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전체 메뉴
PDF
맨 위로
OA 학술지
<스토커>에 나타난 미장센 요소들의 특성* The Elements of Mise-en-scene in Park Chan-Wook’s Stoker
  • 비영리 CC BY-NC
ABSTRACT
<스토커>에 나타난 미장센 요소들의 특성*

This article deals with the mise-en-scène in Park Chan-Wook’s Stoker. Stoker, the English-language film debut of Park Chan-wook, received the world’s attention for Park’s stunning mise-en-scène. Based on a script written by “Prison Break” star Wentworth Miller, the movie reveals unsettling visual style and metaphors far more intensely than Park’s previous works. This article examines the main aspects of the mise-en-scène such as filmic space, visual style, color, music and soundtrack techniques. While Park’s uses of violence and his graphic horror style, and his lavish portrayal of unsympathetic characters are still there, Stoker heavily relies on visual metaphors, music and sound rather than narrative. Park’s strategies also involve visual and aural juxtaposition and symbolic repetition of images and patterns in the mise-en-scène. The theme of coming- of-age emerges through the reiterated visual metaphors of bird, egg, and nest, together with the colors of yellow, green and red. The filmic space is abundant with the images of incarceration which are strategically positioned in scene after scene. To achieve symbolic richness Park employs tools in combining narrative, visual style, music and soundtrack techniques in complex ways. These mise-en-scène elements lead us to a new understanding of this film.

KEYWORD
박찬욱 , 스토커 , 미장센 , 공간 , 교차편집 , 시각적 스타일 , 색상 , 은유 , 음악 , 사운드
  • 1. 서론

    <스토커>는 18살 생일날 아버지를 잃은 소녀 인디아(미아 바시코브스카) 앞에 존재조차 몰랐던 삼촌 찰리 (매튜 구드)가 찾아오고 주변 사람들이 실종되면서 벌어지는 미스터리 스릴러 영화이다. 박찬욱 감독의 2013년 할리우드 진출작인 이 영화는 <블랙 스완>의 클린트 맨셀이 음악 감독을 맡았으며, 리들리 스콧과 토니 스콧 그리고 마이클 코스티건이 제작에 참여하였다. 또한 니콜 키드먼, 미아 바시코브스카, 매튜 구드 등 연기파 배우들이 배역을 맡아 더욱 주목받은 영화이다. <프리즌 브레이크>의 주연배우 웬트워스 밀러(Wentworth Miller)가 쓴 시나리오를 각색한 이 영화는 강렬한 비주얼과 탁월한 미장센을 갖춘 영화로 2013년 선댄스 영화제에서 월드프리미어로 첫 선을 보였으며, 유럽의 선댄스 영화제로 불리는 로테르담 영화제에서 폐막작으로 선정되어 상영된바 있다. 해외 영화매체도 <스토커>의 작품성에 대해 주목하고 있다. 영국의 영화 전문지 <엠파이어 Empire>의 올리 리차즈 (Olly Richards)는 “공포, 스릴러와 가족드라마가 강렬히 섞여있다. 정교하게 만들어진 영화이다”라고 논평한 바 있다.1) <가디언 The Guardian>의 제레미 케이 (Jeremy Kay)는 “문학과의 연관성과 상징성이 풍부하다”고 호평한 바 있다.2)

    이 영화의 두드러진 덕목은 배우의 대사보다도 미장센(화면 속 등장인물이나 사물의 주도면밀한 배치를 통한 연출)을 통해 강렬한 경험과 반응을 끌어내고 있다는 점이다. 박 감독의 이전 작품들보다 더욱 독창적인 미장센을 보여주는 이 영화는 공간, 시각적 이미지 등을 통하여 의미를 만들어내며 한 소녀의 내면성장 과정을 역동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필름메이커 Filmmaker>지와의 인터뷰에서 박찬욱 감독은 웬트워스 밀러의 시나리오를 읽으면서 몇 가지 핵심단어 - 동화, 신화, 장면책, 꿈, 악몽, 그리고 성장스토리 - 를 떠올렸으며, 이런 주제어들이 영화의 미학적 풍경 (aesthetic landscape)을 만들었다고 설명 하고 있다.3) <스토커>의 미장센이 동화적이면서도 동시에 고딕적인 공포 분위기를 연출하기 위하여 철저한 영화적 계산 하에 구축되어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월간객석 김나희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박감독은 “모든 것은 의도 속에서 존재하며, 의도를 담고 디자인되어야 한다”고 설명한 바 있다.4) 스토리 자체보다 스토리를 끌고 가는 방식이 더 중요한 박찬욱 영화의 치밀한 목표와 전략이 있다는 것이다. 이영화의 인물과 카메라 작업, 프레이밍 뿐 아니라 공간, 이미지, 의상과 소품, 음악 등 다양한 미장센 요소들은 특정 목표와 기능에 기여 하고 있다. 장면연출을 통하여 주제의식은 물론, 은유와 상징의 의미를 담아내는 박찬욱 감독의 독창적인 미장센이야말로 그의 작품을 예술의 차원으로 끌어올리고 작가의 반열에 오르도록 할 수 있는 미덕인 것이다.

    이러한 강점과 미덕을 갖춘 박찬욱 영화의 미장센에 관한 연구가 학계에서는 거의 이루어지지 못한 실정이다. 박 감독의 미장센에 관한 국내외 연구는 희귀하다. 그의 영화에 관한 대부분의 연구가 장르적 특성이나 특정 주제들 (복수, 폭력, 욕망 등)에 제한되어 있거나,5) 감독의 세계관이나 라캉, 프로이드의 정신분석학적인 접근에 한정되어있다.6) 더욱이 2013년 개봉된 <스토커>에 관한 연구논문은 한 편 정도로 미미한 실정이다. 이상윤은 「영화의 미장센과 가상적 음향효과의 의미 - 장편영화 ‘스토커’를 중심으로」라는 제목의 논문으로 가상적 음향효과와 미장센의 관계에 대해 탐구한 바 있다. 최병근의 연구에 의하면, 미장센의 목표는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시나리오 상의 각 신에 가장 적합한 감정적 분위기의 영화적 환경을 만드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미장센 요소들이 내재하고 있는 본래의 의미들을 영화적으로 변환시켜 영화의 주제나 등장인물에 대한 정보 그리고 감정 상태를 묘사하는데 효과적으로 사용하는 것이다.7) 본 연구는 이러한 미장센의 목표들이 <스토커>에서 어떻게 구현되어 있는지, 그리고 내러티브 구조와 주제에 어떤 연관성을 갖는지를 파악하고자 한다. 특히, 공간과 시각적 스타일, 음악과 음향효과 등으로 미장센 요소들을 나누어 주요 특성들을 분석해보고자 한다.

