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 예술의 경우 ‘실천으로서의 리서치’ 혹은 ‘실천에 토대를 둔 리서치’ 등의 최근 논의되고 있는 연구 방식은 공연 참여자들이 실천과 이론적 논의를 결합하여 방법론을 공유하며 이론적 결과물을 생산하는 방식을 의미한다. 이는 또한 이론과 실천의 이분법적 괴리 속에서 소외되어 온 실천가들을 학문적 영역 안으로 포용한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이 논문은 ‘실천으로서의 리서치’ 방식을 영국의 버바팀 연극의 방식과 결합하여 중년 여성의 삶을 이해하고 인터뷰를 통해 드라마투르기를 구성한 것에 대한 기록이자 보고서라고 할 있다. 먼저 드라마투르그는 스스로 중년이 되면서 중년이라는 경험이 낯선 영역이며 매스컴에 의해 익숙해진 중년에 대한 상식이 왜곡된 이미지로 균질화되어 있다는 것을 발견하고 리서치의 모티브로 삼았다. 이 점에 동의하는 6명의 배우들과 드라마투르그는 중년에 대한 저술서를 읽고 토의를 하면서 인터뷰 설문을 구성하였다. 그리고 나서 60명의 중년 여성을 상대로 인터뷰를 진행하면서 중년으로 인해 생기는 문제를 파악하고 인터뷰를 통해 인물을 발견하며 개인들의 중년의 경험을 면밀히 살폈다. 인터뷰와 토의 기록을 자료로 드라마투르그는 텍스트를 하나 구성하였다. 이 과정에서 드라마투르그는 실제 삶의 생동감이 살아 있는 언어를 발견할 수 있었고, 이와 더불어 삶 속에서 ‘살아있는’ 인물을 발견하게 되었다. 버바팀 연극 방식을 응용하여 만들어진 중년을 주제로 한 텍스트는 기존의 알려진 담론에서 포착되지 않은 개인들의 다양한 경험을 포착하게 해 주었고, 또한 리서치 과정에서 드라마투르기 구성에 참여한 사람들은 스스로 의식이 성장하였다고 여기게 되었다. 텍스트는 낭독 공연으로 실천되었고 이에 대한 관객 반응을 리서치하여 재구성 중에 있다.
The practice as research or the practice-based research implies conscious raising process for one’s own including the other participants against ready-made views as well as distribution of methodology. This work corresponds to the theatre making process based on practice as research, interview, and analysis centering on a theme, the experience of midlife in Korean women. At a certain stage of life, we find ourselves that we are aging and have already crossed the half a lifetime. As we get to be aware of the situation, we realized this is the untrodden aspect of life even though we seem to have been informed enough how we get old and follow the life cycle. Especially being in midlife in Korea has its own cultural and historical connotation. We(a dramaturg, five performers) made thirty questionaires regarding how middle aged individuals from late 45s to early 60s are experiencing and anticipating being aged from how they spend the daily life, what kind of family relationship, when they feel lonely and how they get it over, to when and how they want to die. The interviews were part of practice based research which focused on individuals’ experiences and aimed to explore and awaken what is ahead in or after their midlife different from abstract theory and cultural generalization. After this dramaturg constructed a text with the materials of recorded voices and the discussions. The practice on the stage was taken by six performers as a play-reading. It took place at the small theatre within the library of Sanbon, Gyunggydo. As the theatre was located in the regional civic library, the audience were local residents naturally, including some interviewees. The practice was completely different from the general theatre performance. It foreground the intention to listen to the real and individual experience about Korean middle aged women. This paper was a record regarding how the practice could be intertwined with research as a British verbatim theatre. It was a talk show, or narrative theatre to share each one’s experience as a kind a outreach conscious raising theatre and a proof the effectiveness of the methodology which mixed research with practice. In the process doing the research as a practice, the dramaturg, researchers as performers, and the interviewees had special experience that their former thought and attitude about their midlife has changed from the negative to positive one. Nonetheless, we also found some insufficient parts to develop more according to the feedback after the play-reading.
일반적으로 통용되어 온 예술에 대한 함의는 다음 네 가지 요건을 통해 성립된다. 첫째, ‘그림이나 조각과 같은 표현물에 아름다움이나 정서적 힘을 불러일으키는 창의적 상상력을 적용한 것이다.’ 둘째, ‘회화, 음악, 문학, 무용과 같은 창의적 활동의 다양한 범주를 포함한 것이다.’ 셋째, ‘언어와 문학, 역사와 같이 인간이 지닌 창의성이나 사회적 활동과 연관된 학문이다.’ 넷째, ‘연습을 통해 습득된 특정한 기술과 능력이다’.1) 이와 같이 그간 통용되어 온 예술에 대한 정의는 일상의 경험과는 다른 개인의 고양된 상상력과 숙련된 기술로 만들어진 특별한 결과물을 함축하며, 감상하는 사람에게 아름다움이나 감동 같은 정서적 힘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정의되어 왔다. 그런데 위에서 언급된 예술에 대한 정의에는 연극 공연에 대한 언급이 발견되지 않는다. 희곡이 문학의 범주안에서 예술로 고려될 수 있다는 것만을 함축하고 있을 뿐이다. 희곡은 작가의 창의적 상상력의 산물이며 이를 통해 독자나 관객의 정서에 영향을 미치고 사회적 담화를 구축할 수도 있다. 그러나 공연은 희곡을 보완하거나 완성시키는 것으로 여겨질 뿐 그 자체가 예술로 간주되기에는 미흡한 것으로 여겨져 왔다.
연극 공연이 예술의 범주 안에서 성찰된 계기는 연극학이 개별 학문으로 정립된 시점과 상응한다. 서구에서 50년대를 기점으로 전개된 연극학의 독립은 연극이 희곡 작가의 상상력의 발화이며 여기에 공연 자체의 오래된 관습이 결합되어 만들어진 산물이라는 기존의 관점에서 벗어나 연극이 다양한 영역의 총합으로서 진지한 기술과 지식, 훈련을 통해 만들어진다는 인식에 근거한다. 그리고 그 배경에는 지난 세기 동안 연극 본유의 특성을 되찾으려는 일련의 아방가르드들의 실천이 자리한다. 메이에르홀드와 그로토우스키, 피스카토르, 브레히트 등의 아방가르드들은 ‘실험실’(laboratory) 혹은 스튜디오, 워크숍 등의 시스템을 구축하여 각기 자신만의 표현 방식을 교육과 훈련, 기술로 완성시키고자 하였다. 이들은 ‘연극은 문학의 시녀가 아니라’는 점에 대해 의견을 공유했을 뿐 아니라, 자신의 관점에 따라 연극을 독자적인 영역으로 발전시키고 미학 및 방법론을 구축하고자 진력하였다. 메이에르홀드의 신체 역학 시스템, 그로토우스키의 실험실과 스튜디오 작업을 통해 탐색된 가난한 연극의 가능성, 피스카토르가 극단의 구성원과 탐색했던 서사극과 정치극의 실현, 브레히트가 파트너들과 시도했던 서사극과 드라마투르기 시스템 등은 그러한 연구와 실천이 결합되어 만들어진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다. 이들의 선험적 시도에 의해 창작의 권위는 작가로부터 공연 실천가들에게로 넘어갔고 이와 더불어 실험, 조사, 성찰, 검증, 기술 개발, 교육, 훈련 등의 리서치와 실천을 결합한 표현 방식이 창의적 상상력을 대신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연극학의 독립은 이들의 시도에 대한 이론적 성찰의 필요성을 자각하면서 탄생한 것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연극학 성립은 실천 현장으로부터 비켜서서 실천가들의 행위에 대해 성찰하고, 분석함으로써 영역을 구축했다고 할 수 있다. 이 과정에서 연극학(혹은 공연학)은 실천 행위를 이론으로 번역하거나 혹은 이론의 자료로 삼는데서 위계를 만들었고, 제도적 우위를 선점하여 왔다. 실제로 이론적 연구와 창의적 실천은 공존하여 왔지만, 이론가와 실천가는 서로에 대해 무관심하거나 적대시하며 영역을 정하여 경쟁을 벌여왔다.2) 그로 인해 이론은 전문화되는 한편으로 그 밖의 영역을 의도적으로 배제하여 스스로 소외를 자처하게 되었다. 더불어 이론운 현장 움직임의 다양한 변화와 그 속도와 양을 지나치게 단순화하고 추상화시키고 만다. 반면, 공연 작품은 개인의 창의적 산물이라는 기존의 예술론에 매몰되어 이론적 성찰 없이 양산되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연극학 논의는 실천과 이론을 분리하고 이론에 관한 논의에만 치중함으로써 한계에 도달한 것을 발견하는 중이다.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전망은 연구와 실천 각각의 영역을 상대 영역에 투사하여 새로운 지식 생산의 토양을 배양시킴으로써 가능해진다고 할 수 있다.
