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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A 학술지
인간 현존을 사유하는 하이퍼리얼 시네마로서 울리히 자이들의 영화미학 Human Presence in Hyperreal Cinema:Ulrich Seidl’s Film Aesthetics
  • 비영리 CC BY-NC
ABSTRACT
인간 현존을 사유하는 하이퍼리얼 시네마로서 울리히 자이들의 영화미학

This article examines the filmic aesthetics of Ulrich Seidl from the perspective of Alain Badiou’s thought of cinema. The Austrian director Ulrich Seidl produces the unique hyperreal cinema by hybridizing and overcoming both of the documentary and the fictional. Through this method, Seidl achieves providing the existential human-presence and the reflective thought about that.

Alan Badiou thinks that cinema is the subject of the contemporary thought which makes the viewer understand the human presence. Cinema is a manifesto of the human presence for Alain Badiou. In that point, “cinema is an education, an art of living, and a thinking.” (Alain Badiou, Cinema, Polity Press, Cambridge, 2013, p.ix.)

Paradies: Hoffnung (2013) is analyzed from this perspective in this article. Seidl presents in this film diverse people like teenagers, teachers, medical doctor, who all join and work in a summer weight-loss camp for the teenagers. A girl falls in love with her doctor, while the strict rules against the physical lust suppress the participants. She, Melanie, the daughter of Theresa, the heroin in Paradies: Liebe and niece of Anna Maria, the heroin in Paradies: Glaube, makes an adventure to realize her hope.

Ulrich Seidl’s Images are highly real, but at the same time artificial. Those are seen as ‘the imitation of life’, rather than life itself. Seidl makes his own vision into the filmic images, into the hyperreal images. The photographic images in his film can be regarded also as a sort of antirealism, even if they are highly real.

The Hyperreal Cinema created by Ulrich Seidl, a filmmaker of New Austrian Cinema, is relevantly to understand in the light of Alain Badiou’s thought of cinema, since it produces the contemporary thought through the cinematic images which project the human presence.

KEYWORD
Alain Badiou , Ulrich Seidl , Human Presence , Contemporary Thought , Hyperrealism , Cinema , Thought of Cinema , Paradise-Trilogy
  • 1. 들어가며

    영화는 프랑스 철학자 알랭 바디우Alain Badiou의 삶과 생각을 이끌어 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 매체이다. 영화론을 펼치는 다른 프랑스 철학자들에게 그렇듯, 바디우의 철학적 작업에 있어서도 영화는 구조와 개념의 배경에 놓여 있는 중요한 사유의 바탕이다. 2) 바디우의 영화론은 동시대의 프랑스 철학자들 – 질 들뢰즈, 자끄 랑시에르, 장-뤽 낭시 등 - 에게서 발견되는“철학과 영화 사이의 친밀한 연결” 3) 의 일환이자 그 가운데 비교적 덜 알려진, 그러나 동시대의 영화를 고찰 하는 데 있어 매우 의미 있는 시각을 열어주는 논지이다. “영화들은 언제나 동시대적 세계에의 관념을 전해 준다.” 4) 그럼으로써“특유의 방식으로 교육하고 지침을 준다.” 5) 고 바디우는 말한다. 바디우에게 영화는 그 어떤 다른 매체보다 동시대성을 즉각적이고도 깊이 가르치는, 여러 예술매체의 속성이 섞여 혼종적인 한편 진리의 드러냄에 있어 심오한 기능을 하는 가장 현대적인 예술형태로 인식된다. 6) ‘인간 현존의 선언’으로서 영화를 보는 바디우의 영화론으로부터 우리는 동시대 세계영화를 바라보는 진중한 한 관점을 얻을 수 있다.

    영화는 어떻게 동시대성을 일깨울까? 영화란 어떻게 그 자체로 하나의 사유일 수 있는가? 7) 우리는 영화에서 어떤 방식으로 인간과 세계를 배우는가? 바디우의 영화론은 동시대 영화미학과 어떠한 연관성을 지닐 수 있고, 그 둘은 어떻게 서로와 대화할 수 있을까? 이 논문은 바디우의 영화론을 동시대 영화미학과 연관시켜 고찰하고자 하는 시도이다.

    그것을 위해 적합한 영화로서 오스트리아 영화작가 울리히 자이들 Ulrich Seidl의 영화를 택해 분석한다. 그럼으로써 동시대의 영화론과 영화미학을 연관시켜 논한다. 울리히 자이들의 영화가 알랭 바디우의 영화론과 연결되기에 적합한 이유는 자이들의 영화가 지닌 극사실적인간 현존 모사의 미학적 성향과 그것으로부터 생겨나는 성찰과 사유의 촉발이 바디우의 영화론과 통하는 바가 크기 때문이다. 자이들은 다큐멘터리 감독으로 시작해 극영화 작업으로 옮겨오면서 다큐멘터리적 사실성과 극적 허구성이 한데 녹아 있는 영화양식을 통해 인간에 대한 차갑고도 뜨거운 사유를 촉발시키는 영화들을 만들고 있다. 특히 ‘천국 3부작’(2012-2013)은 유럽 영화계에서 큰 주목과 논란을 동시에 일으키며, 독특한 미학적 양식을 통해 생겨나는 인간과 삶에의 성찰이 영화연구가들 에게 다루어야 할 주제로서 떠오르고 있다. 바디우 영화론의 핵심인 ‘인간 현존’은 자이들의 영화에서 역시 핵심적 사안이다. 오스트리아의 현재를 사는 사람들의 삶의 단면을 예리하게 절단해 극사실적 시각으로 모사하는 울리히 자이들의 영화들은 영화로 그린 하이퍼리얼리즘 인물화로서, 보는 이에게 이 시대를 사는 세계 속 사람들의 삶을 동시대적으로 깊이 그리고 매우 생생하고도 즉각적으로 마주하고 사유하게 한다. 바디우의 영화론과 자이들의 영화미학을 차례로 자세히 논하며 이어지는 글에서 이러한 사유에 보다 가까이 다가가 보도록 한다.

    1)Antoine de Ba2ecque, “Cinema is a Thinking Whose Products are the Real”, Alain Badiou, Cinema, Polity Press, Cambridge, 2013, p.ix.  2)James Tweedie, “The Event of Cinema: Alain Badiou and Media Studies”, Cultural Critique, Vol.82, 2012, p.95 참조.  3)Ibid, p.95.  4)Alain Badiou, Cinema, Polity Press, Cambridge, 2013, p.2.  5)Ibid, p.2.  6)Ibid, p.2 참조.  7)Alex Ling, “Can Cinema be Thought?”, Badiou and Cinema, Edinburgh University Press, Edinburgh, 2010, pp.32-54 참조.

