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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A 학술지
What’s happening to theatricality after the rise of New Historicism?: A Study of Newsbooks and Playlets During the English Civil Wars and Their Significance as Textual and Theatrical Forms 신역사주의적 극장성의 재고(再考) ―17세기 중반 뉴스북과 플레이릿 연구를 중심으로
  • 비영리 CC BY-NC
ABSTRACT
What’s happening to theatricality after the rise of New Historicism?: A Study of Newsbooks and Playlets During the English Civil Wars and Their Significance as Textual and Theatrical Forms
KEYWORD
New Historicism , theatricality , playlet , Newsbook , English civil war , textuality , Craftie Cromwell
  • I

    푸코적 권력의 관점, 즉 권력은 어느 한 집단이나 개인에 의해 소유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라 사회 곳곳에 모세혈관처럼 전방위적으로 뻗어있는 격자나 망으로 작동한다는 의견이 처음으로 인문학계에 소개되었을 때, 이와 같은 관점은 많은 사람에게 무척이나 낯선 것이었다. 하지만 푸코의 저작이 문학이론의 필독서가 되어버린 오늘날, 푸코적인 권력이론, 일상세계의 미시적인 관계망을 통해 작동하는 권력의 모습은 더 이상 낯설지 않게 되었고 최소한 문학이론의 지형에서는 너무나 당연한 관점으로 받아들여지게 되었다.1 한 가지 재미난 것은 푸코의 권력이론이 비평계에서 조명을 받기 시작할 즈음, 데리다가 주장하는 텍스트성 역시 활발하게 논의되기 시작되었다는 점이다. 데리다는“텍스트 밖에 세계란 없다”(Of Grammatology, 158)라고 말함으로써, 텍스트의 외연과 우리가 경험하는 세계 사이의 외연과의 구별이 불가능함을 주장했고, 바르뜨 역시 텍스트는 작품(work)과는 분명하게 다르다고 주장함으로써, 경계가 뚜렷하고 전시 가능한 대상으로의 작품과는 달리 방법론적 영역(methodological field)으로 이해될 수 있는 것, 라캉의 실재계가 그러하듯 전시될 수 없고 오직 예시될 수 있는 것으로 텍스트를 설명하였다(Barthes 73-81). 결국 실재계, 텍스트성, 권력 등 (후기) 구조주의의 주요 키워드들은 지금의 시점에서 보면 새로운 패러다임의 도래를 알리는 사건들이라 할 수 있는데, 구조주의 이전의 이론이 어떤 특정 개념—예를 들면 맑스의 노동, 헤겔의 절대정신, 데카르트의 고기토(Cogito)—을 모든 것의 본질로 규정하고 이 본질과 비(非) 본질적인 것들의 위계화를 통해사회, 문화적 현상들을 살펴보고자 했다면, 이런 사고가 필연적으로 수반하는 환원주의적, 권위주의적 사고의 반발로 나타난 것이 구조주의의 개념 아닌 개념들, 텍스트성, 권력, 실재계 등이었다고 할 수 있다.

    신역사주의(New Historicism)에 의해 소개되고 광범위하게 사용되는“극장성”(theatricality)이라는 말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 극장성이라는 개념은 푸코의『감시와 처벌』(Discipline and Punish) 이후 문학, 특히 르네상스 문학의 전문가 집단, 스티븐 그린블라트(Stephen Greenblatt), 스티븐 오겔(Stephen Orgel) 등에 의해 발전되고 활발하게 논의되었다. 앞에서 논의한 데리다나 바르뜨의 텍스트 혹은 텍스트성이 어떤 뚜렷한 경계를 이루거나 대상화될 수 있는 말이나 글의 꾸러미, 즉 작품(work)이나 책(book)과는 구별되는 개념이라 한다면, 극장성 역시 극장 혹은 공연과 같이 전통적인 문학 개념이 지칭하는 경계가 뚜렷한 문화적 상품이나 그것의 소비를 지칭하는 것 이상의 외연을 가진다. 다시 말해, 공연이나 극장이라는 말이 특정한 제도의 한 영역에서만 행해지는 어떤 문화적 행위나 실천으로 국한된다면, 극장성은 연극의 공연 이외의 다른 곳에서도 찾아볼 수 있는 문화 현상이나 실천, 말 그대로 그것의 외연과 위치를 정확하게 가늠하기 힘든 그 어떤 것으로 표상되었다. 극장성이라는 개념적 틀은 극장 밖의 문화적 실천에도 적용가능하였기 때문에 이전에는 그저 별개의 문화현상으로, 문학 이해의 주변부적인 배경지식의 하나였던 것들, 가령 왕의 대관식, 카니발, 엑소시즘 등이 극장성이라는 큰 테두리에서 새롭게 논의되기 시작하였다.2 극장성이라는 비판적 관점에서 새롭게 조명된 영국의 전근대사회는 결국 화려한 스펙터클과 극적인 효과를 통해 문화적 실천이 이루어지는 사회로 이해된다.

    여기서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은 극장성이라는 개념은 신역사주의자들에 의해 적극적으로 차용되면서 극장성이 영국의 전근대 시기의 지배적인 문화양식으로 이해되었다는 점이다. 흔히 미셸 푸코, 스티븐 오겔 그리고 스티븐 그린블라트로 대표되는 신역사주의자들은 근대 이전의 사회를 논할 때 암묵적으로 극장성을 지배적인 문화 실천 양상으로 제시한다. 예를 들어 신역사주의의 사상적기초를 놓은 푸코의 경우, 그의 대표적인 저서인『감시와 처벌』에서 어떻게 전근대 시기(the early modern period)의 권력이 근본적으로 현대적인 권력과는 다르게 작동하는지를 날카롭게 분석한다. 이 책의 인상적인 첫 장면에서 푸코는 국왕시해를 감행한 다미엥(Damiens) 죄수의 처형에 나타난“일련의 엄청난 의식들”(a series of great rituals)과 폭력에 주목하고 어떻게“손상된 주권” (injured sovereignty)의 요체, 즉 국왕이 자신의 대리인을 통해 죄수의 몸을 향해 분노와 응징의“스펙터클,”화려한 권력의 현시를 대중 앞에서 과시하는가를 세밀하게 묘사한다(40-48). 이런“연극적 요소”(theatrical elements)가 강한 전근대와는 달리, 푸코에 따르면 현대사회는“스펙터클한 사회가 아니라 감시”를 특징으로 하는 사회이며, 주체들에게 지속적인 규율과 훈련을 부과하고, 이들을 기호들의 놀이 속에 편입시킴으로써 지식과 기호의 세계를 기반으로 권력이 효과를 발휘하게 되는 사회이다(9;217).

