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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A 학술지
Le Pied de momie de Gautier : creation d'“interminables legendes de granit” 고티에의 『미라의 발 Le Pied de momie』: ‘영원한 화강암의 전설’을 창조하기*
  • 비영리 CC BY-NC
ABSTRACT
Le Pied de momie de Gautier : creation d'“interminables legendes de granit”
KEYWORD
Le Pied de momie , Egypte antique , princesse Hermonthis , Conte de fees , Monde legendaire
  • 1. 서론

    『미라의 발』이 발표되는 1840년은 고티에의 문학 활동에서 비교적 중기에 접어든 때로, 1831년 『커피주전자 La Cafetière』를 시작으로 『옴팔레 Omphale』, 『죽은 연인 La Morte amoureuse』 등 일련의 환상소설을 발표하는 중에 나온다. 『미라의 발』은 고대 이집트 세계를 소재로 한 소설인데, 고대 이집트를 배경으로 하는 작품은 2년 전인 1838년 단편 『클레오파트라의 하룻밤 Une nuit de Cléopâtre』에 이어 두 번째이다. 그리고 1857년『미라이야기 Le Roman de la Momie』로 동일한 소재가 그의 작품에 다시 등장한다. 이 장편소설을 쓰기까지 17년의 세월이 흐르나, 고대 이집트에 관한 고티에의 열정이 끊임없이 지속되어 왔다는 것이 입증된다1).

    고대 이집트에 관한 고티에의 관심은 당시의 시대상황과 무관하지 않다. 이미 1783년 유명한 동양학자 볼네 Volney가 소개한 이집트에 관한 박학한 여행기2)가 프랑스 지성계에 이집트에 관한 호기심을 자극한데 이어, 유럽 제국주의의 팽창과 맞물려 이집트학이 번창한다. 1798년 나폴레옹의 이집트 원정과 1820년대 초반 샹폴리옹의 로제타석 해독 등, 큰 사건들의 여파로 이집트 역사, 문화, 고고학에 관한 관심 폭발은 자연스럽게 프랑스 부르주아들의 이집트 골동품 수집의 유행으로 이어진다. 그 당시 주요 독자층이 귀족문화를 추종하던 신흥 부르주아들과 지식인들이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이 소설의 서두를 이루고 사건의 발단을 구성하는 ‘골동품 구입하기’는 고티에의 동시대적 감각에서 나온 자연스런 소재선택이라 하겠다.

    또 고티에를 포함한 많은 유럽 지식인들의 눈에 나일 강 유역은 근대화의 변화를 겪고 있는 열강유럽과 달리, 수천 년의 시간이 끊임없이 반복되는 사회, 파라오시대와 별반 다를 바 없이 정체된 생활을 답습하고 있는 고대의 나라로 비쳐졌다. 그래서 여전히 천일야화의 이야기가 실제로 벌어지는 사회, 신화와 전설이 가공되고 진행되는 영토로 여겨졌다.3)

    『미라의 발』 집필 당시 이집트를 여행하지는 못했지만4), 그런 분위기에 사로잡힌 고티에가 특히 이집트를 영원한 조국처럼 마음에 품고 있었다는 점은 다소 이채롭기도 하지만, 한편 수긍이 가기도 한다5). 그런 그에게 이집트를 주제로 한 작품구상은 당연한 욕구분출이라 하겠다. 하지만 직접 체험하지 못한 상황에서 그곳을 소설무대로 끌어내기에는 실질적으로 많은 어려움이 따랐을 것이다. 이 『미라의 발』 집필 후 다시 이집트를 다룬 소설이 17년이 지나서야 발표된다는 점이 그런 고충을 짐작케 한다.

    그런 결점을 보완하기위해 고티에가 채택한 방식이 필요한 전문용어라든가 주변 묘사 등에 이용할 긴요한 자료는6) 차용하되, 상상력에 의거한 서술을 구사하는 것이다. 비록 소재를 고고학 탐방 서적에서 빌려 왔다하나 엄격한 고고학적 지식을 동원하기보다, 지하왕국으로 내려가는 장면에서 보듯 상상력에 의지하여 과장된 효과를 노리기도 한다. 골동품 가게를 끌어들이고, 동화적이고도 전설적인 분위기를 조성하는 점이 환상적 공간을 창조하기 위한 소설적 구상에서 출발한다. 이야기 시점의 주인공 화자가 수천 년 전 이집트 공주와 인연을 맺는 것이 가능하도록 소설적 공간을 창조하는 것이 그것이다. 스스로 밝히고 있듯이, 그가 이 소설에서 구현하고자 하는 것이 세상이 변천해도 사라지지 않는 “영원히 지속되는 화강암의 전설 interminables légendes de granit7)”이라면, 그 전설을 효과적으로 창조하기 위해서라도 거기에 맞는 서술전략이 필요하다.

    그러니까 고대 이집트라는 전설상의 세계를 부각시키기 위한 작가 특유의 서술효과가 있을 것이다. 우리의 초점은 그 초월적 시공간 창조를 위해 어떤 구성요소와 서술방식이 선택되는지에 집중된다. 그가 지속적으로 추구하는 환상소설 장르에 전설의 이집트를 끌어들이는 시도가 독창적 발상이 되기 위해서는 거기에 적절한 서술구조가 따라야 할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여기서 고티에가 창조하는 환상세계의 서술내용과 서술형태가 분명하게 구별되지는 않는다. 두 요소가 한 덩어리이므로 전통적으로 해왔던 그런 나눔은 별 의미가 없을 뿐만 아니라, 무의미한 작업이 될 뿐이다8). 동화적 서술이라든가 전설적 서술은 서술 자체가 이미 그런 내용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앞으로 할 분석과정에서 고티에의 독창적 발상이 평가될 수 있을 것이다.

