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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A 학술지
A Cultural Materialist Approach to Shakespeare Ⅱ 문화유물론으로 읽는 셰익스피어 II*
  • 비영리 CC BY-NC
ABSTRACT
A Cultural Materialist Approach to Shakespeare Ⅱ

보편 진리를 대표하는 위대한 작가로서 셰익스피어의 정전적 입지를 옹호하는 기존 휴머니즘 비평에 반기를 들고자, 문화유물론은 역사분석적 성격을 강하게 드러내면서 각 시대의 상황에 따라 도구적으로 변형되어 온 정치적 텍스트로서의 셰익스피어를 논한다. 또한 외국에서의 셰익스피어 수용사에 있어서 괄목할만한 이력을 쌓아온 독일은 기존의 고전 연극에 대항하는 브레히트와 뮐러의 출현으로 인해 셰익스피어의 탈정전화 현상을 목격하게 된다.서론에서는 셰익스피어 탈정전화 논쟁의 이론적 틀을 제시한 문화유물론에 대해 기술한다. 본론의 1장에서는 문화유물론적 글쓰기의 예 중에 혹스의 <텔마>와 뮐러의 <햄릿머신>을 비교함으로써 ‘텍스트의 역사성, 역사의 텍스트성’을 논하고, 2장에서는 양자의 메타비평적 성격과 정치적 자의식을 부각시키는 디에게시스의 강조, 플롯 중심 읽기와 인물 중심 읽기를 통해 본 전복과 봉쇄의 문제를 다루며, 3장에서는 플롯의 정치성, 그리고 해체를 통한 개인의 주체화를 살펴본다. 문화유물론과 뮐러극은 비평과 희곡이라는 장르상의 괴리에도 불구하고 맑시즘을 기본으로 하면서 셰익스피어의 탈정전화 논쟁을 돕는 이데올로기적 친연성을 공유한다. 첫째, 창조적 글쓰기를 동원한 역사논평의 형태를 취한다. 둘째, 이러한 글쓰기를 통해 텍스트의 정치적 유통과 재생산에 관심을 두고 정치적 참여를 궁극적 목표로 삼는다. 셋째, 무엇보다 맑시즘의 역사관에 기반을 두고 자율적이고 미시적인 실물역사관을 첨가하여 새로운 역사의식 설정에 주력한다.

KEYWORD
cultural materialism , political consciousness , subversion and containment , context of articulation , politics of plot
  •    2.2. 연극의 정치성, 정치의 연극성

    문화유물론 I에서는 문화유물론적 글쓰기와 뮐러극이 메타논평의 자의식을 공유함으로써 고전을 전유한다는 점을 논하였다. 이 장에서 논의할 사항은 크게 세 가지로 집약될 수 있다. 문화유물론적 비평과 뮐러극에서 공통적으로 보이는 ‘피란델로식 시간’의 개념과 관련하여 첫째, 뮐러가 수용한 브레히트의 미학을 문화유물론의 입장에서 재고하고, 둘째, 미메시스의 환영을 벗기우고 다시 디에게시스의 공간으로 귀환하려는 문화유물론과 뮐러의 글쓰기 방식에 대해 사유하며, 셋째, 플롯 중심 읽기와 인물 중심 읽기라는 두 가지 독법 사이에서 파생할 수밖에 없는 전복과 봉쇄의 양면적 문제를 고찰할 것이다. 우선 셰익스피어의 ‘햄릿’이 뮐러의 <햄릿머신>에 와서는 ‘햄릿’(Hamlet)과 ‘햄릿역의 배우’(Hamlet-actor)로 분열된 원인을 연극사적 입장에서 조망하기 위해 브레히트의 ‘역사화’ 기법부터 언급할 필요가 있다.

    자아도취적인 연극 읽기에 제동을 걸고, 사회가치의 재생산에 불과한 부르조아 연극을 극복해야 한다는 브레히트의 연극론을 반영하고 있는 주요 개념들 중의 하나는‘즐거운 비판’1)이다. 동화작용에 근거한 부르조아 연극은 나찌의 사상을 주입시키는 파시스트적인 연극으로 변용되면서 관객의 비판력을 둔화시키게 된다. 나찌 권력의 자기 유지를 위해 동원되는 연극을 바라보며 뮐러는 관객들이 정치의 연극성 자체에 주목하고 정치적 판단력을 배양할 수 있는 효과적인 연극을 쓰고자 하였다. 이와 같은 이유로 뮐러가 출발점으로 삼은 브레히트의 개념인‘즐거운 비판’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 제4장에서 언급되고 있는‘즐거운 모방’의 반사체이다. 브레히트의‘즐거운 비판’이 수행하는‘현재의 역사화’란 과거의 문맥과 현재를 함께 제시함으로써 관객으로 하여금 현재라는 시간의 역사적 의미에 주목하도록 하는 것이다. 역사와 시간에 관한 이러한 의식은 아리스토텔레스의 그것과 상충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동일한 장소를 변함없이 획일적인 외부적 시간으로 채우는 연극의 개념을 발전시킨다. 브레히트의 시각에서 아리스토텔레스의 시공간은 일원적인 감정이입을 위한것으로 역사화의 작업을 불가능하게 만든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모방이론이 조장하는 “감정이입(empathy) 역시 역사적??정치적 행위이기 때문에”2) 브레히트는 고전을 상연할 때 현시대와의 “시대적 거리와 비동일성을 강조하여‘차이’를 드러낼 것”3)을 강조한다. 그러므로‘즐거운 모방’을 기초로 한 17세기 이래 부르조아 연극 전통에 대한 반발로서의 브레히트의‘즐거운 비판’은, 셰익스피어로부터 다양한 정치적 함의와 양가적 틈을 읽어내고자 하는 신역사주의??문화유물론??탈식민주의 담론과 같은 맥락을 형성한다. 바이만이 언급하였듯이,‘브레히트적 셰익스피어’(Brechtian Shakespeare)라는 것은 텍스트의 과거성을 강조하고, 그 위에 현재적 의미를 자유롭게 덧입히며 재정의하는 방법을 지칭한다.4) 여기서 브레히트의 연극은 정치의 연극성을 폭로하는 비아리스토텔레스 극의 계보에 서게 된다.

