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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얼리즘으로 줌인한 현실과 시로 줌아웃한 작가의식 -영화 <시> 의 스토리텔링 연구- A Study on the Structure of Description on Lee, Chang Dong’s Movie <Poetry>
  • 비영리 CC BY-NC
ABSTRACT
리얼리즘으로 줌인한 현실과 시로 줌아웃한 작가의식 -영화 <시> 의 스토리텔링 연구-

This paper has been aimed to try to prove Popularity and storytelling have close relationship. This paper's material is Lee Chang-Dong's film, 〈Poetry〉. It is one of the movie there is no Popularity. The goal of this paper is that revealing what is the Popularity based on unpopular movie.

The story telling of this movie is not popular. The reason is as follows. The first reason is this movie has audience face up the reality. So this movie raises the question about a reality. The second reason is the point that this movie’s theme relate to ‘poetic justice’.

The actors of this movie are common people except some. And there is no music in this movie. Instead, it is full of the innate rhythm of real life. This movie tries to make the real life into the reality in the movie. So this movie is unfamiliar.

This paper tries to prove the thing that Popularity and storytelling are related closely. The goal of this movie is to make the audience to be uncomfortable in order to reorganize the existing order. In this context, Lee Chang-dong is a ‘writer’ not a ‘film Director’. Hoping to accumulate lots of researches about Popularity, I finish the discussion.

KEYWORD
Popularity , technique , storytelling , ideology , commercial trait , poetic justice , innate rhythm , Lee , Chang-Dong
  • 1. 머리말

    영화에서 대중성은 매우 논의하기 어려운 문제이다. 대중성을 대놓고 표방한 영화가 소위 ‘쪽박’을 차기도 하고, 퀴어 영화를 표방했던 영화들이 깜짝 흥행을 하기도 하는 등 현대의 영화 판도와 관객의 취향은 예민하여 어디로 튈는지 종잡을 수 없는 것이 현실이기 때문이다. 흥행 성적 또한 작품성뿐 아니라 개봉시기, 배급 상황, 마케팅 등 여러 변인들이 작용하는 것이기 때문에, 한 가지 관점에서 이야기되기 어렵다. 좀체 잡히지 않는 개념이어서 쓰나마나한 말이 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말이 영화 이론과 비평에 많이 쓰이고 있는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때문에 최근에는 그것의 의미를 귀납적으로 밝히려는 연구도 수행되고 있다.1)

    대중성은 “강의와 서술에서 사용되는 수법(Manier)의 특징을 나타내며, 나아가 흥미 있는 것과 일상적인 것으로부터 출발한다는 인식방법의 존재방식”2)을 뜻한다. 대중성이 수법(혹은 기법)과 관련되어 있다는 점은 매우 중요하다. 수법은 기술(technique)에 해당하는 것으로, “예술작품을 만드는 데 있어 기술이나 작법의 명칭”,3) “작품을 창작하는 데 필요한 여러 가지 방법이나 작업 따위를 운용하는 수법”4) 등을 의미한다. 영화에서는 촬영, 조명, 색채, 미장센, 편집, 음향이 채용되는 방식, 또는 연기자가 자신의 역할을 연기하는 방식 등이 이에 해당할 것이다. 예를 들어, 어떤 작품이 같은 수법을 되풀이하여 신선미를 잃게 되면 감동을 불러일으킬 수 없게 된다. 이른 바 ‘작품의 형을 좇기’5) 때문인데, 풀어 이야기하자면 익숙한 수법으로의 함몰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

    이 때 익숙함의 핵심이 ‘일상적인 것으로부터 출발한다는 인식방법의 존재방식’일 터인데, 서사물의 경우 이는 술화(述話), 곧 스토리텔링의 문제로 귀결될 수 있다.6) 스토리를 낯설게 하거나 친숙하게 하고, 독자와 소통하고 공감을 이끌어내며,7) 의미의 맥락을 형성하는 것이 술화이기 때문이다. 나아가 “형식이 의미 형성의 단순한 도구가 아니라 거푸집”8) 으로 간주될 수 있다면, 스토리텔링은 작품이 지닌 이념과도 밀접한 관계를 지닌다. 같은 스토리라 하여도, 어떤 방식으로 형상화되어 전달되느냐에 따라 미묘한 차이가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9) 때문에 자끄 랑시에르는 “작품의 짜임새를 결정짓는 것이 스토리텔링이며, 스토리텔링이야말로 사물을 보는 절대적인 방식”10)이라고 말한 바 있다.

    이러한 점에서 대중성은 수법 곧 스토리텔링과 밀접한 관계에 놓이며, 영화가 생산하는 이념과도 밀접한 관계를 지닌다고 말할 수 있다.11) 그런데 대중성과 이를 관련지어 논의한 연구는 의외로 많지 않다.12) 대중성이 상업성과 혼융되어 쓰여온 점에 원인이 있을 것이다. 상업성이 ‘이윤을 얻는 것을 중요시하는 특성’으로 정의될 수 있다면, 이 말은 대중성과는 반드시 구분되어 쓰여야 한다. 소통의 목표 자체가 다르기 때문이다. 상업성이 ‘생산-소비’ 등 경제적 구조에 바탕을 둔 개념이라면, 대중성은 ‘유통’에 바탕을 둔 개념이라고 할 수 있다. 영화는 소통을 위해 만들어진다. 영화중에는 상업적 소통을 위해 생산된 것들이 많지만, 모든 영화가 상업적 의도를 지닌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독립영화나 인터넷 상에 소통되고 있는 다양한 영상물들 중에는 상업적이지 않은 것들도 많다. 그것들은 소통 자체를 목표로 유통된다. 따라서 상업적이지 않은 영상물까지 포괄하려면, 상업성은 대중성의 한 부분으로 남겨두는 것이 좋을 듯하다.

