랭보의 ‘타자’에 대한 재해석 또는 제해석

La reinterpretation et la multiplicite des interpretations du “Je est un autre” rimbaldi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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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ABSTRACT

    “Car Je est un autre. Si le cuivre s’éveille clairon, il n’y a rien de sa faute.” Dans ces phrases de Rimbaud, le “je” n’existe que pour amorcer une motivation qui provoque son propre cours et s’accomplit sans le rôle du sujet. Ensuite, le poète éclipse l’ordre de la volonté et du “je” pour l’introduire dans le monde de “l’inconnu”. Il y a donc ici une nette distance entre le “je” et “un autre”.

    Quelle est alors cette approche du poète qui rend encore plus mystérieuse l’expression poétique “un autre”? Pour répondre à cette question, nous avons choisi d'adopter une partie en trois chapitres: 1) la structure des lettres dites “du Voyant”, 2) La réinterprétation du ‘Je est un autre’ rimbaldien, 3) le concept de corrélation entre ‘un autre’ et “un voyant”.

    Nous avons cherché à comprendre le concept de l’ ‘autre’ de Rimbaud dont les interprétations sont pléthoriques dans le “Je est un autre”. Les recherches que nous avons menées concernant cette conception nous ont conduit à poser une constatation psychologique simple: Je-Conscient et Autre-Inconscient. Car Rimbaud dit ‘JE est un autre. Tant pis pour le bois qui se trouve violon, et Nargue aux inconscients, qui ergotent sur ce qu'ils ignorent tout à fait !’

    Ensuite, pour connaître le concept de corrélation entre ‘un autre’ et “un voyant”, nous avons réinterpréter, en effet, les trois étapes (Je - Autre - voyant) qui sont d’une importance capitale pour comprendre la théorie de Rimbaud. Il s’agit ainsi de suivre l’évolution du “Je”: l’ “autre” est donc le lieu où s’effectue d’abord la transformation d’une réalité négative, pour ensuite arriver à une réalité positive par la seconde transformation qui annonce l’avenir. L’ “autre” devient ainsi le “voyant” des temps futurs dessinant le monde à venir ou voyant un nouveau monde qui s'appelle l’inconnu.

  • KEYWORD

    Rimbaud , Voyant , Je est un autre , Autre , Lettres du voyant , Lettres du voyant

  • 1. 들어가는 글

    랭보의 「투시자의 편지 Lettres du voyant」는 1871년 5월 [13]일과 1871년 5월 15일에 그의 스승인 조르주 이장바르(Georges Izambard)와 이장바르의 친구였던 폴 드메니(Paul Demeny)에게 각각 보낸 두 서간문을 말한다1). 두 명의 서로 다른 수신자에게 발송된 이 편지는 분량과 내용 면에서는 조금 차이는 있지만 중심 주제는 ‘타자 Autre’ 및 ‘투시자 Voyant’에 대한 정의와 투시자가 되는 방법을 기술하고 있다. 여기에서 랭보는 진정한 시인이라면 투시자이고 또 미지의 세계에 도달해야 한다고 피력하면서 고대부터 그가 살던 당대의 시인까지 그들의 문학적 업적 및 투시자와 그렇지 않은 시인이 누구인지 밝히고 또 평가한다.

    이 편지는 랭보의 시론과 작시에 대한 그의 새로운 비전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그 중에서도 그가 투시자 이론을 설명하기 위해 차용하는 ‘타자’는 서양의 사상에서 ‘나를’ 인식하기 위한 중요한 개념으로 ‘나 Moi’의 대척점에서 타자와 ‘나’를 구별하고, ‘나’라는 정체성을 확고하게 한다. 특히 현대 프랑스 사상에서 중점적으로 다루어지는 타자성2)은 일반적으로 ‘나 (동일자)’와 다른 사물이나 사람의 뜻으로 사용되지만, 랭보의 타자는 ‘나’ 속에 존재하는 ‘다른 나’ 또는 동일자 속에 존재하지 않는 어떤 이질적 요소 또는 ‘나’라는 의식으로 잘 감지되지 않는 것 등을 말한다. 본 연구에서는 ‘의식으로 잘 감지되지 않는’ 이것을 나 속에 존재하는 무의식적 자아로 인식하고 변증법적 방법론을 통하여 고찰할 것이다.

    본고에서는 먼저 「투시자의 편지」의 수신인과 편지의 구성에 관해 간략히 살펴본다. 이 고찰은 청소년 랭보의 사회적 관계를 가늠하게 하는 동시에 랭보의 문학적 사고와 시적 발달의 과정을 이해하는데, 기여할 것이다.

    그다음 장에서는 일반적으로 ‘Je est un autre 나는 타자이다’라고 번역되는 문장의 문법적 해석 및 단언적 명제의 재해석을 통해 ‘타자’의 정치한 해석을 도모한다. 그리고 ‘타자: 내 안의 또 다른 자아’와 ‘무의식으로서의 타자’라는 주제의 변증법적 고찰을 통해 랭보의 ‘타자’에 대한 심층적 의미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 장에서는 ‘타자’의 개념과 이 편지의 중심 주제인 ‘투시자’가 어떤 관련을 하느냐에 대해 살펴볼 것이다. ‘나란 타자이다’라는 개념은 ‘투시자’를 설명하기 위해 제시된 세부 개념인 동시에 투시자로 가는 과정이다3). 이 개념이 투시자가 되기 위한 인식론적 방법에 국한되기는 하나, 일종의 사상적 명제이기 때문에 투시자를 이해하는 주요한 키워드가 된다.