이 맥락에서 최근 활성화되고 있는 ‘실천으로서의 리서치’(Research as Practice)담론은 이론의 추상화와 소외, 성찰이 부재한 실천의 허약함을 극복하기 위한 가능성을 제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이 담론은 용어가 내포하듯이 작품을 만드는 행위와 과정, 결과물에 리서치를 통합하는 것을 내용으로 한다. 실천과 이론을 매개하는 이 같은 방식은 1950년대부터 현장에서 시작되었지만 학계 안에서의 움직임은 1995년 영국 브리스톨 대학교의 연극학과의 교수인 커쇼(Baz Kershaw)가 5년간 주도한 프로젝트를 통해서 시발된다. 이 프로젝트를 통해 커쇼는 리서치와 실천을 결합하여 기존의 지식 창조 방식에 근본적이고도 혁신적인 도전을 촉발하여 왔다. 프로젝트는 여러 차례의 세미나와 컨퍼런스를 거쳐 담론을 구성하는데 성공하였고 이후 하나의 패러다임을 구축하며 학문적 흐름으로 이어지고 있는 상황이다3). 그 출발 시점에서 10년의 세월이 흐른 후에 커쇼는 ‘실천적 전환’(practice turn) 추세가 이제 예술과 인문학, 사회 과학 등의 영역을 가로지르며 확산되고 있음을 목격한다.4) 커쇼와 더불어 존스(Simon Jones)와 휘톤(David Whitton) 역시 실천적 전환 속에 ‘비평적 태도로 텍스트를 분석하는 이론적 논의와 창의적인 실천을 나눠온 경계를 흐트러뜨리며 그 둘을 하나로 통합해내는 새로운 인식론적인 패러디임’이 생겨났다는 데에 동의한다.5) 존스는 이를 “일상으로부터 분리된 지식을 관찰, 측정, 데이터 수집의 과정을 통해 더욱 정교하게 눈에 띄고 차별화된 지식의 형체로 만들어 다시 일상에 적용하게 한다”고 본다.6) 존스의 주장은 연구 과정을 이론적 논의가 아닌 조사나 데이터 측정과 같은 실천 과정과 결합시켜 그 결과 만들어진 실천적 결과물이 일상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처럼 실천가들에게 리서치는 자신들의 작업을 성찰하고 이를 통해 이론을 구축하는 기회를 열어주고 있다. 한편, 연출가이자 배우인 벨라 멀린(Bella Merlin) 역시 학계에 진입하여 주변화되었다고 느껴왔지만, ‘실천에 토대를 둔 리서치’를 통해 자신의 실천에 대한 독자적인 지식을 소유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게 되었고, 이를 통해 연구비 지원과 더불어 리서치를 통해 자신이 얻은 지식을 확산시킬 수 있는 길을 찾게 된다.7) 이론가들에게만 유리하게 만들어진 지식 형성과 이에 따른 각종 지원 제도에 실천가들이 참여할 수 있는 가능성이 만들어진 것이다. 다른 한편, 이론가들은 실천을 경유하여 연구를 함으로써 지식이 추상화되는 것을 극복하고 실용화할 수 있는 방법론을 구할 수 있다는 장점을 얻게 된다. 실천적 전환은 실천가뿐 아니라 이론가들에게도 새로운 지식 생산의 가능성을 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리서치로서의 실천: 창의적 예술 탐색에 대한 접근 방식』(Practice as Research: Approaches to Creative Arts Enquiry)과 『퍼포먼스와 영상에서의 실천과 리서치』(Practice and Research in Performance and Screen), 『예술에서의 리서치로서 실천』(Practice as Research in the Arts) 등의 저술은 ‘실천적 전환’에 관한 담론화를 반영한다. 스미스와 딘(Haz Smith, Roger T. Dean)은 연구와 실천의 융합을 예술 작품 전반에 응용할 수 있는 방법론으로 파악한다. 그들은 “예술 작품 자체가 일종의 리서치 형태이며 이에 따라 탐색 가능한 결과물을 만들어지고” 또한 “창의적 실천은 기록되고 일반화될 수 있는 리서치에 의해 통찰로 인도된다”8)고 주장한다. 같은 맥락에서 버렛(Estelle Barrett) 역시 ‘지식 생산으로서의 예술 작품’, ‘경험적 지식으로서의 예술 작품’, ‘다양한 영역의 통섭과 예술의 만남’9)이 연구와 실천의 결합을 통해 가능하다는 데에 동의하고 있다. 아직 용어가 정착되지 않은 가운데, ‘실천에 근거한 리서치’(practice-based research, PBR)와 ‘리서치로써의 실천’(practice as research, PAR)이 이 패러다임을 지칭하기 위해 가장 흔하게 사용되는 용어이다. 그러나 그 두 용어는 접근 방식과 목적에 따라 미세한 개념의 차이를 갖는다. 전자가 실제 공연을 통해서 새로운 지식과 통찰에 기여할 수 있는 내용과 방식을 규정하는 것이라면, 후자는 공연 행위와 관련된 리서치로 공연의 형태, 장르, 기법 등에 관한 새로운 통찰력이나 지식을 개발하는 방식을 규정하는 것이다.10) 즉, ‘실천에 근거한 리서치’가 지식 생산에 유용한 구성과 관련된 것이라면, ‘실천으로서 리서치’는 공연 방법론 구축과 연관된다고 할 수 있다. ‘실천에 근거한 리서치’가 이론가에게 유용한 도구라면, ‘실천으로서 리서치’는 예술가들에게 자신의 방법론을 향상시키고 성찰하는데 적합하다고 할 수 있다.
