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논문의 목적은 한국 공적연금제도의 다층구조화 과정의 제도적 메커니즘을 분석하는 것이다. 한국의 국민연금제도는 1988년 도입 이후 평균소득 대비 소득대체율이 70%에서 40%로 급격히 축소되고, 기초노령연금·기초연금 제도가 도입되는 등 중요한 변화를 겪었다. 하지만 국민연금 중심의 일원적 공적연금체계가 근본적으로 변경되지는 않았다. 본 논문은 이러한 제도변화를 설명하기 위해 제도와 환경, 행위자의 상호작용을 강조하고, 행위자의 전략이 제도변화에 미치는 영향에 주목한다. 또한 행위자의 전략에 영향을 미치는 변수로 ‘비토포인트의 강약’과 ‘제도의 자유재량적 해석 가능성’을 강조한다. 결론적으로 본 논문은 한국 공적연금제도의 변화를 다층구조화 과정으로 규정하고, 이러한 제도변화를 ‘제도전용’이 아니라 ‘제도병치’의 결과로 설명한다.
This paper aims at analysing the institutional mechanism of the multi-pillar restructuring in the Korean pension system. Since the national pension system was introduced in 1988, its replacement rate was sharply retrenched from 70% to 40% of the average income level. Also, adding to the national pension, the basic old-age pension and the basic pension were introduced in 2007 and 2014 respectively. Despite of these crucial changes, however, the unitary public pension system mainly based on the national pension was not fundamentally changed. This paper put an emphasis on the interaction between environment, institution, and actors and focuses on the effect of actor’s strategy on the institutional change. In addition, it also focuses on the role of ‘veto point’ and ‘discretion in interpretation/enforcement’ as variables affecting actors’ strategy. As s result, this paper argues that the institutional change in the Korean pension system is explained not by ‘policy conversion’, but by ‘policy layering’.
한국 사회에서도 ‘압축적 고령화’의 진행과 함께 연금정책이 중요한 정치쟁점으로 부상하게 되었다. 한국은 2000년 65세 이상 인구 비중이 7%를 넘어서게 되었으며, 2017년이면 65세 이상 인구 비중이 14%, 그리고 다시 24년이 경과한 후에는 그 비중이 20% 이상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65세 이상 인구 비중이 7%에서 20%로 증가하는데 프랑스가 156년, 미국이 86년, 일본의 경우 36년이 소요되었다는 점을 고려할 때, 한국의 고령화 속도는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을 정도로 매우 빠르다(Choi, 2006: 553; 안종범, 2005: 95; 김수완, 2012: 33). 게다가 65세 이상 인구의 빈곤률이 거의 50%에 달할 정도로 노인빈곤이 매우 심각하고, 그에 따른 결과로 노인 자살률도 세계 최고 수준이다. 이로 인해 지난 대통령 선거에서는 기초연금제도의 도입이 중요한 선거쟁점으로 부상하게 되었다.
그런데 1990년대 후반 이후 진행된 연금개혁은 제도 변화라는 측면에서 흥미로운 특징을 보여준다. 1990년대 후반 ‘국민연금제도개선기획단’(이하 기획단)이 구성되어 국민연금 개혁에 관한 논의가 시작된 이후 개혁 방향은 크게 일원화론과 이원화론으로 나뉘어 논의되어 왔으며, 이때부터 기초연금 도입의 필요성이 논의되기 시작했다. 그런데 흥미로운 점은 기획단의 이원화론, 즉 공적연금체계를 기초연금과 국민연금으로 이원화하는 개혁안이 개혁 초기에 폐기된 이후 몇 차례의 연금개혁을 거쳐 결국 국민연금 급여율은 대폭 축소되고 기초연금이 도입되는 방향으로 귀결되었다는 점이다. 그 제도적 형태도 ‘기획단’에서 제기되었던 개혁안, 즉 국민연금 중심의 모수적 개혁안이나 기초연금 도입을 통한 이원화 방안과는 상이하게, 국민연금 중심의 일원적 형태 하에서 기초연금이 도입되는 절충된 형태로 귀결되었다.
그렇다면 이러한 한국 공적연금제도의 제도변화 혹은 다층구조화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어떤 제도적 메커니즘을 거쳐 기초노령연금제도와 기초연금제도가 도입될 수 있었는가? 기존 논의들은 국민연금 급여수준의 축소를 강조하면서 이를 신자유주의 혹은 국제기구의 영향력으로 설명하거나(조영훈, 2002; 손호철, 2005; 신광영, 2002; 주은선, 2009), 아니면 연금개혁과 기초연금 도입을 정당정치 혹은 이익집단 정치의 결과로 평가한다(안종범, 2005; 김영순, 2011; 은민수, 2013; 임유진, 2014). 또는 제도주의적 관점에서 기존 국민연금제도의 경로의존성과 비토포인트(veto point)가 연금개혁 방향에 중요한 영향을 미쳤다고 평가한다(김연명, 2005; 송호근·홍경준, 2006; 현외성, 2008; 박광덕·이동현·도유나, 2008; Hwang, 2007; Kim and Kim, 2005; Kwon, 1999; Peng and Wong, 2010).
하지만 ‘신자유주의 관철론’은 신자유주의 혹은 세계은행의 영향력이 가장 컸던 김 대중 정부 시기에는 오히려 일원적 형태의 국민연금제도가 고수되었다는 점을 고려할 때 설득력이 약하다. 이익집단이나 정당정치의 역할을 강조하는 견해의 경우에는 국민연금 개혁이나 기초연금 도입 방안 자체가 이미 1990년대부터 정책관료들 사이에서 논의되어 왔던 주제라는 점, 제도의 짧은 역사로 뚜렷한 이익집단이 형성되지 않았었다는 점, 그리고 한국 정치에서 복지이슈는 최근까지도 선거정치의 핵심쟁점이 아니었다는 점을 고려 할 때 한계가 있다.
본 논문은 제도주의적 관점에서 한국 공적연금제도의 제도변화 과정을 설명한다. 하지만 제도주의적 접근이 행위자 변수의 역동성을 과소평가한다는 비판(김영순, 2011: pp. 143)을 고려하여, 제도변화에서 행위자의 역할을 강조한다(Streeck and Thelen, 2005; Crouch and Keune, 2005; Mahoney and Thelen, 2010). 구체적으로 제도와 환경, 행위자의 상호작용을 강조하고, 정치행위자의 대응 전략이 어떠한 제도변화를 야기하는지 분석한다. 또한 정치행위자의 전략에 영향을 미치는 변수로 ‘비토포인트의 강약’과 ‘제도의 자유 재량적 해석 가능성’을 강조한다.
한국 연금제도의 제도변화 과정을 추적하기 위해 본 논문은 기초연금 도입이 처음으로 논의되기 시작한 1997년부터 기초연금 도입이 완료된 2014년까지 시기를 포괄하고 이를 세 시기로 구분한다. ‘기획단’ 활동에서 1차 국민연금개혁까지를 첫 번째 시기, 2차 국민연금개혁을 두 번째 시기, 기초연금 도입을 세 번째 시기로 설정하고, 세 시기 동안 개혁의 쟁점은 어떻게 변화해 왔는지, 정치행위자들의 전략은 어떠한 변화를 겪었는지, 그리고 결과적으로 어떤 제도변화가 발생했는지 추적한다.
