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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A 학술지
문학상담에 대한 일고찰 Review on the Literary Counseling
  • 비영리 CC BY-NC
ABSTRACT
문학상담에 대한 일고찰

The purpose of this study was to overview the meaning of the experiencing crisis and despair and the processes of overcoming them. Counselor’s perspectives on dealing with the crisis of a client were also reviewed. In order to achieve these purposes, we analyzed the crisis experience of Sinclair, the hero of『Demian』and revealed that the crisis was the important factor for human growth and self-acceptance. We also presented that the literary counselor’s role was to encourage the clients to explore the positive core in human nature. Important outcomes of literary counseling was re-experiencing unsolved emotions and traumas, understanding existential problems of human being, and actualizing the conceptual knowing into the real existences. Finding of the currents study, indicated that literary counseling might help client to re-gain the power of human growth.

KEYWORD
문학상담 , 데미안 , 실존 , 위기 , 절망
  • 문학과 상담

    인간의 불안, 위기, 절망의 구체적인 양상은 예로부터 영화, 소설, 시, 예술작품 등의 매체에서 중요한 주제로 다루어져 왔다. 그 중에서 소설이나 시 등의 문학작품은 작가가 인위적으로 만들어낸 허구의 세계이지만, 인간 경험을 초월적이고 압축된 형태로 표현하면서도 삶의 다양한 면과 여러 가능성을 독자에게 제시한다. 또한 문학은 그것을 대하는 독자를 인간적인 방식으로 끌어들이며 허구이든 현실적이든 간에 체험한 삶으로 되돌아가게 하여, 우리가 정상적으로 경험하지 못할 상황, 느낌, 감정, 사건 등을 경험할 수 있게 하며, 이로써 실존적 경관의 지평을 넓힐 수 있게 해 준다(van Manen, 1990/1994). 인간의 삶을 꾸밈없이 보여주는 문학의 진솔함이 우리를 자신의 문제에 솔직하게 직면하도록 돕고, 이러한 직면을 통해 우리가 이제까지의 일상적인 태도를 인정하고 수용하도록 인도하며, 동시에 일상성을 초월하여 이전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의미로 존재하도록 우리를 이끈다. 즉, 문학 작품에 내포된 작가의 메시지를 통해서 전반성적(前反省的)으로 안주해왔던 삶의 제 조건들에 대해 각성을 얻으며, 이를 계기로 새로운 삶의 의미를 창출해낼 수 있는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다(고진호, 1992).

    이러한 문학의 기능은 상담을 통해 얻는 효과와 그 맥이 닿아있다. 사람들은 고통을 겪거나 어려움에 처했을 때, 자신의 감정과 상황이 문제로 판단되어 도움을 받으면 그 괴로움이 완화될 것이라고 믿을 때 상담을 받고자 한다(Gross & McMullen, 1983). 그리고 상담자는 내담자가 삶을 어떻게 살아야만 하는가에 대한 특별한 지식이나 지혜를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감정이입과 특별한 상담기술을 통해 내담자의 감정과 가치관을 탐색하고, 내담자 스스로 자신의 문제를 이해하고 사고, 정서, 행동을 변화시킬 수 있도록 안내하는(Clara & Karen, 1999/2001) 역할을 한다. 이 때, 상담의 핵심은 내담자 스스로가 자신의 인생에서 이야기로 만들어지지 못한 이야기를 새롭게 구성하거나, 이미 구성된 이야기 가운데서 다른 의미를 찾아 전에 언급되지 않았던 상황을 전면에 배치하여 새로운 변화를 시도하도록 돕는 것이다. 상담을 통해서 내담자는 자신이 문제시 삼는 감정이 특정 사건에 대한 심리상태이며, 자신이 파악하고 있는 상황은 그런 심리 상태의 관점에서 구성한 상황이란 것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 자신의 행동을 성찰하는 과정을 경험하게 되는데 문학상담은 다양한 상황을 통해 나의 상황과 입장을 타인의 관점에서 조망함과 동시에 새로운 관점으로 타인의 상황과 입장을 숙고하며 살펴보는 기회를 제공하고자 하는 것이다. 우리는 대개 일상의 어떤 것에는 특정한 의미를 부여해 사건으로 인지하지만, 또 다른 어떤 것은 의미가 없는 것으로 치부해 기억에서 지워버리기도 한다. 우리의 경험이 사건이 되고 기억 속에 저장되는 것은 경험 그 자체 때문이 아니라, 경험에 의미를 부여함으로써 사건이 되는 것이라는 뜻이다(변학수, 2002). 즉 문학상담을 통해 ‘부여한 의미’를 발견하고 의미를 변화시켜 나가는 것이다.

    이것이 가능한 것은 문학상담을 통해 만나는 문학작품 속의 인물은 우리가 세상에서 볼 수 있는 많은 보통 사람이기도 하지만 세상에 내보내는 ‘또 다른 나’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대상과 자신을 동일시하면서 자신의 문제와 직면하기도 하고, 대상과의 차이 -동일한 상황에서 감수해야 할 것들의 차이- 를 발견하는 과정 속에서 자기 이야기를 편안히 할 수 있는 동기와 자신의 문제를 비끼어 볼 수 있는 힘이 생기는 것이다. 동일시를 통해 자신의 감정을 수용하고 위로받기도 하지만, 차이를 통해 자신을 대상화하고 드러나는 심리를 관찰하면서 새로운 통찰을 가져올 수 있다(변학수, 2002).

    이렇게 문학상담은 자신이 구성하고 있는 서사(敍事)를 드러냄으로써 은폐되어 있던 자신의 신념과 가치관, 그리고 숨은 감정을 확인하게 되며, 이를 바탕으로 과거를 재해석하고 새로운 이해를 도모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정리하면, 문학상담은 인간의 삶을 이야기로 구성한 문학 작품을 활용하여 상담을 하는 것으로, 문학작품 속의 주인공과 주변 인물들의 내적인 갈등을 포함한 다양한 문제들을 상담의 과정에 대입하여 이해하는 상담의 모든 활동이다. 그리고 상담의 과정은 문학작품을 매개로 자신의 감정과 신념이 녹아있는 자기 서사(敍事)를 읽어내고, 그 서사에 부여된 의미와 새롭게 부여할 의미를 찾는 과정으로 이루어진다. 그리하여 자신과 타인, 그리고 환경에 대한 이해와 수용을 통해 참 자기를 찾는 것과 내재된 잠재력을 실현하며 성장하는 총체적 인간으로서의 삶을 살도록 돕는 것을 목표로 한다. 또한 위기와 갈등을 자기됨의 필연적 부분으로 파악하고, 자기 자신에 대해 언어화함으로써 삶의 부조화와 분열을 극복하도록 돕고 발달과 성숙을 통한 총체적 성장3)을 돕는 것이다(이혜성, 2012).

    3)성장은 인간 잠재능력의 무궁무진함을 신뢰하는 믿음이며,자기 자신과 타인을 배려하고 이해하고 수용하는 자세로 인간관계를 맺는 노력이 가능하게 되는 것이다(이혜성, 2012)

    문학상담의 과정:『데미안』에 나타난 위기, 절망, 극복의 과정분석

    본 연구에서는『데미안』에 나타난 인간의 위기, 절망, 극복의 과정을 살펴보는 것을 통해 문학상담 과정을 고찰해보고자 한다. 많은 문학 작품 중에서『데미안』을 선정한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상담의 과정 중 하나는 자신이 세상을 흑백의 두 가지 색으로만 나누고 있는 경직성을 스스로 깨달아가는 것이다. 두 세계의 조화는 어떤 것도 온전히 하얗거나 온전히 검은 것만은 아님을 인정하고 수용함을 전제한다. 이 과정에서 인간은 자신이 사라질 것 같은 위험과 위기에 처하게 되고 불안을 경험한다. 주인공 싱클레어가 경험하는 두 세계가 의미하는 바는 빛과 어둠, 선과 악, 금지와 허용, 욕망과 죄책감, 죄와 구원, 무지와 불안, 육신과 영혼, 이성과 감정, 남성과 여성, 부모와 자식, 우월과 열등 등의 상반되게 분리된 모든 것들이 짝을 이룬 세계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두 세계를 경험하면서 겪는 위기는 이분법적으로 나뉘어져 있는 세계를 자기 세계로 구성하고 있는 우리 모두의 위기이며, 이 때 겪는 불안과 죄책감은 인간 실존의 위기인 것이다. 그리고『데미안』은 자기 자신이 되고자 하는 불안과 위기의 과정을 생생하게 내면의 체험으로 묘사하고 있으며 이는 반성적(反省的) 사고4) 방식으로 우리들에게 깊은 성찰을 제공한다.

