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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A 학술지
Governmentality, Training, and Subjectivation in Mark Twain’s A Connecticut Yankee in King Arthur’s Court 『아더 왕궁의 코네티컷 양키』에 나타난 근대적 통치성*
  • 비영리 CC BY-NC
ABSTRACT
Governmentality, Training, and Subjectivation in Mark Twain’s A Connecticut Yankee in King Arthur’s Court
KEYWORD
governmentality , capitalism , liberalism , homo oeconomicus , The Gilded Age , training , the apparatus of security
  • I. 서 론

    마크 트웨인(Mark Twain)의『아더 왕궁의 코네티컷 양키』(A Connecticut Yankee in King Arthur’s Court)(1889)는 자본주의 형성기의 미국 기업 경제체제에 대한 우화이다. 트웨인은 19세기에 살고 있던 미국의 무기제조 기술자인 행크 모건(Hank Morgan)을 6세기 영국봉건주의 환경으로 회귀시킴으로써 19세기 후반 기업중심의 자본주의 현실을 보다 선명하게 표출시킨다. 아더왕(King Arthur)이 다스리는 6세기 카멜롯으로 시간이동을 한 행크는 지난 13세기 동안 축적되어온 기술 문명의 지식을 사용하여 중세의 봉건제도 위에 자본주의 체제를 세우려고 시도한다. 결국『아더 왕궁의 코네티컷 양키』는 행크라는 인물을 통한 19세기 미국 자본주의 체제의 분석이며 비평이라 할 수 있다.

    루이스 버드(Louis Budd)는『아더 왕궁의 코네티컷 양키』를 “도금시대를 요약하는 성명서”로 본 반면, 핸리 내쉬 스미스(Henry Nash Smith)와 같은 학자는 트웨인이 소설을 통해 시도한 경제 분석은 실패라고 설명한다. 특히 행크가 새로이 건설한 체제에는 소비 시장이 충분히 형성되지 않으며 행크의 기업을 대적할만한 경쟁도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행크를 자본주의 사업가로 보기 어렵다고 주장한다(99-104). 그러나 스미스가 지적한 소비 시장과 경쟁의 부재는 오히려 소수의 거대 기업이 단합과 합병 등을 통해 시장을 장악하고 있던 19세기 후반의 미국 경제상황과 다르지 않으며, 소설은 이를 조정하는 행크의 통치기술을 보여주고 있다.

    소설이 쓰인 19세기말 미국 경제는 새로운 기술과 풍부한 천연자원, 도시 노동자들을 바탕으로 급속도로 산업화가 진행되고 있었고 인류 발전과 진보에 대한 낙관이 지배하고 있었다. 당시 W. D. 하월즈(W. D. Howells)와 시어도어 드레이저(Theodore Dreiser) 등의 사회 소설에서 엿볼 수 있듯이 부와 성공에 최고의 가치를 두고 투자와 효율성에 우선가치를 둔 성공 이데올로기가 19세기말 미국을 휩쓸고 있었다1. 트웨인 또한 동시대를 “도금시대”(The Gilded Age)라고 이름을 붙이기도 했다. 거대한 도시와 대규모 공장과 기업이 출현하였으며, 중산층이 등장하고 대량생산이 가능해지면서 소비 시장이 확장되었다. 철저한 자본주의 논리에 근거한 자본의 순환, 확대와 축적, 투자를 통한 이익의 산출, 효율적 생산의 패러다임과 같은 자유 시장 경제의 원리들이 실험되고, 투자를 통해 최대이익을 산출하는 효율성의 논리가 당시 사회를 이끌고 있었다. 이러한 산업발달을 배경으로 카네기(Andrew Carnegie), 록펠러(John D. Rockefeller), 굴드(J. Gould)와 같은 거부들이 등장하여 거대 기업을 세우고 자본주의 질서를 형성했다. 이들 거대기업들은 공격적인 기업전략과 산업기술의 결합을 통해 성장했고, 기업합병 및 경제정책들을 이용하여 선점하고 있던 경제권력 유지에 힘을 쏟았다. 이를 통해 소수의 크고 강력한 기업단위들의 생산중심 시장체제가 형성되었다.

    『아더 왕궁의 코네티컷 양키』는 19세기말 자유시장경제와 기술문명에 절대적 믿음을 가진 주인공 행크를 통해 당시 미국 자본주의와 산업발전이 창조하고 있는 적합성과 효율성이라는 논리에 바탕을 둔 “경제적 인간”(homo oeconomicus)을 그려낸다. 본 논문은 행크가 6세기 영국 봉건 체제에 시도하는 변화를 경제적 자본주의에 바탕을 둔 근대적 통치이성의 발현으로 보고, 안전장치와 훈육(training)을 통해 이루어지는 행크의 통치기술과 이러한 통치기술이 가져온 파괴적 결과를 살펴보고자 한다. 행크의 통치적 특징을 통하여 트웨인은 19세기말 미국 정치경제의 현실을 날카롭게 비판하고 있다. 본 논문은 소설 내에서 이루어지는 행크의 통치기술과 사고를 설명하기 위해 미셸 푸코(Michel Foucault)가 1970년대 이후 정리한 “통치성”(govenmentality), 혹은 “통치 이성”(governmental rationality)의 개념을 적용할 것이다.

    1데이비드 짐머만(David A. Zimmerman)은 1865년부터 1917년 사이의 사회소설들을 경제 개혁 소설, 성공소설, 소비소설로 분류하면서 당시의 소설들이 미국 자본주의 현실을 반영한다고 설명하였다. 짐머만에 따르면, 특히 하월즈나 드레이저를 비롯한 19세기말의 이러한 소설들은 당시 사업과 경제, 자본에 대한 동경이나 비판을 담고 있다. David Zimmerman, “Novels of American Business, Industry, and Consumerism,” Ed. Leonard Cassuto, The Cambridge History of the American Novel (New York: Cambridge UP, 2011) 409-25를 참조.