이 글의 구성은 다음과 같다. 첫째, 한국 복지국가 혹은 연금개혁에 관한 기존 연구들과 경로의존성과 제도변화를 설명하는 제도주의 이론을 검토한다. 둘째, 연금제도 유형화의 맥락에서 한국 연금제도의 제도적 특징을 살펴보고 이것이 연금개혁을 둘러싼 논쟁구도를 어떻게 형성하게 되는지 살펴본다. 셋째, 1997년부터 1999년까지 진행된 1차 국민연금개혁, 2003년부터 2007년까지 진행된 2차 국민연금개혁, 그리고 2012년 대선이후 최근 기초연금제도의 도입에 이르는 과정을 차례대로 분석한다. 마지막으로 세 시기에 걸친 한국 연금제도의 변화 과정을 바탕으로 한국 복지국가 발전의 제도적 특징을 제시한다.
한국 연금제도의 변화를 설명하는 기존 논의들을 세 가지 형태로 구분할 수 있다. 첫째, 한국 연금개혁을 신자유주의의 영향력 혹은 세계은행(World Bank)이나 국제통화기금(IMF)과 같은 국제기구의 영향력으로 설명하는 견해이다. 이러한 견해는 외환위기 이후 신자유주의의 영향력 확대로 국민연금의 급여수준이 급격히 축소되었으며, 이로 인해 사회적 연대의 토대가 침식되고 노후소득보장에서 자기책임 요소가 강화되었다고 지적한다(조영훈, 2002; 손호철, 2005; 주은선, 2009). 또한 이들은 국민연금개혁에서 국제기구의 영향력이 증대해 왔다는 점도 지적한다. 외환위기 직후 세계은행이 한국 정부에 구조조정차관(SALⅡ)을 제공하면서 국민연금의 다층체계로의 재편과 연기금 운용방식 개혁을 조건으로 내세웠던 점, 그리고 이러한 세계은행의 권고를 검토하기 위해 ‘공사연금제도 개선실무위원회’가 구성되어 활동했던 점 등을 들어 국제기구가 한국의 연금정책결정과정에 깊숙이 개입했다고 평가한다(신광영, 2002) 하지만 이러한 견해에 대해서는 국제기구의 가시적인 개혁 압력에도 불구하고 김대중 정부의 정책결정과정에서 국제기구의 영향력은 그렇게 지배적이지 않았다는 반론도 제기된다(양재진, 2008). 그리고 “한국 복지 국가 성격 논쟁”이 보여주듯이, 김대중·노무현 정부하에서 경제정책이 신자유주의적 이었을지는 모르지만, 복지정책까지 신자유주의적 지향을 지니고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다양한 의문이 제기되고 있는 실정이다(김연명 편, 2002).
둘째, 외환위기 이후의 국민연금개혁과 기초연금제도 도입을 이익집단과 정치세력의 근시안적인 이해관계(안종범, 2005; 은민수, 2013), 혹은 정당정치의 산물(김영순, 2011; 임유진, 2014)로 보는 견해가 존재한다. 사실 두 차례에 걸친 연금개혁과 지난 대선에서 기초연금을 둘러싼 논쟁 등을 거치면서 복지 혹은 연금 이슈는 더 이상 전문가들만의 관심사로 국한되지 않는 대중적 이슈로 부상하게 되었다. 또한 1차 국민연금개혁 당시의 국민연금파동, 2차 국민연금개혁 당시의 안티국민연금운동, 그리고 2002년 대선에서 이회창 후보와 노무현 후보 간의 연금개혁 방향을 둘러싼 논쟁과 지난 2012년 대선에서 문재인 후보와 박근혜 후보의 기초연금 공약 논쟁은 연금개혁이 이해당사자들의 이해관계, 정당들의 정치적 계산 등이 복잡하게 얽히고설킨 이슈라는 것을 잘 보여준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한국 정치에서 연금정책은 서구 복지국가들처럼 유권자들의 투표행위와 직접적으로 관련된 적이 없다는 점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Choi, 2008). 게다가 제도의 짧은 역사로 인해 연금제도에 대해 기득권을 주장할 수 있는 뚜렷한 이익집단이 형성되었다고 보기도 힘들다(김수완, 2011). 이러한 점에서 한국의 연금제도 변화를 근시안적인 이익집단 정치 혹은 정당정치의 산물로 평가하는 데에는 유보가 필요하다. 오히려 왜 어떤 조건에서 연금이슈를 둘러싼 정당정치가 활성화되었는지를 밝힐 필요가 있다.
셋째, 행위자들의 선호와 인센티브를 규정하는 제도 변수를 통해 연금제도 변화를 설명하는 견해가 존재한다. 이러한 접근은 게임의 룰을 규정하는 정치제도 혹은 비토포 인트(veto point)의 존재 여부가 연금개혁의 방향을 결정하는 보다 중요한 변수라고 강조한다. 또는 연금제도가 워낙 강한 경로의존성을 지니기 때문에(Myles and Pierson, 2001), 연금제도의 속성 자체가 연금개혁의 방향을 결정한다고 지적한다. 이러한 제도주의적 관점에서 기존 연구들은 발전주의 시기에 형성된 제도적 유산이 국민연금의 개혁아젠다를 규정하거나(Kwon, 1999; Peng and Wong, 2008), 또는 비토포인트의 약화나 강화가 한국의 복지확대와 축소를 규정하는 중요한 조건이었다고 강조한다(Hwang, 2007; 송호근· 홍경준, 2006; 김연명, 2005; Kim and Kim, 2005).
이러한 접근은 행위자를 둘러싼 제도적 인센티브 구조를 강조한다는 점에서 행위자 중심 접근의 한계를 극복하는 데 매우 유용하다. 하지만 본 논문은 지금까지 제도주의적 접근이 한국 연금제도의 복잡하고 다면적인 변화를 설명하는데 한계가 있다고 지적한다. 가령 이토 팽과 조셉 왕(Peng and Wong, 2008)은 한국과 대만이 복지국가 이륙에 성공할 수 있었던 제도적 메커니즘을 밝히는 논문에서 발전주의 시기에 경제정책의 일환으로 도입된 사회정책이 본격적으로 복지목적을 위해 전용(conversion)되는 과정을 강조하고 사회정책이 저소득층을 포괄하는 방향으로 확대되어온 과정을 높게 평가한다. 하지만 한국 연금제도의 변화, 특히 공적연금 사각지대 문제와 현세대 노인계층의 배제문제, 심각한 노인빈곤 문제 및 이를 해결하기 위한 시도로서 기초연금 도입은 한국의 복지국가 이륙이 단순히 제도의 전용, 혹은 확대나 축소로 국한되지 않는 매우 복합적이고 다면적인 성격을 지닌다는 것을 보여준다(김수완, 2012).
역사적 제도주의 접근에서 경로의존성 개념은 연금개혁을 설명하는데 중요한 이론적 자원으로 활용되어 왔다. 일반적으로 연금제도는 다른 복지제도와 비교해서도 훨씬 경로의 존성이 강한 제도로 평가받는다(Myles and Pierson, 2001). 복지제도는 복지수혜자들이나 복지공급자들로부터 적극적인 지지를 받는 경향이 있으며, 따라서 집권정당이 복지축소를 시도할 경우 이해당사자들로부터의 강한 반대에 부딪히는 등 복지축소는 매우 인기가 없는 정책으로 인식되어 왔다(Pierson, 1993; Kitschelt, 2001: 265). 그런데 특히 연금제도는 광범위한 이해관계자들을 형성시킬 뿐만 아니라 제도 자체의 전환비용이 매우 크고 특정 집단에게 이중부담의 문제를 초래하기 때문에 급격한 축소 없이 강한 경로의존성을 보이는 경향이 있다(Pierson, 1994; Myles and Pierson, 2001).