    2. 알랭 바디우의 영화론: 인간 현존에 관한 동시대적 사유

    1950, 60년대 청년기를 보낸 프랑스 철학자들은 대부분 시네필이기도 했다. 그들이 영화에 관한 독특한 관점을 제시하고 있는 것은 우연이 아니며, 영화는 실제 그들이 세상을 바라보고 해석하며 그들의 사상을 일구어 오는 데 매우 중요한 ‘보는 법’을 가르쳤다. 알랭 바디 우의 경우도 예외가 아니다. 그는 “1950년에서 1960년 사이 나는 열정적인 시네필이었다.” 10) 고 고백한다. 그 시대 프랑스에서 영화는 “일종의 모두를 위한 학교” 11) 였다. 영화관에서 본 영화들에 관하여 카페에서 진지한 논쟁을 벌이곤 했으며, 언제나 일상적 대화의 주제가 영화였던 시절이다. 12) 시네마는 그러한 방식으로 그 자체로서“대중 교육” 13) 이었다. 이는 영화 매체의 특성에서 비롯된 것으로, 바디우는 대중적 문화로서의 영화의 속성을 중시한다.

    바디우는 스무 살이던 대학 시절 학생들이 만드는 잡지 『뱅 누보 Vin nouveau』에 영화에 관한 글을 쓰기 시작했으며, 영화만이 아니라 음악과 오페라, 노래, 그리고 정치에 관하여 기고했다. 그는 “흥미를 끄는 모든 것에 대해” 14) 썼다. 그의 이러한 문화비평 활동은 장 폴사르트르 15) 에게서 영향을 받은 것으로, 바디우는 자신이 사르트르가 하는 것과 같이 “모든 것 그리고 아무것에 관한 철학적 글쓰기” 16) 를청년기에 추구했다고 밝힌다. 그의 관심사는“영화로부터 동시대 수학 그리고 음악을 거쳐 급진적 정치 활동으로 이어졌다.” 17) 이러한 그의 다방면의 비평 및 참여 활동은 그의 영화론이 위치한 자리를 일러준다. 바디우의 영화론은 영화의 예술적 특성에만 주목하는 것이 아니라, 영화가 세계 내에서 하는 역할과 기능을 못지않게 중요하게 여기는 논지를 지녔다. 즉, 바디우는 영화에서 언제나 동시대인의 삶을 보았으며, 그것이 중요했고, 그것을 가능케 하는 영화의 미학적 속성을 높이 샀다. 영화가 영화만의 미학을 통해 그것을 성취하며, 현대의 어느 매체보다 그것을 강력하게 해냄을 바디우는 눈여겨보았다.

    바디우와의 인터뷰에서 앙투안 드 베크가 표현하듯이, 알랭 바디우에게 영화란 “‘인간 현존’의 선언”” 18)이며, 이것이 바디우 영화론의 핵심을 이룬다.

    “여기, 이런 사람이 있네.”라고 보고 깨닫고 생각하게 하는, 그것이 이상하거나 동요를 불러일으키는 것이라 해도 어떤 인간의 현존을 생생히 보도록 하는 예술형식으로서 영화는 바디우에게 있어 “타자를 생각하기 위한 도구” 20)이다. 영화가 보여주는 대로 누군가를 자세히 시선을 돌리지 않고 보게 될 때, 우리는 타자의 삶과 존재를 진지하게 생각하게 된다. 그것을 위해 가장 강력한 예술이 현대에서는 영화라는 것이 바디우의 영화 매체에 대한 견해이다.

    이러한 관점 하에서 바디우는 “영화가 주체로서 세상의 상태에 대해 우리에게 무엇을 이야기해주는지 설명” 21) 하는 영화 글쓰기를 해왔다. 그의 영화 글쓰기는 “자유 연상 식의 글쓰기” 22) 로서 “영화에의 일종의 스스로 굴러가는 탐사” 23) 의 성격을 지녔다. 이후 바디우는 1990년대에 영화이론가 드니 레비 Denis Lévy와 함께 영화와 철학을 공부하는 학생들을 대영화들은 아주 인공적이다.상으로 영화를 보여주고 토론하는 활동을 거쳐 『영화 예술 L’Art de cinéma』이라는 저널을 만들기에 이른다. 그 저널에 기고하면서 바디우는 본격적으로 “영화에 관한 사유” 24) 를 전개하며, “영화들과 감독들에 대한 보다 형식미학적인 분석” 25) 을 펼친다. 그의 영화론은 세계를 바라보는 철학과 긴밀히 연관되어 있으며, 지속적인 사유의 일부이자 출발점이고 연장선상의 지점들을 이룬다.

    바디우의 ‘영화의 사유’는 단순히 영화에 대한 사유인 것이 아니라, ‘사유의 방식’으로서의 영화를 사유하는 것에 가깝다. 그는 영화가 제공하는 인간 현존에의 사유를 사유하며, 특히 영화가 제공하는 “동시대적 사유” 26) 에 주목한다. 그리스인들의 사유에 비극이 바탕으로 작용 하듯이, 현대인에게는 영화가 그러한 역할을 한다고 그는 본다.

    영화는 현대성의 매체로서, 동시대의 세계를 사유하는 장으로서 기능한다는 바디우의 이 같은 견해는 해마다 세계의 다양한 영화들이 동시대인들의 삶의 모습들을 증언하는 작업을 선보이고 그것이 세계의 ‘극장’에서 상영되며 동시대 관객들의 사유를 촉발시키고 있는 점을 상기할 때, 현대 영화를 고찰하는 중요한 논의로 여겨진다. 움직임과 투영으로 인간 현존을 포착하여 나타내는 영화는 그 자체로서 ‘사유’한다. 영화는 동시대의 사람들과 삶들을, 세계를 사유한다. 그러므로 동시대적 사유야말로 “영화가 모두 관여하고 있는 것이며, 영화의 주제 그 자체” 28)이다. 이러한 인식 속에서 바디우는 영화를 “사유의 창조적 힘” 29) 으로 간주한다. 사유의 주체인 영화는 바디우 철학의 전체 맥락에서‘진리’와 깊은 관련을 지닌다. 즉, 바디우는 영화가 진리를 생산한다고 여긴다. “영화는 진리의 생산자인가?” 30) 라는 질문에 바디우는 이렇게 답한다.

