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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A 학술지
시를 이용한 질적 연구 경험으로의 초대* Using poetry to invite a qualitative study experience
  • 비영리 CC BY-NC
ABSTRACT
시를 이용한 질적 연구 경험으로의 초대*

Qualitative research writing involves recognizing that the researcher’s subjectivity is located within a particular historical and social context, and carefully examining the developing relationships between the researcher and the research participants, the research context, and the data. Though interest in qualitative research is on the rise, few studies have explored experimental creative forms of writing in early childhood education. To fill this gap, this paper adopted a postmodern perspective, using poetry as an experimental form of writing the qualitative research analysis. I revisited my experiences during the qualitative study, reflecting on my positionality as researcher and on my role in the interview relationship and then composed two poems using the interview transcripts. As a result, I found that representing qualitative research findings through writing poems highlights the situational, tentative nature of the knowledge construction embedded in the process of qualitative research writing. In sum, poetic representation is an inquiry aimed at exploring complex, multidimensional voices in text, offering a space for intertextuality that embodies active meaning construction and free interpretations.

KEYWORD
질적 연구 , 면담 , 글쓰기 , 시 표현
  • Ⅰ. 시작하며

    질적 연구에서 연구자와 연구 참여자 사이의 관계맺음은 연구의 본질과 효율성을 결정짓는 기능적 맥락이다. 연구자는 도출된 연구주제에 적합한 연구 참여자를 선정하고 면대면 만남을 통해 자료를 수집하며 연구 참여자의 목소리를 빌어 해석과 논의를 전개한다. 동시에 질적 연구의 과정은 타자와의 관계에서 대면되는 윤리의 맥락을 포함한다. 연구 참여자들의 연구동의를 얻는 초기 단계부터 면담과 관찰 등 면대면 접촉을 통한 연구의 실행 단계, 자료를 분석하고 제시하는 마무리 단계까지 질적 연구의 전 과정에서 연구자는 윤리에 대한 지속적인 성찰을 요구받는다(박순용, 2006; Lim, 2012). 이처럼 연구자의 주관성에 대한 진술로부터 연구 참여자들의 복지와 권리 수호를 위한 연구 윤리에 이르기까지 질적 연구는 연구자와 연구 참여자, 맥락과 자료가 엮어내는 생성의(becoming)의 관계에 대한 주의 깊은 탐색을 수반한다.

    연구자의 글쓰기는 이러한 관계의 맥락으로부터 중립적이거나 차단되어 있지 않다. 연구현장에서 수집된 자료를 분석하고 결과를 제시하는 글쓰기 과정은 연구자의 주관성과 가치관이 반영되는 의도된 행위이다. 최근 포스트모던 사조는 보편적, 객관적, 가치중립적인 실증주의 지식론에서 벗어나 연구 결과 및 의미 해석이 지닌 지엽적이고 부분적이며 맥락에 기초한 잠정적인 본질을 인정한다(주재홍, 김영천, 2012). 연구자는 다층적이고 혼재된 사건의 의미들을 재구성하고 특정한 시각과 목소리를 전경으로 내세우며, 연구 주제와 연구 참여자들의 상호 이해를 판단하여 글의 내용을 선별하여 제시한다. 이처럼 글쓰기로 산출되는 텍스트는 연구자의 자아와 타인들이 함께 창출해내는 하이픈(hyphen)의 맥락이며(Fine, 1994) 언어를 빌어 실재된 “말로 표현된(worded) 세계”라 할 수 있다(Richardson, 2000: 923). 따라서 질적 연구에서의 글쓰기는 주체와 대상으로서 연구자의 행위 경험을 검토하고 연구 참여자와 주고받은 관계의 영향력을 반추하여 분석하는 자기성찰(reflexivity)의 작업이 필연적으로 요구된다(Lincoln & Guba, 2000).

    이와 같은 포스트모던 ‘재현의 위기’는 질적 연구자들로 하여금 사실적이고 객관적인 글쓰기에서 벗어나 시 등의 문학적 표현 양식을 사용하여 경험과 상황에 대한 의미구성의 가능성을 독자들과 함께 열어가는 대안적 글쓰기를 시도하게 하였다(Brady, 2000; Cahnmann, 2003; Freeman, 2001; Glesne, 1997; Richardson, 2002; Smith, 1999; Owton, 2013; Sparkes, Nilges, Swan, & Dowling, 2003). 시 표현 양식을 적용한 대표적인 연구자인 Laurel Richardson(2000)은 글쓰기를 지식을 구성하는 하나의 탐구 방법으로 정의하였다. 우리가 경험하는 사태 및 현실로서 구성되는 의미세계는 언어라는 매개에 의해 인식되고 표현되기 때문에 자아와 대상은 서로 연결되어 있으며 부분적이고 지엽적인 의미 표출만이 가능하다. 즉, 언어로 재현되는 의미와 대상은 ‘저기 밖’ 실재하는 참다운 진리와 인식이 아닌 시간과 공간 속에서 끊임없이 미끄러지는 차연(differance)의 산물로 간주된다(주재홍, 김영천, 2012). 따라서 글쓰기는 특수한 사회적, 역사적 맥락에 위치하고 있는 자신의 주관성을 반성적으로 인식하고, 중립적이고 경직된 텍스트를 해체하여 다의적이고 중층적인 새로운 의미구성을 수반하는 탐구의 방법으로 해석될 수 있다.

