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연구는 탈북 사건 보도에서 드러나고 있는 언론의 사실 보도와 취재 대상 보호 간의 복합적 관계를 전통적인 저널리즘 윤리학의 관점이 아니라, 행위자-네트워크(Actor-Network)의 구축 및 변형 과정이라는 보다 역동적인 관점에서 접근하고 있다. 구체적으로, 탈북 루트라는 특수한 행위자-네트워크가 구축되고 언론 보도에 의해 이것이 변형되고 해체되는 과정을 추적해 보면서, 분단과 그것을 극복하기 위한 지속된 과정 안에서 남한 언론이라는 행위자가 부여받고 있는 역할은 어떠한 것인지, 이를 통해 언론이 어떻게 현대 자본주의 국가의 주권을 작동시키는 중요한 주체가 될 수 있는지를 논의하고자 했다.
연구를 통해, 우선 남한 언론이 북한이라는 취재 대상을 대하는 독특한 방식이 북한 관련 보도의 행위자-네트워크 구축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잘 작동하는 블랙박스로 결절(punctualization)된 북한 관련 보도의 행위자-네트워크는 다시 카메라라고 하는 부동의 동체(immutable mobiles)를 동원시키며, 기존에 제대로 작동하고 있었던 탈북루트의 행위자-네트워크에 이것이 또 다른 행위자로 개입함에 따라, 탈북루트 네트워크의 급속한 붕괴가 일어나게 된다. 이는 다시 말해 카메라의 시선 권력이 중심적 행위자로 구축된 남한 언론이라는 블랙박스가 탈북 사건에 개입하면서, 애초에 의도했던 북한 인권 보호와는 정반대의 결과를 만들어 낼 수밖에 없었던 사건으로 해석될 수 있다. 또한 이것은 탈북 사건의 보도라는, 말하자면 한 주권에서 벗어나게 된 생명에 대한 다른 주권의 언론 보도라는 특수한 형태의 취재 보도 과정이, 저널리스트 개인의 선한 의도가 발휘될 여지가 별로 없는 매우 복합적인 행위자-네트워크의 구축 및 변형 과정으로 취급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This study approached the complex relationship between real reportage and protecting news source not by the terms of journalism ethics but by the terms of actor-network theory(ANT). Concretely, this study pursued the processes of constructions, transformations and de-constructions of a special actor-network named defection-root. We want to find answers to the following questions. What kind of roles have been granted to the journalistic media of South Korea in the situation of nation’s division and the continuous process to overcome it? How journalistic media can be an important subject who operate the sovereignty of modern capitalist states?
This study found that a South Korean report’s unique way of treating the North Koreans plays a key role in the process of actor-network construction. This ‘actor-network of reportage about North Koreans’ which is punctualized and well-operating black-box mobilized TV camera as new ‘immutable mobiles’. And then camera intervened to ‘the actor-network of defection-root’ as new actor, finally collapsed it. This event can be translated that journalistic media produced the opposite result of protecting North Korean rights by intervening of TV camera as the power of the gaze. Also this event means that media reports of one sovereignty about the lives from another sovereignty can be a complex process of actor-networking which has no much room to demonstrate a good intentions of individual journalists.
언론의 보도 행위가 취재 대상에게 예상하지 않은 피해를 끼치게 되는 경우가 있다. 특히 탈북과 관련된 보도는 오히려 탈북자들의 생존에 의도치 않은 위협을 가하게 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2012년에 조선일보의 크로스미디어 팀은 <천국의 국경을 넘다 2>라는 프로그램을 제작‧방영했다. 육상 탈북 루트를 동행 취재했던 전편에 이어, 이 프로그램은 2009년 12월에 시도되었던 ' 공해상 접선 탈출' 루트를 따라가며 탈북자들의 인권 실태를 고발한 작품이다. 그런데, 탈북 과정이 매우 자세하게 보도되면서 그 동안 중국 정부에서 묵인 하고 있던 탈북자 루트가 공개되고 말았다. 중국 정부는 탈북에 협력한 조선 족과 한족을 처벌하고 공개된 탈북 루트들을 폐쇄하였으며, 한족과 결혼한 탈북 여성이 북송되면서 중국에서 태어난 아이들은 고아가 되었다. 고아들을 돌보던 남한 목사가 추방당하고, 관련된 조선족들도 체포되면서 고아원 또한 폐쇄되었다(조선족 남자 44세, 2012년 8월 11일, 인터뷰 내용).
탈북자들의 존재를 해외에 상세하게 알리고 탈북자의 인권 문제를 본격적으로 다루어 보고자 했던 기획 의도와는 전혀 다른 결과가 발생했다. 반면에 다큐멘터리를 제작한 언론인들은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전편인 <천국의 국경을 넘다 1>은 몬테카를로 TV 페스티벌 최우수상, 국제방송협회 최우수 다큐멘터리상(영국), 아시아출판편집인협회상(홍콩), 한국 기자상 등 국내외 16개 언론상을 받았고, 2편은 제40회 국제에미상(International Emmy Awards) 다큐멘터리 부문의 최종 수상 후보로 선정되었다+ +null'>(이학준, 2012.10.10.). 탈북자들의 인권 보호를 의도했던 언론의 보도가 오히려 탈북자들의 인권을 침해하는 이와 같은 사례를 우리는 어떻게 보아야 할까?
언론 보도를 통해 개인의 신상 정보가 공개됨으로써 오히려 그 대상자에게 피해를 입히게 되는 상황은 저널리즘 연구에서는 비교적 오래된 주제이다. 일반적으로 이 주제는 언론과 보도 대상간의 복합적인 관계를 언론의 사회적 책임이라는 저널리즘 윤리학의 관점에서 주로 다루어왔다(김연종, 1994; Hutchins Committee, 1947). 그러나 본 연구에서는 이를 조금 새로운 관점에서 접근해 보고자 한다.
이 연구에서 주로 다루고자 하는 언론 보도의 사례는 한 국가 체제 내의 구성원들을 동일한 국가의 언론이 보도 대상으로 삼는 일반적인 종류의 것이 아니라, 특정 국가의 경계 바깥으로 자발적 혹은 비자발적으로 추방된 주체들을 다른 주권 국가의 언론이 보도 대상으로 삼고 있는 특수한 종류의 것이다. 난민, 망명자, 추방자 등을 대상으로 하는 보도는 그들을 어떠한 국가 주권 (sovereignty of state)의 시각에서 바라보느냐에 따라 완전히 달라질 수 있다. 그들이 떠나온 국가의 시각으로 보았을 때, 그들은 범죄자, 배신자로 낙인찍힐 수 있으며, 그들이 떠나온 국가와 적대적인 주권의 시각으로 보았을 때는 정반대가 될 수도 있다. 때문에, 복수의 주권이 대립하고 있는 상황에서, 주권 개념으로부터 형식적으로나마 거리를 두고 이 문제에 접근하고자 하는 자유주의 언론들은 가능하면 인류 보편적이고, 객관주의적인 관점에서 이들의 문제를 다루고 싶어 한다. 이에 따라 언론사의 정치적 성향과는 무관하게, 일반적으로 주권에서 배제된 이들에 대한 언론 보도는 그들의 생존권 보호에 초점을 둔 인권적 차원에서 다루어지는 경우가 많다.
