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논문은 오태석이 김유정의 소설을 해체하고 인용하며, 소설과 이질적인 연극언어와 조합한 극작법에 대하여 고찰하였다. 구체적으로 1984년 공연된 <봄봄> 대본과 2012년 <김유정 봄봄> 두 대본에서 발견되는 극작법상의 차이점에 주목해 보았다. 두 공연은 모두 오태석의 무대연출 형식과 문학텍스트가 상호텍스트적으로 접합하는 극작술을 보여주었다. 이 논문에서는 이 같은 극작 기법을 꼴라쥬적 기법으로 보고, 이 미학적 개념이 드러내는 형식상의 자질들로 오태석의 극작술에 대해 기술해 보았다. 이 글에서는 오태석의 극작법이 뚜렷한 기준과 목적으로 구성된 유기체적인 작품구성 원리 대신에 분방한 텍스트의 접목과 배열을 수용하는 텍스트의 연행적 구성방식을 설명하기에 적절한 개념으로 활용하였다. 특히 오태석이 관객 혹은 텍스트 수용자의 예술적 지각에 의해 관계 맺음을 지향한다는 점에서 극작과 연출의 유희성을 대변하는 틀로 활용한 방식에 대해 접근해 보았다
먼저 김유정 소설의 언어를 공연의 물질적인 무대담화로 구성한 배경을 살펴보았다. 오태석이 연극언어를 탐구했던 연장선에서 소설텍스트를 인용한 기법에 대해 서술하였다. 이를 근거로 <김유정 봄ㆍ봄>이 김유정의 소설에서 서사와 인물, 언어형식을 인용하거나 삽입하는 과정에 과감히 극적 행위와 꼴라쥬 하는 기법을 근거로 극작법의 특징을 고찰해 보았다. <김유정 봄봄>은 김유정 소설의 들병이라는 여성인물을 매개적 화자로 형상화하였다. 그래서 들병이라는 인물이 공연에서 메타드라마적 형식을 반영하도록 하는 극작 기법을 기술해 보았다. 오태석 연극의 놀이적 특징은 이 연극에서 극적 담화를 구성하는 기법, 즉 극적 언어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상의 꼴라쥬 기법은 원작소설과 초연 <봄봄>, 그리고 이 이질적인 장르를 해체하고 인용한 <김유정 봄ㆍ봄>에서 극작법으로 구성되었다. 오태석은 치밀한 언어감각 탐구 결과, 김유정 소설을 소재적이고 기능적으로 활용하였다. 그리고 그 소설이 담지하고 있는 음악과 연극성을 무대에 인용하였고 이와는 이질적인 연극언어와 조합하였다.
오태석은 김유정이 형상화한 한국적 정서를 주제화하기 위해 들병이의 육체를 빌려 소설과 음악 등의 연극언어가 꼴라쥬 되는 극작법을 구성하였다. 그 결과 갈등의 국면과 인물은 초연에서 고정적이고 전형적인 주재로 형상화되었던 것에 비해 이 공연은 관객에게 김유정소설이라는 필터를 가지고 공연을 보도록 유도되었다. 이 극작법은 관객이 무대에서 김유정 소설로 인용된 역사성과 사회성, 장면의 회화성을 떠올리며 공연을 바라보는 상호텍스트적 인식의 틀을 제공하는 기법을 마련한 것이다. 따라서 이 글은 오태석이 관객의 예술적 지각에 대한 신뢰를 전제로 공연무대에서 문학텍스트를 인용하고 해체하는 지적인 유희로서 극작술의 기법을 반영하고 있다.
This study compared the performances in 2012 the “Kim Yu-Jeong bomㆍbom” and premiered in 1984 the “bombom” difference. The reason is because the original, Kim Yu-Jeong's an adaptation of a novel by the same title, which was the first concert performances are very different. Traditional music formats to take advantage of the brilliant play by highlighting the musical characteristics of the two performances, “bombom” there is a difference.
On the other hand, plays “Kim Yu-Jeong BomㆍBom” different creative techniques. Kim Yu-Jeong's short stories that appeared in the various figures and in Korea in the 1930s, living their locality utterance type and the scene was inserted.
This article live Kim Yu-Jeong's novel format utilizing language that speaks pole for communication with the audience, the writing noted.
Plays “Kim Yu-Jeong BomㆍBom” labor to stage scenes were represented by the fatigue of the body. This reality expressing the complex emotions of the current audience. It was Kim Yu-Jeong's novel scene to insert in the form of creative.
As a result, the audience, Oh Tae-suk familiar from the novel “bombom” theatrical discourse types found researchers from the drama of the “Kim, Yu-Jeong bomㆍbom” looked communication framework that can be achieved.
Director from a novel attempt to insert theatrical discourse types on the basis of communication with the audience. The reason for this was the scene of the novel to symbolize the reality of now-here in the audience.
오태석의 극작과 연출은 상호텍스트적이라는 틀1)로 자주 규명되는 데, 이는 관객과 소통을 위해 틈이 있는 구조로 연극성을 지향하며, 우리 전통연극의 연행방식을 참고하는 극작태도 때문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이 논문에서는 특히 그의 남다른 언어감각이 공연에서 연극담화를 구조적으로 활용하는 극작법에 대해 주목해 보았다. 이를 위해 여기에서는 김유정 소설과 음악 텍스트(판소리, 민요, 창가, 동요)를 상호텍스트로 접목하여 극작과 상연을 구성하는 방식을 고찰해 보았다. 오태석은 김유정의 소설텍스트를 공연에서 단순히 서사적 차용의 각색으로 활용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연극언어에 대한 인식을 중심으로 김유정 소설을 해석적으로 해체하고 삽입, 인용하였다. 따라서 이 글에서는 오태석의 극작과 연출과정에서 연극언어의 특질을 형성하는 즉, 공연의 물질성인 언어와 음악성 등이 소설의 언어와 인물과 조합되는 방식에 주목해 보고자 한다.
오태석의 이 복합적인 무대연출 형식과 문학텍스트가 상호텍스트적으로 접합하는 극작술을 이 글에서는 꼴라쥬로 보았다.2) 원래 조형예술의 우연적인 어울림을 통해 드러나는 미학적 특징을 일컫는 의미에서 사용되었던 이 용어는 문학과 연극에도 유효하다. 이 글에서는 이 미학적 개념이 오태석의 극작법이 뚜렷한 기준과 목적으로 구성된 유기체적인 작품구성 원리 대신에 분방한 텍스트의 접목과 배열을 수용하는 텍스트의 연행적 구성방식을 설명하기에 적절한 개념으로 활용하고자 한다. 특히 관객 혹은 텍스트 수용자의 예술적 지각에 의해 관계 맺음을 지향한다는 점에서 오태석의 극작과 연출의 유희성을 대변하는 틀로 적합하다. 따라서 이 글에서는 오태석의 극작과 연출과정에서 김유정의 소설을 해체하여 부분적으로 인용한 대본에 반복적으로 다양한 노랫말과 군무, 제의형식의 극중극 형식을 조합한 공연 방식을 반영하는 극작법을 기술하려 한다.
1)오태석의 극작법 연구의 상당 부분은 ‘상호텍스트성’이라는 틀로 희곡 특성을 규정하고 있다.(김현철, 「판소리 <심청가>의 패로디 연구」, 『한국극예술연구』 권11, 2000.4, 신은경, 「오태석 작<심청이는 왜 두 번 인당수에 몸을 던졌는가>의 패러디 연구」, 『동남어문논집』 권 14, 2002.6) 그 가운데 조보라미는 오태석 희곡의 창작원리를 ‘상호텍스트성’의 틀로 분석하였다(「오태석 희곡의 상호텍스트성 연구」, 『한국현대문학연구』 24, 한국문학연구학회, 2008. 528-529쪽 참고). 조보라미는 희곡 자체가 상호텍스트성을 자기반영적인 특성으로 구성하는 것에 대해서 배제한 채 논의된 인상을 준다. 2)이 글에서 주로 논의에 인용하고 참고한 꼴라쥬개념은 파비스의 서술이다. 그 외 참고한 자료는 한국문학평론가협회에서 발간한 『문학비평용어사전(下)』(국학자료원, 2006)이 있다. 이 외에도 오태석 희곡의 특징을 꼴라쥬로 분석한 김남석의 논의(「오태석 희곡의 차용 양상 연구」, 『오태석 연극의 미학적 지평』, 연극과 인간, 2003)를 참고하였다.
