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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A 학술지
조선시대 해제목록에 나타난 도가서적(道家書籍) 연구 A Study on Taoist Literatures Including in Annotated Classified Bibliographies in Joseon Dynasty
  • 비영리 CC BY-NC
ABSTRACT
조선시대 해제목록에 나타난 도가서적(道家書籍) 연구

This study analyzed the annotations of Taoist literatures in Haedong -munheon-chongnok, Gyujang-chongmok, Nupango and Hongssi-dokseorok, which were annotated classified bibliographies compiled in Joseon Dynasty. Based on the analyses, the study explored the perspectives from which the annotations were written since Taoism was considered to be heretical from a Confucian point of view. With respect to writing the annotations of Taoist literatures, it was general that the annotations were written objectively about Taoism, rather than relying on a Confucian perspective. Yet, Hong Seok Ju, who wrote Hongssi-dokseorok clearly expressed his opinions about the pros and cons of Taoism. Overall, it would be well appreciated that the annotated bibliographies in Joseon Dynasty retained objectivity in Taoist literatures regarded as heresy at that time.

KEYWORD
도가 , 도가서적 , 해동문헌총록 , 규장총목 , 누판고 , 홍씨독서록
  • 1. 서 론

    고려시대의 도교와 불교는 조선왕조의 개국과 더불어 그 자리를 점차 상실해 갔고, 새 시대를 펼칠 지배이념으로 성리학이 대두되기 시작하였다. 역성혁명(易姓革命)을 일으킨 이성계(李成桂), 조준(趙浚) 등 고려 말의 신진사대부와 신흥무장집단은 새로운 시대를 이끌어 갈 통치이념이 필요했다. 정도전(鄭道傳), 권근(權近) 등 조선초기의 개국공신이자 학자들은 성리학의 기초를 닦고, 사회지배체제에 뿌리 내리기 위한 노력을 지속하여, 이 성리학은 조선왕조 500년을 지배하는 통치이념으로 확고하게 자리 잡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고려시대에 정신적인 지주 역할을 했던 불교와 정부차원에서 비교적 성행했던 도교는 조선시대에 들어서 쇠퇴의 길을 가게 되었다. 도교는 불교에 비해 그리 큰 타격을 받지는 않았지만, 태조 때부터 소격서(昭格署)를 제외한 기존의 초소(醮所)를 혁파하는 등 정부차원에서 축소적 개혁이 있었던 것이다. 결국 조선시대의 도교는 고려시대와는 달리 국가적 차원이라기보다는 개인의 수련 차원에서 그 명맥만을 유지하게 되었다.

    조선시대 편찬된 대표적인 해제목록 가운데 도가 서적을 수록한 목록으로는 김휴(金烋)의 해동문헌총록(海東文獻總錄) (1638), 서호수(徐浩修)의 규장총목(奎章總目) (1781), 서유구(徐有榘)의 누판고(鏤板考) (1796), 홍석주(洪奭周)의 홍씨독서록(洪氏讀書錄) (1810) 등이다. 이들 목록에서는 도가류, 노가류 등의 분류항목을 설정하여 관련 저작을 수록하였다.

    이들 목록에 대한 기존 연구들을 살펴보면, 목록의 해제(강주진 1969), 편찬자의 가계 및 학문(김문식 1999; 박인호 2006; 김희영 2009), 목록의 편찬 및 분류체계와 목록기입법(배현숙 1975; 리재철 1976; 김윤식 1979; 송일기 1983; 김희영 2009; 리상용 2012), 수록 서적의 선정기준 및 질적 분석 평가(리상용 2005a; 2005b; 2011a), 불교서적에 대한 연구(리상용 2011b) 등 다양한 연구들이 있다. 그러나 이들 해제목록에 수록된 도가서적을 대상으로 수행한 연구는 현재 없는 실정이다.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해제목록들은 당시 성리학적인 질서 속에서 성장한 정통 유학자들이 편찬한 것이다. 그렇다면, 이들 유학자들이 그들이 편찬한 해제목록에서 당시 이단시 했던 도가서적에 대해 어떻게 해제했는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따라서 여기에서는 조선시대 해제 목록에 수록된 도가서적의 해제 내용을 토대로 당시 이단으로 분류된 도가서적에 대해 어떤 관점에서 이들 서적의 해제를 기술하였는지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2. 조선시대 해제목록에 수록된 도가서적

    조선시대의 주요 해제목록에 수록된 도가서적으로는 해동문헌총록(海東文獻總錄) ‘제가시문집류(諸家詩文集類)’의 ‘선귀목(仙鬼目)’ 에 1종, 규장총목(奎章總目) 의 도가류(道家類)에 6종, 누판고(鏤板考) 의 도가류(道家類)에 3종, 홍씨독서록(洪氏讀書錄) 의 노가문(老家門)에 9종 등 총 19종이다. 이들 목록에 수록된 도가서적 19종을 열거해 보면 다음과 같다.

    조선시대 해제목록에 수록된 도가서적목록

    ■ 「해동문헌총록」 自然堂集 / 靑衣童子

    ■ 「규장총목」 老莊翼 十本 /老子卽周柱下史老聃所著 道德經 二本 / 卽老子 南華經 四本 / 卽莊子 周易參同契解 一本 / 漢魏伯陽撰 明涂國柱集解 南華經副墨 十一本 / 明方壺外史陸西星註 金丹正理大全 十七本 / 明亡名氏編

    ■ 「누판고」 新註道德經 二卷 / 李朝吏曹判書文貞公朴世堂撰 句解南華眞經 十卷 / 宋中書舍人林希逸撰 周易參同契 一卷 / 漢魏伯陽撰 宋朱子註

    ■ 「홍씨독서록」 老子 二卷 / 周柱下史老聃作 莊子 十卷 / 莊周作 列子 八卷 / 列禦寇作 關尹子 一卷 / 關令尹喜作 參同契 一卷 / 漢魏伯陽作 抱朴子 八卷 / 晋葛洪作 黃庭內景經 一卷, 外景經 一卷 / 晋以前人作 陰符經 一卷 / 唐李筌傳

    위의 19종 서적의 저자를 살펴보면 한국인 저작으로는 해동문헌총록에 수록된 청의동자(靑衣童子)의 자연당집(自然堂集), 누판고에 수록된 박세당(朴世堂)의 신주도덕경(新註道德經) 2종에 불과하고, 나머지 17종은 모두 중국인 저작이다.

    3. 도가서적 해제의 실제

    여기에서는 해제목록에 수록된 도가서적 19종의 해제의 내용과 그 성격에 대해 살펴보고 도가서적 해제에 대해 평가를 내려 보고자한다.

