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문화를 특징짓는 핵심 주제어 중 하나인 대중문화는 유아들이 세상을 어떻게 이해하고 자신의 정체성을 형성해 나가는 가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만큼 대중문화가 유아들의 '지금' '여기'에서의 삶에서 어떠한 의미를 가지는지를 알아보는 것은 중요하다. 본 연구에서는 유아들이 실제로 어떻게 대중문화를 이해하고 경험하고 있는지, 특히 문화수용자와 문화창조자로서 대중문화를 어떻게 체험하고 있는지를 살펴보고자 하였다. 이를 위하여 M유치원 자연반 만5세유아 34명을 33회 비참여 관찰 하였고, 유아들의 대중문화에 대한 상호작용이 가장 두드러지는 맥락으로 자유선택활동 중에 이루어지는 자율적 미술활동을 중점적으로 해석하였다. 본 연구에서 수집한 자료는 자율적 미술활동 15회 관찰 전사본, 교사 및 유아와의 면담 전사본, 연구자일지 및 유아의 그림작품을 찍은 사진이었다. 수집된 자료는 주의 깊은 반복적 읽기를 통해 의미 단위로 묶은 후 문화수용자로서 혹은 문화창조자로서의 특성과 관련지어 주제어를 만들어 냈다. 연구결과 자연반 유아들은 자발적으로 그림 그리기 활동에 참여하면서 대중문화에 대한 공통의 지식을 바탕으로 또래집단에의 소속감과 유대감을 강화시키고 있었다. 나아가 유아들은 단순히 대중문화를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취향과 기호를 반영하여 대중문화에 대한 이미지를 다양하게 내면화시키는 적극적인 문화수용자의 모습을 보였다. 더불어 유아들은 능동적인 참여과정을 통해 성인이 만들어 낸 대중문화를 선택하고 해석하고 유희하며, 새롭게 변형하고 창조해 내는 문화 창조자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상의 결과를 통해 본 연구는 대중문화 콘텐츠에 내포된 상업주의나 유해성이 유아에게 미칠지 모르는 악영향에 대한 염려를 논하기 이전에 유아들의 문화창조자로서의 역량을 지원해 줄 수 있는 방안에 대한 심도 있는 논의와 성인들의 노력이 필요함을 제안하였다.
Since popular culture has a significant impact on how children make sense of the world and forming their sense of self, it is important to investigate what kind of role popular culture plays in children's existence as children "here" in space and "now" in time. This study examines how young children actually understand and experience popular culture, especially as culture consumers and creators. For this investigation, thirty-four, 5-year-old children and their teacher at the class Ja-Yeon in M kindergarten were observed 33 times, interviews with the teacher and the children were conducted, children's art works were collected and a transcript made of fifteen instances of children's interactions during their autonomous arts activities was analyzed. Findings demonstrate that young children actively participated in arts activities based on their shared understandings about popular culture, which strengthen their sense of belonging and their bond with their peer community. In addition, they actively consumed popular culture by internalizing their own image of popular culture according to their individual tastes and preferences. As culture creators, they selected, interpreted and enjoyed the contents of popular culture and they, themselves, modified and recreated the contents each time they did so. Based on these findings, this study suggests in-depth discussion concerning how to support and guide children's capabilities as positive culture creators and modifiers are needed for adults' roles as supporters and encouragers of such abilities are crucial.
오늘날 대중문화는 현대인의 삶 깊숙이 자리하며 그들의 정서와 사고, 행위 양식에까지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김창남, 1995). 현대 사회를 이해하는 핵심 주제어 중 하나인 대중문화는 "대중매체에 의해서 대량생산, 유통, 소비되는 현대의 문화적 환경"(연혜경, 2009: 1)으로 그 시대에 살고 있는 대다수의 대중에게 수용되면서 단순히 즐기는 대상을 넘어 세상을 이해하는 방식과 자신의 정체성을 형성해 나가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한대동, 2000).
현대인의 삶에서 대중문화와의 관계를 논하는데 가장 중요한 문제는 대중매체와 수용자와의 관계이며(김연종, 1993) 이는 유아기에도 예외가 아니어서 유아들의 삶과 대중매체와의 관계에 대한 문제는 오랫동안 많은 관심을 받아 왔다. 텔레비전이 부모대신 유아를 '양육'한다(Kettl, 1995)는 말은 유아들의 삶에 있어 대중매체가 얼마나 큰 역할을 하는지를 대변해 준다. 또한 인간이 사용하는 매체환경이 변화함에 따라 사고양식이나 행위의 형태 역시 달라질 수 있다는 McLuhan(2002)의 주장에서도 인간 삶에서 대중매체의 중요성을 인식할 수 있다
대중매체와 유아의 관계에 있어서 대중매체의 긍정적인 역할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있는 연구자들(Huston & Wright, 1998; Johnson, Christie, & Yawkey, 1999)은 텔레비전 시청이 유아의 상상놀이에 다양한 소재를 제공해 줌으로써 유아들의 상상놀이에의 참여를 높인다고 주장한다. 대중매체에서 접한 문화콘텐츠는 유아들의 호기심을 끌고 또래집단 내에서 공유된 문화적 지식으로 작용하면서 유아의 사회성을 높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줄 뿐더러 놀이행동에의 참여를 통해 다양한 사회, 인지, 정서적 기술 발달에도 긍정적인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한편 많은 학자들은 대중매체가 유아들의 삶에 미칠지도 모르는 부정적인 영향에 대해서 우려하는 입장을 표방하고 있다. 텔레비전과 같은 대중매체를 많이 접하는 유아들은 가상놀이에서 공격적인 행동을 보이거나 단순한 놀이 행동을 반복하는 등 대중매체의 시청은 유아의 창의성 발달에 부정적일 수 있다는 것이다(Greenfield & Beagles-Roos, 1988; Singer, 1980; Singer & Singer, 1981; Singer, Singer, & Rapaczynski, 1984; Valkenburg, Vooijs, & van der Voort, 1992; Zuckerman, Singer, & Singer, 1980). 특히 대중문화의 산물인 캐릭터 놀잇감들은 높은 구조성 때문에 유아들의 상상놀이 행동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한다(고준희, 엄정애, 2012; 신나리, 2005). 그러나 이러한 연구들 중 대다수는 실증적 연구로서 실험 상황에서 연구되어졌다. 특히 캐릭터 놀잇감이 가상놀이에 미치는 영향을 주제로 한 연구들과 텔레비전이 가상놀이에 미치는 영향을 주제로 한 연구들, 그리고 놀잇감의 구조성이 가상놀이에 미치는 영향을 주제로 한 연구들(신나리, 2005; 신나리, 박경자, 1996; Jeffrey & McConkey, 1976; Olszewski & Fuson, 1982; Phillips, 1945)은 연구방법 및 연구절차, 연구도구에 따라 각기 다양한 결과를 보고하고 있는 만큼 이러한 연구물들로는 유아들이 실제 자신의 삶 속에서 대중문화를 어떻게 경험하고 있으며 유아들의 대중문화 경험의 의미가 어떠한지를 알기는 쉽지 않다.