    이러한 탐구의 글쓰기 방법인 시 표현은 상호주관성의 매개로서 언어의 본질을 드러내려는 행위이다. 포스트모던 관점에서 독창적인 글쓰기란 존재하지 않으며, 모든 텍스트들은 시대사를 아우르는 다양한 개념과 경험들이 집합되고, 활용되고, 해체되고, 새롭게 구성되어지는 서로 결합된 상호텍스트로서 형성된다(김영천, 2012). 상호텍스트로서 시는 “누군가에 의해 기록된 언어 가운데 가장 효과적이고 호소력 있는 소통”의 매체이며, (Commeyras & Kelly, 2002: 101), 생각이 지닌 자체의 개념들을 자극하여 새로운 생각을 이끌어낼 수 있는 대안적 표상이다(Cahnmann, 2003). 잘 쓰인 시는 연구 자료와 연구자, 독자를 연결하는 개방성을 지니며(Owton, 2013), 산문이 지닌 경직된 의미 구조를 해체하여 다중적인 목소리로 전달하는 주관적인 자유로움이 허용된다.

    유혜령(2011: 511)은 포스트모던 시대의 질적 연구 논리로서 “탈중심화 현상과 주변부 목소리 듣기, 의미의 입체적 장 및 중층적 맥락 중시, 갈등과 긴장, 역동적 흐름 강조, 공동참여와 행위적 실천 강조, 민주적이고 협동적인 관계성 강조, 형식의 해체와 자유로운 실험적 재구성”을 들면서 유아교육 분야 질적 연구에서의 실천적 변혁을 제안한 바 있다. 근래 질적 연구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다양한 연구 주제 및 연구방법론을 탐색하려는 유아교육 연구가 증가하고 있는 반면(권귀염, 2011; 이대균, 이선정, 임자영, 2013; 임민정, 김진희, 2013) 실험적이고 창의적인 글쓰기 형식으로 연구 결과 및 의미구성을 표현하려는 시도는 매우 미흡하다. 국내에서는 다문화교육에 대한 존재론적 접근의 형태로 시를 이용한 조용환의 연구(2011)와 문학적 표현양식을 활용한 질적 연구의 글쓰기에 관한 문헌 연구(김영천, 이희용, 2008) 등 교육학 분야의 소수 연구가 수행되었다.

    이와 같은 간극을 메우기 위해 이 글은 포스트모던 후기구조주의 관점에 기초하여 질적 연구에서 시의 표현 양식을 활용하는 실험적 글쓰기를 시도하고자 한다. 후기구조주의 관점에서 언어는 개인에게 특수한 사회적, 역사적 위치를 부여하여 주관성(subjectivity)을 구성하고(Richardson & St. Pierre, 2005), 특정한 지식을 생성하거나 배제하는 방식으로 사회집단의 권력관계와 연결된다. 다시 말해, 연구자가 구성하는 텍스트는 객관적 실재의 전달 수단으로서의 “세계를 비추는 거울이 아니라 세계에 대한 무한한 해석의 가능성”을 담고 있는 잠정적이며 맥락적인 공간인 것으로 간주된다(주재홍, 김영천, 2012: 35). 이 같은 글쓰기의 관계적 생성에 주목하며, 이 글은 질적 연구의 한 사례를 이용하여 연구자의 위치성과 면담 과정에서 체험된 관계 맥락을 성찰하고 수집되었던 연구 자료의 일부를 시로 변환하여 재구성하였다. 시의 표현 양식을 이용한 실험적 글쓰기는 질적 연구의 과정에서 지식구성의 잠정성과 특수성을 드러내고, 독자들의 능동적 의미구성과 열린 해석을 이끌어내는 상호텍스트의 공간으로 초대할 것으로 기대된다.

    여기서 사용된 연구 사례는 이전에 수행되었던 본인의 질적 연구 경험을 재방문한 것이다. 이 연구의 목적은 영유아 부모들의 교육격차에 대한 담론을 탐색하려는 것이었고, 반구조적인 개인면담 연구방법을 이용하여 자료 수집이 이루어졌다. 이 글에서는 지식구성의 상황적인 관계성을 명확히 밝히기 위해 계획, 절차, 실행의 전 연구 과정이 반성적으로 재검토되었고, 이러한 성찰을 바탕으로 시의 표현 양식을 사용한 실험적 글쓰기가 수행되었다.

    Ⅱ. 연구자의 위치 탐색

       1. 주관성과 연구문제 도출

    이 글에서 재방문된 질적 연구 경험은 내가 연구자로서 그리고 교육자로서 고민해왔던 교육불평등 문제에 관한 상황적 이해를 얻으려는 개인적 관심에서 시작된 것이다. 사회개혁에 관심이 높았던 386세대로서 십여 년 동안 달동네라 불리던 서울의 도시빈민지역에서 탁아소 봉사경험을 했던 나는 빈곤의 고리를 끊는 효과적인 방안은 교육을 통해서임을 체험을 통해 인지하게 되었다. 가난한 가정의 아동들이 성장하는 삶의 일면들을 지켜보면서 나는 교육이란 제도를 넘어선 하나의 거대 권력이라고 느꼈으며, 한국사회 계급 이동의 수단으로서 학력이 지닌 힘과 한계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을 지니게 되었다. 이러한 나의 이념적 성향은 박사과정을 통해 탐색된 비판 이론과 다문화교육 이론들에 의해 명료화된 개념틀을 형성하게 되었고, 교육 현상에 내재된 모순과 헤게모니를 드러내어 소외되고 억압받는 이들을 위한 공평한 교육을 실행하려는 열망을 지니게 하였다.

