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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총독부 편찬 다나카 게이지의 초등지리서에 나타난 페스탈로치의 교육사상* Educational thought of Pestalozzi in the elementary geography textbook of Tanaka Keiji published by the Japanese Government-General of the Joseon*
  • 비영리 CC BY-NC
ABSTRACT
조선총독부 편찬 다나카 게이지의 초등지리서에 나타난 페스탈로치의 교육사상*

The purpose of this study is to explore the educational thought of Pestalozzi in elementary geography education of the Japanese colonial period. Tanaka Keiji applied Pestalozzi’s educational thought to the 『Elementary Geography Textbook』published by the Japanese Government-General of the Joseon of the early 1930’s. Many visual materials such as illustrations and maps were presented in the book. In addition, the content of Japanese geography was arranged from near to far and from northern to southern areas. The structure of the world geography was arranged from simple to complex and from southern to northern areas. It represents Tanaka Keiji’s careful consideration to help students to understand areas easily. However, these contents had not been included in the Japanese’s geography education until the late 1920’s in spite of his continuos argument. Finally, Tanaka’s idea was reflected to 『Elementary Geography Textbook』, written by him in the 1930’s, for public elementary school textbooks in colonial Joseon.

KEYWORD
조선총독부 , 다나카 게이지 , 초등지리서 , 페스탈로치 , 교육사상
  • I. 머리말

    지리교육의 계열적 조직과 관련하여 가까운 향토(고장)와 국토에서 먼 세계로 나아가도록 내용을 편성하는 방식은 동서양을 불문하고 오랜 역사성이 있다. 류재명(2003, 2)에 따르면, 맥머리(C.A. McMurry)라는 지리교육학자가 1899년에 그러한 기본 아이디어를 발표했고, 이후 약간의 비판이 있기는 했지만, 기본 골격은 크게 변화되지 않고 오늘날 한국의 지리교육과정에 까지 큰 영향을 미쳤다고 보았다.

    그러나 필자의 고찰에 의하면, 한국의 지리교육과정 에서 동심원적확대주의 또는 지평확대법에 대한 사고는 근대 초등지리교육의 시작 단계부터 나타난다. 즉 1895년 한국의 소학교 교칙대강에 제시된 지리과 교수 요지에는 「본국지리를 가할 때에는 향토의 지형 방위 등과 아동이 일상 목격하는 사물에 대하여 단서를 찾도록」 했다. 이는 1891년에 공포된 일본의 소학교령 지리교칙과 동일한 것으로 당시 우리나라의 학부(學部) 는 일본의 소학교 지리교육과정을 그대로 모방했다.1) 근대 일본의 소학교령은 당시 가장 진전된 교육제도를 지녔다고 하는 독일의 작센‧마이닝겐 공국의 소학교 법에서 그 모범을 구했다(篠原助市, 1940). 그리고 근대 한국의 학교제도는 서양을 모방한 일본의 규정을 다시 모방하여 1895년에 소학교령을 공포했던 것이다(松月秀雄, 1941).

    지리교육의 내용편성에서 지평확대법에 관한 사고는 페스탈로치(Johann Heinrich Pestalozzi)의 교육 사상과 매우 유사하다. 예컨대 지리교육의 내용구성을 가까운 곳에서 먼 곳으로, 직접경험 지역에서 간접경험 지역으로, 구체적 지역에서 추상적 지역으로, 향토에서 국토와 세계지리로 나아가도록 편성하는 방식이다. 이들은 쉬움에서 어려움으로라는 계열적 조직에 대한 궁리라고 할 수 있다. 이와 같은 페스탈로치의 교수 법은 본고장 스위스에서 프리드리히 디스테베르크 (Friedrich Adolph Wilhelm Diesterweg) 등에 의해 독일에 전해졌고, 그 후에 일본을 거쳐 한국의 공교육에 응용된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페스탈로치의 교육 사상에 대한 연구는 이미 교육학 및 지리교육학 분야 에서 이루어졌다.

    교육학 분야에서는 교육사적 측면에서 일본에 도입 된 서구교육학과 그것이 재차 근대 한국에 도입되는 과정에 주목하고 있다. 일본은 메이지 유신 이후 근대교육 체제를 형성하는 과정에서 서구의 교육학을 수용했다. 1930년대까지 페스탈로치, 헤르바르트, 게르센슈 타이너 등의 교육학이 일본 교육계를 지배하였다. 물론 이 세 교육학은 일본을 경유하여 식민지 조선의 보통학교 교육에도 영향을 미쳤다(오성철, 2000, 239-240). 서구교육학이 우리나라의 개화기와 일본 식민지 기에 도입 과정을 다룬 대표적 연구는 김성학(2001)의 『서구교육학 도입의 기원과 전개』가 있다. 그는 도입 주체로서 일본 유학생 집단, 각종 사범학교와 사립 전문학교의 교육학 교과서, 교육잡지에 소개된 교수와 교사들의 교육학 논문, 교육학 관련 저서 및 역서 등을 통해 서구교육학 도입 과정을 체계적으로 밝혔다. 그러나 각 교과별 교육과정, 교과서 등의 문헌연구와 실천 등에 대한 구체적 내용까지는 분석하지 못했다.

    지리교육학 분야에서는 서태열(2003)의 「자연주의 교육사상가들에게서 나타나는 지리적 관심」을 들 수 있다. 이 논문에서는 코메니우스, 루소, 페스탈로치 등 자연주의 교육사상가들의 지리에 대한 관심과 지리교 육의 방법을 중점적으로 다루었다. 그 중 페스탈로치의 지리교육의 중심적 내용은 친근성의 원리에 따른 지리교수의 심리화, 향토지리의 강조, 도야 및 생활중심의 지리교수, 직관과 감각을 강조한 지리교수 등이다. 이러한 페스탈로치의 교육사상은 근현대 전 세계의 교육학 및 지리교육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그러나 이 논문에서 페스탈로치의 교육사상과 관련하여 지리학자 리터에 미친 영향에 대해서 고찰했지만, 근대 한국의 지리교육에 그의 사상이 어떠한 경로를 통해 도입 되어 적용 및 실천되었는가는 다루지 않았다.

    따라서 본 연구는 페스탈로치의 교육사상이 우리의 지리교과서에 최초로 반영되었다고 생각되는 조선총독부 편찬 『초등지리서』를 대상으로 내용 구성의 측면 에서 그 특성을 해명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1930년대 초반 식민지 조선의 보통학교 아동용으로 편찬된 『초등지리서』 권1, 권2는 일본의 다나카 게이지(田中啓 爾)가 조선총독부의 의뢰를 받아 저술한 것이다(每日 申報社, 1930.11.13, 2; 慶尙北道敎育會, 1933, 서문). 다나카 게이지는 당대 일본의 저명한 지리학자로 사후 그에 대한 연구는 릿쇼지리학회편찬위원회(立正地理學會編纂委員會, 1975)가 편집한 잡지 『지역연구』에 다나카 게이지 박사 추모 특별호 발간을 비롯하여 다무라 모모요(田村百代, 1984), 오쓰키 도쿠지(大槻德治, 1992) 등의 단행본이 있다. 그리고 이치가와 요시노리(市川義則, 1998), 사이토 유키타카(齊藤之譽, 2001), 곤도 히로유키(近藤裕幸, 2003) 등의 논문이 있다. 하지만 이들은 다나카 게이지의 식민지 조선에 대한 지역연구와 지리교육 연구는 다루지 않았다. 이러한 관점에서 본 연구는 다나카 게이지가 저술한 조선총독부 편찬 보통학교 5, 6 학년용 『초등지리서』 권1, 권2의 내용구성에 보이는 페스탈로치의 교육사상에 대해서 중점적으로 고찰한다.