    1)Olly Richards, Empire, Feb 25, 2013.  2)Jeremy Kay, The Guardian, Feb 22, 2013.  3)R. Kurt Osenlund, ‘Five Questions with Stoker Director Park Chan-wook Stoker’, Filmmaker, Mar 4, 2013.  4)김나희, <철저하다, 완벽이 아니더라도: 영화감독 박찬욱>, ≪월간객석≫, 2013,7.  5)예를 들어 복수, 욕망의 주제에 관한 논문들은 다음을 참조할 것: 김길훈, 「영화 테레즈 라캥과 박쥐에 나타난 여성의 욕망」, 『한국프랑스학논집』제73집, 한국프랑스학회, 2011. 김소연, 「영화 <박쥐>에 나타난 욕망의 양상」, 『인문과학연구』 Vol.28, 강원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 2011. 김윤정, 「박찬욱 복수 3부작에서의 ‘복수’의 의미」, 『한국현대문학연구』 제20집, 한국현대문학회, 2006. 신아영, 「복수의 플롯을 통해 본 박찬욱 영화의 영화미학 연구」, 『드라마연구』, Vol.34, 한국드라마학회, 2011. 조미영, 「박찬욱의 작품에 나타난 오이디푸스 신화-<올드보이>, <친절한 금자씨>, <박쥐>를 중심으로」. 『문학과 영상』, Vol.11 No.3, 문학과 영상학회, 2010.  6)박찬욱 감독의 세계관, 복수, 욕망의 주제를 정신분석학 시각에서 접근한 논문들은 다음을 참조할 것: 윤일수, 「영화 <올드보이>에 담긴 박찬욱 감독의 세계관」, 『한국문학이론과 비평』 제37집, 한국문학이론과 비평학회, 2007. 조미영, 「박찬욱의 작품에 나타난 오이디푸스 신화-<올드보이>, <친절한 금자씨>, <박쥐>를 중심으로」, 『문학과 영상』, Vol.11 No.3, 문학과 영상학회, 2010.  7)최병근, 「미장센 요소들의 창의적 기능에 대한 연구」, 『영화연구』, 29호, 한국영화학회, 2006, 347-348쪽.

    2. 공간

    공간은 이 영화 미장센의 중요한 요소이다. <스토커>의 프로덕션 디자인을 맡은 테레즈 드프레즈는 제작노트에서 영화공간을 구성하는 미술 디자인이 철저하고 세밀한 계산 하에 감독의 독창적인 스타일을 구축하려고 노력했음을 밝히고 있다.8) 스토커저택의 공간특성은 고립 되어 있다는 점과 시대와 지역을 알 수 없다는 초월성에 있다. 미국 내슈빌에 실재하는 고풍스러운 저택은 주변과 떨어진 언덕 위에 세워져 있으며 큰 정원과 지하 저장고, 단순하고 품위 있는 거실 계단을 갖고 있다는 이유에서 영화의 주요 공간배경으로 채택되었다. 박찬욱 감독은 제작노트에서 ‘집’이라는 한정된 공간에 머물러 ‘가족’의 테두리 안에서 살아가는 인디아와 이블린이 시공을 초월하여 존재하는 것과 같은 느낌을 살리고자 했다고 밝히고 있다.9)

    <스토커>의 공간구성은 박감독의 전작 <올드보이>, <박쥐>와 흡사 하다. <올드보이>의 오대수는 15년간 폐쇄공간에 감금되어 있다가 세상 밖으로 풀려나오지만, 결국 “세상이라는 더 큰 감옥”에 갇히게 된다. 백선기, 손성우의 지적대로, 오대수는 전체적으로 폐쇄적 공간을 결코 벗어나지 못한다.10) <박쥐>의 공간 역시 숨 막힐 정도로 밀도 높은 일본식 적산가옥에 한정되어 있으며, 아래층보다 이층이 비대한 가분수 구조를 가진 불안하고 기이한 공간이다. <스토커>의 공간 또한 연극무대처럼 제한된 공간, 즉 어둡고 폐쇄적인 스토커 가문의 집으로 설정되어 있다. 질식할 만큼 밀도 높은 저택의 실내 공간은 벽, 커튼, 계단 등으로 분리되어 동선이 단절되어 있으며, 서로 감시받는 공간으로 제시되고 있다. 저택의 실내공간은 감옥 같은 느낌을 주는 감금이미지로 가득 차 있고, 인물들은 새 둥지에 갇힌 새처럼 그 안에 갇혀 있다. 공간을 지배하는 주요 이미지는 격자무늬이다. 저택의 벽지와 몰딩, 커튼, 조명, 카펫과 이불, 부엌의 벽과 바닥타일, 창문등 실내 전체에 집요하게 반복적인 격자무늬가 깔려있어 답답하고 억압적인 공간분위기를 만든다. 격자무늬는 “감금”, “집착” 그리고 “통 제”를 상징한다. <올드보이>에서도 격자무늬의 반복패턴은 오대수가 감내해야 하는 15년간의 폐쇄공포와 숨 막히는 일상성을, 이우진에게는 과거기억에 집착하며 살아온 그의 심리적 감금상태를 보여주는 이미지였다. 마찬가지로 <스토커>에서도 감옥에 갇힌 죄수처럼 억압된 인디아의 심리구조를 격자무늬를 가진 오브제들을 통해 드러낸다. 특히 인디아와 찰리의 방은 격자무늬를 가진 소품들로 가득하다. 이런 오브제들은 이들의 본능에 깊이 새겨진 근원적이고 잔혹한 본능을 억누르는 통제와 억압의 의미를 담고 있다. 찰리와 인디아가 스토커가문의 살해본능을 공유한다는 점에서 격자무늬의 꽉 짜인 틀처럼 이들의 운명적인 결속력을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암시하기도 한다.

    공간의 억압적 구조는 화면구도에서도 드러난다. 벽이나 커튼, 계단을 화면 중앙에 배치하여 이중구도를 가진 공간을 많이 보여준다. <그림 1,2>에서 보듯이, 화면공간은 종종 분리되어 감금이미지를 만들거나 엿보기의 긴장감을 자아내고 있다. <그림 3>의 경우처럼, 가족들이 서로에게 적대적이고, 서로를 감시하며, 쫒고 쫒기는 장면들이 자주 나타난다. 화면 속의 인물배치 역시 대부분 프레임 안에 갇혀있거나 밀려나 있는 모습으로 그려진다. 일례로 <그림 4>은 사춘기 소녀 인디아를 가장자리에 배치시킴으로써 인디아의 소외감을 전달하고 있다.