    II. 미셸 푸코와 통치성

    푸코는 18세기 전후에 등장한 국가 내의 새로운 권력 관계, 즉 근대국가를 움직이는 제도, 혹은 전술을 설명하면서 “통치성”이라는 용어를 사용한다.2 푸코에게 중세의 국가와 18세기 이후 근대 국가는 전혀 다른 존재이다. 똑같이 국가(State)라고 불리지만, 전혀 다른 전략과 운영 방법이 관통하고 있기 때문이다. 중세와 중세 이전까지의 통치란, 군주의 절대권위와 종교의 신적 권위가 합쳐진 억압적이고 단순한 군림이었기 때문에 통치의 방법이나 행위보다는 군주의 권위가 더 중요했다. 그러나 푸코의『안전, 영토, 인구』(Security, Territory, Population: Lectures at the College de France 1977-1978)에 따르면, 근대국가는 ‘통치술’ 혹은 ‘통치적 합리성’을 중요시 한다. 이는 국민의 행동을 합리적으로 ‘관리’하거나, 그 관리를 합리적으로 받아들이게 함으로써 권력을 유지하는 행위를 의미한다. 따라서 푸코가 설명하는 “통치성”이란 국가적 권력이 개별화된 주체, 개인을 포섭하여 국가 정립을 가능하게 하는 메커니즘이 된다. 또한 푸코는『안전, 영토, 인구』와『생명정치의 탄생』(The Birth of Biopolitics: Lectures at the College de France 1978-1979)에서 근대적 통치성의 발현과정에서 형성된 자유주의와 20세기 이후의 신자유주의적 통치성에 대한 분석을 시도한다. 그러나 통치성의 개념이 20세기 후반 이후 강조되고 있는 신자유주의와 같은 특정 자유주의 신념이나 이데올로기에 국한되지는 않는다. 오히려, 통치성은 이질적 통치기제를 동원하여 시민국가를 안전화시키는, 보다 넓은 의미에서의 통치적 합리성이며, 근대국가를 특징짓는 정치경제적 기술을 의미한다.『안전, 영토, 인구』에서의 푸코의 설명을 빌린다면, 통치성은 근대성, 근대화를 겨냥하고 근대화 과정에서 지식-권력-주체가 결합하는 새로운 방식이다. 즉 “인구를 목표로 설정하고 정치 경제학을 주된 지식의 형태로 삼으며 안전장치를 기술적 도구로 이용하는 지극히 복잡하지만 아주 특수한 형태의 권력을 행사해 주는 제도, 정책, 분석, 계측, 전술의 총제”(108)인 것이다.3 따라서 이러한 근대적 통치성의 개념은 행크가 6세기 영국 사회가 표방하고 있던 봉건적 사고와 정책적 방향을 변화시키고 중세영국의 정치와 경제 상황을 근대화시키는 과정에서 시도하는 통치 이상을 설명하는 데에 적절하다.

    푸코에 따르면, 근대 국가는 법이나 규범을 통해 특정행위를 금지하거나 감시와 처벌을 통해 개인의 신체를 규율하는 봉건국가의 특징에서 벗어난다. 근대국가는 오히려 시민에게 일정한 자유를 허용하는데, 이러한 “자유”가 국가를 존속하게 하는 하나의 “안전장치”(the apparatus of security)로 작용한다. 이 장치—자유—를 통해 작동하는 근대의 통치는 봉건주의식 법률메커니즘이나 규율메커니즘과는 다르다. 외부로부터 어떤 법적 금지나 허용의 법칙을 적용하여 다스리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과정의 내적 장치에 철저히 부합하는 “자연스러운” 처방을 추구하는 통치 방법이기 때문이다. 즉 최초의 생산 활동부터 최종적 이윤 획득에 이르기까지 전반적인 순환 및 과정을 고찰하여 이를 관리하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의 경제활동 및 시장체제를 그 자체로 객관적 법칙을 가지고 있는 하나의 자연으로 간주한다. 이러한 통치방식에는 “현상을 자유롭게 진행되도록 [내버려 두면] 이 현실 자체가 스스로를 억제하고 규제하리라”는 자유방임적인 믿음이 전제하고 있으며, “현실에서 작동”하는 안전장치가 바로 “자유”가 된다 (Foucault, Security 41-42). 따라서 안전장치로 작동하는 자유란 “개인의 정당한 권리에 있어서의 자유만이 아니라 통치성에 불가결한 요소가 된다” (Foucault, Security 353). 자유와 자유의 고유한 한계를 통치 실천 영역 내부로 통합하는 것이 중요해지는 것이다.

    따라서 국가는 경제에 대한 법칙을 과학적으로 연구하고 그 법칙에 따라 자연스러운 개입이 가능하게 할 새로운 통치 기술들을 추구한다. 푸코는 근대권력의 핵심적 특징이 바로 이러한 통치기술에 있다고 말하면서, 특히 통치기술의 대상인 인간에 대한 관찰과 분석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푸코에 따르면 18세기 이후의 통치는 금지/허용이 아닌 “자유”를 안전장치로 사용하기 때문에, 인간이 스스로 움직이고 개입하도록 통치하기 위해서는 인간의 자유를 먼저 사유해야 한다. 그리고 인간 행동의 원동력이 “욕망”이므로 (Security 115), 인간의 본성에 대한 규제보다는 인간의 자유, 인간이 하고 싶어하는 것, 인간이 행해서 득이 되는 것, 인간이 행하고자 하는 것을 우선 연구해야 한다는 것이다. 즉 18세기 이전의 통치가 금지/허용의 규율적 기술을 통해 작동했다면, 근대권력의 통치는 정치 경제학을 통해 개인의 욕망을 허용하고 긍정하여 어떻게 하면 “그렇게 하라!”(YES)고 말할 수 있는가를 주요 명제로 삼는다 (Foucault, Security 73). 푸코는 이렇듯 자연스러운 것으로 간주되고 개인의 자유로운 행위를 조절하는 권력을 “권력의 테크놀로지”라고 부른다.

    근대국가의 안전장치로서의 “자유”는 “자기애, 욕망을 자극하고 부추겨 그것이 필연적으로 이로운 효과를 낼 수 있도록 만드는 모든 것”까지를 포함한다 (Foucault, Security 73). 때문에 푸코가 보기에는, 18세기 이후 형성된 “통치성”은 욕망과 자유에 의해 움직이고 인간의 모든 행위를 자본으로 다루는 새로운 ‘경제적 인간’을 만들어내고 훈련함으로써 시장 조정, 사회 통치, 조직하려는 정치적 합리성이다(Birth 225-26). 경제적 인간을 훈련하는 과정에는 인간을 움직이는 “욕망”과 인간이 참여하는 경제적 조건 및 과정 자체에 대한 조정과 합리화를 포함한다. 따라서 근대국가는 욕망의 실현을 통해 이익을 창출해내는 “경제적 인간”을 대상으로 하는 정치경제학에 중요한 의미를 부여하며, “경제적 통치”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다 (Foucault, Security 110). 이런 점에서 근대적 통치기술의 핵심은 정치, 사회 전반적인 영역에 경제를 도입하고 이를 통해 경제활동의 주체이자 대상이 되는 인간의 행위를 조정하고 포섭하는데 있다. 따라서 근대적 통치 이성은 자본주의의 발달과 밀접한 관계를 맺으면서 경제성장 자체를 목적으로 삼아 정치경제학을 국가 합리성의 도구로, 경제를 통치의 방법이자 도구로 사용한다. 비경제적 행위조차도 경제적 유익을 위한 투자이자 자본으로 여기며 경제적인 분야와 사회적인 영역의 구분을 모호하게 만드는 경향으로 발전한다.

