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dissertation has been written with a purpose to examine and to understand the scripts of radio dramas on North Korea in 1950’s. This paper analyses six works, When the siren goes off, Nakdong River, Swallows in mountain, Touch-me-not, Wild goose and Home. This six works reflect the symbols of auditory sense and peculiarity on style of radio dramas in 1950’s. Until now, considerable debate on movies of North Korea has been conducted but, considerable debate on the scripts of radio dramas has not. Recordings and data about the a work of esthetic value in 1950’s can said that reliable documents do not exist. The study of the scripts of radio dramas on North Korea in 1950’s should be gathered in understanding correctly the strength and weakness on radio drama aesthetics, in obtaining critical vision including urgent problems of contemporary North Korea’s radio drama and broadcasting artistically and in wise critical intervention giving rise to writing a work.
1957년에 북한에서 발간된 《방송극집》은 라디오 드라마 대본집이다. 이 대본집은 현재까지 발견된 가장 오래된 북한 라디오 드라마 대본집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대본집에는 총 4부 12편의 라디오 드라마 대본이 수록되어 있는데, 본고는 이 중에서 2부 6편의 드라마 대본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 2부는 남한을 소재로 한 라디오 드라마가 집중되어 있는 장인데, 6편 모두 북한 정권의 정당성을 선전하고 남한 정부의 무능함을 비판하는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다. 북한의 1950년대 라디오 드라마가 대남 선전의 중요한 도구가 되고 있다는 결정적 증거라고 할 수 있다. 본 논문은 6편의 라디오 드라마 대본을 소개하고, 각 드라마 대본에 담겨 있는 북한의 정책을 실증적으로 검토한 연후에, 1950년대 북한 라디오 드라마 대본의 개성과 미학을 정리하고자 한다.
김일성은 1946년 2월 8일 ‘북조선 민주주의 정당, 사회단체, 행정국, 인민위원회 대표협의회에서 한 보고’에서 “벌써 북조선에서는 30여 종의 신문들이 발간되고 있으며 각 급 학교에서 쓰는 교과서와 서적들이 우리말로 출판되고 있으며 우리말 방송이 실시되고 있”다고 말했다.1) 1946년에 이미 조선어 방송이 시행되고 있었던 것이다. 실제로 김일성은 1946년 3월 23일에 「20개조 정강」이라는 방송연설을 하기도 했다.2)
김일성은 1946년 4월 8일 ‘북조선림시인민위원회 제6차 회의에서 한 결론’에서 방송 시설의 필요성과 시설 확충을 주장하고, 체신 시설 관리와 감독을 강화해야 한다고 말하면서, “체신국에서는 개인과 기관들이 가지고 있는 라지오를 조사장악하며 단파송수신기를 다 등록하고 철저히 통제하여야 하겠”다는 의견을 덧붙이기도 했다.3) 이러한 교시는 라디오를 이용한 미국의 선전 방송을 염두에 두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김일성은 남한과 미국에서 송출하는 라디오 방송에 대해 깊은 우려와 반감을 표시한 적도 있었다.4)
김일성과 북한이 경계했던 선전 방송의 시작은 194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미국은 1942년 2월 BBC 네트워크를 통해서 독일어 방송을 개시하였다. 이른바 ‘미국의 소리(Voice of America, 일명 VOA)’로 명명된 이 방송은 미국 최초의 해외선전방송이자 심리전의 수단이었다. 2차 세계대전 종전 후 이 방송에 대한 존폐 논란이 일었지만, 미국은 1945년 8월 31일 미국의 소리를 국무부로 이관하여 선전 정책을 이어갔다. 조선 군정기에 이 방송은 미국정부의 정책을 선전하기 위한 매체로 활용되었으며, 우익을 지원하고 좌익과 중도파를 배격하는 수단으로 이용되었다. 정부수립 후에는 대한민국의 생존을 지원한다는 정책에 따라 신생 정부를 지원하는 선전 활동을 펴나갔다.5) 북한 당국으로서는 당연히 ‘미국의 소리 한국어 방송’에 대한 경각심을 높일 수밖에 없었다.
김일성은 공식/비공식 연설 석상에서 라디오 방송의 중요성에 대해 종종 강조하곤 했다. 특히 그는 8.15 광복 이후 북한이 라디오 방송을 이어가고 있다고 밝히고, 그것은 ‘광범한 인민대중 속에서 민주주의 선전교양 사업’을 활발히 추진하기 위해서라고 설명하고 있다.6) 그러던 즈음 북한은 1946년 12월 ‘북조선통신사’를 창립하고, 본격적인 방송 전쟁에 돌입하였음을 선언했다. 이 북조선통신사는 1948년 ‘조선중앙통신사’로 이름을 바꾸고, 2000년대까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국영통신사로 활동하고 있는 북한 최대의 통신사이다.
북한이 북조선통신사를 설립한 까닭도 미국과 대한민국의 선전전에 대항하여 사상 선전전에서 우위를 차지하기 위해서이다.7) 그래서 이후 북한 측은 방송국의 신설‧확대와 송출 출력 증강에 꾸준하게 힘을 기울여나갔다. 1947년 2월 19일 시점에서 북한의 방송 시설을 살펴보면, 평양에는 15킬로와트 출력의 라디오 방송기가 설치되었고, 철원에는 250와트 출력의 라디오 방송국이 건설되었으며, 강계에도 방송국이 건설되고 있었다.8) 1947년 5월과 9월에도 방송시설 증강과 확충에 관한 담화가 발표되었다.9) 담화의 내용은 주로 방송시설 확대와 그 필요성에 대한 교시였다.
전쟁 시기인 1950년에 접어들면, 김일성은 방송을 통한 연설을 확대해 나갔고, 방송을 통해 전황을 설명하거나 전쟁을 독려해 나갔다.10) 이것은 전쟁기 북한에서 라디오 방송이 존재해야 했던 실질적 이유이다. 1956년 3월 1일 김일성은 ‘문화선전성 책임일군과 한 담화’에서 「문화선전사업을 개선 강화하는 데세 나서는 몇 가지 문제에 대하여」라는 중대한 발표를 내놓았다. 여기서 그는 북한에서의 방송이 “우리 당의 로선과 정책을 대내외에 널리 해설 선전하며 인민대중을 혁명과 건설에로 조직 동원하는 위력한 선전선동수단의 하나”라고 전제하고, “정치적인 론설만 계속 반복하여 내보내고 있는데 방송을 그렇게 하여서는 안 됩니다. 물론 정치적인 론설을 많이 방송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러나 방송에서 성과를 거두려면 정치리론 문제를 방송하는 것과 함께 경제문제와 과학기술문제, 역사와 문화 자료 같은 것도 여러 가지 형식과 방법으로 방송하여야” 한다고 지시했다.11)
이 교시에서 김일성이 언급하는 ‘문화 자료’에 대한 구체적인 예는 드러나있지 않다. 하지만 담화문의 앞뒤 문맥을 고려하면, 이러한 문화 자료에 드라마 같은 문학적 혹은 연극적 창작물도 포함된다고 이해할 수 있겠다. 따라서 1956년을 기점으로 하여 북한에서는 방송을 통해 허구적 창작물을 기획‧제작‧송출할 있는 정책적 기반이 확충되었던 것으로 판단된다. 이러한 북한의 정책 변화는 1957년 조선 작가 동맹 출판사에서 출간된 《방송극집》의 출간배경을 뒷받침한다.
