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의 꿈>은 극영화 중심으로 편제된 대중영화시장에서 매우 독특한 면모를 보여주는 작품이다. 뿐만 아니라 근래 비약적 성과와 약진을 보여주는 한국독립다큐멘터리영화 지형 안에서도 자신만의 자리를 확보하게 되었다. 특히 사건과 서사 중심의 다큐멘터리영화 지형에서 이미지 중심의 시적 양식(poetic mode)을 견지하고 에세이 다큐멘터리의 가능성을 실험하는 작품으로 주목받고 있다.
<철의 꿈>은 스토리의 논리적 구성과 인과(因果)에 따른 방식이 아니라 이미지의 유사성과 연상작용에 의해 전개되는 영화이다. 따라서 형태, 사이즈, 리듬, 색채, 분위기, 톤, 음악 및 음향 등의 사운드효과가 이 영화에서는 의미 있게 작동하고, 이들 요소는 보는 이의 감각을 자극하며 정서를 일깨운다. 시각적 쾌락과 숭고의 감정과 몽환적이고 멜랑콜리한 정서가 거기 담겨있는 것이다.
또한 <철의 꿈>은 ‘슬픈 연애담’의 외피를 두른 채 ‘신을 찾는’ 여정을 떠나는 모양새를 취한다. 이 영화는 ‘끝’이라는 시간과 연결되어 있는데, 사랑의 끝(떠난 여자), 삶의 끝(죽은 자를 위한 천도제), 산업화의 끝이 상관성을 이루는 형식이다.
<철의 꿈>은 선사시대의 암각화와 고래를 소환하고, 고래신을 숭배했던 옛사람들의 흔적을 상상하고 ‘재현’한다. 이미지의 유사성과 연관성은 반구대 암각화의 고래를 거대한 배로 연결시킨다. 모양과 크기, 바다라는 거대 공간에서 생존함으로써 인간에게는 불가한 물리적 한계를 뛰어넘는다는 점이 고래와 배의 유사성을 강화하고, 그럼으로써 신이라는 상징성을 공유한다. 아울러 배는 그 재료이자 본질인 철로 연결되고, 철을 생산하고 담금질하는 제철소로 이어진다.
제철소 안은 복잡하고 거대한 기계의 스펙터클, 엄청난 온도의 뜨거운 불과 커다란 용광로, 상대적으로 작아 보이는 인간의 존재감으로 인해 이곳이 철신(鐵神)의 영역임을 선언한다. 그리고 그 철로 배를 만들고 그 큰 배가 고래신을 대체하는 산업화시대의 ‘새로운 신’으로 부상하며 ‘철의 꿈’은 현실화 된다. 이 과정에 BGM으로 깔리는 구스타프 말러의 교향곡 1번 <거인>(Titan)은 타이틀의 의미와 함께 꽤나 인상적인 톤으로 새로운 신의 이미지를 받쳐준다. 또한 조선소에 설치된 골리앗 크레인의 느린 움직임은 오히려 이 ‘거인’의 존재감을 인상적으로 각인시킨다.
<철의 꿈>은 거대 이미지와 조형적 사물들을 도처에 배치한다. 그럼으로써 시각적으로 압도하고 스펙터클에 대한 경외(敬畏)로 이끈다. <철의 꿈>에서의 시각화는 대조적 방식을 통하여 전달되는데, 롱숏과 클로즈숏이 교차하고, 하이앵글과 로우앵글에 의해 인상적인 이미지가 만들어진다. 제철소 내부는 로우앵글에 의해 깊이가 강조되고 이를 통해 웅장함과 거대함을 시각화하며, 제철소나 조선소 외부의 풍경은 익스트림 하이앵글에 의해 포착되어 너비를 강조한다. 이러한 시각화 방식은 대상에 대한 물신적 숭고를 불러일으킨다.
In addition,
The steel mill consists of the spectacle of complex and huge machines, fire at extremely high temperature and a big smelting furnace, and humans look relatively small in the steel mill. Thus, it is declared that the steel mill is the area of God of Iron. The boat is made of the iron and the big boat emerges as a ‘new god’ in the industrial era to replace the whale god. ‘Dream of iron’ is realized. During these processes, Gustav Mahler’s symphony No. 1,
A large image and figurative objects are placed throughout
산업적 통계수치로 볼 때 2014년 한국영화는 전년에 비해 그 성장세가 크게 둔화된 양상을 보인다. 1761만 명이라는 경이적인 관객스코어를 기록한 <명량>(김한민 감독)과 잇따라 1천만 명을 넘어선 <국제시장>1)(윤제균 감독)으로 인해 한국영화가 호황을 누리는 듯하지만, 이는 일종의 ‘착시현상’에 기인하는 것이다. 오히려 투자수익률은 전년도 14.1%에서 0.3%2)로 급격하게 떨어져 내용적으로는 그다지 좋지 않은 지표를 보여주고 있다. 대신 영화의 장르와 형식은 다양해져서 <명량>, <해적>(이석훈 감독), <군도>(윤종빈 감독)와 같은 블록버스터가 있는가 하면, <한공주>(이수진 감독), <도희야>(정주리 감독), <경주>(장률 감독), <자유의 언덕>(홍상수 감독) 같은 저예산 작가영화들이 균형을 잡아주었다. 여기에 다큐멘터리영화가 한국영화의 중요한 축을 형성하면서 <철의 꿈>(박경근 감독), <논픽션 다이어리>(정윤석 감독),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진모영 감독)와 같은 수확을 거두었다.
