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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A 학술지
<설국열차> 움직임의 영화적 재현 Cinematographic Representation of Movement in the Snowpiercer (2013)
  • 비영리 CC BY-NC
ABSTRACT
<설국열차> 움직임의 영화적 재현

This paper focuses on different medium characteristics between graphic novel and movie, because the Snowpiercer created by Bong Joon-ho is an adaptation of a french graphic novel. We talk about the impression of reality and movement as an important feature. In the diegetic world of the movie, the train, survivors within, circulates 438,000 km of long and closed rail and its journey would be endless. This train should keep moving in order to protect the survivors not to freeze to death. This narrative hypothesis is visualized and represented on the screen by the constant movement of this train. For examples, a special device called gimbal is used to take all shots of the movie which also contains many hand-held and tracking shots. The rolling wheels of the train are shown by close-up shots. Inside the train, the main character struggles to advance towards head car, where ‘The Sacred Engine’ is to be. His actions are effectively represented in this movie using the relationship between the visible field and invisible field. All characters always move from left to right. Invisible area of left outside of the frame means the tail car and that of right means the head car. Movements from left to right connote ‘go forward’. And the Snowpiercer frequently uses the depth of field of the screen. Characters move from deep inside of the screen toward the surface of it, in other words, toward the spectator. By these movements, we can find a straight line. There is also a movement performed on the train running on curved rail. Finally, we find a movement from inward to outward of the train.

KEYWORD
Bong Joon-ho , Snowpiercer , cinematographic representation , movement , champ , hors-champ , frame
  • 1. <설국열차>에 대해 말한다는 것

    2013년 여름 가장 많이 언급된 영화라면, 단연 봉준호 감독의 <설국열차>일 것이다. 감독 자신부터, 기자, 평론가, 관객까지 너나할 것없이 누구나 한 마디쯤 ‘말을 했고’, 이 말들은 퍼나름을 통해 세상을 시끄럽게 했다. 이 북새통 속에서 비평가 정성일은 “영화가 끝난 다음 집으로 돌아가는 시간, 다시 말해 영화와 내가 갖는 시간적인 거리가 확보되어야만 비로소 영화 비평이 시작” 1) 되는 것이라면서, 비평은 창조적인 견해가 드러나는 작업임을 강조한 바 있다.

    영화에 대해 말하기 위해서는 영화를 사랑하는 일을 멈추어야 한다. 그러나 동시에 여전히 사랑해야 한다. 열렬히 사랑했으나, 적어도 글을 쓰는 순간만큼은 우리의 ‘알려는 욕망 혹은 보려는 욕망’을 의심하면서, 영화를 멀리해야 한다. 이는 더 이상 상대를 사랑하지 않게 되어 그를 멀리하려는 의도와는 다르다. 사랑하는 대상을 보다 더 ‘잘’ 사랑하기 위해서는 종종 다른 관점의 사유가 필요하며, 다른 면을 발견하는 일도 필요하다. 그러려면 잠시 그 관계를 끊어내어야 한다. 우리는 영화를 더 사랑하기 위해, 잠시 단절하는 것이다. 또한 우리는 감정적으로 치우칠 수밖에 없으므로, 뿐만 아니라 대상에 대해 말할때 이 감정적 치우침이 자연스레 드러나므로, 이 사실을 잊어서는 안된다. 지배당해서는 안 된다. 우리에게 필요한 작업은 “시네필cinéphile 을 멀리하는 것이 아니라 감시하는 것이다. 결국 시네필인 것, 시네필이 아닌 것, 둘 모두, 영화를 말하기 위한 필연 조건이다.” 2)

    과연 <설국열차>에 대한 그 많은 말들이 하지 않았던 말이 남았을까? 영화와 거리를 확보하면서, 단절하면서, 작품에 대해 무엇을 말할수 있을까? 이 글은 바로 이 지점에서 출발한다.

    1)정성일, 「정성일이 설국열차를 본 후」, 『GQ』, 2013.9.  2)크리스티앙 메츠, 『상상적 기표』, 이수진 옮김, 문학과 지성사, 2009, 36쪽. 시네필의 어미suffix에 해당하는 ‘phile’이 라틴어 어원상 ‘열렬한 사랑’을 의미한다는 점을 상기하면서 메츠의 문장을 읽기를 권유한다.