본고는 지난 2014년 4월에 착수하여 6개월의 과정을 거쳐 리서치와 리허설을 통해 만들어져 낭독 공연으로 실천된 ‘오전 11시’ 프로젝트에 관한 기록물에 해당한다. 이 프로젝트는 공연 구성을 위해 모인 배우들, 그리고 그들이 인터뷰한 사람들과의 모임을 지칭하며 독립적인 프로그램은 아니다. 본 프로젝트의 제작 과정을 설명하려는 목적은 기록물이 지니는 일종의 문화적 전달을 위한 해설서로서의 의미 때문이다. 버렛에 따르면 이러한 기록물은 ‘결과물’을 신비화시켜 상품으로써 가격을 정하는 것이 아닌 ‘과정’에 의미를 부여하여 만드는 과정을 재연함으로써 문의하고 조사하는 방식에 비평적 의미를 부여하는 행위라는 의미를 지닌다.11) 또한 객관적 진실을 규명하기 위한 학술적 접근 방식과도 다르다. 기존의 학술 논의 방식은 연역법과 귀납법의 논리에 따라 학문적 발견이나 일반적 사실 혹은 가설을 세워 이를 규명하고 논증하기 위해 다양한 학술 담론을 자료로 객관성을 확보하는 것으로 전개된다. 객관적 논의를 위해 연구자는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일반적 사실, 관점, 자료를 전경화하면서 논리를 구축하고 증명하여야 한다. 이에 반해 ‘실천에 토대를 둔 리서치’는 연구자의 관점이나 가설을 세울 수 없다. 대신 연구의 동기와 목적이 가설이나 일반적 사실에 대한 연구자의 관점을 대신할 수 있다. 연구자는 이를 리서치의 동기로 삼아 결론이나 가설, 판단을 유보한 채 실천 과정을 체험하면서 새로운 지식을 탐색해나간다. 실천을 통해 ‘구현된 지식(embodied knowledge)을 논의함에 있어 연구자는 자신의 경험을 드러낼 수밖에 없게 된다. 연구는 실천과 함께 혹은 실천 행위 안에서 연구자의 경험으로 수행되며 이에 대한 논의는 일종의 기록물의 형태를 띤다. 결과물 역시 주장이나 가설에 대한 논증이 아닌 연구자의 경험에 관한 논의에 해당하며 리서치와 실천이 이루어진 상황 속에서 구축되었기에 절대적이고 객관적인 진실이나 지식을 제기하는 대신 다중의 관점을 내포하며 상황의 지배를 받는다. 즉, 객관적 진실이 아닌 그 상황에서 이루어진 하나의 경험에 대한 기록물로 남는 것이다. 이 점에서 넬슨(Robin Nelson)은 실천으로서의 리서치를 포스트구조주의의 산물로 간주하며 진실에 대한 전반적인 회의가 만연한 가운데 개인이 직접 실험을 통해 개별 진실을 찾아내고자 하는 것이라고 이해한다. “과학적 합리주의의 비평 요건에 의해 무엇이 진리인지 판결하기보다는 자료를 선택하고 체험하면서 무엇이 활용가능하고, 어떤 비평적 통찰을 대화식의 개입으로 이끌어낼 수 있는지”를 찾는 것이 실천을 통한 리서치의 목적이 된다.12) 뿐만 아니라 결과물과 그 과정을 해설하면서 연구자는 스스로가 자신의 연구와 실천에 대한 논평자가 되어 그것을 문화적 맥락에 위치시키면서 과정 중에 드러나지 않았던 지식을 발견하고 중재하기도 한다.
본 프로젝트 역시 연구자인 드라마투르그가 중년을 경험하면서 과연 ‘중년이란 무엇인지?’에 대한 호기심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연구자는 중년에 접어들면서 실제 중년에 대해 아는 것이 없으며 기존의 상식과 다른 낯선 경험을 하고 있다는 자각을 하면서 다른 여성들은 어떻게 경험하는지를 알아보고 이를 공유할 수 있겠다는 발상을 동기로 리서치를 통해 텍스트를 구성하고 낭독 공연을 해보기로 하였다. 드라마투르그 외에 여섯 명의 배우(박정자, 이정미, 황연희, 김지숙, 정경순, 임정은)가 연구자로 드라마투르그와 함께 프로젝트에 참여하였다. 배우로서 연구자들이 이 프로젝트에 함께 하게 된 계기는 일반 공연의 캐스팅 과정과는 다르게 순전히 중년 경험에 대한 성찰이라는 목적과 공연텍스트 만드는 방식에 흥미를 지니고서 동참하였는데, 드라마투르그가 일면식이 있던 한 배우에게 컨셉을 이야기했더니 자신이 아는 다른 배우들을 소개하면서 자발적으로 구성원이 만들어졌다. 연구자들은 6개월의 리서치를 진행하면서 텍스트를 구성하였고 그러한 과정과 결과물에 대해 성찰적으로 기록한 것이 본고의 내용이다. 이 과정에서 연구자들은 연구자와 실천가의 역할이 따로 분리된 것이 아니라 혼재한다는 것을 발견하였다. 즉, 인터뷰와 드라마투르기를 구성하면서 연구자들은 중년 여성의 경험에 대한 새로운 지식과 통찰을 얻기 위해 인터뷰 내용을 선별해야 했고 드라마투르기의 구성 방식을 정해야 했다. 이 과정에서 연구자들은 여성학과 사회학의 분야를 통섭하면서 기존의 다큐멘터리 연극의 드라마투르기 구성 방식을 재목적화하기로 정했다. 리서치와 실천 과정은 다음과 같다.
1)Oxford Dictionary, “Art”, http://www.oxforddictionaries.com/definition/english/art. 2)David Whitton, “The Practical Turn to Theatre Research”, 『한국연극학』, 33호, 2007. 78쪽. 3)그 출발은 영국 브리스톨 대학의 드라마-연극, 영상, 텔레비전- 학과에서 1995년부터 5년에 걸쳐 커쇼, 안젤라 피시니(Anglea Piccini), 캐롤라인 라이(Caroline Rye)가 이끈 연구 프로젝트로 출발하여 실천과 연구를 결합한 새로운 인식론적 방법론으로 영국을 위시하여 국제적으로 확산되고 있는 상황이다. 현재 PARIP는 세계연극학회(IFTR)과 공조하여 지속적으로 포럼을 개최하며 담론 및 방법론을 계발, 심화, 유통시키고 있는 중이다. Angela Piccini, “An Historiographic Perspective on Practice as Research”, Theatre and Performance Studies, 23, 2004, http://www.bris.ac.uk/parip/t_ap.htm. 10/11/2014. 4)Baz Kershaw, “Introduction”, Practice as Research in Performance and Screen, Eds. Ludivine Allegue, Simon Jones, Baz Kershaw etc., Palgrave Macmillan, 2009. p. 2. 5)Simon Jones, “The Courage of Complementarity”, Practice as Research in Performance and Screen, p.20.David Whitton, “The Practical Turn to Theatre Research,” p. 77. 6)Simon Jones, op. cit. 23. 7)Bella Merlin, “Practice as Research in Performance: a Personal Response”, New Theatre Quarterly, 21, Cambridge University Press, 2004. pp. 41〜42. 8)Hazel Smith, Roger T. Dean, “Intorduction”, Practice-led Research, Research-led Practice in the Creative Arts, Edinburgh University Press, 2009. p. 5. 9)Estelle Barrett, “Introduction”, Practice as Research: Approaches to Creative Arts Inquiry, I.B. Tauris, 2010. 참조 p. 3, pp. 7〜9. 10)Angela Piccini, “An Historiographic Perspective on Practice as Research”에서 재인용. Theatre and Performance Studies, 23, Chicago University Press, 2004. p. 192. 11)Estelle Barrett, “The Exegesis as Meme”, Practice as Research: Approaches to Creative Arts Enquiry, pp. 160〜161. 12)Robin Nelson, “Practice-as-Research: Knowledge and Their Place in the Academy”, Practice as Research in Performance and Screen, Palgrave Macmillan, 2009. p. 113.