    1)일본에서 1891년 신소학교령에 근거하여 제시된 소학교 교칙대강의 제6조는 지리교육에 관한 조항이다. 6조의 목적, 내용, 지도상의 유의사항 가운데 내용에 해당하는 부분은 「敎科ニ日本地理ヲ加フルトキハ鄕土ノ地形方位兒童ノ日常目擊セル事物ニ就キテ端緖ヲ開キ漸ク進ミテ本邦ノ地形, 氣候, 著名ノ都會, 人民ノ生業等ノ槪略ヲ授ケ更ニ地球ノ形狀、水陸ノ別其他重要ニシテ兒童ノ理會シ易キ事項ヲ知ラシムヘシ」이다(中川浩一, 1978, 178). 반면 한국에서 1895년 소학교 교칙대강 제6조에 제시된 지리과 교수요지 가운데, 내용에 해당하는 부분은 「敎科에本國地理加時에 鄕土의地形方位等과兒童의日常目擊事物에就야端緖開고漸進로本邦의地形氣候와著名都會와人民의生業等의槪略을授고地球의形狀과水陸의分別과其他兒童의理解기易고重要事項을知케이可흠」이다(內閣記錄局官報課, 1895.8.15, 2).

    II. 지리 연구자로서 다나카 게이지

    다나카 게이지(田中啓爾)는 메이지(明治) 중기에 태어나 다이쇼(大正), 쇼와(昭和) 시기에 주로 활약한 근대 일본의 지리학자이다(그림 1). 그는 지리 연구자로서 약 200여 편에 가까운 글을 남겼고, 교육자로서 다수의 지리교사와 지리학자를 양성하여 일본의 지리학 계와 지리교육계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그의 주요 전공 분야는 인문지리학으로 특히 지지학에 관심이 많았고, 학교교육과 관련하여 지리교육론 분야에도 업적을 남겼다. 나아가 그의 연구 및 교육 활동은 식민지 조선에도 영향을 주었으며, 그에게 지도받은 한국의 유학생은 전후 한국의 대학에서 지리학 및 지리교육의 학문적 초석을 다지는데 기여했다. 다나카 게이지의 주요 경력과 연구 활동은 표 1과 같다. 지리 연구자 및 교육자로서 그의 생애를 간략히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표 1.] 다나카 게이지의 경력과 연구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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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나카 게이지의 경력과 연구 활동

       1. 대학 및 유학시절

    다나카 게이지는 1885년 도쿄에서 출생하여 후쿠오 카현에서 성장하였다. 그는 1907년 후쿠오카현 사범학교를 졸업하고, 나가사키현 사범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그 후 도쿄고등사범학교 본과 지리역 사부에 재학하여 일본 근대지리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야마사키 나오마사(山崎直方) 교수의 영향으로 지리학을 전공하게 되었다. 다나카 게이지는 1916년 도쿄고등 사범학교 연구과 졸업과 동시에 조교론이 되었다.

    도쿄고등사범학교는 다나카 게이지가 심취했던 페스탈로치 교육사상에 대한 연구와 실천이 활발히 이루어진 곳이다. 지리학의 발단을 아동의 가까이에 위치한 자연이나 사회의 사상과 관련된 관찰에서 시작해야 한다는 주장은 페스탈로치주의에 따른 1870년대 개발주의교수법 이래 교육론으로서 끊임없이 계속해서 존재해 왔다(中川浩一, 1996, 28). 페스탈로치 교육사상이 근대 일본에 도입된 것은 문부성이 1875년 미국 뉴욕주 오스웨고(Oswego) 사범학교에 이사와 슈지(伊澤 修二), 다카미네 히데오(高嶺秀夫), 고즈 센자부로(神 津專三郞) 3인을 파견한 것에 기인한다. 그들 가운데 일부는 유학 후 도쿄고등사범학교와 도쿄사범학교 부속소학교에서 페스탈로치 교육사상을 연구하고 실천에 힘썼다. 페스탈로치 교육운동의 지도자였던 다카미네 히데오의 영향을 받은 와카바야시 토라사부로(若林 虎三郞)와 시라이 고와시(白井毅)는 1883년 페스탈로치 교육사상을 체계화한 『개정교수술(改正敎授術)』이 라는 책을 편찬했다. 여기에는 9가지 교수의 주의(主 義)가 제시되어 있는데, 그 가운데 지리교수와 관련된 사항은 「자연의 순서에 따라 제 심력을 개발할 것, 기지에서 미지로 나아가라, 유형에서 무형으로 나아가라, 쉬운 것에서 어려운 것으로 나아가라, 가까운 것에서 먼 것으로 나아가라, 간단한 것에서 복잡한 것으로 나아가라」 등이다(若林虎三郞‧白井毅, 1883, 1-2). 이러한 역사적 전통에서 도쿄고등사범학교의 지리학, 특히 다나카 게이지는 야외관찰과 청취를 상당히 중시했다(寺本潔, 1984, 37).

    다나카 게이지는 1920년 3월 1일 도쿄고등사범학교 교론으로 승진과 동시에 3월 4일 문부성 재외 연구원으로서 영국, 미국, 독일, 프랑스 4개국 유학길에 올랐 다. 약 1년 반 체재했던 미국에서는 지형윤회설을 제창한 데이비스에게 감화되었다. 데이비스는 다나카 게이지에게 지지학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당시 미국에서 지지는 지리구와 자연지역에 근거한 것이었다. 또한 데이비스는 지형학의 윤회 개념을 인문지리에 적용할 것을 주장하고, 인문지리학에 대해서는 블라쉬의 사상을 다나카 게이지에게 소개했다. 독일에서 다나카 게이지는 그의 은사 야마사키 나오마사의 소개장을 들고, 베를린대학에서 야마사키 나오마사의 은사 펭크에게 지도를 받았다. 펭크도 지형학자였지만, 지지를 중시했다. 독일에서는 하이델베르크의 헤트너도 방문했다. 프랑스의 마르톤(Martonne), 영국에서는 맥킨더 등 당시 명성이 높았던 지리학자의 학풍을 접하고 1923년 일본으로 돌아왔다(市川義則, 1998, 15).

       2. 교수로서 교육 및 연구 활동

    유학에서 귀국한 다나카 게이지는 1923년 3월 도쿄 고등사범학교 교수가 되었다. 그는 지형학을 전공했던 야마사키 나오마사와 쓰지무라 타로(辻村太郞)의 후임으로 인문지리학을 담당했다. 지리교육과 관련하여 다나카 게이지는 1923년부터 문부성 중등학교 교원검정 시험(文檢) 지리과 출제자가 되어 야마사키 나오마사와 함께 중등학교 교원 지망자에 대해서 강한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佐藤由子, 1988, 43).

    구미 유학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1923년 전국지리 역사교원협의회 석상에서 「독립과학으로서의 지리학」 이라는 주제로 강연했다. 그는 우선 지리학계의 백과 자전적(百科字典的) 현상을 지적하고, 그 본질적 대상 및 그 지배 영역의 명확한 정립이 결여된 것에 대해 한탄했다. 지리학이 과학성을 지니기 위해서는 단원성에 입각해야 하며, 따라서 그 대상은 분포현상에 의해 통일된 지리구(地理區)라고 했다(山口貞雄, 1943, 152). 그는 독립과학으로서 지리학의 주제는 지지학이라고 주장하고, 그것을 증명하기 위해 일본 각지의 지지연구에 착수했다. 지리적 현상으로 초상(初象), 현상(顯 象), 잔상(殘象) 등의 발달단계를 인정하려고 했는데, 그것은 미국 유학 중에 영향을 받았던 데이비스의 유년기, 장년기, 노년기라는 침식윤회의 사고방식을 도입한 것이다(岡田俊裕, 2013, 377). 지지연구에 전력 했던 다나카 게이지는 1927년 일본지리학회의 『지리학 평론』에 「일본의 지리구」라는 논문을 발표했다. 그는 이 논문에서 자연현상에 근거하여 일본의 지역구분을 시도했다. 주요 결정요소는 지형구이며, 다음으로 기후구를 중시했다.

    또한 그는 지리구에 대한 연구 결과를 초중등학교 지리교육에 적용하려고 했다. 그것은 1927년 지리교육 연구회의 『지리교육』에 발표한 「일본지지 교수의 단원과 그 취급의 순서에 대해서」라는 논문에 나타난다. 여기에는 페스탈로치의 교육사상에 근거한 일본지리의 내용구성에 대한 저자의 아이디어도 포함되어 있다. 1927년은 페스탈로치 서거 100년에 해당하는 의미 있는 해로 세계 각지에서 기념행사가 열렸다. 예컨대 슈프랑거는 동년 2월 18일 취리히대학에서 강연이 있었다. 그리고 일본에서는 페스탈로치에 대한 기념행사가 전국 각지에서 개최되었고, 이 해에 페스탈로치를 다룬 논문은 200편 가까이 달한다(寺岡聖豪, 2006, 1). 한동안 페스탈로치 붐이라 불리는 시대에 다나카 게이지는 1929년 지리교육연구회의 『지리교육』에 「세계지지 교수의 순서에 대해서」라는 논문을 발표했다. 이 논문도 후술하듯이 다나카 게이지가 페스탈로치의 교육 사상에 입각하여 1910년대 중반부터 주장한 세계지리의 내용구성을 정리한 것이다.