    <스토커>의 경우, 미장센과 몽타주가 서로 어우러져 상호보완적인 관계를 성취했다는 점이 가장 큰 특징이라고 볼 수 있다. 박감독은 이 영화에서 인물과 시공간의 연속성을 깨뜨리고 숏과 숏을 재구성한 편집방식을 적극 활용하면서 “사춘기 소녀의 성장이야기”라는 주제에 접근하고 있다. 인디아의 내면심리를 묘사하기 위해선 필연적으로 숏의 편집방식을 통해 현실의 시간과 공간을 영화적으로 재구성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박감독은 한 인터뷰에서 이 영화의 특징적인 편집양식이 교차편집임을 밝히면서, 교차편집의 음악적 리듬을 활용했다고 설명하고 있다. “인물도 교차하고 과거와 현재도 교차하고 현실과 환각도 교차한다. 여러 양상의 교직이 있는데 그들이 운명적이다.”11) 그렇다면 이 영화의 교차편집은 세 가지 기능을 갖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첫째, 인물들의 행위와 심리의 병치 (juxtaposition)이다. 찰리가 진고모를 살해하기 위해 찾아가는 공중전화부스 장면에서 이블린, 인디아, 진 고모 세 사람의 교차편집 장면이 대표적인 예이다. 진 고모가 모텔에서 독수리 사냥에 관한 TV 다큐를 보다가 공중전화를 걸기 위해 방을 나선다. TV 다큐에서는 “먹이가 귀할 땐 형제간 경쟁이 치열 해진다. 독수리는 자신의 새끼를 위해서 사냥감을 완벽히 낚아챌 수 있을 때까지 몇 시간이고 기다린다”는 내용의 내레이션이 흘러나오고, 곧 이어 굶주린 독수리가 사냥감을 포식하는 장면이 나온다. 이 포식 장면은 인디아가 지하실에서 아이스크림을 혓바닥으로 핥아먹는 장면으로 이어진다. 진 고모가 모텔문을 여는 순간과 인디아가 지하실 냉동고문을 여는 순간, 이블린이 찰리를 유혹하기 위해 찰리의 방문을 여는 순간이 서로 교차한다. 찰리가 진 고모의 목을 벨트로 목 졸라 살해한 순간, 인디아는 냉동고문을 열고 가정부 맥게릭 부인의 시신을 발견한다. 이렇게 인물들의 행위와 심리를 병치시키는 방식으로 숨막 히는 긴장과 스릴을 자아낸다.

    두 번째 기능은 시간의 연속성을 깨뜨려 과거와 현재를 병치시킴으로써 인물의 심리변화를 묘사하는 것이다. 인디아가 낮에 학교에서 자신을 괴롭힌 남학생의 손바닥을 연필로 찌르고 돌아와서 피 묻은 연필을 깎는데 <그림 5>, 이때 필통의 뚜껑, 맥개릭 부인의 시체가 묻혀 있는 지하 냉장고의 문, 그리고 곧이어 찰리와 함께 연주하게 될 피아노의 덮개가 교차된다. 인디아가 학교 수업을 마치고 걷는 길이 다른 길과 오버랩 되며 시간의 흐름을 나타내는 장면, 피아노를 치는 인디아의 머릿속에 정원에서 삽질을 하는 삼촌찰리의 모습이 병치되는 장면 등은 인디아의 주관적이고 환상적인 심리가 잘 드러나 있다<그림 6>. 영화 후반부에서 이블린을 벨트로 목 졸라 죽이려는 찰리를 인디아가 총으로 살해하는 순간 역시 아버지와 사냥터에서 새를 총으로 맞혀 죽이는 순간과 교차한다. 이러한 장면들은 사춘기 소녀 인디아가 겪는 충격적인 사건들의 과거와 현재를 공감각적으로 연결 시키면서 매우 풍성한 심리적 의미를 전달하는 좋은 예이다.

    세 번째로, 교차편집을 통해 현실과 환상이 뒤섞인 공간을 연출하여 인디아의 심리흐름을 보여주고 있다. 인디아가 찰리와 함께 치는 피아노 듀엣 장면이 대표적인 예이다. 찰리와 함께 피아노를 연주하다가 인디아는 옆에 앉아있던 찰리가 사라진 것을 깨닫는다. 이 장면은 인디아가 찰리와 실제로 피아노를 치며 성적인 절정을 경험한 것이 아니라, 단지 인디아의 마음속에서 일어난 환상임을 암시하고 있다. 현실과 환상이 뒤섞이는 또 다른 예로, 삼촌찰리와 피아노를 함께 연주하고 나서 성적인 자극을 받은 인디아의 다리사이로 거미가 빠른 속도로 기어가는 장면을 들 수 있다. <올드보이>의 개미장면, <박쥐>의 강우(신하균)가 살해당한 후 현상현 신부와 태주 사이에 누워있는 장면처럼 인디아의 욕망이 빚어낸 환상공간이다. 인디아의 샤워장면 역시 비슷한 예이다. 숲속에서 남학생 윕이 인디아를 성폭행하려하자 찰리 삼촌이 나타나 그 남학생을 살해하는 장면은 인디아가 자위행위를 하며 샤워하는 장면으로 갑자기 전환된다. 인디아가 샤워 중 자위하며 절정에 도달한 순간, 찰리와 함께 윕을 살해한 플래쉬백 장면이 삽입 되어 비로소 사건의 내막을 알게 된다. 신 형철의 해석대로, 이 교차 편집은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를 보여주기 위한 것이 아니라 인디아에게 ‘그 일의 의미가 무엇인가?’를 설명하고, 인디아의 관점에서 보도록 유도하기 위한 것이다.12) 인디아가 살해 사건을 회상하는 순간 오르가즘의 절정에 이르렀다는 점은 그녀 안에 내재해 있던 킬러의 잔인한 본능이 완전히 깨어났음을 의미한다. 살해행위와 쾌락이 함께 하는 그로테스크한 성인식을 치른 것이다. 찰리가 인디아에게 아버지를 돌로 쳐서 살해한 사실을 밝히는 순간 인디아의 얼굴에 아버지의 피가 뿌려지는 장면도 인디아의 환상이 빚은 또 하나의 좋은 예이다. 인디아가 머리를 빗겨 주던 이블린의 붉은 머리카락이 갈대숲으로 디졸브되는 장면, 침대에 누워 팔다리를 아래위로 흔드는 인디아와 피아노 위 메트로놈의 리듬이 오버랩되는 장면 등도 현실과 환상이 뒤섞인 인디아의 내면을 보여준 장면들이다.

    <스토커>의 카메라 작업은 인물들과 상황을 숨어서 엿보며 관찰하는 듯한 객관적 카메라 시선이 많다. 또한, 역동적인 카메라 움직임도 활발하다. <박쥐>에서처럼 수직으로 급강하하는 카메라의 움직임으로 한정된 공간에서 벌어지는 갈등과 충돌을 묘사하기도 하며, 내화면과 외화면 (off-screen) 사이에 숨 막히는 긴장감을 보여주기도 한다. 외화면이 내화면과 분리되어 인물들이 화면 안팎으로 쫓고 쫓기는 장면을 추적하면서 공포과 긴장감을 유발시킨다. <그림 7>이 보여주듯이, 지하실에서 냉동고 문을 열고 시신을 발견한 인디아가 뒤돌아보는 시선이 대표적인 예이다. 이처럼 인디아의 시선은 종종 극적인 장면에서 프레임 밖의 공간을 응시하여 관객의 궁금증과 상상력을 자극시킨다. 틈의 공간을 이용한 파격적이고 극단적인 앵글로 불안한 사춘기 소녀의 심리상태를 과장하여 보여주는 점 역시 특징적이다.

