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ns cette étude, nous avons analysé l’inter-textualité du sujet commun dans la poésie et la peinture, qui est ‘le semeur’ de Hugo, Millet et Gogh. Voilà donc les objets de recherche : “la Saison de semaille, Le soir” dans les Chanson des rues et des bois(1865) de Hugo, “le Semeur”(en 1850, Huile sur toile, 101.6x86.6cm, musée de Boston) de Millet et “le Semeur”(en 1888, Huile sur toile, 64x80.5cm, musée de Kröller-Müller) de Gogh. Entre les trois, l’oeuvre de Millet est la première faite au point de vue temps, la poésie de Hugo la suivante et le tableau de Gogh le dernier. Surtout ce dernier a à plusieurs reprise imité et peint “le semeur” de celui-là : il a peint ce sujet vingt et un fois entre octobre et nombre 1889 et mars et avril 1889 à Arles. Le poète aussi a probabilité d’avoir vu celle de Millet, car beaucoup de poètes, de romanciers et des peintres se sont rassemblé dans la cénacle de Hugo. On sait bien que son poème s’est inspiré dans “le semeur” de Millet. En effet, ses idées exprimées dans le poème sont très pareilles l’une à l’autre. Le jeune paysan qui sème est décrit comme un pilier moderne qui dirige la révolution de 1848 et comme un homme d’action du évangélisme chrétien dans l’oeuvre chacune de Millet et Gogh, tandis que le vieux paysan (“...les haillons/D’un vieillard qui jette à poignées/La moisson future aux sillons) est peint comme l’identité du poète lui-même qui contemple la vie. Le temps dans le poème est “C’est le moment crépusculaire” ou “Ce reste de jour dont s’éclaire/La dernière heure du travail”, et la silhouette colossale du paysan au soleil couchant se suspend également dans le poème de Hugo et le tableau de Millet. Mais au contaire chez Gogh cela semble comme soleil du midi le soir et comme auréole du Jésus éclairant derrière la tête du paysan. Ici, le soleil énorme et le jaune dominent le paysan. L’espace du poème est ouvert “dans la plaine immense”, “Le geste auguste du semeur” “Semble élargir jusqu’aux étoiles”, alors que les espaces de la peinture sont décrits comme pente instable, et comme immense champ de blé. Alors, le paysan sème dans “la saison des semailes, le soir” et “le semeur”. Que veut dire ‘semer’ là? Quel est le symbol de la semence et du paysan qui sème? D’abord, la semence passe parfois pour le Verbe dans la Bible, et le paysan qui sème symbolise Jésus, donc le sens évangélique contient dans ‘semer’. Hugo considère par exemple le paysan comme un être sacré pour Homme, Millet le propose comme une essence de vie simple de l’ouvrier et enfin Gogh l’identifie à l’acte de son art, c’est-à-dire, à la route du pasteur, quin’est pas réalisé dans sa vie.
밀레와 고흐는 ‘씨 뿌리는 사람’이라는 주제의 그림을 그렸다. 그 둘은 서로 만난 적은 없었지만 고흐는 밀레의 그림, <씨 뿌리는 사람>을 여러 차례에 걸쳐 모사하고, 자신의 작품으로 창작해냈다. 위고는 시집 『거리와 숲의 노래』에 <씨 뿌리는 계절, 저녁>을 발표했다. 이 시는 밀레의 <씨 뿌리는 사람>에서 영감을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시상도 그와 유사하다. 밀레와 고흐는 같은 주제로 밭에서 씨를 뿌리고 있는 농부를 형상화했고, 위고는 농부가 씨 뿌리는 광경을 보고 느끼는 인상을 읊었다. <씨 뿌리는 계절>과 <씨 뿌리는 사람>은 시와 그림이라는 서로 다른 장르지만 농부와 씨를 뿌리는 행위가 두 장르의 텍스트를 관통하고 있다. 두 텍스트에서 씨를 뿌린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또 씨를 뿌리는 농부는 두 장르에서 어떤 상징성을 지니는가?
“씨”는 성경에서 종종 예수의 “말씀”1)으로 통한다. 말하자면 씨를 뿌린다는 것이 “상징적으로 복음주의적인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것”2)이다. 실제 신약성서의 마가복음, 마태복음, 누가복음에는 씨를 뿌리는 사람과 뿌려진 씨를 비유하는 예화가 나온다. “씨를 뿌리는 자가 뿌리러 나가서, 뿌릴 새 더러는 길 가에 떨어지매 새들이 와서 먹어 버렸고, 더러는 흙이 얕은 돌밭에 떨어지매 흙이 깊지 아니하므로 곧 싹이 나오나, 해가 돋은 후에 타서 뿌리가 없으므로 말랐고, 더러는 가시떨기에 떨어지매 가시가 자라 기운을 막으므로 결실하지 못하였고, 더러는 좋은 땅에 떨어지매 자라 무성하여 결실하였으니 삼십 배나 육십 배나 백 배가 되었느니라.”3) (마가복음4:3-8) 이처럼 성경에서 씨를 뿌린다는 것은 곧 세상에 예수의 말씀을 전하는 것이다. 종교적으로 씨는 ‘말씀’으로서 기독교 복음으로 승화되듯이, 농부가 뿌리는 씨야말로 인간의 삶에서 가장 숭고하고 신성한 존재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게다가 말씀의 씨를 뿌리는 예수와 밀 밭에 씨를 뿌리는 농부는 공통적으로 상징적 이미지를 지니고 있다. 따라서 화가와 시인은 씨를 뿌리는 농부와 농부가 씨를 뿌리는 행위에서 ‘갈망하는 영원’과 ‘사후의 세계’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제시하고 있으며, 자연과 영원 사이에 교량 역할을 하는 것이다. 이를테면 위고는 씨를 뿌리는 농부를 인류를 이롭게 하는 신성한 존재로 간주하고 있고, 밀레는 씨를 뿌리는 농부를 통해 “노동자의 질박한 삶의 본질”4)을 제시하며, 고흐에게 씨를 뿌리는 행위는 세상을 향해 던지는 메시지인 자신의 “예술행위, 즉 못 다한 자신의 목회자의 길”5)과 동일한 것이었다. 이처럼 시인과 두 화가는 ‘씨 뿌리는 사람’이라는 동일한 테마를 다루면서도 각각 다른 의미를 제시함으로써 그들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우리는 시와 그림을 분석함으로써 두 장르 사이의 의미 있는 관계와 텍스트들 사이의 미묘한 차이를 살펴보고자 한다.