특히 남북한의 대립이 첨예한 우리나라 언론 보도의 경우, 북한 이탈 주민에 대한 입장은 대체로 그들의 생존권 보호에 초점을 두고 있다. 물론, 이러한 관점이 각 언론사의 정치적 입장에 따라 세부적으로는 미세하게 차이를 나타내고 있지만, ‘대립하는 주권 체제에서 이탈한 이들’이 탄생하는 탈북 사건에 대해서는 ‘탈북자의 보호’가 가장 중요한 가치로 다루어져 왔던 것이 사실이다. 곽정래와 이준웅의 연구(2009)에 따르면, 보수적인 <조선일보>와 <동아일보>의 탈북자 관련 사설은 주로 탈북자의 생존권과 난민 지위에 대한 주제가 결합된 인권보장 프레임을 사용하는 사례가 상대적으로 많았고, <경향신문> 과 <한겨레> 등의 진보 언론은 보수 언론보다 탈북자 문제를 둘러싼 관련 주변국들의 행위에 초점을 두는 상황귀속 프레임을 더 많이 사용하고 있다고 한다. 언론사의 정치적 성향에 따라 탈북자를 바라보는 시각이 이처럼 조금씩 다르게 나타나고 있긴 하지만, 탈북자 정책의 개선이나 국내 탈북자의 안정적 정착을 위한 제도 개선 및 수립과 관련된 체제 개선 프레임은 진보와 보수언론 모두 균일하게 나타나고 있는 것으로 이 연구는 보고하고 있다(곽정래‧이준웅, 2009, 209쪽).
동시에, 탈북사건 보도에는 취재 및 보도의 전 과정에 걸쳐서 ‘언론의 전문 성’, ‘알 권리’, ‘특종’이라는 언론 고유의 목적이 탈북자 보호라는 가치와 서로 심하게 맞부딪히고 있다. 예를 들어, 1997년 10월 20일 베트남 주재 한국 대사관에 13명의 탈북 주민들이 집단으로 들어가서 한국에 보내줄 것을 요청하는 일이 발생했다. 그러나 베트남 정부는 이들을 넘겨받아 중국으로 추방했고, 중국 정부가 다시 베트남으로 이들을 이송하는 과정에서 20대 임산부를 포함한 7명이 두 나라 국경의 지뢰밭에서 실종된다. 이른바 ‘핑퐁난민사건’이었다. 문제가 되는 것은, 이 사건에 대한 언론의 보도 방식이었다. 한국의 대부분 언론 들은 그들의 실종이 알려진 직후인 12월 3일 일제히 보도했지만, <한겨레신문> 만이 보도를 다음 날로 미루었다. 가장 많은 취재 정보를 가지고 있었던 한겨레신문 특별 취재반은 처음 베트남 대사관에 들어갔던 13명 가운데 4명이 아직 베트남 하노이에 머물러 있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만약 언론 보도를 통해 탈북 사실을 북한 당국이 알게 되면, 북한과 수교 관계에 있는 베트남에 항의하여 외교 문제로 확대될 것이고, 그렇게 되면 남아 있던 4명의 한국 행은 불가능해지는 상황이었던 것이다. 이 사건은 소설로도 출간되었다(윤정은, 2012). 핑퐁난민사건은 여러 가지 논쟁의 요소를 안고 있다. 이 사건의 전취재 과정을 취재기를 통해 보고하고 있는 오귀환(1998)에 따르면, 이 사건은 언론의 관점에서도 “△특종과 낙종이라는 가치 규범, △진실보도와 생명과의 우선순위 문제, △엠바고(embargo: 보도 유예 약정)의 문제라는 쟁점들”(94쪽)을 정면으로 건드리고 있다. 뿐만 아니라, 이 사건에는 여러 행위자들, 예를 들어 북한과 그 우방 국가들의 공권력, 한국의 민간인, 가톨릭교회, 한국의 외무부, 안기부, 언론 등이 복잡하게 얽혀 있다(오귀환, 1998). 사건이 발생한 후 17년이 지났다. 북한 이탈 주민은 더 늘어났고, 국내에 거주하는 탈북자들의 또 다른 사회적인 이슈를 만들어 내고 있다. 탈북 사건이 널리 공론화되고 탈북자 북송 반대 운동 등이 일어나기도 한다. 하지만, 여전히 탈북자에 대한 언론 보도 문제는 남아 있다.
일견 단순해 보이는 탈북 사건 보도에는, 매우 많은 행위자들이 개입하고 있다. 즉, 대립하는 주권들, 대립하는 언론의 가치 규범들, 탈북을 시도하는 이들의 상이한 의도들, 그들에 대한 남한 사회 구성원들의 입장들, 언론의 보도 방식과 취재 수단들 등, 사건 그 자체를 둘러싸고 수많은 사람들과, 장치들, 체제들, 가치들이 모였다가 흩어지고, 특정한 방식으로 연결되거나 단절되고, 배열되거나 변경되고 있는 것이다.
연구자는, 탈북 사건이라는 특수한 취재 보도 사례에 이와 같은 복합적인 다수의 행위자들이 지속적으로 관여하고 있다는 사실을 바탕으로, 이를 행위 자-네트워크 이론(Actor Network Theory, 이하 ANT)이라는 접근 방법으로 파악해 보고자 했다. ANT는 다양한 행위자들의 역동적 관계 구축 및 변형이라는 관점에서 특정 사건이나 지식의 본질을 파악하고자 하는 과학사회학적 입장의 하나이다. 이 입장의 가장 독창적인 내용은, 네트워크 구축의 과정에 포함되는 행위자에는 인간뿐만 아니라, 비인간 사물도 동등하게 다루어진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특정한 사건이나 과학기술적 체계의 형성은 사람뿐만 아니라, 기술, 제도, 체제 등의 비인간 사물이 함께 역동적으로 관여하고 있는 네트워크의 구축 및 변형 과정이라는 것이다. 이를 탈북 사건 보도에 적용한다면, 이사건의 형성과 변화 과정에 관련된 행위자들은 구체적으로 누구인지, 특정한 네트워크에 동원되고 있었던 행위자들은 언론 보도를 통해 어떻게 호명(呼名) 되면서 새로운 네트워크로 동원되고 있는지, 동원된 네트워크 안에서 그러한 행위자들이 어떤 역할을 부여(enrollment) 받는지 등을 살펴볼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언론 보도 공개 이후에는 탈북자 루트의 노출에 의해 언론이 원래 의도 했던 바와는 전혀 다른 결과로 이어지는 것과 같은 네트워크의 변형을 추적해볼 수도 있다. 이 과정에서 사건의 의미는 새롭게 해석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본 연구에서 탐색하고자 하는 내용은 다음과 같은 연구 문제들로 정리할 수 있다
요컨대, 본 연구에서는 탈북 사건을 둘러싼 행위자-네트워크의 구축 및 해체 과정, 다시 말해 탈북루트라는 특수한 행위자-네트워크가 구축되고 언론 보도에 의해 변형되는 과정을 추적해 보면서, 언론이라는 행위자가 분단 현실과 그것을 극복하기 위한 지속된 과정 안에서 부여받고 있는 역할은 실제로 어떠한 것인지, 이를 통해 언론이 어떻게 현대 자본주의 국가의 주권을 작동시키는 중요한 블랙박스1)가 될 수 있었는지에 대해 논의할 것이다. 이를 위해 탈북 사건 보도의 구체적인 사례들을 수집했다. 수집된 자료들에는 북한이탈주민이 가시적으로 증가하기 시작한 1998년 이후의 탈북 사건 관련 신문기사와 방송보도, 탈북 과정을 진술한 출판물과 문서들, 북한 관련 보도를 맡은 경험이 있는 언론사 기자들 및 탈북자들에 대한 인터뷰 등이었다. 탈북 사건의 보도와 연관된 행위자들과 그들의 역할을 보여줄 수 있는 이와 같은 복합적 자료들을 바탕으로, 연구자는 행위자-네트워크의 구축 및 변형 과정을 가능한 한구체적으로 묘사해 보고자 했다. 먼저 이 연구의 주된 접근 방법으로서의 행위자-네트워크 이론에 대해 간략하게 살펴보자.