다큐멘터리영화는 근래 한국영화 지형에서 양적 · 질적으로 성과를 보여주는 영역이다. 특히 독립영화 진영에서 사회적 · 정치적 쟁점을 사유하고 발언하는 형태로 다큐멘터리영화를 활용하면서 한국다큐멘터리영화는 주목할 만한 작품들을 내놓을 수 있었다. 1988년 <상계동올림픽>(김동원 감독)이 한국독립다큐멘터리영화 역사에서 일종의 ‘이정표’를 제시한 작품이라 한다면, 변영주 감독의 <낮은 목소리>(1995), 김동원 감독의 <송환>(2004), <우리 학교>(김명준 감독, 2006), <할매꽃>(문정현 감독, 2009), <경계도시2>(홍형숙, 2009) 등을 거쳐 2011년도 <두 개의 문>3)(김일란 · 홍지유 감독), 2014년 <논픽션 다이어리>(정윤석 감독), <다이빙 벨>(이상호, 안해룡) 등에서 그 맥을 이어 가고 있다. 또 다른 한 편에서는 2008년도 <워낭소리>와 2014년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4) 같은 이른바 ‘휴먼다큐영화’가 다큐멘터리영화 흥행사를 다시 쓰고 있다.
이와 같이 비약적 성과와 약진을 보여주는 독립다큐멘터리영화 지형 안에서도 <철의 꿈>은 또 다른 자리에 위치하고 있다. <철의 꿈>은 극영화 중심으로 편제된 대중영화시장에서 괄목할 만한 성취를 보여주었는데, 이 작품은 특히 사건과 서사 중심의 다큐멘터리영화 지형에서 이미지 중심의 시적 양식(poetic mode)5)을 견지하고 에세이 다큐멘터리의 가능성을 실험하는 작품으로 주목할 만하다. 이 작품의 압도적인 시각화는 숭고를 체험하는 데 있어서 부족하지 않다는 점도 기억에 남는다.
『다큐멘터리 입문(Introduction to Documentary)』의 저자 빌 니콜스(Bill Nichols)는 시적 양식에서는 설득의 행위나 지식의 전시보다는 분위기나 톤, 정서적 감흥이 훨씬 강조된다6)고 지적한다. 니콜스의 지적과 마찬가지로 <철의 꿈>은 스토리의 논리적 구성과 인과(因果)에 따른 전개방식이 아니라 이미지의 유사성과 연상작용에 의한 연결고리의 형성에 힘을 기울임으로써 시적 양식을 차용한다. 따라서 형태, 사이즈, 리듬, 색채, 분위기, 톤 그리고 음악과 음향 등 사운드효과가 이 작품에서는 의미 있게 작용하고, 이들 요소는 보는 이의 감각을 자극하며 정서를 일깨운다. 시각적 쾌락과 숭고의 감정과 몽환적이고 멜랑콜리한 정서가 거기 담겨 있는 것이다.
이는 또한 <철의 꿈>에 대한 해외의 평가에서도 드러나는데, <스크린 데일리>는 “스타일과 이미지의 경탄할 만한 혼합을 보여 준다”고 했고, <트위치 닷컴>은 “사실보다는 카타르시스를 통해 가르침과 영감을 주는 자신만만하고 몰입도 높은 작품”7)이라는 평가를 내렸다. 베를린국제영화제 넷팩상 심사위원들 역시 “한국역사를 독특한 개인적인 관점으로 시적이고 최면에 걸린 듯 선사시대부터 최근의 이미지와 느낌을 에세이 방식으로 압축해 구성한 수작”(Commentary by the Jury of the NETPAC Award)8)이라는 코멘트를 남겼다. 로마아시아영화제는 "강렬한 작가적 연출, 또 다른 영감을 자아내는 이미지의 힘과 도발적인 사운드, 영화적 언어 사이에서 다큐멘터리와 픽션의 경계를 뛰어넘어버리는 능력이 있다"고 평가9)하며 최우수 다큐멘터리상을 안겨주었다.
1)<국제시장>은 2014년 12월 17일 개봉하였으므로 2014년 영화결산통계에는 포함되지 않는다. 2)영화진흥위원회, <2014년 한국영화산업 결산>, 2015 3)관객수 14만4602명(2014. 11. 29 영화진흥위원회 영화관 입장권 통합전산망 기준). 4)관객수 479만2916명(2015. 2. 11 영화진흥위원회 영화관 입장권 통합전산망 기준). 5)시각적 조합, 톤이나 리듬, 묘사적 연결, 형태적 구성을 강조한다. 대표작으로는 <다리(The Bridge)>(1928), <실론의 노래>(1934), <밤과 안개(Night and Fog)>(1955) 등이 있다. 이 양식은 실험영화, 사적인 영화, 아방가르드 영화와 밀접한 관계를 갖는다. 빌 니콜스, 『다큐멘터리 입문』, 한울아카데미, 2005, 75쪽 6)빌 니콜스, 앞의 책, 172쪽 7)맥스무비 취재팀, “인터뷰: <철의 꿈> 박경근 감독, 산업화 시대의 ‘철신’의 신화”, press@maxmovie.com, 2014.11.12 8)“<철의 꿈> 베를린-뉴욕 이어 토론토영화제 진출”, widecoverage.co.kr, 2014.8.19 9)안이슬, <‘철의 꿈’ 로마아시아영화제 다큐멘터리상 수상>, 《스타뉴스》, 2014.10.14
<철의 꿈>은 다큐멘터리이다. 빌 니콜스의 주장에 의하면 "다큐멘터리는 현실의 재생물이 아니라 우리가 이미 점하고 있는 세계의 재현(representation)"10)이다. 그는 또한 규범과 관습을 통해 다큐멘터리를 구별할 수 있다고 보았는데, 이를 테면 신의 목소리 방식의 해설, 인터뷰, 현장녹음, 어떤 장면에서 지적한 사항을 더 설명하거나 복잡하게 하는 이미지를 제시하기 위해 다른 장면으로 넘어가는 장면전환방식, 영화의 중심인물로 사회적 배우 또는 일상의 역할과 활동을 해나가는 사람들에 의존하는 것 등이 다큐멘터리 영화에 공통적으로 존재하는 규범 및 관습11)이라고 지적했다. 니콜스가 주장한 바대로 다수의 다큐멘터리는 해설(내레이션), 인터뷰, 현장녹음, 일반인들 또는 관련된 사람들의 역할과 활동에 의존하여 진행하는 등 다큐멘터리의 규범 및 관습을 따른다. <철의 꿈>에서도 내레이션, 현장녹음, 관련자들의 역할과 인터뷰, 예의 장면전환 방식 등의 규범과 관습을 찾을 수 있다.
