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paper examines the meta-cognition process the meta-cognition process of KAP learners of Korean during the writing revision process by looking at three different factors: author variables, assignment variables, and strategy variables. The author variables are the way in which the author’s attitude and Korean ability are used in the revision process. The assignment variables are the way in which the revision process is affected by the nature of the writing assignment and its standards for completion. The strategy variables refer to the strategy the author chooses to complete the task to supplement their writing ability.
This paper is important because it examines the meta-cognitive variables which take place during the writing revision process, searching for knowledge which can be used in the writing training of KAP learners of Korean language.
본 연구는 이미 완성된 초고를 다시 고쳐 쓰는 과정을 ‘수정(Revision)’으로 규정하고, 학문 목적 한국어 학습자의 쓰기 수정 과정에서 나타나는 상위인지 작용의 양상을 살피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이를 위해 학문 목적 학습자 3인의 쓰기 수정 단계에서 얻어진 사고구술 프로토콜과 면담 자료를 분석할 것이다.
‘수정(Revision)’은 텍스트의 질적 완성도를 높이기 위한 필수적인 작업이다. 이 단계에서는 초고 작성 단계에서 발생하는 여러 인지 작용 이외에도 초고를 평가하고 문제를 해결하는 인지 작용이 추가로 요구되기 때문에, 조금 더 복잡한 수준의 인지‧상위인지적 작용이 일어난다(정희모, 2008; Emig, 1971; Murray, 1978; Sommers, 1980; Fitzgerald, 1992).
학문 목적 한국어에서는 특히 쓰기에 대한 요구가 높다. 학업 수행의 결과가 보고서 쓰기로 평가되기 때문이다. 보고서 쓰기는 기존의 학술적 텍스트를 비판적으로 읽고 각 자료의 내용을 통합하여 새로운 학술적 텍스트를 생산해 내는 능력이다. 많은 연구자들은 학문 목적 쓰기 능력이 숙달도 뿐만 아니라 비판적 사고력이나 학업 기술을 포함한다고 말한다. 이 능력은 또한 비교적 단시간 내에 많은 양의 추상적 어휘 및 내용 지식을 처리할 것과, 과제에 대한 개인의 선호도와 상관없이 주어진 텍스트를 읽고 내면화 할 것을 요구한다. 이와 같은 특성 때문에 학문 목적 학습자들이 느끼는 인지적 부담은 일반 목적 쓰기에서보다 더 크다(김정숙, 2000; 최은지, 2009:2).
이러한 배경 가운데 본 연구에서는 학술적 쓰기에서의 필자의 인지적 작용에 대해 관심을 갖고자 한다. 특히 학문 목적 쓰기에서 학습자 스스로가 끊임없이 자신에게 동기를 부여하고 쓰기 전략을 개발할 수 있게 하는 원동력을 상위인지로 보고, 쓰기 수정 과정에서 얻어진 학습자 사고구술을 분석하여 상위인지 특성을 살필 것이다. 이와 같은 연구는 학문 목적 학습자를 위한 쓰기 교육에 유용한 시사점을 제공할 것이다.
쓰기에서 수정(Revision)에 대한 정의는 크게 두 가지 관점에서 생각해 볼 수 있다. 쓰기 전체에서 발생하는 지속적인 텍스트 변화 과정을 모두 수정으로 보는 적극적 입장과 초고에 가하는 고쳐쓰기 행위만을 수정으로 보는 소극적 입장이다(Hume, 2004:143-144). 전자의 관점은 수정을 곧 쓰기와 동일시하는 입장으로 쓰기 행위가 갖는 회귀성을 잘 설명해준다. 그러나 이 관점의 수정은 쓰기의 전 과정에서 일어나는 것으로 아이디어가 생성되는 차원의 인지 층위와 이미 생성된 아이디어가 수정되는 차원의 인지 층위가 잘 구분되지 않는다. 따라서 연구를 위한 객관적인 관찰이나 논의가 어렵고 교육적 접근 역시 쉽지 않다. 후자의 관점은 쓰기 과정을 분절적으로 나누고 수정의 의미와 범위를 축소시킨다는 제한점이 있다. 그러나 이 관점은 상대적으로 효율적인 교육적 접근이 용이하다.
후자의 관점에서 보는 수정은 의미적으로 완결된 하나의 텍스트를 대상으로 전체적 검토를 하는 과정이다. 이 과정에서 필자는 객관적인 독자가 되어 자신의 초고를 대하게 된다. 때로는 이미 객체화 된 텍스트의 의미를 주관적으로 재해석하기도 하고, 엄격한 평가자가 되어 비판을 가하기도 하다. 그리고 때로는 비판을 수용해 텍스트의 일부를 삭제하거나 재 작성하기도 한다. 이 과정에서는 초고 쓰기에서 사용했던 인지적 활동이 모두 활용되면서도 한편으로 초고 쓰기와 구별되는 인지적 활동이 첨가된다(정희모, 2008:337-341).1)
현장에서는 일반적으로 초고를 대상으로 수정 작업을 하는 ‘후자’의 단계에서 교육적 개입을 시도한다. 이는 교육의 효율성 측면을 고려한 결과이다. 그렇기 때문에 ‘피드백 제공 이후의 쓰기 단계’로 이해되는 쓰기 단계가 교육에 있어 직접적인 대상이 되는 경우가 많다. 각자 모어 배경과 학습 스타일이 다른 학습자는 초고 쓰기에 걸리는 시간이나 사용 전략도 다르기 때문에 초고 쓰기를 수업에서 교사가 모두 다루기란 현실적으로 매우 어렵다(전형길, 2013:271). 따라서 학문 목적 학습자와 같이 이미 기본적인 언어 숙달도와 쓰기 지식이 담보되어 있는 학습자의 경우 더욱 더 수정을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교육 방식이 효율적인 접근이 될 수 있다.
Bereiter & Scardamalia(1987), Flower & Hayes(1981), Hayes(1996) 등은 쓰기에서 인지적 행위가 가능하도록 조정하는 정신적 기능을 상위인 지로 보았다. 그리고 상위인지를 활용하여 필자가 지식을 운용하는 과정을 곧 쓰기 능력으로 보았다.
