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전체 메뉴
PDF
맨 위로
OA 학술지
Time and History of Chenkiger Movie 첸카이거 영화의 시간과 역사
  • 비영리 CC BY-NC
ABSTRACT
Time and History of Chenkiger Movie
KEYWORD
narrative image , unnarrative image , fixed time , time experience , historic continuity
  • 1. 서론

    우언성(寓言性), 미학성(美學性), 개혁성(改革性). 이것은 이른바 중국의 ‘5세대’로 불리는 감독군의 영화 스타일을 일컫는 대표적인 수식어이다. 여기에서 ‘개혁’은 문화혁명이 가했던 예술적 탄압에서의 자유를 전제하고 있으며 이는 영화의 영상 ‘미학’적 실천들을 가동하게 한 주요한 동력이었다. 그리고 이러한 영화 미학적 실천들 속에서 감독들은 이전의 억압적 역사를 반사(反思)하면서 깊이 있는 ‘우언’으로 예술적 차원에서 역사적 실천을 도모하기도 했다. 그러므로 ‘5세대’를 특징 있는 세 가지 수식어는 그들이 정박하고 있는 역사적 이데올로기와 예술 사이의 진동을 설명하는 언어이기도 하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이 진동 사이에서 ‘5세대’의 영화가 다분히 ‘중국적’이라는 수식어를 통해 서구적 시선에 사로잡힌 타자화된 상품으로 자리매김되어 온 사실이다. 이 지점에 서 있는 대표적인 ‘5세대’감독이 첸카이거와 장이머우이다. 첸카이거는 이른바 ‘5세대’라는 대명사를 가능케 한 시발점이 된 놀라운 영화 <황토지>(1984)를 통해 세계적인 이목을 집중시켰던 바1) 그의 영화적 실천들은 문화대혁명의 붕괴 이후 중국 영화의 변화와 발전을 모색하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지점을 제공한다. 이렇듯 첸카이거가 새로운 중국 영화의 선두 주자 내지 개척자처럼 인식된 데다가 <황토지>의 촬영 감독이었던 장이머우가 이후 <붉은 수수밭>(1988)으로 세계적인 이목을 집중시키게 되자 이들은 모두 ‘중국적’ 혹은 ‘중국’이라는 수식어 속에서 자신들의 영화적 스타일과 정체성을 부여받게 된다. 그러나 “민족적 동인이라는 문제-영화의 ‘중국다움’이라는 문제-는 정체성의 문제로서가 아니라 일종의 불확정성으로 상정되어야 하며 그런 의미에서 그것은 문화 생산의 종착점이 아니라 시작인 것”2)이라고 한 레이 초우의 말처럼 첸 카이거를 비롯한 이들의 영화적 정체성은 미결정성으로 사유되어야 하며 그 시작점에서 새로운 문화적 의미를 끊임 없이 재생산해내야 한다. 이러한 새로운 시작점 위에서 1980년대 ‘신시기’의 시대적 흐름을 타고 새로운 물결로서 등장한 첸카이거의 영화를 분석하고자 하는게 이 글의 출발점이다.

    한국에서 제기된 첸카이거의 영화에 대한 판단과 평가는 새롭게 재생산된 의미의 윤곽을 살피고 거기에서 또다른 의미를 포착하는 데 유용한 지침을 마련해 준다. 첸카이거에 대한 한국의 연구는 주로 ‘5세대’ 영화에 대해 논하면서 첸카이거 감독의 특징을 살펴보는 것3)과 첸카이거 감독의 독자적인 영화적 스타일과 그 특징을 분석하는 것4)으로 나뉜다. 전자의 경우 첸카이거는 ‘5세대’를 규정하는 대표적인 감독으로 자리매김하고 있으나 일반적으로 전체 5세대의 출현 동인을 역사적으로 훑거나 전반적인 영화적 특색을 설명하는 데 중점을 두고있기 때문에 첸카이거의 독특한 영화적 실천들에 대한 세심한 탐색은 찾아보기 어렵다. 이러한 한계를 보완한 논문들이 후자에 속한다. 학위 논문을 중심으로 하여 첸카이거 영화가 보여 준 ‘도가적 특색’과 ‘중국 심근 소설과의 연관성’, ‘중국 문인화와의 연계성’ 등에 초점을 맞춘 연구가 진행되었는가 하면 영상 이미지에 나타나 있는 ‘기호학적 특성’ 및 ‘영상 미학적 이미지의 특수성’ 등을 심도 있게 분석한 연구 또한 진행되어 왔다. 이러한 연구는 첸카이거 영화의 중국적이면서도 실험적인 측면을 잘 보여 준다.

    이를 증명하듯 첸카이거는 스스로 중국인이라는 사실을 부정하지 않고 중국의 전통을 말할 수 있는 영화를 만들어야겠다는 사명감을 가지고 있다고 하면서 그것이 “서구적인 논리의 방식이 아니라 동양 본래의 감성과 직관으로 이루어져야 한다”5)고 주장했다. 자신의 중국적 정체성을 명확히 천명하면서도 ‘동양적 감성과 직관’으로 영화를 제작하고자 하는 그의 굳은 신념을 통해 ‘확실성’(중국)과 ‘불확실성’(감성과 직관) 사이에 놓인 그의 영화적 스타일을 짐작할 수 있다.6) 또한 그렇기 때문에 그의 영화는 여전히 현재에도 재해석될 여지가 충분히 있다.

    본 고는 위의 선행 연구들의 업적을 수용하면서도 이렇듯 ‘확실성’과 ‘불확실성’ 사이에 가로 놓여 있는 첸카이거 영화들을 재검토하면서 새롭게 영화의 의미를 밝혀 보고자 한다. 이를 위해서 첸카이거 영화의 의미를 ‘시간’과 ‘역사’라는 두 층위에서 분석하며 기존의 논의에 영화의 새로운 일면을 추가해 볼 것이다.

    1)실제로 첸카이거는 인터뷰에서 “나는 왜 제5세대라 부르는지 모르겠고 우리 자신들은 그렇게 부르지 않는다.(중략) 문혁 이후 제5세대가 출현하기 이전가지를 제4세대와 같이 연도순으로 분류하자면 그렇게 불릴 수도 있겠지만 나는 제5세대라 불리는 것에 관심이 없고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첸카이게 감독 내한 기자회견」, 『영화예술』,1992. 10)고 밝힌 바 있다. 그는 연대기적인 세대 구분보다는 영화 스타일적인 측면에서의 차별성을 더욱 중요시한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이것은 일반적으로 ‘제5세대’를 명명하는 일반적인 평가에서 그 기준으로 작용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첸카이거의 세대적 구분에 대한 관심 여부나 의문과는 크게 상관 없이 그를 ‘제5세대’에 포함시켜 그의 영화적 스타일의 변모를 논의하는 것은 타당해 보인다.  2)레이 초우,『원시적 열정』, 정재서 옮김, 이산, 2004. 138면. 레이 초우는 이 글에서 <황토지>의 음악을 분석함으로써 기존의 서구적 시선에 의해 분석되었던 제3세계 영화로서의 중국 영화에 대한 새로운 분석을 시도하고 있다.  3)이와 관련된 주요 논문은 다음과 같다. 佟麗生, 「中國 5世代 映畵와 尋根意識 硏究」, 경상대학교대학원 박사, 중국어문학과, 2009. 이강인, 「중국영화의 제5세대와 제6세대에 대한 고찰」,『CHINA연구』제4집, 부산대학교 중국연구소, 2008. 정태수, 「역사 속에서 새로운 창작의 혁신을 찾다-1984에서 1989년까지의 중국영화」,『현대영화연구』제7호, 현대영화연구소, 2007. 조희문, 「제5세대 영화와 첸카이거」,『황해문화』, 1997년 겨울.  4)이와 관련된 주요 논문은 다음과 같다. 최일춘, 「천카이거 초기 작품에 나타난 도가적 사유 연구」, 연세대학교 석사, 2007. 김영란, 「첸카이거의 중국적 영상미와 주제의식 연구」, 동국대학교 석사, 1995. 장용화, 「쳔카이거 영화『황토지』분석의 실례」,『중국어문학논집』제19호, 중국어문학연구회, 2002. 목혜정, 「<황토지>의 사운드 분석」,『CINEFORUM』, 1999. 5. 權鎬鐘ㆍ佟麗生, 「천카이꺼 영화의 ‘영상우언’ 고찰」,『중국문학』제55집, 한국중국어문학회, 2008. 이희승, 「중국영화에 나타난 탈사회주의적 징후에 관한 연구:첸카이거의 초기 삼부작을 중심으로」,『한국방송학보』, 한국방송학회, 2002. 박민영, 「인생경극: 영화 <패왕별희>의 상징성」,『문학과 영상』제8권, 문학과영상학회, 2007 여름. 김영미, 「천카이거, 중국 현대화 ‘탈주선’을 타다」,『중국학연구』제29집, 중국학연구회, 2004.  5)천카이거 인터뷰, 「동양적 사상의 직관력을」, 『스크린』, 1992. 9.  6)물론, 여기에서 확실성의 범주에 속한다고 제시한 ‘중국’ 혹은 ‘중국인’이라는 것 또한 엄밀하게 이야기한다면 ‘추상명사’의 범주에 속한다는 것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과연 ‘중국’은 무엇이며 ‘중국인’은 누구인가. 천카이거는 자신을 ‘중국’이라는 명사에 포함시키는 것에는 주저하지 않지만 그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서는 끝내 설명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여기에서 ‘확실성’의 범주에 넣은 ‘중국’이라는 추상 명사는 천카이거가 명명한 ‘중국’이라는 지시어에 속할 뿐 객관적인 차원에서 분석해야 할 ‘추상명사’로서의 의미로는 해석되지 않는다는 점을 미리 밝혀둔다.