《방송극집》에는 13편의 라디오 드라마 대본이 수록되어 있다. ‘차례’에는 13편의 작품을 4개의 항목으로 분류하고 있다. 비록 소제목과 일련번호는 없지만, 순서대로 1~4부로 명명할 수 있다. 첫 번째 항목인 1부에는 5개의 작품이 배치되었고, 두 번째 항목인 2부에는 6개의 작품이 배치되었으며, 세 번째 항목인 3부와 네 번째 항목인 1~4부에는 각각 1개의 작품이 배치되었다. 이중 2부에는 남한 지역을 공간적 배경으로 하여, 남한 사회 체제 하에서 고통 받고 갈등하는 인물 군상을 그린 작품들이 주로 배치되었다. 2부에 배치된 작품들은 남한 사회의 모순을 비판하고, 남한 주민들의 북한 체제 찬양을 선전하려는 성향이 다분한 작품들이다. 따라서 남한 주민들에게 북한의 우월성을 각인시키려는 목적이 우세한 작품이라고 하겠다. 본고는 2부에 수록된 여섯 작품을 분석 대상으로 한다. 작품의 제명을 열거하면 다음과 같다. 박혁 작 〈싸이렌 울릴때〉, 남궁만 작 〈락동강〉, 탁진 작 〈산제비〉, 홍건 작 〈봉선화〉, 한성 작 〈기러기〉, 박노을 작 〈고향집〉이 그것이다. 이 작품들은 국내에 제대로 공개된 바없기 때문에, 아직 본격적으로 연구된 적도 없다. 따라서 작품 소개를 겸하여 작품 별로 서사를 분석하고, 서사에 담겨 있는 북한의 정책을 당시 정세와 비교하여 살펴 본 연후에, 분석 결과를 바탕으로 1950년대 남한 사회를 소재로 한 북한 라디오 드라마 대본의 특징을 정리하고자 한다.
이 시기 북한은 라디오 드라마를 통해 남한의 청취자와 북한 체제 하의 주민들이 북한 당국의 선전 의도를 수용하도록 만들고자 했다. 비록 라디오가 청각 수단에만 의존하지만 “인간적 감성을 끊임없이 자극하여 극적 감동과 카타르시스를 확대 재생산하는 문학이자 방송 장르”12)이므로, 기본적으로 라디오의 서사는 청취자의 정서적 연대와 소통의 형성에 기여한다고 믿어졌기 때문이다.13) 또한 라디오 드라마는 태생적으로 시각적인 장면 처리가 불가능하다는 한계에도 불구하고, 이로 인해 이상적인 형태의 상상적 장면을 구축할 수 있다는 매력을 확보하고 있다. 라디오 드라마는 시각적 차원을 결여하고 있는 대신, “단순한 시간과 음향적 공간 안에서 이루어지는 공연이 매우 강렬한 시각적 이미지들을 마법적으로 불러내주기 때문”이다.14)
1950년대 북한의 라디오 드라마는 라디오 드라마가 태생적으로 가지고 있는 장점과 특성을 고려하고 이를 적극 활용하고자 했다. 특히 상징적 음향의 설정과 서사적 갈등 구조를 통해 이러한 미학적‧정책적 전략을 수행하고자 했다. 본고는 이러한 일련의 과정을 고찰하기 위해, 북한의 라디오 드라마에 북한의 선전 전략이 도입‧수용‧장착된 된 배경을 당시 김일성 교시를 중심으로 살펴본 연후에, 이러한 라디오 드라마 작품가 지니는 공통된 형식적 특징을 추출하여 정리하고자 했다. 이러한 작업은 자료상의 제한(현재까지 확보된 작품이6작품임)에도 불구하고, 역사적 실증 작업과 형식 구조 분석을 통해 1950년대 북한 라디오 드라마의 형식적 공통점을 고찰할 수 있는 기본적 토대를 마련할 것이다.
1)김일성, 『김일성 저작집』(2), 평양:조선로동당출판사, 1979, 16쪽. 2)위의 책, 61~62쪽 참조. 3)위의 책, 69쪽 참조. 4)위의 책, 168쪽 참조. 5)장영민, 「해방 후 ‘미국의 소리 한국어방송’에 관한 연구(1945~1950)」, 『한국근현대사연구』, 50집, 2009년 가을호, 200~202쪽 참조. 6)김일성, 『김일성 저작집』(2), 평양:조선로동당출판사, 1979, 109쪽 참조. 7)위의 책, 263쪽 참조. 8)김일성, 『김일성 저작집』(3), 평양:조선로동당출판사, 1979, 57~58쪽 참조. 9)위의 책, 159~239쪽 참조. 10)김일성, 『김일성 저작집』(6), 평양:조선로동당출판사, 1980, 7~73쪽 참조. 11)김일성, 『김일성 저작집』(10), 평양:조선로동당출판사, 1980, 54~55쪽 참조. 12)이상여, 「라디오 프로그램 제작론」, 『라디오 프로듀서 되기』, 한국방송출판, 2001, 223쪽. 13)김근호, 「이야기판과 서사적 정체성의 역학 관계」, 『국어교육학연구』, 제27집, 2006, 254쪽 참조. 14)마틴 에슬린, 김문환‧김윤철 역, 『극마당 : 기호로 본 극』, 1993, 36쪽 참조.
2. 남한 사회 소재 라디오 드라마의 형식과 주제 의식
박혁의 〈싸이렌 울릴 때〉는 남한 미국인 회사에서 일어나는 파업을 다룬 작품으로, 적대 계층으로 미국의 위세를 등에 업고 불법으로 회사를 경영하는 미국인 사장 윌슨을 등장시키고 있다. 그는 노동자 보호 시설을 하지 않거나 임금을 체불하거나 심지어는 불법 감금‧폭행‧고문‧사형(私刑)하는 등 폭압적인 지배자의 행태를 드러내고 있다. 이에 노동자들(투쟁 계층)은 단결하여 파업을 도모하려고 하자, 이를 눈치 챈 사장은 간부 사원 상근을 통해 노동자들의 지도자 격인 일형을 체포하고, 기밀문서를 다루는 타이피스트 박혜경을 자신의 편으로 끌어들이려 한다. 박혜경은 사장의 호의(뇌물)에 유혹당하지만, 마음을 돌려 노동자들의 파업에 동참하기로 결정한다.
작품의 도입부에는 두 가지 음향이 대조를 이루면서 배치된다. 하나는 ‘겨울날의 찬바람 소리’이다. 박혜경과 김일형이 출근길에 만나 나누는 대화는 ‘찬바람 소리’를 배경 음향으로 동반하고 있다. 이러한 음향은 계절적 배경인 겨울을 강조하면서, 동시에 노동자 계층이 처한 위험을 암시한다. 반면 간부들이 제시되는 장면(사장 윌슨의 방)에서는 ‘쟈즈 음악소리’를 배경 음향으로 사용하고 있다. 사장의 방에서 흘러나오는 재즈 음악은 타이피스트인 혜경의 방으로 흘러들면서, 혜경이 사장의 음악을 들을 수 있을 만큼 지근거리에 있음을 표현한다. 그러니까 혜경은 ‘겨울 날의 찬바람 소리’와 ‘쟈즈 음악소리’에 사이에끼인 존재가 된다. 이렇게 두 음향은 대조를 이루면서 힘없고 곤란한 상황의 노동자 대(對) 부유하고 이기적인 입장의 사장 윌슨을 대조적으로 형상화한다.