       3.1 도가서적 해제분석

    조선시대 편찬된 주요 해제목록인 해동문헌총록, 규장총목, 누판고, 홍씨독서록 등에 수록된 19종의 도가서적 가운데 해제를 기술하지 않고 저자표시만 한 경우는 규장총목에 수록된 도덕경(道德經) 1종이고 나머지 18종의 서적에 해제가 기술되어 있다. 여기에서는 이들 목록에 수록된 저록의 해제의 내용을 살펴보고자 한다. 조선시대의 주요 해제목록에서 당시에 이단에 속하는 도가서적에 대해 어떻게 해제를 기술했는지 그 내용을 보는 것은 의미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여기에서는 해동문헌총록, 규장총목, 누판고, 홍씨독서록 등 목록의 편찬순서대로 그 해제의 내용을 살펴보고자 한다.

       3.1.1 해동문헌총록(海東文獻總錄)

    해동문헌총록에 수록된 도가서적은 ‘제가시문집류(諸家詩文集類)’의 ‘선귀목(仙鬼目)’에 수록된 자연당집(自然堂集) 1종이다. 그 해제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송계만록(松溪漫錄)에 의하면, 거창현(居昌顯)에 사는 이익수(李翼壽)가 나이 16인가 17세 때 길에서 12살 쯤 된 청의동자(靑衣童子)를 만났는데, 자칭 해중선(海中仙)이라 하였다. 서로 이야기 했는데 너무 좋아서 밤새 놀다 아침나절에야 집에 돌아왔고, 걸핏하면 따라다녔다. 그 때부터 이씨의 문장은 날마다 향상되어 붓만 잡으면 그 자리에서 쑥 써내려가서, 그의 저술이 거의 천여 편에 이르렀다. 그러나 자식과 조카들이 어려서, 저작들이 거의 다 없어지고 흩어져서 약간 수를 모아서 1권의 책으로 만들어 제목을 자연당집(自然堂集)이라 했는데, 이는 해중선(海中仙)의 자호(自號)이다. 거기에 수록된 삼청정기(三淸亭記), 오가사기(五可寺記) 등은 사람이 미칠 수 없는 것이다. 그의 시 ‘관형(觀螢)’과 ‘증형(贈兄)’과 같은 작품들은 귀신이 지은 시가 아닌 듯하지만 이 시들은 기문에는 미치지 못한다. 그의 아버지가 그가 귀신에게 해를 당할까 두려워서 만방으로 내쫓았는데, 눈물을 흘리면서 이별하고 공중으로 솟아올라 가버렸다. 날아올랐을 때 간혹 그의 모습을 본 사람들이 있었다. 본 모습으로 돌아온 뒤로부터는 성명이나 대충 쓸 수준이었다. 중년이 되서 나에게 배웠는데 항상 실성한 사람 같았다. 지금은 없지만, 친히 그의 말을 들어서 이렇게 사실을 기록한다.”1) 이처럼 해동문헌총록에서는 권응인(權應仁)의 시화집인 송계만록(松溪漫錄)에 수록된 내용을 인용하여 해제를 기술하였다. 특별히 도가에 대한 내용은 없고, 자연당집에 대해 해제를 기술하였다.

       3.1.2 규장총목(奎章總目)

    규장총목 자부 도가류에는 노장익(老莊翼), 도덕경(道德經), 남화경(南華經), 주역참동계해(周易參同契解), 남화경부묵(南華經副墨), 금단정리대전(金丹正理大全) 등 6종의 저록이 수록되었다. 이 가운데 도덕경을 제외한 나머지 5종의 서적에 대해 해제를 기술하고 있다. 이들 해제의 내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먼저 노장익(老莊翼)의 해제에서는 “주대의 노자와 장자가 지은 것으로 명대 한림원(翰林院) 수찬(修撰)인 초횡(焦竑)이 64명의 주석을 모아서 책을 편찬하고 말미에 부록으로 자신의 초횡필승(焦竑筆乘)을 붙이고, 고이(考異)를 수록했다”2)고 밝히고 있다.

    다음으로 남화경(南華經)의 해제를 살펴보고자 한다.

    “남화경 4책. 장자 지음. 「한서예문지」에서는 52편이라 하였다. 진(晉) 상수(向秀)와 곽상(郭象)의 합본이 33편인데, 내편 8편(실은 7편), 외편 15편, 잡편 11편으로 「남화진경(南華眞經)」 이라 한다. ◯진진손(陳振孫)이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진서(晉書)」의 곽상전(郭象傳)을 살펴 보건데, 상수가 장자를 주해했는데 다 완성하지 못하고 죽자, 곽상이 이를 몰래 자기 주석으로 삼고, 추수(秋水)와 지락(至樂) 2편을 자기가 주해하였다. 또 마제(馬蹄) 1편을 바꾸고, 그 나머지는 문구만을 점정(點定)하였다. 그 뒤에 상수의 「장자해의(莊子解義)」가 별도의 책으로 나와서 지금 상수와 곽상 2종의 장자해설서가 있지만 그 뜻은 하나이다. 그러나 상수의 「장자해의」는 지금 전하지 않고 단지 육덕명(陸德明)의 「장자석문(莊子釋文)」만 볼 수 있다.(南華經四本 卽莊子 漢志本五十二篇 晉向秀郭象合爲三十三篇 內篇八[실은 七] 外篇十五 雜篇十一 號南華眞經 ◯陳振孫曰 按晉郭象傳 向秀解莊子 未竟而卒 象竊以爲已注 乃自注秋水至樂二篇 又易馬蹄一篇 其餘點定文句而已其後秀義別出 故今有向郭二莊 其義一也 然向義今不傳 但見陸氏釋文)”3)

    위의 해제에서 남화경」의 편권에 대해 기술하고, 상수와 곽상 2종의 해설서가 나오게 된 경위와 현전본에 대해 밝혔다.

    다음으로 주역참동계해(周易參同契解)의 해제에서는 “이 책이 한대의 위백양(魏伯陽)이 편찬하고, 명대의 도국주(涂國柱)가 집해한 것이다. 주자께서 이 책에 대해 ‘참동계(參同契)에서 말한 감리(坎離), 수화(水火), 용호(龍虎), 연홍(鉛汞)과 같은 것들은 단지 정(精)과 기(氣) 두 개일 뿐이며, 그 방법은 신운정기(神運精氣)로 하고 결합하여 단(丹)이 된다. 양기는 아래에 있어서 처음에는 물을 이루는데 불로서 단련하면 응고되어 신단이 된다고 하니 그 설이 아주 신기하다.’고 하시고, 또한, ‘문장이 아주 좋은데 대개 후한의 글을 잘 쓰는 사람이 지은 것인데, 거기에서 쓴 글자는 모두 고서를 참고하여 지었으므로 지금 사람이 해석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평하신 내용을 기술하였다. 또한 갈홍(葛洪)의 말을 빌어서 ‘위백양이 참동계를 지었는데, 그 설은 주역과 비슷하지만, 실제로는 효상(爻象)을 차용하여 단(丹)을 만드는 뜻을 논의한 것’”4)이라고 기술하였다.

