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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A 학술지
한국 디지털 판타지 영화 연구* Studies on Korean Digital Fantasy Film
ABSTRACT
한국 디지털 판타지 영화 연구*
Abstract

Recently, the cinema industry faced a crisis on the rise of various media platforms such as Netflix, Amazon Prime, IPTV, and Kakao Page. The rate of film release in the theater has become ever shorter, and the secondary consumption of film through IPTV, tablet, PC, or mobile has seen a drastic increase. In the midst of this new media-geography, the most significant change in recent years would be the rise of the ‘fantasy film’ genre. This paper explores the conditions and characteristics of fantasy films in the way in which the genre has been constituted, and delves into particular aspects that its contents contain. This is an attempt to understand the sociology of the birth of a new genre.

In this process, this paper will ask two frequently raised questions in regard to this genre. The first is to ask whether we can discern fantasy from reality, and the second is to examine whether the fantasy genre implicates certain social subversion. These two questions aim to discover how fantasy forms a relationship with reality and what this means. To do so, this paper will trace the genealogy of the fantasy film genre in Korea and analyze recent big hits such as the <Along with the Gods> series as the model case of digital fantasy film. Through this exploration, this paper will be able to provide a new sociology of the fantasy film production and consumption in the 21st century Korea.

KEYWORD
판타지 장르 , 판타지 영화 , 전복 , 자본주의 , 정치성 , <신과 함께-인과 연> , <신과 함께-죄와 벌> , 디지털 기술 , 디지털 플랫폼
  • 1. 서론

    2019년 넷플릭스를 통해 배급된 알폰소 쿠아론 감독의 신작 <로마>가 오스카상의 3개 부분을 석권하자, 할리우드 영화의 거장 스티븐 스필버그는 넷플릭스와 같은 모바일 플랫폼을 통해 배급되는 영화는 영화 발전을 저해한다고 발언하여 논란을 일으킨 바 있다.1) 마틴 스콜세이지도 영화 <아이리쉬맨>을 극장과 넷플릭스로 동시 개봉했으나 자신의 영화는 핸드폰의 작은 화면으로 보지 말아달라고 하여 빈축을 산 바 있다.2) 할리우드 영화계에서 느껴지는 이와 같은 신경전은 한국에서도 마찬가지다. 봉준호 감독의 <옥자>는 넷플릭스 오리지날 영화로 제작되었기 때문에, 국내 멀티플랙스 극장에서 개봉을 보이콧 당하였다. 이러한 일련의 사건들은 새로운 미디어 생태계에서 올드 미디어가 되어버린 영화계가 처한 최근의 현실을 보여준다. 과연 영화 산업은 넷플릭스나 아마존 프라임, IPTV, 카카오 페이지 등과 같은 플랫폼 서비스에 의하여 저물고 있는 것일까?

    실제로 영화를 둘러싼 미디어 환경은 급속도로 변하고 있다. 극장을 통한 1차 소비의 속도는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이 매우 빨라졌으며,3) 영화의 2차 소비, 즉, IPTV나 테블렛, PC, 모바일 폰으로 영화를 보는 행위를 통해 영화의 손익 분기점이 뒤엎이는 경우도 생겨나고 있다. 한국영화진흥위원회에서도 극장 개봉을 중심으로 한 제작-배급방식을 중심으로 내던 통계를, 2013년부터는 IPTV를 통한 영화 구매 통계까지 월별로 내는 등 영화의 다양한 소비 방식에 주목하고 있다. 모바일 폰은 ‘통화’보다 훨씬 더 다양한 용도로 쓰이고, 같은 기기를 통해 웹툰, 웹소설, 게임, 영화, 드라마가 동시에 소비된다. 2차 시장에서의 영화 소비는 모바일 폰이나 PC를 통해 소비되는 드라마, 웹툰, 동영상과 특별히 구분되지 않는다. 모바일 기기에 집중된 각종 미디어 플랫폼 친밀성은 OSMU(One Source Multi-Use) 마케팅 전략의 필요성 및 웹툰과 영화를 시차를 두고 공개하는 네이버의 슈퍼스트링 프로젝트,4) 다음카카오, 아마존 프라임 등의 프로젝트의 개발을 더욱 부추긴다. 이런 의미에서 전통적인 ‘영화 유통’에는 큰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으며, 마블영화와 같은 특수효과가 강조되는 영화만이 영화관을 장악하게 될 것이라는 불안이 영화계에 도사리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영화는 1990년대 중반 ‘한국형 블록버스터’를 만들기 시작한 르네상스기를 거쳐 2010년대 이후부터는 줄곧 자국 영화의 시장점유율이 50%이상을 차지하며 탄탄한 문화산업으로 자리 잡아 왔다.5) 또한 봉준호의 <기생충>이 칸영화제에서 한국 최초로 그랑프리를 차지하고,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최고 작품상을 비롯한 4관왕을 차지하는 등 한국영화는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는 듯 보인다. 이런 면에서 적어도 플랫폼의 변화가 영화의 소비에 있어서는 부정적인 영향만을 주는 것은 아니라는 가정은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플랫폼의 변화는 영화에 어떤 변화를 주고 있는지가 가장 흥미로운 지점이 될 것이다.

    영화 장르적 측면에서 살펴본다면, 흥미롭게도 한국 영화에서 가장 눈에 띠는 변화는 단연 판타스틱 장르 영화의 성장이다. 2006년 <괴물>의 천만 관객 돌파 이후 가능성을 열었던 판타스틱 장르는 2013년을 기점으로 양적으로 급증하였다.6) 2008년 –43.5%라는 최저 수익률을 찍은 이후 잠시 위기론이 등장하였으나,7) 투자배급사들이 직접 제작하는 수직통합이 본격적으로 이루어진 후부터, 수익률은 더 이상 떨어지지 않고 있다. 송경원은 2000년대 이후 한국 영화의 변곡점을 “장르영화와 예술영화의 분리”가 본격화 된 2007년 이후로 파악한다.8) 물론, 장르영화와 예술영화를 엄격히 양분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지만,9) 확실히 장르 영화, 그 중에서도 판타스틱 장르의 성장은 눈에 띄는 변화이다.

    애초에 영화는 문학과 달리 “다른 무엇으로도 대체할 수 없는 자율적 형식들 하”에 “영화적 환영”을 만들어낸다는 특수한 매체적 특성을 가지고 있다.10) 따라서 영화는 어떤 면에서 대개 환영적 측면을 가지고 있으며, 이미지 조작을 통해 환상적 측면이 강조된, 장르로서의 ‘판타스틱 영화’ 또한 영화의 역사와 함께 시작하였다. 그러나 기존의 판타지 영화와 달리 대형 영화사의 기획, 마케팅과 거대 자본의 투입 속에서 탄생한 현재의 ‘디지털’ 판타지 영화의 ‘기호’들은 새로운 사회학적 해석을 요구한다.