이러한 음향 효과들은 ‘싸이렌 소리’로 통합되어 대립적 개별 음향이 소거되며 새로운 의미로 변모된다. 작품의 결말부에서 양 진영은 싸이렌 소리를 듣고 긴장하게 된다. 처음에 사장과 간부진은 싸이렌 소리를 경찰의 소리로 이해하고 자신들을 돕는 ‘우군’으로 판단했지만, 곧 싸이렌 소리가 노동자 계층의 총파업과 궐기를 예고한다는 사실을 알고 당황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사이렌소리에 ‘사람들의 소음’이 곁들여지면서, 도열하여 몰려드는 군중의 소리로 변모하여 ‘궐기한 민중의 소리’로 의미부여 된다. 결국 이 작품은 노동자들이 악덕 기업주(미국인)에 대항하여 투쟁해야 한다는 전언을 남기며 마무리된다.
이 작품에서 묘사되는 남한 사회는 미국인에 의해 지배당하고 노동자를 탄압하는 사회이다. 사이렌 소리는 이러한 사회에 저항하는 민중의 의지를 형상화한 음향 효과라 할 것이다. 결론적으로 음향 효과 사이렌 소리는 미국의 폭력에 지배되는 남한 사회를 전복할 수 있는 노동자 궐기의 예고된 상징15)이며, 이러한 체제 전복의 의지를 전달하려는 이 작품의 핵심 전언이라고 할 수 있다.
남궁만의 〈락동강〉은 1955년 늦은 가을, 낙동강 연안의 농촌 마을(김해 인근)을 배경으로 삼고 있다. 젊은 농민인 김언백은 남한군 노무사단에 끌려가서 부역하다 풀려난 청년으로, 남한 정부와 지배 계층에 대해 저항적인 견해를 표출하는 인물이다. 작품의 도입부는 기름진 농토를 끼고 도는 낙동강을 배경으로 삼고 있다. 하지만 이 낙동강 인근 ‘김해벌’은 명성과 달리 황폐하게 변해있다. 그것은 일단 홍수에 훼손된 제방 때문이다. 제방이 훼손되면서 김해벌 인근은 홍수와 가뭄의 위험에 노출되었다.
작품의 중심 갈등은 농토와 수확량을 둘러싸고 대립하는, 마을의 지주 김주사와 농민 계층 사이에서 발생한다. 김주사가 장리쌀과 비료 대금을 갚기 전에, 농민들이 벼를 수확하는 것을 금지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언백은 이에 굴하지 않고, 곡식은 농민의 것이며 그 어떤 것보다 농민이 굶어죽지 않는 것이 우선이라고 주장하며, 몰래 벼를 베어 식량을 마련할 것을 이웃에게 종용한다. 이에 언백의 장인이 될 창호는 낙동강에 배를 대고 추수한 곡식을 실어 나르는 계획을 세운다. 하지만 계획을 눈치 챈 김주사가 곡식을 빼앗으면서, 두 계층간의 갈등이 고조된다. 결국 창호를 비롯한 농민계층은 지주의 횡포와, 이를 옹호하는 남한 정부의 정책(면장)에 반기를 들기에 이른다. 그러면서 남한 정부가 실시하는 ‘추곡 선매안’ 즉 ‘청도 매상법’에 대해 집중적으로 성토한다.
이 법안은 중간상인의 입도선매로 인해 양곡생산자들이 부당한 착취를 당하지 않도록 정부가 농민들을 보호하자는 취지로 제정되었으며,16) 이를 위해 정부가 직접 농민으로부터 벼를 사들이는 방안을 그 골자로 하고 있었다. 당시 추곡 매상가격과 그 분량을 두고 정부와 국회의 의견은 대립하고 있었고, 언론까지 나서서 이러한 정책의 방향에 대해 조언하는 사안이었다. 그 만큼 남한에서는 쟁점이 되는 법안이었고, 농민과 국민들의 관심을 불러 모으는 사안이었다.17)
하지만 작품 〈락동강〉에서는 남한 정부가 세금을 우선적으로 제하고 남은 금액을 돌려주기 때문에, 이 법안은 지주의 횡포와 다를 바 없는 결과를 초래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러한 북한 측의 주장은 1954년 9월 10일 ‘전후복구 건설을 위한 조선 인민의 투쟁’에서 언급한 남한의 농촌 사정에 부합된다.
〈락동강〉의 창작 관점은 위의 교시와 부합된다. 우선, 남한 정부의 방임 정책으로 인해 농업 시설이 제대로 복구되지 못하고 조선의 곡창인 김해의 쌀 생산량이 저하된 점을 그리고 있다는 점이 그러하다. 또한 〈락동강〉에서 농촌 주민들은 ‘토지수득세’, ‘농지상환곡’, ‘수세’, ‘잡세’ 등을 모두 나라에 바치는 처지로 묘사된다. 이것도 위의 교시에서 말하는 ‘가렴잡세’와 상통한다고 하겠다. 게다가 주인공 언백은 결국에는 유랑 농민이 되어 고향을 떠나는데, 이러한 결말은 ‘류랑 농민들’의 숫자를 강조하는 교시의 내용과 크게 다르지 않다.
〈락동강〉의 기본 서사와 창작 관점은 김일성의 1954년 9월 교시 내용에 부합된다. 김일성이 교시한 ‘남한 농촌에 대한 관점’을 문예 작품으로 형상화한 경우라 할 것이다. 더구나 1954년 9월 교시 바로 직전에 내린 1954년 8월 10일 김일성 교시에서 “작가, 예술인들이 우리 당의 로선과 정책, 특히 당의 문예정책으로 튼튼히 무장하고 그것을 자기의 창작활동에 철저히 구현하여야”19) 한다고 강조했는데, 이러한 지령에 비추어 볼 때 당의 노선을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문예 정책이 적극적으로 실현된 경우라 할 것이다. 따라서 〈락동강〉의창작과 출판에 김일성과 당의 의지가 직접 투영되었다고 판단할 수 있다.
이러한 교시와 지령은 ‘사회주의적 사실주의 창작 방법’에 해당한다. 실제로 김일성은 1956년 4월 23일 ‘조선로동당 제3차대회에서 한 중앙위원회사업총화보고’에서 ‘사회주의적 사실주의 창작 방법을 언급하고,20) 1956년 12월 25일 ‘문학예술부문 지도일군들과 한 담화’에서 ‘사회주의적 사실주의 창작 방법’에 의거하여 문학작품을 창작하라는 교시를 남긴 바 있다.21) 이것은 공식적으로는 최초로 김일성이 북한의 문예이론을 ‘사회주의적 사실주의’로 명명한 경우로, 이후 북한의 문예이론은 이러한 기조를 유지하여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다.
학계에서도 북한의 사회주의적 사실주의 창작 방법이 1950~60년대를 거쳐 제기, 토론, 정착된다고 파악하고 있다.22) 따라서 〈락동강〉에 등장하는 언백의 인물형은 “혁명과 반동 사이의 투쟁에서 혁명이 승리하는 사회발전의 합법칙성을 반영”하는 인물이면서, 동시에 “공산주의를 교양하는 데에 복무”하는 인물의 맹아로 그려졌다고 할 것이다. 결국 언백은 남한 사람으로 설정되었지만, 궁극적으로는 북한 공산주의자의 전형에 근접한 인물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 작품의 청각적 이미지는 물(결) 소리에 집중되어 있다. 언백이 노무사단에서 돌아와 맞이한 낙동강은 ‘고요한 물소리와 물새소리’가 들리는 곳이었다. 하지만 지주와 면장 등의 권력층의 횡포가 거세지고, 이에 대항하여 농민들의 투쟁 의지가 고조되면서, 격동된 음향이 삽입되기 시작한다(‘격동된 음악’). 심리적‧육체적 격동과 정신적‧사상적 투쟁의지가 청각적 이미지로 표현되는 것이다. 그러다가 이러한 이미지는 ‘높아지는 물결소리’로 표현되며(‘바람 불고 파도치는 강가’), 마지막으로 언백이 떠날 때 낙동강은 “바람은 더욱 사나와지고 물결소리도 높아진”다. 언백의 착잡한 심정과 함께 분노하는 민중의 내면을 보여주기 위한 음향 배치가 아닐 수 없다.23)
탁진의 〈산제비〉는 장편 방송 대본(5경)으로, 1955년 남한의 산간 지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그 산간 지대에는 지주(안 주사)의 횡포에 집을 빼앗기고 이주한 농민들이 농토를 일구며 살고 있다. 중심이 되는 인물(군)은 덕칠 일가이다. 덕칠과 그의 아내 라씨, 그의 딸 정희, 그리고 정신병자가 된 아들 인호가 그들 일가이다. 이 중에서 인호는 문제적 인물이다.
