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akespeare’s plays deploy an interesting array of food signs in a way to illuminate the historical process of what Stephen Mennell has described as “the civilizing of appetite”?a process in which the changes of food choices and eating habits took place in response to the changes in people’s way of life and personality structure over the long-term modern period since the middle ages. Shakespeare’s plays suggest that the civilizing of appetite in early modern England was heavily affected by the forces of social mobility as well as the nascent market economy. The Capulets’ costly preparation of Juliet’s wedding banquet is a showcase of conspicuous consumption which was a structural necessity for the ruling class in Shakespeare’s time. Some fifteen years later, the same kinds of foodstuffs are included in a shepherd’s shopping list for the sheepshearing festival in Winter’s Tale. This is a significant coincidence to prove that food was an important source of emulation and contest among different social classes; and that the rich diet of the upper class gave impetus to social mobility. The Elizabethan subjects, especially among the elite noblemen, were interpellated by the ideology of food that equated the quality of food and the eater’s social identity. Faced with bankruptcy as a consequence of his extravagant consumption habit, Bassanio in The Merchant of Venice testifies to the gripping ideology of food onto early modern people, while Poor Tom in King Lear presents a comic parody of the rich people’s conspicuous waste. Also in Coriolanus and The Merry Wives of Winsor, Shakespeare uses food as a metaphor for class-motivated social struggles.
페르낭 브로델(Fernand Braudel)의 미시사적 역사 연구에서 보듯이, 일상생활 그 자체는 사소하게 보일지라도 오랜 기간 반복되는 과정을 통해 개별적인 존재양식과 행동양식을 특징짓고 사회 각 층에 침투하여 일반화된 구조를 형성 한다. 그렇기 때문에 때로는 몇 가지 일화가 신호등의 역할을 하여 생활양식을 밝혀주기도 한다(Braudel 29). 식사는 수면과 더불어 매일 반복되는 일상생활의 중심축을 형성한다. 따라서 음식은 누구에게나 친숙하고 자연스러운 대상이고 존재의 등가물이다. 음식은 일상적인 필수품으로서 보편적인 욕구의 대상이 되며, 음식에 관한 일화들은 사람들의 식습관과 아울러 당대 사회의 구조적 특성을 밝혀준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생존에 직결된 본능적 욕구의 충족을 위해 발달한 미각도 일상사의 흐름 속에서 단순한 감각 이상으로 작용한다. 19세기의 유명한 미식법 이론가인 브리야사바랭(Brillat-Savarin)에 의하면 미각이야말로 우리의 모든 감각 중에서 가장 많은 쾌락을 주는 감각이다. 그 이유로는 무엇보다도“먹는 즐거움은 다른 모든 쾌락들과 섞일 수 있으며, 심지어 다른 쾌락들의 부재를 달래줄 수 있기 때문이다”(브리야사바랭 69). 다시 말해 식사의 쾌락은 일차적으로 음식에 관한 물질적 경험과 욕구의 충족에 기인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음식자체와는 관계없는 욕망에서 비롯한다. 그러므로 음식과 우리의 미각적 경험은 단순히 물질적 생산과 소비에서 끝나지 않는다. 음식은 보편적 욕구의 대상인만큼 의사소통을 위한 편리한 수단, 즉 은유로도 쓰인다. 마크 존슨(Mark Johnson)에 따르면, 은유는 우리의 경험과 세계에 대한 이해가“정합적이고 의미있는 방식으로 구조화”되도록 작용한다(207). 음식의 기호들로 구성된 은유체계는 우리의 욕망이 사회적으로 표현되고 구체화되는 주된 방식의 하나이다.
셰익스피어의 시대에도 음식은 일상생활의 중요한 축이었을 것이고 개인의 미각적 경험과 사회적 구조 간에는 연관성이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방대한 셰익스피어 연구 자료들 가운데 음식과 관련한 연구는 아직 드물다. 그 이유는 아 마도 셰익스피어가 음식 자체를 주제로 삼은 경우는 거의 없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그의 텍스트에서 발견되는 음식에 관한 표현들은 그 당시 영국인들이 공유한 사회적 소통의 기호로서 당대의 생활양식과 사람들의 욕망이 지향하는 바 를 밝혀주는 기능을 한다는 점에서 주목해볼 만하다.