대중문화와 유아의 관계에 있어서 대중문화가 유아에게 미치는 영향에만 집중 한다면 안타깝게도 아동이 자신의 삶과 경험에 있어서 주체적인 역할을 한다고 보는 시각을 고려하지 않은 일방적이고 편협한 성인의 시각을 반영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정작 대중문화가 유아발달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지 혹은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지를 평가하는 문제보다 더 중요한 것은 경험의 주체인 유아들이 실제 자신의 일상생활 속에서 대중문화를 어떻게 체험하는 가를 살펴보는 문제일 것이다. 왜냐하면 유아들은 대중문화를 포함한 성인의 문화를 단순히 모방하거나 답습하기보다 성인문화를 통해 받아들인 정보를 적절한 맥락에서 재생산해 내는 능력(Heath, 1983)을 가지고 있으며 자신들만의 고유한 놀이 문화를 구성하고 표현하며 공유하는 능력이 있기 때문이다(조용환, 2011; Corsaro, 1997). 따라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점은 유아들이 참여하여 자신의 일부가 되는 활동은 미래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 원인으로 작용하는 것이 아니라 유아들이 지금 여기에서 바라보는 세계에 대한 이해방식에 영향을 미침으로써 지금 바로 이 시간, 바로 여기 이 공간에서 존재하는 유아들의 실존성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Corsaro, 1997)는 것이다.
실제로 대중문화를 즐기고 대중문화의 산물인 놀잇감이나 캐릭터 문구, 옷, 신발 등을 소유한다는 것은 유아들의 일상 생활 속에서 중요한 의미를 가질 수 있다. 예를 들어 이러한 행위는 또래들과 같은 문화적 지식을 공유함으로써 또래집단에 소속될 수 있는 입장권과 같은 역할을 하며 우정을 쌓아갈 수 있는 선행조건이 되기도 한다(Buckingham & Sefton-Green, 2003). 이러한 논의는 유아들의 역할놀이가 성립되기 위해서는 역할놀이 문화의 특성으로 통용되는 문화적 지식에 대한 공유가 필요하며 유아들은 성인들이 생각하기에 교육적인 내용뿐만 아니라 비교육적이라고 생각되는 성인세계의 현실이나 통속적인 내용들까지도 나름의 이해를 바탕으로 그들만의 내러티브로 재창조해 냄으로써 자신을 흥분시키는 놀이의 주제로 만든다는 유혜령(2001)의 지적에서도 볼 수 있다.
현대의 대중문화 연구에서는 초기 미디어 효과연구에서 개념화된 무비판적이고 수동적인 수용자가 아닌 능동적으로 미디어와 미디어 내용을 선택하고 생산의 과정에까지 참여하는 주체로서 문화 수용자를 개념화한다. 그러나 대중문화와 대중매체의 수용자로서 유아에 관해서는 많은 연구들에서 여전히 수동적인 수용자로서 개념화하는 경향이 있다. 이는 유아기에 관한 성인의 관점과도 연관이 있는 것으로 유아 미디어 연구에서는 대중문화 콘텐츠를 분석하여 유아에게 유익한 혹은 유해한 콘텐츠를 선별하거나 미디어가 유아발달에 미칠 수 있는 영향을 규명함으로써 유해한 영향으로부터 유아를 보호해야 한다는 주장을 펼치는 연구가 주를 이루고 있다.
구체적으로 아동미디어 연구들을 살펴보면 대중매체의 폭력성 등이 아동에게 미치는 부정적인 영향을 우려하는 연구들(김우준, 2011; 나은영, 1995; 선우현, 2008; 윤희중, 1991; 이경혜, 2009; 최이정, 2001)과 대중매체의 중독문제 혹은 이와 관련한 미디어의 바른 활용방법에 관한 연구들(강정원, 장수진, 김승옥, 2011; 김승옥, 유구종, 2009; 송미선, 박현주, 2002; 조은정, 김지현, 2010), 대중매체를 교육매체의 하나로 활용하는 방법 혹은 효과에 관한 연구들(강은진, 현은자, 2006;권성호, 박선희, 유숙영, 2006; 유구종, 2012; 장영숙, 정수정, 2009; 정상녀, 유구종, 2008)이 있다. 즉 대중매체에 대한 선행연구들은 대중문화의 수용자인 아동을 대중매체의 영향과 문화적 기호를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 존재로 개념화하는 경향이 주를 이루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실제로 대중문화의 능동적인 수용자이기도 한 유아들은 대중매체에 등장하는 많은 캐릭터와 다양한 스크립트와 같은 문화적 지식을 공유하면서(성은주, 홍용희, 2001; 성주연, 2011; 유혜령, 2001) 놀이의 맥락에 가장 적합하도록 변형하고 창조해 낸다. 유아들은 자신의 경험을 맥락화하고 정체성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단순히 성인으로부터 수동적으로 안내받는 존재가 아니라 성인(문화)으로부터 받아들인 것을 차용(appropriate)하여 다시 자신들만의 문화로 생산하고 재생산하는 과정을 거친다(Corsaro, 1997).
유아들의 독특한 대중문화 수용 및 재생산 방식을 살펴보는 데 있어 유아 또래문화는 가장 적절한 맥락 내에 연구자를 위치시키는 일이다. 유아들의 또래문화를 탐구하는 것은 "사회적 존재로서 유아를 이해하며 구조적 형식으로서 유아기를 이해하는 중요한 통로가 될 수 있다"(오경희, 2007: 644). 대부분의 문화적인 행동은 제도화된 형식적 프로그램에서 구체화되기 보다는 일상생활의 활동 속에서 일어난다. 또한 유아의 학습과 경험은 또래나 성인과의 일상적 상호작용과 같은 문화적 경험에 의해 중재되어진다(Rogoff, 1990). 이러한 점에서 또래집단 내의 상호작용은 유아들이 대중매체를 통해 기존의 문화에서 받아들인 지식을 가장 일상적인 맥락 속에서 어떻게 그들의 문화로 생산해 내는지를 탐구할 수 있는 중요한 맥락이라고 할 수 있다.
본 연구에서는 유아들이 실제로 어떻게 대중문화를 이해하고 경험하고 있는지를 구체적인 유아들의 삶의 이야기를 통해서 탐구하고자 하였다. 먼저 유아들의 이야기가 가장 구체적으로 드러날 수 있는 맥락을 찾고 또래집단 내에서 유아들이 대중문화에 대한 수용자로서 어떻게 대중문화를 체험하고 있는지를 알아보고자 하였다. 나아가 단순한 대중문화의 수용자를 넘어서 적극적인 창조자로서의 모습은 유아들의 삶 속에서 어떻게 구현되는지를 알아보고자 하였다.