    교육활동과 관련하여 다나카 게이지는 1927년 릿쇼 (立正)대학 교수를 겸임하여 지리역사부 전문부의 지리과 주임을 1948년까지 맡았다. 동년 도쿄에서 문부성 주최 소학교 교원강습회 강사로 활동했으며, 이 무렵부터 수년 동안 문부성 시찰위원으로 각 부현(府縣) 의 중등학교 수업을 시찰했다.2) 1929년에는 도쿄문리 과대학이 고등사범학교에 부설된 지학과에 지리학 전공이 설치되어 다나카 게이지는 지리학 주임으로 취임 하였다. 1930년부터 도쿄문리과대학의 오쓰카(大塚, 대학 소재지 지명)지리학회 회장을 맡아 학문 발전에 힘썼다.

    1920년대 후반부터는 지리교과서 저술 작업에도 착수했다. 1927년 『중등일본지리』, 1928년 『중등외국지리』 등의 지리교과서가 전후까지 개정 발간되었는데, 이들 검정 지리교과서는 1930년대와 1940년대 전반까지 식민지 조선의 중등학교에서 가장 많이 사용되었다. 그리고 다나카 게이지는 조선총독부 교과서 편찬위원으로 위촉되어 1930년에는 조선 전역을 답사하고 2~3년 후에 『초등지리서』와 『초등지리서부도』를 저술하여 조선총독부에 의해 편찬되었다. 또한 그의 식민지 조선에 대한 답사 결과는 지리적 남북성에 착안하여 작성한 「조선의 인문지지학적 연구」라는 논문을 지리교육연구회의 『지리교육』(1931~33년)과 그의 저서 『지리학논문집』(1933)에 게재했다. 이 논문은 라흐텐자흐의 조선 연구에 도움을 주었다.3)

    전후 1947년에는 62세의 나이로 도쿄문리과대학을 정년퇴직함과 동시에 1927년부터 교수로 겸임했던 릿쇼대학에 교수로 부임하였다. 릿쇼대학 전문부 고등사범과 역사지리과 설립(1925년) 초창기부터 해방 전후까지 다나카 게이지에게 교육받은 한국의 지리학자는 강석오(이화여대), 정갑(서울대), 이지호(서울대), 홍시환(건국대) 등이 있다. 이들은 전후 한국의 대학에서 지리학과와 지리교육과의 학문적 토대를 구축하는데 힘쓴 지리학계의 1세대이다.

    노년기에 들어 다나카 게이지는 1952년 일본지리학회 회장을 역임했으며, 1955년에는 연구주제 「지지학적 종합연구의 일 방법-가와자키시의 지위층」으로 이학박사(도쿄교육대학‧도쿄문리과대학) 학위를 취득 했다. 1965년에는 80세의 나이로 릿쇼대학을 퇴직했지만, 지리학 강의는 계속되었다. 1973년에는 그가 평생 수집한 지리학 관련 자료를 릿쇼대학 도서관에 기증했으며, 1975년 90세의 일기로 타계했다. 릿쇼대학 도서관에는 다나카 게이지 문고가 설치되어 에도시대부터 전전까지 고문헌, 고지도 등 약 14,000여 점에 이르는 귀중한 자료가 소장되어 있다.

    2)다나카 게이지는 각지의 중등학교 지리교수를 참관하고 다음과 같은 소감을 밝혔다. 교수자는 위치·지형·산맥·하천·해안·기후·산업·농업·목축·교통·상업·도읍 등을 암기하여 칠판 일면에 관례처럼 판서하여 순서대로 해설하고, 학생도 열심히 필기하여 거의 문답 없이 그 시간을 마쳤다. 혹은 책을 읽고 이것을 해설하고 있는 곳도 있다(田中啓爾, 1929b, 116). 이를 통해 당시 교수자도 학습자도 나열과 암기 중심의 지리교육에 열중했음을 엿볼 수 있다.  3)제2차 세계대전 전에 독일의 라흐텐자흐(H. Lautensach)교수가 오쓰카(大塚)의 도쿄문리과대학의 나의 지리학연구실을 방문하여 이제부터 조선의 조사연구에 나가려는데 소개와 참고문헌을 부탁받아 이 논문의 별쇄본을 드렸더니 「이런 것이 있다면 내가 조사할 일은 없다」고 말씀하셨다. 동 교수는 지지의 연구에 정진하고 있었고, 나도 그러했기 때문에 조선의 지리적 관점에 공감하는 것이 있어서 좋았다(田中啓爾, 1969, 12).

    III. 『초등지리서』에 나타난 페스탈로치의 교육사상

       1. 보통학교 지리교재 선택의 방침

    일본의 소학교에서 국정 지리교과서는 문부성이 1903년 『소학지리』 권1, 권2를 편찬한 이래 1910년 『심상소학지리서』 권1, 권2, 그리고 1918년‧1919년, 1925 년, 1929년‧1930년, 1938년‧1939년에 개정되었다. 문부성 편찬 『심상소학지리서』 권1의 내용은 일본지리 이며, 권2는 일본지리 일부와 세계지리로 구성되어 있다. 이들 교과서는 태평양전쟁기의 국민학교 아동용으로 1943년 3월 『초등과지리』 상, 하가 발행되기 이전까지 부분적 개정이 이루어졌지만, 기본적인 내용 구성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4)

    조선총독부에서 1932년 『초등지리서』권1, 1933년 『초등지리서』 권2가 발행되기 이전까지 식민지 조선의 보통학교에서 사용된 지리교과서는 문부성 편찬 『심상 소학지리서』 권1, 권2를 국내에 들여와 아동들에게 가르쳤다. 그리고 조선총독부는 별도로 아동용 『보통학 교지리보충교재』를 1923년에 편찬하여 『심상소학지리 서』의 조선지방 대용교재로서 사용해 왔다(朝鮮總督 府, 1932b, 1). 조선총독부에서 보통학교 아동용 지리 교과서 편찬과 관련하여 어떤 교재를 선택할 것인가에 대한 근본방침은 보통학교 규정에 명시되어 있는데, 그 내용은 표 2와 같다.

    [표 2.] 보통학교 규정의 지리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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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통학교 규정의 지리과

    1929년 제2차 조선교육령 개정기의 보통학교 규정에 제시된 지리과 교수요지를 살펴보면, 제1항은 교수의 목적, 제2항은 교재선택의 방침, 제3항은 교수상의 주의에 관한 내용이다. 제2항의 지리교재 선택 방침을 정리하면, ① 향토의 실세, ② 우리나라의 지세, 기후, 구획, 도회, 산업, 교통 등, ③ 만주지리의 대요, ④ 우리나라와의 관계에 있어서 중요한 제국(諸國)의 간단한 지리, ⑤ 지구의 형상, 운동 등의 대요이다. ①과 ② 는 일본지리, ③과 ④는 세계지리, ⑤는 계통지리 교재에 관한 내용이다. 이것을 1922년 제2차 조선교육령기 보통학교 규정의 지리과 교수요지와 비교할 때, 주목할 만한 차이점은 「향토의 실세에서 시작한다」는 내용이 국토지리에 추가된 것이다. 이는 향토교육의 강조로서 그 배경은 1927년 세계공항 후에 나타난 일본 자본주의의 한계를 교육적 견지에서 극복하려는 의도였다(中山修一, 1997, 20). 1929-1930년을 기점으로 한향토교육은 1930년대 전반 전국 각지로 급속히 확대되어 전개된 교육운동이다. 교육의 지방화와 실제화, 획일적 교육의 극복을 슬로건으로 내세워 교사가 향토에 있는 다양한 소재를 수집하고, 발굴하고, 아동들에게 향토교재를 가르치려고 시도했다(木全淸博, 1992, 5). 당시 향토교육운동은 1930년대 초반부터 1937년까지 일본 열도와 식민지 조선, 그리고 초중등학교의 모든 교과에서 동시에 전개되었다. 이러한 시대적 배경으로 조선총독부의 보통학교 지리교육에서는 아동들의 생활무대로서 향토 조선이 페스탈로치의 교육사상과 자연스럽게 결부하게 되었다.

