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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A 학술지
메어리 셸리의 초자연적 단편에 나타난 신체와 젠더의 문제 Body and Gender in Mary Shelley’s “Transformation” and “The Mortal Immortal”
ABSTRACT
메어리 셸리의 초자연적 단편에 나타난 신체와 젠더의 문제

This paper explores the interconnection between supernatural events, the body, and gender in Shelley’s “Transformation” and “The Mortal Immortal.” In “Transformation,” the supernatural event in which Guido, the main character of this story, exchanges his body for a dwarf’s body and wealth forces him to experience what it is like to be a person whose life is defined and confined by the body. This experience leads him to repent of his past follies caused by his masculine pride and reform himself. But Guido’s paler cheek and little bent body, the reminder of the fatal fight between Guido and the dwarf, continue to draw attention to the violence of the hierarchical gender relations. In “The Mortal Immortal,” the supernatural event – through which Winzy, the main character of this story, gains immortality – brings out the stark contrast between Winzy’s immortal male body and Bertha’s vulnerable female body. At a glance, this contrast seems to show the triumph of the masculine over the feminine. But his everlasting youth forces them to move to a foreign country, which entails emotional suffering. Winzy loses all that binds him to humanity when Bertha, his beloved wife, dies. Moreover, his immortal body turns into a cage for his soul, which makes him weary of himself. His weariness and thirst for freedom imply that the masculine becomes trapped when it loses the connection with the feminine.

KEYWORD
Mary Shelley , “Transformation” , “The Mortal Immortal” , supernatural stories , body , gender , literary annuals
  • I. 메어리 셸리의 초자연적 단편

    메어리셸리(Mary Shelley)의첫번째소설인 『프랑켄슈타인』(Frankenstein; or, the Modern Prometheus)은 1818년에 출판되자마자 독자들에게 큰 인기를 얻었다. 그 인기는 이후에 창작된 셸리의 소설들이 모두 속표지에 그녀의 이름 대신 “『프랑켄슈타인』의 저자”라는 구절이 찍혀 출판될 정도로 이 작품을 그녀의 대표작으로 만들었다. 하지만 당시 문학계의 비평은 대체로 우호적이지 않았다. 끔찍하고 혐오감을 일으키는 장면들, 개연성이 없는 서사 전개, 신출내기 작가나 쓸 법한 서투른 표현들이 많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이런 부정적인 평가를 내린 평자들이 보기에 『프랑켄슈타인』이 대중적 성공을 거둔 것은 운이 좋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20세기 중반 이후부터 연구자들은 이 작품이 다루는 복잡한 주제들과 셸리가 시도하고 있는 독창적인 장르 실험에 주목하면서 긍정적인 평가를 내놓기 시작했다. 게다가 주인공인 빅터 프랑켄슈타인(Victor Frankenstein)과 그가 과학의 힘을 빌려 창조한 인위적 생명체인 괴물은 대중적인 문화 아이콘이 되었다. 그러나 찰스 E. 로빈슨(Charles E. Robinson)과 A. A. 마클리(A. A. Markley) 같은 연구자들이 지적하고 있듯이 『프랑켄슈타인』의 명성과 인기는 역설적이게도 셸리의 다른 작품들을 경시하는 풍조에 일조해왔다. 셸리의 독창성과 비범함을 옹호하는 사람들 중에서도 “그녀의 다른 작품들이 『프랑켄슈타인』에 비해서 질이 떨어진다고 난처해하며 고백한” 사례들은 이런 풍조의 일면을 보여준다(Robinson xii).

    20세기 말에 들어와서야 연구자들은 『프랑켄슈타인』 이외의 셸리의 다른 작품들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변화는 작가로서의 셸리를 정당하게 평가하기 위해서는 “『프랑켄슈타인』에게서만 끌어낼 수 있는 것이 아닌 작품 분석 틀, 다양한 문체 및 장르의 관점에서 그녀의 다재다능함과 영역을 설명할 수 있는 틀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는 인식에서 비롯되었다(Markley 97-98). 셸리의 작품 세계를 분석할 때 『프랑켄슈타인』에만 기대지 않는 분석 틀을 모색하는 과정에서 『최후의 인간』(The Last Man), 『폴크너』(Falkner), 『마틸다』(Matilda) 등의 소설 작품들뿐만 아니라 셸리가 1820-30년대에 『기념품』(The Keepsake) 같은 문학 연감에 발표한 단편들이 새롭게 조명되기 시작했다.1) 특히 문학 연감에 발표한 작품들은 1822년 퍼시 비쉬 셸리(Percy Bysshe Shelley)가 바다에서 실종된 후 1844년 아들인 퍼시 플로렌스(Percy Florence)가 작위와 유산을 물려받을 때까지 셸리가 혼자 힘으로 아들과 자신을 부양하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쓴 것들로 진지한 비평의 대상이 될 만한 글들이 아니라고 폄하되어 온 점을 고려하면 이 작품들에 대한 비평적 관심은 셸리 연구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1820년대에 처음 등장하여 20여년 동안 문학 생산과 소비의 주요 창구 역할을 담당했던 문학 연감은 겉표지가 비단으로 장정되고 면의 테두리가 금빛으로 장식된 선물용 상품이기도 했다. 그리고 편집자들이 미리 선별한 판화 삽화를 주면서 그것에 어울리는 작품을 써달라고 주문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작가들은 작품을 쓸 때 상상력의 제약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이런 점들 때문에 문학 연감은 중간계급 여성의 취향에 영합하는 소비주의와 결부되어 문학계의 비판 대상이 되었고, 문학 연감에 실리는 글들은 겉만 번드르르한 장식품 같은 것으로, 문학 연감용 글을 쓰는 것은 일종의 매문 행위로까지 매도되는 경우도 있었다. 셸리 자신도 1824년 레이헌트(Leigh Hunt)에게 보낸 편지에서 잡지용 글은 자신을 비참하게 만든다고 고백하면서 “(소설의) 맑은 물이 잡지의 진흙을 씻어주기를 바란다”고 썼다(Bennet 220 재인용). 하지만 셸리가 1831년용 『기념품』에 발표한 자신의 시를 “그때까지 쓴 작품 중 최고”라고 말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그녀가 문학 연감용 글들을 열등하게 여기거나 그런 작품들을 쓰는 것을 저급한 행위로 여기지는 않았음을 유추할 수 있다(Sussman 178 n.3 재인용).

    1990년대부터 나오기 시작한 셸리의 단편들에 관한 연구 중에는 여전히 셸리의 단편들을 “진정한 문학적 가치를 결여하고 있는” 작품들로 치부하는 읽기도 있지만(O’Dea 62), 이 작품들의 문학적 의의를 다양한 관점에서 밝혀주는 긍정적인 읽기들이 두드러진다. 셸리의 단편들을 모아 편집해서 『메어리 셸리: 단편 선집』(Mary Shelley: Collected Tales and Stories)을 낸 로빈슨은 이 책의 서문에서 셸리의 단편들을 강력하게 옹호하면서 그동안 간과되어온 요소 중 하나로 해학을 든다.2) 로빈슨의 이 지적을 언급하면서 마클리는 해학적인 작가로서의 셸리에 주목한다. 마클리에 따르면 단편에서 셸리는 소설에서 다룬 “진지한 주제들과 관습들을 . . . 더 경쾌하고 예술적으로 더 쾌활한 방법으로” 재고찰하고 있다(“Laughing”98). 서스맨은 셸리의 단편들이 “자아를 안정시키기도 하고 동시에 불안정하게 만들기도 하는 경제적 지출과 교환의 메커니즘을 강조하고” 있다고 주장한다(167). 서스맨에 따르면 셸리는 이 메커니즘에 의해 자아 정체성이 변화할 때 남성은 그 변화를 되돌리거나 그 변화에서 이득을 얻는 반면에, 여성은 그 변화로 인해 파국에 이르는 내용의 단편들을 통해서 당대 여성의 정체성이 “결혼 시장에서 여성이 갖는 가치와 거의 항상 결부되어” 있음을 드러낸다(167). 호프코쉬는 문학 연감의 “경제를 지배하는 기준이자 그것을 유지시키는 통화는 미”라는 점을 지적하면서(207), 셸리의 단편들은 손상이나 왜곡을 보여주는 서사를 통해서 형식에 주도권을 부여하기 위해 내용이 필연적으로 왜곡될 수밖에 없는 과정을 밝혀준다고 본다. 이러한 읽기들은 셸리의 단편들이 주제와 장르 실험, 젠더 문제에 관한 천착 등의 측면에서 소설 작품들과 단절되어 있지 않으며 그 자체로도 유의미한 문학 작품들임을 입증하는 데 기여해왔다.

