을 조롱했다는 것도 간과해서는 안된다. 그는 『강제 결혼』 4장에서 “인간의 극도의 불안에 정확하게 대답하지”57) 못하는 아리스토텔레스 학자들의 무능력을 지적했었다. 그의 희극에서 무질서가 대두될 때마다, 이성은 나쁜 열정의 요구들을 제한시키고 뒤틀어진 본능을 조정하기 위해서 개입한다. 그래서 아르나봉은 “몰리에르의 도덕이 순수한 지성에 속할 것이다”58)고 말한다. 실상 그의 희극이 인간의 이성과 현실의 대립이 없이는, 또는 우리의 삶을 정화·개혁하는 것과 그러한 이성의 무능력이 없이는 존재할 수 없다. 드포는 그 점을 간과했던 것으로 보이는 반면, 페르낭데(R. Fernandez)는 그것을 잘 이해하고 있다:

    인간이면 누구나 이성이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기를 바란다. 그러나 인류가 지금까지 자연의 이법(Nature)에 관한 모든 규칙을 밝히려고 애썼음에도 불구하고, 모든 문제를 해결한 것은 아니다. 그런 연유에서 몰리에르는 (C)단계부터 모든 악, 모든 모순, 모든 전제적인 규약, 모든 독단, 거짓말, 위선 등을 추방하려고 애써 봐야 헛된 것임을 자각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는 희극이 인간과 세상을 개선할 수 없다는 것을 납득함으로써 이성을 통한 인간의 실현을 더 이상 믿지 않았던 것 같다:

    이렇게 그의 희극의 지향성은 (C)단계 무렵부터 막다른 골목에 도달한 것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그의 도덕적 지향성이 『인간혐오자』와 더불어서 퇴색해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이제 그의 희극은 이성의 대변인 필랭트 방식으로 인간의 타락한 본성에도 불구하고 존재하는 그대로의 인간을 수용할 것을 촉구하기에 이른다. 아마도 그는 예술을 통해 인간과 세상을 고치려는 훈육적인 사명을 포기한 것으로 보이며, 인간과 세상을 개혁한다는 것이 한낱 환상임을 깨달음으로써 다소 염세적일 수 있는 결론에 도달한 것으로 보인다. 그렇게 그는 이상과 현실 사이에는 큰 괴리가 존재하고 있으며, 인간의 가면은 그 자신의 본성의 구조임을 깨닫게 된 것이다:

    대중-관객들은 희극을 관람하면서 자신들의 본성의 실체를 자각할 때, 자신들의 주체성을 깨닫게 되는데, 이처럼 주체적 본성을 깨닫는 것이 곧 희극예술의 궁극적 도달인 것이다. 그러므로 궁극적 도달점은 주체를 초월하여 저 높은 곳에 있는 존재가 아니라, 인간의 본성 속에 존재하며, 본성으로 그려내고 그 본성에 대해서 자각하는 것이다. 몰리에르는 예술적인 도전이 불가능성의 도전이었음을 자각함으로써, 이제 희극은 그에게 도덕과 질서를 바로잡는 하나의 미학적 무기가 아니게 된 것이다.

    그동안 몰리에르의 익살극은 나쁜 열정을 정화하는 역할을 수행하였다. 이것은 고결함에 의한 정화라기보다는 저속함에 의한 씻어내기라고 말할 수 있다. 이러한 씻어내기는 『동 주앙』과 『인간 혐오자』와 더불어서 희극의 사명에 대한 유효성을 상실했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 이 작품들은 더이상 대중-관객들을 희극의 지혜로 돌려보내지 않는 대신에 모든 지혜의 씁쓸함과 불가능성을 맛보도록 초대한다. 그의 그런 사상은 모든 것이 자연법칙에 따라 결정된다고 보는 인과적 결정론(le détermisme causal)과 과거·현재·미래의 모든 명제가 결국 참과 거짓으로 결정된다고 보는 논리적 결정론(le détermisme logique)으로 기울어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그는 그런 면들 위에 크리스트교적 결정론을 운명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이것은 장세니즘(le jansénisme)과도 일치한다. 이러한 일치는 인간의 본성에 대한 비관적인 시각으로서 ‘본성=타락’이라는 결정적인 방정식이다. 동 주앙은 문제의 심각성을 모른 체 악 속에 머무른다. 『인간혐오자』의 등장인물들은 모두 비난받을 만하거나 혐의를 받을 만함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선에 속한다. 왜냐하면 자유는 존재하지 않으며 본성만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본성은 세상의 어떠한 힘으로도 전복할 수 없는 하나의 표적이며, 본질주의의 감옥으로서 가차 없는 것이다.