    2장에서는 환상적 사건의 발현을 위해 고티에가 동원한 장치들을 그가 다른 환상작품에서 사용하는 내용과 비교하며 살펴본다. 3장에서는 이야기에 동화적 색채와 다름없는 환상성을 입히기 위해 구사하는 서술효과를 조명하고, 4장에서는 이야기 공간의 사실성과 환상성을 동시에 포용하기 위해 창조하는 공간에 대해 살펴보겠다.

    1)“La publication du Roman de la momie, en 1857, alors que le précédent texte de Gautier où il était question de l'Égypte datait de 1840 — encore l'Égypte du Pied de momie était-elle quelque peu fantaisiste —, pourrait paraître une sorte de résurgence subite de l'intérêt que Gautier avait d'abord porté à l'Égypte antique ; en fait cette dernière n'a cessé, entre 1840 et 1857, d'être présente à son esprit et à son oeuvre.” Pierre Laubriet, Notice du Roman de la momie in Théophile Gauitier, Romans, contes et nouvelles II, Gallimard(biblio. de la Pléiade), 2002, p.1329.   2)Voyage en Syrie et en Égypte.   3)19세기 프랑스 지식인들의 근동여행에 관해서는 Jean-Claude Berchet, Le Voyage en Orient, Anthologie des voyageurs français dans le Levant au XIXe siècle, Robert Laffont(Bouquins), 1985, 특히 Introduction pp.3-22를 참조할 것.   4)고티에의 이집트 여행은 그의 빈번한 외국여행에도 불구하고 비교적 늦은 1869년 말에 이루어진다. 그동안 책과 자료로만 누렸던 그 세계에 대한 갈증을 해소하는 한편, 그 자료로 쌓아올린 상상의 이집트를 비로소 확인하는 절차를 밟는다.   5)“On n'est pas toujours du pays qui nous a vus naître, et alors, on cherche à travers tout sa vraie patrie. (...). Lamartine et Vigny sont anglais modernes ; Hugo est espagnol-flamand du temps de Charles-Quint [...]. Toi, tu es allemand ; moi, je suis turc, non de Constantinople, mais d'Égypte." Gautier, Corr., t.II, p.40-41. Pierre Laubriet, Notice d'Une nuit de Cléopâtre in Théophile Gauitier, Romans, contes et nouvelles I, Gallimard(biblio. de la Pléiade), 2002, pp.1398-1399에서 재인용.   6)『미라의 발』을 집필하기 위해 고티에가 전적으로 의지한 자료가 18세기 말의 탐험가 Vivant Denon의 Voyage dans la Basse et la Haute Égypte, Didot l'aîné, Paris, 1802이다. “Il suffit de relire le texte de Gautier pour s'apercevoir que celui-ci a emprunté à Denon tous les détails caractéristiques, en se contantant de traiter sa description plutôt à la manière d'un critique d'art ou d'un poète que d'un anatomiste.” Pierre Laubriet, Notice du Pied de Momie, ibid., p.1456.   7)Le Pied de Momie, ibid., (in Théophile Gauitier, Romans, contes et nouvelles I, Gallimard(biblio. de la Pléiade), 2002,) p.863. 앞으로 작품인용 표시는 인용문 말미에 쪽수로 표시한다.   8)이 점에 있어서는 토도로프가 네르발의 Aurélia를 예로 들며 잘 설명하고 있다. “On voit — notons-le en passant — jusqu'à quel point était arbitraire l'ancienne distiction entre forme et contenu : l'événement évoqué, qui appartenait traditionnellement au «contenu», devient ici un élément «formel». L'inverse est aussi vrai : le procédé stylistique (donc «formel») de modalisation peut avoir, on l'a vu à propos d'Aurélia, un contenu précis.” Tzvetan Todorov, Introduction à la littérature fantastique, Seuil, 1970, p.59.

    2. 사건의 작동방식 : 이야기의 시작과 끝

    사건은 주인공이자 화자가 온갖 잡동사니를 파는 골동품 상점에서 기이한 물건 하나를 사면서 시작된다. 집안에 가져온 그 물건은 다름 아닌 고대 미라의 잘라진 발이고, 이것을 중심으로 사건이 전개되고 끝을 맺게된다. 이처럼 한 사물에 의해 사건이 촉발되고 그것으로 이야기가 끝까지 이어지는 방식은 고티에의 중‧단편소설에서 종종 나타나는 이야기 유형중의 하나이다.