    8)<스토커 제작노트>, ≪씨네21≫, 2013.3.10.  9)위의 글.  10)백선기, 손성우, 「영화 속의 욕망, 증상, 기억 및 상흔 - 영화 <올드보이>에 대한 서사구조, 공간구조 및 시간구조 분석을 중심으로」, 『기호학연구』, 제19집, 한국기호학회, 2006. 119-126쪽.  11)MR. Beaks. “Park Chan-wook Talks STOKER, Hitchcock And Crosscutting With Mr. Beaks”, Aintitcool, March 7, 2013.  12)신형철. <스토커>를 떠받치는 근본 은유를 찾아서>, ≪씨네21≫, 2013. 4.17.

    3. 시각적 스타일

    박찬욱 감독은 스토커 가문의 특이한 운명을 자각하는 인디아의 성장모티브를 치밀하게 계산된 시각적 스타일로 담아내고 있다. 시각적, 청각적 병치(juxtaposition), 미장센에 장치해놓은 반복적인 상징물 등다양한 방식을 동원하면서 은유적인 의미를 만들고 있다. <스토커>에는 새와 관련된 무수한 상징이 등장한다. 영화 장면에 새둥지, 새 둥지 모양의 의자, 새알 이미지를 가진 조각, 새 사냥과 관련된 이미지 들이 그것이다. LA 타임즈와의 인터뷰에서 박찬욱 감독과 프로덕션 디자이너 테레스 드프레 (Thérèse DePrez)는 이 영화가 “알 껍질 안에 갇힌 어린 새에 관한 이야기”라고 밝히면서, 새 알은 인디아가 사는 집이라기보다는 완고하고 강렬한 자의식에 대한 메타포임을 밝히고 있다.13)

    인디아의 성장 이미지는 새와 새알, 새둥지를 닮은 오브제들로 치밀하게 제시되고 있다. 영화의 첫 화면에서부터 붉은 피가 뿌려지고, 그 핏줄기가 새떼의 형상으로 변하면서 무리지어 하늘로 날아가는 이미지로 시작되고 있다. <그림 8>이 보여주듯, 인디아의 집 정원에는큰 새의 조각상이 있고, 크기가 다양한 새알 모양의 조각상이 놓여 있다. 새 알은 시신을 매장하고 그 위에 바위를 세워 놓은 무덤의 표식으로 스토커가의 살해행위가 인디아의 핏줄에 각인된 가문의 유전 이라는 사실을 강하게 암시한다. 아버지 리차드가 쓰던 방에는 박제한 새들로 가득하고 조명등 갓에도 새의 형상이 새겨져 있다. 인디아의 아버지는 스토커가의 사악한 본능이 인디아에게 잠재해있음을 알고 사냥을 데리고 다니며 통제해왔다. “우린 가끔 나쁜 짓을 해야 한다. 그래야 더 나쁜 짓을 막을 수 있다”라는 것이 인디아의 살해본능을 억제하려는 아버지의 방법이다. 알을 깨고 나오는 새 이미지는 파괴와 자유라는 상징을 담고 있다. 아버지가 새를 죽여 박제하는 장면들 역시 스토커가의 잔혹한 본능을 제어하기 위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반면에, 찰리 스토커는 인디아의 삶 속에 들어와 그 알 껍질을 깨뜨려 새를 깨어나게 하는 존재이다. 그가 지켜보던 TV 다큐 역시 독수리 사냥에 관한 것이다. 찰리는 일곱 살 때 어린 동생 조나단을 질투 하여 살해하고 묻은 땅 위에서 새의 날개춤을 춘다. 이 후 정신병동에 격리되어 십대와 이십대를 보낸 찰리는 자신을 스토커 가(家)에서 떼어 놓으려는 그의 형 리처드 스토커를 잔혹하게 살해한다. 그의 살해본능은 그의 조카이자 도펠갱어인 인디아에게로 이어진다. 인디아의 회상장면들은 주로 아버지와 새를 사냥하던 기억들이다. <그림 9>는 새 둥지 모양의 의자에 앉아 엄마와 삼촌의 대화를 엿듣는 인디아의 불안한 모습이 담긴 장면이다. 인디아의 침대 머리맡 장식장은 새의 깃털 모양의 문양이 새겨져 있고, 집의 정원 곳곳에는 새의 조각상이서 있다. 인디아는 이따금씩 메트로놈의 소리에 맞춰 어릴 적 찰리가 동생을 살해 후 췄던 새의 날개 춤을 추고, 장례식에서 찰리를 만난 뒤 부엌에 앉아 달걀껍질을 으깨어 부수면서 킬러의 본능이 깨어난 것을 보여준다. 인디아의 학교 강의실 뒤쪽 벽면에는 새가 날아가는 날갯짓 모양이 차례대로 그려진 그림이 붙어 있다. <그림 10>을 보면 원모양으로 배치된 18개의 새들슈즈가 마치 새둥지처럼 인디아를 품고 있다. 점점 커지는 새들슈즈 상자안의 인디아 모습은 알에서 깨고 나오는 새 이미지를 연상케 한다. 이러한 새 이미지들을 통하여 인디아의 성장은 새처럼 알을 깨어 부수고(파괴, 살해), 자신의 본능을 억압하던 감옥 같은 둥지를 떠나 새(자유와 해방)로 탄생하는 과정을 묘사하고 있는 것이다.

    박찬욱 영화에서 색상은 미장센의 가장 중요한 요소로 공간을 연출 하고 심리를 전달하는 데 적극적으로 활용된다. <올드보이>의 경우 보라색은 이우진의 색상으로 그의 주변 모든 소품에서 볼 수 있다. 이우진의 셔츠부터 그의 펜트하우스에 놓인 침대에 이르기까지 보라색이며, 죽은 그의 누이 수아가 마지막으로 입고 있던 옷도 보라색 원피스였다. 그가 오대수에게 미도와의 근친상간관계를 밝히기 위해 보여준 가족 앨범과 박철웅의 잘려진 손이 담긴 상자도 보라색이다. <친절한 금자씨>에서 금자(배우 이영애)의 색상은 빨간 색이다. 그녀의 방을 온통 빨간색으로 연출하여 그녀의 뜨거운 복수심을 극적으로 드러내었다. <박쥐>의 주요색상은 하얀색이다. 오프닝시퀀스의 주요공간인 병실은 불안하게 흔들리는 그림자가 드리워진 하얀 벽을 배경으로 인상적인 공간연출을 하고 있다. 또한 주요 무대인 적산가옥의 실내공간도 온통 하얀색을 칠하여 초현실적이고도 병적인 느낌을 강하게 전달하였다.