    브레히트는 리허설 과정과 공연에서 대사의 일부분을 삼인칭으로 말하거나 과거화법을 사용하도록 함으로써 우선적으로 배우 자신이 등장인물에 동화되는 상황을 면하고자 했다. 사실 ‘여시아문’(如是我聞: 나는 이렇게 들었다)의 전달 구조는 동양 연극의 전유물이 아니다. 고대 그리스의 서사시가 가진 전통도 결국은 디에게시스‧서사성이었으며, 이것이 미메시스‧비서사성의 공간으로 넘어오기 시작한 것이 그리스 비극이었다. 디에게시스로의 복귀는 과거의 의미와 현재의 의미를 구별하는 차이의 인식을 획득하는 것과 관련된다. 브레히트는 러시아의 실험적인 연출가 메이어홀드(Vsevolod Meyerhold)의 연기술, 중국경극의 양식적 연기술, 피스카토르(Erwin Piscator)의 기록극에서 쓰이는 제시적 무대장치, 디드로(Denis Diderot)의 이화를 이용한 예술적 기법 등을 수용했다. 이러한 비아리스토텔레스 연극의 계보 속에서 동시대의 배우들과 관객들이 이해하지 못했을 정도로 비현실적이고 비활용적인 브레히트의 연극이론을 무대화에 적합하도록 수정, 보완한 이가 바로 뮐러라고 할 수 있다.

    뮐러가 브레히트처럼 셰익스피어를 개작하고 번역하는 과정에서 브레히트미학의 희곡원칙을 계승하였다는 사실은 <햄릿머신>에 간명하게 투사되어 있다. 그러나 역사의 차이를 읽어내기 위한 브레히트의 디에게시스적 방법론인 서사극 기법의 차용에 있어서 뮐러는 비판적 수용의 노선을 걷는다. 뮐러는 브레히트를 비판하지 않고 받아들이는 것은 오히려 브레히트를 배반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뮐러가 브레히트와 결별하는 지점은 무엇보다 알레고리의 개념인데, 뭘러에 따르면 브레히트의 서사극은 알레고리의 비유극이라는 점에서 의고전주의로의 후퇴일 뿐이며 그런 의미에서 동독의 현실에 기반 한 역사‧정치적 의식의 진정성은 사라지고 이 세상을 일종의 완성된 것으로 제시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는 것이다.5) 그럼에도 불구하고 브레히트와 뮐러의 역사관은 공통적으로 권력 관계라는 것이 사회를 이루는 다양한 인자들 간의 협상을 통해서 끊임없는 변화와 구성의 과정을 밟는다는 문화유물론의 기본 전제에 가깝다.

    문화유물론적 비평에서 문학 텍스트와 다양한 비문학적 텍스트의 몽타쥬를 통해 강조되는 ‘절합의 맥락’은 브레히트와 뮐러의 연극에서 사용되는 ‘거리두기’ 기법에 비유될 수 있다. <햄릿머신>에서 한 명의 배우가 햄릿의 역을 하다가 가면과 의상을 벗어 동일시를 거부하고 다시 햄릿 연기자로서 자신을 현재화함으로써 햄릿 역을 과거의 인물로 떼어내도록 한 설정은 브레히트의 ‘거리두기’ 기법 중 삼인칭 화법에 대한 응용이다. 이는 미메시스와 디에게시스 사이의 간극을 강조하는 극적 장치로서 관객의 전격적인 몰입을 방해하고 작품에 대한 보편주의적 해석과 정전화를 막는다.

    역할을 배우로부터 떼어내는 과정(역할탈퇴, aus der Rolle treten)을 보여줌으로써 관객에게 ‘연극 제도의 안과 밖’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시야를 확보해주는 것이 뮐러의 일차적 목표인데, 이와 같은 햄릿의 존재와 고뇌에 있어서의 이중화는 이 극의 핵심적인 변증법적 토대가 된다. 햄릿은 자신을 둘러싼 세계의 정치적 현실에 대하여 끊임없이 비판적으로 분석한다는 점에서 변증법적 유물론자이자 무력한 지식인의 전형을 대변하는 동시에, 햄릿 역의 배우로 의식적으로 분열하면서 스스로 변증법적 존재로 서는 과정을 보여준다.6)

    삼인칭 화법은 이상적 사회주의와 현실 사회주의 간의 괴리를 변증법적으로 분석하기 위한 도구로서 오필리어에게도 일어난다. 셰익스피어의 <햄릿>에서는 미비한 대사를 부여받았던 오필리어가 <햄릿머신>에서는 남성들에 의해 구원받지 못한 세계를 구원할 수 있는 대안적 여전사로 전유되고 있다.

    이 부분은 오필리어가 대변하는 과거로부터 내려오는 여성들의 세계사에 대한 재현의 역사성 및 탈역사성을 서술한 것으로 볼 수 있다.7) 이는 텍스트의 기저에 깔린 광기의 목소리들을 다시 소환함으로써 전복적 해석을 시도하고 그것을 20세기의 사회 관계망에서 읽으려는 역사화의 과정을 보여준다. 뮐러의 오필리어도 역시 삼인칭에서 일인칭으로, 디에게시스에서 미메시스로 전이하는 양상을 보여주면서 과거와 현재의 분명한 간극을 형성하고자 한다. 이는 관객이 오필리어를 단순히 극을 이끌어가는 내재적인 인물로 보지 않고 인류의 세계사 속에서 억압받아온 여성들의 고통이 투영된 복잡한 존재 지층으로 읽어내는 사회과학적 시각을 확보하도록 도와주는 장치이다. 햄릿과 오필리어에게서 보이는 디에게시스와 미메시스의 혼재는 바로 <햄릿머신>을 채우는 피란델로식 시간의 표출이다.