       2. 계열성을 중시한 『초등지리서』의 내용편성

    1) 보통학교 『초등지리서』의 쇄신

    조선총독부는 1929년 보통학교 규정의 지리과 교수 요지에 근거하여 식민지 조선의 실정에 적합한 보통학교 지리교과서 제작을 추진했다. 이 작업과 관련하여 조선총독부는 당시 도쿄고등사범학교 다나카 게이지 교수를 교과서 편찬위원으로 위촉하여 1930년부터 집필이 이루어지도록 했다. 다나카 게이지는 식민지 조선의 보통학교 아동용 지리교과서를 집필함에 있어서 조선총독부 학무국 편집과장 이나가키 모이치(稲垣茂 一)의 배려로 조선전역을 순회하였다(田中啓爾, 1934a, 51). 그가 인생 만년에 회고한 「나의 해외여행 -조선‧만주‧중국‧대만‧구미-」에는 이와 관련된 내용이 기술되어 있다. 지리교과서 저술을 위한 조선 여행에 관한 내용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田中啓爾, 1969, 12).

    지지연구에 몰두했던 다나카 게이지는 한반도를 경부선과 경의선, 그리고 호남선 및 경원선과 함경선 등의 X자형 연선을 따라 야외조사를 실시했다. 답사가 7 월과 8월에 이루어진 것은 다나카 게이지가 지지연구 에서 중시했던 자연현상, 특히 기후에 따른 식생의 남북성과 분포의 규칙성을 파악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그의 노력으로 조선총독부에서는 최초로 초등용 지리 교과서, 즉 1932년 『초등지리서』 권1, 1933년 『초등지리서』 권2, 그리고 1934년 『초등지리서부도』가 차례로 편찬되었다.5) 이들 내용에 대해서 다나카 게이지는 1933년 10월 30일 남대문소학교에서 『초등지리서』에 관한 강연을 실시했으며(田中啓爾, 1934a, 51), 그 내용은 조선총독부 학무국의 기관지라 할 수 있는 조선 교육회의 『문교의 조선(文敎の朝鮮)』에 게재되었다(田中啓爾, 1934a1934b1934c).

    조선총독부 편찬 『초등지리서』 권1, 권2의 특징은 문부성의 『심상소학지리서』 권1, 권2에 비해 시각자료(삽화, 지도 등)가 다양하고 풍부하다는 점, 그리고 교과 서의 내용구성에 과감한 쇄신이 이루어졌다는 점이다.

    먼저 지리교과서의 시각자료와 관련하여 조선총독 부는 문부성의 시각자료를 활용했지만, 그 내용은 동일하지 않다. 양적인 측면에서 문부성의 『심상소학지리서』 권1, 권2는 한 페이지에 평균 0.89개의 시각자료 (총 333페이지, 299개)가 사용되었다. 반면 조선총독 부의 『초등지리서』 권1, 권2에는 한 페이지에 평균 0.95개의 시각자료(총 323페이지, 306개)가 실려 있다. 그 유형은 문부성의 경우 정적인 삽화가 48.2% (144개)로 상당 부분을 차지한다. 그러나 조선총독부의 경우 삽화 비율이 33.3%(102개)로 문부성보다 낮고, 그 대신 아동들이 각 지역의 지리적 특성을 비교 및 대조할 수 있도록 분포도, 막대그래프 등을 다수 사용 하였다.

    한편 내용편성과 관련하여 문부성과 달리 조선총독부 편찬 『초등지리서』의 특징은 일본지리에서 조선지방을 가장 앞부분에 배치하고, 각 지방별 지리를 북에서 남으로 배열한 점, 그리고 세계지리는 남반구를 북반구의 다른 주보다 먼저 교수하도록 편성한 점이다(표 3). 이러한 내용편성은 문부성 편찬 『심상소학지리서』 와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예상 밖이라는 것을 누구 라도 동감하며, 얼핏 보더라도 쇄신을 도모한 것이라고 통감하며, 문부성의 그것보다 훨씬 진보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市川三代藏, 1939, 69). 내지(內地) 보다 한 걸음 앞서 신흥지리학의 사상에 입각하여 우량 교과서를 활용하게 된 것이다(大石運平, 1934, 61). 그 이유는 다나카 게이지가 『초등지리서』를 저술함에 있어서 페스탈로치 교육사상에 근거한 아동중심주의와 과학적 지지학을 접목시켜 지방별, 대주별로 내용을 편성했기 때문이다.

    [표 3.] 조선총독부 편찬 『초등지리서』의 내용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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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총독부 편찬 『초등지리서』의 내용구성

    2) 일본지리의 내용편성

    앞에서 언급했듯이 1930년대 초반 조선총독부의 『초등지리서』가 편찬되기 이전까지 식민지 조선의 보통학 교에서 사용된 지리교과서는 문부성 편찬 『심상소학지리서』와 조선총독부 편찬 『보통학교지리보충교재』이 다. 문부성과 조선총독부 편찬 지리교과서에서 일본지리 부분은 각 지방마다 자연에서 인문으로의 순서, 즉위치‧구역, 지형,6) 기후, 산업, 교통, 주민‧도읍 등과 같이 병렬식‧항목식으로 기술되어 있다. 그러나 이들 지리교과서의 각 지방별 배열순서는 현저한 차이 점이 보인다.

    먼저 문부성 편찬 『심상소학지리서』의 일본지리 부분은 제도(帝都)가 위치한 간토우(關東)지방을 가장 앞에 두고, 이어서 오우(奥羽)지방, 주부(中部)지방, 긴키 (近畿)지방, 주고쿠(中國)지방, 시코쿠(四國)지방, 규슈(九州)지방으로 남하하고, 다음에는 북으로 나아가는 방법을 취해 홋카이도(北海道)지방, 가라후토(樺太) 지방, 마지막에는 당시 식민지였던 대만지방, 조선지방, 관동주, 남양군도를 배열하고, 일본총설로서 총괄 하였다(文部省, 19291930). 그리고 조선총독부 편찬 『보통학교지리보충교재』의 조선지방에 대한 내용 구성을 살펴보면, 먼저 위치‧경역(境域)‧면적‧인구‧ 구분(區分)을 간단히 기술하고, 그 다음은 지방지로 구성되어 있다. 즉 조선의 지방지는 국토의 중앙에 위치한 중부조선(경기도‧강원도‧황해도)을 가장 먼저 교수하도록 배열하고, 이어서 북부지방(함경남북도‧평안 남북도), 남부조선(충청‧전라‧경상 각 남북도), 그리고 마지막에 총설로서 총괄하였다(朝鮮總督府, 1923).

    반면 조선총독부 편찬 다나카 게이지의 『초등지리서』 권1, 권2는 역사와 전통이 있는 문부성의 위와 같은 내용구성을 일신했다. 일본지리는 문부성과 달리 조선지방을 가장 먼저 배우도록 배열하고, 그 내용도 다른 지방보다 많은 분량을 할애했다. 그리고 종래와 달리 더 상세하게 북에서 남으로 나아가는 방식을 취했 다. 그런 다음 일본 열도로 옮겨가 최북단 가라후토(樺 太)지방에서 점차 남하하여 홋카이도(北海道)지방, 오우(奥羽)지방, 간토우(關東)지방, 주부(中部)지방, 긴키(近畿)지방, 주고쿠(中國) 및 시코쿠(四國)지방,7) 규슈(九州)지방, 대만(臺灣)지방, 우리 남양위임통치지, 관동주에 이르고, 마지막에 일본총설로서 총괄하였다 (표 3). 이는 다나카 게이지가 일본지리의 내용편성에 있어서 「향토 조선에서 일본 열도로」 그리고 「북부지방 에서 남부지방으로」라는 주의를 함께 고려한 것으로 볼 수 있다.

