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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A 학술지
바바라 가우디(Barbara Gowdy)의 『하얀 코끼리뼈』(The White Bone)에 나타난 여성-동물 존재론에 관하여 Female-Animal Ontology in Barbara Gowdy's The White Bone
  • 비영리 CC BY-NC
ABSTRACT

In Western philosophy animals, along with women and children, has historically been opposed to male-centered civilization, understood through and contained within an anthropomorphic perspective. Consequently, the inequalities of civilization might be addressed most profoundly by the issue of animal rights. This potential disruption is paralleled by the fact that literary representations of animals push narrative to its limits in order to articulate a new ethical consciousness based on a non-human epistemology/ontology. This is exemplified by Barbara Gowdy’s novel The White Bone, which forges a dynamic between animal, feminine and place to portray elephants as subjects constructing their own destiny. In a challenge to Western philosophy’s denial of the animal’s existential being, Gowdy imbues her elephants with complex consciousness of Being. She channels her unavoidable anthropomorphism, giving them logic, though a logic based not on reason but on an emotional ontology alien to humans, and thus translating their language into our own. By translating their ontology, Gowdy attempts a new ethical vision that would enable human and non-human animals to co-exist in harmony. Her portrayal of the social motherhood by which the elephants confront traumatic reality reveals an intuitive ethics of caring going beyond human references of individualism and rationalism, suggesting an approach to animals through an ethical framework that goes beyond mere discursive practice. The White Bone is thus an effort to site justice and morality within a context greater than human civilization and so overcome the binary opposition between human and non-human and constructing a non-anthropomorphic cosmopolitanism (Steiner) that allows them to co-exist in the world.

KEYWORD
nonhuman animal , anthropomorphic , animal liberation , human rights , translation , suffering , ontology , ethics of caring , cosmopolitanism
  • 1. 들어가며

    유명한 강연집 『동물, 그리하여 나는 존재한다』(The Animal That Therefore I Am)에서 데리다(Derrida)는 서구철학사에서 동물의 개념이 어떻게 생성되고 기능해왔는지, 어떻게 데카르트(Decartes), 레비나스(Levinas), 라캉(Lacan), 하이데거(Heidegger)등의 철학자들이 인간이 무엇인지를 설명하는 과정에서 비인간 동물(non-human animals)의 개념에 근거해왔는지, 그로써 서구철학사에서 인간과 동물의 명확한 경계가 어떻게 공고해졌는지를 탐색한다. 그는 서구철학에서 동물에 관한 인식의 역사를 “동물”(the animal)이란 개념의 역사로 정의하는데 “동물”이란 단어의 역사란 다름 아닌 인간이란 종의 자서전에 불과하다.

    수많은 살아있는 존재들을 하나의 단일한 개념으로 환원하기 위해 인간이 발명해낸 말이 “동물”이라고 주장하는 데리다는 이 “동물”이란 개념으로부터 인간을 넘어선 다양하고 이질적인 살아있는 존재들인 “동물들”(animals)을 해방시킬 근본적인 사고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다른 인종과 성에 대해 우리 사고의 끊임없는 전환이 필요하듯 동물 역시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동물을 바라보는 인간의 시선이 있다면 동물 역시 인간을 바라보는 시선이 있는데 이러한 동물의 시선을 간과하는 인간중심주의를 비판하면서 데리다는 동물은 관점이 있으며 그것도 “절대적인 타자”(the absolute other)의 관점이라고 주장한다(11). 동물의 근본적 타자 성에 대한 이러한 관심은 타자로서의 연계성 때문에 많은 페미니스트들의 주목을 받아왔다. 메리 밋지리(Mary Midgley)는 인간의 언어적 실천에 무의식중에 함의되어 있는 비인간 동물문제에 대한 무감각은 학대 받는 인간을 동물과 같은 취급을 받는다고 무심코 묘사할 때 잘 드러난다고 말한다(83).

    동일한 견지에서 어술라 르 귄(Ursula Le Guin)은 실제 삶에서나 문학에서나 아버지의 언어에 기초하여 세워진 문명에서 여성, 어린이 그리고 동물은 그 정체가 불분명한 타자 취급을 받는다고 주장한다(Scholtmeijer, “Power of Otherness” 231 재인용). 삶과 문학에서 여성과 동물과 어린이를 남성중심으로 문명화된 사회의 타자로서 하나의 지평 안에 설정한 르귄의 통찰은 캐나다의 여성작가 바바라 가우디의 본격 동물소설 『하얀 코끼리뼈』(1995)에서 가우디가 구현하고 있는 아프리카 여성 코끼리 내러티브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하얀 코끼리 뼈』는 아프리카 대륙에서 가뭄과 학살의 환경을 헤쳐 나가는 여성 코끼리들의 내면세계를 탐색하는 다소 낯선 작업을 시도한다. 주인공인 어린 여성 코끼리 머드(Mud)의 성장과정을 주요 서사로 한 이 작품은 1970-80년대 상아 값의 폭등으로 남아프리카에서 행해진 유례없는 대량학살의 시대를 겪었던 코끼리들이 자신들의 생존과 다음 세대의 안녕을 위해 그들을 “안전한 장소”(The Safe Place)로 인도해줄 신화적 힘을 가진 하얀 코끼리뼈를 찾아나서는 고단한 여정을 다루고 있다.

    이 작품의 두드러지는 특색은 코끼리들이 자신들의 운명을 자신들의 입장에서 구성한 서사로서 기획되었다는 점이다. 자신들만의 언어가 있을 뿐만 아니라 다른 존재의 마음을 읽고 미래나 다른 공간의 비전을 보는 남다른 능력을 가진 동물들이 주인공이기 때문에 성인 판타지로 분류되기도 하는 소설이지만, 실상 가우디는 이 소설을 쓰기 위해 오랫동안 학문적, 과학적 연구를 수행했고 현장에서 직접 아프리카 코끼리들과 함께 오랜 시간을 보내면서 그러한 연구결과를 확인하였으므로 소설 속 코끼리들의 사회, 문화, 생활습성에 대해서는 대체로 그 세세한 사실성과 객관성을 인정받고 있다. 코끼리 사회가 두드러지는 모계사회이기 때문에 이 이야기는 또한 여성의 성을 가진 존재(being)에 대한 이야기이며, 더하여 지리학적으로 아프리카라는 배경이 소설의 필수적인 서사요소가 되기 때문에 후기 혹은 탈 식민주의에 대한 간접적인, 그러나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분명한 논평이기도 하다.1)

    그러나 북미 백인 여성 작가가 인간으로서 근본적 접근이 불가능한 아프리카 여성 코끼리의 세계와 언어를 상상해내는 일은 작가 자신의 말마따나 어떤 “상상적 비약”(imaginative leap)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Gordon 87 재인용). 그리고 그러한 비약은 극복해야 할 많은 문제들을 수반할 뿐만 아니라 궁극적으로 인간과 비인간 동물의 관계에 대한 근본적이고 철학적인 문제들을 지시한다. 이런 견지에서 보면 현대문학속의 동물들은 작가들로 하여금 기존 서사의 한계를 밀어내도록 요구한다고 본 마리안 숄트메이저(Marian Scholtmeijer)의 통찰이 적절하다(Animal Victim 8). 동물의식에 대한 탐구는 곧 인간의식에 대한 탐구인데 동물들의 문화화(文化化, enculturation)에 대한 저항은 새로운 의식개념을 요구하고 이는 동물과 인간의 경계에 대한 근본적인 재성찰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코끼리의 입장에서 세계를 재구성해 본다는 가우디의 야심찬 내러티브의 성과와 실패는 그러므로 우리에게 인간과 비인간 동물간의 관계에 대해 근본적으로 재고해볼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제공한다. 나아가 이 소설은 그간 보이지 않았던 문제들 간의 연결점을 드러내 보여준다는 점에서 즉, 인종차별과 성차별이 상호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는 만큼이나 또한 성차별이 얼마나 종차별(speciesism)과 긴밀하게 연계되어 있는지, 모든 차별의 저변에 자리잡고 있는 종차별이란 더 크고 깊은 맥락에 대한 사유 없이는 여타의 차별 문제에 온전하게 대응하는 것이 근본적으로 어렵다는 점을 생각을 해볼 수 있는 기회가 된다.