    본고에서는 앞서 살펴 본 이러한 주제를 통해 ‘타자’에 대한 심도 있는 이해에 도달하고자 한다. 하지만, 한계로 작용할 수 있는 점은 「투시자의 편지」가 가진 난해한 상징적 비유로 인해 지금도 풀리지 않는 「모음」의 해석처럼 해석에 해석을 낳는 반복적인 고찰이자 하나의 첨언 정도로 그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모호함은 모호함 자체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시대를 그리고 공간을 초월하여 새롭게 해석되어 지는 깊이로 작용한다는 점에서 연구의 의의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1)본 연구를 위한 기본 텍스트는 ‘RIMBAUD (A.), Œuvres Complètes, Gallimard, 1972’ 이다.  2)타자성을 다루었던 프랑스 사상가로는 문학가이기도한 사르트르를 비롯하여 푸코, 데리다, 레비나스, 들뢰즈 등이며, 이들은 타자의 개념을 동일자와 반대 또는 대립되는 개념으로 주로 사용하였다.  3)1871년 5월 [13]일 이장바르에게 쓴 편지에서는 ‘투시자’에 관한 이론의 설명직후에 ‘On me pense 사람들이 나를 생각한다’라는 인식의 문제를 ‘타자’와 결부하여 설명한다. 그리고 이틀 후 드메니에게는 ‘낭만주의’에 대한 평가 직후 ‘타자’의 개념을 ‘Moi 자아’의 개념과 연결시키고 있어 ‘타자’는 자아인식을 위한 주요 개념임을 알 수 있다.

    2. 「투시자의 편지」와 그 구성

    랭보가 「투시자의 편지」를 쓸 무렵인 17세를 전후하여 주요 대화 상대는 그의 스승 이장바르였으며, 이들의 편지 교환은 일 년 반 정도 지속되었다4). 그의 스승이었던 이장바르에게 보낸 첫 편지에서 랭보는 개인과 관련된 문제뿐만 아니라 사회상황을 둘러싼 문제 그리고 시의 영역까지 의견을 교환하고 있어 그들의 관계가 매우 친밀했음을 보여준다. 반면, 드메니에게 보낸 편지는 개인적 친분보다는 문학과 시에 국한되어 있어 일종의 ‘사회적’ 관계였음 추론할 수 있다.

    이장바르에게 보낸 편지에서 랭보는 “아! ‘――저는 어머니처럼 선생님을 의지하고 있으며 또 저에게 선생님은 언제나 형님 같았습니다. [⋯] 저는 선생님을 형님처럼 좋아하고 아버지같이 사랑할 것입니다.”5) 라며, 간결하지만 진실하고 친근한 어조로 그는 이장바르를 형, 아버지, 어머니만큼 믿고 의지했다고 말한다. 반면, 폴 드메니에게 쓴 편지6)는 사적인 감정보다는 문학과 작시라는 더 협소한 주제의 대화이다.

    이장바르에게 쓴 편지와 달리 드메니에게는 그가 구상하던 새로운 시론과 투시자라는 새로운 시인상을 제시하며 이성적인 논리를 피력한다. 이는 그들이 문학과 시에 대해 깊은 관심과 열정으로 대화했음을 보여주지만, 정작 드메니가 랭보의 시론에 얼마나 공감을 했는지에 대해서는 문헌적 근거의 부족으로 알 수 없다. 하지만 랭보가 이 편지의 첫 서두에 새로운 문학에 관해 그에게 강연하기로 했다는 어조를 보건데 랭보가 어리지만 그가 의견을 주로 피력하고 드메니가 소극적인 조언을 했을 것이라는 추론이 가능하다.

    「투시자의 편지」가 결코 일상적인 편지가 아닌 이유는 프랑스 문학의 전반적 역사와 시인에 대한 개인적 평가 그리고 자신의 새로운 시론을 비유와 암시를 통해 밝히고 있기 때문이다. 먼저, 이 편지에 대한 간략한 내용과 구성에 대해 살펴보다.

    첫 편지는 약 45행의 본문에 「사형당한 마음 Le coeur supplicié」이라는시 한 편을 동봉하였으며, 전반부 11행은 자신의 주위에서 일어나고 있는 정치적 상황 즉, 1871년 3월 18일 시민혁명 이후 혁명정부의 실패 직후 그가 받은 충격과 분노를 묘사하고 있다. 12행 째부터 그 분노를 새로운 시론으로 잊으려는 듯 자신은 스승처럼 ‘주관적인 시 Poésie subjective’가 아닌 ‘객관적인 시 Poésie objective’를 적겠다는 내용을 14행에 걸쳐 밝힌다. 그 이후에는 그의 새로운 시인상 ‘투시자’ 그리고 ‘Je est un autre.’7)의 개념을 목재와 바이올린에 비유하며 11행에 걸쳐 짧게 설명하고 있다. 이장바르에게 보내진 첫 편지는 현 사회상황과 자신의 입장 그리고 그가 최근 구상하고 있는 시론의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고, 폴 드메니에게 보낸 두 번째 편지는 내용의 주제가 문학 및 시의 영역에만 국한되어 있다.

    짜임새가 더 있는 1871년 5월 15일의 두 번째 편지에서 랭보는 이틀 전이장바르에게 보낸 편지보다 더 상세한 설명과 완성도 높은 이론을 전개하는데, 먼저 그는 고대부터 시의 발전에 관한 연대기적 기술을 하면서 주요 유파와 시인들을 평가한다. 이 서술의 구성을 간단히 도식화 해보면 시의 일반적 역사 → 새로운 시론(투시자) → 최근 시의 경향 및 시인 순으로 진행된다. 그는 179행으로 된 장문의 편지에 세 편의 시 「파리사람들의 군가 Chant de guerre parisien」, 「내 작은 연인들 Mes petites amoureuses」, 「웅크린 자세들 Accroupissements」를 동봉하였기 때문에 분량으로 보면 소논문 또는 그가 밝혔듯 한 시간 강연으로는 충분한 분량이다.

    편지의 도입부에 인사나 안부도 생략하고, 강연하겠다는 명령조의 글을 적은 뒤, 「파리사람들의 군가 Chant de guerre parisien」라는 새로 적은 시를 삽입하였다. 그리고는 자신의 시론에 대해 설명해 나간다. 시를 제외하고 약 70행이나 되는 편지는 중간 부분에 와서야 ‘- 후부는 6분 후에 (La suite à six minutes) -’ 계속된다는 휴지기를 가진다. 전반부의 내용 중 초기의 45행은 그리스 시, 즉 그리스 시인들에서부터 낭만주의자들까지 언급하며, 시와 시인의 특징 그리고 ‘타자’의 이론 설명을 한다. 그다음에는 26행에 걸쳐 투시자가 되야 하는 당위성과 투시자에 이르는 방법을 설명하고 있다.