초연 <봄봄>은 소설<봄봄>과 <금따는 콩밭>의 익숙한 이야기 구조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방식으로 각색되었다. <봄봄>은 1984년 4월 14~20일 문예회관 대극장 공연 이후 두 차례 더 대극장에서 공연되었다. 1985년 11월 20일자 『경향신문』 권과 『동아일보』 권은 “우리고유 가락에 재즈를 접목시킨 독특한 형태의 뮤지컬”로 소개하였다. 이 사실은 이질적인 장르와 연행성이 접목된 공연이었음을 일러준다. 이 공연은 이후 1985년 12월 1~3일까지 세종문화 회관에서도 김소희 작창, 길옥윤이 작곡가로 제작에 참여하였다. 바로 다음해 1986년 4월14~20일까지 문예회관 대극장에서도 공연되었던 사실을 보면, 당시 공연은 대극장에서 다양하고 규모가 있는 볼거리가 제공되는 연극형식이 접목된 상호텍스트적 연극성으로 구성되었다.
주로 대형극장에서 공연되었던 <봄봄>은 김유정의 소설 <봄봄>과 <금따는 콩밭>의 친숙한 서사를 활용하는 방식으로 독자나 관객이 극의 내부를 유연하게 이해하도록 하였다. 이 초연 대본은 창작뮤지컬, 한국적 뮤지컬이라는 타이틀로 다채로운 볼거리와 음악적 기호로 구성되었다. 특히 1984년 문예회관 공연대본은 전통음악을 상호텍스트로 적극 활용하여 창극형식과 유사한 공연형식의 면모를 드러냈다. 이 사실은 <봄봄>이 1980년대 전통연극 소재의 현대적 개발에 주목했던 시기에 사회적 화두와 맥락을 같이하며 소재의 다변성을 해결하고, 연극적 언어에 대한 논의를 풍성하게 하는 데 기여했다고 평가받았다.3)
초연이 전통의 현대화라는 담론에서 생산된 기획공연이었다면, 2012년 공연은 춘천문화재단 주관으로 김유정의 작품을 지정, 음악극 ‘김유정의 봄봄(가칭)’은 지역 문화 콘텐츠로 시작되었다. 이 기획은 장기적인 단계를 거쳐 진행되었다. 2011년 춘천문화재단 주최의 경서지방 연극제에서 <금 따는 콩밭>이 공연되었고 이는 다시 <김유정 봄ㆍ봄>으로 생성되었다. 이후 소극장 규모의 공연으로 만들어져 2012년 춘천 몸짓 극장과 남산 국악당, 2013년에는 국립극장 하늘극장에서 재공연 되었다. 이상의 공연제작과정이나 1980년대 공연 연보를 확인하면, 종래 오태석 공연이 희곡의 기호화 작업이기보다 '생성과 즉흥성의 흐름을 타는 과정으로서 퍼포먼스적 성격'이 반영되면서 초연과 상호텍스트적 연극성의 차이를 대본과 공연에서 확인할 수 있다.4) 이 글에서는 2012년 공연(남산 국악당)된<김유정 봄ㆍ봄>(오태석 작연출, 극단 목화)을 생성 중에 있는 가장 가까운 공연텍스트로 보고, 초연 <봄봄>에서 <김유정 봄봄>으로 전환된 과정에서 극작법의 면모를 살펴 볼 수 있을 것이라 보고 논의를 진행하고자 한다.5)
오태석은 초연 <봄봄>에서 인용하고 삽입했던 판소리, 민요 등의 서브텍스트를 간소화하여 부분적으로 ‘비서술적인 음악적 콜라쥬’6)를 시도하였다. 더 나아가 관객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2012년 공연부터 노랫말에 해당하는 부분을 자막처리함으로써 초연과 매우 이질적인 무대 서술형식으로 전환되었다. <김유정 봄ㆍ봄>은 초연에서 김유정 소설을 인용하여 구성한 극적 행동을 상당부분 해체하였다. 소설텍스트의 주제를 유기체적으로 재현했던 초연 <봄봄>과 달리 다양한 음악적 연행행위와 군무는 소설의 서사와 재구성된 공연텍스트에서 메타비평적 기능으로 변모했다. 가령, <봄봄>의 시작과 마지막 장면은 전형적인 공동체 삶을 이상화하는 형식으로 제의행위와 판소리를 구성하는 음악 단위들이 활용되었다. 특히 마지막 장면에서 일렬과 필순이 관객을 향해 노래를 부르는 장면은 작품의 주제를 전달하는 데 기여했다. 그러나 <김유정 봄ㆍ봄>에서 이 장면은 평수의 굿과 마을 사람들이 화려한 춤사위로 관객을 무대로 유도하는 북춤을 추는 군무(群舞)의 연행형식으로 전환되었다. 그 결과 공연에서 시적행위라 할 수 있는 기원의식인 불씨받기는 김유정소설이라는 매우 이질적인 텍스트와 삽입되면서 충동적인 어울림을 만들었다.
특히 오태석이 <봄봄>의 1막에 사회적 환경을 부각하고 과감히 연행성을 배제하여 구성한 <김유정 봄ㆍ봄> 1막 대본에서 드러난 차이는 무대적 글쓰기의 변화가 드러난 부분이다. 이번 공연 1막이 초연과 명확한 차이가 나타난 점은 무엇보다 플롯 속에 개입하여 사건의 연속성을 파괴하는 장치들을 자주 사용하였다는 점이다. 1막에서 사건은 관객에게 덕달과 봉필의 갈등관계가 아니라 덕달과 젊은 노동자들의 욕망과 갈등으로 무대에 표현되었다. 이 장면은 김유정 소설의 다양한 이야기와 인물을 삽입하여 관객이 원작소설의 환영에 자칫 갇혀있기보다 현실을 떠올릴 수 있도록 다층적 인물로 구성되었다. <김유정 봄ㆍ봄>이 초연과 분명하게 다른 점은 연극적(예술적) 세계의 흐름을 중단시키고 관객의 주의를 환기시키기 위해 음악, 춤, 제의행위 등이 활용되었다는 것이다. 따라서 오태석 공연의 시적행위인 제의행위를 주제화하기 위해 <김유정 봄ㆍ봄>은 소설을 무대의 우연성과 놀이성으로 꼴라쥬했다는 점에서 극작법의 일면을 확인할 수 있는 공연이자 대본이다.