이에 따른 연구 문제는 다음과 같다.
첫째, 대중문화 수용자로서 유아는 또래집단 내에서 어떻게 대중문화를 경험하는가? 즉, 유아들이 또래집단 속에서 경험하는 대중문화는 어떠한 현상적 모습으로 구체화되고 체화된 지각으로 의미화 되는가를 살펴보고자 하였다.
둘째, 대중문화 창조자로서 유아는 또래집단 내에서 어떻게 대중문화를 경험하는가? 이 연구문제를 통해서 유아들이 또래집단 속에서 대중문화를 어떻게 이해하여 또 다른 문화로 전환 혹은 창조해 내는가를 살펴보고자 하였다.
유아들이 유치원 내 또래집단 속에서 실제로 대중문화를 어떻게 체험하는지 탐구하기 위해서는 유아간의 상호작용이 활발히 일어나는 유치원의 학급을 선정할 필요가 있었다. 유아간의 상호작용을 관찰하기에 가장 적절한 시간은 자유선택시간이므로 유치원 내 자유선택시간의 시간이 충분히 제공되고 유아들이 활발하고 자유롭게 활동에 임할 수 있도록 진정한 '자유'가 주어지는 기관의 선정이 중요하다. 즉, 자유선택시간 동안 유아들의 활동 선택에 대한 자유가 주어져야 하고 활동 영역을 넘나들 수 있는 몸의 자유 및 선택한 활동에 대해서 본인이 머무르고 떠날 수 있는 자유가 주어져야 한다. 따라서 발도로프와 생태유아교육의 철학의 영향으로 비구조적인 환경 속에서 유아들의 자유로운 활동이 허용되는 B시에 위치한 M유치원을 연구기관으로 선정하였다.
M유치원은 만 3, 4, 5세 각 2학급으로 총 6학급이 있었다. 본 연구를 시행하기에 앞서 유치원 원장과의 면담을 통해서 연구의 목적 및 방향에 대한 충분한 사전 협의가 있었고, 유아들간의 상호작용이 가장 활발하게 일어나는 만5세 2개 학급 중 연구참여 학급을 선정하기 위해서 교사면담과 사전 관찰을 실시하였다. 만 5세 자연반과 푸른반 모두 담임교사와 부담임교사 1명씩이 배정되어 있었고, 자연반은 남아 17명, 여아 17명으로 남아와 여아의 비율이 같았고, 푸른반은 남아 14명, 여아 21명으로 여아의 비율이 높았다.
교사면담과 사전관찰을 통해서 자연반과 푸른반은 매우 다른 유아들의 놀이문화가 존재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먼저 자연반의 경우 유아들이 매우 활동적이고 자유분방하였으며 등원시간이 매우 빠른 편이어서 9시 경에는 대부분의 유아가 등원을 마치고 10시 반 경의 간식시간까지 충분한 자유선택시간 활동을 하고 있었다.
자연반의 물리적인 환경은 영역의 구분이 뚜렷하지 않으며 아침 모임을 하는 교실 중앙의 넓은 공간 주위로 교실 벽면에 교구장들이 배치되어 있었다(그림 1 좌측 사진 참고). 자연반의 유아들은 자유선택시간에 자신이 활동할 영역을 미리 계획하여 그 영역 내에서 머무를 필요 없이 자유롭게 활동에 참여하고 있었다. 또한 자연반의 교실로 들어서면 넓은 교실이 한 눈에 들어오지만 유아들의 사물을 정리할 수 있는 작은 공간(그림 1 우측 사진 참고)이 건물의 날개와 같은 곳에 위치해 있어서 비교적 사적인 공간으로 활용되고 있었다
자연반 담임교사는 전문대학에서 유아교육을 전공하였고 현장 경력 11년차 교사로 M유치원에서는 9년째 근무 중이었다. 담임교사는 전형적인 유치원의 환경이나 수업 방식을 좋아하지 않고 자유로운 분위기를 좋아하여 유아들에게도 기계적인 절차나 질서를 강요하기 보다는 자유를 가능한 한 많이 허용하고 있었다. 수업에 있어서도 사전 계획과는 상관 없이 그날 그날의 분위기에 따라 융통성 있게 수업을 변형해 가는 것을 좋아하는 편이었다.
본 연구의 자료수집 기간은 2013 년 7 월부터 10 월까지로 7, 8월 중에는 주 3-4 회 집중 관찰을 통해 25 회기의 관찰이 이루어졌으며 9, 10 월에는 주 1-2 회의 관찰이 이루어져 총 33 회기의 관찰이 진행되었다. 관찰은 주로 오전 9 시부터 점심시간 전까지 이루어졌으며 10 회 정도는 오후 하원시간까지 장시간의 관찰이 이루어졌다. 자연반 유아들의 오전 일과는 10 시 반 경에 간식을 먹고 11 시에 아침모임을 하며 12 시 반 경에 점심을 먹을 때까지 대소집단 활동을 하거나 때에 따라서는 바깥놀이를 하기도 하였다. 자유선택시간은 대부분의 유아가 등원을 마치는 9 시경부터 10 시 반 간식시간까지였다.
자유선택시간 동안 자연반 유아들은 교실 전체 공간을 활용하면서 매우 적극적이고 자유분방하게 활동하고 있었다. 유아들은 삼삼오오 모여서 나무 적목과 자석교구 등을 활용하여 큰 구조물을 만들거나 만들어진 구조물을 활용하여 놀이하고 있었으며 뜨개질이나 그림 그리기, 자연물을 활용한 역할놀이 등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었다. 대중문화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은 자연반 유아들이 공간을 자유롭게 이동하면서 이야기 하고 웃고 놀이하는 가운데 관찰할 수 있었는데 특히 자율적 미술활동 중 대중문화에 대한 상호작용이 빈번하게 나타남을 알 수 있었다. 자율적 미술활동 중 유아들은 텔레비전이나 영화에서 본 캐릭터 그림을 그리면서 이야기를 하고 놀이를 하며 때로는 캐릭터를 모방한 연기까지 하고 있었다. 담임교사와의 면담에서도 자연반 유아들은 그림을 그리면서 또래들끼리 상호작용하는 경우가 많으며 그림 그리는 활동을 통해서 자기들만의 비밀을 공유하며 결속력을 강화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실제로 33 회의 관찰기간 동안 자연반 유아들이 장시간 그림을 그리면서 대중문화에 대한 상호작용을 하는 현상이 15 회 관찰되었다 (그림 2 참고). 따라서 본 연구에서는 자율적 미술활동 중 유아들 간 대중문화에 대한 상호작용이 일어난 15 회 에피소드 자료를 분석하기로 하였다.