    1)자연에 대한 식민지적 이데올로기가 존속하는 한, 궁극적으로 탈식민화는 후기식민화에 불과하다. 윌리암 아담스(William Adams)와 마틴 멀리간(Martin Mulligan)은 남아프리카에서 탈식민화의 과정이란 곧 근대적 국가의 건설을 의미했는데 이는 유럽식 모델과 전통에 근거한 것으로 식민지 시대의 이데올로기적 유산은 그대로 이어졌다고 본다. Decolonizing Nature: Strategies for Conservation in a Post-colonial Era (London: Earthscan Pub., 2003), 5.

    2. 지역, 여성, 동물

    영국의 저널리스트인 제레미 가브론(Jeremy Gavron)은 식민해방 이후 후기식민주의 시대의 아프리카인이 현대적 물질주의 상품들을 구매하기 위해 코끼리들의 상아를 필요로 하기도 했지만 더 근본적으로는 “야생”과 “위험”의 상징이자 자신들이 극복하고 싶은 “원시적이고 수치스런 과거”의 상징인 코끼리들을 제거하고자 하는 욕망이 강하게 도사리고 있었다고 분석한다(xii). 비평가 그래함 호간(Graham Hogan)은 이 견해 자체가 사실은 유럽중심주의적인 것이라 지적하기도 하는데(716), 실상 이러한 관점은 이 지역의 탈식민화 과정이 유럽식 모델과 전통의 위계적 수용 과정이었다는 점, 그러한 과정이 경제적으로 강제되었다는 사실 등을 심리주의적 분석을 가장해 가리는 면이 있다. 코끼리 대학살을 초래한 상아 값의 폭등은 서구경제의 상아에 대한 수요와 결코 무관한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호간이 지적했듯 다양한 생태환경과 문화와 나라들을 가진 이 커다란 대륙이 언제나 아프리카라는 하나의 단일 이미지, 그것도 원시, 야생을 대변하는 것을 넘어 제국주의 시대의 유럽의 불안과 욕망 및 공포를 드러내주는 신화화된 곳이었다면(719), 인권제국주의, 환경제국주의가 공공연히 논의되는 오늘날에 와서는 희생자의 신화(myth of victim)를 사용해 현대 사회가 공포스럽게 잃어가고 있는 아름다운 지구환경과 종의 다양성에 대한, 여전히 유럽 중심적 불안과 죄의식을 반영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렇듯 후기 혹은 탈 식민주의적 맥락에서 아프리카 코끼리의 문제를 조망할 때 흔히 한편으론 동물권리중심주의와 다른 한편으론 인간권리중심주의가 충돌하는 경우가 많은데, 가령, 코끼리의 동물권리 문제에 대해 신경증적으로 반응하는 아프리카의 여성인권단체들의 태도는 여성문제가 근본적으로 동물해방담론과 밀접하게 연계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종차별주의가 얼마나 인간사회에 깊이 뿌리박힌 것인지, 지역 여성 동물을 한 지평에 놓는 아프리카 여성 코끼리의 내러티브를 구성하는 것이 얼마나 지난한 작업인지 암시하며 오늘날 이 지역에서의 이 문제의 지극한 중요성을 반증하는 것이기도 하다.2)

    잘 알려져 있듯이 동물 문제에 대한 현대사회의 무감각에 도전하여 동물의 권리와 해방을 주장한 대표적인 학자는 이 문제에 관한 고전 『동물 해방』(Animal Liberation, 1975)을 쓴 피터 싱어(Peter Singer)이다. 그는 “고통”(suffering)에 근거하여 인간과 비인간 동물의 평등함을 주장하는데 생태주의 페미니스트 학자인 캐롤 아담스(Carol Adams)는 싱어의 동물권리 옹호 기준인 고통을 재고하면서 싱어의 논의에는 젠더 구성이 고통의 경험에 영향을 끼친다는 점이 간과되어 있다고 지적 한다(“Caring about Suffering” 221). 가령, 남성의 영웅적 고통에 비해 그 의미가 하찮은 것으로 소외되는 여성의 고통, 인간의 고통에 비해 그 중요성이 강등되는 동물의 고통은 서로 다르다는 것이다.

    이렇게 페미니즘의 관점으로 싱어의 논의를 재고할 때, 싱어의 주장은 근본적으로 동물을 도구적 가치(instrumental value)로 보는 기존의 관점에서 많이 벗어난 것이 아니며, 감성과 돌봄 등의 가치보다는 여전히 이성 중심의 공리주의적 관점에 기반하고 있다는 문제점이 드러난다. 수학화, 자본주의화 된 세계는 기본적으로 반동물적이다. 공리주의에 근거한 싱어식의 동물해방주의의 한계는 동물도 인간과 마찬가지의 이해(interests)가 있다고 할 때, 그 이해의 경중을 따지는 기준의 모호성 문제, 유사한 견지에서 고통의 정도의 기준은 어떻게 정하는가하는 고통의 ‘양화’ (quantification)를 피할 수 없다(Donovan 64). 나아가 싱어의 동물해방론은 동물의 권리와 평등 문제를 보편화하는 과정에서 오늘날 지구상에서 여전히 문제적인 지역적 차이의 문제, 즉 후기식민주의의 맥락을 간과할 공산이 크다. 기본적으로 동물에 대한 서구적 인식을 비판하는 그의 이론은 그 자체로 획기적인 시도로서 가치가 있으나 다른 한편으론 하루 2달러로 살아가는 남아프리카 원주민들이 자신들이 힘들여 키운 양배추를 간단하게 먹어치우는 코끼리들을 옹호하는 백인 동물해방 운동가들에 대해 품는 적개심에 대해서는 적절하게 대응하지 못하면서 이들에 대한 추상적이고 비현실적인 윤리적, 도덕적 판단을 초래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인종과 성차별에 근거한 인권문제는 동물권리문제와 불가분하게 얽혀있음을 간과해서는 안되며 동물이란 개념이 오랫동안 성차별과 인종차별 이데올로기의 저변을 지지하는 대단히 영향력 있는 링크임을 주지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생태 페미니스트 비평가인 조세핀 도노반(Josephine Donovan)은 “가부장적인 과학적 인식론의 양상”(patriarchal scientific epistemology)을 대체할 대안적 인식론/존재론적 양상을 감정적 지식, 모성적 사유, 돌봄의 윤리로 제시한다(72-6). 린다 반스(Linda Vance) 역시 우리에게는 새로운 내러티브, 동물과 인간 그리고 환경의 관계를 재정립한 새로운 이야기, 바람직한 내러티브가 필요하다고 보고(163-91), 폴록(Pollock)과 레인워터(Catherine Rainwater)도 우리는 “과거의 제한된 비전”을 버리고 “새로운 윤리적 기준”을 개발하고 “새로운 상상적 비전”을 추구해야 한다고 주장 한다 (Introduction, Figuring Animals 15). 특히 반스는 바람직한 내러티브의 기준으로 네 가지를 제시하는데 1) 생태적으로 적절한 것(ecologically appropriate), 즉, 생태학적 사실에 입각한 것, 2) 윤리적으로 적절한 것 (ethically appropriate), 즉, 거대 담론의 도덕적 포즈를 취하지 않고 작지만 실천적 차원에서 가능한 제시들을 하는 것, 3) 이야기의 대상에게 목소리를 주는 것, 그리하여 4) 우리로 하여금 관심을 갖고 돌보게 하는 것이어야 한다고 주장한다(167). 가우디의 코끼리들의 고통은 아담스가 말한 바, 그 생명의 연속성, 통일성 안에서 겪는 “고통의 존엄”(the integrity of the suffering)을 보여준다고 말할 수 있다(212). 가우디의 코끼리들은 몸의 일부(body parts)가 상아, 뿔, 발, 가죽 등등으로 나눠져 상품(commodity)으로 취급받는 대상이 아니라 존재의 연속성, 통일성 안에서 인간처럼 고통을 받는 주체라는 것을 보여줌으로써 코끼리의 고통을 그들의 것으로 돌려준다. 즉, 경험의 주인이자 증인에게 증언할 목소리를 주는 기획인 것이다. 이렇게 가우디의 코끼리는 “것들”(things)이 아니라 자신만의 존재형식으로 존재하는 생명 에너지로 이해받기를 요구한다. 이를 통해 작가는 환경을 관찰하고, 수용하고, 공경하는 관계적 모드 안에서 돌봄의 가치를 구현하는 ‘여성’과 ‘자연’을 아우르는 새로운 신화(myth)의 창출을 의도한다. 그러므로 가우디의 코끼리 소설이 제시하는 아프리카 여성 코끼리 내러티브는 반스가 제시하는 바람직한 내러티브의 기준에 잘 들어맞는 듯한데, 다른 한편 근본적인 한계를 노정하고 있기도 하다. 그리고 그 사정은 간단하지 않다.