3)오태석이 1970년대<쇠뚝이 놀이>를 시작으로 서양연극을 민족적 정서로 재구성한 공연의 한 패턴은 당대 연극인들이 한국의 전통연극이 서양현대연극이 추구하는 연극성과 관객과의 친밀한 관계 모색에 대한 대안으로 평가받았다. 그런데 이후 오태석의<태>, <초분> 등의 극작과 연출에서 전통극에 대한 인식과 가치는 “서양인들이 보는 동양연극의 특성을 무대화한 것”이라는 타자의 시선 아래 있다는 아이러니한 평가가 따르고 있다. 이 같은 비판이 따른 것도 사실이었음을 주목해야겠다. 백현미, 「1980년대 한국연극의 전통담론연구」, 『한국극예술연구』 15집. 221쪽 참고. 4)김방옥은 극작가 겸 연출가인 오태석의 무대적글쓰기 작업방식을 통해 희곡이 존재하는 방식을 검토하였다. 이 논의는 초연인 1984년 대본 <봄봄>은 공연생성과정에서 수시로 이탈하거나 의외적인 구조와 인물로 공연텍스트화 하여 <김유정 봄봄>에서 초연의 희곡과 공연사이의 거리뿐만 아니라 다른 성격의 공연의 거리를 창출한 과정을 자유롭게 보도록 돕는다. 더불어 필자는 김방옥이 파비스의 입을 빌려 극작가의 미래를 조심스럽게 제시했던 것이 인상적이었다. 이 공연의 생성과정은 오태석이 공연과 희곡의 존재방식을 규범적으로 구성하지 않으며, 결과적으로 소설의 언어와 상연의 언어, 즉 공연의 다양한 언어형식을 소설텍스트를 해체하고 인용하는 꼴라쥬를 통해 관객의 예술적 지각을 자극시키는 극작법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김방옥, 「희곡의 위기 희곡의 존재방식」, 『21세기를 여는 연극-몸, 퍼포먼스, 해체-』, 연극과 인간, 2003. 272쪽 참고. 5)이하 공연시기 구분 없이 1984년 공연된<봄봄>과 2012년 <김유정 봄ㆍ봄>은 공연 제목만으로 구분한다. 6)필자는 「오태석 연극의 연행성 기술하기<북청사자야 놀자>-공연텍스트의 음악적 생성과정을 중심으로-」(『한국연극학』 44, 2011. 49)에서 오태석 연극의 음악적 꼴라쥬를 활용한 연극성 생성에 대해 기술한 적이 있다. 이 용어는 오태석 연출에서 연극언어와 극적 구조 생성의 특징을 언급한 것이었다.
3. 극적 담화구성으로서 김유정 소설언어의 인용과 해체
오태석은 극작이나 무대 연출에서 말의 이미지와 동등한 가치를 띤 물질적 이미지를 창조하기 위해 우리말 찾기에 주목하였다. 1981년 문예진흥원에서 판소리를 현대화 하겠다는 기획 아래 흥부전을 창작판소리로 만든 <박타령>이라는 공연은 오태석이 판소리에서 연극언어를 재인식한 사례이기도 하다. 곧이어 <봄봄>을 만정 김소희와 작업을 통해 판소리가 무대언어로 적극적으로 활용하면서 대본에 무대언어 형식이자 장면의 통사구조로 활용하기에 이르렀다.7) 당시 대본과 비교할 때 <김유정 봄ㆍ봄>은 원작 소설<봄봄>과 김유정의 소설에서 다양한 발화형식(지역색과 계층언어가 생생한 우리말)을 무대언어로 적극적으로 인용한 것을 볼 수 있다.
김유정 소설의 언어를 공연의 물질적인 무대담화로 구성한 것은 오태석이 연극언어를 탐구했던 연장선에서 볼 수 있다. 자신의 연극성 탐구에 영향을 미친 사람이 누구냐는 질문에 고향 아룽구지와 할머니를 꼽았던 사실은 오태석이 무대언어에 주목하였던 대표적 사례다. 이 인터뷰 내용은 다양하고 비동질적인 담론이 생성되는 언어현장과 방식을 무대로 불러들여 모방적 재현이 아닌, 연극이라는 형식과 무대 구성을 위한 ‘감각적 즐거움과 생명력’8)을 찾는 극작가의 태도가 나타나 있기 때문이다.
이 인터뷰에는 작가 스스로 극적 상황에서 경험했던 사회적 관습과 현실에서 특정한 종류의 청중이 조직되도록 하는 담론을 생산할 수 있는 틀에 대해 인지한 순간이 기록되었다. 오태석이 "할머니의 노랫말이 얼마나 아름다운가를 요즘 세대에게 확인시키고 싶다"밝힌 <김유정 봄ㆍ봄> 공연의 염원은 연극 언어형식에 대한 극작가의 의식을 반영한 것이다10). 이 말은 사회의 일원으로서 담론을 형성하고 생산하는 방식 가운데 야생적인 담화를 연극적인 특수한 방식의 말하기로 습득하겠다는 의미이다. 그런 의미에서 오태석 자신이 연극을 하는 궁극적 목표를 우리말 찾기라고 반복적으로 말한 것을 이해할 수 있다. 즉, 자신의 연극적 방법론을 제시하기 때문이다. 그는 어느 극작가나 연출가보다 구체적이고 실제적인 대화와 언어를 근간으로 성, 계급, 지역, 계층 등 다양한 사회를 구축하는 연극담론을 생산하는 방식에 주목하였다11).
오태석은 연극성을 위해 역사를 자신의 주관대로 재배열, 재배치하고 해체하는 극작법을 활용하는 것에 대해 언급한 적이 있다. 그래서 역사든 인물이든 ‘역광(逆光)을 통해 다른 모습을 볼 수 있는 여지’를 만들고 ‘시간과 공간을 換置(환치)하는 문법을 운영해’13) 보는 과정에서 연극성을 만든다고 고백하였다. 여기서 구조란 무대에서 사용할 수 있는 모든 표현수단들의 양상 가운데서 공연의 고정된 형태를 긴박하고 역동적인 형태로 대체시키기 위해 무대에서 제공하는 모든 물리적이고 직접적인 가능성을 이용한다는 의미다. 즉, 무대 언어로 형상화하여 나름의 극적 담론생산의 틀을 조직하고자 하는 전제를 언급한 것이다. 가령, 연극에서 억양의 구체적인 가치나 단어의 실제적인 의미보다는 단어가 발음되는 방법에 따라 단어 그 자체가 어떤 음악적 혹은 물질적이고 감각적인 특질을 창조할 수 있는 가라는 점에 주목하여 배우를 훈련하고 대본을 수정하는 방식이 그 결과다.
살아있는 언어의 현장성(지역성, 계급, 계층성)을 극적 언어로 인지하고 그것을 중요한 극작법으로 활용한 작가에게 김유정 소설은 마치 그 현장의 언어를 채록한 텍스트로 인식했을 가능성이 크다. 김유정 소설은 1930년대 당대 지식인의 문어를 사용하지 않고 다수 농민이나 화전민, 어린아이 등의 구어가 주로 사용되었다. 또한 소설은 대개가 서술과 정교하게 구분되지 않고 인물의 다층적인 성격이 발화 그 자체나 발화자로, 소설의 서술화자로 생생하게 표현되었다. 그래서 그의 소설은 이야기꾼이 구연하는 옛날이야기를 녹취한 것을 그대로 풀어써놓은 형식과 같다는 평가를 받았다.14) 오태석의 대본 창작에서 나타나는 언어적 특징은 대화 즉, 대본에 사용하는 말을 기록하는 데 있어 입말을 그대로 살려 표기하기 이다. 이는 사투리와 같은 본래 생경한 담화를 구사하는 것뿐만 아니라 고어, 속담, 민요 등을 삽입하고 등장인물의 계층, 고향, 성별, 지위 등이 드러나도록 하는 개인적 담화 양태를 그대로 살려 표현하는 방식이다. 그러한 맥락에서 김유정소설의 서술형식은 주목받을 수 있다. 더불어 판소리 연행 담화처럼 다성성이 있는 연극언어의 자질을 지녀 연극언어로 인용할 가치가 발견되기 때문이다.
원작소설에서 ‘나’는 일인극을 하는 연행자의 행위(발화를 포함한)처럼 입체적으로 서술을 이끌고 있다16). 특히 극적 행위의 구체성이 드러나는 긴 서술형식을 보면, 행위를 연상하게 하는 ‘아따/깜짝이야/ 내 사실 참’ 등의 추임새가 등장하는데, 이는 서술문의 운율을 형성하면서 이야기의 재미를 풍성하게 한다. 이 외에도 김유정은 사전식 표준어법을 구사하지 않고 인물의 계층, 성격 등이 묻어나는 입말투를 통해 현장감이 느껴지도록 언어를 표현하였다. 위에 인용한 외에도 가령, “형님한테로”라는 표준어법 말을 굳이 그의 소설에서 “홍천인가 어디 즈 성님안터로(김유정 <만무방>)”라는 식으로 마치 발화현장을 그대로 녹음하듯 서술하였다.17) 김유정 소설 전반에서 나타나는 구어적인 서술형식은 행위를 내재한 담화로서 감각적인 발화 습관과 특성을 드러내는 언어의 기능과 음악적인 감각의 성격도 포함하고 있다.