    뮐러가 브레히트로부터 차용한 또 하나의 거리두기 기법은 ‘과거 화법’의 사용인데, 이것은 그의 햄릿이 자신의 과거를 햄릿으로 규정하지 않고 극의 결미에 맥베스를 끌어오면서 이루어진다. 이와 같은 과거의 파편화와 혼란은 일종의 꼴라쥬로 텍스트에 덧칠해지면서 현재의 역사화를 돕는다. 관객의 인식은 꼴라쥬를 통해 겹쳐진 이질적인 차원들, 즉 햄릿, 햄릿 역의 배우, 햄릿과 햄릿역의 배우를 맡은 실제 배우, 맥베스라는 또 다른 인용의 의미, 라스콜니코프, 뮐러의 초상화 사이를 넘나들면서 결국 자기들이 몸담은 사회의 현실에 대해 집중하게 된다.

    뮐러의 이와 같은 의식적 꼴라쥬는 브레히트가 「연극에 관한 글」(Schriftenzum Theater)에서 “배우는 과거 화법으로 이야기하고 인물은 현재 화법으로 이야기한다”8)라고 언급했던 바를 희곡적 원리로 받아들여 실천한 것이다. 뮐러에게 디에게시스의 차원이 필요한 이유는 이 디에게시스의 공간이야말로 브레히트가 말한 역사학자가 갖는 거리감을 만들어주고 거기에서 브레히트적인 게스투스(gestus)가 성립되기 때문이다.

    희곡 뿐 아니라 실제 뮐러가 연출했던 공연들의 경우, 1990년에 있었던 베를린의 무대는 극의 초반에 올드 햄릿의 유령이 무대에 나타나는 장면을 연출할 때 레닌의 장례식을 중계하는 라디오 방송을 청각효과로 덧입힘으로써 미장센에 대한 적극적인 꼴라쥬를 시도하였다. 이는 7시간 반짜리의 <햄릿>으로 그안에 <햄릿머신>을 포함하는 것이었다. 마지막 부분에서 포틴브라스는 사업가의 정장과 황금 가면을 착용한 채 자본주의의 빛나는 전사로서 국가의 인계를 받는다. 이는 독일 마르크화의 황금만능주의와 당시 서독의 수상 헬무트 콜(Helmut Kohl)을 암시하는 설정이었다.9) 이렇게 당시의 사회적 맥락을 배경으로 삼아 연극의 자기반영성과 메타비평성을 확보하고자 한 뮐러는 자신의 극단적인 구상을 통해 연극이 공적 논쟁을 가능하게 하는 공격적인 매체로 자리잡게 할 가능성을 타진함으로써 자신의 눈에는 미숙한 계몽적 낙관주의에서 벗어나지 못한 브레히트를 극복하고자 하였다.

    뮐러극의 메타비평적 성격과 관련하여 반영극에 대해서 부연하자면, 셰익스피어의 원작 자체도 르네상스 당시 유행하던 극중극을 수반한 자의식적 연극과 메타드라마적 성격을 농후하게 지니고 있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인데, 이러한 자기반영적 성격은 텍스트 바깥으로 거듭 탈구하려는 셰익스피어극 속의 다양하고 이질적인 요소들로 인해 가능해지는 것이기 때문에 브레히트는 한편으로 셰익스피어를 자신의 교육극을 위한 소재로서 적합하게 보았다. 뮐러의 <햄릿머신> 또한 브레히트적인 사고에 입각하여 자의식적 연극에 충실하면서 인물로서보다는 역할 자체에 집중하게 하는 일종의 알레고리로서 셰익스피어의 <햄릿>을 전유한다. 내부와 외부의 경계를 설정함으로써 메타성을 확보하는 변용된 알레고리의 ‘간극’은 결국 ‘연극성’에 대한 강조를 의미한다. 알레고리의 전략은 결국 미메시스와 디에게시스를 오가는 과정을 통해 실현 가능해진다. 고전 텍스트를 미메시스에서 디에게시스로 전이시키는 양상을 가장 극명하게 보여주는 예는 오필리어와 햄릿이 성역할을 전도하는 설정인데, 과거와 현재의 간극을 읽고, 연극이 만들어지고, 권력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드러내기 위해 뭘러는 오필리어에 의해 햄릿을 창녀로 분장시킨다.

    성역할 전도는 셰익스피어의 비극보다 희극에서 주로 사용되는 모티브이자극적 기법이다. 뮐러에게 성역할 전도는 ‘모든 관계의 전복’에 관한 실천의 한가지이다. 성역할 전도 외에도 비극의 장르에 속하는 <햄릿>을 희극의 극적기법으로 읽어내는 뮐러의 시도 또한 혁명적 가치전도를 낳는 적극적인 전유의 양상이다. 이러한 장르 교차적 독법은 원래 브레히트로 소급되는데 비극을 희극적 모티브와 극적 장치로 전유하며 새로운 비평의 가능성을 여는 것이다. 가치 전복의 모티브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분장과 분장실의 이미지를 통해서도 <햄릿머신>의 전반에 걸쳐 강조되고 있다. 무대 위의 인물들은 이미 커튼콜의 배우와 같은 경계선 상의 존재들인데, 가령 햄릿은 호레이쇼에게 “너무 늦게 왔구나 나의 친구여 출연료를 받기에는 / 나의 비극에 너를 위한 자리는 없다”(YOU COME TOO LATE MY FRIEND FOR YOUR WAGE / NO PLACE FOR YOU IN MY TRAGEDY-PLAY: 1)라고 말을 건넴으로써 호레이쇼역으로부터 배우를 분리하여 역사화시킨다. 그리고 햄릿 자신은 “탱크 포탑에 들어앉은 군인”, “타자기”, “나의 포로”, “자료은행” 등으로 역사적 변형과 변신을 반복하면서 일관된 존재로서 해석되는 것을 거부한다. 햄릿의 해체화에 도움을 주는 것은 단순히 언어의 파편화뿐만 아니라, “연극 공연”, “대본”, “분장실”, “대사”, “배우들”, “대사를 일러주는 자”와 같은 연극적 모티브들이다.