    김소영은 2000년대 초반 필름 영화에서 디지털 영화로 변화하는 시기의 시각테크놀로지에서 “특수효과가 ‘현실’의 지시적 기호를 점차 지워냄과 동시에 역사의 시간화와 공간화에 필요한 재현의 물직적 요소 자체를 소멸”시키고 있다고 언급한 바 있다.11) 2000년대 초반 본격적으로 블롤버스터 영화의 필수요건이 된 특수효과는 과거 셀룰로이드 영화가 보여주던 영화적 조작과는 달리 물질적 요소를 초과하는 새로운 재현의 가능성을 연 것이다. 2016년 천만 관객을 돌파한 <부산행>과 2017, 2018년도에 두 번의 천만 관객 신화를 만들어낸 <신과 함께>가 입증하듯이, 디지털 이미지는 대중과 소통하는 새로운 재현의 영역을 열었다.

    따라서 이 글의 가장 큰 관심사는 첫째는 판타지 영화의 계보를 추적하여 판타지 영화들이 그려온 ‘판타지’의 기호들이 생성된 과정을 살펴보는 것이다. 이에 논문의 앞부분에서는 판타지 영화가 사회, 문화, 경제적 현실과 맺고 있는 관계를 계보적으로 살펴보면서, 판타지 영화와 한국 사회의 관계 속에서 판타지 장르를 이해할 것이다. 이는 판타지 영화 혹은 리얼리즘 영화라는 장르 구분이 가로막을 수 있는 해석의 난점을 넘어서기 위함이다. 다음으로는, 최근에 개봉하여 가장 큰 성공을 거둔 판타지 영화 <신과 함께> 1, 2편의 형식적 특성을 분석하며, 현재 한국에서 기획되고 생산되는 디지털 판타지 영화가 만들어낸 영화의 새로운 판타지 재현의 형태를 분석한다. 마지막으로 판타지 영화는 종종 ‘전복’의 장르로 이해되어 왔는데, 이러한 장르적 특징이 ‘기술로 완성된’ 현재의 한국의 판타지 영화를 해석할 수 있는 지를 살펴볼 것이다. 흥미롭게도 현재 가장 많은 자본을 투입하고, 가장 많은 특수효과를 사용하였으며 가장 큰 흥행의 성과를 낸 <신과 함께>와 같은 영화도, 조야하고도 안타까운 한국 사회의 현실 반영하는 ‘로우 판타지’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논문의 후반부에는 <신과 함께>가 전달하는 메시지를 분석하며, 디지털로 구현된 환상적 세계가 과현 현실의 전복의 메시지를 담고 있는지를 판단해 볼 것이다. 특히 사회적으로 취약한 모습의 젊은 세대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판타지 영화에 과연 어떤 정서와 윤리가 표출되는지 그 사회적 의미를 살펴볼 것이다.

    2. 기술이 만들어낸 ‘판타지 영화’의 계보

    일반적으로 ‘판타지’ 장르란 무엇인가를 논의함에 있어서 가장 빈번하게 전제되는 두 가지가 있다. 첫 번째는 판타지를 ‘리얼리즘’의 대척점에 놓고 구분하는 것이다. 츠베탕 토도로프는 ‘환상적인 것’을 인간의 체험을 성실하게 옮기는 ‘리얼리티’의 세계를 의도적으로 벗어난 것이며, 따라서 ‘리얼리티’적 문법을 벗어나 독자와 캐릭터의 ‘망설임’이 나타나는 문학을 환상 문학의 특징으로 파악한다.12) 물론 이러한 구분은 다소 무용할 수 있다. 이른바 리얼리즘 문학이 ‘환상’의 요소를 전혀 가지고 있지 않다는 가정이 전제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토도로프나 로즈마리 잭슨13)은 불완전성을 전제로 하는 가운데에도 장르 구분을 시도하여, ‘환상성’이라는 개념이 도출할 수 있는 양식이나 주제(경이로운 것, 기이한 것, 환상적인 것 등의 구분)를 추출해낸다. 이에 반해, 캐서린 흄은 문학의 두 가지 충동 즉, 미메시스 충동과 환상 충동은 동시에 존재하는 것으로 파악될 수 있는 것이며, 환상 문학은 “합의된 리얼리티”에 반하는 충동에서 발현된 일반 문학으로 볼 수 있다고 주장한다.14) 이에 따르면 판타지는 리얼리즘이 형식적으로 대별된다기보다 맥락적으로 구별되는 장르로 인식된다. 리얼리티가 드러나는 정도에 따라 판타지 장르도 “로우 판타지(low fantasy)와 하이 판타지(high fantasy)”15)로 구분될 수 있으며, 하나의 균질한 장르로서가 아니라 근대적 합리적 사고의 균열이 분출하는 형태로까지 범주의 외연을 넓힐 수도 있다.16) 따라서, 토도로프나 잭슨과 같이 판타지를 장르로서 구분하는 것은 일종의 표본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유용하지만, 이러한 형식을 판타지의 확정적 지표로 보기는 어려울 수 있다.

    영화의 경우 문학보다 논의가 좀 더 필요하다. 영사판에 이미지로 존재하는 물질이자 비물질인 영화는 로즈마리 잭슨이 언급했듯이 “카메라 렌즈와 대상 사이의 공간에 만들어지는 환영적인 것”의 그림자이고 따라서 그 자체로 환영적이라고 볼 수 있다.17)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른바 흄이 제시한 “합의된 리얼리티”의 문학적 문법에 버금하는 영화적 리얼리티, 즉 핍진성(verisimilitude)을 구성하는 영화 언어적 특수성이 존재한다. 들뢰즈가 『시네마 1, 2』를 통하여 밝혔듯이, 영화는 고정된 이미지를 셀룰로이드에 압축하여 새로운 시간과 내러티브를 편집하여 구성한다. 영화는 새로운 운동과 시간을 영화적 시간 안에 담아 핍진성을 구성하여, 우리에게 이미 익숙한 사고 체계를 혼돈시키고 불안정화 한다.18) 관객은 영화적 공간에 자신들을 안착시킴과 동시에 상상된 것과 실제(real)의 경계가 흐려지는 것을 보고/ 느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를 미학적 관점에서 다룰 때에는 문학과 마찬가지로 영화 매체가 가지고 있는 ‘환영성’과는 별개로 멜리아스적 ‘환상’ 전통과 뤼미에르적 ‘사실’ 전통은 매우 다른 것으로 담론화 되어왔다. 잘 알려진 대로, 뤼미에르는 카메라가 현실을 있는 그대로 담든다는 측면에서 영화의 리얼즘적 측면을 중시하였다면, 멜리아스는 최초의 SF영화로 알려진 <달나라 여행>을 통해 영화 카메라의 조작적 측면, 그리고 이를 통해 판타지를 가시화하였다. 그러나 뤼미에르의 사실적 영상도 완벽한 ‘사실’을 재현한 것은 아니며, 특정한 순간을 담아낸 이미지를 편집하여 영화적 핍진성을 구성한다는 점에서는 멜리아스가 만들어낸 조작적 환영과 마찬가지의 환상성을 내포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토도로프와 잭슨이 환상 문학의 카테고리를 설정할 수 있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판타지장르로서의 멜리아스적 전통은 리얼리즘 전통과 분리되어 이해되어 왔다.