Tribble(1996:67~68)은 쓰기 지식을 내용 지식(content knowledge), 맥락 지식(context knowledge), 언어 지식(language system knowledge), 쓰기 처리 지식(writing system knowledge)으로 구분하였다. 내용 지식은 주제에 대해 필자가 가지고 있는 지식이며, 맥락 지식은 장차 쓰여 질 텍스트가 독자에게 읽힐 상황을 다차원적으로 인식하는 지식이다. 그리고 언어 지식은 수행 도구가 되는 사용 언어의 구조나 조직 등과 관련된 지식을 말하며, 쓰기 처리 지식은 실제 쓰기 수행 과정에서 나머지 세 지식들을 운용하고 활용하는 방법적 지식을 말한다. 내용 지식과 맥락 지식은 필자가 쓰기 처리 지식을 활용하여 쓰기를 수행하는 동안 언어 지식과 결합해 활성화된다.
Faisely & Witte(1981:410)는 쓰기에서 필자의 수정 행위에 개입하는 여러 요인들을 상황적 가변성(situational variables)이라고 하였다. 상황적 가변성은 필자의 배경 지식, 주제에 대한 인지도, 독자와의 친밀도, 텍스트의 길이나 시간 등을 말하는데, 이 변인의 전략적인 처리가 수정에 있어 성패를 좌우한다고 하였다. 이들은 쓰기 활동을 수행할 때마다 상황에 따라 가변적인 것으로 고정적인 쓰기 과정 변인과 결합하여 필자의 수정 행위를 지속시킨다.
홍혜준(2008:34)은 학문 목적 쓰기가 일반 목적 쓰기에 비해 어려운 이유로 첫째, 다른 기능과 늘 통합되어 사용된다는 점 둘째, 학습자가 평가 상황에 직면해 심리적으로 압박을 받는 상황에서 수행된다는 점 셋째, 학문적 담화공동체에 대한 이해가 필수적으로 요구된다는 점을 들었다. 그리고 학습자가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자기주도적 학습력을 신장하게 하는 기술인 학업 기술(study skill)의 습득이 필요하다고 보았다. 학업 기술은 학업 수행에서 학습자의 기본 능력(ability), 학습자가 선택하는 전략(strategies)과 실제 수행에서 사용하는 기법(technique)을 모두 포함하는 개념으로 곧 상위인지의 활용 능력을 말한다(홍혜준, 2008:31; 전형길‧박진욱, 2011:200).
Flavell(1979:909)은 상위인지를 상위인지 지식과 상위인지 경험으로 나누었다. 그리고 상위인지 지식의 하위 국면을 크게 개인 변인, 과제 변인, 전략 변인 등의 세 국면으로 구분하였다. Flavell(1979)에 의하면 개인이 가지고 있는 특수한 요소인 개인 변인은 한 개인이 과제 변인을 고려해 특정 과제를 수행할 때 어떠한 전략 변인을 선택할지를 결정하게 한다. 그리고 선택한 전략 변인을 활용해 과제를 수행한 상위인지 경험이 다시 하나의 지식이 되어 다시 개인에게 내재화된다.
이와 같은 연구의 내용을 종합해 보면 쓰기에서 상위인지는 각 쓰기 과정과 필자 배경 지식, 쓰기 수행 환경 간의 상호작용을 포괄적으로 담당한다. 따라서 필자가 이와 같은 수많은 변인을 얼마나 효과적으로 다루느냐 하는 것, 곧 상위인지를 얼마나 효과적으로 활용하느냐가 성공적인 학문 목적 쓰기를 판가름하는 기준이 된다.
본 연구에서는 학문 목적 쓰기 수정에 관여하는 상위인지 작용의 양상을 Flavell(1979)의 분류에 따라 필자, 과제, 전략의 세 가지 변인으로 나누어 살펴보고자 한다. 필자 변인은 필자의 태도나 모어 배경, 그리고 한국어 숙달도와 같은 개인 고유의 요소가 활성화되어 쓰기 수정에 관여하는 국면이다. 과제 변인은 과제의 특성, 주어진 상황이나 수행 조건에 대한 필자의 해석이 활성화되어 쓰기 수정에 관여하는 국면으로 담화 맥락이나 독자에 대한 고려, 수정에 대한 계획, 과제 해석 방식 등을 말한다. 전략 변인은 앞서 두 변인으로 인해 촉발된, 필자가 선택한 보완적이고 결과적인 수행 전략이다. 본 연구에서는 이 세 변인들이 쓰기 수정 과정에서 각각 쓰기 지식(Tribble, 1996)과 상황적 가변 요소(Faisely & Witte, 1981)를 어떻게 다루고 있는가를 살피기 위해 아래와 같은 기준으로 학문 목적 학습자의 수정 프로토콜을 살펴보고자 한다.2)
쓰기 수정의 상위인지 변인
1)수정이 쓰기 전체 과정에서 일어난다고 보는 전자의 입장에서 볼 때에도 수정이 어느 단계에서 일어나느냐에 따라 필자의 사용 목적과 관여하는 인지 전략이 다르다는 점에서는 대다수의 학자들이 동의한다. 2)이와 같은 의미의 구분은 본 연구에서 얻어진 프로토콜을 일정한 기준으로 분류하고 논의하기 위한 방법적 차원에서 접근한 구분이다. 따라서 수정에 관여하는 상위인지 작용의 구체화를 의미할 뿐 수정의 하위 요소를 나타내는 것은 아니다.
참여자 3인은 같은 대학 석사과정에서 한국어교육을 공부하고 있다는 점 외에 국적이나 성별, 연령, L1 및 한국어 학습 배경 등이 모두 다르다.3) 본격적인 실험에 앞서 참여자와 사전 면담을 하였다. 여기에서는 학습자들의 수정 과정에서 관찰된 특성을 이해하는 데에 도움을 줄 수 있도록 참여자의 정보를 간략히 기술하고자 한다. 기술하는 내용은 연구자가 실험 과정에서 추론한 내용이 아닌, 참여자의 실제 진술을 요약한 것이다. 따라서 이 내용에서는 참여자가 스스로 인식하고 있는 한국어 필자로서의 정체성을 엿볼 수 있다.
연구 참여자
A는 활동적인 성격으로 정치‧경제‧사회‧문화 등 여러 방면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다. 상황에 따라 가변적일 수 있는 개인의 견해를 글로 남기는 것이 부담스럽기 때문에 쓰기보다는 말하기를 더욱 좋아하는 편이다. 한국어 쓰기에 대해서도 그다지 좋은 경험을 갖지 않고 있지 않았는데, 그것은 어학원에서 공부할 때 한자어 문화권 학생들인 중국인 동기들보다 보통 낮은 쓰기 점수를 받았기 때문이다.