    2. 정지 이미지에서 움직이는 이미지로의 전환

    봉준호 감독은 <설국열차>에 대한 호불호가 극단적으로 나뉘는 현상을 두고, 프로젝트가 4-5년 전부터 알려져 있었기에 “이미 프라이팬이 달궈질 대로 달궈진 상태에서 음식을 놓는 것과 같은 상황” 3) 이라 했다. (프라이팬이 약간 달궈진 상태라 비유할 만한) 5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한국에 초청된 <설국열차>의 원작 작가들과 봉준호 감독의 대담을 만날 수 있다. 그 자리에 참석했던 이동진 기자, 봉준호 감독, 프랑스 작가들 모두 앞으로 만들어질 영화를 이야기했고, 어떻게 만화를 영화로 전환할 것인가의 문제를 궁금해 했었다. 4) 이후 필자는 영화화를 전제로 하는 그래픽노블 <설국열차>의 분석 글을 발표 하였는데, 만화와 영화의 매체적 특성을 주된 논의로 설정하면서 움직 이는 이미지로 구체화될 공간의 문제를 사유하였다. 5)

    요컨대 봉준호 감독은 만화를 영화로 전환하는 작업에서 첫째, 폐소공간의 현실적인 영화적 재현과 둘째, 추위, 답답함, 공포 등의 감각적이고 정서적인 차원을 매개하는 물리적 재현을 주목한 것이다. 사실 만화에서 보는 기차와 영화에서 보는 기차를 두고, 각각 느끼는 관객의 ‘실감實感’정도는 현저히 다르다. 이 차이의 근간에는 ‘현실 효과impression of reality’가 자리하고 있다.

    영화는 (만화, 회화, 사진, 연극, 뮤지컬, 오페라 등의) 그 어떤 매체 보다 훨씬 더, 현실과 아주 유사한 무엇이라는 감정을 느끼게 한다. 아니 현실이라고 믿게 만드는 힘이 있다. 크리스티앙 메츠에 따르면 영화는 상당한 신뢰를 주는 그만의 현존 방식이 있다. 지각에 직접적 으로 작용하는 영향력은 매우 강력한 투사의 힘을 내포하는데, 관객은 스크린에서 살아 움직이는 대상을 경험하면서 진짜라고 믿는다. 7) 이과정에는 분명 (만화가 지면을 기반으로 하는 정지 이미지인 반면) 영화는 스크린에 영사되는 움직이는 이미지란 특성이 작용할 것이다. 움직임movement이야말로 강력한 현실 효과를 만드는 원동력이다.

    “형태의 외관과 움직임의 현실성의 결합은 구체적으로 살아 있다는 감정을 일으키며 객관적으로 현실을 지각한다는 생각을 갖게 한다. 형태는 움직임에 객관적 짜임새를 제공하고, 움직임은 형태에 육체를 (혹은 생명을) 제공한다.” 8) 영화가 우리에게 보여주는 기차는 현실의 기차를 닮은 초상의 형태로 머무는 것이 아니라, 구체화시키는 움직임을 통해 현실처럼 지각된다는 것이다. 이때 움직임은 비물질적immaterial이며, 현실적으로도 만질 수 없고 단지 눈으로 지각하는 것이므로, 영화에는 움직임이 실제적으로 현존한다고 하겠다. “관객이 스크린에 나타나는 움직임을 볼 때, 이는 단순히 그럴듯한 재현의 일종이 아니라 온전히 현실성을 확보한 움직임” 9) 그 자체이다. 만화와 영화 <설국열차>의 가장 다른 특성은 기차가 ‘움직이는 현실성’의 차이일 것이다.