    요컨대, 대중성은 작품의 스토리텔링, 곧 서사물의 형식적 내용 요소인 스토리와, 스토리가 진술(state)되면서 생산되는 이념 혹은 주제와 긴밀한 관계를 지닌다고 볼 수 있다. 이 글에서는 이창동의 영화 <시>를 중심으로 그 상관성을 규명해 보려고 한다. 이 영화를 대상으로 삼는 이유는 이러하다.

    먼저, 이 영화의 독특한 이력이 이러한 점을 증명해 보이기에 적절 하다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시>는 이창동의 2010년 발표작으로, 이듬해인 2011년에 국‧내외 영화제의 작품상 등 주요부분 수상을 휩쓸다시피 할 정도로 작품성을 인정받은 작품이다.13) 그런데 흥행은 영화진흥위원회 추산 22만 명으로 놀라울 만큼 저조했다.14) 그나마도 수상에 따른 역관람이 반영된 수치라고 한다. 랑시에르 식으로 말하면, ‘사물을 바라보는 방식과 스토리텔링 자체가 대중적이지 않기 때문’으로 볼 수 있는데, 이러한 점을 드러내는 데 이 영화는 매우 적절한 대상이다.15)

    다음으로, 이 영화가 현재까지 자신만의 영화 세계를 구축해가고 있는 이창동의 스토리텔링을 가장 극명하게 보여준다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이창동은 독특한 스토리텔링으로 주목받아온 소위 ‘작가형 감독’의 한 사람이다. 영화 <시>는 그의 영화중에서도 가장 흥행 성적이 낮은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극단적으로 말해서 이 영화의 흥행 실패는 이창동식 스토리텔링이 극명하게 드러났기 때문이라고도 볼 수있는데,16) 이러한 가정이 성립한다면, 영화 <시> 분석은 ‘이창동식 스토리텔링은 대중적이지 않다’는 명제를 뒷받침할 수 있다.

    이 글에서는 이러한 관점에서 영화 <시>의 술화를 분석하여 이 영화가 대중적이지 않다면 어떤 점에서 그런지, 대중성을 억압 혹은 저해하는 요소가 있다면 그것은 무엇인지를 드러내 보이는 데 일차적인 목표를 둔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대중성과 스토리텔링, 대중성과 작품의 이념과의 상관관계를 증명하는 것이 이 글의 최종적 목표가 될것이다. 논의를 위해 현대 서사학 이론과 영화 이론을 원용하기로 하며, 영화 <시>17) 를 대상으로 하여 이 문제를 논의한다.