    인간은 저마다 자신의 본성 속에 갇혀 있으며, 타자와는 다른 본성을 소유한다. 타자와의 본성의 조화는 환상이며 우연의 결과일 뿐이다. 몰리에르의 희극이 인간들의 결함들을 고발하고 갑자기 조롱한다 할지라도 결국 바른 질서도, 진정한 행복도, 진정한 사회적 균형도 존재하지 않는다. 존재 그 자체는 환원되지 않는 결함이기 때문이다. 그의 희극에서 존재는 가면이며 환상이요 자발성이며 성실이라는 형상일 따름이다. 이제 희극적 이성의 노력은 더 이상 지혜의 표적이 아니다. 이것은 그런 탐구들 가운데 하나를 위해서 다른 것들과 비교할 수 있는 하나의 수단이다. 그래서 몰리에르는 (C)단계 이후부터 이성에 대한 신뢰보다는 자연의 섭리와 신을 더 신뢰한 것으로 보인다62).

    몰리에르가 인간의 본성에 대해 가졌던 호의는 부패하지 않는 정신에 대한 신뢰였다. 즉, 사회에 의한 인간의 타락 이전에 순순한 본성 또는 본능에 대한 신뢰를 뜻한다63). 자연의 섭리는 그에게 있어서 신성한 신비들 중에서 하나로서 드러난다64). 여하튼 그는 (A)단계부터 줄곧 자연스러움(le naturel)을 추구하며, 진실과 인간의 도덕적 규칙들에 일치하는 것을 소중히 여겼다. 그러나 전술한 바와 같이, 그의 희극의 도덕적 교정 역할은 (C)단계 시점서부터 서서히 방향을 전환하기 시작했다. 왜냐하면 그가 희극이 일종의 가면놀이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완전히 이해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의 낙관주의적 세계관은 드디어 그 실효성을 상실하게 된다. 그 대신에 필랭트 방식으로 인간들의 악덕들에도 불구하고 박애와 미덕과 있는 그대로의 인간조건의 수용의 필요성을 인정한다. 마침내 그의 도덕적 희극은 스스로 퇴각하고, 광기를 예찬하는 코미디 발레(les comédiesballets)로 본격적으로 입문한다. (D)단계에 속하는 그의 희곡들 중 대부분은 도덕적인 결말을 거부한다. 도덕적 희극의 종착역인 (C)단계의 알세스트)는 인간혐오자로 남으며, (D)단계의 아르파공(Harpagon)은 인색함을 고치지 못하고, 필라맹트(Philaminte)는 유식한 여자가 되며, 주르댕은 자기 딸을 터키 황태자와 결혼시키고자 하여 기꺼이 마마무치(Mamamouchi) 작위를 받아들인다. 그런데 그는 기독교도인 딸이 이슬람교도와 결혼한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바라볼 때, 몰리에르는 (D)단계에서 이성에 대한 신뢰보다, 광기가 인간과 세상의 타락한 근본적인 발원점이라는 비관론주의자들처럼 광기의 축제를 인정하는쪽으로 기울어진 것으로 추정된다65).

    마침내 그는 당대의 복잡다단한 현실의 장벽을 극복하지 못함으로써 가장 익살스러운 코미디 발레에 노래와 무용과 관현악단 등과 같은 모든 예술을 종합한 예술축제를 벌이게 된다. 이 환상적인 축제는 『푸르소냑씨』, 『멋진 연인들』, 『부르주아 귀족』, 『상상으로 앓는 환자』 등과 같은 익살스러운 코미디 발레들로서 음악과 무용과 악단이 결합되어 펼쳐지는 환상적인 예술을 만들었다. 이제 몰리에르는『학식을 뽐내는 여자들』을 제외하고 도덕적인 문제를 취급하지 않으며, 등장인물들의 과오들도 고치려고 애쓰지 않게 된 것이다. 그는 오히려 『앙피트리옹』, 『조르주 당댕』, 『수전노』 등에서 선악에 무관심한 파렴치한 세상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그의 코미디 발레는 인간의 진실이 극적인 비현실에 이르는 환상곡으로서 인간들의 편집광적인 광기를 익살스럽게 보여 준다:

    몰리에르가 (C)단계까지는 희극을 통해 이성과 비이성, 자연과 반자연, 자유와 구속, 선과 악 등 이원론적 경계를 명확히 하려고 애썼다. 그러나 그의 예술적 의지에도 불구하고 양자를 명확하게 구별하는 기준이 분명하지는 않다. 따라서 분리 불가능한 것을 분리하려는 극작가의 의지는 곧 예술적 광기를 의미한다. 이것은 이성의 금기를 넘어서 예술의 무한한 자유를 허용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 광기가 통용될 수 있는 탈출구를 열어 주는 것이다. 이것은 도구적인 예술로서 우리의 삶의 흐름을 일종의 예술적인 체계로서 양식화하는 작업이라고 볼 수 있다. 그의 희극에서 광기는 르네상스 시대와는 달리 인간의 내면으로 스며들었다. 즉, 인간은 광기를 지닌 존재로서 부정적인 존재이면서도 이 사회가 부득불 수용할 수 밖에 없는 긍정적인 존재이기도 한 것이다. 그의 희극적 욕망은 인간의 타락한 본성들을 고치려고 했지만, 이내 그 불가능성을 깨닫고 인간들을 있는 그대로 수용함으로써 사회집단 내부로 통합 가능성을 열어 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성은 광기를 대상화하면서 배제한다. 그것은 존재의 반대인 결여(즉 우스꽝스러움), 진실의 반대인 거짓, 질서의 반대인 무질서, 자연스러움의 반대인 부자연스러움 등으로서 이성에 대해 부정적인것 전체를 일컫는다. 이렇듯 부정적으로 정의된 광기는 인간 내부의 심연의 다양한 계층을 형성한다. 그래서 몰리에르의 연극에서 광기는 한 지점에 모아진 비이성의 전부가 된다. 마침내 광기는 이성의 부정적인 형태로서 분류되고 가시화된다. 이러한 광기는 이성의 반대편에 있으면서도 이성의 시선 아래에 놓여있다. 이성의 맞은편에 있다는 것은 즉시 파악되는 차이, 순수한 부정성, 즉 비이성 혹은 부자연스러움으로 드러난다. 그러나 이러한 배제의 논리는 세상에 현존하는 이성과 광기의 은밀한 연관관계를 드러낸다. 이제 비이성은 이성 내에서 이성에 의해 포위되고 소유되며 개체화된 개념인 것이다. 달리 말하자면, 몰리에르의 희극적 불안은 이성 자체의 내부에 비이성 또는 부자연스러움이 있다는 사실이다. 자연스러움의 이면이 부자연스러움이고, 부자연스러움의 이면이 자연스러움이다. 즉 광기의 이면이 이성이고, 이성의 이면이 광기라는 점에서 동전의 양면과도 같다고 할 수 있다.

    이것은 무의식이 의식을 지배하는 주르댕의 몽상이다. 주르댕은 현실과 비현실을 구별하지 못한 상태에서 광기가 발현한다. 비현실적 몽상은 시각적 이미지에 호소하는 희극에서 환상(la fantaisie)의 저장고이다. 정상과 비정상을 가늠하는 시선에서 반이성이자 반자연은 배타적인 이미지로 가득 차 있다. 광기는 인간에게 이미 도래한 배타성, 즉 죽음과도 같은 것이다. 그래서 미치광이는 음산한 죽음의 전조를 내보이면서, 죽음의 주제가 광기의 주제로 대체되는 것이다. 문제는 변함없는 삶의 허무이지만, 이 허무는 위협이나 종말이 아니라, 내면으로부터 실존의 지속적이고 항구적인 형태로 체험되는 것이다. 바로 아르강(Argan)의 육체적·정신적 고통이다. 광기는 감각뿐 아니라 인식에도 관여된다. 몰리에르에게 광인의 앎은 금지된 앎으로 간주되는데, 주르댕도 아르강도 자신들의 과오들을 인지하지 못하며 오직 자신들의 결핍된 욕망의 충족에만 몰두한다. 이렇듯 광기는 인간들을 완전히 지배한다. 광기는 어떤 터무니없고 쓸데없는 욕구에 대한 징벌이며, 과다한 욕망은 광기 속에서 완전히 전복된다. 희극에서 마마무치 의례식이 거행되는 때에도 광기는 앎의 새로운 지평을 여는데, 이때 앎은 단순한 앎이 아니라 희극적 환상이 되는 것이다.