B는 자국에서 대학을 졸업한 후 곧바로 한국의 대학원에 입학했다. 그래서 자신이 동기들에 비해 한국어 담화 맥락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스스로를 지나친 완벽주의자라고 생각하는 B는 평소 과제를 할 때에도 마지막까지 수정을 거듭한다고 했다. 쓰기 능력에 근간이 되는 것은 논리적 사고라고 생각하는데, 자신의 사고력이 부족해서 모국어 쓰기 역시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생각했다.
C는 한국에 오기 전까지는 자신의 학문적 능력에 비교적 자신감을 갖고 있었다. 그런데 한국에 온 후에 자신의 능력에 실망을 하는 일이 종종 생겼다. 그것은 다른 외국인 동기들의 유창한 한국어 실력에 위축이 된 것도 이유 중 하나지만, 보고서 쓰는 방식이 캄보디아 대학과 달라서 어려움이 많기 때문이다. 특히 캄보디아와 한국어의 추상적 어휘의 목록이 다르다는 점, 그리고 같은 두 언어가 반영하고 있는 사고 구조가 달라 텍스트 구조 또한 다르게 구성된다는 점 등에서 어려움을 느끼고 있다.4)
실험은 2013년 1월 3일부터 12일 사이에 진행되었다. 세 참여자를 만나서 실험에 대해 간단한 설명과 사고구술 연습을 실시하였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가서 초고를 작성한 후, 약 4일 후 1인 씩 각각 수정 실험이 진행되었다. 본 연구에서 분석 자료로 삼고 있는 대상은 크게 세 가지로, 초고와 수정본 텍스트, 녹음된 수정 사고구술 자료 그리고 참여자 면담 자료이다. 초고와 수정본은 직접적인 분석 대상이 되지는 않았지만, 그 변화의 모습이 사고구술 자료가 반영하고 있는 학습자의 상위인지 양상을 살핌에 있어 면담 자료와 함께 보완적으로 활용되었다.
쓰기 과제는 학문 목적 쓰기에 부합한 주제로 고려대학교 출판부 교재 ‘사고와 표현2-사회과학과 글쓰기’(2012:45)를 참고한 것이다. 교재에 포함되어 있는 읽기 자료 1편과 연구자가 편집한 관련 내용의 신문 기사 2편, 총 3편의 읽기 자료를 제공하였다.
초고 쓰기 과정은 학습자가 자유로운 상황에서 각자 수행하도록 하였다. 다만 초고 쓰기를 수행하는 상황적 조건이 수정 활동에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생각되어 초고 쓰기에서 염두에 둘 몇 가지 통제 사항을 요구하였다.5)
사고구술 자료를 얻기 위한 수정 작업은 연구자의 관찰 아래 약 한 시간 동안 이루어졌다. 참여자들은 먼저 자신의 초고를 읽어가며 수정할 부분을 적거나 생각해 둔 후, 약 10~15분 동안 노트북을 사용해서 수정본을 작성하였다.6) 이후 약 한 시간 동안 초고와 수정본, 그리고 녹음된 사고 구술 자료를 재확인하면서 면담을 진행하였다. 면담은 반구조화된 심층 면담으로 평소 한국어 쓰기에 대해 참여자가 가지고 있는 태도, 초고 내용과 수정본의 변화, 사고구술 시 발생한 휴지의 역할과 같이, 수정 행위를 관찰하는 동안 연구자가 생각해 두었던 의문점에 대해 질문하면 참여자가 답변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면담 내용은 녹음 후 분석되었다.7)
3)이러한 상황은 현재 다양한 배경(모어 배경, 한국 거주 기간, 자국에서의 학습 기간, 학업 기술 등)의 학습자가 함께 공존하는 학문 목적 한국어교육 현장의 상황과 유사하다. 4)국내에서 수학 중인 학문 목적 한국어 학습자는, 자국에서 대학 교육을 받고 한국의 대학(원)에 진학한 학습자군과 자국에서 고등학교 졸업 후 곧바로 한국에서 대학에 진학한 학습자군의 두 부류가 있다. 본 연구의 참여자들은 전자의 부류에 해당하는 학습자들로 학문 목적 한국어교육에서 내용으로 삼고 있는 학문적 쓰기 능력을 어느 정도 갖춘 학습자들이다. 따라서 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연구 결과가 전체 학문 목적 한국어 학습자의 특징을 반영하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5)아래와 같은 가상의 상황이라고 여기고 수행하도록 하였다. ∘ 보고서 제출 상황으로 생각할 것 ∘ 읽기 자료를 충분히 읽은 후 쓰기를 할 것 ∘ 인터넷 검색, 사전 활용 가능 ∘ 시간은 4시간 이내, 휴식기는 최대 30분을 넘기지 않을 것 ∘ 초고 완성 후에는 다시 초고를 보지 않을 것 6)전사와 번역 및 분석은 실험 이후 약 4주간에 걸쳐 진행되었다. 세 명의 참여자 중 A는 모든 사고구술을 한국어로 진행하였고 B와 C는 초고낭독 이외의 대부분을 모어로 구술하였다. A의 자료는 전사와 동시에 예비 분석하였고, B와 C의 자료는 전사 자료를 먼저 한국어로 번역한 후에 분석하였다. B의 발화는 B 당사자와 또 다른 중국인(교포/S대 한국어교육 석사 과정 재학)의 도움을 받아 번역본을 완성하였고, C의 발화는 언어의 특성 때문에 C에게 번역을 전적으로 의존했다. 세 참여자와 번역을 도와주신 중국인 선생님께 감사의 말씀을 전한다. 7)한 심사자께서 과제 구성의 모호함과 실제성 결여에 대한 지적을 해 주었다. 현장에서 교수자가 과제를 부여할 때에는 교수자의 교육적 의도가 보다 분명하게 제시되기 때문에, 학습자들은 과제 수행 시 교수자의 의도를 최우선 고려 항목으로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심사자의 지적대로 연구자는 이러한 부분에 대한 고려를 간과하였다. 따라서 본 연구의 실험은 실제적 보고서가 아니라 단순히 학습자의 한국어의 주제 처리 능력이나 기능 수행 능력을 보여주는 쓰기 수행 관찰에 머물게 되었다. 연구자는 이 문제에 대해 심사위원의 의견에 전적으로 동의하는 바이다. 또한 이 문제는 본 연구의 제한점임을 밝혀둔다.