    『아더 왕궁의 코네티컷 양키』에서 행크의 통치 행위는 바로 이러한 근대성을 기반으로 하여 인간의 욕망과 이를 가능케 하는 조건을 조정하고 강조한다. 행크는 스스로 끊임없이 효율성과 이익추구에 집착하는 동시에, 그의 통치성에 대한 합리화 과정에는 노예해방과 노동자의 권리에 대한 강조가 포함된다. 그는 인간의 권리와 자유와 평등, 사유재산에의 욕망을 부추기고, 자유무역을 통한 시장의 자생성에 대해 강조하는 방식으로 근대국가의 기반을 세워나간다. 『아더 왕궁의 코네티컷 양키』가 바로 이러한 행크의 통치 과정과 특성에 초점을 맞추어 전개된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동시에 이러한 행크의 특징은 19세기 후반 자유 시장 체제가 형성되고 강조되었던 시기에, 경제적 권력의 이용과 유지를 위해 사용된 근대적 통치 질서를 비판하고 있다. 행크를 자본가이자 기업가로 보는 연구가 국내외에서 지속적으로 이루어져 왔으나 행크가 이러한 기업가적 특성을 사용하여 6세기 영국을 통치해나가는 원리 및 성격에 대한 연구는 거의 없다.5 행크가 6세기 영국을 다스리는 방법과 과정은 단지 개인 기업가나 자본가로서의 이윤추구를 넘어서 근대적 통치성의 발현인 동시에, 우리 시대의 통치이성까지 예고하고 있다.

    2미셸 푸코(Michel Foucault)의 1970년대와 1980년대 콜레쥬 드 프랑스(Collège de France)에서 강의했던 내용을 바탕으로 출판된 서적, 특히『사회는 보호되어야 한다』(Society Must Be Defended: Lectures at the College de France 1975-1976) (2003), 『안전, 영토, 인구』(Security, Territory, Population: Lectures at the College de France 1977-1978)(2007)와『생명정치의 탄생』(The Birth of Biopolitics: Lectures at the College de France 1978-1979)(2008)을 통해 자유주의 권력의 계보학을 다루면서 ‘생명권력’과 ‘통치성’이라는 주제에 초점을 맞춘다. 본문에서는 통치성의 개념을 잘 설명하고 있는『안전, 영토, 인구』의 인용을 주로 사용하였다.   3푸코는 통치성의 개념을 설명하면서 자유주의와 신자유주의의 계보에 상당한 지면을 활용하고 있다. 이러한 푸코의 접근 때문에 통치성은 종종 신자유주의 비판과 관련하여 논의된다. 그러나 푸코의 통치성 논의는 특정 이데올로기에 국한하여 설명할 필요가 없다. 푸코가『안전, 영토, 인구』의 첫 장에서 설명하는 바와 같이 통치성에 사용되는 안전장치, 안전 메커니즘은 “완전히 근대적인 관념”이다(15). 근대국가를 관통하는 통치의 기술은 종종 “자유”를 안전장치로 사용하기 때문에 자유주의적 정책과 밀접한 연관이 있으나, 본 논문은 행크의 통치기술을 보다 넓은 의미에서의 근대화, 근대성과 관련된 통치성으로 설명하고자 한다.   4푸코의『안전, 영토, 인구』에 대한 인용문의 번역은 오트르망의 번역서의 전문을 사용했다.   5행크는 종종 자본주의적 특징을 체화한 인물로 설명된다. 때로는 도금시대의 경제윤리를 잘 나타내는 산업자본주의적 기업가로서(심계순), 트웨인의 정치(자유주의)와 경제(자본주의) 신념 간의 모순을 보여주는 인물(Derek Parker Royal)로, 이전까지의 사업가와 가른 정치경제 자본주의 원리를 보여주는 자본주의 영웅(Henry Nash Smith)로, 식민주의 통치의 에이전트(Forrest G. Robinson)로, 근대과학기술과 자본주의 논리가 결합된 경제론을 보여주는 자유방임적 시장경제의 인물형으로(임진희), 발명가로(James Cox), 그리고 파인버그(Lorne Fienberg)는 경제발전에의 우화로 소설을 정의하면서 행크를 기업가로 정의한다. 그런가 하면 제임스 콕스는 행크 모건이 시도하는 자본주의 시스템에 대해 분석하고 있으며, 스미스는 행크를 기업가이자 경영자이자 자본주의자로 정의했다. 또한 앤드류 로우슨(Andrew Lawson)은 트웨인이 도금시대와 미국 자본주의를 통해 반복되는 문제점을 지적하면서 특히 중산층이 보이는 두려움을 그려내고 있다고 설명한다. 행크를 자본가, 기업가로 보는 연구가 국내외에서 지속적으로 이루어졌으나 행크의 이러한 기업자이자 자본가로서의 변화 자체와 그 과정에서 드러나는 경제적 통치원리에 대한 연구는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다. 스미스는 행크가 비도덕적이고 권력적인 이전의 사업가 소설의 전통을 거부하고 가난을 없애려는 동기를 가진 새로운 사업가로서의 모습을 보여주는데 이를 통해 (긍정적인) 정치 경제 자본주의 원리를 그려낸다는 점을 높이 평가한다. 그러나 스미스는 행크가 드러내는 경제 자본주의적 원리 뒤에 숨겨진, 아니 이를 움직이는 동력에 대해서는 설명하지 않는다. 행크의 태도는 변화된 사업가로서의 모습이라기보다는 가난을 타파하고 복지를 통한 인간의 안녕과 자유라는 명목/안전장치 내에서 정치경제 자본주의의 원리를 심어가는 통치적 원리를 드러낸다고 보는 것이 더욱 적절할 것이다. 본 연구는 실제적이고 표면적인 자본주의적 비판으로서의 행크의 정체성과 정치이념에 대한 연구에서 벗어나, 행크를 통해서 드러나는 경제적, 정치적, 혹은 식민주의적 정치성 뒤에서 작동하고 있는 근대적 통치성의 사상적 배경과 현시대와의 관련성에 대해 살펴볼 것이다.

    III. 행크의 통치 기술과 안전장치

    행크는 자신을 “양키 중의 양키”이며 “실용성을 중시하고 감정은 거의 메마른 ”뛰어난 기술자로 소개한다.6 기술문명의 가치를 중시하고 효율성과 이윤창출, 자유무역과 시장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행크는, 19세기 후반을 풍미하던 산업자본주의와 자유주의 신념을 대변하는 인물이다. 그는 군주국가 한 가운데에 생산의 독점을 의미하는 특허청을 내고 공장을 세워, 이윤과 효율성을 창출하는 기업가적 면모를 보인다. 한편 광고매체·미디어·신문을 이용하여 여론을 지배·형성할 수 있는 사회적 기반을 만들고, 사람들을 “인간공장”(Man-Factory)에 넣어 교육시킨다.