인호는 서울에서 공부를 하던 학생이었는데, 미국에 대항하는 반체제 운동을 주도하다가 헌병들에게 모진 고문을 당하고 정신이상 증세를 보인 후 고향에 내려와 요양하고 있다. 이 집에 손님으로 찾아든 태민은 인호의 친구로, 이 마을 인근에서 군사 훈련을 받고 있는 학생들에게 전쟁 위험을 알리고 북한 체제의 우수성을 선전하기 위해 선전물(‘삐라’)을 뿌릴 기회를 노리고 있는 인물이다. 인호의 여동생 정희와 그녀의 친구가 태민의 ‘공작’을 돕고 있다.
지주 안주사는 6.25 때 창고에서 가져다 먹은 쌀을 배상하라며 집달리 배달영을 산골 마을 덕칠 일가에게 파견했다. 배달영은 과거 안주사의 마름이었던 인물로, 지금은 공무를 집행하는 관리로 변신해 있다. 이러한 설정은 남한 정부의 관리에 대해 불신을 조장하려는 의도를 담고 있다. 배달영은 덕칠 일가의 어려운 사정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수확물을 가로채려는 데에만 혈안이 되어있다. 이에 덕칠이 반발하면서, 두 계층 간의 갈등이 가시화된다.
이 작품에서 적대 계층이 안주사와 마름으로 설정된 이유는 남한에서 발생하는 지주의 수탈을 가시화하기 위해서이고, 이러한 수탈 장면을 가시화하는 이유는 남한의 농지 개혁을 비난하기 위해서이다. 가난한 이웃인 용득은 “흥 그럼 아저씬 그 놈들이 쉬이 물러갈 줄 아셨어유? 이랬든 저랬든 지주라는 건 그대로 남어 있게 마련인 걸⋯⋯ 그래 가지구선 상환금이니 세금이니 해서 나중에는 여하튼 토지가 그 놈들 손아귀에루 도루 들어가게만 생긴 걸유⋯⋯ 제기 빌어먹을 놈의 세상 농지 개혁 뭐야 농지 개혁이⋯⋯ 그저 농민들 속이자는 얼림수라니까⋯⋯”24)라고 한탄하고 있는데, 이러한 대사를 통해 지주들의 대토지 사유제를 방지할 수 없다는 부정적 전언이 직접 전달된다. 이러한 용득의 믿음은 북한 당국의 주장과 일치한다.
아래의 교시는 1955년 8월 15일 해방 10주년 기념행사에서 김일성의 한 연설의 일부이다. 〈산제비〉의 시간적 배경은 1955년 북한에서 열린 8‧15 10주년 기념행사 직후로, 태민의 대사를 통해 “북조선에서는 이번 8‧15 10주년 기념에 남조선의 학생, 예술가, 체육단체들이 초청되었다”25)는 정보가 직접적으로 전달된다. 따라서 그 행사를 기념하여 발표된 김일성의 교시와, 동일 행사를 염두에 두고 있는 작품 사이의 상관성은 더욱 긴밀하다고 해야 할 것이다.
북한과 김일성의 주장을 그대로 따른다면, 남한의 농지개혁은 기만적인 정책이며 이로 인해 도리어 남한의 경지 면적이 줄고 남한 농민의 처지가 크게 위협받고 있다. 이 주장들의 진위 여부를 떠나, 이러한 선전선동 전략은 문학예술의 형태로 동일하게 나타나고 있다. 라디오 드라마를 집필‧제작하여 남한 농민을 등장시키고 그들로 북한의 입장을 대변하도록 하여, 자신들의 주장에 대한 신뢰성을 높이고자 한 것이다.
이 작품에는 두 층위의 저항이 나타나고 있다. 하나는 아들을 죽인 지주 계층과 남한 정부의 횡포에 대한 덕칠 일가의 저항이고, 다른 하나는 학생 강제징집과 군대 훈련에 대한 태민의 저항이다. 태민은 공산주의 사상과 북한 체제에 동조하는 지식인으로 주한미군 철수와 대학생 강제 징집을 반대하고 있는데, 이러한 태민의 주장은 북한 측의 주장과 동일하다. 위에서 인용한 1955년 8월 15일 해방 10주년 기념행사에서도 김일성은 ‘조선에서의 외국 군대 철수’를 강력 주장하고 있다.27) 물론 여기서 말하는 외국 군대는 ‘미군’을 뜻하며, 이러한 주장은 적어도 1953년부터 제기되어 온 것이라고 할 수 있다.28) 주한미군 철수로 요약되는 태민의 주장은 식자층의 저항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작품에서는 농민층과 식자층이 하나의 세력으로 응집되면서, 두 개의 저항은 실상하나의 저항으로 의미상 통합되고 있다.
〈산제비〉는 1955년 8‧15 기념행사에서 김일성이 내린 교시를 라디오 드라마의 형태로 변형한 흔적이 농후한 작품이다. 서로 다른 두 개의 입장과 계층을 하나의 작품 내에 삽입하는 형식을 취했다는 점에서 앞의 두 작품과 달리 서사의 세련미를 가미했다고 할 수 있다. 두 개의 플롯은 농민 계층과 지식인 계층의 이중적 저항으로 이어진다는 점에서, 북한 라디오 드라마의 선전성이 복합적으로 적용된 사례라 할 것이다. 라디오 드라마에서 두 개의 서사가 이원적으로 진행되는 구조의 작품은 일반적이라고 할 수 없다. 시각적 장치가 동반되지 않기 때문에, 이중의 서사를 구사하는데 상대적인 제약이 크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작품은 두 개의 플롯을 통합하기 위한 장치로 핵심 청각 이미지를 ‘제비의 소리’로 설정하였다. 덕칠 일가가 피난 와서 사는 집에는, 많은 제비들이 몰려 와서 집을 짓고 함께 살고 있었다(덕칠 일가≒제비). 바위틈에 살지 않고 인간 주위에서 살고 싶어 하는 제비들을 덕칠 일가가 돌보아 주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배계층의 횡포 때문에 집이 허물어질 위험에 처하자, 덕칠은 제비집을 스스로 부수고 제비들이 다른 곳에 살도록 종용하게 된다.
이 작품에서 산제비는 거처를 잃고 떠도는 남한 주민의 모습을 상징한다(덕칠 일가≒제비≒남한 주민). 남한 주민들은 지주 계층과 정부로 인해, 살 곳과 먹을 것을 잃은 제비 같은 신세로 전락했다. 그래서 서사가 진행되는 도중에 제비 울음소리를 주기적으로 삽입하여, 남한 주민의 애처로운 처지를 지속적으로 일깨우고자 했다. 고향을 잃은 자의 슬픔을 상기시키고, 진정한 고향(북한)을 찾아 떠나도록 종용하기 위해서였다.