하지만 경로의존성 개념은 행위자의 역할을 과소평가하며, 제도변화를 설명하는데 취약하다는 비판을 받아왔다(Thelen, 1999; Streeck and Thelen, 2005; 김영순, 2011). 경로 의존성 혹은 정책피드백 개념은 제도란 일단 한 번 형성되면 행위자의 기대와 선호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고, 행위자는 이미 수립된 제도에 자신의 전략을 적응시키고자 하기 때문에 기존의 제도적 질서를 강화시키는 경향이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Pierson, 1993). 하지만 초기에 형성된 제도가 반드시 고착화되는 것은 아니며, 또한 뒤늦게 정치과정에 참여한 행위자들이 제도를 변화시킬 수 없을 정도로 제도가 결정주의적이거나 응집성이 있는 것은 아니다. 일반적으로 행위자들은 제도가 부과하는 규칙들을 따라야 하지만, 규칙 자체 또는 제도가 맡기로 한 기능들 자체가 애매모호한 경우도 많다. 그러므로 행위자들은 급격한 제도해체나 개혁이 아니더라도 자신의 이해관계에 맞게 기존의 제도적 약점을 활용해 제도를 변화시킬 수 있는 가능성을 갖는다(Streeck and Thelen, 2005; Thelen, 1999; Crouch and Keune, 2005).
이렇게 제도변화에서 행위자의 역할이 강조되면서 행위자의 전략에 영향을 미치는 변수가 무엇인지에 대한 관심도 증가해왔다. 이러한 논의들 중 비토포인트의 강약과 제도의 자유재량적 해석 여부를 기준으로 제도변화를 설명하는 논의들이 특히 주목할 만하다(Streeck and Thelen, 2005; Hacker, 2005; Mahoney and Thelen, 2010). 이들에 따르면, 우선 기존 제도의 옹호자가 강한 비토포인트를 보유하고 있을 경우에는 기존 제도에 새로운 제도를 병치시키는 전략(‘제도병치’)이 제도도전자에게 유리한 전략일 수 있다. 반면, 제도 도전자가 강한 비토포인트를 가지고 있을 경우에는 ‘제도방치’도 기존 제도를 허물어트리는 유용한 방법 중의 하나가 된다. ‘제도전용’은 기존 제도의 내용을 달리 해석해서 다른 목적에 사용하는 전략으로 이것은 비토포인트가 약할 경우 유용한 전략이다. 마지막으로 ‘제도폐기’는 고전적인 빅뱅유형에 해당하는데 최근의 제도변화에 흔한 유형이라고 하기는 힘들다(Mahoney and Thelen, 2010); Hacker, 2005; Streeck and Thelen, 2005). 아래 [표 1]은 마호니와 텔렌(Mahoney and Thelen, 2010)의 논의를 표로 정리한 것이다.
제도 변화의 네 가지 유형
지금까지 살펴본 제도변화 관련 논의들은 서구 복지선진국의 복지축소를 설명하려는 노력들 속에서 전개되어 왔지만, 한국 공적연금제도의 변화와 관련해서도 중요한 함의를 지닌다. 한국의 연금개혁은 짧은 도입 역사에도 불구하고 두 차례에 걸쳐 연금개혁이 실시되고, 기초연금이 도입되는 등 많은 변화를 겪어왔다. ‘저부담‑고급여’구조라는 제도적 특징으로 인해 재정불안정 문제가 존재했고, 여기에 더해 도시지역 자영업자로의 포괄범위 확대, 급격한 저출산‑고령화 현상 등이 맞물려 국민연금제도의 취약성이 더욱 증폭되어왔다. 하지만 이러한 다양한 변화의 압력에도 불구하고 구조개혁과 같은 급격한 변화가 발생하지는 않았다. 구조개혁의 필요성이 끊임없이 제기되어 왔지만 국민연금을 중심으로 하는 일원적 형태의 연금제도는 유지되어 왔으며, 국민연금의 제도적 취약성을 해결하기 위한 방법으로 급여축소와 함께 기초노령연금, 기초연금 등이 도입되는 형태로 변화가 진행되어 왔다. 이러한 한국 연금개혁의 특징은 점진적인 제도변화를 강조하는 제도주의 방법론이 한국 연금제도 변화를 설명하는 매우 유용한 자원일 수 있음을 시사한다.
본 논문은 우선 연금제도는 제도 자체가 강한 구속성을 갖고 ‘정치적으로 구성된 소유권’(Schwartz, 2001; 김영순(2011)에서 재인용)이라는 점에서 해석상의 자유재량이 낮은 제도라고 평가한다. 반면 한국의 정책결정과정에서 제도옹호자와 제도도전자의 거부권은 행정부와 입법부의 구성에 따라 가변적이라는 점을 고려할 것이다. 따라서 거부권의 존재형태에 따라 연금제도의 변화양상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살펴볼 것이다. 구체적으로 본 논문은 1차 국민연금개혁시 구조개혁안이 모수적 개혁안으로 전환되는 과정을 제도의 경로의존성으로, 2차 국민연금개혁시 기초노령연금 도입과 최근 기초연금 도입을 ‘제도병치(policy layering)’의 과정으로 설명한다.
보놀리(Bonoli, 2003)에 따르면 연금제도는 대체로 두 가지 유형으로 구분된다. 보놀리는 연금제도를 비스마르크식 사회보험형 연금과 베버리지식 다층체계 연금으로 구분하고, 이 두 유형의 연금제도가 소득대체율, 재정방식, 공적연금의 목적 등에서 각각 차이가 난다는 점을 강조한다.
전자의 경우 기여에 기초한 소득연계급여가 원칙이며, 소득보장이 가능할 정도로 관대한 급여를 제공한다. 퇴직연령시까지 기여를 통한 연금자격 획득에 실패한 사람들을 위해 자산조사에 기반한 최저연금제가 존재한다. 재정방식으로는 일반적으로 부과방식(Pay-as-you-go)을 채택한다. 또한 공적연금의 관대성으로 인해 사적연금의 발달이 미미한 편이다. 이러한 유형에 해당하는 국가들로는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스웨덴 등이 있다 (Bonoli, 2003). 후자의 경우는 공적연금인 기초연금은 기본적인 필요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정도의 낮은 급여만 제공하며, 소득보장은 기업연금이나 개인연금에 주로 의존 한다. 기초연금의 재원은 정율의 기여 혹은 조세를 통해 조달되며, 보통 부과방식의 재정 방식을 채택한다. 기초연금이 최소한의 소득만을 보장하기 때문에 당연히 사적연금이 발달한다. 이러한 유형에 해당하는 국가들로는 영국, 네덜란드, 덴마크, 스위스 등이 있다(Bonoli, 2003).
1988년 도입될 당시 한국의 국민연금제도는 기여에 기초한 소득비례급여를 지급하고, 소득대체율이 70%에 이를 정도로 매우 관대하여 소득보장 기능에 충실하도록 설계 되었다는 점에서 비스마르크식 사회보험형 연금제도에 가까웠다. 그런데 국민연금 급여 체계 내에 균등부문을 포함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베버리지형 연금제도의 요소도 포함하고 있었다. 게다가 연금적용에 있어서 조합주의 방식이 아닌 직역통합방식을 택하고 있다는 점에서 국민연금제도는 강한 소득재분배 기능과 강한 연대성을 지닌 제도로 평가할 수 있다(김연명, 2002).