    우선 고티에의 중‧단편소설에서 자주 이용되는, 이야기를 촉발시키는 방식을 크게 두 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우선 특정한 사람과의 운명적인 만남에 의해 이야기가 전개되는 방식이 있다. 여기에 해당되는 소설들로 『죽은 연인』, 『기사와 분신 Le Chevalier double』, 『스피리트 Spirite』를 들 수 있다. 첫째 소설에서는 주인공 로뮈알드가 일종의 흡혈귀인 클라리 몽드와 눈이 마주치면서 사제 초년생과 환생한 여자 사이에 기괴한 사랑이 시작된다. 둘째 소설에서는 보헤미아에서 온 방랑 가인(歌人)이 매서운 눈 폭풍을 만나 성안으로 피신한다. 성에서 며칠 신세를 지게 된 이 이방인의 기이한 눈빛의 영향아래 성주부인이 아기를 낳고, 그 아들의 얄궂은 운명이 이야기의 줄거리이다. 마지막 소설에서는 우연히 한번 본 주인공을 짝사랑하다 죽게 된 처녀가 등장한다. 이 처녀가 환생하여 주인공과 벌이는 시공을 초월한 기이한 사랑이 처녀의 이름을 딴 이 소설의 줄거리이다. 이 세 소설은 공통적으로 주인공이 자신의 운명을 뒤흔들게 될 어떤 만남으로부터 사건이 시작되고, 그 사람의 출현으로 얽히게 된 사건이 해결되면서 이야기는 대단원에 이르는 형식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사람이 아닌, 사물 혹은 대상을 지칭하는 하나의 오브제가 이야기의 단초를 제공하는 소설이 있다. 『커피주전자』, 『옴팔레』, 『황금양털 La Toison d'or』, 『아리아 마르셀라 Arria Marcella』 등이 이러한 방식을 취하고 있다. 첫 번째 예로 든 소설 군(群)과 달리, 사건을 촉발시키는 오브제가 이야기의 서두부터 나타나지 않고 다소 긴 도입부 뒤에 등장하더라도 결국은 그것이 소설의 모티브를 제공한다. 차례로 커피주전자(『커피주전자』), 타피스리(『옴팔레』), 루벤스의 그림(『황금양털』), 화산재에 주물형태로 굳어진 여자의 유방(『아리아 마르셀라』)이 이야기를 끌고 가는 소재가 된다.

    『미라의 발』은 전형적으로 이 후자의 유형에 속하는 소설이다. 19세기 중엽은 골동품을 구해 과시적으로 집에 소장하는 취향이 파리사람들 사이에 널리 퍼져있었고, 주인공 또한 이런 유행에 휩쓸려 골동품 상점을 드나들다, 고대 이집트 미라의 잘려진 발을 발견한다. 이 미라의 발을 집에 가져오고, 뒤이어 한 기이한 소녀의 출현까지 소설의 도입부를 이룬다.

    자연의 질서에 따르던 일상적인 상황이 한 대상을 만나면서 불가사의한 현상으로 급반전되면서, 이 소설은 환상소설의 양태를 드러낸다. 미라의 발이 현실세계에서 초자연적 세계로 넘어가는 열쇠구실을 하는 것이다.

    현실에서 환상세계로의 전이가 『커피주전자』, 『옴팔레』, 『죽은 연인』 등에서 보듯 단순히 잠에 빠져들면서 꿈꾸듯 전개되기도 하고, 『화신 Avatar』에서처럼 최면술로 조장되기도 하고, 『아리아 마르셀라』에서처럼 알코올이나 약물의 효과에 기대어 일어나기도 한다. 여기서는 시체를 미라로 만들 때 사용한 각종 방부제가 방안에 휘발하면서 만들어내는 마취기운이 현상계에서 환상계로 넘어가는 촉매가 된다. 『죽은 연인』에서처럼 베수비오 화산 폭발 직전의 순간으로 돌아가기 위해, 달빛 아래 폼페이 유적지를 몽유병 환자처럼 돌아다니는 대신에, 이 소설의 주인공은 각종 휘발성 약품과 향기 속에 잠에 빠져든다.

    이 장면은 환상계로 넘어가는 문턱에 해당한다. 완전한 잠에 몸을 내맡기는 것은 뒤이어 일어나는 사건이 단순한 꿈의 현상에 불과할 뿐이라는 주장에 반박할 여지가 없으므로, 다른 현상을 끌어들여 이 상태를 설명한다. 이것은 일종의 특별한 상태로서, 잠자는 자신을 관찰하는 행위에 해당하는 ‘잠자는 깨어있는 자 dormeur éveillé9)’가 되어 수면상태에서 자신에게 일어나는 사건의 관찰자임을 자처하고, 그래서 그 사건이 터무니없지 않음을 담보하려한다.

    여기서 작가가 구사하는 전략은 앞에 언급한 고티에의 소설에서도 명시적으로나 혹은 암묵적으로 이용되는 방식이다. 따라서 독자를 향한 작가의 의도는 그만큼 앞으로 일어날 일들이 믿기 어렵지만 믿을 수밖에 없는 ‘사실’이라는 메시지를 전달하려는 것이다. 그 믿기 어려운 ‘사실’의 시작은 한발로 깡충거리며 방안에 나타난 구릿빛 피부의 이국풍 소녀의 등장이다. 주인공이 낮에 사온 미라의 발이 그녀를 끌어들인 것이다. 또 그미라의 발이 막 주인이 된 주인공과 그 발의 원래 주인이었던 고대 이집트 소녀, 즉 헤르몽티스 공주와의 관계에 개입한다.

    공주의 잃어버린 한쪽 발의 소유권의 문제는 필연적으로 새 주인과 원주인 간에 모종의 거래를 맺게 한다. 불구가 된 공주는 자신의 발을 찾아야 만이 자신의 지하왕국으로 온전하게 돌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여기서 주인공 앞에 나타난 고대 이집트 공주의 정체 또한 미라이다. 이런 소설적 착상의 기저에는 주인공의 서술에서 암시되듯이10), 고대 이집트인들의 불멸의 신앙이 자리 잡고 있다.

    이후 이야기의 몸통은 오르페우스의 지하세계 혹은 저승으로의 여행을 연상시키는, 고대 이집트왕국으로 하는 여행과 그 왕국의 궁정에서 일어나는 사건으로 구성된다. 주인공이 헤르몽티스 공주의 초대로 함께 그 지하 세계로 가는 여행은 트로이 전쟁의 불씨인 헬렌을 만나기 위해 파우스트 박사가 광활한 우주공간을 상승하는 행위11)와 달리 하강운동의 이미지를 주지만, 시공을 초월하는 착상에는 유사점이 있다.