    본 논문은 위에서 아주 간략하게 살펴본 연구들처럼 셸리의 단편들을 단순히 대중의 취향에 영합하는 소비 상품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문학 연감이라는 대중 매체의 제약 속에서도 진지한 주제들과 다양한 인물 유형들을 탐색하고 새로운 장르 실험들을 모색한 문학적 노력의 산물로 접근한다. 그러나 대체로 셸리의 단편들에 관한 일반론을 먼저 펼치고 개별 작품들을 일반론을 뒷받침하는 사례들로 활용한 기존의 연구들과는 다르게 본 논문은 셸리의 단편들 중에서 환상적이고 초자연적인 요소를 담고 있는 작품들로 논의 범위를 한정한다. 본 논문은 그 중에서도 1830년에 『기념품』에 실린 「변신」(“Transformation”)과 같은 잡지에 1833년에 실린 「필멸의 불멸인: 어떤 이야기」(“The Mortal Immortal: A Tale”)를 중심으로 초자연적 사건과 신체, 젠더의 연관성을 고찰한다. 이 과정에서 남성에게 일어나는 초자연적 사건이 여성에게 미치는 영향과 그들이 겪는 정신적, 감정적 고통을 같이 살펴본다.

    20편이 넘는 셸리의 단편들 중에서 초자연적 이야기로 분류되는 것은 「발레리우스: 소생한 로마인」(“Valerius: The Reanimated Roman”), 「로저 도즈워스: 소생한 영국인」(“Roger Dodsworth: The Reanimated Englishman”), 「변신」, 「꿈」(“The Dream”), 「필멸의 불멸인」 이렇게 총 다섯 편이다.3) 그렇다면 각 작품에서 초자연적 사건은 어떤 역할을 할까? 「발레리우스」와 「로저 도즈워스」에서 소생이라는 초자연적 사건은 ‘과거에 살았던 사람이 현재에 다시 살아난다면 어떻게 생각하고 행동할까?’를 탐색해보는 계기의 역할을 하는 데 그친다. 「꿈」에서 콘스탄스(Constance)는 개스퍼(Gasper)에 대한 사랑과 그가 속해 있는 가문과의 전투에서 죽은 가족에 대한 의무 사이에서 갈등하다가 둘 중 어느 것을 선택해야 하는지를 캐서린 성녀(Saint Catherine)의 도움을 받아 결정하기로 한다. 캐서린 성녀는 사랑을 버릴 경우에 절망한 개스퍼가 팔레스타인으로 갔다가 이교도들에게 붙잡혀 지하 동굴에 갇히는 미래를 보여준다. 뼈와 가죽만 남은 채 쇠사슬에 묶여 있는 개스퍼를 보고서야 콘스탄스는 삶의 진정한 가치를 깨닫고 사랑을 선택한다. 캐서린 성녀가 나타나 미래를 미리 보여주는 것은 초자연적 사건으로 작품의 갈등을 해소하는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하지만 이 초자연적 사건은 작품 속의 현실에서 실제로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콘스탄스가 캐서린 성녀의 침상에서 꾸는 예지몽의 형태로 나타난다. 반면에 「변신」과 「필멸의 불멸인」에서 초자연적 사건은 주인공의 운명을 바꾸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할 뿐만 아니라 주인공의 현실에서 직접 일어난다. 더구나 초자연적 사건이 일어나는 공간은 주인공의 신체 자체이고, 그 결과가 주인공의 신체에 기입된다. 바로 이런 초자연적 사건과 신체의 분리 불가능한 관계 때문에 본 논문은 셸리의 초자연적 단편들 중에서 이 두 작품에 주목한다.

    1)문학 연감(literary annuals)은 다양한 작가들의 시와 이야기, 수필 등을 모아 편집한 연간 간행물로 중간계급 여성을 겨냥하여 출판되었다. 영국 최초의 문학 연감은 1822년에 나온 『나를 잊지 마세요』(The Forget-Me-Not)이고, 가장 성공한 문학 연감은 1828년부터 나오기 시작한 『기념품』으로 셸리의 작품들은 대부분 이 연감에 실렸다. 문학 연감은 보통 크리스마스나 새해 선물용으로 출판되었기 때문에 출판된 그 다음 해를 위한 것이었다. 예를 들어 1828년에 나온 연감은 1829년용이었다. 문학 연감과 『기념품』에 관한 더 자세한 내용은 샬롯 서스맨(Charlotte Sussman)의 글과 소니아 호프코쉬(Sonia Hofkosh)의 글, 테렌스 호애그우드(Terence Hoagwood)의 글을 참고할 것.  2)이 책의 하드커버 판은 1976년에, 소프트커버 판은 1990년에 나왔다. 로빈슨에 따르면 문학 연감은 짧은 이야기들을 대중화함으로써 19세기에 ″단편 소설″(short story)이 독립적인 문학 장르로 출현하여 발전하는 데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역으로 말하면, 문학 연감에 실린 이야기들은 단편 소설 장르가 형성되기 이전에 쓰인 것들로, 셸리의 작품에서 현재 우리가 이해하는 바대로의 단편 소설이 갖는 특징들을 기대해서는 안 된다. 게다가 로빈슨은 셸리의 작품들 중 일부는 통일성을 지닌 하나의 전체를 이루는 이야기(story)라기보다는 그 자체로는 불완전한 파편적인 이야기(tale)라고 부르는 것이 더 적절하다고 말한다. 본 논문에서는 두 유형을 구분하지 않고 ′단편′으로 통칭하기로 한다.  3)이 다섯 작품은 모두 로빈슨이 편집한 선집에 실려 있지만, 제이콥 와이즈먼(Jacob Weisman)은 이 작품들만 추려서 『필멸의 불멸인: 초자연적 단편 전집』(The Mortal Immortal: The Complete Supernatural Short Fiction)을 냈다. 본 논문에서 작품 인용은 와이즈먼의 편집본에서 하기로 한다. 이 편집본에는 마이클 비숍(Michael Bishop)이 쓴 「소생한 영국 여인의 예기치 않은 방문」(″The Unexpected Visit of a Reanimated Englishwoman″)이란 제목의 이야기로 된 서문이 딸려 있다. 이 서문에서 비숍은 소생하여 그를 찾아온 셸리와 직접 그녀의 개인사와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다. 각 작품의 집필 및 출판 시기, 다른 작가들의 작품들과의 영향 관계 등에 대해서는 로빈슨의 책 말미에 딸려 있는 주석 부분을 참고할 것.

    II. 「변신」: 신체 교환이라는 초자연적 사건의 함의

    「변신」은 귀도(Guido)가 자신이 겪은 초자연적 사건과 그 결과를 독자에게 직접 들려주는 고백서사다.4) 그런데 그의 고백은 세상 사람들에게 어떤 것을 입증하는 증언의 역할과 그 누구도 알지 못하는 비밀을 독자에게 털어놓음으로써 독자를 이야기 속으로 끌어들이는 역할을 동시에 한다. 귀도는 “이상하고 초자연적이며 마법 같은 사건이 사람에게 일어나면” 그 사람은 “지성의 지진에 의해서” 찢겨진 것처럼 느끼고 정신의 내면을 다른 사람에게 내보일 수밖에 없게 된다고 들었는데, “내가 그것이 사실임을 입증하는 증인”이라고 말한다(12). 기도는 자신이 겪은 일을 사람들에게 절대로 밝히지 않겠다고 결심했었다. 그 일을 유일하게 고백했던 신부도 죽었기 때문에 현재 그 일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하지만 귀도는 굳은 결심과 그 일을 털어놓는다면 사람들에게 혐오스런 존재가 될 것이라는 수치심과 두려움에도 불구하고 “나는 말해야만 한다”고 선언한다(12). 작품의 제사로 인용된 사무엘 코울리지(Samuel Coleridge)의 「늙은 노수부의 노래」(“The Rime of the Ancient Mariner”)의 구절에서 유추할 수 있듯이, 귀도는 말하지 않고서는 견딜 수가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독자는 귀도의 수치스럽고 무시무시한 비밀을 듣는, 더 정확하게 말하면, 들어야 하는 고해신부의 자리에 놓이게 됨으로써 마치 죽은 신부의 유령과 같은 존재로 작품에 연루된다.

    오만불손하고 길들여지지 않는 영혼을 가진 귀도는 “거만하고 폭군 같은” 사람이 되기를 원한다(13). 이런 권력 의지는 어린 시절 줄리엣(Juliet)과의 관계에서 이미 나타나기 시작한다. 정치적 이유로 아버지인 토렐라(Torella)가 제네바에서 추방되자 줄리엣은 귀도의 아버지에게 맡겨지는데, 귀도는 그녀를 자신이 보호하고 돌봐주지 않으면 소멸해버릴 존재로 여긴다. 그가 11살이고 줄리엣이 8살일 때 그보다 훨씬 나이 많은 사촌이 줄리엣에게 큰 관심을 보이며 청혼을 한다. 귀도는 미친 사람처럼 사촌에게 달려들어 그의 목을 조르려고 한다. 그날 밤 귀도는 줄리엣을 성당으로 데리고 가서 “나의 것, 오직 나의 것이 되겠다고 맹세하게” 만든다(13). 이 사건은 귀도가 줄리엣을 단순한 보호의 대상이 아니라 소유의 대상으로 여기고 있으며, 다른 남성이 그녀를 탐하는 것을 결코 용납하지 않으리라는 점을 예상할 수 있게 해준다. 캔터가 잘 지적하고 있듯이, “처음부터 줄리엣에 대한 그의 사랑은 권력 의지와 결부되어” 있다(101).