교실 관찰은 연구자와 연구보조원 1 인이 함께 하였고, 연구보조원에게는 사전에 연구 주제와 목적에 관한 상세한 설명을 하였으며, 연구자의 자세와 연구참여 아동과의 관계 등에 대한 다양한 사항을 교육하였다. 또한 관찰이 진행되는 동안 빈번한 상호 협의를 통해 자료수집에 대한 공통된 이해를 도모하기 위해 노력하였다. 관찰하는 동안 연구자와 연구보조원은 함께 교실에 들어가서 연구자는 교실 전체의 분위기를 파악하면서 연구자 일지를 작성하였고 연구보조원이 놓치는 유아들의 활발한 상호작용을 비디오 촬영하였다. 연구보조원은 주로 유아들의 구체적인 상호작용을 비디오 녹화하였으며 연구보조원 역시 연구자 일지를 작성하였다.
본 연구에서 활용된 자료는 유아들의 관찰자료 전사본, 교실환경 및 유아들의 활동, 작품 사진자료 및 연구자 일지였다. 또한 유아의 언어적, 비언어적 상호작용에 대해 이해가 가지 않거나 명확하지 않은 부분은 관찰 직후 유아들에게 질문하여 기록하여자료로 활용하였다. 담임 교사와의 면담은 관찰하는 동안 수시로 이루어진 비공식적 면담 이외에 관찰이 진행되는 동안 세 차례의 심층면담을 진행하였으며 교사 심층 면담자료는 얼굴이 나오지 않게 비디오 촬영한 후 전사하였다.
관찰자료를 전사하기 위해서 전사작업은 총 4 단계로 나누어 진행되었다. 먼저 관찰대상 학급에 직접 방문하여 관찰한 연구자와 연구보조원은 관찰이 끝난 후 그날 있었던 특별한 사건이나 주의해야 할 점 등에 대해 매일 기록하고 그날 관찰한 활동 중 특별한 주제가 있었던 경우 날자별로 기록을 정리하여 자료 정리를 용이하게 하려고 노력하였다. 2단계로는 본 연구의 내용 및 목적과 전사작업에 대해 훈련을 받은 연구보조원 4인이 전사를 하였다. 전사는 유아들의 언어 · 비언어적 상호작용뿐만 아니라 상황의 맥락을 상세히 기록하였다. 3 단계에서는 연구보조원 간의 전사에 대한 점검과정으로 동영상자료와 전사본을 대조하면서 잘못된 부분은 수정하거나 생략된 부분은 전사본에 파란색으로 수정하였다. 마지막 단계에서는 연구자가 다시 대조해서 점검을 하였으며 전체적인 맥락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서 첫 단계에서 이루어진 날자별 기록자료를 대조하면서 전사본에 붉은색으로 수정하였다. 이처럼 반복적인 듣기와 전사본 수정 작업을 통해서 현장의 상황적 맥락을 구체적으로 기록하였다. 또한 이러한 과정을 통해서 유아들의 생생한 경험의 현장 상황 속에 연구자를 위치시키려고 (Barritt, Beekman, Bleeker, & Mulderij, 2010) 노력하였다.
자료의 해석 작업 과정에서는 유아들이 문화수용자로서 또한 창조자로서 어떤 생생한 체험(lived experience)을 하고 있는지, 유치원 교실의 또래 집단 속에서 대중문화가 어떠한 현상으로 경험되고 있고 어떻게 의미화 되는지를 이해하는데 초점을 두었다. 정리된 전사본 자료를 읽으면서 먼저 의미 있는 진술을 표시한 후 연구자의 선입견을 괄호치고 유아들의 생생한 언어를 통해 그 의미를 이해하기 위해서 동영상을 또 다시 반복적으로 시청하면서 여러 가지 색깔의 형광펜을 사용하여 전사본에 의미 단위로 묶어 표시하는 분류작업을 거쳤다 (Creswell, 2010). 분류된 의미 단위들을 중심으로 각각의 의미 단위들에 문화수용자로서 혹은 문화창조자로서의 특성과 관련지어 재분류하였고, 소주제를 만들었다. 이후에도 전사본을 반복적으로 읽으면서 유아들의 언어와 상황을 이해하면서 만들어진 의미 단위들과 이에 따른 소주제의 주제어를 변형시키는 작업을 계속하였다.
1. 우린 아이언맨 좋아한다, 맞제?: 또래집단 소속 입장권 가지기
자연반 유아들은 대중문화에 대한 공유된 관심의 표현을 통해서 또래집단에의 소속감과 유대감을 강화시키고 있었고 또래집단에 소속되고 싶은 유아들의 욕구는 더욱 대중문화에 대한 관심과 적극적인 수용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자연반에서 < 아이언맨 > 에 대한 관심이 퍼져나가면서 남자아이들은 누구나 " 아이언맨 " 을 그리게 되었고, < 레고 닌자고 > 로 관심이 자연스럽게 옮겨가면서 아이들은 또 모두 " 닌자고 " 를 이야기하고 그리고 있었다. 또한 아이언맨 옷이나 신발을 신고 스티커를 선생님 몰래 가지고 와서 비밀리에 공유하는 등 또래집단 내 유행을 창조하며 결속력을 강화하는 수단으로 사용하고 있었다.
위의 대화에서 준상은 정빈에게 여자 아이들과는 달리 자기들은 <졸라맨>은 시시하고 <아이언맨>을 좋아한다는 것을 확인하고자 한다. 그러나 이윽고 유아들은 어젯밤 텔레비전을 보았는지에 대한 서연이의 물음에 대해 유아들 간의 공유된 관심을 찾고자 하는 노력으로 이어지고 있다. 정빈이는 <천년의 유산>이라는 대중드라마를 언급하며 또 다른 공통된 관심을 다른 유아들에게서 찾고자 하지만 서연이로부터 드라마가 종영되었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바로 ' 디지털 TV' 로 화제를 돌린다. 이처럼 유아들에게 대중문화는 함께 있지 못한 시 · 공간에서 유아들이 함께 할 수 있는 공통된 경험으로서 유치원에 돌아 왔을 때 함께 이야기하고 즐길 수 있는 문화적 토대 지식을 제공해 주고 이러한 공유된 지식을 통해 또래집단 내 결속력을 강화하는 역할을 하고 있었다. 대중문화에 대한 자연반 유아들의 관심은 함께 놀이할 수 있는 친구관계를 형성하며 ' 우리 ' 라는 공동체 의식을 가지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었으며 아래의 연구자 일지에서 나타난 성원이의 사례에서도 또래사회의 일원으로 참여하기 위한 수단으로 유아들은 대중문화에 관심을 가지고 이를 표현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위의 사례에서 역시 자연반 유아들은 공통적으로 좋아하는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보았는지를 서로 확인하고 프로그램의 줄거리를 되새기는 행동을 하고있다. 같은 프로그램을 보았던 유아들끼리는 그 내용을 즐겁게 이야기 하였지만 끝까지 보지 못한 정빈이는 속상해 하거나 다 본 친구를 부러워하는 마음을 표현하기도 하였다. 이처럼 텔레비전에서 방송되는 프로그램은 대중매체에 의해 대량생산되어 대중에 의해 즐겨 소비되는 문화적 산물로 (강은희, 1997) 자연반 유아들 역시 대중문화의 수용자로서 자연반 내에서 유행하는 대중문화 콘텐츠를 소비함으로써 또래들과 공통된 이야깃거리를 가지고 함께 이야기하고 웃을 수 있는 소통의 장을 마련하고 있었다. 이처럼 유아들은 같은 반 친구들의 대화에 끼어들어 함께 이야기하고 웃으며 유치원 생활을 즐겁게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중재자로서 대중문화를 경험하고 있었다.