    다음으로 남화경부묵(南華經副墨)」의 해제를 보면, “명대의 방호외사(方壺外史) 육서성(陸西星)이 주해한 것이라 하고 그가 저술한 독법(讀法)에서 ‘남화경」의 문자 가운데 평이해서 해석할 수 있는 부분과 어려워서 풀이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는데, 독자들은 풀이가 가능한 것만 해석하고 따질 수 없는 것들은 따지지 말아야 비로소 그 뜻을 얻을 수 있다. 만일 하나 하나 그것을 곡설(曲說)하면 지리(支離)하고 파쇄(破碎)하여 그 뜻을 얻지 못하게 된다’고 언급한 내용을 소개하고 있다. 또한 호응린(胡應麟)의 말을 인용하여 ‘장자의 남화경」은 그 문사가 뛰어나고 우뚝 솟으며, 제멋대로 휘갈겼으니 참으로 천지간에 홀로 행한다. 성신(聖神)을 배격하고 현철(賢哲)을 능모(凌侮)하는 것 역시 인류가 생긴 이래 처음 있는 변괴이며, 소동파가 그 문사를 탐닉하여, 도척편(盜跖篇)과 양왕편(讓王篇) 등 4편은 장자의 저술이 아니라고 했는데, 그 취지를 조사해보니 사실에 가깝다. 천하편(天下篇)에서 공자를 언급하지 않은 것을 겉으로는 배척하고 몰래 도와주었다고 평했는데 이는 아주 말도 안 된다.’”5)고 해제하였다.

    다음으로 금단정리대전(金丹正理大全)」의 해제를 보면 “명대에 편찬된 저작미상의 서적인데, 도가서적 11종 42권으로 구성되었다. 종실(宗室) 주번(周藩) 숭악주인(嵩嶽主人)의 서문에서 ‘금단정리대전」은 말마다 도를 밝히고 구절마다 기미를 드러냈다. 용호경(龍虎經)」과 참동계(參同契)」의 비밀을 파헤치고, 음부경(陰符經)」과 오진편(悟眞篇)」의 은 미함을 밝혔으니, 진실로 수진(修眞)의 모범’”6) 이라고 해제하였다.

       3.1.3 누판고(鏤板考)

    누판고의 자부 도가류에는 신주도덕경(新註道德經), 구해남화진경(句解南華眞經), 주역참동계(周易參同契) 등 3종의 서적이 수록되었다. 이들 해제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먼저 신주도덕경(新註道德經)의 해제를 원문 그대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신주도덕경 2권. 조선 이조판서 문정공 박세당 편찬. 박세당이 말하기를 ‘노자의 도는 한대에 써서 다스려지고, 진대의 사람이 써서 현허(玄虛)에 귀결시켰다. 도에는 두 가지 길이 있지 않다. 해석을 잘했느냐 잘못했느냐만 있다.’라고 하셨다. 마침내 그 책의 취지와 귀결을 자세하게 주석하였다. 대부분 임희일(林希逸)의 주석서인 「노자구의(老子口義)」에 대한 오류를 논박한 것이다.(新註道德經二卷 李朝吏曹判書文貞公朴世堂撰 世堂謂老子之道 漢用之而治 晉人用之歸於玄虛 道非二致 解有善不善耳 遂爲之疏釋其旨歸 多駁林希逸注之謬)”7)

    위의 해제에서 박세당이 도덕경을 주석해서 그 취지와 귀결을 자세히 해석했다고 하고, 대부분 송대의 학자인 임희일의 노자구의의 오류를 논박한 것이라고 해제하였다.

    다음으로 구해남화진경의 해제를 살펴보면, “편찬자인 송대의 중서사인(中書舍人) 임희일(林希逸)이 장자에 대해 터득한 지식이 자못 얕은데도, 옛 주석을 배척하였으니, 제 국량을 헤아리지는 못했지만, 문장의 뜻을 분명하게 드러내서 쉽게 이해되니 어린 학생들에게 도움이 되는 것이다. 지금 판각한 책에는 조선시대 최립(崔岦)의 언두(諺讀)가 있다.”8)고 해제하였다.

    주역참동계의 해제를 살펴보면 “한대 위백양(魏伯陽)이 편찬하고 송대 주자가 주석한 책이다. 위백양의 참동계는 세간에서 역가라고 하지만 실제로는 효상(爻象)을 빌려서 단(丹)을 만드는 뜻을 논의한 것이며, 단경(丹經) 가운데 이 책이 가장 오래된 것이다. 주자주의 구제(舊題)는 주역참동계고이(周易參同契考異)지만, 글자를 정정한 것은 불과 7, 8곳에 불과하고 나머지는 모두 단법을 해석한 것이므로 실제로는 전주(箋註)이다. 이 책은 조선의 남구만(南九萬)이 유염(兪琰)의 주역참동계발휘(周易參同契發揮)에서 주자의 주석 및 황서절(黃瑞節)의 부록을 추려서 1권의 책으로 편찬한 것”9)이라고 해제하였다.

       3.1.4 홍씨독서록(洪氏讀書錄)

    홍씨독서록 자부 노가문(老家門)에는 노자(老子), 장자(莊子), 열자(列子), 관윤자(關尹子), 참동계(參同契), 포박자(抱朴子), 황정내경경(黃庭內景經), 외경경(外景經), 음부경(陰符經) 등 9종의 서적을 수록하고 있다.