또한 제비는 ‘약한 존재’를 의미하기도 하지만 동시에 ‘자유’를 상징하기도 한다(제비≒자유). 제비는 자유롭게 날 수 있는 존재를 가리키기 때문에, 남한의 주민들이 가까운 미래에 그들이 꿈꾸는 자유를 얻으며 살 수 있다는 희망적 전언을 암시한다고 할 수 있다. 이것은 북한 체제에 대한 동경이자 열망을 간접적으로 형상화 한 소재라고도 할 수 있다.
홍건의 〈봉선화〉는 예술가 남매의 엇갈린 운명을 그린 작품이다. 박남과 미라 남매는, 친구 김철의 권유에도 불구하고 정전 후에 남한에 남았다. 하지만 남한 정부는 박남의 소망을 무시하고 박남을 강제 징집하여 군인으로 만들었다. 그러던 어느 날 박남은 몰래 평양 방송을 듣다가, 친구 김철이 보내는 호소문을 듣게 된다. 김철은 라디오 편지 형식을 빌려 남한 체제의 낙후성과 북한 체제의 정당성을 선전한다. 특히 김철은 미군(양키)이 지배하는 남한 체제의 부당함에 대해 소리 높여 성토하면서, 미군 체제 하에서는 양심적인 예술 활동이 불가능하다고 비난한다. 그러면서 김철은 진정한 예술은 “인민의 운명과 밀접히 련계를 가지고 있다”는 북한식 예술관을 피력한다. 이 작품에서 이러한 발언은 박남과 김철이 헤어지면서 나누었던 대화를 회상조의 형식으로 재구성하는 과정에서 드러나지만, 본래 그 논리는 전쟁 발발 이후부터 북한에서 줄기차게 강조하던 예술관에 근거하고 있다.
일례로 1951년 6월 김일성이 내린 “우리 문학예술의 몇 가지 문제에 대하여” 라는 교시에서, “우리 작가, 예술가들은 새로운 생활을 창조하는 인간을 명확하게, 높은 형상성과 예술성을 가지고 묘사하지 못하였으며 생활의 교과서가 될 만한 훌륭한 문예작품을 많이 창작하지 못하였”다고 질책한 바 있다.29) 1951년 6월은 1951년 3월 16일 서울을 재탈환(북한 입장에서는 재철수)하던 인근 무렵으로, 이 시기는 작품에서 박남과 김철이 이별하는 시점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이미 그 시점에도 북한 예술의 기본 논리가, 현실 개조 혹은 선전 작업을 뒷받침하고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봉선화〉에서는 박남이 북한식 예술 논리에 동요되고 만다. 게다가 박남은 북한 선전 방송을 듣다가 상관인 콜슨에게 들켜 체포되면서 개인의 자유와 존엄성을 짓밟는 남한 체제의 부당함을 몸소 체험한다. 반면 콜슨은 아름다운 미라가 박남의 누이 동생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자 미라의 환심을 사기 위해 박남을 석방하고, 미라는 오빠를 북한으로 탈출시키기 위해 미군을 위해 노래를 부를 것을 승낙한다. 이때 미라가 부른 노래가 〈봉선화〉였다. 강인한 생명력으로 인해 일제 강점기에는 주로 나라 잃은 백성의 비유로 사용되며 상징성을 확보했던 ‘봉선화’가, 동명의 라디오 드라마에서 미국과 미국의 식민지 백성으로서의 남한 사람의 처지를 비유하기 위해 활용된 셈이다.
박남의 탈출 광경은 직접 묘사되지 않았지만, 미라의 노래 사이에 박남의 행적은 암시적인 이미지로 교묘하게 투영되고 있다. 노래와 대화 그리고 음향이 교직되면서 일종의 평행 구조31)를 형성하는데, 미라가 부르는 노래는 박남의 탈출과 해방을 암시하고, 콜슨의 대화는 미라의 구속과 탄압을 예고한다고 볼 수 있다. 대화와 노래는 일정한 간격으로 제시되고, 이러한 간격은 일정한 리듬을 형성하도록 만든다. 이때 더해지는 발소리는 두 개의 플롯이 만들어내는 리듬감을 조율하는 역할을 하면서, 청취자에게 강한 긴장감을 불러낸다. 급박하게 들리는 발소리는 미라의 계책이 탄로 나게 되었음을 알려주기 때문이다. 이러한 음향 효과는 영화의 교차 편집 효과에 비견될 수 있다. 두 개의 이야기가 교차 편집되면 형식상의 외적 통일성(outer unity)이 생성되기 때문이다.32)
노래 〈봉선화〉는 외적 긴장감 이외에 내적 상징성도 함께 담보하는 청각적 심상이다. 울밑에 선 봉선화처럼, 박남의 현재 처지는 처량하기 이를 데 없다. 예술가로서의 자존심을 포기하고 강제로 군복을 입어야 했으며, 미국의 압제 밑에서 생각과 거주의 자유를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하지만 더운 여름을 넘기고 가을바람을 맞고 겨울의 찬 기운에 짓눌릴지언정, 봄이 되면 소생하는 봉선화처럼 예술에 대한 열망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집념이 담겨있다.
‘봉선화’의 상징성은 미라에게도 발견된다. 미라 역시 남한에 체류하면서 예술가로서의 이상과 기회를 박탈당한 ‘박제된 예술가’의 전형에 속하는 인물이다. 하지만 미라는 자신이 부르는 노래를 통해, 압제를 극복하고 자신이 예술적으로 저항할 것을 천명하고 있다. 오빠를 탈출하도록 자기희생을 감수하는것이 그러한 저항의 시작이다.
이 작품에서 노래 〈봉선화〉는 북한 당국이 바라는 남한 주민의 모습을 시사하기도 한다. 남한의 주민들이 미국의 반식민 지배에 굳건하게 견디며 강인하게 투쟁하여, 결국에는 저항의 대열에 동참하기를 기대하는 북한의 바람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작품에서 삽입곡으로 사용한 〈봉선화〉는 작가의 전언과 의도를 담고 있는 핵심적 미학 장치라고 할 수 있겠다.
한성의 〈기러기〉는 은퇴한 정치인 고송연 집안을 배경으로 삼고 있다. 고송연은 남한 정계에서 은퇴하여 시골인 ‘뚝섬’으로 가업을 옮겨 왔는데, 이로 인해 집안의 가세가 기울게 되었다. 아들 고철산은 ‘관직’에서 물러난 후, 아버지와 시국에 대해 논의하기 위해 시골집을 방문했다. 고철산은 친북 성향을 지닌 반체제 지식인으로, 남한 정치 체제의 문제점과 혼탁함에 대해 성토하기 시작한다. 특히 그는 북한이 제의한 평화 통일 선언을 지지한다고 밝히고 있는데, 이 평화 통일 선언은 고철산과 고씨 집안의 변화를 일으키는 계기가 된다.