실제로 셰익스피어의 희곡들을 보면 음식과 희곡의 주제 사이에 직접적인 연관성이 희박할지라도 종종 인물들 사이의 갈등이나 새로운 관계의 발전을 드러내기 위하여 음식을 도입한 것이 눈에 띈다. 예를 들어『로미오와 줄리엣』(
이와 같이 음식은 셰익스피어의 텍스트에서 그 고유의 물질성보다도 인물들사이의 이해관계와 사회적 관습을 효율적으로 표현하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으며 또 때로는 정치적 이데올로기에 대한 탁월한 은유로 사용되기도 한 다. 셰익스피어의 관심은 후대에 그 자신의 독특한 미각적 취향이나 요리법을 전하는 일보다는 다른 데에 있었던 것 같다.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음식이 셰익스피어의 희곡에 재현된 방식과 브로델의 역사 연구에 쓰인 방식이 같다는 점 이다. 브로델이 음식을 포함한 일상생활의 소재들을 신호등으로 삼아서 근대 문명의 발달과정을 추적하였듯이, 셰익스피어도 그 자신과 동시대 영국인들에게 익숙한 음식과 식습관에 얽힌 일화들을 이용하여 그가 목격한 16세기와 17세기 의 역사적 대전환을 재현한 것이다.
그러므로 셰익스피어의 희곡에 들어있는 음식에 관한 표현들은 21세기의 학자에게도 중요한 연구 대상이 된다. 노르베르트 엘리아스(Norbert Elias)의 주장처럼 그것은 음식이 행사한“문명화”의 기능 때문이다.
멘넬의 진단처럼 식욕의 문명화는 자본주의적인 경제체제의 발달과 근대적인 국가의 형성과 맞물려 일어난 역사적 전환의 한 형태이다. 중세 유럽에서는 한 나라 안의 서로 다른 사회계층들 간에 공통된 미각을 발견하기 어려웠던 반면에 여러 나라의 궁정들 사이에는 문화적 접촉이 일어나고 요리의 종류와 요리법도교류되었다(Mennel 60). 궁정이 주도한 중세의 음식문화는 훗날 식욕의 문명화가 진행될 방향에도 영향을 미쳤다. 근대적인 생산체제의 변화와 함께 식량 사 정이 호전됨에 따라 지배 계급의 식습관이 양보다는 질을 중시하는 방향으로 바뀌고, 경제적인 여유를 확보한 부르주아 중간 계층이 귀족들의 호사스러운 식탁을 모방하여 미각의 대중화 현상이 나타나게 된다. 16세기경 무렵부터 식사 예 절이 체계화되고 포크와 개인용 접시 같이 세분화된 식사 도구들이 도입되었으며, 이와 함께 음식은 점차 그것을 먹는 사람의 신분을 구별하는 수단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계급이나 민족 같은 집단적인 정체성을 상징하는 문화적 기호로까 지 발전하게 된다(엘리아스 246-50; Braudel 202-09; Montanari 82-94). 이시기에 영국인들이 추구했던 근대적인 미각의 질서는 셰익스피어의 맛깔스러운 언어에 고스란히 담겨있다. 이 글은 셰익스피어가 그의 희곡 속에 버무려넣은 음식 기호들을 맛보며 근대성의 징후들을 포착해보고자 한다.