    (1) 향토 조선에서 일본 열도로

    근대 일본의 지리교과서에서 한국은 세계지리의 아시아주에서 가장 먼저 다루어지는 경우가 많았다. 그렇지만 1910년 한일병합 이후 일본의 지리교과서에서 한국은 세계지리가 아닌, 일본지리에서 일본의 한 지방으로 다루어졌다. 그리고 조선총독부에서는 1914년 고등보통학교의 『일본지리교과서』에 조선지방이 처음 등장하지만, 가장 나중에 다루도록 배열했다. 즉 일본의 각 지방은 간토우지방, 오우지방, 주부지방, 긴키지 방, 주고쿠지방, 시코쿠지방, 규슈지방, 대만지방, 홋카이도지방, 조선지방으로 구성되어 있다(朝鮮總督府, 1914).

    다나카 게이지도 보통학교 아동용 『초등지리서』의 일본지리 부분에서 광범위의 식민지 조선을 일본의 한지방으로 다루었다. 그러나 일본지리 부분에서 일본의 다른 지방보다 조선지방을 가장 앞에 배열했다. 또한 조선지방을 분절한 것은 보통학교 아동에 대해서 조선 지방을 광의의 향토로 간주하여 지리학습을 향토에서 출발하고, 동시에 좀 더 상세하게 학습시키기 위함이다(朝鮮總督府, 1932b, 7). 식민지 조선의 중등학교에서도 학생들에게 한 단계 높은 조선지리 일반을 교수하기 위해 1935년 도요카와 젠요(豊川善曄)에 의해 『조 선향토지리』가 발행되었다. 지리교육 및 사회과교육의 역사에서 향토의 범위 설정은 대체로 직접관찰 가능한 공간으로 하는 것, 학교소재지를 중심으로 하는 것, 생활권으로 하는 것, 행정구역으로 하는 것, 시간과 거리를 기준으로 하는 것 등이 대표적 사례이다. 이들은 모두 국지적 수준의 범위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 시기에 식민지 조선의 초중등학교 지리교육에서는 국가적 수준의 조선지방이 향토의 범위로 설정되었다. 이와 관련하여 1932년 6월 말 경성제일고등여학교에서 개최된 경기도 제2부(여학교의 부) 지리과교수연구회의 협의에서 향토지리로서 또는 기본지리로서 조선지 방을 어떻게 다루어야 할 것인가에 대한 논의가 있었다. 조선지방을 향토의 범위로 설정하는 것에 대해서 마쓰모토 신에이(松本眞英, 1932, 34)는 다음과 같이 협의 내용을 정리하였다.

    이 내용과 같이 일본지리에서 광역의 조선지방이 향토의 범위로 설정된 것은 두 가지 방면이 탄력적으로 혼재되어 있다. 그 하나는 향토 조선을 과거와 현재의 관점에서 교수의 출발점으로 보는 입장이다. 이 관점은 학교를 중심으로 직관 가능한 행정적 범위라고 할 수 있고, 향토학습을 지역학습의 맹아로 본 것이다. 아동이 향토에서 직관적으로 배양한 지리적 지식은 미지의 국토 및 세계지리 학습에 대한 기초‧기본이 된다는 사고방식이다. 즉 후술하듯이 향토 조선에 대한 지리적 이해는 미견미답의 일본 열도의 지리적 지식을 이해함에 있어서 비교, 대조, 유추하는데 기초‧기본이 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다나카 게이지는 보통학교 『초등지리서』의 일본지리 내용을 향토 조선에 서 일본 열도로 편성했다고 할 수 있다. 그것은 「가까움에서 먼 곳으로」,「향토에서 출발하여 향토로 돌아간 다」,「백사(百事) 인식의 초보는 직관으로부터」 등의 의미에서 곧 수긍된다(大石運平, 1933, 41).

    다른 하나는 향토 조선을 미래의 관점에서 학생들의 활동 무대로 보는 입장이다. 아동의 미래 삶의 터전을 조선 전체로 보고, 미래에 대비하여 조선지방을 충분히 이해시켜 실생활에 도움이 되도록 교육을 실시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당시 시대적 배경과 관련하여 향토 조선의 낙후된 실정을 인식하고, 장래 산업 개발의 정신을 함양하는 것과 관련이 있다. 교과서 편찬취의서에 나타나 있듯이 조선의 지방지를 북에서 남으로 순차적으로 학습시켜 두면, 가라후토‧홋카이도‧오우의 지방지를 학습할 때에 조선의 위도나 기후와 비교‧ 대조하여 이들 지방의 산업 등을 유추시킬 수 있고, 또한 홋카이도 및 오우지방의 산업과 같이 주로 메이지 이후에 이룩한 산업 발달을 알게 되면, 이것과 비교하여 조선도 장래 산업 발달의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알고, 조선의 산업 개발의 근본을 배양하고 산업을 장려 하게 된다는 것이다(朝鮮總督府, 1932a, 7). 다나카 게이지는 이러한 산업개발의 진전을 고려하여 일본지리의 내용을 1차 산업 중심의 향토 조선에서 2, 3차 산업이 발달한 일본 열도로 편성했다고 할 수 있다.

    이와 같은 일본지리의 배열에 대한 다나카 게이지의 사고방식은 아동의 심적 발달을 우선적으로 고려한 것이다. 즉 향토, 가까운 곳, 직관적 등은 페스탈로치의 교육사상에 근거한 것이다. 그리고 산업 발달 수준이 낮은 향토 조선에서 메이지 이래 산업 발달이 이루어진 일본 열도로 나아가도록 교육 내용을 배열한 것은 당시 향토교육운동과 페스탈로치 교육사상의 결부로 볼 수 있다.

    (2) 북부 지방에서 남부 지방으로

    다나카 게이지는 1920년대 후반에 발표한 지리교육 논문에서 일본지리의 각 지방별 배열은 제도(帝都)가 위치한 간토우(關東)지방을 중심으로 남과 북으로 나아가는 방법보다 최북단 가라후토(樺太)지방에서 순차 남하하여 최남단 대만지방 순으로 편성하는 방식이 학생들의 지역 이해에 능률적이라고 보았다. 가라후토 (樺太)와 대만은 일본의 지리적 경관의 양극이며, 혼슈, 시코쿠, 규슈 제도는 그 중간의 점이지대로 조화적 경관을 나타내고 있다. 그러므로 동북에서 순차 서남으로 가르침으로써 지리적 경관의 추이를 정연하게 고찰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田中啓爾, 1927b, 5). 이러한 사고에 근거하여 다나카 게이지는 식민지 조선의 보통 학교 『초등지리서』의 일본지리에서 각 지방을 북에서 남으로 배열했다. 일본지리의 내용편성에서 그는 한반도와 일본열도의 자연적 조건, 특히 위도에 따른 기후의 영향을 1차적으로 고려했음을 알 수 있다. 조선총독부 편찬 『초등지리서』 권1, 권2의 일본지리 부분의 지방별, 항목별 주제에 기술된(지도, 그림 포함) 남북성의 요소를 정리한 것이 표 4이다. 그 특징을 자연 및 인문으로 나누어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표 4.] 『초등지리서』에 기술된 지방별 남북성의 요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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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등지리서』에 기술된 지방별 남북성의 요소

    먼저 자연적 요소로서 지형은 지체구조에 좌우되는 경우가 많다. 한반도는 낭림, 묘향, 태백, 소백산맥 등 주요 산맥이 북동에서 남서 방향으로 뻗어 있고, 그 영 향으로 주요 하천도 남서 해안으로 유입한다. 일본 열도의 지체도 북동에서 남서로 향한 활모양(弓形)으로 주요 산맥은 대개 열도의 방향과 정연하게 배열되어 있다. 기후는 한반도의 경우 북부와 중부의 냉온대성, 남부의 난대성, 그리고 일본 열도는 최북단 가라후토의 아한대성, 중앙부의 냉온대성, 규슈 남부의 오키나와와 최남단 대만은 아열대성이 나타난다. 여기에 좌우 되는 식생도 북에서 남하함에 따라 일부 수직적 분포가 나타나지만, 순차적으로 한대림, 냉대림, 온대림, 난대림, 열대림으로 변화한다. 예컨대 북부조선의 경우 분비나무, 홍송, 낙엽송 등 차가운 기후에 적합한 수목의 대삼림이 나타나고, 가라후토지방은 산지에 분비나무, 가문비나무, 낙엽송 등의 밀림이 분포한다. 오우지방에는 삼나무의 대삼림, 주부지방에는 노송나무, 최남단 대만지방은 열대식물 상록교목, 빈랑수, 녹나무 등이 무성하다.