    뭘러가 형상화하는 ‘햄릿’을 셰익스피어라는 텍스트에 대한 도전으로 불 수 있는 또 하나의 근거는, 뮐러가 배우의 ‘육체’를 과도하게 강조하고 있다는 사실이다.10) 맑스, 레닌, 마오가 벌거벗은 여성들로 표현되고 이는 서구 가부장제권력에 대항하는 억압된 육체의 반란으로 보인다. 배우의 살아있는 육체는 언어로 이루어진 문학 텍스트와 대척점에 서게 되면서 셰익스피어에 대한 새로운 전유 방식을 제시하는데, 혹스의 <텔마>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텍스트의 해석을 전면적으로 거부하는 데까지 이르게 된다. 그것이 바로 뮐러가 셰익스피어를 전유하는 핵심적인 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면서도 뮐러는 이 극을 희극으로 볼 때에만 진정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코믹한 요소는 일종의 브레히트적인 의미에서 이화작용을 통해 관객을 비판행위로 이끌기 때문이다. 브레히트와 뮐러에게 있어서 희극은 보편적인 감정의 표출로서 웃음을 유발하는 것이 아니라 ‘역사적인 이익’으로서의 거리두기를 실행하는 형식일 뿐이다. 즉, 희극은 역사와 관련된 현상으로서 직접적인 정치적 목적을 위해 사용되어 온 장르이다. 전통적인 극은 희극과 비극을 분리해왔으나 브레히트와 뮐러가 생각하는 희극의 기능은 “결코 ‘자연스럽지’ 않은 것을 ‘인용하는’것”과 관련되어 궁극적으로는 “인물이 그의 생활에서의 모순과 부조화를 인식하고 자신이 그것에 영향을 받지 않았음을 증명할 때 생겨나는 것”에 있다.11)결국 담론으로서의 희극의 유용성은 ‘거리두기’에 기인하며 희극적인 인식 태도를 획득한 관객은 과거의 부르조아 연극을 해체하는 작업을 통해, 보다 다성적인 목소리를 듣고 휴머니즘적인 주제 속에 깔린 아이러니를 간파해낸다.

    뮐러는 셰익스피어의 햄릿처럼 고뇌에 빠지는 것은 사치라고 말한다. 사랑과 계층구조의 도덕률을 반영하는 선악의 대립구조 등은 <햄릿머신>에 부재하는 가치들이다. 그러한 고뇌는 담론적 희곡을 담보하는 것이고, 그것을 통해서는 진정한 갈등과 대결과 모순을 드러낼 수 없기 때문이다.

    이와 동일한 이유에서 셰익스피어의 작품들 속에 편재하는 이질적인 요소들, 가령, 보다 민중적인 요소들에 관심을 가졌던 브레히트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간 뮐러는 셰익스피어를 단편화하고 주관화하고 자의적으로 가공한다. 그의 꼴라쥬는 불안과 공포를 유발하기 위한 것이며 이러한 인식의 상태야말로 뮐러에게는 대단히 교육적인 것으로 생각되었다. 파괴 속에서 생산적인 것들을 주워내고자 한 뮐러의 묵시론적 연극미학은 셰익스피어의 전유방식 중에서도 가장 급진적인 예로 평가받을 만하다.

    셰익스피어를 전유하는 방식과 관련하여 살펴봐야 할 또 한 가지는 플롯 중심 읽기와 인물 중심 읽기의 차이이다. 인물 위주로 보면 전복적 요소가 강조되고, 플롯 위주로 보면 봉쇄적 요소가 강조되는 원리를 통해 뮐러는 전복적 요소로서 인물들을 셰익스피어로부터 추출하고 플롯 자체는 지워버림으로써 셰익스피어 <햄릿>의 전복적 이미지를 강조하여 선택적으로 차용한다. 통시적‧목적론적 내러티브에 상관없이 그것에 제동을 걸고 있는 인물들의 개별적인 언행에 관심을 기울이면 지배권력에 대항하는 힘을 느낄 수 있으며 푸코가 말하는 ‘인식론적 절연’(인식소의 단절, epistemic break)의 상태를 목도하게 되는 반면, 플롯 자체로 보면 결국 인물들의 그러한 전복적 움직임조차도 봉쇄의 계획 아래 전략적으로 용인된 느낌을 받는다. 플롯은 헤겔, 맑스, 기독교의 세계관이라는 서구의 단선적 역사주의를 반영하는 기제로서 불연속적이고 이질적인 시간을 인위적으로 단선화한 것이다.

    플롯 중심 읽기가 텍스트의 봉쇄적 요소를 강조하며 결국 지배담론에 공모하는 결과를 빚는다는 주장을 뒷받침하는 제임슨의 논의가 있다. 제임슨이 플롯 소설과 비플롯 시점 소설을 비교하기 위해 언급했던 바를 연극적 논의에 응용해보자면 플롯 연극에서는 ‘의미감 이전에 완결감’이 한몫을 한다. 이것은 역으로 뮐러와 브레히트가 왜 열린 구조를 지향했는가를 설명해준다. 제임슨은 “한 명확한 문학 형식의 존재가 해당 사회의 발전 단계에 있어서 경험의 어떤 가능성을 항시 반영한다는 것은 자명한 일이다. 플롯의 완결에서 느끼는 우리의 만족감은 그러므로 또한 사회 자체에 대한 일종의 만족감이기도 하다”12)라고 언급한다. 플롯의 대단원이 주는 정서적 만족감과 미적 완결감은 정치적 자의식 함양을 추구하는 브레히트와 뮐러가 견제하는 낡은 구습일 뿐이다.

    플롯 파괴를 통해 <햄릿머신>이 드러내는 자의식적 성향은 ‘연극의 정치성, 정치의 연극성’(politics of the theatre, theatricality of politics)과 긴밀한 관계를 맺는다. 나찌의 마취성 바그너식 연극에 반대하고 정치권력의 연극성을 밝혀서 연극을 정치적 활동의 계기로 삼고자 한 뮐러의 글쓰기는, 문화유물론이 사회 구조와 주체의 관계를 밝히는 ‘거꾸로 쓰기’를 감행하는 것과 흡사하다. 뮐러의 텍스트 파괴 기법은 나찌가 의존하는 정치의 연극성을 해체하기 위한 것으로 브레히트로부터 기인하다. 여기서 한 가지 아이러니는, 소위 정치적 목적극은 관객의 상상력을 제압하는 단순화의 측면을 내포할 가능성이 상당함에도 불구하고, 뮐러의 경우에는 정치적 자의식을 통해 오히려 관객의 상상력을 더욱 촉진시키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정치적 목적을 지닌 문화유물론과 뮐러극은 현실적으로 존재하는 모든 권위를 국가 권력과 작가 권위에 중첩시켜서 비판하는 방법론을 전개한다. 문학이 사회현실을 반영한다는 구역사주의의 관념주의적 단순반영론을 넘어서서 뮐러극은 생산‧교환‧소비 등 문화유물론의 인식 목록을 공유한다.