여성과 남성으로서의 역할은 타고난 성적 특질에 의해 선험적으로 정해진 것이 아니라, 사회와 문화, 그 안의 주도적인 가치관에 반응하기 위해 전략적으로 선택된 것이다. 뿐만 아니라 친지 관계나 가족 관계, 제도적 관계 안에서의 역할 역시 사회와 문화적 차이에 따라 다르게 구성된다. 그렇다면 중년에 대한 인식과 중년으로서의 역할과 행위 역시 구성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이에 대해 우리는 ‘중년이란 무엇인가?’의 질문을 ‘현대 한국 사회에서 중년은 어떻게 이해되고 있고, 중년의 역할은 어떻게 구성되는가?’로 바꾸기로 하였다. 이와 같이 리서치는 렐리아 그린(Lelia Green)이 환기하듯이 ‘실천에 의해 진행되는 리서치’(Practice-led Research)의 특성을 띄면서 하나의 질문으로부터 시작되었고, 리서치의 진행은 질문을 탐색하고 정교화하면서 실천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문제에 의해 전개되었다.13) 논의를 위해 우리는 먼저 중년의 시기 역시 사회적으로 문화적으로 선택된 것이라고 보았고, 한국 현대 사회에서 중년의 시기는 45세 혹은 50세 이후부터 60대 초반으로 간주된다고 합의하였다. 6명의 연구자는 두 달 동안 1주일에 한 번씩 만나서 자신의 경험과 매스컴이나 출판된 저작물을 통해 중년 여성의 경험에 대한 기존의 담론이 어떻게 구성되고 소통되고 있는지를 살펴보기로 하였다.
첫 번째 단계:토론을 시작하면서 6명의 연구자는 자신들이 중년이란 시기에 속에 있으면서도 중년에 대해 잘 모르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였다. 각자는 중년으로 자신에게 생긴 변화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하였는데, 중년이라는 나이를 불현듯 자각하게 되었고, 외모는 물론 신체 기능도 저하된다는 것, 기회가 줄고 타인의 관심으로부터 멀어진다는 것, 폐경으로 인해 여성성이 줄어 든다는 것, 건강에 문제가 있거나 앞으로 생길 수도 있다는 것, 노년에 대해 대비를 해야 하는 마지막 시기라는 것 등으로 중년을 이해했다. 이 같은 경험에 관해 이야기하면서 우리는 중년에 속한 여성의 상황을 일종의 위기 상황으로 인식하였고, 무엇인가를 해야 한다는 강박적인 초조함을 갖게 되었다.
두 번째 단계:우리는 대중 매체를 통해 중년 여성이 어떻게 재현되는지, 그리고 재현에 의해 우리가 어떻게 영향을 받는지를 논의하였다. 연구자들이 배우인지라 그들은 최근 텔레비전이나 영화에 등장하는 중년 여성 배우들에 대해 민감한 반응을 보였는데, 그들은 배우들 자신에게서도 그리고 방송 안의 역할 자체에서도 중년 여성이 객관적으로 재현되고 있지 않는다는 점을 지적하였다. 매스컴에 등장하는 배우는 중년을 거스르는 젊고 아름다운 외모를 유지하고 있어 일반 중년 여성의 욕망 대상으로 마케팅되고 있는 반면, 그들의 역할은 중년 여성의 취약점이나 부정적인 측면을 강조하여 희화화되어 전형화되어 있다고 보았다. 최근 유행하고 있는 텔레비전 방송의 리얼리티쇼에 등장하는 중년의 남녀 출연자들이 이야기하는 자신이나 아내에 대한 경험담 역시 실제의 모습보다는 ‘이야기 소재’로 재미를 위해 과장되어 소비되고 있다고 보았다.
세 번째 단계:우리는 중년 여성에 대한 담론을 참고하기로 하였고 중년 여성을 주제로 출간된 몇 권의 책을 선택하여 읽고 나서 함께 토론을 하였다. 중년 여성의 삶에 대한 연구와 방향을 제시하는 저술을 통해 우리는 중년의 경험에서 다음과 같은 긍정적 사실과 의미, 추구해야 할 방향을 선택하였다.
프로젝트를 디자인하기 위한 이상의 세 단계의 리서치를 거치면서 우리는 첫 단계의 리서치에서 각자 토로했던 중년에 대한 위기의식과 불안감 대신에 중년이란 자신을 이해하고서 새롭게 삶을 설계해야 할 시점이라고 생각의 방향을 바꾸게 되었다. 특히 두 번째 단계의 리서치에서 중년의 경험을 우리가 이해하는 데 있어 ‘대중 매체가 현실과 비현실의 구분을 모호하게 없애버림으로써 중년에 대한 대중의 인식을 흐리게 하고 있다’는 뮬 바우어와 크리슬러의 지적18)에 동의하였다. 세 번째 단계의 리서치에서는 출판된 저술서들이 매우 바람직한 관점에서 중년을 이해를 하는데 도움이 되지만, 실제 우리가 일상에서 겪고 있는 구체적인 경험과는 거리고 있다고 판단하였다. 이에 따라 우리는 중년이란 무엇인가를 화두로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중년을 실제 경험하고 있는지를 조사하기로 했고, 그들 역시 중년의 시뮬라크르에 매몰되어 있을 것이라는 판단에 따라 삶 전체의 맥락에서 중년을 총체적으로 이해하기 위한 설문지를 만들기로 했다. 설문지는 개인들의 중년 경험에 대한 논의를 유발하도록 구체적이고 일상적이어야 한다고 방향을 정하였다. 방향을 정하고 나서 이후의 리서치와 이에 대한 실천은 필요에 따라 자연스럽고 자발적으로 진행되었다.
13)Lelia Green, “Recognizing Practice-led Research … at Last!”, Proceedings of the Hatched 07 Arts Research, 2007. pica.org.au. p. 2. 14)이에 대한 토론을 위해 우리는 쉽게 이해할 수 있고, 우리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던 『여자 나이 50』과 『여자로 나이 든다는 것』을 읽고 토론했다. 퍼트리샤 투더산달, 『여자 나이 50』, 김수경 역, 에코리브르, 2006. 앤 G 토마스, 『여자로 나이 든다는 것』, 박은영 역, 열대림, 2013. 15)퍼트리샤 투더산달, 『여자 나이 50』, 에코리브르, 2006. 35쪽. 16)Varda Muhlbauer, Joan C. Chrisler, 『중년 여성의 심리』, 김종남역, 학지사, 2011. 196쪽. 17)정성호, 『중년의 사회학』, 살림, 2012. 24〜60쪽. 18)Varda Muhlbauer, Joan C. Chrisler, op. cit. p.187.
먼저 드라마투르그가 30개의 질문으로 된 설문지를 작성하였고 각각의 질문에 대해 다른 연구자들이 점검을 하였다. 연구자의 수정 제안이 있는 경우 일부 질문을 수정하거나 보완하여 설문지를 완성하였다. 5주에 거쳐 인터뷰를 진행하기로 하고 인터뷰는 전 과정을 휴대 전화나 녹음기로 녹음하다 매주의 모임에서 같이 듣고 토론하기로 했다.
