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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A 학술지
The Discourse of National Cinema in a Transnational Age 민족 영화 담론, 그 의미와 이슈들
  • 비영리 CC BY-NC
ABSTRACT

The more full-fledged and profound discourses on the national cinema in South Korea must be needed, because a current transnational reality led by capitalism makes it more difficult for us to answer what role cinema plays in the construction of the cultural boundary and national identity. I will thus critically examine how to define the term “national cinema” after an introduction of the discourses on national cinema in the western film theory and construct a subject in national cinemas, as well as the dynamics between Hollywood cinema as the global dominant one in a transnational age and other national cinemas and the relationship of national cinema and transnational one. I hope such an approach would contribute to the productive discussion on national cinema including the identity of Korean cinema. Under the influence of anti-essentialism with regard to the national since the late 1980s, the historical conceptualization and critical study on national cinema have been more accomplished. During the period, the issues such as the role of a nation-state in both film production and reception and the relationship between cinema and ideology necessary for a nation-state’s building and maintenance were raised, and the discussion was consequently focused on what role cinema plays in the construction of a nation, national identity and national culture. In order to escape from being trapped in the limited conceptualization in terms of a nation and productively approach national cinema, the concept ‘the national’ has been highlighted. That was the result that a nation-state and national identity were reconceptualized in a way of the constructive, the non-essentialist and the contradictory by anti-essentialists. The question onnational cinema has been shifted from ‘what is the relationship between cinema and nation?’ to ‘how is the national in cinema constructed?’, just as the problematic from ‘what is a nation?’ to ‘how is a nation constructed?’. In a phenomena of a globalization, both transnational power and sub-national, local power are strengthened and the cultural hybridity of a nation-state is highly recognized, while the sovereignty of a nation-state is weakened. What influence would such a change give on cinema’s construction of the national and cultural boundaries as well as the concept of a nation or a state? What would happen to the location of an address when cinema is regularly produced, circulated and consumed across the national boundaries? I here attempt to explore the transition in terms of three frameworks, the relationship between Hollywood cinema as the most representative transnational one and other national cinemas, the third cinema, and trans-Asian cinema.


KEYWORD
national cinema , Korean New Wave Cinema , Korean Blockbuster , the third cinema , trans-Asian cinema , the transnational , Hollywood cinema and anti-essentialism
  • 1. 한국영화에서 ‘민족’1)이라는 문제틀

    최근 독도를 둘러싼 한일 간의 갈등, 센카쿠 열도를 둘러싼 중일간의 갈등 등, 영토를 둘러싼 국가 간의 분쟁과 이로부터 촉발된 제노포피아적 사건들이 줄을 이으면서 ‘민족’이라는 이슈가 21세기에도 여전히 화약고임이 분명해지고 있다. 20세기 초에 60여개에 불과하던 민족국가의 수가 1990년대에는 세 배 가까이 증가하여 170여개에 이르렀다는 사실 역시 ‘자본주의 경제의 팽창으로 단일한 세계 체제 속으로 세계의 모든 지역이 편입되는 과정에서 이에 대응하여 각 지역의 민중이 민족으로서의 정체성을 충전하여 그 독자성을 표현하는 역동성을 지닌 정치적, 사회적, 이념적 운동으로서의 민족주의’2)가 점점 강화될 수 밖에 없는 국제적 현실을 말해준다. 문화예술 분야도 예외가 아니라서, 한국의 경우 K-POP을 중심으로 한 한류열풍과 최근 김기덕 영화 <피에타>의 베니스국제영화제 그랑프리 수상 등이 불러일 으킨 반향들은 문화 수출이라는 산업적 욕망은 물론이고 서구의 시선을 경유한 주체성 구성이라는 무의식적 욕망에 이르기까지, 민족주의 적 충동 혹은 민족 담론과 분리되어 설명될 수 없다.

    최근의 역사 연구는 공식적 기록으로서의 역사만이 아니라 개인적, 주관적인 기억과 집단적 기억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민족은 기억의 영토화의 산물”3)이라는 말에서도 알 수 있듯이, 민족의 역사는 공유 된 집단적 기억을 통해 끊임없이 서사화되고 있다면, 영화와 같은 대중적 서사의 양식들은 바로 그 기억들의 현재화와 형상화를 통해서 ‘상상의 공동체’인 민족의 정체성을 절합하고 재구성하는 역할을 한다. 특히 대중의 정서와 욕망을 효과적으로 포착하고 재현하는 시청각적 매체인 영화는 민족의 기억을 전유하여 성찰하거나 미학화함으로써, 민족의 역사를 증후화하고 민족의 외상에 말을 걸며 민족의 위기를 탐사하는 대표적인 장이 되어가고 있다.

    한국의 영화사 서술 역시 오랜 기간 동안 ‘민족’과 ‘리얼리즘’이라는 두 개의 화두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영화 매체가 처음 수입되었던 시점이 일제 식민 시기였다는 점에서 한국영화사는 초창기부터 민족 주의의 굴레를 벗어날 수 없었고, 해방 이후의 영화 담론 역시 ‘새로운 민족영화건설’에 집중되었다. 또한 식민지 현실을 극복하기 위한담론적 실천의 일환으로 좌파 영화인들이 리얼리즘론을 적극적으로 도입한 이후 한국영화사는 민족이 처한 비극적 현실을 엄밀하게 그려내는 동시에 비판적으로 인식하는 도구로서, 즉 민족을 재현하는 데에 있어서 핵심적인 방법론으로 리얼리즘을 추구해왔다.

    특히 유럽의 대표적인 민족 영화운동인 이태리 네오리얼리즘을 참조틀로 삼아 1950년대 후반에 등장한 ‘코리안 리얼리즘론’은 김소연의지적에 따르자면, “위기의 시대에 영화가 대중을 위무하는 오락거리의 하나로 전락하지 않기 위한 미학적 전략이었고, 이념적 억압의 시대에영화가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고발할 수 있기 위한 정치적 전략이었 으며, 나운규의 <아리랑>에서부터 비롯되는 한국 영화의 정통성을 보 장받기 위한 담론적 전략”4)이었다. 그러나 이처럼 민족적 리얼리즘의전통을 강조하면서 영화의 전근대성을 극복할 유일한 대안이자 구원의 이념으로 간주되었던 한국영화의 리얼리즘론은 때로는 민족영화론과, 때로는 작가나 예술영화론과 겹쳐지면서 그 형식과 내용 자체가 불분명하다. 또한 ‘인간성 회복’이나 ‘저항정신’ 등을 강조하는 관념적 휴머니즘으로 인해서 “판타지적 구성물”이자 “일종의 욕망의 미끼(소문자 대상 a)”5)라는 비판을 받기도 한다.