필자는 이러한 김유정 소설에서 극작가가 1930년대 향토적이면서도 모던한 방식의 연극언어를 발견하였을 것으로 이해했다. 오태석은 말과 독립해 있는 구체적인 언어, 감각을 지향하는 언어, 감각을 만족시키는 언어를 김유정의 소설에서 발견하였을 것이다.18) 김유정 소설은 판소리 공연문법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밝혀져 왔다. 그래서인지 마치 판소리 놀이판에서 공연의 특징으로 형성된 긴 호흡의 문장, 그리고 이를 통해 표현되는 사물의 희화화나 너스레와 추임새의 개입과 이로 인해 생성된 서술문의 운율 등 현장감이 발견된다. 따라서 '소설 안에 소리로 가득 차 있다'19)는 평을 듣는 김유정의 소설로 오태석은 공연무대를 채울 연극 담화를 구성했을 가능성이 크다.
7)이 공연을 계기로 1984년 MBC방송국에서 문예진흥원과 유사한 공연기획을 세우고 조금 더 현대적인 공연을 요구받아, 김유정 원작의 <봄봄>을 각색해서 공연했던 것으로 밝혔다. 이를 시작으로 같은 해 12월에 이효석의 <메밀꽃 필무렵>을 다시 김소희 작창으로 공연되었다. 이 공연들은 방속국의 기획과 제작지원을 받아 대규모로 진행되었다. 이 글에서는 서연호와 장원재가 공편한 『오태석공연대본 전집』 8(연극과 인간, 2005, 73-153)에 실린 1984년 문예회관 대극장 공연본을 <봄봄> 희곡으로 보고 분석하였다. 전집에 실린 대본이 정확히 어느 시기공연장의 공연이며, 이후 두 공연의 대본을 확인할 수 없어 연출가의 연행성의 변화를 비교할 수 없어 아쉽다. 8)김방옥, 「2000년대 이후 오태석 연극에 나타난 동물연구」, 『한국연극』 권46, 2012. 17쪽 참고 9)오태석, 김윤덕 정리, 「<나의젊음 나의사랑>, 연극연출가 오태석」, 『경향신문』, 1996. 5. 11. 10)「“할머니들의 말과 노래 알리고 싶어” 음악극 ‘봄봄’ 춘천서 작업 중인 연출가 오태석」, 『한국일보』, 2012.6.26. 11)여기에서는 이상란의 연구관점 대로 오태석이 연극담론을 구축하여 다양한 담론의 실제와 생산을 연극공연에 반영하고, 이를 통해 소통 등에 미치는 영향이라는 점에 주목하였다. (이상란, 『오태석연극 연구』, 서강대학교출판부, 2011. 87-89) 12)오태석ㆍ서연호 대담, 장원재 정리. 『오태석 연극 실험과 도전의 40년』, 연극과 인간, 2002, 242~243쪽. 13)위의 책 232쪽. 14)김유정 소설은 이야기판의 구연상황과 이야기꾼의 발음을 그대로 옮겨놓은 설화채록본과 같다. 전신재 편, 『원본 김유정 전집』, 강, 1995, 4쪽 참고. 15)김유정, 앞의 책, 157-162쪽. 16)유정 소설의 연행성은 전신재의 연구를 통해 구조적으로 파악하는 데 참고하였고, 유인순이 밝힌 김유정이 아리랑과 같은 창을 통해 민족적 정서를 표현하는데 주목했다는 논의와 명창 박녹주와의 개인사에 대한 자료를 참고로 했다. 특히 유인순은 김유정이 수필에서 아리랑이 끼친 영향을 통해 우리문학이 추구해야 할 우리 정조를 인식하게 하는 문제에 천착한 것을 근거로 그의 소설 문체가 음성을 획득하기에 이르렀다는 평가를 내렸다. 17)그의 소설에는 말을 살리고 그 말을 이해시키기 위한 보충설명이 등장 한다. 이 사실은 오태석이 인식했을 김유정 소설의 연행성일 것이다. 대표적인 작품이 <봄봄>인데 이러한 상황을 괄호로 처리해 마치 희곡의 대사와 지문이 공존하는 듯한 점도 발견된다. 예를 들면, 김유정의 소설 <정분>은 <솟(솥)>의 초고로 알려져 있다. 즉, 초고인 <정분>을 수정해 나온 작품이 <솟>이다. 그런데 이 수정과정에서 주목할 점은 김유정이 지향하는 언어구사 방법이 개작과 창작과정에 큰 변수라는 점이다. 즉, 수정 이전의 문장이 간결하고 탄탄한 문법적인 반면, 수정 후의 문장은 장황한 구어와 문어투가 섞여있다는 점이 다르다. 특히 수정 후 문장은 이야기하는 말투를 재현하는 방식이라는 점이 다르다. 그래서 김유정의 수정문장은 간결한 문체에서 요설체의 문장으로 바뀌었다고 평가(전신재, 「김유정 소설과 이야기판」, 『한국의 이야기판 문화』, 소명출판, 2012. 437-439쪽 참고)되기도 하는데, 여기에서 주목할 점은 어떤 이야기를 연행하는 현장성을 재현하는 제시적인 문장이 더해진다는 점이다. 즉, 말하는 상황을 정확하게 전달하고자 하는 재현욕구가 그의 소설 변형에서 발견된다. 흥미로운 점은 오태석이 공연요소들의 관계적 조직과 충돌을 통해 공연텍스트의 생산과 검증을 구성하는 극작방식과 유사한 경향을 띤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이 소설의 ‘솥’화소는 빙모의 딸에 대한 애정을 드러내는 오브제로 활용되었다는 사실까지 오태석은 <김유정 봄봄>을 소설의 꼴라쥬로 생성하는 문학적 유희로 공연텍스트를 구성했다. 18)원래 그리스어로서 인식이라는 뜻을 가진다는 에피스테메(episteme)라는 말은 푸코에 와서 특정한 시대를 지배하는 인식의 무의식적 체계, 혹은 특정한 방식으로 사물들에 질서를 부여하는 무의식적인 기초로 사용되었다. 오태석이 말, 특히 연극적 담론을 생성하려는 방식은 푸코(Michel Foucault)의 에피스테메(episteme)를 떠오르게 한다. 백현미, 앞의 글, 221쪽. 19)양문규, 「한국 근대소설에 나타난 구어전통과 서구의 상호작용」, 『배달말』 38, 배달말학회, 2006. 6. 353쪽 참고.
4-1. 인물의 꼴라쥬: 김유정 소설인물의 해체와 인용
원작 소설 <봄봄>은 이름이 부여되지 않은 ‘나’의 서술로 이루어진 텍스트이다. 이 원작소설의 서술형식은 공연대본 <봄봄>에서 소설의 ‘나’가 기석이라는 이름을 지닌 인물의 행위와 대사로 인용되었으나, 그 성격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따라서 무대의 “나”는 정당한 댓가를 받지 못한 데릴사위의 불만으로 시작한 장인과의 갈등이라는 점에서 원작의 주제를 계승하는 방식에서 소설인물을 빌렸다. 이와 달리 <김유정 봄ㆍ봄> 공연텍스트는 소설 인물의 발화내용과 행위에 주목하여 인물을 객관적으로, 즉 극적인 행위로 전환할 수 있는 다른 김유정 소설의 인물과 그 인물들의 담화를 인용하였다. 원작에서 잔뜩 게으름을 피우며 밉게 노는 데릴사위의 생명력에 주목한 극작가(오태석)는 다른 소설에서 더욱 노골적으로 불만을 표출하고 엇나가는 ‘덕달’이라는 생생한 인물과 조합하여 감각적으로 생생한 생명력을 지닌 무대인물을 구성하였다(실제 무대의 덕달이는 일렬이 못지않은 우람한 인물이었다). 두 공연에서 드러나는 인물을 구성하는 극작법의 차이에 주목해 보면, 극작가가 김유정 소설인물의 극적 행동이 드러난 단편들을 접목하여 인물을 구성하는 방식에 대해 기술해 볼 수 있다.