    극장성을 통한 근대와 전근대라는 푸코의 구별은 또 하나의 대표적인 신역사 주의자인 오겔의 경우 영국의 구체적 역사적 맥락에 맞추어 다소 새롭게 변형된다. 오겔은 그의 대표적 저서 중 하나인『권력의 환영』(The Illusion of Power)에서 스튜어트 왕조 시절의 궁정 마스크(Court Masque)의 미학을 논하는데, 시각적 환영과 극적 효과들을 통해 드러난 국왕의 의지와 막강한 힘, 즉 푸코의 용어를 빌린다면, 스펙터클의 미학, 전근대의 극장성은 마침내 17세기 중반 차가운 현실과 사실주의적인 감성으로 무장한 퓨리턴과 그들의 동조자들에 의해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되었다고 진단한다.

    인용된 단락이 보여주듯, 오겔에 따르면 궁정 마스크가 대표하는 이상적이며 환상적인 극적 환영들은 절대왕권의 힘과 부에 의해 지탱되었으며 이는 국회를 점령한 청교도들로 대표되는 근대적 합리성 혹은 그것의 맹아적 형태에 의해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

    극장성이 특정 사회의 대표적인 예술 표현 양식으로 인기를 끌게 된 것은 극히 제한적인 역사적인 순간이며, 바로 그 역사적 순간이 영국의 경우 튜더(Tudor) 혹은 스튜어트(Stuart)왕조 시기에 해당한다는 암묵적인 신역사주의의 전제는 그린블라트의 여러 저서에서 보다 광범위하게, 그리고 다소 복잡한 양상으로 나타난다. 예를 들어, 헨리 8세의 왕권을 중심으로 펼쳐진 화려한 궁정 생활과 의례 속에서 인문자의자 토마스 모어(Thomas More)의 내적 고뇌를 추적하는““위인들의 식탁에서”“( At the Table of the Great”), 그린블라트는 헨리 8세의 궁정세계를“정교한 연극적인 의식들”(elaborate theatrical rituals)과 “권력의 의례로 가득 찬”(thick with the ceremonies of power) 곳으로 묘사한다. “위인들의 식탁에서”그린블라트는 갈등과 고뇌에 찬 모어, 즉 헨리 8세가 최종적으로 조정하고 관리하는 연극적인 세계의 막강함을 잘 알고 있으며 동시에 공적세계의 억압과 자의성으로부터 도망치고자 하는, 모어의 양면적인 모습을 그린다. 이런 과정에서『유토피아』에 등장하는 두 대립적인 인물, 즉 히슬로데이(Hythloday)와 모어는 극장성에 기반한 권력과 개인의 대립의 문학적 등가물로 제시된다. 하지만, 그린블라트에 따르면, 이런 화려한 의례와 스펙터클을 특징으로 하는 국가권력의 통치는 종교개혁의 등장과 함께 서서히 쇠퇴한다. 그린블라트는“셰익스피어와 엑소시스트”“( Shakespeare and the Exorcists”)라는 논문에서 셰익스피어의『리어 왕』(King Lear)과 그것의 텍스트 형성에 영향을 준 사무엘 하스넷(Samuel Harsnett)의“터무니없는 로마 가톨릭의 사기행각의 공표”“( A Declaration of Egregious Popish Impostures”) 사이의 관련성을 살피는데, 이를 통해 어떻게 종교개혁 및 새로운 담론의 등장에 따라 스펙터클의 통치와 그에 따른 효과가 서서히 주변화, 희화화되는지를 보여주고자 한다. 이 글에서 그린블라트는 예전의 가톨릭 중심의 문화에서 권력의 주요 기재로 존재했던 화려한 스펙터클, 마술, 기적 등이 서서히 권력의 변방으로 추방되고, 허구적인 것, 연극적인 것(the theatrical)이라는 말로 평가절하 되었다고 주장한다. 그린블라트에 따르면, 중세 연극이 사회 통합적이었고 사회의 중심 권력과 어떤 커다란 갈등이나 긴장 관계에 있기 보다는 협력 관계에 있었다면, 세속화된 르네상스 연극은 주변부로 밀려난 극장적인 에너지를 수용하는 제도적인 장치로서, 권력의 필요에 의해 생겨났으면서도 일정한 긴장관계에 놓여있는 주변부적인 문화공간으로 전락한다.

    그린블라트에 따르면, 셰익스피어 연극, 더 나아가 르네상스 연극은 극장성(theatricality)이라는 사회 통합적인 메카니즘에 균열이 생기는 역사적 순간에 나타난다. 이런 점에서 르네상스 연극은 중세 연극과는 다르게 마술적인 세계, 기적과 환영의 세계에 대한 맹목적인 믿음에서 서서히 거리를 두게 된, 멀리 보면 근대화의 여정 속에 진입했음을 알리는 초기 징후에 해당한다.

    앞에서 잠시 언급한 푸코, 오겔, 그리고 그린블라트가 보여주듯이 극장성이 사회 통치의 중심에 있던 시기가 정확히 언제 시작되고 언제 끝났는지에 대해서는 신역사주의자들 사이에서도 각기 의견이 갈리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 모두 극장성이라는 사회 문화적 통합의 틀이 근대화의 과정 속에서 점차 그 힘을 소진하고 소설로 대표되는 새로운 문화적 기제에 의해 대체된다는 역사적 관점에 암묵적으로 동의한다.