1)마가복음 (4:14-15) “뿌리는 자는 말씀을 뿌리는 것이라, 말씀이 길 가에 뿌려졌다는 것은 이들을 가리킴이니 곧 말씀을 듣었을 때에 사탄이 즉시 와서 그들에게 뿌려진 말씀을 빼앗는 것이요” 2)http://navercast.com/contents.nhn?contents_id=4234, 2011-01-21 3)마태복음과 누가복음에서도 씨를 뿌린다는 것을 예수의 ‘말씀’에 비유하고 있음을 지적하고 있다. “씨 뿌리는 자의 비유를 들으라. 누구든지 왕국의 말씀을 듣고 깨닫지 못할 때에는 저 사악한 자가 와서 그의 마음속에 뿌려진 것을 채어 가나니 이것은 곧 길가에 씨를 받은 자라. 그러나 돌밭 속에 씨를 받은 자 곧 그 자는 말씀을 듣고 즉시 기쁨으로 받아들이되 그 속에 뿌리가 없어 잠시만 견디는 자니 이는 말씀으로 인하여 환난이나 핍박이 일어나는 때에 그가 곧 실족하기 때문이라. 가시나무 사이에 씨를 받은 자 또한 말씀을 듣되 이 세상의 염려와 재물의 속임수로 인해 말씀이 숨이 막혀 열매 맺지 못하는 자라. 그러나 좋은 땅 속에 씨를 받은 자는 말씀을 듣고 깨닫고 또 열매를 맺는 자니 어떤 것은 백 배, 어떤 것은 육십 배, 어떤 것은 삼십 배를 내느니라, 하시더라. (마태복음 13:18-23) “씨는 하나님의 말씀이요, 길가에 있다는 것은 말씀을 들은 자니 이에 마귀가 와서 그들로 믿어 구원을 얻지 못하게 하려고 말씀을 그 마음에서 빼앗는 것이요, 바위 위에 있다는 것은 말씀을 들을 때에 기쁨으로 받으나 뿌리가 없어 잠깐 믿다가 시험을 받을 때에 배반하는 자요, 가시떨기에 떨어졌다는 것은 말씀을 들은 자니 지내는 중 이생의 염려와 재리와 일락에 기운이 막혀 온전히 결실치 못하는 자요, 좋은 땅에 있다는 것은 착하고 좋은 마음으로 말씀을 듣고 지키어 인내로 결실하는 자니라. (누가복음 8:11-15) 4)박홍규, 『빈센트가 사랑한 밀레』, 아트북스, 2005, 23쪽. 5)위 사이트.
밀레의 <씨 뿌리는 사람>과 고흐의 <씨 뿌리는 사람>은 동일한 테마를 다루고 있다. 밀레도 고흐도 손에 씨를 한 움큼 쥐고 밭에 뿌리는 농부를 묘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밀레의 <씨 뿌리는 사람>이 1850-51년 파리의 살롱전에 출품되었음을 감안하면 고흐의 작품과는 어떤 연관성도 찾을 수 없다. 그 시기라면 고흐가 태어나기도 전이며, 고흐가 그림 그리기를 시작했을 때 밀레는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다. 말하자면 <씨 뿌리는 사람>은 고흐가 화가로서 그림을 습작하면서 밀레의 여러 작품을 모사하는 과정에서 나온 것이다. 밀레 자신도 <씨 뿌리는 사람>이라는 주제에 대단히 열중했고 같은 제목의 그림을 여러 점 그렸다는 점에서, 또 고흐가 이를 모사한 여러 점의 그림을 그렸다는 것 자체가 대단히 시사적이다. 밀레도 고흐도 <씨 뿌리는 사람>이라는 주제에 대한 접근도 달랐고 그 의도도 분명히 달랐기 때문이다. 밀레는 왜 <씨 뿌리는 사람>이라는 주제에 집착했으며, 동일한 작품을 여러 번 그린 이유가 무엇일까, 또한 고흐는 왜 밀레의 이 작품을 여러 번 모사했으며, 그 중에서도 특히 이 작품을 여러 번 그린 이유는 무엇일까?
밀레와 고흐는 바르비종과 아를을 농부가 씨를 뿌리는 공간으로 각각 선택했다는 점이 우선 눈에 띤다. 둘 다 그곳들은 자신이 태어난 곳이 아니다. 밀레는 ‘씨 뿌리는 곳’을 노르망디의 그레빌에서 바르비종으로, 고흐는 준데르트에서 보리나주와 파리를 거쳐 아를로 자신의 아틀리에를 스스로 선택했다.
밀레의 <씨 뿌리는 사람>은 그의 <만종>이나 <이삭줍기>처럼 바르비종이라는 자연의 아틀리에에서 탄생한 걸작이다. 바르비종은 그의 작품이 배경이 되는 곳이며, 그의 예술적 사상과 영감이 교류하는 아틀리에다. 밀레는 1848년 살롱전에서 <키질하는 사람>을 출품하고, 입선해 받은 상금으로 가족들을 데리고 바르비종에 정착한다6). 그는 바로 거기서 농촌을 주제로 하는 노동하는 인간, 노동을 실천하는 농민을 그리는 진정한 농민화가가 되었다. 고흐도 1888년 밀레의 바르비종과 같은 농촌 풍경이 펼쳐진 아를에 정착한다. 고흐는 동생인 테오가 보낸 밀레의 흑백 판화를 통해 <씨 뿌리는 사람>을 모사했다. 물론 고흐는 밀레의 다른 작품들도 습작으로 꾸준히 모사했다. 그는 마치 밀레가 뿌린 씨를 거두는 농부처럼 아를에서 새로운 씨를 뿌리는 농민 화가가 되기를 바라는 것 같았다. 그들은 농촌에서 씨를 뿌리는 사람을 통해 “씨를 뿌리는 농부는 말씀을 전하는 사람”7)이라는 복음주의적 상징을 발견했음에 틀림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흐가 밀레를 좋아했던 것은 “고전회화나 종교적인 주제의 아카데미즘을 거부”8)했다는 것이다. “빈센트는 특히 밀레에게 매료되었다. 그 그림들(고흐의 밀레 모사 작품들)은 노동의 신성함을 찬미한 당시의 소박한 농촌화와는 달리 과격한 정치적 주장을 내포한 것처럼 보였다. 특히 빈센트가 본 그림은 원화가 아니라 흑백의 동판화였기에 그런 느낌은 더욱 강렬했다. 색과 빛이 더해진 원화는 성스러운 재단화와 같은 느낌을 주어 정치적 선전성이 약화되었기 때문이다.”9) 말하자면 흑백의 판화가 농민을 통해 강한 정치적 메시지를 전달하는 효과를 지니고 있었다는 것이다. 물론 밀레의 <씨 뿌리는 사람>은 사회주의적 투쟁을 선동하는 농민으로서의 색채가 농후하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위고의 <씨 뿌리는 계절>도 시의 제목처럼 씨를 뿌리는 계절이라는 시간적 효과보다는 씨 뿌리는 사람에서 시상을 얻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위고의 『거리와 숲의 노래』가 1865년 출판되어 나왔음을 감안하면 시인이 적어도 밀레의 이 작품을 이미 보았을 것이라는 추측이 가능하다. 젊은 시절 위고의 세나클에 비니, 뮈세, 네르발, 생트 뵈브, 메리메, 발자크 등의 시인과 소설가는 말한 것도 없고 들라크루아와 같은 화가도 모여든 점을 감안하면 그림에 대한 위고의 관심을 짐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1848년 밀레의 <키질하는 사람>이 살롱전에 출품되고, 그 후 3년 뒤에 살롱전에 나온 <씨 뿌리는 사람>에 대해 비평계가 극과 극으로 양분될 정도로 언론의 큰 관심을 불러왔다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 위고의 세나클에 있던 고티에는 “밀레의 풍부한 질감 구사와 힘이 넘치는 화풍에 주목”10)했으며, 특히 <이삭 줍는 여인들>에 대해 “정확한 비율로 품격과 진실을 고루 갖추고 있다”11)고 평하고 있다. 다만 위고가 그 당시 영국에 망명 중임을 고려하면 화단의 상황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밀레의 작품에 대한 비평을 삼갈 수밖에 없었고, 다만 그의 작품에서 시적 영감을 얻었을 것이라고 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12).