    2. 첸카이거 영화의 ‘시간’과 ‘역사’

    1992년 천카이거는 <현 위의 인생>의 국내 개봉을 기념하여 한국을 방문한 후 행한 인터뷰에서 그의 이데올로기가 무엇인지 묻는 질문에 다음과 같이 대답한다.

    위의 글에서 첸카이거는 자신의 시대적 경험과 그 변화에 주목하여 이데올로기적 지향점을 설명한다. 여기서 구체적인 시대적 경험으로서의 문화혁명은 과거의 문제이자 중국이 나아가야 할 미래 지향적 모델을 추구하는 데 있어 결정적인 사건으로 작용하는데, 이는 문화혁명이 가져온 전통의 파괴를 복구하고 새로운 중국적 전통을 수립하는 문제로 귀결된다. 이것이 첸카이거가 주목한 “내가 경험한 시대적 변화”의 과거와 현재, 미래의 모습이라고 정리해 볼 수 있다. 이를 테면 중국적 전통과 중국 사회의 모습이 서로 양립하는 가운데 중국은 나아갈 방향을 찾아야 하는 것이다. 이를 반영하듯 그의 영화에는 중국적 전통의 모습과 중국의 정치 현실 및 현재의 문제들이 뒤엉켜 있는데, 주목해야 할 것은 영화 안에서 이들이 뒤엉켜 있는 방식이다.

    첸카이거의 영화는 ‘과거’와 ‘현재’ 그리고 예정된 ‘미래’라는 역사적 흐름을 전제하고 중국적 전통과 현실을 담아내는 영상 미학을 추구한다. 그러므로 연구의 방향은 첸카이거 영화에 나타난 영상 미학을 도가적 사유나 기호학적 탐색 혹은 문인화적 추구 등에서 살피는 데서 더 나아가 ‘시간’과 ‘역사’를 반영하는 영상 미학의 탐색으로 나아가야 한다. 이를 테면 “첸카이거는 롱테이크(long take)와 느슨한 몽타쥬를 사용함으로써 정체된 시공간을 재현하며 반혁명적 이미지들의 생산을 시도한다. 이것은 혁명의 영화의 대명사가 되어온 소비에트 영화를 역이용하여, 중국 고전영화가 구축해온 혁명의 약호들을 해체하는 작업이라고 볼 수 있다”8)는 것은 기호학적 분석에서는 유효할 수 있지만 첸카이거가 영화 속에 재현하려고 한 이데올로기적 지향점을 충분히 수렴해내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천카이거 영화의 두드러진 특징은 연속적 내러티브와 함께 비합리적인 컷들이 존재한다는 점이다. 여기에서 연속적 서사의 뼈대는 주로 역사적 사건에 맞춰져 있다. 중국의 현실 사회의 모습을 반영하는 공산주의(<황토지>), 영웅 서사와 민족 갈등(<현 위의 인생>), 현대화(<풍월>), 문화대혁명과 홍위병(<아이들의 왕>), 집단과 개인(<대열병>), 중국 근대사(<패왕별희>) 등이 그것이다. 한편 그것과는 상반되는 비내러티브적인 컷들은 가령 황토와 황하(<황토지>), 양치는 목동(<현 위의 인생>), 경극(<패왕별희>), 성자적 삶과 자연미(<현 위의 인생>) 등으로 정리해 볼 수 있다. 여기에서 이른바 ‘중국적’이라는 요소는 비내러티브적인 이미지의 자리에, 중국의 역사적 현실은 내러티브의 연속선상에 자리한다. 연속선상의 내러티브는 역사와 현실을 보여 주지만 비내러티브적인 이미지는 그것들을 잠시 유보하고 휴지를 야기하는데, 이를 통해 영화는 일종의 중국적 아우라를 발산하게 된다.

    이를 위해 본 고에서는 들뢰즈의 ‘시간-이미지’의 개념을 차용하고자 한다. “시간-이미지는 ‘비합리적인 컷들’에 의해 작동한다”9)고 볼 수 있는데 이는 현대 영화에 재현된 비내러티브적인 이미지들에 의해 확인할 수 있다. “들뢰즈가 말하는 현대 영화에서는 이미지들이 어떤 중심을 가지고 통일적으로 또는 인과적으로 배치되어 있는 것이 아니다. 모든 연결은 의도적으로 느슨해지고 내러티브의 귀결점은 분산된다. 단지 각각의 이미지들은 모나드처럼 각각의 시점에서 전체 영화를 반영하는 것에 불과하다. 판별 불가능성의 원리와 연속성의 원리라는 서로 이질적으로 양립 불가능한 측면이 현대 영화의 특징”10)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 영화들에 나타난 시간은 기존의 연속선상에 있는 내러티브적인 시간을 벗어나 있는 것이다. 즉, “공간과 운동의 법칙으로부터 해방되고 유기적 구성원리로부터 벗어나는 시간은 스스로를 탈구시켜 일종의 순수 상태에서 제시하게 된다.”11) 그리고 이 때의 시간 이미지는 현실성과 잠재성, 실재적인 것과 상상적인 것, 현대와 과거 사이의 판별이 불가능한 이미지라고 정리해 볼 수 있다. 결과적으로 현대 영화에서 나타나는 시간-이미지는 비내러티브적이고 단절적인 이미지를 영화 안에 배치함으로써 연속선상에 있는 내러티브 구조에 분열을 초래하며 영화 관람객으로 하여금 새로운 시간-이미지를 통해서 내러티브의 연속선상에서는 파악할 수 없는 판독 불가능한 어떤 근본적인 사유의 지점으로 이동하게 한다. 이 시간-이미지는 또한 현실성과 잠재성, 실재적인 것과 상상적인 것, 현재와 과거의 판독 불가능한 사유를 이끌어내는 데 기여한다. 이를 잘 보여 주는 것이 ‘거울씬(mirror scene)’이다. “영화에서 거울 속의 이미지는 등장 인물과의 관계에서는 잠재적이나 거울 안에서는 현동적인 것이 되며 만일 카메라의 시선이 거울 속 이미지에 집중하게 되면 등장인물이 오히려 하나의 잠재 이미지가 되어 화면 밖으로 밀려난다. 특히 다면의 거울일 경우 등장 인물의 잠재 이미지는 무한히 증가하게 되며, 그 잠재 이미지들의 합은 등장인물로부터 현동성 자체를 빼앗아 등장 인물을 수많은 잠재 이미지들 중 하나로 바꾸어 놓는다.”12)

    또한 이러한 시간-이미지가 제시하는 공간은 일종의 ‘임의의 공간’이자 ‘텅-빈 공간’으로서 감각-운동의 도식이 와해되는 공간으로서 주관적인 것과 객관적인 것, 잠재태와 현실태 또는 상상적인 것과(의)사이에 놓여 있는 공간이다.13) 이러한 시간-이미지가 제시하는 공간에서는 현재의 시간에 과거가 잠입해 들어올 수 있으며 현재는 다시 미래를 예견하기도 한다.

    이와 같은 들뢰즈의 시간-이미지의 성격은 첸카이거 영화의 영상 이미지에도 적용된다. 앞에서도 지적했듯이 연속선상에 있는 내러티브와 비내러티브적인 이미지의 재현 방식은 연속적으로 진행되는 역사적 현실과 충돌하는 비내러티브적인 요소, 즉 중국 전통, 자연과 원시성 등을 이미지로 재현함으로써 영화 전체를 ‘연속’과 ‘단절’의 방식으로 구성한다. 또한 비내러티브적인 이미지는 임의적이고 텅 빈 자연적(원시적) 공간을 열어 제침으로써 시간적 휴지를 야기하고 어떤 근본적인 사유에의 길을 활짝 연다. 일종의 당황스러움으로 다가오는 이러한 이미지의 현현은 영화 전체를 도저히 가늠할 수 없는 어떤 비가시적인 암시와 상징으로 만들어 내러티브적 요소의 강력한 작동을 순간적으로 정지시키고 무효화하는 것이다.

    한편 시간-이미지의 다른 한 켠에 존재하는 연속선상의 ‘역사’는 민족을 상상의 구성체로 명명하는 베네딕드 앤더슨의 논의와 크게 동떨어져 있지 않다. 첸카이거는 “중국은 외롭지 않다. 믿음의 체계, 미신, 종교 혹은 철학은 인류의 역사와 평행선을 그리며 발전해 왔다. 수시로 그것들은 인간에게 희망에 대한 힘을 주었으며 자신의 희망을 추구할 수 있게 했다. 희망이 있는 한 역사적 장애도 극복할 수 있다. 나는 그 치유능력을 구상화시키기 위해 고심했다”14)고 천명함으로써 그의 사유가 ‘중국 되기’에 공명하고 있다는 점을 분명하게 피력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역사적 시간이 단절화된 시간-이미지의 재현으로 말미암아 잠시 주춤거리는 것이다.