    20)이러한 변화는 뒤르페(Honoré d’Urfé)의 전원소설 「아스트레 L’Astrée(1607∼27)」와 랑부이예(Rambouillet) 후작부인이 처음으로 연 살롱에서부터 비롯되는데, 단골고객으로는 재상 리슐리외(Richelieu)를 비롯하여 정치가들과 말레르브(Malherbe)와 코르네유(Corneille) 등이 있었다. 그 밖에 사블레 부인, 스카롱 부인, 스퀴데리양이 운영하던 살롱도 유명하였다.  21)이를 통해 완성된 소산으로 라로슈푸코(La Rochefoucauld)의 『잠언 Les Maximes』, 라퐁텐느(La Fontaine)의 『우화시 Les Fables』를 꼽을 수 있다. 또한 살롱문화를 반영한 레 추기경(cardinal de Retz)의 『회상록』, 세비네 부인(Mme de Sébigné)의 『서간집』, 라파예트 부인(Mme de Lafayette)의 「클레브 공작부인』도 대표적인 작품들이다.  22)특히 그는 『학식을 뽐내는 여자들』(1672)에서 프레시오지테의 전형으로 문인트리소탱과 바디우스의 문학적 대결과 아르망드와 앙리에트의 상반된 결혼관을 대조적으로 보여준다.  23)당시 재녀들(precieuses)의 교양 있는 말투나 완곡한 표현은 대중들로부터 호평을 받으나, 그녀들의 현학적 취미와 허세를 비웃는 사람들도 생겨난다. 요컨대 프레시오지테는 지적 측면과 사회적 측면으로 양분하여 볼 수 있다. 전자는 옷 입는 방법에서부터 구별되는 태도와 과장법이 풍부한 언어와 재기 넘치는 정서와 극도로 구별하려 하며, 후자는 통속적인 풍습에 대항하는 엘리트 정신이 팽배한 귀족주의이다. 살롱의 손님들은 대부분이 궁정인들이므로 파리풍이고, 자주성을 고수하며, 남성들과 대등한 동등성을 주장하는 여성주의자들이기 때문이다.  24)당시 연극이론가 도비냑 사제(d’Aubignac)는 몰리에르가 긍정적인 의미의 자기방어기제로서 가면극을 사용했단 손치더라도 종교적인 주제 자체를 취급했다는 것이 잘못이라고 비난하였다. Cf. “[…] mais je prétends qu’un seul vers, une seule parole qui mêlera quelque pensée de religion blessera l’imagination des spectateurs, leur fera froncer le sourcil et leur donnera quelque dégoût…” 《La Pratique du théâtre (1665)》, in Recueil des textes et des documents du ⅩⅦe siècle relatifs à Molière, édition de Georges Mongredien, op. cit., tome Ⅱ, p.234.  25)리베르티나주에 관한 한 국내 연구가의 다음과 같은 깊이 있는 논문들 참고하라 : 김익진 : 〈17세기 프랑스 리베르티나주 연구사 개관〉, 『프랑스 고전 문학 연구』, 제4집, 2001, pp.131∼150.; 김익진 : 〈몰리에르의 연극의 ‘사회신분(l’ordre social)’ 개념과 리베르티나주, 『프랑스 고전 문학 연구』, 제5집, 2002, pp.34∼52.  26)Molière, L’Ecole des maris, acte Ier, vv. 167∼169.  27)Jacques Morel, 〈〈Molière ou la dramaturgie de l’honnêteté〉〉, in L’Information Littétaire, n˚ 5, 1963, pp.185∼191.  28)Molière, La Critique de l’Ecole des femmes, scène Ⅵ, vv. 101-105.  29)Cf. Allier Raoul, La Cabale des dévots 1627∼1666, Paris, Armand Colin, 1902; Alain Tallon, La Compagnie du Saint-Sacrement, Spiritualté et Société, Paris, Cert, 1990.  30)루이 14세의 후원을 받은 몰리에르는 자신의 희비극 “동 가르시 드 나바르 Dom Garcie de Navarre”에서 루이 14세의 애정행각을 옹호하였다. 그래서 그는 동 가르시의 부도덕성을 정당화했다고 하여 비난을 받았다.  31)“Comme l’affaire de la comédie est de représenter en général tous les défauts des hommes, et principalement des hommes de notre siècle, il est impossible à Molière de faire aucun caractère qui ne rencontre quelqu’un dans le monde.” L’Impromptu de Versailles, scène Ⅵ.  32)Premier Placet au Roi, sur la Comédie du Tartuffe de Molière.  33)OEuvres complètes de Molière, édition de Georges Couton, op. cit., tome Ⅰ, p.885.  34)Cf. Mikhail Boulgakov, Monsieur de Moliere. Suivi de La cabale des devots, Paris, Laffont, 1972.; Jean-Pierre Gutton, Devots et societe au ⅩⅦe. Construire le Ciel sur la Terre, Belin, 2004.  