    <스토커> 역시 주요 인물들의 개성과 심리묘사를 위해 특성 색상을 반복 활용하고 있다. 실내공간은 녹색과 적색의 색상 대비를 통해 극적인 긴장감을 창출하고 있다. 붉은 현관문과 거실의 벽이 녹색으로 칠해져 강렬하게 대비되며, 이블린과 인디아의 대립감정을 강조하고 있다. 박감독은 제작노트에서 이블린의 색상 콘셉트는 빨강이며, 인디아는 노랑이라고 밝힌 바 있다. 인디아의 방은 대칭과 질서를 중시하고 이를 상징하는 노란색 패턴의 벽지를, 이블린의 방은 비대칭과 혼란, 흐트러진 모습으로 모녀의 성격을 표현했다고 설명하고 있다.14) 에바 헬러의 연구에 의하면, 붉은 색은 열정, 사랑, 증오, 피, 생명, 불, 환희 그리고 사치의 의미를 갖는다. 또한 섹스, 부도덕을 의미하며 검정과 만나면 위험과 금지를 의미하기도 한다.15) 남편의 장례식을 마치자마자 젊고 매력적인 시동생 찰리 스토커를 유혹하는 이블린에게 붉은 색은 적합한 색상 개념이다. 18세 성년을 맞이하고 있는 인디아는 병아리를 연상시키는 노란 색으로 묘사된다. 인디아의 주변 소품 역시 노란색이다. 연필과 우산, 생일 케익, 아이스크림 통, 테니스공, 스쿨버스는 물론 인디아의 방의 전체적인 색감 역시 노란색이다. 또한 생일마다 찰리가 보낸 신발상자를 묶은 리본도 노란색이며, 신발 포장지 역시 노란색이다. 인디아가 앉아있는 부엌 찬장의 유리그릇들, 부엌 벽에 걸린 접시들, 조명등도 노란색이다. 에바 헬러의 지적대로, “노란색은 불안정한 색이다. 빨간 기운을 더하면 주황이 되고 파란 기운을 더하면 녹색이 되며 검정을 약간 섞으면 더럽고 둔탁하게 변한 다.”16) 노랑이 곁에 있는 색에 의존적이라는 점에서 정체성이 모호한 색이라 할 수 있다. 아이도 어른도 아닌 인디아에게 부여된 적절한 색상이다. 인디아와 삼촌찰리의 유전적 동질성은 의상에서도 잘 드러난다. <그림 11>은 찰리가 인디아의 색상인 노란색 옷을 입은 모습이 며, <그림 12>는 영화의 엔딩시퀀스에서 노란 치마를 입은 인디아의 모습이다. 이 장면은 오프닝 시퀀스에서 이미 본 이미지가 다시 등장 하는 엔딩 신으로, 박 감독의 설명에 의하면, 일종의 “내러티브상의 반전”을 구축한 장면이다. 중앙선의 노란색은 인디아의 색으로, 색 보정 때 더욱 강조해서 강렬한 색감으로 만들었다. 도로를 건너가면서 인디아는 자기의 이름을 하나씩 지워가며 이전의 정체성을 지우고 새로운 존재로 태어났음을 보여준다.

    이 영화는 소품들을 통해 은유적 의미를 전달하는데 그 중 가장 두드러진 것은 구두이다. 구두는 박찬욱 감독이 이전 작품에서도 자주 활용해온 소품이다. <공동경비구역 JSA>에서 구두는 가족의 끈끈한 정을 은유적으로 표현했다. 남측 이수혁 병장과 북측 정우진 전사는 판문점 경계선에서 서로의 전투화에 침을 뱉으며 장난하는가 하면, 남측병사 남성식이 정우진의 구두를 닦아준다. <올드보이>에서 구두는 응징과 속죄의 수단이 된다. 이우진은 오대수의 신발에 도청장치를 해놓은 뒤 오대수와 미도의 모텔 정사소리를 녹음했다가 오대수에게 들려준다. 오대수는 이우진에게 용서를 빌기 위해 이우진의 구두를 혀로 핥는다. <박쥐>의 경우 구두는 멜로 드라마적 장치로 구원과 섹슈얼 이미지를 함께 갖는다. 욕망과 금기 사이에서 고민하던 현상현신부와 태주에게 구두는 첫번째 신체 접촉이요, 사랑의 상징이자 파국이기도 했다. <스토커>에서 구두는 “성장”이라는 깊은 의미를 갖고 있다. 박찬욱 감독은 “신발은 아이가 성장하면서 신발도 커지니까 성장영화와잘 맞았다. 또 신체의 일부를 끼어 넣는다는 점에서 속박이라는 의미도 있는데, 이는 삼촌이 오랜 시간 정신병원에 감금돼있었다든지 등영화의 분위기와도 잘 어울렸다”고 설명한 바 있다.17) 인디아의 생일 마다 삼촌 찰리가 선물했던 새들 슈즈(Saddle shoes : 안장 모양 장식이 있는 구두)는 그녀의 성장과정을 보여주는 상징물이다. 찰리 삼촌의 얼굴에 드리운 커튼의 표범무늬는 그가 인디아에게 성년 기념으로 신겨주는 악어가죽 하이힐과 연관된다. 이것은 이 두 사람이 스토커가의 킬러 사냥꾼의 야생적 본능을 공유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영화의 엔딩 시퀀스는 하이힐을 신은 인디아가 보안관을 살해한 후 뉴욕으로 향하는 모습을 통하여 성장의 의미를 함축해서 보여주고 있다.

    13)Steven Zeitchik, “‘Stoker’: Chan-wook Park, Therese DePrez detail the film’s symbols”, Los Angeles Times. March 06, 2013.  14)<스토커 제작노트> 앞의 글.  15)에바 헬러, 『색의 유혹 2: 재미있는 열세가지 색깔 이야기』, 이영희(역), 예담, 2002.144쪽.  16)위의 책, 144쪽.  17)신진아, <노컷뉴스와의 박찬욱 인터뷰, ‘스토커’ 지금과 다른 결말>, ≪노컷뉴스≫, 2013.3.4.