    더구나 판타스틱 영화는 ‘상상하는 것’을 구체적 대상물로 시각화 할 수 있다는 점에서 더욱 구체화 된다. 예를 들어 영화의 서브장르로서의 공포, SF, 판타지는 모두 ‘환상성 (the fantastic)’을 가지고 있으나 영화의 형식적 측면에서는 매우 다른 장르로 여겨진다. 그리고 각각의 서브장르가 독특한 시각 관습을 구축한다. 즉, 귀신이나 퇴마가 나오는 것은 공포영화, 과학의 발전과 사이보그와 미래를 나타내는 것은 SF, 시공간의 경계를 넘나들며 1차세계와 2차세계를 구분 짓고 괴물이나 정령이 나오는 것은 판타지 영화라고 그 외형적 틀에 의해 암묵적으로 구분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스페이스 오디세이 2001>과 같은 영화는 SF영화의 관습을,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과 같은 좀비 영화의 관습을, <반지의 제왕> 같은 영화는 판타지 영화의 형식을 시각적으로 명확히 보여준다. 따라서 영화에서의 ‘판타지’의 외연은 ‘판타스틱 영화’보다는 좁은 개념으로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한국 영화의 경우 이런 좁은 개념으로서의 판타지 영화의 역사는 서구보다 더 짧다. 김소영은 폴 윌먼을 인용하여 합리적 근대라는 개념이 존재할 때 이의 대립쌍으로서의 ‘판타스틱’ 영화가 가능하고, 이런 면에서 판타지 영화는 ‘합리적 근대’에 태어난 장르임을 주장한다. 따라서 김소영은 한국의 경우 근대화가 본격적으로 추동되었던 1960년대 한국영화의 황금기가 되어야 판타스틱 한국영화가 나타났다고 지적한다.19) 예를 들어 판타스틱 장르에 속하는 <월하의 공동묘지>(1967)는 공포, <대괴수 용가리>(1967)는 SF와 재난 장르의 중간쯤에 위치한다. 그러나 주지하다시피 한국영화사에서 판타스틱 영화는 주류범주에 들지 않고 산발적으로 제작되었다.

    이런 면에서 본다면 현재 우리가 지칭하는 1, 2차세계를 넘나드는 ‘판타지 장르’는 1990년대까지 거의 존재하지 않았다고 볼 수 있다. 그 이유로는 한국영화가 리얼리즘 미학을 선호하는 방향으로 정전화 혹은 역사화 되었다는 점과 국가의 정책에 따라 선호되는 장르를 만들 수밖에 없는 여건이 있었다. 1960년대 한국영화의 황금기를 지나 1970-80년대 한국 영화의 암흑기에는 직접적인 ‘환상’이 가시화된 장르 영화들은 영화 미학 담론의 완벽한 외부에 위치해 왔다.

    위와 같은 편파적 장르의 형성의 원인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해석이 가능할 것이다. 먼저, 한국의 근대가 식민지-전쟁-분단-냉전 등의 “환상성이 살아남기에는 너무나도 척박한”20)시공간을 지니고 있었음을 지적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제 1세계 국가가 그리는 환상적 공간을 그려내기에, 한국의 토양은 척박할 수밖에 없었으며, 따라서 판타스틱 장르가 존재하기는 하더라도 미국이나 영국의 제국주의 국가가 만들어낸 판타지 영화와 한국의 판타지 영화가 형식적으로는 비슷할 수 있으나, 그 내용이 비슷하기 어렵다는 견해이다. 때문에 한국의 판타지 장르는 공포나 잔혹한 현실에 대한 무의식을 드러내는 남미 영화의 마술적 리얼리즘과 더욱 친연성을 가지고 있다고 볼 수도 있겠다.21)

    다른 한편으로는 영화가 창조하는 2차 세계의 현실감, 즉 판타스틱한 세계의 핍진성이 일정한 산업적 조건에서만 만들어질 수 있다는 점도 염두에 두어야 한다. 말하자면 영화적 판타지 재현에 필요한 핍진성을 구성하는 데에는 이를 가능하게 할 기술이 필요하고, 그 기술을 갖추지 못한 3세계의 영화의 판타지는 그 핍진성의 조야함 자체가 조롱의 대상이 된다. 1967년 작 <대괴수 용가리> 제작 당시 이러한 공상과학영화를 만들 수 있는 한국의 기술력을 지속적으로 자랑한다거나 일본과의 합작이 강조되었던 것 22)도, ‘판타스틱’ 영화를 만들기 위한 물질적, 정치적 조건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보여주는 일례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영화 제작의 디지털적 전환, 즉 이진법 체계를 통해 탈부착이 용이한 디지털 기술은 영화의 후반작업을 통해 셀룰로이드로는 부가할 수 없었던 새로운 재현의 방식을 만들며 새로운 영화 기호들을 탄생시켰다. 기존의 셀룰로이이드에 대한 물리적 조작으로 구현해왔던 “합의된 리얼리티”의 경계는 넓어졌고 새로운 재현의 기호들이 왕성하게 탄생하게 되었다. 전세계적으로도 1993년 <쥐라기 공원>의 성공 이후로 대형 판타지 영화가 쏟아져 나왔다. 압도적인 디지털 기술력을 바탕으로 한 영화들이 2000년대 초반부터 판타지 영화의 신기원을 이루었다. <매트릭스>(1999), <해리포터>(2001), <반지의 제왕>(2001), <아바타>(2009), <인터스텔라>(2014) 등의 영화는 한국에서도 대흥행했으며, 2000년대 후반부터 전 세계를 압도하기 시작한 마블영화의 슈퍼히어로 시리즈는 이른바 디지털 문화 시대가 낳은 압도적인 판타지 장르 영화의 시대를 주도했다.