    1)송은아는 예술성과 대중성이라는 개념이 빈번한 사용 빈도와 중요성에 비해 정확한 개념을 제시하고 있지 못하다고 보고, 구글 검색에서 예술성과 대중성을 검색한 결과 나타난 문서 중 100개를 분석, 연관 단어를 추출해 내고 이를 중심으로 설문을 작성하여 설문결과를 중심으로 이 말들의 의미를 규명하는 논의를 수행하였다. 분석 결과, 대중성은 ‘스토리, 주제의 편안함’과의 관련성이 베타 계수 0.360으로 가장 높게 나타났고, 다음으로는 ‘재미있음’, ‘스트레스 해소’의 순으로 나타나고 있다. 한편, ‘메시지의 교훈성’과 ‘창의적 생소함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실험적 주제’는 대중성에 부정적 영향을 주는 것으로 나타났다 (송은아, 「영상 및 공연예술상품의 예술성-대중성 측정요소에 대한 탐색적 연구」, 한국엔터테인먼트산업학회, 『한국엔터테인먼트산업학회 학술대회 논문집』, 2014, 101-106쪽).  2)시부야 히사시(澁谷 久), 『칸트사전』, 도서출판 b, 2009.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1712679&cid=276&categoryId=1111  3)『국어국문학자료사전』, 한국사전연구사, 1998.  4)『만화애니메이션사전』, 한국만화영상진흥원, 2008.  5)『만화애니메이션사전』, 한국만화영상진흥원, 2008.  6)서사물은 작자와 독자 간의 소통을 위해 만들어진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소통 과정에서 전달되는 것은 서사물의 형식적 내용 요소인 스토리이다. 그리고 그것은 형식적 표현 요소인 술화, 곧 스토리텔링을 통해 전달된다 (시모어 채트먼, 최상규 역, 『원화와 작화』, 예림기획, 1998. 37쪽 참고).  7)공감과 소통은 독자를 설득하기 위한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설득’은 송신자가 타인의 태도를 만들고 변화시키고 강화하는, 목표 달성을 위한 메시지의 사용 과정으로 정의될 수 있다 (윌리엄 베노이트‧파멜라 베노이트, 이희복‧정승혜 옮김, 『설득 메시지』, 커뮤니케이션북스, 2010, 26쪽 참고).  8)최시한, 『가정소설연구』, 민음사, 1993, 42쪽.  9)이러한 맥락에서 시점은 매우 중요한 요소이다. 시점은 “시네아스트가 특별한 의도를 갖고 선택한 것이며, 특별한 목적을 위해 계산되고 구성된 지점”(조엘 마니, 김호영 옮김, 『카이에 뒤 시네마 영화이론 4–시점』, 이화여자대학교출판부, 2007, 31쪽)을 말한다. 그것은 카메라에 의한 것이므로 물리적 의미의 시점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심리적 시점, 나아가 정신적, 이데올로기적 의미의 시점을 의미하기도 한다. 시점은 영화가 독자에게 있어달라고 요청하는 지점이기도 하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하다.  10)자끄 랑시에르, 유재홍 역, 『문학의 정치』, 인간사랑, 2011, 25쪽.  11)이러한 점에서 ‘무엇을 대중성이라고 규정할 것인가’가 아니라, ‘무엇이 대중성으로 인지되고 있는가’를 말한 송은아의 논의는 대중성에 대한 논의를 한 단계 상승시킬 수 있는 바탕을 마련해 주었다고 할 수 있다 (관련 서지는 각주1) 참고). 필자는 작품이 생산하는 이념이 기득권이 추구하는 가치를 옹호하는 것이라면 그 서사는 대중적이라고 말할 수 있고, 반면 작품이 생산하는 이념이 새롭거나 진보적인 것이라면 그 서사는 대중 적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다는 점을 인류의 보편적 서사구조의 유형(a story-model)인 권선징악을 중심으로 논의한 바 있다 (졸고, 「권선징악의 현대적 변용 - 영화 ‘슬럼독 밀리어네어’를 예로」, 현대문학이론학회, 『현대문학이론연구』 48집, 2012, 237-260쪽 참고).  12)김혜원은 작품의 대중성이 ‘플롯’과 관련 있다고 주장한다. 김혜원의 논의는 대중성을 구조와 관련지어 논의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김혜원,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을 통해서 본 영화의 대중성 연구 : 영화<사랑>과 <달콤한 인생>의 플롯 구조 비교 분석」, 한국영화학회, 『영화연구』 제50호, 2011, 185-216쪽). 그러나 플롯으로 국한되어 있어 술화 구조 전반을 다루는 지는 못하였다.  13)<시>는 제63회 칸영화제 각본상, 스위스 프리부르국제영화제 최고상인 금시선상과 비평가상, 시카고트리뷴이 뽑은 ‘2011 올해 최고의 영화(The Best Movie of 2011)’ 선정, 대종상영화제 4개 부문 석권, 대한민국영화대상 최우수작품상, 감독상, 각본상 수상, 영화평론가협회 작품상과 감독상 수상 등을 수상했다.  14)같은 감독의 작품인 <박하사탕>(29만명), <오아시스>(115만명), <밀양>(171만)에 비견해서도 이 영화의 흥행 실적은 매우 저조한 편이다.  15)물론 매우 대중적인 영화를 분석하여 그 영화의 대중성을 드러내는 것도 좋은 방법일 수 있다. 반대로 대중적이지 않은 영화를 통해 역으로 대중성이 무엇인지를 드러내는 방법도 있을 수 있다. 전자가 일반적 요소를 드러내는 데 용이할 수 있다면, 후자는 변별적 요소를 드러내는 데 보다 효과일 수 있다. 따라서 이 글에서는 후자를 통해 접근 하는 방식을 택한다. 전자에 해당하는 작품을 대상으로 일반적 요소를 밝히는 연구도 기대할 수 있겠는데, 이는 연구가 진전된 이후에 이루어져야 좋은 결과를 기대할 수 있으므로 후속 연구로 미루어둔다.  16)이창동은 칸 영화제 인터뷰 중에 다음과 같은 말을 하고 있어 주목된다. “사실 국내 흥행은 예상했던 거다. 흥행이 안 될 줄 알았다. ‘시’라는 제목의 영화를 해야겠다고 친한 시인에게 말했는데 ‘무모하다. 누가 그런 제목의 영화를 보러 오겠냐’고 하더라. 하지만 ‘그래도 해야지’라는 오기가 생겼다. 그 친구의 시각이 일반 관객의 시각이다. 그래도 마음이 간절하면 통할 줄 알았다. 보통 사람들은 시라는 주제로 책을 읽지도 않을 것 같은 세태지만 간절한 마음은 받아들인다고 생각한다. 다만 극장에 안올 뿐이지. 칸에서도 받아들이는 사람이 있고. 마음이 전달되는 것을 느낄 수만 있다면 관객은 받아들인다. ‘밀양’ 때도 송강호 전도연이 당대 최고 배우인데도 흥행이 안 됐다. 더구나 ‘시’에는 젊은 배우는 눈 씻고 찾아봐도 없고. 투자자인 유니코리아에서도 흥행에 대해 불확실하게 생각했다.” (홍정원 기자, 「이창동 “‘시’ 흥행 안 될 줄 알았다, 칸 출품 홍보때문에..”」, 『MOVIE-en』, 2010-05-22)  17)이창동 감독 작품, Next Entertainment World, 2010년.

    2. 나의 너 되기 : 타인의 고통에 동참하기

    여기서는 스토리와 텍스트 층위에서 사건들을 결합하는 방식을 중심으로 <시>가 어떠한 방식으로 주제적 의미를 생산해 내고 독자와 소통하는 지, 이 영화가 지닌 의미생산의 메커니즘은 어떠한지 살펴본다.

    이창동의 영화가 대부분 그러하듯, 이 영화는 사건들이 어떠한 인과관계에 의해 배치되는지 쉽게 드러나지 않는 영화에 속한다. 영화 읽기가 어렵게 느껴지는 것은 이 때문이다. <시>에서 스토리가 어떠한 방식으로 구조화되고 어떠한 목표 하에 배치되는지, 이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무엇인지 살피기 위해 영화를 요약해 본다.

    영화 <시>는 시가 무엇인지, 어떻게 쓰는 것인지 알고 싶어 한 미자가 시를 완성하는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이 영화는 심리적 사건을 위주로 하는 일종의 심리극이기 때문에, 외면적 사건들은 그 자체로 의미를 지니기보다 주인공의 심리적 변화를 드러내기 위한 목적에 따라 배치된다. 심리를 그리는 서사의 경우 내면적 혹은 심리적 인과 성이 사건을 그러모으는 구심점이 되는 경우가 많은데, 이 영화 역시 그러하다. 따라서 미자의 심리적 추이를 따라가야 적절한 사건 요약이 될 수 있다.