    몇몇 학자들이 지적한 대로 6세기로 간 행크는 19세기말 자본주의 경제정신을 바탕으로 영웅적 물질주의, 성공이데올로기를 체화한 자본가로 변모한다. 무기제조공장의 노동자이자 기술자였던 19세기의 행크가 6세기 영국에서 기업자이자 지배자 보스로 변모할 수 있던 요인은 지난 13세기 동안의 문명과 과학 기술 발전에 대한 지식이다. 6세기 영국으로 이동하기 전의 행크는 이미 가문이나 태생이 아닌 자신의 노력을 통해 일반 노동자에서 감독의 위치까지 자라온 자수성가형의 인물이다. 자수성가를 이루었던 경험은 행크에게 미국 자본주의 사회에 대한 믿음을 주었고, 역사적 진보에 대한 성찰은 근대화, 근대성에 대한 신뢰를 주었다. 그런데 푸코가 이야기한 바와 같이 자유주의를 배경으로 한 근대국가는 “경제적 지식을 참조하고 활동하는 통치국가”의 형태를 표방한다 (Security 108). 때문에 행크에게 있어 근대성은 진보와 거의 같은 개념으로 사용되며, 진보와 경제에 대한 신뢰로 인하여 행크는 가족·공동체·국가·개인의 모든 것을 경제로 환원시키고 모든 것을 경제 합리성으로 설명할 수 있다고 믿는다. 행크에게 있어 국가는 수익을 내는 하나의 거대한 기업이며, 자신은 국가라는 “기업을 통해 이윤을 얻어내는 주주”이다(68). 때문에 행크가 자신의 목숨과 일식(eclipse)을 담보로 아더 왕에게 영구 수상 임명과 국가 수익 1%의 지분을 요구한 것은 그에게 있어 당연한 사업적 결론이다(34). 행크는 자신이 카멜롯에 도착한 직후 처음 만난 중세 기사에게 죽게 될 순간에나, 이유 없이 화형당할 운명에 처한 상황조차 “사업적 거래”를 통해 성공신화를 만들 수 있는 기회로 삼는다(31). 생명이 위기에 처한 상황을 사업의 수단으로 이용하는 행크의 모습에서 생명과 기술문명에 대한 지식을 자본이자 이윤 창출의 원천으로 삼는 경제적 합리성을 찾아볼 수 있다.

    행크의 행동과 사고의 전개가 자본주의 체제와 사업자로서의 정체성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이러한 행크의 행동 및 근대국가 체제로의 변화를 정당화하는 이념적 기반은, 근대적 통치성과 이를 지지해주는 자유라는 안전장치에 바탕을 두고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봉건주의적 행정과 통치에 대한 행크의 비판은, 단지 자본주의적 체제에 대한 무한한 신뢰나 사업적 수완에 기반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자본주의 체제를 뒷받침하는 통치적 이념을 실행하고자 하는 노력에서 온 것이다. 행크가 주장하는 세제 개편, 복지, 기계문명의 우위에 대한 교육, 노예제 폐지 등은 시장의 자유로운 이동과 개인의 자유를 안전장치로 하는 근대적 통치성의 발로이다. 이는 푸코가 언급한 통치성, 즉 18세기 이후의 통치는 “안전장치”를 통한 통제되는 사회에 상응한다(108). 앞에서 지적한 바와 같이 이는 영토의 안녕을 위해서 국가를 다스리던 봉건 시대적 통치가 아니라 인구의 안전을 문제시하고 지키는 근대성을 바탕으로 하는 통치 기술인 것이다.

    행크가 6세기의 아더왕의 영국 봉건 사회를 통치하는 방법은 푸코가 이야기한 “자유”라는 안전장치를 통해서이다. 행크는 혁명에 의한 변화나 체제의 급진적 반전을 꿈꾸기보다 6세기 아더 왕국 국민의 자유와 그들의 실재적 이익에 관여하고 사람들의 사고를 전환시킴으로서 국가를 변화시키려고 한다. 행크의 관점에서 6세기 아더왕의 영국 봉건 사회는 규제적 제약, 허용/금지의 이분적 코드에 의한 군림이며 인간의 기본적 자유를 억압하는 제도이다. 중세인들은 영주의 허락 없이는 이주가 불가하고, 빵이나 음식의 생산 또한 영주의 허가를 통해서만 이루어지며, 개인 소유물을 사고 팔 때도 허가를 받고 세금을 지불한 후에야 가능하다(65-66). 이렇게 자기 마음대로 이동하거나 상품의 제작 및 상업이 불가한 아더왕 시대의 자유인이라는 개념은 행크의 19세기적 사고 체계 내의 자유인과 다르다. 행크는 개인의 경제활동 및 사유재산 소유를 제한하는 아더왕의 영국이 자유인의 자유을 오히려 억압하는 “역설적 상황”(this ironic state of things)을 만들어 낸다고 비난한다(65). 행크는 허용과 금지로 이루어진 영국 봉건주의식의 정치를 소설의 여러 곳에서 비판하고 “자유”의 개념을 근대적 개념으로 재정의하고자 한다. 행크에게 자유란 인간의 욕망의 발현과 연관되며 경제적 개념과 맞닿아 있다. 행크는 국민의 도둑맞은 권리와 인권을 찾아주겠다고 말하는 한편, 자신이 세운 학교와 지역에서는 자기소유의 욕망을 가지는 것이 필수적이고 중요하다는 언급은 자유라는 안전장치를 통해 작동하는 통치기술의 일면을 보여준다(68).

    행크가 강조하는 상품과 상업적 목적을 위한 자유로운 상거래와 소비자 이동의 자유는 근대 국가의 바탕이 되는 핵심요건 중 하나이다. 아더왕의 봉건 국가가 영토의 고정과 확보된 노동력을 규제함으로써 생산량이나 소비를 조절하고 악재를 방지하려고 했다면, 행크는 수출과 상품 및 곡물 순환의 자유를 근본으로 삼는 자유무역의 신봉자이다. 근대의 경제적 통치에서는 노동력의 근원이 되는 인간이나 생산 거래 자체에 직접적인 규제적 기제를 사용하지 않고 법적 규율적 권력으로부터 곡물시장을 자유롭게 풀어준다. 대신, 생산의 계기·시장·생산자와 소비자 간의 경제적 행위를 연구, 파악하여, 그 과정에 관여하며 효과적인 결과를 유도한다. 행크가 반복해서 강조하는 “자유”는 이러한 경제활동의 순환과 노동력의 자유로운 이동 및 순환을 전제로 하는 근대국가적 사고를 기반으로 한다.

    따라서 행크의 자유에 대한 강조 혹은 공화국에 대한 열망은, 인간의 자유에 대한 욕망, 소유에 대한 욕망을 자극하고 그들의 정신을 훈련시킴으로써 새로운 통치체계를 만들려는 시도로서 설명되어야 한다. 자유무역과 경제적 합리성에 대한 요구와 주장들 또한 오히려 자본주의 체제의 형성과 유지에 필연적인 통치방법, 혹은 통치권력 형성을 위한 것이다. 근대적 통치성의 실현을 위해 행크는 끊임없이 자유에 대해 언급하고 자유민의 의미와 투표에 대한 중요성을 근대적 의미에서 재해석하여 이를 6세기 중세인들에게 주입시키려 노력한다. 그러한 점에서 볼 때 부의 공정한 분배, 조세의 불평등성에 관한 비판, 노동조합, 이를 위한 정치적 기제와 규제의 필요성에 대한 강조, 귀족중심적인 중세의 현실에 대한 분노, 공화정을 세우겠다는 혁명적인 발상은 인간 행동 양식의 근본을 경제적 문제로 생각하고, 인간을 경제적 동물로 인식하는 관점에 뿌리를 두고 있다. 이러한 인간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하여 행크는 신문, 광고 및 교육 등을 통해 중세인을 훈련시켜 자유를 열망하게 하고, 자본주의의 기초적 틀에 동의하게 함으로써 봉건주의적 사고를 자본주의 체제에 맞게 바꾸어 가동시키는 정신적, 이념적인 사고로의 전환을 유도한다.