쓰기에서 상위인지 작용은 필자의 언어적 정체성과 관련이 있다. 자신과 자신이 처한 세계를 어떻게 지각하고 있는지, 그리고 그 상황에서 어떤 전략을 선택하여 문제를 헤쳐 나가는지가 곧 상위인지 작용의 핵심이다. 앞장에서는 면담 자료를 바탕으로 참여자가 지각하고 있는 한국어 필자로서의 정체성에 대해 이야기하였다. 이 장에서는 참여자의 지각이 실제 수행에서 어떻게 반영되어 드러나는지, 즉 필자가 자신의 정체성을 토대로 과제 상황을 어떻게 해석하고 나아가 어떠한 전략을 선택하는지를 살피고자 한다.
필자가 자신에 대해서 인식하고 있는 바가 중심이 되어 상위인지가 작용하는 국면을 필자 변인으로, 필자의 과제 수행 상황에 대한 인식이 두드러지는 국면을 과제 변인으로 삼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위 두 변인에 대한 인식을 측면으로 실제 필자가 선택한 전략이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국면을 전략 변인으로 나누어 살펴볼 것이다.
각 변인은 서로 배타적이지 않다.8) 따라서 본 연구에서는 여러 변인 중에서 특징적인 국면을 뽑아 변인의 제목으로 삼았다. 또한 연구자가 관찰한 내용과 참여자의 인식 간에 차이가 발생하는 부분이 있다면, 이러한 차이에 대해 참여자 스스로가 문제점이라고 인식하는 변인을 주요 변인 축으로 설정하였다.9) 논의의 방식은 세 참여자들에게 공통적으로 확인된 내용을 주제로 삼되 더 특징적인 참여자 사례를 중심으로 논의하고자 한다.
4.1.1. 쓰기 태도 및 모어 배경
A는 전체 사고구술을 한국어로 진행하였다. 문장을 읽으면서 직관에 의존하여 형태적 검열을 해 나갔는데, 대부분이 과제나 내용적 측면이 아닌, 문장의 문법적 내용과 어휘 수정에 관한 것이었다. 초고를 읽어가면서 문제가 있다고 생각되는 문장을 두 개의 문장으로 나누기도 하고 문장성분의 위치를 재배열하기도 했다. 이러한 모습은 다른 참여자들과는 대비되는 모습으로, 해당 쓰기 주제에 대해 A가 갖고 있는 쓰기 태도 즉 주제에 대한 선호도가 작용하여 전략 선택에 관여한 것으로 볼 수 있다.
A의 초고 내용은 다른 두 참여자의 것과 달랐다. 예술과 외설의 개념을 정의할 때에도 B와 C가 읽기 자료에 나와 있는 예를 근거로 사용한 것과는 달리, A는 자신의 경험을 예로 들어 글을 전개하였다. 그 이유에 대해서 A는 아래와 같이 이야기하고 있다.
위의 내용을 보면 A는 평소 자신의 한국어 쓰기 능력이 동료에 비해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이유는 자신의 모어가 이미 자신의 쓰기 능력을 제한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쓰기 태도가 동료들과의 경쟁이 불가피한 학문 목적 쓰기 상황에서 A로 하여금 위와 같은 보상 전략을 취하게 했다.
B는 어휘의 개념을 고찰하는 데에 비교적 많은 시간을 들였다. 위의 예는 ‘예술과 외설’의 정의를 ‘상품’의 개념을 끌어와 설명하려다가 딜레마에 빠지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처럼 B는 어휘가 갖는 의미에 집착하고 있는 모습을 보였는데, 이는 모어 배경이 한자 문화권이기 때문이다.
C는 모어인 캄보디아어와 한국어의 텍스트 구조가 매우 다른데, 자신이 아직 한국어 작문에 대한 형식적 측면의 지식이 많이 부족하다고 했다. 그 때문인지 A가 수정에 중점을 둔 ‘주제, 흥미’ 측면이나 B가 중점을 둔 ‘논리성’ 측면보다는 텍스트 표지 등이 올바로 쓰였는지를 점검하는데 집중하고 있었다. 연구자가 초고의 서론, 본론, 결론을 잘 구분할 수 있도록 각 부분에 번호를 매겨 놓았던 것도 C가 쓴 초고의 특징이다.
이처럼 참여자들의 모어 쓰기에서부터 형성된 쓰기 태도와 모어 배경은 한국어 쓰기 수정에서도 필자 개인이 지닌 고유한 변인으로 작용하여 다른 변인들의 기본 배경으로 작용함을 알 수 있다.
4.1.2. 한국어 숙달도
B는 텍스트의 논리성 검토에 집착하는 모습을 보였는데, 그 이유를 묻자 ‘한국어 숙달도의 보완을 위해 모어 능력이 관여하는 부분에 상대적으로 주력하고자 한 것’이라고 말했다.
위와 같이 B는 자신의 한국어 숙달도에 대한 지각을 바탕으로 학문적 쓰기에서 수정 전략을 채택하였다. B의 수정은 주로 단락 단위의 수정으로 A에게 빈번하게 관찰되었던 자동화된 형태 검열은 많지 많았다. 초고 문장을 절 단위로 읽은 후 다시 중국어로 해석하는 방식으로 문장의 내용을 점검했다.
아래는 B가 초고를 읽고 다시 중국어로 생각하면서 문장의 의미와 형태의 적격성을 판단하고 있는 모습이다. B는 특히 A가 자동화된 문법적 검열을 했던 것과 같이 어휘 적절성에 대한 검열을 실시하고 있다. 한자어인 ‘간섭’과 ‘개입’은 한국어와 중국어에서 비슷하기는 하지만 조금은 다른 의미로 사용된다. 이러한 개념의 차이가 내재화 되어 있던 B는 다른 두 학습자들보다 좀 더 개념어의 사용을 효과적으로 할 수 있었고, 동시에 수정에서 어휘 적절성에 대한 판단을 주로 하였다.
C 역시 대부분의 발화를 모어로 구술하였는데, B가 초고 내용에서 논리성이나 어휘의 적절성을 위해 모어 사용을 선택한 것과는 달리 C의 모어 사용은 초고를 읽고 해석하는 데 사용되었다.