    한국 사회에도 1980년대 후반부터 디지털 기계장치를 도입할 수 있는 요건이 갖추어지기 시작했다. 조야하기는 하지만 1980년대 후반 김청기 감독의 <우뢰매>시리즈는 이러한 시각 조작을 통해 만들어낸 아동용 판타스틱 장르의 예이다. 물론 본격적으로 디지털 기술이 쓰인 것은 1990년대 중반부터인데, 흔히 DI(digital intermediation)으로 불리는 기술을 통해 새로운 장르영화의 세계를 열 수 있었다.23) <은행나무 침대>(1996), <여고괴담 1>(1998), <퇴마록> (1998)과 같은 판타스틱 장르의 영화가 크게 흥행할 수 있었던 것도 디지털과 CG의 사용을 통해 구현된 새로운 시각을 통한 장르화가 가능했기 때문이다. 이후 Red Camera, Arriflex Alexa와 Sony CineAlt와 같은 디지털 카메라의 상용화는 고급 퀄리티의 디지털 영화 촬영과 후반작업의 용이성을 통해 장르영화의 전성기를 열었다.24) 이런 면에서 판타지 영화의 등장은 사회적, 문화적, 경제적, 기술적 요건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해야만 충분한 ‘핍진성’을 구가할 수 있다는 점이 매우 중요하게 인지되어야 할 것이다.

    한국에 이런 조건이 상당히 갖추어지기 시작한 것은 2000년대 중반 이후라고 볼 수 있다. 2006년 <괴물>의 천만 돌파와 2007년의 <디워>는 판타지 장르의 확실한 분기점을 만들었다. <괴물>은 해외영화사와의 기술합작을 통해 국제화의 추세를 선도했고, <디워>도 해외 동시개봉을 추진할 정도로 디지털 기술을 통한 장르영화의 가능성을 넓혔다. 국내 기술팀들도 막 성장세를 타고 있던 중국의 판타지나 무예영화의 CG기술을 합작하는 데에 큰 성과를 보였다. 대표적으로 천카이거의 <투게더>(2002)와 <무극>(2005)과 같은 영화가 디지털 기술의 합작의 예이다.25) 판타스틱 장르가 한국의 주요 미학인 리얼리즘과 부합하지 않았다는 측면에서 외면 받아왔던 과거에 비해 <괴물>은 장르영화와 리얼리즘 영화의 경계를 무너뜨릴 가능성이 있음을 설득력 있게 보여주었다. 그러나 아직은 해외의 디지털 영화들과 겨루기에는 역부족이었던 한국의 판타지 영화들은 2013년 제작 붐과 흥행참패를 동시에 맞보았다.

    그러므로 2016년 <부산행>의 성공 이후로 좀비물을 비롯한 <신과 함께>와 같은 판타지 장르가 형식적으로나 대중적 성공했던 것은 이런 영화 기술적 조건이 갖추어진 이후에 탄생할 수 있었던 매우 최근에 형성된 장르라고도 볼 수 있다. 흥행에 참패하였지만 2013년 <미스터고>의 후반작업을 한 DEXTER 스튜디오의 특수 효과팀이 실패를 딛고 중국의 무예, 무예판타지 영화에서 이력을 쌓으며 2018년 <신과 함께>에 상당한 호평을 받으며 ‘국산 CG’ 기술의 발전을 이뤄낸 것도 최근 한국의 판타지 영화를 가능하게 한 중요한 원천이었다.26) 다시 말해, 좁은 외연으로서의 판타지 영화는 1990년대 이후 ‘디지털 기술’이 만들어낸 장르라고까지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현재의 디지털 판타지 영화는 기존의 영화 매체가 가지고 있는 “영화적 환영성”이라는 일반적 개념을 초과하는 판타지 세계를 적극적으로 그리는 단계에 이른 것이다.

    3. 디지털 판타지 영화의 어떤 표본: <신과 함께>의 경우

    이제 최근의 판타지 영화가 기획, 제작되는 과정과 플랫폼이 가져온 변화를 좀 더 자세히 살펴보겠다. 대내적으로는 한국의 최근 10년간 역대 박스오피스 순위를 보더라도 디지털화 된 판타지, SF 혹은 재난물 등 판타스틱 영화가 1000만 관객 시대를 열며 흥행의 주도하고 있음을 확인 할 수 있다.27) 여기에 더해 박스 오피스의 성공은 다른 플랫폼의 같은 장르의 영화의 소비 또한 견인한다. 예를 들어 판타지 영화의 시리즈물 중 최신판이 개봉하면 IPTV에서 같은 시리즈의 전편들의 구매횟수가 덩달아 급증하였다.28) 다시 말해, 여러 가지 플랫폼을 통한 다시보기 기능은 판타지물의 흥행을 지속적으로 이어나가며 문화 소비의 새로운 패턴을 만들어 내고 있는 것이다.

    또한 한국 영화 시장과 미국 시장이 국내, 국외 마켓에서 경쟁하는 상황도, 영화를 대형화하며 화려한 기술을 선보이는 판타지 영화를 제작하는데 몰두하게 한다. 일례로 마블영화로 흥행을 주도하는 미국영화에 대항하기 위해 한국영화도 이에 맞설 만한 판타지 영화의 제작을 감행하게 되고, 이는 시장 경쟁에서 이기기 위한 방편으로 여겨진다. <신과 함께>나 <부산행>이 아시아 지역에서 연이은 흥행을 이루고 있으며, <신과 함께>는 이미 4편까지 기획이 된 상태다. 이제 한국 영화가 미국과 마찬가지로 세계시장에 문화자본주의적 위력을 발휘하고 있는 것이다. 2010년 이후 세계적 경제대국이자 ‘한류’의 문화 수출국이 된 한국에서 문화적 영토를 확장하는 길에서, 판타지 영화는 문화 강국의 위치를 공고히 하는 중요 무기가 되었다. 이 가운데 한국적 영화 콘텐츠를 만들기 위하여 제작사가 웹툰과 웹소설 시장의 콘텐츠에 눈을 돌린것도 새로운 문화 소비 패턴에 조응하기 위한 중요한 방편이었다.

    여러 문화 콘텐츠 중에서도 웹툰은 영화에 가장 많이 이용된 모바일 콘텐츠이다. 웹툰은 짧은 자투리 시간을 이용하여 빠르게 소비하는 가장 대중적인 스낵컬쳐로 꼽힌다.29) 10초면 볼 수 있는 웹툰이 영화화되고 30) 분절성이 두드러진 웹소설이나 게임이 영화화된다.31) 2015년 천만 관객을 모았던 좀비영화였던 <부산행>은 2-D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된 <서울역>과 영상적 친연성을 가지고 있고 애니매이션이자 영화감독인 연상호는 최근 웹툰 작가와32) 드라마 작가33)로도 데뷔하였다. 모바일 기기의 대대적 보급에 따라 대중교통 안, 쉬는 시간, 자기 전 누워서, 혹은 수시로 소비자는 동영상을 시청하거나 웹툰을 빠른 속도로 읽어 내려간다. 특히 웹툰은 수직적으로 스크롤 다운하여 관람할 수 있는 “스크롤 미디어” 콘텐츠로 자리 잡았고,34) 수직적으로 스크롤 다운하는 가운데, 웹툰의 이미지는 일정한 영상적 효과까지 갖는다. 최근에는 웹툰에 소리나 스페셜 이펙트를 더하여 새로운 미디어 감각이 만들어지고 있다. 따라서 웹소설 보다도 이미 이미지화 되어있는 웹툰이 가장 영화화가 많이 된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도 볼 수 있다.