       2.3. 개인에서 주체로

    이 장에서 언급하고자 하는 것은 크게 세 가지이다. 첫째, 플롯의 정치성, 둘째, 독해구성체 개념, 셋째, 해체를 통한 개인의 주체화에 관한 것으로서 이를 통해 문화유물론과 뮐러극의 공동 구역을 설정해 보고자 한다.

    전술하였듯이 뮐러가 <햄릿머신>을 통해 문학 텍스트를 해체하는 방식 중에서 무엇보다도 두드러지는 것은 플롯을 전면적으로 소거하고 등장인물만 남기는 것이다. 고전 연극을 플롯 연극의 대용어로 쓰는 한에 있어서 플롯의 의미는 단순히 연극의 인과적‧연대기적 서술기법을 일컫는 그 이상을 내포한다. 셰익스피어 작품들을 구성하는 다중 플롯 내지 메인 플롯‧서브 플롯의 이중 플롯을 해석함에 있어서 일군의 학자들은 메인 플롯이 셰익스피어 당대의 지배계층의 삶을 반영하는 한편, 서브 플롯은 피지배 계층의 삶을 반영한다는 논리를 펴고 있는데, 이와 같은 가설이 시사하는 바는 셰익스피어의 다중 플롯, 혹은 이중 플롯 자체가 ‘계급의식’, 혹은 ‘계급사회’의 반영이라는 주장이다. 카바나는 셰익스피어의 <한 여름밤의 꿈>(A Midsummer Night’s Dream)을 예로 들면서, 그의 극이 가부장적이고 위계적인 권위의 가치를 의식하여 계급적으로 적합하고 정치적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는 극적 재현의 문제를 드러내고 있다고 말한다. 그리하여 셰익스피어는 연극의 공연이라는 문제가 이데올로기, 사회적 계급, 정치적 권력의 상황과 복잡하게 연관됨을 보여준다는 것이다.13)플롯의 의의를 계급적으로 읽어내려는 이와 같은 시각은 뮐러극에 대해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지게 한다. 뮐러가 셰익스피어의 플롯을 소거함으로써 이루게 되는 전유의 양상은 구체적으로 어떤 것이며 그것은 뮐러의 정치의식을 어떻게 투사하고 있는가?

    셰익스피어의 <햄릿>에서는 노르웨이와 덴마크 간의 전쟁 구도, 올드 햄릿의 가족 구도, 클로디어스를 축으로 재구축된 가족 구도, 두 가계의 정치적 갈등 구도, 폴로니어스의 가족 구도 등이 어우러져 하나의 플롯을 이루지만 뮐러의 <햄릿머신>에는 메인 플롯과 서브 플롯의 구분은 물론이고 플롯 자체가 부재한다. 뮐러는 햄릿과 오필리어라는 등장인물들을 다른 계급의 인물들과 대비시키지 않고, 즉 플롯에 복속시키지 않고 차용한다. 셰익스피어극의 특징중의 하나가 계급의식의 소재화이고 메인 플롯과 서브 플롯, 혹은 위계적인 클라이맥스에 종속되는 플롯이라면, 플롯이라는 장치를 문학적 의미로만 볼 것이 아니라 정치적 개념과 연관시켜서 통찰할 필요가 있다.

    뮐러에게 있어서 플롯은 단일한 역사를 강요하는 장치이다. 플롯은 신화‧대역사‧지배자들의 기록 방식이다. 문화유물론적 비평이 문학 텍스트 속에 전개된 대역사의 플롯보다 현재의 소역사들에 관심을 두면서 자유연상에 의해 그것들을 비평의 전면으로 끌어내듯이 뮐러도 셰익스피어를 원경(遠景)으로 미뤄둔다. 뮐러는 셰익스피어의 텍스트로부터 햄릿과 오필리어라는 배우‧광대‧골계 희꾼들을 불러낸다. 그들은 마치 셰익스피어의 햄릿이 자신의 정치적 목적을 위해 초대한 배우들처럼, 이미 지정된 레퍼토리를 준비하고 있으면서도 자신들을 초대한 뮐러의 연출과 대사 삽입을 기꺼이 수락하는 존재들인 셈이다. 뮐러는 비극적 플롯에서 건져낸 햄릿과 오필리어를 일면 코메디아 델아르테(commedia dell’arte)의 희극적 등장인물과 유사한 골계희 연희자, 즉 ‘전형적인 인물들’(stock characters)의 계보에 일탈적으로 재배치한다. 물론 <햄릿머신>은 이미 장르 면에서도 해체되고 햄릿과 오필리어도 희극적 인물들은 아니지만 등장인물들 자체가 이야기‧플롯‧셰익스피어의 문학 텍스트에 대한 참조의 기능은 하면서 결과적으로 플롯 자체에서는 벗어난다는 점에서 골계희 전통의 전형성을 확보하고 있고, 또한 근본적으로 불경함‧횡설수설‧말장난이라는 희극적 요소들에 의존하고 있다는 사실 또한 이들을 희극의 전형적 인물들의 계보에서 재고찰하도록 한다. 그러나 코메디아 델아르테가 희극적 줄거리에 활기를 주기 위해 인물들의 심리 상태를 지워버리는 것과 달리 <햄릿머신>의 햄릿과 오필리어는 복잡한 심리상태를 반영한다.

    뮐러에게 중요한 것은 관객이라는 독해구성체를 유념한 역사관의 형성이다. 이는 복수의 정본이 선택과 귀착의 과정을 통해서 문학 텍스트라는 하나의 단 일본으로 굳어진 과정을 퍼포먼스를 통해서 해체, 자성적으로 회고하여 다시 다양한 대본들, 또 다른 <텔마>들로 현재화하려는 시도이다. <햄릿머신>이 문화유물론의 글쓰기와 마찬가지로 정치적 색채를 강하게 띤다는 것은 보수휴머니즘 비평과 결별하고 맑시즘‧페미니즘‧구조주의‧후기구조주의를 적극적으로 수용한다는 것을 말한다.