2. 이렇게 ~ 이렇게 ~ : 함께 기억하고 재현해 보기
가정에서 대중문화를 체험한 자연반 유아들은 실제 대상이 없는 교실에서 재현해 내는 과정에서 자신이 가지고 있는 대상에 대한 이미지를 함께 이야기하며 대중매체에서 등장했던 모습대로 캐릭터를 재현해 내려는 모습을 종종 보였다. 자연반 유아들은 자기들이 좋아하는 <아이언맨> 이나 <레고 닌자고> 에 대한 문화적 지식을 공유하는 데 있어서 각자 가지고 있는 내면화된 이미지를 몸으로 혹은 그림으로 표현해 보면서 또래집단 내에서 이미지에 대한 합의를 이끌고 있었다. 이는 단순한 기억의 문제가 아닌 유아들 각자가 경험한 대중문화를 또래들과 함께 이야기하는 과정에서 같은 경험을 했음을 확인하고 그 경험에 대한 공통의 이해를 끌어내려는 민주적 · 사회적 시도라고 할 수 있다.
위의 사례에서 주한이와 민우는 그림을 그리다가 말고 <아이언맨> 의 캐릭터에 대한 이미지를 함께 재현해 내고 있다. 이는 단순하게 유아가 집에서 텔레비전을 통해서 보았던 프로그램에 나왔던 캐릭터를 표상하기 위해 기억해 내는 과정이라기보다 또래와 함께 기억하고 재현해 보는 과정을 통해 같은 경험을 했음을 확인하고 같은 지식과 이해를 소유 하고 있음을 확인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아래의 사례에서 역시 준상이는 아이언맨의 모습을 '세모 눈' 과 '십자모양 입' 등으로 표현하면서 자신이 가진 아이언맨의 이미지를 설명하고 민호로부터 동의를 구하고 있다. 그림을 잘 그리는 준상이는 자연반 남자유아들 사이에서 선망의 대상이다. 그러나 준상이는 단순히 자신의 그림을 묵묵히 그리기보다 자신의 그림에 대해 설명하고, 다른 유아들로부터 동의를 구하면서 유아들과 소통하고 있었다.
이처럼 자연반에서는 그림을 그리면서 대중문화에 대한 기억을 함께 더듬으며 공통된 문화적 지식을 만들어 가고 있었다. 유아들에게 대중문화는 한 순간 즐기고 사라지는 신 기루와 같은 경험이 아니라 매일매일 또래집단 내에서 이야기하게 하고 웃게 하는 공통의 놀이 주제였다. 자연반 유아들은 그림을 통해 단순히 대중문화를 재현해 내기보다 함께 그리면서 캐릭터에 대한 기억을 같이 나누고, 유아간 합의를 이끌어 가는 적극적인 대중문화 수용자의 모습을 보였다.
3. 내가 진정하게 정확하게 봤는데...: 마음속 대중문화 이미지 표상하기
대중문화에 대한 이미지를 공유하면서 자연반 유아들은 공통된 합의를 이끌려고 하였으나 종종 각자의 마음속에 이미지화 된 자신만의 대중문화 캐릭터를 표상하기도 하였다. 유아들은 서로의 그림을 확인하며 친구의 그림 속에 표상된 대중문화 캐릭터와 자기 기억 속에 간직된 캐릭터 이미지의 이를 발견하고 논쟁을 펼치는 모습을 보였다. 이러한 논쟁을 통해서 유아들은 대중문화를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 존재가 아니라 대상을 향한 주관적인 지향성을 근거로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위의 사례에서 민호와 준상이는 번개 닌자에 대한 각자가 가진 이미지가 상충하여 논쟁을 벌였다. <레고 닌자고>에 나오는 닌자들은 다양한 미션 수행에 성공함에 따라 DX, ZX, 켄도닌자, NRG등의 이름을 갖게 되고 색깔과 무기, 옷이 달라진다. 민호와 준상이 역시 파란색 닌자인 제이에 대해 각자가 가장 인상 깊었던 모습대로 이미지화하였고 이를 바탕으로 논쟁을 벌였던 것이다. 즉, 닌자 캐릭터의 변화에 따라 모습이 달라지기 때문에 고정된 하나의 이미지는 없지만 유아들은 객관화된 지식으로서 가장 최근에 변화된 닌자 이미지를 수용하기보다 각자의 내면에 남겨져 있는 인상으로 만들어진 닌자에 대한 주관적 이미지로 대상을 이해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자연반 유아들 사이의 대중문화 캐릭터에 대한 논쟁은 아래의 사례에서도 역시 관찰되었다. 유아들이 표상한 골드닌자는 다른 유아의 내면화된 이미지에 위배되는 상황이 발생하였고, 유아들은 각자가 가지고 있는 골드닌자에 대한 이미지를 설명하느라 분주하였다. 주한이는 골드닌자의 얼굴을 크게 그려야 한다고 주장하였고 민우는 원래 골드닌자의 얼굴은 작다고 주장하였다.
표상이란 특정 대상에 대해 생각할 때 마음 속에 떠올리는 모습과 그러한 모습이 담긴 외적인 표현물 모두를 의미하는 것으로 개인이 특정 대상에 대하여 알고 있는 지식뿐만 아니라 그 대상에 대하여 내적으로 형성하고 있는 세계 (이종희, 1998) 를 뜻한다. 자연반 유아들의 경우에도 대중문화를 표상하면서 자신의 감정과 개인적 취향에 따라 간직한 내면화된 모습을 간직하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즉, 유아들은 대중매체에 의해 유포되는 대중문화를 수동적으로 받아들이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기호와 취향을 반영하여 적극적으로 수용할 뿐만 아니라 내면화된 이미지를 형식화하여 재현 (박라미, 2011) 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자연반 유아들은 대중문화에 대해 적극적인 수용자의 모습뿐만 아니라 나름대로 해석하고 자신들의 상상력을 동원하여 무한하게 변형시켜가는 문화 창조자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예를 들어 아래의 사례에서 '아이언맨' 은 한국말로 하면 '강철남자' 이지만 민호는 '스파이더맨' 은 '거미남자' 라기 보다는 소시지를 쏘고 소시지에서 거미를 내뿜는 '소시지 스파이더맨' 으로 변형해 내었다. 이후 '소시지 스파이더맨' 을 '소시지 가면라이더' 로 변형하는 등 유아들은 대중매체에서 본 캐릭터를 자신만의 방식으로 바꾸어 가며 놀이에 참여하였다.