    둘째,『데미안』은 주인공이 방황을 거쳐 자아를 인식하고,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현실에 대해 이해심을 가진 어른으로 성숙해가는 과정을 그린 소설이다. 이에 따라 인간이란 정지된 존재가 아니라 형성 중인 존재이며, 실수나 과오는 불가피한 것이지만, 진실한 모색일 경우에 결과는 언제나 긍정적이라는 Hesse의 인간관을 발견할 수 있다(박광자, 2004). 즉,『데미안』은 인간이 갈등을 해결해가면서 존재하는 것이지, 위기를 피하거나 절망해서 자신이고자 하지 않으면서 존재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시사한다.『데미안』에서 주인공 싱클레어는 다양한 만남을 통해 사물을 전혀 새로운 관점에서 보는 법과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규범과 가치를 새롭게 평가하는 법을 배우고, 독립적이고 주체적인 사고와 행동의 중요성을 깨닫는다. 그 과정에서 자기 자신에게 절망하고, 죄책감과 불안함으로 인해 권위와 향락에 굴복하기도 하면서, 스스로에 대한 존경과 용기, 자존심을 회복시킨다. 이를 통해 싱클레어의 내면에 감춰두고 억압돼 있던 감정들과 접촉하여 망각 속에 있었던 자신의 과거를 회상하고 복원하여, 현재를 재구성해나가는 것을 살펴볼 수 있다. 이렇게 주인공을 읽어내는 것은 한편으로는 실존적 존재인 우리 자신의 경험을 대입하며 읽어내는 작업이 될 것이고, 다른 한 편으로는 상담자로서 내담자의 위기와 절망을 이해하는 작업이 될 것이다.

    셋째,『데미안』의 주인공 에밀 싱클레어와 다른 인물들과의 만남은 대립의 체험이라 할 수 있고, 주요 등장 인물들 그 자체가 양극성의 긴장을 내포하고 있어 주인공 싱클레어의 자기실현과정에 등장 인물들이 미친 영향을 살펴볼 수 있다(이상희, 2002). 데미안, 피스토리우스, 에바부인은 모두 각각 자신의 삶의 경험을 기반으로 싱클레어와 교류하며 싱클레어를 낯선 체험의 세계로 인도한다. 싱클레어는 이러한 만남을 통해 내면에 있는 것은 하나도 부인할 필요가 없음을 깨닫는다. 그리고 자신의 꿈과 생각, 감정에 대해 신뢰를 가지게 되고 내면으로부터의 깊은 힘을 발견하면서 성장해 간다. 이 과정에서 싱클레어는 변화를 거부하기도 하고 상대에게 전적으로 의존하기도 하며, 방황하며 대립하기도 한다. 이 만남의 과정을 살펴봄으로써 상담자로서의 자기 점검과 성찰, 상담 관계를 숙고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이를 바탕으로 본 연구는 인간이 경험하는 위기 경험에 대한 이해를 모색하고자 한다. 구체적으로, 인간의 실존에 있어 위기와 절망의 경험이 의미하는 바와 극복과정에서 경험하는 세계경험의 함의에 관해 살펴보고, 이를 바탕으로 내담자의 위기상황에서 상담자가 가져야 할 관점을 제안하여 문학상담의 의의를 나타내고자 한다.

    먼저『데미안』의 주인공 싱클레어의 시기별 세계 경험과 위기 체험을 정리하면 그림 1과 같다.

    4)‘반성적 사고’는 어떤 신념,혹은 상상된 지식의 형성을 그것을 지지하는 근거에 비추어 적극적이고 지속적으로 주의 깊게 고려하는 것이고,그러한 신념 및 형식들이 지향하는 여러 결론을 면밀히 고찰하여 사고의 문제를 발견하고 그 문제를 중시하며 연속적으로 사고하는 것이다.‘사고에 대한 사고’이면서 자신의 앎에 대해서 스스로 돌아보고 점검하는 과정이다(Dewey,1933/1981).

    싱클레어의 위기 특성

    본 연구는 관계와 만남을 통한 세계관 변화와 자기 인식의 변화 사건을 기준으로『데미안』에 나타난 싱클레어의 위기를 나눠서 살펴본다. 즉, 세계관이 변화하는 것에 따라 이루어지는 두 세계의 분열 위기와 아버지의 세계의 위기, 데미안과의 만남을 통해 일어나는 인식의 위기, 자기 인식의 변화에 따라 ‘향락과 쾌락의 탐닉’과 ‘순결과 절제에의 동경’으로 구성되는 절망의 위기, 피스토리우스와의 결별 사건으로 완성되는 분리의 위기로 구분된다.

    우선, 싱클레어가 경험한 다섯 번의 위기의 시기별 특징과 영향을 미친 주요인물, 위기 경험의 의미를 그림 2와 같이 정리하고 그 내용에 대해 살펴보기로 한다.

      >  두 세계의 분열: 가능성의 불안과 죄책감의 위기

    싱클레어에게 아버지의 세계이자 밝은 세계는 공생 관계5)의 단계에서 파생된 환상으로 “흠 없는 세계6)”이다. 그리고 ‘어두운 세계’는 유기적 통일7)의 감정과는 무관하게 철저히 나와는 상관없이 ‘그것’으로 관찰되는 대상화 된 세계이다. 이 두 세계는 ‘전적으로 좋은’과 ‘전적으로 나쁜’의 대상 표상을 가지고 있으며, 싱클레어는 두 세계에서 드러나는 자신의 욕구와 행동으로 인해 불안감과 죄책감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 즉 싱클레어의 ‘어둠과 밝음의 두 세계’ 경험은 자신이 속한 밝은 세계로부터 이탈하면서 겪는 ‘가능성의 불안과 죄책감의 위기’이다.

    우리가 “흠 없는 세계”의 환상을 갖게 되는 것은 발달의 초기인 유아기에 부모에게 철두철미하게 의존할 수밖에 없는 심리적, 생물학적 특성에 기인한다. 유아기에 우리는 우리의 생존을 위해 반드시 존재해야 할 대상인 어머니와 공생 관계를 이룬다. 이러한 공생 관계에서는 대상의 파괴가 곧 자신의 파괴를 의미하기 때문에 주체가 의존해야 할 환경인 대상을 ‘좋은 것’으로 보존하기 위해 자아는 대상의 나쁜 면을 억압하여 무의식의 세계로 추방한다. 공생의 단계에 있는 아직 미성숙한 자아에게는 대상의 나쁜 면을 직면할 힘이 없기 때문이다(신정인, 2011). 그렇기에 싱클레어는 ‘하나의 대상이나 상황에 대해 동시에 일어나는 서로 다른 감정11)’을 이해하지 못하며 ‘나쁜 데도 불구하고 즐겁고, 좋은 데도 즐겁지가 않은’ 감정을 수용할 수 없다.

    그래서 싱클레어는 자신의 ‘하고 싶다’는 욕망과 동시에 ‘해서는 안 되는 것을 바라고 있다’는 상반된 감정을 통일시키지 못하면서 느끼는 불안과, 그것이 무엇 때문인지는 알 수 없으나 밝고 옳은 세계에 속해 있을 때와 어두운 세계에 속해 있을 때 달라지는 행동 때문에 느끼는 죄책감을 ‘가능성의 차단’으로 봉합한다. 할 수 있고, 하고 싶지만 하지 않는다면 나는 절대 어두운 세계의 사람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것은 완전하게 구분할 수 없는 불완전한 경계, 이 세계와 저 세계를 오갈 수 있는 ‘가능성’ 때문에 불안을 느끼는 싱클레어가 찾은 대답인 셈이다. 싱클레어에게 자신은 ‘아직 모르는 그것을 할 것 같은 나’의 종합이다.

    이 위기는 별도의 외부적 사건이 없어도 일어나는 내부적 위기이다. 그리고 불안과 죄책감의 내부적 위기를 바탕으로 두 번째 위기인 ‘아버지의 세계의 위기’가 일어난다. 아버지의 세계의 위기에서 싱클레어가 구성하고 있는 두 세계의 세계 경험을 정리하면 그림 3과 같이 나타낼 수 있다.

      >  크로머 사건; 어두운 세계 체험: ‘아버지의 세계의 위기’ 그리고 ‘인식의 위기’

    이와 같이 첫 번째 위기가 불안과 죄책감이 원인이 된 내부적 위기라면 ‘아버지의 세계의 위기’와 ‘인식의 위기’는 크로머의 사건과 데미안과의 만남을 통해 일어나는 외부적 위기라고 할 수 있다. ‘아버지의 세계의 위기’는 싱클레어가 밝은 세계로부터 이탈하여 개별화되어 가는 과정이다. 그러나 이 분리가 자연스럽고 내적인 상처 없이 이루어지는 것과 외부로부터 강제로 일어나는 것은 매우 다른 결과를 초래한다. 의도와 무관하게 외부로부터 닥쳐와 자신의 삶의 안정성을 파괴하고, 삶에 침투하여 세계로부터 자신을 분리시키는 위기적 사건에 의해 강제로 일어난 분리는 자신이 잘못했기 때문이라는 마음을 갖게 한다.