그러나 <철의 꿈>이 이러한 다큐멘터리의 규범과 관습을 적용하는데 있어서 차별적인 지점은 객관적 해설 대신 주관적 독백을 차용하고, 팩트를 보완하는 상상의 이미지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며, 관련 인물들의 역할이나 활동이 지극히 제한적이고, 논리적 서사보다는 감성과 연상작용에 의한 전개방식 및 수평적 몽타주의 활용을 선호한다는 점이다. 이러한 방식은 서사구성에 있어서 조밀하고 촘촘하게 얽혀있는 방식보다는 여백이 많은 형태로 구성되면서 시적이고 에세이적인 분위기를 강화하는 요소로 작용하였다.
‘에세이적 분위기’는 <철의 꿈>의 장르적 특성을 살펴보는 데 있어서 주요한 양식적 요소로 작용한다. 국어사전에서는 ‘에세이’란 용어의 뜻을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듣고 본 것, 체험한 것, 느낀 것 따위를 생각나는 대로 쓴 산문 형식의 짤막한 글’12)로 풀이한다. 보통 에세이는 문학의 한 양식이자 장르로서 어떤 틀이나 규범으로부터 자유로운 형식을 지향하는 것으로 간주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에세이의 특징을 도입한 영화들을 에세이영화(the essay film)라고 했을 때, 그에 걸맞은 정의는 아방가르드 영화인 한스 리히터(Hans Richter)에게서 발견할 수 있다. 리히터는 에세이영화에 대해 “지적이지만 감정적이기도 한 영화, 이미지를 관념에 제공하거나 반대로 개념을 묘사할 수도 있는 새로운 형식”13)으로 설명한다.
또한 바쟁(André Bazin)은 크리스 마르케(Chris Marker)의 <시베리아에서 온 편지 Letter from Siberia, 1957>를 ‘영화로 이루어진 에세이 다큐멘터리’라고 표현하면서, 마르케 영화의 근본적인 질료(primary material)를 지적인 것, 특히 언어적 지성(verbal intelligence)으로서 묘사한다. 아울러 마르케의 수평적 몽타주(a horizontal montage)를 쇼트와 쇼트의 관계를 통해 감각의 지속을 유지하는 전통적 몽타주의 대안14)으로 간주한다.
미국의 문학평론가이자 에세이스트이고 영화비평가인 필립 로페이트(Philip Lopate)는 「켄타우로스를 찾아서: 에세이필름 In Search of the Centaur: The Essay Film 」이라는 글에서 보이스 오버(voice-over), 자막, 간자막을 에세이영화의 필수요소로 꼽았다.15) 이는 문학 장르로서의 에세이적 특성을 에세이영화에도 엄격하게 적용해야 한다는 그의 생각을 반영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영화학자 티모시 코리건(Timothy Corrigan) 역시 에세이영화의 내러티브의 결핍과 사적인 발언, 사적인 시각의 상호작용이 때로는 보이스 오버라는 형식을 통해 나타나고 이 주관적이고 전지적인 상호작용과 현실에 대한 질문과 테스트들이 문학의 에세이가 그러한 것처럼 영화의 구조를 형성한다16)고 보았다.
또 다른 미국 영화학자 폴 아서(Paul Arthur)는 에세이영화를 기존 다큐멘터리영화와의 단절이라는 흐름에서 설명하며, 에세이영화를 보다 확장 가능성 있는 하나의 장르로서17) 파악한다. 그는 에세이란 정확한 루트를 따지지 않고 목적지도 없는 수사적인 여행, 즉 과정지향(process-oriented)의 형식이라고 설명하며, 에세이영화는 이러한 에세이의 형식적 특징을 그대로 담지하고 있다18)고 보는 것이다.
최근 에세이영화는 특별한 범주의 영화관습으로서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다.19) 세계적인 영화저널 《Sight & Sound》(August, 2013)에서 최근 이슈로 다룬 것도 에세이영화이다. 여기에는 에세이영화의 역사 및 형태, 초석이 되는 획기적인 에세이영화 12편20)(a dozen influential milestone essay films)을 뽑아 분석한 글도 있다.
<철의 꿈>은 보이스 오버, 자막, 관념과 사유에 제공되는 이미지의 연쇄, 기하학적 조형성을 작품의 주요 장치이자 내러티브를 보완해주는 역할로 활용한다. 그럼으로써 <철의 꿈>은 기묘하게도 리히터가 언급한 ‘지적이지만 감정적이기도 한 영화’에 접근한다.