    신역사주의의 극장성에 대한 이와 같은 대체적인 시선은 분명 자명하고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신역사주의 이전에 우리는 이미 하버마스나 이외 많은 소설사에 대한 이론가를 통해 18세기 중산층의 대두, 새로운 공적 영역(public sphere)의 등장, 그리고 신문, 문학 잡지라는 인쇄문화의 발달 등의 중요성을 알고 있으며, 이런 새로운 문화적 변화가 기존의 문화적 표현물을 대체하고 연극을 통해 경험했던 예술적 감수성을 점점 낯설고 생경한 것으로 변모시켰다는 것을 익히 들어왔기 때문이다.3 프랑스의 페미니스트로 유명한 쥴리아 크리스테바가, 텍스트적인 상호작용과 교통이 주류가 되어버린 현대사회에서는, 극장적인 경험, 가령“현시”(de-monstration)나“유희 (상호-유희)의 공통체적 담론”(a communal discourse of play(inter-play)) 등의 경험이 더 이상 가능하지 않게 되었다고 주장할 때, 크리스테바는 분명—현대 많은 문학이론가들과 마찬가지로—소설 등으로 대표되는 텍스트성의 우위가 진정한 의미에서의 극장성의 경험을 방해한다고 보는 것이다(277).

    공동체의 결속을 통해 가능했던 연극의 현시적인 성격이 근대에 들어 더 이상 가능하지 못하게 되고, 그 결과 연극이 텍스트적 유희와 다르지 않게 공허한 이데올로기적인 메아림으로 전락했다는 다소 난해한 크리스테바의 진단은 극장성, 혹은 연극적인 경험을 전근대적인 것으로 이해하고, 이것을 텍스트성의 대립항으로 설정하고 있다는 점에서 신역사주의들의 문학사적 이해와 거의 대동소이하다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렇게 전근대에서 근대로의 이행을 텍스트성과 극장성의 우세 여부로 판단하는 것이 과연 올바른 이해인지는 여전히 의문으로 남는다. 근대 이후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21세기에도 여전히 극적 경험, 스펙터클, 수행성(performativity) 등의 말들이 회자되고 논의되고 있기 때문이다.4 17세기 중반시민전쟁 당시 국가가 왕당파와 의회파로 분열된 상황에서 생겨난 뉴스북(Newsbook)과 플레이릿(playlet)을 살펴보는 것은 이런 점에서 의미가 있다. 영국사의 최초 황색저널리즘(yellow journalism)의 발달을 비판적으로 검토해 봄으로써 우리는 활자문화(print culture)의 발달에 따라 극장성의 세계가 계속해서 위축되고 주변화 되었다는 영문학사의 일반적인 통념이 역사적 사실과 많이 거리가 있음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뉴스북과 플레이릿에 대한 역사적인 고찰은 극장성이 활자문화(print culture)에 새롭게 안착되고 변형되는 과정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상당한 의의가 있으며, 활자문화의 발달이 반드시 극장성의 파괴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점에서 텍스트성과 극작성의 이항대립적(binary oppositional) 설정을 반성하고 새로운 관계 설정에 대한 단초를 제공할 것이다.

    1『성의 역사』에서 권력이 어떻게 성을 관리하고 조직하는지에 대해 설명할 때, 푸코는 권력의 양상이 모든 수준에서“모세혈관적인 개입”(capillary interventions)과 같은 방식으로 작동한다고 주장한다(The History Vol.1, 83). 푸코의 권력이론에 대한 개괄적인 설명은『문학 및 문화이론 백과사전』(The Encyclopedia of Literary and Cultural Theory)에서 찾아볼 수 있는데, 편저에 따르면 푸코에게 권력은“네트워크 혹은 힘들의 자기장 속에서 작동하며,”권력은“결코 지배되는 자들 위에 군림하는 지배적인 자들의 독점적인 지위가 아니며”권력은 오히려 저항을 통해 아래에서 위로, 그리고 근대이후에는 권력과 언어와 긴밀하게 연관이“ 있는 것으로 이해된다(610).  2대관식(coronation)에 나타난 극장성에 대한 분석의 예로는 케이틀린 조르겐슨(Caitlin Jorgensen)의 논문“통일성 속의 다양성: 엘리자베스 여왕의 대관식 행렬,”또는 앨리스 헌트(Alice Hunt)의『대관식』참조. 엑소시즘의 경우에는 스티븐 그린블라트(Stephen Greenblatt)의“셰익스피어와 엑소시스트”참조. 카니발과 극장성의 관계의 경우 마이클 브리스톨(Michael D. Bristol)의『카니발과 극장』을 참조.  3커피 하우스, 문학잡지 그리고 중산층의 문화적 헤게모니에 대한 고전적인 해석은 위르겐 하버마스(Ju..rgen Habermas)의 고전『공공영역의 구조적 변형』, 35-43을 참조하시오. 시기구분에서 다소 차이를 보이지만 중산층 중심의 대중교육의 필요성이 대두되면서 어떻게 영문학이 고전문학(classic literature)을 대체하고 이런 과정에서 어떻게 신비평의“꼼꼼히 읽기”(close reading)가 주된 문학 비평의 실천으로 자리하는지를 보여줌으로써 문학 텍스트의 물화(reification of literary texts) 과정을 맑스주의적 관점에서 설명하는 책으로는 테리 이글턴(Terry Eagleton)의『문학 이론』, 특히 첫 장, “영문학연구의 발흥”을 참조하시오.  4후기 산업사회 이후 이미지의 대량 생산과 유포가 가진 헤게모니적 성격을 고찰하는 미디어 연구,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을 언제나 이미 넘어서는 개인의 수행적 실천에 대한관심 등은, 분명 이 글에서 문제 삼고 있는 데리다나 후기구조주의자들의 언어이론, 세계관, 정치적인 정향과는 반대 혹은 구별될 필요가 있다. 이런 새로운 연구방법들은 분명 텍스트/언어 중심, 담론 중심의 연구나 실천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새로운 시도로 볼 수 있다. 수행성 이론에 대한 개괄적인 설명으로는 제임스 록슬리(James Loxley)의 『수행성』참조. 스펙터클과 현대사회의 연관성에 대한 이론서로는 리차드 길먼-오펄스키(Richard Gilman-Opalsky)의『장엄한 자본주의』참조.