    6Mark Twain, A Connecticut Yankee in King Arthur’s Court (New York: Norton, 1982) 1. 이후의 인용은 본문에서 페이지만을 표시함.

    IV. 새로운 계약-통치성과 훈육, 그리고 비주체화

    행크의 혁명은 내부로부터의 변화가 우선된다. 그는 혁신이나 군사를 통한 변화가 아니라 “정부 체계의 전반적인 변화” (“the wholesome change in its system of government” 67)를 강조한다. 국가 자체와 국가를 다스리고 움직이는 제도적인 장치를 구분하면서 이 나라의 96%에 해당하는 평민에게 필요한 것은 유혈사태의 혁명과는 다른 “새로운 계약” (a new deal)이라고 설명한다.

    이 새로운 계약은 19세기적 자유주의 국가에서 통용되는 개인의 소유와 욕망이 허용하는“자유”의 개념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이 새로운 계약을 통해 행크는 국가 체제에 전체적인 변화를 일으켜 근대국가를 꿈꾼다(67). 그러나 행크가 원하는 변화는 유혈적 혁명과 강제적 변화가 아니다. 그는 혁명들이 실패한 이유를 혁명에 걸맞게 교육받지 못한 혁명의 추종자들에게서 찾는다. 즉 그는 역사적 혁명 과정을 분석하되 혁명이 보여주는 현상적 이유가 아니라 혁명의 과정과 변화를 관찰함으로써 혁명의 가능성과 효율성을 찾는 것이다. 때문에 행크는 자신이 제안한 새로운 계약, 즉 혁명의 주체이자 대상이 되는 국민 의식의 변화에 주목한다. 그리고 사람들을 훈련시켜고 그들이 자기를 “도와준다면 이 나라를 위해 큰일을 해낼 수도 있을” 것이며 혁명적 변화를 이룰 수 있을 것이라고 굳게 믿는다(67). 행크가 구상하는 통치국가는 영토성이 기반이 되는 봉건 사회와는 달리 “대중(masse)에 의해 정의” 되는 근대국가이다(Foucault, Security 110). 따라서 소수에 의해 일어나는 혁명이라는 의미에서가 아니라, 혁명의 추종자, 즉 대중을 변화시켜 그들을 기반으로 하는 근대적 의미에서의 통치의 개념을 사용한다. 그러한 이유로 행크에게 신문을 발행하고, 인간공장에 가능성이 있는 사람들을 보내어 교육을 시키는 “훈육” (training)의 개념은 중요하다(87). 이때의 훈육은 통치국가의 실현을 위해서 “호모 에코노미쿠스의 행위를 완벽하게 구체적으로 고찰해야” 하는 정치경제학적 분석과 연관된다(Foucault, Security 41). 근대적 체제는 규제와 금지보다는 경제활동 과정에 대한 지식을 기반으로 하기 때문에 시장 매커니즘 및 생산자와 소비자, 즉 인간의 행위에 대한 분석을 중요시한다. 이러한 분석과정이 곧 개인과 집단의 능력향상을 자본에 흡수시키고 자유를 내면화시키는 수단으로 작용한다. 결국 이러한 정치경제적 활동에 적합한 인간에 대한 조절을 가능하게 한다. 그러므로 근대적 통치성의 발현에서 통치의 대상이 되는 인간에 대한 분석은 필연적이 된다. 근대적 체제내에서 푸코가 경제적 인간이라고 불렀던 주체로의 변화가 행크의 통치 방식에서 “훈육” 이라는 형태로 나타난다.

    근대 체제에 맞는 인간으로의 변화를 위한 “훈육” 의 중요성을 행크가 반복하여 강조한 장면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행크에게는 태생이나 가문과 대조되는 재능과 훈련, 교육이 중요하다. 이는 훈육 자체가 인간을 국가와 공공의 이익과 경제적 유익을 위해 사용할 수 있는 효율적 인적자본을 재생산하는 수단이자 과정이 되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행크에게 있어 인간은 개별적 사고와 이성에 의해 행동하는 주체적인 개인이 아니라 사회적 훈련의 결과로 만들어진 존재라는 점이다. 아더왕이 죄에 대한 증거 없이 사람들을 감금한다든지 온 가족을 굶어 죽게 하고도 잘못을 모르는 것, 모건 르 페이(Morgan le Fay) 여왕이 동굴 속 죄인들을 잔인하고 비인간적으로 다루고, 이유 없이 자기 기분에 따라 사람을 죽이는 비합리적 사고 등을 행크는 봉건주의식 교육과 훈련의 결과로 단정한다. 뿐만 아니라 노예제의 비인간성이나 영주의 횡포를 적극적으로 수긍하고, 자유무역과 보호무역의 차이점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중세인들의 무지 또한 봉건사회에 길들여진 반복된 훈련의 결과로 간주한다.

    행크는 인간에게 자발적 의견이란 존재하지 않으며, 인간은 모든 것을 훈육에 의해 생각하고 행동하게 된다고 말한다. 행크의 이러한 발언을 반영하듯 트웨인은 인간이 이성과 생각을 가지고 주체적으로 행동하는 존재가 아니라, 기계에 지나지 않으며 훈육에 의해 길들여진다고 말한다(What is Man? 3-17, 57-71). 이러한 트웨인의 인간에 대한 사유는, 경제적 근대화 과정에서 유용성과 효율성에 갇힌, 푸코가 설명한 경제적 인간과 맞닿아 있는 것이다. 『인간은 무엇인가?』에서 트웨인은 노인(the Old Man)의 입을 통해 인간은 “외부의 영향” (outside influence)에 의해 훈련되고 교육된 존재로서 외부 영향에 의해 움직이고 조종된다고 설명한다(7). 인간의 사고 구조를 기계화시키고 조종하는 트웨인의 “외부의 영향”이란 자기 자신을 경제화시키고 인적 자본화하며 재구조화함으로서 경제적 인간으로 만들어내는 푸코의 근대적 통치성을 의미하는 것으로 파악 가능하다. 이러한 사고가 행크를 6세기 영국 내에 혁명을 꿈꾸는 보스로 변신시키고 중세인들을 기계적으로 훈육시킨 통치적 구조이다. 트웨인은 비인간적인 봉건주의의 비판 이면에 오히려 그것과 유사한 결과를 낳은 근대적 통치성과 경제논리의 부작용을 암시하고 있다.