    크로머의 사건 역시 밝은 세계로부터 싱클레어를 강제로 분리시키는 위기로서 싱클레어에게 불안과 공포, 악몽을 불러일으키고 밝은 세계인 아버지의 세계의 안정성을 무너뜨린다. 이러한 외부적 사건이 싱클레어에게는 존재를 부정하는 내적 사건으로 전환되는데, 그 이유는 싱클레어가 사태의 원인을 자신의 잘못이라고 여기는 데 있다. 구체적으로는 아버지가 찬성하지 않았을 크로머와의 교제, 크로머가 자신을 다른 애들과 같이 취급해주는 것이 기뻐서 그의 명령에 복종한 것, 크로머를 악의 화신으로 여기면서도 제대로 저항하지 못한 것과 아버지에 대한 감사와 순종이 격렬하게 붕괴되며 경멸과 우월감을 느끼는 것에 대한 죄의식 때문이다. 이와 같이 분명한 죄를 자각한 죄의식은 한편으로는 자신을 보호할 관계가 없다는 고립감으로 다가온다. 비록 여럿이 지은 죄라고 할지라도 죄의식은 오롯하게 나만의 것이기에 죄의식을 가진 사람은 연대감을 가질 수가 없다. 또한 싱클레어가 느끼는 고립감, 아무에게도 이해 받지 못할 것이라는 두려운 감정들의 밑바탕에는 자신이 죄의식과 허영에 찬 거짓말로 어두운 세계에 복종했다는 수치심이 숨겨져 있다. 이러한 고립감과 수치심을 동반한 죄의식은 싱클레어로 하여금 고통의 순간이 영원할 것 같은 느낌 속에 시간(미래)을 잃어버리는 체험을 하게 한다. 이때의 시간 체험은 현재의 잘못을 만든 필연적 과거가 존재하고, 그 결과로 현재 고통을 겪고 있으며, 이 고통이 미래에도 계속될 것이라는 확신으로 구성된다. 결과적으로 미래에도 계속될 고통이기에 지금 결단해야 할 이유가 없어지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지금을 살 수 없다.

    두 번째 위기를 통해 싱클레어는 아버지의 세계가 더 이상 울타리가 되지 못한다는 사실, 밝은 세계가 유일한 세계가 아니라는 깨달음, 아버지보다 자신을 우월하게 느끼고 있다는 자기 내면을 발견했다. 이는 싱클레어가 부모에게서 분리 독립되는 과정이다. 싱클레어에게 이 과정은 압도적인 공포이며 책임이나 한계, 가능성을 인식하기보다는 무능감과 존재의 불안을 경험하고 있는 위기 상황이다. 그리고 이 위기 상황은 데미안과의 만남으로 이어진다. 앞서 말한 것처럼 크로머의 사건은 위기의 순간이면서 데미안과의 만남의 계기가 된다. 그리고 데미안과의 만남을 통해 싱클레어는 자기 자신이 되기 위해서는 자신이 먼저 파괴당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각성이 일어나는 ‘인식의 위기’를 맞이한다.

    세 번째 ‘인식의 위기’는 데미안에 의해 제시된 독립적이고 주체적인 사고와 행동의 중요성과 가치관과 선악의 문제, 금지된 것과 허용된 것 사이에서 선택해야 하는 과제가 스스로에게 있다는 자각 때문에 일어난다. 그래서 이 위기는 자유와 책임감 앞에 놓인 불안과 두려움으로 구성된다. 데미안의 도움으로 싱클레어는 크로머의 협박으로부터 놓여난다. 크로머로부터의 해방은 자유를 의미한다. 그러나 위기에서 파생된 죄의식을 해결할 결단의 순간이 삭제된 싱클레어의 해방은 또 다른 불안을 야기한다. 자유를 깨닫자마자 삶에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인지 자기 삶으로 대답해야 할 책임이 곧 자유를 제한한다.12) 싱클레어는 불안으로 인해 책임보다는 도피의 자유를 선택한다. 왜냐하면 싱클레어의 세계는 ‘요구’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나 아닌 타인들은 모두 나에게 무엇인가를 요구하고 있다’는 것이다. 크로머는 돈을, 아버지는 빛나고 밝은 길을, 데미안은 자주적인 길을 요구하고 있다. 이렇게 구성된 세계에서 싱클레어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복종과 예속뿐이다. 싱클레어의 입장에서 그것은 매우 안전한 것이다. 죄의식은 괴롭지만, 책임은 더욱 무서운 것이다. 책임을 직면할 수 없는 압도적인 감정이 그를 짓누르는 것이다. 죄의식의 괴로움을 알면서도 그리로 도피하는 것은 그 곳이 안전하다기보다는 덜 무섭기 때문이다. 이 때, 싱클레어의 선택과 기피의 기준은 불안이다. 더 큰 고통인 불안을 피하려고 작은 고통인 종속을 선택한 것이다. 왜냐하면 데미안이 일러 준 세계, 독립적이고 자주적이 된다는 것은 크로머와 경험한 세계보다 더 혼돈스럽고 불안했기 때문이다.

      >  어두운 세계의 탐닉과 밝은 세계의 복종: ‘절망의 위기’

    앞선 위기를 스스로의 힘으로 해결하지 못한 싱클레어는 네 번째 위기를 스스로 선택한다. 이는 절망의 위기이다.

    절망의 위기 역시 두 축으로 구성할 수 있다. 하나는 ‘자기가 바라는 자기’가 될 수 없다면 ‘바라지 않는 자기’가 되겠다는 선택이다13). ‘바라지 않는 자기’란 ‘아무 것도 아닌 자기’이며, 이는 자기 자신이 되지 않겠다는 선언이다. 그래서 싱클레어는 절망의 죄의식 속에 갇혀, 자신의 욕망을 징벌하는 방법으로써 ‘쾌락에 의한 타락’을 능동적으로 선택한다. 또 다른 한 축은 순결과 절제의 복종과 예속을 통해 ‘이제는 절대로 나 자신이 되지 않겠다’는 절망을 표현한다. 이는 ‘다른 자기’가 되고 싶어 하는 절망이다14).

    싱클레어는 한 편으로는 자기 자신에게 절망하며, ‘바라는 자기’를 포기하고 자신을 세상과 자신으로부터 소외시킨다. 절망은 실패와 고립감, 자기 비난과 자기 파괴, 혼란과 무질서를 경험하게 하며, 자신은 여기서 탈출할 자격이 없다는 악순환의 고리를 형성한다. 그러니 스스로를 책임지려 하지 않는다는 비난이나 스스로를 책임져야 한다는 호소는 절망한 사람에게 소용이 없다. 모두 잔소리일 뿐이다. 이전에는 무서웠던 죄책감의 그늘을 이 미 안전한 상태로 여기기 때문이다. 이처럼 싱클레어는 ‘아무 것도 아닌’ 자기를 파괴하고, 아직도 바라고 있는 ‘자기가 바라는 자기’를 포기한다. 그렇기에 “나 자신을 이겨 나갔다”라고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세상과 싸우는 것은 실제로는 용서할 수 없는 자신과 싸우는 것이며, 세상이 손해를 입어도 상관없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자신이 상해도 상관없는 것이기에 이는 결국엔 자신과 싸우면서, 자신을 징벌하고 있는 것이다. 자신에게 통하는 길, 바라는 자신이 되는 길을 발견하지 못하는 싱클레어의 절규인 셈이다. 그러나 이러한 절망 속에서도 싱클레어는 희미하게나마 끈질기게 들리는 내면의 소리와 양심의 소리를 붙잡고 있다. 바로 그 내면의 소리가 싱클레어를 괴롭히고 있지만, 바로 그 소리로 인해 절망의 위기를 극복할 기회가 생기는 것이다.

    선택해야 하고, 책임져야 하는 상황에서 도피하여 자기 자신이 되지 못한 사람은 당연하게도 자기가 무엇을 원하는지 알지 못한다. 그렇기에 위기에서 그가 하는 행동반응은 “다른 사람이 하는 것을 하는 것(conformity)”과 “다른 사람이 원하는 것을 하는 것(submission to totalitarianism)”이 대표적이다(Yalom, 1980/ 2007). 물론 이러한 행동을 하는 사람도 선택과 책임을 인식한다. 다만 이들은 다른 사람들이 인정할 만한 행동을 ‘선택’하고, 다른 사람이 원하는 것을 하여 자기 행동에 ‘책임’을 지고자 한다. 그렇기에 다른 사람에게 집중한다. 이로써 우리는 위기의 불안 속에 선택과 책임을 지고 있는 듯 자신을 속일 수 있다. 그러나 사실은 자기 삶의 주인이 될 자유와 책임을 회피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자신의 소리를 잃어버린다. 만약 쾌락과 향락의 어두운 세계를 탐닉하는 싱클레어의 선택이 ‘다른 사람이 하는 것을 하는 것’이라면, 절제와 순결에 대한 동경으로 밝은 세계를 창조하고자 하는 싱클레어의 선택은 ‘다른 사람이 원하는 것을 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또한 자기 자신에 대한 절망의 한 표현이다. 이렇게 싱클레어는 ‘아무 것도 아닌 자기’를 포기하고, 이제 절대로 자기 자신이 되지 않겠다는 선언으로서 ‘다른 자기’가 되고자 한다. 그러나 이 절망은 죄의식의 괴로움으로부터 도망 왔기 때문에 죄의식이 없다. 즉, 이 세계는 책임에 집중하기에 부자유를 느끼지 못하고, 성실에 집착하기에 노예로서의 복종을 인식하지 못하며, 자유의지에 따른 선택이기에 비굴함과 죄의식이 없는 세계로 이루어져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선택은 크로머의 사건 이후, 밝은 세계로 도피했던 것과는 다른 점이 있다. 비록 ‘다른 인간’이 되고 싶었으나, 밝은 세계를 창조하고자 하는 것은 싱클레어가 자신의 분명한 의지와 책임을 자각한 선택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차이는 싱클레어를 각성으로 이끄는 계기가 된다. 각성은 인격의 핵심에서 갑자기 폭발적으로 발생하여 숨겨졌던 의미가 내면 안에서 분명한 의미로 드러나는 것이다. 싱클레어는 자기가 도취와 오욕 속에서, 취미와 상실감 속에서 살아 온 것과 마찬가지로 정반대의 것인 순결에 대한 욕망과 성스러움에 대한 동경으로 살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 즉 자신이 창조하려던 ‘밝은 세계’ 또한 자신의 내면의 소리를 들은 것이 아님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이처럼 절망이 절망 그대로인 상황에서는 내면의 소리가 들리지 않았으나, 절망을 극복하는 계기를 만나면 내면의 소리가 왜 그토록 중요했는지 깨닫게 된다. 자기 자신의 중심에서만큼은 자기를 포기하고 있지 않았음을 알게 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절망도 자기를 찾는 기회, 자기됨의 기회가 되는 것이다.