따라서 당시의 평화 통일 선언의 골자를 살펴 볼 필요가 있다. 먼저, 이 작품의 시간적 배경은 1956년으로 여겨진다. 철산의 대사 중에 ‘남북이 10년 이상이나 갈라져 있다’33)는 언급이 나타나기 때문이다. ‘남북이 갈라진 시점’을 어느 시점으로 상정하는가에 따라 이러한 언급은 유동적일 수 있겠지만, 1945년 해방 이후 실질적으로 남북이 분리되었다는 견해가 일반적이고 《방송극집》이 1957년에 출판되었기 때문에, ‘10년 이상’이 될 수 있는 해는 1955년과 1956년 정도일 것이다. 이중에서 1955년도 원칙적으로는 ‘10년 이상’이 될 수 있겠지만, 만일 그러했다면 ‘분단 10년’이라고 한정하여 언급했을 가능성이 더욱 크므로, 1956년이 더욱 유력하다고 해야 한다. 실제로 북한에서는 1956년 4월 23일부터 29일까지 제 3차 당대회가 열렸고, 그 주요 안건 중 하나가 평화통일선언서 채택이었다. 김일성은 1956년 4월 23일 ‘조선로동당 제3차 대회에서 한 중앙위원회사업총화보고’를 통해 전쟁 이후 북한 사회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교육, 군사 부문에 대한 정견을 총체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그 중에서도 상당한 비중으로 다루어진 정견이 ‘통일’ 관련 대남 정책이다.
이러한 북한 측 주장과 논리는 〈기러기〉에 반영되어 있다. 철산은 “이북의 평화 통일 선언”이 “이 세상에서 가장 량심 있는 목소리라고 생각”하지만, 남한의 “대통령이라는 사람은 미국 사람의 지시를 거역하는 자는 온전하지 않을 것”이라고 오판하고 있다고 비난하고 있다.35) 친미주의자인 장유명도 현 상황이 “리박사가 ‘북진’을 더욱 떠들구 있는 때”여서 북한의 평화 통일 선언이 옳다고 해도 그 정책에 찬성한다면 “제 목을 제 손으로 틀어잡는 처지”36)가 될 것이라고 두려워하고 있다. 이러한 텍스트 내의 주장은 1956년 북한이 제시했던 평화통일선언과 일치하며, 구체적인 언급과 세부 정황들도 부합된다. 더구나 시기적으로 1956년의 상황과도 어울린다. 따라서 1956년 4월 당대회에서 공표된 내용이 작품 〈기러기〉에 투영되었다고 판단할 수 있겠다.
다만 이러한 북한의 통일 정책이 일조일석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는 점을 유념할 필요가 있다. 1956년 이전에도 주한 미군 철수, 북진 통일 반대, 평화 통일 정책 유지라는 기본 노선은 그 골자를 드러내고 있다. 다만 1956년 이후에 이러한 골자들은 ‘평화 통일 선언’이라는 형식으로 공식화되기에 이른 것이다. 흥미로운 점은 적대세력 장유명조차도 내심으로는 북한 측의 평화 통일 정책 선언을 지지하는 설정이다. 그래서 장유명의 인물형은 주목되지 않을 수 없는데, 그의 인물형은 북한 라디오 드라마의 형식으로는 예외적일 정도로 시청자의 자율적 해석을 요구하는 인물형이라고 할 수 있다. 글렌 굴드의 주장대로, 청취자의 능동적 해석 가능성을 열어 둔 인물 창조의 예라고 할 수 있다.37)
하지만 정부 정책의 압력을 강하게 받는 사업가의 입장에서, 장유명은 고씨 집안의 위험한 선택을 감수할 수 없는 처지였다. 결국 두 집안의 혼사는 파기되고, 고송연은 딸의 운명보다 민족의 운명이 우선임을 깨닫게 된다. 작품의 결말은 대외활동을 기약하는 고송연의 움직임으로 마무리된다. 고송연은 남한 체제의 모순과 부도덕을 일소하기 위해 정계로 복귀하기로 결심하고, 그의 아들 고철산도 동지들을 모아 언론활동에 투신하기로 결심한다. 언론활동은 역시 남한 정부의 오류와 기만을 청산하려는 활동으로 이어질 것이다. 나머지 가족 역시 파혼의 충격에도 불구하고, 두 부자의 선택을 존중하고 지지하겠다는 입장으로 선회한다. 딸은 파혼의 아픔을 딛고 대의적 삶에 동참하고, 처 김씨는 가세가 기울었다고 불평하던 입장에서 대의를 생각하는 입장으로 변화한다.
이 작품에서 아버지와 그의 가족들(처와 딸)은 동요하는 계층을 이룬다. 아버지는 남한의 정치 체제에 환멸을 느끼고 은퇴했을 뿐만 아니라, 딸의 혼사와 장래를 위해 자신의 정치적 입장을 자제하고자 했다. 하지만 젊은 아들은 아버지에게 찾아와 이러한 선택이 소극적이고 반민족적인 것임을 일깨우고, 아버지로 하여금 다시 사회로 나가 반체제 운동을 할 것을 종용한다. 따라서 고송연의 입장 선회는 이 작품에서 작가가 유도한 결론이라고 할 수 있다.
이를 위해 사용된 청각적 심상은 크게 두 가지이다. 하나는 출렁거리는 소리이다. 낚시를 하고 있는 고송연에게 아들 철산이 다가갈 때, 사용된 음향은 ‘강물이 출렁이는 소리’였다. 이후 이 소리는 반복적으로 삽입되는데, 특히 고송연의 내면적 갈등이 격화될 때마다, 이 음향이 사용되곤 했다. 그런 측면에서 고요한 내면이 흔들리는 소리라고 할 수 있겠다. 정계 은퇴를 결심하고 시속을 떠난 노 정객의 내면을 흔드는 것은 당대 사회와 정치의 타락이었다. 이 작품은 타락을 정화하기 위해서 북한 체제와 이념을 따라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다른 하나는 새소리이다. 특히 기러기 소리가 집중적으로 삽입된다. 새 소리는 북한이 제안했다는 통일 방안을 상기시킨다. 기러기는 고향을 찾아 떠나는 철새이다. 따라서 기러기 소리의 삽입은, 기러기처럼 고향에 해당하는 곳을 찾아 나서고 싶다는 작중 인물들의 바람을 표현하기 위해서이다. 기러기는 남북을 왕래하는 철새이다. 따라서 남북을 자유롭게 이동해야 하는 민족의 표상이 되어야 한다. 하지만 당시 상황에서는 새는 남북을 이동할 수 있되 사람은 남북을 이동할 수 없기 때문에, 새소리 음향은 실향과 분단의 비극을 보여주는 상징 음향이 된다. 따라서 이러한 음향의 삽입은 평화통일이라는 명분하에 북한의 통일안을 지지해 달라는 북한 측의 호소를 짙게 담아내는 것이다.
박노을의 〈고향집〉은 서울에서 활동하는 한 극단의 공연을 둘러싼 일련의 사건을 다루고 있다. 김일파는 극단 대표 겸 연출가이다. 김일파는 종래의 신 파극과 친일 어용극 그리고 흥행을 빙자한 저질 연극을 청산하고, 서정성 짙은 연극 〈고향집〉을 공연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 〈고향집〉 대본을 쓴 작가는 고성철인데, 그 역시 새로운 연극(운동)을 선보이겠다는 열의에 가득 차 있다. 그리고 〈고향집〉의 여주인공으로 내정된 배우는 김영주로, 김일파의 여동생이자 고성철의 애인이다.