    이로써 ‘중국’이라는 추상명사는 쉽게 완결되고 고정된 개념으로 읽힐 수 없게 된다. 영화 안에서 비합리적인 이미지들로 인해 역사적 사건과 현실은 지속적으로 방해받고 어떤 고정된 의미에서 지속적으로 빠져 나가는 것이다. 바로 이것이 1980∼90년대 중국과 그 현실을 바라보는 첸카이거의 사유이다. 문화대혁명의 붕괴, 새로운 사회주의개혁ㆍ개방, 신자유주의의 도래, 천안문사태 등은 모두 복잡하고 혼란스러운 중국의 역사와 현실을 대표하는 것들이다. 첸카이거에게 이러한 중국은 쉽게 규정될 수 없는 거대한 의문부호였다. 중국의 역사와 전통을 고집하면서도 끝내 쉽게 권력의 장 안으로 빨려 들어갈 수 없었던 것은 바로 이런 이유에서였다. 첸카이거의 이러한 태도가 영화<황토지>나 <대열병>, <아이들의 왕>, <현 위의 인생>, <패왕별희>나 <풍월> 등에 반영되어 있는 것이다. 영화 속에서 비내러티브적인 ‘시간-이미지’와 내러티브적인 역사를 공존시키면서 첸카이거는 그가 일관성 있게 탐구해 온 ‘중국’과 ‘중국 전통’을 자기 나름의 방식으로 새롭게 재검토한다.15)

    기법상으로 보자면 첸카이거의 1980년대 영화에 나타나는 ‘시간-이미지’와 ‘역사’는 전반적으로 익스트림 롱 샷과 롱 테이크 등의 카메라 기법, 자연 이미지의 빈번한 사용과 역사적 사건의 최소화 등으로 재현된다. 이러한 비내러티브적 이미지와 내러티브적 이미지의 빈번한 연속과 단절을 통해서 ‘느림의 미학’이 형성되는데 이는 문화대 혁명 이후 새롭게 서방에 문호를 개방한 중국 역사에 대한 진지한 고민과 성찰을 가능하게 한다. 반면에 1990년대 이후 <패왕별희>와 <풍월> 등에서는 카메라의 빠른 속도와 화려한 이미지의 현란한 연출, 도시적 정서의 반영, 복잡한 역사적 사건의 연대기적 제시를 시도하고 나아가 비내러티브적 요소와 내러티브적 요소 간의 연속과 단절의 양상을 뚜렷하게 구분하지 않음으로써 성찰과 반성을 위한 시간적 휴지를 불가능하게 한다. 이러한 변화 속에는 1990년대 빠르게 변화하면서 자본주의의 침투에 물들어 가는 중국의 사회와 현실을 바라보는 첸카이거의 사유가 깊이 각인되어 있다.

    7)천카이거 인터뷰, 위의 글. 1992. 9.  8)이희승, 앞의 글, 291∼292면.  9)클레어 콜브룩,『질 들뢰즈』, 백민정 옮김, 태학사, 2004, 93면.  10)박성수, 「들뢰즈와 시간 이미지」,『오늘의 문예비평』37호, 2000 여름, 153면.  11)김호영, 「들뢰즈의 영화미학:시간-이미지와 모데르니테」,『한국프랑스학논집』36집, 한국프랑스학회, 2001, 183면.  12)김호영, 위의 글, 186면.  13)피종호, 「들뢰즈와 시간-이미지 또는 이미지로서의 시간」,『뷔히너와 현대문학』제35호, 한국뷔히너학회, 2010. 379∼380면 참조.  14)「첸카이게의 중국대륙 환타지/믿음과 희망을 조율하는 맹인음악가 <현 위의 인생>」,『스크린』, 1991. 7.  15)중요한 것은 첸카이거의 이러한 사유가 중국과 역사적 흐름에 대한 자문일 뿐, ‘중국적인 것’에 대한 해답이 아니라는 점이다. 그러므로 첸카이거는 서구의 입장에서는 타자화된 대상이지만 실제로는 끊임 없이 중국의 역사와 그 안에서의 자신의 위치를 자문함으로써 지속적으로 자신에게 주어진 의문을 풀어 나가는 과정에 속해 있는 주체라고 봐야 할 것이다. 이것은 일차적으로는 고집스럽게 자신의 창작 스타일을 고수한 첸카이거의 자존심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나아가는 그의 영화 스타일이 장이머우와 달라지는 지점이라고도 할 수 있다.

    3. 놓여 있는 ‘길’, 단절과 지속

    첸카이거의 <황토지>는 커란의 산문『골짜기의 메아리』(深谷回聲)를 영화화한 것으로 스위스 로카르노 영화제에서 은표범상을 수상하며 세계적인 반향을 일으켰다. 이 작품의 가장 큰 특징은 바로 기존 영화의 내러티브를 넘어서는 풍부한 상징과 우언성을 통해 영화를 낯설게 한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낯설게 하기는 영상 미학적으로 어떻게 이루어지는가. “<황토지>는 플롯을 넘는 비유적인 표현과 대화를 넘는 노래와 상징, 그리고 명시적인 교훈의 기능을 넘는 모호함을 강조한다”16)고 했거니와 <황토지>의 영상 미학은 무엇보다 인물을 중심으로 한 내러티브를 부차적인 요소로 하고 그 외의 노래(민요)와 거대한 자연을 중심에 놓았다는 게 특징이다. 거대한 황토와 유구하게 흘러가는 황하, 그러한 장관을 따라 유유히 흐르는 중국의 전통 민요는 자연에서 숨쉬며 살아가는 인물들을 한낱 티끌과 같은 존재로 만들어 버린다. 영화의 시작 부분에서 1939년 이름 봄, 민요 채록을 위해 옌안(Yan’an)에서 시골 마을로 들어가는 팔로군 병사 구칭과 거대하고 척박한 황토의 모습이 디졸브되는 장면에서는 구칭이 황토에 스며들어가는 효과를 냈다. 마치 척박한 대지가 구칭을 조용히 잠식하는 듯한 이 장면은 인물을 황토의 일부분으로 귀속시킴으로써 보는 이로 하여금 황토지의 거대한 웅장함과 힘을 실감케 한다. <황토지>는 이와 같은 인물과 대지의 관계를 여러 방식으로 보여 주는데 크게 두 가지로 나눠 볼 수 있다.

    우선, 추이차오, 한한, 그의 아버지, 구칭을 중심으로 일어나는 이야기에 삽입되는 황토지와 황하 등의 자연물을 익스트림 롱 숏과 롱 테이크로 서서히 팬 하면서 보여 주는 것이다. 가령, 구칭이 온 날 밤, 물레질을 하며 민요를 읊조리는 추이차오의 모습에 이어서 제시되는 황토지의 장면을 들 수 있다. 물레질을 하는 추이차오의 모습과 황토지의 모습이 추이차오의 민요가락과 어울리는 가운데 카메라는 추이차오의 모습보다는 어둠에 물든 황토지의 모습을 익스트림 롱 숏과롱 테이크로 서서히 팬 하면서 공간감을 최대한 확장한다. 이러한 효과는 추이차오의 구칭과의 만남과 구칭이 제안한 노래에 화답하는 추이차오의 모습보다는 추이차오라는 존재와 그녀를 품고 있는 거대하고 영원한 대지의 기운을 최대한 살리려는 의도에서 비롯된다. 이 두 장면이 이어지면서 추이차오의 현재와 그녀를 존재케 한 영원한 대지의 잠재적 힘이 연출된다. 이것은 그녀의 결혼이 확정되고 구칭이 떠나기로 결정한 이후 아버지가 민요를 부르는 사이 추이차오가 마당에 나와 곡식을 빻는 장면에서 비슷한 방식으로 재현된다. 그녀의 행위는 절망과 아픔을 표현하지만 그것은 단순히 곡식을 빻는 그녀의 행위에 한정되지 않는다. 카메라는 그녀의 모습에 잠시 머물렀다가 황토지의 장면을 삽입하여 팬 하면서 다시 그녀에게로 서서히 이동한다. 그 위로 흐르는 민요 가락과 함께 추이차오의 현재는 잠시 황토지로 인해 끊어졌다가 이어지며 그녀가 끊어낼 수 없는 면면히 이어져 온 대지와의 연결과 그 불행한 전통을 재환기한다. 비슷한 패턴이 그녀가 황하물을 긷는 장면, 그녀가 마지막으로 혁명가를 부르며 황하를 건너는 장면 등에서 반복된다. 깊이를 헤아릴 수 없는 불가사의한 황토지와 황하의 물결을 빈번하게 삽입함으로써 영화는 구칭과 추이차오 가족들과의 만남과 그들 사이에 일어나는 전통 봉건제의 폐습과 공산주의등의 이야기를 과감하게 절단하고 그 의미를 잠시 유보한다. 선명한 이야기를 절단하며 제시되는 이러한 장면들은 서사의 진행을 끊어 버리지만 오히려 서사의 의미를 깊이 곱씹어 보게 한다.또 한가지 눈에 띄는 것은 황토지의 사이에 난 길과 그 길 위에 선 인물들을 잡는 장면이다. 구불구불하게 끝없이 이어진 길 사이에 ‘떠나거나(leaving)’ 오는(arrving)’ 마치 점(點)과 같은 인물들의 모습이 보인다. 그리고 이들은 그 거대한 황토지 건너로 사라지거나 다시 나타난다. 카메라는 황토지의 거대한 모습을 화면 가득히 담아내는데, 익스트림 롱 숏과 롱테이크를 이용하여 장면을 고정시키거나 팬 하면서 그들의 출몰을 조용히 보여 준다. 가령, 옌안으로 떠나는 구칭과 그를 송별하는 추이차오와 한한의 장면을 살펴볼 수 있다. 카메라는 일관성 있게 거대한 황토지를 프레임 가득 잡아내는 것을 멈추지 않는다. 구칭과 한한은 겨우 카메라의 가장 위쪽에 점처럼 서 있을 따름이다. 이 장면 뒤로 구칭과 한한 각각의 시점 숏으로 길을 따라 떠나는 구칭과 서 있는 한한의 모습이 교차 편집된다. 특히 카메라는 한한의 시점 숏으로 황토지를 팬 하면서 구칭의 떠나는 모습을 보여 주는데 이는 추이차오와의 이별 장면에서도 비슷하게 반복된다. 다른 점이 있다면 이 장면에서는 민요가락이 예외 없이 장면 전체로 흐르고 추이차오와 구칭 각각의 시점 숏으로 두 사람이 황토지 속으로 사라져 버린다는 것이다. 추이차오는 구칭이 사라진 황토지를 멍하니 바라보다가 발길을 돌리는데 이때 추이차오는 황토지 사이로 사라졌다 나타났다 하며 조금씩 황토지 안으로 사라져 간다. 이 때 민요는 누구도 자신을 구제해주지 않는다는 구슬픈 가락을 황토지 전체에 퍼뜨린다. 구칭을 떠나보내며 추이차오는 자신을 구원하기 위해 다시 돌아오기를 소망해 보지만 그 뒤에 삽입되는 이러한 장면들은 인간의 욕망과 소망까지도 압도하는 거대한 자연의 힘과 위압감을 조성한다.