본문에 인용한 가)는 원작 소설인데, 이 소설이 단순한 서술이 아니라 행위가 가능한 다중적인 담화를 포함한 연행적 서술형식미에 주목해 보았다. 이 서술에는 장면, 인물의 발화형식, 장인과 나의 언어가 교차하며, 등장인물의 성격을 복합적으로 포함하였다. 소설은 인용한 가)에서 “장인님이 일어나라고 해도 내가 안 일어나니까 눈에 독이 올라서 저편으로 힝하게 가드니 지게막대기를 들고 왔다.”처럼 서술자가 다중적으로 바뀌면서 인물간의 관계가 드러나는 서술문장으로 구성되었다. 그리고 오태석의 대본에 적극적으로 인용되거나 음악형식에 삽입되어 공연텍스트의 담화로 활용되었다. 예를 들면, 이 원작소설의 마지막 서술은 공연에서 갈등을 드러내는 1막의 갈등장면으로 구성되었다. 특히 가)에서 '나'의 서술문장은 나)의 <봄봄>공연텍스트에서 장인인 봉필과 갈등장면으로 인용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소설의 서사에서 장인과 나의 행위가 드러나는 부분은 나)의 공연대본에서 지문과 인물의 담화로 인용되었다.
가) 소설 <봄봄>
나) <봄봄> 출판 공연대본
이러한 인물구성의 기법은 믿을 수 없는 매개자 때문에 사랑에 실패하는 식민지 청년들의 이야기를 소설 <금따는 콩밭>, <총각과 맹꽁이>에서 젊은 청년 ‘기석’과 ‘덕달’을 인용하면서 인물구성의 단위를 형성하였다. 즉, 이번 공연에서는 무엇보다 욕망에 몸부림치는 청년의 이미지가 은유 혹은 환유된 것이다. 극작가는 원작 <봄봄>에서 결혼을 원하는 ‘나’와 <금따는 콩밭>에서 금점에 대한 욕망에 들뜬 기석, 그리고 <총각과 맹이>의 본능적인 생명력을 드러내는 덕달을 조합하여 예기치 못한 인물을 구성했다. 그 결과 원작인 <봄봄>의 ‘소처럼’ 우직하기만 하던 ‘나’는 적당히 시류에 영합하고 욕망하는 것에 몸을 던지는 젊은 ‘덕달’로 지금-여기 관객 앞에 등장했다. 2012년 관객과 소통을 위한 의미 있는 기표로서 오태석은 거듭난 공연을 통해 원작소설의 ‘나’를 ‘기석’에서 ‘덕달’이라는 욕망하고 도전하는 인물로 재구성하였다. 결과적으로 김유정의 소설 인물들을 해체하고 인용하여 무대인물로 형상화 하는 극작술을 구사했다.
다) <김유정 봄ㆍ봄> 공연 대본
김유정 소설을 출처로 접합시킨 이 미완의 청년(소설에서 매번 사랑에 실패하는 행위자로 나오는)에게 오태석은 사랑하는 여인을 자전거에 태우고 무대를 가로질러 유유히 떠나는 움직임을 부여하였다. 이 실의와 좌절에 빠진 청년을 그린 문학텍스트를 인용하는 과정은 초연 때와 분명한 차이가 있다. 그 차이는 ‘덕달’이 금의환향하여 갈등에 정면도전하는 역동성을 지닌 인물로 무대에서 자전거를 타고 등퇴장하는 놀이요소에서 확인할 수 있다. 문학텍스트를 무대의 현장감각과 꼴라쥬하면서 관객의 감각을 자극하였다는 점 때문이다. 이러한 인물구성의 극작법은 오태석이 관객의 욕망을 '덕달'에게서 찾을 수 있도록 주제적 내용을 물질성으로 표현한 것이다. 기존의 익숙한 <봄봄>의 바보이미지가 강한 청년이 아니어서 이 인물의 변화에 낯설어 하는 관객의 지각반응을 기대하는 것이 이 공연과 극작 생성의 의미다. 덕달의 복잡한 심정은 김유정 소설에 등장하는 사랑에 실패한 총각들의 꼴라쥬에 의해 관객의 지각의 층위를 다층적으로 자극하는 극작과 연출방식의 예를 보여주었다.
초연 <봄봄>은 원작소설에 노동현장을 풍성함과 흥겨움으로 넘실대는 축제행위를 접목하여 공연을 구성하였다. 이처럼 초연은 김유정의 단편소설과 판소리의 서사와 음악, 민요의 인용과 삽입으로 원작소설의 주제에 기여하는 꼴라쥬 기법을 확인할 수 있다. 앞에서 소설인물을 인용하고 무대행위로 접목한 방식에 대해 살펴보았듯이 <김유정 봄ㆍ봄>은 소설의 공간이 극적공간으로 인용되고 이 소설텍스트에 무대놀이 요소가 삽입되는 꼴라쥬 기법을 확인할 수 있다. 초연과 가장 큰 차이이기도 한 1막 무대는 노동상황을 재현하는 극적 행위가 다르다. 마치 김유정 소설의 오마쥬처럼 보이는 이 장면은 소설 <총각과 맹이> 소작농들의 입씨름 장면을 공연의 프롤로그처럼 삽입하여 구성하였다. 뙤약볕 아래 기다리는 새참은 오지 않고, 일하는 밭은 돌덩이가 투성이인 열악한 극적 공간은 소설텍스트의 한 부분으로 인용되었다. 그런데 소작농들은 이 무대에서 역설적으로 일하고 있다. 배우는 대사에서 한탄이나 불만을 주절거려도 몸놀림은 흥겨운 춤사위가 나오고 입에서는 타령이 주절거려지는 역설을 연기하도록 극적 행동이 구성되었다.
이렇게 해서 1막은 소설에 묘사된 장면 서술이 극적공간을 구성하는 지문으로 활용되었고, 소설 인물의 담화가 극적 담화로 인용되었다. 또한 소설의 서사와 다른 이질적인 감각을 접목하여 복잡한 삶의 한 국면을 배우들의 노동하는 몸으로 감각적으로 표현했다. 결과적으로 삽입된 소설 <총각과 맹이> 는 <김유정 봄ㆍ봄>의 공연텍스트에서 1막의 강렬한 미장센이 되었다. 1984년 <봄봄>에서 14~15행 정도로 극적 행위를 제시했던 세밀했던 지문은 원작소설의 서술을 활용하여 극적 공간과 주제를 재현하였다. 초연에서 극적 서사와 주제로 인용되었던 소설의 서술은 <김유정 봄ㆍ봄>공연에서 극적 언어로 다채롭게 재현되었다. <봄봄>의 공연과 달리 적극적으로 해체한 김유정 소설을 삽입하고 놀이, 노래, 배우의 몸짓 등 무대요소와 꼴라쥬한 흥미로운 사례다. 초연에서 해당내용의 지문은 단 한 문장으로 압축적으로 무대와 극적 행위를 제시하는 방식으로 바뀌었다.
이 지문은 김유정의 소설 <총각과 맹이>에 나오는 소작농들의 행위이자 공간에 대한 정서를 제시하였다. 이 간략해 보이는 지문은 ‘피한 시선’23)을 관객에게 돌리는 연출지시를 포함하였다. 원작 소설의 서사와 비교해 보면, 이 지문은 <김유정 봄ㆍ봄> 공연텍스트에 문학과 꼴라쥬를 시도한 연출의 의도가 반영된 표지임을 확인할 수 있다.