10)빌 니콜스, 앞의 책, 56쪽 11)빌 니콜스, 앞의 책, 65쪽 12)Daum 한국어사전 http;//dic.daum.net 13)Laura Rascaroli, 24쪽, 박진희, 「에세이영화의 조건과 경계에 관한 고찰: 에세이영화의 정의를 중심으로」, 중앙대학교 첨단영상대학원 석사학위 논문, 2011, 30쪽 재인용. 14)BFI, Sight & Sound August 2013 Issue, www.bfi.or.uk 15)Philip Lopate, 283쪽, 박진희 앞의 논문, 35쪽 재인용. 16)Timothy Corrigan, 87쪽, 박진희, 앞의 논문, 35쪽 재인용. 17)박진희, 앞의 논문, 35-36쪽. 18)Paul Arthur, "Essay Questions: From Alain Resnais to Michael Moore", ⟪Film Comment⟫ Jan/Feb 2003; 39, 1, 59쪽, 박진희, 37쪽 19)BFI, 앞의 글 20)12편은 다음과 같다.
3. 주제-신을 찾아서: 고래(신), 철신(鐵神) 그리고 철의 꿈
<철의 꿈>이 주제에 접근하는 방식도 같은 맥락이다. <철의 꿈>은 ‘우리가 이미 점하고 있는 세계를 재현’하기 위해 선사시대의 암각화와 고래를 소환한다. 그리고 고래신을 숭배했던 옛사람들의 흔적을 암각화를 통해 상상하고 ‘재현’한다. 이미지의 유사성과 연관성은 반구대 암각화의 고래를 거대한 배로 연결시킨다.21) 모양과 크기, 바다라는 거대 공간에서 생존함으로써 인간에게는 불가한 물리적 한계를 뛰어넘는다는 점이 고래와 배의 유사성을 강화하고, 그럼으로써 신이라는 상징성을 공유한다. 아울러 배는 그 재료이자 본질인 철로 연결되고, 철을 생산하고 담금질하는 제철소로 이어진다. 그래서 이 작품에는 현대조선소와 포스코가 등장하고 그 터전인 울산과 포항이 배경에 있게 된다.
반구대는 울산 태화강 지류 내곡천 상류의 깎아지른 절벽을 일컫는 명칭이다. 이곳에는 선사시대 유적인 암각화가 있다.22) 암각화는 국보 제285호로 지정된 것으로서, 여러 동물과 사람, 도구 등이 새겨져 있으며, 동물의 생태적 특징이 매우 상세하게 표현되어 있는 바위그림이다. 탁본된 암각화를 보면 고래, 거북, 물개, 물새 등 바다동물과 사슴, 멧돼지, 호랑이, 여우, 늑대, 족제비 등 육지동물들이 발견된다.23) 그 중에서도 울주 대곡리 반구대 암각화에는 58마리의 고래가 그려져 있으며, 흰수염고래, 향유고래, 귀신고래 등 종류별 고래의 특징이 정밀하게 묘사돼 있고, 새끼 고래를 업고 가는 고래 그림도 있다. 반구대 암각화의 백미는 작살 맞은 고래그림인데, 이는 인류 최초의 포경 그림으로서 매우 사실적으로 묘사되었으며 선사 암각화로서는 세계에서 하나뿐이라고 한다.24)
<철의 꿈>은 고래가 선사시대 사람들에 의해 신으로 섬겨졌을 것이라고 상상한다. “사람들은 암각화 앞에서 부족의 화합을 다지고 고래신을 숭배하는 제례의식을 가졌을 것이며, 춤꾼들은 고래신들과 어울려 춤을 추는 환상에 빠졌을 것”이라고 상상한다. 이러한 내레이션은 파란 바다 속에서 유영하는 고래의 모습을 인서트쇼트로 잡으며 이를 시각화 한다. 자료화면이나 재연장면을 통하여 팩트 중심으로 구성되는 다수의 다큐멘터리와 달리 <철의 꿈>은 상상을 시각화하는 방식으로 접근한다. 그래서 이 다큐멘터리는 시적이고 몽환적이기까지 한 이미지와 리듬을 내재화 시키는 것이다.
울산 반구대 암각화는 1970년대 댐이 건설되면서 물에 잠기게 된다. 선사시대의 고래신은 물속으로 사라지고 이를 대체할 새로운 ‘근대의 신’이 등장하게 되는데, 바로 커다란 유조선이다. 거대한 유조선은 고래신을 대체하는 이미지로 기능한다. 이로써 <철의 꿈>은 ‘신을 찾는’ 작업으로 규정된다.
이 다큐멘터리는 한 남자가 떠나간 연인으로 추정되는 승희라는 여자에게 쓰는 편지의 형식을 취하고 있다. 남자의 내레이션으로 여자가 떠난 이유가 밝혀진다.
“승희에게, 날 떠나며 말했지. 신을 찾고 싶다고. 우린 지금 믿을 것이 없는 세상에 살고 있는 것 같아.”