    몇 년 후 토렐라는 제네바로 돌아와 전보다 더 많은 부를 쌓고, 귀도의 아버지가 죽자 17살로 아직 미성년자인 귀도의 보호자 역할을 기꺼이 떠맡는다. 세상 구경을 하고 싶은 귀도는 임종을 앞둔 아버지 앞에서 약혼한 줄리엣을 제네바에 남겨두고 플로렌스, 로마, 나폴리, 툴롱을 거쳐 파리로 간다. 그는 파리에서 화려하고 방탕한 생활을 하며 재산을 거의 다 탕진하고 나서야 제네바로 돌아오는데, 고향사람들의 경멸과 조롱, 비난을 혼자 대면하기가 싫어 파리에서 사귄 친구들을 몇 명 대동하고 “두려움과 참회가 반반 뒤섞인 고통스런 감정”을 허세와 겉치레로 감춘 채 돌아온다(14). 귀향 후 자신의 어리석은 행동들에 괴로워하면서도 비난의 화살을 다른 사람들에게 돌리려고 애쓰면서 방탕한 생활로 시간을 허비한다. 이런 생활에 물리고 나서야 그는 토넬라와 줄리엣을 찾아간다. “그녀가 들어올 때 방이 신성한 빛에 의해 성스러워졌다”고 말할 정도로 귀도는 다시 만난 줄리엣의 아름다움에 경탄하는데, 이 경탄은 곧 “그녀는 나의 것”이라는 소유욕과 그것에서 생겨나는 “거만한 승리감”으로 바뀐다(17). 줄리엣, 더 정확하게 말하면, 아름다운 그녀의 신체는 방탕한 생활과 어리석은 품행으로 훼손된 귀도의 남성적 자존심을 회복시켜주는 소유물인 것이다.

    줄리엣은 귀도의 방탕했던 파리에서의 생활을 전혀 문제 삼지 않고 그가 파리에서 배운 연애의 기술로 다시 구애할 때 조건 없이 그를 받아들인다. 하지만 귀도가 물려받은 재산을 모두 탕진함으로써 무효가 되어버린 결혼계약서 대신에 새로운 계약서를 작성하는 과정에서 줄리엣과의 결혼으로 귀도가 얻게 될 막대한 재산을 쓰는 방식에 대하여 토넬라가 제시한 조건들을 귀도가 거부하면서 문제가 발생한다. 오만한 자신의 의지에 따라 자유롭게 사는 것을 무엇보다 중요하게 여기는 귀도에게 토넬라가 내건 조건들은 그의 독립을 훼손하는 것들이다. 귀도는 분노하며 토넬라의 제안을 거부한 채 줄리엣을 얻고자 한다. 아버지의 뜻에 따르라는 줄리엣의 간청도 그를 설득하지 못한다. 결국 귀도는 줄리엣을 납치하는 극단적인 방법을 시도하지만 도중에 실패하고 줄리엣뿐만 아니라 토넬라까지 납치하여 파리로 달아나려는 계획을 세우다가 발각되어 제네바에서 추방당한다.

    이 작품의 서술자로서의 귀도는 이때의 자신을 다정하고 순수한 줄리엣을 더럽히려는 악마 같은 사람, 악령에 사로잡혀 미쳐 날뛰는 혐오스런 사람으로 묘사한다. 악마 같고 혐오감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바로 과도한 자존심에 지배당한 그의 영혼이다. 오만한 자존심 때문에 귀도는 그가 재산을 탕진하는 것을 막기 위한 일종의 예방책으로 토넬라가 새 결혼계약서에서 제안하는 조건들을 거부하고 감옥에 갇혀 있는 동안 토넬라가 제공하는 도움을 무시하며 친구도 없이 무일푼으로 추방당한 상태에서도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기는커녕 토넬라를 적으로 여기며 미워한다. 그러나 귀도의 자존심에 치명적인 상처를 입히는 것은 무엇보다도 줄리엣을 잃었다는 사실과 “다른 남자가 그녀를 그의 것이라 부를 것”이라는 생각이다(17). 어떤 의미에서 줄리엣은 재산을 탕진한 귀도에게 남은 마지막 소유물이자 결혼을 통해서 그에게 부를 가져다 줄 존재였는데, 그런 줄리엣을 잃음으로써 그는 미래에 그녀를 소유하게 될 남성과의 권력 다툼에서 진 셈이다. 줄리엣을 잃은 상실감과 더불어 이 패배에 대한 강한 의식이 그를 절망에 빠뜨린다.

    도움은 전혀 예기치 않은 곳에서 온다. 제네바에서 추방되어 해안을 헤매던 귀도는 우연히 폭풍에 배가 난파되는 것을 목격한다. 그런데, 놀랍게도 난파당한 배에서 아무런 해를 입지 않고 빠져나온 존재가 궤짝을 타고 귀도가 있는 해안으로 온다. 그것은 “사시에 이목구비가 뒤틀리고 몸이 기형인 난쟁이”로 소름끼치는 그의 모습에 귀도는 공포를 느낀다(18). 그러나 권력 의지가 강한 귀도는 마음대로 폭풍을 일으키고 잠재우는 난쟁이의 초자연적인 힘에 외경심과 호기심을 동시에 느끼며 매혹된다. 반면에 난쟁이는 귀도의 아름다운 신체에 이끌리고 귀도의 이야기를 듣고 난 다음에는 그를 “자만심 때문에 몰락한 루시퍼의 사촌”이라고 부르면서 복수를 부추긴다(19). 그리고 복수를 하기에는 무력하다는 귀도의 한탄을 듣고는 궤짝에 들어있는 금은보화를 보여주면서 3일 동안 그의 아름다운 신체를 빌려 주면 그 궤짝을 주겠다고 말한다. 부를 얻게 되면 세상을 호령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에 귀도가 그 제안을 받아들이자 난쟁이는 마법의 힘을 사용하여 이 교환을 성사시킨다. 귀도는 난쟁이의 부와 신체를 얻고 대신에 자신의 신체를 난쟁이에게 내준다. 이렇게 해서 신체 교환이라는 초자연적 사건이 일어난다.

    서스맨은 난쟁이와의 거래에서 귀도는 “여성이 흔히 그렇게 되듯이 매력적인 신체에 토대를 둔 가치로 축소된다”고 지적하면서 귀도와 토넬라 사이의 결혼 계약과 귀도와 난쟁이 사이의 구두 계약이 서로 닮았다고 주장한다(170). 즉, 두 계약 모두에서 신체와 부는 교환대상으로서 서로 균형을 이룬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주장은 귀도와 줄리엣의 결혼에 관한 첫 번째 계약에는 들어맞지만 두 번째 계약에는 들어맞지 않는다. 귀도의 아버지가 살아있을 때 맺어진 첫 번째 계약에서는 귀도가 물려받게 될 부와 줄리엣의 신체가 서로 교환 대상이 되지만, 귀도가 재산을 탕진함으로써 이 계약은 무효가 된다. 두 번째 계약을 협상할 때 귀도에게는 줄리엣의 신체를 얻는 대가로 내놓을 재산이 없다. 오히려 그는 토넬라에게서 줄리엣의 신체뿐만 아니라 부까지 얻게 되리라 예상된다. 그 두 가지를 얻는 대신에 귀도가 내놓아야 하는 것은 지금까지 누려왔던 자유롭고 독립적인 삶이다. 또한 서스맨은 난쟁이와 귀도의 계약이 신체와 부의 교환만이 아니라 신체와 정체성의 관계를 재고하게 한다는 점을 간과한다.

    귀도가 난쟁이를 만나기 전까지 줄리엣의 신체에 대한 묘사는 여러 군데에 등장하지만 귀도의 신체에 대한 언급은 거의 찾을 수 없다. 이것은 귀도가 욕망의 주체이고 줄리엣은 남성 욕망의 대상이라는 점과 결부된다. 그러나 난쟁이와의 관계에서 귀도는 더 이상 모든 것을 자기 뜻대로 하는 욕망의 주체가 아니라 난쟁이의 시선에 갇힌 욕망의 대상이 된다. 줄리엣의 신체가 귀도의 시선에서 “더할 나위 없이 아름다운 거처”(13), “신성한 생각과 부드러운 사랑의 성소”(16), “요정 같은 형상”(17)으로 묘사되는데 이런 비유적인 표현들은 그 신체에 대한 귀도의 욕망이 어느 정도인지를 잘 보여준다. 마찬가지로 귀도의 신체는 난쟁이의 시선에서 “균형 잡힌 몸과 잘생긴 얼굴”로 묘사되는데, 이 구절은 줄리엣의 신체를 표현하는 구절들에 비하면 평이하지만 난쟁이의 신체가 보기 끔찍할 정도로 추하다는 점을 고려하면 귀도의 신체에 대한 난쟁이의 욕망이 아주 강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19). 난쟁이의 등장으로 귀도는 욕망의 주체에서 욕망의 대상으로 바뀌고, 서사의 초점은 줄리엣의 신체에서 귀도의 신체로 이동한다.