    미자는 현실적이기보다는 낭만적인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이를 잘 드러내 보여주는 것이 그녀의 옷차림이다. 현실과 동떨어져 있는 것처럼 보이는 그녀의 옷차림은 미자의 환유물로서 미자의 성격을 드러내주는 역할을 한다. 그녀는 어렸을 적부터 쓰고 싶었던 시를 써보려고 문화센터에 등록한다. 사실 그녀의 형편을 고려하건대, 시를 쓰는 것은 사치에 가깝다. 그러나 미자는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지도 모를 한 편의 시를 쓰려고 열심이다.

    그녀는 문화센터 선생님(김용탁 역, 김용택 시인)의 이야기를 듣고 잘 ‘보려고’ 애쓴다. 그러나 아무리 사과를 들여다보아도 별로 느껴지는 것이 없다. 그래서 ‘사과는 역시 보는 것보다 깎아 먹는 거야’라며 사과를 먹어버리기도 한다. 미자의 보고자(시를 쓰고자)하는 욕망은 다음 대화에 잘 드러난다.

    본다는 것이 단순한 응시가 이니라, 대상과 함께 느끼고 생각을 공유하고 대화를 나누는 것임을 알게 해주는 대목이다.

    다음 수업에서 김용탁 시인은 시를 쓴다는 건 ‘일상의 삶 속에서 진정한 아름다움을 찾는 것’이라고 숙제를 보태준다. 그냥 겉만 아름다운 것만이 아닌 속까지 아름다운 것을 찾아야 하며, 그것을 찾아야 시가 씌어 진다는 것이다. 또 가슴 속에 갇혀있는 시가 날개를 달고 날아오를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도 말한다. 답답한 미자는 ‘아무리 시상을 얻으려고 해도 도무지 오지 않는다’며 시상은 언제 찾아오느냐고 묻는다. 김용탁 시인은 시상은 오는 것이 아니라 찾아가서 달라고 사정해야 하는 것이고, 분명한 것은 내 주변에서, 지금 내가 있는 자리에서 얻는 것이라고 말한다. 이 수업을 통해 미자는 시상이 ‘오는’ 것이 아니라 ‘찾는’ 것임을 알게 된다.

    미자가 처음 보게 된 대상은 희진이다. 추모미사에서 희진의 사진을 본 미자는 희진을 잘 보고자 하는 욕망으로 사진을 가져온다. 그리고 ‘잘 보고, 느끼고, 무슨 생각을 하나, 내게 무슨 말을 하나 들어 보려고’ 희진의 자취를 찾아다닌다. 과학실과 운동장을 서성거리기도 하고, 그녀가 몸을 던진 한강 다리에 직접 가서 서 보기도 한다. 희진이 당했던 성폭행도 김 노인과의 관계를 통해 미루어 짐작해본다.18)

    시를 쓰고자 하는, 다시 말해서 일상의 아름다움을 찾으려 하는 미자의 주변에는 아름답지 않는 것들로 가득하다. 희진을 성폭행하여 자살하게 만들어 놓고도 아무렇지도 않은 종욱의 태도는 미자가 속한 일상의 아름다움을 깨뜨린다. 미자는 ‘내 인생의 가장 아름다웠던 순간’이라는 발표 수업을 통해, 인간이 기억하는 가장 아름다운 순간은 진심어린 응시를 받은 순간임을 알게 된다.19) 시가 신성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미자에게 낭송회장에서 음담패설이나 늘어놓는 박삼태 등의 시는 감동을 주기보다 시를 모욕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녀는 그녀가 보고자 한 대상, 곧 희진을 ‘진심으로’ 응시하고자 한다. 그리고 희진이 느끼고 생각하는 것, 자신에게 들려주는 그녀의 이야기를 듣게 된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이 영화는 다음과 같이 재요약될 수 있다.

    그녀가 쓴 시는 대상을 진심으로 응시하고 고통에 동참하는 것, 곧 대상이 ‘되는’ 것이다.20) 이렇게 본다면, 이 영화는 ‘시를 쓰고자 한미자가 희진의 고통에 동참하여 시를 완성하는 이야기’, ‘미자가 범죄를 저지른 종욱을 경찰에 넘겨주어 일상의 아름다움을 회복하는 이야기’로 요약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영화의 말미에서 미자의 목소리가 희진의 목소리로 대치되는 부분은 ‘미자의 희진 되기’가 실현되었음을 보여주는 중요한 징표라고 할 수 있다.21)

    이 영화는 미자가 희진의 고통에 공감하기까지의 여정을 보여준다. “당면의 문제가 타인의 고통에 눈을 돌리는 것이라면, 더 이상 ‘우리’라는 말을 당연시해서는 안 된다.⋯⋯타인의 고통을 보고 고통스러워 하지 않는다거나, 몸서리치지 않는다거나, 이런 참사나 대량 학살을 가져온 전쟁을 없애려 애쓰지 않는 것이야 말로 도덕적 괴물의 반응”이며 “우리가 겪은 실패는 상상력의 실패, 공감의 실패”22) 라고 말한 수전 손택의 말을 따르자면, ‘미자의 희진되기’는 상상력의 합일, 공감의 합일로 볼 수 있는 점이 많다. 남한강 다리 위에서 만난 희진의 웃음이 맑아서 더욱 가슴 아프게 느껴지는 것은, 그것이 공감과 합일의 웃음이기 때문이다.23)

    이 영화의 주요 스토리라인인 ‘미자의 희진 되기’는 이 영화가 그리려는 시 정신을 스토리로 형상화하여 보여준다. 이러한 스토리가 전달하는 주제는 시는 가장 참혹하고 어려운 사람들 곁에서 그들과 공감하고 그 고통에 참여하는 것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검푸른 강물에 밀려 점차 다가오는 희진의 시체 옆에 떠오른 오프닝 타이틀은 시가 가장 참혹하고 어려운 사람들 곁에 있어야 함을 장면화하여 보여준다.