    다음은 인문적 요소의 남북성이다. 위치, 지형, 기후에 지배되는 남북성 산업은 농업과 수산업에서 뚜렷하게 나타난다. 농업의 경우 편북성의 사과와 감자, 그리고 편남성의 감귤류와 고구마가 대표적이다. 이들 관계는 조선총독부 편찬 『초등지리서』 권1의 8페이지 감자 생산분포도와 고구마 생산분포도, 66페이지 감자 생산분포도와 사과 생산분포도, 그리고 81페이지 고구 마 생산분포도를 보면 명확히 드러난다(그림 2). 사과는 조선 중북부, 홋카이도, 아오모리(靑森) 부근이 주산지로 점차 남하함에 따라 그 모습을 감추고, 그 대신 시즈오카(靜岡)와 기이(紀伊) 부근에서 대만에 걸쳐 감귤류로 바뀐다. 감자는 함경남북도와 강원도, 홋카이도 등에서 대량으로 생산되지만, 제주도와 규슈 남부에 이르면 거의 나타나지 않는다. 전남과 경남에서는 감자보다 고구마가 우세하며, 제주도, 규슈, 대만에 이르러서는 고구마가 주산지로 바뀐다. 수산업도 북부의 대구, 청어, 송어 등 한대성 어업에서 남하함에 따라 도미, 정어리, 가다랑어 등 온난대성 어업으로 바뀐다. 한편 지형에 지배되는 교통도 남북성이 우세하다. 즉한반도와 일본 열도의 지체구조가 북동에서 남서 방향으로 발달하고, 평지와 항구에 취락이 분포함에 따라 도로망과 철도망, 근해의 항로망은 횡단선보다 종단선이 발달했다. 주민과 도읍도 산업과 교통이 발달한 지역을 제외하면, 대체로 지형과 기후의 영향을 받아 북에서 남하함에 따라 점차 많은 분포가 나타난다.

    근대 일본의 초중등학교 지리교육에서 일본지리는 정적 특성이 강한 국가지리지의 지방별 내용체계와 비슷하여 자칫하면 단편적 지식 주입에 빠질 염려가 있었다. 이러한 측면에서 다나카 게이지가 일본지리를 북부 지방에서 남부 지방으로의 배열을 중시한 것은 아동들에게 지리적 현상을 단순한 나열이 아닌 지리적 이법에 의해 자연스럽게 이해시키기 위함이라고 할 수 있다. 게다가 동쪽의 일본 열도를 학습할 경우 선행학습한 조선지방의 지리적 지식에 근거하여 상호 비교‧대 조하고, 유추함으로써 조선지방과 일본 열도의 지리적 이법을 자연스럽게 이해할 수 있다는 논리이다.

    3) 세계지리의 내용편성

    문부성의 『심상소학지리서』 권2와 조선총독부 편찬 『초등지리서』 권2의 세계지리 부분은 공통적으로 각 지역을 대주별로 나누고, 각 주마다 위치‧구역, 지형, 기후, 산업, 교통, 도읍 등 항목별로 기술했다. 그러나 이들 지리교과서의 각 대주별 배열순서는 현저한 차이 점을 보인다. 먼저 문부성 편찬 『심상소학지리서』의 세계지리 부분은 아시아주를 가장 먼저 다루고, 이어서 유럽주, 아프리카주, 북아메리카주, 남아메리카주, 대양주 순으로 배열했다(文部省, 1930). 그러나 조선총 독부 편찬 다나카 게이지의 『초등지리서』는 문부성의 『심상소학지리서』와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세계지리 내용을 편성했다. 즉 다나카 게이지는 문부성 편찬 『심상소학지리서』에서 가장 나중에 다루었던 남반구의 대양주를 먼저 배열하고, 이어서 아프리카주, 남아메리 카주, 그리고 북반구의 북아메리카주, 아시아주, 유럽주 순서로 세계지리 내용을 편성했다(표 3). 이러한 배 열에서 「쉬움에서 어려움으로」, 「미개척 지역에서 기개척 지역으로」라는 흐름을 자연스럽게 파악할 수 있다(大石運平, 1933, 43). 이와 관련하여 필자는 다나카 게이지가 「가깝고 간단한 지역에서 복잡한 지역으로」 라는 주의에 근거하여 『초등지리서』의 세계지리 내용을 「남반구에서 북반구로」 편성했다고 생각한다.

    (1) 가깝고 간단한 지역에서 복잡한 지역으로

    세계지리의 내용편성과 관련하여 다나카 게이지가 일본의 지리교육계에 새로운 안을 주장하기 시작한 것은 1910년대 중반이다. 즉 1915년 이후 도쿄고등사범 학교 부속중학교에서 최초로 적용을 시도했다. 또한 1917년 도쿄여자고등사범학교에서 개최된 전국지리역 사교원협의회에서 그 결과를 보고하고, 동회의 요지개정 위원회에서는 다수의 찬성을 얻어 채결되었지만, 본회의에서 소수의 차이로 보류된 유감의 결과로 끝났다. 주요 원인은 동 회의는 지리역사교원협의회였는데, 역사교원의 출석이 많았고, 역사교원은 이 안에 대해서 역사 교수상 다소 불편이 있어 불찬성이 많았기 때문이다(田中啓爾, 1929a, 5). 다나카 게이지는 그의 아이디어를 기회가 있을 때마다 지리와 역사교원을 대상으로 주장해 왔지만, 그의 안은 일본의 지리교육계에서 수용되지 않았다.8) 그 후에 다나카 게이지(1929a)는 「외국지지 교수의 순서에 대해서」라는 논문을 발표했고, 마침내 그의 안은 1933년 조선총독부 편찬 『초등지리서』에서 빛을 보게 되었다.

    이 배열의 주요 특징은 가깝고 간단한 지역에서 복잡한 지역으로 나아가도록 한 점이다. 근대 일본에서 발행된 대다수 지리교과서는 문부성 편찬 『심상소학지 리서』와 동일한 방식으로 세계지리의 내용에서 일본이 속한 아시아주를 가장 먼저 다루도록 편성했다. 아동들이 일본지리를 배운 다음, 일본과 가장 가까운 이웃 나라를 먼저 배우도록 한 것은 친근성의 측면에서 지역 이해에 용이하다는 자연스러운 사고방식이다. 그런데 조선총독부 편찬 『초등지리서』의 세계지리 부분은 이러한 역사성과 전통을 뒤로하고 아시아주가 아닌, 남반구의 대양주를 가장 먼저 다루도록 배열했다. 이는 근대 일본의 지리교과서에서 볼 수 없는 새로운 방식으로 과감한 쇄신을 도모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다나카 게이지에 의하면, 일본지리에 이어 종래 일본의 서쪽 근린 아시아주의 중국에서 시작하는 것이나 일본의 남쪽 근린 대양주부터 교수하도록 배열하는 것은 모두 동일하게 아동들에게 자연스런 순서이며, 특히 대양주를 먼저 다루는 것은 결코 무리한 순서가 아니라고 보았다. 이는 다나카 게이지가 지역에 대한 경중(輕重), 단복(單複), 그리고 아동의 심력(心力) 등을 고려한 것이다(田中啓爾, 1929a, 7). 처음 외국지리를 학습하는 학생들에 대해 자연 및 인문의 간단한 것에서 순차 복잡한 것으로 옮기는 것이 한발 한발 그 이해를 깊게하여 학습을 용이하게 하고, 또한 지리 학습을 단순한 기억에만 의존하기 않고, 추리력을 양성할 수 있는 합리적 학습법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만약 이것과 반대로 복잡한 것을 먼저 교수한다면, 그 이해를 기억에만 호소하게 되고, 또한 간단한 것으로 나아감에 따라 학습에 대한 흥미를 떨어뜨려 학습하려는 사항에 대한 기대를 잃게 한다(朝鮮總督府, 1933b, 6).