    6분의 휴식이 끝난, 후반부의 시작 역시 전반부와 같은 방법으로 「내 작은 연인들 Mes petites amoureuses」이란 시를 삽입하였고, 먼저 시인이 ‘불을 훔친 자 Voleur de feu’가 되어야 하는 당위성과 새로운 시의 탄생 과정을 38행에 걸쳐 설명한다. 그리고 낭만주의 시인들에 대한 설명을 전기와 후기 낭만주의로 나누어 관련 작가와 작품들을 열거하며 ‘투시자’의 대열에 속하는 시인들과 그렇지 못한 시인들을 56행에 걸쳐 분류한다. 그리고 편지의 마지막 부분에는 세 번째 시, 「웅크린 자세들 Accroupissements」을 넣고, 드메니에게 답장을 빨리 해달라고 요청하며 편지를 끝맺고 있다.

    이 편지는 특히 ‘6분 후에 계속’이라는 휴지를 기준으로 앞부분의 설명은 본고의 주제가 될 ‘타자’의 이론에 대한 설명이 있다. 그다음에는 투시자의 정의 및 투시자가 되는 방법을 설명하고, 그 이후에는 주로 투시자로 분류되는 시인과 그렇지 않은 시인에 대해 평가한다. 그는 프랑스 문학 및 시인에 대한 전반적인 평가를 하느데, 그 기준은 ‘고전 / 현대’, ‘낡은 것 / 새로운 것’이다.

    이장바르에게 쓴 첫 편지가 그의 시론에 대한 일종의 ‘습작’ 또는 요약이라면, 두 번째 편지는 시론의 완성본이라 할 만큼 구성이 탄탄하고 내용에 깊이가 있으며 또한 논리전개도 뛰어나다. 이 두 편지에서 공통으로 다루는 중심이 되는 주제는 ‘타자’, ‘시인’, ‘투시자’에 대한 이론이며, 첫 편지에서 주로 사용된 어휘와 주요 주제를 발췌해 보면 ‘객관적인 시 Poésie objective’, ‘투시자 Voyant’, 그리고 ‘나는 타자이다 Je est un autre’이다. 그리고 두 번째 편지에서도 ‘나는 타자이다’, ‘시인되기 Être Poète’, ‘투시자’, ‘새로운 시인들 Poètes du nouveau’이며, 이 용어들은 투시자의 이론을 설명해주는 주요 열쇠로 작용한다.

    투시자의 이론은 때로 난해한 암호의 코드처럼 정확한 의미를 포착하기 어려운데, 그 이유는 단어들이 은유적, 상징적 의미로 감싸져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 숨은 관념을 포착하기 위해 열쇠처럼 제시된 주요 중심단어를 발췌하여, 그 감춰진 의미를 풀어야 그의 이론에 대한 이해가 가능할 것이다.

    4)랭보가 20세까지 적은 편지는 약 50통으로 17명의 수신인에게 보냈으며, 지금까지 발견된 편지는 절반 정도이다.  5)RIMBAUD (A.), Œuvres Complètes, Gallimard, 1972, p. 241.  6)랭보는 드메니에게 1870년 9월 26일에서 1871년 8월 28일까지 11개월에 걸쳐 다섯 통의 편지를 보냈다.  7)국내에서 주로 ‘나는 타자이다’라고 번역 되었던 이 문장은 다음 장에서의 분석을 통해 ‘나라는 것은 타인이다’ 또는 ‘나란 타자이다’의 의미로 수정 될 것이다.  8)RIMBAUD (A.), Œuvres Complètes, Gallimard, 1972, p. 249.

    3. ‘나란 타자이다’에 대한 재해석

    본 장에서는 이 편지에서 투시자의 개념만큼이나 철학적 인식의 개념을 내포하고 있는 ‘나란 타자이다’에 대한 해석이 있을 것이다. 국내에서 일반적으로 ‘나는 타자이다’라고 번역되는 이 문장에 회의를 하고 적절한 해석을 시도하고자 한다. 그다음으로는 랭보가 강조하는 타자의 의미가 시적 글쓰기와 어떤 관계가 있는지를 고찰하기 위하여 타자에 내포된 상징과 메타포를 자아와 무의식의 개념을 통해 분석한다.

    ‘Je est un autre’라는 문장을 문법적 해석에 초점을 맞추어 보면, 이 문장의 주어는 1인칭 단수 ‘JE 나’이고, 동사는 3인칭 단수 ‘est 이다’ 따라서 ‘나는 타자다’라는 기존의 해석에서 오류를 발견할 뿐만 아니라 의미를 제한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이 의미를 살리고 정치한 해석을 위해서라도 한 번쯤 되짚어 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9). 랭보가 이장바르에게 보낸 편지에서 주어는 ‘JE’ 그리고 이틀 뒤 드메니에게는 ‘Je’라고 적었다.

    첫 예문의 문장은 문단이 시작하는 위치에 있고, 두 번째 ‘Je’는 ‘Car’란 접속사 뒤에 있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첫 문장에서는 ‘Je’, 두 번째 문장에서는 ‘je’가 되어야 한다. 이러한 오기를 단순한 실수라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 왜냐하면, 어릴 때부터 학교에서 줄곧 수석을 차지한 천재 소년이자, 이미 적지 않은 시를 쓴 그가 위의 짧은 두 문장에서 각각 대소문자를 구별하지 못하고 두 번 다 실수를 했다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왜 ‘e’ 대신 ‘E’를, ‘j’ 대신 ‘J’를 사용했는가. 그 이유는 ‘나’가 일반적으로 번역되는 일인칭 주어의 의미로 사용되지 않았다는 뜻이다. 가령 ‘Je’ 대신 ‘JE’ 그리고 ‘je’ 대신 ‘Je’의 형태는 삼인칭 단수의 의미로 사용되었다는 뜻이다. 그다음에 오는 동사의 형태를 보면 앞서 살펴본 추론이 더욱 명확해진다.