    그러나 이론적 지평의 확장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교육 현실에 대한 나의 실천적 지식은 칠여 년의 해외생활로 인해 제한되어 있었다. 나는 한국의 유아교육 현실을 질적 연구를 통해 세밀하게 탐색하고 싶었고, 특히 심화된 사회 양극화 현상이 유아기 교육 상황과 연관되어 어떻게 작동하고 있는지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유아 사교육 및 교육복지정책과 관련된 연구(서영희, 허우정, 김은주, 2007; 손수민, 2013; 육아정책연구소, 2012; 이미화, 이윤진, 이정림, 2008) 검토를 통해 유아의 가정환경 및 교육환경에서 계층 및 지역에 따른 차이가 발생하고 있음에 주목하게 되었고, 유아기 교육불평등 현상을 미시적으로 접근하여 부모들의 계층화된 담론을 살펴보려는 연구의 주제를 도출하게 되었다.

    담론은 객관적인 진리나 지식을 표현하는 수단이 아니라 옮고 그름, 정상과 비정상, 허용되는 것과 허용되지 않는 것을 구분하는 사회적 규칙의 체계이다. 모든 담론은 선택과 배제를 통해 권력을 행사하고, 권력은 담론을 구성하여 그 정당성을 확보한다(Foucault, 1980). 이에 유아기 교육불평등 실태와 연관되어 형성되는 부모들의 담론을 살펴보는 연구 주제는 사회계층이 지닌 권력에 의해 선택되거나 배제되는 계층화된 특징을 나타낼 것이라고 기대되었다. 또한 질적 연구는 일상의 현상 이면에 있는 의미, 가치판단, 행동 등에 관한 심층적인 정보를 제공할 수 있으므로(Denzin & Lincoln, 2005) 유아기 교육불평등 담론이 반영하고 있는 사회계층 맥락을 구체적으로 이해하려는 연구의 의도와 부합되는 방법론이라고 판단되었다.

    부모의 유아기 교육불평등에 대한 담론을 계층에 따라 탐색해보려는 연구 주제는 소외된 이를 위한 공평한 교육을 구현하고 싶은 나의 개인적 열망이 반영된 질문이었다. 연구자는 질적 연구에서 연구의 도구로서 연구 수행의 전 과정에 걸쳐 개입하므로(김영천, 2012) 연구 주제를 도출하는 과정에서 영향을 미친 나의 주관성에 대해 명확히 인식할 필요가 있었다. 동시에 연구 과정에서 비판적인 연구자의 성향으로 인해 왜곡되고 제한될 수 있는 요인들을 최소화하려는 노력이 요구되었다. 이를 위해 이념적 의미를 지닌 교육불평등 개념(김신일, 2009)을 탐색하는 대신 구체적인 실태를 지칭하는 교육격차 용어를 사용하여 나의 주관성을 절제하고 객관적 관점에서 연구 주제를 설정하려고 하였다. 교육격차는 교육의 접근기회, 내용 및 조건, 결과 등 교육의 전 과정에서의 차이를 포괄하는 개념이며(이혜영, 류방란, 김경애, 김경희, 김민희, 2011), 정당한 이유 없이 발생하는 교육격차는 교육불평등으로 간주된다(김인희, 2010). 이와 같은 과정을 거쳐 최종적으로 부모 면담을 통해 유아교육기관 및 사교육 이용 실태에서 나타난 계층별 차이와 교육격차 현상에 대한 인식을 알아보려는 연구문제를 생성하게 되었다.

       2. 연구 참여자의 선정

    연구 주제를 설정하고 문헌 검토를 통해 세부적인 연구문제 및 연구실행 계획을 수립하는 단계에서 가장 고민스럽고 어렵게 느껴졌던 부분은 면담을 위한 연구 참여자를 선정하는 작업이었다. 연구 목적에 따라 전형적 사례표집(deMarrais, 2004)을 통해 유아기 자녀를 가진 부모들을 사회계층별로 선정하려고 의도하였는데, 학력, 소득, 직업 요인으로 구분되는 사회계층의 상중하 유형에 속하는 연구 참여자들을 찾기가 쉽지 않았다. 또한 기존의 계층 연구들이 설문조사 방법을 주로 사용하였던 것과 달리 나의 연구는 면담을 이용한 질적 연구로 수행될 계획이었고, 알고 있는 사람들을 통해 연구 참여자를 “쉽게 찾는 것의 위험성”(Seidman, 2009: 94)을 피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이러한 어려움에 대처하기 위해 중위 계층을 제외한 상위 및 하위 계층을 초점을 두고 연구 대상의 범위를 제한하는 형태로 연구 설계를 변경하게 되었다. 참여자 선정과정을 돌아보면 우선 면담에 요구되는 시간과 노력을 감안하여 연구 참여자들의 거주지역을 한정한 후 지인들에게 면담에 참여할 수 있는 부모들을 소개해달라고 부탁했다. 또한 친분이 있었던 저소득층 지역의 민간 아동지역센터 운영자에게 도움을 청해 센터에 다니는 아동들의 학부모들에게 면담 참여를 홍보해달라고 요청하였다. 소개를 부탁하면서 면담 참여자들에게는 소정의 상품권이 지급되며, 면담 일정과 장소는 참여자들의 편의를 고려하여 결정되어질 것이라고 설명하였다. 이 후 지인들로부터 연구 참여에 흥미를 보인 잠정적인 연구 참여자들의 이름과 연락처를 제공받았고, 직접 전화를 걸어 연구자 소개 및 연구 개요를 설명하고 연구 참여에 대한 동의를 구하였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서울시에 거주하는 영유아기 자녀를 가진 7명의 어머니들이 연구 참여자로 선정되어졌다. 이들은 사회계층에 따라 상위 계층의 어머니 3명과 하위 계층의 어머니 4명으로 구분되었으며, 안면이 있었던 상위 계층 어머니 한명을 제외하고 모든 참여자들이 연구를 위해 처음 만난 사람들이었다. 나와 연구 참여자들 사이의 낯설음은 면담 과정에서의 래포 형성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으며, 이에 대한 반성적 성찰은 관계로서의 면담을 살펴본 세 번째 장에서 이루어졌다.