*이 논문은 2008년 전남대학교연구년교수연구비 지원을 받았음. 1대추야자 열매는 달콤해서 사람들이 선호했을 뿐만 아니라 유럽에서 재배되지 않았으므로 매우 귀하고 비쌌다(Albala, Food 53). 향신료는 중세에는 극소수의 상류층만 접근할 수 있었던 값비싼 사치품이었으며, 근대에도 17세기 이후에 식민지로부터 다량 유입되기 전까지는 계속 비싼 물건이었다. 국제무역 네트워크 구축, 새로운 항로의 개척, 식민지의 건설 등과 같은 근대적 움직임을 추동한 것은 바로“향신료에 대한 열광”때문이었다(Braudel 221; Montanari 61-3, 119). 2엘리아스는‘문명화 과정’(civilizing process)이라는 포괄적인 용어를 사용하여, 근대 유럽에서 개인의 매너와 감정, 습관과 의례 등의 변화와 장기적인 사회구조의 변동 사이에 긴밀한 상관성이 있음을 밝혔다. 『문명화과정1』. 박미애 옮김. 한길사, 1996.
앞에서 보았듯이 셰익스피어의 무대에서는 값비싼 음식이 가득한 호사스러운 연회가 열리는가 하면 정반대로 빵을 얻기 위해 집단폭동이 일어나기도 한다. 이처럼 상반된 재현이 우리에게 시사해주는 것은 셰익스피어시대의 모든 계층 이 식욕의 문명화를 동일한 방식으로 경험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맛시모 몬따나리(Massimo Montanari)에 의하면 14세기에서 16세기까지 사회적 유동성이 커짐에 따라 지배 계급은 사치금지법(sumptuary law)같은 제도적인 장치를 도 입하여 다양한 사회집단의 생활양식을 규제하려고 했다.
이러한 사실은 셰익스피어의 동시대인인 윌리엄 해리슨(William Harrison)의 관찰에서도 확인된다. 1587년에 출간된『영국 요람』(
해리슨의 관찰대로라면 16세기의 영국인들은 주로 어떤 음식을 먹느냐에 따라 어떤 계층에 속한 사람인지를 식별할 수 있었다. 가령 어떤 사람이 생선과 치즈처럼 값싸고 흔한 음식만 놓인 식탁 앞에 앉아있다면 필경 서민 취급당했을 것이고, 반대로 수입한 철갑상어와 자고새 파이처럼 비싼 요리를 늘어놓은 식탁을 마주하고 있다면 그 사람은 지체 높은 인물로 예우를 받았을 것이다. 셰익스피어도 음식과 신분을 결부시키던 당대의 통념을 꿰뚫어보고 있었음이 분명하 다. 『베니스의 상인』(
이처럼 음식의 질과 먹는 사람의‘자질’을 동일시했던 초기 근대의 음식 이데올로기는 언뜻 보면 가난하고 신분이 낮은 사람들에게만 불리하게 작용했던 것처럼 생각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실제로는 신분이 높은 사람들도 음식 이데올로기의 압력을 받기는 마찬가지였다. 엘리자베스시대의 영국 귀족들 중 일부는 사치스러운 식사를 일삼다가 재산을 탕진하고 본래 소속했던 집단에서 탈락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런 사태를 야기할 정도로 음식 이데올로기가 맹위를 떨친 것은 소수의 지배 계급과 다수의 평민들로 구성된 계서제적 신분 사회의 구조적특성 때문이었다. 그 당시 영국인들의 유형을 포괄적으로 구분하면 젠틀맨과 비(非)젠틀맨으로 나뉘었는데, 모든 젠틀맨들의 출신이 같지는 않았다. 작위를 가진 귀족들처럼 애당초 젠틀맨으로 태어난 경우와 대학 교육과 관직, 부의 증가를 통해 젠틀맨의 정체성을 후천적으로 획득한 경우도 있었다. 그러나 각자의 출발점이야 어쨌든 간에 젠틀맨의 신분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젠틀맨에 부합하게 행세해야 했다. 젠틀맨으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일정한 규모 이상의 토지를 소유하거나 그것에 버금가는 부를 축적하여 재정적 자립능력을 갖추어야 했다. 