    먼저 노가의 사상적 원류인 노자(老子)장자(莊子)의 해제를 원문 그대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노자」2권 “주(周) 주하사(柱下史) 노담(老聃) 지음. 『도덕경(道德經)』이라고도 한다. 이 책을 주해한 사람은 하상공(河上公) 이하 거의 수십 명인데, 왕필(王弼)의 주(注)가 가장 정밀하다고 한다.(老子二卷 周 柱下史 老耼之所作也 亦曰道德經 注其書者 自河上公以下 殆數十家 而王弼注號最精云)”10)

    「장자(莊子)」 10권 “장주(莊周) 지음. 노자(老子)는 비록 허무(虛無)를 숭상했으나, 처음부터 큰 소리로 선왕(先王)의 도를 꾸짖지 않았는데, 장자(莊子)에 이른 후에는 멋대로 날뛰고, 방자하게 언동하는 폐단이 극에 달했다. 그러나 그 설은 자연(自然)을 으뜸으로 삼으니 또한 노자의 뜻과 약간 차이가 난다. 그 문장과 조리 있는 논설은 선진(先秦) 이래 가장 뛰어나다. 세간에 전하는 것으로 곽상(郭象), 여혜경(呂惠卿), 초횡(焦竑)의 주해서가 있는데, 오직 임희일(林希逸)의 구의(口義) 및 조선조(朝鮮朝) 박세당(朴世堂)의 집주(集注)가 성행(盛行)한다.(莊子十卷 莊周之所作也 老子 雖崇尙虛無 未始大言詆先王之道 至莊氏而後 猖狂恣睢之弊 極矣 然其說以自然爲宗 又與老氏之旨微異 其文章雄辯則先秦以降 所未有也 世所傳者 有郭象呂惠卿 焦竑注 而唯林希逸口義及本朝朴世堂集注盛行)”11)

    위의 해제에서 전반적으로 노자장자의 주해서를 중심으로 설명하고 있다. 특히 장자에 대해서는 그 폐해가 아주 심하지만 그의 문장에 대해서는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열자(列子)의 해제에서는 “이 책의 내용은 대부분 『장자(莊子)』에서 따오고, 그 문장 또한 평이하여 선진(先秦)의 고서 같지 않아서, 다분히 위진(魏晉)시대 사람이 의탁한 것”12)이라고 기술하고 있다.

    관윤자(關尹子)의 해제에서는 “이 책은 가장 늦게 나왔으며, 그 글도 비약(卑弱)하니 대개 후당인(後唐人)의 위작(僞作)이다. 그러나 오묘한 이치를 새로운 각도에서 조명하였으므로 이따금 볼만한 것이 있다.”13)고 하였다.

    참동계(參同契)의 해제에서는 “이 책은 『주역(周易)』을 빌려서 연단(煉丹)의 이치를 밝힌 까닭으로 『주역참동계(周易參同契)』라고도 하는데, 대개 모두 화로와 숯에다가 납과 수은을 달이는 일이고, 그 말은 대개 은미하고 오묘하여 깨닫기 어렵다. 세간에 팽효(彭曉), 진현미(陳顯微), 유염(兪琰) 및 조선조 권극중(權克中) 등의 주해가 있다. 그러나 해석하면 할수록 더욱 뜻이 통하지 않아서, 주자가 일찍이 이를 위하여 『주역참동계고이(周易參同契考異)』를 지었고, 또한 그 문사(文辭)의 고아(古雅)함을 극찬하였다. 그런 까닭에 우리 유학의 도를 연구하는 사람 또한 감히 그 책을 없애버리지 않는다.”14)고 기술하였다.

    포박자(抱朴子)의 해제에서는 “노자(老子)와 장자(莊子)의 서적은, 무위(無爲)로서 주종(主宗)을 삼고, 치허(致虛)와 수정(守靜)으로 수도하면 수명을 연장할 수 있다는 장생구시(長生久視)의 설(說)을 진술하고 있다. 그러나 처음부터 일찍이 노정(爐鼎), 복식(服食), 환단(還丹)의 방술(方術)이 있던 것은 아니다. 위백양(魏伯陽)이 『참동계(參同契)』를 지은 후부터 수련(修煉)의 학문이 처음으로 세상 밖에서 성하였으나, 부록(符籙), 과교(科敎), 핵치(劾治), 신괴(神怪)한 담론(談論)이 일찍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포박자(抱朴子)』가 나오자 연(燕)과 제(齊)의 괴이하고 허풍스럽고, 방자하고 무도한 무리들이 다투어 노자와 장자를 인용하여 중요하게 여겼다. 이 어찌 노자와 장자의 죄이겠는가? 그러나 『역위(易緯)』에서 말하기를 ‘호리(毫釐)의 실수가 천리를 그르친다.’라고 하니, 이는 군자의 도가 중용을 귀하게 여기고, 감히 기이(奇異)하고, 풍속에 어긋나는 말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포박자(抱朴子)』를 노가(老家)의 뒤편에 나열한 것은 그 폐단의 지극함을 드러낸 것이다. 그 나머지 재초(齋醮), 부주(符呪), 과교(科敎)의 책들은 일체 삭제하고 기록하지 않았다.”15)고 혹평하였다.

    황정내경경(黃庭內景經), 외경경(外景經)의 해제에서는 “이 책의 문장은 모두 칠언협운(七言叶韻)이며 그 뜻은 모두 수련(修煉)의 비결인데, 도가에서는 이 책을 존중하여 『도덕경(道德經)』과 함께 나란히 놓는다.”16)고 기술하였다.

    음부경(陰符經)의 해제에서는 “이 글은 겨우 300여 자에 불과하기 때문에 그 문사(文辭)가 은밀한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깊은 뜻은 없다. 다분히 이전(李筌)이 저술한 것임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주자(朱子)의 주(注)가 세간에 행하는데, 주자(朱子)가 이 책에 대해 ‘자연의 도’라고 극찬하고, 정(靜) 1장이 정밀하다고 하였는데, 지금의 책은 이 부분을 삭제하고 주해하지 않았으니, 주자(朱子)로부터 나온 것이 아님이 분명하다.”17)고 기술하였다.

       3.2 도가서적 인식 및 불교서적과의 비교

    여기에서는 목록편찬자들의 도가에 대한 인식, 목록의 편찬주체별 도가 서적에 대한 관점, 당시 이단이었던 불가서적과의 해제 비교로 구분하여 살펴보고자 한다.

       3.2.1 목록편찬자의 도가 인식

    해제목록을 편찬하면서 수록 도서의 해제를 기술하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더구나 조선시대 도가의 경우 불가와 함께 이단으로 취급된 점을 감안할 때, 도가서적의 해제를 기술하는데 고민이 많았을 것이다. 따라서 당시 목록편찬자들의 도가에 대한 인식은 해제의 내용을 기술하는데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따라서 여기에서는 조선시대 주요 목록의 편찬자들이 도가에 대해 어떻게 인식했는지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18)

    조선시대의 선비들이 모두 도가와 불가를 이단이라고 배척한 것은 아니다. 그러한 부류도 상당히 있었겠지만, 도가와 불가의 장점을 적절히 수용하여 활용하는 부류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규장총목누판고를 편찬한 서호수 부자와 홍씨독서록을 편찬한 홍석주는 어떤 부류에 속하는지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먼저 규장총목을 편찬한 서호수의 부친이자 누판고를 편찬한 서유구의 조부인 서명응은 54세 때 노자 전문을 주해하고 61세 때 그 주해본을 수정 보완하여 도덕지귀(道德指歸)를 편찬하였는데,19) 그 서문에서 다음과 같이 기술하였다.