       3. 연구 실행

    연구를 위한 자료 수집은 2013년 1월에 걸쳐 연구 참여자들과의 개인 면담을 통해 수행되었다. 면담은 “사회적 현안을 반영하는 개인들의 삶의 경험을 이해함으로써 교육학과 다른 중요한 사회적 현안에 대한 통찰력을 제공하는” 효과적인 연구 방법으로 간주된다(Seidman, 2009: 41). 나는 유아기 교육격차 문제에 대한 연구 참여자들의 경험과 인식을 공유하기 위해 반구조적인 면담 질문을 기초로 하여 “초점을 맞춘 장시간의 대화”(DeMarrais, 2004: 52) 형식의 심층면담을 계획하였다. 이를 위해 연구 참여자들의 일반적인 배경을 묻는 간략한 질문지를 제작하였고, 영유아기 자녀의 유아교육기관 및 사교육 이용 현황, 교육관, 교육격차 현상에 대한 인식을 묻는 대략적인 면담 질문을 구성하였다. 또한 연구의 목적과 절차, 연구결과의 용도, 참여 철회의 자유 등을 기술한 연구참여동의서를 준비하여 연구 실행과정에서 연구 참여자의 권리를 보장하고 연구자와 연구 참여자 사이의 힘의 균형을 수립하려는 의식적인 노력을 기울였다.

    연구 참여자들과의 개인 면담은 1-1.5시간에 걸쳐 일회씩 이루어졌으며, 참여자들의 편의에 따라 가정이나 직장, 학교의 장소에서 진행되었다. 면담 내용은 참여자들의 동의를 얻어 녹음되었고, 비밀보장을 위해 내가 직접 녹음파일을 전사하여 문서로 작성하였다. 또한 모든 면담 로그 및 반성적 연구 일지, 면담 전사본에서 연구 참여자들의 실명이 제시되지 않도록 참여자별로 일련의 문자기호를 부여하였다. 나는 연구 참여자들과의 래포 형성을 위해 영유아기 자녀들에 대한 질문을 던져 대화를 시작했고, 면담 과정에 어린 자녀들이 동석한 경우에는 긍정적인 상호작용을 시도하며 자연스러운 분위기를 조성하려고 하였다.

    그러나 면담의 실행 과정은 친구 사이의 대화와 같은 상호 간의 친밀한 언어 교환을 의미하지 않는다. 면담은 구조를 지니고 있으며 면담자에 의해 일방적으로 결정되는 의도를 지닌 행위이다(Kvale, 2007). 처음 연구 설계를 수립할 때 나는 2-3회에 걸친 심층면담을 통해 사회계층별로 구분되는 연구 참여자들의 계층의식을 탐색하려고 하였다. 그러나 면담 일정을 조율하는 동안 나는 영유아기 자녀를 가진 연구 참여자들의 바쁜 일상에서 면담을 위한 여유 시간을 내는 것이 쉽지 않음을 깨닫게 되었다. 대부분의 연구 참여자들은 전화 통화에서 낯선 연구자에 대한 어색함을 드러내었고, 내 마음 속에는 개인의 연구 목적을 위해 연구 참여자들을 이용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윤리적 불편함이 자리 잡고 있었다. 이러한 이유들로 연구 참여자별로 2-3회에 걸친 심층면담을 수행하는 대신 일회에 걸친 면담이 이루어지게 되었다.

    Seidman(2009: 170-171)은 성공적인 면담을 위한 기법으로 연구자들의 듣기를 강조했는데, 이는 연구 참여자가 ‘말하고 있는 것’을 듣는 것과 연구 참여자의 ‘내면의 목소리’를 듣기, 면담의 진행과정에 주의를 기울여 듣기의 세 가지 수준에서 듣는 것을 포함한다고 하였다. 면담 과정에서 나는 이러한 세 가지 수준의 듣기와 더불어 상호-듣기, 다시 말해 연구 참여자들이 보여주는 머뭇거림과 흥분, 무안함 등의 미묘한 감정의 파장에 이끌리며 파생되는 연구자의 내면의 소리를 듣는 것이 필요함을 느꼈다. 상호-듣기는 관계로서의 면담의 본질에 관한 성찰을 수반하며, 질적 연구를 수행하면서 발생되는 다양한 윤리 문제들과 직면함을 의미한다. 다음 장에서는 연구의 면담 실행에서 드러난 나와 연구 참여자들 사이의 관계적 경험을 윤리와 긴장의 측면에서 성찰하였다.

    Ⅲ. 관계로서의 면담

       1. 도구적 관계로서의 윤리

    면대면 만남을 전제로 하는 질적 연구는 본질상 윤리적인 문제를 수반한다. 더욱이 개인의 사생활을 탐구하고 면담 참여자들의 이야기를 공적인 영역으로 드러내어야 하는 면담 연구에는 복잡한 윤리적 문제들이 발생하게 된다. 여러 학문 분야의 연구학회들은 연구 참여자들의 자발적 동의, 신상 및 기밀 보장, 기만하지 않는 정직성, 자료의 정확성을 공통된 윤리규정으로 제시하고 있다(Christians, 2000: 138-140). 이러한 윤리규정과 더불어 영미 대학 및 연구소의 윤리심의위원회에서는 연구계획의 승인 이전 연구 참여자들에게 발생될 수 있는 위험요소에 관한 대처 방안과 보상 및 연구혜택에 관한 상호 호혜성 검토가 추가로 요구되어진다.