또한 이에 못지않게 중요한 요건은 젠틀맨으로서 사회적 평판을 유지하는 것이었다. 여기서 파생된 현상이 16세기와 17세기의 영국 엘리트 계층사이에서 만연했던‘과시적인 소비’(conspicuous consumption)의 풍조였다(Stone 249-67). 역사학자 로렌스 스톤(Lawrence Stone)에 따르면, 씀씀이에 인색하지 않고 관대한 태도는 중세 귀족이 추구했던 이상이었는데 초기 근대의지배 계급에도 계속 계승되었던 것이다(25). 그들은 각자의 관대함을 외부에 드러내기 위해서“화려한 의복을 차려입기, 웅장하고 가구로 들어찬 저택에서 거주하기, 다수의 하인들을 거느리기, 풍성한 식탁을 차려놓고 적절한 사회적 신분을 가진 누구라도 환대하기”(Stone 26) 등과 같은 낭비적인 생활습관을 발전 시켰다. 햄릿이 폴로니어스에게 환대의 가치에 관해 훈계하는 것도 이러한 사정때문인 것이다. 폴로니어스의 말처럼 배우들을“분수에 맞게”대접한다면 그 당시 배우는 부랑아와 다름없는 존재이므로 의당 매질해서 쫓아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반대로 왕이 총애하는 궁정대신인 폴로니어스가 그 자신의“명예와 품위에 어울리게”배우들을 대접하면 상대가 미천한 만큼 폴로니어스의 공이 더 크게 인정될 것이라고 햄릿은 주장한다(
셰익스피어의 인물들 가운데 젠틀맨의 자질을 잘 구현한 인물로는 단연『베니스의 상인』의 바싸니오가 으뜸이다. 그는 베니스의 귀족 가문 출신이지만 과시적인 소비로 인해 몰락의 위기에 처해 있다. 그렇지만 그는 그의 수입이 감당할 수 있는 것보다“더 사치스러운 생활을 하여 자신의 신분을 추락하게 만들었다”(1.1.123-24)는 사실을 공공연히 인정한다. 그는 친구인 안토니오(Antonio)에게 빚에 쪼들린 자기의 궁색한 처지를 말할 때도 전혀 후회하는 기색을 보이지 않는다. 그 빚은“고상한 삶”(a noble rate 127)의 과실에 불과하고“방탕”(something too prodigal 129)은 비난받을 일이 아니라 오히려 귀족다운 관대함의 표식이라고 보아야 마땅하기 때문이다.
귀족다운 삶을 살다가 파산하게 된 바싸니오의 일화는 셰익스피어의 시대에 소비와 신분의 관계가 경제적 논리보다도 존재론적 조건에 의해 더 좌우되었음을 시사한다. 몬따나리의 표현을 빌면, “어떤 사회 계급에 속하느냐 하는 문제는 특정한 유형의 소비를 뜻하는 동시에 그 자체가 그 소비의 산물이었다”(88). 그런고로 바싸니오가 귀족으로서의 신분과 평판을 계속 고수하고자 한다면 그의 낭비벽 또한 쉽게 버릴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바싸니오는 지금까지 진 빚을 청산할 계획을 세우고는 샤일록에게 친구 안토니오의 생명을 저당 잡히고 돈을 빌린다. 그러나 그가 돈을 빌리자마자 제일 먼저 한 일은 예전에 하던 대로 친구들을 만찬에 초대하고 하인들에게 새 옷을 지어주는 일이다(1.1.108-10).
이처럼 과시적인 소비는 바싸니오처럼 상류층 인물들에게서 자주 목격되는 현상이었지만 특정한 계층에만 한정되었다고는 볼 수 없다. 14세기부터 사치금지법을 도입한 영국에서는 엘리자베스 여왕의 치세 초기만 해도 신분에 적합하 지 않는 소비 행태를 처벌까지 했으나, 점점 그런 법적 규제 장치가 실제 사람들의 일상생활을 통제하는 데 별로 효력을 거두지 못하자 1604년에 열린 의회에서 개인의 생활양식을 법으로 정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사치금지법을 폐 지하였다(McDonald 235).