    3)정용인, 「봉준호 인터뷰, 완전히 다른 세계에 열 받는 감정」, 『경향신문』, 2013.8.  4)필자는 2008년 5월 서울국제만화애니메이션 페스티벌(SICAF)이 주최했던 <설국열차 만화, 한국에서 영화를 만나다>라는 대담회를 기획, 운영했으며 현장에서 통역을 담당했 다. 이동진 기자가 진행을 맡았고, 뱅자맹 르그랑Benjamin Legrand(글 담당), 장 마르크 로셰트Jean-Marc Rochette(그림 담당), 봉준호 감독이 참석했다. 앞으로 언급될 대담 내용은 당시 필자가 기록했던 내용에 기초하였음을 밝힌다. 원작자와 감독의 공식적인 재회는 <설국열차> 영화 개봉에 맞춰 2013년 8월 부천국제만화축제(BICOF) 뿐만 아니라, 프랑스 파리에서 다양한 기자회견을 통해 이루어졌다. 영화 내에서 두 작가의 역할도 익히 소개된 바 있는데, 엑스트라 역할 뿐만 아니라, 그림 작가 장 마르크 로셰트의 경우 타냐 아들 사진을 비롯한 영화의 중요한 기록 이미지들을 직접 창작한 바 있다. 로셰트의 <설국열차>와 관련된 그림 전시회가 2013년 8월 베를린 주재 프랑스문화원과 2013년 10월 파리 주재 한국문화원에서 개최되었다.  5)이수진, 「만화 설국열차의 영화화에 관한 공간 중심 연구」, 『프랑스문화예술연구』 25 집, 2008.  6)<설국열차 만화, 한국에서 영화를 만나다> 중에서.  7)크리스티앙 메츠, 『영화의 의미작용에 관한 에세이 1』, 이수진 옮김, 문학과 지성사, 2011, 14-17쪽.  8)Edgar Morin, Le cinéma ou l’homme imaginaire, Paris, Editions de minuit, 1956, p.123.  9)크리스티앙 메츠, 앞의 책, 27쪽.

    3. 원 무브먼트, 직선 무브먼트 그리고 곡선 무브먼트

    일반적으로 영화 프레임frame 10) 안에 속한 공간을 ‘화면영역champ’ 이라 지칭하고, 프레임 밖의 공간을 ‘외화면영역hors-champ’이라 지칭 한다. 우리는 극장에서 화면영역을 즉각적으로 지각하는데, 가시적인 공간이라고도 부를 수 있는 이 공간은 프레임 내부로 깊게 들어가는가 하면, 프레임 좌우로 길게 연장되기도 하고, 혹은 사방으로 확장되기도 한다. 다시 말해 테두리로 잘려지는 가시적 공간이 그 끝선에서 멈추지 않고 틀을 넘어 연결된다는 것이며, 그곳에는 비가시적이긴 하지만 분명 가시적 공간과 동질적인 외화면영역이 존재한다. 노엘 버치는 외화면영역을 여섯 종류로 구분 11) 하는데, 우선 프레임의 상하좌우에 해당하는 네 개의 외화면이 있다. 다섯 번째는 카메라 렌즈 뒤쪽 (관객 쪽)의 외화면이고, 여섯 번째는 화면영역에 포함된 비가시적인 공간들, 가령 닫힌 문 너머, 기둥 뒤, 인물 뒤쪽 등에 해당한다.

    <설국열차>는 작품 전체적으로 화면영역과 외화면영역의 긴밀한 협력 관계를 원동력으로 삼는다. 기차 꼬리 칸에서 엔진 칸으로 이동하는 인물들의 방향은 거의 항상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제시되는데, 화면 영역의 좌측 외화면영역은 꼬리 칸을, 우측 화면영역은 엔진 칸을 의미하는 것이다. 또한 길고 좁은 폐소공간 12) 에서 이동한다는 사실을 강조하기 위해 화면영역의 깊이를 활용하는데, 이때 짝을 이루는 것은 카메라 렌즈 뒤쪽의 외화면영역이다. 화면영역 저 안쪽에서 관객 쪽을 향해 인물들이 달려오는 상황 혹은 난투극 속에서 화면영역 깊숙한 곳으로 후퇴하는 장면을 떠올려보자. 뿐만 아니라 <설국열차>는 영하 80도의 혹한이라는 디제시스 맥락 13) 에서 화면영역의 비가시적인 공간 들을 십분 활용한다. 즉 기차의 굳게 닫힌 문 너머에는 나가자마자 곧 얼어 죽게 되는 죽음의 공간이 자리하고 있다.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언제나 철문 너머 도사리고 있는 죽음의 공간과의 대립 속에서 기차 내부라는 폐소공간이 의미를 획득하는 것이다.