    이렇듯 첸카이거는 <황토지>에서 팔로군 구칭의 민요 채록과 계몽적 사회주의, 추이차오의 봉건적 결혼, 아버지의 인습적 사고방식 등의 서사적 이야기를 진행해 나가면서도 장면마다 빈번하게 불멸할 것만 같은 황토지와 황하 등을 가득 담아내면서 서사의 불연속성을 시도한다. 영화는 ‘연속’과 ‘불연속’, ‘단절’과 ‘지속’의 분절들을 생산해내고 결국 모호한 아우라 속에 잠긴다. 우리는 추이차오와 그의 가족들과 연결되어 있는 거대하고 척박한 대지와 불가사의 속에서 그들이 뿌리내리고 있는 시원적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의 모습들을 막연히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하여 첸카이거가 이러한 비내러티브에만 치중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는 시종일관 역사에 시간에 대한 균형 감각을 잃지 않는다. 구칭은 영화의 마지막 부분에서 여전히 떠났던 황토 너머로부터 다시 돌아오기 때문이다.

    명료하게 주제를 파악하기 어렵도록 고안된 내러티브와 비내러티브적인 장면들을 통해 첸카이거는 문화혁명 이후 새롭게 중국의 전통과 역사를 통해 그 기원을 새로 써야 하는 시대적 사명감을 실험적으로 표출했다고 볼 수 있다. 그는 중국의 과거와 현재, 미래에 대한 역사적 사명감을 단절과 지속의 문제로 받아들이고 그것을 통해 앞 날에 놓여 있는 길이 무엇인지 자문한다. 이때 중국은 그 안에서 살아가는 존재들을 압도하는 거대한 힘이다. 거스를 수 없는 중국이 모든 존재들의 숨통을 조일 듯이 육박해 오는 것이다. 압도당한 인간 존재가 중국의 나아갈 길 앞에 서 있다. 이러한 그의 이데올로기가 거대한 황토지 위에 펼쳐져 있는 끊임 없이 이어지는 길과 그 위에 놓여 있는 점과 같은 인간 존재로 재현되는 것이다.

    이러한 첸카이거의 영화적 스타일은 <아이들의 왕>에도 적용된다. <아이들의 왕>은 심근문학(尋根文學) 작가 아청의 소설『아이왕(孩子王)』을 영화로 각색한 것으로서 첸카이거는 이 작품에 문화혁명기 상산하향(上山下鄕) 경험을 했던 자신의 이야기를 담았다고 한다. 영화에서는 <황토지>에서와 마찬가지로 거대한 자연을 익스트림 롱 숏과 롱 테이크, 팬 촬영을 통해서 보여 주는데, <아이들의 왕>에서는 <황토지>의 배경이 된 섬북(陝北) 지방의 척박한 토지와는 달리 윈남성의 녹음이 짙은 풍족한 자연 풍광을 제시한다. 이 영화에서도 주요한 내러티브는 ‘계몽’과 얽혀 있다. 서사의 뼈대는 문화혁명의 말기 생산대에서 일하던 라오간이 우연하게 시골 학교에 부임해 중학교 3학년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겪는 일로 짜임새 있게 구성된다. 그런데 내러티브의 연속성을 방해하는 비내러티브적인 장면은 이 영화에서도 예외없이 연출된다. 허다한 비논리적 화면이 줄거리와 상관 없이 빈번하게 사용되고 헐리우드 영화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비논리적인 화면이 일종의 상궤를 이루고 있는 것이다.17)

    이러한 장면은 우선 영화의 처음 장면에서 시골 학교의 전경을 제시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이 장면은 영화 내내 여러 번 반복되는데 고정된 카메라는 익스트림 롱 숏과 롱 테이크로 연무가 낀 새벽부터 해질녁까지 시간의 경과를 차분하게 보여 준다. 산등성이에 놓여 있는 학교와 그 곳으로 올라가는 길이 푸른 신록과 대비되어 한 폭의 동양화를 연상케 한다. 여기에 더해지는 자연의 음향들은 영화 내내 지속되는데 특히 소 치는 목동을 연상케 하는 소방울 소리는 정감과 신비감을 더해 준다.

    라오간과 학생들의 관계가 역사적 문제를 제시한다면 그 사이에 삽입되는 푸른 신록과 소 치는 목동의 모습은 비내러티브적인 시간을 형성한다. 또한 가지는 라오간이 아이들을 가르치던 어느 날 밤 깨진 거울을 들여다보는 장면인데 이것은 라오간의 동일성을 분열시키는 영화의 중요한 대목이다.

    우선, 자연의 푸른 신록과 거대한 풍광은 소 치는 목동과 병치 관계에 있다고 볼 수 있다. 시골 학교로 부임한 라오간은 교실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다가 문득문득 멍하니 자연의 풍광을 바라보기도 하고 우연히 목동과 마주친다. 라오간이 라이띠로부터 받은 자전을 읽는 어느 날 밤, 문자를 웅얼대는 크로테스크한 음향이 신비감을 조성하는 장면에 이어 등불을 든 라오간이 문 앞에 서 있는 소를 보는 장면이 삽입된다. 라오간이 수업을 하는 도중 다른 교실에서 칠판에 장난을 치고 도망친 목동을 잡으러 가는 장면도 비슷하다. 글을 가르쳐 주겠다는 라오간의 말을 무시한 채 소를 몰고 사라져 가는 목동의 모습은 혁명 교육에 일종의 결락(缺落)을 형성하고 그를 당혹스럽게 한다. 이 목동은 라오간이 생산대에서 시골 학교로 발령받아 가는 길에서 우연히 마주친 아이로서 해고당한 그는 돌아가는 길에 다시 그 아이와 마주친다. 수업 방식 때문에 해고당한 라오간이 학교를 떠나는 길에서 우연히 만난 목동, 라오간이 멍하니 바라보는 가운데 오줌을 누고 라오간을 바라보는 목동의 클로즈업된 눈 속에는 텅 빈 무(無), 교육의 그물망에 걸리지 않는 자연, 문화혁명의 역사적 과제를 벗어난 시간이 버티고 있다. 신비한 연무와 조각상들, 그리고 서서히 소방울 소리와 함께 연무 속으로 사라져 가는 목동을 보면 자연과 분리되지 않는 어떤 것, 도저히 언어에 포착되지 않는 시간을 연상하게 된다. 학교는 폐쇄적이고 산만하고 글을 베껴쓰는 소리로 요란하지만 그런 장면 사이에 삽입된 자연은 목동과 소 방울 소리, 새소리를 비롯한 자연의 음향들과 거대한 풍광들로 평온하게 제시된다. 익스크림 롱 숏과 롱 테이크, 팬 촬영을 이용하여 공간감을 최대한 확장하면서 이미지화된 자연의 풍광은 학교라는 폐쇄된 시공간을 해방시킨다.