    2)Michelè Pickover, Animal Rights in South Africa(Cape Town: Double Storey, 2005), 79‐98. 백인동물권리 옹호자들에게 아프리카의 여성인권 옹호 단체들이 결코 호의적이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 뚤리 코끼리 사건을 참조.

    3. 코끼리 존재론

    가우디의 코끼리 사회는 남성 코끼리(bulls) 중심의 가부장제가 아니라 여성 코끼리(cows)가 한 가족의 우두머리로서 역할 하는 사회이다. 이 사회는 특수한 사회구성을 가지고 있는데 각 가족마다 일종의 정신적 통역사인 마인트 토커(mind talker)가 있어서 다른 동물 종들과 소통할 수 있다. 이들은 자신들끼리의 소통은 주로 냄새나 소리와 같은 감각으로 한다. 이들 사회에는 위계질서가 있고 그에 따라 존칭어도 따로 있으며 심지어 이들의 언어에는 고어와 현대어 사이의 차이도 있다. 각 코끼리들의 정체성을 형성하는 사회적 메카니즘으로 이름 짓기 의식(the naming ritual)도 한다. 인간처럼 운명, 즉 단순생존이 아닌 삶의 어떤 큰 의미를 믿고, 단순번식이 아닌 인간의 사랑처럼 특정한 개인에 대한 애정과 헌신을 실천하기도 한다. 망자에 대한 위로의식을 하고(56), 인간에게 포획된 아기 코끼리들을 구하기 위해 선뜻 목숨 걸고 싸우러가는 이타적인 행동을 하거나 (58) 잘못한 일에 대한 죄책감을 못 이겨 자살을 하기도 한다(301). 같은 코끼리 종 안에서도 흰 코끼리, 검은 코끼리 등의 하위 종 차이가 있고 이 차이는 또한 세계관의 차이로 이어진다. 코끼리들은 그들 자신의 형상을 딴 더 쉬(The She)라는 신을 믿는다. 나아가 이 신과 연결된 코끼리들만의 코스몰로지, 우주론도 가지고 있다.

    가우디는 코끼리들의 육중한 몸이 다름 아닌 기억으로 가득 차 있다는 발상으로 소설의 서두를 연다. 만약 그들이 오래 산다면 육체와 함께 기억이 소진되어 망각할 것인데 불행히도 열에 아홉은 생의 한창 때에 인간에게 학살을 당하므로 그들에겐 망각의 은혜가 허락되지 않는다. 코끼리들에게 기억은 한 개체의 역사를 증언하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신 인 더 쉬로부터 오는 것이며 그들의 삶 자체가 더 쉬의 기억이 현상하는 것이다. 한 마디로 가우디는 전체 종의 역사의 짐, 존재의 짐을 짊어져야 하는 여성 코끼리들(She-Ones)을 창조하고 있는 것이다. 이에 더하여 가우디는 자신의 코끼리들에게 어떤 실존의 차원을 부여하고자 한다. 동물의 실존 문제와 관련하여 데리다가 강하게 비판한 독일의 철학자 하이데거(Heidegger)는 현존재(Dasein)의 부름에 귀 기울이고 반응하여 말할 수 있는 인간에 비해 동물은 이것이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그렇기 때문에 동물은 삶의 현상인 죽음 역시 “그 자체로”(as such) 인식할 수 없고 따라서 동물은 “죽는”(die)것이 아니라 “소멸”(perish)한다고 주장한다(Steiner 117; Derrida 141-60). 단순한 형태이긴 하지만 거의 인간의 현상학에 비견될 수 있는 존재론을 가지고 있는 가우디의 코끼리 재현은 하이데거의 이런 주장을 정면으로 반박하는 양상이 된다. 앞서도 언급했듯 이 소설의 코끼리들에게는 두드러지게 산자가 망자를 애도하는 의식이 있는데 이는 가우디가 작품의 편의상 지어낸 것이 아니라 실제 코끼리들이 행하는 의식으로서 과학적으로 이미 증명된 사실이다. 결론적으로 가우디는 이 소설에서 코끼리 존재론이라 할 만한 것을 창조해낸다. 이들의 존재 혹은 현실은 더 쉬의 기억과 긴밀한 역학관계에 있는데(82, 266), 피의 늪(Blood Swamp)에서 대학살이 일어나기 직전, 머드가 장차 제3의 눈을 뜨고 비전을 보게 되리란 것을 감지한 쉬 디멘즈(She Demands)는 머드에게 다음과 같이 말한다.

    코끼리들의 존재론에서 기억과 의미를 통해 존재의 연속성을 가지고 있는 이들은 그들의 존재 자체가 그들의 신인 더 쉬가 꾸는 꿈이자 그녀의 기억 속에서 기억되는 존재로서, 단순히 무의미하게 인간 곁에 생존하다가 소멸하는 ‘동물’이 아니라 무수한 관계망 속에서 인간과 관계하고 있으며 자신들의 ‘세계’를 형성하고, 살고, 그것을 기억함으로써 의미를 획득하는, 더불어 인간이 구성하는 ‘세계’의 의미에 영향을 끼치는 존재이다.3)

    나아가 이 고차원적 코끼리들의 인식론은 소위 포스트모던한 인식론에 비견될만한 수준이라 하겠는데, 상당한 지적 능력을 지니고 있는 이들에게 앎이란 근본적으로 비실체적인 것이며(37), 나아가 비극에 대처하는 코끼리들의 자세는 신의섭리 안에 있고자 노력하는 자세이기조차 하다.