아래의 사례에서 유아들은 ' 퍼시픽 림' 의 로봇은 물 속을 걸어 다니지만 사람이 물 속을 걷기 위해서는 참기름을 발라야 한다는 해석을 함으로써 나름대로의 논리를 만들어 내는 모습을 보였다. 또한 준상이는 자기의 그림을 보여주며 퍼시픽 림의 로봇 키가 '13키로' 라고 설명하고, 민호가 키가 크다고 하자 그림에 그려져 있는 최고의 숫자인 '16 키로 ' 까지 도달하지 못 하였으므로 (그림 8의 왼쪽 사진 참고) 로봇의 키가 크지 않다고 해석한다. 이처럼 자연반 유아들은 대중문화를 나름대로의 논리를 가지고 해석하고 자신의 해석을 바탕으로 표상해 내고 있었다.
자연반 유아들의 문화 창조자로서의 또 다른 모습은 그림을 그리면서 스토리를 단순히 재현하는 것을 넘어서 새로운 스토리를 창조하면서 놀이하는 모습을 통해 살펴볼 수 있었다. 아래의 사례에서 준상이는 그림을 그리면서 주한이와 함께 그림 속의 상황을 이야기로 만들어 내고 있다. 주한이가 악당에게도 총을 쏘라고 하자, 준상이는 ' 푸쉬쉬쉬 ~ !' 라고 소리 내면서 색연필을 양옆으로 빠르게 칠한다 (그림 8 의 오른쪽 사진 참고). 이처럼 자연반 유아들은 그림을 그리면서 역할놀이에서 스크립트를 만들어 내는 것처럼 자신들만의 이야기를 만들어 내며 즐기고 있었다.
이처럼 자연반 유아들은 자율적 그림그리기 활동을 통해 대중매체에서 경험한 문화콘텐츠를 자기들만의 취향으로 변형시켜서 새로운 내러티브를 구성하는 모습을 보였다. 유아들은 또래들과 함께 그리며, 함께 이야기를 만들며 놀이에 몰입하였고, 대중문화는 유아들이 창조해 내는 새로운 이야기와 그림을 통해서 새롭게 변화되어 재창조되고 있었다.
2. 토니 스타크와 돼지 스타킹 : 시뮬라크르 놀이의 축제
자연반 유아들은 <아이언 맨> 이나 <레고 닌자고> 등의 장면과 캐릭터를 처음에는 자기들이 보았던 대로 완벽하게 모방하고 싶은 표상의 욕구를 드러내었지만 시간이 갈수록 원본 없는 복제, 즉 시뮬라크르의 놀이를 즐기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위의 사례에서 살펴보면 처음에 준상이가 발음을 잘 못하여 '토니 스타키' 라고 말하였고 사소한 실수가 유아들에게 웃음을 유발하면서 '돼지 스타크' 나 '돼지 스타킹' 과 같은 또 다른 웃음을 유발할 수 있는 말로 변형되었다. 이러한 언어유희를 즐기던 민호와 준상이에게 나중에는 더 이상 '토니 스타크' 라는 원래의 이름은 중요하지 않았으며 유아들이 생각해 낼 수 있는 범위 내에서 더 웃긴 이름으로 계속해서 재창조되면서 원본 없는 복제인 시뮬라크르의 놀이가 계속되었다. 이러한 언어유희를 즐기는 모습은 자연반 유아들이 대중문화에 대한 의미를 적극적으로 재구성하는 능동적인 학습자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으로 또래 간 대화 속에서 함께 협의해 나가는 카니발적 교실 분위기를 보여주는 것이다 (이수원, 2012).
현서가 < 레고 닌자고 > 에 나오는 그린닌자를 그리는 아래의 사례에서 역시 민우가 우연히 코를 재미있게 그리면서 시작된 놀이가 '찌찌' 와 같은 비속어를 사용하면서 더욱 웃음을 유발하였고, '찌찌볶음밥' 과 같은 유아가 생각할 수 있는 가장 저속하고 웃기는 말을 만들어 내면서 놀이가 가속화 되었다. 동재와 현서까지도 놀이에 참여하면서 그린닌자는 '거꾸로 된 코' 를 가진 채 삼각팬티를 입고 콧물을 질질 흘리며 손, 발에는 머리카락처럼 털이 붙어 있는 우스꽝스러운 모습으로 무한한 변형을 거치며 유아들 사이에서 유희의 대상이 되었다.
자연반의 그림 그리기 활동을 통해 표현되는 대중문화의 모습은 성인들이 만들어 놓은 문화에 대한 단순한 모방이나 재현이 아니라 유아 자신의 생각을 전달하는 창조적 표현이자 또래 집단 내에서 각자의 상상력을 더해서 무한하게 변형해 가는 표상적 과정이다. 단순한 복제를 넘어서 당당하게 자신의 생각을 세상에 적용하는 상상과 유희에 의한 창조와 변형인 것이다 (오경희, 2013). 대중문화를 나름의 방식으로 전환, 창조하는 모습을 통해 자연반 유아들은 각자의 상상력을 동원하여 성인문화에 대한 단순한 모방이라는 물리적인 영역을 넘어서 의식의 영역으로 확장시켜 가는 문화 창조자로서의 모습을 나타내었다.
3. 근데 니 가방부터 벗어야지?: 독특한 교실문화 창조하기
자연반의 자유선택시간 관찰을 통해 살펴 본 자율적 미술활동은 여느 7 세 교실에서는 쉽게 찾아볼 수 없는 자연반만의 독특한 특성을 보여주었다. <아이언맨> 이라는 대중문화 프로그램에 대한 흥미가 퍼져나가면서 자연반 유아들은 그림을 그리면서 아이언맨 스토리를 재현하거나 이야기를 창조하기도 하고 게임을 만들어서 하였다. 유아들이 가장 좋아하는 놀이 소재인 텔레비전 프로그램의 스토리나 캐릭터를 모방하고 재현하는 놀이를 유치원이라는 공적인 공간 내에서 비교적 자유롭게 할 수 있는 돌파구로서 자연반 유아들은 그림 그리기 활동을 선택하였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자연반에서 그림 그리기 활동은 단순히 미술적 테크닉을 연습하는 활동이 아닌 놀이와 문화 공유 및 창조의 장으로서 역할을 다 하고 있었다. 즉 정해진 활동목표를 가진 활동으로서가 아닌 자율적인 참여를 통해 유아들이 적극적으로 동참함으로써 오랜 시간동안 같은 공간에서의 경험을 공유한 자 연반 유아들에게 그림 그리기 활동은 자신들의 공통 관심을 표현하고 소통하는 문화, 정서, 지식 공유의 장소 역할을 하고 있었다.