C는 ‘여전히’와 같은 의미를 알고 있는 단어마저도 습관적으로 번역을 했다. ‘논란을 빚고 있다’라는 표현은 제시한 읽기 텍스트에 있던 것으로 자신이 초고에 활용한 표현이다. 그러나 아직 의미의 사용이 자동화 되지 않아서 이와 같이 쓰기 수정의 수행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와 같은 모어 번역 행위에 대해 C는 면담에서 ‘어휘를 정확히 사용했는지를 다시 한 번 확인하기 위해서 그런 것 같다’라고 말했다. 아래의 내용을 보면 읽기 C가 사전에 실시된 읽기의 수행이 잘 이루어지지 않았고 이 때문에 쓰기 수행에까지 영향을 받은 것을 볼 수 있다.
숙달도는 참여자의 쓰기 수정에서 형태 검열 방식에 영향을 미쳤다. A의 문장 단위의 수정은 주로 하나의 긴 문장을 두 개의 문장으로 나눈 후에 표현을 다듬거나 어긋나 있는 문장성분의 호응을 바로 잡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이는 텍스트의 결속성을 견고히 하려는 전략이다. 그러나 각 문장성분의 위치를 바꾼 이유에 대해서는 사고구술에 나타나지 않았다. 초고를 읽어가면서 동시에 재빠르게 진행해버린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연구자가 추론할 수밖에 없었다. 이 이유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설명해 줄 것을 요구했으나 A는 잘 설명하지 못했다. 다른 두 학습자에 비해 한국 거주 기간이 비교적 길었던 A의 경우 문법에 대한 암시적 지식이 쓰기 수정에서 활용되었기 때문이다.
위에서 보면 A는 ‘뜨겁게 화제가 되어 있다’는 말을 ‘핫이슈’로 고쳐졌다. 화제(話題)의 의미를 잘못 생각하고, 운율상 ‘뜨겁게 OO다’라는 표현을 원했으나 OO에 삽입할 어휘를 찾지 못해 절 전체를 바꾼 것이다.
위의 발화 이후 A는 매우 길었던 한 문장을 두 문장으로 나눈 후 일부 어휘를 문어적 표현으로 수정하였다. A는 자신이 문제로 인식한 내용을 모두 수정한 것은 아니었는데, 예를 들면 ‘나라’와 ‘국가’ 중 어느 것을 선택할지 고민하였으나 결국 고치지 않았다. 그 이유에 대해 A는 ‘두 어휘가 큰 차이를 지니지 않는다면 처음의 선택을 존중하기 위해서’라고 설명했다. 이러한 모습은 A가 모어 화자만큼은 아니지만 나름의 직관을 가지고 어휘 선택을 하며 수정에 있어서도 이러한 직관이 작용한다는 것을 말해준다. 구체적으로 어떤 문제점이 발견되어 어떻게 형태 수정을 했는지에 대한 정확한 추론은 어렵지만 이처럼 직관을 활용해 자동화된 수정을 해 내가는 모습은 세 참여자 모두에게서 관찰되었다.
4.2.1. 담화 맥락 및 독자 고려
특별히 고려한 독자가 있었느냐는 질문에 A는 ‘보통 쓰기에서는 독자를 한국인으로 국한하지는 않고, 나에 대해 전혀 모르는 모든 사람에게 글만으로 내 이미지를 전달한다는 생각으로 글을 쓴다’고 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인식과는 달리 실제로는 A가 직접적 독자로 한국인을 고려하고 있음을 곳곳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A의 초고에는 ‘오스만 제국’과 관련한 언급이 두 차례 있었는데, 위의 사고구술 내용을 보면 A가 한국인 독자를 위해 전략적으로 이 어휘를 사용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드라마 제목’과 같은 다소 불필요한 정보까지 제공하는 것에 대해서는 오히려 한국인 독자에게 부담을 줄 것이라는 판단을 하고 지양하는 모습이다. 또한 수사적 표현에서도 한국인에게 수용될 미적 요소를 고려하고 있음을 함께 확인할 수 있다
아래는 수정 과정의 마지막 단계로 초고의 마지막 문장을 검토하면서 발화하고 있는 내용이다. 시간 제약으로 인해 수정을 마무리해야 하는 상황에서 A가 잠재적인 독자를 미리 인식하고 있는 모습이다. A는 느껴지는 아쉬움을 합리화 전략으로 극복하고 있다.
B도 한국인 독자를 고려해 중국어 쓰기와는 다른 전략을 선택했다.
B가 고려한 독자는 특정한 하나의 대상이 아니라 매우 구체적이고 다차원적이었다. A가 자연스럽게 모국어적 사고방식에 대한 요소를 초고에 활용하는 것과는 다르게, B는 중국인의 입장을 가능한 배제하고 한국인의 입장에서 글을 쓰고자 했다. 이 과정에서 B는 한국인 동기들과의 평소 대화 내용을 떠올리면서 한국인에게 공감을 줄 수 있는 내용을 찾는다고 하였다. 이후 완성된 초고를 가지고 형태 검열을 할 때에는 지도 교수님의 모습을 떠올리면서 글을 검토한다고 했다. 위 사고구술 발화에서도 B가 주제에 대한 생각을 하면서 함께 참여한 외국인 동기인 C를 활용해 글의 내용을 검토하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C의 발화에서는 직접적으로 독자에 대해 언급한 내용은 확인할 수 없었다. C는 평소 주로 고려하는 독자에 대해 ‘젊은 한국 여자, 보통은 한국어 선생님’이라고 하였다. 캄보디아에서 만났던 대부분의 한국인은 젊은 한국인 여자였고, 또 자신의 쓰기 숙제를 읽었던 유일한 독자는 한국어 선생님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쓰기를 할 때에는 캄보디아에서 자신을 가르쳤던 한국인 선생님을 떠올리며 ‘그 한국어 선생님이 내 글을 본다면 어떻게 말씀하셨을까?’하는 생각을 자연스럽게 떠올린다고 했다. C가 다른 두 참여자에 비해 상대적으로 한국어 쓰기에서 넓은 독자층의 반응 경험이 부족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모든 필자는 독자를 고려한다. 독자란 비고정적 실체이며 다층적이고 역동적인 개념이다. 이와 같은 필자의 독자에 대한 고려는 늘 의식적인 방식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필자가 성숙해질수록 고려하는 독자의 층위는 다양하게 분화되고 독자와의 관계는 단순한 ‘표현적’에서 ‘상호교섭적’이고 ‘시적’인 방식으로 변화하게 된다(양경희, 2012:67). 점차 독자에 대한 무의식적 고려 능력이 함께 발달하는 것이다. 따라서 대부분의 성숙한 모어 필자는 글을 쓰는 동안 무의식적으로 고려했던 독자에 대해 기억에서 재인하는 것을 어려워한다. 그리고 때로는 인식과 그 실제 간에 간격이 있을 수도 있다. 그러나 L2 쓰기에서의 독자 고려는 모어 쓰기와 다르다.