    이 소설의 대단원은 고티에의 환상소설에서 종종 보던 방식으로 처리되어 있다. 소설마다 약간의 변형을 거치기는 하나, 환상세계에서의 사건이 거의 마무리될 즈음, 주인공이 갑자기 현실세계로 빠져나오며 이야기는 끝을 맺는다. 이런 마무리 방식은 고티에가 자신의 첫 소설인 『커피주전자』부터 채택하던 수법이다. 밤 동안 주인공의 춤 파트너였던 환영 속 소녀가 넘어지고, 그 자리에 그녀가 들고 있던 커피주전자의 깨진 조각들만 발견한 주인공이 기절한다. 여기까지는 주인공이 헛것을 보았겠지 하는 판단유보 상태이나, 다음 날 주인공이 지난밤에 보았던 소녀상을 스케치함으로써 그 스케치가 주인공의 친구이자 집주인의 죽은 여동생임이 밝혀진다. 이와 같이 단지 이 사건이 환영만이 아니라는 단서를 추가하면서, 독자들에게 실제 경험일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제시하여 이성적 판단에 혼란을 초래하는 효과를 얻는다.

    바닥에 넘어지는 소녀와 자개 커피주전자의 깨짐이 이미지의 전이를 이룸과 동시에 충격을 유발하고, 그 충격으로 사건이 대단원으로 반전되듯이, 미라의 발의 끝부분도 유사한 충격에 의해 사건이 반전된다.

    딸과 결혼하기를 바란다는 주인공의 요구에, 헤르몽티스 파라오의 갑작스런 악수로 주인공은 잠에서 깨어나고 만다. 파라오의 억센 손아귀에 갇힌 자신의 손에서 전달되는 극심한 통증이 두 공간을 가르는 촉매로 작용한다. 삼천년 전의 파라오 손에서 현실의 알프레드 손으로 주인공의 의식이 반전한다. 두 소설에서 사용되는 반전을 위한 장치는 모티브는 같으나 성질이 다른 음악적 변주기법을 연상시킨다.

    친구의 도움으로 잠에서 깨어났으므로 이야기가 그대로 끝나버린다면, 잠 속에서 겪었던 모든 사건은 그저 환영에 불과했을 것이다. 작가는 『커피주전자』에서 사건의 말미에 주인공이 한 번도 본적이 없는 친구의 죽은여동생 얼굴 데생을 덧붙여서, 산산 조각난 커피주전자로 변해버린 소녀가 환영의 유희만이 아니라는 점을 환기시킨다. 마찬가지로 미라 발의 주인이 주인공의 방에 왔었다는 흔적을 남김으로써 주인공이 단지 환영의 노리개만이 아니었다는 단서를 제공하면서 사건을 마무리한다.

    꿈속에서 각성하기, 혹은 환상에서 현실로의 갑작스런 귀환이 고티에적 환상소설의 묘미이기도 하지만, 귀환 그 자체가 반향을 불러온다기보다 현실로 되돌아 왔을 때, 남아있는 환상세계에 관한 증거가 더 생생한 여운을 자아낸다. 이 증거로 인해 우리는 앞서 주인공이 체험한 기이한 사건을 그저 꿈속의 가상세계이겠거니 하다가, 부인할 수도 그렇다고 믿을 수도 없는 혼란 상태에 빠져든다12). 자연의 법칙과 그 질서를 믿는 인간으로서는 설명할 길 없지만, 확실한 증거는 환상소설의 특징을 유감없이 드러낸다.

    이처럼 고티에는 두 차원이 변하는 시점에 이런 장치를 설정함으로써, 이야기에 긴장감을 조성하면서 동시에 개연성을 획득한다. 고티에 소설은 환상세계를 여는 시점과 그곳으로부터 빠져나오는 순간에, 이 단절된 두차원을 급작스럽게 뛰어넘는 상황을 잘 설정한다. 하지만 그때도 그 양립 할 수 없는 두 세계를 이어주는 연결고리를 마련하는 것을 잊지 않는다. 그래서 환상세계가 존재할거라는 여운을 독자에게 심어주는 것이 이런 고티에적 소설기법이 발산하는 매력이다.

    9)근동지방에는 최면이나 약물 등 여러 가지 방법으로 꿈꾸는 것과 같은 상태에서 일어나는 사건을 다룬 이야기들이 이미 퍼져 있은 듯하다. 네르발 역시 콘스탄티노플에서 유사한 경험을 이야기하고 있다. “Il me semble, dis-je, voir un tableau des Mille et Une Nuits et faire en ce moment le rêve du Dormeur éveillé.” Nerval, Voyage en Orient in Oeuvres complètes II, Gallimard (biblio. de la Pléiade), 1984, p.633. 그리고 Dormeur éveillé에 대한 Claude Pichois의 주석 “G. Rouger signale l'histoire d'Abou Hassan, Le Dormeur éveillé, où le héros mêle le rêve et la vie.” Ibid., p.1574 참조.   10)“Le rêve de l'Égypte était l'éternité : ses odeurs ont la solidité du granit, et durent autant.”(859)   11)파우스트의 여행에 관해서는 4장과 각주 17에서 설명한다.   12)환상소설이 주는 이런 심리상태에 대해, 토도로프가 재인용하는 카이유와의 글이 그 원인을 잘 요약하고 있다. “Roger Caillois, dans Au coeur du fantastique : «Tout le fantastique est rupture de l'ordre reconnu, irruption de l'inadmissible au sein de l'inaltérable légalité quotidienne»(p.161).” Todorov, op. cit., p.31.