    한편, 라오간이 아이들의 교육에 회의를 느끼는 와중에서 어느 날 밤 깨진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에 침을 뱉는 장면은 들뢰즈의 ‘시간-이미지’에서 말하는 ‘거울 장면’과 정확하게 일치한다. 두 조각으로 깨진 거울 속에 비친 라오간은 들여다 보는 라오간에게는 잠재적인 모습이지만 거울 속 라오간에게는 그 거울을 들여다 보는 라오간이 잠재된 모습이 된다. 이는 라오간의 무의식과 의식 혹은 잠재태와 현재태가 착종된 것으로서 그의 교육자로서의 현재 모습에 분열을 야기하고 과거의 모습과 미래의 나아갈 방향을 지시해 준다.

    이렇듯 영화 안에서 삽입된 비합리적인 장면들은 왕푸를 비롯한 학생들의 베껴 쓰는 행위와 학교 교육, 라오간의 교육 경험 나아가서는 문화혁명이 내세운 이념의 당위성을 무의미하게 만든다. 이로써 첸카이거는 단절과 연속으로 문화혁명이라는 역사적 문제를 사고한다. 문화혁명의 가열찬 과제들이 비연속적 내러티브 속에서 중단될 때 우리는 문화혁명의 당위성과 의미를 잠시 유보하게 된다. 그리고 첸카이거는 라오간의 서사를 통해 젊지만 아직 성숙하지 못한 중국과 이렇게 함으로써 맞닥뜨리게 될 불구적인 미래를 가늠해 본다.

    <황토지>와 <아이들의 왕>이 중국의 현실과 전통의 문제를 영화 속에서 담아내려 했다면 <현 위의 인생>은 그러한 조건들을 아예 배제하고 신화적이고 서사시적인 세계를 펼쳐 보인다. 이 영화가 나왔을 때 대부분 논자들은 이전의 영화와 현저한 차이를 느꼈다고 하지만 실제로 첸 카이거는 “이 영화가 앞의 3편과 같은 영화”18)라는 점을 강조한다. 실제로 영화는 이전의 영화와 비슷한 패턴으로 전개된다. 우선, 맹인 노인과 제자 시토우가 함께 서 있는 대지를 살펴볼 수 있다. 이 두 사람은 마치 로드무비에 나오는 여행자처럼 거대한 황야 위에 서 있다. 이전 영화들과 다름 없이 카메라는 익스트림 롱 숏과 롱 테이크를 이용하여 척박한 황무지 위에 이들을 초라한 점처럼 묘사한다. 특히 카메라는 황야를 보여 주는 씬에서 자주 천천히 틸 다운하면서 노인을 촬영하는데 이 때문에 산봉우리나 대지에 서 있는 노인의 성자적 풍모가 돋보이게 된다. 노인이 마지막 현을 끊기 위해 올라간 산봉우리에서 마치 첨탑처럼 서 있는 모습은 매우 인상적이다. 손씨와 이씨 가문의 싸움을 말리기 위해서 산 위에 올라앉았던 모습처럼 카메라는 성자의 뒷모습을 미디엄 롱 숏으로 잡는데 이 때 그의 앞으로 거대한 황무지를 따라 길이 아득하게 놓여 있는 장면이 장엄하게 연출된다. 이것뿐만 아니라 영화는 노인과 시토우의 마을 사람들 과의 만남과 현을 끊고자 하는 욕망과 여정 사이사이에 거대한 평야와 산, 계곡 등을 천천히 팬 화면으로 삽입함으로써 연속적 서사의 맥을 끊는다.

    무엇보다 이 영화의 명장면은 나룻터 씬이다. 이 곳은 처음에 성인으로 불리는 노인이 시토우를 데리고 들르는 장소이자 나중에 자신이 영원히 맹인일 수밖에 없는 절망감을 안고 노인이 들르는 곳이다. 이 나룻터는 그곳에서 일하는 일명 어리석은 자의 “나그네가 온다. 나그네가 간다”라는 우언이 암시하듯이 일종의 인생의 은유화된 공간이다. 특히 맹인으로서의 노인이 다시 나룻터에 들른 어느 날의 장면은 압권인데, 술 취한 노인을 품에 안고 눈물 지으며 의미를 알 수 없는 노랫가락을 읊조리는 술집 여인의 얼굴이 클로즈업되는 가운데 배경을 이루는 황하의 폭포는 거침 없이 나룻터를 집어 삼킬 듯이 흐른다. 여인은 어디서 왔는지 기억할 수 없고, 노인은 언제부터 거기에 왔는지 알 수 없다. 그리고 어리석은 자의 웃음인지 울음인지 알 수 없는 모습과 어린아이의 천진한 웃음, 마치 부처와 같은 주인장의 “인생은 한 편의 연극이지요”라는 우언의 연속적인 흐름은 노인의 밝은 세상에 대한 욕망과 갈등, 시토우의 란수와의 사랑과 실패라는 연속적인 내러티브에 결정적인 단절을 형성하고 자연과 인간, 과거와 현재 등을 혼합한다. 첸 카이거는 인터뷰에서 나룻터의 인물들이 동양적 상징이며 나룻터 장면은 동양 사상에 대한 직관력에 의해서 표현한 것으로 그것을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19) 즉, 이 공간은 비논리와 직관에 의해서 형성된 곳으로서 영화 내적 서사의 가장 큰 단절을 초래하지만 풍부한 시적(詩的) 질감으로 우리 인생의 과거와 현재 혹은 영원과 불멸, 현실과 비현실의 시간 경험을 전달해 준다.

    영화의 막바지에 이르러 노인이 맹인임을 인정하면서 횃불을 든 마을 사람들 사이에서 마지막으로 서사시를 노래하는 장면 또한 의미심장하다. 성인으로서 마을의 씨족 간 분쟁을 해결하던 노인이 맹인으로서 다시 서사시를 노래할 때 그의 주위를 둘러싼 횃불들이 밤을 수 놓는 장면이 부감 숏으로 촬영된다. 이 장면에서 등장하는 마을 사람들과 나룻터 주인, 노인, 시토우는 서사시를 통해 하나로 응집된다. 서사시와 민족, 종교 등이 마치 시간을 초월한 어떤 공간 속에서 하나의 총체로 얽혀 있는 인상을 준다. 여기서 란수의 죽음이나 시토우에 대한 손씨 가문의 분노는 과감히 삭제되기 때문에 이 장면이 서사의 연속선상에서 벗어나 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이 장면 이후 노인은 죽고 말지만 시토우는 노인의 현을 들고서 미지의 땅을 향해 걸어 나가고, 시토우의 사랑을 자살로 끝맺은 란수가 갖고 싶어하던 나비연이 하늘을 수놓는다.

    첸 카이거는 이 영화에서 신화를 통해 중국의 현실을 말하고자 한 것이라고 밝히고 있는 바20)노인과 시토우를 잇는 세대의 문제, 민족 갈등, 종교 등의 종합적 성찰이 영화 전체를 현재적인 것으로 인식하도록 한다. 영화적 비합리적인 컷들에 반영된 신화적 요소는 현재 중국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위해 되새겨 보아야 할 것들이며 이것은 초시간적이면서도 가장 현실적인 요소가 된다. 초월적 ‘성인’과 현실의 ‘맹인’의 삶을 살았던 노인은 ‘중국’이 지니고 있던 초월적 전통과 현실적 불구성을 체현하며 시토우를 비롯한 젊은 중국에게 계승되어야 할 유산이라고 할 수 있다.

    전체적으로 보아 첸 카이거의 영화는 특정한 공통점을 보인다. 우선, 영화 내내 연속과 단절이 병행되는데 특별히 연속적 내러티브는 1980년대 중국의 현안이라고 할 수 있는 전통과 문화혁명, 세대와 민족 등을 포함한다. 그리고 이러한 흐름의 맥을 끊는 비연속적 내러티브는 주로 비문명적 요소(대지, 황하, 민요) 등으로 채워진다. 첸 카이거는 역사적 문제를 잠시 유보하는 이러한 비문명적 시간을 이미지로 구현함으로써 1980년대의 개혁과 개방의 새로운 역사적 시간 속에서 무엇을 구현하고 무엇을 시도해야 할지에 대한 고민을 녹여 낸다. 다이진화는 첸 카이거를 비롯한 5세대의 역사적 정체성을 다룬 글에서 이들이 갑자기 개방된 역사의 시야 속에서 역사적인 동시에 미래 지향적인 중국의 형상을 세계에 보여 주었다고 평가한다. 이어서 그는 5세대의 역사적 태도가 과거 5.4운동의 신청년 정신에 가깝다고 분석하면서 역사적 책임감과 사회적 사명감이 전통적 사슬을 증오하게끔 하면서도 기울어 가는 세대와 함께 사멸해 버릴 수도 있는 불안감과 이러한 역사/자연 공간이 신세계의 기점이자 유일한 의지처가 될 수도 있다는 의식 사이에서 “과거를 향하고 있는 주름 가득한 얼굴과 미래를 바라보고 있는 젊은 얼굴이 함께 공존”하는 야누스적 정체성을 보유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즉 그들은 역사의 유령을 쫓아내면서도 민족문화의 뿌리를 찾는다는 모순된 사명으로 문화적 곤경에 처하게 되었다는 것이다.21)

    이러한 의견을 종합해 보자면 첸 카이거는 과거-현재-미래의 연속선상에 있는 역사적 문제를 고민했고 그것을 영화 속에서 실천했다고 볼 수 있다. 이때 영화에 나타난 시간 이미지는 역사의 연속과 단절, 전통의 계승과 부정, 중국의 미래적 전망이라는 첸카이거의 당대적 과제를 보여 준다. 왕 후이에 따르면 1980년대 중국 지식인들의 현대화 담론 특징 중 하나는 ‘중국/서구, 전통/현대’의 이원 대립 방식으로 중국 문제를 해부한 것이다.22) 이러한 갈등과 대립에서 북경영화학교 출신 지식인 첸 카이거 또한 자유로울 수 없었다. 그에게도 전통(과거)와 현대(현재/미래) 혹은 중국(현재)와 서구(미래)는 새로운 고민의 대상이었다. 첸카이거의 영화는 그러한 고민을 풀기 위한 작업이었다.