    뭘러는 기본적으로 브레히트의 교육극 원리를 따르면서도 그 실현을 위한 방법론 면에 있어서 브레히트보다 덜 유도적이다. 극형식에 대한 뮐러의 파편적 구성 전략이 브레히트의 교육극이 가지는 교조성을 피할 수 있도록 하기 때문이다. 단일한 교조성보다 관객의 수용미학을 자극하는 것은 뭘러가 문학 텍스트를 전유하기 위한 한 전제이며, 관객이 중심이라는 것은 무대와 객석의 중요도가 등가를 이룬다는 의미이다. 그러나 뮐러를 해체주의나 포스트모더니즘의 대표주자로 보려는 경향은 다시 한 번 작가 자신과, 무엇보다 ‘그의 관객’을 보편화‧일관화‧통합화하려는 욕망에 지나지 않는다. 왜냐하면 뮐러는 분명 동독의 사회주의 건설이라는 목적을 위해 동독의 국민을 대상으로 한 연극을일차적으로 구성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의 작업이 미학적 실천이기 이전에 역사적‧정치적 실천이라는 점을 간과한다면 그의 극은 해체주의와 포스트모더니즘의 조류에 동조하는 몰역사적 행위로 재단될 우려가 있다. 비록 외현적으로는 그의 극이 해체적 특성들을 가지고 있더라도 뮐러에게 중요한 것은 그가 대상으로 삼은 독해구성체의 특수성이며 연극을 통한 사회 변혁이다. 정치를 소거한 뮐러 읽기는 그러므로 오독이다. 뮐러가 관객에게 권유하는 공모의 목적은 미학적인 것이라기보다는 정치적인 것이다. 국가사회주의를 체험한 뮐러는 공산주의를 파시즘에 대한 강력한 역사적 대안으로 여겼고 이를 수단으로 동독의 역사과정을 정치적‧사회적으로 변화시키고자 하였던 것이다. 그런 이유로 뮐러극은 해체주의 자체가 아니라 브레히트의 맑스주의적 생산자 예술을 토대로 한 연극인 것이다.

    브레히트도 “예술 작품의 형식은 그 내용의 완전한 조직화에 지나지 않으며, 따라서 그 가치는 완전히 내용에 종속되어 있다”14)라고 언급함으로써 형식은 내용의 구성적 틀임을 명시했다. 해체적인 연극 형식 자체까지도 결국 뮐러가 바라보는 파괴된 독일역사의 현실에 대한 연극적 실천의 일환으로 본다면, 뮐러에게 형식이 사상에 환원되는 작용을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또한 뮐러의 형식을 강조하는 비평은 뮐러가 배우의 시대였던 셰익스피어의 시대와 달리 인쇄술이 발달한 17세기 이후 극작가의 시대를 지나 미장센을 강조하는 연출가의 시대에 주로 활동하였다는 점과 유관할 것이다. 미장센을 강조하는 극장주의 연극이 다시 득세하면서 비평 또한 당위적으로 형식과 무대 방법론에 더욱 치중하게 된 것이다.

    정치적 의식의 확보를 현실화할 형식의 차원에 있어서 중심이 되는 것은 독해구성체이다. 뮐러가 마주하는 독해구성체는 담론의 주체이자 대상이 되는 독일의 관객이다. 그는 햄릿조차도 대항적 잔여세력으로 전유함으로써 피지배계급을 담론의 전면에 내세운다. 권력의 형성 과정과 그것의 파급효과에 주목하는 신역사주의자들에게 문화유물론자들이 묻는 것은 바로 피지배계급에 대한 담론의 행방인데, 왜냐하면 권력 자체에 대한 추적에 몰입하다 보면 피지배자들보다 오히려 그들의 억압한 사회에 대해서 밖에 알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우려를 뮐러는 <햄릿머신>의 햄릿으로 하여금 피지배자를 위한 서술자 역할을 하도록 함으로써 탈피한다. 햄릿은 1953년 3월 스탈린이 사망하고 1956년 소련 공산당 20차 전당대회의 ‘탈스탈린화’ 선언이 있던 당시를 회고하는 가운데 “대도시의 빈민들”, “보행자들”, “연설가들”, “군중들”이 벌이는 “도시의 산책”, “행렬” 들과 같은 어휘들을 통해 시민들의 데모를 묘사함으로써 현재 역사의 주체인 피지배계급을 형상화하고 있다.

    햄릿뿐 아니라 오필리어도 결미에서 “희생자들의 이름으로” 자신의 자궁이 낳은 암흑 속의 세상을 회수할 것을 선포한다. 여기서 셰익스피어와 뮐러의 등장인물들을 개인과 주체의 관점에서 비교해보는 것이 가능해진다. 뮐러가 자신의 역사관을 설정하는 점에 있어서 ‘문화적 통화’인 셰익스피어를 꼴라쥬한 것은 통시적 관점을 제공하지만, 결과적으로 관객이 얻게 되는 것은 문화 텍스트가 아닌 자기 자신이 속한 사회에 대한 공시적 시각이다. 관객은 뮐러극을 통해 자신들이 속한 현재의 맥락에서 정치‧사회‧문화의 여러 차원을 관련짓게 된다. 파편적 구성은 무대 위의 시간성보다 관객의 시간성에 포커스를 둘 때 생겨난다. 뮐러가 보는 세계의 시간은 정체된 것이기 때문에 무대 위의 시간 또한 단순히 흘러가지 않고 끊임없이 충돌하면서 출구를 찾고 인물은 개인이 아니라 주체로 변모한다.