    바디우는 여기에서 ‘사유’를 강조하면서도 ‘개별적 요소’와 ‘움직임’을 통해 그것이 가능하다고 하면서 영화미학적 요소를 중요시한다. 그렇다면, 그는 왜 ‘비미학’이라는 말을 쓰는 것일까? 바디우의 영화론은 그의 ‘비미학inesthétique’ 32) 의 관점과 궤를 같이 하기에, 여기에서 이 논지를 조금 자세히 짚어 보고자 한다. 알랭 바디우의 비미학은 미학이 아름다움을 다루는 것과 달리 진리의 생산자로서의 예술을 고찰하는 개념이다. 즉, 기존의 관념대로라면 예술은 ‘미’를 생산하고, 철학이 ‘진리’를 생산한다면, 바디우의 ‘비미학’은 그러한 ‘미학’에 대한 반대개념으로서, 예술은 스스로 진리를 생산하고, 바로 그러한 예술의 진리 생산 자체에 대한 고찰이 중요하다는 것이‘비미학’이다. 예술은 더 이상 철학이 의미와 진리를 추출해내야 하는 대상이 아닌, 주체적인 진리의 생산자이다. 이러한 비미학의 관점에서, 바디우에게 영화 역시 진리를 생산하는 사유의 주체이며, 이때 중요하게 다루어지는 것이 인간 현존이다. 사람이 언제나 그 속에 있다. 인간 현존을 어떻게 보여줌으로써 어떤 진리에 도달하는가, 영화가 세계를 어떻게 바라보며 인간과 세계에 대한 어떤 동시대적 진리를 전하는가가 그의 영화론의 중심에 있다.

    그렇다면, 울리히 자이들 ‘천국 3부작’ 영화 시리즈는 이러한 바디우의 영화론과 어떤 접점을 갖고 있는 것일까? 자이들 영화는 우리에게 어떤 ‘타자’의 현존을 바라보게 하고, 그를 통해 어떤 사유를 하게 할까? 그리고 자이들의 영화는 어떤 형식적 힘을 통해 그것을 성취하는가?

    8)Alain Badiou, Cinema, p.3.  9)Ibid, p.6.  10)Ibid, p.2.  11)Ibid, p.3.  12)Ibid, p.3 참조.  13)Ibid, p.3.  14)Ibid, p.3.  15)바디우의 전반적인 비평 글쓰기 활동이 사르트르에게서 많은 영향을 받았듯이, 바디우의 영화론 역시 사르트르가 가졌던 영화에 대한 생각들과 비슷한 부분들이 있다. 그러나 사르트르에게 본격적인 영화론은 부재하며, 바디우는 사르트르에 비해 본격적으로 영화론을 펼쳐왔다. 사르트르의 영화에 관한 생각들과 시나리오 작업 및 본격적인 영화론 부재에 관해서는 다음 논문을 참조: 윤정임, 「사르트르와 영화: 필연성의 매혹」, 『유럽사회문화』, 2012, 33-58쪽.  16)Alain Badiou, op.cit, p.3.  17)Ibid, p.3.  18)Ibid, p.6: “the manifesto of “human presence”  19)Ibid, p.6.  20)Ibid, p.8.  21)Ibid, p.15.  22)Ibid, p.16.  23)Ibid, p.16.  24)Ibid, p.16.  25)Ibid, p.16.  26)Ibid, p.17:  27)Ibid, p.17.  28)Ibid, p.17.  29)Ibid, p.17.  30)Ibid, p.18.  31)Ibid, p.18.  32)알랭 바디우는‘비미학’이라는 말에 관해 이렇게 쓴다. ““비미학”이라는 말은 철학과 예술이 맺는 관계를 가리키는 것으로, 이 관계에서 예술은 스스로 진리를 생산하는 것으로 간주되며, 이 관계는 어떤 방식으로도 예술을 철학을 위한 대상으로 만들려 하지 않는다. 미학적인 사변에 반하여, 비미학은 몇 가지 예술 작품들의 독립적인 실존이 만들 어내는 순전히 철학 내적인 효과를 기술한다.”알랭 바디우, 『비미학』, 장태순 옮김, 이학사, 2010, 5쪽; “By ‘inaesthetics’ I understand a relation of philosophy and art that, maintaining that art is itself a producer of truths, makes no claim to turn art into an object for philosophy. Against aesthetic speculation, inaesthetics describes the strictly intraphilosophical effects produced by the independent existence of some works of art.” Alain Badiou, Handbook of Inaesthetics, Stanford University Press, Redwood City, CA, 2004, p.i.

    3. 울리히 자이들의 영화미학: 존재론적 사실성을 위한 스타일

    울리히 자이들 34)이‘천국 3부작’에서 시도하는 것은 바디우적 의미에서의 ‘인간 현존의 묘사’이다. 자이들은 ‘천국’이라는 제목 하에 전혀 천국에 사는 것 같지 않은 사람들을 제시한다. (어떤 의미에서는 일종의 천국이라고 볼 수도 있다. 여기에서 ‘천국’은 다분히 반어적이고 이중적이다.) 이 논문에서 분석할 영화 <파라다이스: 소망>에서는 청소년 비만 치료캠프에 들어간 십대 소녀가 그려진다. 정갈한 자연 속에 지어진 깔끔한 시설 속에서 지루하고 억압적인 운동과 식이제한의 생활이 연이어지고, 그 생활 속에 주인공 소녀는 시설의 의사에게 첫사랑을 품게 된다.

    자이들이 인물을 그려내는 방식은 매우 사실적이지만 매우 인공적이기도 하다. 그가 만들어내는 이미지들은 매우 차갑고 집요하다. 그럼에도 그 속에 내밀하고 뜨거운 것을 담고 있다. 왜냐하면 진실에 가까운 인간의 모습이 드러나서, 관객으로 하여금 생경한 타인의 존재를 아무 가림막 없이 보게 하기 때문이다. 자이들의 영화는 관객으로 하여금, 바디우적 의미에서 “타자를 생각” 35)하게 한다.

    자이들은 매우 낯선 방식으로 인간을 묘사한다. 대상을 관찰하고 묘사하되, 주관적인 자기만의 시각적 틀 안에 구획하는 방식으로 묘사대상을 담아낸다. 그것은 인물들이 자유의지로 살아가는 게 아니라 보이지 않은 어떤 시스템과 이데올로기의 프레임 안에 갇혀 움직이고 있다는 인상을 준다. 이에 대해 울리히 자이들 작가 자신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이러한 자이들의 태도는 자연스러운 리얼리티를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서 관객에게 불편한 감정을 야기한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언뜻 보기엔 매우 사실적인 모습들이 자꾸 어딘가 이상해 보이는 것에서 세계 자체에 의심을 품게 하고, 그것이 불편을 자아낸다. 극단적으로 사실적이면서 동시에 인공적으로 재단되어 제시되는 인간의 모습은 때로 보기 힘들 만큼 우스꽝스럽거나 그로테스크하거나 유치하고 지독하다. 관객은 자이들의 영화가 보여주는 인간의 모습을 보며 처음에는 (비)웃을 수 있지만, 어느새 그들과 자신을 명확히 구분하기 어려워지며, 자신을 포함하여 인간이라는 존재의 극도로 리얼한 모습에 당혹감을 느끼고 만다. 자이들은 냉정하게 묘사할 뿐, 영화가 묘사하는 인간들에 대해 평가를 내리지 않는다. 따라서 관객은 도대체 이 영화를, 이 ‘이상한’ 인간들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난감해 하게 된다. 평범한 사람들이 지닌 일탈적 심리와 광기가 발가벗겨져 드러나고, 어떤 결론도 교훈도 제시되지 않은 채 그 현존의 드러남 자체가 영화의 처음부터 끝까지 일정하게 지속된다.