    ‘JE’와 ‘Je’뒤에 오는 동사는 1인칭 단수 ‘suis’가 아니라 3인칭 단수 ‘est’이다. 만약, ‘JE’와 ‘Je’를 삼인칭이 아니라 일인칭으로 본다면 그 해석을 ‘un autre est JE 타자는 나이다’라고 해야 하느데, 이는 전혀 다른 의미가 된다. 문법적 타당성을 떠나 굳이 철학적 해석을 가미하자면 이 문장은 ‘나’ 보다 ‘타자’를 우위에 두고, 타자의 시선으로 나의 존재를 확인하는 의미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지금까지 살펴본 바로는 국내에서 주로 해석되는 ‘나는 타자이다’라는 번역은 명백한 오류가 된다. 그렇다면 왜 랭보는 ‘나’에 삼인칭의 의미를 주고자 했느냐에 대한 대답이 필요할 것이다. 그 이유는 ‘나’에 사상적이고 인식론적인 의미를 부여하기 위해서이다. 따라서 이 문장은 ‘우리가 나라고 하는 것’ 또는 ‘인간에게 나의 의미는’이라는 철학적 의미로 사용되었다고 봐야 할 것이며, 그 문법적 해석도 ‘나라고하는 것은 타자이다’ 또는 ‘나란 타자이다’가 적절할 것이다. 이 ‘나’는 실제의 ‘나’가 아니라 문학에서 등장하는 화자인 ‘나’가 될 수도 있고, 「취한 배」에서 의인화된 배인 ‘나’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  타자: 내 안의 또 다른 자아

    ‘나란 타자이다’라는 명제에 대한 가장 일반적인 의미는 타자가 우리의 행위에 관여하는 동시에 매 순간 그 행위에 따라 변화되는 내면의 또 ‘다른 나’ 즉, 타자이다. 그렇다면 ‘Je’는 누구인가? 여기에서 쥘 들레즈의 예를 참고해보면 다음과 같다.

    여기에서 ‘나’는 어느 시간 내에서 행해지는 행동의 주체자이며, 현실적인 시간에 영향을 받는다. 랭보의 ‘타자’는 행동의 이면에서 행동에 영향을 주지만 감추어진 또 다른 자아로서 ‘나’에서 ‘이탈’ 또는 ‘분리’된 ‘나 속의 다른 나’와 같은 존재이다. 이 자아는 이성적이고 의식적인 자아가 아니라 무의식적 욕망에 지배를 받기 때문에 ‘나’의 내면에는 결국 두 개의 상이한 자아가 경쟁하고 또 이 자아들의 존재로 인해 ‘나’가 균형을 유지하는 것이다.

    랭보의 ‘타자’가 자아를 인식하기 위한 도구가 된다는 점에서 다른 사상가들이 말하는 일반적 타자의 개념을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하지만 인식의 개념을 넘어 자아를 탐구하고, 듣고, 교감하여 자아의 발전을 추구하고 더 나아가 새로운 세계를 보는 ‘저 너머 là-bas’에 도달하기 위한 도구 그리고 무의식의 통로를 여는 수단으로 인식한다는 점에서 랭보의 타자 개념은 차이가 있다. 타자와 무의식의 관계는 ‘무의식으로서의 타자의 개념’에서 더욱 상세히 살펴보기로 하고, 랭보가 ‘타자’를 설명하기 위해 차용한 데카르트의 관념13)과 관련하여 살펴보자.

    랭보는 ‘나란 타자이다’라는 개념을 설명하기 직전 “on me pense 사람들이 나를 생각한다”라는 데카르트의 명제15)를 상기하고 있다. 데카르트의 ‘égo cogito, ergo sum’ (Je pense donc je suis.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는 철학에 있어 근원적인 인식이자 가장 확실한 인식이다16). 여기에서 데카르트는 인식에 있어 ‘être 존재’의 주체를 ‘pense 사유’로 규정함으로써 존재 보다 생각에 우위를 주고 있다. 이는 데카르트가 ‘내적인 사유’ 관계로 ‘존재’를 규명하는 반면, 랭보는 타자라는 대상을 통하여 자신을 인식하는 ‘상호 인식’의 개념을 도입한 것이다. 데카르트의 명제를 투시자의 논리에 대입해 보면 ‘On me pense, donc je suis 사람들이 나를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가 되는데, 이는 타인에 의해 자신이 존재할 수 있다는 극히 단순한 해석이 된다.

    위의 해석보다는 현실의 ‘나’ 또는 의식적인 ‘나’를 ‘Je’라고 보았을 때, ‘On’은 ‘타자화된 나’의 의미인 ‘Autre’가 된다. 이 ‘Autre’는 현실과 의식의 반대 개념에 있는 ‘무의식의 나’이고 저 너머 이상세계를 향한다는 점에서 자기 초월적인 동시에 현실 초월적인 성향을 가진다. 그래서 ‘Un autre me pense, donc je suis. 무의식 내가 나를 생각하게 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라는 의미로 해석 될 수 있으며, 이 경우 ‘Autre’는 이성적인 자아와 마주하는 동시에 ‘나’를 사고하게 하고 ‘나’를 ‘변화 시키는’ 능동적이고 실질적인 자아로 존재하게 된다.

      >  무의식으로서의 타자의 개념

    서양에서 타자의 개념은 문학은 물론 사회학이나 철학에서도 자아의 대척점에서 정체성의 인식을 위한 기본 개념인데, 니체의 경우는 ‘자아의 상위개념’으로, 베르그송은 ‘내적 자아의 개념’으로 그리고 융은 타자를 ‘진정한 자아의 개념’으로 사용하였다.

    우리는 이 중에서 융의 ‘원상’의 개념을 원용하여 타자와 무의식의 관계를 더욱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융은 이 ‘원상’을 “의식에 대해서는 현혹적이고 압도적인 작용을 가하고, 그 때문에 주체를 크게 변화 시킬 수 있다”17)고 정의 한다.

    ‘나’와 ‘타자’의 관계는 주로 총괄적 행위의 주체가 되는 ‘나’ 또는 의식을 바탕으로 존재하는 ‘나’이고, 의식의 이면 즉, 무의식의 저 너머에서 의식의 ‘나’에게 영향을 주고 때로는 조종을 하는 무의식의 ‘나’는 곧 ‘Autre 타자’이다. 이 두 개념은 서로 다른 영역에서 다른 특성으로 존재하느데, 개별 특성을 살펴보면 아래와 같다.