35)Bossuet는 『Lettre à Père Caffaro』에서 『아내들의 학교』, 『타르튀프』, 『동 주앙』을 열거하면서 몰리에르는 비속한 품행, 도덕적·종교적 위선, 악덕, 사랑 혹은 가족의 이해라는 이름으로 자신을 변론하는 행동을 희극적 재현으로 삼았다고 비판하였다. 아울러 그는 그의 희극작품에는 박해받는 미덕(la vertu persécutée), 억제할 수 없는 죄악(le mal irrésistible), 여성의 외설스러움(l’indécence féminine) 등과 같은 세 가지 도덕적 파격이 내포되어 있다고 비만의 수위를 높였다. Cf. Bossuet : “Lettre à Pére Caffaro”, in Georges Mongredien, Recueil des textes et des documents du ⅩⅦe siècle relatifs à Molière, op. cit., tome Ⅱ, p.676.  36)Georges Mongredien, Recueil des textes et des documents du ⅩⅦe siècle relatifs à Molière, op. cit., tome Ⅰ, p.233.  37)“Don Juan : […] (L’)hypocrisie est un vice à la mode, et tous les vices à la mode passent pour vertus. Le personnage d’homme de bien est le meilleur de tous les personnages qu’on puissent jouer aujourd’hui, et la profession d’hypocrite a de merveilleux avantage. C’est un art de qui l’imposture est toujours respectée…” Molière, Dom Juan, ac. Ⅴ. sc. Ⅱ.  38)Cf. Gérard Defaux, Molière ou les métamorphoses du comique, op. cit., p.154.  39)Georges Forestier, Molière en toutes lettres, Paris, Bordas, 1990, p.148.  40)동 주앙도 신을 탐구하는데, 신의 편에서 정확한 응답을 해주기를 기다리고 있다고 본다. 그는 근본적으로 기독교를 거부하나 무신론자라고 단정을 짓기가 어렵다. 왜냐하면 기독교는 그에게 완전한 순종이나 이성을 배제한 완전한 믿음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 “Si le Ciel me donne une avis, il faut qu’il parle un peu plus clairement, s’il veut que je l’entende.” Molière, Dom Juan, ac. Ⅴ, sc. Ⅳ.  41)Molière, L’Impromptu de Versailles, scène première.  42)“La comédie a une image de la vie commune; sa fin est de montrer sur le théâtre les défauts des particuliers pour guérir les défauts du public.” Cité par Georges Mongredien, La vie littéraire au ⅩⅦe siècle, Paris, Jules Tallandier, 1947, p.156.  43)Cf. Jaunauy, 《L’Enfer burlesque》, in Recueil, Paris, 1677, pp.458-459. 조네는 그의 “익살스러운 지옥”에서 몰리에르에 의해서 언급된 우스꽝스러운 사람들의 전형들(fâcheux, bigots, cocus, médecins, avocats, ignorants, savants, nobles, bourgeois, prélats 등)을 일목요연하게 나열하고 있다.  44)Molière, Le Misanthrope, acte Ⅰ, scène Ⅰ, vv.119 et 199 등등.  45)Molière, Le Misanthrope, acte Ⅰ, scène Ⅰ, v.111.  46)René Bray, Molière, homme de théâtre, Paris, Mercure de France, 1954, p.284.  47)Ibid., p.283.  48)Gérard Defaux, Molière ou les métamorphoses du comique, op.cit., pp.60-61.  49)Benard Tocanne, L’Idée de Nature en France dans la première moitié du ⅩⅦe siècle : Contribution à l’histoire de la pensée classique, Paris, Klincksieck, 1978, p.178.  50)Moliere, Le Misanthrope, ac. Ⅰ, sc. Ⅰ, vv. 163-166.  51)Jacques Arnavon, Morales de Molière, Paris, Editions Universelles, 1945, p.168.  