    영화화 된 웹툰으로는 2005년 강풀의 <아파트>, <바보>를 시작으로, <순정만화>(2008), <이끼> (2010), <은밀하게 위대하게> (2013), <내부자들> (2015), <강철비> (2015), <신과함께> (2017, 2018>, <창궐>(2018) 등을 들 수 있다. 초기에는 웹툰 원작을 바탕으로 한 영화들이 실패하는 경우가 많았고, <그림 1>에서와 같이 기획되었던 웹툰 원작 영화중에서 흥행에 성공한 것은 <신과 함께>와 <내부자들>정도이다. 장르적으로 살펴보자면, 상당한 상업적 성공을 이룬 웹툰 원작 영화는 스릴러, 좀비물, 액션, 판타지 등이고, 로맨스는 실패를 거듭했다. 아무리 인기 있었던 웹툰 원작이더라도 영화로 제작되었을 때 상업적 성공을 당연시할 수 없었던 것이다. 또한 영화화되었을 때 ‘영화적 흥미’를 유발할 수 있는 시각적 장치를 어떻게 구현하느냐도 큰 관건이었다.

    현 상황에 대하여 <신과 함께>의 공동 제작자인 원동연은 <씨네21>과의 인터뷰에서 “앞으로는 극장에서 봐야 할 콘텐츠와 그렇지 않은 콘텐츠가 완벽하게 구분될 것이다. 지금 내가 콘텐츠를 픽업할 때 가장 먼저 고민하는 질문은 ‘이 아이템이 꼭 극장에서 봐야 하는 건가’다”라고 밝혔다.35) 다시 말해, 극장에서 영화를 보는 관람 형태가 영화 관람의 극히 일부만을 이루게 될 것이라는 전망이고, 따라서 극장 상영과 모바일 상영을 위한 콘텐츠 개발 전략이 다를 수밖에 없음을 시사하는 것이다. 어두컴컴한 극장에서 주어진 2시간여를 집중하여 상영하고 관람하던 방식의 영화문화는 축소될 것이고, 소비자의 생활 패턴대로 10분, 20분을 쪼개서 환한 대낮에 영화를 가볍게 소비하는 이른바 ‘스낵컬쳐’의 일부로 재편 될 것이며, 이에 따라 전략적으로 영화 제작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 의견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본다면, 앞으로의 영화는 몰입과 관람 충성도를 원칙으로 하는 영화 관람을 위한 영화를 만들어 냄과 동시에, 이것이 바쁜 현대인이 잠시 짬을 내어 볼 수 있는 영상으로도 재편집 가능한 콘텐츠로 소비될 가능성도 높아 보인다.

    이와 관련하여 조형래는 <신과 함께>의 짧게 편집된 동영상이 광고나 짧은 동영상 짤로 퍼져 나갔던 상황을 지적하며, 관객의 소비패턴에 조응하는 방식을 택하였던 것이 <신과 함께> 돌풍의 원인으로 파악했다.36) 물론 <신과 함께>의 원작 웹툰이 2010-11년 최고의 조회수를 기록했을 뿐만 아니라 2015년과 2017년 뮤지컬로 이미 공연이 되었고, 2016년 온라인 RPG 게임으로 만들어졌던 것도 이러한 영화의 시각적 장치가 관객에게 ‘익숙한’ 것으로 감지될 수 있는 다수의 조건을 만들어낸 것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37)

    여기에 더하여 <신과 함께>가 판타지 영화로서의 2차세계를 성공적으로 구현한 것과 영화를 게임적으로 재구성한 측면도 모바일로 이미 콘텐츠를 접한 관객에게 어필하였을 것이라 짐작할 수 있다. 영화에 구현된 이미지는 2차원의 평평한 상상에 머물렀던 웹툰을 3차원의 공간으로 인도한다. CG를 통한 2차 세계의 구현은 특히 저승을 여행하는 장면에서 웅대하게 구성되며 실사로는 촬영할 수 없는 CG의 게임적 움직임에 의해 속도감과 긴박감이 더해진다. 미국의 경우 <쥐라기 공원>이후, 한국의 경우 <괴물>이후 “디지털 크리쳐”가 등장하여 액팅을 한다는 점은 판타지 장르의 큰 특징이 되었다.38) 영화 <옥자>가 슈퍼돼지를 CG로 창조한 것과 같이, <신과 함께>에서는 웹툰에 등장하지 않았던 디지털 크리쳐가 다수 등장하여 게임적 판타지를 만들어내는데 일조한다. <신과 함께>의 경우 CG와 시각특수효과(VFX)가 들어간 숏은 2200개에 전체 숏의 88%를 이루고 트랜지션에 쓰인 숏까지 포함한다면 전체 영화의 90%에 달하였다고 한다. 이렇게 많은 VFX가 쓰였기 때문에, 영화의 디지털 효과는 후반작업 뿐만 아니라 촬영부터 CG를 감안하지 않을 수 없을 정도였다.39) 다시 말해, 전통적인 의미에서의 후반작업이 영화의 본 작업을 압도할 정도가 된 것이다.

    그러나 <괴물>이나 <옥자>가 현실에 잠입한 가상의 생물로서의 모습을 디지털 적으로 구축해낸 것이라면, <신과 함께>는 현실의 인간들이 ‘디지털 공간’으로 이동한다는 측면에서 차이를 보인다. 다시 말해, 괴물과 슈퍼돼지가 인간의 현실 세계를 방문한 것과 달리, <신과 함께>의 주인공들은 ‘디지털 공간’으로 이동한다. CG 작업을 통해 구현된 저승을 주인공이 여행을 하는 과정에서, 끊임없이 등장하는 디지털 크리쳐들과 이를 물리치는 저승사자들의 대결이 생동감을 더하며 <신과 함께>는 명실상부한 판타지 영화로서의 2차세계를, 입체적으로 구현하며, 마치 관객들이 놀이공원의 테마 파크에 직접 입성한 듯한 느낌마저 갖게 한다.40) 이는 주인공의 이동에 관객이 같이 공간이동을 한 효과를 낳으며, 게임이 게임 유저들을 게임의 공간으로 불러들이는 방식과 같이 관객을 영화의 세계로 이동 시킨다.