    4. 음악과 음향효과

    <스토커>는 박찬욱의 어떤 영화보다도 대사가 별로 없고 대신 음악을 활용하여 의미를 전달하고 있다. 특정 시퀀스에만 음악이 있는 것이 아니라 영화 전체에 음악이 흐르게 한다는 감독의 구상에 따라 <스토커>에는 감독이 직접 선택한 많은 음악이 있으며, 음향효과도 극대화되고 있다. <블랙 스완>으로 시카고 비평가 협회상에서 음악상을 수상한 클린트 맨셀 (Clint Mensell), 현대 음악계의 거장 필립 글래스(Philip Glass)와 함께 작업하였으며, 박찬욱 감독이 발굴한 싱어송 라이터 에밀리 웰스 (Emily Wells)가 영화의 주제가 ‘Becomes The Color’를 불렀다. 주요 장면마다 적절하게 이들의 음악을 삽입하여 분위기와 내러티브를 전달하는데, 일례로, 이블린과 찰리가 함께 춤을 추는 장면은 Nancy Sinatra & Lee Hazelwood의 ‘Summer Wine’과 ‘Stride La Vampa’를 삽입하여 로맨틱한 정서를 묘사하고 있다. 필립 글래스가 작곡한 <네개의 손을 위한 피아노곡> 시퀀스는 <스토커>의 명장면으로 많은 주목을 받았다. 매튜 구드와 미아 바시코프스카가 연주한 듀엣 곡은 인디아의 심경의 변화를 극명하게 드러내준다. 이 장면은 두 사람의 근원적 욕망이 표출되는 지점으로서 박 감독의 표현대로 연주 자체가 “섹스이기도 하지만 연애 과정의 은유”이기도 하다 (김혜리, 씨네 21). 베르디 (Giuseppe Verdi)의 오페라 ‘일 트로바토레’(Il Trovatore)의 아리아 ‘불꽃은 타오르고’는 여러 번 변주되어 나오는데, 때로는 찰리의 휘파람으로, 때로는 인디아가 틀어놓은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며, 영화 후반부에 알리바이를 댈 때도 나온다. 가장 중요한 장면은 삼촌 찰리가 계단 위에서 인디아에게 하이힐을 신겨 주는 장면에 깔린 클린트 맨셀의 OST 곡 중 ‘In Full Bloom’으로, 인디아가 소녀에서 성인으로 입문하는 의미 깊은 전환점을 고조시킨다. 영화의 엔딩시퀀스에는 에밀리 웰스가 독특한 음색으로 부르는 주제곡 ‘Becomes The Color’가 배경에 깔리면서 성인식을 치른 인디아의 해방감을 전달해준다.18)

    다양한 음향효과를 활용하여 청각적 미장센을 구축하고 있는 점도 또 다른 특성이다. 인디아의 눈과 귀로 보고 듣는 듯한 주관적인 사운드 효과가 돋보인다. 오프닝 시퀀스에서 아버지의 장례식을 마치고 인디아가 집에 돌아와 달걀껍질을 까는 장면이 대표적으로, 과장된 음향효과를 통해 그녀의 불안과 성장통을 예고하고 있다. 인디아의 피아노 위에 놓여있는 메트로놈의 불길하고 집요한 소리와 리듬 역시 어른세계의 문턱 앞에 선 인디아의 시간의식과 불안감을 증폭시켜 보여 준다. 임박한 시간을 재는 타이머처럼 성인의 세계에 들어선 인디아의 불안한 내면을 표출시키는 사운드 전략이라 할 수 있다.

    과장된 시청각 연출은 남들이 보지 못하는 걸 보고, 듣지 못하는 작은 소리도 들을 수 있는 초능력을 가진 인디아의 시각적 인식을 주관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스토커>에 사용된 가상적 음향효과와 미장센 요소들의 관계를 분석한 이 상윤의 연구는 이 영화에서 가상적 음향효과가 어떻게 미장센에 초사실적이고 비현실적인 표현을 해주는지를 보여준다. 일례로, 인디아가 지하실의 냉장고로 가는 장면에 가상적 음향효과를 삽입함으로서 인디아만의 고립된 세계, 또는 현실에서 이탈한 공간세계의 느낌을 강하게 준다고 지적하고 있다. 지하실의 공간은 인디아의 상상 속의 공간인 동시에 그녀의 정체성을 드러내주는 공간이기도 하다는 해석은 타당해 보인다.19)

    영화의 엔딩시퀀스 역시 별 다른 대사 없이 이미지와 효과음향 만으로 의미를 전달하고 있다. 삼촌 찰리를 살해한 후 인디아가 떠난 빈집은 그녀가 남긴 새들 슈즈가 현관에 벗겨져 있는 것으로 묘사한 다. 그 다음 장면은 뉴욕으로 향하는 도로위의 자동차 신이다. 이어서 옥수수 밭이 나오는 시퀀스에서 아버지의 벨트를 차고 엄마의 블라우스를 입고, 바람에 펄럭이는 노란 치마를 입은 인디아의 모습이 클로즈업된다. 찰리를 연기한 배우 매튜 구드의 이름이 인디아의 치마 속에 감춰져 있다가 등장한다. 스토커저택의 폐쇄적인 실내공간을 벗어난 인디아가 광활한 옥수수밭에 치마를 펄럭이며 서있는 장면은 그녀의 해방감을 묘사해준다. 인디아는 보안관이 도망가는 것을 눈으로 쫓다가 옥수수가 피로 물들고 옥수숫대에 흘러내리는 피에 정신이 팔린다. “뜻하지 않은 아름다움에 도취되는 것 같은 느낌을 주고 싶었다” 는 감독의 제작노트로 미루어볼 때20) 이 장면은 인디아가 살해행위를 회상하면서 극도의 쾌락을 느꼈던 샤워장면과도 연결된다. 인디아가 도망가는 보안관을 사냥총으로 살해하는 장면은 멀리 떨어진 객관적 카메라의 관찰자 시선이다. 이어서 살해행위가 완성되었음을 알리는 것 역시 노란 중앙선에 피가 뿌려지는 강렬한 이미지 샷이다. 영화의 엔딩은 인디아가 카메라를 향해 정면으로 사냥총을 들어 올리는 장면으로 끝난다. 화면 가득 클로즈업된 인디아의 얼굴은 왼쪽 눈을 감고 총을 겨누다가 양쪽 눈을 모두 뜨고 자신감 있게 사냥감을 겨누면서 킬러 사냥꾼으로 다시 태어났음을 보여준다.

    18)이지혜, <박찬욱의 음악추천-나와 함께 ‘스토커’를 만든 음악들>, ≪텐아시아≫, 2013.3.3.  19)이상윤. 「영화의 미장센과 가상적 음향효과의 의미 - 장편영화 ‘스토커’를 중심으로-」, 『음악교육공학』, 제 17호. 2013.08.16. Vol.17, 243-265쪽.  20)<스토커 제작노트> 앞의 글.

    5. 결론

    지금까지 <스토커>의 미장센 요소들의 특성을 공간, 시각적 스타일, 음악과 음향효과 등으로 나누어 살펴보았다. “박찬욱 스타일”이라는 용어가 생길 정도로 완성도 높은 미장센을 갖춘 <스토커> 는 어느 작품보다도 감독의 개성과 미학이 잘 드러나 있다. 비주류적인 정서, 이미지 과잉, 폭력성 등이 내러티브 구조에 담겨있으며, 다양한 미장센 요소들을 통해 주제의식을 은유적으로 전달하는 높은 작품성을 보여 주었다. 공간, 시각적 스타일, 음악과 음향효과등 미장센 요소들의 특징들을 몇 가지로 요약정리해보자면 다음과 같다.