    ‘나’는 현실에서 이성적인 사고와 논리적인 언어를 사용하는 3차원의 사회적인 나라면, 내 속에 있는 다른 타자 즉 무의식적 자아는 본능적이고 충동적인 동시에 비논리적이다. 이는 심리학에서 프로이트가 말하는 본능적 쾌락을 추구하는 이드와 유사하며, 융이 ‘원시적 이미지’라고 부르는 집단 무의식18)에 지배를 받는 나이다. 여기에서 타자는 언어라는 경험적 소통 도구가 아니라 상징이라는 원형적 언어를 사용하기 때문에 개연성이 없고, 의미를 파악하기 힘들다. 따라서 사용된 언어는 깨어진 파편처럼 음절과 불협화음에 인해 논리나 지성으로 이해되지 않으며, 때로는 음향으로 때로는 이미지로 표현되기 때문에 감정의 떨림이나 내적 울림을 통해서 이해해야 한다.

    「투시자의 편지」에서 랭보는 의식이 바탕이 된 훈련을 통하여 착란에 이르고, 그 착란을 통하여 미지 즉, 무의식의 세계로 나간다고 주장하고 있으며, ‘타자’의 개념과 무의식의 관계를 드메니에게 아래와 같이 설명하고 있다.

    랭보는 타자와 무의식의 관계를 설명하기 위해 구리와 나팔의 변신을 예로 들고 있는데, 구리 대신 나무, 나팔 대신 바이올린으로 그 예가 바뀌었을 뿐 이틀 전 이장바르에게 타자를 설명한 방법과 동일하다.

    ‘나무’가 변신하여 이전의 ‘나’가 아닌 ‘또 다른 나’인 ‘바이올린’으로 변신하느데, 이는 ‘Je 나’란 ‘Cuivre구리’에서 ‘Clairon 나팔’로 또는 ‘Je 나’란 ‘Bois 나무’에서 ‘Violon 바이올린’으로 ‘타자화’하는 과정이다. 나무와 구리의 변화 과정은 먼저 나무를 깎고, 구멍을 뚫고, 불에 구워지며 바이올린으로 변화되고 또 구리의 경우 쇳물에서 연마, 구부리기의 과정(길고, 거대하고, 고통스러운 과정)을 통해 나팔로 탄생하는 과정이다. 그 이후에는 정신적 변화는 나무와 구리가 물질의 상태에서 ‘Cultiver 가꾸어지고, ‘Développement 발전’된 바이올린과 나팔이란 악기가 연주되고, 정신의 세계로 ‘Progrès intelletuel 지적 진보’를 하는 단계이다. 이러한 물질적 변신 이후에는 정신적 변신을 통해 더 높은 단계의 발전으로 나아갈 수 있다.

    이러한 나무와 구리의 변신은 앞서 살펴 본 ‘원상’의 개념처럼 의식에 대해 작용을 가해 주체가 변하는 것처럼 ‘나’가 타자화 되는 과정이다. 즉, 나무가 ‘바이올린’이 되는 것은 ‘나’가 ‘타자’로 변신하는 것이다. 이는 ‘이성적인 자아’가 ‘원상’인 ‘무의식적 자아’에 의해 주체가 변해 ‘타자’가 된 것으로서 이 ‘타자’는 의식과 무의식화된 자아를 가진 자이다. 그의 시선은 이제 새로운 것과 미지의 것을 볼 수 있는 투시자의 눈을 가진 것이다.

    ‘나’는 무의식에서 추출된 ‘Ma pensée 내 생각’에 응시하고 ‘Je la regarde 나는 그것에 귀 기울이고’ ‘Je l'écoute 들으며’ 자아에 대한 정확한 인식을 꾀한다. 그에 대한 화답으로 생각은 ‘Dans les profondeurs 심연으로부터’ 꿈틀거리며 깨어나, ‘Scène 무대’에 올라와 ‘Symphonie 교향곡’을 연주한다. 이는 구리에서 나팔 또는 나무에서 악기로 변신한 바이올린이 연주를 통해 새로운 음악이 수없이 창조되고, 진보의 증식자가 되는 과정이다. 이는 이전의 시인이 아니라 발전을 통하여 ‘미지’를 본 자, ‘불을 훔친 시인’이 되는 과정으로 ‘나’에서 ‘타자’로 변신하며 저 멀리 이상세계를 볼 수 있는 ‘새로운 시인’인 투시자의 길을 보여주고 있다. 랭보의 이러한 비유는 논리 보다는 주관과 직관 그리고 상징을 내포한 이미지들이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미지’ 또는 ‘저 너머’ 세계의 질서에 순응하는 데, 이는 당시에 새로운 무의식의 세계와 맞닿아 있기에 가능했던 표현일 것이다21).

    9)이러한 해석의 문제는 본연구자뿐만 아니라, 일부 연구자에 의해 문제가 제기되었는데, 예를 들면 「랭보의 에 대한 번역과 해석의 문제」를 들 수 있을 것이다. 여기에서 필자는 “나는 타자다. 라는 우리말 번역은 어쩐지 조금 억지스러워 보인다.”라며, 의문을 제시하고 새로운 번역를 시도하고 있다. 프랑스학연구회, 『프랑스 문학의 지평』, 월인, 2002, p. 22.  10)RIMBAUD (A.), Œuvres Complètes, Gallimard, 1972, p. 249.  11)Ibid., p. 250.  12)Gilles Deleuze, ‘Vérité et le temps cours 60’, 1844년 4월 17일. www2.univ-paris8.fr  13)17세기의 데카르트는 대상을 합리적으로 관찰하고 인간을 자연의 주인으로 군림시키고자 했다. 베이컨과 마찬가지로 인간을 소유자로 만들기 위해 데카르트에 있어서도 과학은 힘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후 오귀스트 드 콩트(Auguste de Comte)는 데카르트의 합리성에 기초하여 ‘Savoir pour prévoir afin de pouvoir 군림하기(힘을 가지기) 위해서는 예견해야하고, 예견하기 위해서는 알아야 한다’는 지식 Connaîssance의 토대 위에 이 법칙을 세운다.  14)RIMBAUD (A.), Œuvres Complètes, Gallimard, 1972, p. 249.  15)랭보는 ‘Je pense donc je suis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의 데카르트의 사유개념을 차용하여 타자 개념을 설명하고자 하며 또한 랭보의 타자 개념에는 ‘Quelque chose pense 어떤 것이 생각한다’라는 니체의 사유개념도 연상된다.  16)르네 데카르트, 원석영 옮김, 『철학의 원리』, 아카넷, 2002, p. 12.  17)JUNG Carl Gustave, 설영환 역, 『융 무의식의 분석』, 선영사, 2005, p. 100.  18)캘빈 S. 홀 & 버논 J. 노드비, 김형섭 역, 『융 심리학 입문』, 문예출판사, 2004, p. 62.  19)RIMBAUD (A.), Œuvres Complètes, Gallimard, 1972, p. 250.  20)Ibid., p. 249.  21)랭보가 살았던 당시에는 무의식의 개념이 없었기 때문에 이 다른 자아의 존재를 감성적 자아로 인식했을 것이다. 하지만 랭보는 이 무의식적 자아의 힘과 행동반경이 현실을 넘어 다 깊고 먼 ‘저 너머’까지 갈 수 있는 개념으로 이해했다.