위고의 <씨 뿌리는 계절, 저녁>은 저녁에 해 질 무렵 농부가 밭에 씨를 뿌리는 모습을 바라보고 깊은 사색에 잠기는 시인을 묘사하고 있다. 이 시에는 씨를 뿌리는 농부와 대문 현관에서 농부의 씨 뿌리는 모습을 바라보고 있는 시인이 주요 등장인물이다. 반면 밀레나 고흐의 <씨 뿌리는 사람>에서는 씨 뿌리는 농부가 캔버스의 주요 공간을 차지하는 등장 인물로 나타나고 있다. 여기에 화가의 모습은 없다. 밀레의 작품에는 캔버스를 거의 차지해버린, 씨 뿌리는 농부의 거대한 모습과 뿌리는 씨를 보고 날아드는 까마귀 떼, 그리고 씨를 뿌리기 위해 밭을 가는 농부와 소의 모습이 보인다. 고흐의 초기 모사 작품에는 씨를 뿌리는 농부와 소로 쟁기질 하는 또 다른 농부가 등장하지만, 후기에는 저물어 가는 커다란 태양과 씨를 뿌리는 농부만이 넓은 들판에 보일 뿐이다. 그러나 위고의 시와 밀레와 고흐의 그림에서 문자(언어)와 색이라는 근본적인 차이 이외에도 더 다양한 차이를 발견할 수 있다. 그러면 서로 다른 두 장르의 차이를 떠나 텍스트 그 자체를 분석함으로써 두 장르를 가로지르는 상호성을 살펴보도록 하자.
시와 그림은 근본적으로 다르다. 시가 시간 예술이고, 또 시간적 흐름이라는 필수적인 과정을 거쳐 이해되는 장르라면, 그림은 공간 예술로서 시각적 동시성을 제시하는 장르다. 마찬가지로 근대회화에서 그림이 언어를 수단으로 그려지는 것이 아니듯이 시도 색을 수단으로 창작되는 게 아니다. 그러나 그림에서 색을 통해 시간이 그려지고, 시에서는 묘사의 축적을 통해 공간이 창조된다. 따라서 그림에서 언어를 읽어내듯이 시에서도 색을 읽어낼 수 있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위고의 시는 밀레나 고흐의 그림처럼 읽혀진다. 위고의 시에는 밀레나 고흐의 그림처럼 시간과 공간, 인물과 사건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
위고의 <씨 뿌리는 계절>은 5연 20행으로 이루어진 짧은 시로 1-2연에 걸쳐 시간 공간적 배경에 씨를 뿌리는 늙은 농부가 그려져 있고 2-5연에는 농부가 씨를 뿌리는 동작과 그 동작이 거대하게 확대되는 장면으로 구성되어 있다. 또한 전반부는 시간과 공간의 배경 속에 퍼소나(“je”)가, 후반부에는 농부(“il”)가 시의 주체가 되어 있다. 시간적으로는 제목이 제시하듯이 저녁(le soir), 즉 “땅거미가 지는 순간”(le moment crépuscule), 혹은 “마지막 순간을 비추는 하루의 끝”(ce reste de jour dont s’éclaire la dernière heure du travail)이며, 공간적으로 “문간 아래”(sous un portail) 펼쳐진 “어둠에 젖은 대지”(les terres, de nuit baignées)다. 이 시가 “지금은 땅거미가 지는 순간”으로 시작함으로써 화가가 그림을 그릴 때 시간적 배경을 가장 먼저 선택하듯이 시의 시간적 배경이 강조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특히 “어둠에 젖은 대지”에서는 시간과 공간이 동시에 제시되어 있으며, 이는 시간 속에 공간이 동화되어 가는 분위기를 잘 보여주는 표현이다. 회화적으로는 어둠의 검은 색이 지배하는 가운데 대지의 마지막 빛이 검붉은 색으로 그려진 캔버스를 떠올리게 한다. 이러한 시간과 공간적 배경 속에 “밭이랑에 한 줌의 씨를 뿌리는 누더기를 걸친 한 늙은이(les haillons d’un vieillard qui jette à poignées la moisson future aux sillons)”가 등장한다. 이 늙은이는 시의 2연에서 5연에 걸쳐 거대한 구도로 다가온다. 이것은 고흐의 <씨 뿌리는 사람>보다는 밀레의 구도에 훨씬 가깝다.