    수차례의 질적 연구 경험을 통해 이와 같은 연구윤리에 대해 충분히 훈련받았다고 여겼던 나는 면담 연구과정에서 연구 참여자들의 삶의 경험을 연구 목적을 위한 도구로 인식한 윤리 상황을 경험하였다. 내 연구의 목적은 유아기 교육격차에 대한 부모들의 담론을 미시적으로 탐색하여 교육불평등 개선을 위한 정책적 시사점을 도출해내려는 것이었다. 연구결과로 인해 얻어지는 이득의 총합이 전체 위험을 능가해야한다는 공리주의 윤리 관점에서(Kvale, 2007) 교육개선에 도움을 주려는 목적의 내 연구는 표면상 연구윤리를 충족한 듯 여겨졌다. 내 연구는 연구 참여자들에게 가시적 피해를 주지 않았고, 논란의 소지가 있겠으나 면담 참여에 대한 보상도 상호 호혜성 측면에서 제공되었다. 그러나 계층화된 담론을 탐색하려는 연구 목적은 연구 참여자들의 지엽적이고 특수한 삶의 맥락을 사회계층별로 구분되어진 탈맥락화된 지식으로 환원시키는 결과를 낳았고, 나와 연구 참여자들 사이에 대상화된 도구로서의 관계 맺음을 형성하였다.

    면담의 초기 단계에서 대부분의 연구 참여자들은 교육격차 문제를 삶의 맥락에 관계된 개인적 차원이 아닌 일종의 사회문제로서 받아들이고 있었다. 이에 반해 연구자인 나는 연구 주제에 대해 개인적 관심이 높았고 미시적 수준에서 연구 참여자들의 의미 있는 답변을 이끌어내려는 열정적인 자세를 지니고 있었다. 이러한 나의 요구에 연구 참여자들은 사교육비용 부담에 대한 경험과 고민을 담담한 어조로 설명하거나 교육 및 복지정책에 대한 날선 비판을 제기하고 혹은 모르겠다고 침묵하는 등 살아있는 인간존재로서 다양한 방식으로 응답하였다.

    그러나 나와 연구 참여자들 사이의 상호 주관적 ‘I-Thou’ 관계는(Schutz, 1967: Seidman, 2009, 재인용) 계층화된 담론을 탐색하려는 연구 목적에 의해 점차 ‘나-그것’의 관계로 변질되어졌다. 통계처리를 위해 기호를 부여하듯 내 의식 안에서 연구 참여자들은 상위 및 하위계층의 기호가 새겨진 범주 안으로 분류되어졌고, 나는 연구 참여자들을 감정과 느낌을 지닌 인격적 존재로서가 아닌 연구 자료를 위한 도구화된 대상으로 바라보았다. 예를 들어 한의사 남편을 둔 두 아이의 어머니인 A는 저소득층 가정이 많이 다니고 있는 인근 공립 초등학교에 아들을 보내면서 딸은 멀리 위치한 사립 초등학교로 버스 통학시키고 있었다. 계층이 혼재된 지역 특성을 우려한 남편이 딸은 곱게 키우고 싶다면서 사립 초등학교 진학을 권유했다는 그녀의 이야기는 교육의 계층 및 지역 차이를 반영하는 상위계층 부모의 담론을 나타내는 전형적 사례로 보였다. 면담이 진행되면서 A는 출산과 양육을 위해 직장을 그만둔 경험을 들려주며 딸에게 커리어우먼으로서 자신이 본보기가 되지 못함에 대한 우려를 나타냈다. 아래 인용된 A의 내러티브는 계층과 젠더, 전통과 현대의 이데올로기가 혼재된 복합적 행위로 해석될 수 있겠으나 연구 목적에 초점을 두었던 나는 A의 선택을 계층의 틀 안에서 단순한 의미로만 받아들였다.

    이러한 나의 도구적 면담 관계는 연구 참여자 개인의 삶을 몰가치적인 타자의 대상으로 삼은 윤리의 문제를 지닌다. 동시에 사회계층에 대한 단선적이고 보편화된 지식을 제공하는 연구결과를 산출해냄으로 인해 인간 상황에 관한 복합적 이해를 제한하는 윤리적 책임을 수반한다(Kvale, 2007). Seidman(2009: 231)은 연구자와 연구 참여자 사이의 관계에서 공정성을 강조하면서 이는 “수단과 목적 간의 균형이고 연구자가 찾고자 하는 것과 연구자가 얻은 것 간의 균형이며, 과정과 결과 사이의 균형이면서, 동시에 연구자와 연구 참여자 간의 관계에 존재하는 공평함과 정의”를 뜻한다고 설명하였다. 연구 목적의 수단으로서 연구 참여자들을 도구화한 나의 태도는 주체적인 인간 존재를 타자화된 대상으로 억압시킨 제국주의적 연구자의 역할에 다름 아니며, 연구윤리에 대한 공정성을 성찰하도록 이끈 관계 경험이었다.

       2. 권력 관계로서의 긴장

    면담 과정에서 연구자와 연구 참여자는 대등하지 않다. 면담을 계획하고 답변을 요구하는 질문을 던지며 시작과 끝을 주도하는 것은 주로 연구자의 역할이다. 담론이 지식의 규제를 통해 권력을 생성하는 것처럼 연구자는 연구 단계를 기획하고, 실행하고, 종결하는 선택과 결정의 방식으로 연구 참여자들에게 권력을 행사하곤 한다. 연구자와 연구 참여자 사이의 권력 관계는 면담이라는 사회적 관계 속에서 직접적으로 표출된다. 인종, 성, 사회계층, 종교, 연령, 이념 등 연구자와 연구 참여자의 사회적 정체성을 규정하는 다양한 요인들은 면담 과정에서 경험되는 권력 관계에 민감한 영향을 미친다(Seidman, 2009). 그러나 이러한 영향력은 양방향에서 이루어지며 연구자와 연구 참여자는 서로에 의해 상대적인 영향을 받게 된다. Fontana와 Frey(2000: 663)는 다양한 종류의 면담 유형을 분석하면서 관계 지향적인 연구들을 “협상되어진 성취(negotiated accomplishment)”라 지칭하였다.