    이러한 울리히 자이들의 영화들은 개인의 삶의 양태에 틀처럼 작용하는 사회와 이데올로기, 인간의 우습고도 슬픈 존재상을 어떤 치장도 없이 밝은 빛 아래에 낱낱이 비추어 드러낸다는 점에서 “‘사회적 포르노그래피’, ‘비참 포르노그래피’, 또는 ‘가학-가련주의’” 37) 로 칭해지곤 했다. 이러한 라벨이 붙을 정도로 자이들의 영화는 늘 문제제기를 하는 문제작이었다. 『타락. 영화작가 울리히 자이들의 경계 넘기』에서 슈테판 그리쎄만은 “울리히 자이들의 영화들은 문제적이다. 그것이 그작품들의 질을 나타낸다.” 38) 라며, 논쟁을 일으키는 그의 영화의 형식적 힘에 주목한다. 어떤 것이 논쟁을 일으킨다는 것은, 그것이 관객들의 어떤 중요한 지점을 건드린다는 것이며, 그것은 감추어진 징후일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자이들은 마치 의사가 환자의 몸을 발가벗겨 진찰하듯, 그렇게 인물들의 삶의 일거수일투족을 드러내 관찰한다. 비슷한 징후를 가진 관객들에게 그것은 불편하다.

    자이들의 영화는 관객에게 우스우면서 어딘가 불편하고, 슬프면서도 그로테스크한 인간상을 그린다. 달리 말하면, 그의 영화는 우스운 것에 대해 마냥 웃을 수 없게, 슬픈 것에 대해 마냥 슬퍼할 수 없게 한다. 비만학생을 위한 다이어트 및 운동 캠프에 보내진 한 십대 여학생이 자신을 진찰하는 캠프의 중년의사와 사랑에 빠져 진지하게 옷과 화장을 고민하며 진찰실 앞에서 의사를 기다린다면, 그리고 의사 역시 여학생에게 몹시 끌리지만 차마 어떻게 할 수 없어 변덕스런 반응을 보인다면, 그러다가 소녀가 캠프를 나온다면, 이것은 우스운 것일까, 슬픈 것일까, 아니면 진지하게 풋풋한 모두가 겪는 어설픈 첫사랑 이야기일까. <파라다이스: 소망>에서 이러한 상황/모습을 그려내듯이, 자이들은 인간의 모든 행동과 심리를 날것 그대로 극명하게 그려내 모든 것에 대해 이중적인 감정을 갖게 하며, 영화 속 인물들을 보는 시선이 마침내는 관객 자신에게로 향하게 하는 독특한 미학을 구사한다. 그럼으로써 자이들의 영화가 선사하는 것은 타자에 대한 통렬한 이해로부터 비롯되는 인간을 보는 냉철하고도 깊은 시선과, 나아가 사람들이 이루는 관계 및 인간이 사는 사회에 대한 감각적 성찰이다. 39)

    작가 자신의 시선은 매우 냉소적이고 어떤 휴머니즘적 온기도 배제한 듯 보인다. 그 점에서 울리히 자이들은 “일종의 비도덕적 사회비판가” 40) 라 할 수 있다. 흥미로운 것은, 비도덕적일 만큼 가차 없이 차가운 그의 시선이 도덕을 묻는다는 것이다. 정상적 인간의 유치성과 억눌린 욕망을 드러내 모든 것을 냉소적으로 보게 함으로써, 인간과 사회가 지녀야 할 진정한 도덕이란 무엇인가, 우습지도 슬프지도 않은 현존을 이루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가장 밑바닥에서부터 물어 온다. 그 물음은 관객이 영화를 보고 난 뒤 갖게 되는 내면의 목소리이다. 그리고 바로 그것이야말로 알랭 바디우가 영화가 진리를 생산한다고 할 때 의미한 ‘진리’에 가까운 것일 것이다.

    그러한 효과를 이끌어내는 것은 자이들의 독특한 리얼리티 감각이다. 그는 사실적인 것을 극단까지 추구하는데, 일반적 리얼리즘과는 사뭇 다른 인공적 리얼리즘을 구사한다. 이른바 ‘새로운 오스트리아 영화Neues Österreichisches Kino’의 대표작가인 오스트리아의 영화감독 울리히 자이들의 영화가 불러일으키는 이 같은 효과를 둘러싼 술렁임은 그의 영화미학에 대한 다각도의 접근을 요구하고 있다. ‘천국 3부 작’은 칸 영화제 경쟁부문에 오르는 등 울리히 자이들을 국제적으로 알린 그의 최근작이자 대표작으로, 이 논문에서는 그 가운데 마지막 작품인 <파라다이스: 소망 Paradies: Hoffnung> (2013)을 중심으로 특유의 하이퍼리얼 영화미학을 살펴보고, 이를 알랭 바디우의 영화론의 관점에서 이해해 보고자 한다.

    33)Alex Ling, Badiou and Cinema, p.43: “Which is finally to say that cinema is an ontological art.”  34)울리히 자이들은 오스트리아 빈에서 태어나 언론학, 미술사, 드라마를 공부하고 다큐멘 터리 작가로 활동하다가 극영화를 만들기 시작했다. 그의 영화에는 다큐영화와 극영화 사이의 독특한 긴장이 늘 들어 있으며, 저널리즘적인 경향, 회화적이고도 연극적인 미장센이 특징을 이루고 있다.  35)Badiou, Cinema, p.8.  36)Stefan Grissemann, Sündenfall. Die Grenzüberschreitungen des Filmemachers Ulrich Seidl, Sonderzahl, Wien, 2007, p.23.  37)Florian Mundhenke. “Authenticity vs. Artifice: The Hybrid Cinematic Approach of Ulrich Seidl”, Austrian Studies, Vol. 19, 2011, pp.116-117.  38)Stefan Grissemann, Sündenfall. Die Grenzüberschreitungen des Filmemachers Ulrich Seidl, Wien: Sonderzahl 2007, p.12.  39)이는 알랭 바디우의 영화론뿐만 아니라 바디우가 『사랑 예찬 In Praise of Love』에서 논하는 ‘세상을 보는 관점을 열어주는 관계로서의 사랑’에 관한 사랑론과도 맥을 같이 한다.  40)Stefan Grissemann, “Arbeitsweisen eines„anstößigen“ Künstlers: Ulrich Seidls „Paradies “-Trilogie”, FILM-DIENST 3/2013. http://www.filmdienst.de/filmdienst-inhaltsangabe/einzelansicht/ohne-netz,157570.html