    앞서도 언급했지만 가우디가 무리수를 두면서까지 코끼리의 의식이 중심이 된 소설을 기획한 것은 언제나 이야기의 대상이 되었지 주체가 되어 보지 못한 비인간 동물들에게 내러티브를 만들어 줌으로써 그들의 목소리를 되돌려주려는 시도이다. 그러나 동물재현에 있어 많은 학자들 사이에서 거의 필요악으로 간주되는 의인주의(anthropomorphism)의 이중성을 생각할 때 인간이 코끼리의 의식을 대변하는 소설을 쓴다는 사실 자체가 근본적으로 불러오는 의구심을 잠재우긴 어렵다. 가우디의 ‘코끼리 존재론’도 여타의 철학자들의 논의를 반박하기는 좋으나 지나친 의인주의가 아니냐, 동물은 사라지고 역시 인간의 가치만 남는 것이 아니냐는 의문을 불러올 수 있다. 인간에게 동물을 설명하고 이해시키기 위해 인간화시키는 방편인 의인주의는 한편으론 대중에게 공감을 불러일으키기 위한 훌륭한 전략이지만 다른 한편으론 코끼리를 인간처럼 그리기보다 그들 자신에게 충실하게 그리려는 노력에는 아무래도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우선, 소설이란 형식 자체의 문제가 있다. 소설 혹은 내러티브는 세계 안의 삶의 구성요소들을 연결시키면서 의미를 구성해 나가는 과정의 축적인데 그 형식 자체가 코끼리를 인간화하지 않고는 불가능하다. 의미를 구성하기 위해서는 언어가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에 대한 효과적인 반론으로서 호간은 가우디의 소설은 하나의 고정된 장르로서 자리 잡은 동물우화의 정형화된 관습들을 거부한 실험적 소설이며 따라서 러드야드 키플링(Rudyard Kipling)류의 동물소설과는 다르다고 옹호한다. 그는 가우디의 코끼리들이 자신들이 처한 조건에 대한 통렬한 의식을 보여주고 있으며 이러한 의식은 그들의 개인적 정체성과 과거로부터 내려오는 집단적 정체성에 대한 기억에 의해 형성된 것이라고 본다. 가우디는 “집단적인 비인간 의식,” 즉 “코끼리의 관점”으로 본 세계의 비전을 그리고 있다는 것이다(714-5). 또한 레인워터가 소개한 신경학자인 안토니오 다마지오(Antonio Damasio)의 의식 이론에 따르면 의식이란 근본적으로 언어학적이거나 고차원의 분석적인 것이 아니라 “감정적인” 것이며 세계와의 물리적 접촉을 통해 발생한 “느낌”의 결과이다. 그렇다면 동물은 제한된 기억한도 내에서 자전적 자아(autobiographical self)를 발전시킬 수 있으므로 인간이 굳이 이미 인간과 유사한 그들을 의인화(anthropomorphise)할 필요가 없다(Figuring Animals 13). 이를 가우디의 소설에 적용해보면 고차원적 언어 형식을 사용하면서도 근본적으로 코끼리 언어를 감정적 언어에 속하는 것으로 제시하는 가우디의 재현은 상대적 코끼리 세계를 구성하는데 있어 오히려 의인주의를 적절히 활용하고 있다는 인상을 준다.

    즉, 언어를 사용하되, 감성적 인식론에 기반을 둔 언어를 만들어 내고, 사람 같지만 궁극적으로 코끼리인 존재를 재현하기 위해 의인주의를 적극 활용하는 것이다. 한 마디로, 가우디는 가능한 코끼리 언어를 인간의 언어로 번역한다. 가령 가우디가 코끼리들의 시간 개념을 주석으로 붙여 설명하는 다음 구절을 보자.

    작가는 이렇게 주석을 달아서 코끼리들의 시간 개념이 인간과 다른데, 편의상 인간의 개념으로 표시한다고 설명한다. 시간 개념과 마찬가지로 코끼리 언어의 번역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가우디는 새로운 제3의 언어를 발명한다. 그녀의 코끼리 언어는 소설을 읽기 위해서 간단하지만 별도의 참조 단어모음 (glossary)이 요구될 정도로 색다른 그 낯설음으로 인해 전형적인 의인주의와 거리를 둔다. 이렇듯 가우디의 번역된 코끼리는 인간화된 코끼리지만 코끼리 자체는 지워지지는 않고 남아있는 재현이라 할 수 있는 데 궁극적으로 이 소설의 일차적인 관심이 환경파괴의 피해자, 식민경제의 피해자, 인간중심주의의 피해자인 동물 자체라면 가우디는 그러한 동물의 이야기를 더 잘 끌어내기 위해 어차피 불가피한 의인주의를 활용하되 차별화하는 전략을 취하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이 소설을 의인주의의 관점에서 비판하는 것은 틀린 것은 아니지만 방향을 잘못 잡은 독해가 된다. 일단 이렇게 인정을 하고 나면 작가에게는 무한한 자유가 주어진다. 물론 다시 말하지만 이런 종류의 대표적 장르인 동물우화(animal fable)와 이 소설은 명백히 거리를 두고 있다. 동물비유를 통해 인간사를 조명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기 때문이다.

    의인주의를 적극적으로 활용할 때의 장점은 이 소설의 핵심사건인 학살의 문제를 개진하기가 수월해진다는 것이다. 인간이 인간중심주의에 근거하여 정당하다고 믿으면서 오늘날 동물에게 가하는 온갖 종류의 체계화 된 폭력들, 즉 강간, 폭행, 감금, 유기, 살해, 대량학살, 육식, 강제노동, 강제이주, 등등 유정하고 지각이 있는 존재 (the sentient being)에게 인간이 가하는 이루 말할 수 없는 강도와 정도의 폭력들이 인간중심주의 혹은 인간우월주의에 근간하여 자연적이거나 정당한 것으로 간주되면서 보이지 않았던 그 잔혹성의 경지가 확연히 드러나는 지점이 생긴다. 사람 같은 코끼리가 학살당한 것이라기보다는, 그 잔인, 광포함에 대한 인간적 감성은 고스란히 느끼면서도 유정하고 지각 있는 코끼리가 당하는 학살의 낯설음을 보게 하는 면이 있기 때문이다. 가우디는 이 낯설음의 효과를 아기 코끼리들이 학살당하는 장면의 생생한 묘사를 통해 제시한다.

    3)‘세계(world)’의 문제 또한 데리다가 하이데거를 비판한 지점이다. 하이데거는 사물은 세계가 없고(worldless) 동물은 세계가 있지만 빈약(poor in world)하며 인간은 세계를 형성해나간다(world‐forming)고 주장한다(Derrida 153).

    4. 학살과 안정한 장소(The Safe Place)의 아이러니

    아프리카 대륙이 유럽에 식민지화되기 전 생존했던 추정 코끼리 숫자는 500백만 마리이고 가우디의 소설이 나온 90년대 아프리카 대륙 전체에 남은 코끼리 수는 약 60만 마리로 추산되며 2008년 무렵 남은 수는 약 46만 마리이다(Whyte and Fayrer-Hosken 399). 코끼리 사냥이 쉬운 이유는 한 마리를 죽이면 여러 마리를 한꺼번에 잡을 수 있기 때문인데 코끼리는 동료가 쓰러지면 위험이 눈앞에 있는 줄 알면서도 도망가지 않고 쓰러진 동료를 도우러 모두 한꺼번에 모여드는 습성이 있다(강성보 9면). 우리는『하얀 코끼리뼈』의 5장에서 상세히 다뤄진 학살 장면에서 이러한 일반적인 코끼리의 행동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두 가족 모두가 한 곳에서 즉시에 몰살당한 이유는 무엇보다 어린 코끼리들과 갓 태어난 아기쌍둥이 코끼리들을 보호하기 위함이요, 신생아 아기 코끼리들이 잔인하게 학살당하는 장면은 이 소설을 신식민주의에 대한 우회적인 코멘트로 읽을 수 있게 해주는데, 이 학살의 현장은 어딘가 다른 곳에 존재하는 시장의 이익을 위해 현재 여기 존재하는 인간 동물 관계가 흉측하게 일그러진 현장이기 때문이다.