    조형래 또한 게임적 CG와 영화적 CG가 이제는 큰 차이가 없음을 지적하였는데,41) 이러한 시각적 구현 외에 영화 전체의 서사가 게임화 되었다는 점은 <신과 함께>의 큰 특징이다. 영화는 RPG게임과 같은 방식으로 세 명의 저승차사를 플레이어로 설정한다. 이들이 데리고 가는 김자홍, 김수홍 두 형제는 이승의 스토리를 제공하는 역할을 할 뿐 영호의 액터는 차사 세 명이 된다. 관객은 세 명의 차사가 액터가 되어 게임을 플레이하는 동안 이들에게 몰입하게 되며, 총 7개의 관문을 통과하게 된다. 각각의 관문을 지나기 위해서는 무죄를 입증하는 퀘스트를 수행해야 하며, 이러한 퀘스트가 성공할 때 다음 관문으로 나아가게 된다. 2017년에 개봉한 <신과 함께-인과 연>이 총 7개의 관문의 퀘스트를 성공적으로 수행하는 것을 보여준다면, 2018년 개봉한 <신과 함께-죄와 벌>을 본 관객들은 이러한 퀘스트를 반복하는 게임적 효과를 얻게 된다.

    다시 말해, 관객은 영화 관람자로서 김자홍과 김수홍의 억울한 죽음에 얽힌 이야기를 접하는 한편, 저승으로 들어가는 시점에는 마치 RPG게임의 플레이어와 같은 방식으로 비매개 되어 (im-mediate) 되어 게임적 판타지 안으로 관람자 자신이 진입하게 되는 것이다.42) 이러한 게임적 서사가 영화에 등장한 경우는 아직까지 많지 않지만, 2019년 초에 종영된 드라마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은 보다 직접적으로 게임을 통해 가상의 현실과 현실을 넘나드는 게임판타지를 TV화면에 선보였고, 10%대 시청률을 기록하며 선전하였다. 따라서, 영화의 게임적 구성, 게임과 같은 CG를 영화의 화면에 구현하여 관객을 판타지 안으로 직접 불러들이는 것이 현재 판타지를 소재로 한 대중서사의 특징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거기에 더해 <신과 함께>에서는 웹툰에서는 세 명의 성주신에게 주어졌던 역할이 마동석이라는 CG가 필요 없는 근육질 액션 히어로 캐릭터에 집약된다. 즉 마블에 버금가는 히어로 인물을 이승의 내러티브에 삽입하여, 마동석을 마블영화의 슈퍼히어로적 성격을 지닌 캐릭터로 만들었다. 물론 여기에서 마동석은 인간을 해칠 수 없는 힘없는 히어로로 설정이 되었지만, 마동석 신체 자체는 압도적 육체성이 뿜어내며 히어로적 포스를 과시한다. 조형래도 <신과 함께>가 보여주는 방식이 마블스튜디오의 슈퍼히어로물의 시각화 방식을 차용한 시각적 스타일에 있음을 지적한 바 있다. 마동석이 새로운 마블 시리즈 <이터널스>의 주인공으로 캐스팅된 것도 43) 이와 같은 캐릭터의 활용과 무관치 않을 것이다.

    이렇게 영화와 게임 플레이가 교차되는 구성 때문에, 사실은 매우 지루하고 ‘아시아적인’ 살인, 나태, 거짓, 불의, 배신, 폭력, 천륜에 관한 7가지 교훈 서사가 관객을 훈계하면서도, 관객들이 2시간이 넘는 러닝타임을 견딜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제작자 원동연이 밝혔듯이 “아시아를 관통할 수 있는 보편서사”44)와 게임적 구성과 몰입효과를 관객에게 전달한다. 거기에 엑소 멤버의 캐스팅을 통해 스타 파워까지 가미한 <신과 함께>는 웹툰-게임-영화 혹은 K-music의 효과까지 노리며 크로스 미디어 전략을 구사한 종합 엔터테인먼트를 구성한다. 또한 이제는 드라마에서야 어쩔 수 없는 것으로 여겨지는 PPL의 과감한 삽입 등45) <신과 함께>는 영화의 상업성을 위해 구가할 수 있는 모든 요소를 장착하고 있다. 요컨대 <신과 함께>가 보여주는 특징들을 살펴볼 때 원천적으로 웹기반 서사와 이미지를 통하여 생성된 판타지를 게임, 뮤지컬, 영화로 이동시키고 다시 이것이 모바일 폰의 짤로, 동영상으로 소비되는 구조에 적합한 판타지가 현재 디지털 문화에서 탄생한 판타지 장르의 생성 과정인 것이다.

    4. 판타지는 전복하는가? ‘이생망’의 자본주의적 판타지

    이제 디지털 판타지 영화의 구축을 통해 그려진 판타지의 내용을 점 더 자세히 살펴볼 필요가 있겠다. 토도로프가 문학 텍스트의 내부에 존재하는 ‘환상성’에 집중하여 판타지 양식의 구조주의적 분석을 시도하였다면, 이러한 양식으로서의 판타지의 특징을 사회, 문화적 맥락 속에서 일정한 ‘전복의 정치’가 가능하게 하는 문학으로 대별한 것은 로즈마리 잭슨이다. 로즈마리 잭슨은 문학의 내부와 외부에 대한 정치한 분석을 통해, 환상적인 것이 근본적으로는 당대의 현실에 대한 전복적 가능성을 내포한 것으로 본다.46) 로즈마리 잭슨의 이러한 해석은 상당히 광범위하게 받아들여지고 있다. 많은 학자들이 판타지 장르가 “해체적 충동(deconstructive impulse)”을 가지고 있다고 해석하는 경향이 있으며, 이러한 해석의 경향은 이미 클리쉐가 되고 있다고도 볼 수 있다.47) 그러나 이러한 해석의 틀이 모든 ‘판타지’에 적용된다고 보기는 어렵다. 환상은 현실의 이데올로기를 강화하거나 균열된 모든 것을 현 상태로 돌려놓는 보수성을 지니고 있기도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현재 대한민국에서 매체의 확장과 함께 쏟아지고 있는 웹판타지 문학, 혹은 판타지 영화를 분석함에 있어서 ‘판타지의 전복적 기능’이 존재하는가는 좀 더 자세히 논의되어야 할 것이다.