    3. 동화적 세계

    자신의 한쪽 발을 찾기 위해 주인공의 방에 외발로 깡충거리며 나타난 이국적 풍모의 어린 소녀. 주인의 출현에 당황한 듯 책상 위에서 이리저리 날뛰는 발. 그러고 나서 그 고대 이집트풍의 소녀와 발의 대화. 소설 전반부의 이런 장면설정은 작가가 다분히 어떤 특정 부류의 독자층을 겨냥하고 있다는 인상을 심어준다. 젊은 독자층을 염두에 두고 이야기를 전개하는 듯한 이 소설이 고티에 소설에서 드문 서술방식을 취하고 있다.

    이 소설의 동화적 분위기는 이미 시작부터 암시되고 있다. 아이들에게 호기심과 무섬증을 동시에 유발하는 장소의 묘사가 그런 의도를 잘 드러낸다. 빛이 잘 들어오지 않는 무서운 공간, 그러나 호기심을 자극할만한 잡동사니들로 채워진 헛간 같은 공간이 그것이다. 온갖 옛날 물건들로 가득한 이 골동품가게에 대한 묘사는 일종의 호프만풍이라 할 수 있는데, 이처럼 동화풍 환상세계의 선구자의 구성방식을 은연중에 닮는 것은 열렬한 호프만 애호자인 고티에로서는 자연스런 일일 것이다13).

    선 『미라의 발』은 『옴팔레』, 『죽은 연인』, 『아리아 마르셀라』 등에서 보여주는 관능적 이미지 대신, 청소년 시절 동화를 읽는 듯한 분위기에 젖게 만든다. 주인공의 집에서 일어나는 이상한 일로 이야기는 환상의 세계로 빠져든다. 이 미라 발의 주인이 삼천 년 전 고대 이집트 파라오의 딸이라는 사실에서부터 공주와 발의 대화가 동화적 서술효과를 얻고 있다.

    일단 “동화를 구별하는 것이 그것의 초자연적 위상이 아니라 어떤 특정한 글쓰기14)”냐에 달려있다는 점을 상기한다면, 이 소설은 어려서 죽은 공주와 그 잘린 발이라는 주제를 설정할 때부터 동화적 서술구조를 염두에 뒀다고 할 수 있다. 자신의 발과 대화를 나누는 장면, 자신의 발에게 고대 이집트로 돌아가기를 종용하는 공주와 팔려온 신세라 갈 수 없다고 버티는 발의 대화는 동심에 호소하는 콩트의 진수를 보여준다. 게다가 공주와 발의 대화에 주인공이 끼어들면서 그런 분위기는 한층 고조된다.

    주인공 앞에서 벌어지는 기이한 광경과 그들의 대화를 알아듣는 주인공의 놀라운 능력에 이어, 그들의 대화에 끼어드는 주인공의 행동까지, 일련의 서술과정은 환상적 사건만으로는 사건의 신빙성을 담보하기에 설득력이 부족해 보인다. 그래서 고티에는 등장인물의 면면이나 그들 사이에 벌어지는 사건과 어울리는 서술전략을 세운 것으로 보인다. 『옴팔레』, 『죽은 연인』, 『아리아 마르셀라』에서 T*** 후작부인, 클라리몽드, 아리아가 주인공들 앞에서 보여주는 극도의 관능적인 몸짓이나 그들의 그런 관계에 관한 서술과 전혀 다른 양상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여기까지 공주의 출현이 주인공에게 공포를 야기하기는커녕, 그들의 대화에 끼어들기까지 하는 주인공의 역할부여로 보아, 『미라의 발』은 괴기소설과는 거리가 먼, 경이로운 소설 le merveilleux로 분류된다. 그렇다면 동화 또한 이 장르의 한 갈래이므로 고티에가 택한 전략은 자연스럽게 설득력을 가진다15).

    이 소설의 전반부에서 시작된 동화풍의 서술양태는 소설의 후반부에 더욱 증폭되고 있다. 무대는 미라가 살아있는 수천 년 전 고대 이집트의 지하세계이다. 주인공을 데리고 내려간 그 왕국의 공주가 아버지 파라오앞에서 자신의 동심을 마음껏 드러낸다.

    아버지와 신하들 앞에서 공주가 하는 이런 표현에는 그녀의 동심을 강조하려는 작가의 의도가 반영되어 있다. 그것은 한편으로는 보다 이성적인 독자들에게 그녀가 어린 나이에 죽어서 미라가 되어 환생했음을 유추 할 수 있게 해준다. 다른 한편으로는 그녀의 꾸밈없는 감정표현을 보더라도, 그녀를 둘러싼 사건의 서술로써 동화적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이 자연스럽고도 효과적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요정의 이야기 같은 이 콩트의 절정은 주인공과 공주의 결혼에 관한 장면이다.

    수천 살 먹은 파라오와 마주한 주인공의 처지만으로도 상황은 극적인데, 그의 딸에게 발을 찾아준 대가가 그 딸과 결혼하는 것이라는 선언에서 콩트는 절정에 이른다. “발을 찾아준 대가로 손 la main pour le pied” 이라는 일종의 말장난 같은 주인공의 표현에서 암시되듯이, 단순히 동화적 표현을 빌리자면, ‘따님의 발을 찾아줬으니 그녀의 손을 나에게 달라’는 아이들 식의 흥정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요정이야기 conte de fées’에 어울리는 유머가 아닐 수 없다. 여기서 주인공이 꿈을 환기하는 것은 일어나고 있는 사건이 꿈처럼 동화적이라는 효과를 얻기 위함이리라. 그래서 주인공의 실제 나이는 전혀 고려되지 않고 있다. 동화의 절정은 계속된다.