본 연구에서 A는 독자 고려가 의식적이지 않았다. 그러나 쓰기 수행 맥락과 독자에 대한 고려가 분명히 활용되었다. B는 내용과 형태에 있어서 각기 다른 독자층에 대한 고려를 의식적으로 활용하고 있었다. C의 경우는 형태적 수정에 머물러 있었고 잠재적 독자에 대한 무의식적인 고려의 흔적을 발견하기 어려웠다. C 역시 높은 수준의 모어 문식력을 가지고 있었던 학문 목적 학습자이다. 그러나 C는 동료들 사이에서 상대적으로 위축되었고 또한 자신의 한국 체류 기간이 길지 않아 쓰기 경험도 길지 않았다. 이러한 이유로 인해 동일한 조건의 시간 내에 수행해야 하는 수정 실험에서 C의 수정은 주로 형태적 수정 단계에 머물 수밖에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4.2.2. 수정에 대한 계획
참여자들은 모두 본격적인 수정에 앞서 계획을 세우면서 시간의 분배를 언급했고 수정 도중 지속적으로 진행 상황과 시간을 점검하였다.
주어진 시간이 약 1시간으로 전체 내용을 다시 수정하기에는 넉넉하지 않은 시간이었기 때문에 참여자들은 빠르게 수정해야 할 내용에서 수정할 수 있는 것을 선별해 나갔다. 참여자들은 ‘어떻게 수정해야 할지 방법을 모르니까 나도 어쩔 수 없다’는 말을 자주 했지만 계속해서 수정 임무를 수행해 나갔다. 그러한 가운데 아래와 같이 심리적 방어 기제를 사용하여 합리화 하거나 자기조절을 통해 수정을 지속하려는 모습이 자주 보였다.
세 참여자 중에서 C의 시간 조절 상황은 다소 불완전한 심리 상태와 함께 나타났다. 각 참여자의 수정 계획 양상이 다소 다른데, B가 ‘수정할 수 있는 것만 일단 수정해야겠다’고 하거나 A가 ‘나중에 다시 생각해봐야 겠다’라는 말을 자주 하면서 시간이 많이 소요될 문제의 해결은 유보한 것과 다르게 C는 해결책을 즉시 찾지 못하고 당황하는 모습이다. 그러나 C도 곧 ‘시간 낭비하지 말고 빨리 하자’라는 말로 동기를 부여하며, 주어진 시간 동안 끝까지 목적을 달성해 나가려는 모습이었다.
이와 같은 모습은 학습자들의 문제를 대하는 태도를 알 수 있는 모습이다. A의 경우 문장이 다소 매끄러워진 것, 그리고 B와 C는 거의 텍스트의 변화가 없었던 것이 이들의 수정 후 초고의 변화이다. 즉, 초고의 변화가 그리 크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세 참여자는 진지하게 수정에 임했다. 그리고 각자 다른 상위인지적 양상을 보였다.
4.2.3. 과제 해석 방식
아래는 쓰기 장르가 참여자의 쓰기 수정에 영향을 주고 있는 모습을 보여준다. B는 ‘예술’, ‘외설’, ‘판금’, ‘권력’ 등과 같은 주요 개념어를 제외하고는 많은 부분을 모어로 구술하였다.
이 내용은 상대적으로 거주 기간이 짧아 한국어 구술 발화가 자유롭지 못했던 B가 학술적 쓰기를 수행할 때 사용하는 학습 전략을 보여준다. 고차원적 사고력을 요하는 학술적 쓰기 수행 상황에서 B는 한국어 발화를 해 내야 하는 데에 소모되는 불필요한 인지 자원을 아껴, 보다 필요한 곳에서 집중적으로 사용고자 한 것이다.
세 참여자 모두 글의 도입 부분과 중심 개념이 되는 ‘예술과 외설의 정의’ 설정 부분에서 비교적 오랜 시간을 들여 고민을 하였다. 이 부분은 기본적으로 과제 수행의 여부와 직접 관련된 것이기 때문이다. 아래는 A가 이미 초고 작성 시에도 고민했을 문제인 ‘예술의 정의’에 대한 문제에 대해 또 다시 수정 상황에서 심도 있게 고찰하고 있는 모습을 보여준다.
B의 구술에서도 역시 개념에 대한 지속적인 고민이 수정 과정 전반에 걸쳐 나타났다. 이는 B의 꼼꼼한 성격이 반영된 문제일 수도 있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이 문제는 앞서 말한 ‘이 쓰기는 보고서 쓰기이기 때문에 논리성 측면을 중심으로 수정을 해야 한다’는 수정 전략의 선택과 관계가 높다는 것이다.
참여자들이 이미 초고 작성 시에 주제에 대한 고민을 충분히 했음에도 불구하고 수정 단계에서 또 다시 고민을 했다는 점은 흥미롭다. 게다가 수정 단계에서는 문제를 발견한다 해도 고민으로만 끝났을 뿐 실제 텍스트의 변화도 이어지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이러한 사실을 통해 학습자들은 쓰기 수행에서 기본 과제의 조건에 대해 큰 비중을 두고 고민을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4.3.1. 수행 조절 행위
C는 ‘초고 읽기→ 평가하기→ 문제 발견→ 전략 탐색→ 고치기’의 수정 단계에서 전략 탐색이나 고치기로까지 나아가지 못하고 주로 초고 읽기나 문제 발견의 단계에서 머물러 있었다. 또 수행에 있어서도 비교적 낮은 집중력을 보였다. 아래의 내용을 통해 스스로 숙달도가 부족하다고 인식하고 있는 C가 과제를 수행하는 동안 산만해지는 주의력으로 애를 먹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C도 ‘사라’가 사람의 이름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이와 같은 행동이 현재 상황에서 불필요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지만 강박적인 번역 행위를 반복하고 있다. L2로 학술적 글쓰기라는 난도 높은 과제 수행에서 텍스트 안에 등장하는 수많은 추상적 개념의 어휘들이 C에게 압박감을 주었기 때문이다. 이 어휘들은 대부분 C에게는 낯설고 어려운 것이었기 때문에 자동적인 의미 표상이 일어나지 않았다. 따라서 C는 이 새로운 어휘들을 머릿속에서 활성화시키기 위해서는 추가적인 인지 작업을 수행해야 했고 이 때문에 무의식적이고 속도감 있는 읽기 수행이 어렵게 되었다.