하지만 〈고향집〉 공연은 순조롭게 진행되지 못한다. 첫째는 넉넉하지 못한 극단의 재정 형편 때문이다. 하지만 경제적 곤궁은 정치적 어려움에 비하면 사소하다고 할 수 있다. 극단 대표 김일파는 공보처 문화과장으로부터 고향집을 공산당원들이 불태우는 장면을 삽입하고, 제명을 ‘고향집의 불은 누가 질렀나?’로 변경하자는 제안을 받는다. 동시에 순순히 제의를 따르지 않으면, 극단을 해체시키겠다는 협박도 받는다. 이러한 압박에 김일파는 갈등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러한 남한 당국의 처사에 대해 연극인들은 반발할 수밖에 없고, 자연스럽게 연극과 공연의 자유를 인정한다는 북한의 문화 정책에 대한 찬양으로 이어질 수 있다. 사연을 들은 김영주는 “북반부에서는 우리 같은 예술가들의 처지가 말할 수 없이 행복하다”고 말하며 “춘향전의 창극이며 콩쥐팥쥐 같은 민족오페라가 공연”되고 있다고 덧붙인다. 김일파도 “모란봉 극장이며 국립극장을 지었다”는 정보를 전하고 있다.38)
이러한 정보들은 북한의 실상과 다소 어긋나기도 한다. 가령 김일성은 1956년 2월 16일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상무위원회에서 “극장에서 연극도 우리나라의 것을 공연하는 것이 아니라 번역극을 공연하고 있”으며, 그로 인해 “번역극을 잘하는 사람만이 높이 평가되고 1급 배우”39)로 취급되는 상황에 대해 불편한 심기를 드러낸 바 있다. 또한 “우리나라의 이러한 현실을 잘 그리면 훌륭한 문학예술작품이 될 수 있”는데 당시에 “역사적 사변들을 반영한 좋은 연극, 영화, 소설 등 문학예술작품이 나오지 못하고 있”다고 은근히 질책한 바도 있다.40)
그러면서 ‘현실’을 직시하라는 조언을 남긴다. 김일성은 “지금 일부 작가들 속에서는 다른 나라의 것만 쳐다보면서 그것을 그대로 본 따려고 하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고 비판하고 “작가, 예술인들이 이와 같은 사상관점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우리나라의 들끓는 현실을 똑바로 보지 못하며 그것을 반영한 작품을 쓰지 못하는 것”이라고 진단한다. 당연히 해결책은 “우리나라의 이러한 현실을 잘 그리면 훌륭한 문학예술작품이 될 수 있”다는 논조를 띠게 된다.41)
김일성이 말하는 ‘현실’은 〈고향집〉에서도 중요한 미학적 원리이자 세계관으로 강조된다. 고향집에 다녀온 성철은 예술가의 양심을 “현실을 똑바로 보는 것”42)으로 파악하게 된다. 물론 이것은 김일성 이하 북한 정부가 북한의 예술인에게 강조하는 예술관이며, 동시에 남한을 소재로 한 작품에서 주입하고자 한 예술관이기도 하다. 이러한 예술관을 작품 속에 용해하기 위해서 고성철의 태도 변화가 요구된다. 고성철의 태도 변화는 세 번째 어려움과 관련된다. 고성철은 고향 마을이 파괴된 실상을 접하고 자신이 서정 연극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확인한 후, 비참한 농촌 현실을 고발하는 연극을 공연해야 한다고 확신한다. 김일성 이하 북한의 예술관에서 논의되던 ‘현실’이, 농촌 붕괴의 남한 현실로 가시화된 셈이다.
고성철의 현실 개혁 논리에 자극을 받은 김일파는, 극단 보존과 예술가의 양심 사이에서 동요하던 입장을 정리하고, 적극적으로 새로운 예술과 새로운 이념(북한 체제 옹호, 남한 체제 비판)을 펼칠 것을 결심한다. 이러한 결심에 동조라도 하듯 배우들도 한 마음 한 뜻으로 그들의 의지를 모아 저항에 동참하기에 이른다. 이것은 ‘층계를 올라오는 배우들의 노래 소리’라는 청각적 심상으로 집약되기에 이른다.
15)육현승, 「라디오에서의 문학성」, 『헤세연구』, 22집, 한국헤세학회, 2009, 418~419쪽 참조. 16)「政府(정부)서 ‘靑稻(청도)’로 買上」, 『동아일보』, 1955년 8월 7일, 3쪽 참조. 17)「秋糓廉價買上案은 矛盾」, 『경향신문』, 1955년 11월 9일, 2쪽 참조 ; 「秋糓買上價格을 急速히 妥結하라」, 『경향신문』, 1955년 11월 15일, 1쪽 참조. 18)김일성, 『김일성 저작집』(9), 평양:조선로동당출판사, 1980, 63쪽. 19)위의 책, 37쪽. 20)김일성, 『김일성 저작집』(10), 평양:조선로동당출판사, 1980, 164쪽. 21)위의 책, 249쪽. 22)유임하, 「‘사회주의적 사실주의’에서 ‘주체사실주의’로의 이행 : ‘해방 후 평화적 민주건설시기’에 대한 북한문학사의 기술 변화」, 『민족문학사연구』, 제42호, 2010, 191~216쪽 참조. 23)남궁만, 〈락동강〉, 『방송극집』, 평양:조선작가동맹출판사, 1957, 138~156쪽 참조. 24)탁진, 〈산제비〉, 『방송극집』, 평양:조선작가동맹출판사, 1957, 164쪽. 25)위의 책, 172쪽. 26)김일성, 『김일성 저작집』(9), 평양:조선로동당출판사, 1980, 219쪽. 27)앞의 책, 222쪽 참조. 28)김일성, 『김일성 저작집』(8), 평양:조선로동당출판사, 1980, 57쪽 참조. 29)김일성, 『김일성 저작집』(6), 평양:조선로동당출판사, 1980, 213쪽 참조. 30)홍건, 〈봉선화〉, 『방송극집』, 평양:조선작가동맹출판사, 1957, 198~200쪽. 31)스테판 샤프, 이용관 역, 『영화 구조의 미학』, 영화언어, 1991 ; 카렐 라이쯔‧가빈 밀러, 정용탁 역, 『영화편집의 기법』, 영화진흥공사, 1989. 32)김용수, 『영화에서의 몽타주 이론』, 열화당, 1996, 161쪽 참조. 33)한성, 〈기러기〉, 『방송극집』, 평양:조선작가동맹출판사, 1957, 214쪽. 34)김일성, 『김일성 저작집』(10), 평양:조선로동당출판사, 1980, 139쪽 참조. 35)한성, 앞의 책, 1957, 208쪽. 36)위의 책, 211쪽. 37)요시미 순야, 송태욱 역, 『소리의 자본주의』, 이매진, 2005, 34~35쪽 참조. 38)박노을, 〈고향집〉, 《방송극집》, 평양:조선작가동맹출판사, 1957, 225쪽. 39)김일성, 『김일성 저작집』(10), 평양:조선로동당출판사, 1980, 52쪽. 40)앞의 책, 249쪽. 41)위의 책, 248~249쪽. 42)박노을, 앞의 책, 229쪽. 43)앞의 책, 229~230쪽.
《방송극집》 2부에 수록된 6편의 라디오 드라마 대본은, 전쟁 이후 남한 사회의 모습을 조명하는 작품들이다. 그래서 시간적 배경은 분단 이후 혹은 1950년대의 어느 시점이고, 공간은 남한의 제반 분야이다. 또한 이 작품들에서 등장인물은 크게 삼분된다. 하나는 투쟁을 선도하는 계층이고, 다른 하나는 이러한 투쟁에 적대적인 계층이며, 마지막 하는 두 계층 사이에 낀 동요 계층이다.
동요 계층은 처음에는 적대 계층의 영향을 많이 받고 있었지만, 서사가 진행되면서 투쟁 계층의 권역으로 편입되는 경향을 보인다. 이때 사건의 진행과 함께 주목되는 것이 청각적 이미지이다. ‘청각적 상징 이미지’는 동요 계층의 전향과 변모에 따라, 그 표현 수위와 강도를 제고하는 성향을 띤다.