    마클리는 『프랑켄슈타인』에서처럼 이 작품에서 셸리가 “외형이 극단적으로 정반대인 짝패들의 쌍을 만들어냄으로써 외양과 내적 덕성에 관한 문제들을 반복한다고 본다(“Mary” 19). 그러나 서스맨처럼 마클리도 신체 교환이라는 초자연적 사건으로 인해 영혼이 원래의 신체를 떠나 다른 신체에 들어가게 됨으로써 정체성 문제가 수반된다는 점을 간과한다. 『프랑켄슈타인』에서 괴물은 드 라시(De Lacey)의 가족에게 쫓겨나기 전까지는 외모는 추하지만 영혼은 아름다운 존재로 그려지는데, 추한 외모와 아름다운 영혼은 둘 다 괴물의 것이다. 반면에 「변신」에서는 신체 교환이 이루어지고 난 다음에 난쟁이의 신체에는 귀도의 영혼이 깃들고 귀도의 신체에는 난쟁이의 영혼이 깃든다. 다시 말해서 난쟁이는 난쟁이인 동시에 귀도이고, 귀도는 귀도인 동시에 난쟁이라고 할 수 있다. 귀도는 추한 외모의 난쟁이를 처음 봤을 때 그를 “괴물”이라고 했지만, 신체 교환이라는 초자연적 사건은 이질적인 것들을 결합함으로써 난쟁이와 귀도 둘 다를 괴물로 만들어 버린다.

    신체 교환 이후에도 서사는 귀도의 관점에서 진행되는데, 이때 귀도는 그의 영혼이다. 따라서 서양 형이상학의 오랜 전통이 규정해온 것처럼 정체성의 본질은 영혼이고 신체는 그 본질을 담는 그릇에 불과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에게 귀도는 난쟁이의 신체에 들어있는 그의 영혼이 아니라 난쟁이의 영혼이 들어있는 그의 신체다. 즉, 사람들은 다른 사람이 누구인지를 신체로 판별한다. 귀도는 3일째 되는 날 밤에 자신의 신체를 입고 자신의 목소리로 말하는 난쟁이에게 줄리엣이 미소 짓는 악몽을 꾼다. 몰래 제네바로 돌아온 귀도는 사람들이 다음 날 있을 줄리엣과 “참회하고, 개심한, 사랑받는 귀도”의 결혼을 축하하는 축제를 벌이는 것을 본다(22). 귀도의 신체를 빌린 난쟁이가 토넬라에게 용서를 구하고 과거에 귀도가 저지른 우행들을 참회하고 모든 권리를 내놓음으로써 토넬라의 마음을 다시 얻고 줄리엣과 결혼하게 된 것이다. 두 번째 결혼 계약 협상에서 귀도가 거부했던 것을 난쟁이가 수행한 것이다. 그리고 사람들은 그런 일들을 하는 존재가 귀도의 신체를 입고 있기 때문에 그를 귀도로 본 것이다. 서스맨은 정체성의 가변성을 다루는 이야기들에서 “근본적인 외적 불연속성은 인물을 다른 사람들에게 인식 불가능하거나 보이지 않게 만드는 반면에 내적 연속성은 그 개인의 자기 지식을 보존한다"고 말한다(167). 이 통찰을 「변신」에 적용하면, 영혼 층위에서 유지되는 연속성은 귀도의 자기 지식을 그대로 보존하지만, 신체 층위에서 일어나는 불연속성은 사람들이 귀도를 알아보지 못하게 만든다. 이 문맥에서 보면 신체는 단순히 영혼을 담는 용기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영혼처럼 한 사람의 정체성을 구성하는 본질적 요소가 된다.

    귀도가 3일을 허비하는 동안 난쟁이는 아름다운 귀도의 신체를 이용하여 그가 얻을 수 있는 최대의 것을 얻고, 추한 원래의 신체를 가진 상태에서는 불가능한 삶을 맛본다. 난쟁이가 계약을 지키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삶까지 가로챈 것을 알게 된 귀도는 공포와 분노를 느낀다. 그리고 이제야 이 모든 일이 “나의 저주 받은 자만심-나의 악마 같은 폭력과 사악한 자기 숭배” 때문에 일어난 것임을 처음으로 인정하고 참회한다(22). 그리고 처음으로 자신보다 줄리엣을 먼저 생각하고, 난쟁이의 책략이 성공하도록 놔두느니 차라리 죽겠다고 결심한다. 이런 결심은 줄리엣을 빼앗겨서 느끼는 질투와 절망만이 아니라 자신이 저지른 일 때문에 이런 상황이 초래된 것을 참회하며 느끼는 “도의심”과 아무 것도 모른 채 난쟁이와 결혼하게 된 줄리엣에게 느끼는 “인간애”에서 비롯된 것이다(23). 줄리엣을 위해 목숨을 걸고 난쟁이에게 달려들 때 귀도는 더 이상 오만한 자만심의 포로도, 모든 것을 자기 뜻대로 하고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폭력적인 방법까지 쓰는 폭군 같은 사람도 아니다.

    줄리엣과 난쟁이의 결혼을 막기 위해서 난쟁이의 신체를 입은 귀도가 단도를 들고 자신의 신체를 입은 난쟁이에게 달려들어 필사적으로 싸우는 장면은 작품 초반부에서 어린 귀도가 줄리엣을 탐하는 사촌에게 달려드는 장면을 떠올리게 한다. 두 장면 모두에서 귀도는 신체적으로 열악한 상황에 있지만 상대방으로부터 줄리엣을 지킨다. 그러나 사촌과의 싸움에서와는 달리 난쟁이와의 싸움에서 귀도를 이끄는 것은 줄리엣에 대한 소유욕이 아니라 도의심이며 그가 단도로 찌르는 대상은 자신의 신체다. 그 이후로 그의 안색은 “더 창백해졌고 몸은 약간 굽어졌다”는 말에서 알 수 있듯이 귀도가 원래의 신체를 되찾고 줄리엣과 결혼한 이후에도 그 치명적 결투의 흔적은 그의 신체에 그대로 기입된 채 남는다(25). 비평가들은 보통 난쟁이를 귀도의 정신적 변신을 가져오는 또 다른 자아로 읽는다. 예를 들어 캔터는 공격적 충동들을 난쟁이의 흉한 형상 속에 풀어놓음으로써 귀도는 정화된다고 본다(103). 이와 유사하게 마클리도 또 다른 자아인 난쟁이가 자신이 저지른 행위들을 보상하는 것을 목격하고는 목숨을 걸고 그와 싸움으로써 귀도는 “더 평온하고 친절한 인물로 변신”한다고 본다(“Mary” 20). 그러나 이들은 귀도가 신체적, 정신적 변화를 동시에 겪으면서 “자기 신체의 가치”를 그 누구보다도 더 잘 알게 되었다는 점에는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다(24-25).

    신체의 가치에 대한 귀도의 깨달음은 전반부에서 갈등의 중심에 있다가 신체의 교환이라는 초자연적 사건에 의해 서사의 초점이 귀도의 신체로 옮겨지면서 주변부로 물러나는 듯한 줄리엣의 신체를 다시 전면에 등장시킨다. 사실 귀도의 행동과 그에게 일어나는 사건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는 인물은 줄리엣이다. 줄리엣은 절개를 지키는 약혼녀이며 아버지의 말을 거역하지 않는 온순한 딸로 가부장 사회가 원하는 이상적인 여성으로 그려진다. 그녀에게 독립적인 개인으로서의 삶은 없으며 그녀의 존재는 남성들의 관계망 속에서만 의미를 부여받고 그녀의 정체성은 남성들과의 관계를 통해서 부여된다. 그리고 남성들의 관계망 속에서 그녀에게 부여되는 의미의 핵심은 바로 그녀의 아름다운 신체가 갖는 가치다. 이 신체의 가치 때문에 남성들 사이에 갈등이 발생하고 이 신체의 가치 덕분에 남성들 사이에 화해가 이루어진다. 귀도가 줄리엣의 신체를 전유하기 위해서 그녀를 납치하려고 할 때 그와 토넬라 사이의 갈등은 최고조에 달하며, 귀도의 신체에 들어간 난쟁이가 참회하며 용서를 구하자 토넬라가 그를 완전히 용서하며 줄리엣을 “선물”로 내어줄 때 그 둘의 관계는 화해 국면을 맞는다(23). 줄리엣이 무슨 생각을 하고 어떤 감정을 느끼는지는 고려되지 않는다. 가부장 사회에서 여성인 줄리엣의 가치는 무엇보다 그녀의 신체에서 나오며, 신체의 가치가 그녀의 존재를 규정하기 때문이다.