    주인공의 요구에 놀란 파라오의 물음과 주인공의 대답에 이어, 왕국의 사람들이 이구동성으로 외치는 장면이 콩트의 정점이다. 즉 이런 다소 유치하고 우스꽝스런 상황을 한층 증폭시키는 장면이 주인공과 공주를 둘러싼, 왕궁의 모든 사람들의 합창이다. 주인공과 공주의 나이 차이를 고려할때 주인공의 나이는 충격 그 자체이자, 그 왕국의 역대 왕들과 신하들의 눈에 까마득한 할머니와 아기의 결합으로 비쳤을 것이다. 주인공만이 공주의 나이를 그녀가 죽은 시점에 고정시켜 놓고 있고, 공주 역시 주인공과 자신이 결혼할만한 연령대라고 생각한다는 점에서, 두 주역은 어른들의 세계에 갇힌 동심의 세계를 대변한다16).

    이들이 고대 이집트 지하세계에서 신랑각시의 짝을 이룬다는 장면은 동화적 서술 말고는 다른 방식으로 그 효과를 거두기 쉽지 않을 것이다. 이런 전략은 터무니없는 사건설정에 동화적 요소를 가미함으로써, 동심과 역사적 사실과 고대 신앙을 무리 없이 결합하는 효과를 보고 있다. 그렇다고 이 소설이 전적으로 청소년 독자층을 겨냥한 수준에 머물러 있는 것은 아니다. 환상성을 한층 보강하기 위해, 주제와 어울리는 동화적 요소를 도입할 따름이다. 고대 이집트에 관련된 세밀한 묘사와 거기에 따른 필요한 전문용어의 구사가 동화풍에만 머무르지 않는다는 점을 잘 보여준다.

    13)호프만이 프랑스 낭만주의 후반기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특히 환상소설가로서 고티에에게 그가 한 역할은 가히 선구자 격인데, 고티에가 이 소설을 쓰기 4년 전(1836년) La Chronique de Paris에 기고한 글에서 그에 관한 연구를 얼마나 치밀하게 했는지 잘 드러나 있다. 고티에는 ‘현실에서 일어나는 경이’와 ‘요정 혹은 동화 같은 경이’를 호프만을 통해 이해하 고 있었음이, 그의 호프만 연구에 대한 다음의 평가가 그런 점을 잘 보여준다. “Il (Théophile Gautier) montre avec quelle minutie Hoffmann, en accumulant les détailles familiers, crée l'illusion de la vie ; avec quelle habileté il fait accepter les anomalies qui éveillent entretiennent et augmentent chez ses lecteurs l'intérêt ou l'angoisse. Il souligne la différence entre ce merveilleux qui «a toujours un pied dans le réel» et le merveilleux inconsistant des féeries.” Pierre-Georges Castex, Le Conte fantastique en France de Nodier à Maupassant, José Corti, 1951, pp.87-88. 그리고 고티에의 모델이 된 환상동화 작가로서 호프만의 역할에 대해서는, 다음을 참조할 것. “Mais le conte, le Märchen (le «petit mythe») est vite devenu, sous les doigts habiles d'Hoffmann, un genre original que l'on peut situer à mi-chemin du conte de fées populaires (...) et de la psychologie la plus moderne.” La vie et l'oeuvre de E. T. A. Hoffmann par Albert Béguin in Contes, Fantaisies à la manière de Callot, Le Livre de Poche, 1969, p.366.   14)“Ce qui distingue le conte de fées est une certaine écriture, non le statut du surnaturel.”" Todorov, op. cit., p.59.   15)“On lie généralement le genre du merveilleux à celui du conte de fées ; en fait, le conte de fées n'est qu'une des variétés du merveilleux (...).” Todorov, ibid.   16)“Hermonthis seule ne parut pas trouver ma requête inconvenante.” (865)

    4. 전설적 세계

    살아서 말하는 고대 이집트 미라의 발을 등장인물로 선택했을 때, 또 그 발의 대화상대가 발의 주인인 어린 공주라는 점에서 이 소설은 환상적이면서도 동화적 요소를 강조한다. 한편 고대 이집트인들과 그들의 세계가 영원히 존재한다는 것은 미라가 되어버린 그 왕국의 주역들의 환생을 의미한다. 결국 그것은 소설이 생명의 재생이라는 고대 사람들의 신앙을 기저에 깔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이 소설의 전제가 되는 이런 믿음이 이야기의 서술방식에도 그대로 영향을 미친다.

    현실의 주인공과 삼천년 전의 헤르몽티스 공주의 만남은 필연적으로 환상성을 개입시킨다. 또 소설은 두 시대의 공존에 이어, 고대 파라오왕국이 여전히 지하세계에 존재한다는 점을 부각시킨다. 이러한 것은 소설에 전설적 색채를 입히려는 작가의 의지가 반영된 결과이다. 환상적 사건을 전설상의 세계로 끌어들여 극적인 효과를 최대화하려는 작가의 의도 또한 현실의 인간(주인공)이 그 지하왕국으로 여행하는 행위나 그 왕국의 주역들과 만나는 장면에서 잘 드러난다.