    4. <파라다이스: 소망>

    <파라다이스: 소망>은 오스트리아의 영화감독 울리히 자이들의 ‘천국 3부작: 사랑, 믿음, 소망’ 중 마지막인 세 번째 작품으로, 방학 동안 열리는 비만학생을 위한 특별운동캠프에 참가하는 어느 여학생을 주인공으로 하여, 비만치료캠프의 참가 학생들과 지도체육교사, 건강 관리 담당의사 등 캠프 구성원들의 행동양태를 묘사한 영화이다. 전작인 <파라다이스: 사랑 Paradies: Liebe> (2012)의 주인공 테레사의 딸이자 <파라다이스: 믿음 Paradies: Glaube> (2012)의 주인공 안나 마리아의 조카인 멜라니가 이 영화의 주인공이다. <파라다이스: 소망> (2013)은 멜라니를 이모인 안나 마리아가 차에 태워 여름방학 비만치료캠프 시설에 들여보내는 것으로 시작한다.

    이 영화는 이야기이기에 앞서 ‘사진들’이다. 하얀 캠프복 티셔츠와 반바지를 입은 참가 학생들의 모습이 미니멀한 캠프 시설 속에 정형화된 시각양식을 이루며 인공미를 느끼게 하는 미장센으로 제시된다. 몸에 대한 규율이 시각적 형태로 나타나며, 그 딱딱함 속에 주인공 소녀의 ‘몸의 자유와 해방’ 41) 을 향한 ‘소망’이 대비를 이루며 사건을 일으킨다.

    <파라다이스: 소망>에서 막 성에 눈 뜨기 시작하는 십대 중반의 소녀 멜라니는 이내 자신의 몸을 진찰하는 중년의 의사에게 성적 호감을 갖고, 그를 좋아하기 시작한다. 비만캠프는 소녀들이 몸에 관해 집중적으로 생각하고 자신의 몸을 역설적으로 재발견하게 하는 장소로 기능한다. 체육관이 규율과 억압의 공간이라면, 침실은 대화와 소통의 공간이다. 소녀들은 이층침대들이 놓인 기숙사형 침실에서 솔직하고 은밀한 대화를 나누기도 하고, 밤에 몰래 술을 마시며 야한 놀이를 하기도 한다. 또래친구의 이른 첫 경험에 관한 얘기를 들으며 놀라던 멜라니는 어느새 진지하게 의사와의 관계를 진척시키기 위한 상담을 친구와 하기에 이른다. 획일적인 캠프시설의 시각적 특성과 그것을 꼭닮은, 인체에 대하여 획일적 규율을 강제하는 캠프의 프로그램과 대비 되어, 억압적 환경에서 피어나는 소녀의 일탈적 성욕과 사회적으로는 치료의 대상으로 여겨지는 비만 상태의 몸에 대한 해맑은 자신감이 오히려 건강하고 자연스러운 것으로 느껴진다. 편견과 고정관념에 균열이 일어나며, 감성과 가치관의 전복이 일어나는 것이다.

    울리히 자이들이 비만캠프라는 한정된 시공간에 모인 사람들의 행동양태를 묘사함으로써 드러내 보이는 것은 어떤 평가도 전면에 내세우지 않은 타자의 현존 자체이다. 단지 매우 사실적으로 보여주기만 함으로써 타자화되어 있는 대상 인물에 대해 전적으로 새로운 관점에서 관객 스스로 생각하게 만든다. 자이들이 만드는 리얼리티는 일반적 리얼리즘이 추구하는 것과는 결이 다르다. 장소와 행동과 인물들의 차림새 등이 꾸밈없되 미니멀하게 나타나며, 마치 ‘표백’된 ‘진공’ 상태인 듯, 그래서 제시되는 공간이 마치 ‘실험실’인 것처럼 느껴지도록 한다. 가만히 정지해 관찰하기를 즐기는 자이들의 카메라는 인물들이 일정한 시공간과 상황 속에서 어떤 행동을 하는지 지켜보며, 마치 피실험자들을 관찰하는 듯한 태도를 유지한다. 그럼으로써 <파라다이스: 소망>은 극영화임에도 다큐멘터리와 같은 뉘앙스를 띤다. 다큐멘터리 가운데에서도 현실을 그대로 담아내는 것이 아닌, 어떤 특정한 환경 속에 놓인 대상을 관찰하는 다큐멘터리의 어조를 자이들 영화에 부여 하고 있는 것은 바로 미장센이다. 그의 미장센은 현실 가운데 유심히 봐야 할 것을 눈에 띄게 강조한다.

    <파라다이스: 소망>에서는 모든 장면들이 자로 잰 듯 구획된 미장센 속에 사물과 인물, 공간 등 프레임 안에 배치되는 모든 것이 과장 되게 드러나 보이도록 만들어져 있다. 체육관 강당 안에 일렬로 늘어선 참가 학생들의 몸은 마치 신체검사를 받듯 눈에 띄게 대상화되어 전시되며, 분수대를 가운데 놓고 둥글게 돌며 하는 노르딕 워킹 장면 역시 운동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장면일 뿐인데도 기계적이고 아무 의지 없는 학생들의 동작과 그들의 무표정, 그리고 지나치게 활기찬 지도교사의 모습 등이 기이한 대비를 이루며 자이들 영화 특유의 우습고도 심각한 정서를 자아낸다. 그 부조화스러운 운동과 무심함의 대조를 통해, 비만캠프라는 프로그램과 몸을 규격화하려는 현대사회의 규율 자체가 우스꽝스럽고 인공적인 것으로서 인식되게끔 전달된다. 즉, 자이들의 인공미는 사람들의 사고의 인공적 틀을 유비적으로 암시하고 있다. 부엌 창문의 열린 틈으로 밤의 탈출을 벌이는 뚱뚱하고 예쁘고 사랑에 들뜬 소녀들은, 그 틀을 비집고 밖으로 나가 해방을 찾으려는 움직임의 주체이다.