    II

    앞에서 지적했듯이, 극장성과 관련하여 최근 후기 구조주의자들 이후의 문학비평의 지배적인 생각은 근대화의 여정에 극장성이 점진적으로 쇠퇴하고 텍스트성이 주요 문화실천의 중심으로 자리 잡았다는 견해이다. 시민전쟁과 이후 왕정복고 시대 이후의 새로운 문화적 현상들 역시 대체로 근대화에 따른 점진적인 인쇄문화의 발달, 그리고 이에 따른 극장성의 후퇴라는 관점에서 이해되고 수용되어왔다. 왕정복고 시대 이후의 문학, 문화적 현상의 경우, 대부분의 비평가들은 이 시대 연극이 이제 르네상스의 생명력과 활기에 미치지 못하는 것으로 평가하였고, 대신 신문과 소설의 발달에 주목하고 이것에 높은 가치를 부여하였다.5 시민전쟁이 있던 17세기 중반의 경우, 이 시기를 아예 드라마의 공백상태로 보는 경우도 많지만, 나름대로 퓨리턴 정권에 맞서 암암리에 성행하던 다양한 연극 형태를 발굴하는 최근의 연구에서도 시민전쟁 이후 르네상스의 연극의 기운이 급격히 쇠퇴했다는 대전제에는 이의를 제기하지는 않는다.6

    결국 17세기 중 후반의 영국사의 기존의 이런 해석은 근대화에 따른 극장성의 쇠퇴, 출판 문화의 점진적인 발달이라는 기존의 문화해석과 궤를 같이 한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앞에서 잠시 언급했듯이, 이와 같은 역사해석에는 극장성에서 텍스트성의 이행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이루어졌는지에 대한 고민이 빠져있다. 이행의 조건을 제대로 설명하지 못함으로써, 대부분의 근대화에 따른 문화적 실천의 변화는 다소 모호한 상태로 남아 있게 되고, 마치 극장성의 체험과 조건을 형성하던 문화적 공간이 어느 한 순간, 가령 국회명령과 같은 법에 의해 일순간 사라지거나 힘을 상실하고, 그 대신 이 문화적 공백을 인쇄문화가 순식간에 메우게 된 것처럼 보이게 만든다.

    시민 전쟁 당시 등장한 뉴스북(newsbook)의 출현에 대한 세밀한 고찰은 이런점에서 흥미로울 수 있다. 전근대 극장성의 중심이었던 연극무대가 폐쇄된 상황에서 팸플릿과 뉴스북의 급격한 양적, 질적 발달은 분명 극장성 중심의 문화에서 인쇄물 중심의 문화의 이행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현상으로 이해될 수 있다. 하지만 앞으로 뉴스북의 보다 세밀한 분석을 통해 나타나듯이, 이런 이행은 연극적인 요소의 배제가 아니라, 인쇄매체에 이를 결합하고 새로운 극장성의 체험을 확보하는 방향으로 이루어졌다. 다시 말해, 뉴스북의 등장은 얼핏 보면 극장성에서 텍스트성으로의 이행인 것으로 보이지만, 좀 더 깊이 살펴보면, 인쇄문화와 결합된 새로운 형태의 극장성의 출현으로 이해할 수 있다.

    초기 뉴스북은 시민전쟁 당시 왕과 국회사이의 긴장이 고조되는 상황에서 국회의 일정을 정기적으로 보고하는 형태로 시작되었다. 처음에는 하원의원들의 암묵적인 지원, 혹은 묵인하에 배포된 뉴스북은 매주 의회에서 토의된 사항들과 안건들에 대한 자세한 보고로 지면을 채웠으나, 이후 국회 밖의 정치, 사회면의 뉴스 등을 다루는 것으로 확대되었다. 사절판 크기의 8페이지 분량의 책자로 이루어진 뉴스북은 최소한의 언문을 익힌 사람이면 그 내용의 대강을 알 수 있을 정도로 쉽게 쓰여졌다. 물론 이렇게 최소한의 문식성(文識性, literacy)을 갖춘사람도 이해할 수 있도록 쉽게 쓰여졌다는 것은 뉴스북이 최대한 많은 수의 독자를 확보하고자 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의회와 찰스 국왕의 대립이 고조되는 상황에서 등장한 뉴스북은 일종의 기관지 역할을 했다고 할 수 있는데, 의회파는 자신들이 지원하는 뉴스북을 통해, 또 왕당파는 그들이 후원하는 뉴스북을 통해 여론을 자신들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이끌고자 하였다.

    뉴스북이 연극적인 요소를 적극적으로 차용한 것은 바로 이런 대중 매체적 성격과 깊은 연관이 있다. 튜더 왕조가 시작되고 극장이 국회령에 의해 폐쇄되기 전까지 르네상스 연극은 그 어떤 예술형식보다도 대중적인 예술형식이었다. 연극이 대중성을 띨 수 있었던 것은 물론 문식성이 낮은 사람, 즉 글을 모르는 사람마저도 청중이 되어 예술적 행위를 즐길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뿐만아니라, 연극은 지배계층, 그리고 피지배계층 모두에게 자신들의 필요나 욕망을 충족시켜주는 매우 요긴한 매체였다. 우선 지배계층의 경우 연극은 자신들의 권위의 정당성을 알리는 수단으로 사용되었다. 연극을 통해서 지배계층은 왕권의 위대함이나 영국의 여러 역사적 사건, 가톨릭 국가나 유태인의 악덕, 런던의 번영 등을 효과적으로 설파하고 가르칠 수 있었다.7 물론 역으로, 대중 자신들에게도 자신들의 생존이나 신분 상승을 위해서 연극은 매우 요긴하였다. 귀족의 예의범절을 흉내내고자하는 사람, 낯선 도시나 마을의 풍습이나 런던의 최근 유행을 알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연극은 요긴한 사회, 문화적 실천의 거울이었다.8대중 매체의 대표적인 역할을 해왔던 극장이 폐쇄된 시민전쟁 당시 뉴스북은 바로 새로운 대중 매체로 등장하게 되었고, 연극이 해왔던 이 이중의 역할을 일정정도 수행했다고 할 수 있다. 좀 더 부연하면, 분열된 지배계층 즉 왕당파와 의회파들은 뉴스북을 통해 상대 진영의 악덕과 비도덕성을 필요하면 과장하면서까지 설파할 수 있었으며, 이를 통해 다수의 국민을 자신들의 편에 끌어 들이려하였다. 한편, 대다수의 독자들의 관점에서 뉴스북은 혼돈스러운 정치 현실에서 간단명료한 방식으로 누가 적이고 누가 아군인지, 누가 무엇을 요구하고 무엇을 반대하는지를 한 눈에 알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뉴스북은 편집자의 신랄한 논평, 반대파 인물의 과장스럽고 희화적인 묘사, 타이포그래피(typography)를 통한 극적 긴장 조성 등 여러 방식을 통해 극적요소들을 차용하였고 이를 통해 독자는 정치적 갈등을 보다 생생하게 느낄 수있었다. 그러나 무엇보다 뉴스북의 극적인 요소를 가장 노골적이며 과감하게 드러낸 것은 뉴스북의 한 형태인 뉴스 단막극, 플레이릿(playlet)의 출현이었다.플레이릿은 대개 두 세명의 가상의 인물이 등장해 정치적, 문화적 이슈와 관련된 대화를 나누는 것이 주 내용이다. 가상 인물들을 통한 대화라는 극적 장치를  통해 플레이릿 작가는 자연스럽게 독자를 자신의 정치적 입장이나 편견을 수용하도록 유도할 수 있었는데, 예를 들어, 익명으로 1642년에 출판된『런던의 최근 소식』(The Last News in London)의 경우, “1642년 10월 12일 런던과 러드로우 사이를 여행하는”두 명을 등장시켜, 의회파 일당의 정치적 행동을 풍자한다.