    “그러므로 내가 노자 「도덕경」 오천마디의 장구를 해석하여 그 뜻의 귀결을 밝힌 이유는 대개 노자를 위해서가 아니다, 노자를 공격하는 우리 선비들에게 그 실정을 공평하게 하기 위함이다. (余故於老子道德五千言 章解句釋 明其指歸盖非爲老子也 爲吾儒之攻老子者 平其情也)”20)

    즉, 그가 도덕지귀(道德指歸)를 저술한 이유는 노자의 근본정신을 밝히고 노자의 실정을 공평하게 드러내서 당시 유학자의 노자에 대한 그릇된 태도를 바로잡으려는 것이다.21) 그는 노자의 도를 송대 성리학의 개창자인 주렴계(周濂溪)의 ‘무극이태극(無極而太極)’설과 연관하여 파악하여 노자의 도체(道體)에 관한 설을 높이 평가하였을 뿐 아니라 한걸음 더 나아가 주렴계의 우주론(宇宙論)이 사실상 노자의 영향을 받은 것이라고 지적하였다. 이러한 그의 주장은 노자학을 이단으로 지목하여 배척하던 당시 사상계의 경직성에 비추어 볼 때 대단히 파격적이었던 것이다.22) 이처럼 서명응은 노자에 대해 대단히 파격적이고 개방적인 입장을 견지했으며, 이 같은 그의 입장은 아들인 서호수와 손자인 서유구에게도 그대로 전해졌을 가능성이 높다. 서유구 역시 조선 후기 도가의 양생술을 집성한 보양지(葆養志)를 편찬하여 임원경제지(林園經濟志)에 수록할 정도로 도가에 해박한 지식을 지녔던 것이다. 따라서 서호수, 서유구의 도가에 대한 인식은 당시 로서는 상당히 개방적이고 객관적인 입장을 견지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할 수 있다.

    다음으로 홍씨독서록을 편찬한 홍석주가 도가에 대해 어떻게 인식했는지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그는 자신의 저작 학강산필에서 노가의 장점에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으며, 44세 때에는 정노(訂老)란 책을 저술하여 유가적인 입장에서 노가에 대해 새롭게 해석하기도 하였다. 기본적으로 홍석주는 도가를 불가와 마찬가지로 도의 부분에 있어서는 이단으로 여겼지만 노자의 경우 장점을 잘 살리면 천하를 보존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23) 때문이다. 이처럼 그는 도가의 장점에 대해서는 긍정적으로 평가하였다.

    그러나 연천은 같은 도가에 속하는 장자에 대해서는 그 견해를 달리하였다. 그는 노자의 시절보다도 장자가 나온 이후에 선왕의 도를 꾸짖고, 미쳐 날뛰고 제멋대로 하는 폐단이 극에 달했다고 혹평하고, 다만, 장자의 뛰어난 문장에 대해서만 극찬하였다.24) 사마천(司馬遷)이 장자의 특징을 우언(寓言)에서 구했던 것이 도가담론(道家談論)의 특징을 파악하는데 좋은 시사점을 제공한다25)고 했는데, 연천도 장자에 대해서는 극렬히 비판했지만 그의 문장에 대해서만 극찬한 것이다. 장자에 대한 연천의 평가는 정조와도 관련이 없지 않았을 것이다. 당시 정조 역시 “莊子는 문장이 비록 호한(浩瀚)하지만 사정이 간절한 곳에서는 가끔 과거 시험문체와 매우 비슷하므로, 문장 공부를 하는 자가 읽지 않으면 안된다.”26)라고 하여 문장 공부하는 사람에게 꼭 필요한 책이라고 한것이다.

       3.2.2 편찬주체별 해제 성향

    전절에서 목록편찬자들의 도가 인식에 대해 살펴보았다. 그렇다면 이들 편찬자들이 실제 목록을 기술할 때 어떤 식으로 해제를 기술했는지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개인적으로 편찬한 사찬목록인 경우에는 비교적 자유롭게 해제를 기술할 수 있지만, 왕명으로 편찬한 관찬목록인 경우에는 자신의 성향을 그대로 드러내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또한 개인적 성향과 달리 당시 이단으로 분류된 도가서적의 해제를 기술하는데 왕명을 받들어 편찬한 관찬목록과 개인이 사적으로 편찬한 사찬목록 사이에 어느 정도 차이가 있지 않을까 예상된다. 따라서 여기에서는 목록의 편찬주체별 즉, 관찬목록(官撰目錄)과 사찬목록(私撰目錄)으로 구분해서 해제의 내용을 살펴보고자 한다.

       1) 관찬목록(官撰目錄)

    여기에서는 관찬목록으로 규장총목누판고에 수록된 도가류 서적에 대한 성격을 살펴보고자 한다. 이들 관찬목록에 수록된 저록을 살펴보면, 규장총목에 수록된 남화경부묵(南華經副墨)의 해제에서 장자의 뛰어난 문장에 대해서는 인정하지만, 그가 성신을 배격하고 현철을 능모한 것이 유사 이래 최초의 변괴라고 비판한 부분을 제외하고 전반적으로 객관적이고 수용적인 입장에서 해제를 기술하였다. 먼저 규장총목에 수록된 저록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노장익(老莊翼)은 초횡(焦竑)이 64명의 주석을 모아서 편찬한 책이라고 하였고, 남화경(南華經)에서도 상수와 곽상 2종의 해설서가 나온 경위를 밝혀주고 세간에 유통하는 도가관련 서적에 대해 소개해 주었다. 또한 주역참동계해(周易參同契解)에서는 단(丹)을 이루는 원리에 대해 설명해 주고, 그 내용이 뛰어나서 후대 사람들이 해석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라고 언급하였으며, 금단정리대전(金丹正理大全)에서는 이 책이 진실로 수진(修眞)의 모범이라고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다음으로 누판고에 수록된 저록을 살펴보아도 규장총목과 마찬가지로 비판적인 측면보다는 책 자체의 내용에 충실하게 해제를 하였다. 신주도덕경(新註道德經)에서는 책의 내용이 주로 임희일의 오류를 논박한 것이라고 평가하였고, 구해남화진경에서도 저자 임희일이 장자에 대한 지식은 부족하지만 문장을 잘 기술해서 유생들에게 도움이 될 만하다고 하여, 그 책의 장점과 단점을 객관적으로 기술하였고, 주역참동계에서도 세간에 잘못 알려진 책의 내용을 정정해주고, 가장 오래된 고서라는 점을 밝히고, 책의 편찬과정에 대해 설명하는 등 주로 책 자체에 대해 객관적으로 해제를 기술했음을 알 수 있다.