    4. ‘타자’와 ‘투시자’의 상관성

    ‘타자’의 개념은 근원적으로 자아의 인식을 목표로 한다. 자아의 인식순서는 먼저 이성적이고 현실적이며 또한 ‘의식적인 자아’와 나 속의 ‘나와는 다른 나’인 ‘무의식적인 자아’와의 분리가 이루어지고, 이 분리를 통해 이탈된 자아를 관찰할 수 있다. 또한 두 자아의 경쟁과 대결을 통해 ‘나’는 발전하고 더 나아가 현실을 벗어나 저 너머 이상의 세계 또는 무의식의 세계로의 진입이 가능하다. 따라서 타자의 개념은 시인이 새로운 것을 보기 위한 능력을 습득하기 위해 가져야 하는 자아인식의 방법이다.

    시인이 되고자 하는 자에게 랭보가 요구하는 것은 철저한 자아인식인데, 이러한 인식의 능력을 바탕으로 무의식을 통한 원형적 상징을 이해하고, 미지의 세계를 이해하는 정신적이고 내적인 투시자의 초인적인 능력을 갖출 수 있다. 이 경우 능력의 습득 방법을 명상을 통한 내면의 성찰이나 이상향 추구를 연상할 수 있겠지만, 랭보는 연구자의 탐구처럼 이미 찾은 영혼을 면밀히 조사하고 시험하고 배우라고 한다.

    여기에서 구분되어야 할 것은 랭보가 자신의 시론을 통해 추구하는 이상과 투시자의 조건이 상충된다는 점이다. 랭보가 보고자 하는 새로운 시적 세계는 상상과 상징의 바다인 무의식적 세계인데 반해, 그 세계를 갈 수 있는 자의 조건은 관념적 사고가 아닌 먼저 과학적이고 분석적인 시각이 기본이 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그래서 ‘투시자의 편지’에서는 ‘Marche au Progrès발전을 향한 행보’, ‘Progrès intellectuel 지적 발전’, ‘Multiplicateur de progrès 발전의 증식자’ 등은 마술이나 신비주의 또는 연금술적 경향과는 대조되는 어휘들이고, 심지어 영혼이나 정신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고 ‘Cerveau 뇌’라는 자연 과학적 어휘를 사용하였고 이 뇌에서 ‘자연스런 발달’이 경험되면서 지적 진보를 이룰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과학적 방법은 그가 어떤 사실의 결론에 도달하기 인식의 방법이고, 결국 랭보가 보고자 했던 세계는 관념론적이고 형이상학적 세계가 아니라 의식의 저 너머에 웅크린 본능 또는 임상적인 실체인 무의식의 세계였던 것이다.

    ‘타자’의 개념을 통해 자기 자신을 이해한 자는 시인이 되기 위한 연마의 단계로 넘어가는데, 그 과정은 다음과 같이 명확하게 제시된다. 먼저, 1) 자신에 대한 인식이 우선이고, 그다음 단계는 2) 그의 영혼을 찾고, 그 영혼을 면밀히 조사하고, 또 시험하고 알아야 한다. 영혼을 깨닫게 되면 3) 그 영혼을 발전시키고, 그다음에는 4) 뇌 속에서 자연스러운 발달이 이루어지며, 5) 지적 진보를 이룬다.

    시인이 되기 위해 처음으로 해야 하는 일은 ‘Sa propre connaissance 자기 자신에 대한 이해’가 필요한데, 특히 자아에 대한 ‘entière 완벽한’ 인식을 요구한다. 이 의미는 시인이 되고자 하는 자에게 이미 기본적인 자질을 요구하는 것인데, 왜냐하면 자신에 대한 정확한 인식은 경험 또는 훈련된 지적능력에 의존하기에 때문이다.

    그 다음 과정은 자신의 정신을 ‘탐색’하여 과학적 ‘관찰과 실험’23)으로 이론을 확립해 나가는 과정이다. 자신에 대한 객관적 탐색과 검토의 과정을 거쳐 ‘배움’에 이르고, 이것을 ‘발전시키는 행위’는 관찰로 도출된 개념을 적절하게 적용하여 새로운 창작에 이를 수 있게 된다. 이와 같은 단계는 탐색→지식→발전이라는 과학적 지식체계에 기초하고 있다. 여기에서 자기 자신을 인식하고 발전시키는데 있어 ‘객관적’이어야 한다는 의미는 자신을 이원화시키고 객관화시켜 내 속에 ‘타자’를 탄생시키는 것이다. 그리고 자신의 영혼을 관찰하며 수동적인 의미인 ‘쳐다봄’이 아니라 능동적으로 ‘발전시킨다는 것’의 의미는 도출된 지식을 자신의 지식체계로 끌어들여 하나의 이론으로 발전시키는 전향적인 자세를 말한다. 이것은 관찰의 과정에서 일어나는 우연이나 무의식적 행위와 대조되는 개념으로서 관찰과 실험에서 주어진 지식을 수정, 변형하여 의도적으로 이론을 도출시키고 의도한 목적에 따라 능동적으로 발전시킨 것으로 인식→관찰→발전의 단계를 거친다.