    외피만 살펴본다면 <신과 함께>는 1차 세계와 2차 세계를 오가는 중간 지점, 즉 인간에게는 ‘환영’이라고 불릴 수 있는 공간을 가시화하고 있다는 점에서 ‘하이 판타지’에 속하는 듯하다. 죽음의 상태에 처한 주인공들이 과거로 다시 한 번 회귀하여 지난 생을 복기한다는 설정 자체는 흄이 지적하였듯이 현실에서 “의도적 탈출”을 그린다는 점에서 판타지적이다. <신과 함께>에서 판타지를 겪게 되는 주인공들은 이 세상에서 망한 사람들, “이생망”의 사람들이다. 그들은 영혼의 회귀를 통해 저승에서나마 원한을 풀게 된다.48) <신과 함께>에서 김자홍, 김수홍 형제는 모두 완전한 죽음을 맞기 이전에 주어진 49일 동안 자신들의 삶을 복기하는 가운데 원한을 풀고 “이상적인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어떤 면에서 <신과 함께>에서 사회적으로 위태로운 사람들이 평화로운 죽음을 맞이하게 되는 서사는 로즈마리 잭슨이 주장한 바와 같이 판타지가 현실에 은폐된 충동을 분출시켜 관객에게 해방을 느끼게 한다는 점에서 현실을 전복하는 듯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형래가 지적했듯이 <신과 함께>의 주인공들은 젊은 나이에 억울함을 품고 죽거나 비정규직과 같은 사회적 약자의 모습으로 재현된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는 이러한 지점에서 <신과 함께>가 ‘헬조선’을 살아가는 한국의 관객들의 “죽음의 충동”을 투사한 것이라 지적한다.49) 이와 유사하게, 이윤종은 <부산행>의 좀비 서사를 분석하면서, 좀비 판타지를 프레카리아트 계급, 즉 언제든지 사회의 바닥으로 추락할 수 있는 위태로움을 가지고 있는 계급의 정동으로 파악하였다.50) 이는 복도훈이 좀비를 “빚진자 들의 연대”로 파악한 것과도 일맥상통하며,51) 현 사회의 위태로운 자들의 모습을 판타지 장르가 우회적으로 드러내고 있다는 점을 공통적으로 지적한다. 판타지 영화는 아니지만 영화 <화차>가 보여주듯 빚에 떠밀려 현실에 존재하지만 어느 순간 잠적해버릴 수 있는 사람들의 모습, 그러한 일상적 재난의 지점이 판타지 영화에 (무)의식적으로 드러난다.

    이런 면에서 본다면, 판타지 영화에서 “의도적 탈출”이 사실은 현실에서 겪은 재난과 무관하지 않다는 점, 그리고 다시 현실을 조망하는 기제가 된다는 점에서 <신과 함께>는 판타지 영화라기보다 개인의 재난상황을 전지적 시점에서 조망하는 현실에 관한 영화라고 볼 수 있다. 수잔 손탁은 대표적인 판타스틱 영화인 냉전기 SF영화들을 과학을 표면에 둔 “재난의 영화”이며 냉전이 처한 현실의 사태를 이데올로기적으로 암시하는 영화라고 지적한 바 있다.52) 마찬가지로 한국의 판타지 영화 또한 이데올로기적 작동을 하고 있다고 가정한다면, 현재 기술의 발전과 소비의 활황과 더불어 성장하는 판타지 영화는 21세기 한국이 처한 현실, 혹은 재난을 그려낸 영화라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재난은 과거의 재난, 즉 전쟁과 기아, 천재지변이 아닌, 개인이 당한 사고, 죽음에 해당한다. 따라서 21세기 한국의 판타지 영화는 개인적인 재난이 현실에서 해결점을 찾을 수 없는 새로운 재난 상황을 피하게 해준다는 점에서 전복성이 있다.

    그러나 “이상적 죽음”을 맞이하게 되는 상황의 논리와 과정을 살펴본다면, 과연 이 판타지가 진정한 ‘전복’인가에 대해서는 의문이 생긴다. 예를 들어, <신과 함께>는 2차 세계를 드러내는 환영적 이미지로 가득하지만, 이들이 통과하는 7개의 관문은 억울한 죽음을 ‘기소’하고 ‘변론’한다는 이성적, 법적 작동방식으로만 움직인다. 다시 말해, 영화가 2차 세계를 다루는 방식이 현세의 법집행 방식을 따르고 있다. 물론 사자들이 현세와 내세를 오가는 것은 초자연적인 일이지만, 그들이 망자를 변론하는 방식은 억울한 부분을 추론하고, 조사하여, 마침내 이성적 변론을 한다는 점에서 ‘이성적 합리성’의 승리를 보여준다. 이는 ‘이성적 합리성’이라는 근대적 가치가 현실 세계를 구축하고 ‘판타스틱’한 것이 그에 대항한다는 ‘판타지’의 ‘전복성’의 일반적 해석에 완벽히 균열을 낸다. 관객은 이미 ‘이성적 합리성’이라는 근대적 가치가 전복된 ‘재난 상황’이 팽배한 사회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보다 역설적으로 ‘합리성’으로 작동하는 시스템에 대한 상상이 ‘비합리적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판타지가 되는 셈이다. 즉, 현실에서 찾을 수 없는 ‘합리성’을 찾는 것이 역설적으로 ‘판타지’인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신과 함께>는 웹소설의 인기 장르인 ‘회귀물’과 상당한 관련이 있다고 볼 수 있다. ‘회귀물’이란 억울한 죽음을 당한 사람이 과거의 시간대로 돌아가서 자신의 인생을 다시 사는 스토리를 가진 웹소설의 장르를 지칭한다. 안상원이 밝혔듯이 회귀물의 특징은 “미래의 정신이 현재(과거)의 몸을 지배하는 것” 이며, “회귀 모티프의 서사는 주인공이 현재의 유의미한 관계/권력 등을 상실한 데서 시작하며, 회귀 사실을 안 뒤 자신의 삶을 회복하고자 지식을 활용한다는 점, 더 나아가 회귀 시점 이후의 미래를 긍정한다는 점”이다.53)  ‘회귀물’ 웹소설은 게임을 리부팅하여 반복적으로 과거로 회귀하며 이생을 거듭 살아내는 내러티브를 생산한다.

    그러나 특이한 것은 그것이 판타지임과 동시에 이미 한번 살아본 인생의 현실 원리를 체득한 주인공이 남들보다 우월하게 수행한다는 점이다. ‘이생망’했던 현실과 달리, 이미 ‘이성적 판단’을 통해 현실에서 해답 카드를 가진 자들은 다시 비합리와 재난이 그대로 남아있는 현실에서의 승리를 꿈꾼다. <신과 함께-인과 연>에서도 ‘다시 살기’의 쾌락은 존재한다. 영화에서는 수홍의 억울한 죽음의 진실이 밝혀지는 재판이 진행되는 가운데, 수홍이 살던 철거지역의 조-손 가정과 그 가정을 지키는 성주신(마동석 분)의 이야기가 같이 진행된다. 성주신은 철거지역에서 혼자 손주를 키우고 있는 할아버지의 죽음을 막아주 가신(家神)인데, 저승사자의 세계에서는 초월적 힘을 가지고 있지만 이승에서는 아무런 위력을 발휘할 수 없다. 그래서 철거반에게 맞아 똥통에 빠지거나, 조-손 가정에게 지급되는 생활비를 타기 위해 꼼수를 부린다. 육체적 힘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현세의 세계에 관한 예지력도 떨어져 반토막 날 펀드를 사고 “펀드는 언제고 오른다”라는 어리석은 말만 되풀이한다. 마지막에 소멸될 위기에 처해서는 “니 말대로 펀드 말고 부동산 살걸 그랬어. 비트코인 사거나”라는 말을 내뱉는 그에게 억울한 사람을 지킬 수 있는 힘은 없어 보인다. 다시 말해 죽은 자들이 세상의 법을 따르고, 세상은 세상의 법을 따르지 않아, 현실은 판타지가 감당할 수 있는 부분을 초과한다. 그러나 망자들의 억울함이 2차 세계에서 재판을 통해 해소되고 ‘이상적 죽음’에 이르고 할아버지의 ‘다시 살기’가 가능해지자, 그 가족에게 극적인 변화가 온다. 망할 줄 알았던 ‘펀드’가 오르는 것이다.