<총각과 맹이> 소설텍스트를 삽입함으로 해서 이 공연텍스트는 지금-현재 공연의 관객에게 납득할 만한 사건의 국면을 제시하는 기법을 구성하고 있다. 원작 소설에서 “그들은 묵묵하엿다. 조밧고랑에느러백여서 머리를숙이고 기여갈이다. 마치 을파는 두더지처럼-.”25)으로 묘사된 서술은 그대로 공연의 장면에 삽입되었고 인물의 극적 행위로 인용되었다. 이렇게 오태석은 <총각과 맹꽁이>의 배경과 대화를 인용하는 방식으로 <김유정 봄봄>의 연극담화를 인용했고 장면을 연출하였다. 이 장면에서 농부들의 대화는 처한 상황을 각자의 입으로 전달하되, 관객에게 비극적 강렬함으로 주제가 전달되지 않도록 연출되었다. 특히 비현실적으로 무대를 비우고 강렬한 조명만으로 지루한 일상을 회화적으로 구성하도록 지시한 무대연출은 소설의 서사에 묘사된 부분이 인용되었다. 이 장면은 비교적 다른 대본과 달리 지문의 기능은 약화되었다. 따라서 실제로는 대사와 연출지시26)를 염두에 두고 볼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소설의 서사를 무대놀이(조명 디자인)요소와 접목하는 꼴라쥬 기법으로 구성된 장면이기 때문이다.
<김유정 봄ㆍ봄>공연 1막은 뭉태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소설 <총각과 맹이>에서 마을 청년들이 들병이를 두고 대화하는 장면이 인용되었다. 원작 소설 <봄봄>과 무관하게 공연텍스트에 1막 첫 장면은 다른 소설 서사에 묘사된 소작농들의 태도를 극적 행위로 인용하였다. 특히 소설 <봄봄>에서 주인공 “나”가 밉살스러워 하던 소작농 ‘뭉태’는 이 공연에서 인용되는데, 그 방식이 무대의 극적 서술자로 삽입되어 소설 원작뿐만 아니라 초연과도 매우 다르다. 여기서는 김유정 소설 도처에 등장하는 뭉태를 통해 <김유정 봄ㆍ봄>에서 공연의 시작과 등장인물 사건전개 등을 알리는 서술자로서 극적 행위를 구성한 방식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초연 <봄봄>에는 등장하지 않는 이 인물은 <김유정 봄ㆍ봄> 1막에서 등장인물이면서 때때로 서술적 자아의 역할을 하는 ‘내부적 소통구조 안의 서술적 자아’의 역할을 하고 있다.
1막에서 뭉태는 이 공연이 김유정 소설의 인용으로 구성되었음을 알리는 행동을 한다. 막 등장하는 봉필의 둘째 딸 필순의 등장을 거드는 장면에서 뭉태는 필순의 등장을 관객들이 주시하며 볼 수 있도록 필순의 등장에 따라 몸동작과 장단을 맞추었다. 또한 추임새를 해주며 필순에게 스포트라이트가 맞춰지도록 유도하기도 하였다. 관객석 쪽에서 노래를 부르며 등장하는 필순이에게 뭉태는 “들병이 왔네요~” 하며 가볍게 대사를 관객에게 던져 사건의 국면이 전환된 것을 알리는 행위를 한다. 즉 장면의 전환이 이 인물의 행동으로 표현된 것이다. 뭉태는 이 장면에서 즐거워하며 관객들에게 필순을 가리키며 “헤헤! 들병이 왔네요”하고 주지시켜주며 리듬을 짚어주었다. 이때, 관객은 앞서 소작농의 지루한 노동현장에서 빠져나와 이 공연의 모티브인 소설 <봄봄>이 삽입된 극적 공간으로 자연스럽게 유도되었다. <김유정 봄ㆍ봄> 공연에서 뭉태라는 등장인물에게 부여된 서술형식은 이 공연에서 전광판을 이용해 낯선 민요의 가사를 보여주는 방식처럼 1984년 공연과 달리 비서술적인 형식의 확연한 차이를 만들었다. 이 인물은 <김유정 봄ㆍ봄>이 소설의 다양한 서사와 인물을 인용하고 극적공간에서 벗어나기도 하면서 관객의 주의를 끄는 꼴라쥬기법으로 연기방식을 보여주었다.
두 공연은 서로 다른 무대놀이요소 즉, 연극성을 달리 삽입하면서 같은 원작을 재구성한 작품이지만 그 기법상 다른 꼴라쥬 무대를 만들었다. 1막 첫 장면에서 <봄봄>이 젊은 머슴과 풍물패가 농사찬가 도리깨질요 등의 타령 소리로 무대를 채우는 방식이었다면, <김유정 봄ㆍ봄>은 김유정의 다른 소설텍스트를 적극적으로 삽입하여 머슴들의 탄식과 넋두리의 발화형식으로 구성한 차이가 있다. 이렇게 전통 음악을 삽입하여 연극담화를 구성하는데 충실했던 초연과 비교할 때, 소설인물의 담화를 활용한 문학적 꼴라쥬 형식은 이 공연의 연행성의 자질을 전환시켰다. 그 예는 실제 대본 <봄봄>에서는 100~103쪽의 분량이 <김유정 봄ㆍ봄>에서 삭제된 부분에서 확인해 볼 수 있다. 이 부분은 극적 행위로서 긴장감을 떨어뜨리는 비경제적인 부분을 과감히 배제한 연출가로적 행위로서 긴장감을 떨어뜨리는 비경제적인 부분을 과감히 배제한 연출가로서의 선택이 대본에 적용된 것이기도 하다. 그리고 소설 속 서술자인 소작농에 의해 묘사된 숨막히는 노동현장은 조명형식의 무대장치로 꼴라쥬하는 회화적 모색이 접목되었다.
2막으로 전개된 이 공연은 초연과 달리 각 막의 서두에 서술적 자아를 제시하였다. 그 결과 뭉태의 역할은 1막 말미에 새로운 서술자인 대장간댁으로 2막에서 전환되었다. <김유정 봄ㆍ봄>공연에서 연출은 조금 더 복잡해진 현재 우리사회의 환경을 고려한 듯 극적 인물이 처한 복잡한 국면들을 소설인물을 해체적으로 인용하고 접목하여 구성했다. 초연과 실제 무대는 변화가 없었지만 배역의 연행방식에 의해 극적 공간은 복잡한 이해관계와 복잡해진 현실문제, 복잡한 내면세계를 지닌 인물들의 이야기로 중첩되었다.
원작소설을 기준으로 초연 <봄봄>과 비교해 보았을 때, 인물구성의 차이는 주로 젊은 청년과 소작농들에게서 나타났다. 이들은 다른 김유정 소설인물의 행동과 발화형식으로 인용되었고 극적 행동과 접목되면서 <김유정 봄ㆍ봄> 공연으로 구성되었다. 오태석의 대본이 대개 그러하듯이 극 행위와 상황을 지시하는 지문은 많은 부분 생략되었다. 특히 이 공연에서는 소설텍스트의 서술문장을 출처로 문학적 인용과 목화 특유의 놀이 행위가 접목되었다. 그래서 이 공연은 젊은 인물의 욕망과 불안한 심리상태와 이를 지켜보는 기성세대 간의 복잡한 갈등관계가 한바탕 소란과 신명의 난장으로 상호텍스트적으로 결합되었다.