여자는 ‘신을 찾고 싶어’ 무당이 되었고 그래서 그의 곁을 떠났다. 남자는 ‘믿을 것이 없는 세상’에서 여자의 신보다 ‘더 구체적인 신을 찾아 (여자에게) 보여주고 싶어’ 한다. 이는 여자의 마음을 다시 얻고 싶어 하는 남자의 간절함 때문이다. 이렇듯 <철의 꿈>은 ‘슬픈 연애담’의 외피를 두른 채 ‘신을 찾는’ 여정을 시작한다. 남자의 내레이션에 조응하는 장면에서는 어느 사찰에서 올리는 천도제의 모습이 담겨있다. 독경과 타종, 바라춤을 추는 승려들의 모습이 담기고 이어 파란바다가 펼쳐진다. 이윽고 흑백필름 속 바다가 배경으로 등장하며 오프닝 크레딧이 나타나고 바다는 점점 색을 되찾는다. 이어 측량하는 사람들, 땅을 갈아엎는 불도저의 행렬 그리고 극부감(bird's eye view)으로 찍힌 현대조선소의 모습이 담긴 자료화면 위로 ‘철의 꿈’ 타이포그래피가 뜬다. 그리고 울산 태화강변의 암각화 지대가 화면내로 들어오면서 신을 찾는 남자의 여정은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남자는 암각화에 등장하는 고래에 관심을 기울인다. “옛사람들은 암각화 앞에서 부족의 화합을 다지며 고래신을 숭배하는 제례의식을 가졌고, 춤꾼들은 고래신들과 어울려 춤을 추는 환상에 빠졌을 것”이라고 상상한다. 파란 바다 속을 유영하는 고래와 신비롭게 들리는 고래의 음향이 그의 상상을 받쳐준다.
그러나 댐이 건설되면서 신들의 이미지는 물속에 잠겨버렸고, 사람들 앞에 ‘새로운 신’이 등장한다. 1972년 현대조선소가 건조한 50만 톤급 초대형 유조선 앨시아(Althea)25)의 등장이다. <철의 꿈>은 현대조선소의 유조선 기공식 장면을 과거의 푸티지(footage)를 이용하여 상세히 그리고 역동적으로 보여준다. 태극기와 함께 나부끼는 현대건설 깃발, 기공식에 배치된 중장비와 자동차들, 박정희 대통령과 정주영 현대 오너, 그리고 이를 보기 위해 몰려든 수많은 인파. 자, 이 정도면 새로운 신의 등장에 걸맞은 풍경 아닌가, <철의 꿈>은 그렇게 묻는 것처럼 보인다.
이 영화에서 푸티지를 활용하는 것은 단 두 신(scene)에서이다. 이미 앞에서 언급한 대로 현대조선소 유조선 기공식과 현대건설 노동자들의 노동쟁의 장면이 그것이다. 푸티지는 역사적 자료이다. 푸티지를 활용한다는 것은 역사를 소환함에 다름 아니며, 이는 또한 역사에 대한 감독의 관점과 해석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런 점에서 <철의 꿈>은 동시대의 역사에는 그다지 관심이 있어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그의 관심은 동시대가 아닌 저 멀리 선사시대인들의 꿈을 따라 잡으려 하는 것처럼 보인다.
<철의 꿈>은 작품 제목이 뜨기 전 위의 한시 자막으로부터 시작한다. 이 한시는 조선 숙종 임금때 관상감(觀象監)27)에 근무했던 이성지(李聖智)라는 인물이 지은 것이다. 그는 어룡사를 둘러보고 범상한 곳이 아니라고 했다고 한다. 모래벌판인 어룡사에 수많은 사람이 운집하여 살게 될 것이라 하자 같이 길을 나선 다른 이들은 믿지 않았고, 이에 이성지는 위와 같은 시를 지었다28)는 것이다. 이성지의 한시가 언급한 어룡사는 포항제철이 자리 잡은 지역 일대를 가리키는 것이라고 『포항시사(浦項市史)』는 설명하고 있다.
<철의 꿈>이 울산현대조선소와 함께 중점적으로 다루는 장소가 바로 포항제철, 포스코(POSCO)이다. 포스코의 신화를 견인했던 인물 고 박태준 회장의 영결식 장면으로 시작되는 포스코 신(scene)은 인상적인 제철소 이미지의 연쇄로 이루어진다. 거대한 제철소 용광로의 방사형 문, 그 문의 틈새로 번지는 쇳물의 붉은 기운, 하얀 연기, 건물과 건물을 잇는 컨베이어 시스템의 규모, 뜨거운 쇳물이 끓고 있는 용광로 등. 제철소 안은 복잡하고 거대한 기계의 스펙터클, 엄청난 온도의 뜨거운 불과 커다란 용광로 그리고 상대적으로 작아 보이는 사람의 존재감으로 인해 이곳이 ‘철신’의 영역임을 선언한다. 그리고 그 철로 배를 만들고 그 큰 배가 고래신을 대체하는 산업화시대의 ‘새로운 신’으로 부상하여 ‘철의 꿈’은 현실화 된다. 이 과정에 BGM으로 깔리는 구스타프 말러의 교향곡 1번 라장조 <거인>(Titan)은 타이틀의 의미와 함께 꽤나 인상적인 톤으로 새로운 신의 이미지를 받쳐준다. 또한 조선소에 설치된 골리앗 크레인의 느리고 장중한 움직임은 오히려 이 ‘거인’의 존재감을 인상적으로 각인시킨다.
<철의 꿈>에는 애상적 정조(情調)가 흐른다. 철이라는 무감(無感)한 대상에 대해서 애상적 정조라니 좀 낯설고 기묘하다. 애상은 내레이터의 멜랑콜리한 보이스 칼라나 몽환적 음악의 느낌 때문만은 아니다. 아마 이 다큐멘터리가 ‘끝’이라는 지점에 이르는, 사라져가는 것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때문은 아닐까?