    그런 점에서 한국영화와 민족 담론의 본격적인 조우, 즉 민족이라 는 이슈를 통한 한국영화 정체성의 수립과 재정의는 ‘코리안 뉴 웨이브’와 ‘한국형 블록버스터’를 둘러싼 논의 그리고 임권택 영화의 민족주의적 함의를 둘러싼 논쟁 등을 통해서 좀 더 진전된 형태로 이루어 진다고 볼 수 있다.

    1996년 제1회 부산국제영화제가 발간한 책자를 통해서 선언되고 명명된 코리안 뉴 웨이브 담론은 1980년대 이후 등장한 ‘민족민중영화’를 ‘코리안’이라는 민족국가의 경계로 제한하고 이를 ‘뉴 웨이브’라는 예술영화와 절합6)함으로써, 초민족적 시대에 국민국가의 경계를 옹호하는 한편 국제적인 영화 서킷에서 민족적 차이와 전통을 지역 영화로 특수화하고 승인받고자 하는 시도였다. 코리안 뉴 웨이브 영화들은 한편으로는 1980년대 민주화 투쟁에서 비롯된 정치적 저항의 충동을, 다른 한편으로는 한국영화를 옥죄고 있던 낡은 감수성과 미학에 대한 단절의 의지를 그 추동력으로 삼았다. 그만큼 한국영화 역사상 최초로 집단적으로 등장한‘영 시네마(Young Cinema)’이자 민족의 역사와 운명에 대한 비판적이고 지적인 알레고리라는 의미를 부여받았다.

    그러나 코리안 뉴 웨이브 영화들이 젠더 정치학의 측면에서 근본적인 한계를 안고 있었다면, 주로 ‘민족 영화론자’들이 주도했던 그담론은 시기와 세대 구분 등에서 모호할 뿐만 아니라 국가와 민족을 등식화함으로써 손쉽게 민족 영화를 민족적 주체로 가정하는 무리수 를 두게 된다. 우선 코리안 뉴 웨이브 영화들은 여성의 육체와 주체성을 묘사하는 데에 있어서 1980년대를 지배했던 에로 영화의 시각체제나 상상력을 크게 벗어나지 못했고, 부재한 가족과 약화된 남성성을 주로 고통과 위기의 근원으로 제시하는 그 서사들은 가부장제적환상을 벗어나지 못하는 남성중심적 시각으로 비판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민족의 비극적 운명을 여성에게 가학증적인 서사와 여성의 오염된 섹슈얼리티를 통해 재현하는 코리안 뉴 웨이브 영화의 전략과이에 대한 평론가들의 암묵적 동의는‘반식민지 민족주의는 자기 정체성을 여성적 타자로 설정함으로써 존립 가능하다’7)는 명제를 분명하게 입증해준다.

    1990년대 중반 이후 도래한 ‘한국 영화의 두 번째 르네상스’ 속에서 한국형 블록버스터를 둘러싼 담론은 할리우드와의 경쟁 속에서 자국 영화에 문화적 정당성과 산업적 추동력을 부여하기 한 시도로서 등장한다. <퇴마록>(박광춘, 1998)을 홍보하기 위해 처음으로 사용되었던 이 용어는 IMF 등을 비롯한 복잡한 사회적, 경제적 상황이 발생하게 되면서 언론은 물론 관객들에게 놀라운 정서적 호소력을 갖게 됨으로써, 단숨에 한국 영화산업의 부흥을 주도할 수단이자 할리우드에 대항할 대표선수로 간주되면서 민족 영화로 등극한다.

    그러나 한국형 블록버스터라는 용어 자체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는 그 태생에서부터 모순과 분열을 내포할 수 밖에 없다. 한편으로는 할리우드의 대체물이 되기 위해서 보편성과 유사성을 지향하는 동시 에 다른 한편으로는 국내 관객에게 다가서고 말걸기 위해서는 민족고유의 역사와 경험에 의존할 수 밖에 없다는 점에서 특수성을 띠게되기 때문이다. 더더구나 심각한 문제는 그 영화들이 내용적으로는 비 판의 기능을 멈추고 형식적으로는 현실을 가리는 가상의 이미지들로 넘쳐난다는 점이다. 또한 제작, 배급, 상영의 모든 측면에서 독점적지위를 차지함으로써 영화 산업의 구조를 기형화하고 궁극적으로는 영화적, 문화적 다양성을 저해한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한국의 비극적이고 파행적인 근현대사를 리얼리즘적 영화 언어와 비판적 지식인의 시각으로 절합하면서 ‘한국적’ 정체성과 미학을 끊임없이 모색해온 임권택의 영화들은 ‘민족적 형상화의 전범’이라는 지위와 현실적 효과를 오랫동안 확고하게 누려왔다. 즉 그 영화들이 민족의 삶과 정서를 탁월하게 형상화하고 민족의 역사를 은연 중에 써내려가고 있다는 사회적, 문화적 합의가 존재하는 셈이다.

    그런데 임권택의 영화 자체가 민족주의적인 색채를 띠게 되고 이에대한 높은 평가와 재발견이 이루어지게 된 시점이 경제가 급성장하면 서 호황을 누리던 1980년대라는 사실이 시사하는 바는 크다. 박정희 정권의 ‘공식적 민족주의’ 노선을 계승한 전두환 정권의 민족적 문화에 대한 강조 그리고 이에 대한 대중들의 암묵적인 동의와 승인 위에서, 민족 내부의 본질적인 것, 정신적인 것에 대한 요구가 가장 설득력 있게 묘사되고 있는 임권택의 영화가 그 문화적 대표성과 영화적우월성을 인정받기 시작한 것이다. 지역적 미학과 민족 역사를 통해재능을 키워온 임권택은 이제 직접적인 정치적 저항에 무관심해짐으로써,8) 즉 “민족주의가 민족적 정체성의 표지로 선택하는 전통은 ‘고전화’된다”9)는 점에서, 지배 권력의 이해와 조화로운 동거관계에 들어가게 되는 것이다.