    대중성이 ‘관객이 행복하게 기존의 질서에 합일하게 하여 관객을 행복하게 하는 것’, 곧 ‘익숙함으로의 함몰’이라고 정의될 수 있다고할 때, 이 영화는 대중적이지 않다. 이 영화가 남한강 다리 위에 서 있는 희진을 돌려세워 그 얼굴을 관객과 만나게 했다는 자체가, 관객을 기존 질서에 행복하게 합일하게 하려는 의도로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이 장면은 오히려 기존의 질서를 재편하고 문제를 제기하며 관객을 불편하게 하려는 데 목표를 두었다고 볼 수 있다. 위에서 말했듯이, 시는 대상을 응시하는 데서 시작한다. 관객으로 하여금 희진을 대면하게 한 자체는 미자가 희진을 ‘보려고’ 한 사건의 확장적 결말이라고 할 수 있다. 아울러 이 장면은 일종의 ‘놀람의 결말’로 기능하는 데, 희진의 웃음이 생경하게 느껴지는 것은 이 때문이다.

    그런데 이 영화는 ‘미자의 희진 되기’를 그림과 동시에, 미자가 일상의 아름다움을 회복하고자 손자 종욱을 경찰에 넘겨주는 과정을 겹쳐 보여준다. 이 과정은 시의 사회적 역할을 강조하기 위한 서브-플롯에 해당하는데, 이 점에 대해서는 다음 장에서 상세히 살펴본다.

    18)미자는 합의금을 마련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김노인과 성관계를 맺는다. 하고 싶지 않으나 어쩔 수 없이 하게 된 성관계라는 점에서 미자의 경험과 희진의 경험은 일치되는 점이 있다.  19)언니가 ‘미자야, 이리와.’라며 자신을 불렀을 때 사랑받는 느낌이 들었다는 미자의 대사는 이런 맥락에서 매우 중요하다.  20)“김영진 명지대 영화뮤지컬학부 교수는 <시>에 대해 “예술을 한다는 것이 아름다움과 기쁨뿐만 아니라 고통까지 껴안을 수 있는가라는 문제에 대해 지극한 탐색을 하는 영화”라고 호평했다. 영화평론가 황진미씨는 “주인공으로 하여금 가족주의를 넘어서 도덕적 결단에 이르게 하는 과정을 보여줌으로써 미학과 윤리에 대한 감독의 신념을 확고히 드러낸다”고 평가했다. 이주연 아시아나국제단편영화제 프로그래머는 “흥행코드 관습에 사로잡힌 일련의 영화들 속에서 마음 속에 잔잔한 파문을 일으키는, 단연 돋보이는 수작”이라고 말했다.” (라제기 기자, 『인터넷 한국일보』, 입력시간 : 2010/12/13 21:01:34 수정시간 : 2010/12/13 22:08:57)  21)이 부분에 대해서는 다음 장에서 상세히 논의하기로 한다.  22)수전 손택, 이재원 역, 『타인의 고통』, 도서출판 이후, 2011, 23-25쪽.  23)이창동 감독의 다음과 같은 언급은 이런 맥락에서 해석의 지침의 제공한다. “마지막 장면은 미자가 희진을 대신해서 쓴 시라고 볼 수 있다. 이는 곧 세상의 아름다움을 힘들게 깨닫는 과정”이라며 “그 장면을 보고 누군가의 죽음을 떠올리는 것은 관객의 자유다. 특별히 특정인의 죽음을 한정짓는 것은 ‘시’의 의미를 한정지을 수도 있기에 바람직하지 않다”고 밝혔다 (서보현기자, 이창동 ‘시’는 마음으로 전하는 영화⋯메시지 통한 것 같다」, 『스포츠서울』, 입력: 2010.05.26 20:26 / 수정: 2010.05.26 20:26).

    3. 일상의 시 되기 : 일상과 문학의 경계 허물기

    이 영화가 문학 장르 중 하나인 ‘시’를 영화의 제목으로 삼았다는 점은 연구자들에게 특별한 주목을 받았고, 다양한 각도에서 연구되기도 하였다.24) 이 영화가 시를 소재로 한 다른 영화들과 구별되는 지점은 ‘시 양식’을 소재로 삼은 것이 아니라 ‘시 정신’을 그리려했다는 지점이다. 이 점은 이 영화의 스토리텔링이 가장 빛을 발하는 부분이면서, 일반적 관점에서는 매우 철학적이어서 낯설거나 동떨어진 느낌을 줄 수 있는 부분이다. 여기서는 이 영화가 정의한 시는 무엇인지 살피기로 하겠는데, 이 문제는 주제적, 이념적 국면에 관련된 것으로이 영화가 대중적이지 않은 또다른 맥락에 대한 설명을 제공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영화는 먼저 시를 ‘보는 것’이라고 정의한다. 김용탁 시인은 문화센터에 시를 배우러 온 학생들에게 다른 선생님들은 절대 이런 걸 준비해 오지 않는다며 ‘사과’ 하나를 꺼내 보인다.25) 그리고 사과를 진정으로 본 적이 있느냐고 묻는다. 사과는 인류사에서 중요한 상징이 되어오기도 했지만, 이 영화에서도 중요한 상징 중 하나로 쓰인다. 그것은 잡히는 것 같으면서도 잡히지 않는 대상, 곧 시이기도 하고 본질이기도 한, 본다고 했으면서 정작 보지 못한 대상 혹은 현실을 의미한다.