1)ANT에서 블랙박스란, 다양한 행위자들이 하나의 대상으로 응축되고 결절된 네트워크를 말한다. 결절(punctualization)이란, 서로 다른 네트워크가 하나의 행위자나 대상으로 축약되는 것을 의미하는 용어이다. 예를 들어 자동차는 엄청나게 복잡한 기술들을 바탕으로 하는 다양한 부품(행위소)들이 단일한 대상으로 축약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자동차는 일종의 블랙박스이다. 잘 작동하는 자동차를 운전하는 사람들은 그 속에 축약된 원래의 네트워크를 보지 못하고, 완전한 동일체로 파악하게 된다. 블랙박스의 내용 속에 결절된 원래 네트워크를 보지 못하고 이것을 외부의 입-출력에만 의존하는 대상으로 취급하는 것이다. 블랙박스가 더 닫힌 것이 될수록, 즉 사람들이 그것에 축약된 네트워크에 더 무관심해질수록 더 많은 사람들이 손쉽게 그 네트워크를 사용할 수 있게 된다(홍성욱, 2010, p.23).
ANT는 측정이나, 분석의 방법론(Methodology)이 아니다. 이는 일종의 인식론적 입장이라 말할 수 있는데, ANT의 가장 핵심적인 내용은, 사회를 인간 (human)과 비인간(non-human)이 결합된 네트워크의 역동적 구성 과정으로 본다는 것이다. 이 입장은 최근 분단의 사회적 의미를 이해하는 새로운 관점을 제공하고 있다(박순성, 2012; 이희영, 2012; 김병선, 2012; 홍민, 2013). ANT에 따르면, 우리를 둘러싼 사물, 과학, 기술 등과 같은 다양한 비인간들은 분단과 무관한 것들이 아니라 인간과 결합하여 분단을 구성하는 행위자들이다. 분단 질서란 바로 이런 다양한 인간/비인간의 행위자-네트워크 구축을 통해 움직이고 있다는 것이다. 탈북 사건에 대한 보도 역시 이러한 분단 질서 내에서 새로운 행위자-네트워크를 구축한다.
남한의 저널리스트가 북한의 탈북자를 남한과 다른 세계에 보도하는 과정 안에서, 원래의 목적이었던 탈북자들의 인권과 관련된 사건의 이슈화는 달성 했을지라도, 그 후의 탈북자들에게는 실질적인 손실을 야기하고 말았다. 이것은 분단 질서 속에서 논쟁이 되는 사건 보도에 동원된 다양한 인간/비인간 행위자들을 통해 새로운 관계가 구축되거나 해체되는 네트워킹의 과정이다. 더구나 이 문제는 저널리스트의 보도 윤리나 취재 방식 등에서 비롯되는 문제가 아니라, 분단이라는 주권의 대립 상황에서 동원된 다양한 행위자들의 관계로 발생되는 보다 근원적인 문제이다. 따라서 탈북 사건 보도를 행위자-네트워크의 관점에서 파악하고자 하는 이 논문의 시도는 저널리즘 윤리나 취재원의 보호 등과 같은 언론이 가져야 할 태도와 관련된 논의로는 해결할 수 없는 문제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제공할 수 있다.
ANT는 확립된 연구 방법론이라기보다는 일종의 인식론이자 인간-사물의 혼종(hybrid)에 대한 존재론적 이론이지만, 행위자-네트워크의 구축 및 변형, 해체 등을 분석하기 위한 몇 가지 주요 개념과, 접근 방식을 연구자들 간에 공유 하고 있다. 이 중에서 본 연구가 구체적으로 활용하고 있는 방법은, 대표적인 ANT 이론가 미셀 칼롱(Michel Callon)이 제시한 번역의 네 단계 과정이다(Callon, 1986). ANT에서는 다양한 행위자(actant)들 간에 네트워크를 구축해 나가는 과정을 번역(translation)이라고 칭한다. ANT는 초기에 “번역의 사회학”(Callon, 1986)이라고 불릴 만큼, 인간과 비인간의 결합을 통해 기술 과학적 혼종(hybrid) 들이 출현하고 이들이 세계를 변화시키는 과정을 묘사하고자 했다(Latour, 1987; 김환석, 2011 재인용). 번역의 과정에는 한 행위자가 다른 행위자들을 정의하고 이들의 문제를 떠맡으며 기존의 네트워크를 교란시키는 ‘문제화 (problematization)’, 다른 행위자들을 기존의 네트워크에서 분리하고 이들의 관심을 끌면서 새로운 협상을 진행하는 ‘관심끌기(Interessement)’, 번역의 중심이 다른 행위자들로 하여금 새롭게 주어진 역할을 맡게 하는 ‘역할부여하기(enrolement)’, 그리고, 이들의 의견을 대변하면서 자신의 네트워크로 포함시키는 ‘동원하기(mobilization)’라는 네 단계의 개념적 과정이 포함된다(Callon, 1986).
먼저 문제화 과정에서는, 행위자들이 정의되고, 그들은 의무통과지점 (Obligatory Passage Point; OPP)으로 수렴되면서 동맹 혹은 연합의 체계로 이끌리게 된다. 의무통과지점이란, 네트워크 구축의 의도를 지닌 행위자가 기존의 네트워크를 교란시키고 다른 행위자들을 자신의 네트워크로 끌어들이기 위해 행위자들이 의존할 수밖에 없도록 만드는 어떤 존재를 의미한다. 말하자면, “다른 행위자들이 네트워크상에서 반드시 거쳐 가게 함으로써 행위자들을 자신의 편으로 끌어들이는 존재”(홍성욱, 2010, p.26)가 바로 의무통과지점이다. 예를 들어, 논문의 후반부에 다시 논의하게 되겠지만, 북한체제를 벗어나고자 하는 이들에게는 그들이 반드시 통과해야 하는 특정한 ‘탈북도구’라는 구체적인 의무통과지점이 있다. 그것은 때로는 물리적 공간일 수도 있고, 통신매체일 수도 있으며, 탈북을 위한 자금일 수도, 탈북 브로커와 같은 사람일 수도 있다. 그것은 인간이든, 비인간이든, 그 네트워크와 관련된 행위자들이 설정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반드시 통과해야하는 존재가 바로 OPP인 것이다.
또한 이 문제화 단계에서는 의무통과지점을 통해 네트워크에 관련된 행위자들이 모두 끌려나오며, 행위자들의 정체성과 그들의 목표가 정의된다. 문제화 단계에서 네트워크로 행위자를 이끄는 것을 징집(enlist)이라고 하는데, “징집된 실체들은 통합될 수도 있고, 또는 반대로 자신의 정체성이나 목적, 계획, 지향, 동기 또는 이해관계를 다른 방식으로 정의하여 거래를 거절할 수도 있다”(Callon, 1986, p. 73). 이와 같은 문제화 단계에서 네트워크 구축의 의도를 지니고 가장 강력한 힘으로 네트워크 행위자들 간의 협상과 대결을 주도하는 행위자를 ‘번역의 중심’이라고 부른다.
두 번째 단계인 관심끌기 과정은 번역의 중심이 문제화를 통해 정의된 다른 행위자들의 정체성을 강제하고, 안정화시키려는 행동들의 집합적 과정이다.
이 과정에서 행위자들은 다른 행위자들과의 네트워크 혹은 다른 번역의 중심에 의해 이전에 징집되었던 관계를 끊고, 번역의 중심이 이끄는 새로운 네트워크에 편입된다.