    자유와 기술적 진보를 약속하는 행크의 훈육은 독립적 사고가 가능한 자율적인 인간을 만들어 내기 보다는, 그들을 근대화 과정에서 소비되는 유용하고 효율적인 자본으로 재생산하는 부작용을 가져온다. 행크의 훈육의 개념은 인간의 사유와 자유를 인정하여 행복과 소유·효율성을 극대화하기 위한 것임에도, 이 훈육의 과정은 오히려 푸코가 설명한 기계적이고 “조작 가능한 인간” (a manipulable man)을 만들어 낸다(Birth 270-71). 이는 다분히 모순적이다. 결국 행크가 모건 르 페이 여왕과 다른 중세인들이 봉건제도에 길들여진 태도에 대해 비판했듯이 독자들 또한 행크의 훈육 결과에 한탄할 수 밖에 없다.

    대표적 예를 행크가 카멜롯 한가운데 세운 “인간공장” 이라는 기술학교에서 찾아 볼 수 있다. 행크는 봉건주의가 규제와 금기를 통해 인간의 행동을 통제·조정하는 것과 다른, 봉건사회에 혁명을 일으킬 수 있는 새로운 훈련을 시도한다. 웨스트 포인트(West Point)와 같은 장교 양성 학교와 기술학교인 “인간공장”을 통해 근대적 사고방식을 교육하고, 자유· 복지·노동의 보호와 경제적 진보라는 공공의 목표를 세워 사람들의 사고를 합리화시키는 훈련을 시도한다. 행크는 모건 르 페이 여왕의 감옥에 갇히고 고문에 시달리던 사람들을 해방시킬뿐 아니라, 그들을 봉건제의 속박에서 자유와 처벌로부터 안전한, 더 나은 삶에 대해 약속함으로써 근대화 프로젝트인 인간공장에 합류시킨다(67).

    그러나 “인간공장”을 통해 훈련시킨 결과는 정체성이 소거된 기계적 인간의 양산일 뿐이었다. “인간공장”은 그 이름이 반영하듯 중세의 인간을 19세기의 기술과 사상에 맞는 사람으로 찍어내고 조작하는 정신훈련장소이다. 즉 행크에게 인간은 개선해서 상품화해야 할 ‘어떤 것’이 되고 만 것이다. 행크는 심지어 인간공장을 “나의 식민통치구역”(my colony)이며 “무식한 자동기계를 인간으로 개조하는 공장” (a factory where I am going to turn groping and grubbing automata into men)이라고 설명한다(89). 이는 봉건주의 체제에 길들여진 중세인들을 자유주의 시장체제에 적합한 인간으로 만들겠다는 사고방식 자체의 전환을 의미한다. 이러한 변화를 만들어 내는 훈육의 장소가 “공장”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것은 의미가 있다. 봉건제도와 귀족들의 권력 아래서 로봇과 같이 움직이는 중세인을 바꾸려는 시도가, 사실은 근대화와 혁명이라는 이름 아래에서 경제적 요건에 의해 통치되는 조작 가능한 기계적 인간으로 개조한 것에 지나지 않음을 내포하기 때문이다. 마지막 장에서 행크가 중세 교회와 봉건주의 기사 집단에 맞섰던 샌드벨트 전투(Battle of the Sand Belt)가 이를 잘 보여준다. 이 전투에 참여하는 행크 수하의 52명 소년 사관들이 바로 행크의 경제 원리에 맞는 기계적 인간으로 훈련된 집단이다. 행크의 수제자 클라렌스(Clarence)는 마지막 전투에 참여할 군인으로 52명의 소년을 선택하는데, 그 이유는 그들이 중세적 사고에 영향을 받기 이전 “인간공장”에서 훈련을 받았기 때문이다(242). 아직 중세적 사고와 구조에 교육되기 이전의 소년들에게 근대적 가치체계를 세뇌시켰다는 의미이다. 그들은 중세 사회와 귀족들, 시대적 상식에서 벗어나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도록 훈육된 듯 보인다. 그러나 52명의 소년병들은 통치에 최적한 존재로 빚어낸 ‘조정하는 통치성의 궁극’을 보여줄 뿐이다.

    소년들을 훈련과 교육이라는 형식의 투자를 통해서 소비 가능한 자본으로 재생산한다는 점에서 행크의 인간공장이 보여준 교육 혁명은 다름 아닌 기계화, 비인간화, 비주체화 과정으로 볼 수 있다. 소년 사관들은 이름 없이 52명이라는 경제적 수치만으로 표시되는 노동자이며, 행크의 사업 확장과 유지를 위해 효율적으로 소비할 수 있는 자본에 지나지 않는다. 행크는 기술과 자유주의가 인간의 구원이며, 과학기술로 세워진 물질적 진보는 문화적이고 궁극적인 진보라고 믿는다. 그러나 행크의 선전과는 달리 “자동기계”에서 “인간”으로 변모했어야 하는 52명의 소년들은, 행크의 명령에 따라 전기충격과 다이너마이트를 사용하여 삼만 명의 중세 기사들을 무참히 학살하는 살인병기가 된다. 52명의 소년 사관들은 삼만 명 중세 기사에게 대항할 수 있는 소수의 효율성을 상징하는 존재, 개별성이나 주체성이 사라진 무리일 뿐이다. 이는 인간의 가치를 수량적·자본주의적 관점에서 계산하고 인간을 기능이나 물질, 사업 확장의 도구로 보는 행크의 근대적 사고의 결과물이다.

    같은 맥락에서 사회 내에 존재하는 인간과 노동력은 국가를 운용하는 인적자본으로 파악된다. 행크는 국가 인구의 70%를 차지하는 자유인·평민·자영농이 곧 사실상의 국가 자체이며 귀족, 왕족은 게으르고 비생산적이며 낭비하고 부수는 아무짝에도 소용없는 존재들이라고 정의한다. 이는 민주적이고 약자에 대한 배려로 포장되어 있을 뿐, 실은 공리적이고 경제적인 기준을 적용한 개념이다. 그는 인간을 수량화·객체화하여 “사실”이나 “물질”또는 “기능”으로 다루고 경제적 용어와 기술적 통치를 바탕으로 국가를 운영한다. 행크는 인구를 신분에 따라 나누는 대신, 효율성과 경제적 개념에 따라 노동자와 비노동자, 육체 노동자와 지적 노동자, 생산적 존재와 비생산적 존재 등으로 분류한다. 동시에 사회활동이나 종교 활동을 경제적 영역과 구분하지 않는다. 추상적 개념, 비경제적인 활동 또한 낭비될 수 없는 경제적 수단이 되기 때문이다.