    지금까지 살펴본 랭보의 ‘타자’는 ‘의식적인 자아’에 대면하여 나와는 다른 또는 내가 잘 모르는 ‘무의식적 자아’의 시선으로 ‘나’를 관찰하는 자아인식 방법이다. ‘나’를 관찰하기 위해서는 자신에 대한 지각이 필요하며 랭보는 이것을 ‘자기 생각의 개화’라고 부르고 있다. 이는 지각이 개화되어 자신을 ‘응시하고 귀 기울이면서’ 영혼을 갖게 되고, 그 영혼을 통해 지적발전을 이루게 된다는 의미이다. 따라서 랭보의 타자 개념은 투시자가 되기 위해 필요한 자신에 대한 정체성의 인식과 그 정체성을 바탕으로 더욱 영혼을 발전시켜 이상적인 자아를 형성하는 중요한 개념으로 작용한다.

      >  주요 인물의 의미 및 관계

    이 편지에서 중점적으로 다루어진 주제는 앞서 살펴본 ‘타자’의 개념이나 ‘시인’, ‘불을 훔친 자’이며, 이 주제들은 투시자로 귀결된다. 타자의 개념이 시인이 되기 위해 가져야 하는 자아인식의 개념이라면, 시인과 투시자는 어떤 관계이며 또 불을 훔친 자와 어떤 관련이 있는지 살펴보자.

    진정한 시인은 타자의 인식을 경험하고, 자기의 생각을 응시하고, 귀 기울이며 자기 자신을 발전시키는 자이다. 그는 ‘자기 자신에 대한 완벽한 이해’를 통해 영혼을 가꾸고, 영혼을 연마하는 훈련은 시인의 단계보다 훨씬 어렵고 혹독하다. ‘Souffrance 고통’을 극복하고, ‘Folie 광기’와 ‘Force surhumaine 초인적인 힘’을 통해 ‘Grand malade 위대한 환자’, ‘Grand criminel 위대한 범죄자’, ‘Grand maudit 저주받은 자’로 탄생한 ‘Suprême Savant 최고의 학자’가 되며 그는 투시자로 귀결된다.

    투시자의 눈은 현실의 물리적 세계에 한정되지 않는다. ‘여기’와 ‘지금’의 시공간을 넘어 ‘저 너머’ 새로운 미지를 소망하며 현실의 영역을 확장하고 무한에 대한 탐험을 시도한다. 그 ‘탈공간적’이고 ‘탈시간적’인 세계는 오직 상상력을 통해 존재하는 세계이다. 투시자는 상상력과 새로운 사고 그리고 향기가 있고 만져지고 채색된 감각적 언어를 통해 자신이 본 세계를 우리에게 말해주는 소명을 가진 자이다. 여기에서 불이 있었던 신의 세계는 미지의 세계로, 불은 새로운 언어로, 프로메테우스는 투시자로 겹쳐진다.

    불을 훔친 자의 메타포는 인류에게 최초로 불을 훔쳐다 준 티탄족의 아들인 프로메테우스(Prométhée)이며, 그는 와 투시자26)의 상징이다. 불을 훔쳐 인간을 이롭게 한 프로메테우스는 시인의 원형인 동시에 시인이 가져야 하는 의무를 부여하고 있다. 여기에서 시인이 책임져야 할 한계는 프로메테우스보다 더 폭넓어 ‘Humanité 인간성’뿐만 아니라 ‘Animaux 동물들’에까지 그의 책임이 미친다. 시인은 이제 ‘저 너머’ 세계에서 새로운 언어를 훔쳐와 형태가 있는 것에 형태를 부여하고, 형태가 없는 것에 형태를 주지 않는 새로운 언어를 인류에게 선물해야 하는 의무가 있다. 특히 이 언어는 영혼을 위해 영혼과 관념에서 탄생한 것임을 예고한다. 이 불을 훔친 시인은 자신의 창작에 귀를 기울이고, 형식과 비형식에 걸맞는 언어 즉, 영혼을 위한 언어를 통해 미지의 세계를 명확하게 표현해야 한다.

    미지의 세계를 표현하기 위해 언급되는 새로운 언어는 ‘향기’와 ‘소리’ 그리고 ‘색’이 요약되는 공감각과 사상이 교감하는 언어이다. 「Correspondances 교감」에서 ‘Les parfums, les couleurs et les sons se répondent 향기와 색과 소리가 서로 교감’28)하는 공감각을 통해 정신과 육체, 차안과 피안의 세계에 대한 교감을 시도했던 보들레르와 조우하고 있다. 하지만 보들레르와는 달리 랭보는 공감각+사상의 정수(사상에서 포착하고 추출한 사상)가 요축된 새로운 언어체계의 창조를 요구하고 있다는 점에서 차이를 두고 있다. 시인은 이제 이 언어를 통해 보편적 영혼 속에서 깨어나 미지의 음량을 명확하게 표현할 수 있게 된다. 언어뿐만 아니라 랭보는 또한 사상을 담을 새로운 형식이 ‘발전을 위한 발전’을 이루면서 창조적 진보를 이룰 것으로 생각한다.

    ‘미지의 창조’는 ‘사상과 형식’ 그리고 ‘새로운 형식’으로 귀결된다. 그의 견해는 ‘투시자’의 새로운 시에서 발전을 이끄는 요소가 새로운 형식임을 강조하고 있다. 이는 ‘La poésie n'est pas dans la forme des idées, elle est dans les idées elles-mêmes. 시는 관념을 나타내는 형식 속에 있는 것이 아니고, 관념 그 자체 속에 있다.’31)라는 말했던 빅토르 위고(Hugo)의 관념과 형식에 대한 인식을 뛰어넘어 새로운 사상과 결합된 감각적 언어를 담을 ‘창조적’ 형식의 필요성을 언급한다.

    시인이 감각으로부터 사상을 추출하는 ‘<발전>을 향한 행보’의 과정을 통해 ‘엄청난 것들’ 조차도 모든 사람에게 수용 가능한 규범이 될 때, 시인은 ‘진보의 증식자’가 된다고 말한다. 여기에서 엄청난 것과 터무니없는 것, 기상천외한 새로운 발상 등은 투시자가 먼저 보고 가져다준 새로운 것이다. 이러한 새로움을 전파하는 역할은 ‘진보의 증식자 Multiplicateur de progrès’32)의 의무이며, 그는 이러한 행위를 통해 시의 선구자, 불을 훔친 시인이 되는 것이다.