셰익스피어가 이런 역사적 변화를 놓쳤을 리가 없다. 『로미오와 줄리엣』(1594-96)보다 십오 년쯤 후에 공연된『겨울 이야기』(
여기 장보기 목록에는 설탕과 쌀을 비롯하여 17세기 초의 영국에서는 여전히 비싼 수입식품들이 포함되어 있다.
카플렛 가의 연회에 쓰인 것과 똑같은 값비싼 음식재료가 양치기 집안의 잔치에도 쓰이는 것은 음식과 신분의 상호성을 강조한 지배세력의 음식 이데올로기에 어긋난다. 16세기와 17세기에 영국의 역사적 현실은 음식의 차별화로 특권적 지위를 주장하려던 지배 계급의 의도와는 다르게 전개된 것이다. 상류사회의 사치스러운 연회와 과시적인 소비 행태는 때로는 양털 깎기 축제처럼 서민들의 삶의 중요한 순간에 소비할 음식의 모델이 되기도 하고 또 때로는 정치적 동기를 가진 패로디의 모델이 되기도 한다. 『리어 왕』(
에드거가 보통 거지들의 호칭인‘푸어 톰’으로 위장한 까닭은 현재 부친살해를 기도한 혐의로 지명 수배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억울한 누명을 쓰고 신분과 법적 권리를 상실한 에드거의 처지는 떠돌이 거지의 신세와 다를 바가 없으므로 그의 위장은 단순한 속임수이기보다는 일종의 자아 창출이라고 볼 수 있겠다. ‘자아 창출’(self-fashioning)은 스티븐 그린블랫(Stephen Greenblatt)이 제안한 용어로서, 사회적 정체성을 규제하는 담론이 활발했던 엘리자베스시대에 신분적 차이에 민감한 개인이 정체성의 기호들을 전유하여 스스로 유리하게 자기의 존재를 표현한 것을 가리킨다(1-9). ‘각자의 자질에 따라’음식의 질을 통제하던 당대의 관습에 비추어, 에드거가 제시한 톰의 식사 메뉴는 거지의 절박한 사정을 반영하여 사람들이 보통 먹지 않는 혹은 먹을 수 없는 것들로 채워져 있다. 이것들은 글로스터 백작의 장자‘에드거’를 미치광이 거지‘푸어 톰’으로 번역-변형시킬 기호들이다. 그런데 톰의 메뉴에 올라있는 것들은 비록 먹지 못할 것일지라도 일반인들의 식사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종류가 다양하고 특별하다. 게다가 때로는 마귀들까지 합세하여 시끌벅적한 연회가 열리곤 한다. 리처드 핼펀(Richard Halpern)같은 비평가는 톰의 식단이“풍요를 찍은 일종의 네거티브”이며 톰을 미식가에 비유하기까지 한다(264). 톰이 희한한 음식을 먹긴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를 미식가라고 하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다. 하지만 톰의 메뉴가 지배 계급의 사치스러운 연회를 방불케 할 정도로 진기하고 다채로운 음식기호들로 가득한 것은 사실이다.