    ‘개인’이라는 것은 보수적 휴머니즘 비평의 산물로서 탈식민주의 입장에서 볼 때 문명화 임무의 사도이자, 자신을 중심으로 둘러싼 세계를 창조한다는 의미에서의 근원적 존재이다. 그러나 ‘주체’는 사회의 구조가 산출해 낸 필연적으로 역사적이며 그 생성에 있어서는 우연적인 구성물이다. 몬트로즈는 페리앤더슨(Perry Anderson)이 구조와 주체의 관계에 대해 “주체화와 구조화의 과정은 양자 모두 상호 의존적이고 필연적으로 역사적이며 우연적”15)인 것으로 언급했던 바를 재고하면서 주체화가 양의적인 과정을 암시하는 것으로 풀이하고 있다. 즉 주체화라는 것이 인간에게 “주체성과 행위자로서의 능력을 부여하지만, 그러는 한편 그들의 이해나 통제를 넘어서는 필연과 우연의 세력인 사회적그물망과 문화적 약호 내부에 종속”16)시키는 제한선으로 작동한다는 것이다. <햄릿머신>이 몽타주와 콜라주에 대거 의존하는 형식상의 미학을 보여줌으로써 구체화하고 있는 구조와 주체의 상호의존적 형성은 바로 신역사주의 뿐만 아니라 문화유물론이 전제한 세계관이다.

    뮐러의 주체는 브레히트의 주체를 계승한 것이다. 브레히트는 셰익스피어의 시대와 달리 이제 사회를 개혁하고 변화시킬 수 있는 힘은 개인이 아니라 집단에서 나오는 시대가 왔다고 주장했는데, 여기서 집단이라는 개념은 주체의 다른 이름일 뿐이다. 뮐러는 개인을 주체로 만들기 위해 부재성과 존재성을 함께 내보이는 변증법적 수사를 편다. 그가 셰익스피어에게서 기원한 햄릿과 오필리어를 추출하여 무대에 세우고 자기 존재를 전면 부정하도록 만드는 방식에 있어서 햄릿과 오필리어가 대화보다는 오히려 선언에 가까운 파편화된 독백에 의지하도록 하는 것은, 햄릿과 오필리어가 개인으로서 관객을 교조적으로 단일화하여 전유할 가능성을 사전에 예방하기 위함이다. 독백의 극은 원래 하나의 이데올로기를 제시하는 연설이 연극의 형태로 둔갑한 것으로서, 정당하고 다양한 담론의 생성작용을 저지하는 형식이다. 고전 연극의 독백을 차용하되 파편화하는 전략이 뮐러의 셰익스피어 전유 방식 중의 하나인 것이다.

    또한 ‘개인의 주체화’는 햄릿이 여자 옷을 입고 화장을 한다거나 반대로 오필리어가 여전사의 이미지로 등장하는 모습을 통해서, 성별에 있어서도 여성성과 남성성은 자연적인 운명이 아니라 문화적으로 구성되어진 것임을 드러내는 가운데 실현된다. 여기서 ‘해체를 통한 개인의 주체화’가 양의적 의미를 지니는 것은, 그것이 풍자와 관련되기 때문이다. 셰익스피어의 개인이 관객을 전유할 때와 달리, 관객이 셰익스피어의 개인을 전유한 주체로서의 햄릿을 대할때는 불가피하게 풍자가 일어날 수밖에 없다. 뮐러의 햄릿은 셰익스피어의 개인으로서의 햄릿의 역사를 어느 정도 ‘전형적 인물’로서 임차하면서도 동시에 그것을 패러디하는 결과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양가적이다. 셰익스피어의 문맥을 상기하는 동시에 이루어지는 이러한 패러디는 연극의 정치적 효과와 다시 한 번 긴밀한 관계를 형성하며 <햄릿머신>을 ‘자의식적 연극’으로 서게 한다. 그러나 <햄릿머신>의 패러디는 셰익스피어에 대한 미학적 해석 자체에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므로 오마쥬가 아닌 비판 행위이다. 패러디의 도입은 플롯의 절연을 유도하며, 플롯을 버린다는 것은 비극이 구성하는 세계관과 비극이 지향하는 가치들에서 벗어난다는 의미이다. 패러디는 플롯이 중심이 아니라 캐릭터에 의존하는 특성이 있으며 근거 대상의 필연적 왜곡을 수반하는 비평행위라는 점에서 전복적인 전유의 한 가지 기법이 될 수 있다.

    1)베르톨트 브레히트, 『즐거운 비판』, 서경하 편역, 서울: 솔, 1996 참조.  2)Margot Heinemann, “How Brecht Read Shakespeare,” in Political Shakespeare: New Essays in Cultural Materialism, eds., Jonathan Dollimore and Alan Sinfield, Manchester: Manchester University Press, 1985, p. 214.  3)Ibid., p. 215.  4)Dennis Kennedy, “Introduction: Shakespeare without His Language,” in Foreign Shakespeare, Cambridge: Cambridge University Press, 1993, p. 12.  5)김형기, 「하이너 뮐러의 역사 인식과 연극미학」, 김형기 외, 『하이너 뮐러 연구』, 서울: 한마당, 1998, 31쪽 참조.  6)위의 책, 68쪽 참조.  7)정민영, 「하이너 뮐러의 작품에 나타난 여성상」, 김형기 외, 『하이너 뮐러 연구』, 114쪽 참조.  8)베르톨트 브레히트, 『서사극이론』, 김기선 옮김, 서울: 한마당, 1989, 79쪽 참조.  9)뮐러가 연출한 햄릿머신에 대한 논의는 이상란, 「하이너 뮐러 연극: 주체와 역사의 위기」, 한국연극학회(편), 『20세기 독일어권 연극』, 서울: 연극과 인간, 2001, 327쪽과 엘리자베스 라이트, 『포스트모던 브레히트』, 김태원, 이순미 역, 서울; 현대미학사, 2000, 186-187쪽 참조.  10)마크 포티어, 백현미, 정우숙 역, 『현대 이론과 연극』, 서울: 월인, 1999, 44쪽 참조.  11)위의 책, 74-75쪽 참조.  12)김우창 외, 『현대문학비평』, 서울: 한신문화사, 1994, 583쪽 참조.  13)카바나가 제시한 예는 <한 여름 밤의 꿈> 1막 2장의 66-78행이다. James H. Kavanagh, “Shakespeare in Ideology,” in Alternative Shakespeare, ed., John Drakakis, London: Methuen, 1985, p. 92.  14)브레히트, 앞의 책, 414쪽.  15)Louise Montrose, “New Historicisms,” in Redrawing the Boundaries: the Transformation of English and American Literary Studies, eds., Stephen Greenblatt and Giles Gunn, New York: The Modern Language Association of America, 1992, p. 134.  16)Ibid., p. 156.