    세계지리를 일본열도에서 가깝고 간단한 지역으로서 대양주를 먼저 교수해야 한다는 것은 자연적 요소 로서 기후, 그리고 인문적 요소로서 문화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전자는 일본지리를 북부의 가라후토(樺太) 에서 점차 남하하여 홋카이도(北海道), 혼슈(本州), 시코쿠(四國), 규슈(九州), 대만(臺灣), 남양위임통치지 순으로 교수하고, 그 다음 세계지리에서 아시아주의 중국이 아닌 대양주로 나아가는 것은 아동의 심력과 관련하여 자연스럽다는 것이다. 즉 북에서 남으로 기후 대에 따른 지리적 경관 변화와 관련하여 아동들에게 일본의 남단과 대양주 지역을 자연스럽게 결부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9) 반면 인문적 요소와 관련하여 대양주는 후술하듯이 세계에서 가장 간단한 지역이고, 아시아주는 대양주보다 복잡한 지역이기 때문에 간단한 대양주를 먼저 교수하도록 배열하는 것은 아동들의 지역 이해에 바람직하다는 논리이다.

    (2) 남반구에서 북반구로

    다른 모든 교과는 내용 정도가 점점 높아지도록 배열되어 있지만, 지리는 그렇지 않아 유럽 뒤에 이어지는 아프리카, 북아메리카, 남아메리카, 오세아니아 등은 갑자기 지나치게 평이한 느낌이 있다(田中啓爾, 1929a, 6). 다나카 게이지는 6대주의 계열성을 고려하여 세계지리 내용을 남반구에 위치한 대양주, 아프리카주, 남아메리카주에서 북반구의 북아메리카주, 아시아주, 유럽주 순서로 배열했다.

    아동의 심력과 관련하여 대양주, 아프리카주, 남아메리카주, 북아메리카주 등은 자연지리적, 인문지리적 방면에서 비교적 간단하여 이해 고찰에 적합하지만, 아시아주와 유럽주는 복잡하여 이해도 고찰도 용이하지 않다는 것이다. 따라서 종래와 같이 복잡한 것을 앞으로 하고, 간단한 것을 뒤로 한다는 역의 방법을 피해 쉬움에서 어려움으로 나아가도록 한 것이다(大石運平, 1933, 43). 이는 조선총독부 편찬 『초등지리서』의 세계 지리 내용 분량이 남반구 16.7%(대양주 6, 아프리카주 4, 남아메리카주 6페이지), 북반구 83.3%(북아메리카주 14, 아시아주 44, 유럽주 22페이지)로 구성되어 있는 것을 보더라도 이들 지역의 난이(難易), 경중(輕重), 단복(單複) 관계를 짐작할 수 있다.

    다나카 게이지는 6대주 가운데 대양주의 오스트레일리아는 지형, 기후, 식물대와 인문과의 상호관계가 대단히 간단명료하기 때문에 세계지리에서 최초로 대륙을 배우는 학생들에게 가장 적절한 교재라고 간주했 다. 이어서 아프리카주, 남아메리카주로 나아가는 것을 자연스런 순서로 보았는데, 이는 이들 지역과의 자연적, 인문적 유사점 때문이다(田中啓爾, 1929a, 8). 예컨대 자연지리적으로 오스트레일리아와 아프리카의 대사막, 콩고와 아마존 양 하천 유역의 열대 원생림,10) 그리고 인문지리적으로 오스트레일리아의 뉴사우스웨일스와 빅토리아주, 아프리카의 남아프리카연방, 남아메리카의 아르헨티나와 같은 문화지대는 현저한 유사 점이 있다고 보았다(田中啓爾, 1929a, 8). 간명한 오스트레일리아의 선행학습에 근거하여 아프리카주와 남아메리카주로 나아가 자연과 인문의 상호관계를 이해 하는 것은 교육상 대단히 능률적이라는 것이다.

    남반구에 이어 북반구로 나아가게 되는데, 북반구의 주를 어떤 순서로 배열하는 것이 아동들에게 가장 바람직한가를 고려하는 것도 문제이다. 다나카 게이지는 북반구의 순서와 관련하여 재차 일본을 중심으로 서쪽의 근접지 중국에서 시작하여 아시아주, 유럽주, 북아메리카주 순으로 배열하는 안이 있지만, 남아메리카와 자매대륙을 생각할 때, 북반구에 위치한 북아메리카주를 가장 먼저 다루는 것이 자연스럽고, 수업의 진행도 매우 원만하다고 보았다. 또한 구대륙의 중국, 유럽열강, 미국을 서로 비교하면, 미국은 문화는 높지만, 신개척지로 아동들의 이해는 다른 나라에 비하면 용이하다는 것이다(田中啓爾, 1929a, 8). 국가 수에서도 북아메리카주는 아시아주, 유럽주에 비하면 적기 때문에 간단하게 보인다. 그 외에도 남북아메리카주는 다른 주보다 자연적, 인문적 유사점이 많기 때문에 남아메리카주 다음에 북아메리카주를 다루는 것이 자연스럽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예컨대 『초등지리서』에는 남북아메리카주에 신기조산대의 높고 험준한 안데스산맥과 로키산맥의 분포, 온대지대에 펼쳐진 광활한 팜파스와 프레리 초원의 관계가 기술되어 있다(朝鮮總督府, 1933a, 90-91, 97-98). 그리고 신개척지, 식민지, 원주민과 유럽 백인, 흑인, 동부 해안지대에서 서부로의 개척 등의 관계도 유사하다. 이러한 측면에서 다나카 게이지는 아동들이 남아메리카주 지리에 대한 선행학습을 기반으로 북아메리카주 지리를 비교적 용이하게 이해할 것으로 보았던 것이다.

    마지막으로 북아메리카주 다음에 아시아주와 유럽 주의 선후 배열 문제이다. 다나카 게이지는 유라시아 대륙에서 유럽주는 하나의 반도에 불과하지만, 이 지역의 중요성과 복잡성을 고려하여 아시아주, 유럽주 순서가 바람직하다고 보았다(田中啓爾, 1929a, 9). 자연의 방면에서는 아시아 쪽이 복잡할지 모르지만, 문화의 방면에서 아시아는 유럽에 비교가 되지 않고, 동시에 유럽에는 소위 식민지가 거의 없고, 무엇보다도 현재 백인은 세계의 지도자로서 고도의 문명을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大石運平, 1933, 45). 비록 유럽의 면적은 넓은 편이 아니지만, 유럽은 언어‧종교‧민족 등 문화적으로 복잡하게 얽혀 있고, 열강의 중요성을 고려하여 세계지리에서 가장 나중에 다루어졌던 것이다.

    이상에서 다나카 게이지는 계열성을 중시하여 세계 지리 내용을 남반구에서 북반구로 나아가도록 편성했다. 이는 페스퇄로치의 교육사상에 근거한 것으로 여기에는 「일본에서 가까운 지역을 앞부분에」, 「간단한 지역에서 복잡한 지역으로」, 「쉬움에서 어려움으로」, 「미개척지에서 기개척지로」, 「중요한 지역은 가장 뒷부분에」라는 주의가 포함되어 있다. 결국 다나카 게이지는 당시 세계지리의 내용편성과 관련하여 아동의 입장 에서 가장 자연스러운 순서, 즉 능률적인 지역 이해를 모색했다고 할 수 있다.