    남성인 귀도는 가부장제 사회에서 신체에 의해 규정되는 여성의 삶이 어떤 것인지 알지 못한다. 신체 교환이라는 초자연적 사건에 의해서 난쟁이의 신체를 입고 난 다음에야 일시적으로나마 신체에 의해 존재 자체를 규정 당하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직접 경험한다. 귀도의 영혼은 자신이 여전히 귀도라는 것을 알지만, 사람들에게 그는 추하게 생긴 난쟁이일 뿐이다. 난쟁이의 책략을 막기 위해서 난쟁이의 영혼이 들어 있는 자신의 신체에 달려드는 귀도의 영혼이 들어 있는 난쟁이의 신체를 보고 줄리엣이 비명을 지르는 장면이 잘 보여주듯이 귀도의 영혼이 무슨 생각을 하고 어떤 감정을 느끼든지 간에 그 영혼이 난쟁이의 신체를 입고 있는 한 그의 존재는 난쟁이의 신체에 의해 규정된다. 이런 경험을 하고 난 다음에야 귀도는 그의 남성성을 특징짓는 오만한 자존심과 자기중심적 사고방식, 공격성을 버린다. 이런 특징들을 버리고 나서야 줄리엣을 얻는 데 성공한다는 점은 두 사람의 결합을 방해해온 것은 과도한 남성적 자만심과 권력의지에 사로 잡혀 있던 귀도 자신이었음을 말해준다(25).

    귀도의 내적 변화는 그와 줄리엣의 관계 변화로 이어진다. 초자연적 사건 이전의 두 사람의 관계는 철저하게 귀도를 중심으로 형성될 뿐만 아니라 줄리엣은 귀도와 토넬라라는 남성들의 관계에 덧붙여진 존재 같은 인상까지 준다. 그리고 귀도와 줄리엣의 결혼은 줄리엣에 대한 소유권이 토넬라에게서 귀도에게로 이전되는 의식에 불과하리라 여겨진다. 그러나 결말부에서 귀도가 줄리엣의 간호를 받으면서 난쟁이와의 싸움에서 스스로 가한 상처에서 회복될 뿐만 아니라 정신적으로 교정되는 모습은 둘의 관계가 질적으로 바뀌고 있음을 암시한다. 줄리엣은 신체 교환이라는 초자연적 사건에서 시작된 귀도의 정신적 변신이 완결되는 과정에 참여하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전반부에서 폭군처럼 마음대로 행동하던 귀도가 정신적 변화를 겪고 결혼한 후 자신을 무엇보다 “더 다정하고 더 충실한 남편”으로 규정하고 있다는 점은 이제는 줄리엣을 그의 자만심을 충족시켜주는 소유물이 아니라 동반자로 여기고 있음을 암시한다(25). 귀도가 공동체에서 차지하는 위치도 변한다. 그는 처음에 오만불손한 귀족 자제로 등장하고 파리에서는 탕아가 된다. 거지나 다름없는 신세가 되어 귀향했을 때는 경멸 혹은 동정의 대상으로 전락하고, 납치 계획이 발각된 다음에는 죄인이 되어 공동체로부터 추방된다. 신체 교환이라는 초자연적 사건을 겪으면서 개심하고 난 다음에야 그는 다시 공동체로 받아들여진다. 그리고 그는 오만한 귀족도, 탕아도, 경멸이나 동정의 대상도 아닌, “친절한 귀도”로 변신한다(25). 그의 정신적 변화는 줄리엣과의 관계 변화로 이어지고, 더 나아가 공동체의 다른 일원들과 맺는 관계까지도 질적으로 변화시키는 것이다. 이 모든 변화를 가능하게 한 것은 바로 신체 교환이라는 초자연적 사건이다.

    4)1824년에 발표된 조지 고든 바이런(George Gordon Byron)의 미완성작인 『변신한 기형인』(The Deformed Transformed)은 그의 요청에 따라 셸리가 필사했다. 이 사실과 내용상의 유사성을 근거로 평자들은 「변신」의 전례를 바이런의 작품에서 찾으면서도, 셸리가 바이런의 작품을 페미니즘적 입장에서 다시 쓰고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자세한 내용에 대해서는 폴 캔터(Paul A. Cantor)의 글을 참고할 것.

    III. 「필멸의 불멸인」: 불멸성의 획득이라는 초자연적 사건의 함의

    「필멸의 불멸인」은 코넬리우스 아그리파(Cornelius Agrippa)가 만든 불사의 약을 사랑을 치유하는 약으로 잘못 알고 마신 윈지(Winzy)가 그 약을 마심으로써 겪은 일들을 털어놓는 고백서사다. 그는 밤낮으로 자신이 불멸의 존재인지를 자문해왔지만 대답하지 못한다. 323살 생일에 그는 갈색 머리카락들 사이에서 희끗한 것을 한 올 발견하지만 그것이 예전부터 있었는데 보이지 않다가 이제 보이게 된 것인지 자신이 불멸의 존재가 아님을 알리는 쇠퇴의 징조인지 알지 못한다. 그는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줄테니 독자가 직접 듣고 판단하라고 함으로써 독자를 비밀 공유자이자 일종의 판결자로 작품에 연루시킨다. 그리고 그를 그토록 오래 살아있게 하는 것은 아그리파가 만든 불사의 약이기 때문에 살아있는 한 그는 그 약의 효능을 입증하는 증거가 된다. 하지만 「변신」에서 귀도가 비밀을 털어놓는 시점에 그가 겪은 초자연적 사건은 완료된 상태인 반면에, 이 작품에서 윈지가 고백하는 시점에 그의 신체에 일어난 초자연적 사건은 여전히 진행 중이고 그의 삶은 미정 상태에 있다. 귀도가 신체를 빌려달라는 난쟁이의 제안을 자신의 판단과 의지에 따라 수용한다는 점에서 그에게 일어나는 초자연적 사건은 부분적으로 그의 의지가 반영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반면에 윈지에게 일어나는 초자연적 사건은 그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발생한다.

    윈지는 어릴 적부터 같이 자란 버샤(Bertha)를 사랑하지만 너무 가난하여 결혼하지 못하는 처지에 있다. 부모를 잃고 근처 성의 늙은 여주인에게 입양된 버샤는 「변신」의 줄리엣과는 달리 거만하고 성급한 여성으로 그려진다. 그녀는 금 주머니를 줄 터이니 조수가 되어달라는 아그리파의 부탁을 윈지가 두려움 때문에 거절한 것을 알고는 자기를 사랑하는 척만 한다면서 그를 비난한다. 결국 윈지는 버샤에 대한 사랑과 그녀와 결혼할 수 있으리라는 희망에 이끌려 아그리파의 조수가 된다. 하지만 조수 일을 하면서 상당한 돈을 벌게 되지만 일이 너무 많아서 예전처럼 버샤를 자주 만나지 못하게 된다. 이에 화가 난 버샤는 그녀의 후견인이 좋아하는 앨버트 호퍼(Albert Hoffer)를 만나기 시작한다. 마침 이때 아그리파는 완성 단계에 있는 불사의 약을 지켜보는 일을 윈지에게 맡기면서 그가 약을 마시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그 약은 “사랑을 낫게 하는 약”이라고 거짓말한다(4). 질투와 원망에 사로잡힌 윈지가 버샤에 대한 사랑과 그것이 주는 고통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그 약을 마심으로써 아그리파의 거짓말은 그가 의도했던 것과 정반대의 결과를 낳는다.

    사랑에서 치유되었다고 생각한 윈지는 자신의 무관심을 보여주기 위해서 버샤를 찾아가지만 그를 보자마자 달려나오는 그녀의 모습에 그의 가슴은 사랑과 숭배의 감정으로 타오른다. 앨버트와 결혼하라는 후견인의 압박에 시달리던 버샤는 윈지에게 그의 어머니의 오두막으로, “가난과 행복으로 나를 데려가” 달라고 간청한다(5). 버샤는 화려하지만 감옥 같은 성에서의 삶을 버리고 사랑하는 사람과의 가난하지만 자유롭고 행복한 삶을 선택한다. 이렇게 해서 윈지는 약을 마실 때 의도했던 것과는 정반대의 결과를 얻는다. 그는 사랑의 감정을 없애주는 대신에 자신에게 버샤를 찾아갈 용기와 결의를 불어넣어줌으로써 그녀를 얻게 해준 약을 만든 아그리파에게 고마움을 느낀다. 그로부터 5년 후 아그리파가 죽어가면서 하는 말을 듣고서야 윈지는 그것이 불사의 약이었음을 알게 된다. 하지만 그는 곧 인간의 과학이 자연의 법칙을 정복할 수는 없다고 확신하면서 자신의 신체에 일어난 불멸성의 획득이라는 초자연적인 사건을 믿지 않는다. 그러나 그의 믿음과는 상관없이 약의 효능은 그의 신체 나이를 20대에 고정시켜놓음으로써 가시화되고, 나이를 먹어도 늙지 않는 그의 신체는 버샤와의 관계 및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에도 영향을 미치기 시작한다. 자신의 미모는 시들어 가는데 윈지는 젊음을 그대로 유지하는 것을 보면서 버샤는 질투를 느낀다. 마을사람들은 그를 “마법에 걸린 학자”라고 부르면서 공포와 혐오의 대상으로 여긴다(7). 결국 윈지와 버샤는 사람들에게 버림받고 고립되어 둘만의 외로운 생활을 하게 된다.