    스토커저택의 공간특성은 고립과 초월성이다. <스토커>의 공간은 연극무대처럼 한정된 공간, 즉 어둡고 폐쇄적인 스토커 가문의 집이다. 질식할 만큼 숨 막히게 밀도 높은 저택의 실내공간은 인물이 자신의 실체와 직면하게 되는 출구 없는 폐쇄공간이다. 화면은 종종 분리되어 감금이미지를 만들거나 엿보기의 긴장감을 자아내고 있다. 집은 벽, 커튼, 계단 등으로 분리되어 동선이 단절되어 심리적으로 닫힌 공간으로 묘사되고 있다. 인디아의 본능을 통제하는 집안분위기는 소품과 실내에 편재해있는 반복적인 격자무늬로 감금, 집착, 억압의 분위기를 만들고 있다. 또한 공간연출에 있어서 몽타주기법을 활용하여 미장센과 상호보완적인 관계를 성취한 것도 이 영화의 큰 덕목이다. 대표적으로, 교차편집 기법을 통해 시공간을 중첩 혹은 병치시키면서 현실과 환상이 뒤섞인 인디아의 내면을 묘사하여 “성장”이라는 주제를 창의적으로 접근한 점이다.

    박찬욱 감독은 스토커 가문의 특이한 운명을 자각하는 인디아의 성장모티브를 새, 새 알, 새둥지, 구두 등의 오브제를 통해 독창적인 시각적 스타일로 담아내고 있다. 주요 인물들의 개성과 심리를 묘사하기 위해 특성 색상을 반복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이블린의 방은 붉고 인디아의 방은 노랑이 지배하며, 저택의 실내공간을 녹색과 적색의 색상을 배치해 극적인 대립감과 긴장감을 연출하고 있다. 붉은 현관문과 녹색으로 칠해진 벽이 강렬하게 대비되며, 가구와 물건들로 꽉 차 있는 거실은 핏빛과 녹색으로 꾸며져 인물들, 특히 이블린과 인디아의 대립감정을 강조하고 있다. 시각적, 청각적 병치 (juxtaposition), 상징물 등 다양한 방식을 동원하면서 은유적인 의미를 구축하고 있다.

    다양한 음악과 음향효과를 활용하여 청각적 미장센을 구축하고 있는 점도 또 다른 특성이다. <스토커>는 감독이 직접 선택한 많은 음악이 있으며, 음향효과도 극대화하여 보여주고 있다. <블랙 스완>의 클린트 맨셀 (Clint Mensell), 현대 음악계의 거장 필립 글래스 (Philip Glass), 에밀리 웰스 (Emily Wells) 등의 음악을 삽입하여 심리적 분위기와 내러티브를 전달하고 있다. 인디아의 주관적인 시각과 청각을 사운드 효과를 통해 증폭시켜 묘사하고 있는 점 역시 흥미롭다. 과장된 시청각 연출을 통하여 남들이 보지 못하는 걸 보고, 듣지 못하는 작은 소리도 들을 수 있는 초능력을 가진 인디아의 내면을 잘 드러내주고 있다.

    인디아-찰리의 인물설정은 박찬욱 영화에 자주 등장하는 금기와 타부에 도전하는 인물이다. <올드보이>에서 어이없는 운명에 굴복하지 않는 용감한 인간 오대수를 그렸다면, <스토커>에서는 사악한 가문의 운명을 자신의 삶 속에 당당하게 끌어안는 인디아의 모습을 그렸다. <올드보이>가 오디세이의 주제를 변주하며 인간의 근원적 욕망과 무지한 자아의식을 다룬 것처럼, <스토커>의 내러티브구조는 인디아가 자신의 정체성과 본능을 발견해가는 과정으로 구축되어 있다. 아버지의 벨트를 매고 어머니의 블라우스를 입고 삼촌의 하이힐을 신은 인디아는 “나는 나로만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라며 가문의 숙명을 태연 하게 받아들인다. 인디아가 성인이 된다는 것은 새장에서 벗어나 하늘을 나는 새의 자유를 의미한다. “꽃이 제 색깔을 선택할 수 없듯이, 우리는 지금의 자신에 대해 책임질 필요가 없어. 이것을 깨달을 때만 자유로워질 수 있고, 어른이 된다는 건 바로 자유로워진다는 거지.” 나의 존재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는 것이 자유이며, 그 자유를 가진 상태가 성인이라는 인디아의 이런 선언은 쉽게 공감하기 어려운 부분이다. 인디아와 찰리의 인물설정에서 보듯이 이 영화 역시 박찬욱 영화의 치명적 약점이 드러난다. 공허한 내러티브, 공감하기 어려운 비현실적인 인물설정, 모호한 주제의식 등이 그것이다. 신형철의 질문처럼, <스토커> 가 인디아가 쓰는 “리비도의 시”라고 본다 해도, “리비도의 시를 쓰기 위해서는 보안관 따위는 죽여도 그만인가”를 묻지 않을 수 없다.21)

    이 영화의 불편한 내러티브는 인간존재에 대한 박 감독의 시각을 잘 드러내고 있다. 정 현경의 지적처럼, 박찬욱의 그로테스크한 세계는 부조리한 세계에 대한 인식에 기반하고 있다. 인간의 욕망이 인간 자신을 괴물로 전락시키는 동력이라는 환멸적 각성을 담고 있으며 이 과정에서 선악과 미추라는 경직된 이분법적 사고는 해체되고 전복된다는 해석은 타당해보인다.22) 박찬욱 감독은 선악의 틀을 제시하거나 그 틀에 안주한 인물에는 관심이 없다. 오히려 그 틀의 경계를 넘나드는 인간의 본능과 욕망, 죄의식을 통해 인간존재의 모호성을 그려왔다. 감독의 영화적 비전이 자신이 설립한 제작사 이름 “모호필름”(Moho Film)에도 잘 드러나 있다.