    이처럼 네 번째 위기는 싱클레어가 선택의 능동성을 통해 책임을 자각해가는 과정으로 볼 수 있다. 이전까지의 위기가 외부로부터의 수동적 위기를 통한 내면의 위기였다면, 절망의 위기는 자신의 선택에 의한 능동적 위기라 할 수 있다. 그렇기에 싱클레어가 크로머의 위기에서 느끼는 죄의식과 쾌락의 탐닉에 의한 절망의 죄의식은 그 내용이 다르다. 이를 정리하면 그림 4와 같다.

      >  피스토리우스와의 결별: ‘분리의 위기’와 ‘각성’

    마지막으로 다섯 번째 위기는 피스토리우스와의 결별이 주는 위기이다. 이 위기는 종교의식에 집착하는 피스토리우스에게 싱클레어가 자신의 반감을 솔직하게 표현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싱클레어는 시간이 흐르자 피스토리우스를 절대적인 지도자로 인정하는 것에 반대하는 감정이 생긴다. 그의 해석이 너무 유식하게 여겨졌으며, 그가 완전히 이해하고 있는 것은 자신의 일부일 뿐이라는 반발심이 생겼다. 신비주의에 대한 반감과 전통적인 종교 형식에 대한 반감 때문에 싱클레어는 ‘폭발적인 악의’를 가진 질문을 한다. 이러한 자신의 공격성에서 느껴지는 죄책감과 자신의 행동이 자신을 이끌어 준 이에 대한 ‘배신’과 ‘배은’이라고 여겨져 괴로워한다. 그러나 그 괴로움 속에서 새로운 각성이 일어난다. 타인의 시선과 관점, 혹은 내재화된 외부의 가치관이 아니라 자기 자신이 자기의 척도가 되어야 함을 깨닫는 것이다. 즉 싱클레어에게 “인간의 과제는 자기 자신의 운명을 발견하는 것이지 제멋대로 사는 것이 아니다. 자신의 운명을 완전히 받아들여 의연하게 살아내야만 하는 것이다. 그 밖의 모든 것은 유보된 일, 도피의 시도, 대중의 이상 속으로의 퇴보, 적응, 그리고 자기 자신의 내면에 대한 공포였다”라는 각성이 일어난다.

    자기 선택의 불안감을 뚫고 유일하다고 여겨지는 행동을 선택하는 사람을 존재적 인간15)이라 한다면, 싱클레어는 자기 자신을 찾고 자신 속에서 확고해지고, 자신의 길을 더듬어 전진하는 일이 스스로에게 주어져 있다는 각성을 통해 존재적 인간의 모습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싱클레어는 다섯 번째 위기인 분리의 위기를 스스로 초래하지만 혼란 속에서도 자기됨의 책임이 스스로에게 있다는 각성의 기회로 삼는다. 이로써 싱클레어에게 위기를 극복해나가는 과정은 위기를 없애는 것이 아니라 위기를 통과해가는 그 과정 자체가 되었다. 그 과정 속에 담긴 선택이, 존재하는 그 곳이 바로 자기가 될 때, 위기를 통해 ‘자기’의 의미를 성취할 수 있었다. 이렇게 위기는 우리의 시선을 세계에 대한 모든 외적 경험으로부터 전환하여 자신에게로 향하게 하며 자신의 삶에 대한 고유한 책임을 져야한다는 통찰을 하게 한다.

    또한 자기됨이 자신이 존재하고자 하는 그 곳에서 지금 무엇인 바가 아니라 그가 되기로 결심하고 되려고 노력하는 바에 의해 형성된다고 할 때, 이는 타인들과의 관계 속에서 드러나며 그렇기에 자기 자신을 찾는 일과 다른 사람들과 올바른 관계를 맺는 일은 동떨어진 별개의 일이 아니다. 진정한 자기를 찾는 것은 단순히 자신의 욕망을 찾는 것이 아니라 자기 삶의 규범을 만들어 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즉, 위기에서 느껴지는 두려움과 절망에 결정적으로 맞서고 의식적으로 받아들이면서 내적으로 참고 극복할 때 최후에 절대적으로 의지할 곳을 스스로 자신의 내면에서 발견할 수 있으며, 그럴 때 비로소 더 이상 외부의 어떤 것도 위협이 되지 않는 견고함을 갖추게 되는 것이다.

    5)대상(양육자)과의 절대적 애착이 영아의 생존에 필수적이며, 양육자 또한 심리적으로 영아에게 절대적으로 의존하는 관계에 있음을 의미하는 용어이다. Mahler, Pine, & Bergman(1975)이 정리한 분리개별화 과정에 속하는 단계로서, 충분한 공생을 경험한 후에야 인간은 대상으로부터 분리될 수 있다(신정인,2011재인용). 대상은 인간 심리 내부에서 작용하는 주관적 관계인 표상의 세계와 외부에서 관찰할 수 있는 실제 관계의 두 차원으로 나누어 살펴볼 수 있는데, 생애 최초에 만나게 되는 환경인 대상 -양육자 관계-과 나누는 관계는 내면화되고 그 결과로 표상의 세계가 형성된다. 구체적으로 대상은 외적 대상과 내적 대상으로 나누는데, 정서적 에너지가 투여된 사람이나 장소, 사물이 외적 대상이며, 사람이나 장소, 사물과 관련된 개념이나 환상, 기억이 내적 대상이 된다(Hamilton,1988/2007)  6)Bollnow(1982/2006)에 의하면 “우리들은 ‘흠 없는 세계(heileWelt)’가 하나의 환상이라는 사실을 무섭게 경험하고 있으며 이와 정반대되는 방향에서는 우리들의 세계가 어둡고 무시무시하며,우리들의 삶이 항상 위험으로부터 위협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무섭도록 경험하게 된다”고 한다. 그리고 “어린이 세계 속에서도 일찍부터 어두움과 낯선 것에 대한 공포가 찾아온다”고 설명한다.  7)“우리가 ‘나’라는 자각을 가지고 주변에 있는 것들을 관찰하면 대상을 나의 기준으로 굴절시키고 객관화한다. 이것은 ‘나’와 나의 대상과의 절대적인 분리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 하더라도 무엇인가를 관찰하기 위해 다른 것으로부터 대상만을 따로 떼어 고립시키거나 유기적 통일의 감정과는 무관하게 관찰의 도식 속에 대상을 짜맞춘다”(Buber,1959/2000).  8)공원에서 만난 소녀로 싱클레어가 붙인 이름이다. 싱클레어가 발견한 ‘밝은 세계의 표상’이다.  9)알폰스 벡은 싱클레어의 기숙 학교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학생으로 싱클레어에 대해 늘 짓궂고 점잖은 티를 낸다. 그러나 싱클레어는 그에게 반감이 없다. 또한 주먹이 세다고 알려져 있으며, 기숙사 사감 선생까지도 제압한다는 소문의 주인공이었다. 싱클레어는 만취해서 알폰스 벡에게 부축 받아 집으로 들어온 다음날부터 자신을 비난한다. 저속한 대화와 술을 마시는 것이 엄하게 금지되어 있음을 알면서도 알폰스 벡에게 ‘천재적인 놈’이라는 칭찬을 받았을 때, 연장자에게 인정을 받았다는 것과 무언가 중요시 되었다는 것 때문에 살아 있는 감정과 혁명적인 기분을 느꼈기 때문이다. 그리고 자신의 욕망을 적극적으로 실현시킨 것을 악(惡)으로 여기는 죄의식을 갖는다.  10)프란츠 크로머는 양복점 주인이자 술주정꾼의 아들이다. 라틴어 학교 학생인 싱클레어는 프란츠 크로머가 자신을 좋아하지 않을 것이며, 자신의 침묵이 크로머를 성나게 할 것 같은 두려움과 자신을 거들떠보지 않을 것 같은 불안한 순간을 모면하기 위해 도둑질이야기를 꾸며낸다. 이 ‘악의 없는 허풍’을 빌미로 크로머는 싱클레어에게 돈을 요구하고, 크로머의 협박에 시달리던 싱클레어는 어머니의 방에 있는 자신의 저금통에서 돈을 훔쳐 크로머에게 갖다 바치며 입막음을 한다.  11)상담에서는 하나의 대상이나 상황에 대해 동시에 일어나는 서로 다른 감정을 이해하는 것이 발달과 적응에 있어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유경, 민경환,2000).  12)“동일성은 자신과의 무해한 관계가 아니라 자신에게 얽매임이다. 이것은 자신에게 몰두하기 위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시작은 자기 자신에 의해 짓눌린다. 이것은 꿈의 현재가 아니라 존재의 현재이다. 그가 진 책임은 곧장 자유를 제한한다. 여기에 커다란 역설이 있다. 자유로운 존재이면서도 자신에 대한 책임으로 인해 더 이상 자유롭지 못하다는 역설이다”(Levinas,1947/1966).  13)Kierkegaard(1849/2007)는 절망하는 사람이 무슨 일에 절망했다는 것은 사실은 자기 자신에 대해 절망한 것이며 그래서 자기 자신으로부터 탈피하고자 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무슨 일에 대해 절망한다’는 아직 절망이 아니며 진정한 절망은 자기 자신을 녹여 없앨 수 없다는 사실에 절망한다는 것이다. 자기 자신으로부터 탈피하여 그가 스스로 발견한 자기이고자 하지만 그가 바라지 않는 자기가 되도록 강요당한다는 것이 그의 고뇌이고, 절망이라는 것이다.  14)Kierkegaard(1849/2007)는 자기 자신에게 절망하여 자기가 되지 않으려고 하는 사람이 시간이 흘러 밖에서 구원이 오면, 그가 그만둔 데서 다시 절망을 시작한다고 이야기한다. 그리고 이때의 절망은 ‘자기는 이제 절대로 나 자신이 되지 않겠다’고 하는 것이다. 인생에 대해 어느 정도 분별을 알게 되어 다른 사람들의 처세술을 흉내내기에 이르고, 그렇게 함으로써 생활해나간다. 이로써 ‘다른 인간’이 되고 싶어 하는 것이다. 이때의 절망은 의식적인 깨달음에 의해 자신의 약함과 자신의 수동성에 절망한 것이고, 자기주장의 절망에 대한 반대 행위이다.  15)Buber의 개념으로 존재(being)에 대비되는 것이 ‘위장(seeming)’인데 위장적 인간은 우선적으로 타자들이 자기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에 관심을 두면서, 자신을 ‘자발적 사람’ 또는 ‘솔직한 사람’으로 보이게끔 계산된 모습을 보여 준다. 이러한 위장은 인간과 인간 사이의 삶의 진실성, 즉 인간 실존의 진실성을 파괴한다(강선보,1996).