세 번째 단계는 이렇게 연결된 실체들에게 새로운 역할을 부여하는 역할 부여하기 과정이다. 번역의 중심이 행위자들의 역할들을 정의하면, 이를 수락하는 행위자들이 이 역할을 자신의 속성으로 갖게 되는데, 만약 그 이전의 관심 끌기가 성공적이었다면 일단 역할 부여하기는 자연적으로 달성된다. 그러므로 역할 부여하기를 묘사하는 것은, “관심 끌기 과정에 수반되며, 관심끌기를 성공할 수 있게 해 주는 다각적인 협상, 힘의 대결과 책략의 집합을 묘사”하는 것이다(Callon, 1986, p. 78).
마지막으로 번역의 중심은 또 다른 행위자들에 대한 계속적인 대변인 임명과 일련의 등가물 정착 등을 통해 모든 행위자들을 치환하고, 특정한 장소, 특정한 시간에 다시 모은다. 이를 동원하기라고 하는데, “이 과정에서는 비인간 행위자를 포함한 모든 행위자들은 일련의 치환을 통해 명확한 물리적 실체로 체현된다”(김병선, 2012, 94쪽). 번역의 중심은 멀리 떨어진 행위자들에 대해서도 장거리 지배력을 행사하는데, 이럴 때 지리적으로 먼 거리를 쉽게 돌아다니면서 번역의 중심의 지배력을 유지시키는데 사용할 수 있는 물건들을 “부동의 동체(immutable mobiles; 혹은 불변의 가동물)”라고 한다(홍성욱, 2010, 26쪽). 이 용어는 “인간과 사물들, 혹은 그 혼종들 간의 치환 운동과 그에 따른 모순적 요구들을 표현하기 위한 용어”(김환석, 2005, 145쪽)라 말할 수 있다. 부동의 동체는 번역의 중심이 지닌 지배력을 유지하고 행위자들의 결속력을 지속시키기 위해 적극적으로 활용된다.
우리는 탈북 루트가 형성되는 네트워크 구축의 과정과, 언론 보도를 통해 여기에 얽혀 있던 행위자들이 또 다른 네트워크로 징집되어 다른 역할을 부여 받는 과정을 네 단계의 행위자-네크워크 구축이라는 관점에서 살펴보고자 한다. 이 과정에서 동원되는 행위자들과 역할들, 그리고 치환되는 부동의 동체들은 무엇인지를 구체적으로 관찰할 것이다.
본 논문은 언론의 탈북자 보도가 지닌 어떤 윤리적이고 가치적인 문제점을 지적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대신 문제점으로 드러난 특수한 언론 보도가 어떠한 행위자-네트워크로 인해 나타나게 되었는지를 추적함으로써, 탈북 사건 보도를 둘러싼 행위자들 간의 역학적 관계를 포착하는 것이 주된 목적이라고 할 수 있다. 이를 통해, 분단과 대립의 상황에서 언론의 역할이 어떤 것으로 구성되고 있는지를 재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남한의 언론, 특히 보수 언론이 북한과 관련된 사실과 사건들을 보도해 온 방식은 매우 정략(政略)적인 경향이 있다. 북한과 관련된 대다수의 보도가 지니고 있는 가장 기본적인 특성은, 사실(fact)을 체크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따라서 사실 혹은 직접 취재로 수집한 기사보다는 정보기관, 통일부, 청와대, 미국대사관, 미국 정보기관, 관련 연구기관의 정보원들을 활용하여 기사를 구성하는 경우가 더 많다. 일상적인 상호 왕래나 소통이 불가능한 대립하는 정치적 관계 속에서 북한에 대한 보도는 이 때문에 처음부터 정보원의 의도에 따라 기사가 만들어질 가능성을 지니고 있었다. 사실 관계가 확인되지 않으면 보도는 부정확해질 수밖에 없으며, 이러한 부정확한 보도는 매우 선정적으로 흐를 수밖에 없다.
부정확한 정보에 기반을 두고, 그 정보가 정확한지 확인하는 방법이 처음부터 부재하는 취재는 근본적으로 독자나 시청자의 흥미를 유발할 수 있는 이야기를 상상적으로 만들어내는 방향으로 흐른다. 또한 그러한 흥미로운, 혹은 자극적인 정보에 대한 보도는 경쟁적인 방식을 취하게 된다. 특히 정부와 정보 기관이 거의 유일한 공식적인 정보원이고, 그 외의 직접적 취재원은 이미 북한을 떠나온 지 오래되었거나, 중요한 정보에 접근이 쉽지 않은 ‘탈북자’와 ‘탈북지원 단체’이기에, 북한 관련 보도, 특히 북한 인권 뉴스는 보도 주체의 명확한 의도가 담긴 기획 보도로 재구성될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이다. 그렇다면, 북한 관련 보도를 둘러싼 행위자-네트워크는 어떻게 구축되어 있을까?
북한 관련 보도에는 다음과 같은 중요한 행위자들이 네트워크에 징집되고 있다. 탈북자 및 탈북지원 단체, 정보기관, 비전문적 취재 기자와 브로커 PD, 시청자와 독자들이 그들이다. 그들은 ‘북한 관련 언론 보도’를 의무통과지점으로 통과해야 하는 각자의 목적과 행위의 맥락을 갖고 있다. 언론 보도를 통해 그들이 얻고자 하는 목적을 공유할 수 있어야만 행위자들의 동맹이 성사될 수 있는 것이다. 먼저 탈북자와 탈북지원 단체들은 북한 인권을 문제화함으로써 탈북의 정당성을 주장하거나, 실질적인 이득, 때로는 북한에 두고 온 가족들에 대한 정보 획득 등을 목적으로 북한 관련 뉴스나 탈북자 관련된 보도의 정보원을 자청한다. 그러나 그들의 주장은 사실 확인이 불가능한 정보들이다. 정부와 정보기관은, 북한 관련 보도를 통해 안보와 관련된 국민 의식을 강화시키거나, 국내의 정치적 문제를 다른 국면으로 전환하고자 하는 목적을 갖는다. 거의 유일한 북한 정보원으로서의 정부와 정보기관은, 사실 확인이 불가능하다는 북한 관련 보도의 기본적인 특징을 기반으로, 언제든 필요한 시점에서 필요한 방향으로 정보를 공개하고 기사화시킬 수 있다.
언론사 조직에 소속되어 있긴 하지만 정보 접근의 한계 때문에 비전문적이 된 대다수의 취재 기자들은 바로 그러한 정보원의 의도를 알고 있으면서도 동조할 수밖에 없다. 그 이유는 그 외에는 정보를 얻을 수 있는 다른 방법을 생각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여러 경로를 통해 확보한 북한 내 정보원과의 전화 통화나 탈북자 진술 등을 통해 정보를 얻는 경우도 있지만, 정보의 사실 확인은 여전히 어렵다. 북한 관련 정보를 독점하고 있는 정부 및 정보 기관은 이 네트워크에서 번역의 중심으로의 역할을 손쉽게 차지한다. 언론사 조직에 포함된 저널리스트들은 이 과정에서 정부 및 정보기관의 관심끌기를 벗어나기가 쉽지 않다.