반면, 재정방식에 있어서는 부과방식이 아니라 수정적립방식을 택하고 있으며, 비기여자들을 위한 제도적 조치는 존재하지 않았다. 즉, 퇴직연령 시까지 기여를 통한 자격획 득에 실패할 경우 이들을 포괄할 수 있는 제도는 존재하지 않았다. 또한 국가의 재정적 기여가 전무하다는 점에서 국가는 규제자로서의 역할만을 담당하고 있다는 점도 국민연금 제도의 중요한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정무권, 2002; Kwon, 1999). 1988년 국민연금 도입 당시 이러한 엄격한 기여주의 원칙으로 인해 현세대 노인들이 제도에서 배제되는 문제가 지적되었지만, 이러한 비판은 제도에 반영되지 않았다(이혜경, 1993). 이렇게 재정적 측면에서 보면 국민연금제도는 복지보다는 보험수리에 가까운 모형으로서 국가책임 최소 주의 혹은 기여주의 요소가 강하게 반영된 제도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점에서 한국의 국민연금제도는 강한 연대주의와 엄격한 기여주의가 결합된 제도라고 평가할 수 있다(우명숙, 2011). 그런데 국민연금제도를 규정하는 이 두 가지 원칙은 연금개혁 과정에서 중요한 쟁점들을 제기해왔다. 연금개혁 과정에서 재정불안정성과 기금고갈 문제, 광범위한 사각지대 문제와 현세대 노인빈곤 문제 등이 끊임없이 제기되어 온 것은 모두 이러한 국민연금의 제도적 특징들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이었다. 이러한 점에서 초기에 도입된 국민연금의 제도적 특징을 향후 연금개혁 방향을 규정하는 결정적 변수 중의 하나로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1차 국민연금개혁은 1997년 국민연금의 도시지역 자영자 확대를 대비해 ‘국민연금제도 개선기획단’(이하 ‘기획단’)이 구성되면서부터 시작된다. 우선 저부담‑고급여 구조의 국민연금을 그대로 유지한 채 도시지역 자영자를 포괄할 경우 심각한 재정불안정 문제가 우려되었다. 또한 연대주의적 성격이 강한 국민연금제도에 자영자들과 사업장 근로자들을 동일한 형태로 묶을 경우 형평성 문제가 발생할 것으로 예상되었다. ‘기획단’은 국민연금 확대 전에 이러한 예상 가능한 문제들을 검토하고 대안을 마련하기 위해서 구성된 것 이었다(국민연금제도개선기획단, 1997).
기획단에서 논의된 연금개혁 방향은 크게 두 가지였다.1) 첫 번째 방안은 기초연금을 도입하여 기존의 일원적 형태의 국민연금을 이원화하는 방안(혹은 구조개혁안)이었다. 이러한 방안은 구체적으로 기초연금과 국민연금을 합친 총 소득대체율을 70%에서 40% 로 대폭 낮추고, 기초연금 부분이 17%, 소득비례 부분이 24%를 차지하도록 분리하는 것 이었다. 이를 통해 재정불안정성 문제를 해소하고 자영자와 사업장근로자 간의 마찰을 줄일 수 있을 것으로 예상했다. 두 번째 방안은 현행 국민연금 중심의 일원적 형태를 그대로 유지하는 일원화 방안(혹은 모수적 개혁안)이었다. 이러한 방안은 급여율 인하와 기여율 인상을 통해 재정불안정 문제를 해결하고, 자영자와 사업장근로자 간의 마찰은 자영자 소득파악 강화를 통해 해결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했다(국민연금제도개선기획단, 1997; 윤석명·양혜진·오신휘, 2013: pp.31).
그런데 1차 국민연금개혁에서 흥미로운 점은 ‘기획단’ 활동 종료 이후 김영삼 정부 하에서는 이원화 방안이 채택된 반면, 김대중 정부로의 정권 교체 이후로는 이원화 방안이 폐기되고 일원화 방안이 채택·실행되었다는 점이다. 이와 관련해서는 우선 연금개혁 자체에 대한 전반적인 무관심을 이유로 들 수 있을 것이다. 아직 연금개혁은 전문가와 관료들에만 국한된 이슈였을 뿐 정당들조차도 이에 대해 논쟁에 참여하고 정책을 생산할 능력을 갖고 있지 못했다(권문일, 1999; 김영순, 2011). 그러므로 어떤 연금개혁안이 채택 되고, 또 폐기되더라도 이것은 큰 정치적 이슈가 되지 못했다.
이와 함께 단점정부에서 단점정부로의 정권교체와 비토포인트의 부재를 지적할 수 있다. 만약 김대중 정부로의 정권 교체가 일어나지 않았다면 이원화 방안의 폐기와 일원화 방안의 채택은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또는 정권교체가 일어나더라도 집권당이 다수당의 지위를 차지하지 못했다면 이원화에서 일원화 방안으로의 수정은 쉽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표 2]의 ‘정당별 의석수 분포’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김영삼 정부에서 김대중 정부로의 교체는 단점정부에서 단점정부로의 교체를 의미했다(김영순, 2011). 게다가 당시는 경제위기 직후로 경제관료들의 거부권이 상당히 약화되어 있었다(송호근· 홍경준, 2006). 마지막으로 김영삼 정부 하에서 이원화 방안을 지지했던 한나라당(구 신 한국당)도 이원화 방안의 폐기에 대해 아무런 대응을 하지 않았다. 오히려 한나라당은 국민연금 급여율을 정부안인 55%보다 5% 더 높게 제안할 정도였다(임유진, 2014).
이렇듯 1차 국민연금개혁은 초기에는 구조개혁안이 채택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결과적으로는 모수적 개혁에 그치는 강한 경로의존성을 보여주게 된다. 이 과정에서 연금개혁 자체에 대한 무관심과 비토포인트의 부재가 구조개혁안에서 모수적 개혁안으로의 전환을 가능하게 하는 제도적 조건이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
1)엄밀하게 말하면 칠레식 완전민영화 방안까지 세 가지 대안이 검토되었다. 하지만 완전민영화 방안은 기획단 논의에서도 크게 주목을 받지 못했기 때문에 여기서는 두 가지 대안만을 검토한다.
2차 국민연금개혁은 2003년 정부의 국민연금법 개정안이 제출된 이후 2007년 법개정이 마무리될 때까지를 말한다. 2차 국민연금개혁은 크게 두 가지 쟁점과 관련이 있었다. 첫째, 인구구조의 급격한 변화와 국민연금의 재정불안정성 문제이다. 한국에서는 2000년대 초반 노인 인구의 증가가 초저출산 문제2)와 겹치면서 ‘저출산‑고령화’가 매우 중요한 사회적 이슈로 등장하게 된다. 한국은 2000년을 기점으로 세계사적으로 유례가 없을 정도로 매우 빠른 압축적 고령화 단계에 접어들기 시작했는데, 이것이 국민연금 제도의 ‘저부담‑고급여’ 구조와 맞물려 재정불안정 문제를 이전보다 더욱 중요하고 시급한 이슈로 부상시킨다(Choi, 2006).
둘째, 광범위한 국민연금 사각지대 문제를 들 수 있다. 앞에서도 지적했듯이 1차 국민연금개혁으로 국민연금 대상자가 전 국민으로 확대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실제로 보험료를 납부하지 못하는 계층이 광범위하게 발생한다. 국민연금 전 국민 확대로 총 가입자 수는 1998년 7백 만 명 정도에서 1999년 16백 만 명 이상으로 두 배 이상 증가했지만, 실제로 보험료를 납부할 수 없어 납부예외자로 머물고 있는 가입자가 5백만 명 정도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현외성, 2008: 361). 이러한 광범위한 사각지대의 존재는 저소득층들이 미래세대로부터의 소득이전 효과를 누릴 수 없게 함으로써, 오히려 제도의 정당성 자체를 약화시키는 계기가 된다.