       1) 순환반복과 이동의 대비

    설국열차의 지배층은 운행거리 438,000km를 한 번 순회하는 것으 로, 다시 말해 ‘예카트리나 브리지’로 다시 돌아올 때까지를 1년이라는 시간적 지표로 설정한다. 교실 칸의 학습 프로그램에서 동그란 원을 따라 기차가 돌고 도는 도식을 떠올려보자. 2014년 지구온난화 방지를 위한 CW-71이 살포된 시점으로부터 17년 동안, 다시 말해 열일곱 바퀴를 도는 동안, 기차는 한 번도 정차하지 않았다. 외부 세상의 극한 추위로부터 살아남기 위해서는 기차 안으로 바깥 공기가 들어와 서도 안 되며, 14) 멈춰서도 안 되며, 끊임없이 달려야 한다. 디제시스적 맥락에서 ‘순환반복의 원 무브먼트movement’ 15) 가 작품의 태생부터 전제되어 있는 것이다.

    지속적으로 달리는 기차의 움직임은 <설국열차>에서 실제로 열차가 흔들리는 것처럼 느끼게 만드는 특수효과장치 짐벌Gimbal에 상당 부분 기대고 있다. 제작발표 영상에서 여러 번 소개된 이 세트는 약 500미터나 되는 26개 칸들의 연쇄를 아주 효과적으로 활용할 수 있게 도와준다. 16) 기차가 달리는 그 흔들리는 느낌, 죽 이어진 좁고 긴 칸칸의 인상 그리고 곡선 주로를 휘면서 앞 칸의 공간이 저 멀리 보이는 역동성까지 드러낸다. 여기에 핸드헬드 연출, 고속으로 움직이는 열차 바퀴의 근접 촬영, 빠르게 지나가는 외부 설경, 엔진 사운드, 얼음을 가르는 사운드 등이 덧붙여져 화면영역에 기차 내부만 제시되는 씬scene에서도 언제나 외화면영역에 순환반복의 원 무브먼트가 내재하고 있는 것이다.

    <설국열차> 도입부 타이틀 시퀀스 내내, 화면영역 중앙에는 글자들이 위치하고, 글자들 위로 기차의 움직임을 암시하는 검은 물결이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이동한다. 50초 후 보이스 오버로 2014년 7월 1일 CW-71의 살포 소식을 전한다. 영화의 핵심 내러티브는 꼬리 칸에 속한 커티스와 그의 동료들이 감옥 칸, 단백질 블록 생산 칸, 물 공급 칸, 온실 칸, 수족관 칸, 교실 칸, 객실 칸, 라운지 칸, 미용실 칸, 수영장 칸, 사우나 칸, 클럽 칸, 아편굴 칸 그리고 엔진 칸으로 점진적 으로 이동하는 직선적 무브먼트를 내포한다. 열차를 움직이는 제1요소 이자 생존자들의 생명과 직결되는 엔진이 가장 앞머리에 위치한다는 조건이 바로 이 직선 이동을 가능케 하는 내러티브적 전제이다. 앞에 서도 언급하였듯이 <설국열차>는 이 직선 무브먼트를 외화면영역의 좌우를 활용하여 시각화한다. 꼬리 칸의 인물들을 좌측에 배치하고 앞쪽 칸 인물들을 우측에 배치하는 기본 미장센에서 시작하여, 이들이 서로 대립할 때 카메라 자체의 움직임이 좌측에서 우측으로 이동하는 트래킹을 예로 들 수 있다. 혹은 화면영역의 후방에서 카메라 렌즈 뒤쪽으로 이동하는 직선 무브먼트도 생각할 수 있다.