몇몇 기획 보도를 위해 중국에 직접 취재를 하는 경우도 있지만, 이 경우에도 여전히 취재원의 확보나 정보의 신뢰성 문제가 논란이 되기도 한다. 이 과정에서 중국-북한 국경 지역에 상주하면서 탈북자를 취재하거나, 탈북 브로커를 경유한 정보 등을 상품으로 거래하는 프리랜서 기자, 브로커 PD 등이 개입 한다. 그런데, 정상적인 취재가 아닌 방식으로 획득된 정보들이 기본적인 사실 확인도 없이 유포되어 북한 정보를 상상적으로 만들 수밖에 없는 가장 큰 이유 는, 그러한 보도를 흥미롭게 소비하는 시청자와 독자가 자발적으로 이 행위자-네트워크에 이끌리고 있기 때문이다. 미지의 집단에 대한 흥미, 같은 동포로서의 연민과 공감, 인권 문제라는 사회적 의미 등을 바탕으로, 시청자와 독자들은 상상적 사건으로 구성된 북한 관련 보도를 흥미롭게 소비한다2). 특히 방송 보도의 경우, 시청자의 흥미 정도가 시청률이라는 직접적인 수치로 기록되는 시스템 때문에, 보다 더 흥미를 자극하는 선정적인 내용으로 구성되기도 한다. 결국 북한 관련 언론 보도를 의무통과지점으로 하는 행위자-네트워크는 다음 <그림 1>과 같은 실체들과 실체들의 목적으로 하는 동맹을 구성하고 있다.
사실 확인이 불가능하다는 보도 대상의 특성상 정부와 정보기관이 북한 관련 정보를 주도할 수밖에 없는 행위자-네트워크의 동원 과정에서, 번역의 중심으로서의 정부와 정보기관은 북한 관련 정보로 행위자들의 관심끌기를 다음 <그림 2>와 같은 방식으로 시도한다. 즉, 독점하고 있는 정보를 기반으로 그들이 의도하는 행위자-네트워크로 독자와 시청자, 그리고 탈북자들을 끌어들이는 방식으로 진행되는 것이다.
확인이 불가능하며, 정부가 독점하는 북한정보에 대한 보도는, 결국 북한의 현실에 대한 왜곡된 이미지를 구축하는 동시에, 북한 주민들에 대한 의미를 전혀 다른 방식으로 구성하게 된다. 즉, 현재의 북한 주민들은 인권 유린을 당하고 있는 피해자들이며, 북한이라는 집단은 그러한 인권 유린이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야만스럽고, 폭력적인 집단으로 대상화되는 것이다. 그러한 과정에서, 분단의 질서는 더욱 공고하게 구축되며, 북한과의 합리적인 대화와 협상은 문제를 해결하는 데 큰 의미를 지니지 못한다는 담론이 힘을 얻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구성된 ‘북한 관련 보도의 행위자-네트워크’는 잘 접혀진 네트워크, 즉 일종의 블랙박스로 만들어져 일상적으로 작동한다. 이는 취재 카메라, 탈북 지원 단체의 인터넷사이트 등과 같은 ‘부동의 동체’를 동원하여 멀리 떨어진 행위자들에 대해서도 장거리 지배력을 행사할 수도 있다.
이 논문에서 초점을 두고 있는 ‘탈북 사건 보도의 행위자-네트워크’는 바로 이러한 과정으로 구축된 ‘북한 관련 보도의 행위자-네트워크’가 지배력을 행사 하도록 동원한 특수한 ‘부동의 동체’가 ‘탈북루트’라는 행위자-네트워크에 행위자로 접근함에 따라 해당 네트워크 자체가 붕괴되거나 변형된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렇다면, ‘북한 관련 보도의 행위자-네트워크’가 접근하기 이전, 다시 말해, 언론 보도 이전에 작동하고 있던 ‘탈북루트’라는 행위자-네트워크는 어떤 것이었을까?
지난 2001년 장길수 군 가족 일곱 명이 유엔난민고등판무관실(UNHCR) 북경사무소에 진입하여 서울행에 성공한 이후, 2002년에 들어와서는 이와 같은 외국 공관을 이용한 탈출이 새로운 탈북 루트가 되었다. 2002년 3월 14일 25명의 탈북자들이 집단으로 북경 내 스페인 대사관 진입에 성공하고, 같은 해 4월 25일에는 독일 대사관에 탈북자 한 명이 진입에 성공했으며, 26일에는 미국 대사관에 두 명이 진입에 성공하여 중국 당국으로부터 허가를 얻어 제3국 추방 형식을 통해 서울로 갈 수 있었다(홍규덕, 2002, 3쪽). 2014년도 통일부의 <통일백서>에 따르면, 2013년 12월 말까지 총 2만 6,124명의 북한이탈주민이 국내에 입국했다고 한다(통일부, 2014, 164쪽).
탈북 사건에서 탈북 루트를 둘러싼 행위자-네트워크는 끊임없이 변형되고 진화한다. 마치 생태계처럼 새로운 행위자의 출현으로 전체 네트워크가 변형되기도 한다. 남한 언론의 개입 이전, ‘남한에 있는 가족들의 요청에 의한 탈북’이라는 사건에서는 크게 다음과 같은 중요한 네 행위자가 네트워크에 징집 되고 있다. 탈북자, 탈북지원 단체, 탈북 브로커, 남한의 탈북자 가족들이 그들이다. 그들은 각각 위조여권, 밀항선, 불법 휴대전화, 제3국 대사관, 국경의 특정한 지점 등의 다양한 ‘탈북 도구’라고 하는 의무통과지점(Obligatory Passage Point; OPP)을 통과해야 하는 각자의 목적과 행위의 맥락이 있었다. 탈북을 원하는 탈북자는 당연히 탈북 도구에 이끌리며, 탈북지원 단체는 북한 인권 문제의 해결이라는 가시적 목적이나 북한에 대한 선교라는 종교적 목적으로 탈북을 돕는 도구에 이끌린다. 대부분 중국에서 오래 거주하여 현지 사정을 잘아는 탈북자 출신의 탈북브로커들은 단기적 이익을 획득하기 위해, 그들에게 금전적 보상을 해서라도 가족 상봉을 바라는 남한의 가족들 역시 탈북 도구라는 OPP에 자발적으로 이끌리게 된다. 탈북을 통해 그들이 얻고자 하는 목적을 공유할 수 있었기에 행위자들의 동맹은 성사되었고, 구체적인 탈북 도구를 ‘부동의 동체’로 삼는 탈북지원 단체는 번역의 중심으로서 ‘탈북 루트’라는 행위 자-네트워크를 제대로 구축할 수 있었다. 따라서 이 행위자-네트워크는 다음 <그림 3>과 같은 실체들과 실체들의 목적으로 동맹을 구성하고 있는 것으로 정리될 수 있다.
탈북 사건에서 행위자들 간의 동맹이 잘 형성되었다는 것은, 네트워크를 통해 지속적으로 잘 작동할 가능성이 높은 <탈북 루트>라는 블랙박스를 구축한 것이라 볼 수 있다. 이 과정에서 서로 다른 탈북 도구들이 서로 다른 탈북 루트를 구성한다. 예를 들어 이미 알려진, 그리하여 현재로서는 잘 작동하지 않을 수도 있는 탈북 루트에는 ‘북한→ 중국→ 위장 여권을 통한 남한 입국’, ‘북한→ 중국→ 황해의 밀항선을 이용한 남한 입국’, ‘북한→ 중국→ 제3국 대사관→ 난민으로 남한 입국’, ‘북한→ 중국→ 라오스→ 태국→ 남한’, ‘북한→ 동해 및 황해를 통한 남한 직접 입국’, ‘북한→ 중국→ 러시아→ 남한’, ‘북한→ 중국→ 베트남→ 남한’, ‘북한→ 중국→ 몽골→ 남한’, ‘북한→ 중국→ 미얀마→ 남한’ 등이 있다. 이 중에 어떤 탈북 루트는 이미 중국 공안 당국이나 북한 당국에 의해 발각되어 활용되지 못하는 것도 있으며, 어떤 루트는 또 다른 탈북 도구를 동원하여 새롭게 작동하게 만들어진 것도 있다. 예를 들어, 2013년 5월 탈북 청소년 9명이 28일 라오스에서 북한으로 송환된 사건이 국제적인 이슈가 됨에 따라, 라오스를 통한 탈북 루트의 대부분이 공개되고 말았다. 이 사건으로 해당 탈북 루트는 봉쇄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2004년 7월 탈북자 468명이 우리 정부가 제공한 전세기를 이용해 입국했던 베트남이 당시 사건 이후 사실상 탈북 루트로서의 가치를 잃은 사례도 있다(정용수, 2013.5.31).