    시민전쟁의 시작을 알리는 에지힐 전투(the Battle of Edgehill)가 있기 바로전에 출판된 이 책자는 찰스 일세와 일전을 치르기 전 런던 길드홀(guildhall)에 모인 의회파들의 집회를 극적인 형태로 전한다. 의회파의 위선과 비도덕성을 설파하기 위해 이 글의 저자는 한 음절 차이인 두 단어“기도하다”(pray)와“연기하다”(play)를 재치있게 사용, 의회파의 종교적 모습 뒤에 숨어있는 위선을 폭로한다. 연극의 공연을 금지할 때 의회파가 포고한 법안의 내용을 잘 알고 있는 독자라면, 이 플레이릿의 작가가 의회파를 그리는 방식이 생각보다 단순하지만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의회파가 공연 금지령에 사용한 어법과 말투는 다분히 종교적인 색체가 강하고 경건한 이미지들로 이루어져 있는데, 이 플레이릿은 그들의 이런 경건한 모습은 다 허세이며 정치적인 꼼수일 뿐이라고 말한다. 플레이릿 작가에 따르면 의회파의 이런 경건한 체 하는 모습 자체가 바로 연극이요, 위선이라는 것이다.

    『런던의 최근 소식』이 보여주듯이, 플레이릿은 혼돈스러울 수 있는 복잡한 정치적 이슈나 상황을 극적인 형태를 통해 단순하고 명료하게 제시한다. 반대하고자 하는 정체세력의 위선이나 비도덕성을 풍자하거나 희화함으로써, 플레이릿의 작가는 독자로 하여금 자신의 편에 설 것을 간접적으로 설득한다. 이러한 극적 형식이 단지 논리에 기반한 연설이나 논문 보다 더욱 효과적인 것은 독자가 등장인물과의 동일시, 정서적 공감을 통해서 부지불식간에 설득을 당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 식의 설득은 두말할 필요 없이 높은 문식성을 요구하지 않기때문에 일반 대중들에게도 효과적일 수 있었으며, 그 만큼 대중적인 파급효과도 크다고 할 수 있다.

    플레이릿이 보여주는 뉴스와 연극의 독특한 결합은, 얼핏보면 시민전쟁 당시 잠깐 유행한 기이하고 우연적인 문화현상으로 평가할 수 있다. 하지만, 플레이릿이 뉴스북이라는 근대적인 형태의 저널리즘의 등장과 함께 나타났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다시 말해 이것은 새로운 문화지형에 등장한 대중적인매체, 즉 저널리즘이 어떻게 근본적인 측면에서 극적 갈등과 형식을 빌어 현실을 구성하고 이를 독자에게 전달하는지를 선명하게 보여주는 문화상품이다. 인쇄 매체와 극장성의 새로운 결합으로 플레이릿은 그것과 비교될 수 있지만 훨씬더 복잡한, 이후 저널리즘적인 문화 상품들, 예를 들어 논평이나 소설 등이 그것들의 형식적 복잡성으로 인해 은폐하거나 가리고 있는 연극적인 요소들을 선명하게 보여준다는 점에서 커다란 의미가 있다.

    저널리즘의 작동원리에는 극적인 이야기 구조와 요소들이 본질적으로 포함되어 있다는 주장은 분명 낯설지 않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것이 가지는 함의를 충분히 인지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이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 여기서 우리는 존 소머빌(John Sommerville)의『영국에서의 뉴스 혁명』(The News Revolution in England)의 주요 논의를 잠시 살펴볼 필요가 있다. 소머빌에 따르면 17세기 정기 뉴스(periodical news)의 출현은 우리의 시간과 실재에 대한 인식에 전혀 새로운 변화를 가져다 준 엄청난 사건이다. 정기뉴스가 가져다 준엄청난 변화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이것의 변화에 둔감한데, 그 이유에 대해 소머빌은 사람들이 활자혁명의 경우 이전과 전혀 다른 테크놀로지의 사용을 눈으로 쉽게 확인할 수 있었던 것과 다르게“정기 간행물”의 경우는 다른 인쇄매체와“동일한 활자기술”(the same letter press technology)을 사용하기 때문에 후자의 공헌이 종종 활자혁명의 공헌과 혼돈되는 경우가 많았다고 주장한다. 소머빌은 더 나은 정기간행물은 비록 활자매체를 사용한다는 점에서 기타 인쇄물과 비슷해 보이나, 독자들로 하여금 어제 혹은 전 주에 읽었던 기사나 이야기의 전개 과정을 계속해서 시간의 흐름에 따라 추적하고 따라 가도록 유도한다는 점에서 전혀 새로운 방식의 독서 형식, 나아가 전혀 다른 방식의 (세계에 대한) 지각 방식을 만들어낸다고 설명한다(Sommerville 6-7).