20)인용한 본문은 김유정 소설에서 말의 어감과 리듬을 생생하게 드러낸 원본 그대로 표기한 것임을 밝힌다. 김유정, 전신재 편, 앞의 책, 166-167쪽. 21)오태석, 『공연대본 전집』 8, 연극과 인간, 2003, 85쪽 22)이하 본문에서 인용한 공연대본은 <김유정 봄ㆍ봄>, 2012년 남산국악당 공연대본이며, 각주 없이 인용한 괄호에 면수만 기록함을 밝힌다. 23)오태석은 한국연극의 말의 리듬은 시선의 문제와도 결부되어 있다고 본다. 관객을 향한 배우의 시선은 말의 함축과 비약을 이끌어 무대 위에 살아있는 현장성을 극대화 할 수 있는 연출방법으로 활용하고 있다. 이에 대해서는 그의 2000년 4월 14일, 한국문화예술진흥원 강당에서 진행했던 강연원고 「연극과 인생, 관객과 편안하게 만나는 연극을 위하여」를 참고로 하였다. 24)이 인물은 김유정의 소설에서도 자주 등장하는 건달형의 유형적인물이다. 특히 김유정의 소설 <총각과 맹이>(김유정, 『신여성』, 1939. 9)에서 ‘뭉태’라는 인물이 처음 등장하는데 이 인물은 이후 유정의 작품 <솟>, <봄봄>, <안해>에도 등장한다. (김유정, 앞의 책, 162쪽 참고) 25)김유정, 전신재 편, 앞의 책, 29쪽. 26)“그냥 언덕 밭이야 버린 언덕. 돌멩이를 옮기니까 허리가 아프다는 식의 농촌 소작인들의 연기를 사실적으로 설명하는 식의 연기는 맞지 않아. 관객을 혼란스럽게 하지 말자고. 양식화된 무대에서 상상력을 갖고 어느 농촌무대를 상상하는 관객에게 너무 디테일하게 공간을 장식하는 연기는 관객을 혼란스럽게 한단 말이야. 관객이 익숙하지 않은 방식으로 연기하라고. 관객들로 하여금 정체성을 인식하도록 하기 위해 속도감 있는 유머를 전달해야 한단 말야. 이를 위해 더욱 양식화된 연기로 장면을 표현하자.” 필자 기록, 남산 국악당 리허설노트, 2012. 10. 23. 오후 4시 20분.
한국적 뮤지컬을 내세운 초연 <봄봄>과 음악극 <김유정 봄ㆍ봄>은 등장인물이 노래를 하는 언술행위로 담화를 구성하는 공통적인 특징이 있다. 등장인물은 노래를 할 때 그 노래를 정전삼아 자신의 배역으로부터 거리를 두고 관객에게 극중 사건과 자기배역에 대해 논평하거나 의미를 부여하는 방식이었다. 오태석은 김유정의 소설로 극중 서사를 유도하고, 판소리나 민요 등을 정전으로 인용하며, 담화의 한 양태로 활용하였다. 극작가는 장르가 이질적인 음악적 담화를 삽입하여 미적 쾌감을 부르고 김유정의 소설텍스트를 인용하는 극작법을 구성했다.27) 그 결과 초연 <봄봄>은 도전적으로 젊은 머슴들과 가을 타작 마당의 흥겨움을 돋울 장치로 원작소설에 없는 풍물패가 등장한다. 북적북적 대는 축제의 어수선함은 젊은 소작농들이 농사찬가와 도리깨질요 등의 타령소리로 시작하는 연행행위를 앞세워 소설공간을 음악적 담화와 접목하는 극작술에 의해 마련된 감각이었다.
<봄봄> 공연은 일상생활을 창(唱)으로 표현하고자 하는 공연제작의 분명한 의도가 있었다29). 따라서 많은 공연대본의 지면을 미루어 볼 때 1984년 공연에서 다수의 판소리 창(昌)과 판소리 매목을 인용하여 장면전개의 통사구조로 활용한 특징이 나타난다. 이 공연에서 안숙선이 점순이를 연기한 사실은 이 공연의 담화구성의 특징을 암시하고 있다. 가령 이 대본에서 점순과 기석이 나누는 대화는 심청가와 춘향가 대목의 창을 인용하며 정서를 전달하는데, 이는 담화의 이질적인 조합으로 극적 감각을 구현하는 극작술의 기법이었다.
오태석은 연극에서 여성을 자주 현실의 대안이자 욕망의 대상, 희생양을 상징하는 기표로 활용했다. 전통적인 음성과 음악성을 여성인물의 몸을 통해 현재관객에게 하나의 연극적 틀을 제공하기 위해 제스쳐의 도구로서 여성의 몸을 구성한 작품이 다수 있다. 예를 들면, 미얄과정의 미얄할멈이 전환된 <춘풍의 처>에서 처, <심청이는 왜 두 번 인당수에 몸을 던졌는가>에서 심청의 모습을 인용하는 방식이다. <김유정 봄ㆍ봄> 텍스트에는 이러한 여성인물의 극적이고 메타비평적인 기능은 들병이라는 문학적 인물이 내포한 연극성을 근거로 인물이 형상화 되었다. 이 인물의 꼴라쥬적 형상화 가능성은 본래 ‘들병이’에 대한 김유정 소설의 애착에서 발견되고 있다. 김유정은 조선의 집시라고 칭하며 그의 여러 단편소설에서 들병이를 자주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춘천아 봉의산아 잘 있거라 신연강 배타면 하직이라”하며 춘천아리랑 등을 부르는 노래하는 인물로 형상화 했다. 그리고 이 들병이의 몸을 빌어 식민지조선의 현실을 구현하였다. 따라서, 김유정 소설에서 음성적이고 음악적인 울림을 전하는 들병이는 노래하는 연행자이고 물질적 존재였다.30) 볼거리와 명창을 내세웠던 초연에서 연행성은 새로운 감각으로 <김유정 봄ㆍ봄> 공연대본에서 전환되었다. 특히 공연에서 부정을 막고 액막이를 하는 하나의 기표로 구성되었을 뿐 만 아니라, 들병이는 초연에서 부가텍스트로 연행되었던 판소리 창의 음악성을 다양한 음악형식으로 재현하여서 이 인물의 극적 행동(제스춰)은 다양한 층위로 표현하는 인물이 되었다.
두 공연 모두 들병이는 2막 불 받는 장면에서 등장하였으며, 초연에서 적극적으로 들병이의 희생양 모티브를 드러내는 극적 행위가 수반되었다. 대표적으로 초연인 1984년 대본에는 판소리 심청가에서 심봉사에게 하직 인사하는 대목을 인용하고 있다. 마을의 액막이를 위해 불을 받는 역할로 불러들여진 제의의 희생양모티브 연장선에서 주제를 드러내기 위한 극적 행위로 판소리 연행형식을 꼴라쥬하였다. 초연에서 들병이는 자주 마을사람들과 대화에서 판소리 심청가 등의 극적 행위를 인용하였다.
연극언어의 이질적인 조합으로 구성된 초연은 <김유정 봄ㆍ봄>에서 전형적인 전통연극의 연행형식을 전형적으로 인용하기보다 ‘들병이’라는 여성인물을 매개적 화자로 형상화 한 특징이 있다. 이 인물은 2막에 등장하여 민요에서부터 현대적인 창가와 가요, 제의적 행위를 표현하는 음악과 춤사위, 만담까지 경계 없이 다양한 극적 행위를 연기하였다. 따라서 <김유정 봄ㆍ봄>에서 연극성은 오태석 연극의 놀이적 특징인 이질적인 극적 행위의 조합이 김유정 소설의 '들병이'라는 시적인 행위자에 의해 구성되었다는 점에 주목할 수 있다. 그것은 오태석이 김유정 소설에 대한 관객의 기억, 추론, 예측, 연상의 인지적 사고과정을 염두에 두고 무대의 연행성을 모색한 결과 구성된 인물이기 때문이다.
<김유정 봄ㆍ봄>에서 수줍게 봉필을 따라 등장하는 들병이는 2막에서 무대에 등장함과 동시에 감추어진 충동을 드러내었다. 오태석은 최근 공연대본에서 祭物(제물)역할을 하는 들병이의 입을 빌어 극작가의 세계관을 노출하였다. <김유정 봄ㆍ봄> 공연에서 들병이는 <봄봄>의 비장한 심청이인 체 하지 않는다. 갑작스런 마을사람들의 편견에도 큰 갈등 없이 상황을 조화로운 분위기로 받아들이는 인물로 구성되었다. 관객의 입장에서 강원도 아리랑을 부르며 등장하는 이질적인 이 인물의 행위는, 강원도 산골의 청아한 목소리인 듯 관객의 감각을 이끌어내었다.