3.1.1. 설문지 작성하기
3.1.2. 인터뷰하기
커쇼(Baz Kershaw)가 주장하듯이, 인터뷰는 “추상적인 이론화와 과학적인 합리성에서 벗어나 세상과 실질적으로 관련을 맺기 위해 실천에 기반한 조사의”19) 방법론으로 이해할 수 있다. 5명의 연구자20)는 설문서에 수록된 30개의 질문을 가지고 45세에서 65세 사이의 60여 명의 중년 여성을 대상으로 두 달간 인터뷰를 진행하였다. 인터뷰를 시작하기 전 연구자들은 인터뷰 대상자의 이야기가 익명으로 녹음될 것이며 이를 자료로 삼아 중년 여성의 삶에 대한 공연텍스트를 구성할 것이라고 밝혔다. 대상자들이 인터뷰 목적을 충분히 수긍하면서 적극적인 태도를 보였으며 또한 그들 대부분이 연구자의 친구이거나 그들을 통해 소개 받아 공감대가 형성된 사이였기에 연구자와 대상자 사이에는 모종의 친밀감을 가지고 매우 구체적인 대화를 진행할 수 있었다. 연구자는 인터뷰 대상자의 이야기에 동화되었고, 대화는 질문에 제한되지 않은 채 때때로 확장되었다. 주제와 상관없이 연구자와 인터뷰 대상자가 공유하는 이야기가 진행되는 경우도 빈번하게 발생하였다. 인터뷰는 대상자들이 중년에 대해 무엇을 이야기하고 싶은지에 따라 진행되었다. 인터뷰를 통해 상대를 새롭게 발견하였고 이해하게 되었으며, 관계가 심화되었다. 특히 연구자들이 드라마투르그와 배우였고, 그 중 두 사람이 미혼이며 세 사람이 아이가 없는 상태였기에 인생의 경험이나 식견의 측면에서 보통 사람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제한된 삶을 살았다고 할 수 있다. 인터뷰를 통해 연구자들은 인터뷰 대상자들의 삶에 대한 다양한 관점과 풍요로운 경험을 간접적으로나마 접해볼 수 있었다. 일대일 인터뷰도 있었지만, 두세 명이 함께 하는 공동 인터뷰도 있었는데, 이 경우 인터뷰의 시간과 공간은 공통된 삶의 경험을 나누는 모종의 커뮤니티와 같았다. 연구자와 인터뷰 대상자가 친밀한 관계였고 오랫동안 알아온 사이였을지라도 서로 모르거나 무관심하게 지나쳤던 부분을 인터뷰를 계기로 공유할 수 있었고, 중년과 중년의 문제, 중년의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의 공동 관심사를 공유하면서 관계가 더욱 공고해지거나 서로의 차이와 다름을 인식하게 되기도 했다.
연구자들이 주목한 새롭게 발견했거나 혹은 자각하게 된 사실은 이전에 전혀 몰랐다거나 경험해보지 못했던 새로운 내용이 아니었다. 이전에 알고 있던 사실들이 추상적이었다면, 인터뷰는 그러한 추상화를 걷어내고 대신에 구체적인 개인의 경험을 통해 개별 상황에서 공동의 체험으로 드러낸 것이다. 이는 수행적 리서치와 실천이 연계되는 계기라고 이해할 수 있다. 예를 들어, 통계적 리서치가 ‘예상 밖으로 많은 인터뷰 대상자들이 중년의 시기를 긍정하고 있었다’라는 표현으로 리서치의 결과를 강조하면, 수행적 리서치는 개인과의 인터뷰를 실천하면서 “난 지금이 좋아. 스물 살이 꽃다운 청춘이라고 하지만, 비바람을 견뎌내야 했거든. 지나고 보니 그 시간이 참 힘들었어. 난 그 고비를 잘 넘어서 이제 내가 된 거야, 해야 할 일을 웬만큼 했으니 이제 나를 돌봐줘야지”라는 언어 행위를 제시할 수 있다. 그리고 이를 자료로 수행적 리서치는 실천을 유도하게 된다. 개인이 표현하는 중년에 대한 경험은 분석적 리서치가 왜곡하거나 생략하는 많은 내용을 함축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중년을 긍정할 수 있는 것은 젊은 시절이 시련이 뼈아팠기 때문이고, 타인을 배려하며 자신을 희생할 수밖에 없었던 시기였기 때문이다. 중년은 그러한 책무를 다 이행하고서 비로소 자신을 위해 살 수 있는 시간을 갖게 되었다는 안도감을 갖게 되는 시기이다. 또 하나의 사례를 들자면 인터뷰 설문 중 ‘부부 사이의 갈등이 있나요?’하는 질문에 대해 한 인터뷰 대상자는 부부 사이의 갈등이 없다고 강조하면서 ‘남편이 집에 오면 말이 없어요. 밖에서는 사교적이고 인기가 많은데요. 그런데 그 말이 없는 게 힘이 들어요.’라고 질문에 대한 대답을 대신하였다. 이 경우 연구자는 갈등이 없다는 것과 대화가 없다는 것 사이에서 드러나지 않는 갈등의 심연을 느낄 수 있었다. 이처럼 개인들의 언어는 내용 자체의 의미 외에 상황에서 이해할 수 있는 중의적 의미를 지녔고, 하나의 극적 상황을 환기시켰다. 리서치는 이를 포착하여 철저하게 연구자의 체험을 수용하였으며, 실천과 함께 그 안에서 이루어졌다고 할 수 있다.
이상에서처럼 인터뷰는 하세만(Brad Haseman)이 주장한 ‘실천이 주도하는 리서치’(practice-led research)로서 ‘수행적 리서치’(performative research)의 성격으로 이해할 수 있는 소지가 충분하다고 할 수 있다. 즉, 리서치는 인터뷰라는 실천과 함께 시작되었고 그 과정에서 발생한 의문점, 도전, 형식 등의 문제 역시 실천을 통해 해결되었다. 이러한 리서치 방식은 하세만의 주장처럼 기존의 수량적인 분석이나 통계와 같이 숫자에 의존한 계량적 연구(quantitative research)와 언어를 통해 분류와 범주화를 이끄는 분석적 연구(qualitative research)와 다르게 기존의 리서치 방식을 방법론적 전략으로 선택하여 활용한 것이다.21) 우리가 선택한 방법론은 목적과 실천 방식에서 영국의 버바팀(Verbatim) 연극 방식과 유사하다고 할 수 있다. 영국의 버바팀 연극의 선구자인 로니 로빈슨(Rony Robinson)은 버바팀 연극의 범주를 “특정 지역, 주제 영역, 이슈, 사건 혹은 이것들의 조합에 대해 리서치를 하는 맥락에서 보통 사람들을 인터뷰하여 녹음하여 그것을 글로 옮겨 쓰는 것을 갖고 만들어진 연극”22)으로 한정하였다. 버바팀 연극에서처럼 녹음된 답변들은 이야기를 기술하는 것에서 나아가 화자의 어조, 에너지, 호흡, 화술의 특성 등을 담아낸 기록물이기도 하였다. 이로 인해 연극의 전통이 아닌 실생활 속에서의 개인의 생각과 체험을 관찰할 수 있었고, 기존 담론에서 드러나지 않은 미세한 사실들이 드러나기도 했다. 이는 마틴(Carol Martin)이 주장하듯이 텍스트와 몸 사이에 기술이 개입하여 “실제 무엇이 일어났는지를 포착하는 것”으로 일시적이고 가변적인 상황에 형태를 주고 기억하는 것을 가능하게 한다.23) 또한 이 같은 인터뷰 방식은 공연 텍스트를 위한 드라마투르기를 구성하고자 하는 목적에 부합했는데, 즉 인터뷰의 기록은 인터뷰가 이루어진 환경과 상황, 인물과 성격, 행동, 개인의 독특한 어투와 언어 습관, 태도와 자세 등이 고스란히 저장된 것이었다. 버바팀 연극 방식이 일반 사람을 인터뷰하여 과거 역사나 공간에 대한 개인의 기억을 구축함으로써 역사의 실재를 증언한다는 것을 이해하고 있었지만 그 표현 형식이 드라마투르기의 내용과 형식의 자료로 사용될 수 있다는 것은 예상을 넘어선 발견이었다. 즉, 하세만이 주장하듯이 리서치의 표현 형태인 상징적 데이터가 수행적으로 작용한 것으로 실천적 표현 형식이 리서치가 되고, 리서치가 표현 형식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24) 즉, 질문에 대한 인터뷰 대상자들의 답변은 그 자체가 리서치 내용이기도 하였지만 드라마투르기를 구성하는 과정에서 표현 방식으로 사용될 수 있는 자료가 되었다.