    민족주의는 자신의 문화가 불변하고 다른 민족의 것과 다르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 끊임없이 집단적 과거에 대한 공유된 기억을 끌어와서 민족 자체를 ‘기억의 영토화(territorialization of memory)’의 산물로 만들어내고, 그 과정에서 선택되고 선별된 특정한 문화들을 물신화하는데, 임권택의 영화들만큼 이런 과정을 전형적으로 그리고 성공적으로 보여주는 경우는 드물다. 그는 수 세기에 걸친 역사적 과정 속에서도 변하지 않고 남아 있는 일련의 이미지들을 민족 문화의 정수나 본질로 제시하는데, 이는 “무비판적이고 서정적으로 환기된 분명하게 오리엔탈리즘적이고 반역사적인 문화적 원시주의(cultural primevalism)”10)로 비판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김경현에 따르자면 “각 민족의 역사는 영화사 자체의 궤도를 결정하면서, 영화적으로 미학화되고, 반성적으로 특정화된다.”11) 특히 대부 분 식민지 경험을 갖고 있는 비서구의 경우, 주로 서구에 의해서 자국의 영화들이 전유되는 불평등한 이미지 체제를 벗어나 민족 영화를 구축하고 이를 통해 자민족되기를 실천하고자 하는 충동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앞서 설명된 코리안 뉴 웨이브와 한국형 블록버스터 담론들이 외부와의 동일시를 통한 민족영화 선언이라는 점, 즉 하나는 지역성을 표지하는 예술영화로서, 다른 하나는 산업적 경쟁력을 갖춘 상품으로서 한국영화를 추구하고 승인받고자 하는 욕망의 표현이라는 사실 역시 이러한 비서구의 현실을 자명하게 보여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내에서 민족 영화에 대한 담론화는 그 역사가그리 길지 않은 상황이고, 여기에다가 급속하게 진전되는 전지구적 자본주의 현실은 초민족성이라는 아젠다를 추가로 제기함으로써 영화가 문화적 경계 그리고 민족적 정체성의 구성에 있어서 어떤 역할을 하는가에 대한 대답을 더 어렵고 복잡한 것으로 만들어내고 있다. 따라서 이 글에서는 서구에서 민족 영화 담론이 등장한 이후 민족 영화의 정의와 민족 영화의 주체 문제, 초민족적 시대에 전지구적 주류영화인 할리우드 영화와 여타 민족영화들 간의 역학 그리고 민족영화와 초민족영화의 관계 등의 이슈들을 비판적으로 토해봄으로써, 한국 영화의 정체성을 포함하여 민족 영화 논의의 생산적 전개에 작은 기여를 해보고자 한다.

    1)이 글에서 ‘nation’은 민족, ‘nation-state’는 민족 국가, ‘the national’은 민족적인 것, ‘transnational’은 초민족적, ‘nationality’는 민족성으로 번역되었다.  2)이민호, 「우리에게 민족주의란 무엇인가?」, 한국서양사학회 편, 『서양에서의 민족과 민족주의』, 까치, 1999, 324쪽.  3)Susan Hayward, “Framing National Cinemas”, Matte Hjort & Scott MacKenzie, eds.,Cinema and Nation, Routledge, London&NY, 2000, p,89.  4)김소연, 「전후 한국의 영화담론에서 ‘리얼리즘’의 의미에 관하여: <피아골>의 메타비평을 통한 접근」, 김소연 외, 『매혹과 혼돈의 시대: 50년대 한국영화』, 소도, 2003, 58-9쪽.  5)문재철, 「한국 영화비평 담론의 타자성과 콤플렉스: 50년대 후반에서 70년대까지 리얼리즘 담론의 ‘상상성’을 중심으로」, 연세대 미디어아트센터 엮음, 『한국영화의 미학과 역사적 상상력』, 소도, 2006, 54-5쪽.  6)김선아, 『한국영화라는 낯선 경게: 코리안 뉴웨이브와 한국형 블록버스터 시대의 국가, 슈얼리티, 번역, 영화』, 커뮤니케이션북스, 2006, 서문 x쪽.  7)최정무, 「한국의 민족주의와 성(차)별 구조」, 일레인 김, 최정무 편저, 『위험한 여성: 젠더와 한국의 민족주의』, 삼인, 2001, 42쪽.  8)김경현, 「한국영화와 임권택: 개관」, 김경현, 데이비드 제임스 외 엮음, 김희진 옮김, 『임권택, 민족영화 만들기』, 한울, 2005, 44-5쪽.  9)Partha Chatterjee, The Nation and It’s Fragments: Colonial and Postcolonial Histories Princeton: Princeton UP, 1993), p.127.  10)Frederick Buell, National Culture and the New Global System(Baltimore: The Johns opkins UP, 1994), 77.  11)Kyung Hyun Kim, “The New Korean Cinema: Framing the Shifting Boundaries of History, Class, and Gender”, dissertation of the Graduate School, University of Southern California, 1998, p.7.

    2. 서구 영화 연구에서 민족 영화 담론의 등장 배경

    영화 연구가 대학을 중심으로 한 아카데미와 비평적, 학술적 영화 잡지들을 기반으로 해서 제도화되고 급진 정치학으로의 선회를 통해 고전적 영화 이론과 결별을 고하던 1960년대에 민족 영화 연구는 중 요한 이론적, 비평적 범주이자 영화 관련 학과들의 커리큘럼을 구성하는 주요 요소로 등장한다. 그러다가 80년대 후반에 이르면 베네딕트 앤더슨, 에른스트 겔너, 에릭 홉스봄 등에 의한 민족 형성 및 족주 의와 관련된 이론에 힘입어 민족 영화에 대한 역사적 개념화와 좀 더진전된 비판적 연구가 이루어진다. 이 과정에서 영화의 제작과 수용에서 민족 국가가 수행하는 역할, 영화가 민족 국가의 형성과 유지에필요한 이데올로기와 맺는 관계 등이 이슈가 되었고, 이는 결국 영화라는 매체가 민족, 민족 정체성, 민족 문화의 구성에 있어서 어떤 역할을 하는가에 대한 것으로 집중되었다.

    무엇보다도 영화 연구의 영역에서 민족 영화 담론이 중요성을 띠게 된 것은 근대 이후 등장한 민족주의 이데올로기 자체와 1980년대 이후 가속화된 전지구화 과정에 내포되어 있는 양가성이 민족 단위 내 에서 생산되는 영화에 대한 평가와 수용에 끼친 모순적인 영향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우선 민족주의는 오랜 기간 동안 지배 권력의 통치, 정권 유지, 국민 동원을 위한 이데올로기이자, 민족 내부의 이질 적이고 소수적인 목소리를 억압하고 규제하는 장치로 작동해온 역사를 갖고 있다. 하지만 민족 국가의 경계를 위협하면서 초민족적인 세계질서를 중심으로 작동하는 전지구화는 동시에 각 민족 내부에서의 정체성의 강화를 야기함으로써, 급진적인 비판과 해체의 대상이었던민족주의에 힘을 실어주는 역설적인 현상을 낳게 된다. 즉 전지구화가 촉발시킨 경계에 대한 인식이 민족적 통합성을 통해 경계를 더욱 견고히 하고 자기 정체성을 확고히 하려는 문화적 투쟁을 강화시키게되면서, 바로 민족 정체성 구성과 승인의 중요한 장으로 기능해온 민족 영화가 주목을 받게 된 것이다. 역사적으로 보았을 때 영화는 민족의 문화적 절합으로 기능하면서, 민족을 텍스트화하고 지속적으로 국가, 시민, 타자의 개념을 둘러싼 일련의 관계들을 구성해왔기 때문이다.12)