3영국에서도 14세기부터 사치금지법이 도입되었고 주로 의복에 관한 조항이 많았다. 그러나 헨리 8세 치세 동안 음식에 관한 조항도 활발하게 제정되었다. 이를 테면 매 끼 식사에 추기경에게는 아홉 가지 요리를 올릴 수 있고, 공작, 대주교, 백작 등에게는 일곱가지 요리를, 백작 아래의 귀족들과 런던 시장, 가터 기사들, 수도원장 등에게는 여섯 가지를 올리고 기타 연 수입 40파운드에서 100파운드의 재정능력이 있는 자들은 세 가지 요리를 올리도록 제한했다. 아울러‘요리’의 재료들에 관해서도 일일이 명시했는데, 값싸고 흔한 식품들에 대해서는 아무런 규제가 없었다(Sim 6). 416세기 중엽에 자크 뒤부아(Jacques Dubois, 필명은 Silvius)라는 프랑스 의사가 빈민들의 식습관에 관해 저술한 책을 보면, “마늘, 양파, 부추, 채소류, 치즈, 맥주, 쇠고기, 염장한 돼지고기, 수프”등을 서민들의 음식이라고 기술하고 있다. Montanari 87에서 재인용. 5쌀은 중세 유럽에서는 희귀품이었고 15세기경에 롬바르디아와 스페인 일부 지역에서 재배되기 시작했다(Albala, Food 26). 설탕은 중세 유럽에서는‘아랍 향신료’라고 불리며 의약품으로 취급되다가 14세기, 15세기부터 요리에 쓰이기 시작했으며 16세기에 이르러 음식물로 일반화되었다(Montanari 120-21). 그러나 엘리자베스시대의 영국에서 설탕은 사치품이었다(Sim 9). 설탕의 소비는 18세기까지도 특권층에 한정되었고 주로 의약품, 향신료, 장식물로 사용되었다. 17세기 중엽 이후에 영국은 자메이카를 비롯한 서인도 식민지에서 설탕을 생산하기 시작했으며, 18세기 중엽부터 영국 대중들의 설탕 소비가 본격화되었다(민츠 113). 6여기 인용한 대사 바로 직전에 양치기의 아들은 그 해의 양털 수확으로 벌어들인 돈을 계산한다(4.3.32-34). 그의 계산에 따르면 대략 140파운드 정도가 된다. 이 시기에 노동자의 연 평균 임금이 약 7파운드라는 사실을 고려해본다면, 양치기 집안은 이 해에 상당한 액수의 수입을 확보하였으므로 성대하게 축제를 치를 수 있게 된 것이다(McDonald 229). 7음식문화사 연구자들에 따르면‘다채로움’과‘풍요로움’은 르네상스(특히 16세기의) 연회 메뉴에서 최우선시되었던 개념들이다(Albala, The Banquet 11). 8핼펀은 톰의 식단이 리어 왕의“필요를 따지지 마라”“( Reason not the need”) 연설의 논리?특히“가장 천한 거지도 가장 하찮은 물건일망정 여분을 갖고 있다.”(2.4.266-7)는 주장을 반영하고 있다고 본다. 핼펀에 따르면, 리어나 톰의 논리는 귀족들의 과시적인 소비의 단계를 뛰어넘어 소비의 완결판을 보여준다(264). 귀족들의 과시적인 소비는 사회적 인정, 즉 문화자본을 획득할 목적을 갖고 있는데 비해, 리어와 톰의 경우는 아무런 조건이 없는, 그야말로 파괴적인 낭비의 형태이고 이성적인 논리로는 해명되지 않는다. 핼펀은 이것이 셰익스피어의 희곡이 지지하는 논리라고 주장한다. 핼펀의 견해에 대한 동의 여부와 관계없이, 톰의 식단이 과시적인 소비의 형태를 보인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이제까지 살펴본 것처럼 신분과 식습관을 동일한 구조적 원리로 삼은 음식 이데올로기는 셰익스피어시대의 영국인들의 생활양식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으며사회의 상층부에서부터 밑바닥까지 각계각층의 삶에 파고들어 종종 황당하고 비현실적인 상황을 연출하였다. 셰익스피어의 인물들이 보여주듯이 16세기와 17세기의 낭비적인 음식문화를 촉진한 원동력은 이 시기에 영국사회를 휩쓴 사회적 유동성에서 배양된 것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사다리처럼 현격하게 차등 화된 신분제도는 한편으로는 개인의 삶을 속박하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사회적지위의 상승을 꿈꾸게 만드는 요인이기도 했다. 이러한 욕망은 일상생활의 영역에서는 사치의 형태로 표출되기 마련이다. 귀족들의 화려한 연회와 그것을 모방 한 서민들의 축제는 모두 배고픔의 해소나 음식의 맛 그 자체 보다는 과시적인 효과를 노린 것이었으며, 필요 보다는 사치의 영역에 속한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브로델의 관찰에 의하면 계층적 차이가 있는 곳에서는 언제나 사치가 대 두하기 마련이다. 흔히 사치를 부유층의 습관으로 간주하는 일반적인 견해와 달리, 브로델은 방대한 사료에 근거하여 사치에 관한 새로운 관점을 제공한다.