문제는 이 시에서 등장하는 퍼소나(“je”)다. 이 퍼소나는 시에서 등장할 수 있지만 그림에는 캔버스를 그리는 화가 자신이다. 그림에서는 자화상이 아닌 한 화가는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다. 위고의 시에서 이 퍼소나는 바로 시인 자신이다. 시인은 “보이지 않는 목격자(obscur témoin)”로서 시의 시간과 공간 속에 등장해서 “하루 일과의 마지막 순간” 어둠에 젖은 대지를 바라보면서 감탄에 젖고(J’admire)13), 씨를 뿌리는 늙은 농부를 응시하고 “감동으로” 관조하고 있다(Je contemple)14). 말하자면 퍼소나는 해가 지고 어둑해진 땅에 수확을 기대하면서 씨를 뿌리는 한 늙은이를 주관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시인이 이러한 시간 공간적 배경을 바라보고 감탄하며 농부를 응시하면서 깊은 생각에 잠겨 있기 때문이다. 시의 1, 2연은 시인의 주관적 관점이 잘 드러난 대목이라고 할 수 있다. 시의 배경과 인물에 대해 감탄하고 관조하는 것은 시를 읽는 독자의 정서적 관점이 아닌 바로 시인 자신의 그것이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다분히 시의 상징성을 주관적으로 해석하려는 시인의 의지가 드러나 있다. 시인이 왜 ‘해가 지고 어둑해진 땅’을 바라보면서 감탄하고(admire) 씨를 뿌리는 늙은 농부를 보고 “감동에 젖어(ému)” 관조하느냐(contemple) 하는 것이다. 거기에 위고의 상징이 숨어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우선 위고의 시간은 랭보의 ‘여명’도 르콩트 드 릴과 발레리의 ‘정오’도노발리스의 ‘밤의 찬가’도 아니다. 위고의 시간적 색깔은 윤곽선을 명확히 제시하거나 완전히 지워버리는 낮과 밤이 아니라 사물과 사물, 사물과 배경의 경계선을 흐릿하게 만들어 낮과 밤이 서로 뒤섞이면서 동화하는 시간이다. 김성택은 「빅톨 위고의 거대지향 상상력」에서 “이 황혼의 저녁은 ‘정관’의 시선과 상상력이 더욱 활발하게 움직이는 시간이기도 하다. 육체의 눈이 흐려지기 시작하는 시간이고 따라서 정신의 눈이 활동하기 용이한 시간”15)이라고 했다. 말하자면 황혼은 위고의 시적 상상력이 역동하는 시간인 것이다. 씨를 뿌리는 늙은 농부에 대한 위고의 상징은 무엇일까? 우리가 모두에서 언급한 것처럼 씨는 만물 창조의 본질로서 성경에서 말하는 예수의 ‘말씀’이며, 씨를 뿌리는 것은 말씀을 전하는 것이다. 따라서 위고에게 ‘씨’는 신성한 존재로 다가온 것임에 틀림없다.
시인은 3연에서 다시 늙은 농부를 깊이 응시하고 있다. 농부의 거대한 검은 그림자가 넓은 들판을 채우고 있다(Sa haute silhouette noire domine les profonds labours). 1850년의 유채화보다 1851년 석판화로 그려진 밀레의 <씨 뿌리는 사람>이 위고에 이런 구도에 꼭 들어맞는다. 흑백으로 된 석판화에는 씨 뿌리는 농부는 거대한 검은 실루엣(Sa haute silhouette)이 되어 캔버스를 채우고 있기 때문이다. 위고의 시에서는 늙은 농부가 씨를 뿌리고 있지만 밀레의 그림에서는 늙은 농부가 아니다. 시인은 인생을 돌아보고 관조할 수 있는 황혼기의 늙은 농부가 정관과 상상력의 적절한 대상이 된다고 본 게 아닐까? 우리는 수직적(haute), 수평적(profonds) 상상의 존재로서 노인에게서 “미래의 수확”(2연)과 “세월의 흐름”(3연)을 동시에 느끼기 때문일 것이다.
늙은 농부는 “한없이 넓은 들판을 오가며 멀리 씨를 뿌리고, 손에 한줌의 씨를 쥐고 뿌리고 다시 한줌을 쥐어서 다시 뿌린다 (Il marche dans la plaine immense,/ Va, vient, lance la graine au loin,/ Rouvre sa main, et recommence)”. 농부가 넓게 펼쳐진 밭이랑을 따라 갔다가 다시 되돌아오고, 손에 씨를 쥐고 뿌리고 또 뿌리는 동작은 단순하다. 농부가 이랑을 “가며, 오며, 씨를 뿌리는” 장면은 간결하지만 완벽한 동작이다. 더구나 세 개의 동사(va, vient, lance)가 병렬적으로 연결되어, 동작 하나 하나가 또박 또박 끊어지면서 역동적인 운율을 만들어 준다. 위고는 농부가 씨를 다 뿌릴 때까지, 혹은 어두워서 더 이상 보이지 않을 때까지 씨 뿌리는 동작을 보여주는 반면에 밀레는 역동적으로 씨를 뿌리는 정지된 장면을 통해 그 이상의 반복된 동작을 상상하게 해 준다.
마지막 연에서 시인은 “(세상의) 떠들썩한 소리에 뒤섞인 저 농부의 그림자는 너울을 펼치며 별에까지 이를 듯해 씨 뿌리는 농부의 장엄한 동작(... déployant ses volies,/ L’ombre, où se mêle une rumeur,/ Semble élargir jusqu’aux étoiles/ Le geste auguste du semeur.)”을 보고 깊은 명상에 잠긴다(Et je médite). 위고에게 농부가 씨를 뿌리는 행위는 존엄하며 그의 그림자는 수직적으로(sa haute silhouette), 또 수평적으로(les profonds labours, la plaine immense) 확대되어 우주로 확장하고 있다. 그것은 “단지 농부의 육체적인 행위만을 의미한 것은 아니며 상징적으로 정신적인 의미도 포함되어 있는 것이다.”16) 따라서 농부는“시인에게 대지의 평화로운 정복자로 보이며, 거룩한 그의 행위는 전 인류에게 유익한 행위”17)로 간주되고 있다. 말하자면 위고에게 씨 뿌리는 농부의 거룩한 동작은 대지와 우주가 통합함으로써 인간과 신이 하나 되는 “진보주의적 휴머니즘”18)을 창조해 내는 것이다.
1850년에서 1851년의 살롱전을 위해 구상한 밀레의 <씨 뿌리는 사람> <그림 1> (캔버스에 유채, 101.6cm x 82.6cm, 보스턴 미술관)도 “그림에서 풍기는 장엄함은 단지 밭에서의 일상을 기록하는 단순한 연대기적 차원을 넘어”19)서서 미학적 상징이 작품 전체에 짙게 배여 있다. 황혼 무렵 경사면의 거친 밭이랑을 따라 역동적인 동작으로 씨를 뿌리는 젊은 농부가 거대한 구도로 캔버스를 차지하고 있는 이 그림은 시간의 리듬, 조각 같은 엄밀한 구도와 철학적 농부, 하층민들의 노동이라는 밀레 자신의 정체성을 보여주는 인물과 사상이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로버트 허버트도 “밀레가 그렸던 씨 뿌리는 사람을 주제로 한 여러 그림들 가운데 이 인물은 밀레의 자화상이랄 수 있으며, 동시에 그의 미학적 준거가 되기도 한다”20)고 지적했다. 우리는 이 그림의 퍼소나가 바로 밀레 자신이며, 이 그림에서 밀레의 미학을 발견할 수 있다는 점에 주목한다. 그러면 이 퍼소나는 무엇이며, 그의 미학적 특징은 무엇인가? 이를 분석하기 위해 우리는 작품의 시간 공간적 배경과 퍼소나, 작품을 둘러싼 미학적 관점과 논쟁을 차례로 살펴보고자 한다.