    영화 초두에 미자는 병원을 찾는데, 병원 로비의 대형 TV 화면에 외국의 분쟁지역 전쟁 관련 화면이 비춰진다. 그곳에서 아들을 잃었다며 우는 외국인 여성에게 공감하는 시청자는 단 한 사람도 없다. 다들 핸드폰을 받거나 잡답을 나누며 무심히 차례를 기다릴 뿐이다. 김용탁 시인은 학생들에게 사과를 몇 번이나 봤느냐고 묻는데, 백 번, 천 번 보았다 하더라도 ‘정말로 알고 싶어서 관심을 갖고, 이해하고 싶어서, 대화하고 싶어서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면, 진짜로 본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진짜로 보아야 느껴지는 것이 있고, 그것이 시가 된다는 것이다. 이 장면은 타인의 고통을 진정으로 보고 느끼고자 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음을 장면화하여 보여준다. 앞에서 인용한 수전 손택의 말을 인용하지 않더라도, 타인의 고통에 무뎌지고 무감각해진 현대인의 무관심이 압축적으로 보여 졌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미자는 병원 마당에서 미친 사람처럼 울고 있는 희진의 엄마에게 주목한다. 그녀의 표정은 절대 무관심하지 않다. 사연이 알고 싶어서 옆 사람들에게 이유를 묻기도 한다. 이 영화에서 미자는 어떻게 하면 시를 쓸 수 있느냐고 세 차례나 물음을 던진다. 김용탁 시인의 말처럼 ‘더 이상 시를 읽지도 않고 쓰지도 않는 시대’에 미자와 같이 진정으로 시를 찾는 사람들은 많지 않다. 이 영화에서 시를 완성한 사람도 미자 뿐이다. 문화센터 수강생 중 미자 외에 아무도 시를 써온 사람이 없다는 사실은 매우 의미심장하다. “시를 쓴 사람은 양미자씨밖에 없네요. 시를 쓰는 게 어려운 것이 아니라 시를 쓴다는 마음을 갖는 것이 어려운 거예요.”라고 한 김용탁 시인의 말은 시를 쓰는 자체가 어려운 것이 아니라 시를 쓴다는 마음을 갖는 것이 어려운, 곧 ‘타인의 고통에 무감각해진’ 현실을 환기시킨다.

    미자도 처음에는 시 쓰는 것을 그녀가 몸에 걸치는 화려한 의복이나 모자에 해당하는 액세서리쯤으로 생각한다. 미자가 가본 시낭송회의 풍경은 시를 쓴다고 하면서 실상은 말놀음을 하고 있는 현대 문학의 풍조를 비판적으로 압축해 보여준다. 그곳에 진정한 시를 쓰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현실과는 아무런 관계도 없고 오직 말놀음뿐인 시를 쓰는 것은, 이 영화에 까메오로 출연한 황병승 시인의 말에 따른 다면, ‘시는 이미 죽었고, 죽어도 싼’ 시를 쓰고 있는 일일 수 있다. 내 주변을 진심으로 응시하고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며 일상의 아름다움을 회복하게 하는 것이 시라고 할 때, 이 영화에서 진정한 시를 완성한 사람은 처음 시를 써본 미자 한 사람뿐이다.

    시 정신은 작자의 세계관이나 문학관에 따라 여러 맥락에서 정의되어 왔으며 정의될 수 있다. 시는 시대에 따라 ‘현실과 인생의 모방’으로도, ‘감정의 유로(流路)’로도, ‘언어로 이룩한 형식의 예술’로도 정의되었다. 이 영화가 정의한 시는 ‘타인의 고통에 동참할 뿐 아니라 현실의 아름다움을 회복하는 것’, 곧 ‘현실을 바로잡는 것’이다. 이러한시 정신을 가장 구체적으로 형상화한 사건이 미자가 종욱을 경찰에 넘겨준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시를 쓴다는 것은 일상의 아름다움을 회복하는 것, 나아가 아름다움을 회복하려는 시도, 곧 실천이어야 한다. 이런 점에서 이 영화가 말하고자 한 시 정신은 리얼리즘에 가깝다. 1970, 80년대를 풍미했던 이른바 ‘순수-참여 논쟁’을 떠올리게 할 뿐 아니라, 19세기 서구 근대의 ‘시적 정의(poetic justice)’,26) 우리의 전통적 문학관인 효용론적 문학관을 생각하게 하는 부분이다. 세상을 변화시키려는 마음, 변혁과 변화의 문학관은 점차로 문학의 중심에서 주변으로 밀려나고 있다. 사회적 역할을 하기에 시는 너무 타락했다. 이러한 시대에 미자가 완성한 시는 일종의 ‘진혼곡’처럼도 들린다. 미자가 완성한 시 전문을 인용해 본다.

    처음 밑줄 친 ‘서러운 내 발목에 입 맞추는 풀잎 하나’ 부분부터 미자의 목소리는 희진의 목소리로 바뀐다. 미자의 목소리가 희진의 목소리로 대치되는 부분은 이 영화에서 강렬한 서스펜스를 안겨주는 부분이다. 서스펜스는 독자가 모르는 것을 인물이 알 때도 발생한다.27) 미자의 목소리가 희진의 목소리가 되었음은 ‘미자의 희진 되기’가 이루어졌음을 독자에게 간접적으로 알려준다.

    두 번째 밑줄 친 ‘검은 강물을 건너기 전에 내 영혼의 마지막 숨을 다해’ 부분에서 비로소 목소리만 들을 수 있었던 희진이 화면에 등장 한다. 희진의 애매한 웃음은 영화상에서 흐릿하게 제시되어 있는 미자의 마지막 선택을 암시하는 역할을 한다. 이 점은 ‘아네스의 노래’가 진혼곡처럼 들리는 점과도 무관치 않다.