    16)김영란, 앞의 논문, 28∼29면.  17)최일춘, 앞의 논문, 45면.  18)첸 카이거 인터뷰, 앞의 글, 1992. 9.  19)첸 카이거 인터뷰, 앞의 글, 1992. 9.  20)첸 카이거 인터뷰, 위의 글, 1992. 9.  21)다이진화,『무중풍경』, 이현복ㆍ성옥례 역, 산지니, 2006. 310∼312면 참조.  22)왕 후이,『새로운 아시아를 상상한다』, 이욱연 외 옮김, 창비, 2003, 42면 참조.

    4. 박물화된 시간과 역사, 혼돈과 착종

    첸 카이거의 1990년대 대표작인 <패왕별희>(1993)와 <풍월>(1996)에서 비문명적 요소는 찾아볼 수 없다. 황토나 황하를 비롯한 거대한 자연물들이 사라진 자리를 대신하는 것은 오히려 화려한 중국적 문명과 전통이다. 그렇다면 그는 이전의 영화 스타일을 포기한 것인가. 그는 <패왕별희>와 관련된 인터뷰에서 이 영화를 통해 중국의 역사, 문화, 특유의 생활방식을 다른 나라, 특히 서방국가에 알리고 싶었으며 특히 중국의 근대사를 말하고자 했음을 분명히 밝혔다.23) 1990년대 첸 카이거의 영화적 지향점은 바로 이러한 중국적 전통의 세계적 소개에 있었던 것이다. 스스로 이전의 영화들과 품격이 다르다는 점을 인정하는 그에게 이 두 영화는 그가 상정한 중국의 역사에 대한 통찰이 어떻게 변모되고 있는지를 알려 주는 중요한 작품이다. 여기서 시간과 역사는 박물화되어 나타나는데 이는 중국과 중국 영화 감독들이 맞닥뜨려야 했던 현대사의 변화 양상과도 연결된다.

    <패왕별희>는 1924년 중국의 군벌시대부터 1977년 문화혁명 종말까지의 역사를 연대기적으로 재현하면서 그 흐름에 뒤엉켜 있던 두 경극 배우 데이와 샬로의 모습에 포커스를 맞춘다. 데이와 샬로는 경극 배우가 되기 위해 어린 시절부터 혹독하게 훈련받고 나아가 유명한 경극 배우가 되어 활약한다. 그런데 유명한 경극 ‘패왕별희’의 주인공으로서 끈끈한 정으로 묶여 있는 이들에게 화만루의 창녀 쥬산이 나타나고 샬로와 쥬산, 데이는 삼각 관계로 얽히고 설키면서 역사적 질곡을 함께 넘는다. 군벌시대, 1937년 중일전쟁, 해방과 국공내전, 중화민국의 성립, 문화혁명의 역사적 사건들은 이들의 삶에 우여곡절을 가져오는 결정적인 계기이다.

    한편 이러한 서사에 끼어 들어 있는 비내러티브적인 장면이 바로 무대에서 상연되는 ‘경극’이라고 할 수 있다.24) 무대에 올려진 ‘패왕별희’ 속의 패왕과 우희의 화려하고 아름다운 자태와 그들이 읊는 서사시는 화면을 압도하며 보는 이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마치 영화 속에서 무대를 보고 열광하는 군중처럼 영화를 보는 이들조차 무대에 올려진 경극의 화려함에 놀라움과 충격을 받게 된다. 이 경극은 데이와 샬로, 쥬산의 삼각 관계와 그들의 삶을 변화시키는 역사적 사건에도 굳건하게 무대에서 상연되는데, 무대에 경극이 상연되는 순간 만큼은 데이와 쥬산, 샬로 등의 현실적 문제와 갈등마저 봉합된다. 가령, 1937년 중일전쟁 전야를 배경으로 한 장면에서 무대 밖의 데이와 샬로는 항일운동의 집회 앞에서 잠시 방해받지만 극장 안의 무대 안에서만은 ‘패왕별희’의 패왕과 우희로서 현실적 시간을 뛰어넘어 찬사에 휩싸인다. 이때 극장 밖의 우중충하고 혼란스런 장면과는 다르게 무대위는 조용하며 화려하고 현란하기만 하다. 미디엄 숏으로 잡은 우희와 패왕의 모습은 마치 세상을 초월해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러한 경극은 일본군의 점령, 장개석 군의 북경 입성, 공산당의 점령 등으로 인해 관객이 바뀌고 정권이 바뀜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상연된다. 영화 내내 경극의 무대는 관객석과 극장 밖의 정경 등과 색조 면에서 극단적인 대비를 이루는데 이런 식으로 경극은 색채 면에서 현실과 비현실을 선명하게 구분한다. 게다가 시선을 사로잡는 화려한 복장과 장신구, 화장 등은 중국적 전통극의 시각적 효과를 극대화함으로써 마치 과거의 시간을 현재로 소환하여 붙잡아 둔 것만 같은 인상을 준다. 그리고 카메라는 이전의 영화와는 달리 경극 무대를 줄곧 미디엄 숏으로 잡아 패왕과 우희의 모습을 가까이서 관찰할 수 있도록 하는데, 이는 보는 이로 하여금 무대 위에 전시된 화려한 전통과 과거의 시간을 좀더 분명하게 인식하고 관찰하도록 돕는다.

    그런데 이러한 재현 방식은 오히려 시간 이미지를 고정시킨다. 즉, 너무 선명하기 때문에 더 이상 아무것도 발견할 수 없는 것이다. 시간은 단지 중국 전통으로서의 ‘경극’이라는 화려한 아름다움 속에 고정되어 있을 뿐이다. 경극은 현실을 벗어난 공간에 있지만, 그 무대 위에서 연출되는 것은 고작 현재로 소환된 과거의 전통, 현실의 시름을 잊게 해 주는 전통의 효용성 내지 영원성이다. 데이가 자신의 성적인 정체성에 분열을 일으키고 현실을 경극과 혼동하는 가장 큰 이유는 그가 이러한 과거의 시간 속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 영화는 자주 데이를 창문 밖이나 문, 커튼, 거울을 통해 클로즈업하는데 그것은 데이 본연의 정체성이 현실에서 온전하게 정착되지 못하고 여러개로 분열되어 있다는 점을 상징한다. 이러한 보여 주기는 데이를 ‘패왕별희’라는 경극 속에 단단히 결박하고 그를 전통과 과거 속에 묶여 있는 화석화된 존재로 변화시킨다. 데이의 현실적 죽음은 카메라가 영화 내내 화려한 우희의 얼굴을 화면 가득 클로즈업할 때 극적으로 표현된다. 그러므로 데이는 현실을 살아가기보다는 과거의 시간 속을 배회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비내러티브적인 장면이 경극이라는 중국 전통으로 채워질 때 이것은 어쩔 수 없이 쥬산과 샬로, 데이가 놓여 있는 역사적 현실과 연결될 수밖에 없다. 중국의 근대사는 바로 이러한 중국의 전통 문제를 계승하고 청산하는 문제와 직결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영화 속에서 비내러티브적인 요소와 내러티브적인 요소가 혼합되는 일은 피할 수 없다. 관사부의 죽음과 경극단의 종말이 상징하듯이 중화인민공화국의 설립과 문화혁명은 중국 전통에 심각한 훼손과 파괴를 야기했다. 데이가 ‘패왕별희’ 속에서 우희로 살아갈 수 있는 시간도 한계에 맞닥뜨린다. 이제 시간은 역사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데 이를 가장 극적으로 보여 주는 것이 문화혁명의 시작과 함께 실시된 인민재판 장면이다. 인민의 반동으로 몰린 경극 배우들 사이에서 샬로와 데이는 두려움과 공포에 떨며 수많은 공산당이 에워싼 광장에 죄인으로 앉아 있다. 이때 카메라의 프레임 전면에는 화염이 활활 타오른다. 그 넘실대는 화염 뒤로 샬로와 데이의 자아비판 장면이 클로즈업된다. 경극 분장을 한 그들이 유일하게 무대 밖에 서 본 장소가 바로 이곳인데 그들은 마치 불에 타들어가는 듯 하다. 이러한 카메라워크는 두 사람이 있는 장소의 현실성을 반감시키고 마치 한 편의 새로운 경극 무대를 보여 주는 효과를 낸다. 샬로의 비판에 참지 못한 데이가 쥬산과 샬로 등을 비판하는 장면이 미디엄 숏으로 잡히고 그 주위를 둘러싼 군중들이 희미하게 배경을 이루는데, 이것은 마치 비현실과 현실의 경계를 무너뜨리는 경극 장면을 연상케 한다. 그들이 서있던 무대와 다른 것이라면 쥬산이라는 새로운 대상이 그 무대에 함께 한다는 것뿐이다. 자아비판이 끝나고 홀로 남겨진 데이가 쥬샨의 시점 숏으로 클로즈업될 때 화려한 분장이 눈물과 그을음으로 뭉개져버린 데이의 모습은 역사 속에 망가져 버린 현재와 화려했던 과거를 상기시킨다. 데이는 ‘패왕별희’의 시간만을 살 수 없었고 역사적 흐름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중국적 전통의 시간은 이렇게 중국 근대사와 만나고 상처와 흉터를 남기는 것이다. 이렇듯 영화 전반의 내러티브와 비내러티브는 무리 없이 자연스럽게 얽히고 관람객은 장면 사이의 단절감과 당혹스러움에 쉽게 익숙해지면서 영화 전체를 따라갈 수 있다.