    소설의 서두부터 제시되는 아프리카 코끼리들이 처한 위기적 상황은 가뭄, 화재, 병 등의 재앙적 환경이고 이러한 환경 인자에 포함되는 것이 바로 인간이다(8). 이 소설에서 코끼리들에게 인간은 수치심 없이 육식을 하는 존재이다. 그래도 과거에는 오로지 식량을 위해 살생을 했고 또 그 옛날엔 코끼리들과 정신적 소통(mind talking)도 가능했던 존재였으나 (42-3), 어느 순간 “절대적이고 위협적인 침묵”외엔 코끼리들은 인간의 마음을 들을 수가 없게 되었고 이어 전례 없는 참혹한 대량학살이 시작된다. 코끼리 역사에서 인간과 코끼리들 간의 관계를 보면 원래 인간은 코끼리였는데 어둠의 시대가 닥치면서 타락하여 “인간”이 된 것이다. 이렇게 하여 가우디는 상대적이고 주관적인 코끼리의 관점을 통해 우리로 하여금 우리 자신의 기원을 돌아보게 한다. 또한 인간과 코끼리가 서로 소통이 가능했던 시대를 상상함으로써 동물이 인간의 지평에서 소외되지 않은 세계, 현재의 인간중심주의적 세계보다 그 지평이 훨씬 더 큰 세계 인식의 가능성을 암시한다. 그리고 이는 또한 대조적으로 타락한 인간이 만드는 잔인한 현실을 부각시킨다.

    이 학살의 장면에서 인간은 동물처럼 “울부짖고”(howl) 코끼리들은 서로를 보호하고 지키려 필사적이다. 흔한 동물 인간 관계가 전도된 것이 다. 이렇듯 관례화된 인간과 동물의 가치를 전도시킨 언어구사는 의인주의에 충실하면서도 전도된 가치를 제시하여 낯설음의 효과를 발생시킨다. 태어난 지 얼마 안된 신생아 코끼리들에 대한 잔인한 학살과 이들을 지키려는 성인 코끼리들의 필사적인 노력, 이어지는 허무하고 잔인한 죽음을 시작으로 가우디는 인간의 행위가 코끼리 사회에 미친 파괴적 영향을 상세하게 차곡차곡 짚어나간다. 가령 늙은 코끼리 토런트의 입을 빌어 코끼리 사회질서의 유례없는 파괴를 지적하는데, 토런트는 톨 타임에게 “시절이 너무 나쁘다”고 입을 떼면서, “나이든 여족장들은 모두 학살되거나 미쳐버렸고 젊은 여족장들은 아직 무지해서 안전한 물을 어디서 구해야 하는지조차 모른다”고 말한다(151). 묵시록적 미래를 마주한 코끼리들에게 안전한 장소를 찾는 것은 절대 절명의 과제가 된다. 이 안전한 장소는 실상 두 번째 안전한 장소인데, 첫 번째 안전한 장소(First Safe Place)는 오래전 인간으로부터 도피할 은닉 공간이 가능했던, 그러한 장소가 남아 있었던 시절에 찾은 곳이다. 그러나 이제는 그것이 불가능한 상황인데 결국 두 번째 안전한 장소에는 전체 소설을 지배하는 아이러니가 들어있다. 코끼리들 사이에서 내려오는 전설대로 하얀 아기 코끼리뼈가 인도해줄 이상적인 서식지인 이 안전한 장소는 아이러니하게도 인간이 야생동물보호를 위해 마련한 야생국립공원의 암시를 풍긴다. 이곳은 언제나 푸르르고 물과 먹을 것이 풍부하며 무엇보다도 인간이 코끼리들을 학살하지 않고 그저 먼 거리에서 빤히 쳐다보기만 하는 장소이다. 토런트는 톨 타임에게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이와 같은 아이러니는 유토피아주의를 표방한 묵시록적 반 유토피아주의라기 보다는 현재의 지구적 상황에서 인간과 비인간 동물 간에 공존을 상상할 때 가장 우리에게 실천 가능한 상호공존의 방안으로 제시된다. 가우디는 추상적이고 관념적이며 공리주의적인 동물해방담론에 반해, 척박한 건기에 끈질긴 생명력과 경험의 축적으로 얻어진, 그들 삶의 조건에 대한 앎을 바탕으로 지독한 가뭄과 학살의 환경을 헤쳐 나가는 아프리카-여성-코끼리들의 내러티브를 통해 생태적으로 가능하고 윤리적으로 적절한 실천적 대안을 궁구해보는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안전한 장소”에 내재된 아이러니 및 비애감(pathos)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나아가 코끼리종이 현재 당면하고 있는 환경악화와 다른 종, 즉 인간의 폭력에 의해 멸종을 앞두고 있는 그들의 운명은 실상 인간의 미래와 무관한 것이 아니다. 그들의 묵시록적 미래는 인간의 미래에 대한 암시로서 제시되기도 한다. 가령, 데이트 베드가 죽기직전 본 인간세상의 환영들은 마인드 토커인 그녀가 인간의 기억을 본 것으로서 죽어가는 그녀와 코끼리들 전체의 운명은 이 어둠의 시대에 인간에게도 멀지 않은 멸망을 역시 암시한다. 기억을 상실하면서 자꾸 찾아오는 환영 속에서 데이트 베드는 인간 세계의 슈퍼마켓도 보고 영화관도 보고 크리스마스 트리도 보는데 이는 인간과 코끼리 운명의 어떤 긴밀한 연결성을 암시한다. 기억이 경험적으로 인간과 동물 세계를 경계 없이 돌아다니는 것은 동물과 인간의 기억세계가 공유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오랜 옛날에는 여성 코끼리들과 인간 사이에 정신적 교통(mind talking)이 있었지만 현재에는 순간적인 시공간의 틈새 사이에서 이러한 간헐적 만남만이 남게 된 것이다.

    이렇듯 인간과 코끼리들의 운명은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는데 둘 모두에게 멀지 않은 멸망의 위기를 극복할 유일한 방법은 인간과 코끼리들의 서로 다른 현실세계들을 포용할 수 있는 하나의 보편적 지평을 여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인간의 입장에서 새로운 인식, 새로운 철학 즉, 앞서도 언급했듯 도노반이 제시한 새로운 대안적 인식론/존재론에 기초한 감정적 지식, 모성적 사유, 그리고 돌봄의 윤리를 개발할 필요가 있다. 가능한 돌봄의 윤리를 가우디는 코끼리 사회의 모성을 통해 다음과 같이 암시한다.