    왜냐하면 고티에가 밝히고 있듯이, 그가 이 소설에서 구현하려는 꿈이 ‘영원한 화강암의 전설’이므로, 여기서 작가가 구체화하려는 것은 개인적 상상력에 기반을 둔 환상적 세계이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지하의 인간세계, 즉 살아있는 고대 미라의 세계는 역사적이라 하기에는 너무도 까마득하여, 시간과는 무관한 전설의 영역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전설속으로의 난입은 현실에서 갑자기 일어난다.

    주인공과 미라, 혹은 현실과 환상의 영역에 속하는 두 시간의 만남에 이어, 현재의 세계에서 전설의 세계로 옮아가는 과정은 그 각각의 차원을 대표하는 ‘두 주역의 접촉’ “Elle me tendit sa main”으로 표현된다. 이들의 출발과 동시에 전설의 시간이 시작된다.

    주인공이 공주를 따라 그녀의 왕국으로 내려가기 위해 시공을 가로지르는 행위는 여러 유사한 전형을 떠올리게 한다. 우선 공주의 손대신 하프를 가지고 에우리디케를 찾아 지하세계로 내려가는 오르페우스나 황금가지를 꺾어들고 지하세계로 내려가는 아이네아스를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고티에가 이 소설을 발표하기 두 달 전에 동료인 네르발이 발표한 괴테의 ‘파우스트에 관한 분석과 해설17)’의 유사한 장면을 상기하는 것이 두 사람간의 밀접한 관계를 고려하면 훨씬 설득력이 있다. 네르발이 소개하고 분석하는 바에 의하면, 파우스트가 고대 그리스의 신화시대로 날아가 절세미인 헬렌을 만나는 장면이 등장한다. 괴테가 시공을 뛰어넘어 고대 그리스 세계로 여행하는 상상력을 펼쳐보였다면, 고티에는 그보다 더 먼 고대 이집트 시대로 하강하는 상상력을 발동시킨다.

    일단 주인공이 기이한 현상에 의해 시공을 역류하자, 환상성은 더 이상 낯설지 않고 전설상의 지하세계가 실재하듯 주 무대로 변한다. 이것은 마치 일단 시공을 넘어 고대 그리스 신화세계로 날아간 파우스트 박사가 페리스와 헬렌 등과 만나는 장면을 연상시킨다.

    우리가 고고학의 발달 덕택으로 고대 이집트 문명의 많은 부분을 역사적 사실로 믿게 되었다하더라도, 우리가 아는 대부분은 피라미드와 같은 무덤 속의 미라나 부장물을 통해 추정하는 것이므로 그 당시 왕궁의 생활상, 더구나 그 살아있는 지하왕국은 여전히 전설의 영역에 속한다. 이처럼 고티에는 이 오래된 지하세계에 현실의 주인공을 들여놓음으로써, 일면역사적 사실처럼 보이는 세계에 환상성을 유발시키고 소멸된 왕국을 활성화시킨다. 이 소설에서 환상과 전설적 영역이 긴밀하게 얽혀있는 이유이다.

    공주의 왕국에서 주인공이 그녀의 아버지 파라오에게 소개된다는 의미는 그 전설상의 세계에 인정받는 행위이며, 이어서 그 왕국 구성원 전체에게 인정받는 일이 벌어진다.

    동화적 분위기가 풍기는데다 웃음을 자아내게 하는 이 광경은 주인공의 공적에 대한 찬양이나 다름없다. 이 소설에서 사건의 전개과정은 다음과 같은 차원을 거쳐서 진행된다. ‘미라 발의 구입’이라는 현실 세계에서 한 행위가 주인공의 방에 고대 이집트 공주의 출현이라는 환상적 상황을 촉발시키고, 또 주인공과 공주의 만남은 시공을 건너 뛰어 지하왕국이라는 전설적 공간으로의 하강을 불러온다.

    이런 인과관계는 마침내 공주의 세계에서 주인공이 인정받는 계기로까지 발전하며, 그 최종점은 두 세계, 혹은 두 차원의 결합을 겨냥하고 있다.

    주인공의 공로에 대한 보답은 공주와의 결혼에 있고, 그 결혼은 삼천년이라는 나이차이만큼이나 불가능해 보인다. 또 공주는 앞으로도 영원히 살아가는 전설속의 인물인 반면, 주인공은 찰나의 존재이다. 그럼에도 주인공의 결혼요구 속에는 환상작가가 꿈꾸는 욕망이 담겨있다. 그것은 아마도 현실과 전설이라는 두 세계가 공존하기를 바라는 고티에의 ‘불가능한’ 소망일 것이다.

    왜냐하면 공주에게 부족한 발을 주고 떠날 수 있게 하는 행위가 두 주역의 ‘시간을 거스르는 여행’을 내포한다면, 발을 찾아준 대가로 공주의 손을 요구하는 행위(청혼)는 현실과 환상, 혹은 전설이라는 두 세계의 공존을 도모하는 작가의 의지를 암시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기서 ‘공주의 손을 원한다’는 주인공의 희망은 일차적 의미로 당사자가 아닌, 공주의 아버지와 주인공의 악수로 실현된다.

    파라오의 악수는 딸의 결혼을 승낙하는 제스처이기도 하다. 말하자면 파라오는 주인공의 손을 잡음으로써 주인공의 요구조건 속에 담긴 표면적 의미와 궁극적 의미까지 모두 충족시켜준다. 작가의 이런 행위설정에는 몇 가지 상징성을 염두에 두고 있는 것 같다. 현실과 전설의 관계 맺기는 이 두 차원을 대표하는 두 주인공의 결합으로 설정된다. 그렇게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것이 작가가 설정한 두 세계가 유기적 관계에 있다는 것을 독자에게 설득하는 것이며, 이 두 세계를 오가는 주역들의 환상적 행위와 역할에 호기심과 동시에 긴장감을 유지시키는 효과를 얻는다.