C는 대부분의 발화가 초고의 내용을 모어로 번역하는 데에 사용되었다. 이 행위는 비교적 많은 시간을 필요로 하였고 결과적으로 C가 해야 하는 수정에 할애할 시간이 줄어들었다. 아래의 내용을 보면 C의 수정 과정 중 사고는 텍스트 내용과는 무관한 것들이 많다.
C는 분산되는 주의를 지속적으로 끌어 모으려고 노력했다. 이러한 모습은 학습자가 어려운 과제 수행을 위해 스스로 동기를 생성하고 부여하는 전략으로, 학문 목적 학습자가 수정을 지속하기 위해서 수행에 관한 자기조절 전략을 사용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모습은 세 참여자 모두에게서 확인되었지만, A보다는 B와 C에게서 많이 발견되었다. 아래는 B의 수행 조절 양상을 보여준다.
4.3.2. 사고 조절 행위
B에서 찾아볼 수 있는 특징 중 하나는 발화문에 나타난 인칭대명사가 분화된 것이다. B의 발화는 마치 2~3인역의 대화문처럼 보였는데 그것은 B가 1인칭과 2인칭 그리고 각 복수형을 번갈아가며 사용했기 때문이다. 이 특징은 C에게서도 찾아볼 수 있었다. 이는 새로운 지식들을 수용하여 재생산해내는 학술적 쓰기에서 상위인지가 사고의 도구로서 언어의 형식으로 작용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B와 C는 연구자가 제공한 읽기 자료를 통해 새로운 지식을 습득하고, 이를 자신의 기존 지식과 통합하여 다시 초고 쓰기를 통해 재생산하는 과정을 수행했다. 이러한 지식 변형 과정에서 끊임없이 I와 me 간의 대화인 내적 언어(inner speech)를 통해 자기조절을 수행했다(Vygotsky, 1987).
각 인칭의 사용은 일정한 규칙을 보인다. ‘나’로 대표되는 존재는 의견을 제기하는 이이고 ‘너’는 의견을 수용하는 존재이다. 그러나 필자와 독자, 평가자를 나타내는 인칭은 고정되어 있지 않고 필자와 독자의 개념 사이를 계속해서 이동하고 있다. C의 발화에서도 이와 같은 인칭 분화가 동일하게 관찰되었다. 아래의 내용에서 ‘우리’와 ‘네’는 서로 다른 입장을 갖는 집단에 속해있지만 각 구성원은 서로 협력적인 태도를 갖고 있다.
한국어로 사고구술한 A에게서는 이러한 특징을 찾아볼 수 없었는데, 이는 구어에서 인칭대명사가 생략되는 한국어의 특징 때문이다. 대신 A의 발화에서도 ‘-지?’, ‘-자’, ‘-을까?’, ‘-겠다’ 등 문답 형식의 문장이 사용된 것으로 볼 때, 필자들은 수정 과정에서 끊임없이 내적으로 문제에 대해 제기하고 협의하며 사고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즉 내적 언어를 통해 사고에 대한 자기 조절을 수행한다.
본 연구는 세 명의 학문 목적 학습자의 쓰기 수정에서 상위인지의 작용을 세 변인을 기준으로 관찰하였다. 세 학습자는 각기 다양한 모어 배경을 가지고 있으며 한국어 학습 기간, 한국 체류 기간, 또한 학습 스타일 또한 다르다. 이러한 상황은 현재 다양한 학습자들이 공존하는 학문 목적 한국어 교육 현장의 상황과 유사하다. 따라서 이 세 학습자에게서 발견되는 특성이 공통적이든 개별적이든 모두 학문 목적 학습자의 특성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각 학습자가 보이는 상위인지 작용의 특성은 Flavell(1979)의 상위인지 지식 구분의 틀에 적용되었다. 세 학습자의 모어 배경은 필자가 한국어 쓰기를 하는 데에 있어 기본 바탕으로 작용하였다. 터키어 쓰기에서도 크게 적극적인 태도를 갖고 있지 않다고 한 A는 한국어 쓰기도 역시 ‘요구에 맞게 수행해야 할 과제’로 인식하였고, 동기들과의 경쟁에서 비교 우위를 점하기 위해 자신만의 전략을 선택하고자 했다. A의 이러한 전략 선택은 A가 지각하고 있는 자신의 숙달도 수준이 뒷받침되어 쓰기 수정을 지속시켰다.
대학원 학업 수행에서 늘 꼼꼼함과 성실함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B는 수정에 있어서도 비슷한 모습을 보였다. 특히 한자어에 대한 개념이 다른 학습자보다 발달한 B는 어휘에 매우 집착하는 모습을 보였다. 또 한국어 쓰기 맥락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B는 세 참여자 중에서 유일하게 ‘중국어 쓰기 방식대로 단락을 전개한다’며 모어 지식을 전이시켜 사용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러한 모습 역시 A와 같이 필자 변인에 대한 자각을 바탕으로 자신만의 독특한 전략을 활용한 모습으로 해석할 수 있다.
C는 두 참여자에 비해 쓰기 상황에 다소 위축되어 있었다. 이는 자국에서 명문 대학을 졸업한 C가 같은 국적의 동기가 많지 않은 낯선 한국에서 학업 수행을 하는 것이 쉽지 않았던 이유가 작용했을 것이다. 또한, 학문적 담화공동체 내에서 아직까지 부정적인 피드백을 더 많이 받았던 것도 원인으로 작용했다. 이러한 인식의 결과 C는 과제 수행 외적인 곳에 불필요한 인지적 에너지를 소모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과제를 점검하고 수행에 대한 계획을 세우며 수정 행위를 조절하는 모습은 다른 참여자들에게서와 동일하게 관찰되는 양상이다.