    소머빌에 따르면, 뉴스는 단지 객관적인 정보나 사실을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독자의 감정을 자극하여 신문에 실린 기사에 흥미를 갖도록 유발한다. 소머빌은 사건들이“자연발생적일 수”있으나, 이것들을 보도하는 뉴스는 “제조된 물건”(manufactured product)이기 때문에, “보도되지 않는 뉴스란”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뉴스는 인위적인 과정을 통해 생산된 상품으로 매체 밖에 즉 자연 상태로 존재하는“뉴스”란 없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어떤 특정한 사건, 보도할 소식이 없을 때에도 뉴스는 정기적으로 독자에게 전달해야 되기 때문에 비중이 없는 이이기라도 독자에게 마치 의미 있는 것처럼 전달하게된다. 반대로 상당히 중요한 사건들도 어제 기사화된 것이라면 오늘은 당연히 오늘의 사건과 소식에 자리를 내주어야 한다는 점에서 저널리즘에서의 이야기 혹은 사건들은 현재라는 시간과의 연관에서만 의미를 가지고 가치를 지닌다고 할 수 있다. 이런 뉴스를 통해 일상생활의 일들은 독자들이 시간의 전개에 따라전개되는 흥미진진한 극적 이야기가 되고, 이런 이야기 속에서 독자는 긴장이나 갈등, 서스펜스 등과 같은 극적 경험을 하게 된다. 뉴스의 발명과 함께 이제 사람들은 이전의 문학작품들에서나 맛볼 수 있었던 극적 경험을 일상생활의 시간과 이야기 속에 경험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다시 말해, 이전에는 제도가 지정한 뚜렷한 사회적 공간, 즉 극장 안에서나 가능했던 연극적 경험이 이제는 무대 밖 현실 속에서도 체험될 수 있는 것으로 된 것이다. 뉴스의 출현은 이런 점에서비(非)일상과 일상, 비(非)연극성과 연극성 사이의 경계를 허물고 현대적 형태의 극장성의 시작을 알리는 역사적 사건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다른 한편에서 보면 일상생활이 극적인 형태로 전달되고 체험되는 만큼, 뉴스를 통해 체험된 극장성은 이전의 것과 전혀 다른 차원의 것이 되었다. 예전의 연극적 체험의 대상이 되었던 이야기나 갈등은 분명 우리가 살고 있는 세속적이며 자질구레한 이야기와는 구별되는 이상적인 세계 혹은 최소한 우리의 삶을 비판적으로 반추할 수 있는 심미적 거리두기가 가능한 비일상적 시공간이었다. 이야기의 대부분은 이미 그 내용을 잘 알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또 새로운 이야기라 하더라도 최소한 극의 시작, 전개 결말 등은 뚜렷한 구조와 형태를 갖추고 있었다. 즉 공연 시작과 함께 무대 위에 오른 이야기는 공연이 끝날 즈음에 그것의 결말이 드러나야 했으며, 청중은 무대 위에서 극적 구조가 뚜렷한 이야기가 상연될 것을 기대하였다. 비일상적인 이야기를 기반으로 하는 기존의 극적 체험은 또한 제도적인 뒷받침으로 인해 더욱 또렷이 일상적인 경험과 구별되었다. 중세 연극의 경우 연극 공연은 종교적 행사와 함께 시작되거나 카니발과 같은 축제의 한 부분이었기 때문에 연극적 체험은 일상으로부터의 탈출 혹은 해방과 함께 시작되었다.9 런던 근교를 중심으로 세워진 상업적인 형태의 르네상스 연극의 경우 중세 연극에 비해 일상적인 삶에 보다 가까이 위치했으나, 여전히 런던의 성벽 밖 리버티(London liberties)라는 특정 관할 구역에서 국가에 의해 허가된 극단과 배우가 이미 검열을 받은 대본에 맞추어 공연이 이루어졌기 때문에 일상적인 삶과는 분명히 구별되었다.10

    이전의 연극이 제공하는 극적 경험과 비교해 볼 때, 뉴스에 의해 전달되는 극적인 이야기는 더 이상 이야기의 완결성, 확정성을 가지지 못한다. 뉴스를 통해전달되는 이야기는 미리 짜여진 각본이나 플롯 없이“오늘”이라는 절대적인 현재 속에서 우연히 주어지는 사건들과 그것의 흐름을 뒤쫓고 묘사하는 것으로 채워진다. 다시 말해 독자가 뉴스라는 형식을 통해 가지게 되는 극적 경험은 언제나 전체 이야기가 아닌 부분적인 이야기에 근거하기 때문에 파편적이며 그 이야기의 결말은 언제나“미래”라는 결코 도래하지 않는 시간의 지평 속으로 연기되기 때문에 불확정적이다. 이런 파편성과 불확정성을 특징으로 하는 극장성은 뉴스 매체가 있기까지는 아직 존재하지 않았던 문학적 표현 방식으로 뉴스매체를 통한 새로운 극장성의 확립은 근대적 의식과 감수성을 형성하는 데 적지 않은 영향을 주었다고 할 수 있다.

    5쥬디스 밀호스(Judith Milhous)의“극단과 규율,”108-09 참조.  6시민전쟁 당시 암암리에 성행하던 연극 활동에 대한 대표적인 연구서로 데일 랜덜(Dale Randall)의『겨울 열매』참조.  7당시 권력의 이데올로기적 요구와 연극의 공연이 가지는 정치성에 대해서는 스티븐 롱스태프(Stephen Longstaffe)의“정치적 연극들”참조.  8진 하워드(Jean Howard)의『도시의 극장』,“ 개론”참조.  9멕 트와이크로스(Meg Twycross),“ 영국 중세 연극: 코드와 장르들,”457-61 참조.  10알 에이 포우크스(R.A. Foakes),“ 극장과 배우들”6-25 참조.