위의 교사면담에 따르면 <아이언맨> 이라는 대중문화 프로그램에 대한 흥미가 퍼져나가면서 자연반 유아들은 그림을 그리면서 아이언맨 스토리를 이야기하거나 놀이를 하거나 게임을 만들어서 하였다. 교사에 의해 계획된 유치원 교육과정 활동의 하나로 혹은 평상시에 자유선택활동으로 그림 그리기를 즐겨 하지 않았지만 대중문화에 대한 공통된 흥미와 관심을 표출하고 공유하는 장으로서 그림 그리기 활동 문화를 만들어 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유아들이 놀이를 유지할 공동체에 소속되기 위해서는 문화적인 지식을 공유해야 한다. 자연반에서는 그림을 그리면서 대중문화를 모방하고 재현하기, 그림을 그리면서 이야기 만들어 가기와 같은 자율적 미술활동을 통한 놀이를 진행하는 자연반만의 독 특한 문화를 형성하고 있었다. 교사는 유아들의 그림 그리기 활동을 '삶의 일부' 라는 표현을 쓰며 일상적으로 관례화되어 가는 문화의 모습을 상징하여 설명하였다.
위의 사례에서 민호는 유치원에 등원하자마자 친구들이 그림을 그리는 것을 보고 책상으로 달려올 정도로 그림 그리기 활동에 대한 깊은 관심을 나타내었다. 이를 통해서도 자연반 유아들에게 그림그리기는 단순히 유치원에 와서 자유선택시간동안 선택하는 다양한 활동 중의 하나가 아닌 등원하자마자 쫒아올 정도로 유아의 마음을 송두리째 앗아가는 삶의 일부임을 짐작할 수 있다.
7 월에 자연반을 관찰할 때는 아이언맨 놀이와 이야기가 한창이었다. 남자 아이들은 모이면 아이언 맨 이야기를 했고, 아이언맨 옷을 입고 오는 남자 아이들이 많았다. 그런데 오늘 관찰에서 민호, 준상, 정빈이가 아이언맨이 아닌 다른 그림을 그리고 있어서 물어보니 "닌자고 ~ 를 그리고 있다고 했다. 이제 왜 아이언맨을 안 그리냐고 하니 이젠 "닌자고" 가 유행이라고 답한다. 아이들의 관심이 옮겨 가면서 그림의 주제는 바뀌었지만 남자 아이들은 이제 닌자고를 그리면서 웃고 떠들어 댄다. 오늘도 한 시간이 넘게 남자 아이들은 책상을 떠나지 않았다. 모든 놀이가 그림 그리기 활동을 통해 확장되어 가는 것은 독특한 자연반 만의 교실 풍경이다. (2013. 8. 19. 연구자 일지)
이처럼 자연반에서 그림 그리기 활동은 유아들의 생각, 흥미, 정서를 공유할 수 있는 장으로서 역할을 다 하고 있었다. 즉, 자연반 유아들은 주체적으로 미술 표현활동에 참여하면서 자신의 감정과 의미를 자유롭게 소통할 수 있는 경험적 과정 (이화도, 정은정, 2010) 으로서 미술활동에 참여하고 있었다. 자연반 유아들은 교사의 암묵적인 허용 속에서 자유 롭게 그림을 그리면서 대중문화에 대한 관심을 표현하고 있었고 또래 집단 내에서 새로운 언어 혹은 때로는 저속한 언어를 만들어 내면서 비밀을 공유하고 함께 유희하는 경험을 통해 또래집단에의 결속력을 강화시키고 있었다.
본 연구는 유아들이 일상 속에서 대중문화를 어떻게 체험하고 있는지를 알아보기 위해 유치원 또래집단 속 상호작용을 살펴보았다. 연구참여 학급인 M 유치원 자연반을 관찰한 결과 자유선택시간동안 유아들은 자율적으로 그림을 그리면서 대중문화에 대한 많은 경험을 공유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본 연구는 대중문화를 즐기고 대중문화 상품을 소유한다는 것이 유아들의 일상적 삶에서 매우 중요하고 의미 있는 일이라는 것을 다시 한 번 보여주었다 (Horton, 2012). 대중문화 경험은 유아기에 형성되어야 할 중요한 사회적 관계인 또래관계를 결속시켜줄 수 있는 공유된 문화지식의 역할을 하였다. 더불어 함께 놀이하고 경험을 공유하면서 '우리' 라는 공동체 (김정신, 홍용희, 2012) 를 형성하고 유희와 상상이 넘쳐나는 교실 내 하위문화를 만드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었다. 적극적인 문화수용자와 문화창조자로서 자연반 유아들이 보여준 모습은 대중문화 콘텐츠의 유해성 및 대중문화가 생산해 내는 상업주의의 악영향을 받을 지도 모른다는 성인들의 염려를 씻어내 기에 충분했다. 자연반 유아들에게 대중문화는 자신들과 상관없이 만들어진 '성인의 문화' 로 경험되기보다 또래집단 내에서 자신들의 사회적 세계 - 문화 - 를 창조하는 과정으로 경험되고 있었다. 또한 유아들은 또래 간 협상과 적극적인 참여를 통해 대중문화를 해석하고 변형하여 새로운 문화로 재창조해 내는 문화의 창조적 생산에 공헌하는 모습을 보였다.
본 연구는 유아들의 생활 세계 내에서 유아들의 생생한 경험 이야기를 통해서 대중문화 체험방식과 그 의미를 살펴보았다는 데 의의가 있다. 이러한 과정에서 유아기 자율적 미술활동의 의미를 살펴볼 수 있었다는 점에서 또 다른 연구 가치를 살펴볼 수 있다. 본 연구의 결과를 중심으로 논의를 전개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자연반 유아들은 자유선택시간 동안 그림 그리기 활동에 자발적으로 참여하면서 대중문화에 대한 관심을 서로 나누고, 공유된 문화지식과 관심을 확인하면서 또래집단에의 소속감과 유대감을 강화시키고 있었다. 유아들은 때로는 함께 기억을 더듬으면서 대중매체를 통해 경험한 문화콘텐츠와 대중문화 캐릭터의 모습을 그대로 모방하고 재현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때로는 적극적으로 대중문화의 내용을 유아 각자의 취향과 개인적 경험에 근거하여 관심을 가지고 자기만의 이미지로 수용하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대중문화와 수용자의 관계에 관한 전통적인 연구는 실증주의에 기반을 둔 대중매체의 효과에 관한 연구로 문화수용자는 대중매체의 영향을 받음으로써 매체가 제시하는 특정한 효과를 드러내게 될 것이라는 가정이 기반이 되어 있었다(김연종, 1993). 이러한 시각에서 보면 대중매체는 대중을 마음껏 휘두를 수 있는 영향력 있는 대상인 한편 수용자인 대중은 대중매체의 위력에 조종당하고 수동적으로 반응할 뿐인 무력한 존재로 개념화되어 왔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본 연구에서 드러난 문화수용자로서 유아들의 모습은 대중문화의 주요기능이자 비판의 대상이 되어 온 현실에 대한 도피 및 반성적 사고의 결여가 수용자의 의지에 따라서 능동적인 기분 전환이자 해방의 순간으로 변환될 수 있는 가능성 (강준만, 2013;신혜경, 2009) 을 보여주고 있다.