    두 번째로 민족 영화는 할리우드 영화의 세계 시장 지배에 대한 문화적, 산업적 대응 논리로서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민족 영화는 할리우드의 세계 시장 지배에 저항하는 지역 영화산업의 전략’이라는기존의 정의에서도 드러나듯이, 많은 경우에 민족 영화는 할리우드 영화의 자국 시장 지배라는 현실을 문화적 위협이나 민족적 침해로 간주하면서 자국 문화의 오염을 막고자 하는 ‘문화적 방어주의’와 자국영화를 세계 시장에 진출시키기 위한 산업적 논리의 핵심 기제로 기능해왔다. 특히 할리우드 영화를 대표로 하는 문화 제국주의에 대한 경계와 두려움은 많은 국가들의 영화 정책에 영향을 미치면서, 민족의통일된 이미지를 제공함으로써 민족적 상상계를 유지시킬 수 있는 영화와 국내는 물론이고 국제적인 경쟁력을 갖춘 영화들에만 지원이 집 중되는 결과를 낳는다. 민족을 폐쇄적이고 통일된 공동체로 설정하는 이런 영화들은 당연히 민족 내부의 다양성과 차이들을 억압하게 되지만 해외에서는 한 민족의 특수한 정체성과 고유한 본질을 대표하는 것으로 소통되는 역설을 빚어낸다.

    세 번째로 민족 영화는 유럽과 미국 중심의 영화 연구가 지닌 인식론적 한계에 대한 이론적 대안으로서 그 의미를 지녀왔다. 그러나 민족 영화를 서구 영화의 대안 영화로 구성하려는 이러한 시도들은 종 종 서구 영화 연구의 성과들을 지역의 특수성과는 무관하게 기계적으로 적용하려는 조급증으로 인해서 본래의 의도를 퇴색시키는 한계를 보여준다. 이런 한계들은 복합적이고 중층적인 전지구화 과정에서 서구 영화 연구의 성과들이 경계를 넘어 적용될 때 일종의 변형의 과정이 요구되는 동시에 민족 영화 연구에서 민족적 경계와 특수성의 강조가 여전히 필요하다는 사실을 간과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12)Susan Hayward, French National Cinema, Routledge, London, 1993, p.x.

    3. 민족 영화의 정의를 둘러싼 논쟁들

    앤드류 힉슨은 민족 영화의 상상적 응집성이나 특수성을 정체화하는 두 가지 중심적 개념 수단으로서 내향적 시선 look inward과 외향적 시선 look outward을 제시한다. 전자는 민족 자체와 민족의 과거, 현재, 미래 그리고 민족의 문화적 유산, 토착 전통, 공통의 정체성과 연속성에 대한 감각을 반영하면서 내부를 바라보는 것이라면, 후자는다른 민족 영화들과 구별되고자 하고 타자성의 의미를 강조하면서 경계들을 가로 질러 밖을 바라보는 것이다.13) 여기에서 특히 문제를 안고 있는 것은 전자라고 할 수 있는데, 이런 시선은 민족적 정체성과 전통이 이미 형성되어 있고 어떤 자리에 고정되어 있다는 가정뿐만이 아니라, 이 경계들이 정치, 경제적 발전, 문화적 실천과 정체성을 담아내는데 효과적이라는 가정에 입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는 민족 영화를 민족 고유의 특성이나 본질의 구현으로 정의하는 민족 영화에 대한 전통적인 개념화로 이어지게 된다. 영화와 같은 문화적인공물을 민족에 묶여진 것으로 영토화하는 것은 영화를 역사적 주체 로 만들면서 민족이 스스로를 (주체로서의) 스스로에게, 그리고 (대상으로서의) 주체에게 재현하게 함으로써 민족 영화에 대한 자기애적, 자기반영적, 자기충족적 관점을 생산한다.14)

    소위 ‘민족 영화의 낡은 모델’이라고 부를 수 있는 이런 관점은 하나의 민족적 경계 내에서 생산된 영화들이 통일성과 응집성을 갖고 있으며 따라서 그 영화들의 저자는 민족이라는 두 가지 전제에서 출 발한다. 이런 전제 내에는 민족을 영구적이고 근본적인 실체로 바라보는 ‘민족에 대한 본질론적 관념’과 민족이 이미 존재하면서 강하고 통일되고 완전한 민족 국가의 형식으로 실현되기를 기다리고 있다는 ‘근대적인 민족 내러티브’가 함축되어 있다. 그러나 민족에게 있어서 가정되는 통일된 집단성은 권력의 네트워크에 의해 집중과 결속이 위조되고 유지된 결과이므로 ‘민족이 본질적 실체’라든지 ‘민족 영화가 한 민족의 일원론적인 문화적 표현’이라는 식의 사고들은 잘못된 것이다.

    따라서 민족 영화에 대하여 보다 생산적으로 접근하기 위해서는 민족에 관한 협소한 개념화를 피하고 또 그것을 비판할 수 있는 ‘민족적인 것 the national’에 주목하게 된다. 이는 물론 베네딕트 앤더슨을 비롯한 반본질자들에 의하여 민족 국가와 민족 정체성이 구성적, 비본질적, 모순된 것으로 재개념화되면서 ‘민족이란 무엇인가?’에서 ‘민족어떻게 구성되는가?’로 문제틀이 변동되고, 그 영향 하에서 민족영화 담론 역시 ‘영화와 민족의 관계는 무엇인가?’에서 ‘영화에서 민족적인 것은 어떻게 구성되는가?’로 전환된 결과이기도 하다. 영화와 민족적인 것을 다차원적 문제틀로 보는 접근만이 민족적인 것에 대한 통찰을 잃지 않으면서 민족 영화에 대한 접근을 넘어설 수 있으며,그 과정에서 초민족적인 시대에 민족적인 것이 지닌 복잡성을 획득할 수 있다는 인식이 등장한 것이다. 또한 민족 정체성과 민족 문화를 공고하게 만드는 과정을 추적해보고 그런 과정을 탈안정화시키고 해체함으로써 민족 영화 공간에서 민주적이고 공정한 재현이 이루어지게 하기 위해서도 ‘민족적인 것’으로의 초점 이동이 요구되게 된다.