    III

    앞에서 우리는 기존의 연극적 요소가 저널리즘 매체와 결합했을 때 파편성과 불확정성을 특징으로 하는 새로운 형태의 극장성을 만들어낸다는 것을 대략 개론적이며 이론적인 수준에서 살펴보았다. 여기서 우리는 잠시 시민전쟁이 한창 이던 1648년에 발행된『교활한 크롬웰』(Craftie Cromwell)이라는 플레이릿을 살펴봄으로써, 구체적으로 이런 특징이 어떤 식으로 개별 작품에 나타나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앞에서 본『런던의 최근소식』플레이릿은 시민전쟁이 시작되기 직전에 발행된 것으로 문학 장르로서 플레이릿의 시작을 알리는 초기 단계에 해당한다면『교활한 크롬웰』은 찰스 일세의 처형이 임박한 시점, 즉 크롬웰을 중심으로 한 독립파(the Independents)가 국회를 장악한 상태에서 찰스 일세의 처리를 고민하던 1648년에 출판된 것으로 그 형태상 플레이릿의 뚜렷한 발전을 보여준다. 『교활한 크롬웰』은 왕당파 팸플릿 작가(pamphleteer)인 존 크라우치(John Croutch)가 쓴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그는 이것을 발행할 때 자신의 이름 대신에 당시 왕당파 뉴스북의 대표격인 머큐리어스 멜랑콜리쿠스(Mercurius Melancholicus)라는 필명을 사용하였다. 머큐리어스 멜랑콜리쿠스는 당시 왕당파들이 매주 발행하고 있던 뉴스북의 이름으로 이것의 주저자는 존 핵루트(John Hackluyt)로 알려져 있으나, 존 테일러(John Talyor), 존 크라우치(John Crouchy) 등의 왕당파 작가들도 자신들의 팸플릿에 자신들의 이름대신 머큐리어스 멜랑콜리쿠스라는 이름을 주로 사용하고 있었다. 당시 왕당파가 수세에 몰린정치적 상황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익명이나 필명을 사용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다수가 같은 이름을 사용하는 것은 그리 놀랄만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다른 한편에서 보면, 존 테일러나 존 크라우치 모두 뉴스북 머큐리어스 멜랑콜리쿠스의 발행과 출판에 직간접으로 참여했을 가능성도 있다. 머큐리어스 멜랑콜리쿠스의 출판과 발행에 가담한 사람들의 정체가 존 핵루트 외에는 분명하게 밝혀져 있지 않기 때문에 이 부분에 어떤 정확한 확답을 얻기는 힘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뉴스 북 머큐리어스 멜랑콜리쿠스가 출판된 시기는 1647-48년으로, 당시 같은 이름을 사용한 플레이릿의 출판 시기와 같다는 점은 매우 흥미롭다.111648년, 찰스가 처형될지도 모른다는 긴박한 정치적 상황에서 머큐리어스 멜랑콜리쿠스의 이름으로 다수의 플레이릿이 출판되었는데, 『교활한 크롬웰』이외에도『딩동 혹은 죽음 직전의 침상에 누운 가련한 국회나리』(Ding Dong, or Sr. Pitifull Parliament, on His Death-Bed),『 웨스트민스터의 뻐꾸기 둥지』(The Cuckoo’s-Nest a [Sic] Westminster), 『국회 기소되고, 판결을 받다』(The Parliament Arraigned, Convicted), 『국회아씨 개혁이라는 기형아를 낳다』 (Mistris Parliament Brought to Bed of a Monstrous Childe of Reformation)등이 있다. 이런 정황에 비추어 보았을 때, 최소한 찰스의 처형이 공론화되던 시기에 다수의 왕당파 팸플릿 작가들이 머큐리어스 멜랑콜리쿠스라는 공통된 이름하에 각자 최대한의 역량을 발휘, 다수의 팸플릿을 제작하고 유포했을 것이라고 추측해 볼 수 있다. 그리고 이미 크롬웰 정권의 지배가 막강해진 상황에서, 대의를 같이한 이들 작가들이 서로 연대해서 팸플릿을 통한 정치적 선동을 했을 가능성도 매우 크다. 한 발 더 나아가, 당시 머큐리어스 멜랑콜리쿠스라는 이름으로 발행된 플레이릿은 같은 이름의 뉴스북과 함께 정기적으로 발행되었거나 함께 배포되었을 가능성도 충분히 생각해 볼 수 있다. 아직은 시민전쟁문학의 많은 부 분이 베일에 가려져 있는 상태에서 이 모든 가능성은 여전히 추측으로 남아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분명한 것은 머큐리어스 멜랑콜리쿠스는 뉴스북과 플레이릿에 존재하고 있는 서사적, 형식적 친화성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즉, 1649년, 머큐리어스 멜랑콜리쿠스의 출현은 초기 플레이릿이 잠재적으로 내포하고 있었던 뉴스적인 성격과 뉴스북이 내재적으로 전제로 하고 있는 극적 형식을 보다 분명하게 드러내는 역사적인 순간이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

    머큐리어스 멜랑콜리쿠스가 보여주는 새로운 극적 형식, 즉 뉴스적인 성격은 『교활한 크롬웰』의 텍스트 분석을 통해 보다 분명하게 알 수 있다. 이 당시 같은 이름으로 발행된 플레이릿들은 거의 비슷한 주제와 등장인물을 공유하고 있어 느슨한 형태로 서로 서로 주제적으로 연결된다. 당시 같은 이름으로 발행된플레이릿들간의 주제적인 통일성은『교활한 크롬웰』을 독립된 하나의 작품으로 읽기 보다는 당시 발행된 일군의 플레이릿들 가운데 하나, 즉 뉴스와 같이 여러호들 가운데 하나로 읽도록 유도한다. 풍자적인 문체로 써진 이 팸플릿들에서 공동의 적은 대개 크롬웰이거나 국회이며 이들이 득세한 현재 영국은 혼돈의 세계, 악의 세계로 묘사되며 앞으로 있을 더 큰 무질서나 혼돈에 대한 염려나 공포가 여러 가지 방식으로 표현된다. 『교활한 크롬웰』의 경우를 통해 보다 자세히 살펴보면, 조만간 영국을 엄습할 엄청난 무질서와 혼돈에 대한 공포는 앞으로 있을 찰스 일세의 처형으로 표현된다.

    위에서 인용된 5막 마지막 장면에서 올리버 크롬웰은 자신들의 심복들과의 모의 끝에 찰스를 제거할 결심에 이른다. 왕당파의 생각을 대변하는 코로스는 찰스의 제거가 가져다 줄 도덕적 혼란과 타락을 두려워하며 크롬웰에 대한 저주의 말을 잊지 않는다.

    『교활한 크롬웰』의 저널리즘적 성격은 단지 이들 등장인물들과 사건이 1648년 영국의 정치판을 그대로 묘사하고 있다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앞에서 설명했듯이, 저널리즘적 글들에 있어 사건의 완성은 항상 미래로 부단히 연기되고 지연되는데, 『교활한 크롬웰』역시 그것의 최종 결말은 작품 속에서 완성되기 보다는 미루어지고 유보된 채 마무리된다. 비록 사건의 정황상 미래에 끔직한 일이 벌어질 것이라는 암시가 강하지만, 코로스의 입을 통해 이 연극의 저자는 지금 이 순간 독자의 정치적 개입이 있으면 앞으로 닥칠 커다란 재앙을 피해갈수 있음을 강조한다.