시간 : 밀레의 그림에는 시간의 경과가 하루의 흐름과 계절의 변화에 따라 맞물려 있는데, 시간과의 관계에 이중의 자연이 포개짐으로써, 이러한 시간은 역설적이게도 존재들의 비시간성을 확인시키는 바탕이 된다.21) 따라서 그의 캔버스에는 봄, 여름, 가을, 겨울의 사계와 아침, 낮, 저녁의 하루가 자연의 풍경과 겹쳐지면서 시간의 서정시를 그리고 있다.
밀레의 <씨 뿌리는 사람>은 어느 가을날 저물어 가는 하루의 마지막 시간을 그리고 있지만, 위고의 상상력이 역동하는 “땅거미가 지는 순간”(le moment crépuscule)은 아니다. 밀레의 그림에서 구도가 그렇듯이 하늘과 대지를 수평으로 가로지르는 지평선 좌우에 반사된 저녁의 노을이 이를 입증한다. 씨 뿌리는 농부가 하늘과 대지에 거대한 구도로 걸쳐 있고, 지평선의 왼쪽에 까마귀 떼가 날고 있는 모습을 비춰주는 희미한 빛과 오른쪽에 두 마리의 소를 끌고 쟁기질하는 농부를 보여주는 환한 빛이 바로 캔버스를 양분하고 있는 것이다. 빛의 강도나 명암으로 추정하건대 태양은 밭이랑의 경사면 오른편으로 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로 인해 화폭의 오른쪽은 밝은 빛으로, 왼쪽은 상대적으로 희미한 빛으로 처리되어 있고, 경사면의 밭이랑은 어두운 구도로 각각 짜여 있다. 위고에게 땅거미가 지는 시간이 시적 상상력이 역동하는 시간이라면 밀레에게는 해가 저무는 저녁 시간을 통해 엄숙하며 사색적이고 신성한 분위기를 시각적으로 보여주고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공간 : 다음으로 이 그림의 공간적인 구도를 살펴보자. 우선 그림의 3분의 1을 차지하는 하늘과 3분의 2를 이루는 대지를 가르는 비스듬한 지평선이 캔버스를 양분하고 있다. 그림의 한 복판에 역동적인 수직의 구도로 씨를 뿌리는 농부가 자리 잡고 있으며, 그 양쪽에 까마귀 떼와 두 마리의 소에 쟁기를 끄는 농부가 각각 좌우 구도를 이루고 있다. 지평선을 중심으로 원근법의 형식을 취하고 있지만 엄밀한 의미에서 씨를 뿌리는 농부와 쟁기를 끄는 농부는 원경과 근경의 부조화를 이루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씨 뿌리는 농부와 쟁기를 끄는 농부 사이의 거리와 배치, 인물의 크기가 원근법의 정확한 구도로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화폭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대지는 경사면의 불안정한 언덕이다. 더구나 그 밭이랑은 개간이 되어 씨를 뿌리기에는 비현실적인 땅처럼 보인다. 오히려 밀레는 원근법의 부조화와 구도의 비현실성이라는 회화적 관례를 위반했다기보다는 씨 뿌리는 농부의 거대한 수직성과 하늘과 대지가 이루는 수평성을 이어주는 우주적 시각과 인물의 과장된 구도를 통해 인물의 영웅적 서사성을 강조한 게 아닌가 한다.
퍼소나 : 이 그림은 햇볕이 들지 않는 밭이랑의 비탈면을 성큼성큼 내딛으면서 씨를 뿌리고 있는 꾸밈없는 농부의 모습을 현실감 있게 보여주고 있다. 역동적인 몸짓과 투박한 모자 아래로 간신히 보이는 과묵한 얼굴은 서사적이며 한편으로 신비감마저 느껴진다. 허버트에 따르면 이 그림에서 씨 뿌리는 농부는 화가의 자화상이다. 밀레는 짙은 모자를 눌러쓰고 뒤로 제친 오른 손에는 씨를 한 줌 쥐고 있고, 왼손은 한쪽 어깨와 허리를 둘러 싼, 씨를 담은 자루를 움켜잡고 오른 발을 앞으로 힘차게 내딛고 있는 순간을 포착했다. 화가는 농부의 측면을 포착함으로써 씨 뿌리는 자세와 동작을 자세히 보여주고 있다. 농부의 모습을 살펴보면, 입을 약간 벌린 옆모습에 진한 갈색 모자와 연한 갈색 상의를 걸쳤으며, 푸른색 바지에 노란색 밀짚을 동여맨 정강이 보호대를 하고, 어두운 밭이랑과 유사한 짙은 갈색의 신발을 신고 있는 모습이다.22) 특히 거친 손과 마디의 굵어진 관절들, 초라한 옷과 어깨에 걸친 자루, 밀짚 보호대와 땅 속에 묻혀 버린 신발 등은 가난한 행색의 농부임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이 작품이 연대기적으로 밀레의 30대 중반쯤에 완성된 점을 감안하면 눌러쓴 짙은 모자 속에 감춰진 젊은 농부의 옆모습이 이를 입증하고 있다. 밀레의 씨 뿌리는 농부는 위고처럼 늙은 농부가 아니다. 즉 씨를 뿌리는 늙은 농부의 거룩한 동작을 통해 인생을 관조하고 대지와 우주의 합일을 추구했던 것과는 달리, 밀레의 젊은 농부에 대해 당시 비평계에서는 사회 정치학적 해석을 시도했다. 고티에는 “이 남자의 거친 동작 속에는 웅장함과 기품이 서려 있다. 남루하지만 긍지에 차 보이는 이 인물은 마치 자신이 씨를 뿌리는 그 땅의 흙으로 칠해진 듯 보인다”고 했고, 공상적 사회주의자 사바티에 웅거는 이 젊은 농부에게서 혁명적 “근대 시민의 특질을 파악한다”고 했다. 반면 보수주의자들은 이 그림에 묘사된 농촌 사회의 비관주의적 색채 때문에 밀레가 ‘농부’를 그린 게 아니라 ‘건달’을 그림으로써 정작 씨 뿌리는 농부를 왜곡했다고 비판했다.23)
미학적 논쟁 : 이 작품의 가장 중요한 미학적 포인트는 밀레의 다른 작품들과 마찬가지로 동시대의 농촌을 배경으로 당시 프랑스 사회의 하층민인 농부를 그림의 주요 등장인물로 제시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만큼 이 작품을 둘러싸고 비평계는 극과 극으로 양분되는 양상을 겪는다. 밀레가 그림의 주인공으로 내세운 씨를 뿌리는 젊은 농부가 논쟁의 핵심에 서 있다. 그는 <키질하는 사람>(1847-1848, 캔버스에 유채, 103cm x 71cm, 런던, 국립미술관), <씨 뿌리는 사람>(1850), <괭이를 든 사람>(1863, 캔버스에 유채, 80cm x 99cm, 로스엔젤레스, 폴 게티 미술관) 등 일련의 작품에서 “농부의 동작에서 배어나는 서사적 웅대함과, 이를 통해 드러나는 신성을 강조”하고 있다는 관점과 “혹자는 그림의 검은 색조가 농부에 대한 혐오를 드러내는 한 단면으로, 농민 전체를 우롱하는 그림이라고 평”하거나, 1848년 2월 혁명 이후 몇 해 동안 “농민이 정치적 쟁점으로 떠오르는 사회적 상황과 맞물려 점차 고착화”되고, 특히 혁명의 기운을 암시하는 듯한 젊은 농부의 활기차면서도 당당한 태도와 자세, 씨 뿌리는 농부의 손 너머로 그의 노력을 수포로 만들어버리고, 흩뿌리는 씨앗을 덮치는 까마귀떼에서 농민과 이들을 착취하는 현실, 무언가 말하려는 듯 입을 열고 있는 농부의 엄숙함은 “하나의 선동”24)으로 보이게 한다는 것이다.