이러한 관찰 결과를 바탕으로 상위인지 지식의 세 변인 간 상관관계를 정리해 볼 수 있었다. 상위인지 변인 중 필자 변인은 참여자가 잠재적으로 보유하고 있는 요소로 인지적 행위의 ‘원인’이다. 그리고 과제 변인은 그 원인이 작용하여 상위인지가 외적으로 드러나 관찰이 가능한 ‘양상’이다. 마지막으로 전략 변인은 이러한 변인들이 작용한 ‘행위’의 결과다. 따라서 학습자의 인지 작용의 원인인 필자 변인이 학습자가 쓰기 수행 상황에서 즉각적으로 바꿀 수 없듯이 학습자가 선택한 ‘전략 변인’도 학습자가 전략적으로 택한 선택의 결과로, 그 전략의 질적인 측면을 평가내릴 수 없다.
이처럼 각 변인들은 큰 틀에서는 원인과 결과로 작용하지만, 결국은 학습자가 다양한 쓰기를 수행하면서 상위인지 역시 순환 과정을 거쳐 발달하게 된다. 이들에게 주어지는 쓰기 상황은 매번 다르기 때문에 과제 변인 역시 다르게 주어지며 이때 이들이 선택하는 전략 변인 또한 달라진다. 그리고 이러한 쓰기 경험은 또 하나의 새로운 지식으로 축적되어 필자 변인화 된다. 이후 또 다른 과제 상황에 처하게 될 때 이 필자 변인은 새로운 과제 변인을 촉발하는 원인이 될 것이다.
8)ㄱ이라는 특징을 가지고 있어 ㄴ이라는 수행 상황에 처해질 때 대개 ㄷ의 전략을 선택하는 한 필자가 있다고 하자. 이때 이 필자의 특징 ㄱ은 ㄴ 수행 상황을 해석하는데 영향을 미쳐 결과적으로 ㄷ을 선택하게 했다. 따라서 ㄱ는 ㄷ의 원인이다. 그러나 이 필자는 ㄴ이 아닌 ㄴ’의 수행 상황에서는 ㄷ이 아닌 ㄷ’의 전략을 선택했을 터이므로 ㄴ이 ㄷ의 촉발 요인이 될 수 있다. 따라서 ㄱ과 ㄴ 중 어느 것이 중요한 변인인가 하는 문제는 매우 주관적일 수밖에 없다. 9)예컨대, 본 연구의 세 참여자 중 ‘누구의 숙달도가 가장 높거나 혹은 낮은가’하는 문제를 놓고 볼 때, 연구자의 주관적인 해석은 분명히 존재했다. 참여자 A의 구어 수준은 세 참여자 중에서 가장 높았고, B와 C는 큰 차이가 없었다. 초고 텍스트도 B와 C의 언어 사용 측면은 비슷한 정도의 숙달도를 갖고 있었다. 그러나 적절성 측면에서 보면 오히려 B와 C의 초고가 A보다 학술적 쓰기에 적합했다. 이처럼 숙달도 측면에서는 B와 큰 차이가 없는 C였지만 C 스스로는 상대적으로 자신의 숙달도에 대해 과소평가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래서 과제 수행 시 다른 친구들의 수행 정도를 자주 의식했고 중간에 자주 자신의 양상을 점검하면서 자신의 숙달도가 본 연구에 미칠 결과에 대해 우려를 표시했다. 이는 C의 성격이나 태도가 작용한 결과일 수 있다. 그러나 본 연구에서는 학습자가 난도 높은 과제 수행 상황에서 자신이 어려움을 겪는 이유를 스스로 ‘숙달도’ 때문이라고 지각했기 때문에 여기에서도 이를 ‘숙달도’ 변인으로 처리하였다. 10)면담 내용 제시에서 활용된 굵은 글씨체는 의미 있다고 생각되는 부분을 연구자가 임의로 처리한 것이다. 11)사고구술 자료의 제시에 사용되는 <<이탤릭체>>는 초고 낭독을, 굵은 글씨체 부분은 한국어 발화를, 나머지 부분은 모어(중국어 혹은 캄보디아어) 발화의 내용이다. 한국어 발화에서 1초 정도의 휴지는 ‘,’ 2초 정도의 휴지는 ‘.’ 3초 이상이 휴지는 ‘...’으로 표시하였다. 모어 발화에서는 휴지와 상관없이 의미의 변별을 위해 문장 부호를 사용하였다. 12)그러나 이와 같은 C의 진술과 달리 C의 초고는 변화가 거의 없었다. 연구자가 이 사실을 알려준 후 ‘여전히 수정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지’ 물으니, C는 ‘수정을 해야 아무래도 쓰기를 마무리 한 것 같다’고 대답하였다. 초고의 물리적인 변화 이외에도 학문 목적 쓰기에서 수정이라는 것은 필자에게 심리적인 안정감 제공이라는 또 다른 효용을 지니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본 연구에서는 세 명의 학문 목적 학습자의 쓰기 수정을 관찰하였다. 학습자의 역동적인 상위인지 작용을 세밀히 관찰하기 위해 사고구술과 면담을 활용하였다. 그 결과 학문 목적 학습자의 쓰기 수정 과정의 상위인지 작용을, 필자 개인 변인, 과제 변인, 전략 변인 등 세 가지 국면으로 나누어 살펴볼 수 있었다. 각각의 변인은 그 가치를 긍정적 또는 부정적이라 평가하기 어렵다. 세 변인이 서로 상호작용적이며 순환적이기 때문이다.
본 연구는 3인의 참여자만을 대상으로 삼았기에 연구 결과를 모든 학문 목적 학습자의 쓰기 수정에 적용할 수 있는 일반적인 것으로 보기 어렵다. 그러나 참여자 3인은 각기 다른 개별 요인을 지녔음에도 불구하고 수정 수행에 있어 공통적인 특성을 보였다. 따라서 그 결과를 논의하는 것은 의의가 있다고 생각한다.
또한 본 연구는 학습자의 수정 과정을 질적으로 탐색한 연구로서 대량의 표집단을 대상으로 하여 실험 과정을 통제하는 방식에 비해 상위인지 변인간의 상호작용과 각 필자의 개별 특징에 대한 심층 관찰이 유리했다. 그러므로 연구의 결과는 학문적 쓰기 상황에 처한 다양한 특성의 학습자들에게 적절한 학습 방향을 제시하는 데에 기초 자료로 활용이 가능할 것이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