    지금까지 ‘타자’의 개념과 ‘시인’ 그리고 ‘불을 훔친 자’와의 관련성을 주시하며, 그 의미와 그들의 역할에 관해 살펴보았다. 타자가 ‘자아인식’의 개념인 동시에 시인이 갖추어야 하는 기본이라면 시인은 새로운 언어를 창조한 시인 중의 시인이 되는 투시자의 중간 단계이다. 그리고 ‘불을 훔친 자’는 투시자를 넘어 새로운 언어를 창조하는 이상적인 시인상이 되고 있다.

    22)RIMBAUD (A.), Œuvres Complètes, Gallimard, 1972, p. 251.  23)관찰과 실험은 자연과학 연구의 가장 근간이 되는 방법으로 ‘관찰은 발견의 모체’이며, 실험은 ‘확실한 관찰을 하는 방법’이다. 손연규 등, 『최신 자연과학 개론』, 북스힐, 2002, p.11.  24)RIMBAUD (A.), Œuvres Complètes, Gallimard, 1972, p. 251.  25)Ibid., p. 252.  26)“[...] dans le grec ancien, Prométhée veut dire le « prévoyant ».” Michel Cazenave, Mythologie, Le mythe de Prométhée réhabilité, Le monde des religions.fr (publié le 04/12/2013).  27)RIMBAUD (A.), Œuvres Complètes, Gallimard, 1972, p. 252.  28)http://www.alalettre.com/baudelaire-oeuvres-fleurs-du-mal.php  29)RIMBAUD (A.), Œuvres Complètes, Gallimard, 1972, p. 252..  30)Ibid. p. 254.  31)HUGO Victor, Odes et ballades, J. Hetzel & A. Quantin, 1822, p. 1.  32)RIMBAUD (A.), Œuvres Complètes, Gallimard, 1972, p. 252.

    5. 나오는 글

    본고에서는 먼저 「투시자의 편지」의 내용과 구성에 대한 이해를 시작으로 ‘나는 타자이다’라고 일반적으로 번역되는 문장을 재해석하였다. ‘Je est un autre’의 해석은 궁극적으로 ‘나라고 하는 것은 타자이다’ 또는 ‘나란 타자이다’가 적절할 것으로 사료된다. 그리고 이 타자의 개념을 심층적으로 이해하기 위해 자아와 무의식 그리고 미지라는 주제와 연관 지어 분석하였고, 마지막 장에서는 ‘타자’의 개념과 ‘투시자’ 그리고 ‘불을 훔친 자’의 관계에 관해 살펴보았다.

    랭보에게 있어 타자의 개념은 사고의 개화를 통해 자아를 인식하는 과정이다. 타자는 자신의 정체성과 자아의 인식을 위한 개념 즉, 반영처럼 ‘의식적인 나’와 대척점에 서 있는 ‘또 다른 나’의 존재이자 무의식 저 아래에 서 있는 원형적 자아의 개념이다. ‘무의식적 자아’를 통해 ‘의식적인 자아’와 때로는 싸우고 결합하여 ‘새로운 나’가 형성되느데, 이는 타자화 된 나, 즉 ‘타자’이다. 이러한 ‘타자화’는 시인이 되기 위한 과정으로 진보를 의미하는 것이자 궁극적으로 투시자가 되는 과정이다.

    타자의 개념을 통해 자아를 찾는 과정은 자신에 대한 구체적인 ‘인식’이며, 이 과정을 통해 내적으로는 자신의 정체성을 인식하고 외적으로는 이미 존재한 이론과 방식을 응용하여 스스로 영혼을 ‘발전 Développement’ 시켜야 한다. 여기에서 발전의 열쇠는 과학적 ‘관찰’과 ‘실험’으로서 랭보는 ‘탐색’과 ‘시험’을 통해 자신의 영혼을 발전시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시인의 단계 다음은 미지의 새로운 것을 볼 수 있는 투시자이다. 투시자의 조건은 영혼의 탐색과 연마 그리고 그 연마에만 만족하지 않고 스스로 영혼을 개발, 발달시켜 미지의 것, 미래를 볼 수 있는 선지자적 영혼을 키우며 시선을 확장하는 것이다. 이 단계는 보는 것을 넘어 스스로 새로운 세계를 예측하고 주도하는 능력까지 필요로 한다. 이 과정을 간략히 정리하면 타자의 자아인식에서 시작하여 착란 → 풍부한 영혼의 연마 → 미지세계에 도달(범죄자, 저주받은 자, 학자) → 미칠 것 같은 환영 → 투시자 → 불을 훔친 자 → 노동자‧여성33)의 과정으로 진보한다.

    랭보가 실증주의 및 과학의 세기에 걸맞는 어휘와 관념 그리고 객관적 감각을 도입하여 보이지 않는 미지의 세상에 이르고자 했다는 점은 독특한 특징이다. 이러한 노력을 통해 그는 현실과 객관을 상징과 무의식으로 융합하여 감각화된 이미지를 언어로 표현할 수 있었다. 또한 그때까지 꿈의 세상처럼 추상적이고 형이상학적이었던 무의식의 세계를 두드렸고 또한 무의식을 임상이라는 객관적이고 구체화한 실체로 인식하게 하는 계기가 된다.

    랭보의 『Illumination 일뤼미나시옹』 그리고 『Une Saison en Enfer지옥에서의 한철』에서 몇몇 시편들은 상징으로 둘러싸여 있어 논리적으로 설명하기 매우 어려운데, 「투시자의 편지」에서도 타자나 투시자의 일부 개념도 그러하다. 그의 서술은 논리성이 돋보이나 상징적 묘사가 그 실체를 잘 드러내지 않고, 때로는 이질적 요소들이 우연히 결합한 것처럼 개연성을 가지지 않는다. 따라서 다양한 의미를 포함하고 있는 상징과 그 불규칙한 질서에 대한 완전한 이해를 위해서라도 차후 수많은 연구의 필요성이 제기되며, 본 연구 역시 그 과정의 하나일 것이다.

    33)‘불을 훔친 자’는 최고의 시인 또는 투시자가 된 이후 새로운 언어창조를 하는 자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새로운 시인’에 해당하는 노동자와 여성은 과거와 현재의 투시자, 이후에 지난 투시자의 유물을 기반으로 새로운 창조를 이끌 주역으로 묘사되고 있다. 이들은 특히 새로운 사고와 비전으로 그리고 끊임없는 의도적 노력을 통해 투시자의 길을 걷는 진정한 시인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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