    이러한 맥락에서 나와 연구 참여자들의 권력 관계를 반추해보면 사회 정체성 요인 가운데 사회계층의 영향력이 가장 두드러졌던 것으로 여겨진다. 사회계층은 일상의 상호작용과 생존 속에서 우리 몸에 각인되어지는 성향을 구조화하는 일련의 아비투스(habitus) 환경을 부여한다. 아비투스는 프랑스의 사회학자 Bourdieu가 제시한 개념으로써 계층, 교육, 가족 등의 사회화 경험에 의해 내면화된 개인의 성향체계를 의미한다. 성향은 행위의 구조화된 반응 양식이며 그 자체로 몸 자체의 특성을 구조화하는 강제성의 힘을 지닌다(서덕희, 2011). 내 연구의 핵심 변수로서 사회계층은 면담 과정에서 연구자인 나와 연구 참여자들의 몸에 계층 구조에 따라 길들여진 성향을 부여했다. 중산층의 박사학위를 지닌 나의 몸은 대졸이상의 학력을 가진 상위계층 연구 참여자들과 유사한 성향을 드러냈으며, 이들과의 상호작용에서 공감의 정도를 높여주는 긍정적인 영향력을 행사했다. 상위계층 연구 참여자들은 무상보육 등 교육제도 및 정책 동향에 대한 상식을 지니고 있었고 자녀교육에 대한 전문적인 신념을 연구자와 공유하는데 어색함을 나타내지 않았다. 연구 참여자들은 대학교수의 직위를 지닌 나의 존재에 위축되거나 불편함을 느끼지 않은 듯 보였고, 흥미 있는 질문의 경우 대화를 주도해나가는 등 비교적 대등한 위치에서 자발적으로 면담에 참여하는 편이었다. 아래의 사례는 상위계층의 B어머니가 연구자인 나의 질문에 답하여 유아사교육에 반대하는 자신의 입장을 설명한 것이다.

    이에 비해 하위계층 연구 참여자들의 관계에서 나의 몸의 성향은 개인에 따라 긴장을 발생시키거나 냉소적인 태도를 불러일으키기도 하였다. 예를 들어 한 참여자는 대부분의 질문에 간략하게 대답하거나 개인의 감정이나 어려움 등에 관해서는 불편함을 드러내며 좀처럼 이야기하지 않았다. 결혼 전 간호조무사였던 그녀는 병원에서 고졸학력으로 인한 차별을 경험했었다고 말했는데 구체적인 내용을 묻는 질문에는 “글쎄요 뭐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라며 말하지 않았다. 보험영업인이었던 또 다른 참여자는 자녀에게 노후보장을 기대하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하던 도중 내게 연금보험에 가입했냐면서 공격적인 어조로 보험 가입을 권유하기도 했다. 이러한 상황들은 면담 관계에서 연구자와 연구 참여자 사이의 차이에서 발생한 긴장감이 표출된 것으로 보였다. 연구자에 의해 주도되는 불균형한 면담 관계에서 연구 참여자들은 회피 혹은 저항의 몸짓을 통해 권력 관계의 균형을 높이려는 나름의 협상전략을 고안해낸 것으로 여겨졌다.

    연구자는 연구현장에 자아를 지니고 갈 뿐 아니라 현장에서 또 다른 자아를 창출해내기도 한다. 연구자로서의 자아와 개인적 성향의 자아, 현장에서 생성된 관계적 자아는 연구현장에서 제각기 독특한 역할을 수행하며 다양한 목소리를 부여하게 된다(Lincoln & Guba, 2000). 과거 젊은 유치원교사였던 나는 권력을 행사할 위치에 있지 않았고 연구현장에서 배려의 대상이 되곤 하였다. 그러나 연령, 학력, 직업 면에서 현재의 나는 연구 참여자들에게 힘을 행사할 수 있었고, 다양한 사회계층과 어울려 본 개인경험은 면담시간과 래포의 부족으로 인해 힘의 균형을 협상하는데 있어 활용되지 않았다. 면담 관계에서 발생하는 힘의 불균형을 완화시킬 수 있는 대안적 연구방법으로 Fine, Weis, Weseen과 Wong(2000)은 포커스집단 면담을 제안한 바 있다. 개인 면담에서 무기력한 좌절감을 토로했던 동일한 연구 참여자들이 관심 주제를 함께 토의하는 포커스집단 면담에 참여하면서 심리적 편안함을 느끼고 힘을 얻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본 연구에 포커스집단 면담 방법을 적용하기에는 어려움이 있었겠지만, 면담의 권력 관계를 성찰하면서 연구현장에서 만나게 되는 다양한 자아들 간의 힘의 균형을 협상할 수 있는 연구방법 및 전략의 필요성을 인식할 수 있었다.