    자이들의 영화미학은 다큐멘터리와 픽션 사이에서 두 가지를 모두 부정하는, 즉 다큐멘터리적인 것 안에 허구적 뉘앙스가 짙게 드리워지 고, 허구적인 것 안에 다큐멘터리 뉘앙스가 강하게 섞이도록 하는, 그래서 매우 사실적인 것을 제시하되 그 자체로서 허구가 되도록 하는 경향을 띤다. 자이들의 영화에는 다큐멘터리적일 만큼 극사실적인 것과 허구적인 것이 묘하게 동시에 있다. ‘픽션 같은 다큐멘터리 같은 픽션’ 43) 인 울리히 자이들의 영화는 사실적인 것을 인공적으로 담아냄으로써 다큐멘터리와 픽션의 융합을 자아내는 것으로 이해된다. 거기서 픽션은 지어낸 이야기, 즉 내러티브에서 기인하는 것이 아니고, 리얼리티가 인공적 분위기를 띠게 하는 것에서 생겨나는 어떤 감각이다. 즉, 자이들의 영화는 매우 사실적인데, 그 사실성에 인공성이 드리워져 있고, 그 안에서 사실성과 허구성이 내러티브로서가 아니라 시각적 스타일로서 서로에게 녹아든다. 그 결과, 현실 자체가 허구적인 것으로 나타나며, 그러한 미학적 스타일이 주제로 직결된다. 바로, 현실의 삶을 사는 인간 현존이 지닌 부자연스러움, 리얼리티를 극도로 환하게 비추어 한 점 가릴 것 없이 드러낼 때 드러나는 리얼리티 안의 인간 심리의 모순이라는 주제가 형식적 미학을 통해 전달되는 것이다. 그것이 자이들의 영화미학의 핵심이다.

    플로리안 문트헨케는 울리히 자이들의 영화를 ‘진정성’과 ‘인공성’의 대결이자 결합으로 보면서, 그의 영화가 구사하는 독특한 사실성과 허구성의 융합44)을 자세히 진단한다. 그것은 우선 자이들의 ‘강요하는 관찰자’적 태도에서 비롯하는 것이다.

    이상하거나 동요를 불러일으키더라도 인간 현존을 응시하도록 하는 매체로서의 영화의 형식적 힘에 주목했던 바디우의 논지를 상기해 보자. 울리히 자이들은 그의 카메라가 담아낸 것들을, 그것이 아무리 보기 민망하거나 우스꽝스러운 것이라 해도 그 자체로서 보도록 관객의 눈앞에 들이민다. 그 점에서 그는 가학적인 성향을 띤다. 즉, 그는 관찰하며 관찰시키되, 거기에는 그만의 강요적 태도가 있으며, 직접 말하지는 않되 어떠한 지점을 향해 결론이 가 닿도록 지속적으로 관찰 하고 관찰시킨다. 그것은 집요한 관찰이며, 리얼리티가 무언가를 드러낼 때까지 집요하게 밀어붙이는, 리얼리티에의 믿음이자 집착이기도 하다. 이때 보기 힘든 것을 계속 보도록 만드는 것이 자이들의 영화 이미지가 지닌 형식적 힘이다. 일단 그의 이미지는 시각적으로 ‘아름 답고’ 또 ‘흥미롭기’ 때문이다. 또 소재 46) 자체가 선정적이기도 해서, 관객의 관심을 자극하기도 한다. 그 두 가지가 동시에 작용해, 선정적 소재가 깨끗한 시각적 이미지 속에 담겨 제시되기 때문이다.

    울리히 자이들은 극영화와 다큐영화 사이의 구분에 대하여 독특한 시각을 가지고 있다. 작가 자신의 중요한 인터뷰 발언들이 이를 뒷받침한다.

    아무것도 연출하지 않고 객관성의 장막을 둘러치듯 작업하는 다른 다큐영화 감독들과 달리, 나는 나의 작업수단들을 감추지 않고, 도리어 그것을 스타일로 승화시킨다. 48)

    ‘존재론적으로 사실적인 것’을 드러낼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으로서 그는 극영화적인 것과 다큐영화적인 것 사이의 구분을 두지 않으며, 사실성을 추구하는 영화작가들이 객관성을 담보하기 위해 애쓰는 것과 반대로, 오히려 인공적인 주관적 수단들 - 작위적인 미장센, 미니멀한 프레임과 색조, 조명과 촬영 등을 통한 인물과 사물들에 대한 과장 등 -을 하나의 스타일이 되도록 고양시킨다.

    이러한 방법을 통해 울리히 자이들이 만들어내는 것은 바로 ‘인간 현존’의 전시장이다. 거기에는 인간이란 이러한 존재라는 것이 여러 사례 연구들처럼 하나하나 적나라하게 전시되어 있다. 알랭 바디우가 ‘인간 현존’을 드러냄으로써 ‘타자를 생각’하며 ‘동시대적 사유’를 하도록 하는 것이 현대 영화가 지닌 중요한 특성이라고 논할 때, 울리히 자이들의 영화미학은 그에 정통으로 화답한다. 또한 이때, 자이들의 영화미 학은 바디우의 비미학과도 만난다. 자이들의 영화가 궁극적으로 겨냥하는 것이 ‘미’라기보다는 그것을 수단으로 해 도달하게 되는 ‘진리’에 가깝기 때문이다. 그의 영화의 모든 ‘미학적인 것들’이 ‘진리 생산’을 위한 도구처럼 쓰이고 있다는 점에서, 울리히 자이들의 영화미학은 미학적인 것을 경유하여 비미학적인 것에 가닿는, 영화비미학이기도 하다.

    41)‘몸에 대한 규율과 그로부터의 해방’은 자이들의 ‘천국 삼부작’을 관통하는 주제이다. <파라다이스: 사랑>의 백인 중년 여성 테레사는 케냐 해변에서 젊은 흑인 남성과 관계를 가지며, <파라다이스: 믿음>의 신심 돈독한 간호사인 안나 마리아는 신체장애를 가진 무슬림 남편과의 성관계를 기피하면서 몸에 대한 강박적인 금욕에 사로잡혀 있고, <파라다이스: 소망>의 연애경험 없는 십대소녀 멜라니는 비만을 치료하기 위해 들어온 운동캠프에서 오히려 자신의 몸의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중년 의사와 어설픈 첫사랑에 빠진다. 이처럼 ‘몸’을 둘러싼 각기 다른 규율, 억압, 선입견과 편견 등을 교묘히 발가 벗기는 작업이 자이들의 ‘천국 삼부작’을 관통하며 일관되게 이루어지고 있다.  42)Ibid, p.20.  43)삶을 그리되 그것이 ‘삶의 복사본’처럼 보이게 하는 것이 자이들의 영화미학이다. 이는 하이퍼리얼리즘의 속성이다. 즉, 현실의 재현이 아닌 ‘재현’의 재현, 혹은 ‘사진’의 재현으로서의 리얼리티를 말한다. 이때, ‘사진’의 자리에서 작용하는 것이 감독 자신의 주관적 이미지이다. 울리히 자이들의 영화에서 많은 쇼트들이 마치 ‘사진’처럼 보이는 것은 이와 관련이 깊다. 즉, 자이들의 이미지들은 삶 그 자체로부터 나온다기보다, 삶에 대한 집요한 관찰로부터 만들어진 감독 자신의 ‘사진’ 이미지의 재현으로서의 ‘삶의 모방’으로 이해될 수 있다. 이에 관하여 다음 논의를 참조: “하이퍼리얼리즘은 현실을 직접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대부분의 경우 사진을 재현한다. 그러므로 이것은 재현의 재현이다. 이것은 복제의 복제가 거듭되면 점점 원본에서 멀어지듯이 사진이 재현한 것을 다시 재현하면서, 즉 재현의 반복을 통해 실재와 멀어져 스스로 원본이 된 인위적 대체 물, 시뮬라크르(simulacre)가 된 것이다.” 김현화, 「하이퍼리얼리즘, 20세기의 눈속임:“나는 너의 거울이 될 거야”」, 『미술사와 시각문화』11집, 2012, 107쪽.  44)Mundhenke, op. cit, p.113.  45)Ibid. p.117.  46)백인 중년 여성들의 아프리카 휴양지에서의 흑인 청년들과의 성적 만남 (<파라다이스:사랑>), 종교적 광신과 부부 금욕 (<파라다이스: 믿음>), 비만 십대 소녀의 중년 의사와의 첫사랑 (<파라다이스: 소망>).  47)Ibid, p.117.  48)Ibid, p.118.