    <설국열차>를 계급투쟁의 영화로 해석하는 입장은 이 직선 무브먼트에 초점을 맞추는 경우인데, 자리의 이동이 곧 시스템 질서의 혼란을 야기하는 일임을 직접적으로 언급하는 메이슨의 연설 장면이 이해석의 정당성을 뒷받침하고 있다. 이 씬의 첫 번째 숏에서 메이슨은 카메라에 아주 가까운 근경에 위치한다. 심도는 얕은 편이며, 메이슨은 정면 바스트 숏으로 제시된다. 그런데 흥미로운 지점은 바로 그다음 리버스 숏reverse shot의 미장센이다. 이어 붙는 두 번째 숏은 메이슨이 꼬리 칸의 사람들을 바라보는 시점으로 제시된다. 다시 말해 근경에 메이슨의 뒷모습이(바스트 숏), 중경과 원경에 군집한 사람들이 정면을 보며 앉아 있다. 앞 숏에 비해 심도는 상대적으로 깊은 편이며 저 멀리까지 이어진, 소실선을 따라 소실점으로 수렴하는, 열차 칸들이 보인다(짐벌로 실현된 열차의 흔들림에 따라 화면이 흔들린다). 이어지는 연설 장면, 커티스를 비롯한 다양한 인물들의 바스트 숏이 이어진다. 연설 내용은 대략적으로 (앤드류가 던진 신발 한 짝을 손에 들고) ‘신발의 위치는 발이다. 나는 머리이고 여러분은 발이다. 모든 것에는 정해진 위치가 있다. 나는 앞쪽 칸에 속하고, 여러분은 꼬리 칸에 속한다’로 요약할 수 있다. 나는 앞쪽 칸에 속하고 여러분은 꼬리 칸에 속한다는 대사와 여기에 싱크로나이즈되는 메이슨의 손짓들은 외화면영역에 위치한 앞쪽 칸과 화면영역에 위치한 꼬리 칸의 대비를 강조한다. 다시 말해 관객의 독해 과정에 직선 무브먼트를 그려주는 것이다.

    직선 무브먼트가 가장 적극적으로 미장센 된 부분은 커티스와 동료 들이 처음 반란을 일으키는 시퀀스이다. 문 개폐장치를 무력화하기 위해 드럼통을 연결해 만든 브리지bridge를 숨기고 군중이 모여 있다. 화면영역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군인을 향해 빠르게 움직이는 커티스, 오른쪽을 향한 커티스의 측면 클로즈업, 그의 이마에 겨눠진 총구, 이어지는 숏들, 심도 깊은 화면영역으로부터 외화면영역으로 정면 돌진 하는 브리지, 위에 타고 있는 커티스의 정면 숏 혹은 반대로 화면영역 안으로 더 깊숙이 돌진하는 브리지, 위에 타고 있는 커티스의 후면 숏. 좌우뿐만 아니라 앞뒤를 최대한 활용하는 이 시퀀스는 직선 무브먼트가 그야말로 매력적으로 발산되는 영화적 재현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2) 충돌과 교차

    커티스와 동료들의 반란, 여기에 합류하게 된 남궁민수와 요나 일행은 앞을 향해 전진하는 것이 목적이다. 앞으로 앞으로, 그런데 이디제시스적 직선 무브먼트는 물 공급 칸에 이르렀을 때 다른 국면을 맞이한다. 반란을 시작했던 일행의 숫자가 나뉘면서(길리엄과 함께 잔류하는 일행, 커티스와 전진하는 일행), 주요 인물들의 사망자가 늘어 나면서, 점점 관심사가 커티스 일행의 반란 성공 여부와 이를 저지하 려는 지배층과의 충돌 혹은 개인 간의 충돌로 전환되는 것이다. 앞서 언급했던 드럼통 브리지 시퀀스처럼 혹은 반란군과 (복면을 둘러쓴) 지배층 비정규군의 예카트리나 브리지 시퀀스처럼, <설국열차>의 전반부 충돌이 집단 간의 충돌로 재현되어 있다면, 중반부에서는 개인 간의 충돌이 강조된다. 교실 칸에서 커티스 일행이 역공격을 받는 시퀀스 이후, 기차가 곡선주로를 달릴 때 각기 다른 칸에 있는 커티스와 프랑코가 마주보고 총격을 벌이는 장면을 떠올려보자.