이처럼 잘 작동하고 있던 탈북 루트는 중국 및 북한 당국에 의한 직접적 발각, 징집된 행위자들 중 누군가에 의한 폭로, 외부인에 의한 고발, 언론의 보도를 통해 널리 알려짐 등의 과정을 통해 더 이상 탈북 루트로 기능하지 못하고 해체된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남한의 언론 보도를 통한 탈북 루트 네트워크의 해체는 대단히 아이러니컬하다. 탈북 사건에 대한 언론 보도는 탈북자들의 문제를 국제적으로 널리 알려 이들의 행동에 힘을 실어 주기 위한 선의의 목적에서 비롯되었지만, 정확하게 그 반대의 결과로 귀결되었던 것이다. 말하자면 이것은, 탈북 사건의 보도로 인해 탈북 루트라는 비교적 잘 작동되던 블랙 박스가 남한의 방송 저널리스트, 더 구체적으로는 방송 카메라라고 하는 새로운 행위자의 개입으로 인해 작동을 멈춰버리고, 새로운 네트워크로 징집된 상황이라 말할 수 있다. 보다 자세히 살펴보자.
3) 두 네트워크의 접합에 의한 행위자-네트워크의 붕괴와 변형
<탈북 루트>로 구축된 네트워크에 새로운 행위자들이 개입하는데, 이들은 앞서 살펴본 북한 관련 보도의 행위자-네트워크가 블랙박스로 응축된 ‘남한의 방송 저널리스트’라는 행위자들이다. 어쩌면 저널리스트 당사자들은 이것을 북한 관련 보도의 불가피한 관행이라는 형식으로 받아들이기도 하겠지만, 사실상 이것은 정부와 정보기관이 의미 구성 과정을 주도하고 있는 대단히 특수한 형태의 블랙박스이다. 이 블랙박스는 매우 중요한 부동의 동체(immutable mobiles)를 동원하는데, 그것은 방송용 카메라라는 비인간 행위자이다. 이 가시화(可視化) 장치는 저널리스트 개인이나, 탈북자, 탈북단체 관계자 등 인간 행위자들의 의도를 넘어서는 의미를 구축한다. 관여된 모든 행위자들은 방송 카메라라는 비인간행위자를 의무통과지점(OPP)으로 하는 새로운 네트워크에 동원된다. 이 네트워크에서 애초에 번역의 중심이 되고자 의도했던 행위자는 방송 저널리스트들이며, 그들의 목적은 ‘탈북자 인권에 대한 실상을 알리고, 그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주고자 하는 것’과 ‘북한 인권 문제에 관한 세계적인 특종’을 만들어 내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들의 좋은 의도는 실현이 불가능한 것이었다. 탈북자 사건 보도에서 신문 취재보다 방송 취재가 더욱 논쟁적인 문제를 만들어 내는 이유는, OPP로서의 방송 카메라가 ‘시선의 권력’을 구성하기 때문이다. 카메라 뒤에 실재하면서, 시선의 대상이 되는 탈북자들에 대해 어떤 입장을 지니고 있는지 알지 못하는 익명의 시청자들은 판옵티콘(panopticon)의 감시자가 된다. 카메라는 카메라를 쥐고 있는 이들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영상 편집을 통해 취재 대상의 얼굴 등과 같은 개인 정보를 감추거나 감추지 않거나에 상관없이, 탈북 루트라고 하는 물리적 대상을 가시 영역으로 드러낸다. 그들이 카메라의 전원을 켜고, 그것을 탈북 루트 행위자-네트워크에 들이대는 순간, 기존 네트워크의 해체는 급속하게 진행될 수밖에 없다.
방송 카메라에 의한 탈북 루트의 공개라는 결과에 대해서 탈북자들도 알고 있었고, 제작진들도 알고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탈북 과정에 탈북자들과 함께함으로써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고, 또한 그러한 믿음을 탈북자와 탈북자 인권 단체 등의 행위자들에게 알렸을 것이다. 혹은 도움을 주는 조선족이나 한족들에게 탈북에 필요한, 그들에게는 매우 필수적인 탈북도구로서의 ‘자금’을 지원했을 수도 있다. 매우 논쟁적인 문제이긴 하지만, 탈북 과정의 동행 취재 영상 그 자체가 지닌 상품적 가치에 대한 증언들은 상당히 많다. 10년 가까이 중국 등을 오가며 탈북자 문제를 취재하고 있는 비디오저널리스트 조천현씨에 따르면(조천현, 2006), 탈북자 문제에 관심이 많은 일본 언론은 한국인 프리랜서를 고용하거나 탈북브로커들이 직접 찍은 테이프를 사기도 한다고 주장한다. 탈북브로커들은 탈북 과정의 영상을 촬영하여 한국에 있는 탈북자 가족에게 보여줄 '그림'으로 활용하거나, 일본 언론에 판매, 혹은 일부 선교 단체의 기부금 모집 홍보 등에 활용한다는 것이다. 탈북 자들을 대사관으로 밀어 넣은 후 촬영테이프를 언론에 판매하고 한국에 있는 가족에게 몇 시 뉴스 또는 몇 일자 신문을 보라고 확인시켜주고 ‘선불금’을 받는 일도 있다고 한다(김정아, 2004). 생명을 담보로 하는 위험한 상황에 놓인 탈북자들은 자신들의 위험천만한 모험을 기록하고 남한의 가족들에게 자신들의 존재 증명을 전달할 수 있는 미디어로 카메라를 받아들였을 것이다.
이처럼 대단히 다양한 방법을 활용하여 방송 저널리스트들은 탈북자와 탈북지원 단체, 조선족들을 카메라라고 하는 의무통과지점으로 이끌었다. 그리 하여 촬영이 시작되고, 탈북 루트는 시각적으로 기록되었으며, 편집을 거쳐 완성된 프로그램은 미디어를 통해 전 세계로 공개되었다. 결국, 다음 <그림 4>와 같은 방식으로 새로운 관심끌기가 시도되었던 것이다.
신분을 숨기고 숨어 지내는 탈북자들은 본능적으로 카메라가 가진 위험성을 인지하고 있다고 한다. 때문에 탈북 취재에 카메라가 동행하는 것은 대단히 친밀하거나, 탈북자들을 실질적으로 도와주지 않는 이상 허용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취재 과정에서 때로는 카메라를 숨기는 경우도 있었는데, 숨겨진 카메라가 발각되는 경우에는 취재 자체가 취소되는 경우도 많았다고 한다. MBC 채환규 PD의 2002년
방송용 카메라를 동원한 취재는 일반적으로 ‘기획 탈북’이라는 다소 논쟁적인 방법의 탈북 루트를 구축한다. 기획 탈북은 일반적으로 대규모의 탈북 과정을 언론을 통해 공개함으로써, 탈북자 문제를 이슈화시키거나, 일부 탈북지원 단체의 성과를 보여주기 위해 시도되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기획 탈북 이후에 북한과 중국 당국의 단속이 강화되면서 중국에 거주하는 탈북자들의 취업이 어려워져 더 큰 경제적 고통을 겪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이기철, 2004, 79쪽). 예를 들면, 탈북자 취재 중 중국공안에 체포돼 수감되었다가 풀려 난 오영필씨는 기획 탈북이 중국에 체류 중인 탈북주민들과 북에 남아 있는 가족들을 위험에 빠뜨릴 수 있다고 경고한다. 기획 탈북이 실적 알리기와 상업적 이익 추구를 위해 무리하게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이기철, 2004, 같은 쪽).