    5. 돌봄의 윤리(Ethics of Caring)

    동물, 여성, 지역의 문제를 한 지평 안에서 바라보고자할 때 젠더문제의 중요성은 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가우디의 코끼리 젠더 재현에는 상투성과 전형성(stereotypes)이 없지 않지만 다른 한편 현실적이면서 초월적이기도 하다. 즉 의인주의를 활용한다는 큰 틀에서 보면 발정기에 짝을 찾는 구애상황의 묘사에서 인간중심주의적인 상투적이고 전형적인 젠더재현들이 보인다. 다른 한편으론 모계중심의 코끼리 사회에서 남성 코끼리들은 여성 코끼리들의 몸 안에 터널을 내어 아기 코끼리가 나오는 길을 뚫어 주는 역할 외에 가족의 존속에 적극적으로 기여하는 바가 없고 중대한 사회적 임무들은 여성 코끼리들이 도맡아 하므로 전형적 젠더재현이라 하더라도 인간의 가부장적 젠더 함의와는 다른 맥락에 있다. 코끼리 사회의 핵심적 특징은 돌봄의 훈련과 실천이다(Poole and Moss 69-98). 가우디의 코끼리들은 생존을 위해, 종족의 안녕을 위해 직관에 근거한 돌봄의 윤리를 실천한다. 이들 코끼리들의 모든 사회적 실천은 다음 세대를 낳고 기르고 그들의 운명을 실현하도록 가능한 조건을 찾아내고 유지하는데 있다. 그러나 환경재앙과 학살의 시대에 돌봄의 윤리는 필연적으로 이중적일 수 밖에 없는데 이것이 가장 첨예하게 드러나는 지점이 코끼리 모성이다.

    태어나면서부터 자신의 가족으로부터 버림받은 머드는 운명을 거부하고 이름을 거부하고 코끼리 사회를 거부한다. 앞서도 언급했듯 이름 짓기는 각 코끼리들의 정체성을 형성하는 사회적 메카니즘이다. 초기에 머드는 자신의 성인 이름인 쉬 스펀즈(She-Spurns)를 거부한다. 그러나 학살을 경험하고 그 결과 많은 희생을 치르고 궁극적으로는 데이트 베드를 잃고 자신의 가족의 가장이 되어 안전한 장소를 찾기 위해 치타인 미미와 자신의 뱃속의 새끼를 걸어 거래를 하는 등의 일련의 도덕적 위기들을 겪으면서 머드는 성장한다. 특히 모성이 조건으로 요구하는 희생과 자신을 잃어버리는 것에 대한 불안, 잇따르는 죄의식 등 코끼리 모성의 혹독한 성격이 머드의 성장에 결정적인 계기를 제공한다. 가족을 유지시켜야하는 족장들에게 있어 당면한 문제들이 서로 상충할 때, 전체 가족의 생존과 안녕을 위해 희생을 감수하는 방식으로 갈등을 해결해나가는 쉬 스노츠(She-Snorts)를 보면서,

    그러면서 머드는 자신이 출생할 때 버려졌던 상황을 다시 상기해 보는데, 여족장이 리더로서 가족의 안녕을 위해 내려야할 판단이 모성에 내재한 필연적 모순과 맞물린 것을 깨달은 머드는 결국 자신이 출생했을 때의 난국적 상황에서 당시 족장이 취했던 선택을 이해하게 되고 이제 현재 가족의 안녕을 위해 자신의 아기도 희생할 각오까지 하게 되는 것이다. 치타 미미와의 거래가 의미하는 바는 역설적으로 머드의 모성에 대한 이러한 깨달음이다. 미미와의 거래를 마치고 “무슨 그릇된 계획으로 쉬 원즈 코끼리들은 미미처럼 식욕으로 윤기가 흐르는 존재가 아닌 기억으로 부풀어 오른 존재가 된 것인지”(319-20)를 자문하는 머드의 질문 속에는 기억의 짐, 역사의 짐, 즉 동물 학대 역사의 짐을 짊어지고 가야 하는 코끼리들의 운명에 대한 깊은 이해와 비애가 함께 한다. 왜냐하면 머드는 다른 한편 역설적으로 데이트 베드를 구하려는 마음 때문에 족장이었던 쉬-스노츠가 결과적으로 가족 공동체를 위험에 빠트린 모순을 이해하며 자신 또한 의도한 것은 아니나 궁극적으로 자신의 아기 코끼리를 살리면서 다른 가족들의 안위를 불안한 미래에 내맡기게 되기 때문이다.

    앞서도 언급했듯 돌봄의 윤리는 코끼리 사회를 지속가능하게 해주는 미덕인 동시에 재앙적 환경과 암울한 학살의 시절을 맞아 전체 코끼리 사회를 더욱 위험에 빠지게 만드는 요소이기도 한다. 돌봄의 훈련과 실천이 코끼리 사회의 근본이기 때문에 동료를 구하려다 빈번히 집단 학살을 당하고 아기 코끼리를 포기하지 못하기 때문에 더욱 많은 성인 코끼리들이 아기 코끼리를 보호하려다 위험에 빠지게 된다. 가우디의 소설에서는 이에 더하여 각자 돌볼 아기 코끼리가 있는 여성 코끼리들 간의 이해가 상충하는 지점들을 보여주며 다른 한편으론 가족 내 다른 아기 코끼리를 살리기 위해 전체 가족의 명운을 거는 상황도 제시한다. 머드의 아기 코끼리를 미미로부터 구한 것은 자신이 낳은 아기 코끼리를 잃은 구 족장 쉬-스노츠이고 이로 인해 하얀 코끼리뼈를 찾을 방도가 묘연해졌음에도 불구하고 쉬-수즈(She-Soothes)는 기꺼이 동의한다. 이렇게 가우디는 묵시록적 상황에서도 결코 돌봄의 윤리를 포기하지 않는 코끼리들을 제시한다. 갓 태어난 볼트의 몸은 엄마 머드가 성숙함에 따라서 머드 자신, 데이트 베드, 헤일스톤, 톨 타임의 기억으로 자라고 부풀어 오를 것이다. 볼트에 대한 사랑으로 약해진 머드는 암울한 미래의 전망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아기와, 다른 가족들과, 세상과, 기억을 “조심스럽게”(delicately) 돌볼 것이다. 머드의 이러한 사랑은 종말적 미래의 예시에도 불구하고 다른 관계로 확장되면서 돌봄의 윤리로 발전할 가능성을 담고 있는 사랑이다. 즉 이 모성은 단순한 가족보존주의가 아닌 가족의 리더로서 후세대의 운명에 대한 책임감을 느끼는 역사적, 사회적 소명을 담지한 모성이다. 따라서 모성을 거부하던 머드가 모성과 화해하는 결말은 이 소설의 서사가 동물을 통해 기존의 인간중심주의적-여성차별주의적 모성이데올로기를 재확인하는 것이 아니라 모성의 핵심적 실천가치인 돌보는 마음이 다른 존재와 다양한 종들 간의 관계들로 확장되어 다른 차원의 더 넓은 지평에서 돌봄의 윤리로 발전할 가능성을 암시한다고 봐야한다. 이렇게 전 환경적으로, 전 종에 걸쳐 확장되는 돌봄의 윤리는, 인간이 문명과 자본주의체제의 유지를 위해 고안해내는 합리화의 기제들과 달리 생명의 가치를 핵심 축으로 한, 지속가능한 생태-사회적 형식과 문화의 개발을 지향하게 될 것이다.

    이에 반하여 이성, 사실, 해석의 함정과 믿음에 대한 가우디의 모순적인 코멘트는 데이트 베드와 톨 타임을 통해 구현된다. 소설에서 머드의 대척점에 있는 것은 데이트 베드와 톨 타임이다. 데이트 베드는 자아를 탐구하고 거울을 들여다보며 내면을 탐구하는 코끼리이다. 가우디는 이를 통해 동물이 내면을 본다는 것의 의미를 상상해보는데 데이트 베드와 여타의 다른 동물들의 자의식 수준을 상상하고 비교하여 보여준다.