    ‘민족 영화’에서부터 ‘영화와 민족적인 것’으로의 이러한 전환은 민족 영화 담론에 있어서 전망이나 패러다임의 변화라고까지 할 수 있다. 이런 전환을 이론적으로 뒷받침하고 주도한 것은 폴 윌먼과 크리스 베리이다. 윌먼은 영화 연구에서의 민족주의, 민족 정체성, 민족의 특수성을 분리함으로써 ‘민족적인 것’을 구성하는 특수성의 문제를 밝혀낸다. 베리는 수행성 이론에 입각하여 민족을 주체가 아니라 ‘작인 agency’으로 정의함으로써, 영화에서 민족적인 것을 더 이상 민족 국가라는 영토에 제한된 것이 아니라 다중적, 증식적, 경쟁적, 중첩적인 것으로 파악한다.15)

    윌먼은 우선 기존에 영화 연구가 ‘보편화하는 종족중심성 universalizingethnocentricity’이라는 개념에 의해 지배되어 왔는데 이와 반대로 문화적 특수성 개념이 중요하며, 영화 연구에서 특수성이라는 이슈는 일차적으로 민족적인 것에 해당16)함을 강조한다. 그런데 영화에서 문화적특수성을 말하기 위해서는 민족적인 사회문화적 구성체가 특정한 의미화 실천과 제도를 결정한다는 사실이 인식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기존의 민족 영화 연구는 민족주의 담론과 민족적 특수성을, 민족 정체성과 문화구성체의 특수성을 제대로 구별하지 못함으로써 혼란에빠져왔다. 민족 정체성은 문화구성체의 사회정치적 특수성과 관련된 일부분으로서 문화적 특수성을 지배적으로 등기하는 일시적 구성요소 이다. 반면 문화구성체의 특수성은 항상 표지되고 민족 정체성을 결정 하는 것이 바로 민족의 특수성이다. 따라서 중요한 것은 민족 정체성이 아니라 특수성이고, 이런 특수성에서 비롯되는 민족적인 것은 민족주의와 양립불가능한 타자들의 것으로 정의된다. 그렇다면 민족 영화는 이런 타자들의 영화이자 민족적 특수성을 다루는 영화로서 반드시 반민족주의적이거나 최소한 비민족주의적이게 된다. 민족주의의 동질화 프로젝트에 공모하는 영화일수록 사회구성체의 문화적 배치의 특성을 결정하고 모양짓는 다차원적이고 다방향적인 긴장을 비판적으로 다룰 수 없기 때문이다.17)

    베리는 중국의 사례를 예로 들면서, 민족적 작인으로서 중국을 만드는 것은 진행 중이고 역동적이며 경쟁하는 기획이고 따라서 중국은 담론적으로 생산되고 사회, 역사적으로 우연적인 집단적 전체이므로, 영화를 만드는 것이 중국이 아니라 중국을 만드는데 도움을 주는 것이 영화임을 주장한다.18) 그가 ‘작인’을 강조하는 것은 기존에 민족영화 논의에서 동원되던 ‘민족적 상상계’나 ‘민족적 주체’와 같은 정신분석학적 용어들에 내포된 위험을 피하는 동시에 민족 영화를 민족의 정체성이 아니라 민족의 특수성으로 기술하고 국가 단위를 뛰어넘는 민족적 수행성으로 설명하기 위한 것이다. 이럴 때 민족과 국가의 불일치, 파열, 모순 등이 드러남으로써 민족 공동체의 형성 과정이역동적이고 가변적인 수행적 실천으로 정의될 수 고, 족이라는 집단적 작인과 영화와 관련해서 그것이 동원되는 방식이 분석됨으로써 민족이 영화를 말하거나 만든다는 환상이 깨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베리는 민족 영화를 서로 다른 개인, 집단, 제도가 다양한 의도를 갖고 만들어내는 다중적 기획이자, 구축된 전체로서의 민족적 작인과 집단적 주체성의 정치학에 결부된 다중적 기획으로 새롭게 정의 내린다.

    민족 및 민족 영화에 대한 이런 재개념화를 통해서 민족 영화에서의 민족적인 것이 단순히 민족주의로 환원될 수 없으며 민족 영화는 민족적 집단성을 조직하는 정치적 프로젝트와 광범위하게 연결된것19)임이 분명해진다. 따라서 민족 영화가 민족 내부의 다양한 집단 성의 구성에 참여하는 방식에 대한 분석과 민족주의 영화로부터 민족영화를 구분하는 일이 중요해진다. 이제 이상적인 민족 영화 담론은 민족을 문제화하면서 지식의 대상으로 만들고, 민족주의의 동화주의적 이고 통합주의적인 명령에 저항하며, 민족 국가 내에서 그리고 다양한 초민족적이거나 탈민족적인 배열 속에서 영화적 생산의 다문화적 경향을 반영해야 한다20)는 과제에 직면하게 되는 것이다.

    13)Andrew Higson, “The Limiting Imagination of National Cinema”, Matte Hjort & Scott MacKenzie, eds., Cinema and Nation, Routledge, London, 2000, p.67.  14)Hayward, “Framing National Cinemas”, Matte Hjort & Scott MacKenzie, eds., ibid.,pp.91-2.  15)Chris Berry, “From National Cinema to Cinema and the Nation: Chinese-language Cinema and Hou Hsiao-hsien’s ‘Taiwan Trilogy’”, Valentina Vitali & Paul Willeman, eds., Theorizing National Cinema, BFI, London, 2006, p.149.  16)Paul Willeman, “The national revisited”, Valentina Vitali & Paul Willeman, eds., ibid., p.33.  17)Willeman, ibid., p.36.  18)Chris Berry, “If China Can Say No, Can China Make Movies? or Do Movies Make China?: Rethinking National Cinema and National Agency”, Ray Chow, ed., Modern Chinese Literary and Cultural Studies in the Age of Theory: Reimagining a Field, Duke UP, Durham, 2000, p.131.  19)Philip Schlesinger, “The Sociological Scope of ‘National Cinema’”, M. Hjort & S. MacKenzie, eds., op. cit, p.29.  20)Hayward, “Framing National Cinemas”, M. Hjort & S. MacKenzie, eds., ibid., p.101.