이러한 두 가지 쟁점과 관련하여 개혁 초기에는 두 가지 대안이 제시된다. 우선 정부 개혁안으로서 이것은 1차 국민연금개혁 때와 마찬가지로 기금고갈을 막기 위해서는 소득대체율을 2008년까지 50%로 낮추고, 연금보험료율은 2030년까지 15.9%로 인상하는 모수적 개혁안이었다(김연명, 2005; 오건호, 2006). 이러한 정부의 국민연금개혁안은 주로 재정불안정성 문제를 해결하는 데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고, 사각지대 문제를 해결하는 방안은 개혁안에 포함되지 않았다 (윤석명·양혜진·오신휘, 2013).
이렇게 정부개혁안이 모수적 개혁안의 형태를 취하게 된 이유로는 우선 국민연금법 상의 ‘재정안정화’ 조항을 들 수 있다. 1998년 국민연금법 개정 당시 ‘재정안정화’ 조항이 마련되어, 향후 5년마다 국민연금의 장기재정을 추계하고 이를 근거로 제도개편을 의무화되어 있었다. 따라서 정부는 2002년 ‘국민연금발전위원회’를 구성하고 위원회의 재정 추계를 바탕으로 2003년 하반기 국민연금법 개정안을 제출한다(김수완, 2012).3) 이와 함께 국민연금을 중심으로 한 일원적 연금제도를 유지하려는 정부와 복지부의 정책지향도 중요한 요인이었다. 1차 국민연금개혁 과정에서도 나타났듯이, 복지부를 비롯한 친복지 세력들은 공적노후소득보장 기능을 유지·강화하기 위해서는 국민연금을 중심으로 한 일원적 형태의 연금체계를 유지하는 것이 필수불가결하다고 판단하고 있었다. 그리고 국민연금 중심의 일원적 체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국민연금 제도에 대한 신뢰가 무엇보다 중요하고, 신뢰회복을 위해서는 재정불안정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무엇보다 시급한 과제라고 판단하고 있었다. 그런데 사각지대 문제를 다룰 경우 재정불안정 문제를 해결하기가 더욱 어려워질 수 있다고 판단하고, 결국 사각지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조치들을 개혁안에 포함시키지 않았다 (윤석명·양혜진·오신휘, 2013: pp. 32-3).
반면, 정부 개혁안과 대조적으로 한나라당은 사각지대 문제 해결과 국민연금 재정안정의 동시적 해결을 위해 구조개혁안을 대안으로 제시한다. 우선 국민연금 재정안정을 위해서는 기여율을 현행 9%에서 7%로 인하하는 것과 함께 급여율을 60%에서 20%로 대폭 축소시키는 방안을 제시한다. 그리고 급여율 20%의 보편적 기초연금을 조세방식(부 가가치세 증액 방식)으로 도입하여 국민연금 사각지대 문제와 현세대 노인의 빈곤문제를 해결할 것을 제시한다(김영순, 2011, pp.151-2). 한나라당의 이러한 구조개혁은 재원조달 방식을 제외하면 ‘국민연금제도개선기획단’의 구조개혁안과 거의 유사한 것으로 기초연금과 국민연금을 명확히 대체관계로 파악하는 이원적 개혁안이었다.
2차 국민연금개혁 초기의 정부의 모수적 개혁안과 한나라당의 구조개혁안은 1차 국민연금개혁 당시의 논쟁구도와 매우 유사한 것이었다. 하지만 연금개혁의 정책결정과정은 매우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1차 국민연금개혁 과정에서는 정권교체와 함께 구조적 개혁안에서 모수적 개혁안으로의 전환이 매우 빠르게 이루어졌던데 반해, 2차 국민연금개혁 과정에서는 논의가 장기간 교착국면에 빠지게 되었던 것이다.
이렇게 2차 국민연금개혁이 장기적인 교착국면에 빠지게 된 이유로는 우선 정부개혁안이 1차 개혁 때와 비교해서 상당히 고립되었다는 점을 지적할 수 있다. 1차 국민연금 개혁 당시에는 정부의 모수적 개혁안이 시민단체로부터 지지를 획득할 수 있었다. 하지만 2차 국민연금개혁에서는 소득대체율 인하와 연금보험료율 인상을 중심으로 하는 정부개혁안이 재계뿐만 아니라 민주노총과 한국노총 등의 노동계, 참여연대, 경실련 등의 시민단체 등으로부터도 비판을 받는다. 가령 가입자 단체들은 1998년 1차 연금개혁 당시 이미 소득대체율이 10%포인트 인하된데 이어 또 다시 10%포인트를 인하할 경우, 국민연금의 소득보장기능이 심각하게 침해된다고 비판하고, 국민연금의 재정추계가 향후 70년 까지를 포괄하는 것은 불합리하다는 점을 들어 재정재계산 제도의 문제점을 지적한다(오건호, 2006; 김영순, 2011; 김도균, 2013).
하지만 무엇보다도 비토포인트에서의 변화를 중요한 요인으로 지적할 수 있다. 앞에서도 지적한 것처럼, 1차 국민연금개혁 당시 초기의 구조개혁안이 폐기되고 모수적 개혁 안으로 급격히 전환될 수 있었던 데에는, 단점정부에서 단점정부로의 교체가 중요한 변수로 작용했다. 즉 김대중 정부 하에서 구조개혁안의 폐기는 단점정부 하에서 제도도전자의 거부권이 약화되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 하지만 2차 국민연금개혁 과정에서는 정부개혁안을 저지할 수 있는 다양한 비토포인트가 존재했다.
우선 2차 연금개혁 초기의 분점정부 상황을 지적할 수 있다. 아래 [표 2]는 연금개혁이 진행된 1997년부터 2014년까지의 정부 구성과 정당별 의석분포의 변화를 보여준다.4) 여기서 확인할 수 있듯이 2차 국민연금개혁 전반기는 야당인 한나라당이 다수당을 차지한 분점정부였다. 게다가 당시는 새천년민주당 분당으로 여당인 열린우리당이 50석에도 미치지 못하는 소수당으로 전락해 있었다. 따라서 한나라당은 강한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었고, 실제로 정부개혁안이 제출된 2003년 정기국회에서 한나라당이 정부개혁안을 심의조차 하지 않음으로써 결국 정부개혁안은 자동폐기되고 만다(김연명, 2005; 김영순, 2011).
연금개혁시 정부 구성과 정당별 의석분포
반면 2004년 총선 이후에는 집권여당인 열린우리당이 다수당으로 전환한다. 하지만 이러한 단점정부하에서도 정부와 집권여당에 대한 비토포인트가 존재했음을 지적할 수 있다. [표 2]에서도 알 수 있듯이 2004년 총선에서 집권당인 열린우리당이 과반수를 획득 하면서 정부가 연금개혁을 추진하는 데 유리한 조건이 형성된다. 하지만 연금개혁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국회보건복지위원회 구성이 집권당인 열린우리당에 불리했다. 17대 국회에서 복건복지위원회는 열린우리당 9명, 한나라당 9명, 새천년민주당 1명, 민주노동 당 1명으로 구성되어 있었다(김영순, 2011: pp. 151). 그런데 뒤에서 보다 자세히 살펴보겠지만 민주노동당은 정치적 지향은 열린우리당과 보다 가까웠지만, 기초연금의 도입 등 사각지대 해소 방안에서는 열린우리당의 모수적 개혁안과 대립되었다. 그러므로 민주노동당은 정부의 모수적 개혁안에 반대하고 있었고, 이런 상황에서 집권여당 단독으로 연금개혁을 추진하기에는 어려움이 따랐다.5)
이렇게 단점정부임에도 불구하고 국회 상임위원회라는 비토포인트의 존재는 연금 개혁이 장기적인 교착상태에 빠지는 결과로 귀결된다. 우선 정부와 한나라당은 각각 앞에서 자신들의 모수적 개혁안과 구조개혁안을 2004년 정기국회에 제출한다. 하지만 정부 개혁안은 한나라당과 민주노동당의 거부로, 한나라당의 구조개혁안은 집권여당인 열린 우리당의 거부로 각각 보건복지위원회를 통과하지 못한다. 즉, 정부와 야당 모두가 서로의 개혁안을 저지할 수 있는 거부권을 지니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서로간의 거부권 행사는 2006년까지 지속된다.