    항상 아름답기를 소망했던 낭만적 여인인 미자는 영화 중반에 알츠하이머라는 진단을 받는다. 처음에는 명사를, 다음으로 동사를 잊어버리게 되는 병이라는 것이다. 미자가 죽음을 선택했다고 한다면, 그 선택의 맥락에는 ‘희진과의 완벽한 합일’ 그리고 ‘기억의 영원화’라는 명제와 ‘아름다움을 지속하고자 한 낭만적인 여인의 욕망’이 내재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알츠하이머를 앓는 미자에게 현재를 아름답게 기억하고 그 기억을 영원화할 수 있는 선택은 죽음밖에 없을 수 있기 때문이다.

    아울러 지금은 짓밟히고 있는 시가 언젠가는 다시 본 모습을 되찾기를 바라는 기대와 소망도 함축하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 시를 완성한 여정이 ‘다음 생을 위해서’라는 암시가 있기 때문이다. 인용하는 대사는 이에 대한 해석의 지침을 제공한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시 마지막 구절에 등장하는 ‘어느 햇빛 맑은 아침 다시 깨어나 부신 눈으로 만나게 될 당신’은 진정한 시, 곧 사회적 책임을 감당할 수 있는 시라고 해석할 수 있다.

    요컨대, 문학이 사회적 역할을 제대로 담당하지 못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시는 이대로 좋은가’, ‘시는 어디에 있어야 하는가’, ‘시는 무엇이어야 하는가’란 물음을 던진 영화가 <시>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여기서 시는 문학장르의 한 갈래로서 시이기도 하지만 문학 자체이기도 하다. 이를 주제적 국면에서 ‘삶의 시 되기’28)로도, ‘가치론적 물음’29)으로도, ‘윤리의식’30)으로도 부를 수 있을 터이다.

    이상에서 논의한 바와 같이, 이 영화에는 일상을 시로 만들고자 하는 작자의 욕망이 반영되어 있다. 앞에서 살피었지만, 실천의 리얼리즘의 문학관은 현대에 이미 중심에서 주변으로 밀려나고 있다. 영화에 등장하는 시인의 말처럼 ‘더 이상 시를 읽지도 않고 쓰지도 않는 시대’에 이러한 관점을 스토리화한 자체는 대중적이지 않다. ‘영화를 통해 관객에게 답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질문을 하겠다’는 감독의 고집스러운 소신이 발현된 결과라고 할 수 있겠는데,31) 현대에 기피 대상이 되어버린 효용론적인 문학관을 읽을 수 있는 부분이다.

    24)이 영화를 중심으로 한 글쓰기, 교양교육 관련 연구도 이루어진 바 있다. 관련 서지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김중철, 「영화를 통해 본 ‘쓰기’의 의미 : 영화 <시>를 중심으로」, 釜山大學校 韓國民族文化硏究所, 『한국민족문화』 제38호, 2010, 391-408쪽. 원신애, 「포스트모던 시대의 「대중인문 교양교육」과 기독교 평생교육의 가능성 : 영화 <시>의 인문학적 성찰을 중심으로」, 한국기독교교육학회, 『기독교교육논총』 제33호, 2013, 241-266쪽. 최병학, 「이창동 영화를 중심으로 본 대학 기초교양교육의 방향」, 한국교양교육학회, 『교양교육연구』 제2권 제1호, 2008. 209-221쪽.  25)이창동 감독이 김용택 시인을 캐스팅하는데 공을 들였다는 점은 이미 알려진 사실이다. 김용택은 ‘섬진강 시인’으로 널리 알려진 시인으로서, 시와 삶의 일치를 실천해 보여주고 있는 작가라는 점에서 이 작품의 주제적 맥락과 합치되는 점이 있다.  26)합리주의가 지배하던 17세기 중엽에 생겨난 관념으로서 이야기 문학에서 착한 자에게는 좋은 보답이 돌아가고 악한 자에게는 벌이 돌아가도록 꾸며야 한다는 것이다. (중략) 권선징악을 목적으로 하는 동양의 작품은 서양의 합리주의 시대의 시적 정의관에 부합하는 작품일 것이다. 동양의 사필귀정(事必歸正)이란 문구도 실제 역사에 대한 묘사가 아니라 편협한 합리주의의 희망적 기원이다. 그러나 『삼국지연의』를 보면 정의의 편인 유비 삼형제와 제갈량이 정의를 실현하지 못하고 패배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독자는 유비 일파의 정의관에 동조하도록 되어 있다. 우리의 『임진록』이 소박한 정의감 때문에 역사를 환상적으로 왜곡하고 있는 것과는 크게 대조적이다. 상식적인 차원에서의 권선징악, 시적 정의는 대중 통속 문학에 어울린다 (이상섭. 『문학비평용어사전』. 민음사, 2001, 199-200쪽 참고).  27)미케 발은 서스펜스를 ①독자도 모르고 인물도 모를 때, ②독자는 알지만 인물은 모를 때, ③독자가 모르는 것을 인물이 알 때의 세 유형으로 구분한 바 있다 (미케 발, 한용 환‧강덕화 역, 『서사란 무엇인가』, 문예출판사, 1999, 209쪽).  28)심보선, 「“삶의 시 되기”와 “시의 삶 되기” -영화 <시>와 <하하하>를 통해 본 미학의 정치」, 국제한국문학문화학회, 『사이(SAI)』 제9호, 2010, 221-257쪽.  29)황혜진, 「시에 대한 가치론적 물음과 응답의 영화, <시>」, 국어교육학회, 『國語敎育學 硏究』 제40호, 2011, 621-649쪽.  30)이명희, 「시 창작 원리로서의 윤리의식 : 영화 <시>를 중심으로」, 건국대학교 통일인문학연구단, 『통일인문학논총』 제50호, 2010, 203-231쪽.  31)이창동은 2013년 10월 맥스무비와의 인터뷰에서 이와 같은 말을 한다. 그의 말을 직접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영화는 답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질문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는 영화로 질문을 하고 싶다. 영화가 끝나고 극장을 나서는 관객들이 그 답을 자연스럽게 찾아나가게 되는 그런 영화를 꿈꾼다.”