    5. 하이퍼리얼 시네마

    인간 현존을 과감하게 드러내며 사유를 일으키는 울리히 자이들의 영화(비)미학은 ‘하이퍼리얼 시네마’로 이해될 수 있다. ‘리얼리티’에서 사실성이 더 강조된 하이퍼리얼리티가 여기서 중요하다. 그것은 자연스러운 사실성이 아니라, 인공성이 가미된 사실성으로서, 플로리안 람프의 표현에 따르면 “현실이되, 다만 스타일이 가미된” 50) 현실이다. 하이퍼리얼리즘이란 무엇인가.

    플로리안 문트헨케는 자이들의 영화에서 작용하는 것은 궁극적으로 하이퍼리얼리즘임을 논한다.

    이점에서 람프가 그의 책 『현실, 다만 스타일이 가미된 Die Wirklichkeit, nur stilisiert』에서 자이들의 ‘진정성’과 ‘하이퍼리얼리티’와의 관계에 관해 주목한 점은 적절하다. 자이들이 진정성을 추구하는 방식으로 하이퍼리얼리즘을 구사하는 것을 그는 ‘사물화된 인간’ 현존의 드러냄에 주목해 고찰한다.

    자이들의 하이퍼리얼리즘에서 나타나는 과장된 시각적 제시가 자아내는 효과는 사실성의 극대화를 넘어서서 사실성의 추상화에 이른다. 구체적 사물과 인물을 집약적으로 응축시킴으로써 구체성으로부터 추상성을 이끌어내는 것이다. 자이들은 개별 인물을 극사실적으로 그려낸 영화적 하이퍼리얼 인물화를 통해 인간 현존의 보편적 추상화를 그려낸다. 알랭 바디우의 영화론이 논하듯이, 자이들 영화의 모든 개별적 요소들은 보편적인 것에 이른다.

    <파라다이스: 소망>에서는 이러한 추상화에 이르는 시각적으로 집약적인 사실성의 묘사가 내러티브상에서 나타나는 인물들 간의 소통의 부자연스러움과 어우러진다. 병원과 체육관과 자연으로 이루어진 비만캠프시설은 하나의 세계의 축소판처럼 구체적이면서도 추상성을띤 공간으로 제시되고, 그 안의 사람들 - 학생들, 체육지도교사, 의사 -는 각자에게 규정된 역할을 하면서도 제각기 주어진 역할의 틀에서 조금씩 삐져나와 일탈을 하며 그 과정에서 서로 간의 감정의 전달은 소통되지 않는 상태를 이루는데, 캠프 안의 이러한 행동양태는 캠프밖 사회 전체에서의 일그러지고 닫힌 인간관계를 복사하는 것처럼 보인다. 학생들의 건강을 위한 체중감소라는 책임을 맡은 지도교사는 규율을 지나치게 강조하여 규율 불이행이 발생했을 때 참가 학생들의 신체를 모욕하는 것에 가까운 벌을 주기도 하고, 의사는 진찰실에서 학생과 유치한 병원놀이를 하며 자신이 환자 역할을 한다거나, 자신에게 호감을 보이는 학생에게 모호한 태도를 보여 학생을 혼란에 빠뜨 리기도 한다. 학생들은 자신들에게 가해지는 이 모든 것에 대개 저항 하지 않고, 그 질서의 일원으로 포함되어 있다. 단지 몇몇 학생들만 소소한 음주 놀이나 몰래 밤참 먹기 등의 행위로 자유를 찾고자 할뿐이다. 멜라니와 그녀의 단짝친구가 그 가운데 눈에 띄는 일탈을 행한다. 밤을 틈타 부엌 창문으로 시설을 빠져나가 인근 마을의 술집에 가는 것이 그것이다. 비록 그들의 위험스러운 탈출 시도는 하룻밤 만에 발각되어, 의사에 의해 그들은 캠프로 되돌아오게 되지만, 이것이 가장 멀리까지 나아간 행보로서 의미를 지닌다. 가장 기이한 인물은 의사로, 그는 학생들의 건강이나 신체적 상태 개선에 그다지 관심을 갖고 있지 않고, 업무를 매우 권태로워 하며 학생들과 무의미한 장난을 벌이는 인물이다. 학생들 역시 의지 없이 그저 시키는 대로 정해진 기간 동안 프로그램에 응할 뿐, 이 ‘캠프’는 질서정연하지만 하나의 우스꽝스럽고 기이한 불소통의 집단을 이루고 있다. 그리고 그 모습은 그렇게 낯설지만은 않게 다가온다. 사회 전체가 이렇지 않은가, 라고 영화는 물으며, 어떤 ‘진리’를 인식하도록 관객을 집요하게 인물들 앞에 붙잡아둔다.

    덧붙여서‘비만’은 여기서 ‘추함’에 대한 선입견을 드러내는 시각적 상태로 제시되고, ‘백색’의 이미지를 지닌 진찰실 공간에서 위생을 담당하는 의사가 오히려 불결한 행태를 내비치면서 백색/위생에 대한 선입견 역시 새롭게 바라보아진다. 55)

    울리히 자이들이 그의 영화에서 제시하는 인간 현존은 맨살들이 키치적으로 보이고 아무런 미화가 이루어지지 않는, 바로 몸의 표면에서 시작해, 숨겨져 있는 인간 심리로까지 내려가는 적나라한 것이다. 자이들의 영화는 인간 그 자체를 직시하게 하며, 세계와 인간을 낯설게 보게 함으로써 낯익어서 감추어져 있던 문제를 발견하게 한다. 자이들 영화의 이러한 낯섦은 “명확성을 과도할 정도로 추구한 이미지들”, 56) 다시 말해 ‘하이퍼리얼’ 이미지에 의해 만들어진다. 모든 사물과 인물이 민낯처럼 여실히 제시되는 이미지와 그 이미지에 의해 전해지는 인간 현존 모두 극도로 사실적이고 그럼으로써 몹시 낯설다. 관객은 낯선 인간-타자의 현존과 마주하게 되고, 인간-타자와 세계에 대한 사유를 영화-감각적으로 하게 된다.