    물론 이러한 장치들의 궁극적 지향점은 주인공의 급작스런 현실 귀환이 몰고 올 사건의 전복에 있다. 환상성이 급작스럽게 소멸함으로써 생기는 극적 효과를 목표로 하는 이 장치에, 작가는 신뢰성과 환상성을 담보하기 위해 최종적으로 장치 하나를 더 마련 해둔다. 그것은 찰나의 꿈같았던 지하왕국과 그 공주가 환영만이 아니었다는 점을 부각시키는 것이다. 이러한 장치는 독자로 하여금 현실과 초현실 사이에 머뭇거리도록 그들의 의식을 붙잡아 두려는 작가의 유희라고 할까. 이런 장치는 고티에의 환상소설에 자주 등장하는 전략 가운데 하나다.

    17)네르발 역시 파우스트가 메피스토펠레스의 도움을 받아 하는, 시공을 초월한 여행을 오르페우스의 지옥여행에 비유하기도 한다. “Ce sera là presque la descente d'Orphée.” «Faust» de Goethe suivi du second «Faust» in Nerval, Oeuvres complètes I, Gallimard(biblio. de la Pléiade), 1989, p.508. 다음은 고대 이집트 헤르몽티스 왕국을 향한 고티에의 여행묘사에 영감을 주었을 네르발 글의 일부이다. “En effet, Faust s'élance volontairement hors du solide, hors du fini, on pourrait même dire hors du temps. (...) Hélène et Pâris, les ombres que cherche Faust, sont quelque part errant dans le spectre immense que leur siècle a laissé dans l'espace.” Ibid., p.507. 특히 pp.506-509 부분을 참고하기 바람.

    5. 결론

    골동품과 관련된 고대 이집트 이야기는 근대 유럽에서 일반인의 흥미와 지식인들의 호기심을 모두 충족하는 화제이다. 그들의 문화적 근원과도 관련 있는 화제이기 때문이다. 고티에는 전문 서적에서 착상을 얻은 이 소재를 다루면서 직접 체험하지 못한데서 올 현실감 결여를 특유의 환상적 색채를 가미하여 보완하고 있다.

    동화적 모티브에 전설적 요소가 적절하게 결합된 이 소설의 서술구조는 경이로움을 조장하기 위한 전략에 가장 중요한 수단으로 기능한다. 이 ‘환상적 경이로움’이 소설의 창작동기인 ‘끝없이 지속되는 화강암의 전설’에 생명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일종의 conte de fées 방식을 도입함으로써, 전설적 세계와 더불어 소설에 환상성의 농도를 밀집시킨다. 미라 공주와 그녀의 잘린 발이라는 등장인물과 그 소재가 동화적 서술구조와 불가분으로 결합되고, 거기에 고대 이집트의 지하세계라는 시공을 초월한 전설상의 공간이 이 소설에 환상성 le fantastique을 창출해낸다.

    이 소설의 창작동기로 고대 이집트인들이 믿는 불멸의 신앙을 들 수 있다. 그 신앙이 미라로 상징되고, 미라의 환생은 바로 그들 왕국이 어딘가에 존재한다는 상상력으로 전개된다. 이런 소재들이 결합되어 고티에 특유의 환상공간이 탄생한다. 서양 문명의 원천에 가 닿은 고대 이집트 문명에 관한 소재는 시대의 호기심에 부합하는데다, 미라로 상징되는 ‘불멸의 신앙’과 ‘재생의 신앙’을 배경으로 하는 일종의 천일야화식의 이야기를 하나 더 덧붙이려는 의지가 소설의 창작동기로 작용했다고 봐야할 것이다.

    그리고 이 동화 같고 전설 같은 공간을 구현하기 위해 고티에는 다양한 장치를 마련하여 이야기에 긴장감을 조성하고 있다. 여기서 고티에는 다른 소설에서 종종 구사하던, 사람과의 만남이 아니라 사물을 매개로 사건을 촉발시키는 얼개를 채택한다.

    또 사건변화에 일종의 기폭제와 같은 기능을 하는 요소들로 우선 알코올 기운(『아리아 마르셀라』)이나 최면술(『화신』) 대신에 마취성 강한 기체를 도입한다. 다음으로 현실과 환상세계의 연결은 주인공의 몽롱하나마 의식적인 상태, 즉 ‘잠자는 깨어있는 자 dormeur éveillé’의 의식에 의해서만 환기된다. 마지막으로 환상세계에서 각성했을 때 그 경험이 헛것만이 아니라는 증거로 그 세계에서 보았던 작은 물건이나 흔적을 주변에 남기는 장치를 마련한다. 이 장치는 환상세계의 체험이 진짜임을 독자들에게 설득시키는 구실을 하지만, 그것으로 인해 독자들이 판단하기에 더욱 혼란스럽게 된다. 이런 장치들은 그의 다른 소설에서도 이용하는 방식이기는 하나, 전개되는 양상은 각각 판이하게 펼쳐진다.

    고티에가 꿈꾸던 헤르몽티스 왕국은 그 자체로 동화적 전설이고, 고티에의 주인공은 사실일 수도 아닐 수도 있는 환상적 체험을 통해 두 세계를 연결하는 통로를 오간다. 결국 소설 『미라의 발』은 현실과 환상세계를 연결하여, 공존하게 하는 통로가 되는 셈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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