    열차가 뱀처럼 휘면서 원 무브먼트와 직선 무브먼트가 서로 교차하여 이뤄내는 변주 무브먼트는 알파벳 U자와 같은 곡선의 형태를 이루 면서 제3의 유형을 제시하고 있다. 여기에 교차 통합체라는 형식이 추가된다. 교차 통합체alternating syntagm란 추격하는 자와 추격당하는 자의 이미지들처럼 각기 다른 두 계열이 번갈아 교차되는 편집배열을 지칭하는 것으로서, 동시성의 의미를 내포 17) 하고 있다. 앞으로 나가는 커티스와 그를 쫓아가는 프랑코를 번갈아 보여주는 방식을 뜻한다. 각 인물이 속한 공간은 다르지만 시간상으로는 동시발생적인, 이 특징적인 통합체는 영화의 매체적 한계 때문에 탄생한 형식으로서, 이미지들은 물리적으로 단선 위에 일렬로 놓인다고 하더라도, 관객의 독해 과정 속에서는 화면영역과 외화면영역의 긴밀한 통합이 요구된다. 화면영역에서 제시되는 프랑코는 외화면영역에 있는 커티스 일행을 향해 맹렬히 움직이는 것이며, 다음 숏에서 화면영역으로 들어온 커티스는 외화면영 역에 있는 프랑코의 총알을 피해 빠르게 앞으로 움직이는 것이다.

    게다가 곡선의 무브먼트 혹은 추격의 교차 통합체 중심에 있는 커티스와 프랑코는 집단의 전쟁에서 사랑하는 가족이 희생당하는 내러 티브적 배경을 갖고 있다. 예카트리나 브리지 충돌에서 동생처럼 아끼는 에드가를 잃은 커티스와 친형제를 잃은 프랑코. 이 두 인물은 동질적인 감정, 즉 분노와 절박감에 사로잡힌 개인이다. 프랑코는 동생을 죽인 요나에 대한 복수를 위해 그 일행을 ‘미친 듯이 집요하게’ 쫓아가고, 커티스는 모든 희생을 감수하고 반드시 엔진 칸에 도달하려고 한다. 그리하여 커티스가 마침내 엔진 칸 속으로 들어갈 때까지 아니 들어간 이후에도 이 두 계열의 추격전은 끈질기게 이어진다.

    이제 <설국열차>의 종반부에서 원, 직선, 곡선의 무브먼트는 또 다른 국면을 맞이하는데, 지금까지 가능한 최고 속도로 이동하던 직선의 무브먼트가 멈춰 서기 때문이다. 화면영역 가득한 엔진 칸의 닫힌 문 (그 너머는 외화면영역으로서 아직까지는 위대하고 영원한 엔진, 그리고 미스테리한 윌포드를 숨기고 있다) 앞에서 커티스가 여태껏 지나온 열차 칸들을 되돌아본다. 딥 포커스로 저 깊숙한 곳까지, 어찌 보면 그 소실선을 따라 꼬리 칸까지 계속 이어질 것 같은 화면영역은 지금까지 작품의 원동력이 되던 직선의 무브먼트에 끝을 암시하는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리고 닫힌 문이 열리면서, 원 무브먼트가 전면에 등장한다. 물론 작품 내내 기차는 달리고 있었다. 438,000km의 18배(요나가 열일곱에서 열여덟이 되는 순간)인 7,884,000km를 순환하면서 멈추지 않고 달리고 있었다. 이를 가능케 한 ‘성스러운 엔진’이 직접적이고 가시적인 형태로 둥그렇게 시각화되는 것이다. 동시에 윌포드와 커티스의 만남은 모든 종류의 물리적 무브먼트를 정지시킨다. 이 시퀀스에서 우리는 화면영역에 집중하게 되며, 카메라의 움직임은 거의 잦아지고, 사방은 조용해지며, 편집리듬 역시 느려지고, 요컨대 정적이 된다. 반면 서사적 주제의 맥락에서는 (부정적 의미에서의) 순환반복이 강조된다. 꼬리 칸의 지도자 길리엄과 엔진 칸의 지도자 윌포드의 관계가 밝혀지며, 숭배했던 대상과 타도하려던 대상이 결국 한 통속이 되어 버린다. 이를 깨닫게 된 커티스의 내적 붕괴가 발생하면서 변화를 이끌던 중심인물이 무너지는 상황은 결국 혁명과 변화의 실패를 의미한다. 이제 세상은 예전과 똑같이 반복될 것이다. 기차 내부의 움직임은 멈추는 반면, 기차라는 거대한 덩어리의 움직임은 반복되는 바로 이 지점에서, <설국열차>를 기존 시스템을 향한 비판 담론으로 해석할 수 있다.