    결과적으로 <패왕별희> 안에는 온통 중국적인 역사와 시간의 흐름이 존재하고 있으며 이러한 ‘중국’적인 재현들 속에서 관람객들은 친숙하게 혹은 자연스럽게 현재로 소환된 중국의 과거와 중국 근대사의 역사적 흐름을 종합한다. 그러나 이때 경극의 시간과 중국 근대사의 역사적 흐름이 지나치게 선명하게 ‘중국적인 것’으로 귀결되어 오히려 ‘경극’과 ‘중국사’가 성찰의 대상이 되기보다는 박물화된 애호품처럼 소유와 관람의 대상이 된다는 데 그 한계가 있다.

    <풍월>(1996)은 <패왕별희>에서 시도한 작가적 탐색의 연장선상에 놓여 있는 작품이다. 첸 카이거는 이 작품을 두고 “1920년대 옛 상해를 배경으로 보여지는 중국의 모습을 담은 영화로 서양문물과 기본의 문물 사이에 일어나는 혼란과 싸움을 보여 줄 것”25)이라고 했거니와 ‘서양 문물’과 ‘기본 문물’ 사이의 혼란과 싸움이란 결국 서방 세계에 전통적인 것을 보여 주는 일과 무관하지 않기 때문이다. <풍월>은 1920년대를 배경으로 하여 전통적인 부호 팽 가문의 상속녀 류이와 삼촌 뻘인 충량 그리고 충량의 누이 사이에 벌어지는 애정과 갈등 관계를 중심 서사로 한다. 10년 전 충량은 아편쟁이 젠다로 인해 자신의 누이와 키스를 해야 했던 일로 젠다에게 독약을 먹이고 상해로 탈출한다. 트라우마가 되어 버린 이 사건은 충량이 상해 범죄 조직원으로 활동하며 여성들을 농락하고 돈을 뺏으며 사는 데 결정적인 계기로 작용한다. 그렇게 산 지 10년, 보스의 지시로 팽 가문의 상속녀 류이를 유혹하기 위해 충량이 다시 팽 가문을 찾게 되면서 충량과 류이, 누이 사이의 애정과 갈등이 극대화된다. 표면적으로 보면 이 영화는 치정과 관련된 이야기지만 그 안에는 첸 카이거가 의도했듯이 서구적 근대화와 중국적 전통 사이의 대립과 갈등이라는 주제가 놓여 있다. 그리하여 서사는 충량이 가져온 근대화와 팽 가문이 그 근대화에 어떻게 대처하느냐의 문제 속에서 진행된다.

    이 영화에서 팽 가문은 온갖 전통적 유물과 서적, 가구 등을 보유하고 있는 일종의 박물관처럼 재현된다. 그리고 이 안에서 충량을 사랑하는 류이, 동생에게 집착하는 누이의 모습이 각각 클로즈업된 화면에서 빈번히 제시된다. 영화 안에서 류이의 모습은 그녀의 아름다운 전통의상과 배경을 이루는 온갖 유물들, 그녀의 순수한 소녀적 정체성으로 환기되는데 충량은 그러한 그녀를 점차 근대화시켜 나간다. 이때 근대화는 그녀의 소녀성을 박탈하고 상해라는 거대한 현대 도시 속에서 그녀를 배반하는 것으로 치닫는다. 한편 류이와 함께 사는 충량의 누이는 어둡고 음산하고 히스테리컬한 모습으로 재현된다. 10년을 외롭게 식물인간이 되어 버린 젠다를 지키며 살아온 그녀에게 충량은 애증과 구원의 대상이다. 그녀는 충량을 얻고자 마지막에는 충량이 류이에게 독약을 먹이도록 공모하기에 이른다. 영화에서는 자주 이 두 여성의 클로즈업된 얼굴을 보여 주는데 두 사람의 대비되는 모습은 그대로 10년의 시간을 상징화해 보여 주는 거울과도 같다. 류이는 팽가문의 유물들을 지키는 파수꾼으로서 근대화의 물결에 혼란스러워하는 호기심과 두려움, 열정과 욕망을 그 얼굴 가득 담아낸다. 반면 누이는 그녀를 뒤덮고 있는 어둠처럼 10년의 세월 동안 어둠과 외로움과 절망과 분노를 얼굴 가득 담고 있다. 그리고 이 두 사람의 모습은 그대로 팽 가문을 10년 동안 지킨 전통의 얼굴이며 영화 전개상에 있어서 내러티브의 자연스러운 연결에 지속적으로 끼어 들어 시간적 휴지를 발생시킨다. 다음의 장면은 두 여성의 얼굴이 교차 편집되면서 그 사이에 놓인 충량의 혼란을 잘 표현하고 있다. 하룻밤을 함께 보내기 위해 충량과 류이가 만나는 밤, 두 사람의 포옹 씬과 류이의 열정에 들뜬 표정 뒤로 팽 가문의 어두운 복도를 지나가며 등불을 켜는 차갑고 싸늘한 누이의 얼굴이 교차 편집되는데 이를 통해 충량과 류이의 열정과 사랑의 과정에 균열이 생긴다. 두 사람 사이에서 혼란스러워하던 충량은 결국 10년 전에 그러했던 것처럼 류이에게 독약을 먹임으로써 자신의 혼란을 청산하지만 결국 그도 보스로부터 살해당하게 된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정면에 클로즈업되는 류이의 표정은 인간성이 휘발되어 버린 화석과도 같다. 상해로 대표되는 중국의 근대화가 결국에는 팽 가문의 대를 끊고 그녀에게 영원히 정지된 시간을 선사한 것이다.

    여기에서도 영화는 여성들의 모습을 마치 팽 가문을 지키는 유물의 파수꾼처럼 재현하고 있어 보는 이로 하여금 단순히 근대화의 역사적 흐름 속에 파괴되어 가는 전통성의 모양새를 취하게 하고 만다. 영화에서 빈번하게 사용된 미디엄 숏과 클로즈업은 여성들에 대한 집중과 고정을 유발하고 어떤 특별한 충격과 반향을 야기하기보다는 의미를 쉽게 읽을 수 있도록 유도한다. 특히 클로즈업된 류이나 누이의 전통적 인상 그리고 그 배경을 이루는 팽 가문의 온갖 유물들이 프레임을 가득 채울 때 한 편의 중국 전통 초상화를 보는 듯한 효과를 자아낸다. 10년의 고정된 시간을 간직한 그녀들의 모습이 바로 전통성이라는 한 곳에만 맞춰져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될 때 중국의 근대화 문제를 바라보는 첸 카이거의 혼란스러움에 직면하게 된다. 그는 근대화되어 가는 과정에서 전통의 모습을 한 여성들을 통해 서구와 중국의 혼란과 착종을 직시하려 했지만 실제로 영화 상에서 상해의 근대화가 가져온 범죄와 죽음, 전통이 가져온 죽음과 정신 분열 등에서 길을 잃게 되기 때문이다. 영화상에서 불현 듯 멍하니 카메라를 응시하는 류이와 누이의 극단적인 클로즈업 화면은 오히려 영화 전체를 압도하는 어떤 정지된 시간을 보여 준다. 그 질식할 것만 같은 시간이 오히려 상해라는 근대화된 공간에서 살아가던 충량의 발목을 잡고 그를 죽음으로 인도한 진짜 정체일 수도 있다. 여기서 중국 근대화는 전통적 시간 속에서 표류하며, 오히려 서사의 뼈대가 되는 역사적 문제가 비내러티브적인 이미지에 잠식당하는 문제가 발생한다. 이것은 중국 전통성에 대한 첸카이거의 지나친 집중이 가져온 결과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첸 카이거의 위와 같은 영화적 실천들은 그가 뿌리 내리고 있는 1990년대의 중국의 영화 지형과 맞닿아 있다. 5세대의 영화에 대한 다음의 평가는 첸 카이거의 영화적 뿌리에 대해 다시 재고하게 한다. 즉 5세대의 영화는 기존의 경색되고 교조주의적인 영화 스타일을 지양할 뿐, 실제로는 중국 전통문화의 정수들을 계승하고 있다는 점에서 영상 미학적 성취는 중국 문화 안에 내재되어 있는 영상성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고 영화들은 전통문화에 바탕을 둔 영상적 사유의 산물이라고 평해진다는 것이다.26) 이에 따르면 첸 카이거의 영상 미학적 실천은 중국의 전통성을 어떻게 사유할 것이냐의 문제와 결코 떨어질 수 없다. 중국과 중국 전통에 대한 집착은 새로운 영상 미학의 실천속에서 빛날 수 있지만 그것의 유효성과 참신함은 그리 오래 가지 못할 수 있다. 또한 초기작들에 비해 1990년 이후의 작품들이 시간 이미지를 통해 역사의 문제를 여전히 탐구하면서도 참신함을 유지할 수 없었던 데는 중국 전통으로 영화를 가득 채울 수밖에 없었던 현실적 난관이 작용하기도 했다.