    4. 전지구화, 초민족 시대의 민족 영화

    다국적 자본의 전지구적 확산, 전지구적 시장의 공고화, 다국적 공동제작의 증가, 전통적인 영화의 약화, 미국 영화의 전지구화, 분열증적인 초민족적 관객의 등장은 또 다른 방향에서 민족 영화를 재개념 화할 것을 요구한다. 전지구화라는 현상 속에서 민족 국가 자체의 주권은 약화되어 가는 반면 초국가적 세력과 동시에 하위민족적, 지 역적 세력의 압력이 증가하고, 다문화주의, 즉 민족 국가의 문화적 잡종성 에 대한 인식이 높아지는 시대에 민족이나 국가 개념에는 어떤 변화가 일어나게 되는가? 또 이런 변화는 영화라는 매체가 민족적, 문화적경계를 구성하는 데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영화가 민족 경계를 가로질러 정기적으로 생산, 순환, 소비될 때 말걸기의 위치성에는 어떤일이 일어나는가?

    우선 이민, 소수 민족, 이산된 세계의 디아스포라 공동체가 증가함에 따라 세계는 ‘탈민족적’이거나 ‘초민족적’인 모습으로 전환 중이다. 또한 제작과 수용의 차원 모두에서 국경을 넘는 영화의 이동이 빈번해지는 현상은 이국적 요소의 소개를 통해 지역 문화의 민주화에 기여하고 문화적 레파토리를 확대하는 동시에 지역 관객들이 외국의 영화를 토착적인 참조틀에 따라 해석하는 경향을 낳게 된다.21) 이런 맥락에서 민족 영화의 운명과 역할에 대한 논의는 문화 간의 번역, 교차, 혼성화에 대한 그리고 지역적인 것과 지구적인 것의 관계에 대한복합적이고 역사적인 시각을 요구받게 된다. 이제 민족 영화는 변화하기 쉽고 영구적이지 않은 개념이자 초경계적인 transboundary 과정으로서 다시 모습을 갖추어 가게 되는 것이다.22)

    여기에서는 이런 전환의 과정을 대표적인 초민족적 영화인 할리우드 영화와 여타 민족 영화들 간의 관계성, 제3영화, 초아시아 trans-Asian영화라는 세 개의 틀을 통해서 살펴보고자 한다.

    할리우드와의 관계 속에서 민족 영화는 할리우드 영화의 영토화에 대한 반응이자 저항으로서 탈영토화를 모색하는 민족적 기획으로 정의될 수 있다. 그러나 이 때 민족 영화에 부여되는 ‘대안성’과 ‘새로 움’은 양가성을 띠게 되는데, 민족 영화가 추구하는 전략이 할리우드의 지배에 대한 저항과 세계 시장에서의 소통과 판매를 위한 것이라는 양면적 의도를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한 한계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예술 영화의 유럽 모델’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는 텍스트적으로 할리우드와 변별되고 토착적 생산을 주장하며 ‘예술영화관’이라는 특화된 배급 채널과 상영 통로를 통해 국내외 시장에 접근하는 유럽의 예술 영화들을 대상으로 한다. 이 모델을 지지하는 담론들은 민족적 긍지, 고향, 민족문화의 정체성을 확고하게 주장하고 민족 문화 및 문학적 전통과 질을 주장하는 전형적인 부르주아 민족주의 이데올로기라면, 민족 영화를 1960년대부터 70년대까지 번성하던 유럽 예술 영화 속으로 붕괴시키는 설명이라고 할 수 있다.23)

    그렇다면 이제 할리우드 영화를 각 민족의 적대 개념으로서가 아니라 영화적 경험에 의한 전지구적인 근대성의 일환으로 보는 관점이요구된다. 즉 다양한 관객들을 연결시켜 하나의 집합적 단위를 구성하 게 하는 이른바 초민족적 대중성으로 할리우드를 바라보면서, 기존의중심 대 주변의 이분법을 넘어서서 할리우드의 헤게모니를 다른 방식으로 개념화하고 또 탈중심화할 필요성이 제기된다.

    우선 할리우드의 세계 영화시장 지배와 초민족적 대중성은 할리우드를 단순히 민족 영화의 타자로 보기 어렵게 만든다. 할리우드 영화는 단순히 미국의 영화가 아니라 영화와 관련된 제작시스템, 미학, 이 데올로기를 전지구화, 보편화해온 일종의 ‘모듈’로서, 이는 전지구적 시장에서 독과점 체제를 유지하기 위한 보편주의 전략이 성공을 거둔결과이다. 즉 할리우드는 철저하게 미국적인 문화와 정체성을 전세계에 성공적으로 표현하고 전달하여 초민족성과 탈민족성을 획득함으로 써 민족적 예외주의를 넘어서고 자연화된 참조틀이자 표준으로 자리잡게 된 것이다.24) 이런 역사적 과정에 대한 인식 속에서 헤이워드는 할리우드의 헤게모니를 ‘패러-민족주의 para-nationalism’ 형식으로 개념화할 것을 제안한다. 그녀는 ‘근접 near’, ‘초월 beyond’, ‘결점 있는 defective/비정상적 abnormal’이라는 ‘para’의 의미 중에서 세 번째의 것으로 할리우드의 헤게모니를 정의하면서 할리우드가 경제적, 문화적 측면에서 어떻게 식민주의적인 영향을 끼쳐왔는가를 분석한다. ‘식민주의는 식민화된 타자에게 식민주의적 담론과 이미지를 부과하는 자기애적인 실천’이라는 파농의 지적과 마찬가지로, 패러-민족주의적인 할리우드 영화 역시 식민화된 사람들이 할리우드의 산물을 모방하게 만든다. 그런데 식민주의 내의 이런 자기 반영성은 민족주의에서 시작된 인종, 젠더, 섹슈얼리티 등에 대한 ‘무지 blindness’를 만들어내면서 타자의 문화를 ‘모자란 것 less-than’으로 간주하는 병리학을 낳게 된다는 것이다.25)

    1960년대 이후 라틴 아메리카를 중심으로 한 급진 정치학과 결합되어 민족 해방 및 탈식민을 위한 문화적 투쟁의 일환으로 등장한 제3영화는 할리우드 및 유럽 예술영화와 구별되는 또 하나의 민족 영화 모델로 발전해왔다. 문화적인 것과 정치적인 것의 관계에 대한 질문을 재설정하기 위해 제안된 용어인 제3영화는 다양한 문화적 전통들과의 만남을 새롭고 정치적이며 예지적인 영화적 담론 속으로 재공식화한다. 26) 민족적 정체성 혹은 문화적 진위성에 대한 고민을 식민지적 혹은 제국주의적 형성체들의 다면성에 대한 인식에서 출발하는 제3영화담론들은 제1세계 민족 영화 개념과 민족적 문화 주권의 개념들을 무효화시키는 동시에 제3영화를 종족적 배경 및 본토와 일치시키는 서구의 안이한 가정도 단호하게 거부한다.27) 우선 이 담론은 부르주아 개인주의에 대한 비판에 기초하여 제1영화(할리우드)와 제2영화(유럽의 작가 및 예술영화)를 동일한 것으로 보았고, 제3영화가 ‘역사적으로 분석적이면서 문화적으로 특정한 영화 담론 식’28)과 관계될 때 그 급진적 날카로움은 대부분의 제3세계 영화 생산과 구분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제3영화는 그 이름 하에서 다양한 역사와 문화정치학을 지닌 제3세계 영화들을 끊임없이 동질화시키고자 하는 시도들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또한 예술 영화의 범주와 상당 부분 겹치고 예술 영화 와 동일한 국제적 배급 및 상영 채널을 추구하게 되면서 전투적인 지하 관객들을 잃어가고 있다.29)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3영화가 민족 영화 범주의 하나로 여전히 유효할 수 있는 것은, 불균등한 전지구적경제학과 문화 권력의 초국적 탈중심성이 역설적이게도 주변부가 스스로 말할 수 있는 권력의 공간을 생산해내는 과정30) 에서 제3영화 야말로 바로 주변부가 재현되기 위해서 갈등하는 대표적인 공간으로남아 있기 때문이다.