    하이퍼리얼 시네마는 인공적인 이미지들로 생겨나는 개념화된 장면 들로 이루어진다.

    “고도로 인공적인 이미지들”이 이루는 “장면들의 개념화”는 보통의 리얼리즘이 추구하는 방식과 사뭇 다르다. 보통의 리얼리즘이 인공성을 배제하며 사실적 세계를 그대로 담아내려 한다면, 울리히 자이들의 하이퍼리얼리즘은 인공적 미학의 시각으로 리얼리티를 극도로 정제해, 마치 자연의 물을 증류한 증류수를 만들 듯, 극도로 ‘투명’하여 자연스러움을 넘어선 이미지들을 제시한다. 이때 작용하는 것은 감독의 ‘시각’이다.

    이러한 자이들의 하이퍼리얼 시네마는 고도의 리얼리티를 전달함에도 불구하고 사실 자체에 그대로 다가가는 사실주의적 방식을 버림으로써 ‘반사실주의’로 이해될 수 있다. 자이들의 시각은 보통의 시력과 해상도를 넘어서는 고도의 렌즈로 사물을 보는 것과 같은 작용을 부른다. 그것은 고도로 ‘깨어 있음’이되, 그 정도가 과도함으로써 오히려 사실성 자체에서 기이함이 느껴지는 사실성으로, 극적 환영의 정반대의 지점에서 출발해 비슷한 지점까지 단숨에 달려가는 낯선 리얼리티 59) 이다.

    그럼으로써 사람의 감정이나 내면이 여기에서는 꿈이나 환상 같은 환영의 도움을 전혀 받지 않고도 하이퍼리얼리티에 의해 내비쳐진다. 그렇다면, 이와 같은 자이들의 하이퍼리얼 시네마 영화미학이 관객에게 주는 것은 무엇일까? 관객은 그의 영화 이미지들을 통해 색다른 방식으로 인간 현존에 관한 성찰을 하게 된다. 언뜻 보기엔 평범해 보이는 사람들을 하이퍼리얼리즘적 시각으로 봄으로써 그들의 현존이 지닌 낯선 것들을 직시하게 되고, 타자에 대한 인식이 보편적 추상화로 확장되어, 그로부터 바디우적 의미에서의 ‘진리’를 발견하게 된다. 이때 정서적 반응과 인지적 활동이 동시에 일어나, 관객은 묘한 불쾌감을 동반하지만 외면할 수 없는 영화의 사유에 동참하게 된다.

    49)Alain Badiou, “Cinema as a Democratic Emblem”, Parrhesia, Number 6, 2009, p.1:“Cinema simultaneously offers the possibility of a copy of reality and the entirely artificial dimension of this copy.”  50)Florian Lamp, “Die Wirklichkeit, nur stilisiert”: Die Filme des Ulrich Seidl, BüchnerVerlag, Darmstadt, 2009.  51)월간미술, 『세계미술용어사전』, 월간미술, 1999, 53쪽.  52)Mundhenke, op. cit, p.121.  53)Lamp, op. cit. p.134.  54)Ibid, p.122.  55)Ibid, p.122: “자이들의 축조는 백색, 추함, 그리고 키치의 과적으로 넘실대며 나아가 캐릭터들 간의 상호작용에 있어 불소통, 의혹 그리고 기만으로 특징지어져 있다.”  56)Ibid, p.124.  57)Ibid, p.124.  58)Ibid, p.124.  59)이점에서 문트헨케가 논하는 바와 같이 ‘브레히트적 낯설게 하기’와 비슷한 작용을 한다고 볼 수도 있다. 그리고 이는 성찰을 촉발한다는 점에서 바디우 영화론의 ‘인간 현존 사유’와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60)Ibid, p.124.

    6. 맺음말

    울리히 자이들의 하이퍼리얼 시네마는 알랭 바디우가 논하는 ‘인간 현존’에 대한 영화의 ‘동시대적 사유’를 잘 실현하는 동시대의 영화양식 가운데 하나이다. 자이들이 보여 내는 삶들은 ‘천국 3부작’의 경우이 시대를 사는 유럽인들, 그 가운데 특히 오스트리아인들의 세밀한 사례들이다. 그는 리얼리티에서 한층 나아간 하이퍼리얼리티를 통해 동시대 세계인들의 현존을 독특한 영화미학 속에 제시한다. 그리고 그러한 자이들의 영화미학은 궁극적으로 ‘비미학’에 가닿는다. 그의 하이퍼리얼리즘이 극사실적인 것을 통해 오히려 반사실주의적인 것에 가닿듯이, 그의 영화미학은 영화적 미학을 도구로 하여 사유를 통한 진리 생산을 목표로 하기 때문이다. 바디우는 영화가 해석을 통해 진리를 읽어 내야하는 대상이 아니라, 그 자체로 주체적으로 진리를 만들어내는 사유의 주체임을 논한다. 자이들의 영화는 인간의 삶을 보여 주는 독특한 방식, 그 영화적 미학 자체로서 인간 현존을 사유하며, 그럼으로써 어떤 진리의 계기들을 만들어내기에, (비)미학적 고찰에 어울리는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영화가 행하는 사유는 매우 구체적이면서 심오하다. 자이들은 매우 구체적이고 극도로 사실적인 이미지들을 통해 심오한 인간 현존을 드러냄으로써, 영화의 사유를 실천하고 있다. 그는 왜 이 영화에 ‘소망’ 이라는 부제목을 붙였을까? 왜 이 영화들의 시리즈가 ‘천국 3부작’일까? 복잡하고 미묘한 심리로 가득한 현실 세계는 천국에 대한 아이러니를 인식시키지만, 동시에 그 안에는 ‘소망’들이 자리해 있다. 반어적인 천국이 아닌 진정한 천국, 해방과 자유를 향한 소망이 그것이다. <파라다이스: 소망>의 주인공 소녀 멜라니는 몸과 사랑에 대한 규율 너머 스스로 해방되는 것에의 소망을 가장 천국이 아닌 것 같은 곳에서, ‘천국보다 낯선’ 자이들의 프레임 속에서 서툴게나마 진실하게 풀어간다. <파라다이스: 소망>이 울리히 자이들의 ‘천국 3부작’ 가운데 가장 희망적인 작품으로 다가오는 이유가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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