52)Oeuvres complètes de Molière, édition de Georges Couton, op. cit., tome 1, p.1154.  53)Oeuvres complètes de Molière, édition de Georges Couton, op. cit., tome Ⅰ, p.1154.  54)Marcel Desports, “Introduction générale”, in Analyses et Réflexions sur Dom Juan de Molière : le défi, Paris, Editions Marketing, 1981, p.16.  55)Jacques Guicharnaud, Molière - Une Aventure théâtrale : Tartuffe - Dom Juan, Le Misanthrope, Paris, Gallimard, 1963, p.532.  56)Gérard Defaux, Molière ou les métamorphoses du comique, op. cit., p.83.  57)Francine Mallet, Molière, Paris, Grasset et Fasquelle, 1986, p.109.  58)Jacques Arnavon, Morales de Molière, Paris, Editions Universelles, 1945, p.109.  59)Ramon Fernandez, Molière ou l’essence du génie comique, op. cit., p.187.  60)La Préface du Tartuffe in Oeuvres complètes de Molière, édition de Georges Couton, op. cit., tome Ⅰ, p.888.  61)Jacques Guicharnaud, Molière : une Aventure théâtrale, op. cit., p.512.  62)“Molière a commencé par partager la majorité de ses contemporains une vision providentielle et délibérément optimiste de la nature humaine. Fruit, dans son éclectisme, de quelques-uns des principaux courants d’idées du siècle-Aristotélisme, néo-Platonisme, Humanisme dévot et cicéronien-, cette vision, qu’il faut bien qualifier de philosophique, puisqu’elle suppose un système de valeurs et de pensées extrêmement cohérent, fait de l’homme, par la grâce de ce que l’auteur de la Lettre de 1667 appelle “la Providence de la nature,” un être de raison, tendant de soi naturellement au Bien, à la Vérité et à la Justice, éprouvant pour le vice, l’ignorance et l’erreur une aversion tout aussi naturelle.” Gérard Defaux, Molière ou les métamorphoses du comique, op. cit., p.285.  63)“[...] cette spontanéit maîtrisée constitue la meilleure illustration du parfait naturel entendu comme élaboration de la nature par une raison lucide, une volonté ferme et une sensibilité sociable droite.” Patrick Dandrey, Molière ou l’esthétique du ridicule, Paris, Klincksieck, 1992, p.223.  64)Cf. “La sagesse humaine, si haute soit-elle, ne peut éviter les malheurs, les fautes et les sanglantes échecs. Mais les plus sombres événements de l’existence peuvent être acceptés, et même vécus en toute sérénité, si l’homme sait les rapporter aux mystères desseins de Dieu, qui ne peuvent être que bons.” Jacques Morel, Littérature française : De Montaigne à Corneille (1572-1660), Paris, Arthaud, p.149.  65)실상 17세기 말엽이 되어야 사람들은 인간과 세상의 인과관계를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기 시작할 것이다. 이것이 사회적 삶과 세상에 대한 변화이다. 이 세기가 되어야 몰리에르의 알세스트는 개혁자로서 높이 평가받게 될 것이다  66)OEuvres completes de Moliere, edition de Georges Couton, op. cit., tome Ⅱ, p.638.