밀레는 당시의 다른 화가들과는 달리 농부들을 실물 크기는 아니지만, 그들에게 “거작의 풍모를 부여”했는데, 이 때문에 이 인물을 통해 노역자의 모습에서 뿜어져 나오는 난폭함, ‘짐승들’을 암시한 야수성, 영원히 밭을 일구는 비탄에 잠긴 그리스도의 형상, 혁명적 사회주의25)를 표현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그러나 밀레에게 이것은 노동의 고통과 그리고 이를 통해 노동의 신성함을 확인하는 하나의 기록이며, 생명의 원천이 되는 땅을 일구며 살아가는 고귀한 인간의 모습을 반영하는 게 아닌가 한다.
모두에서 언급한 것처럼 1850년에 그린 밀레의 <씨 뿌리는 사람>을 1853년에 태어난 고흐가 보았을 가능성은 없다. 고흐가 밀레의 <씨 뿌리는 사람>을 무려 스무 한 번이나 모사했지만, 밀레의 모티브를 자신의 그림으로 재창조한 것은 아를의 아틀리에 시절 이후였다.
밀레의 판화를 보고 그린 고흐의 <씨 뿌리는 사람> <그림 2> (1889, 캔버스에 유채, 64x55cm, 크뢸러 뮐러미술관)은 그야말로 모사 그 자체였다. 물론 고흐의 작품에는 씨 뿌리는 농부의 얼굴 모습이 밀레의 작품보다 훨씬 구체적으로 묘사되어 있고, 씨를 담은 자루도 다양한 형태를 띰으로써 고흐의 독창성이 엿보이는 대목이 있다. 또한 밀레가 정강이에 보리 이삭들을 감은 보호대를 두르고 있는 반면에 고흐는 긴바지를 입고 구두를 신고 있거나, 반바지에 긴 구두를 신고 있는 식이다. 특히 밀레의 작품에서 그려진, 농부가 뿌리는 씨앗을 먹기 위에 날아든 까마귀 떼들은 사라지고 그 자리에는 그 씨앗들로 대신하고 있다. 밀레의 흑백 판화에 충실하던 고흐는 마침내 아를 이후 풍부한 색채를 구사하여 밀레의 주제를 독창적으로 해석하기 시작한다. 그러면 고흐는 왜 그토록 밀레의 이 주제에 집착했으며, 그가 이 작품에서 발견한 미학적 특징은 무엇일까? 우리는 고흐가 자신의 작품에 대해 언급한 1888년 6월 18일 베르나르에게 보낸 편지를 살펴보면서 이를 분석해 보고자 한다.
우선 고흐에게 아를의 농촌 생활은 낯설지 않았다. (“솔직히 말해, 나는 시골에서 자랐기 때문에 시골이 싫지 않아.”) 어릴 때부터 농촌에서 신앙과 노동의 의미를 자연스럽게 체득하고 자연과 농부, 노동의 가치를 일깨워준 밀레는 그에게 스승과 같은 존재였다.27) (“언제나 밀레를 꿈꾸었네.”) 농부가 땅에 씨앗을 뿌리고 싹을 틔워야 빵을 얻을 수 있으며, 따라서 씨를 뿌리는 가난한 농부야말로 저 들판의 진정한 주인이 되는 것이다. 상징이 된 고흐의 씨앗은 밀레의 사회주의 노동자나 농민처럼 1848년 당시의 시대상을 반영하는 ‘혁명의 씨앗’이 아니라, 기독교적 사회주의 사상28)을 가진 고흐에게는 영혼의 씨앗, 영생의 씨앗이었을 것이다. (“그 상징이 씨 뿌리는 사람과 밀 더미지”) 고흐에게 씨 뿌리는 농부의 행위는 새로운 역사와 희망을 만드는 숭고한 행동이며, 경건하고 숭고한 종교적인 의미가 담겨 있다. “밭에 씨를 뿌리는 자가 곡식을 거두는 것처럼, 영혼에 씨를 뿌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얻으리라.”29) 이런 점에서 농부는 복음의 씨앗을 뿌리는 그리스도일 수 있고, 고흐 자신일 수도 있다. 따라서 씨를 뿌리는 사람은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는 사람이라는 성경의 가르침은 적어도 전도사가 되고자 했던 보리나주 시절의 고흐에게 대단히 중요한 것이었다.