    4)1903년에 9지방 구분방식으로 발행되었고, 1910년에는 권두에 대일본제국, 권2에 식민지 부분이 추가되었다. 1918년·1919년에는 11지방 지지를 채용했으며, 1925년에는 구어체로 기술하였다. 1929년·1930년에는 권2에 우리 남양위임통치지가 추가되었고, 1938년·1939년에는 권2에 우리 남양군도로 바뀌었다(木全淸博, 1992, 4).  5)교과서 명칭에 초등이 나타나는 것은 1931년 『초등이과서』가 아마도 최초일 것이다. 익년 1932년에는 『초등지리서』가 출현하였다. 보통학교에서 지리는 종래 문부성의 국정교과서에 『보통학교지리보충교재』를 병용해 왔는데, 이 시기에 조선 독자의 교과서를 편찬하여 내선(內鮮) 아동이 공통으로 사용하게 된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당연히 『보통학교지리』라는 명칭이 되었을 것이다. 소학교와 보통학교 양쪽 모두에 공통이라는 의미에서 초등으로 이름붙였을 것이다(礒田一雄, 1999, 207). 즉 당시 식민지 조선에는 조선인 아동이 다녔던 보통학교와 일본인 아동이 다녔던 소학교가 있었는데, 새롭게 편찬된 『초등지리서』는 보통학교와 소학교에서 공통으로 사용되었기에 초등이라는 명칭을 부여한 것이다.  6)심상소학지리서 등에 지세(地勢)의 제목을 들고 있는데, 본서에서는 이것을 지형(地形)으로 고쳐 여기에 해안을 포함시켰다. 이것은 최근의 지리학 추세에 따른 것이다(朝鮮總督府, 1932b, 9).  7)주고쿠 및 시코쿠지방은 『심상소학지리서』에 주고쿠지방, 시코쿠지방 두 지방으로 구분되어 있는데, 본서는 이것을 하나의 지리구(地理區)로 다루었다. 그리고 지문 및 인문 모두 지형에 따라 일본해, 세토나이해, 태평양 세 방면으로 나누어 설명했다. 이것은 본서가 지리구를 중시했기 때문이다(朝鮮總督府, 1933b, 4). 즉 다나카 게이지(1927a)가 지리학평론에 발표한 「일본의 지리구」라는 논문 내용이 교과서에 반영된 것이다.  8)그 이유는 당시에도 역사교과서 내용의 상당 부분은 동양사와 서양사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었기 때문에 아시아와 유럽의 지역지리 인식이 중요하므로 여기에 중점을 두고 우선적으로 가르쳐야 한다는 논리로 보인다.  9)이와 관련하여 『초등지리서』 권2의 제15 대양주의 위치·구역에 대한 설명에서 「대양주는 우리 남양위임통치지 및 그것에 인접하는 태평양 중부에서 남부에 걸쳐 산재해 있는 크고 작은 수많은 섬들과 오스트레일리아(호주) 대륙을 말한다」(朝鮮總督府, 1933a, 80)라고 기술하여 일본열도와 대양주를 자연스럽게 연결시키고 있다.  10)두 대륙의 유사점에 대해서 교과서에는 「오스트레일리아 대륙은 대체로 고원 형상이며...... 대부분은 사막 또는 초원으로 이루어져 있다(朝鮮總督府, 1933a, 80-81). 그리고 아프리카 대륙은 대체로 고원 형상으로 나일강, 콩고강 등의 대하천도 있지만, 고원이 해안가까이까지 뻗어 있는 곳이 많기 때문에 대체로 하천은 하류가 급류나 여울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 중부 지방은 우량이 많기 때문에 대삼림을 이루고 있지만, 북부의 내륙은 우량이 적어 세계 제1의 사하라 사막과 넓은 초원이 있다」(朝鮮總督府, 1933a, 86-87)라고 기술되어 있다.

    IV. 맺음말

    지리교육과정의 계열적 조직과 관련하여 가까운 지역에서 먼 지역 순으로 내용을 편성하는 소위 지평확대법은 오랜 역사성이 있다. 그동안 우리나라의 사회과교육, 지리교육에서는 지평확대법이 미국 사회과에서 도입된 것으로 인식해 왔다. 그러나 본 연구에서 고찰한 바와 같이 향토(고장)와 국토에서 세계로 나아가도록 지리 내용을 편성하는 방식은 페스탈로치 교육사 상에 기원을 두고 일본에서 도입되었음을 밝혔다. 페스탈로치의 교육사상은 서로 다른 시기에 두 가지 루트를 통해 근대 한국의 지리교육에 정착했다. 그 하나는 1895년 소학교 지리교육과정에 나타나는데, 이것은 본고장 스위스에서 독일, 일본을 통해 도입되었다. 다른 하나는 스위스, 독일, 영국, 미국, 일본을 경유하여 1930년대 초반 조선총독부의 보통학교 지리교과서에 응용되었다. 본 연구는 페스탈로치의 교육사상을 식민지 조선에 도입한 다나카 게이지의 경력을 추적하고, 나아가 그가 저술한 조선총독부 편찬 보통학교 『초등 지리서』의 내용구성에 보이는 페스탈로치 교육사상의 특성을 해명하는 것이 목적이다.

    다나카 게이지는 근대 일본에서 페스탈로치 교육사 상을 미국에서 도입하여 연구와 실천이 활발하게 이루 어진 도쿄고등사범학교 지리역사부 출신이다. 이 학교의 역사적 전통에서 다나카 게이지는 페스탈로치 교육 사상에 많은 관심이 있었고, 지리교육에서 야외 관찰을 중시했다. 그는 1920년대 초반 문부성 재외연구원으로서 영국, 미국, 독일, 프랑스 4개국을 유학한 뒤에 지리학계의 백과자전적 현상을 비판하고, 과학적 지리학 연구에 눈뜨게 되었다. 1929년에는 지형과 기후 등 자연현상을 중시한 일본의 지리구라는 논문을 발표했으며, 그 연구결과를 초중등학교 지리교육에 적용하려고 했다. 그리고 지리교육 연구는 페스탈로치 교육사 상에 근거하여 일본지리와 세계지리의 내용 구성에 대한 아이디어를 1910년대 중반부터 1920년대 후반까지 일본의 지리교육계에서 주장해 왔지만, 수용되지 않았다. 그 내용은 1927년 「일본지지 교수의 단원과 그 취급의 순서에 대해서」, 그리고 1929년 「세계지지 교수의 순서에 대해서」라는 논문으로 발표되었다.

    마침내 다나가 게이지의 아이디어는 그가 저술한 1930년대 초반 식민지 조선의 보통학교 아동용 『초등 지리서』에서 빛을 보게 되었다. 그는 『초등지리서』에서 일본지리 부분의 내용을 페스탈로치 교육사상에 입각 하여 향토조선에서 일본열도로 교수하도록 편성했다. 이는 가까운 지역에서 먼 지역으로 나아가도록 한 것으로 향토조선의 직관적 교수를 강조했다. 또한 아동들이 한반도와 일본열도의 지방별 지리적 경관 추이를 자연스럽게 이해하도록 북에서 남으로의 배열 방식을 채용했다. 한편 세계지리 부분의 내용도 페스탈로치 교육사상에 근거하여 가깝고 간단한 지역에서 복잡한 지역으로, 즉 남반구의 대양주, 아프리카주, 남아메리카 주, 그리고 북반구의 북아메리카주, 아시아주, 유럽주 순으로 배열했다. 다나카 게이지는 대양주를 일본에서 가까운 지역으로 인식했으며, 남반구는 간단하고 쉬운 지역, 그리고 북반구는 복잡하고 어렵고, 중요한 지역으로 간주했다. 따라서 그는 남반구에서 북반구로의 배열은 아동의 입장에서 자연스러운 순서, 즉 세계의 지역 이해에 가장 능률적이라고 판단했다.

    이상 다나카 게이지는 페스탈로치 교육사상에 근거한 지리교육론을 교육의 실험으로서 식민지 조선의 보통학교 지리교육에 적용했다. 광의의 조선지방을 향토로 간주한 것은 페스탈로치 교육사상과 거리가 있다. 그러나 일본지리와 세계지리의 내용을 지역의 원근(遠 近), 난이(難易), 단복(單複), 경중(輕重), 아동의 심력, 자연스러움, 능률 등을 고려하여 편성한 것은 페스탈로치 교육사상을 충실히 반영한 것이다. 그리고 다나카 게이지는 지리교육 내용편성과 관련하여 유사한 지역과의 비교‧대조, 유추를 통해 아동들에게 지역을 효률적으로 이해시키려고 했다. 무엇보다 그는 서구의 교육학 및 지리학 사상을 우리의 실정에 맞게 응용하여 『초등지리서』를 저술한 것은 당시의 시점에서 진보적 이고 과학적인 역작으로 평가할 만하다. 그러므로 1930년대 식민지 조선의 초등지리교육은 다나카 게이 지의 지리교육론 시대라고 할 수 있다. 한국이 일본의 식민지에서 독립한 환경, 그리고 교통과 통신이 발달한 현대의 학교교육에서도 다나카 게이지의 지리교육론은 그 나름의 의의가 인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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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그림 1. ]  다나카 게이지(1885-19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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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표 1. ]  다나카 게이지의 경력과 연구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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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표 2. ]  보통학교 규정의 지리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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