    이처럼 관찬서인 규장총목누판고에서는 도가서적의 저자와 편찬자, 책의 내용, 기존의 주해서 등에 대한 정보를 제시해 주고, 내용이 훌륭한 서적에 대해서는 찬사를 보낸것이다. 전반적으로, 당시 이단으로 간주하는 도가서적에 대해 성리학적인 입장에서 전적으로 비하하거나 멸시하는 측면에서 해제를 기술하기 보다는 도가서적 그 자체에 대해 공정하고 객관적인 입장에서 해제를 기술했던 것이다.

       2) 사찬목록(私撰目錄)

    여기에서는 사찬목록으로 해동문헌총록홍씨독서록에 수록된 도가서적을 대상으로 그 성격을 살펴보고자 한다.

    먼저 해동문헌총록에 수록된 자연당집(自然堂集)에서는 송계만록(松溪漫錄)에 수록된 내용을 인용하여 해제를 기술하였다. 도가적인 입장에 대해서 기술하기보다는 선귀에 대한 이야기를 사례로 들어서, 그 해제 상에서 도가에 대한 특별한 입장은 드러나지 않았다.

    다음으로 홍씨독서록의 해제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홍씨독서록의 찬자인 홍석주는 유서(類序)와 해제에서 노가에 대한 입장을 명백히 밝히고 있다. 그는 노가문의 서문에서 “노가를 도가라고 한 것은 잘못된 용어라고 주장하고, 노가의 담백함과 과욕, 사랑과 검소 등 장점을 지니고 있지만, 그 단점에 이르면 인의와 예약을 버리고 군신부자의 인륜을 크게 어지럽힌다”고 하여 그 장점과 더불어 그 폐해에 대해 직설적으로 토로하였다. 홍씨독서록에 수록된 도가서적에 대해서도 그 입장을 명확히 밝히고 있다. 그는 장자(莊子)에 대해서 멋대로 날뛰고, 방자하게 언동하는 폐단이 극에 달했다고 혹평을 하면서 노자와 장자의 차이에 대해 언급하였으며, 포박자(抱朴子)에서는 이 책이 나오면서 노자와 장자가 그 본질에서 벗어나서 그 폐해가 아주 심해졌다고 혹평하였다. 그러나 그가 무조건 혹평만 한 것은 아니다. 그는 관윤자(關尹子)가 후당인(後唐人)의 위작(僞作)이지만, 새로운 각도에서 조명하여 가끔 볼만한 것이 있다고 하고, 황정내경경(黃庭內景經)외경경(外景經)은 수련의 비결을 담았다고 하면서 도가의 장점을 인정하는 학문태도를 보이고 있다.

    전반적으로 사찬목록 특히 홍씨독서록에서는 편찬자의 노가에 대한 성향을 극명하게 기술하였다. 개인이 편찬한 목록이므로 평소에 도가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여과 없이 밝혔다고 할 수 있겠다.

       3.2.3 불가서적과의 비교

    조선시대는 성리학의 시대이다. 이 성리학적 질서 속에 도교와 불교는 모두 이단으로 분류되었다. 당시 억불숭유정책(抑佛崇儒政策)의 실시로 대부분의 학자들은 불교에 대해 적대감을 갖고 비하하는 언사를 서슴지 않았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조선시대 해제목록의 편찬자인 김휴, 서호수, 서유구, 홍석주 등은 전통적인 성리학자들이다. 그들은 자신이 편찬한 목록에 불교서적을 수록하였는데, 구체적으로 그 종수를 살펴보면, 해동문헌총록 ‘제가시문집류(諸家詩文集類)’의 ‘석가목(釋家目)’에 54종, 규장총목 석가류(釋家類)에 3종, 누판고의 석가류(釋家類)에 12종, 홍씨독서록 석가문(釋家門)에 10종 등 총 79종이 수록되었다. 여기에서는 과연 그들이 편찬한 목록에서 불가서적의 해제를 어떤 관점에서 기술하였는지에 대해 관찬목록과 사찬목록으로 구분하여 살펴보고자 한다.27)

    먼저 왕명으로 편찬된 규장총목누판고에 수록된 불가서적의 해제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규장총목에는 석가류에 제경품절(諸經品節), 능엄몽초(楞嚴蒙鈔), 능엄정해(楞嚴正解) 등 3종의 불서가 수록되었다. 능엄몽초(楞嚴蒙鈔)의 해제에서 “이 경전의 문장은 해박하지만 표지(標指)가 가지런하지 못하고, 이전의 해설서에 나온 문제를 답습한 부분이 있으므로 내용을 잘 연구해서 불필요한 내용을 삭제하고, 핵심적인 부분을 수정하면 교관(敎觀)이 분명해 질 것”28)이라고 하여 이 책의 보강해야 할 부분에 대해 언급하였다. 능엄정해(楞嚴正解)의 해제에서는 “전창법사 영요(全彰法師靈耀)가 불조(佛祖)의 진인(眞印)을 얻어 판석(判釋)한 책인데, 여기에서 교광정맥(交光正脈)의 편벽되고 잘못된 설을 단호하게 정하여 그와 연관된 문제도 쉽게 해결하게 되었다.”29)고 기술하여 이 책에서 기존에 잘못된 설을 바로 잡았다고 설명하였다.

    누판고의 석가류에는 대장경(大藏經), 금강반야바라밀경(金剛般若波羅密經), 묘법연화경(妙法蓮華經) 등 12종의 불서가 수록되었는데, 이 가운데 몇몇 서적의 해제를 살펴보면, 금강반야바라밀경(金剛般若波羅密經)에서는 대장경 내에서 책의 권수와 세간의 유통본에 대해 기술하였으며,30) 화엄경(華嚴經)에서는 “이 책이 부처가 도를 이룬 뒤에 처음으로 대승정법(大乘正法)을 말씀하신 것인데, 법신(法身)의 본체는 능엄(楞嚴)이 가장 잘 밝혔고, 법신(法身)의 용(用)은 화엄(華嚴)이 가장 잘 밝혔다.”31)고 하여 책의 의미와 능엄경화엄경의 장점에 대해 기술하였다. 우리나라 불서인 선문염송설화의 해제에서도 “우리나라의 불전 가운데 가장 풍부하고 박식한 것.”32)이라고 기술하여 우리나라 불가 서적의 우수성을 밝히기도 하였다.