그런데 장기적인 교착국면에 빠져 있던 국민연금개혁 이슈는 2006년 중반부터 매우 빠르게 정치화되는 과정을 거친다. 2006년 정기국회에 각 정당이 제출한 국민연금 개정안만도 십 수 가지에 달할 정도로 국민연금개혁은 매우 첨예한 정치적 쟁점으로 부상하게 된다(김영순, 2011: pp.152). 이러한 정당정치의 활성화는 한국복지정치의 역사에서는 유례가 없을 정도여서 오히려 국민연금의 과잉정치화를 우려하는 견해까지 제기될 정도였다 (오건호, 2006: pp.123).
그렇다면 교착국면에 빠져 있던 국민연금개혁은 어떻게 그렇게 빨리 첨예한 정치쟁 점으로 부상하게 되었을까? 무엇보다도 유시민 보건복지부 장관 취임 이후 정부의 개혁안 수정을 지적할 수 있다. 취임 후 유시민 보건복지부 장관은 국민연금 급여율은 50%로 인하하고 기여율은 12.9%로 인상하는 한편, 기초연금을 도입하여 65세 이상 노인의 하위 소득층 45%에서 월 8만 원씩을 정액지급 한다는 소위 ‘유시민 개혁안’을 제시하게 된다 (윤석명·양혜진·오신휘, 2013; 은민수, 2013). 이러한 ‘유시민 개혁안’은 한나라당, 민주 노동당 등 야당이 지속적으로 제기해온 사각지대 문제를 개혁안에 반영함으로써 장기화된 교착국면을 타개하고 국민연금개혁을 신속히 마무리해야 한다는 정치적 판단이 작용한 것이었다.
이러한 정부의 개혁안 수정과 함께 민주노동당이 독자적인 연금개혁안을 제시한 것도 연금정치를 활성화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민주노동당의 개혁안은 기초연금을 도입한다는 점에서는 한나라당과 유사했다. 하지만 국민연금 급여율을 40%로 한나라당안 보다 높게 설정하고, 기초연금 급여율은 2008년 5%에서 2028년 15%로 점진적으로 상향 이동한다는 점에서 차별화되었다(김수완, 2011). 또한 기초연금 재원을 부가가치세 인상이 아니라 소득세 인상이나 사회보장세 신설을 통해 조달한다는 점에서도 한나라당안과 차별화된 것이었다(은민수, 2013: pp.279). 이것은 국민연금이 여전히 공적연금의 중심을 이루고 기초연금은 보완적 차원에서 설계되었다는 점, 그리고 노후소득보장에서 국가의 역할을 강조한다는 점에서 민간의 역할을 강조하는 한나라당안과 뚜렷한 차별성을 보여 주는 것이었다(오건호, 2007; 김수완, 2011).
이렇게 기존의 모수적 개혁안이나 구조개혁안과 차별되는 새로운 개혁안의 등장은 제도변화라는 차원에서 매우 중요한 함의를 지닌다. 정부의 개혁안 수정은 무엇보다도 연금개혁의 교착국면이 지속될 경우 국민연금 재정불안 문제를 신속히 해결함으로써 제도에 대한 신뢰를 확보한다는 애초의 목표조차도 달성하기 어렵다는 위기감이 반영된 것이었다. 그러므로 국민연금제도의 안착을 위해서라도 기초연금 도입은 불가피한 문제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결국 야당의 거부권을 극복하고 교착국면을 벗어나기 위해서 정부와 여당은 기존 국민연금 제도에 기초노령연금이라는 새로운 제도를 병치(layering)시키는 ‘제도병치’ 전략으로 전환하게 된다. 정부의 개혁안 수정 이후 한나라당, 민주당과의 논의를 거쳐 2006년 12월 국민연금개정법안과 기초노령연금법안이 보건복지위원회를 통과 하게 되었다는 사실에서 알 수 있듯이(김영순, 2011) 이러한 제도병치는 연금개혁을 추진 하는데 매우 유효한 전략이었다.
다른 한편, 민주노동당의 개혁안은 한나라당이 구조개혁안을 수정하는 데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사실 한나라당의 구조개혁안은 사각지대 문제의 심각성, 국민연금에 대한 불신 등으로 인해 주목을 받긴 했지만 재원조달의 비현실성 등으로 인해 완결성이 떨어지는 개혁안이었다(은민수, 2013). 반면, 민주노동당의 개혁안은 재원조달 방법에서도 한나라당안보다 진일보했을 뿐만 아니라 기존 국민연금을 중심에 놓고 이를 기초연금을 통해 보완하는 ‘제도병치’의 형태를 취한다는 점에서 보다 현실성 있고 정부와의 타협이 가능한 대안이었다. 그러므로 한나라당은 정치적으로는 정반대에 위치해 있음에도 불구하고 민주노동당과의 논의를 통해 2007년 4월 국민연금법 대안 수정안과 기초노령연금법 대안 수정안을 제출하게 된다.
이러한 정치과정을 거쳐 최종 통과된 국민연금 개혁안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우선 연금보험료율이 현행대로 9%로 유지되는 대신, 국민연금의 소득대체율이 60%에서 40%로 급격하게 인하되었다. 또한 기초노령연금이 도입되어 초기에는 65세 이상 노인 60%에게 국민연금 가입자 평균소득의 5%가 지급되고, 향후 그 대상을 65세 이상 노인 70%(2028 년까지), 급여수준을 10%(2028년까지)까지 인상하도록 규정하였다.6) 이외에도 군크레딧과 출산크레딧 인정, 재혼 시 분할연금권 인정 등이 추가되었다(김영순, 2011: 154).
2차 국민연금개혁의 전개과정은 제도변화라는 측면에서 보면 기초노령연금이라는 새로운 제도도입을 통해 공적연금체계를 바꾼 제도병치의 과정으로 평가할 수 있다. 교착국면이 장기화되는 상황에서 정부와 여당이 사각지대 문제를 방치한 채 급여율과 기여율 조정에 국한된 모수적 개혁을 추진하는 것은 가능하지 않았다. 다른 한편 정부와 집권 여당이 일원적 형태의 공적연금제도를 확고하게 지지하는 상황에서 제도 도전자들이 기존 제도의 급격한 구조개혁을 추진하는 것 또한 가능한 대안은 아니었다. 이러한 정치적 제도적 조건 하에서 비록 국민연금 급여율이 대폭 축소되긴 하였지만 여전히 국민연금을 주축으로 하고 기초노령연금을 보완적인 형태로 하는 제도변화가 전개되었다고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2)2000년대 초반 합계출산률이 1.08로 하락하는데, 이것은 한국 사회에 인구고령화에 대한 커다란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계기가 된다. 3)이것은 2차 국민연금개혁이 정권의 이데올로기적 속성이나 정치적 이해관계, 그리고 국제기구의 압력과는 무관하게 국민연금의 재정수지균형을 유지하기 위한 목적에서 시작되었음을 보여준다(김수완, 2012: pp.34). 4)여기서 1차 국민연금개혁 전반기는 여당인 신한국당이 다수당을 차지한 단점정부로, 후반기는 여당인 새정치 국민회의가 자민련과의 협조를 바탕으로 다수당을 차지한 단점정부로 규정할 수 있다. 5)마지막으로 2005년 두 차례에 걸친 재보궐 선거에서 열린우리당이 연달아 참패를 함으로써 과반수 의석 지위마저도 잃게 되었다는 점 또한 고려할 필요가 있다. 2005년 4월과 10월 재보궐선거에서 열린우리당은 각각 5명, 1명의 의석을 잃게 된다. 6)애초에 정부가 제시한 타협안은 사각지대 문제에 대응해서 65세 이상 노인 중 약 30%에게 효도연금을 지급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30%에서 시작한 정부안은 45%, 60%로 계속 확대되었고, 최종적으로 개정안에서는 70%로 결정된다 (윤석명·양혜진·오신휘, 2013: pp.33).