    싱클레어의 ‘만남’을 통한 상담관계의 천착

    『데미안』에 나타난 만남 관계를 상담과정에서 나타나는 상담자와 내담자 간의 상담관계와 비교할 때 어떤 특성이 있는지를 살펴보고 싱클레어가 한 인간으로 성장하기 위해 만남의 관계가 필연적이었듯이 상담자는 싱클레어에 대비되는 내담자를 만날 때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성찰해보고자 한다.

    Rogers(1961/2009)는 자신의 변화에 도움을 주었다고 생각하는 상담요인으로 내담자는 ‘상담자에게 신뢰를 느끼고 상담자로부터 이해받고 있다고 느끼며, 스스로 선택하고 결정했다는 독립심을 느낄 때’를 꼽는다고 밝히고 있다. 또한 진솔함이란 자기 안에 존재하는 다양한 감정과 태도를 말과 행동으로 기꺼이 그렇게 되기를 바라고 표현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한다.

    싱클레어는 스스로를 쓸데없는 환상, 말도 안 되는 생각, 엉터리 같은 사상을 가진 절망적인 사람이라고 여기고 있었다. 그런 싱클레어가 피스토리우스와의 만남에 대해 “나 자신에 대한 존경과 용기를, 즉 자존심을 불어 넣었다. 내 말과 환상 속에서 언제나 가치 있는 무엇을 발견해주고, 그것을 진지하게 다루고, 심각하게 토론함으로써 모범을 보여주었다”고 이야기 한다. 이는 데미안과 에바부인도 마찬가지였다. 어두운 세계, 성적(性的) 욕망의 죄책감으로 괴로워하던 싱클레어에게 데미안은 “생명의 근원을 이루는 성적 생활을 어두운 세계로 몰아 묵살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말하며, 답을 구하는 싱클레어에게 데미안은 답보다는 질문을, 해결보다는 문제제기를 한다. 타인의 답이 결코 나의 답이 될 수 없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에바부인도 역시 싱클레어가 오래전부터 수치심을 느끼던 성적 감정을 솔직하고 편견 없이 들어주었다. 어떠한 가치관으로 판단하거나 두려워하지 않았다.

    내담자는 자신의 불편한 감정을 수치스럽게 여기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것을 내보일 경우에 받을 상처에 대해 방어를 한다. 상담자로서 내담자의 감정과 분리하여 자신의 감정을 소유하면서 자신을 잃을 것 같은 두려움 없이 내담자를 만나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자신이 부끄럽다고 생각하는 문제는, 사실은 문제를 부끄러워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를 부끄러워하는 것이다. 그리고 자기를 부끄러워한다는 것은 자신을 타인의 시선으로 바라보며 비교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기에 ‘문제’를 성실하고 다정하며 진지하게 대하는 것을 체험한다는 것은, 바꿔 말하면 자신을 대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바로 싱클레어가 체험하고 있는 것이 그것이다. 그리고 부끄러움 없이 자신을 바라보는 것은 가르쳐서 되는 것이 아니라, ‘대(對)함’을 받을 때에 체험으로 이해되는 것이다.

    Yalom(2007/2008)은 상담 장면에서 상담자는 자신이 누구를 위해서 행동하고 있는지 항상 질문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상담관계에서는 항상 사랑과 자기도취, 이상화와 경멸, 인식될 수 없는 희망, 깊이를 헤아릴 수 없는 공포 등의 양면이 있게 마련이며, 비합리성은 내담자와 상담자 모두에게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상담자는 자신이 모르는 것에 대해서 아는 척하지 않고, 실존적인 딜레마가 내담자뿐만 아니라 상담자인 자신에게도 들이닥친다는 사실을 부정하지 않고, 질문에 대해서 답하는 것을 거절하지 않고, 상담자의 역할 뒤에 숨지 않으며, 자신의 인간적인 속성과 상처 받기 쉬운 점들을 숨기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고 이야기 한다. 이를 바탕으로 데미안, 피스토리우스, 에바부인의 태도를 살펴보면, 이들은 모두 자신의 감정과 밖으로의 표현을 일치시키고 있으며, 싱클레어에게 문제를 해결해주거나 답을 주는 사람이 아닌 새로운 시각을 제시해주는 사람으로 존재한다. 또한 자신들도 항상 길을 모색하는 사람일 뿐 완성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실수가 있고 한계가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솔직하게 싱클레어에게 드러내면서 동행자의 역할을 자처한다. 이를 통해 자신이 소망하고 있는 삶을 실현하기 위해 애쓰는 사람들과 현실적인 상황에서는 자기다운 삶이 인정되지 못해 안타까워하는 사람들을 내담자라고 할 때 눈앞에 보이는 문제나 증상의 해결이나 제거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인간 본성의 긍정적인 핵심을 탐색하고 격려해 가는 과정이 바로 상담임(이혜성, 2010)을 확인할 수 있다.

    문학상담의 의의와 가치

    우리는 유아기부터 청소년기, 성인기까지 많은 순간 스스로에 대한 질문을 할 겨를도 없이 사회의 시선과 타인의 기준에 맞추어 자신의 본능과 욕구를 감춘 채 살아간다. 그래서 우리들은 때로 우리 자신이 절망하고 있는지 조차 모르고 지나가기도 한다. 그러나 싱클레어처럼 예민한 감수성을 가진 이들에게 자신의 내면과 외면의 부조화는 폭력적인 고통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밝은 세계의 기준에 맞추어 사는 우리는 그 기준에 도달하지 못한 사람들에 대한 이해를 등한시 한다. 그러는 사이 많은 싱클레어는 자기 스스로를 패배자나 탈락자로 생각하게 된다. 그렇다면 그들에게 ‘있는 그대로의 네가 되라’라는 주문은 오히려 또 하나의 절망은 아닐까?

    상담에 오는 많은 내담자들은 다양한 삶의 위기를 경험하고, 때로는 절망하고 때로는 분노하여 상담자를 찾는다. 그러나 실제로 내담자들은 상담자가 위기를 해결해 주기를 바라고 오는 것이 아니라 ‘내가 왜 그랬을까?’, ‘내게 무슨 문제가 있는 것일까?’ 하는 질문, ‘나 자신은 누구인가?’라는 질문의 답을 찾기 위해 상담에 오는 것이다. 그렇기에 상담자는 상담자 자신에게 물어보아야 한다. 내담자에게 위기가, 절망이, 분노가 그토록 고통스러운 이유는 내담자가 이미 있는 힘껏 ‘존재’하고 있기 때문임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는가? 이 점을 가슴 깊이 공감할 때에만 상담자의 초점이 문제나 증상에서 ‘사람’으로 바뀔 것이기 때문이다.