    행크의 세계에서 중세의 권선징악, 성배 찾기, 정의와 모험 등의 추상적 가치는 저하된다. 소설의 초반부 외화(外話: frame narrative)에 서술되는 명예와 고귀함의 상징으로서의 원탁기사 이야기는 몇 페이지 후에 행크의 서술 속에서 과장스럽고 우스꽝스러운 기사의 허풍으로 가치절하되고, 행크에게 훈련받은 원탁의 기사들은 무기와 방패 대신 광고와 상품으로 무장한 방문판매원으로 전락한다. 기사들은 성배 대신 상품의 구매자를 찾아 나서고, 괴물이나 마법사가 아닌 다른 기사와의 판매경쟁에 각축전을 벌인다. 행크의 훈련에 익숙해진 기사들은 비누를 팔지 못해 의기소침해지고, 다른 기사와의 판매경쟁에 열을 올리기도 한다(79). 그들에게 선/악이라는 가치 체계는 판매와 수익, 고객유치라는 통계적·수치적 개념으로 대체되고, 자신의 판매와 사업을 방해하는 또 다른 기사나 자연현상이 추상적인 악(惡)의 개념과 교환된다. 결국 그들이 갈망하는 이동과 상업의 자유는 수치와 경제적 개념 및 시장 내에서만 가능한 역설적 자유가 되고 만다.

    추상적 이념과 경제적 행위를 뒤섞는 행크의 통치 특징은 22장에 등장하는 유명한 ‘은자의 이야기’에서 잘 드러난다. 행크는 성스러운 계곡(the Valley of Holiness)에서 반복적으로 머리를 다리까지 굽히는 은자의 종교적 기도 행위에서 기계적 에너지를 찾아내고 그를 ‘인간 재봉틀’로 상품화시켜서 수익을 얻는다. 몇 년 후 재봉틀을 돌리던 은자의 체력이 저하되어 생산력이 떨어지자 행크는 ‘인간 재봉틀 사업’을 다른 사람에게 팔아버렸다고 무심히 서술하면서 그동안 그가 만들어낸 옷감과 수익을 계산한다(130). 행크가 운영하는 경제체제에서 은자의 종교적 행위는 본래의 의미를 상실한 채 기계적인 동작으로 전락하여 동력을 만들어 내는 인적 자본이 되고, 그의 종교적 명성은 “죄악에 물들지 않게 막아줄 수 있는 옷”이라는 광고적 효과를 창조하여 이윤을 극대화시킨다(130). 이 장면은 데이비드 파커 로얄(David Parker Royal)과 찰스 골드(Charles H. Gold)을 비롯하여 다수의 비평가가 지적한 바와 같이 자본주의 기업가로서 행크의 면모를 확연하게 보여준다.7

    그러나 사업수단이 대단한 기업가로서의 행크의 행적을 보여주는 이 사건의 중심에는 그의 통치적 기술이 작동한다. 행크는 은자에게서 1인 기업의 가능성을 발견하는데, 이는 은자를 주목하는 순례자들이라는 집단에 대한 관찰과 분석에 의거한다. 이 장면에 대한 비평은 종종 은자의 인간 재봉틀화 현상에 집중되며, 행크가 인구/순례자들을 대하는 태도에 대한 분석은 간과된다. 행크는 빼곡하게 몰려들어 은자의 기도행위를 구경하는 순례자들에게서 은자와 종교적 경건을 향한 욕망을 정확하게 읽어낸다. 이러한 관찰을 통해 행크는 은자를 “세상에 하나뿐인 성 스타일라이트”(the only genuine St. Stylite)를 생산해내는 개인 기업으로 재창조해 낸다(120). 이는 은자의 물리적인 행위 속에 담긴 종교적 의미와 신념과 같은 추상적 개념도 원하기만 한다면 소유 가능하며, 이러한 소유에의 열망을 부추키고 긍정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행크에게 중요한 것은 은자의 행위가 종교적 여부에 달린 것이 아니라 이것이 시장 가능성이 있는, 즉 인간의 욕망을 불러오는가 하는 점이다. 순례자들이 보이는 욕망의 자연성이 바로 행크가 추구하는 근대의 인구를 특징짓고, 전체적 이익을 생산하게 된다.

    따라서 은자의 이야기는 이러한 통치의 개념을 드러낸다. 때문에 이 장면에서 은자가 아닌 은자를 욕망하는 대중으로서의 순례자들에 초점을 둘 필요가 있다. 행크의 통치가 그들의 욕망을 분석하여 이를 극대화 할 수 있는 경제적 수치로 계산해 내는 과정에서 작용하기 때문이다. 즉, 종교적 경건을 살 수 있다는 경제적 개념을 심어 종교와 경제 영역을 뒤섞고 그 경계를 무너뜨려 종교를 경제로 환원한 것이다. 이러한 태도가 바로 “통치 자체의 본질을 경제 형식으로” 바꾸는 근대성에 기반한 가치이다 (Foucault, Security 146). 행크는 자유를 제한하는 봉건사회를 비판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행크가 강조하는 자유의 의지는 시장의 바깥으로 나가지 못하는 올가미에 갇힌 존재가 된다. 사회 전체를 하나의 시장으로 본다면, 그 속의 개인과 집단은 모두 시장의 내적 과정적 매커니즘에서 움직이는 경제적 인간이 되는 것이다. 행크는 인간을 중세의 억압과 전제로부터 해방시키는 동시에, 인간 자체를 자본화시키고 시장에 갇힌 존재로 생산해 낸다.

    이는 인간의 정신과 이념 내에 드리운 행크의 통치적 원리를 나타낸다. 행크는 인간의 욕망을 연구하고 이를 조절함으로써 인간의 의견과 요구를 시장원리로 재구성하고 내면화한, 조작과 통치가 용이한 주체를 만들어낸다. 가장 완벽한 자유에의 요구가 궁극적으로는 이익 실현을 위한 관리와 조작의 자발적 수용으로 변모하고, 오히려 가장 철저한 감독과 관리의 국가로 탄생으로 이어지는 모순을 가져 온다. 행크가 꿈꾸었던 근대국가의 형태가 권총과 위협을 통해 이루어진다는 점이 이를 증명한다. 39장 기사들과의 결투에서 행크는 기사들에게 권총을 겨누고 그 본보기로 몇 명을 살상한 후에, 오랫동안 비밀리에 준비해왔던 공장과 기술문명을 6세기 영국 위에 건설한다. 자연스러운 시장의 구성, 그리고 자유와 진보에 대한 실현이 결국 기사들에 대한 으름장과 이들을 감독하는 50명의 지원군의 감시를 통해 이루어졌다는 점은, 근대국가 통치기술의 이면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상징적이다. 또 행크의 개혁을 이루어낸 권총과 탄환의 이미지는 행크의 통치기술의 기반이 되는 경제적 통치의 상징과 혼합된다. 34장에서 행크는 화폐개혁과 실행에 대한 자랑으로 ‘밀러건’에 대해 설명한다. 밀러건은 그가 화폐를 지니고 다니기 위해 발명해 낸 총의 모양을 하고 있는 일종의 지갑이다. 밀러건은 총을 쏘는 것과 같은 자세로 탄환모양으로 된 화폐를 꺼내게 되어 있다. 행크는 “탄환을 지불하시오” (“Paying the shot” 194)라는 말이 일상어로 등장하게 될 것이라는 기대감을 표출하는데 이는 행크의 자유시장체제가 불러 올 공격적이고 위협적인 미래에 대한 암시로 볼 수 있다. 더욱이 밀러건은 절대로 위조할 수 없는 행크만의 독점 제조기술에 바탕을 한 것임을 고려할 때, 이는 시장의 자율성에 대한 행크의 통치기술 이면에 존재하는 감독과 관리의 기술을 드러내는 상징적 도구가 된다. 결국 행크의 통치체제로 환유되는 밀러건의 이미지는, 떠돌이 기사들에 대한 권총 위협을 통한 근대 통치 체계의 구축, 그리고 다시 통치술의 결과를 상징하는 샌드벨트 전투의 다이너마이트를 사용한 대량살상 장면으로 이어진다.