    Ⅳ. 시를 이용한 의미의 소통

       1. 존재론적 소통을 위한 글쓰기

    연구자와 연구 참여자가 ‘나-너’의 관계로서 서로의 자아를 받아들이고 ‘우리’로서의 새로운 자아를 형성하는 소통의 경험은 존재로서의 “나를 넘어선, 즉 타자에로의 초월”(서덕희, 2012: 109)이라고 표현될 수 있다. 이러한 초월의 경험은 상대의 몸이 드러내는 존재로서의 요구를 수용하고 이에 따라 자신을 변화시킴으로써 나와 상대가 서로를 향해 넘어설 수 있는 변화의 과정을 의미한다(서덕희, 2011). 그러나 낯선 연구자와의 만남에서 연구 참여자가 자신의 감정과 내면의 이야기를 상대의 요구에 응답하며 들려준다는 것은 불안하고 민감한 상황일 것이다. 앞에서 기술되었듯이 일부 참여자들과의 면담 관계는 미묘한 힘겨루기가 이루어지는 긴장의 경험이었다. 소외된 사람들과 “함께” 연구를 하려는 열망을 지닌 나로서는 어떻게 내 몸에 길들여진 성향을 초월하여 ‘그들’과 소통하며 ‘우리’가 될 수 있을지 고민되지 않을 수 없었다.

    면담 과정을 반성적으로 성찰하며 기술된 윤리와 긴장의 경험들은 나와 연구 참여자가 생성한 관계의 맥락을 반영하고 “사이의(between)” 관계가 연구 과정에 미친 영향력을 암시한다. 이러한 관계의 연구 맥락이 연구자인 내게 “더 나은 자료를 가져다주는지, 자유롭게 말하는 것을 제한하는지, 마음을 넓혀주는지 입막음을 하는지, 친밀함에 몰두하고 공모하도록 유혹하는지, 재빠른 해석을 가져오는지 글쓰기를 주저하도록 하는지” 그 지식구성의 과정을 면밀히 들여다보아야 한다(Fine, 1994: 72).

    후기구조주의 관점에서 연구자의 글쓰기는 본질적으로 지식과 권력의 유착을 반영하는 정치적 텍스트와 다르지 않다(주재홍, 김영천, 2012). 연구자는 여러 연구 결과 가운데 자신의 탐구 목적에 부합되는 내용을 선별하고 특수한 의미를 형성하며, 배타적인 학술용어를 사용하여 구성된 지식에 권력을 부여한다. 텍스트 형성과정에서의 이러한 연구자 개입은 산문과 같은 전형적 글쓰기 작업 속에서 정교히 감추어질 수 있다. 산문 글쓰기는 정치적 텍스트를 추상적인 논의 형식으로 제시하는데 있어 더없이 효과적인 표현 양식이다(Richardson, 2002).

    이에 반해 시는 능동적 의미구성이 가능한 상호텍스트이면서 “존재에 접근하는 가장 본원적이고 초월적인 방법”인 표현 양식으로 제안될 수 있다(조용환, 2011: 17). 시를 이용한 글쓰기는 연구 맥락과 연구자의 관계에서 생성되는 임의적이고 부분적인, 주관적인 지식구성의 실재를 초월하여 독자들로 하여금 텍스트가 지닌 다의적이고 중층적인 의미를 자유롭게 탐구하도록 허용한다. 시는 나를 잊고 상대에게 몰입하는 존재론적 소통을 이끌며, ‘나-너’ 관계는 시가 지닌 여백 사이에서 무수히 변화할 수 있다. 시에 함축된 의미와 문학적 표현들을 숙고하면서 필자인 연구자와 독자 모두 존재와 세계를 명확히 인식하며 자신을 성찰하는 기회를 제공받는다. 또한 우리의 삶에서 이루어지는 경험과 대화는 산문보다는 시의 형식과 유사하고(김영천, 이희용, 2008), 시에 포함된 운율, 은유, 반복, 축약, 리듬 등의 문학적 구조는 직관을 자극하여 새로운 의미를 창출할 수 있다. 따라서 시를 이용한 연구 결과의 재구성은 “접합되고, 다채로우며, 개방되어 있고, 부분적인” 텍스트로서 존재론적 의미구성의 공간을 제공하는 상호텍스트 글쓰기의 방안으로 간주된다(Richardson, 2002: 879).

       2. 시를 활용한 면담 자료의 변환

    이 장에서 나는 독자들의 존재론적 소통이 가능한 상호텍스트 글쓰기를 시도하기 위해 면담전사 자료의 일부분을 시의 표현 양식을 사용하여 재구성하였다. 면담 전사본을 이용한 시 구성의 과정은 Glesne(1997)과 Sparkes 외(2003) 연구를 참조했으며, 시에서 사용된 어휘와 표현들은 대부분 연구 참여자들이 말한 단어와 문장을 그대로 차용하였다.

    시의 구성과정을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먼저 면담전사 자료를 반복해서 읽으면서 주제어를 산출하였고, 이러한 주제어에 맞추어 텍스트들의 코딩과 분류가 이루어졌다. 주제어로 구분된 의미 있는 진술들은 이후 사회계층에 따라 병렬 비교되었고, 이들 가운데 계층별 차이가 가장 두드러졌던 교육격차 내용들이 시 표현의 글쓰기 주제로 선정되었다. 다음 단계는 사회계층에 따라 교육격차와 연관되어 분류된 진술들을 읽고 또 읽으면서 연구 참여자들의 말 속에 함축된 의미의 본질(essence)을 숙고하는 작업이 이루어졌다. 이와 같은 탐구를 통해 하위계층 참여자들은 교육격차 현상을 지금 여기서 실존하는 주체적인 경험으로 이해하고 있는 반면 상위계층 참여자들에게는 3인칭으로 지칭되는 타자의 대상으로 표현되고 있음을 인식하게 되었다. 이후 참여자들의 말 속에 함축된 계층화된 교육격차 세계를 재구성하기 위해 면담 내용을 주의 깊게 다시 읽으며 적합한 단어와 문장 표현들을 선별하였고, 참여자들의 말에 새로운 의미와 감정을 부여하기 위해 반복 및 표현의 의도적인 구성이 이루어졌다.