      >  시간 재경험의 의미

    문학상담은 일차적으로는 상담자와 내담자의 만남이며, 작가와 내담자가 만나는 것이고, 작품 속의 주인공과 내담자가 만나는 것인 동시에 결과적으로는 시간을 거슬러 과거의 자신과 만나는 것이다. Bollnow(1971/1999)가 지적하듯이, 인간의 삶은 지속적이고 계속 발전하는 과거와의 대화 속에서 발전하는 것이다. 이는 과거란 인간이 기억 속에 간직하거나 잊어버릴 수 있는 확고한 상태가 아니라 오히려 삶 자체와 함께 끊임없이 발전하는 속에서 파악되는 삶의 한 부분이기에 과거와 올바른 관계를 맺는다는 것은 과거의 삶을 현재의 삶 안에 끊임없이 의미 있게 변형시켜 집어넣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이러한 과정이 현재도 변화시킨다. 즉 “현재란 의식에 직접 주어지는 가까운 과거와 미래의 지평의식을 배경으로 부단히 계속되는 조정의 역동적인 장(場)”(김영민, 1994)으로서 경험의 모든 순간들에는 단순히 지금 존재하고 있는 것에 대한 의식만이 아니라 지나간 것은 물론이고 도래할 것까지 포함하고 있다. 그렇기에 왜곡된 과거는 현재의 압력과 영향 아래서 재해석될 수 있으며, 굴절된 현재는 회상을 통한 망각과 기억의 대립 속에 과거를 복원시켜 보다 깊은 새로운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

    문학상담은 이처럼 과거나 현재를 고정되고 불변하는 어떤 실체로 보는 것이 아니라 시간이 수없이 교차하며 중층적으로 구성되는 역동적인 지평으로 전제한다. 그렇기에 낯익은 자기와의 ‘거리두기’를 일으켜 내담자의 서사(敍事)를 다층적으로 구성하고자 한다. 그 과정은 읽고, 쓰고, 말하고, 듣는 언어활동으로 이루어진다. 문학상담에서는 비단 기존 작가의 작품만을 다루는 것이 아니라 작가의 작품을 모방하기도 하고, 베껴 쓰기도 하며 자신의 창작품을 다루기도 한다. 이를 통해 자신을 작가로 상정하는가 하면 타인의 작품에 담긴 작가의 심정과 관점, 언어에 부과한 의미를 해석하는 과정을 거치고, 상담자를 비롯한 타인에게 자신의 작품을 읽어주는 과정이 순환하며 이루어진다. 그 과정에서 자기 작품에 대한 타인의 해석, 타인의 작품에 대한 자신의 해석의 차이를 통해 자신의 선입견과 가치관이 자연스럽게 드러나며 이를 통해 자신과 세계의 관계 맺는 방식을 통찰한다. 또한 상담자를 비롯한 타인의 주의 깊은 들어줌 속에 자신의 작품이나 작가의 작품을 읽어줄 때, 감정이 이입되며 환기되고 표현된다. 그리고 고쳐 쓰는 과정은 창작물을 완성하는 성취감과 더불어 인식의 지평이 확대되고 그 자체로 삶의 해석이 변화하는 체험이 된다.

    실제 연구자도 데미안을 통해 만난 싱클레어로 인해 연구자의 과거와 내면에 숨은 감정들을 검토할 수밖에 없었다. 연구과정 내내 싱클레어를 향해 심판자이면서 처벌자였던 연구자의 시선과, 기계적으로 이론을 대입하는 연구자의 태도가 드러났음에도 그 시선을 쉽사리 거둘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내면에 감춰진 연구자의 여림을 발견하고, 여림이 약함이 아니라 사실은 강함이었음을 마음 깊이 수용하는 과정을 통해, 싱클레어를 보는 시선과 태도를 전환, 변경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는 사실 연구자 본인을 바라보는 시선과 태도를 전환, 변경한 것이다. 그리고 이처럼 연구자 본인의 태도가 변경되자 싱클레어와 자신을 구별할 수 있었고 이를 바탕으로 싱클레어를 거듭 읽어낼 수 있었다.

    이처럼 문학상담은 쓰고 읽고 듣고 말하는 문학활동을 통해 자신을 드러내고, 낯익던 자기로부터 낯선 자기를 발견하여 자기를 거듭 읽는 과정이다. 즉, 문학상담은 망각과 기억의 편린을 찾아 과거로 돌아가는 동시에 과거를 바로잡으며, 과거에 느끼지 못했던, 알지 못했던 감정과 사실을 발견하여 현재를 재구성하면서 지금을 새롭게 해석할 힘을 얻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문학 상담은 과거를 재경험하게 하는 ‘시간 경험’의 의미가 있다.

      >  감정 재경험의 의미

    Rogers(1961/2009)에 의하면 심리적 부적응을 경험하게 되는 것은 경험과 자기(self)사이의 부조화, 혹은 괴리 때문이다. 인간은 누구나 현실을 달리 지각하고 이런 주관적인 경험이 행동을 지배한다. 건강한 자아의식을 가진 사람은 자신의 경험을 자기만의 경험으로서 정확히 상징화하거나 내재화하여 지나친 불안감 없이 자신의 감정을 있는 그대로 느낄 수 있고, 외부 현실보다는 자신의 내부적 경험으로부터 감정이 발생했다는 사실을 이해한다. 또한 감정을 받아들이는 것과 감정에 대해서 무엇을 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것은 구별되는 것임을 지각하며, 감정을 받아들이는 것이 결국 자기를 받아들이는 것임을 이해하게 된다(Schultz, 1977/2007). 즉, 자신에게 불편한 감정을 억압하거나 은폐시키는 것이 아니라 감정 자체를 있는 그대로 수용하는 것이다.

    그러나 오랜 시간 동안 억압하고 은폐되어 있던 감정은 쉽게 드러나지 않는다. 오히려 감정을 감추는데 익숙해진 내담자들의 경우 실제로 어떤 상황에서 자신의 느낌이나 기분을 이야기 하지 못하는 경우가 흔하며 나아가 감정을 드러내는 것을 수치스럽게 여기는 경우 또한 허다하다.

    그런데 문학상담은 작품과 자신 사이의 거리로 인해 낯익은 자신으로부터 ‘거리두기’가 일어나 감정을 표출하는데 좀 더 용이해진다. 일단 자신의 작품일 경우, 글을 쓰는 과정에서 여러 번 수정과 퇴고를 거쳤기에 말을 나눌 때보다 실수에 대한 부담이 적고, 작가의 작품일 경우에는 자기의 이야기가 아니라고 여기기에 좀 더 편안하고 안전하며 분명하게 자신의 뜻을 전달할 수 있다. 그리고 작품을 타인에게 읽어주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감정 이입은 혼자 읽는 과정에서는 경험할 수 없는 특별한 체험이 된다. 자신이 쓴 글이든 작가의 작품이든 그것을 소리 내어 읽는 과정은 들어주는 사람의 존재를 얼마나 절실히 바라고 있었는지를 깨닫는 과정이자, 글을 쓸 때는 환기되지 않았던 감정이 올라오는 체험이다. 또한, 타인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은 결과적으로는 자기 이야기를 자기에게 들려주는 체험으로의 전환이며 이제까지 아무도 들려주지 않았던 자기 이야기를 스스로 듣는 경험을 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때, 상담자가 내담자의 일차적인 정서경험 -슬픔, 분노, 즐거움- 에 주의를 기울이고 이를 상징화하도록 인도하면, 상징화된 정서들을 따라 내담자 자신의 중요한 욕구와 목표, 관심사에 접근할 수 있게 되고, 궁극적으로 새로운 의미가 만들어지게 된다.

    이처럼 읽고, 쓰고, 듣고, 말하는 문학상담은 내담자가 자신의 감정, 생각, 느낌을 환기하고 표현, 분출하면서 자신의 감정과 문제를 명확하고 일관성 있게 인식하도록 돕고자 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내담자는 자신의 감정을 수용하고 관점을 변화시켜 자신의 경험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고 행동을 선택할 수 있는 기반을 조성할 수 있다. 그리고 이 과정을 통해 자신이 누구인지, 자신만의 목소리를 찾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Pennebaker, 2004/2007). 자신이 믿고 있는 선입견을 드러내서 수용하고 인정하여 그 영향력을 줄이고, 자신 안에 억압된 것을 상기하여 자기 자신의 모습과 조우하게 될 때 자기의식도 변화하게 된다. 이렇게 하여 자신의 목소리를 찾는 것은 자기 긍정성의 초석이 되고 긍정적인 자기 이해는 새로운 통찰로 이어질 수 있다(이봉희, 2006).