    조나단 스위프트(Jonathan Swift)는 1726년에 출판한 『걸리버 여행기』(Gulliver’s Travels)에서 스트룰드브러그 종족(Struldbrugs)을 통해서 죽지 않고 영원히 사는 것이 인간에게 비극일 수 있음을 고찰했다. 그로부터 100여년이 지난 후 셸리는 「필멸의 불멸인」에서 유사한 주제를 탐색한다. 스위프트의 스트룰드브러그와 셸리의 윈지 사이의 가장 큰 차이는 전자가 죽지는 않지만 보통 사람들처럼 나이를 먹으면서 신체와 정신 모두 쇠약해지는 반면에 후자는 나이를 먹으면서도 신체와 정신이 늙지 않는다는 점이다. 스트룰드브러그는 30살까지는 보통 사람들과 유사하지만 그 다음부터는 점점 더 우울해지고 의기소침해지다가 80살이 되면 독선적이고 탐욕스럽고 무분별해질 뿐만 아니라 인간이라면 당연히 느끼는 모든 애정에 무감각하게 된다. 90살이 되면 미각도 잃고 온갖 질병에 시달리며 기억까지 상실한다. 따라서 스트룰드브러그는 다른 모든 사람들에게 경멸과 혐오의 대상이 된다. 이 영생인이 하는 긍정적인 역할이 있다면 그것은 불멸의 삶이 어떤 것인지를 형상화함으로써 사람들의 영생에 대한 욕망과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누그러뜨려주는 것이다(196-99). 반면에 영생과 함께 영원한 젊음을 얻은 윈지는 스트룰드브러그가 겪는 변화들을 전혀 겪지 않는다. 그러나 공동체에서의 위치 측면에서 보면 둘은 서로 큰 차이를 보이지 않는다. 둘 다 혐오의 대상이 되고 자신이 속한 공동체에서 사실상 이방인이나 마찬가지인 신세가 된다.

    공동체에서 소외당하고 버샤가 젊음을 유지하는 비결을 알려달라고 눈물로 간청하자 윈지는 사실을 털어놓는다. 다만 버샤에게 가능한 충격을 덜 주기 위해서 자신이 마신 것이 불사의 약이 아니라 장수하게 해주는 약이라고 거짓말한다. 그리고 자신만 없으면 친구들이 그녀를 다시 받아들여 줄 것이라고 말하면서 혼자 떠나려고 한다. 그를 진정으로 사랑하는 버샤는 부유하지만 윈지가 없는 삶 대신 가난하지만 윈지와 함께하는 삶을 선택했던 것처럼 고향 마을과 친구들을 뒤로 하고 윈지와 함께 떠난다. 두 사람은 그들이 누구인지 아무도 모르는 이방인들의 공동체에서 다시 시작하고자 한다. 그러나 이주를 통해서 새로운 공동체에 정착하는 데는 성공하지만 젊음을 유지하는 윈지의 신체 때문에 발생하는 둘 사이의 갈등은 오히려 심해진다. 『걸리버 여행기』에서 영생인은 남녀 양성으로 구성된 하나의 종족으로 존재하고 이 종족의 영생은 러그나그(Luggnagg)에서 자연스런 일이고 모두가 아는 사실이다. 따라서 그들의 존재는 인간의 필멸성과 이 존재론적 조건 때문에 생겨나는 불멸성에 대한 욕망을 인간 일반의 차원에서 고찰하게 한다. 그러나 「필멸의 불멸인」에서 윈지가 불멸성을 획득한 것은 초자연적인 사건이고 사람들이 알아서는 안 되는 비밀이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그가 불사의 약을 마셨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면서도 그가 늙지 않는다는 것만으로도 그를 두려워하고 혐오하기 때문이다. 다른 공동체로 이주함으로써 윈지는 다른 사람들처럼 평범한 삶을 사는 평범한 사람으로 자신을 재정립하려 하지만, 그의 신체와 버샤의 신체 사이의 차이는 더 두드러지고 그 차이를 지우고자 하는 버샤의 욕망은 더 강해지면서 신체와 젠더의 관계가 전면에 등장한다.

    버샤는 화장을 하고 젊어 보이는 옷을 입고 젊은이들의 태도를 차용함으로써 윈지와 자신의 신체 나이의 차이를 줄이려고 애쓴다. 윈지는 그런 버샤의 미용술을 늙음을 감추기 위해 여성들이 부리는 기교로 여기며 버샤의 행동을 허영심과 결부시킨다. 그리고 “검은 눈과 검은 머리카락을 가진, 매력적인 미소와 사슴처럼 날렵한 걸음걸이의 소녀”였던 젊은 시절의 버샤와 “뽐내고 선웃음 치며 질투심 많은 늙은 여인”이 되어버린 현재의 버샤를 비교하며 슬퍼한다(9). 윈지는 버샤가 이렇게 된 것이 자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어떤 미인이 그를 좋아한다고 상상한 버샤가 그에게 회색 가발을 사준 일까지 말하면서 그녀의 질투심을 탓한다. 그러나 버샤의 감정을 질투심으로만 치부해버릴 수는 없다. 윈지가 그녀를 숭배할 정도로 젊었을 때 버샤는 아름다웠고 그녀의 미모가 시든 다음에도 윈지는 그녀를 “완전한 사랑으로 구하고 얻은 아내”로 소중히 여긴다(6). 그러나 윈지의 손상되지 않는 신체로 인해 둘은 부부라기보다는 어머니와 아들처럼 보이게 된다. 변함없이 젊은 윈지의 신체에서 버샤가 보는 것은 잃어버린 자신의 젊음과 미모뿐만 아니라 모자 같은 둘의 모습이다. 따라서 인위적인 방법을 써서 젊게 보이려고 하고 윈지가 늙어보이도록 회색 가발을 사주는 등의 행동은 미모에 대한 여성의 허영심이나 윈지에 대한 질투심보다는 둘의 관계에 대해 그녀가 느끼는 불안이 반영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젊음과 미모를 잃은 버샤가 겪는 이런 감정적 대가는 나이 많은 남성과 젊은 여성의 결합은 흔해도 그 반대는 흔하지 않았던 당대의 젠더 관계가 갖는 불합리한 측면을 뒤돌아보게 한다.

    불멸성의 획득이라는 초자연적 사건은 영원한 젊음과 아름다움을 간직한 남성의 신체와 늙어서 소멸하는 여성의 신체를 극단적으로 대비시키는 결과를 가져온다. 이 점 때문에 서스맨은 「필멸의 불멸인」을 결혼을 통한 경제적 교환의 주요 대상인 여성의 신체가 “슬픔과 고난을 겪으면서 소모되어 생명을 잃거나 눈에 보이지 않게 되는” 작품 중 하나라고 말한다(171). 이 작품을 정신분석적 관점에서 읽고 있는 한 평 자 는 손상되고 병드는 여성의 신체와는 대조적으로 “남성의 신체가 조각처럼 아름답고 젊은 상태로 계속 존재한다는 것은 남성성과 남성적 가치가 여성적인 것에 대해 거두는 승리를 보여주는 상징”이라고 말한다(Hoeveler 159). 하지만 이들은 버샤가 윈지와 세상을 연결하는 유일한 끈이고, 불멸의 육체가 윈지에게는 자유를 갈망하는 영혼을 가두는 감옥이 된다는 점을 고려하지 않는다.

    고향 사람들에게 버림받았을 때 버샤는 윈지를 떠나지 않는다. 그가 다른 곳으로 이주할 때도 버샤는 그와 동행한다. 윈지는 젊었을 때도 버샤는 그의 것이었고 늙었을 때도 그의 것이었다고 말하면서 자신이 충실한 남편으로서 그녀에 대한 의무를 다했다고 말한다. 하지만 버샤가 그를 위해서 희생한 것들을 고려하면 그의 말을 뒤집어서 버샤는 고향 사람들과 어울려 살 때도 그와 함께 했고, 그들로부터 버림받고 자발적으로 추방될 때에도 그와 함께 했다고 말할 수 있다. 이런 버샤가 죽자 윈지는 “사실상 나를 인류에 연결시켜주었던 모든 것을 잃었다”고 느낀다(10). 즉 아름다웠다가 늙고 병들어 소멸하는 버샤의 신체는 남성 중심의 젠더 관계에서 여성이 겪는 고난을 형상화하는 동시에 열등하다고 간주되는 여성을 배제할 때 세상 속에서의 남성의 존재 자체가 무의미해질 수 있음을 암시하기도 한다. 버샤가 죽은 이후로 “내 근심과 비탄은 얼마나 많았으며 내 즐거움은 얼마나 적었고 공허했던가!”라는 윈지의 한탄은 남성적인 것이 여성적인 것에 대해 거두는 승리를 보여준다기보다는 여성적인 것이 제거되고 없을 때 남성적인 것이 얼마나 무의미할 수 있는지를 암시한다(10).