    10)자크 오몽은 프레임의 종류를 두 가지로 구분하는데, 실제로 만질 수 있는 테두리, 가령 액자 혹은 스크린 테두리와 같은 오브제로서의 프레임objet-cadre, 그리고 만질 수 없는 테두리, 가령 이미지의 끝 지점을 의미하는 한계로서의 프레임cadre-limite을 설명 한다. 후자의 경우 “이미지를 중단시키고, 이미지가 아닌 것으로부터 분리시켜 화면영 역을 정의하여 테두리 밖의hors-cadre 다시 말해 외화면영역을 설정한다.” 자크 오몽, 『 이마주』, 오정민 옮김, 동문선, 2006, 194쪽.  11)Noël Burch, Prxis du cinéma, Paris, Gallimard, 1969, p.30.  12)화면영역은 시각적이면서 동시에 추상적인 영역이지만, 언제나 스크린과 화면비율이라는 물질적 토대 위에 자리한다. 앞서 언급했던 봉준호 감독의 인터뷰에서 정서적 차원을 영화적이고 물리적으로 재현하는 방법을 고민한다고 했는데, 그가 선택한 <설국열 차>의 1.85:1 화면비율이 사례 중 하나일 것이다. 또한 체코의 스튜디오에 설치했던 26 개의 열차 칸 세트, 기차의 움직임을 재현할 수 있는 특수효과장치 짐벌 등도 폐소공간의 영화적 재현을 위한 물리적 토대에 포함된다.  13)디제시스diègèsis 개념은 영화학자 에티엔 수리오Etienne Souriau가 아리스토텔레스와 플라톤의 개념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면서, 이후 영화 연구에 널리 사용되었다. 이야기의 화법을 디제시스와 미메시스mimesis로 구분하여, 그 서술 측면이 강조될 경우 디제시 스, 재현 측면이 강조될 경우 미메시스라 정의하는데, 디제시스는 상술된 이야기란 개념으로 영화에 적용된다. 이야기의 외연적 요소(연기, 대사, 배우, 의상, 장소 등)에 의해 구성되는 픽션 세계를 의미하고, 서사가 진행되는 동안 서서히 구축되는 것이 특징 이다. <설국열차>의 디제시스에 관한 자세한 설명은 이수진, 『이미지들 너머』, 그린비, 2013, 59-73쪽을 참조하기 바란다.  14)영화 초반부, 외부 공기에 노출되면 인간의 몸이 어떻게 되는지 매우 효과적인 연출로 제시하는 씬이 있다. 아들을 빼앗기자 신발을 던져 대항한 앤드류의 팔을 기차 밖으로 잠시 내밀었다가 동파시키는 집행 장면을 떠올려보자.  15)무브먼트movement를 한국어로 표현하지 않고 굳이 음차音借한 것은 이 글의 맥락상 이동, 운동, 움직임, 변화 등의 다의성을 모두 살리고자 하는 의도 때문이다.  16)<설국열차>에 관한 봉준호 감독의 직접적인 설명은 2013년 9월, 제29회 프랑스 도빌 아메리칸 영화제 기자회견과 프랑스 파리 한국문화원 기자회견 영상을 참조하였다.  17)참조 - 크리스티앙 메츠, 앞의 책, 128쪽.