    자신을 ‘다름’으로 읽었던 싱클레어의 불안, 크로머의 협박에 떨며 무서워했던 공포, 데미안을 처음 봤을 때의 설레임, 데미안이 처음 그에게 같이 갈 것을 제안했을 때의 기쁨, 새로운 가치관의 충돌을 겪으며 느끼는 혼란, 자기 자신을 비난하고 죄의식에 괴로워하는 절망, 깨달음을 얻을 때의 놀람과 경이, 피스토리우스와의 결별이 된 심술궂은 말들에 대한 반성, 에바부인에게서 느끼는 평안과 혼란 등에 우리 자신의 감정을 대입하면서 읽어낸다. 그리하여 싱클레어의 내면에 있는 감정들에 내재된 또 다른 의미를 찾아내게 된다. 싱클레어의 공포에 내재된 죄의식을 읽어내고, 죄의식의 바탕에 있는 불안을 읽어내고, 절망에 숨어있는 책임감을 읽어내며, 안식이 되지 못한 도피의 불안과 타인을 경멸하는 것에 담긴 자기경멸과 완벽함에 대한 환상 등을 읽어내는 것이 그것이다. 그리고 자신의 소리라고 믿고 있던 내재화된 권위적인 외부의 가치관을 탐색하면서, 사실은 그것이 자신이 허용한 것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이로써 죄책감의 다른 이름이 복종으로의 도피였음도 알게 된다.

    또한 싱클레어나 등장인물과의 차이를 통해 우리가 놓치고 살았던 것들과 쥐고 있는 것들을 깨닫게 된다. 내재화된 외부의 권위적인 가치관을 얼마나 수용하고 살았는지, 혹은 얼마나 온 몸으로 거부하려고 노력했는지, 그럼에도 죄책감을 양심이라고 착각하고 사는 자신도 발견한다. 더 좋다고 한 선택이 사실은 더 큰 불안을 피하기 위해 선택한 작은 불안일 뿐임을 깨닫기도 한다. 그리고 진정 불안했던 것이 무엇이었는지 스스로에게 물을 수 있다. 또한 타인의 시선으로 자기 자신을 검열하고 평가하며 비난하는 속에 자라난 수치심이 얼마나 많은 창조력을 희생시켰는지도 바라본다. 이를 통해 자신이 구성한 세계를 확인하는 과정을 거치고, 이 세계가 오로지 자신이 구축한 것임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이는 우리가 구성한 사건의 의미에는 우리의 감정이 지배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었음을 확인하는 과정이다. 그리고 돌보지 않았던 감정이 우리의 의식적인 생활 곳곳에 얼마나 영향을 미치는지 알게 된다. 그리고 이제 자기를 통합하고 이해하는 것은 자신의 정서적 경험을 분별하고 상징화하고 소유하고 명확히 표현하며, 허락하고 수용하는 것과 더불어 동일한 사람이나 상황에 대해 경험하는 각기 다른, 혹은 모순되는 감정을 통합하는 것을 포함한다는 것을 체험을 통해 배운다. 또한 감정을 받아들이는 것과 감정에 대해서 무엇을 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것은 구별되는 것임을 지각하며, 감정을 받아들이는 것이 결국 자기를 받아들이는 것임을 이해하고 자신에게 불편한 감정을 억압하거나 은폐시키는 것이 아니라 감정 자체를 있는 그대로 수용하게 된다.

    이처럼, 문학상담 내에서 싱클레어를 향한 비난, 격려, 동정, 찬탄, 시샘이 의미하는 바가 결국 무엇인지를 숙고하고, 자기의미로 읽어내는 작업의 과정 그 자체가 자신의 감정으로부터 자신을 자유롭게 하는 체험이 된다.

      >  실존적 인간 이해의 의미

    우리는 타인과 더불어 살아간다. 타인은 내가 보고 느끼고 관계를 형성할 때 나에게 존재하는 것이며, 그럴 때 타인은 은밀하게 자신을 드러내어 보인다. 그래서 우리는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자신의 존재를 수용하고 책임지며 자신의 행위를 떠맡으면서 현재를 사는 것이다. 또한 우리는 우리가 물려받은 재능과 약점을 비롯한 여러 특성들이 고스란히 녹아있는 의미 있는 집합체이다. 그렇기에 우리 내면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이에 따를 때 나는 누구인가를 알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은 또한 자신을 판단하고 자신을 변화시키려고 노력하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우리 내면에 이미 주어진 형상이 되도록, 우리 안에 가장 중요한 것이 스스로 드러나도록 살아가는 일이다.

    그러나 우리가 타인과 함께 살면서도 자기 자신만이 온전히 자기 자신을 이해할 수 있다는 사실이 우리를 고독하게 한다. 그리하여 독자적인 존재로서의 우리는 우리가 겪는 고독을 피하고자 자신을 타자의 기대의 총체로 경험하기도 한다. 그렇게 자신을 잃어버리는 순간이 바로 위기의 순간이다. 그러나 우리가 위기를 통해 우리의 시선을 세계에 대한 모든 외적 경험으로부터 전환하여 자신에게로 향하게 된다면, 위기는 자기 삶의 고유한 책임을 자각하는 가능성의 순간이 되는 것이다. 또한 위기는 이제껏 자신이 맺고 있던 관계의 본질이 조망되는 순간이다. 위기는 관계를 맺는 우리 자신의 태도가 어떠한지를 드러내고 성찰하게 하는 사건이다. 그래서 위기는 일상성에 가려 보이지 않던 이전까지 맺고 있던 관계의 자세를 변경하게 하며 삶을 진보시켜 나갈 수 있게 한다. 그런 관점에서 위기는 다른 한 편으로는 새로운 출발의 가능성이다. 이처럼 위기에서의 실존적 고통을 해결하는 것은 두렵고 힘들지만 자신에게 몰두하는 것이며, 우리에게 부과된 자기 자신의 삶의 의미를 찾는 대단한 기회가 된다.

    그러나 당면한 위기 상황을 호소하는 내담자와 위기의 의미를 살피는 과정은 쉽지 않다. 또한 위기의 의미를 살피는 것이 내담자의 요구가 아닐 수도 있다. 때로는 위기 상황을 급박하게 해결하는 것이 상담의 주요과제가 되어야 할 경우도 있다. 그렇다하더라도 상담자가 위기의 다층적 의미를 이해한다면, 위기 상황에 갇혀 보지 못하는 내담자 스스로의 가능성을 상상해보도록 도울 수 있으며, 이를 통해 내담자는 자신의 문제를 폭넓게 이해하게 될 수 있음 또한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이미 상담자로서 위기의 다층적 의미를 이해하는 과정은 여러 가지 수련과정을 통해 이루어지고 있으나 본고에서 특히 문학작품을 통해 이를 훈련하고자 하는 이유는 문학작품이 우리를 사유하게 하는 힘 때문이다. 문학작품은 우리가 인생에서 겪고 있는 선악에 대한 질문과 진리나 영혼의 문제, 신에 대한 존재와 인간의 믿음, 가치의 판단과 선택 등의 철학적 문제에 대한 담론 앞에 우리를 세운다. 이러한 철학적 사유의 과정에서 우리는 우리가 바라보는 세상이 어떤 것이냐에 따라 우리의 지향과 태도가 결정되는 것임을 깨닫게 되는데, 이는 문학이 인간을 총체적으로 다루고 있는 까닭이다. 문학은 인간의 한 측면만을 붙잡고 씨름함으로써, 인간을 피상적이고 단편적으로 파악할지도 모를 단점을 막고 인간을 총체적으로 보게 하여 억지나 불균형을 교정시키고 편협한 인간관을 수정케 한다(김현, 1976).

    상담 역시 마찬가지 과정이다. 상담자나 내담자가 모든 것을 알고 있는 것이 아니라, 드러난 것을 통해 숨겨진 것과 감추고 있는 것을 더듬어 찾아가려는 노력과 인내 속에 가능성을 열고 서로를 만나는 것이다. 상담은 표현된 행위의 이면에 있는 내담자가 처한 상황과 지나온 과거, 미래의 소망, 그리고 숨겨진 의도 등을 찾아 내담자가 자기의 자기됨을 이해하는 과정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상담자는 내담자가 자신의 상황과 제약에 갇혀 스스로의 가능성을 보지 못할 때, 내담자의 입장을 충분히 공감하는 가운데 어렵더라도 가능성을 상상하도록 돕고자 한다. 이는 내담자의 삶 전체를 바라보고 이해하는 것에서 가능한 일이며, 문제만을 따로 분리해서는 가능하지 않을 것이다. ‘문제와 갈등’은 ‘자유와 선택’과 함께 있다. 그리고 그것이 우리를 불안하게 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특정 상황의 해결이나 국면의 전환으로 극복하려고 하는 것은 근본적인 해결이 될 수 없다.

    자유로운 존재인 나는 매 순간 어떤 존재로 되어간다. 자기가 되기 위해 매 순간 선택을 하며 선택을 하는 모든 순간에 미래로 자신을 던져 형성해 가는 것이다. 이것은 어느 한 순간에 완성된 형태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가능성의 존재로 끊임없이 변화하는 자기인 것이다. 자신이 자기의 척도가 되어 자기 선택의 불안감을 뚫고 유일하다고 여겨지는 행동을 선택하며 자기 전 존재로 삶에 응답할 때, 더 좋은 선택도 없고 더 나쁜 선택도 없다. 그렇게 불안을 통과해 가기에 더 이상 불안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자신의 전 존재로 유일하게 여겨지는 것을 선택하기 때문이다. 자유는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할 자유가 아니다. 오로지 이것이다 하는 것을 선택할 자유로 자유를 삼는 것이다.