    윈지가 의식하지 못할 때조차도 그는 불멸성을 획득함으로써 시간의 흐름을 빗겨간다. 그러나 시간은 버샤의 신체를 통해서 간접적으로 여전히 그의 삶에 개입한다. 버샤가 죽고 나서야 그는 시간의 영향권을 완전히 벗어난다. 그러나 시간의 영향권 바깥에 놓인 윈지는 나침반도 없이 폭풍이 몰아치는 바다에 내동댕이쳐진 선원이나 이정표 하나 없는 황야에서 헤매는 여행객보다도 “더 길을 잃고 더 절망적인” 상황에 처해 있다고 느낀다(10). 모든 사람들이 피하고자 하는 죽음은 역설적이게도 불멸의 존재가 된 윈지에게는 유일한, 그러나 허락되지 않는 피난처가 된다. 흥미롭게도 윈지는 외롭고 절망적일 정도로 지루한 불멸의 삶을 살면 살수록 “심지어 삶을 혐오하는 동안에도 나는 죽음을 더욱 더 두려워하게 된다”고 고백한다(10). 이런 양가적인 감정을 그는 인간이라는 수수께끼의 본질로 설명한다. 하지만 꺼지지 않는 생명의 불꽃을 담고 있는 그의 신체는 그를 필멸의 인간과는 다른 존재로 만든다. 그는 “죽음을 원하면서도 결코 죽지 않는-필멸의 불멸인”으로서 버샤의 죽음과 함께 동료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이 하나도 없는 철저하게 혼자인 존재가 된다(11). 그의 가슴에는 야망도 욕망도 없고 단지 열렬한 사랑만이 있는데 그의 사랑에 응답해줄 사람이 없기 때문에 그 사랑은 “오로지 그를 고통스럽게 하기 위해서 거기 있을 뿐이다”(11).

    이 모든 이야기를 독자에게 털어놓는 날 윈지는 인간의 신체가 견뎌낼 수 없는 탐험을 하여 자신의 불멸성을 시험하겠다는 계획을 세운다. 그렇게 해서 자유를 갈망하는 영혼을 집요하게 가두고 있는 신체를 파괴하여 영원한 휴식을 얻을 수 있기를 바란다. 만일 탐험에 성공한다면 그는 경탄의 대상이자 인류에게 이로움을 가져다 준 사람으로서 이름을 남길 수 있을 것이다. 그 누구도 가보지 않은 지역을 탐험함으로써 인류를 이롭게 하고 이름을 남길 수 있으리라는 생각은 『프랑켄슈타인』에서 로버트 월튼(Robert Walton)이 북극 탐험에 대해 품는 기대를 떠올리게 한다. 그러나 월튼에게 이런 기대는 탐험의 주요 동기인 반면에 윈지에게는 성공할 경우 생기는 결과일 뿐이다. 성공할 경우에 더 단호한 방법을 써서 “그의 신체를 구성하고 있는 원자들을 흩뜨려 소멸시킴으로써 그 안에 갇힌 생명을 해방시키겠다”는 다짐에서 알 수 있듯이 그는 낯선 곳을 정복하려는 야망이나 기대보다는 300년 넘게 살아온 삶에 대한 피로감에 압도되어 있다(11). 버샤의 신체는 노령이 가져오는 온갖 불이익들을 겪으며 소멸하는 반면에 윈지의 신체는 영원한 젊음을 유지함으로써 남성적 가치의 승리를 보여주는 듯하다. 그러나 신체의 소멸을 통해서 버샤의 영혼이 자유를 얻는 반면에 불멸의 신체 때문에 윈지의 영혼은 자유를 박탈당함으로써 여성성에 대한 승리처럼 보였던 것이 사실은 여성성의 부재로 인해 남성성이 놓이게 되는 곤경임을 암시한다. 즉 이 작품에서 불멸성의 획득이라는 초자연적 사건은 남녀의 신체를 극적으로 대비시키는 결과를 가져옴으로써 남성 중심의 사회에서 여성이 겪는 정신적, 감정적 고통뿐만 아니라 그것이 부메랑이 되어 남성에게 되돌아옴을 보여줌으로써 위계적인 젠더 관계가 남녀 모두에게 억압으로 작용함을 예증한다.

    IV. 결론을 대신하여: 초자연적 사건과 일상

    최초의 고딕 소설로 평가받는 호레이스 월폴(Horace Walpole)의 『오틀란토의 성』(The Castle of Otranto)은 1764년에 ‘이야기’라는 부제를 달고 출판되었지만, 1765년 재판될 때는 ‘고딕 이야기’라는 부제를 달고 나왔다. 월폴은 재판본 서문에서 고딕 이야기로서의 이 작품을 서로 대조적인 특성을 지닌 옛 로맨스와 당대의 로맨스를 결합하려는 시도로 설명한다. 월폴에 따르면 옛 로맨스는 온통 “상상력과 비개연성”으로 가득 차 있는 반면에 당대의 로맨스는 “항상 자연을 모방하려고” 한다(65). 전자에서는 인물들의 행위나 대화, 감정들이 “부자연스러운” 반면에 후자에서는 “자연이 상상력을 구속”한다(65). 이렇게 두 유형의 로맨스 모두 어느 한쪽으로 치우쳐져 있는데, 월폴은 각각의 장점을 취하면서도 극단을 피하기 위해서 『오틀란토의 성』을 쓸 때 자유롭게 상상의 나래를 펼쳐 흥미로운 상황을 만들어내면서도 등장인물들이 개연성에 따라서 행동하는 작품을 쓰려고 했다고 말한다. 즉, 고딕 이야기는 있을 법하지 않은 것들과 있을 법한 것들, 초자연적인 것들과 자연적인 것들이 서로 결합된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셸리의 초자연적 단편들은 고딕 소설의 전형적 요소들인 고성, 비밀 통로, 빈번하게 기절하는 여주인공, 공포를 자아내는 미스터리 등을 담고 있지는 않지만 자연적인 것과 초자연적인 것의 조합 측면에서 보면 고딕적이다. 「변신」에서 귀도는 과도한 남성성의 소유자이고 줄리엣은 이상적인 여성으로 그려진다는 점에서 둘 다 극단적인 유형의 인물들이고 신체 교환은 초자연적 사건인 반면에 그들에게 일어나는 그 밖의 일들은 평범한 사람들에게 일어날 법한 것들이다. 「필멸의 불멸인」에서 필멸의 존재로 태어난 윈지가 과학의 힘을 빌려 만든 약을 먹고 불멸성을 얻는다는 것은 초자연적이지만 윈지와 버샤는 평범하고 그들의 생활도 지극히 평범하다. 그리고 두 작품에서 주인공들은 이례적인 상황에 놓였을 때 평범한 사람들이 할 법한 대로 생각하고 행동하고 말한다. 그러나 흥미롭게도 각 작품에서 초자연적 사건이 자연적인 것, 더 구체적으로 말해서, 남녀 주인공의 일상에 미치는 영향은 서로 반대 양상을 띤다.

    「변신」에서 귀도가 바위투성이 해안에서 난쟁이를 만날 때쯤 그의 일상은 자력으로는 회복 불가능할 정도로 파괴되어 있다. 회복 불가능할 정도는 아니지만 줄리엣의 일상도 파괴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녀는 귀도와의 오랜 약혼 상태를 끝내고 그와 결혼하기 직전까지 갔지만 결혼 계약 조건을 귀도가 거부함으로써 결혼은 성사되지 못했다. 게다가 그녀는 귀도에 의해 납치당할 뻔하기까지 했다. 비록 미수로 끝나기는 했지만 납치는 누군가를 강제 수단을 써서 억지로 끌고 가는 행위라는 점에서 귀도의 납치 시도는 줄리엣의 일상을 갑자기 폭력적으로 파괴하는 행위가 된다. 그리고 귀도의 추방으로 그와의 결혼 가능성 자체가 사라졌는데, 줄리엣이 그를 사랑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것은 그녀의 삶에 치명적이다. 그런데 귀도와 난쟁이의 신체 교환이라는 초자연적 사건은 파괴된 귀도와 줄리엣의 일상을 회복시키는 데 기여한다.