고흐의 독창성이 가장 잘 드러난 작품으로 평가받는 1888년 <씨 뿌리는 사람> <그림 3> (캔버스에 유채, 64 x 80.5cm, 크뢸러 뮐러 미술관)은 밀레나 위고의 ‘씨 뿌리는 사람’과는 상당히 대조적이다. 우선 해가 저물고 어두워지는 위고의 시간도 아니고 저녁 황혼의 빛이 밭의 경사면과 지평선을 양분하는 밀레의 시간도 아닌, 지평선 끝에서 커다란 태양의 눈부신 빛이 노란 밀밭과 더불어 하늘을 뒤덮는 그런 시간이다. “한낮에도 햇빛을 가득 받으면서 그림자 하나 없는 밀밭”에서 농부는 태양을 등지고 마치 바다 위를 걷듯이 보랏빛을 띤 거대한 밭이랑 위에 씨를 뿌리며 지나간다. 파도처럼 넘실거리는 보라색이 넘치는 밀밭을 자세히 보면 노란색과 갈색이 섞여 있으며 (“지면에는 수많은 노란색 터치가 있고, 그 색조는 보라색과 노란색을 섞어 만든 중간 색조네”) 땅에 어른거리는 노란 햇살은 마치 농부가 태양의 씨앗을 뿌리는 듯하다. 한편 하늘은 태양의 노란 빛으로 완전히 물들었고, 보라색 벽과 붉은 색 지붕의 농가 한 채와 밀밭의 보라와 초록이 섞인 둑이 노란 하늘과 밀밭을 구분하는 지평선임을 입증하고 있다. 그리고 그 지평선에 걸친 태양과 밀밭을 원경으로 하고, 거대한 공간에 펼쳐진 밀밭에는 농부가 뿌리는 씨를 먹기 위해 날아든 까마귀 몇 마리, 넓은 밭이랑, 농부와 그의 그림자가 선명하게 그림의 전경을 이룬다. 특히 전경에 드러나는 농부는 “일본 판화에서처럼 중심을 벗어나 있고, 앞이 차단되어 있으며,” 농가와 그 옆에 그려진 나무는 “그림의 전체적인 전망을 평면적으로 만들고 있다.”30)
이 그림에서 지배하는 색은 노란 색이고 지배자는 바로 “서른다섯”의 젊은 농부이다. 황금빛을 내뿜는 태양과 하늘, 붉은 빛을 띤 황토색의 밀밭과 선명한 보라빛 대지 위에 일렁이는 황금색이 그러하다. 젊은 농부의 머리 뒤에서 빛을 발하는 태양과 물결처럼 넘실거리는 배경도 그리스도의 후광을 표현하고 있다. 고흐는 들판에서 씨를 뿌리고 있는 한 농부의 모습을 그리려고 한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상징적으로 해석한 것이다. 이것이 바로 농부에게 종교적 의미와 신성성을 부여하는 근거다.
고흐는 1888년 11월 <씨 뿌리는 사람>을 주제로 마지막 두 편의 작품을 시도한다. 하나는 E.G. 뵐레 재단에 소장되어 있는 작품 <그림 4> (캔버스에 유채, 73.5 x 93cm, 취리히)과 반 고흐 미술관에 소장된 작품 <그림 5> (캔버스에 유채, 32 x 40cm, 암스테르담)이 그것이다. 그것은 1888년 6월 “한낮에 햇빛을 가득 받으면서 그림자 하나 없는 밀밭”을 그린 작품에서 11월에는 구성만 달리하면서 그린 해질녘의 <씨 뿌리는 사람>이다. 해질녘을 시간적 배경으로 하는 이 두 작품에는 각각 프로방스의 몽마주르 대수도원이 바라보이는 곳을 원경으로, 커다란 태양과 넓은 들판, 전경에는 거대한 나무 한 그루와 태양을 등지고 씨 뿌리는 사람이 배치되어 있다. 캔버스가 하늘과 대지를 반으로 양분하고 있는데, 뵐레 재단 작품은 붉은 색 저녁놀이 선명한 태양과 하늘에 초록과 보라가 뒤섞인 들판을, 반 고흐 미술관 작품은 초록빛이 감도는 노란색 태양과 하늘에 보라색이 선명과 들판과 노란색과 갈색이 뒤섞인 밭을 각각 그려놓고 있다. 씨 뿌리는 농부와 나무는 두 작품에서 태양의 역광을 받아 어둡게 그려져 있는데, 전자는 형체만을 알아볼 수 있고 후자의 경우는 어느 정도 명암이 드러나 있음을 알 수 있다.31)
이 작품에서 태양과 나무 그리고 농부가 캔버스를 전체적으로 지배하고 있음을 눈여겨보아야 한다. 이 세 요소는 커다란 구도로 작품을 압도하고 있다. 넓은 밀밭에서 씨를 뿌리는 농부는 태양을 후광처럼 등지고 서서 대지와 우주를 연결하고, 거대한 나무는 하늘과 대지, 인간을 이어주는 매개체가 되어 있다. 말하자면 고흐의 ‘씨 뿌리는 농부’는 위고의 우주적 인간과 밀레의 근대적 주체로서 이 둘을 종합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위고와 밀레의 작품에서 전혀 나타나지 않는 고흐의 나무는 위고와 밀레의 작품에서 시와 캔버스를 압도하는 농부와 같은 존재다. 즉 그는 관조의 주체이며 새로운 사회의 지배자다. 또한 고흐에게 나무는 태양처럼 “살아 있는 것의 열정”32)이다. 나무에 뻗은 가지와 가지에 핀 꽃들이 이를 입증한다.
6)“1849년 6월 밀레는 파리에 창궐한 콜레라를 피해서, 얼마 전 몇 건의 주문 의뢰로 벌어들인 돈으로 샤를 자크와 함께 바르비종에 정착한다.” 즈느비에브 라캉브르 외, 『밀레』, 이정임 역, 창해, 2000, 61쪽. 7)박홍규, 같은 책, 95쪽. 8)빈센트 반 고흐,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편지』, 박홍규 옮김, 아트북스, 47쪽. 9)같은 책. 10)즈느비에브 라캉브르 외, 같은 책, 65쪽. 11)같은 책. 12)위고는 망명 중에도 1856년 <정관 시집>을 발표했고, “망명 기간 동안 사회 구원을 위한 예언자의 목소리와 사회를 이끄는 길잡이로서의 역할론을 작품을 통하여 펼치려고 시도했다.” 조규철, 『프랑스시 개론』, 신아사, 1997, 278쪽. 13)admirer는 “굉장한 것이나 새로운 것을 놀라움과 기쁨을 가지고 관찰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 시에서는 놀라움과 기쁨이 더 지배적이다. 그날 저녁 더욱 감명을 받은 광경이 시인에게 새로운 사실은 아닐 것이다.” 조규철, 『프랑스시 개론』, 신아사, 1997, 299쪽. 14)contempler는 “어떤 대상에 대하여 명상하면서 주의 깊게 관찰하는 것이다. 시인은 농부가 씨 뿌리는 광경을 ‘admirer’하고 사상가로서 contempler하며, 인간으로서 감동”(ému)하는 것이다. 같은 책, 299쪽. 15)김성택, 한국프랑스학회 2002년도 추계학술발표문, 2002년 10월, 30쪽. 16)조규철, 같은 책, 298-299쪽. 17)같은 책, 299쪽. 18)김성택, 앞의 논문, 30쪽. 19)즈느비에브 라캉브르 외, 같은 책, 19쪽. 20)같은 책, 81쪽. 21)같은 책 116. 22)색채적인 관점에서 밀레의 <씨 뿌리는 사람>은 전체적으로 농도의 차이가 날 뿐 갈색, 푸른색, 노란색 등 세 가지 색이 서로 보색을 이루고 있다. 지평선 양쪽의 노을과 소, 씨를 담은 자루, 밀짚은 노란색, 농부의 바지와 하늘은 파란색, 농부의 모자와 상의, 신발과 밭이랑을 이루는 경사면은 갈색으로 각각 배치되어 있다. 23)같은 책, 81쪽. 24)같은 책, 65쪽. 25)같은 책, 38쪽. 26)빈센트 반 고흐,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편지』, 박홍규 엮고 옮김, 아트북스, 2009, 503-505쪽. 27)마리 엘렌 당페라 외, 『반 고흐』, 창해, 2000, 16쪽. 28)고흐가 초기에 신학대학을 다니고 전도사의 삶을 살았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이야기다. 그리고 보리나주의 탄광에서 광부처럼 생활하면서 이를 실천했다. 그림과 신앙을 병행하면서도 “그가 정작 꿈꾸었던 것은 그림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복음을 전파하는 일이었다.” 따라서 고흐에게 그림과 복음은 예술작품을 창조해 내는 사람들의 “충만한 정신과 삶에서 나오는 것”이라고 했다. 파스칼 보나푸, 『반 고흐, 태양의 화가』, 송숙자 옮김, 시공사, 1998, 35, 37쪽 29)같은 책, 52쪽. 30)같은 책, 53쪽. 31)고흐는 “1888년 11월 23일 경 쓴 편지에서 ‘레몬 빛깔의 거대한 원반 태양, 핑크색 구름이 있는 녹황의 하늘, 밭을 보라. 씨 뿌리는 사람과 나무는 프러시안 블루’라고 설명한다.” 박홍규, 같은 책, 108쪽. 32)같은 책.