    4. 안에서 밖으로 움직인다는 것

    길리엄과 윌포드가 순환반복의 원 무브먼트를, 커티스가 이동의 직선 무브먼트를 상징하는 인물이라면, 결말부분에서 강조되는 남궁민수와 요나는 기차 내부에서 외부로 나아가려는 움직임을 상징하는 인물 이라 하겠다. 사실 <설국열차>의 전반부와 중반부에서 간헐적으로 열차의 내부와 외부의 대조를 드러내는 장면들이 있다. 반란군과 정규군의 첫 충돌이 끝나고 커티스 일행이 처음으로 창 밖 풍경을 보는 씬에서, 외부 세상은 여전히 얼어있다고 길리엄의 대사를 통해 설명되지 만, 그 풍경만큼은 하얗게 빛이 난다. 기차 내부는 더럽고 어둡고 좁고 낡았으나 외부는 반짝이며 깨끗하고 드넓다. 스시바에서 창문 너머로 밖을 보는 장면, 남궁민수가 예카트리나 다리를 지나면서 바라보는 장면 등 기차 내부와 외부의 어둠과 밝음의 대조, 좁고 넓음의 대조, 삶과 죽음의 대조 등은 서정적인 음악과 싱크로나이즈 되면서 기차 내부의 혼란스러움을 더 극명하게 드러내는 것이다.

    그리고 결말, 기차는 계속 달리지만 기차 안의 모든 움직임이 멈추려는 순간, 변화의 희망은 좌절되고 기존의 질서가 반복되려는 순간, 놀라운 파괴력을 가지고 새로운 움직임이 등장한다. 갇혀 있었기에, 갇혀 있을 수밖에 없었기에, 생각조차 할 수 없었던 불가능의 움직임, 즉 밖으로의 움직임이다. 지금까지의 원, 직선, 곡선의 무브먼트 특히 직선의 무브먼트가 단선적인 방향성을 갖고 있는 데 반해, 안에서 밖으로의 새로운 움직임은 방향성이 부재한다. 그것은 전복에 따른 결과 로서의 무브먼트이며, 곧 방향성이 정해지지 않은 자유와 가능성의 움직임이다.

    첫머리에서 밝혔듯이 영화 비평이란 창조적인 견해를 체계적으로 말하는 작업이다. <설국열차>에 관한 수많은 담론이 이미 세상에 쏟아져 나온 것이 사실이며, 그 다양한 논의들이 다루지 않았던 말을 찾아내기란 쉽지 않다. 이러한 맥락에서 다만, 다양한 종류의 무브먼 트를 따라가다 보면 밖으로 나가는 움직임이 대단히 논리적인 귀결일 수밖에 없으며, 나아가 봉준호 감독의 철학이 내포된 궁극적인 움직임 이라 ‘말하고자’ 한다.

    촬영 방식 내부에는 이미 내포 구조가 포함되어 있다. 형식과 내용은 언제나 밀접하게 관련된다. 창작자가 자신만의 독창적 작품을 만드는 과정에서, 형식을 다듬고 세련되게 만드는 작업을 통해 내용과 주제를 담아내기 때문이다. 만약에 시네아스트가 변혁을 환기시키고자 한다면, 디제시스의 구축과 영화적 재현을 통한 형식화를 동시에 고려 하면서 내포시키는 방법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비평의 몫은 이모두를 동시에 사유하는 작업이어야만 할 것이다.

참고문헌
  • 1. 이 수진 2013 『이미지들 너머』 google
  • 2. 자크 오몽 2006 『이마주』, 오정민 옮김 google
  • 3. 크리스티앙 메츠 2009 『상상적 기표』, 이수진 옮김 google
  • 4. 크리스티앙 메츠 2011 『영화의 의미작용에 관한 에세이 1』, 이수진 옮김 google
  • 5. BURCH Noel 1969 Prxis du cinema google
  • 6. MORIN Edgar 1956 Le cinema ou l’homme imaginaire google
  • 7. 이 수진 2008 ?만화 설국열차의 영화화에 관한 공간 중심 연구? [『프랑스문화예술연구』] Vol.25집 google
  • 8. 정 성일 2013 ?정성일이 설국열차를 본 후? [『GQ』] google
  • 9. 정 용인 2013 ?봉준호 인터뷰, 완전히 다른 세계에 열 받는 감정? [『경향신문』] goog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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