    귀도의 신체를 입은 난쟁이는 귀도가 그동안 저지른 일들을 참회하고 개심하고 있다는 인식을 사람들에게 심어줌으로써 추방되었던 귀도가 공동체로 복귀하고 줄리엣과 결혼하여 일상을 꾸리는 것을 가능하게 해준다. 죽음을 각오하고 난쟁이의 책략을 막아냄으로써 귀도는 자신의 우행 때문에 단절되었던 토넬라 및 줄리엣과의 관계를 제자리로 돌려놓는다는 점을 고려하면 귀도의 행복한 결말은 그가 스스로 얻은 것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그러나 난쟁이가 없었더라면, 난쟁이가 맞교환을 통해 얻은 귀도의 신체를 이용하여 그의 삶을 가로채려고 하지 않았더라면 귀도는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참회하고 개심할 기회를 갖지 못했을 것이다. 이 문맥에서 보면 신체 교환이라는 초자연적 사건은 귀도의 남성적 자만심과 권력의지에 의해 파괴되어 버린 그와 줄리엣의 일상과 미래의 행복까지 복원시켜 준다고 할 수 있다. 더 중요한 것은 귀도와 줄리엣의 관계가 초자연적 사건 이전의 두 사람의 관계와 달라진다는 점이다. 귀도는 더 이상 줄리엣을 단순한 그의 소유물로 보지 않는다. 일상이 파괴되었던 흔적은 더 창백해진 얼굴과 약간 굽은 몸이라는 가시적 특징으로 귀도의 신체에 그대로 남아 있다. 귀도의 신체에 기입된 이 흔적들은 잃어버렸던 줄리엣을 어떻게 해서 다시 얻게 되었는지를 끊임없이 상기시켜줌으로써 귀도로 하여금 줄리엣과 함께 꾸린 가정의 일상, 그 가정이 속해 있는 공동체의 일상을 소중히 여기게 해준다.

    반면에 「필멸의 불멸인」에서 초자연적 사건은 윈지와 버샤의 일상을 파괴하는 역할을 한다. 이 파괴 과정은 서서히 진행되지만 그 과정에서 윈지와 버샤가 겪는 정신적, 감정적 고통은 결코 가볍지 않다. 윈지의 빈곤한 처지, 버샤의 후견인의 반대, 서로의 대한 오해 등으로 인해 두 사람의 관계는 완전히 단절될 위기를 맞는다. 그러나 아그리파가 만든 약을 먹고 버샤에 대한 사랑의 감정이 치유되었다고 믿은 윈지가 그녀를 찾아감으로써 둘의 관계는 회복된다. 비록 아그리파의 약에 대한 잘못된 정보에 기인한 행동이기는 하지만 윈지에게 버샤를 찾아갈 용기를 주었다는 점에서 불사의 약은 두 사람이 원하는 일상을 그들에게 선물했다고 할 수 있다. 결혼하고도 몇 십 년 동안 두 사람의 삶은 다른 사람들의 삶과 별반 다를 것이 없이 평범하다. 그러나 약의 효능이 윈지의 신체에서 가시화되자 그들의 일상은 붕괴되기 시작한다. 마을사람들은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그들의 일원이었던 윈지를 기피할 뿐만 아니라 그의 아내라는 이유만으로 버샤에게 연민을 느끼면서도 그녀까지 피한다. 태어날 때부터 살아온 공동체에서 버림받고 둘 만의 외롭고 고립된 삶을 살게 되면서 윈지는 자신이 불사의 약을 마신 것을 “불운”으로 여기기 시작한다(8).5)

    고향 사람들로부터 버림받은 후 윈지와 버샤가 택한 것은 낯선 곳으로의 이주다. 귀도가 시도했던 납치와는 달리 윈지와 버샤의 이주는 두 사람의 결정에 따른 것이라는 점에서 자발적인 행위이다. 그러나 공동체 전체가 그들을 배제했기 때문에 두 사람은 이주할 수밖에 없었다는 점에서 이것은 강제당한 행위이기도 하다. “가엾은 버샤를 그녀의 고향 마을과 젊은 시절의 친구들로부터 떼어내어 새로운 나라, 새로운 언어, 새로운 관습으로 옮겨가게 하는 것은 잔인한 일이었다”라는 윈지의 말에서 유추할 수 있듯이 이 반강제적인 이주는 버샤와 윈지에게 정신적, 감정적 고통을 준다(9). 그리고 이주로 인해 그들이 가정과 공동체에서 누려왔던 평범한 일상은 파괴되어 버린다. 새로 이주한 곳에서 두 사람은 성공적으로 정착하는 듯 보인다. 그러나 버샤는 윈지에게서 “늙어가고 있다”는 증거를 찾는 데 강박적으로 몰두하고 윈지는 버샤가 질투하지 않도록 “다른 여자에게 감히 말을 걸지 못했다”는 내용에서 유추할 수 있듯이 두 사람의 일상은 불멸성의 획득이라는 초자연적 사건의 결과가 윈지의 신체에서 명시화되기 이전의 일상과는 사뭇 다르다(9). 이런 삶은 윈지로 하여금 버샤를 통해서만 세상과 연결되게 하고, 연결고리 역할을 하던 버샤가 죽자 그는 세상으로부터 완전히 단절된다. 이렇게 불멸성의 획득이라는 초자연적 사건은 윈지를 평범한 일상이 불가능한 상태로 몰아간다.

    서스맨은 문학 연감에 실린 작품들이 주요 독자층인 중간계급 여성들에게 외국을 배경으로 하는 이국적인 사건들과 고딕적인 상황에서 벌어지는 초자연적 사건들을 탐색할 기회를 제공하는 한편 정숙함이라는 중간계급의 이상을 따르는 가치들을 그대로 유지한다고 말한다. 이런 특징을 근거로 서스맨은 “문학 연감들이 가정생활의 판에 박힌 일과들을 직접적으로 문제 삼지는 않으면서도 그것들을 의심한다”고 본다(166). 「변신」은 귀도가 오만하고 이기적인 남성에서 친절한 남성으로 길들여지고 귀도와 줄리엣이 결혼하여 행복한 가정을 꾸린다는 점에서 중간계급의 이상을 구현하는 이야기로 읽을 수 있다. 그러나 귀도로 인해 교란되었던 일상이 신체 교환이라는 초자연적 사건에 의해서 극적으로 복원된 흔적이 귀도의 신체에 남는다는 점은 가정성(domesticity)과 가정생활의 일상에 대한 중간계급의 이상들을 문제시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이 문맥에서 보면 「필멸의 불멸인」은 한발 더 나아간다. 왜냐하면 불멸성의 획득이라는 초자연적 사건은 일상의 파괴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버샤가 살아 있는 동안 윈지와 버샤는 계속 서로를 사랑하고 가정을 유지해가지만 윈지의 늙지 않는 젊음으로 인해 그들의 일상은 늘 파열음을 낸다. 게다가 두 사람 사이에는 자식도 없기 때문에 버샤가 죽자 윈지는 혼자가 되고 나중에는 불멸의 존재가 된 자신과 필멸의 존재인 다른 사람들은 동류일 수 없다고 생각한다. 불멸의 신체를 파괴하기 위해 극단적인 방법을 취할 수밖에 없는 윈지에게는 중간계급의 가정과 가정생활은 죽음만큼이나 불가능한 것이다.

    셸리는 「변신」과 「필멸의 불멸인」에서 초자연적 사건을 활용하여 신체와 젠더의 관계를 고찰한다. 「변신」에서 신체 교환이라는 초자연적 사건은 줄리엣의 신체를 자신의 남성적 자존심을 세워주는 소유물로 여기던 귀도로 하여금 신체에 의해 존재가 규정당하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경험하게 함으로써 여성에 대한 그의 태도를 변화시킨다. 그리고 이 변화는 귀도의 과도한 자만심과 권력 의지에 의해 교란되었던 그와 줄리엣의 일상을 복원시키고 그를 다정한 남편이자 친절한 이웃이 되게 한다. 그러나 셸리는 일상이 교란되었던 흔적을 귀도의 신체에 남겨놓음으로써 남성 중심의 젠더관계가 갖는 폭력성에 대한 주의를 환기시킨다. 「필멸의 불멸인」에서 불멸성의 획득이라는 초자연적 사건은 버샤의 늙어가는 여성 신체와 윈지의 늙지 않는 남성 신체 사이의 극적인 대비와 손상되지 않는 윈지의 젊음에 대한 버샤의 반응을 통해서 당시 젠더 관계에 문제를 제기한다. 그리고 영원한 젊음과 아름다움을 간직한 신체가 윈지의 남성성을 강화시켜주기 보다는 오히려 그의 영혼을 구속하는 감옥이 되어버리고 이런 신체 때문에 가정의 일상이 불가능해지는 이야기를 들려줌으로써 셸리는 여성적인 것이 부재할 때 남성적인 것이 어떤 상황에 처하고 어떤 정신적 고통을 겪을 수 있는지를 고찰한다. 이렇게 셸리는 「변신」과 「필멸의 불멸인」에서 초자연적 사건과 신체, 젠더의 삼자관계를 고찰하면서 당대의 젠더 관계, 가정과 그 일상에 대한 중간계급의 이상들을 심문하고 있다.

    5)비숍이 서문에서 언급하고 있듯이 연구자들은 ′Winzy′라는 이름이 ′저주′를 뜻하는 스코틀랜드어 ′winze′에서 온 말로 본다(xiv). 윈지의 이름 자체가 불멸성이 그에게는 저주임을 암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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