2007년에 기초노령연금제도가 도입되어 저소득층의 국민연금 배제와 현세대 노인의 빈곤 문제에 대한 정책적 대응이 어느 정도 일단락되는 듯이 보였다. 하지만 지난 18대 대선에서 다시 기초연금이 선거 쟁점으로 부상하게 된다. 여기에는 선거에서의 표획득이라는 이유도 물론 중요했겠지만(은민수, 2013), 무엇보다도 점점 더 심각해지는 노인빈곤 문제를 지적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아래 [그림 1]은 2006년 이후 한국의 노인빈곤율 변화 추이를 보여준다. 여기서 알 수 있듯이, 최근 몇 년간 노인빈곤율은 계속 상승하는 경향을 보여주고 있다. 그런데 흥미로운 점은 이러한 경향이 2007년부터 기초노령연금제도가 도입·시행되고, 2008년부터 국민연금가입자가 본격적으로 완전노령연금을 수급할 수 있 게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지속되어 왔다는 점이다. 이것은 그동안 공적연금제도의 성숙과 개혁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정책적 노력이 압축적 고령화와 노동시장 유연화와 같은 구조적 환경 변화에 적절하게 대응하지 못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동안 꾸준히 지적되어왔듯이 국민연금은 현세대 노인계층을 배제할 뿐만 아니라, 비정규·저소득 현역근로세대 또한 실질적으로 배제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러한 배제로 인해 저소득층이 국민연금을 통해 미래세대로부터의 소득이전 혜택을 받을 수 없게 된다는 점에서 국민연금이 오히려 노후 불평등을 심화시킬 가능성이 존재했다(김연명, 2013). 기초노령연금의 경우에는 노후빈곤을 방지하기에는 급여수준이 너무 낮았고 또한 제도 자체가 한시적이고 제도적 기반도 취약하다는 한계가 있었다(이용하·김원섭, 2013). 이러한 제도적 한계로 인해 그동안 노인빈곤이 점점 더 악화되어 왔으며, 이것이 기초연금 도입을 중요한 정치적 아젠더로 부상시키는 정책 공간을 형성하게 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지난 기초연금 도입 과정에서 독특했던 것은 기초연금이 국민연금과의 관련성이 모호한 채 선거공약으로 제시되었다는 점이다. 과거의 연금논쟁에서는 모두 ‘국민연금 대 기초연금’ 혹은 ‘일원론 대 이원론’ 등, 주로 국민연금의 위상과 역할, 기초연금과 국민 연금의 관계에 관한 문제가 중심을 이뤘다. 반면 지난 선거에서 박근혜 후보의 선거공약 은 65세 이상 모든 노인에게 월 20만 원을 지급한다는 방안만을 제시했을 뿐, 여기에 소요 되는 막대한 재원을 어떻게 조달할 것인지, 보편적 기초연금과 국민연금의 관계는 어떻게 되는지 등의 문제가 모두 모호한 채로 남아 있었다.
결국 이러한 선거 공약의 모호성은 정부 출범 이후 기초연금 도입 과정에서 첨예한 논쟁을 야기하게 된다. 우선 고려할 것은 지금까지 국민연금개혁 과정에서 새누리당(혹은 한나라당)의 일관된 정책목표는 기초연금을 도입하는 대신 국민연금 비례부문을 대폭 축소해서 민간부문의 역할을 증대시키는 것이었다는 점이다. 2차 국민연금개혁 과정에서도 비록 구조개혁안을 관철시키는 데 성공한 것은 아니었지만, 국민연금 소득대체율을 대폭 축소시키는데 일정 정도 성공하였다. 그런데 국민연금 축소 논의가 생략된 보편적 기초연금 도입은 재원부담만 늘리고 오히려 공적연금의 소득보장기능을 강화시키는 것으로서 이것은 그동안의 새누리당의 정책목표와는 부합하지 않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선거 공약으로 기초연금 도입이 기정사실화된 상황에서 새누리당이 취할 수 있는 선택지는 국민연금을 더욱 축소시켜 국민연금의 이원화를 밀어 붙이거나, 아니면 2차 국민연금개혁 때처럼 국민연금을 중심에 놓고 대신 기초연금을 선별화하고 축소시킴으로써 기초연금을 국민연금에 병치시키는 방법밖에 없었다. 하지만 국민연금 급여수준을 다시 한 번 40%에서 20%로 대폭 축소시키는 방안은 정치적으로 매우 위험하고 선거공약으로도 제시된 바가 아니었기 때문에 가능한 선택지였다고 보기 힘들다. 따라서 새누리당은 재원 조달의 어려움을 이유로, 그리고 ‘부자노인’ 담론을 바탕으로 기초연금을 선별·차등화 함으로써 기존 국민연금과 기초연금을 병치시키는 방법을 채택하게 된다.
하지만 정부와 새누리당의 선별적 기초연금안은 기초연금의 위상과 그것이 국민연금에 미칠 영향을 둘러싸고 첨예한 쟁점을 형성하게 된다. 무엇보다도 논란이 되었던 것은 기초연금과 국민연금의 가입기간 연계안이었다. 첫째, 가입기간 연계안은 국민연금 성실납부자를 역차별하는 것이라는 비판이 제기된다. 국민연금 장기가입자일수록 적은 액수의 기초연금을 받을 경우 이것은 국민연금제도에 대한 불신을 증폭시키고 국민연금 가입 유인을 약화시킴으로써 국민연금의 제도적 기반 자체를 흔들 수도 있다는 점이 지적된다 (윤석명·양혜진·오신휘, 2013). 둘째, 가입기간 연계는 실질적인 연금삭감이라는 비판이 제기된다. 현행 기초노령연금제도에서는 급여수준이 2018년까지 국민연금 가입자 평균소득액의 10% 수준으로 인상될 계획이지만, 새로 도입된 기초연금 제도에서는 급여액이 국민연금 가입자 평균소득액의 7~9%에 불과하게 되어 국민연금과 기초연금을 합한 총급여액이 실질적으로 삭감되는 효과가 발생한다는 비판이 제기된다(김연명, 2013). 셋째, 새로 도입되는 기초연금 제도는 기존의 기초노령연금에 비해 보편성과 제도 지속성을 강화했다는 점에서는 진보한 측면이 있지만, 국민연금 가입기간과의 연계가 장기적으로는 기초연금의 비중을 축소시키는 조치라는 점에서 여전히 노후소득보장에서 차지하는 위상이 불안하다는 비판을 받는다(이용하·김원섭, 2013).