브로델이 사치를 특권층과 대중이 함께 참여하는‘사회적 드라마’라고 정의한것은 셰익스피어시대의 음식문화를 이해하는 데도 유용하다. 앞에서 살펴 본 것처럼 카플렛 가의 연회에 쓰인 값비싼 식재료가 몇 년 후에 양치기들의 축제에도 쓰이게 된 것은 셰익스피어시대의 영국에서도 그런‘사회적 드라마’가 전개 되었음을 말해준다. 카플렛 가의 연회에 초대받은 베로나의 지도층 인사들이 가진 특권은 양치기 같은 대중도 장차 누리게 될 쾌락을 고작 미리 맛보는 것이다.
그런데 브로델의 주장과 같이 사치는“달리 메울 수 없는 사회적 수준의 차이를 반영한 것”이고 그 수준의 차이는 변화가 있을 때마다 새로 발생하므로 사치야말로“영원한‘계급투쟁’”(Braudel 186)이라면, 셰익스피어시대의 영국에서 지배 계급의 과시적 소비문화가 빚어낸‘사회적 드라마’를 일반 대중이 항상 선망의 시선으로 바라보았거나 단순한 모방욕구만을 느꼈을 리가 없다. 실제로 셰익스피어의 무대 위에서 음식은 화합보다는 갈등의 소재로 쓰이는 경우가 더 많다. 일례로 카플렛의 하인들이 연회를 위해 준비한“마지팬”(marchpane) 케이크의 한 조각을 주인의 허락도 없이 슬쩍 자기들의 몫으로 챙긴다(
서두에서 언급했듯이『코리올레이너스』에서 셰익스피어는 정치적 권력투쟁을 재현하기 위해 음식의 기호를 활용한다. ‘빵’에 굶주린 로마의 평민들이 일으킨 식량폭동은 정치적 이해관계를 노골적으로 표현한‘계급투쟁’이라고 할 수 있다. 이 극의 소재는 플루타르크(Plutarch)의『그리스와 로마의 영웅전』(
인용문에서 평민들은 잘 먹고사는 귀족들에 대항하여 스스로“빈민들”로서 집단적인 계급 정체성을 자각한다. 이들은 굶주려서 갈퀴처럼 여윈 그 자신들의 곤경과 과식으로 음식이 물릴 정도인 귀족들의 사치를 극단적으로 대비하여 제시할 뿐만 아니라, 양측 간의 득실을 상대적인 것으로 파악한다. 이것을 보면 셰익스피어시대의 영국에서 상류층의 사치스러운 음식문화가 서민층을 늘 매혹하지는 못했으며 오히려 때로는 계층적인 반감과 질시의 요인이 되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한편 셰익스피어가 살았던 16세기와 17세기 초엽은 특히 시장경제의 발달로 상품의 소비가 일상생활의 주요 활동으로 자리를 잡았고, 영국역사상 처음으로 중간 계층의 영향력이 크게 신장한 시기이다. 셰익스피어의『윈저의 즐거운 아낙네들』(
『윈저의 즐거운 아낙네들』에서 폴스태프가 시종‘푸딩’과‘버터’에 비유되는 것은 그의 살찐 외모 때문만은 아니다. 알발라에 의하면 16세기 후반과 17세기의 영국요리 중에서 독특한 요리 한 가지를 꼽는다면 그것은 푸딩이며, 이 시기의 요리책들마다 다양한 푸딩 요리법을 소개할 정도였고 아울러 버터의 사용도 증가하였다고 한다(
『윈저의 즐거운 아낙네들』의 1막에 나오는 페이지 집안의 만찬은 16세기 말의 영국사회에서도 중간 계층을 중심으로 미각이 변화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 극의 주요 등장인물 모두가 페이지의 집에 초대받아“사슴고기 파이”로 차린 만찬을 먹고“피핀 사과와 치즈”를 후식으로 대접받는다(1.1.180;1.2.12-13). 이 만찬 메뉴에 사슴고기 파이와 치즈가 함께 들어있는 것은 우연한 결합이 아니라 부유한 중간 계층 시민인 페이지의 사회적 위상을 음식기호의 은유로 표현한 것이다. 알발라에 의하면 사슴고기는 귀족의 음식으로 간주되었는데, 그 이유는 대개 귀족들이 사냥할 수 있는 장원을 소유하고 그럴만한 여유가 있었기 때문이다(