    4. 맺음말 : 경계를 허문 지점에 형성된 내재율

    본문에서 살피었듯이, 이 영화는 대중을 정면으로 바라보면서도, 대중적이지 않은 방식으로 말을 건다. 이 영화에 출연하기도 한 김용택 시인은 ‘시를 제목으로 삼은 영화가 흥행을 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의미심장한 말을 하기도 했다. 시를 잘 읽지도 않고 시를 쓰지도 않는 시대에 사람들이 시에 관심을 가지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피터 위어 감독의 <죽은 시인의 사회>는 시를 제목에 올려놓고도 엄청난 흥행을 이룩했다. <시>는 그렇지 못했다. 피터 위어 감독의 영화와 달리, 이 영화가 시를 소재로 채용한 영화가 아니라 시의 본질에 대해 말하려한 영화이기 때문이다.

    이 영화에는 음악다운 음악은 단 한 곡도 흐르지 않는다. 이 영화에는 영화 외부에서 주어지는 음악이 아니라 카메라에 담긴 공간 안에 여과 없이 들어온 소음과 잡음들이 가득하다. 매미소리, 차 소리, 사람들이 떠드는 소리가 이 영화가 추구하는 음악이라면 음악이다. 미자의 시 ‘아네스의 노래’를 낭송할 때에도 음악은 들려지지 않는다. 미자와 희진의 숨소리와 휴지(休止)가 형성하는 내재율이 있을 뿐이다. 적절한 음악의 삽입은 관객의 몰입도 상승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런데 이 영화의 소음과 잡음들은 관객의 몰입을 오히려 방해한다.

    공간도 다르지 않다. 일상과 지나치게 닮아 있는 공간도 몰입을 방해한다. 이 영화에서 연출된 공간은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배우의 캐스팅도 마찬가지이다. 몇 낯익은 배우를 제외하고는 일상인과 거의 다를 바 없는 사람들이 가득하다. 다듬어지지 않은 연기와 다듬어지지 않은 미장센은 장면을 낯설게 하고 영화 속으로의 몰입을 지속적으로 방해한다.

    영화는 보통 ‘몰입’을 추구한다. 여러 가지 방식으로 관객을 영화 속으로 끌어들여 현실을 잠시 내려놓게 만든다. 현실과 비슷하지만 현실은 아닌 그 세계 속에서 관객은 행복하게 두어 시간 유영(遊泳)하다가 영화가 끝나면 접어두었던 현실을 다시 펴들고 극장을 떠나간다. 관객을 몰입하게 만드는 힘, 그것이 영화의 오락성이라면 오락성이고 대중성이라면 대중성이다. 그리고 그 힘이 강한 영화들이 많은 관객을 만난다.

    그런데 <시>는 관객이 영화 속에 몰입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을 건너다보고 구경하게 만든다. 사실 일상에서 소음과 잡음들, 색채를 입히지 않은 일상적 공간, 보통 사람들은 전혀 어색하지 않다. 그러나 영화 속에서 이러한 요소들은 낯설게 느껴진다. 그 낯섦은 삶의 내재율을 보여주기 위한 장치로 채용된 것들이다. 아주 일상적인 것을 택함으로서 오히려 일상을 낯설게 만들고, 일상에 다가감으로써 오히려 ‘작품의 형을 좇는 것’을 깨뜨린 영화가 <시>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위와 같은 맥락에서 볼 때, 이창동의 <시>는 스토리텔링의 국면에서도, 작품의 이념적 국면에서도, 미장센과 음악적 국면에서도 대중적이지 않다. 이 글에서는 ‘대중성은 스토리텔링, 곧 서사물의 형식적 내용 요소인 스토리와 스토리가 진술되면서 생산되는 이념 혹은 주제와 긴밀한 관계에 있다’는 점을 작품 <시>를 대상으로 증명해 보고자 하였다. 아울러 ‘이창동의 스토리텔링이 대중적이지 않다’는 점도 증명해 보고자 하였다. 대중성이 ‘강의와 서술에서 사용되는 수법(Manier)의 특징을 나타내며, 나아가 흥미 있는 것과 일상적인 것으로부터 출발한다는 인식방법의 존재방식’을 뜻한다면, <시>는 일상적인 것으로부터 출발은 했으나 일상을 낯설게 만듦으로서 기존의 인식에 문제를 제기한 작품이라고 보는 것이 적절할 것이다. 대중성이 ‘관객이 행복하게 기존의 질서에 합일하게 하여 관객을 행복하게 하는 것’ 이라고 할 때, 이 영화의 스토리텔링은 오히려 기존의 질서를 재편하고 문제를 제기하며 관객을 불편하게 하려는 의도를 지니고 있다고 해석될 수 있다. 영화를 통해 관객에게 답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질문을 하겠다는 감독의 고집스러운 소신이 발현된 결과라고 보았다.

    이창동의 궤적은 <초록물고기>(1997) 이후, <박하사탕>(1999), <오아시스>(2002), <밀양>(2007)을 거쳐 <시>(2010)에 이르기까지 일관된 흐름을 보여준다. 흥행에 성공하지는 못하였어도 지속적으로 다시 보기나 읽기가 진행되고 있는 점은, 모든 ‘영화가 대중적이어야 하는가’하는 문제를 환기시킨다. 영화가 산업화, 상업화되어가고 있는 현실에서, 이창동은 감독이라기보다는 소위 ‘작가’에 해당하는 사람일 것이다. 대중성과 상업성 사이에서 급박하고 미묘한 줄타기를 해야 하는 영화판에서 행복한 감독의 한 사람일 수 있는 것이다. 대중성에 대한 연구가 축적된다면, 시나리오 창작, 기획 등의 분야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며, 논의를 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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