둘째, 자연반 유아들은 대중문화를 나름의 방식으로 수용하는 것을 넘어 자유로운 상상과 유희 속에 새로운 그들만의 문화로 창조해 내는 문화 창조자로서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Corsaro, 1997; Heath, 1983). 유아들은 능동적으로 대중문화의 내용을 선택하고 이를 바탕으로 또래집단 내 상호작용 속에서 가장 적절한 맥락으로 다시 바꾸어 놓았다. 유아들은 자신들만의 논리로 대중문화를 해석하고 놀이의 상황에 맞게 스크립트를 변형시켜 새로운 내러티브를 구성해 내는 모습을 보였다.
대중문화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가진 아도르노는 문화산업의 산물이 가진 '표준화' 와 '사이비 개성화 (pseudo-individualization)' 를 문제로 삼는다 (신혜경, 2009). 대중문화는 공장에서 생산되는 상품들처럼 표준적인 도식에 의해 전형적인 특성을 만들고 유포함으로써 대중의 개성을 파괴시킨다는 것이 그의 지적이다. 또한 항상 동일하게 연주되는 대중문화의 리듬은 대중들을 기계적이고 수동적으로 만듦으로써 적극적인 수용자로서 반성하고 비판하는 능력을 위축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이처럼 대중문화의 모든 산물에 있어서 표준화가 문제가 될지는 모르지만 본 연구에서 자연반 유아들이 대중문화를 나름대로 재해석하여 의미화하고 끊임없이 새로 만들어 내며 상상하고 유희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대중문화는 수용자의 체험방식에 따라 변주될 수 있는 긍정적인 가능성 역시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셋째, 자연반 유아들은 자신의 감정과 의미를 자유롭게 소통할 수 있는 경험적 과정(이화도, 정은정, 2010)으로서 자율적 미술활동에 참여하고 있었다. 유아들은 대중문화에 대한 이미지를 자율적으로 형성하고, 단순한 모방이 아닌 외부에서 들어오는 내용들을 스스로의 경험에 근거하여 이해하고 주체의 상상력을 동원하여 스스로 창조하였다. 자연반에서는 그림을 그리는 과정 자체가 놀이의 소재가 되기도 하고 그림의 결과물이 놀이의 소재가 되기도 하였다. 이는 유아들의 미술작품은 결과물로서 고정된 것이 아니라 과정적이고 이행적인 것 (신인섭, 2008;박라미, 2011 에서 재인용) 으로 유아들의 사고와 미적 감수성을 자극해 줄 수 있도록 변형되고 확장되어야 할 미적 대상으로서 교육적 가치를 가진다 (임부연, 최영명, 류미향, 2009)는 것을 시사한다. 본 연구를 통해서 유아의 그림은 사고과정의 기록물로서 유아들의 발달과 성향을 이해하고 평가하는 자료로 활용될 수 있는 가능성 (임부연, 최영명, 류미향, 2009)을 보여주고 있다.
뭔가를 표상해 내도록 요구받지 않은 상태에서 자유롭게 미술활동에 임할 때 유아들은 표상하고 싶은 대상을 향해 스스로의 경험을 되돌아보며 기억을 되새김질하고 즐거웠던 감정을 다시 꺼내게 된다. 뿐만 아니라 자신이 가지고 있는 개인적 경험과 기억 속에 그 대상은 특별한 이미지로 내면화되어 있는데 이러한 이미지는 유아 자신의 상상을 통해서 새로운 대상으로 재창조하게 되는 것이다. 같은 시각에서 박라미 (2011)는 자율적으로 이루어지는 미술적 표상 활동은 자신이 의도한 감각적인 느낌을 놓치지 않으려는 노력이 집약된 의미체임을 주장하였다. 유아들이 성장하면서 자율적으로 그림을 그릴 기회가 점차 줄어들고 집단 활동으로서 특정한 목적이나 주제, 내용을 가진 미술 경험을 한하는 오늘날 미술활동 경향 (김혜전, 홍용희, 2012)으로 보아 본 연구결과는 유아기 자율적 미술활동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되새기게 한다. 유아들이 경험하는 자율적 미술활동은 유아들의 개별적인 경험으로부터 출발하지만 동시에 또래들과 지식과 이해를 공유하고 새로운 이해 지평을 확장해 나가는 문화 창조의 장의 역할 역시 하는 것이다 (이화도, 정은정, 2011).
디지털시대인 오늘날 인간은 공백을 두려워하고 지루한 것을 혐오하며 이에 대해 대중매체는 인간의 삶을 지루하지 않게 끝없이 오락적 요소를 제공해 준다. 그러나 대중매체를 수용하는 대중의 의지와 경험방식에 따라 대중의 삶은 정서적으로 삭막해 지고 사고력이 저하됨으로써 인간의 몰개성화를 가져올 수 있다는 염려가 확산되고 있다. 한편 본 연구에서 자연반 유아들은 대중매체에서 유포되는 문화를 자신만의 기호와 취향으로 선택 · 수용하고, 자신들의 놀이 문화 속에서 적절하게 변형시키고 새로운 놀이문화를 창조해 가는 과정에서 재창조해 내는 적극적 수용자와 창조자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러한 연구결과는 대중문화가 수용자의 의지에 따라 능동적 기분전환과 유희와 상상의 축제로 변환될 수 있는 가능성이 있음을 보여주었다. 더불어 대중문화는 상상을 통한 무한한 변형과 창조를 통해 진정한 개성화의 가능성을 발현시킬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따라서 앞으로는 대중문화가 미칠지 모르는 유해성으로부터 유아들을 보호하는 것에 대한 노력보다 유아 들의 문화 창조자로서의 역량을 지원해 줄 수 있는 방안에 대한 연구 및 이를 위한 성인의 노력이 무엇보다도 중요할 것이다.
본 연구는 유치원 자유선택시간동안 이루어지는 자율적 미술활동을 중심으로 관찰하였다. 유아들이 대중문화를 일상적으로 어떻게 체험하고 있으며 적극적인 문화수용자 및 문화창조자로서의 유아들의 역량을 지원하기 위한 우리의 이해를 심화시키기 위해서는 유치원일 과의 다양한 상황을 고려하고, 가정, 놀이터 등을 포함한 폭넓은 맥락을 포함하며, 성별, 연령 등 다양한 인구학적 특성을 고려한 집단으로 연구의 폭을 넓힐 필요가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