    1990년대 이후 영화 연구에서 ‘민족 영화’ 모델 및 일반적으로 민족과 관련된 이슈들에 대한 관심이 줄어드는 반면 이에 상응하여 초민족적인 것에 대한 관심이 증대된다. 이는 물론 문화의 세계화를 통해 유럽과 미국 중심의 문화적 기획과 거대 서사가 탈중심화되는 동시에 경계를 넘는 문화 이동 현상들이 민족주의적 헤게모니를 약화시킨 결과 중의 하나이다. 이런 맥락 속에서 종종 초민족적인 것은 민족 정체성이라는 고정된 경계에 대항하거나 그 경계를 가로질러 작동함으로써 지역적인 것과 동맹 가능한 것으로서 주목받게 된다.31) 그 렇다면 민족적인 것이 이전과는 달라졌지만 완전히 사라지지도 않은 시대에 ‘초민족적 영화’는 어떤 모습과 방식으로 등장하게 될 것인가?

    현재 민족 영화에서 초민족 영화로의 이론적 전환이 일어나면서 초민족 영화가 민족 영화라는 이론적 틀의 대안으로 사용되기 시작하고는 있지만, 이런 전환이 실제로 일어난 시기가 과연 언제부터인가 그 리고 이런 변화를 뒷받침할만한 텍스트로 과연 어떠한 것들이 있는가와 관련해서 논란의 여지가 많은32) 것도 사실이다. 그렇다면 ‘초민족적’이라는 개념을 국가를 가로질러 사람과 제도를 연결짓는 전지구적 힘이라고 정의했을 때, 영화에서 초민족적이라는 것은 무엇이고, 초민족 영화는 민족 영화와 어떤 차이를 갖고 있는가? 여기에서는 이런 질문에 대한 대답을 ‘초아시아 영화’라는 개념적 틀을 경유해서 찾아보고자 한다.

    1980년대 말과 90년대 초에 영화 연구에서 ‘역사주의적’ 관점이 중요해지고 민족 영화의 위상에 대한 문제제기가 일어나고, 전지구화 과정에서 동아시아가 중요한 경제지역으로 부상하면서 ‘아시아 영화’라는 비평적 개념이 등장하게 된다. 이 때 아시아 영화는 단순히 할리우드의 부정적 거울 반사가 아니라, 세계 영화를 할리우드와 그 나머지 민족 영화로 구분하던 기존 시각에 대한 대안이자 그 자체로서 미학적 새로움과 영화의 미래를 담보하는 긍정적 차이로 찬양된다.

    하지만 아시아 영화라는 개념이 민족 영화 연구에서 생겨난 문제들을 자동적으로 해결해주지 못할 뿐만 아니라 아시아 영화에 대한 관심과 이론화 자체가 서구에 의해 주도되면서 결국 영화 연구의 분야 에서 서구의 헤게모니를 유지시켜 주는 역할을 하게 된다. 이는 결국할리우드의 경제적 침략과 문화적 식민지화의 위협에 대항하기 위해하나의 일관된 정체성으로 지역 영화를 고안하려는 시도는 필연적으 로 실패할 수 밖에 없다33)는 사실을 보여주며, 나아가서 아시아 영화에 조급하게 긍정적인 정체성을 부여하는 대신에 비판적 개념으로 재 절합할 필요성을 제기한다.

    이에 요시모토는 아시아 영화가 할리우드에 대한 상상적 대안이나할리우드의 단순한 지역적 변형 또는 본질화된 문화적 패턴이나 문명적 특징들의 발현과 등치될 수 없는 비판적 개념으로 재형성되어야 하지만 ‘초국적 아시아 영화 trnasnational Asian cinema’라는 개념 역시 다국적 자본과 전지구적 문화의 흐름을 단순하게 재강화할 위험이 있음을 지적한다. 따라서 그는 그 개념들 대신에 ‘초-아시아 영화 trans-Asian cinema’라는 새로운 개념을 제안한다.34) 그에 따르자면, 진보적 비평 행위로서의 초-아시아 영화는 아시아 영화의 독특함이나 아시아 내의 다양한 민족 영화들을 아무 문제없이 옹호하는 태도나 다문화주의의 이름으로 차이를 탈역사화하고 탈정치화하는 다국적 자본의 논리를 거부한다. 대신에 초-아시아 영화는 아시아라는 개념의 모순에 근거해 질문을 던지고 대안적인 연합을 만들어내면서 자본, 정보, 권력의 신자유주의적 네트워크를 분열시킴으로써 새로운 대항 영화의 형성을 주도하는 역할을 한다.35)

    여기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가 헤마 라마샨드란은 ‘영역과 경계를 관통해서 넘어설 수 있음’과 ‘경계, 균열, 주변부, 이산적인 제3의 공간’이라는 ‘트랜스’의 의미를 더욱 강조하면서 ‘초-아시아 영화’ 개념을 ‘아시아 디아스포라 영화’로 확장시킨다. 그녀에 따르자면, 디아스포라영화는 민족 정체성과 민족 문화에 관한 확고하고 지배적인 정의 자체를 문제시하는 동시에 안정된 정체성과 경계지어진 공간의 탈영토화를 명백하게 보여준다.36) 따라서 탈식민성, 혼종성, 번역, 제3영화,소수의 문화적 생산 등을 특징으로 하는 디아스포라 영화를 통해서 기존에 민족 영화 담론의 지배적인 공식이었던 ‘영화=민족=정체성’은 불신임과 해체의 위기에 직면하게 되는 것이다.37)