그런데 기획 탈북이 아니라, 대단히 선한 목적으로 접근한 ‘카메라를 가진’ 남한의 방송 저널리스트라는 행위자들이 보도 행위를 통해 또 다른 행위자들을 네트워크로 끌어 들인다. 바로 북한정부, 남한정부, 중국정부, 제3국 정부, 그리고 남한의 시청자와 북한 내 주민들이다. 이들이 카메라 뒤에 이미 실재하고 있었던 감시자의 시선들, 탈북자의 삶을 깊숙하게 변형시킬 가능성이 있는 권력의 담지자들이다. 시선 권력으로서의 카메라가 이러한 권력의 담지자들까지 네트워크로 끌어들이게 되면서, 이 사건은 결국에는 언론이라는 주권 내의 권력이 주권을 상실한 무국적자를 대할 때 발생하는 근원적인 모순성을 드러낸다. 특히 복수의 주권이 대립하고 있는 정치적 지형에서 한 쪽의 주권에서 이탈한, 그리하여 그 어느 곳에도 속하지 못하도록 바깥으로 밀려난 이들이 대립하는 또 다른 쪽의 주권과 접촉하는 과정은, 하나의 주권에서 또 다른 주권으로의 이전이라는 단순한 형태를 띠지 않는다.
아감벤에 따르면(Agamben, 1995), 국가의 주권은 법체계의 외부도 내부도 아닌 또 다른 식별되지 않는 영역을 창출함으로써 작동한다. 특히 남한의 보수 언론의 탈북 보도는 이러한 국가 권력이 작동하는 지배력을 유지시키는 ‘부동의 동체(immutable mobiles)’로서의 기능을 성공적으로 수행한다. 남한의 보수 언론에게 있어 탈북자는 말하자면, 배제된 채 포함된 존재, 즉 호모 사케르(Homo Sacere)3)이다. 남북 모두의 주권으로부터 배제되어 있지만, 동시에 여전히 ‘주권에서 벗어난 존재’로서 거기에 포섭되어 있는 이러한 모순적 존재는 이중적 예외상태(따라서 이중적 포함 상태)에 속함으로써 모든 생명적 권한을 박탈당한 벌거벗은 생명(zoe)이다. 이들은 떠나온 국가로부터도, 또 편입한 국가로 부터도 보호받지 못하는 존재들이다. 말하자면 그들을 대하는 언론 보도는 북한 난민의 인권 보호라는 외형을 가지고 있지만, 그 어떠한 체제도 그들을 보호 대상인 생명(bios)으로 다루지 못한다4).
국가의 주권적 가치와 상대적으로 밀접하게 연결된 보수 언론의 경우에는 더욱 더 그러한 관점에서 탈북자들을 다룰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언론이 탈북자의 인권 보호와 남한 공동체 안으로의 포함되기를 주장하면 주장할수록, 그들이 남한의 공동체에서 배제될 수밖에 없는 아이러니한 상황의 응축된 형태가 바로 탈북 사건 보도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모순적 관계가 현대의 국가 체제 그 자체가 지닌 근원적인 모순과도 연관되어 있다는 것이다. 슈미트에 따르면, 주권자는 스스로가 예외상태를 결정하는 자이다(Schmitt, 1922/2010, p.16). 주권자는 헌법 안에 있으면서 전쟁을 위해 국민을 동원하고 반역자에게 사형을 선고하며, 동시에 계엄을 통해 헌법 자체를 중지 시킬 수도 있는 사람이다. 따라서 주권자는 법 안에 있으면서 동시에 법 바깥에 있는 자이다. 근대적 법체체가 지닌 이러한 근원적 폭력, 즉 법적 폭력은 인간을 법질서의 체계 내에 머물도록 만들지만, 주권은 동시에 끊임없이 체계 바깥의 식별 불가능한 영역을 구축함으로써만 작동한다는 것이다(Agamben, 1995/2008). 말하자면, 탈북 사건 보도를 통해 구축되고 되고 다시 해체되는 행위자-네트워크의 과정 전체는, 법체계의 바깥으로 밀려난 이들을 그러한 식별 불가능한 영역의 존재로 만드는 과정이라고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 때문에, 탈북 사건의 보도라고 하는, 말하자면 한 주권에서 벗어나게 된 생명에 대한 다른 주권의 언론 보도라는 특수한 형태의 취재 보도 과정은, 저널리스트 개인의 선한 의도가 발휘될 여지가 별로 없는, 그리고 그러한 모순적 상황을 벗어나기 위해 취재 관행 등의 행위적 수정도 사실상 쉽지 않은 복합적인 행위자-네트워크의 구축 및 변형 과정으로 볼 수밖에 없다.
2)월간조선의 최근 보도에 따르면(박희석, 2014, 8), 현재 북한 및 통일 관련 프로그램들의 시청률은 상대적으로 높은 수준이다. AGB닐슨미디어리서치의 2014년 6월 14일부터 7월 12일 지상파 일일 시청률 자료를 보면, KBS <남북의 창>(8.7%), TV조선 <애정통일-남남북녀>(2.74%), 그리고 뉴스Y <북한은 오늘>을 제외한 다른 대부분의 북한 및 통일 관련 프로그램 시청률은 1-2%를 유지하고 있다. 이는 지상파의 경우는 동시대의 예능 프로그램과 비슷하고, 케이블의 경우는 상대적으로 ‘우수한 성적’이라고 한다. 3)아감벤이 엄밀한 문헌학적 고찰을 통해 발굴한 이 용어는, “죽여도 살인죄로 처벌받지 않지만, 희생 제물로도 바쳐질 수 없는 존재”를 뜻한다(Agamben, 1995/2008, pp.231). 여기서 사케르(Sacere)는 신성함과 동시에 저주받은 이중적 의미를 지니고 있다. 공동체로부터 배제된 호모 사케르의 지위는 희생물로 바쳐질 수 없다는 형태로 신에게 바쳐지며, 또한 죽여도 괜찮다는 형태로 공동체에 포함된다. 말하자면, 희생물로 바칠 수는 없지만, 죽여도 되는 생명이 바로 신성한 생명, 벌거벗은 생명, 호모 사케르라는 것이다. 아감벤에 따르면, 이러한 신성한 생명, 벌거벗은 생명의 창출은 곧 주권의 근원적인 활동이다. 주권자와 호모 사케르는 자신을 인간의 법(살인죄)과 신의 법(희생제물)으로부터 예외화시킨다는 차원에서 서로 밀접하게 연관된다. 아감벤은, “만일 나치 치하의 유대인 등과 오늘날에 명백하게 규정된 하나의 호모 사케르의 형상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한다면, 그것은 아마도 우리 모두가 잠재적인 호모 사케르들이기 때문일 것”이라고 주장한다(Agamben, 1995/2008, pp.231-232). 4)이희영(2013)은 이와 같은 탈북자들의 벌거벗은 생명으로서의 특징을 ‘여행하는 난민’의 사례로 다룬 바 있다. 이 연구에서는 대한민국의 보호탈북자로 영국 및 노르웨이로 재이주했던 경험이 있는 탈북자들에 대한 구술을 토대로, 탈북자들의 해외 재이주가 북한, 중국, 대한민국의 국가폭력에 대한 ‘벌거벗은 생명들’의 직‧간접적인 저항이자, 자기 정체성의 증식 및 전환 방법이 되고 있는 것으로 보고하고 있다. 분단의 장치들이 이들의 정체성 증식과 전환을 가능하게 하는 자원으로 번역되고 있는 것이다(이희영, 2013).