    이러한 단계를 거쳐 면담 자료는 교육격차 현상을 바라보는 하위계층과 상위계층 어머니들의 시각을 담은 두 편의 시로 변환되었다. 첫 번째 ‘나와는 다르게’ 제목의 시는 하위계층 참여자들이 말한 면담 자료를 시의 양식으로 재구성한 것이고, 두 번째 ‘그들만의 커뮤니티’ 제목의 시는 상위계층 참여자들의 면담 자료를 사용한 것이다. 또한 자료 활용 과정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시 제작에 사용된 연구 참여자들의 내러티브 일부를 제시하여 상호텍스트적인 의미 확대를 유도하였다.

    Ⅴ. 마치며

    이 글은 질적 연구 경험에 대한 재방문을 통해 연구 과정에 영향을 미치는 연구자의 위치성과 윤리와 긴장의 관계 맥락을 성찰하고, 시 표현의 글쓰기를 이용하여 연구 결과에 대한 독자들의 능동적이고 존재론적인 소통의 가능성을 시도하였다. 시를 이용한 연구 자료의 표현은 연구자인 ‘나’와 ‘그들’ 사이의 간극을 좁혀주고 글쓰기의 주체이자 대상으로서 연구자/필자 역할이 갖는 경계의 유동성과 모호성을 주의 깊게 성찰하도록 이끌었다(Richardson, 2002). 면담 자료를 사용하여 제작된 두 편의 시는 질적 연구 도구로서 내가 지니고 있는 주관성과 위치성을 고스란히 드러내려는 성찰의 산물이었다. 하위계층의 <나와는 다르게> 시와 상위계층의 <그들만의 커뮤니티> 시는 유아기 양극화 사회현상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지닌 나의 주관성과 연구 참여자들의 삶의 경험이 중첩된 상호텍스트였다. 이러한 자기성찰의 과정에서 연구자는 “조사자이면서 응답자이고, 교사이자 학생이며, 연구과정 속에서 알게 되는” 다양한 자아들을 발견할 수 있게 된다(Lincoln & Guba, 2000: 183).

    또한 시 표현의 글쓰기는 또한 나를 넘어 상대에게 초월하는 존재론적 소통으로 초대하는 의미구성의 가능성을 제시하였다. 시는 이성과 사고를 넘어 존재 본연에 접근하고 우리의 몸에 반응하여 느낌과 감정을 유발한다. 시가 지닌 ‘느낌의 미학’은 “존재를 망각, 은폐, 왜곡하는데 봉사하는 많은 존재자의 매개체를 관철하여”(조용환, 2011: 17) 직관으로 인도하는 통로를 열어놓는다. 이 글에서 제시된 두 편의 시들을 구성하며 연구자/필자는 ‘나’이면서 동시에 ‘그들’의 존재가 되어 나와 그들의 말을 빌려 교육격차 현상을 체험하였다. 마찬가지로 시들을 읽으며 독자는 ‘나’가 되기도 하고 ‘그들’이 되기도 할 것이다. 이처럼 시로 표상된 세계는 ‘나-너-그들’의 다중적인 목소리로 전달되는 열려 있는 소통의 공간이라 하겠다.

    그러나 모든 질적 연구를 시로 표상할 필요는 없으며, 모든 자료가 시로 표현되기에 적합한 것도 아니다. 연구 주제나 맥락에 따라 생생하게 작성된 문화기술지의 산문이나 잘 다듬어진 내러티브가 연구 목적에 더욱 부합할 수도 있다(Glesne, 1997). 시 표현과 같은 대안적 글쓰기의 장점은 연구 방법의 대치가 아니라 기존의 자료가 지닌 의미를 확대하고 새로운 해석을 부여하도록 하는 열린 가능성에 있다. 사진기와 현미경이 각기 다른 세계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처럼 시 표현의 글쓰기는 산문 형식의 글쓰기로 전달되지 않은 새로운 의미를 표현하도록 돕는다(Brady, 2000; Cahnmann, 2003: Sparkes et al., 2003). 이 글에서도 시 표현은 문장으로 표현하기 어려운 화자의 감정과 느낌, 순간의 의미세계를 직관적으로 전달하는데 적합하였다. 연구자/필자로서 나는 연구 참여자들의 몸에 새겨진 교육격차의 의미를 함축과 표현, 반복과 생략, 행과 연 등의 문학적 형태를 차용하여 표현하였다. 이러한 시 표현의 과정은 단순히 표현을 위한 형태가 아니고 그 형태가 표현인 새로운 의미생성의 글쓰기임을 성찰하게 하였다(Freeman, 2001: Richardson, 2002).

    이 글에 실린 두 편의 시들이 문학적으로 우수하거나 시 창작에서 요구되는 전문성을 충족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심미적인 표현도 제한되어 있는 편이다. 그러나 두 편의 시들은 연구자와 연구 참여자, 연구자와 필자, 필자와 독자의 관계들 사이에서 끊임없이 변화하는 세계의 복잡성과 다차원성을 확인시켜주는 실재라 할 수 있다. 포스트모던 관점의 상호텍스트로서 시 표상은 관계로서의 면담이 생성해내는 잠정적이고 특수한, 지엽적이고 부분적인 지식을 드러내며, 성급한 결말이 아닌 관계들 사이의 모호함과 열림을 반기도록 초대한다. 세계를 이해하는 새롭고 흥미로운 탐구 수단으로 시 표현을 적용한 질적 연구의 창의적 글쓰기가 활성화되기를 기대해보며, 교육격차를 바라보는 연구자로서의 나의 시선을 닮은 도종환 시인의 <담쟁이> 시를 인용하며 이 글을 맺으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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