    인물설정과 내러티브의 도덕성 문제는 엔딩 시퀀스에서 벌어지는 반전으로 해답을 얻게 된다. 영화의 마지막 부분에서 일련의 살해행위로 성인식을 치른 인디아의 잔혹한 동화가 그녀의 머릿속에서 일어난 환상일지도 모른다는 내러티브 반전이 그것이다. 스티븐 리 (Steven Rea)의 논평처럼, 이 사이코스릴러 영화의 반전은 인디아의 성장스토리가 그녀 자신의 내면에서 일어난 환상에 불과한지도 모른다는 점에 있다.23) 박찬욱이 그의 저서 『오마주』에서 영화 <아메리카의 밤>에 대해 지적한 말은 <스토커>에 대해서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다. “밤이 만들어진 현실, 즉 영화의 현실을, 낮이 실제의 현실, 즉 현실의 현실을 은유한다고 밝혀지는 순간, 이 영화는 영화와 인생의 상관관계를 추적하는 드라마로 읽히기 시작한다”는 것이다.24)

    대중의 공감을 끌어낼 수 있는 캐릭터의 부재, 선명한 주제의식의 결핍, 그리고 감독 특유의 모호한 세계관이 내재된 그의 영화는 “이해”하기보다는 “공부”해야 하는 부담감을 주는 것이 사실이다. 박찬욱 특유의 냉소와 아이러니, 인간존재의 모호성과 불확실성에 대한 그의 비전이 담긴 이 영화에서 위로와 오락을 찾기는 어렵다. 그 보다는, ‘희망이 없어도 소중한 삶’을 역설해온 그의 영화철학을 새겨보는 일이 더 의미 있는 일인지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토커>의 탁월한 미장센은 그의 영화미학을 예술의 차원으로 끌어올리는 최고의 덕목이라는 점은 부인하기 어려울 것이다.

    21)신형철, 「<스토커>를 떠받치는 근본 은유를 찾아서」, ≪씨네21≫, 2013.4.17.  22)정현경, 「박찬욱 영화에 나타난 그로테스크 연구」, 『한국극예술연구』, 제38집, 2012, 293-94쪽.  23)Steven Rea, ‘Slow-burning Southern Thriller’, Philadelphia Inquirer, Mar 14, 2013.  24)박찬욱, 『오마주』, 마음산책, 2005, 324쪽.

참고문헌
  • 1. 박 찬욱 2005 『오마주』 google
  • 2. 헬러 에바 2002 『색의 유혹 2: 재미있는 열세가지 색깔 이야기』, 이영희(역) google
  • 3. 김 길훈 2011 「영화 테레즈 라캥 과 박쥐 에 나타난 여성의 욕망」 [『한국프랑스학논집』] Vol.73 P.117-134 google
  • 4. 김 소연 2011 「영화 <박쥐>에 나타난 욕망의 양상」 [『인문과학연구』] Vol.28 P.385-406 google
  • 5. 김 윤정 2006 「박찬욱 복수 3부작에서의 ‘복수’의 의미」 [『한국현대문학연구』] Vol.20 P.637-662 google
  • 6. 김 태미, 최 인려 2012 영화의 의상과 분장에 나타난 색채와 상징성에 관한 연구 - 박찬욱의 복수국 <올드보이>, <친절한 금자씨>, <박쥐>를 중심으로. [『한국의상디자인학회지』] Vol.14 P.151-160 google
  • 7. 백 선기, 손 성우 2006 「영화 속의 욕망, 증상, 기억 및 상흔 - 영화 <올드보이>에 대한 서사구조, 공간구조 및 시간구조 분석을 중심으로」 [『기호학연구』] Vol.19 P.99-138 google
  • 8. 신 아영 2011 「복수의 플롯을 통해 본 박찬욱 영화의 영화미학 연구」 [『드라마연구』] Vol.34 P.286-314 google
  • 9. 윤 일수 2007 「영화 <올드보이>에 담긴 박찬욱 감독의 세계관」 [『한국문학이론과 비평』] Vol.37 P.447-466 google
  • 10. 이 상윤 2013 영화의 미장센과 가상적 음향효과의 의미 - 장편영화 ‘스토커’를 중심으로-. [『음악교육공학』] P.243-265 google
  • 11. 정 현경 2012 「박찬욱 영화에 나타난 그로테스크 연구」 [『한국극예술연구』] Vol.38 P.273-299 google
  • 12. 조 미영 2010 「박찬욱의 작품에 나타난 오이디푸스 신화 - <올드보이>, <친절한 금자씨>, <박쥐>를 중심으로」 [『문학과 영상』] Vol.11 P.811-831 google
  • 13. 최 병근 2006 「미장센 요소들의 창의적 기능에 대한 연구」 [『영화연구』] P.347-348 google
  • 14. 김 나희 2013 <철저하다, 완벽이 아니더라도: 영화감독 박찬욱> [≪월간객석≫] google
  • 15. 김 혜리 2013 <한편 더 찍어 소녀 3부작 만들겠다> [≪씨네21≫] google
  • 16. 박 찬욱 2013 <박찬욱의 음악추천-나와 함께 ‘스토커’를 만든 음악들> google
  • 17. 신 진아 2013 <스토커 지금과 다른 결말> [≪노컷뉴스≫] google
  • 18. 신 형철 2013 <스토커를 떠받치는 근본 은유를 찾아서> [≪씨네21≫] google
  • 19. 이 주현 2013 <가지런히 놓인 필통의 상징은?> [≪씨네21≫] google
  • 20. 이 지혜 2013 <박찬욱의 음악추천-나와 함께 ‘스토커’를 만든 음악들> [≪텐아시아≫] google
  • 21. 한 재연 2013 <할리우드 간 박찬욱, 우아한 스릴러를 들고 돌아오다: 박찬욱 감독의 ‘스토커’ 섬세한 연출력이 돋보인다> [≪오마이뉴스≫] google
  • 22. Kay Jeremy 2013 “Sundance film festival 2013: Stoker ? first look review,” [The Guardian] google
  • 23. Beaks MR. 2013 “Park Chan-wook Talks STOKER, Hitchcock And Crosscutting With MR. Beaks” [Ain’titcoolnews] google
  • 24. Richards Olly 2013 “Stoker Really Dark Shadow” [Empire] google
  • 25. Kurt Osenlund R. 2013 “Five Questions with Stoker Director Park Chan-wook Stoker” [Filmmaker] google
  • 26. Rea Steven 2013 “Slow-burning Southern Thriller” [Philadelphia Inquirer] google
  • 27. Zeitchik Steven 2013 “Stoker: Chan-wook Park, Therese DePrez Detail the Film’s Symbols” [Los Angeles Times] google
  • 28. 2013 “Interview with Chan wook Park for Stoker” [Traileraddict] google
  • 29. 박 찬욱 2013 장편영화 <스토커> google
  • 30. 박 찬욱 2010 장편영화 <박쥐> google
  • 31. 박 찬욱 2006 장편영화 <친절한 금자씨> google
  • 32. 박 찬욱 2005 장편영화 <올드보이> google
OAK XML 통계
이미지 / 테이블
  • [ <그림 1> ] 
  • [ <그림 2> ] 
  • [ <그림 3> ] 
  • [ <그림 4> ] 
  • [ <그림 5> ] 
  • [ <그림 6> ] 
  • [ <그림 7> ] 
  • [ <그림 8> ] 
  • [ <그림 9> ] 
  • [ <그림 10> ] 
  • [ <그림 11> ] 
  • [ <그림 12> ] 
(우)06579 서울시 서초구 반포대로 201(반포동)
Tel. 02-537-6389 | Fax. 02-590-0571 | 문의 : oak2014@korea.kr
Copyright(c) National Library of Korea.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