실제 이 작품은 ‘끝’이라는 시점에서 시작한다. 내레이터의 편지투 독백에 의하면 그의 사랑은 ‘끝’에 이르렀다. 사랑하는 여자 승희가 신을 찾아 떠남으로써 그의 사랑은 끝난 것이다. ‘사랑의 끝’은 누군가의 삶의 ‘끝’과 접속한다. 느닷없이 이 작품에 천도제 장면이 들어오는 것은 바로 이와 같은 끝과 끝이라는 시간적 유사성 혹은 공통성에서 그 당위를 찾을 수 있다. 이는 또한 신화적 숭배의 ‘끝’으로 이어진다. 물속에 잠긴 암각화와, 고래를 포획하여 해부함으로써 고래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하고 신으로서가 아니라 숭고의 대상으로 그 위치를 설정하는 것이다. ‘끝’에 이른 고래신을 대체한 근대의 신인 ‘철신’도 역시 예전의 위용만하지 못하고, 북적이던 현장의 열기도 가라앉았다. 그래서 감독은 “지금 찍고 있는 이 영화가 암각화와 비슷하다고 생각”한다거나, “내가 그린 기계의 이미지들은 내 의도와는 상관없이 산업시대의 끝에 대한 이야기일까, 아니면 새로운 시작에 대한 이야기일까?”라고 질문하는지도 모르겠다.
박경근 감독은 한 인터뷰에서 <철의 꿈>이 ‘끝에 대한 이야기’임을 좀 더 분명하게 밝히고 있다.
감독의 말처럼 이 작품은 ‘끝’이라는 시간과 연결되어 있다. 암각화와 고래신 그리고 철신이 사라지거나 그럴 처지에 와 있음을 암시한다. 암각화는 물속에 잠겼고, 고래신은 신의 지위를 철이라는 산업화시대의 신에게 이양한 채 사람들의 포획대상으로 전락했으며, 산업화시대 또한 끝나가는 지점에 와 있다고 감독은 생각한다. 디지털과 지식정보, 심지어 나노기술의 시대에 크기나 규모로 압도했던 신의 형상은 이제 더 이상 사람들을 두렵게 하지 않는다. “고래를 포획할 수 있는 방법을 익힐 수 있게 됨에 따라 사람은 고래의 거대한 이미지가 주는 두려움과 불쾌감을 고래가 주는 숭고한 감정으로 바꿔버린 것”이고 그때서야 고래 이미지를 그릴 수 있게 되었으며 “비로소 고래는 신비로운 존재가 되었다(이 내레이션이 나올 때 조응하는 이미지는 포획한 고래를 사람들이 분해하는 장면이다).”
<철의 꿈>은 사랑의 끝(떠난 여자)과 삶의 끝(죽은 자를 위한 천도제), 산업화의 끝이라는 상관성을 형성한다.
21)포스터에 나오는 배의 정면은 거대한 고래처럼 보인다. 22)학계에서는 약 7000~3500년 전 신석기 유적으로 추정하고 있다. 23)http://bangudae.ulsan.go.kr/ 울산 암각화박물관 홈페이지 참조. 24)목상균, <다시 신화처럼 숨을 쉰다, 꿈 찾은 고래의 마을>, 《한국일보》, 2014.7.3 25)Althea는 여성의 이름이면서 식물학적으로는 접시꽃 속(屬)에 속하는 식물의 총칭이다. 우리 국화 무궁화도 여기에 속한다. 26)어룡사를 가리킨다. 어룡사란 지금의 포항제철이 자리 잡은 백사장 일대를 가리키는 것으로서, 지역에서는 어룡불, 어링이불이라고도 한다. 어룡사는 광의와 협의로 나누어 일컫기도 했는데, 광의의 어룡사는 동해면 약전동에서 형산강을 지나 포항시 두호동에 이르는 넓은 백사장을 가리키는 것이고, 협의의 어룡사는 형산강 하류를 중심으로 남쪽과 북쪽, 즉 현재 포항제철소가 자리 잡은 지대와 송도해수욕장 일대를 말하는 것이다. 포항시사편찬위원회, 『浦項市史』, 2010, 679쪽 27)조선시대 천문, 지리, 기후, 책력, 각루 등에 관한 일을 맡아보던 관청. 고려 때 서운관(書雲觀)으로 불리다 조선조 세조12년(1466년)에 관상감으로 개칭하였다. 연산 12년(1506년)에 사력서(司曆署)로 이름이 바뀌었다 중종때 다시 관상감으로 환원하였다(브리태니커 백과사전). 28)포항시사편찬위원회, 앞의 책, 679-680 29)여수정, <박경근 감독 “‘철의 꿈’ 잇는 군대 프로젝트 준비 중>, 《매일경제》, 2014.12.24
<철의 꿈>에서의 조선소와 제철소에 대한 쇼트들은 그 크기와 규모를 강조함으로써 숭고함마저 느껴지게 만든다. 마치 독일 사진작가 안드레아스 구르스키(Andreas Gursky)31)의 사진이 거대한 포맷, 과도한 유미화와 선명함과 같은 이미지의 시각적 과잉을 통해 물신적 숭고를 불러일으키는 것을 연상시킨다.
숭고(Erhaben/sublime)32)란 인간의 인식능력을 초월하는 크기와 힘에 관한 것으로서, 그 어원은 그리스어 hypsous이다. 일반적으로 ‘높이’, ‘상승’의 어떤 형태를 의미33)하였다. 역시 숭고에 해당하는 라틴어 sublimis는 직각이 아닌 위를 향하는 (경)사각34)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숭고 개념은 그리스 수사학자 롱기노스(Longinos)의 『숭고에 관하여 Peri Hypsous』라는 책을 통해 정립35)되면서 에드먼드 버크(Edmund Burke), 임마누엘 칸트(Immanuel Kant), 장 프랑수아 리오타르(Jean F. Lyotard) 그리고 들뢰즈(Gilles Deleuze)에 이르기까지 예술철학 혹은 미학에 있어 주요 개념으로 자리 잡았다.