    21)Higson, op. cit,, p.69.  22)Ulf Hedetoft, “Contemporary Cinema: Between Cultural Globalization and National Interpretation”, M. Hjort & S. MacKenzie, eds., op. cit, p.282.  23)Stephen Crofts, “Reconceptualizing National Cinema/s”, Valentina Vitali & Paul Willeman, eds., ibid., p.45.  24)Hedetoft, op. cit, p.280.  25)Hayward, “Framing National Cinemas”, M. Hjort & S. MacKenzie, eds., op. cit, pp.96-7.  26)Jim Pines & P. Willeman, “Introduction”, Jim Pines & P. Willeman, eds., Questions of Third Cinema, BFI, London, 1989.  27)Crofts, op. cit, pp.48-9.  28)Willeman, “The Third Cinema Question: Notes and Reflections”, Framework 34, 1987, p.8.  29)Crofts, op. cit, p.47  30)Julianne Burton, “Marginal cinemas and mainstream critical theory”, Screen 26(3-4), 1985  31)롭 윌슨, 「세계화를 향한 길 위의 한국영화: 세계/지역적 역학을 추적하기, 혹은 왜 임권택은 이 안이 아닌가?」, 김소영 기획, 『한국형 블록버스터: 아틀란티스 혹은 아메리카』, 현실문화연구, 2001, 263쪽.  32)미츠요 와다-마르시아노, 「블라디보스톡에서 생각하는 일본: ‘초민족적’ 영화에서 민족 찾아내기」, 김소영 편저, 『트랜스: 아시아 영상문화 컨퍼런스』, 현실문화연구, 2006, 288쪽  33)미츠히로 요시모토, 「민족적/국제적/초국적: 트랜스 아시아 영화의 개념과 영화비평에서의 문화정치학」, 김소영 편저, 위의 책, 284쪽.  34)요시모토, 위의 논문, 288쪽.  35)요시모토, 「동아시아와 영화의 정치학」, 『부산국제영화제 10주년 기념 국제학술대회-아시아 영화 연구』, 제10회부산국제영화제, 2005, 144쪽.  36)헤마 라마샨드란, 「‘트랜스 아시아’ 영화(들)이라는 문제에 대하여」, 김소영 편저, 앞의 책, 333쪽.  37)라마샨드란, 위의 논문, 335쪽.

    5. 민족 영화 담론의 과제들

    민족 영화 담론이 걸어온 이와 같은 과정을 통해 민족 영화 개념이 현대의 문화구성체들이 지닌 내적 다양성이나 다른 문화구성체들 간의 중첩과 상호 침투를 온당하게 평가하지 못한다는 사실이 분명해졌 다.38) 그렇다고 해서 영화 연구에서 민족 범주를 단순하게 폐기해서도 안 될 것이다. 대신에 민족 영화 연구는 이제 근대 이후 세계 질서와 구조를 지배해온 가장 강력한 힘 중의 하나였던 민족주의 이데올로기는 물론이고 현재 모든 생산적인 차이들을 위협하고 있는 전지구적 자본주의를 경계하고 비판하면서 정치적, 미학적으로 새로운 대항 영화를 생성해내야 한다는 과제에 직면해있다.

    이는 한편으로는 ‘대문자 민족 Nation’에 대해, 다른 한편으로는 ‘대 문자 영화 Cinema’에 대해 문제제기하면서 각각을 비판적으로 재구성 하는 과정을 요구한다. ‘민족’은 ‘민족적인 것’ 혹은 ‘초민족적인 것’ 과의 관련 속에서 유동적이고 열린 의미로 재개념화되어야 한다면,‘영화’는 지배적인 담론의 헤게모니를 침해하고 안정된 정체성과 경계지어진 공간들을 탈영토화하는 역할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럴 때 민족 영화는 대중적인 기억을 순환하고 절합할 수 있는 그리고 새로운 정치적, 문화적 정체성들의 생산에 참여할 수 있는 텍스트가 되면서 민족 문화구성체들의 다양성과 민족의 삶이 지닌 복합성들을 재양식화39)하는 중요한 통로가 될 수 있다.

    민족 영화 연구는 비교 연구의 중요한 장이다. 비교 연구를 통해 개별적인 민족 영화가 환원불가능한 특수성을 소유하기 어렵고 할리우드 영화를 비롯한 어떤 민족 영화도 대문자 영화와 등치될 수 없다 는 것이 드러나게 되고 궁극적으로는 특히 비서구의 영화 연구를 포박하고 있던 식민성이 해체될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할리우드와 다른 민족 영화 간에 존재하는 불평등한 경제적, 문화적 교환이라 는 맥락 속에서 토착 장르의 생성이나 생존이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는가, 이런 토착 장르들은 민족 영화의 범위와 내용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와 같은 이슈들에 대한 검토는 흥미롭고 유의미한 작업일 수있다. 이를 통해 보편적 장르라는 틀이 각각의 특수성을 지닌 민족적인 것들과 교차하는 과정이 분석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앞서 언급된 ‘초-아시아 영화’나 ‘디아스포라 영화’는 물론이고 민족 공간의 변방을 전경화하는 ‘변방 영화 marginal cinema’와 같은 개념들은 세계화와 동시에 일어나는 지역적인 것의 가치증가라는 역설 그리고 이로 인해 민족주의 담론 내에서 국지적 parochial인 것과 주변적인 것peripheral이 중요해지고 있음을 입증한다40)는 점에서 좀 더 이론화되어야 할 필요성이 있다. 그러나 이런 개념들이 내포하고 있는 일련의 차이들을 ‘다르지만 하나인’ 다문화적인 것 multicultural으로 볼 것인지, 바바가 ‘문화적 미결정성 undecidability’의 장소라고부른 ‘서로 분리된 문화들’을 의미하는 잠재적으로 복수문화적인 것pluricultural으로 볼 것인지가 중요하다. 특히 ‘초-아시아 영화’와 같은개념의 경우에 문화의 혼종성과 트랜스적 흐름에 대한 연구가 민족적인 것, 국제적인 것, 초민족적인 것의 구성 내에서 지리적 위치와 물리적 경계의 중심성을 아무런 문제 제기 없이 재강화할 수 있다41)는 점이 경계되어야 할 것이다.

    38)Higson, op. cit, p.72.  39)John Hill, “The issues of national cinema and British film production”, Duncan Petrie, ed., New Questions of British Cinema, BFI, London, 1992, p.16.  40)Hayward, “Framing national cinema”, M. Hjort & S. MacKenzie, eds., op. cit, p.94.  41)요시모토, 「민족적/국제적/초국적: 트랜스 아시아 영화의 개념과 영화비평에서의 문화정치학」, 김소영 편저, 앞의 책, 28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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