2012년 공연 서두에서 젊은 소작농들의 욕망의 대상으로 언급되었던 이 인물은 마을의 액을 막는 부적으로서 공동체 삶의 매개체로서 역할 앞에 갈등하고 도전하는 생명력이 있는 인물로 전환되었다. 초연 <봄봄> 2막에서 들병이는 불씨를 받아 마을의 액막이를 하는 모임과 제의에서 비극적 행위를 하는 인물로 구성되었다. 그런데, 2012년 관객들 앞에 다시 호명되는 들병이는 심청이와 다른 맥락에서 현재화 되었다. 최근 공연에서 들병이는 그 역할이 <봄봄>보다 상징적이며 은유적으로 표현되었다. <봄봄>의 들병이와 달리 몸팔아 생계를 유지하는 인물의 사회성보다는 관객현실의 극적 메타포로서 역할을 하였다. 결국 초연 대본의 비장한 들병이는 자신의 역할이 무엇인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발랄한 인물로 전환되었다.
위 노래처럼 마을 사람들이 당집에 모여 불씨제를 올릴적에 후렴구를 받아 부르며 비장한 집단무의식을 유쾌한 감각으로 전환하는 행동을 하기도 하였다. 또한 강원도 실레마을의 제의를 주관하는 평수(무당)와 쌍을 이루며 무대에서 산대극 한 대목을 놀거나, 마을제사 끝에 신명을 돋우기 위한 노래판으로 신명을 일으키며 관객의 감각을 자극하는 강력한 물질적 존재가 되었다. 공연에서 마을의 액막이를 위해 불려온 들병이는 단순히 소설 텍스트 인물의 인용에 그치지 않았다. 이 공연의 극작술상 특징은 소설텍스트와 이질적인 장르를 결합하는 기법인데, 이 기법은 노래하는 들병이라는 여성의 몸과 연행성으로 조합한 인상적인 꼴라쥬를 이룬다. 평수가 관객을 향해 축문을 외며 끝나는 이번 공연은 “들병이 불받아 달린다”는 지문으로 마무리 되었다.
제의행위를 공연텍스트의 중요한 메타드라마로 구성하는 오태석 극작법에서 이 인물은 새롭게 구성된 인물이자 형식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따라서 이번 공연에서 김유정 소설을 출처로 삽입된 들병이는 여성유랑자의 몸과 음성을 빌려 극단 목화와 오태석이 전달하고자 했던 연극성이 접목된 꼴라쥬적 인물의 극작법을 보여준다. 극적 담화의 구현자이며, 관객의 감각과 소통이 유용한 방식으로 환원하는 매개적 인물이었다. 특히 들병이가 공연무대에서 관객들에게 친숙한 소양강 처녀를 부르며 신명과 흥의 감정을 이끈 것은 초연과 다른 감각적 생명력을 표현하는 극작기법이었다.
27)오태석은 <김유정 봄봄> 공연에서 “다 차려놓고 감쪽같이 보여주는 서양연극이 아니라 관객과 함께 숨쉬기를 하는 음악극을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김유정은 치욕적인 시기에 하층민들의 빛과 그림자를 소탈하게 웃음으로 풀어놓았어요. 진한 아픔을 담은 웃음은 지금 시대에도 유효”하다고 말했다. 정상영, 「오태석의 대동굿, 흥에 겨워 눈물도 웃소」, 『한겨레 신문』, 2012. 6. 18. 28)오태석, 앞의 책, 75쪽. 29)“창(唱) - 우리의 소리를 그대로 놔 둬서는 안된다는 생각, 거침없이 내달리는 세파 가운데 우리 것들의 태반이 바래져 가고 있는 마당에 창(唱)이 생활의 소리가 되도록 생생하게 살려내려는 우리들의 노력이 두번째로 이어지고 있읍니다. 작년 <메밀꽃 필 무렵>의 김소희 선생님, 길옥윤 선생님, 그리고 우리 출연진 대개가 새로운 형식에 숙련되고 전문성을 띄기를 바라는 MBC의 배려로 해서 이번에도 작업을 같이 하고 있읍니다.” (오태석, <봄봄> 1984. 4. 문예회관 공연 팜플랫 가운데) 30)유인순, 「김유정과 아리랑」, 『비교한국학』, 20권 2호, 국제비교한국학회, 2012, 207쪽. 31)오태석, 『오태석공연대본전집』 5, 연극과 인간, 2005, 144쪽.
이상으로 오태석이 김유정 소설을 상호텍스트적으로 해체와 인용을 통해 극작술의 기법을 구성해 가는 과정을 살펴보았다. 이 연구는 소설텍스트에서 공연대본으로 다시 소설과 이질적인 장르를 꼴라쥬하여 다른 공연대본으로 전환되는 과정을 비교해 보았다. 그 결과 그의 극작과 연출의 상호텍스트적 생성과정을 확인할 수 있었다. 먼저, 김유정 소설의 언어를 공연의 물질적인 무대담화로 구성한 배경을 살펴보았다. 그리고 오태석이 연극언어를 탐구했던 연장선에서 소설텍스트를 인용한 기법에 대해 서술하였다. 이를 근거로 <김유정 봄ㆍ봄>이 김유정의 소설에서 서사와 인물, 언어형식을 인용하거나 삽입하는 과정에 과감히 극적 행위와 꼴라쥬 하는 기법을 볼 수 있다. 극작술의 꼴라쥬 기법은 원작소설과 초연 <봄봄>, 그리고 이 이질적인 장르를 해체하고 인용한 <김유정 봄ㆍ봄>에서 극작법으로 구성되었다. 오태석은 치밀한 언어감각 탐구 결과, 김유정 소설을 소재적이고 기능적으로 활용하였다. 그리고 그 소설이 담지하고 있는 음악과 연극성을 무대에 인용하였고 이와는 이질적인 연극 언어와 조합하였다.
이 글이 오태석 희곡과 대본이 지니고 있는 특수한 역동적 에너지, 독창성, 그리고 연극적 인습에 관한 지적이고 활기찬 실험, 게다가 궁극적으로는 무대매체와 극작 행위자체에 대한 즐거움에 충분한 주의를 기울였을지 의문이다. 이 의문은 오태석의 극작과 공연의 상관관계에 대한 연구에 주의를 기울일 필요에서 온다. 문학적 희곡으로서 창작과정에 대한 연구라면, 미학적인 측면에서 작품과 직접적 연관이 없는 전기적 사실이나 역사적 배경 등의 논의를 지칭하는 선에서 이해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 연구는 오태석의 연극적 관습에 대한 지적이고 활기찬 실험을 통해 한 시대에 극작가가 연극관습을 상호텍스트적으로 조직하여 극작과 연출을 하는 과정에 주목했다. 그래서 극작가가 창작 과정에서 소재와 매체 사이의 미학적 처리를 위하여 강구하는 꼴라쥬적 기법에 주목해 보았다.
그 결과 극작가가 소설이라는 문학텍스트를 인용하고 관객의 정서를 울리는 음악언어를 삽입하면서 꼴라쥬로 구성한 극작법을 살펴보았다. 오태석은 꼴라쥬가 인용행위로 수행되는점에 착안하여, 인용된 문학텍스트와 다층적인 연극언어의 꼴라쥬를 통해 메타비평적인 기능을 구성했다. 그런 점에서 <김유정 봄ㆍ봄>은 1930년대 민중에 대한 애정과 그들 삶의 생명력에 대한 존엄성을 주제로 극작기법을 모색하면서 구성된 공연이다. 무엇보다 오태석이 <김유정 봄ㆍ봄>에서 김유정소설을 연극언어와 꼴라쥬한 극작법은 관객의 예술적 지각에 대한 믿음 위에서 가능한 문학적이고 지적인 유희였다는 점에서 의의를 찾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