기본적으로 숭고의 개념에는 ‘크기’의 문제가 내포되어 있다. 롱기노스는 숭고를 ‘정신에 있어서 큰 것을 만들어내는 능력’36)이라고 보았고, 버크는 ‘막대함’과 ‘무한함’을 숭고의 특성으로 들었37)으며, 칸트 역시 숭고의 일차적 규정을 ‘절대적으로 큰 것’38)으로 규정한다.39) 칸트는 “단적으로 큰 것을 우리는 숭고하다고 부른다”40)고 하면서 이는 ‘일체의 비교를 넘어선 큰 것’41) 즉 ‘절대적으로 큰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설명한다.
<철의 꿈>은 거대 이미지와 조형적 사물들을 도처에 배치하고 있다. 그럼으로써 시각적 압도와 스펙터클에 대한 경외(敬畏)로 이끈다. 거대한 제철소의 용광로, 그 방사형 문 틈새로 번져 나오는 뜨거운 쇳물의 붉은 기운, 쇳가루가 산처럼 쌓여 있는 모습, 거대한 컨베이어 벨트의 작동, 쇳물을 담은 육중한 화로, 골리앗 크레인의 위용, 거대한 유조선 그리고 현대조선소의 넓은 부지, 포스코의 화려한 야경 등, 모양과 색채, 높이와 질감, 빛과 속도가 이 영화의 조형성과 정조를 한껏 강화한다.
<철의 꿈>에서의 시각화는 대조적 방식을 통하여 전달되는데, 롱숏과 클로즈숏이 교차하고, 하이앵글과 로우앵글에 의해 인상적인 이미지가 만들어진다. 제철소 내부는 로우앵글에 의해 깊이가 강조되고 이를 통해 웅장함과 거대함을 시각화하며, 제철소나 조선소 외부의 풍경은 익스트림 하이앵글에 의해 포착되어 너비를 강조한다. 특히 버즈 아이 뷰와 같은 익스트림 하이앵글은 종종 신의 시점으로 치환되는 듯하다.
이러한 시각화 방식은 대상에 대한 물신적 숭고42)를 불러일으킨다. 제철이나 조선이 산업화시대의 자본생산에 앞장서면서 ‘굶주림의 고통과 가난의 수치심을 해결해주고 새로운 희망과 꿈을 주는’ ‘새로운 신’의 역할을 한 것으로 파악하는 이 작품에서 이들에 대한 이미지의 재현이 숭고의 감정을 불러일으키도록 만들어졌다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이 작품의 제작자중 한 사람인 울산 MBC의 박치현 국장도 <철의 꿈>에서 표현하고자 한 것은 ‘숭고’한 느낌43)이라고 언급한 바 있다.
30)‘물신적 숭고’라는 용어는 진중권의 『이미지 인문학』에서 차용하였다. 진중권, 『이미지 인문학1』, 천년의 상상, 2014, 234쪽 31)독일의 현대사진 작가. 1955년생. ‘거대한 포맷과 예리한 윤곽, 강렬한 색채’를 통해 현실보다 더 강력한 현실을 제시한다. 구르스키는 ‘디지털 조작’을 통해 인간의 시야로 확보되지 않는 부분이나 육안으로 파악할 수 없는 세부에 대해서도 선명하고 예리한 초점을 유지하기 때문이다. 진중권은 구르스키가 디지털 기술로 일종의 ‘시각적 종합’을 창조했다고 주장한다. 구르스키의 작품에는<라인강>(1999), <시카고 상품거래소>(1999), <99센트>(1999), <상하이>(2000), <평양>(2007), <카타르>(2012) 등이 있다. 진중권, 위의 책, 235~237쪽 32)숭고(sublime)는 롱기누스, 버크, 칸트, 리오타르에 이르기까지 철학과 미학의 주요 개념으로 설명, 인용되곤 했다. 특히 칸트는 숭고를 수학적 숭고(mathematic sublime)와 역학적 숭고(dynamic sublime)로 구분하면서 크기와 양에 의해 압도되는 수학적 숭고는 직관과 인간의 이성을 초월하는 절대적 감정으로 파악했다. 33)이마누엘 칸트 지음, 김상현 옮김, 『판단력 비판』, 책세상, 2013, 153쪽 34)이마누엘 칸트, 위의 책, 154쪽 35)이마누엘 칸트, 앞의 책, 154쪽 36)이마누엘 칸트, 앞의 책, 155쪽 37)진중권, 앞의 책, 247쪽 38)이마누엘 칸트, 앞의 책, 155쪽 39)칸트는 숭고를 수학적 숭고(mathematic sublime)와 역학적 숭고(dynamic sublime)로 구분하였다. 수학적 숭고는 대상의 크기에 대한 평가와 주관의 인식능력과 관계되어 있으며, 역학적 숭고는 대상의 힘에 대한 평가와 주관의 욕구능력과 관계되어 있다.(이마누엘 칸트,161) 이러한 측면에서 볼 때 수학적 숭고는 크기와 양(혹은 분량)에 관한 것이고, 역학적 숭고는 힘과 관계에 대한 것이다. 그래서 수학적 숭고는 “그것과 비교하면 다른 모든 것이 작은 것”(임마누엘 칸트, 256)으로서 우리의 상상력과 이성의 부조화가 발생하므로 칸트는 이를 통하여 “숭고한 것이란 그것을 단지 생각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관의 모든 자(척도)를 뛰어넘는 마음의 능력을 증명하는 것”(임마누엘 칸트, 256-257)이라고 보았던 것이다. 