    이처럼 왕명에 의해 편찬된 해제목록의 경우, 이단에 속하는 불가서적이라도 단순히 불교라는 종교적 이유 때문에 멸시하거나 비하하지 않고, 그 자체를 인정하며 객관적인 입장에서 불가서적의 해제를 기술하였다.

    다음으로 개인이 편찬한 목록인 해동문헌총록홍씨독서록에 수록된 불교서적의 해제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해동문헌총록에는 승려 29인의 저작 54종의 불교서적이 수록되었다. 여기에서는 대개 책의 내용보다는 저자의 행적을 중심으로 해제를 기술했는데, 그 중에 주로 책의 내용을 중심으로 해제를 기술한 추동기(錐洞記)천태사교의(天台四敎儀)의 해제를 살펴보겠다. 추동기(錐洞記)의 해제에서는 “의상(義湘)이 소백산 추동에서 제자 3천명에게 90일 동안 화엄대전을 강의한 내용을 문인 지통(智通)이 그 요점을 뽑아 편찬한 것으로, 그가 친히 훈화하신 내용이라서 언사가 깊은 경지에 이르고 오묘하다.”33)고 기술하였으며, 천태사교의(天台四敎儀)에서는 “이 책이 천태교의 대본에 의거하여 5시 8교(五時八敎)의 개요를 총괄적으로 기록하고 후학에게 제시한 것이므로, 이 책의 내용을 확실히 이해하면, 여러 책을 읽어도 헷갈리지 않을 것”34)이라고 하여 이 책의 우수성에 대해 설명하였다.

    전반적으로 해동문헌총록에서는 수록한 불교서적에 대해 그 내용이 훌륭하다고 판단될 경우 상당히 찬사를 아끼지 않았으며, 그 저자에 대한 평가에 있어서도 조선 중기의 승려 보우(普雨)35)를 제외한 나머지 승려에 대해서 객관적으로 묘사했으며, 사명대사와 같이 국난을위해 애쓴 일부 승려들에 대해서는 그들의 공적을 밝히고 후세에 귀감이 될 존재임을 인정하고 아낌없는 찬사를 보냈다. 이처럼 해동문헌총록에서는 당시 성리학적인 입장을 초월하여 불교서적과 그의 저자인 승려에 대해 대단히 객관적인 평가를 내렸다.

    사찬목록인 홍석주의 홍씨독서록에는 사십이장경(四十二章經), 능가경(楞伽經), 원각경(圓覺經) 등 10종의 불서를 수록하고 거기에 해제를 붙였다. 먼저 홍석주의 불가에 대한 입장을 살펴보면 연천은 불교에 대해서 철저히 비판하고 있다. 그는 군자가 불교서적을 꼭 읽어야 하는 이유가 바로 불교에 대항해서 물리치기 위한 것이라고 논급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지극히 성리학적인 관점에서 불가에 대해 철저히 공격하였다.36) 그러나 연천이 부처의 교리에 대해 무조건적인 비판을 가하지는 않았다. 그는 사십이장경(四十二章經)의 해제에서 기술한 바와 같이37) 석가모니의 근원적인 교리에 대해 부정한 것이 아니라, 불교가 후대로 내려오면서 그 교리가 황당무계하게 변질된 점에 대해 비판한 것이다.

    이처럼 같은 사찬목록이라도 김휴는 해동문헌총록에서 불가에 대해 객관적인 측면에서 해제한 반면, 홍석주는 홍씨독서록에서 불교에 대해 지극히 비판적이고 공격적인 입장을 취했다.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홍씨독서록을 제외한 나머지 주요 해제목록에서는 성리학적인 시각에서 벗어나 불교서적의 해제를 기술하는 데 객관적인 시각을 유지했음을 알 수 있다. 이 같은 해제성향은 당시에 같은 이단으로 분류된 도가서적의 해제 성향과 어느 정도 상통하다고 할 수 있겠다.

       3.3 도가서적해제 평가

    현전하는 조선시대 주요 해제목록에 수록된 도가서적은 해동문헌총록 ‘제가시문집류(諸家詩文集類)’의 ‘선귀목(仙鬼目)’에 1종, 규장총목 도가류(道家類)에 6종, 누판고 도가류(道家類)에 3종, 홍씨독서록 노가문(老家門)에 9종 등 총 19종이다.

    이들 해제목록에 수록된 해제의 내용을 살펴보면 목록에 따라 도가에 대한 입장에 있어서 약간의 차이가 있었다. 왕명으로 편찬된 규장총목, 누판고에서는 성리학적인 입장에서 도교를 이단으로 규정하여 적대시하기보다는 비교적 객관적이고 개방적인 측면에서 도가서적에 대해 해제를 기술하였다. 하지만 이들 관찬목록에 비해 사찬목록인 홍씨독서록의 찬자인 홍석주는 도가의 장단점에 대해 자신의 입장을 보다 명확하게 밝히고 있는 것이다. 전반적으로, 사찬목록보다는 관찬목록이 도가서적에 대해 비교적 개방적이고 객관적으로 해제를 한 것이다.

    아무래도 관찬서라는 점이 거기에 한몫 더했을 것이고 당시 왕명을 내린 정조의 도가에 대한 성향과도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정조는 도교에 대해 우호적인 입장을 지녔다. 그는 도교가 지닌 미신적인 요소는 배격하고, 이치에 합당하다고 판단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적극적으로 수용하였던 것이다.38) 도가에 대한 정조의 배경은 동궁 시절 그의 교육을 담당한 서명응과도 연계된다. 서명응은 세손우빈객(世孫右賓客)으로 정조의 교육에 직접적으로 참여하여 정조의 학문에 큰 영향을 미쳤으며, 정조 또한 서명응이 죽을 때까지 그에 대한 신뢰를 접지 않았던 것이다.39)

    역대 해제목록 가운데 도가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가장 극명하게 밝힌 홍석주 역시 유가적인 입장에서 노자에 대해 해석한 정노(訂老)란 책을 저술할 정도로 도가에 대해 풍부한 지식을 지닌 인물이다. 그 역시 도가의 장점에 대해 높이 평가하고 있으나, 다른 목록에 비해 그가 편찬한 홍씨독서록에서 도가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보다 극명하게 밝힌 것은 그 편찬 목적과 연관 지어 살펴볼 수 있겠다. 규장총목은 규장각의 장서목록을 만들기 위해 편찬한 것이며, 누판고는 전국에서 판각(板刻)한 책판(冊板)의 상황을 정리하기 위해 편찬한 것인데 비해, 홍씨독서록은 그 시발이 자신의 동생과 홍씨 문중의 후학을 겨냥해서 편찬한 것이지만, 그 궁극적인 목적은 바로 당시 우리나라의 후학들의 학문 방향성을 설정해 주기 위해 편찬한 것인 만큼,40) 다른 목록에 비해 도가의 장단점에 대해서 분명하게 자신의 의견을 개진했을 것이다.