    4. 결 론

    다음과 같이 전반적인 개요로서 결론을 정리하고자 한다. 첫째, (A)단계는 몰리에르가 자신의 희극 예술을 완전히 펼치기 전의 단계로 사회 경험을 축적하고 예술을 준비하는 단계로 볼 수 있다. 둘째, 그는 (B)단계에서 희극의 정의와 목적을 정립코자 하였다. 희극은 본질적으로 악덕과 결함의 세계를 거부하는 데 있었으며, 비진리의 세계를 타파하고 진여의 세계를 규명하는 데 있었다. 그는 희극에 사회적·도덕적 사명을 부여했으며, 진실과 선과 질서와 자연과 자유의 이름으로 거짓과 악과 무질서와 반자연과 억압을 강력하게 비난하였다. 이때 이것을 심판하는 잣대는 판단의 도구이며 보편적인 규범인 이성이었다. 그는 이 이성으로 인간과 사회를 개선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믿었다. 따라서 그의 희극은 도덕적인 의도와 미덕에 따라서 제시됨으로써, 희극의 지혜는 양식과 예법성과 적합성과 올바른 이성과 강하게 결부되고, 세기의 모든 악덕과 모든 결함과 모든 과도에서 벗어난 교양인 혹은 합리적인 현자(le sage raisonnable)의 도덕적인 역량을 가능케 하였다. 여기서 그가 추구하는 것은 인간의 완성으로서 중용 철학을 겸비하는 것이었다. 셋째, (C)단계에서는 『인간혐오자』(1666)와 더불어 훈육적 사명감을 상실한다. 왜냐하면 그가 이성과 지성의 이름으로 모든 악과 모든 모순과 모든 전제적인 규약과 모든 독단과 거짓말과 위선 등을 추방하려고 애써 봐야 소용없다는 사실을 자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1666년 무렵부터 그의 희극의 도덕적 지향성이 방향을 달리하기 시작한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그는 (B)단계부터 줄곧 인간 본성에 대한 긍정적인 시각을 가졌으나, (C)단계 이후부터는 뚜렷하게 비관적인 시각으로 완전히 돌아서게 된 것이다 있다. 그가 생각하던 희극의 본질적인 목표인 도덕적 교화에서 벗어나 관용으로 돌아서기까지, 그는 그의 반대진영과 너무나 오랫동안 소모적인 논쟁을 벌여야만 했다. 이러한 씁쓸한 경험은 그로 하여금 이성에 의한 인간 개선의 가능성을 포기하고 타락한 본성으로부터 영원히 회복될 수 없는 인간 군상을 위로하는 새로운 문학적 장르를 열게 했던 것 같다. 넷째, (D)단계는 코미디 발레를 통해서 대중-관객들을 즐겁게 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이 단계의 희극의 대변인들은 악의 진행을 방해하는 데 초대되었으며, 필요한 경우에는 그들에게 중재를 요청하게 된다. 그러나 (D)단계에서 악의 세계는 어떠한 실제적인 위력을 발휘하지 못하도록 전제되었다. 희극의 대변자들은 악인들의 악덕을 열심히 고치고 위험에 처한 세상을 정돈하려고 애쓸 때, 선인들은 거기에서 자신들의 고유한 영역과 이상세계를 유지하기 위하여 끊임없이 투쟁한다. 악역들은 웃음거리가 되며 광기 속으로 침잠하고, 대중-관객들은 그들의 행태 습성을 보며 웃게 된다. 드디어 희극이 교훈적인 역할을 잊게 되며, 맹목과 광기에서 벗어날 수 없는 주인공들은 철저하게 희화화의 대상이 된 것이다. 그들은 치유 불가능한 존재들로서 과도하고 무분별한 정열의 자기 파괴적인 자아상실의 극치를 보여 준다. 이로부터 코미디 발레에서는 훈육적인 역할보다 극적인 환상과 쾌활이 더 중요하게 대두된 것이다.

    결론적으로 몰리에르는 희극예술을 통해 인간조건을 초월할 수 없음을 깨달았다. 이제 그에게 인생이란 하나의 우화이며, 인간의 지식들은 부조리에 불과하고, 인간의 확실성은 터무니없는 콩트로 인식되었다. 그는 이 세상이 소극이며 영원한 희극에 불과하다는 잠정적인 결론에 이른 것으로 보인다. 이성과 비이성, 자연과 반자연, 현실과 비현실, 현실과 몽상 사이에서 인간과 인간조건을 자각하기까지 자신의 존재이유를 향한 예술적인 투쟁을 벌인 위대한 극작가 몰리에르, 그의 인생 항로도 결코 평탄하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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