따라서 기존에 일원적 형태의 국민연금제도를 지지하던 친복지세력들은 이번에는 공적연금을 강화하기 위한 방안으로 ‘보편적 기초연금’을 내세우게 된다. 새누리당과 달리 새정치민주연합(혹은 민주당)의 그동안의 정책목표는 국민연금의 소득보장기능을 최대한 유지하는 것이었고, 이러한 맥락에서 기초연금 도입에 매우 소극적인 자세로 일관 해왔다. 하지만 2차 국민연금개혁의 결과 국민연금 소득대체율이 대폭 축소되고, 기초연금 도입이 불가피해진 상황에서 오히려 ‘보편적 기초연금’을 공적연금의 소득보장기능 강화를 위한 방법으로 선택하게 된다. 특히 새누리당의 선별적 기초연금안이 기존의 국민연금제도와 충돌하는 등 다양한 제도적 문제점을 노정하는 상황에서 이러한 약점을 보편적 기초연금 도입을 정당화하는 중요한 근거로 활용한다. 이것은 연금개혁의 논쟁구도가 ‘국민연금 대 기초연금’, ‘일원화 대 이원화’에서 ‘보편적 기초연금 대 선별적 기초연금’의 형태로 이동했음을 보여준다.
하지만 기초연금의 역할과 비중을 둘러싼 첨예한 논쟁에도 불구하고 정부의 선별적 기초연금안은 새정치민주연합의 거부권이 약화된 상황에서 약간의 수정만을 거친 채 입법화된다. [표 2]에서도 확인할 수 있듯이, 기초연금 도입은 여당인 새누리당이 과반수 의석을 차지한 상황에서 진행되었다. 게다가 2013년 8월 ‘이석기 사건’과 통합진보당 압수 수색 등으로 통합진보당의 정치활동이 가로막히게 되면서, 새정치민주연합은 통합진보 당과 협조하여 정부의 기초연금 도입 과정에서 거부권을 행사하기가 매우 어려워진다. 따라서 새정치민주연합은 초기에는 국민연금 가입기간과의 연계안에 명확한 반대 입장을 표방하고 보편적 기초연금 도입을 주장했지만, 행정부와 입법부를 모두 새누리당이 장악한 단점정부 하에서 결국 정부의 가입기간 연계안을 수용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초기에는 기초연금 균등지급안에서 한 발 물러서 가입기간 연계안 대신 소득수준에 연계해 기초연금을 차등지급하는 안을 제시하였지만 이마저도 새누리당의 강한 반대에 부딪혀, 결국 가입기간 연계안을 받아들이되 국민연금 수령액이 30만 원 이하인 경우에는 기초연금 20만 원을 전액 지급하는 방식으로 절충안이 합의된다.
7)66~75세 인구의 빈곤율. 이전지출과 이전소득 반영한 빈곤율임.
본 논문은 국민연금개혁이 논의되기 시작한 1997년부터 기초연금 도입이 완료된 2014년 까지 한국 공적연금제도의 변화과정을 살펴보았다. 대체로 복지국가 연구자들은 한국을 지구화와 복지축소의 시기에 복지국가 이륙에 성공한 매우 이례적인 사례로 평가한다(Ramesh, 2003; Song, 2003; Peng and Wong, 2010). 하지만 한국의 연금개혁 과정은 한국의 복지국가 성장이 단순히 제도의 확장이나 전용으로 설명되지 않는 복잡하고 다면적인 성격을 지녔을 보여준다. 한국의 국민연금제도는 1988년에 도입되었다는 짧은 역사에도 불 구하고 두 차례에 걸친 국민연금개혁과 기초연금 도입이라는 중요한 변화를 겪어 왔다. 이 과정에서 국민연금 급여수준은 70%에서 40%로 대폭 축소된 반면, 기초연금이 도입되어 공적 연금이 최소한의 노후소득을 보장하는 역할을 맡게 되었다. 본 논문은 이러한 변화 를 공적연금제도의 다층구조화로 규정하고, 이러한 다층구조화 과정이 제도와 제도를 둘러싼 환경 변화, 그리고 정치행위자의 대응전략 간의 상호작용의 결과라는 점을 밝혔다.
한국 공적연금제도의 다층구조화 과정은 몇 가지 점에서 중요한 특징을 보여준다. 첫째, 제도가 급격한 단절보다는 점진적인 변화를 겪어 왔다는 것이다. 비록 국민연금의 급여수준이 대폭 축소되기는 하였지만, 여전히 국민연금은 노후소득보장의 핵심 축으로 남게 되었다. 반면, 국민연금이 제대로 포괄하지 못하는 현세대노인이나 저소득층은 기초노령연금 그리고 기초연금 도입을 통해 포괄할 수 있게 되었다. 이러한 변화는 한국 공적연금제도가 기존의 일원적 형태는 지하면서도 동시에 새로운 제도 도입을 통해 점진적으로 다층구조화되어 왔다는 것을 보여준다.
둘째, 공적연금제도의 변화 과정이 매우 다면적이었다는 점이다. 기존 연구들은 한 국 복지국가의 성장 과정을 제도전용으로 설명한다. 하지만 연금개혁 사례는 연금제도의 포괄범위 확대 과정이 그렇게 단선적이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1차 국민연금개혁 과정 에서는 초기에 구조개혁안이 채택되었지만 정권교체로 구조개혁안을 옹호하는 세력들 의 거부권이 약해진 상황에서 기존의 구조개혁안이 폐기되고 모수적 개혁안이 채택되는 등 강한 경로의존성을 보여준다. 또한 2차 연금개혁 과정에서 연금급여율의 축소와 기초 노령연금의 도입은 연금개혁이 오랫동안 교착국면에 빠진 상황(상호적인 강한 거부권) 에서 정치세력들이 제도병치(layering) 전략을 통해 타협한 결과로 설명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선별적 기초연금의 도입은 보편적 기초연금의 재원조달 방법이 명확하지 않고 국민 연금과의 관계도 모호한 상황에서 국민연금을 그대로 둔 채 기초연금을 병치시키기 위해 추진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제도 변화를 강조하는 최근의 제도주의 논의들은 서구 복지선진국의 복지축소를 설명하려는 노력들 속에서 전개되어 왔다. 하지만 한국의 연금개혁 사례는 이러한 제도주의적 접근이 복지후발국의 복지개혁 과정을 설명하는 데에도 중요한 함의를 지닌다는 것을 보여준다. 한국과 같은 복지후발국의 경우 복지제도의 도입은 계급정치나 정당 정치의 결과라기보다는 주로 관료들이 외국 사례를 참조하여 도입했다는 특징이 강하다(정무권, 1996). 따라서 항상 제도와 현실간의 불일치에서 오는 긴장이 존재할 수밖에 없으며(Chang, 2012),서구처럼 제도가 강한 규정력을 갖기가 힘들다. 그런데 앞에서 지적한 것처럼 이러한 제도적 취약성은 오히려 행위자들이 새로운 정책대안을 내세울 수 있는 정치적 공간을 확대시키는 계기로 작동할 수 있다. 특히 이러한 제도와 현실의 불일치는 사회경제적 구조가 급격히 바뀔 경우 매우 강력한 제도변화의 압력으로 작동할 수 있다(김수완, 2012). 본 논문은 한국의 연금개혁과 기초연금 도입 사례를 통해 제도란 일단 한 번 형성되면 행위자의 기대와 선호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긴 하지만, 반대로 기존 제도가 갖는 약점의 가시화는 제도변화를 추동하는 중요한 계기로 작동한다는 점을 보여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