아울러 역학적 숭고에 대해 칸트는 자연의 위력을 예로 들어 설명하는데, 온통 파괴력을 보이는 화산이나 파도가 치솟는 끝없는 대양과 같은 것들은 그 엄청난 위력으로 숭고의 대상이 되는데, 이때 전제는 그로부터 안전하다는 인식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만 인간은 대상에 대한 공포를 극복하고 비로소 숭고의 판단을 할 수 있으며, 대상의 ‘절대권력’에 도전할 수 있는 용기를 주는 저항능력을 인간 안에서 이끌어내기 때문이다. 즉 “숭고한 것이란 그 표상이 마음으로 하여금 자연의 도달 불가능성을 이념들의 현시로 생각하도록 규정하는 (자연의) 대상이다.”(임마누엘 칸트, 280) 40)임마누엘 칸트 지음, 백종현 옮김, 『판단력 비판』, 아카넷, 2014, 253쪽 41)임마누엘 칸트, 위의 책, 253쪽 42)칸트의 숭고 개념에서 표상적 의미를 주로 취하고 이를 거대 스펙터클로 재현한 것에서 ‘물신적 숭고’ 개념을 적용하였다. 또한 사물이 인간을 지배하는 양상, 즉 물신의 등장은 산업화시대에 제철이나 조선이 담당하던 역할을 상기해볼 때(제철, 조선=자본=물신), 무리하지 않다고 본다. 43)박치현, “철의 꿈, 자화상을 찾아가는 여행”, 《MBC Story, MBCian》, 2014.2.10
<철의 꿈>은 거대하고 압도적인 이미지에 대한 매혹을 감추지 않는다. 고래의 신비로운 유영, 거대한 기계장치들, 육중한 용광로, 벌겋게 달아오른 쇳물의 뜨거운 기운, 고래의 꼬리를 닮은 커다란 스크루, 골리앗 크레인의 느리고 장중한 움직임, 자동화 시스템에 의해 기계만이 작동되는 기이한 정적. 이 작품의 인상적인 장면들에서 인간은 부재하거나 미미하다. 그래서 <철의 꿈>의 공간이나 스케일은 인간의 것이 아니라 철과 기계의 것이며 거대한 존재 즉 신의 것이다. 신들을 다루는 이야기에서 숭고란 어쩌면 적절한 미학적 접근일 수도 있겠다. 무엇보다 압도적인 이미지의 조형성을 구현하는 데 있어서 ‘숭고’는 이성(의미)과 감정 두 측면을 아우르는 틀이 된다.
<철의 꿈>은 거대 이미지에 대한 매혹을 숨기지 않고 이를 숭고의 감정으로 이끌어가면서 영화평론가 이동진의 표현처럼 ‘가장 물적인 광경에 가장 영적인 정경을 겹쳐’놓은 에세이 다큐멘터리이다. 현재까지 이 작품은 한국 대중영화는 물론이고 독립다큐멘터리 지형에서도 이례적이다. 서사와 액션, 논리와 리얼리티를 중시하는 다수의 한국영화/다큐멘터리와는 달리 회화적 이미지와 스펙터클, 물질에 대한 매혹을 현시하며 에세이로 풀어가는 <철의 꿈>은 그래서 신선하고 낯설다. 이는 또한 디자인과 영상을 공부하고 미디어 아티스트로 활동하고 있는 박경근 감독의 이력에서 연유한 바 클 것이다.
지난 해 <철의 꿈>은 국내외 영화평단으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았다. 국내에서는 영화저널 《씨네21》의 2014 한국영화 10선중 6위에 뽑혔고, 한국영상자료원의 <시네마테크KOFA가 주목한 2014년 한국영화> 10편에도 이름을 올렸다. 해외에서는 제64회 베를린영화제 포럼부문 넷팩상, 제15회 로마아시아영화제 최우수 다큐멘터리상, 제9회 대만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작가시선상을 수상했고, 2014 뉴욕현대미술관(MOMA) 포트나이트, 2014 토론토국제영화제 시티 투 시티(City to City)에 공식 초청되었다.
이러한 성과에도 불구하고 <철의 꿈>의 국내 박스오피스는 관객수 1405명44)에 머물렀다. 다큐멘터리의 시장성 문제도 있겠지만, <철의 꿈>이 서사보다는 이미지 중심으로 내러티브가 구축되었고, 사람보다는 사물에 포커스를 두었으며, 지루할 만큼의 세세한 공정과 이해는 할 수 있지만 받아들이기 쉽지 않은 신화(神話)로 말미암아 몰입이 어려운 측면도 분명히 있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관객과의 관계설정, 영화에 대한 관객의 친연성을 어떻게 확보해 나갈 것인가에 대한 감독의 고민이 필요해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연구자는 박경근 감독이 자신의 선택을 고집스럽게 가져가기를 바라는 마음이 더 크다. 그는 자유로운 형식이 좋아 다큐멘터리 장르를 선택했다45)고 했다. 그의 말대로 그의 작품은 내용과 형식에서 주류의 영화들에 비해 자유롭고 새롭다. 아울러 그는 미술과 영화의 경계를 넘나들며 작업할 수 있는 역량도 가지고 있다. 그래서 더욱 그의 작품들이 한국영화 지형에 다양한 균열을 내기를 기대하는 바 큰 것이다.
44)2015.1.24 영화진흥위원회 영화관 입장권 통합전산망 기준 45)여수정, 앞의 글, 2014.12.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