누군가 엘리자베스시대의 음식의 종류와 요리법에 관해 상세한 정보를 발견할 목적으로 셰익스피어의 텍스트들을 본다면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기가 어려울 것이다. 한 부지런한 연구자가 조사해본 결과, 셰익스피어의 희곡 전체를 통 틀어 식사 장면은 고작 아홉 개에 불과하고, 그나마 실제 식사하는 상황을 보여주지도 않거니와 대부분이 도중에 중단된다. 그 이유는 아홉 개의 식사 장면들중 일곱 개가 극적 갈등을 표현하고 있기 때문이다(Mahon 231; 237). 이처럼 기존의 연구는 식사의 재현이 드라마의 구조상 어떤 기능을 하는가를 밝혀내긴 했으나 그런 구조적 형식이 역사적으로 어떤 의의가 있는가에 대해서는 관심을 갖지 않았다. 식사가 사람들 간의 이해를 증진하고 유대를 강화한다고 보는 일 반적인 생각과는 달리, 셰익스피어의 경우에는 식사를 화합보다 분열의 계기로 삼는 이유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연구된 바가 없다.
이러한 문제점을 염두에 두고, 이 글은 식욕의 문명화라는 관점에서 셰익스피어의 희곡에 재현된 음식문화를 검토해보았다.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셰익스피어의 텍스트에 나타난 다양한 음식 기호들은 일정하게 의미 있는 패턴을 보인 다. 그것은 셰익스피어시대의 영국에서 진행된 역사적 변화의 양상과 일치한다. 이 시기의 현저한 특징은 무엇보다도 사회적 유동성의 증가와 상품시장의 확장이다. 셰익스피어의 희곡은 역사적 생산양식의 변화와 사람들의 식습관과 음식 의 형식 사이에 긴밀한 상관성이 있음을 보여준다. 바싸니오와 푸어 톰의 경우처럼, 셰익스피어는 종종 음식의 질과 그것을 먹는 사람의 지위와 신분을 동일시한 음식 이데올로기에 호명된 주체들을 등장시킨다. 바싸니오의 낭비벽은 16 세기 영국의 지배 계급의 폐단이었던 과시적 낭비를 예시한 것이라면, 먹지 못할, 그러나 희한한, 음식 이름이 가득한 톰의 식단은 그런 사회적 풍조를 유쾌하게 패로디한 것이다.
또한 셰익스피어의 희곡을 보면 음식은 사회적 유동성을 촉진하는 촉매 역할을 한다. 일례로 15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카플렛 가처럼 부유한 가문에서나볼 수 있던 음식이 17세기 초에 이르면 양치기들의 축제 음식에 포함되게 된다. 진귀한 음식은 계급 구분의 기준이 되기도 했지만 대중에게는 상류층의 생활양식에 접근하기 위한 일종의 전략적 수단으로서 모방의 대상이기도 했던 것이다. 이와 대조적으로 평민들이 귀족들의 특권에 대항하여 식량폭동을 일으키거나 중간 계층의 주부들이 기사 폴스태프를‘범벅 푸딩’이 되게 요리하는 플롯에는 계급적인 이해관계가 얽혀 있다. 사회적 소통의 기호로서 음식은 사회계층 간에 갈등과 투쟁의 은유가 되기도 했던 것이다. 그리고 이 모든 복잡한 변화의 기류들을 적재한 셰익스피어 희곡의 음식 기호들은 그 시대의 관객을 매혹했듯이 21세기의 독자들에게도 여전히 별미다.
<전 남 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