지금까지 우리는 탈북자 루트의 해체와 언론 보도의 관계를 중심으로, 기존에 제대로 작동되었던 탈북자 네트워크가 카메라의 시선 권력이 새로운 행위 자로 편입되면서 해체되는 과정을 살펴보았다. 네트워크에 동원된 저널리스트의 의도가 ‘탈북자의 인권 보도’였든, ‘안전한 탈북 과정에 도움을 주는 것’이었든 상관없이, 카메라라고 하는 의무통과지점을 중심으로 하는 행위자-네트워크에 의해서, 잘 작동되고 있었던 ‘탈북루트’라는 행위자-네트워크는 붕괴되고 만다. 그 결과 탈북자 루트가 공개되고, 탈북자들은 강제 북송되거나, 탈북지원 단체와 조선족들은 쫓겨나거나 일자리를 잃게 되었다. 정리하자면, 방송 카메라에 의한 탈북 루트의 붕괴는 북한 관련 보도라는 블랙박스의 개입, 즉 이미 동원하기와 역할부여 등이 완료되어 잘 작동하고 있는 행위자-네트워크가 탈북 사건의 영역에 무단 침입하여 그 네트워크를 붕괴시킨 사건으로 해석될 수 있다.
이처럼, ‘탈북루트’의 행위자-네트워크가 구축되고 변형되는 과정을 역으로 되짚어 나가다가 보면, 우리는 거기에 중심적으로 개입하고 있는 강력한 ‘번역의 중심’으로서의 국가 주권을 만난다. 정보를 독점하고, 원하는 방식으로 상상적 사건을 구성할 수 있는 이 번역의 중심이 구축한 ‘북한 관련 보도의 행위 자-네트워크’는 분단이 창조한 장치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분단이 극복된 이후에 남한의 언론은 지금보다는 자유롭게 북한 관련 보도를 할 수 있을까? 다양한 정보에 접근하여 사실 관계를 비교하여 입장들을 정리하고, 언론의 전문성과 공정성에 기반을 두고 가치의 우선순위를 체계적으로 고려하는 좋은 뉴스를 만들 수 있을까? 어쩌면 가능할 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연구에서 살펴본 것처럼 ‘행위자-네트워크의 구축’이라는 관점에 따르면, 저널리스트들과 수많은 행위자들은 힘과 의도를 지닌 또 다른 번역의 중심에 지속적으로 이끌리게 될지도 모른다. 그것은 또 다른 국가 권력일수도, 자본 권력일수도, 특정 이익 집단의 권력일수도 있다.
ANT라는 관점에서 탈북 사건이라는 특수한 보도의 사례를 분석한 지금까지의 논의에서 주목해야 하는 사실은, 언론이 지향해야 하는 것은 그것이 어떤 보도 대상에 대한 취재와 뉴스 제작이든 간에, 다름 아닌 저널리즘의 전문성 그 자체가 번역의 중심으로서 행위자-네트워크 구축을 주도해야 한다는 것이다. 번역의 중심이 국가 권력이 되거나, 자본 권력이 되거나, 혹은 특정한 정파적 세력이 되는 순간, 저널리즘의 존재 가치는 사라지고 언론 보도는 권력의 의도를 내재한 채 편향된 사회적 현실을 구성할 수밖에 없다. 만약 번역의 중심을 차지하는 행위자의 힘이 그가 독점하고 있는 정보 때문이라고 한다면, 향후 통일 이후의 언론을 위해서라도, 지금부터 지속적으로 북한 관련 정보를 언론이 보다 전문적으로 다룰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만 한다. 그것이 많은 시간과 비용이 들고, 국가 안보에 위협이 된다고 정부가 주장하더라도, 촘촘한 ‘사실성의 망(the web of facticity)’(Tuchman, 1978)을 기반으로 사회적 사실을 정당화할 수 있는 언론의 전문성을 통해서 북한 관련 정보가 재구성되어야만 진정한 상호신뢰체제를 구축할 수 있다.
오늘날 수많은 북한 인권, 탈북자, 북한 사회에 대한 담론들은 언론을 통해서 구성되고, 지속적으로 소비되고 있다. 그러나 만약 앞으로도 지금과 같은 방식으로 북한 언론 보도가 만들어진다면, 앞으로 점점 더 심각한 상황이 우려된다. 말하자면, 우리 사회는 야만스럽고, 이해할 수 없는 타자로 대상화된 북한인들과 그곳을 탈출해 온 ‘재교육 대상’으로서의 탈북자에 대한 편견을 계속 키워갈 수밖에 없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또한 탈북인에 대한 보호라는 의도가 실질적인 피해로 귀결되는 보도 행위를 계속하게 될 수도 있다. 이와 같은 북한인에 대한 왜곡된 타자화 과정과, 타자들을 우리 사회로 적극적으로 동화시키는 것에 대한 찬양이라는 관점에서, 종합편성 채널 중 하나인 채널A의 <이제 만나러 갑니다>라는 프로그램의 재현 방식은 그 이전에 방영되었던 <미녀들의 수다>와 같은 위치에 놓여 있다. 이 프로그램은, 남한의 이국적 미녀로 대상화된 이들이 얼마나 남한 사회에 잘 동화되고 있는지를 핵심적인 내용으로 삼고 있다. 이러한 인식들은 우리 속에 들어와 있는 북한인들을 언제나 우리와 동떨어진 이방인이자, 근본적 이해 불가능의 타자로만 대하는 배제의 시선이다. 그러한 배제의 시선은 동시에 내부 사회로 포함되기를 강요함으로써 통치의 예외적인 비가시영역을 창출하는 주권의 근원적인 작동원리이다. 이 배제의 시선을 구축한 당사자로서 언론의 책임은 매우 크다. 우리는 우리 사회의 욕망이 이끄는 대로, ‘아름다운 탈북 여성’의 남한 사회로의 동화를 올바른 방향의 남북 화합과 상호 협력의 길로 오해하고 있다. 만약, 그렇지 않은 대다수 탈북인들, 더 나아가 북한 주민들에 대해 만들어진, ‘이해 불가능한 이방인’이라는 사회적 편견은 해소가 될 수나 있을까? 오늘날 분단의 질서가 만들어내고 있는 단절과 몰이해의 상처는 생각보다 깊고 치명적이다. 멀지 않은 미래에, 돌발적인 형태로 도래할 수도 있는 탈분단의 시대에, 우리 사회에 남겨져 있는 그러한 단절과 몰이해는 치명적인 괴물의 모습으로 우리의 일상을 위협하게 될 지도 모른다.
ANT라는 새로운 관점에서 탈북 사건 보도의 행위자 네트워크가 구축되고 변화되는 과정을 살피고 있는 이 연구는, 그러나 원래 ANT 연구가 요청하고 있는 풍부한 실증적 사례와 세밀하고 다양한 자료들에 대한 논리적이고 체계적인 분석이 충분치 못하다. 자료와 정보의 부족은 북한 관련 연구의 가장 큰 한계인 동시에 이 연구에서 다루고 있는 중심적 주제이기도 하지만, 연구자들의 자료 수집 및 분석 능력의 부족에서 온 문제이기도 하다. 후속 연구에서는 보다 풍부한 관련 자료들을 바탕으로 현재 연구의 부족한 논거들이 보충될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