    인간 과학자들이 이성을 가지고 동식물을 조작하고 이용하듯, 데이트 베드는 이성을 통해 다른 동물들을 이용하려 한다. 그러나 데이트 베드가 구슬려서 이용해보려 했던 매의 경우 그녀에게 이런 충고를 한다. “만약 코끼리들이 육식을 하고, 식욕을 줄이고, 귀를 펄럭인다면 하늘을 날수 있는 기회를 얻을지도 모른다”고(167).

    이렇게 가우디는 이 소설에서 데이트 베드가 만난 다른 동물들의 지극히 주관적이고 자기 종 중심적인 세계관들을 비교한다. 고대그리스의 철학자인 크세노파네스(Xenophanes)는 만약에 소, 말, 사자가 손이 있었으면 신을 자기들 모습으로 그렸을 것이라고 주장하는데 이를 인간중심주의에 적용하면 인간은 인간이라서 인간을 우선시 할 수밖에 없다는 논리가 성립한다. 미국의 동물 생태 철학자인 스테이너는 이런 인식은 인간의 사고와 감정에 깊이 뿌리박힌 것이지 객관적이고 이성적인 논리로 합리화될 수 없는 것이라 말한다. 즉, 이런 현상은 “이해할 수 있는것”(understandable)이지 오늘날 인간이 하는 것처럼 “합법화”(legitimate)할 수 있는 것은 아니란 말이다(138). 가우디의 소설에서 다양한 동물 종들이 각자를 기준으로 세상을 규정하고 인식하는 상대적 세계들의 충돌을 보여준 것은 이런 관점에서 이해하면 적절할 듯하다. 따라서 인간중심주의도 그저 “이해할 수 있는” 자기중심주의적 세계관의 하나로서 이해해야 마땅하다는 암시가 되는 셈이다.

    궁극적으로 데이트 베드의 내면주의, 이성주의는 아무도 구원하지 못 할 뿐더러 종국에는 자기 자신도 구원하지 못한다. 데이트 베드는 이 매를 이용하여 하얀 코끼리뼈를 찾으려다 되려 그간 절박한 현실을 견딜 수 있게 내적위안을 주었던 거울을 매에게 도둑맞는다. 또한 그럼에도 불구하고 온갖 고난을 견디고 간신히 “안전한 장소”로 가는 지표인 하얀 코끼리뼈를 발견했으나 허무하게도 뱀에게 물려 최후를 맞는다. 이러한 아이러니는 톨 타임이 좋은 의도로 위기에 처한 타조를 도와주려다가 오히려 다리를 부러뜨려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한 것과 유사하다. 가우디는 이렇게 이들의 이성적, 내면적 행동에 아이러니를 가한다.

    데이트 베드가 마인드 토커라면 톨 타임은 인간세계의 원주민 문화로 치면 부족의 주술사 같은 존재이다. 그는 마치 풍수를 보는 것처럼 풍경을 읽고 그로부터 징조나, 의미, 예시 등을 끌어낸다. 존재하는 모든 링크를 안다고 자부하면서(61) 지난 30년간 이러한 읽기를 가능케 하는 “링크”(link)들을 축적해 왔던 그는 혹독한 가뭄과 학살의 시절을 맞아 기존의 방식대로 세상을 읽고 살아가기가 불가능하다는 것을 서서히 깨닫는데, 세상에는 “링크들이 무한히 있어서”와 오히려 그 의미들이 의미가 없어지는 모순에 맞닥뜨려 회의에 빠진다(57). 게다가 위 에프 족을 만나고 나서 그는 같은 싸인도 다르게 읽는 것이 가능하다는 걸 깨닫는다(213). 데이트 베드와 마찬가지로 톨 타임의 아이러니의 극단은 토런트의 자연사와 대치되는, 인간에 의한 무의미하고 허탈한 그의 급사에서 나타난다. 두 죽음의 비교에서 나오는 아이러니는 통렬한데, 우선 토런트의 죽음에는 비극이 없다. 그의 죽음은 예전 가뭄과 학살이전 본래 늙은 코끼리가 죽는 방식으로 죽는 것이기 때문에 “어떤 다른 질서의 경이로움”을 주는 죽음이다(298). 이러한 경이를 옆에서 지켜본 톨 타임이 극도의 행복감과 해방감에 젖어 길을 떠나다 인간의 총에 맞아 급사하는 것은 극도의 아이러니이다.

    톨 타임이 수많은 위험의 징조들을 무시하고 가다가 죽음을 맞는 순간, 즉 갑작스럽게 비행기가 나타나 톨 타임에게 총을 쏘는 순간을 맞아 가우디가 안배한 아이러니는 증폭된다. 톨 타임은 발목에 닿는 총알 세례가 비처럼 가볍게 느껴지는데, “그 가벼운 무게에 몸이 무너지는 것이, 당황스럽다”(299).

    가우디는 링크 불 톨 타임과 마인드 토커 데이트 베드를 통해서 의미와 링크되는 세계 내 삶의 요소들 간의 불안전하고 불확실한 연결고리에 대해 강조한다. 언어는 그 자체로 한계가 있어 어떤 세계가 되었든 완전히 설명할 수가 없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이 소설을 포스트모던 알레고리로 읽는 네타 고든(Neta Gordon)은 “가우디가 유대 기독교주의 틀 내에 서(within), 동시에, 그 틀에 반하여(against) 작업하고 있다”고 본다(79). 가우디가 전개하는 신성의 상징(symbol of the sacred)은 믿음의 기반을 완전히 훼손하지 않으면서도 기존 알레고리에서의 고정된 신비적 해석(fixed anagogue)의 권위를 훼손한다고 보는 것이다(80). 그렇다면 아기 코끼리의 하얀 뼈가 상징하는 것은 영원히 도망가는 진리인데, 작가는 그러한 진리에 대한 코끼리들의 맹목적 믿음은 비판하되, 톨 타임의 회의주의도 비판한다고 볼 수 있다. 링크들이 아무리 무한하다해도 궁극적으로 그동안 축적된 링크들을 믿지 않음으로써 톨 타임은 죽음을 맞게 되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링크는 단순히 미신도 아니고 객관도 아니고 믿음도 아니고 굳이 말하자면 그때그때 다른 것인데 톨 타임은 해석의 무한성이란 관념 앞에서 의미를 포기해버린 것이다. 그러나 비록 ‘해석의 무한성’ 앞에 서 부정당할지언정 ‘의미’는 그것이 아무리 제한적이고 불완전하더라도 현재, 여기를 끌고 가는 실질적 힘이다. 꾸준한 실천을 통해 그 불완전함을 극복해나가는 과정이 유한한 존재에게 주어진 유일한 선택지이며, 쉬-에스(She-S’) 가족이 실천적 돌봄의 윤리를 포기할 수없는 이유가 되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가우디는 포스트모던적 관념들을 활용하지만 근본적인 차원에서는 동의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포스트모던 이론가들의 동물문제에 대한 접근을 윤리적 관점에서 비판하는 스테이너는 우리가 도덕 공동체(Moral Community)에 동물도 포함시켜야 마땅하다는 윤리적 문제를 생각할 때 동물이 얼마나 고차원적 인지 능력을 가지고 있는지의 문제는 궁극적으로 동물의 도덕적 위상(moral status)과 별개의 문제로 봐야한다고 주장한다(119-20). 나아가 스테이너는 데리다의 동물론도 비판하는데, 데리다가 동물의 수동성, 즉 벤삼이 제기한 “동물은 고통받을 수 있는가”(can they suffer)가 아닌 “동물은 적극적으로 무능력할 수 있는가”(can they not be able)로 문제설정을 옮길 때, 동물의 취약성(vulnerability)과 그에 대한 인간의 공감력은 중요한 차원이긴 하지만 이것들이 동물의 도덕적 삶의 의미를 충분히 설명해 주진 못한다고 본다(120). 궁극적으로 중요한 것은 인간이 동물에게 가하는 폭력과 잔인함을 어떻게 제어할 것인가 하는 문제인데 스테이너가 보기에 이 문제에 대한 실천적 해답의 핵심적 사안은 육식을 할 것인가 말 것인가의 문제이다. 데리다는 이 문제에 관해서는 다소 애매하게 넘어가는데 결론적으로 스테이너는 데리다의 사유가 동물과 인간 사이의 “단일적이고 연속적인 경계에 반하는 이질적이고 다함이 없는 틈”(heterogeneities and abyssal ruptures as against the homogenous and the continuous, 30)에 관해 논하면서 인간 동물 사이의 이분법적 경계를 허무는데서 그치고 만다고 본다(123). 이는 앞서 언급한 고든의 포스트모던적 읽기에도 해당되는 비판이다. 고든 역시 인간과 동물간의 병행과 불일치, 즉 “포스트모던적 파열”(postmodern rupture), 서로가 서로에 대해 이해할 수 없음으로 생기는 이 파열이야말로 상호성이 발생하는 장소라고 보고 “상호간 알 수 없음”(mutual unintelligibility), 즉 타자성에 대한 인정이야말로 현재 인간과 동물이 마주한 파국을 극복할 열쇠가 된다고 주장한다(90). 그런데 이러한 담론적 결론은 결국 우리의 폭력은 나쁘다는 담론적 결의에 안주하기 쉬운 면이 있다. 스테이너는 동물문제의 윤리적 성격 자체가 담론적 결론을 넘어 실질적으로 중요한 것, 즉 실천과 행동의 원칙을 구체적으로 제시하기를 요구한다고 보고 그 시작은 인간 편에서의 희생적 행동, 즉 동물을 먹거나 여타 다른 인간적 쾌락을 충족하는데 동물을 착취하는 것을 실질적으로 중지 혹은 제어하는데서부터라고 주장한다. 동물을 해방하고 그들의 다양성을 해방하는 것이 “담론적 해방”(discursive liberation)에 그쳐서는 안된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138).4)