      >  앎이 삶이 되는 체험 이해의 의미

    말은 했으되 전달은 되지 않거나, 전달은 되었으되 말은 하지 않은 식의 의사소통 방식은 상호 오해를 일으키기 쉽다. 특히 한국인의 의사소통의 특징은 간결하지 않고, 전달하려는 말의 의미의 보편성이 낮으며, 어느 상황, 어떤 관계에서 하는가에 따라 의미가 달라지는 맥락적 특성이 높다. 이는 상대방의 입장과 심정을 배려한 대답을 하기 위해 자신의 심정을 그대로 표현하지 않고 상대방에 맞추어서 표현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대화의 표면과 속뜻이 다른 경우가 많기 때문에 표면을 듣고 통찰해서 그 내면의 뜻을 알아들어야 하는 고맥락적·이중적 의사소통의 특성을 보인다(김장이, 2006).

    그런데 문학상담의 쓰기과정은 수정과 퇴고가 가능하기 때문에 제한이나 검열 없이 솔직하고 직접적인 자기표현이 가능하며, 삶의 현장에서 자신을 희생하지 않으면서 의사표현을 하도록 연습하는 장이 될 수 있다. 추론에 의해 짐작으로 상호 소통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심정이나 상황을 명료하게 표현하고 액면 그대로 전달하는 훈련의 장이 될 수 있는 것이다. 또한 문학 상담에서 글은 존재의 소리를 표현하는 매개체이지 지식을 위한 수단이 아니다. 글이 무엇을 지시하는 것이 아니라 글이 나를 보여주는 것이 된다. 그렇기에 고쳐쓰기의 과정은 글을 고쳐 쓰는 것이 결국엔 자신을 새롭게 하는 과정으로 체험된다. 그 과정에서 자신의 다양한 가치와 결정, 양심 등을 자연스럽게 드러내며 체험함으로써 얻게 된 ‘앎’은 자신의 ‘삶’이 되는 경험이다. 이는 ‘앎’의 지평과 차원이 달라지는 경험이다.

    어린 시절의 가치 판단의 기준은 자기 생활 속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 사람이 자기에 대해 보여주는 친근한 반응, 또는 소원한 반응에 기초하여 이루어진다. 즉 감각에 의존하는 것이다. 부모에게 완전하게 의존하여 생활하는 아동에게는 선악의 구별이 때로는 어머니의 표정만으로도 충분하다. 어린 시절에 선(善)은 그것을 하면 칭찬 받는 것으로, 악(惡)은 그것을 하면 눈살을 찌푸리거나 벌을 주거나 하는 것으로 선과 악이 구별된다(Fromm, 1947/1981). 바로 이 점 때문에, 이러한 정서적 압력이 존재한다는 이유로 인해 실제로 우리가 성장하여 어른이 되어서도 선이라고 판단한 것이 자기에게 있어서의 선인지 아니면 권위에 있어서의 선인지 판별할 수 없는 혼란을 겪게 되는 것이다. 실제로, 혹시 거부당하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과 남에게 인정을 받고 싶다는 욕구는 윤리적 판단에 있어서 가장 강력한 동기가 된다. 그리고 이것은 자신이 아닌 남들의 시선, 스스로의 성취감이 아닌 사회적 성취감에 따라 인생을 저울질하는 사고방식(이혜성, 2010)으로 우리를 불편하게 지배한다. 그렇기에 이때의 앎은 나의 삶을 평가하고 재단하는 잣대일 뿐 삶이 되지 못한다.

    싱클레어가 자신을 ‘다름’ 속에서 인식할 때, 다시 말해 밝음과 어둠의 두 세계를 다름으로 파악하고자 했을 때, 앎은 오히려 불안으로 존재하였다. 싱클레어가 타락 속에 자신이 되고자 하지 않았을 때나 극기 속에 ‘다른 사람’이 되고자 했을 때 앎은 오히려 절망이었다. 그러나 자신의 내면에 있는 다양한 감정들과 직면하고 스스로가 되고자 했을 때의 앎은 삶이 되었다. 스스로의 규율을 가졌으며, 타인과 자유로운 의사소통을 할 수 있었다. 이때의 앎은 스스로를 살아내는 힘이 되는 것이다.

    유홍준(1993)은 “인간은 아는 만큼 느낄 뿐이며, 느낀 만큼 보인다”고 말한다. 이는 이해란 앎의 한계를 극복하려는 주체의 적극적 노력이 절실히 필요하다는 의미이다. 싱클레어를 객관화해서 관찰하고 나의 인식의 도식에 맞춰 평가하고자 할 때 싱클레어를 통해 안 것을 우리는 절대로 삶으로 만들지 못한다. 앎 이전에 관계 맺음이 선행되어야 하며 이 행위가 새로운 지평을 연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앎의 목적을 새롭게 생각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애정 없는 타자를 알 수 있다고 믿는 것은 또 하나의 오만함이다. 타인은 내가 보고 느끼고 관계를 형성할 때 나에게 존재하는 것이며, 그럴 때 타인은 은밀하게 자신을 드러내어 보이기 때문이다. 즉 드러난 것을 통해 숨겨진 것과 감추고 있는 것을 더듬어 찾아가려는 노력과 인내 속에 가능성을 열고 타인을 만날 때 우리는 ‘그’뿐 아니라 ‘나’를 만날 수 있다. 싱클레어를 아는 것이 내 삶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싱클레어를 통해 나를 알게 되는 순간이다. 그리고 문학상담은 바로 이 순간을 치열하게 기다리는 것이다. 앎이 삶이 되는 체험의 순간을 만나 자신의 감정과 사고를 파악하고 자신의 직관을 믿으며 적극적인 삶을 사는 귀중한 순간을 성취하고자 하는 것이다.

    결론 및 논의

    본 연구는 상담자가 내담자가 겪는 위기를 그의 성장 과정 전체를 조망하는 가운데 파악할 수 있다면, 그 위기의 의미와 영향을 새롭게 해석할 수 있을 것이라는 전제하에『데미안』에 나타난 위기, 절망, 극복의 과정을 살펴보았다. 그리고 상담자가 내담자를 이해하는 과정에 천착하여『데미안』에 나타난 싱클레어의 세계 경험을 분석하였다. 또한 주인공의 성장과정에 영향을 미친 만남관계를 통해 상담관계에 대한 이해를 도모하고자 하였다.

    이를 통해 우리는 인간이 살아가면서 겪게 되는 위기와 절망이 사실은 자신의 실존의 한계와 제약을 확인하는 계기이며, 위기는 인간의 성장과 자기됨에 있어 수용되어야 할 중요한 요소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처럼 위기의 의미를 중층적으로 이해하는 것을 통해 우리는 상담자로서 위기에 처한 내담자를 이해하는 시선이 달라짐을 체험할 수 있다. 즉, 상담자가 위기와 절망을 겪는 내담자를 자신의 실존의 한계와 제약에 맞서 자기됨을 실현하고자 하는 성장의 과정에 놓여 있다고 바라본다면, 위기는 삶을 통과하는 과정에서 열리는 새로운 가능성의 순간으로 전환된다. 그럴 때 우리는 위기와 절망의 원인에 고정되어 있던 우리의 시선을 ‘사람’의 가능성으로 변화시킬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가능성으로 시선이 돌려진다면 위기는 주체성과 관계성의 회복을 통한 성장의 기회가 될 것이다.

    본 연구는 실제 내담자가 아닌 문학 작품을 분석하여 위기, 절망, 극복의 과정을 살펴보았기에 각각의 특수한 삶의 세계에서 개인마다 고유하게 느끼는 위기를 일반화할 오류의 가능성을 한계로 지닌다. 그러나 문학작품으로 위기의 의미를 포착하고자 한 본 연구의 한계는 다른 측면으로는 내담자의 실제 삶이 갖는 존엄성을 훼손하지 않으면서 상담자의 시각을 살펴볼 수 있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상담자 역시 매순간 성장하며 자신을 변화시켜 가는 사람이라고 할 때, 내담자의 위기에 압도당하지 않으면서 자신의 선입견과 감정을 마음껏 드러내고 이로써 위기를 바라보는 시각을 안전하게 검토하고 재확립해나갈 수 있으며 결과적으로 내담자를 이해하는 지평을 새롭게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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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그림 1. ]  싱클레어의 시기별 세계 경험과 위기 체험 정리
    싱클레어의 시기별 세계 경험과 위기 체험 정리
  • [ 그림 2. ]  싱클레어가 체험한 위기 경험의 의미와 주요 인물과의 만남을 통한 극복과정 정리
    싱클레어가 체험한 위기 경험의 의미와 주요 인물과의 만남을 통한 극복과정 정리
  • [ 그림 3. ]  싱클레어가 구성하고 있는 ‘밝음과 어둠의 두 세계’의 세계 경험
    싱클레어가 구성하고 있는 ‘밝음과 어둠의 두 세계’의 세계 경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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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싱클레어의 죄의식 비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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