    1989년 이후 중국은 사회주의 국가권력을 강경하게 유지하는 가운데 급진적인 시장화 과정을 추진하였고 적극적인 국가 정책의 주도 하에 전 세계 시장 체제로 급속하게 편입해 들어갔다.27) 이러한 상황에서 중국 국내적으로는 영화계가 주선율(主旋律) 영화를 널리 알리고 다양화를 제창한다는 방침 아래 발전했다고 할 수 있는데 이렇게 함으로써 주선율 영화, 예술 영화, 오락 영화의 발전 양상이 나타났다.28) 그러나 사회주의와 신자유주의의 영향권 속에서 예술 영화의 범위는 갈수록 협소해질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어려움에 직면한 영화 감독들의 탈출구는 해외 자본을 이용한 영화 제작이었고 서구 자본의 수혜를 받기 위해서 그들이 택한 것은 결국 중국을 영화에 녹여 내는 일이었다. 장이머우는 이러한 경향성을 가장 첨예하게 드러낸 영화 감독일 것이다. 그러나 가장 중국적인 전통을 이용하고 나아가 <영웅>을 비롯하여 중국적 이데올로기에 편승하며 권력화되어 간 장이머우29)와 첸카이거는 조금 다르다. 그는 중국 국가 이데올로기에 적극적으로 편승하지 않으면서 중국적인 전통과 문명의 나아갈 방향을 추구해 나간 감독이다. 1990년대 이후의 영화에 나타난 시간과 역사는 중국적 전통에 사로잡혀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비합리적이고 비균질적인 시간 이미지를 영화 안에 지속시킴으로써 중국과 역사의 문제를 계속 고민하기 때문이다. 그에게 중국은 여전히 생성되어야 할 그 무엇일 뿐 어떤 규정된 틀 안에서 재현될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할 수 있다.

    23)첸 카이거 인터뷰, 「중국의 자존심을 자부하는 거장」,『스크린』, 1994. 3.  24)이것은 데이와 샬로가 경극 배우로서 살아가는 현실과는 다른 맥락에 있다. 그들의 역사적 경험은 경극 배우로서의 것이지만 무대에 올려진 경극 자체는 역사적 시간을 벗어난 무대 위의 현란한 이미지이다. 데이가 우희의 분장으로 있을 때마다 줄곧 거울 속에 비친 모습으로 분열되어 나타나는 것도 이러한 비현실적 시간 이미지와 관련된다고 볼 수 있다.  25)첸 카이거 인터뷰, 앞의 글, 1994. 3.  26)이강인, 앞의 글, 97면.  27)왕 후이, 앞의 책, 91면.  28)루홍스ㆍ슈샤오밍,『중국영화사』, 전남대학교출판부, 2011, 238면.  29)임대근, 「권력화한 5세대, 저항의 6세대가 뒤엉킨 ‘살부(殺父)의 변증」,『신동아』50권, 동아일보사, 2007. 참조.

    5. 결론

    일반적으로 첸 카이거 영화에 대한 평가는 두 개로 엇갈린다. 1980년대 작품에 대한 평가는 매우 긍정적인 데 반해 1990년대 이후의 영화에 대한 평가는 부정적이다. 이것은 첸 카이거가 1980년대 보여준 영화적 스타일이 우언성(寓言性), 미학성(美學性), 개혁성(改革性)의 측면에서 놀라운 성취를 했지만 1990년대 이후로부터는 그것을 충분히 발휘하지 못했다는 의미이다. 심지어 2000년 이후의 그의 영화 작업에 대해 장이머우의 아류에 불과하다는 평가를 하는 논자들도 있을 정도이다.30) 1980년대 그의 영화는 내러티브와 비내러티브의 단절를 과감히 감행하고 있다. 들뢰즈의 ‘시간-이미지’를 차용해 보자면 그는 영화 안에서 역사의 문제를 내러티브의 뼈대로 삼되 그것의 연속성을 잠시 유보하고 성찰하기 위해 여러 비문명적 요소들을 비내러티브적인 이미지로 재현하여 1980년대 중국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종합적으로 성찰하고자 했다. 그러나 이러한 실험적인 작업은 1990년대 이후 점차 사라지는 게 사실이다. 역사의 문제를 내러티브의 뼈대로 삼되 그것을 중지시키는 비내러티브적인 시간들을 여전히 영화적 장치로 내세우지만 이 이미지들이 온통 중국적인 문명으로 꽉 채워져 역사의 흐름과 문제에 대한 성찰을 막고 오히려 박물화되어 버린 전통적 시간을 관찰하게 만드는 효과를 낳는다. 특히 역사에 전통의 시간이 휘말리거나 역사가 고정된 전통적 시간에 함몰되는 과정에서 시간과 역사를 대하는 첸카이거의 균형 감각이 사라져 가는 것처럼 보인다. 이것은 1990년대 이후 급속하게 변화하던 중국의 국내외적 상황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었고 결과적으로 첸카이거는 1990년대 이후 자신의 영화적 정체성을 새롭게 고민해야 했다. 그리고 그것은 영화 안에서 균형 감각을 상실하지 않고 얼마나 시간 이미지를 통해 중국의 역사와 전통을 좀더 시의적(詩意的)으로 살려내느냐의 문제와 관련되어 있지 않을까 한다.

    30)임대근은 그의 글에서 장이머우의 권력화를 지적하는 와중에 첸 카이거의 영화 스타일 또한 신랄하게 비판한다. “중국 영화가 이런 방식으로 무협을 왜곡하는 작업이 효용을 다했다는 사실은 천카이거의 장이머우 따라 하기가 실패함으로써 이미 증명된 바 있다. 권력에 저항하는 독립영화 혹은 지하 영화를 고집하기에는 너무 나이가 들었고, 너무 잘 알려진 천카이거는 그렇다고 권력에 투항해 상업영화 감독으로 전환하기에는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고민 끝에 그가 제작한 <투게더>(2002)는 마치 <책상 서랍 속의 동화>의 속편을 보는 듯 따뜻한 인간 드라마지만 그 한계 역시 넘어서지 못했다.(이하생략)”(임대근, 위의 글, 489면)

참고문헌
  • 1. (1984)
  • 2. (1987)
  • 3. (1991)
  • 4. (1993)
  • 5. (1996)
  • 6. 이 현복, 성 옥례 2006
  • 7. 초우 레이, 정 재서 2004
  • 8. 2011
  • 9. 후이 왕, 이 욱연 2003
  • 10. 콜브룩 클레어, 백 민정 2004
  • 11. 2008 [『중국문학』] Vol.55
  • 12. 김 영란 1995
  • 13. 김 영미 2004 [『중국학연구』] Vol.29
  • 14. 김 호영 2001 [『한국프랑스학논집』] Vol.36
  • 15. ? 麗生 2009
  • 16. 목 혜정 1999 [『CINEFORUM』]
  • 17. 박 민영 2007 [『문학과 영상』] Vol.8
  • 18. 박 성수 2000 [『오늘의 문예비평』]
  • 19. 이 강인 2008 [『CHINA연구』] Vol.4
  • 20. 이 희승 2002 [『한국방송학보』]
  • 21. 임 대근 2007 [;,『신동아』] Vol.50
  • 22. 장 용화 2002 [『중국어문학논집』]
  • 23. 정 태수 2007 [『현대영화연구』]
  • 24. 조 희문 1997년 [『황해문화』]
  • 25. 최 일춘 2007
  • 26. 피 종호 2010 [『뷔히너와 현대문학』]
  • 27. 1992 [『영화예술』]
  • 28. 1991 [『스크린』]
  • 29. 1994
  • 30. 1992
OAK XML 통계
이미지 / 테이블
(우)06579 서울시 서초구 반포대로 201(반포동)
Tel. 02-537-6389 | Fax. 02-590-0571 | 문의 : oak2014@korea.kr
Copyright(c) National Library of Korea.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