    여기서 코로스는 찰스 일세의 운명이 영국사람, 런던 시민의 선택에 달려있음을 강조함으로써 이 극의 결말은 아직 써지지 않은 상태이며 독자의 의지와 결정에 따라 달라질 수 있음을 역설한다. 미래 독자들이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찰스의 운명이, 나아가 극의 결말이 달라질 수 있다는 강한 암시는 현실의 조건이나 상황과 무관하게 결론이 이미 결정되어 있는 전통적인 극과는 전혀 다른 형태의 미학을 보여준다. 다시 말해, 현실의 추이에 따라 이야기가 다시 써질 수 있는 바로 이 가능성은 플레이릿이 내재적으로 포함하고 있는 저널리즘적 성격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교활한 크롬웰』의 후속편으로 발행된『교활한 크롬웰, 2부』(The Second Part of Crafty Cromwell)는 현실의 추이에 따라 같은 소재의 이야기가 어떻게 달라질 수 있는지를 다시 한 번 확인시켜준다. 정확한 날짜는 알 수 없지만, 전편 때 보다 더욱 정치적 힘이 높아진 크롬웰이 국회를 해산할 생각을 하고 있는 장면(16), 페어팩스(Fairfax)의 고뇌에 가득 찬 독백에서 보여주는 찰스의 모습 (8)으로 보아, 『교활한 크롬웰, 2부』는 1648년 10월-12월에 발행되었을 것으로 추측해 볼 수 있다. 저자는 자신의 독자가 이미 전편에 해당하는『교활한 크롬웰』을 읽었을 것을 당연시하듯“이전 나의 작품을 읽은 독자에게”(To the Readers of my former piece”3)라는 서문과 함께 극의 시작을 알린다. 저자는 때로는 코로스의 입을 통해 또는 다른 등장인물을 통해 세상이 여전히, 아니 더욱 더 도덕적으로 혼탁하고 타락해 있음을 안타까워한다. 예를 들어, 왕당파 인물로 등장하는 솔론(Solon)의 경우, 끊임없는 변화에 대한 탐욕이 모든 것을 망치고 있다고 말하며, 지금은 신이 아니라 금을 숭배하는 자들이 득세하는 세상이라고 말한다.

    『교활한 크롬웰, 2부』역시 전편과 마찬가지로 올리버 크롬웰에 대한 적의와 악의를 곳곳에서 표현한다. 아래 인용된 독백에서 코로스는 올리버를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태양신(헬리오스)의 아들 파에톤처럼 지나친 욕심과 과욕으로 결국 파멸에 이를 것이라 예언한다.

    Chorus: phaeton like, to manage Charles his Waine,

    Chorus: When thou are in, thou canst not back retire.

    Chorus: That man is Mad who glory for to gaine.

    Chorus: Doth cast himself upon the Lightning Fire.

    Chorus: Kings do admit no followes if thou Reigne,

    Chorus: Charles must surrender, but I surely hope

    Chorus: To see him Rule, thou Ruled in a Rope. (16)

    영국을 찰스의 수레에 비유하면서, 코로스는 왕은 통치하기 위해 태어났기에 올리버 밑에 있을 수 없다고 단언한다. 올리버 아니면 찰스라는 양자택일을 제시함으로써, 아마도 저자는 왕당파와 의회파의 대립 사이에서 갈등하는 독자에게 이 둘 모두를 택하는 길은 없다는 것을 암시하는 듯하다. 문학적 비유와 수사가 돋보임에도 불구하고, 코로스의 마지막 대사는 그 어조에 있어 전편에 비해 많이 어둡고 패배주의적 느낌을 준다. 이전 작품과는 다르게 독자를 향해 정치적 행동으로 옮길 것을 촉구하는 코로스의 목소리는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기 때문이다. 올리버의 위선과 세상의 타락에 대한 저주와 안타까움은 여전하지만, 세상을 바꾸기에는 이미 때가 늦고, 힘이 부족하다는 체념이 이 팸플릿의 전체적인 어조를 더욱 어둡고 침울하게 만들고 있다.

    우리는 지금까지 시민전쟁 때 유행했던 플레이릿을 통해 연극의 새로운 실험을 살펴보았다. 시민전쟁 당시의 문학에 대한 연구가 많지 않은 상황에서 플레이릿에 대한 논의는 거의 많지 않았다. 그리고 플레이릿에 대한 평가가 이루어질 경우에도, 대체로 플레이릿 하나하나를 따로 떼어내어 고찰하기 때문에, 그것이 갖는 진정한 의미는 거의 논의되지 않았다. 발행된 플레이릿 한 작품을 고립해서 연구할 경우, 대개 비평가의 평가는 인색한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이전 연극의 극적 완성도에 비추어 품격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플레이릿은 시민전쟁당시 극장이 폐쇄된 급박한 상태에서 잠시 유행했던 천박하거나 질 낮은 상품으로 치부되곤 했다. 하지만 앞에서 보았듯이, 플레이릿을 저널리즘 발전의 맥락에서 살필 때 그리하여 작품 하나하나가 얼마나 예술적인 세계를 잘 형상화했는가를 보는 것이 아니라, 작품에서 나타난 극장성이 시사 매체의 형식과의 유기적인 결합을 통해 어떻게 독자와 세계와의 접점을 새롭게 구성하고 있는가를 살펴볼 때, 그것의 출현이 문학사에 가지는 진정한 의의와 혁신을 제대로 평가할 수 있다. 현실과 보다 밀착된 형태의 연극을 보여줌으로써, 플레이릿은 저널리즘에 내재한 극장성의 성격을 보다 노골적으로 보여준다. 물론 이런 과정 속에서 극장성의 체험을 제공하는 이야기는 더 이상 일상생활과 동떨어진 이야기, 그 자체로 완벽한 플롯과 구조를 지닌 이야기가 아닌, 바로“지금, 여기”의 순간과 조건에 따라 움직이는 매우 가변적인 이야기가 된다. 현실의 추이에 따라그것의 내용이 부단히 바뀌는 이야기, 다시 말해 플레이릿이 제공하는 극장성은 문자매체, 보다 정확히 말해 뉴스매체와 매우 닮아 있기 때문에, 극장적인 체험과 독서 경험 사이의 구별은 더 이상 의미가 없게 된다.

    11제이슨 페이시(Jason Peacey),『 정치인들과 팸플릿작가들』343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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