    주인공들은 삶을 회귀하고 드디어 ‘이상적인 죽음’에 이르지만, 그들이 살던 1차 세계의 구조는 변하지 않는다. 그리고 철거반이 들이닥쳐 언제라도 자신이 살고 있는 터전을 밀어버릴 수 있는 상황에 처한 비참한 현실을 살아가고 있는 사람에게 전해지는 것은 “나쁜 사람은 없어. 상황이 나쁠 뿐이지”라는 착한 메시지이다. 그리고 그 메시지를 간직한 자에게 자본주의적 ‘상’인 펀드 상승이 이루어진다. 펀드가가 상승하면서 비참한 현실이 뒤집힐 것으로 마무리되는 영화의 끝은 어쩌면 영화를 통틀어 가장 ‘비전복적’이다.

    다시 말해, ‘이성적 원리’가 작동하지 않는 현실에는 변화가 없지만, “나쁜 상황은 로또로 극복된다”와 같은 서사는 역설적으로 자본주의적 판타지를 전달하는 것이다. 판타지적 존재가 해결하지 못하는 현실의 삶, 그러니 상황이 나쁠 뿐이니 유순하게 이 상황을 받아들이라는 성주신의 메시지는, “이생망”이더라도 착하게 삶을 받아들이라고, 다음 생을 기다리라는 훈육을 남긴다. 이렇게 <신과 함께>는 1차 세계와 2차 세계를 넘나드는 판타지보다 더 환상적인 자본주의적 판타지를 화려한 디지털 기술을 동원한 영화를 통하여 제공하는 것이다. 이렇듯 망한 현실을 다시 되풀이하여 자본주의적 승리를 쟁취한다는 욕망의 투사는, 판타지 안에서도 벗어날 수 없는 신자유주의적 삶의 위력을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5. 결론

    이 논문에서는 한국의 판타지 영화의 계보를 살펴보면서, 현재 가장 왕성하게 생산되고 있는 판타지 영화가 2000년대 초반부터 디지털화된 기술 속에서 자라난 장르였음을 밝혔다. 또한 기술적으로 완성도 높은 영화에 필연적으로 따르는 문화자본주의의 성장 속에서, 판타지 영화는 급속하게 변화하는 플랫폼 환경에 발맞추어 그 형식과 언어를 교차시키며 새로운 21세기 한국 영화의 강자로 자리 잡아가고 있음을 밝혔다. 그리고 이러한 맥락 속에서 제작된 판타지 영화는 판타지 영화가 고전적으로 전제하고 있었던 사회전복적 요소를 탈색시키고, 오히려 자본주의적 환상을 그리고 있음을 밝혔다. 마지막으로 그 비전복성의 배경에는 신자유주의가 압도하는 ‘이생망’의 현실과 그 현실을 살아가는 한국 사회의 욕망, 그리고 이러한 욕망을 부추기는 신자유주의적 훈육의 메시지가 있음을 지적하였다.

    서동진은 최근 몇 년 동안 우리가 쉽사리 접할 수 있는 천만 관객의 주체가 누구인지 질문하면서, 포스트-시네마 시대의 관객의 주체성을 참여하는 주체로 상정할 수 없는 상태에 달하고 있음을 지적했다. 많은 영화가 “노골적으로 비디오게임과 같은 대중오락에 빠진 젊은 관객층”54)이 소비하는 문화로 보기에는 상당히 어두운 현실을 영화가 보여주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두운 현실을 보여주는 듯한 판타지 영화의 이면에는 판타지도 극복할 수 없는 자본주의적 훈육이 관통하고 있다. 판타지에서 그려지는 주체는 결코 스스로를 정치화하거나 좀비와 같은 방식으로 사회를 위협하지도 않는다. 오히려 “나쁜 사람은 없어”라는 착한 마음으로 스스로를 다독이기를 바란다. 좀비물을 사극으로 재구성한 <창궐>에 등장하는 왕세자(현빈 분)는 “솔직히 이게 나라냐?”라는 뜬금없이 국가 비판적인 대사를 읊으면서도, 좀처럼 정치에 참여하기를 끝까지 주저하는데, 자신들을 주체화 하지 못하고 있는 한국 사회의 모습을 보여준다. ‘민주주의 쟁취’와 같이 한 방향으로 사람들을 정치로 이끌던 대의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상황에서,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 윤리, 스펙 경쟁 등 각자의 자리에서 자신만의 방식으로 고군분투하고 있는 현재의 (젊은)세대가 추구할 수 있는 윤리는 찾기 힘들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19년 가장 흥행한 영화로 꼽히는 <엑시트>가 보여주는 바와 같이, 탈출구가 없는 상황에서도 나보다 타자를 먼저 생각해야한다는 윤리 하나로 재난을 버텨내는 젊은이들의 이야기에는 감동이 존재한다. 하나의 대의와 윤리가 지배할 수 없는 구조화된 사회에서, 비록 약자의 자리에 있지만, ‘회귀’가 아니라, 이 사회를 버티며 관통하겠다는 의지가 실려 있기 때문이다. 현재의 재난은 ‘판타지’가 아닌 현실의 작은 실천에서 극복될 수 있다는 희망을 <엑시트>와 같은 서사 혹은 현실에서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참고문헌
이미지 / 테이블
  • [ <그림 1> ]  2013년 <씨네21>에 실린 영화화 될 웹툰에 대한 소개
    2013년 <씨네21>에 실린 영화화 될 웹툰에 대한 소개
  • [ <그림 2> ]  웹툰 <신과 함께>에 그려진 지옥도
    웹툰 <신과 함께>에 그려진 지옥도
  • [ <그림 3> ]  영화 <신과 함께>에 입체적으로 구현된 지옥도
    영화 <신과 함께>에 입체적으로 구현된 지옥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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