    결국 자유라는 안전장치와 이를 바탕으로 한 통치기술은 카멜롯(Camelot)의 전체주의와 통치 형식 및 유지방법을 제외하고 크게 다르지 않다. 전체주의가 소수의 군주나 귀족의 절대 권력에 의한 통치를 의미한다면, 행크의 체제는 대다수 국민 복지와 경제적 안정을 추구하며 국민 대다수에게 경제 활동과 이동의 자유를 부과한다는 미명 아래 모든 것을 생산력과 자본으로 바꾸어 이용하는 경제적 합리성에 바탕을 둔 통치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행크는 중세 봉건 사회를 19세기 자본주의 체제로 근대화시켰으나 상업주의 유지, 독점의 승인, 이윤 창출, 생산 확대 등의 산업체제 유지를 위한 통치적 권력에 바탕을 둔 또 다른 의미에서의 전체주의적 특징을 드러내고 만다. 자유민주주의적 의식과 전체주의적 사고의 공존이라는 모호성은 그가 추구하는 경제적·기술적 진보를 사용하여 국민들의 삶을 조절하려는 통치적 방법에서 비롯된 것이다. 행크는 유토피아적 경제체제를 중세 영국 위에 세우고자 했으나 아이러니하게도 체제에 반대하는 무리를 다이너마이트와 전기충격이라는 근대적 기술을 사용하여 폭력적으로 제거하는 독단적이며 폭력적인 전체주의의 경향과 닮아 있다. 이러한 과정에서 인간은 기계화되고 획일화되어 결국 주체성을 박탈당하게 된다. 이러한 치명적 통치성의 결과는 샌드벨트 전투의 대학살사건의 죽음으로 나타난다. 다이너마이트와 전기충격의 근대적 무기와 이를 사용하도록 훈련된 소년들이 이끄는 행크의 군대가 중세 기사들을 몰살시켰으나 곧 시체에서 나오는 독기로 모두 죽어 버린다. 클라렌스의 말과 같이 행크와 그의 군대는 결국 “승리했으나 패배해 버린” 결과를 낳는다(“we had conquered; in turn we were conquered,” 256). 즉 기사들과 중세교회의 권력을 근대적 기술력을 통해 승리를 얻었지만 그들 자신의 죽음마저 초래한다. 소설의 마지막 부분은 행크의 근대적 통치이성이 가져올 수 있는 자학적인 특징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결말이 된다.

    7골드는 이 거룩한 은자의 에피소드를 상업적 인식과 냉소주의가 뒤섞인 풍자적 장면으로 설명한다(139). 그런가 하면 로얄은 은자를 재봉틀을 돌리는 인간 모터로 만든 이 사건을 비천화(debasements)를 통해서 민주화적 목적을 이루어 내고 있음을 지적한다. 로얄은 이러한 역설적 특징이 행크의 인간에 대한 이중적이며 일관성 없는 사고를 보여준다고 비판한다(18-19).

    V. 시대 비판으로서의『아더 왕궁의 코네티컷 양키』

    6세기 봉건국가에서 더욱 확연하게 표출되는 행크의 경제적 합리성과 이를 바탕으로 하는 경제적 인간은 그 뿌리를 근대적 통치성에 두고 있다. 자유라는 안전장치를 통해 움직이는 근대적 통치성은 개인의 욕망과 이익 추구, 욕망의 실현에 비집고 들어가서 인간의 행동 방식 자체를 조절하고 관리·내면화하는 방식이다. 소설 속에서 행크가 국가를 운영하는 통치이성은 훈육/교육을 통해 세뇌되고 조절되는 인간의 행동 양식의 변화에 초점을 맞춘다. 결국 통치성의 핵심이 되는 인간공장을 스스로 “나의 식민 통치 구역”라고 불렀던 것과 같이 인간의 사고에 작용하는 통치이성은 전체주의 이상의 내부적 식민지화를 의미한다. 트웨인은 이 소설에서 아직 낙관주의와 진보주의가 지배하고 있던 19세기의 미국 자본주의의 문제점을 지적한다. 오히려 자유라는 안전장치 내에서 조종이 가능하고 기계화되는 근대적 통치성의 부작용을 과장하여 보여준다. 효율성과 생산성을 맹목적으로 추종하고 이윤 확대를 목적으로 성공신화를 추구했던 19세기 후반의 미국은 동시에 부패와 격심한 빈부간의 격차, 인간이 기계로 교체되는 주체성과 개인성의 부재를 경험하기도 했다. 행크의 효율성과 이익추구에 집착하는 모습이나 노예해방과 노동자의 권리를 강조하면서도 인간을 기계적인 이윤추구의 도구로 취급하는 모습은 19세기 후반 미국 자유주의적 경제 논리가 가져온 위험한 일면을 그려낸다.

    특히『아더 왕궁의 코네티컷 양키』의 마지막 장면인 샌드벨트 전투는 윤리가 사라진 타락한 자유주의적 통치성에 내포된 대량살상의 위험성을 보여준다. 행크가 만들어낸 자본주의 기업정신은 중세 기사들의 원탁을 투기가 성행하는 장소로 바꾸고, 대표적 원탁의 기사인 랜슬럿 경(Sir Lancelot)을 주식시장을 조작하는 투기꾼으로 만들었으며, 결국 샌드벨트 전쟁으로 이어진다. 행크의 다이나마이트, 랜슬롯 경의 주식조작 사건과 샌드벨트 전투의 대량학살 장면은 1910년대의 제 1차 대전과 1930년대로 이어지는 경제대공황에 대한 예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트웨인은『아더 왕궁의 코네티컷 양키』를 통해 자본주의와 기계문명을 전면 부정하지는 않지만, 근대적 통치이성의 분신과도 같은 행크의 허무한 죽음으로 끝을 맺는 소설의 결말을 통해 윤리성이 배제된 근대적 통치이성이 가져올 수 있는 결국을 암시한다. 『아더 왕궁의 코네티컷 양키』는 트웨인이 19세기 미국의 경제적 자본주의적 현상 및 기술진보의 영역을 넘어서 그러한 근대국가의 현상과 체제의 기반이 되는 통치기술 자체에 대한 시대적 통찰력을 보여준다. 이는 19세기 미국뿐 아니라 이 후의 세계대전과 우리 세대의 통치이성에 이르는 미래를 예견하고 경고한다는 점에서 중요한 작품으로 재평가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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