    규장총목홍씨독서록의 특정 해제에서 장자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에서 해제한 것을 제외하고, 전반적으로 조선시대에 나온 역대 해제목록에서는 도가서적에 대해 그 편찬 경위 및 내용, 유통본 또는 각종 주해서, 수록서적의 장단점 등 서적에 대한 정보를 비교적 상세히 기술하여 도가에 관심이 있는 독자들에 대해 좋은 정보를 제공했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평가를 내릴 수 있겠다. 또한 당시 성리학적인 질서 속에서 이단으로 분류된 도가서적의 해제를 비교적 객관적인 입장에서 기술한 점은 높이 평가할 만하다.

    4. 결 론

    본 논문은 조선시대 해제목록에 수록된 도가류 서적의 해제 내용을 분석하여, 당시 성리학적인 질서 속에서 이단에 속하는 도가서적에 대해 어떤 관점에서 해제를 기술했는가에 대해 고구한 것이다. 본 논문에서 고구한 내용은 다음과 같다.

    조선시대 주요 해제목록에 수록된 도가서적으로는 해동문헌총록 제가시문집류(諸家詩文集類)의 선귀목(仙鬼目)에 자연당집(自然堂集) 1종, 누판고 도가류(道家類)에 신주도덕경(新註道德經), 구해남화진경(句解南華眞經), 주역참동계(周易參同契) 등 3종, 규장총목 도가류(道家類)에 노장익(老莊翼), 도덕경(道德經), 남화경(南華經) 등 6종, 홍씨독서록 노가문(老家門)에 노자(老子), 장자(莊子), 열자(列子) 등 9종, 총 19종이 수록되었다. 이 19종의 저작 중한국인 저작으로는 해동문헌총록에 수록된 청의동자의 자연당집누판고에 수록된 박세당의 신주도덕경 2종이고, 나머지 17종은 모두 중국인 저작이다.

    도가서적의 해제 내용과 성격을 살펴보고, 그에 대한 평가를 내려 보았다. 먼저 도가서적해제의 내용을 소개한 후 이를 토대로 목록 편찬자의 도가에 대한 인식을 살펴보고, 편찬주체별로 관찬목록과 사찬목록으로 구분해서 각각 어떤 관점에서 해제를 기술했는지 살펴보고, 당시 도가와 함께 이단으로 취급받은 불가서적의 해제성향과 비교해 본 후에 전체적인 평가를 내려 보았다.

    목록편찬자의 도가에 대한 인식을 분석한 결과를 보면, 규장총목누판고를 편찬한 서호수와 서유구의 노자에 대한 인식은 그의 부친이자 조부인 서명응의 노자에 대한 인식을 통해 도출하였다. 서명응은 당시 성리학적 질서 속에서 노자에 대해 대단히 파격적이고 개방적인 입장을 견지했으며, 서유구 역시 조선 후기 도가의 양생술을 집성한 보양지(葆養志)를 편찬하여 임원경제지(林園經濟志)에 수록할 정도로 도가에 해박한 지식을 지녔다. 따라서 서호수, 서유구의 도가에 대한 인식은 당시로서는 상당히 개방적이고 객관적인 입장을 견지했을 가능성이 높다. 홍씨독서록을 편찬한 홍석주는 도가를 불가와 마찬가지로 도의 부분에 있어서는 이단으로 여겼지만 노자에 대해서는 긍정적으로 평가하였다. 그러나 장자에 대해서는 그 견해를 달리하여 장자의 훌륭한 문장에 대해서만 찬사를 보내고, 그의 사상에 대해서는 극렬히 비판하였다.

    관찬목록의 해제를 분석해 본 결과, 규장총목누판고에서는 도가서적의 저자와 편찬자, 책의 내용, 도가 이론, 기존에 간사된 주해서 등에 대해 기술하고, 내용이 훌륭한 서적에 대해서는 찬사를 보내고, 내용상에 문제점을 지적하는 등 전반적으로 당시 이단에 속하는 도가서적에 대해 성리학적인 입장에서 전적으로 비하하거나 멸시하는 측면에서 해제를 기술하기보다는 도가서적 그 자체에 대해 공정하고 객관적인 입장에서 해제를 기술하였다. 사찬목록의 해제를 분석해본 결과, 해동문헌총록에서는 도가에 대해 특별히 언급하지 않았으나, 홍석주의 홍씨독서록에서는 도가의 장단점에 대해 냉철하게 평가하였다. 홍석주는 도가의 장점에 대해서는 인정하였으나, 그 폐해에 대해서는 극단적으로 비판을 가하였다.

    불가서적의 해제 역시 왕명으로 편찬된 관찬 해제목록인 규장총목누판고의 경우, 비록 이단에 속하지만 단순히 불교라는 종교적 이유 때문에 멸시하거나 비하하지 않고, 그 자체를 인정하며 객관적인 입장에서 불가서적의 해제를 기술하였다. 반면에 사찬목록인 해동문헌총록홍씨독서록의 경우 그 관점 상에 차이가 있었다. 전반적으로 해동문헌총록에서는 당시 성리학적인 입장을 초월하여 불교서적과 그의 저자인 승려에 대해 대단히 객관적인 평가를 내렸지만, 홍씨독서록에서는 불교에 대해 지극히 비판적이고 공격적인 입장을 취했다. 이 같은 불가서적의 해제 성향은 전반적으로 도가서적의 해제 성향과 어느 정도 일치하였다.

    전체적으로 평가해 볼 때, 규장총목홍씨독서록의 특정 해제에서 장자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에서 해제한 것을 제외하고, 전반적으로 조선시대에 편찬된 주요 해제목록에서는 도가서적의 편찬 경위 및 내용, 당시 유통되는 판본이나 각종 주해서, 수록 서적의 장점과 단점 등 서적에 대한 정보를 비교적 상세히 기술하여 도가에 관심이 있는 독자들에게 좋은 정보를 제공했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평가를 내릴 수 있겠다. 또한 당시 성리학적인 질서 속에서, 이단으로 분류할 수 있는 도가서적의 해제를 비교적 객관적으로 기술한 점은 높이 평가 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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