    이런 관점에서 가우디의 소설을 조망하면 이 작품의 궁극적 한계점이 드러난다. 코끼리들의 고통을 정당화하기 위해서 코끼리들에게 자의식을 부여하고 싸인과 그 대상의 불일치를 전제하는 은유(metaphor)를 포함하는 상징체계를 만들어주고 생태주의에 근거한 신화와 우주론을 부여해준 것은 불가피한 번역행위로서 의인주의를 적극적으로 활용한 것이라 해도 본질적으로 이와 상관없는 이들의 도덕적 위상을 설명하기엔 부족하다. 또한 코끼리의 고난을 낭만화하고 본의 아니게 희생자 논리에 가두는 면이 없지 않으며 특히 인간과의 관계를 주로 대립(antithesis)의 관점에서만 본 것은 코끼리들의 타자성을 더 타자화시키는 결과로 이어질 공산이 크다. 동물을 동물들로 대체해보려는 가우디의 노력은 여전히 동물과 동물들 사이 어딘가에 놓여있는 듯하다.

    동물을 합법적으로 상품으로 다루지 않고 그들의 권리를 인정하는 세계, 그들을 비인간 (혹은 반인간)으로 대우하는 것이 아니라 있는 모습 그대로의 그들과 공존이 가능한 세계의 비전을 만들기 위해서는 스테이너가 제시하는 인간중심주의적이지 않은 코스모폴리타니즘(nonanthropocentric cosmopolitanism), 단순히 인간의 사회적, 정치적 정의에 국한되지 않고 동물도 포함시킬 수 있는 우주적인 정의(cosmic justice) 개념을 고려해볼 필요가 있다. 스테이너가 말했듯이 이는 인간의 정치적, 역사적 투쟁을 격하하는 것이 아니라 “문명의 태동부터 인간이 억압해온 더 큰 세계적 맥락에 우리 자신을 위치시킴으로써” 우리 자신에 대한 더 깊은 이해를 도모하는 일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194). 이런 관점에서 가우디의 코끼리는 그 모든 문제점들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진지하게 읽는다면 이러한 인간중심주의적이지 않은 코스모폴리타니즘의 비전에 기여할 수 있는 하나의 계기가 되어줄 것이다.

    4)스테이너의 이러한 주장은 담론/실천 대립의 해묵은 서사, 즉 담론과 실천은 궁극적으로 다른 역할, 다른 차원에 있다는 서사를 인지하지 못하는 주장이라 보기는 어렵다. 데리다는 근대 이후 형성된 인간-동물 간의 특정한 담론적/실천적 관계를 문제 삼고 있고 그에 근거하여 행해진 인간의 동물에 대한 학대를 홀로코스트에까지 비유한다. 따라서 데리다의 논의를 논리적으로 따라가면 근대 이후 동물을 공장생산하고 대량으로 살상해서 먹는 것을 체계화한 인간의 실천을 중지해야 한다는 결론이 나와야 하는 게 맞다.

    6. 결어

    동물은 역사적으로 인간중심주의적 관점에서 이해되고 환원되어왔다. 또한 동물은 여성, 어린이와 같은 견지에서 남성중심주의 문명의 대표적 타자이기도 하다. 오늘날 동물의 권리에 대해 논하는 것은 곧 여타의 인권 차별의 저변을 건드리는 것이기 때문에 가장 급진적 접근이 될 수 있다. 나아가 동물은 현대 소설에서 서사의 한계를 밀어낸다. 새로운 인식론, 존재론에 기반을 둔 새로운 내러티브, 새로운 비전에 기초한 새로운 윤리의식을 요구를 하기 때문이다. 가우디의 코끼리 소설은 코끼리들이 자신들의 운명을 자신들의 입장에서 구성한 서사로서 여성 동물 지역을 한 지평 안에 위치시킨다. 동물은 실존이 없다는 서구철학에 반발하듯 가우디는 신화적 고차원적 코끼리들을 창조하고 그들에게 실존의 차원을 부여한다. 이 과정에서 가우디는 양날의 칼인 의인주의를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코끼리들에게 언어와 고차원적 사유능력을 부여하지만 이성이 아닌 감성적 존재론에 기반한, 인간에게 낯선 언어를 부여함으로써 코끼리 언어를 인간 언어로 번역하고 있는 것이다. 코끼리 존재론의 번역을 통해 가우디가 의도하는 것은 인간과 비인간 동물과의 공존을 가능케 할 새로운 윤리적 비전이다. 이에 대해 가우디는 아프리카 여성 코끼리들이 당면한 절박한 현실을 헤쳐 나가면서 실천하는 사회적 모성을 통해서 드러나는 직관적 돌봄의 윤리를 제시한다. 이는 이성중심주의나 개체주의의 한계를 넘어서고자 노력하는 과정에서 성취되는 것으로 담론적 실천을 넘어 윤리적 실천을 요구하는 동물 이슈에 대해 중요한 계기를 제공한다. 궁극적으로 동물 인간의 이분법을 극복하고 동물을 인간의 지평에 포함시키는 길은 스테이너도 제시했듯 인간의 사회 및 문명보다 더 큰 세계적 맥락에서 정의와 도덕의 문제를 보는 것이다. 가우디의 소설은 의인주의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전략에 근본적으로 내재된 모순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문제점은 있지만 궁극적으로는 이러한 인간중심주의적이지 않은 코스모폴리타니즘의 비전을 만드는데 중요한 계기를 제공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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