이상에서 우리는 위고와 밀레, 고흐가 시와 그림에서 ‘씨 뿌리는 농부’라는 공통적 주제를 다룬 텍스트의 상호성을 분석해 보았다. 위고의 시는 『거리와 숲의 노래』(1865)에 실린 <씨 뿌리는 계절, 저녁>을 연구 대상으로, 그리고 특히 밀레와 고흐는 <씨 뿌리는 사람>이라는 그림을 여러차례 모사하고 그렸기 때문에 본 연구에서는 밀레의 <씨 뿌리는 사람>(1850, 캔버스에 유채, 101.6cm x 82.6cm, 보스턴 미술관)과 고흐의 <씨 뿌리는 사람>(1888. 6, 캔버스에 유채, 64cm x 80.5cm, 크뢸러뮐러 미술관)으로 한정했다.
세 편 중 밀레의 작품이 시기적으로 가장 먼저 나왔고, 다음에 위고의 시, 고흐의 작품이 뒤를 이었다. 위고가 밀레의 작품을 보았을 개연성은, 위고의 세나클에 모여든 시인과 소설과 화가들, 그의 그림에 대한 관심, 또 주제를 다룬 콘텍스트로 볼 때 충분하다. 고흐는 아를 시절인 1889년 10-11월부터 시작해서 1890년 3-4월 사이 밀레의 <씨 뿌리는 사람>을 스무 한 차례나 그렸으니까 그의 회화적 영향과 영감은 절대적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밀레의 작품을 중심으로 같은 주제에 대해 서로 연관성을 맺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또한 시인과 화가가 처한 상황에 따라 그 미묘한 차이로 작가의 창조적 상상력이 잘 드러나 있음도 확인되었다.
우선 밀레가 1848년 2월 혁명을 주도한 젊은 농부를 근대적 주체로 내세우고 있고, 고흐의 작품에서는 젊은 농부가 기독교적 복음주의의 실천자로 등장하는 반면에 위고는 누더기를 걸치고 씨를 뿌리는 늙은 농부를 통해 삶을 관조하는 시인 자신의 정체성을 각각 보여준다. 밀레는 근대적 혁명을 작품의 사회적 바탕으로 만들었으며, 위고는 제2제정 하에 루이 나폴레옹 체제의 고독한 망명자가 되어 있었고, 고흐는 19세기 말 프랑스 사회의 근대화, 산업화 세기를 맞고 있었음도 눈여겨보아야 할 대목이다.
위고의 작품에서 농부는 “넓은 밀밭을 가득 채우는 거대한 실루엣(Sa haute silhouette noire domine les profonds labours)”으로, 밀레의 작품에서도 캔버스의 전체를 압도하는 거대한 중심인물로 그려져 있지만, 고흐의 작품에서 농부는 일본의 우끼요에 판화처럼 중심에서 벗어나 있다. 오히려 고흐의 작품에서는 거대한 황금빛 태양과 하늘, 보라색의 넓은 밀밭이 농부를 압도하고 있다. 이는 시대의 변화에 따라 농부에 대한 인식의 변화를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 한다.
작품의 시간과 공간적 배경에도 미묘한 차이가 발견되었다. 위고의 시에서는 해가 저물고 땅거미가 지는 시간 광대하게 펼쳐진 밀밭에 씨를 뿌리는 농부를 그리고 있다면, 밀레의 그림에서는 황혼의 빛이 강하게 남아 있는 시간 지평선 한쪽 끝에 쟁기에 소를 끄는 농부와 또 다른 쪽에는 밀밭에 달려드는 까마귀 떼, 어두워진 경사면에 씨를 뿌리는 농부가 거대한 구도로 화폭을 채우고 있다. 고흐 작품에는 저녁 시간에 정오의 빛이 내려쬐는 듯한 거대한 태양과 넓은 밀밭에 보잘 것 없어 보이는 농가와 농부가 각각 배치되어 있다. 저녁은 위고에게는 상상력이 역동하는 시간이며, 밀레에게 단호하고 엄숙한 결단의 시간이며, 고흐에게 강렬한 태양의 시간은 그리스도의 후광처럼 복음과 구원의 메시지를 담고 있는 상징이다.
위고에게 농부가 씨를 뿌리는 동작은 존엄하며(Le geste auguste), 그의 그림자는 수직적으로 또 수평적으로 확대되어 우주로 확장하고 있으며(élargir jusqu’aux étoiles), 고티에의 지적처럼 밀레에게 씨를 뿌리는 농부의 “거친 동작 속에는 웅장함과 기품이 서려 있으며”, 무언가 말하려는 듯한 벌어진 입에서 “근대 시민”의 혁명적 선동이 엿보인다는 것이다. 고흐에게 씨 뿌리는 농부는 그리스도 복음을 전하는 자신의 정체성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씨는 성경에서 예수의 말씀을 의미하는 상징이다. 이 상징을 통해 밀레는 노동이라는 인간 본연의 질박한 삶의 본질을, 위고는 인류를 이롭게하는 신성함을, 고흐는 예술행위를 통한 복음의 전파라는 그들 각자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