    3. 변형된 미래로의 한 걸음

    뮐러의 <햄릿머신>은 셰익스피어의 <햄릿>이라는 정전에 대한 하나의 비평이며, 문화유물론에 대한 연극적 실천이다. 문화유물론과 뮐러극의 비교연구는 그러므로 텍스트의 역사성, 역사의 텍스트성을 고찰하기 위해 문학과 역사를 중심으로 개진하는 학제간 연구의 한 방식을 의미한다. 관찰자의 주관성에 대해 보다 확연한 자의식을 가지는 것을 과학적 서술 작업의 한 방편으로 여기는 문화유물론과 뮐러극은 역사중심주의라는 점에 있어서 공통적 맥락을 형성한다.

    뮐러는 고전작품을 하나의 모범으로 삼으려하지 않았다. 그에게 있어서 독일 고전주의는 원전 숭배주의와 다름없고 무엇보다 과거지향적 발상이기 때문이다. 보다 더 정확한 현실 파악이라는 전제로 인하여 뮐러에게는 미학보다 사상이 우선이었다. 그러나 뮐러극을 해석할 때 미학의 전제가 사상이라는 점을 간과하는 비평적 편견들은 단지 뮐러극에 대한 단편적인 해석의 결과만은 아니다. 이는 뮐러의 이율배반적 태도와 변증법적 작술이라는 그의 글쓰기 목표 및 방법 때문에 불가피하게 일어난다. 본론에서 밝혔듯이, 일의적인 해석을 거부한다는 면에서 뮐러와 문화유물론의 입장은 친연성을 맺는다. 뮐러는 연극을 위한 공연대본이기에 은유적인 언어에 의존하였고, 문화유물론은 다원적인 텍스트들의 구사를 통해 의미의 파장을 확대시키고자 한다. 양자 모두 문학의 사회적 기능을 대단히 중시하는 입장에 서있기 때문에, 논의의 대상으로 삼는 정전의 권위를 파괴하는 동시에 비평적 입장에 서있는 자기자신의 입지에 대해서도 일원적으로 성립시키려고 하기보다는 정전인 대상에 대해 비평텍스트 자신과 독자 및 관객이 서로 관계 맺는 방식을 제시하는데 초점을 둘 뿐이다. 여기에서 형식과 내용의 특성에 관한 혼란이 생기는 것이다.

    뮐러극이 보이는 해체적 단편화는 그가 독일 역사를 발전의 연속성을 상실한 단편적 성격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는, 자국에 대한 구체적인 역사의식에서 연유한 것이다. 뮐러는 민중의 혁명적 잠재력에 대해 관심과 믿음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궁극적인 해체주의자는 아니다. 뮐러는 콜라주의 극적 효과를 통해, 문화유물론은 텍스트들의 자의적인 병치를 통해 독자와 관객의 사회과학적 비판의식을 자극하고자 하는 정치학을 지향한다. 과거를 인식하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역사적으로 제한된 관점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문화유물론적인 전제는, 뮐러극에 햄릿과 오필리어가 인용되는 이유를 설명해준다. 프로이트의 정신적 지형학 대신 부수적 개체들의 통합체로서의 인간들, 즉 주체 혹은 브레히트적 의미에서의 집단을 주장하는 뮐러는, 셰익스피어의 인물들을 ‘개인’으로 읽어내고자 하는 보편적 휴머니즘 비평에 반하는 <햄릿머신>을 메타비평으로 제시하고 있다. 개인이 아니라 집단이 주체가 되는 사회를 예술에 반영하겠다는 브레히트와 뮐러의 모토는 다성적인 집단의 목소리를 강조하는 문화유물론과 상통한다. 물론, 브레히트와 뮐러는 동일하지 않다. 비록 같은 유물론적입장에 서있더라도 브레히트는 유토피아적 면모를 추구하지만 뮐러는 문화와 예술의 유토피아적 양식을 경계한다. 변형된 미래에 대한 생각을 재현함에 있어서 브레히트의 연극은 비생산적인 것으로 비난받았지만, 뮐러는 그러한 한계를 넘어서서 생산적인 형국으로 발전시키고자 파괴와 해체의 모티브를 적용한다. 뮐러의 시도는 특히 공포와 경악과 같이 교육적으로 응용 가능한 감정에 근거한 것으로써 브레히트를 계승하는 것이지만, 동시에 브레히트의 유토피아적 재현 의지는 거부한다.

    문화유물론은 맑스주의 문학비평이 토대/상부구조 모형에 의해 직면할 수도 있는 환원주의를 극복하기 위해 경제와 문화 간의 관계가 중층결정된다고 주장한다. 즉 텍스트의 형성은 단지 경제적 힘뿐만 아니라 다양한 역사적 힘의 영향에 의해 종속된다는 신역사주의의 문화이론을 인용하고 변형한 것이다. 문화유물론은 성별, 인종 등을 포함하여 확장된 담론의 장으로 나서면서 정치적 참여와 관련하여 현대의 대중문화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이는 뮐러극이 정치적 참여, 여성 해방을 위시한 인간 해방, 매체와 대중문화의 관계, 자본주의와 사회주의의 관계에 관심을 기울이는 태도와 상응한다. 매체의 역사는 대체의 역사가 아니라 누적의 역사라는 점에서 연극은 상대적으로 지엽적이고 잉여적인 형식으로 전락했지만 연극은 기술시대의 모사적 문화에 대항하는 특질을 지닌 매체이기 때문에 뮐러의 사회 통찰 방식으로서 적합했던 것이다. 뮐러는 포스트모던한 상황 및 문화와 비평적인 관계를 맺고 대화를 나누고 싶었던 것이지, 단순하게 그의 극 자체가 포스트모던한 사고를 표방하려 했다고는 볼 수는 없다. 포스트모더니즘의 미학적 실천 아래에서 동독의 특수한 정치 경제의 문맥을 벗어나려 하지는 않았던 뮐러는 관객의 비판적 거리를 복원하고 싶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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