매주 진행된 모임에서 연구자들은 각자가 녹음한 내용을 가지고 와서 함께 듣고 내용을 공유하며 토의를 하였다. 여섯 명의 연구자들은 자신들이 실천한 인터뷰를 통해 얻게 된 정보보다 더욱 많은 양의 인터뷰 기록을 접하면서 많은 중년에 대한 경험을 축적할 수 있었다. 매번 자연스럽게 인터뷰를 들으며 토의가 이루어졌다. 가장 중요한 체험은 중년을 바라보는 연구자 자신들의 인식의 변화였고 더불어 리서치와 실천에 대해 수동적이던 자세가 적극적으로 변모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즉, 연구자들은 타인의 경험을 공유하며 자신을 확장시킬 수 있었고 리서치와 실천의 과정에서 대화적 상태로 개입하게 되었다. 이는 린덴(Jane Linden)이 강조한 실천 과정에서 얻게 된 ‘대화적 흐름’(dialogic flow)으로 가능해진 것이라고 할 수 있는데, 연구자들은 녹음된 이야기를 들으며 공명과 깨달음을 갖게 되고 이를 통해 실천 과정 속에서 중년이라는 경험에 대해 ‘스스로 느끼고 인식함으로써 정보를 구축하게 되었으며, 이러한 표현적이고 체험적 정보들이 토의되고 확장되어 상호작용하며 리서치를 전개하게 되었다.25) 연구자들이 인터뷰 대상자의 이야기를 듣고 공유하며 느끼게 된 체험들이 상호 작용하게 된 것이다.
7월 24일 연구자들은 『중년 여성의 심리』의 ‘성과 우정’을 다룬 4장과 5장을 읽고서 그에 대한 토론을 하였다. 일부를 발췌하면 다음과 같다.
이 과정에서 연구자들은 인터뷰를 실천하며 기획했던 버바팀 연극의 방법론을 변형하여 극적 성격을 구축하기로 하고 인터뷰 기록들을 자료 삼아 중요한 사건으로 생각되는 중년의 경험들을 사건으로 삽화적 구성의 공연 텍스트로 구축하기로 했다. 이는 인터뷰 기록을 들으며 모든 자료가 우리의 리서치에 유용하지 않다는 사실과 그 중 일부의 극적 성격이랄 수 있는 강력한 인물의 성격을 발견하게 된 것에 따른 것이다. 이들에게는 중년 경험으로서 암에 걸린다거나 특이한 사랑에 빠진다는 인상적인 사건들이 있었고, 이를 통해 인물의 삶이 하나의 이야기와 사건으로 연상되었다. 기존의 다큐멘터리 연극이나 버바팀 연극은 정치적 의도를 가지고 사회의 권력 기관을 비판하는 경향을 지닌다. 연극을 통해 진실을 알리고자 하는 정치적 의도가 기존의 다큐멘터리 연극에 내재해 있다. 우리 연구자들은 버바팀 연극의 드라마투르기에 기대면서 실재 인물들의 이야기를 고스란히 대사로 선택하는 대신에 인상적인 인물들을 통합하거나 분리하여 성격으로 구축하기로 했다. 이는 영국의 버바팀 작가인 알렉키 블라이드(Alecky Blythe)의 방식이기도 한데, 그녀는 허구적 장면 속에 실제 일상의 삶에서 만나는 인물들을 취하여 극적 효율성을 증대시키고 드라마가 필요로 하는 대사를 실재 인물의 다층적이고 풍요로운 언어를 취하는 방식으로 연극을 혁신하고 있다.26) 실재 인물의 목소리를 허구적 상황에 배치시킴으로써 드라마적 극조를 구축하면서도 생생한 삶의 현장성을 담아낼 수 있었던 것이다. 이 같은 결정을 하고나자 녹음된 인터뷰는 일종의 자원이 되었고, 드라마투르기의 구성 자료로서 다시금 성찰하고 분석하며 상상해야 하는 자료가 되었다.
이미 만들어진 자료를 가지고 텍스트를 구성하는 것은 소재에 대한 작가의 창의적 상상력이나 정서적 충만감만을 전제로 하지 않는다. 공연 텍스트를 구성하기 위해서는 리서치와 실천의 전 과정에서 개인의 극작의 재능을 포함하여 연구자들의 공동 참여가 요구되고 창의적 상상력 외에 선택과 편집, 변용을 통해 극작 구성 방법으로서 드라마투르기의 과정이 요구된다. 이전 토의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공연 텍스트의 구성 방향이 정해지고 나자 드라마투르그는 그간의 리서치와 실천을 통해 드러난 연구 자료를 가지고 공연 텍스트를 구성하기 시작했다. 이는 토의의 과정과 중복되었고 더 오래 진행되었다. 드라마투르그는 전체적인 구조를 구성하고 60명의 인터뷰를 자료로 삼아 여섯 명의 등장인물을 구축해야 했고, 이를 위한 극적 상황을 만들기로 했다.
3.3.1. 전체 구조 정하기
60개의 인터뷰를 반복하여 분석하면서 중년의 삶에 대한 전체적인 조관을 하게 되었다. 이는 프로젝트를 디자인하기 시작한 단계에서 연구자들이 참고했던 저술서의 내용에 대한 확인이기도 했지만, 연구자들이 인터뷰 대상자들의 이야기에 동의하면서 신체의 변화와, 심리적 경험, ‘낀 세대’로서의 사회적이고 문화적으로 주어진 역할 등에 대한 구체적인 체험과 함께 포착하게 된 부분이었다. 전체적인 조관은 공연 텍스트의 구조로 구체화 되었고, 극적 경험을 중심으로 5개의 에피소드로 구성된 5개의 장면을 구축하게 되었다. 우리는 중년의 여성들이 겪을 수 있는 극적 경험으로서 ‘동창회’, ‘자녀의 결혼식’, ‘이성에 대한 욕망’, ‘질병’, ‘화해’를 선택하였다. 에피소드와 함께 시간과 공간이 설정되었다. 장면을 구성할 에피소드를 정하고 나서 이를 구축할만한 인터뷰의 기록이 충분하지 못한 경우는 에피소드와 연결된 부분을 새롭게 인터뷰를 통해 보완해야 했다.