남한 소재 라디오 드라마 작품들의 공통점을 정리해보자. 우선, 작품의 중심소재가 사회 전 분야에 걸쳐 분포되어 있다. 도시의 회사(기업)를 소재로 하는 작품이 있는가 하면, 농촌이나 산촌 등 땅을 경작하는 사람들과 관련된 소재를 택한 작품도 있다. 음악과 연극 등의 예술 분야 관련 소재도 있고, 정계를 중심으로 한 정치 관련 소재도 있다. 이렇게 다양한 분야의 소재를 선택하는 이유는 사회 전반에 걸쳐 북한 체제의 우월성과 남한 체제의 문제점을 묘사하기 위해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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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성을 확보하려 한 이유는 다음에서 찾을 수 있다. 김일성은 1956년 4월 교시에서 ‘조국의 민주주의적 통일을 이룩하’기 위해 남한 사회에 대해 잘 알고 있어야 하는데, 현실적으로 그렇지 못하다고 질책한 바 있다. 그리고 “남조선정세를 연구하며 그것을 군중에게 널리 알려주는 것은 비단 남조선근로대중을 정치적으로 교양 계몽하는데 목적이 있을 뿐 아니라 북반부인민들에게 우리 혁명의 기본과업을 철저히 인식시키며 그들의 혁명적 경각성과 계급적 의식을 높이는 데서도 큰 의의를 가지고 있”다고 전제하고 당과 당원들이 “모든 수단과 방법을 다하여 남조선에 대한 정치선전사업을 개선 강화 할 근본적 대책을 세워야 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러한 주장에서 김일성은 “남조선의 구체적인 정치, 경제, 문화, 군사 정세”에 대해 연구하고 이에 대응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한 바 있다.44) 이러한 교시대로 한다면, 《방송극집》 2부는 남한 사회의 제반 분야에 대한 연구이며, 동시에 이러한 제반 분야의 사정을 교양하려는 의도적 배치라고 할 것이다.
둘째, 작품 내에 설정된 세 개의 인물 그룹을 활용하여, 투쟁에 본격적으로 동참하지 못하던 동요 계층의 태도를 변모시키고, 동시에 이러한 투쟁을 방해하는 적대 계층과 맞선다는 서사적 패턴을 일관되게 고수하고 있다. 예를 들면〈싸이렌 울릴 때〉는 노동자 계층(김일형)이 화이트 컬러 계층인 타이피스트 박혜경을 노동자 세력으로 포섭하는데 성공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또한〈기러기〉에서는 남한 체제에 비판의식을 견지하고 있던 아들 고철산이, 아버지 고송연과 여동생 고성희 그리고 어머니의 의식을 개조하여, 현실에서 벗어나 은퇴 생활을 하고 있던 이들에게 현실 참여의 중요성을 일깨우는데 성공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이렇듯 여섯 작품 모두 투쟁을 선도하는 계층이 동요 계층의 의식을 변모시키고 북한 체제의 우월성을 인지시키며 나아가서는 남한의 지배층과의 대결 의식을 확산시키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는 공통점을 견지하고 있다.
셋째, 투쟁 계층이 동요 계층을 선도하는 과정에는 필연적으로 적대 계층의 인물들이 상정되기 마련이다. 서사적 구조로 보면 안타고니스트들이라고 할 수 있는데, 적대 계층은 미국인 경우가 두 건(윌슨/콜슨), 정부 관리인 경우가 세 건(면장/집달리/공보처 문화과장), 그리고 지주 계층인 경우가 세 건(김주사/안주사/장유명) 등으로 나타나고 있다. 〈락동강〉과 〈산제비〉에서는 정부관리와 지주 계층 양자 모두 등장한 경우이다.
이러한 적대 계층으로 인해 남한의 이미지는 부정적으로 생성된다. 미국인이 적대 계층으로 등장하는 경우에는 미국인이 남한의 실질적인 지배자로 묘사되는 성향이 우세해지고(〈싸이렌 울릴 때〉와 〈봉선화〉), 지주 계층이나 정부 관리가 적대 계층으로 등장하는 경우에는 남한 정부의 부도덕과 음모 그리고 무능이 부각된다. 특히 지주와 관리, 경찰 세력이 등장하면서 남한 정부가 소수 세력을 옹호하는 인상을 전하는데 주력한다.
여기에 대개의 작품에는 폭력적 이미지가 빈번하게 삽입된다. 〈싸이렌 울릴때〉, 〈락동강〉, 〈산제비〉, 〈봉선화〉 등의 작품에서는 무력을 통해 노동자‧농민‧예술가를 탄압하는 장면이 등장하고 있으며, 총 같은 무기의 이미지를 앞세우는 설정이 빈번하게 삽입되기도 한다. 특히 이 네 작품은 공히 폭력을 앞세우는 지배자의 모습(미국 혹은 남한 정부)을 보여주고 있다. 이것은 남한 정부의 강압적 정책에 피지배 계층이 억압받고 있다는 인상을 강조하기 위한 의도적인 전략이라고 할 수 있겠다.
넷째, 인상적인 청각적 이미지를 동반하고 있다. 이러한 이미지는 라디오 드라마의 특성을 고려한 미학적 장치라고 할 수 있는데, 일종의 상징성을 확보하게 된다. 작품 내에서 계층 간의 대립을 보여주거나(찬바람 소리 대 재즈 음악), 점점 고조되는 저항의 움직임을 대변하거나(〈락동강〉의 물결 소리, 〈고향집〉의 배우 소리), 민중의 가요를 통해 의미를 전달하거나(〈봉선화〉의 대중가요), 혹은 동물(새)의 자유로움을 통해 통일의 염원을 심어준다(〈산제비〉의 제비 떼소리, 〈기러기〉의 기러기 소리).
이러한 청각적 이미지들은 라디오 드라마의 서사에 반복적으로 삽입되어 청취자(대본 독해자)들에게 상징적인 의미와 중의적인 비유를 생성하도록 종용한다. 사이렌 소리가 몰려드는 군중의 힘을 상기하게 만들고, 높아지는 물결 소리가 내면의 분노를 격상시키도록 만들며, 자유롭게 날아다니는 새의 울음소리를 통해 자유로운 이동을 염원하는 심정을 불러일으키도록 만든다. 그런가 하면 압제 아래에서도 피어오르는 민중의 저항을 가요 〈봉선화〉나 ‘군중 발자국’ 효과음으로 표현하고자 했다.
이러한 표현 방식과 기교는 작품의 청취자(라디오 대본 독해자)들에게, 작품의 창작 의도를 미학적으로 수용하도록 종용하는 핵심적 형식 장치로 작용한다. 이러한 형식적 장치로 인해 교조적이고 경직될 수 있는 대남 선전선동이 한층 예술적으로 다듬어질 수 있었으며, 라디오라는 청각적 매체를 통해 작가의 의식을 확대할 수 있는 효과적인 방안을 마련할 수 있었다. 비록 1950년대 라디오 드라마를 통해 남한 사회를 일방적으로 왜곡하려 했던 북한의 의도는 비판받아야 마땅할 것이겠지만, 자신들의 목적성을 실현하려는 형식적 전략으로 발견된 청각적 상징은 주목되어야 할 사안이라고 할 수 있겠다. 라디오의 청각적 이미지를 활용하여 서사를 통합하고 청취자의 예술적 감동을 자극하며 작가의 의도를 비유적으로 전달하는 힘을 이끌어낼 수 있었기 때문이다.
44)김일성, 『김일성 저작집』(10), 평양:조선로동당출판사, 1980, 165쪽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