3.3.2. 인물 구축하기
장면의 에피소드가 설정되면서 인물들을 구축하였다. 인물은 인터뷰를 통해 발견하게 된 극적 성격이랄 수 있었는데, 여러 명의 목소리를 하나의 성격 안으로 콜라주하여 조합하기도 했고 고유하고 독특한 한 사람의 인물을 극적 성격으로 발전시키기도 했다. 연구자 여섯 명의 배우의 성격과 외모, 연륜에 상응한 여섯 명의 인물을 구축하게 되었다. 이는 버바팀 연극의 연구자로 참여했던 배우이자 음악가였던 예손(Gary Yershon)의 경험과 상통한다고 할 수 있다. 예손은 리서치로부터 얻게 된 이야기가 어떻게 배우의 심리와 연결되는지 판단할 수 있는 근거를 ‘그것이 연극적이고, 배우가 연기하여 어떻게 장면으로 발전되며, 또한 충분히 다이나믹하여 무대에 보일만할 정도의 에피소드인지’의 여부에 달려있다고 말하면서 리서치와 인물의 성격, 에피소드의 연결 가능성을 설명하였다.27) 인물의 구축은 각기 대사를 정하는 것과 동시에 이루어졌는데, 인물의 구축이 허구적인 선택이 개입한 것에 반해 대사는 인터뷰를 자료로 편집하였더라도 인터뷰 기록물에서 느낄 수 있는 호흡과 에너지, 어투를 살리려고 하였다. 배우인 연구자가 수행한 인터뷰가 해당 배우가 연기하게 될 인물로 구축된 경우가 대부분이었는데 이는 토의 과정에서 자신이 한 인터뷰의 맥락을 설명하면서 이미 경험이 동화된 것을 포착할 수 있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이루어진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 경우, 데이비드 헤어(David Hare)가 증언하듯이 배우들은 리서치를 통해 자신이 동화되고 익숙한 성격을 찾아내게 되며, 자신들이 실제 그 성격을 소유하고 보호한다고 여기게 된 것28)을 확인할 수 있었다. 드라마투르그 역시 구성 과정에서 인물과 동화되어 있다는 느낌을 갖게 되었는데, 이로 인해 드라마투르그와 배우 모두는 공연텍스트를 만드는 과정을 진지하지만 흥미로운 과정으로 체험하게 하였다. 한 배우가 자신의 성격과는 완전히 다른 인터뷰 상대를 택하였으므로 이 배우가 맡은 인물은 다른 연구자가 한 인터뷰를 통해 구성해내야 했고, 그로 인해서인지 배우 역시 자신이 맡은 인물에 대해 선뜻 달가워하지 않았다.
3.3.3. 사건 발전시키기
사건은 에피소드와 인물을 발견하면서 장면과 함께 ‘자라나듯이’ 만들어졌는데, 드라마투르기를 구축하는 과정에서 극적 효과를 위해 필요한 경우 허구가 개입하였고 실제 이야기나 사건이 편집되기도 했다. 위에서 인용한 7월 24일 인터뷰는 텍스트에서 다음과 같이 구성되었다.
리서치를 진행하는 중에 텔레비전 방송에서 40대 후반의 중년 여성과 20대의 젊은 남성 사이의 욕망을 다루는 드라마가 인기리에 종영하였는데, 이를 중년 여성의 욕망을 다루는 3장에서 다소 풍자적으로 쟁점화하였다. 이는 마틴이 이야기 하듯이 다큐멘터리 연극이 기존의 사건을 극적 자료로 취하는 것29)과 유사하게 일상에서 발생했던 실제의 경험과 기존의 자료를 콜라주하여 관객의 흥미와 참여를 비판적 관점에서 유도하기 위한 선택이었다. 이 선택은 후에 하나의 메타포로서보다 중년 여성의 사랑에 관한 광범위한 질문으로 발전하지 못하고 흥미 위주의 소재로 머무르고 말았다.
3.3.4. 극복해야 할 문제
녹음된 인터뷰를 듣고 논의를 하면서 공연 텍스트를 구성하는 과정은 후반부에 이르면서 장면 별로 전개되었다. 배우들은 하나의 장면이 만들어질 때마다 낭독을 해볼 수 있었고, 자신이 맡은 인물에 대해 의견을 제시할 수 있었다. 이 과정에서 배우들이 자신의 역할에 대해 ‘만족스럽지 않다’ 혹은 ‘찬성하지 않는다’는 문제 제기를 한 적이 있었는데, 드라마투르그가 미처 생각지 못한 부분에 대해 제안을 하거나 영감을 준적도 있지만, 개인의 취향을 고집하면서 문제가 발생한 적이 있었다. 60세 여성 인물 큰딸 미란과 막내딸 미도의 결혼 전 남자 친구가 연애를 하는 언급이 있는데, 다른 모든 구성원이 그 장면을 흡족해한 반면, 역할을 맡은 여배우가 도저히 자신은 그 관계를 납득할 수 없다고 해서 텍스트 구성이 지연되기도 했다. 이 문제는 프로젝트에 참여하지 않았던 제 3자의 긍정적인 평가에 의해 극복될 수 있었다. 또한 한국의 연극 문화가 선후배의 경계가 분명하기에 개인의 취향이 부딪칠 경우 후배는 선배의 제안을 무조건 수용해야 했다. 시작부분에서 여섯 명의 배우 모두의 배역에 고르게 대사를 배치하고자 했던 본래의 의도와 달리 선배 배우와의 대사가 유사하거나 반복된 경우 상대적으로 젊은 두 배우는 선배를 위해 분량을 양보를 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이는 원래 의도했던 텍스트의 방향을 왜곡시키는 문제로 발전했는데, 문제점이 드러나자 그때서야 원인 분석이 이루어지고 텍스트는 문제 상황에서 다시 구성되어야 했다. 이러한 문제들이 발생한 원인이나 토론과 논의를 통해서도 문제를 극복할 수 없었던 이유는 한국 연극 문화와 불가분 연관되는데, 공동 창작의 과정이 선후배 등과 같은 개인적 관계로 인해 민주적이지 않은 상황을 야기했기에 벌어진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창작극 드라마투르기 과정에서 낭독 공연의 목적은 공연 텍스트를 관객에게 소개하면서 “작가가 희곡을 들여다볼 수 있는 기회를 갖고 이 과정과 함께 관객의 피드백을 통해 공연을 발전시키는데 있다.30) 낭독 공연은 경기도 군포시 중앙 도서관 소극장에서 있었고, 중년 여성들이 가장 한가한 시간인 11시로 예정되어 있었으나 극장 사정으로 3시에 공연하게 되었다. 관객 120여명의 대부분이 중년 여성이었으며 열 명 정도의 중년 남성도 포함되어 있었다. 지역의 극장에서 낭독 공연이 이루어졌기에 거의 모든 관객은 지역민으로 구성되었고 지역과 관계없이 일부 인터뷰 대상자들이 관람하였다. 텍스트의 의도 자체가 미학이나 양식의 실험 혹은 문학적 텍스트의 풍요로운 감성을 일깨우고자 한 것에 있는 것이 아니고, 관객으로 하여금 중년 여성의 경험을 자각하고 공유하는 것에 있었으므로 낭독 공연에 대한 관객의 반응은 매우 중요하였다. 관객의 반응은 뜨거웠고, 일부 눈물도 흘리면서 열렬한 반응을 보였다.
반응의 열기는 지역 도서관의 작은 소극장에서 유명한 배우들을 볼 수 있다는 사실 자체에 흥분한 부분도 있었고, 배우들이 관객의 반응을 얻기 위해 과도한 표현을 한 부분도 있었다. 텍스트 자체를 들여다보기 위한 ‘냉정한 읽기’에서 실패한 것이다. 대신 세 명의 초대된 전문가를 통해 몇 가지 제안을 들을 수 있었는데, 그중 두 명이 긍정적인 평을 들려주었고 한 사람은 비판적인 견해를 보였다. 전문가의 긍정적인 평가는 ‘일반 극장에서 공연된 것과 다른 삶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었다.’ ‘중년이라는 소재를 이렇게 관객 스스로 이야기를 하고 나눌 수 있다는 것이 좋은 것 같다’는 점에 모아졌고, 비판적인 평가는 ‘실험적이지 못하고 너무 일반적이다’는 점을 지적하였다. 관객의 긍정적인 평가는 “실제 사람들이 하고 있는 이야기를 숨소리조차 고스란히 옮겨온 듯하다”는 것과 “나이가 들어 외로웠는데 위로가 되었다”는 점을 거론하였고, 비판적인 견해는 “내용 중 한 인물이 암에 걸렸는데, 자신의 경험에 비추어 피상적이다”와 “어머니 역할이 너무 지적이어서 일반적이지 않다”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다. 가장 흥미로운 부분은 인터뷰에 참여한 관객이었는데, 그들은 자신의 “삶을 객관화할 수 있다.”와 “힐링이 되었다.”는 표현으로 자신의 삶에 대한 인식이 변화하였다고 강조하였다. 이러한 피드백을 통해 어머니 성격이 다시 쓰여야 하고, 일반적인 장면보다 다소 실험적인 글쓰기가 필요하며 암에 걸린 경험이 있는 중년 여성을 심층 인터뷰할 필요를 깨닫게 되었다.
19)Baz Kershaw, “Practice as Research through Performance”, Practice-led Research, Research-led Practice in the Creative Arts, 107. 20)박정자 배우는 인터뷰에는 참여하지 않았다. 21)Brad Haseman, “Rupture and Recognition: Identifying the Performative Research Paradigm”, Practice as Research: Approaches to Creative Arts Enquiry, pp. 150〜151. 22)Derek Paget, “Verbatim Theatre: Oral History and Documentary Theatre Techniques”, New Documentary Theatre, 3, Cambridge University Press, 1987. p. 317. 23)Carol Martin, “Bodies of Evidence” The Drama Review, 50, 2006. p. 9. 24)Brad Hasseman, ibid. p. 150. 25)Jane Linden, “The Monster in our Midst: The Materialization of Practice as Research in British Academy”, curatingknowledge.com/.../The-Monster-in-our-Mid. 2014.11/7. 26)Alecky Blythe, “Alecky Blythe”, Verbatim Verbatim, Eds. Will Hammond, Dan Steward, Oberon, 2008. pp.101〜102. 27)Derek Paget, op. cit. p.326. 28)David Hare, “David Hare & Max Stafford-Clark”, Verbatim Verbatim, Eds Will Hammond, Dan Steward, Oberon, 2008. p. 64. 29)Carol Martin, op. cit. p. 10. 30)최영주, 『드라마투르기란 무엇인가?』, 태학사, 2013. p.353.
기존의 연극은 희곡 중심의 연극이거나 연출가의 미학적 실험을 위주로 전개되어 왔다고 할 수 있다. 희곡 중심의 연극은 드라마라는 전통적인 문학적 관례에 따라 작가가 이야기를 구성하는 장르의 제한된 속성을 지닌다. 그러나 흔히 지적되고 있듯이 기존의 드라마는 현실의 복잡한 양상과 뉴미디어가 재촉한 기술의 발전과 이미지 문화의 범람 속에서 더 이상 리얼리티를 담아내지 못하다는 한계에 직면해 있다. 또한 연출가 중심의 연극은 연출가의 미학적 취향과 기법에 경도되는 경향이 농후하다. 대중 매체 역시 현실과 시뮬라크르의 구분을 모호하게 뒤섞어 대중을 혼돈에 빠뜨리기도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90년대 이후 활성화되는 다큐멘터리 연극은 기존 연극의 한계와 저널리즘의 무기력을 극복하고자 하는 연극적 실험으로 이해할 수 있다. 우리에게도 소개된 바 있는 리미니 프로토콜(Rimini Protokoll)의 <자본론–1권>(Karl Marx: Das Kapital, Erster Band)이나 일본 ‘마레비토시어터’ 컴퍼니의 <히로시마-합천: 두 도시를 둘러싼 전람회>는 포스트 드라마 연극 담론에 기반하여 조사와 연구의 과정을 통해 작품을 생산한 예에 해당한다. 2014년 남산 예술센터에서 공연된 <남산도큐멘터> 역시 그 같은 의도에서 만들어진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들 작품에 대한 관심은 결과물에 대해 한정되어 있을 뿐 그 과정은 자세히 알려져 있지 않다. 그것을 담론화하고 것은 이론가들의 몫이고 특권이다. 이론과 실천이 두 개로 분리되어 있는 것이다.
본고는 한편으로 동시대 버바팀 연극의 방법론을 원용하면서 다른 한편으로 중년 여성의 경험에 관한 리서치를 통해 공연 텍스트를 구성하는 방식에 대한 성찰적 기록이라고 할 수 있다. 이를 하나의 범례 삼아 이론과 실천을 결합하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소개하고자 하는데 목적이 있었다. 개인들을 찾아가 그들의 중년 경험을 인터뷰하여 공연 텍스트를 구성하는 것은 일상을 예술적 관심의 대상으로 끌어안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개인의 일상은 텔레비전과 같은 대중 매체와 서술된 담화 안에 포착되지 않은 다양한 상황을 담고 있었고 개별적이며 윤색되거나 변형되지 않은 리얼리티 자체였다. 삶이라는 상황 안에 인물이 있고, 언어가 있었으며, 사건과 행동이 있음을 발견하게 되었다. 공연 텍스트를 구성하는 것은 이러한 실제 자료를 가지고 그 경험을 소통하기 위해 이야기를 나누고 옮기며 편집하여 배치하는 것에 해당하였다. 중년 여성 다수가 중요하게 공유하는 삶의 경험은 친구관계, 질병, 과거 시집살이와 남편과의 갈등, 외모의 변화, 성에 대한 욕망과 부정, 자식의 결혼으로 인해 변화된 삶, 그리고 배우자와의 사별을 포함해서 노후와 죽음에 관한 것이었다. 이러한 사실은 이미 대중매체나 서적을 통해 알려진 바이지만, 연구자들이 이 사실을 개인의 체험을 통해 확인한 것은 놀라운 깨달음으로 다가왔다. 일반적인 사실이 체험으로 재발견된 수많은 순간을 경험하였고 자신과 다른 관점과 태도를 접하면서 자기 자신에만 한정되어 있는 연구자의 의식은 변하였고 타인과 소통할 수 있었다. 인터뷰 대상자들 역시 자신의 이야기를 할 수 있었던 시간을 통해 ‘힐링’을 느꼈다고 이야기하였고, 공연을 보고 나서는 배우들의 모습 속에서 자신을 확인할 수 있어 감격스러웠다고 이야기하였다. 또한 중년이라는 공통된 관심사로 중년의 관객과 소통했던 낭독 공연은 지리적인 커뮤니티가 아닌 공통의 관심사를 통해 모인 또 하나의 커뮤니티로 볼 수 있게 되었는데, 지역사회의 연극이 예술적 야망을 추구하는 대신에 지역 주민을 공연에 참여시키고 그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것과 같이 본 텍스트의 목적 역시 그에 있다는 것을 확인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